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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관객 1천만 시대 영화인들의 고언

<실미도>에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가 1천만 관객 고지에 올랐다. 관객 1천만 시대라는 것은 한국영화의 규모가 그만큼 커지고 관객층도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흥행영화의 스크린 독점으로 작은 영화를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터져나오고 있고 영화시장의 파이가 커진만큼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불만의 소리가 들린다. 관객 1천만 시대를 맞아 각 분야에서 일하는 영화인들이 한국영화계에 고언을 털어놓았다. ▶곽용수(36ㆍ독립영화전문배급사 인디스토리 대표) 영화산업의 규모가 커졌다는 사실은 반갑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버팀목은 다양성이다. 독립영화 상영 쿼터제를 도입하지는 않더라도 강제규 감독이 <송환>의 프린트 비용을 후원한 것처럼 주류와 비주류가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는 독립영화 전용관을 설립하고 방송에 독립영화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채윤희(영화홍보사 올댓시네마 대표ㆍ여성영화인모임 대표) 강제규 감독은 다른 감독과 다르게 독자 브랜드를 확실히 구축한 인물이다. 그 브랜드의 상품성이 관객에게 통한 것으로 본다. 욕심을 내자면 다른 영화도 골고루 잘됐으면 좋겠다. 2월달 한국영화 점유율이 82%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두 편에 집중된 것 아닌가. 여러 사람의 취향에 맞도록 다양한 영화가 공존해야 한다. 영화홍보사 입장에서는 어려워진 점도 있다. 전국관객 100만이나 200만이면 성공한 영화 축에 드는데 이제는 기대치들이 모두 높아져 시큰둥해 한다. ▶이문희(UIP 홍보실장)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평소 영화를 보지 않던 연령층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제는 영화 관람이 젊은 층이 즐기는 레저가 아니라 모든 연령층이 향유하는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유행에만 휩쓸려 한두 영화에 몰리는 것보다 취향에 따라 골고루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 1천만 돌파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직배사 입장에서는 외화가 한국영화에 눌려 걱정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영화의 성장이 뿌듯하기도 하다. ▶하우종(47ㆍ허리우드극장 상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덕분에 관객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반면에 걱정도 앞선다.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져 웬만큼 만들지 못한 한국영화는 외면받을 것이다. 두 영화와 비슷한 수준의 영화가 계속 뒤따라주지 않는다면 관객 숫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작은 영화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도 우려된다. 극장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한두 영화가 절반 이상 독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양기환(43ㆍ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 현재의 영화시장 구조는 국내 상업영화와 미국 직배영화의 대결구조다. 예술영화와 제3세계 영화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스크린쿼터 감경 대상에서 성수기 상영과 통합전산망 가입 조항을 폐지하는 대신 예술영화 상영에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을 확대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또 금융자본만이 아니라 자본의 창구를 다양화해 예술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스크린쿼터는 보험적 성격이므로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고, 한번 축소한 것을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철환(39.남.한국농아인협회 기획인권팀 팀장)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1천만 관객 중 장애인들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는가?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은 몇몇 이벤트 행사나 1년에 한차례 열리는 장애인 영화제, 동호회 영화 관람 등 극히 제한적으로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영화진흥법이나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을 개정해 극장에 휠체어 통로나 장애인석, 장애인용 화장실 등 시설과 자막, 보청시스템 등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한 강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제도개선 외에도 영화인들이나 일반인들이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이 당연한 문화 향유의 권리라는 인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김우찬(26.남.<바람의 전설> 촬영팀) <태극기 휘날리며>의 프리미어 시사회에서 외신기자들이 `어떻게 이런 적은 제작비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느냐'며 찬사를 보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스태프의 한사람 입장에서 화가 난다. 정말 한국 같이 스태프 임금이 싼 곳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일이 가능하겠나? 현장의 스태프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으며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1천만 시대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쓰쯔다 마끼(38.남.일본인.서울스코프 영화팀장) 감독과 스태프들을 비롯한 한국 영화인 모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한국 영화의 경사다. <태극기 휘날리며> 성공은 배급과 마케팅 그리고 영화 자체의 힘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경우다. 형제애와 멜로, 오해와 화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해외에서의 성적에 따라 한국영화가 아시아와 세계로 비약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처럼 해외에서도 출연배우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이정호(39.남.애니메이션 <오세암> 제작사 마고21 대표) 시장확대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국 영화의 다양성 확보면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도 대작화되는 분위기라 투자자 확보는 더 수월해 질