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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이제 코미디의 ‘왕’이로소이다, <어깨동무>의 유동근

유동근은 TV와 영화에서 보여준 두 가지 이미지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드문 배우다. 그는 30대의 트렌디드라마라고 평가받았던 <애인>과 장중한 무게를 가진 사극 <용의 눈물>로 스타가 되었다. 그런 그가 꽃무늬 셔츠를 입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전라도 조폭으로 나타났을 때, 그 모습은 충격이라기보다는 발견에 가까워 보였다. 숨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엔, 어쩌면 늦은 나이, 마흔셋. 3년 전 <가문의 영광>을 시작으로 매년 코미디영화 한편을 내놓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서울 지역의 근본없는 깡패 태식이 되었다. 그의 새 영화 <어깨동무>는 재벌 비리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되찾고자 동분서주하는 세 깡패와 한 소년이 이루어가는 코미디. 야심으로 고뇌하는 왕자 이방원과 별볼일 없는 삼류 깡패 사이의 간극을, 유동근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그를 만났지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유동근은, TV에서 보여주던 것처럼 점잖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꼼꼼하고 세심하기도 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깨동무>에서 부족한 점을 말해달라며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하기까지 했다. 한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데, <가문의 영광> 이후 벌써 세 번째 영화다. 다시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있는지. 특별히 이유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TV드라마를 하다보면 영화를 찍을 시간이 없어서 그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사극은 한번 시작하면 2년을 가기도 하니까. <가문의 영광>은 <용의 눈물>을 함께했던 조감독 때문에 출연했다. 그 친구가 워낙 성실해서 좋아했었다. 연예인으로서 호기심도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 같은 건 방송에서는 보여줄 기회가 없었으니까, 한번 해보면 어떻겠나 싶어서. 재미있는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출연했는데 그 재미라는 것이 사람을 자꾸 취하게 만들더라. 한번 취했을 때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너무 취하면 추태 아닌가. <어깨동무>는 <가문의 영광>이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하고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출연했다. 남들은 그 조폭이 그 조폭이지 할지 몰라도. (웃음) 이번엔 액션도 있지 않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다른 두편의 영화와는 좀 다른 코미디였다. 경상도 사투리 하느라고 고생했다. 드라마 <루키>에서 써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작가가 사투리를 너무 몰랐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때는 오종록 감독이 사투리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였고. (웃음) 오종록 감독은 PD 출신이라서 그런지 영화 연출에선 구멍이 보였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썩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문의 영광>은 흥행이 잘됐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다. 그저 관객이 많이 들었나보다, 제작자는 좋겠다, 이 정도다. 잘 만든 영화라도 관객이 안 들면 쪽팔려하고, 엉터리 영화라도 관객 잘 들면 좋아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그런 게 촌스럽더라고. <어깨동무>가 첫 번째 시사회를 열었다. 보고 난 느낌이 어떤가. 재미없지 뭐, 태식이 연기하는 게 쪽팔리기도 하고. (웃음) 대목마다 꼭지점을 확실하게 찍어주고 그 여운을 끌고나가야 하는데, 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나는 한국영화가 관객의 눈높이 끝까지 닿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젠 관객 체질이 변했다. 그러면 제작자부터 체질이 변해야 한다. 그렇게 못하니까 소재가 빈곤해지는 건데…. 사실 재미없다고 말한 건 겸손하자는 뜻도 있었다. 내가 출연한 영화라고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 이러면 창피하지 않나. 나는 연기자고 장사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는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어깨동무> 제작자인 최승혁씨는 몇년 만에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 영화 만드는 모습 보면서 많이 속상했을 거다. 돈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못하니까. 이 영화가 성공하면 이성진도 연기에 젊음을 불태울 수 있지 않겠나. 그애가 돈 벌자고 연기를 시작하진 않았을 거다. 열심히 하는 친구니까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성진과 차태현이 경찰서에서 함께 연기하는 장면 보면 예뻐죽겠다. 본인 연기는 어떻게 보았나. 역시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는데. 내 연기는 마음에 드는 부분 하나없이 닭살이다. (웃음) <가문의 영광>이나 <어깨동무>는 연기자에게 의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가문의 영광>에서 (‘섹스’라는 단어 대신 사용했던 손짓을 재현하며) 이랬던 게 무슨 연기야 잔재주지. 다만 그 재주를 내가 즐겨서 했다는 게 중요했던 거다.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영화 찍었으면 연기자로서 남는 게 있겠지. 남들 그런 영화 하는데 나는 <어깨동무> 하면서 연기가 어땠는가, 이런 얘기 하면 쪽팔리지. 그런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태식이 피투성이가 된 꼴통을 붙잡고 흐느끼다가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고선 정색하고 내던지는 장면. 갑자기 감정이 바뀌기 때문에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연스럽다. 나도 그 장면은 마음에 든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순간 욕을 했다는 거. 요즘 한국영화는 욕이 너무 많다. 나는 현장에서 할 수 있는 한 욕을 순화하는 편인데도 워낙 시나리오에 욕이 많이 나오니까. 그게 리얼한 건 줄 아는데 좀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관객이 욕하는 장면을 보면서 재미를 느꼈을지 몰라도 이젠 아닌 것 같다. 우리 영화에 동무 친구가 자위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 그… 거기가 서서… 거기에 추리닝 걸치고 있는 그거. 1년 전만 해도 그런 장면에 거부감 느끼는 관객은 별로 없었을 거다. 지금은 아니다. 휴지 몇장 쥐고 있으면 차라리 더 분위기가 날 텐데. 하긴 연기자인 나도 이러는데, 전체를 끌고가는 감독은 얼마나 생각이 많겠는가. 조진규 감독은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착하고, 인격이 크다. 최근 출연한 영화 세편이 모두 코미디다. 한 장르만 고집할 이유는 없었을 텐데. 내가 코미디를 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고, 코미디는 가장 어려운 장르다. 한국영화를 지금처럼 살려놓은 장르도 코미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코미디를 의붓자식 취급하면 안 된다. 관객이나 제작자나 기자나 다 공범 아닌가.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코미디만 계속 하지 말라고. 그럼 왜 코미디를 계속 하면 안 되는가. 유동근이가 영화에서 이루어놓은 것도 하나 없는데, 뭐 하나라도 해놓고 다른 거 해보자 해야지. 방송에서 왕을 연기할 배우로는 유동근을 제일로 친다. 그래서 가만있어봐, 이젠 망가질 때도 됐고, 코미디영화는 돈도 되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웃음) 집사람한테도 “여보 내가 이젠 망가지는 역할도 경험해봐야 할 것 같아” 얘기하고 시작했다. 렌즈 하나 바꿔 끼고 이미지 변신했다 말하긴 쉽지만 그게 무슨 변신인가. 아까 말한 것처럼 이런 영화들이 연기자에게 의미는 없다. 그러니까 돈 많이 받아야지. (웃음) 스스로 결정했다고는 해도 TV에서 쌓아온 이미지를 한번에 건너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지 않나. 배우가 없다고. 나는 배우가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매니저라면 방송에서 다른 이미지로 변신하는 건 못하게 하겠다. 방송은 결과만 보고 과정은 보지 않는다. TV는 공장 아닌가. 반성할 시간도 없고, 연출자도 안 좋은 장면을 그냥 내보낼 수밖에 없다. 방송은 또 작가 횡포가 심하다. 영화하고는 반대인데, 자기가 쓴 대사 한줄만 고쳐도 난리를 친다. 그래도 시청자하고 약속은 했으니까 끝까지 하기는 해야 하고. 그렇게 위험한 일인데 내 성격이 그래서 똑같은 건 못하겠다. <루키>를 봤다면 알 거다. 그거 <애인2>처럼 찍으려고 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내가 경상도 사투리도 쓰고 다르게 가자고 우겼다. 그냥 멜로드라마 만들었으면 <애인>만큼은 안 돼도 웬만큼은 됐겠지. TV드라마도 사극을 주로 찍었다. 우연인가 혹은 의도한 바인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사극은 그나마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드라마다. 촬영 기간이 좀 되니까. 요즘 현대물은 옷을 어떻게 잘 입어야 하나 그 정도인 것 같다. (웃음) 얼마 전에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봤는데 잭 니콜슨이 비아그라 먹고 실려가는 장면이 재미있었다. 할리우드영화에선 주름살진 배우가 벗어도 좋아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주름진 사람이 벗어봐라. 이건 소득문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서 3만달러까지는 가야 배우가 배우로서 자유를 누리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장동건 같은 후배들이 잘하고 있으니까 기특하다. 그애들은 배우라고 불러도 된다. 나는 아직은 연기자다. 다른 사람들도 TV에만 줄곧 나오다가 갑자기 영화 하나 찍고선 배우라고 하는 거 보면 우습다. 나야 처음부터 이 직업이 좋아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후배들이랑 탤런트 시험 보러 갔다가 붙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뭐. 하다보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지금 이 정도까지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영화 하나 대박났다고 방에다 포스터 붙여놓고 나 배우다, 해봐라. 방송에서 만나 지금까지 탈없이 살아온 집사람이 저게 맛이 갔나 할 거다. (웃음) 마흔여섯이 됐다. 배역에 한계를 느낄 텐데. 나이 먹어서도 계속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잘 안 들더라. 목소리 나올 때까지 연기하겠다는 분들을 보면 나도 부끄럽다. 때가 안 묻었으면 그분들처럼 살 텐데, 나는 벌써 때가 묻었다.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만 돼도 연기할 소재가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은 공간이 너무 좁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계속 하려니까 비슷한 역만 하게 되고. 그 한계를 어루만져줄 필요가 있다. 없는 걸 어떻게 하라고. 방송도 마찬가지다. 소재도 없는데 시간도 부족하니까 모든 게 다 죽어버린다. 영화를 하면서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러웠다. 그 여유가 방송에 연결만 잘 되면 후배들이 훨씬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 텐데. 스탭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사극을 하면 새벽부터 분장을 해야 하는데, 분장하고 의상 맡은 여자스탭들이 자기 돈들여 택시를 타고 온다. 그런 거 개선하는 게 난 개혁이라고 보는데 새로 온 양반은 뭐하는 건지. (웃음) 스탭들 처지는 방송이나 영화나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보니까 1년에 영화 두편 정도 찍겠던데, 먹고 살 돈이 나오겠나. 그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이라서 하는 거다. 대우가 나아지면 얼마나 좋은 영화가 나오겠는가. 올해 말부터 사극 <연개소문>을 찍는다고 들었다. 지금부터 푹 쉬고 연말에는 몽골에 가서 연개소문이 무술대회에 출전하는 장면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100부작이니까 2년 정도 갈 거다. 무술감독이 정해지면 훈련도 시작해야 하고. 말은 탈 줄 아는데, 몽골 말은 기운센 조랑말이라 다시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연개소문은 연기자로서 한번 해볼 만한 인물이다. 칭기즈칸은 유럽 대륙을 먹었는데 연개소문은 중국 대륙을 먹은 사람 아닌가. 그리고 이것도 기운있을 때 해야지 기운 없으면 못하는 거다. (웃음) 2년이나 촬영을 해야 한다면 당분간 영화 출연은 못하겠다. 모르지. 돈 많이 준다면 달려들지도. (웃음)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영화 포스터 사진작가 권영호

프로필 1968년생·중앙대 사진학과 졸업·사진작가·<엽기적인 그녀> <후아유> <일단 뛰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품행제로> <와일드카드> <그녀를 믿지 마세요> 영화 포스터 작업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메인포스터가 즐거운 수난을 겪고 있다. 홍보사 관계자에 따르면, 개봉 이후 곳곳에서 붙여놓은 포스터를 떼어가는 바람에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사쪽에서는 미봉책으로 일부 극장에서 포스터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라지만, 글쎄 효과가 있을까. “이 여자를 사기죄로 고발합니다”라는 강동원의 항변에 “어머머머, 난 사랑이었어”라고 눈을 흘겨 뜨는 김하늘. 흡사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듯한 상황을 연출해 영화의 설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이 깜찍한 포스터는 4년차 권영호 작가가 포착한 것이다. “모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죠.” 권영호씨가 가장 중요시하는 철칙이다. 영화의 컨셉도 중요하지만, 오케이에 이르기까지는 피사체와의 합일이 맨 먼저라고. 3년 반 동안 임은경과 TTL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별다른 준비작업은 필요없었다. 수시로 대화하기, 이게 전부였다. 임은경이 한동안 권영호 외의 작가들과 작업하지 않겠다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니, 그의 전략은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렇담, 김하늘, 강동원 두 주인공과는 오래전에 패션모델로 만난 적이 있었으니 전보다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놀랐어요. 둘 다 자기 캐릭터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을 보여서.” 필립스, 나이키, 라네즈, TTL 등 그동안 권씨가 맡았던 일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광고사진쪽에서 그의 입지는 상당하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뒤 제일기획 사진부에 입사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첫 출근날에 곧바로 사표를 냈다는 그는 이어 프리랜서를 선언했지만 그에게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프랑스 사진작가 장 루이 볼프의 어시스턴트로 1년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이해해줄 법한 디자이너들을 무작정 찾아다녔지만 다들 “신선하긴 한데 어리고 경력이 없다”며 퇴짜를 놓았다. ‘반년 동안 아무 생각없이 놀고 있는’ 그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이신우. 패션화보를 시작으로 권씨는 광고, 영화 등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권씨는 영화 포스터 작업의 매력을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단 한장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패션 같은 경우는 주제나 컨셉만 갖고 풀어가는 거죠. 굉장히 폭은 넓지만 한장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져요. 여러 가지 장면을 통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낌을 이어가는 방식이에요. 반면 영화쪽 작업은 한장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긴장할 수밖에 없죠. 그만큼 만족감도 높고.” 그가 말하는 만족감은 어쩌면 이루지 못한 유년의 꿈과도 연관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관련 서적을 사모으며 연출의 꿈을 키우던 그는 부모의 반대에 끝내 연극영화과 진학의 꿈을 접었다고. “혼자 할 수 있어” 사진 작업을 택했던 그가 영화로 회귀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의 포스터 아시죠? 이미지만으로 그 영화의 핵심을 전달하잖아요. 그걸 해내야죠.”

지브리 스튜디오의 원형,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감독 작품(<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나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첫 작품(<천공의 성 라퓨타>)은 아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출발점이자 원형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작품이다.미야자키가 오랫동안 애니메이션화를 기획했던 <전국마성>과 <롤프>의 이미지를 통합해 만들어낸 이 작품에는 자연과의 일체감이라는 미야자키의 이념뿐만 아니라 그가 창조해낸 지극히 독창적인 세계관 속의 다양한 생물과 메커닉들이 시각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특히 히로인인 나우시카와 비행장면의 묘사는 미야자키의 이후 작품들의 근본 이미지가 되었다. 일본에서 ‘지브리가 가득’ 시리즈로 발매되었던 초기의 DVD들이 LD와 별 차이가 없는 화질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일본에서 3년에 걸쳐 발매되었던 ‘지브리가 가득’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했던 가장 최근의 타이틀인 만큼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아나모픽 1.85:1 영상은 전체적으로 매우 투명하고 윤곽선이 또렷하며 색상의 채도와 순도도 높아, 이 작품 특유의 수채화적인 톤이 잘 살아나는 부드럽고 깔끔한 화질을 보여준다. 사운드도 모노이지만 대사와 음악, 효과음이 매우 명료하며, 음의 대역도 넓다. 우리말 더빙도 무난하다. 지브리 타이틀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음성 해설을 이 작품에 원화 담당으로 참여했던 안노 히데아키가 맡은 점도 주목할 만한다. 서플먼트 디스크는 멀티 앵글 스토리보드와 예고편 모음, 더빙 스케치 등 지브리 시리즈 고유의 구성이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제작과정과 지브리 스튜디오의 설립에 관한 다큐멘터리(28분)가 볼 만하다.

1960년대판 자유부인,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

1966년 흑백 117분 감독 이성구 출연 김지미, 신성일, 김진규, 윤인자 EBS 3월7일(일) 밤11시 오는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그래서 이번달에는 ‘시대에 따른 영화 속 여성상의 변천’이라는 주제하에 1960년대의 여성영화들을 선정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1960년대 모더니즘영화의 명장 이성구 감독의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이다. 당신 부인이 지금 낯선 남자와 춤을 추고 있다면? <댁의 부인은 어떠십니까>는 행복한 가정의 한 주부가 우연히 댄스홀을 갔다가 한 청년을 만나게 되고, 둘의 위험한 만남이 계속되면서 남편이 이 사실을 눈치채게 되는… 그런 줄거리의 영화이다. 지금으로 보면 전혀 충격적이거나 새로울 것도 없는 이른 바 바람난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지만, 영화가 개봉된 군사정권하의 당시로는 노름, 제비족, 춤바람 등을 소재로 한 영화는 모두 검열과정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았던 시절이란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충격적이기까지 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댄스홀을 드나드는 세 여인 김지미, 전계현, 윤인자의 젊은 시절 모습은 상당히 모던하면서도 도발적이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창경원의 모습, 서울 퇴계로 대한극장 앞의 모습 등은 배우의 모습과 함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성구 감독은 일반 관객에겐 좀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화연구자들 사이에선 그의 모던한 연출 스타일로 알려진 감독이다. <장군의 수염>(1968)이나 최초의 70mm 영화인 1971년작 <춘향전> 등을 연출한 이성구 감독은 영어에 능통하고 영화이론에 해박한 지적인 감독이었다고 한다. 또 <시집가는 날>(1956)을 연출한 이병일 감독의 동생인 한국 영화계에 몇 없는 형제감독이다. 끝으로 또 한 가지, 이 영화에는 지난 2월 타계한 원로배우 고 김순철님이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이승훈/ EBS PD agonglee@freechal.com

[충무로 이슈] 할리우드 따라잡기 혹은 콤플렉스

1천만 관객시대의 도래는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비약되고 있다. 과도한 흥분과 섣부른 오해가 뒤섞여 마치 꿈속으로 비상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냉정한 이성으로 이에 대한 평가를 하나둘 짚어가야 할 때라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가에 대한 관점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룬 영화적 성과에 대해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난주 이슈 칼럼에서 조준형씨의 글을 읽고 한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의 글에 대한 전체적인 부정이 아니라 이 작품들을 평가하는 일부 관점에 대해서는 논의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화적 성과를 평가할 때 할리우드영화와 비교해서 ‘우리 영화’의 규모와 수준이 여기까지 왔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태극기 휘날리며>가 스펙터클 분야에서 할리우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이런 관점과 논지에 동의하지 못한다. 더구나 한국 영화인과 관객의 뿌리깊은 할리우드 콤플렉스를 해소해주었다는 얘기는 가당치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영화와 경쟁해서 살아남은 것은 규모와 스펙터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의 질적인 발전이 담보되었기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규모와 기술적인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지만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 역시 뒤질 바 없다. 중요한 것은 규모와 스펙터클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와 장르의 선택 문제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영화의 흥행은 작품의 완성도와 마케팅의 성공 여부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한국영화의 시장과 경쟁력을 논할 때 할리우드영화와 수평적으로 단순비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이미 유치한 문제제기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와 전망을 논할 때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주류 트렌드’가 무엇이냐는 것과 한국영화의 전체 토대가 되어야 할 ‘스펙트럼의 다양성’에 대한 물음이다. 아무리 관객 1천만 시대라 해도 한국영화의 미래는 2003년을 기점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2003년은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장화, 홍련> <스캔들-남녀상열지사> <바람난 가족> <올드보이> 등의 작품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이른바 ‘웰메이드 상업영화’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창출했고, 한국영화의 ‘주류 트렌드’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는 산업적인 의미에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못지않게 중요한 영화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것은 작은 영화든 큰 영화든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주류 트렌드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1천만 관객의 두 영화 역시 규모와 블록버스터의 성취가 아니라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토대에서 이룬 최고의 성과라고 봐야 한다. 다만 1천만이라는 수치의 상징적 의미는 영화적 성공을 넘어선 ‘문화 민족주의’의 틀로 분석한 남재일씨의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내세운 순도 100%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마케팅의 구호가 될지는 몰라도 한국영화의 자랑거리로 과대포장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영화의 성과들을 무시하는 자만일 수 있음을 꼭 말하고 싶다.

[새DVD] <참을수 없는 사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외

<참을 수 없는 사랑> 감독 조엔 코언/출연 조지 클루니, 캐서린 제타 존스/화면비율 1.85:1 아나모픽/사운드 DD & DTS 5.1 돈 밝히는 변호사 남자와 남편을 속옷 갈아입듯 갈아치우며 거액의 위자료로 살아가는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코언 형제의 영화답게 로맨틱 코미디지만 낭만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냉소적인 영화다. 그럼에도 부록으로 들어있는 감독의 영화소개에서는 코언은 “그저, 사람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로맨틱 코미디니까” 라고 얘기한다. 유니버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화면비율 1.85:1 아나모픽/사운드 DD 모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애니메이션. 디스토피아적 미래세계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웅대한 서사시처럼 그려냈다. 부록 가운데 98년 일본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다가 DVD용으로 다시 편집한 28분짜리 ‘지브리 탄생 이야기’를 놓치기 아깝다. 지브리 타이틀 가운데 음성해설이 처음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 원화를 담당했던 안노 히데아키가 해설에 나섰다. 대원C&A홀딩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감독 로베르트 로드리게즈/출연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조니 뎁/화면비율 1.78:1 아나모픽/사운드 DD 5.1 & 2.0 초저예산 영화 <엘 마리아치>, 이 영화의 대박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한 뒤 만든 <데스페라도>를 이은 로드리게즈 감독의 ‘엘 마리아치’ 3부작 완결편. 감독이 직접 HD 카메라를 들고 찍은 제작 과정을 비롯해 DVD에서만 즐길 수 있는 부록들이 풍성하다. 영화지망생들을 위한 ‘10분 영화 교실’은 HD카메라로 찍은 장면을 컴퓨터에서 가공해 영화의 장면을 완성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셀프 카메라로 찍은 감독의 깜짝 요리교실도 귀여운 부록. 콜롬비아.

아시아 신흥 영화강국, 타이 영화산업 현지취재 [3]

1997~2004 태국의 작가와 장르영화 개괄 퀘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낭낙>과 지리 말리굴 감독의 <메콩강의 보름달 파티>(위부터). 1997년, 타이영화는 갑자기 부활하였다. 80년대 초반까지 한때 200여편에 달했던 연간 제작편수가 경제침체와 맞물려 10여편 내외로 추락한 것이 90년대 중반까지의 타이영화의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90년대 중반 타이의 영화산업은 거의 붕괴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 옥사이드 팡이 한꺼번에 데뷔하면서 타이영화는 기적처럼 부활하기 시작하였다(놀랍게도 당시는 타이의 바트화가 폭락하여 외환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점이었다). 2001년,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은 이러한 부활의 조짐에 불을 질렀다. <낭낙>이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자 그동안 영화제작을 등한시했던 메이저 제작사들도 제작을 늘리기 시작하였고, 타 분야에서 제작자본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펜엑 라타나루앙, 위시트 사사나티앙,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해외의 주요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았고, 옥사이드 팡은 해외세일즈 분야에서 성가를 떨쳤다. 그래서 타이영화의 활황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타이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년이 지난 2004년 지금은 타이 영화인들 모두가 우려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80년대처럼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타이영화는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구조조정 중이다. 지난해 개봉된 48편의 타이영화 중 5편만이 수익을 남겼고, 나머지는 대부분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게다가 30편의 영화가 개봉을 못하고 올해로 개봉을 미뤘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과연 타이영화는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지난 한해 동안 개봉된 타이영화와 올해 발표될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르영화의 나태한 자기복제 지난 몇년간 타이 장르영화는 끊임없는 자기복제와 잡종적 혼합화를 진행시켜왔다. 그리고, 이제 그 무국적화의 폐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타이 장르영화는 공포영화와 시대극, 그리고 트랜스젠더영화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공포영화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방콕은 피수스 프레셍·옥사이드 팡의 작품제목(<귀신들린 방콕>)처럼 온통 ‘귀신이 들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타이에서 개봉되는 한국영화조차도 <하얀 방> <폰> <장화, 홍련> 등과 같은 공포영화가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일정한 공식을 갖춘 이러한 공포영화들이 점차 관습화되고 나태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타 장르영화와의 혼성변종화를 꾀하기도 하는데, 지난해 흥행작인 유틀럿 시파팍의 <부파라트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로부터 버림받고 죽은 여인의 원한을 다룬 이 작품은 장르영화의 혼성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영화 속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대학생인 부파는 부잣집 아들인 아케와 사랑에 빠진다. 장난처럼 시작했던 아케는 죄책감에 빠져 부파와 결혼하기로 하지만, 부모의 강권으로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다. 임신한 부파는 아케를 기다리다가 혼자 죽음을 맞는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멜러드라마의 공식 그대로이다. 다음부터는 ‘공포’로 이어진다. 그녀가 세들어 있던 아파트의 주인과 이웃사람들이 원귀가 된 그녀를 보고 놀라고, 원귀를 퇴치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진다. 이 대목에서 장르공식의 혼성과 이미지 차용이 시도된다. 코미디와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혼성모방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엑소시스트>도 있다. 신부 역할은 타이의 최고 인기 코미디언이 맡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아케의 다리를 잘라 곁에 두는 부파의 모습으로 끝난다(제니퍼 린치의 1993년작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기억하시는가?). ‘원귀’는 타이의 공포영화가 가장 즐겨 다루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이 보여주었던 ‘진중함’은 이제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반디트 통디의 <태어나지 못한 아이>(2003), 피수스 프레셍·옥사이드 팡의 <귀신 들린 방콕>(2003), 체앙 소이의 <호러 핫라인-빅 헤드 몬스터>(2003) 등이 모두 그러했다. ‘영화공장’ 옥사이드 팡이 시나리오를 맡은 탐마락 카무타마노크의 <오멘>(2003) 역시 반전을 거듭하는 비교적 탄탄한 내러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팡의 영화가 늘 그랬듯이 여전히 홍콩영화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티순토른 비차이락의 <전주곡>포스터(왼쪽)과 현재 타이의 최고 흥행작 <보디가드>포스터(오른쪽). 타이의 공포영화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타이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면, 그 반대의 경우가 시대극이다. 타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일깨우고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열망이 주로 시대극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 붐을 유발시킨 작품이 바로 타니트 지트나쿤의 <방라잔>(2001)과 차트리 찰레름 유콘의 <수리요타이>(2001)이다. 당시, 타이는 경제난으로 시민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역사적 사건과 영웅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이 나왔고, 관객은 곧바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 작품들은 경제난에 지친 타이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4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극은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타니트 지트나쿤은 시대극 전문 감독으로 입지를 굳혔다. <쿤판>(2002)에 이어 <세마, 아요다야의 전사>(2003)를 잇따라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희대의 살인마였다가 깨달음을 얻어 스님이 된 아힘사카의 일대기를 그린 수타페 툰니룻의 <앙굴리말라>(2003)가 지난해 검열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채 개봉돼 흥행에 실패하는 바람에 시대극 붐은 현재 주춤한 상태이다. 지금 한창 개봉 중인 이티순토른 비차이락의 <전주곡>(2004)은 음악을 통해 타이인의 정체성을 묻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다. 19세기 말부터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이르기까지 타이의 전통 실로폰 악기인 ‘라나드-엑’ 연주자 쏜의 일대기를 그린 이 작품은 쏜이 당대의 고수와 겨루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어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강렬하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타이영화로 손꼽을 만하다.

[충무로 이슈] 문화산업의 지방화, 발가벗고 덤벼라

최근 ‘산업 클러스터’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다. 클러스터란 영어로 덩어리, 포도송이를 의미하는데, 경제적으로는 ‘할리우드’나 ‘실리콘밸리’처럼 비슷한 업종의 다른 기능을 하는 관련 기업과 기관들이 일정 지역에 모임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요즘 문화산업에서도 클러스터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의 지방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클러스터는 문화산업의 지방화 전략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문화관광부도 전국 10여곳을 선정하여 문화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사실 문화산업이라는 것이 대형 공장이나 물류를 보관하거나 무역하기에 좋은 까다로운 입지조건을 요하지도 않는 산업인데다, 창의력과 최소한의 하드웨어만 있으면 성공을 기대할 수 있으니 지방에서 해보기에 적절한 산업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안자들의 좋은 취지만큼 쉽사리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며칠 사이에도 애니메이션 산업단지를 육성하겠다는 한 지역은 생각만큼 자본이 모이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는 반면 서울의 상암동 DMC는 신청자가 넘쳐서 부지를 확장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뿌리 깊은 서울 중심의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지역이 막상 무언가를 하자고 하니 기반이 전혀 없다시피 한 것이다. 영화산업만 보더라도 주요 언론사, 배급사, 제작사, 스타들이 서울에 밀집되어 있는 상황인데, 어떤 기업이 지역으로 내려가려 하겠는가? 서울을 제외하고는 영상산업이 가장 성공한 경우에 속하는 부산시조차도 서울의 영화사를 유치하는 데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판에 다른 지역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의 망국적인 서울공화국 구조는 어떤 식으로든 해체가 되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문화산업의 지방화 전략은 큰 틀에서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다. 다만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문제인 셈이다. 필자는 장기를 바라보고 차분하게 준비해가지 못할 바에는(사실 이것이 최선이기는 하다) 지자체들이 철저하게 실효성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대형 건물을 짓겠다는 생각은 조금 미뤄두라. 차라리 그 돈의 일부를 헐어 대학의 해당 학과를 지원하고, 서울의 연구인력과 기업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유치해야 한다. 한두개의 유력한 회사라도 지역으로 옮겨오고, 초빙해온 인력들을 통해 자체의 전문인력이 길러지기 시작하면 최소한의 동력은 생겨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소의 무리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가 지역과 중앙의 자본을 적절하게 유치해서 중소규모라도 투자조합을 운영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물론 사업성을 기본으로 하되 해당 지자체에서 제작이 이루어지고 현지 인력을 어느 정도라도 고용할 것을 투자의 조건으로 다는 것이다. 대강대강 기자재나 들이고 건물만 지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라면 시작조차 안 하는 것이 낫다. 정 안 되면 시장의 일부라도 사버리겠다는 투지 없이는 절대로 지방이 서울을 이길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인터뷰] <고독이 몸부림칠때> 출연진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제작 마술피리)가 19일 개봉을 앞두고 기자 시사회를 통해 8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경남 남해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익살스러운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삼자외면', '갈매기' 등 연극연출가 출신 이수인 감독의 데뷔작으로 주현, 송재호, 양택조, 박영규, 김무생, 선우용녀 등 중견연기자와 진희경 등이 한자리에 모이며 제작 발표 때부터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영화에서 주현은 타조 농장을 운영하는 호방한 할아버지 '중달'로, 양택조는 스쿠터 면허 시험에 매번 떨어지는 '찬경' 역으로 각각 출연하며 박영규는 나이 마흔 아홉에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한 '중달'의 동생 '중범' 역을 맡았다. 시사회가 끝난 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은 "꼭 필요한 영화라는 확신으로 영화를 연출하게 됐다"며 "'초짜' 감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주신 출연배우들에게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건넸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밝힌 소감. ▶이수인 감독 = 중년의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데서 꼭 필요한 영화라는 생각을 갖고 연출에 임했다. 특별히 주인공들의 연령대를 생각하고 다른 코미디를 하겠다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코미디는 '진지한 얼굴'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지론이다. 줄거리는 웃기돼 연기자가 너무 웃기려고 애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런 점들을 (배우들에게)주문했다. 캐스팅은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각각의 인물을 염두해 두고 썼다. 출연자들이 시나리오 보고 모두 너무 재미있어 해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초짜' 감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 주신 출연배우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주현 =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 출연을 했다. 대사 중 '엄마'라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은 쑥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큰 이야기는 없지만 잔잔한 느낌을 주는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연기라는 생각을 잊고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영화를 봤다. TV 연기만 하다가 큰 화면으로 내 연기를 보니 연기 패턴을 좀더 작게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태풍 때문에 (시간적으로)몰아 촬영을 해야 하는 악조건이 있었고, 먼 촬영지까지 왔다갔다 해야 했던 좋지 않은 상황도 있어 (개인적으로) 연기에서 여러 모로 아쉬움은 남는다. ▶양택조 =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너무 많이 웃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어내렸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구나'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한번 웃겨보자라는 의도로 연기를 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역효과가 생긴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의 연기가 아쉽다. ▶박영규 = 지금까지는 다른 출연자에 비해 (내)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남자 연기자 중 가장 어린 편이 됐다. 어떤 면에서는 이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영화의 흥행여부를 떠나 배우로서 앞으로 이런 영화는 자주 접하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넉살 좋은 홍반장과의 귀여운 로맨스, <…, 홍반장>

내로라 하는 부잣집의 금지옥엽 외동딸이지만, 아버지의 돈으로 쉽게 인생을 꾸려가는 대신 당당한 홀로서기를 꿈꾸는 치과의사 혜진(엄정화). 그러나 삶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치과의사의 권리를 주장하며 기세 좋게 내던진 사표가 단번에 수리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혜진은 착잡한 마음을 달래러 바닷가를 찾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머, 이런 데가 다 있었네!” 공동 빨래장에서 사이좋게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 지나가는 이들에게 늠름한 인사를 건네는 갈매기, 허허실실 인심 좋은 동네 할아버지들, 지중해 풍광을 뺨치는 바닷가 풍경…. 혜진은 이곳에 치과를 개업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에서 일생일대의 적수를 만나게 되다니. 딱 한살 위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반말을 찍찍 날리는 홍두식, 일명 홍반장이 그녀의 ‘진상’이었던 것이다.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그만하면 쓸 만하고 수리면 수리, 배달이면 배달, 요리면 요리, 노래면 노래, 싸움이면 싸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백수 건달, 그러나 그 덕분에 마을의 모든 대소사에 반드시 끼어들며 그의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단돈 일당 5만원으로 날품팔이하는 이상한 남자 홍반장. 그런데 ‘소셜 포지션’이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히 로맨스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은 제목에서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언명한다. 분명 귀에 익은 제목 아닌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얏!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가에서 곧바로 따온 기나긴 제목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을 법한, 겉으로는 무척 평범한 이웃이지만 사건만 터지면 곧바로 해결사로 등장하는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러니까 <홍반장>의 주요 축은 홍반장이라는 낯선 영웅의 디테일 묘사,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에서 시작되어 로맨스라는 놀라운 판타지의 대단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개그 만화적 관점에서 따뜻한 웃음을 유발시킬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홍반장은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는 만능 재주꾼으로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정작 자신은 마음 한구석을 꽁꽁 싸매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소년 같은 남자이며, 제대 뒤 3년 동안 마을을 떠나 있던 공백기의 미스터리어스함으로 더더욱 호기심을 한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홍반장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되도록 삭제한 채, 그저 이 특별한 남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를 권유한다. 그리고 관객은 논리를 일일이 따지지 않은 채 기분 좋게 그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영화의 두 번째 축, 개그 만화의 감수성을 제대로 포착한 디테일의 승리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작은 상황 하나만으로 캐릭터의 느낌이 충분히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폭과 양아치들이 난립하던 슬랩스틱코미디가 결여하고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캐릭터로부터 웃음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이끌려나와야 한다는 기본을 제대로 지키는 영화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꾸 자기 주위를 맴돌며 도움을 주는 홍반장의 속을 떠보려는 혜진이 짐짓 시침떼며 물어본다. “너 나 좋아하는구나?” 남자,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짜증나…”라며 한숨을 쉰다. 닭살 돋는 로맨스의 억지 춘향, 우연 남발, 운명 지향주의는 깔끔하게 제거된 채 최대한 현실에 밀착된 대사와 더불어 고고함과 썰렁함을 오가는 남녀주인공의 순정 개그 만화적 감각을 최대한 확장시키는 순간에 비어져 나오는 웃음들은, 웃어야만 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웃으면서도 불쾌감을 떨칠 수 없었던 일련의 영화들과 달리 상쾌한 뒷맛을 남긴다. 여기에서 다카하다 이사오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의 정서가 얼핏 끼어든다. 도시 여자와 시골 남자, 환경과 계급과 성격이 너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끌어안는 과정에 있어, 차가운 도시와 대비되는 시골의 수려한 자연 공간이 ‘여기야말로 사람 사는 곳’이라는 낭만적 판타지를 심어주며 두 남녀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도움을 주는 과정 말이다. 홍반장의 재촉으로 전공 분야도 아닌 산부인과 의사 노릇까지 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혜진이 홍반장과 함께 바닷가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는 장면의 지극한 센티멘털리티는, 그만큼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지금까지의 착한 명랑함의 균형을 뒤흔드는 장치이다. 낭만을 최고치로 한껏 끌어올리고 난 뒤 영화는 그 낭만성의 반동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나머지 30여분은 전반부와 달리 약간 맥빠진 느낌의 순정만화로 일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강석범 감독의 데뷔작 <홍반장>은 억지스럽지 않은 캐릭터의 탄탄한 구축으로부터 작은 웃음들을 직조해낼 수 있는 산뜻한 코미디영화의 좋은 예로 남을 만하다. 소박하게 휴머니즘의 가치에 찬사를 보내는 이 착한 영화 앞에서 미소짓지 않고는 배겨나기 힘들다. :: <홍반장>이 발굴한 매력남 ‘공구하고 싶은 남자’ 김주혁! <홍반장>에는 배우들이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엄정화와 김주혁, 간호선 미선 역의 김가연이 영화의 주요 파트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화 <홍반장>과 캐릭터 홍반장의 매력을 최대로 살려낸 주인공 김주혁은 발군의 세련된 코미디 감각을 과시한다. 귀신도 울고 갔다는 확실한 배짱밖에 믿을 게 없는 사내 홍반장, 텔레비전 화면에서 막 기어나온 <링>의 귀신이 그 앞에서 훌쩍훌쩍 울며 “잘못했어요...”라고 칭얼거리는 장면에서의 김주혁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TV 드라마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도 어느 정도 선보인 바 있지만) 이 점잖고 차갑게만 보이던 배우의 어디에 이토록 능청맞고 허점투성이의 매력이 숨어있었나 싶게 놀라게 된다. 지금까지 주로 상대 여배우와의 협업을 통해서 ‘커플 파워’를 발휘해왔던 김주혁은 <홍반장>의 타이틀 롤을 연기하며 비로소 확실한 눈도장을 찍는다. 어쩌면 20대 초반까지의 여성들은 왜 혜진이 홍반장에게 매혹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굳이 찾아낸다면 라스트 신의 ‘와인 수십 병’이라는 낭만적인 장치 때문? 그러나 20대 중후반부터 30대에 이르는 미혼 여성들은 모두 하나같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홍반장 같은 남자라면...’라고 남몰래 한숨을 내쉴 것이다(그리고 일제히 그를 ‘통장’으로 추대할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김주혁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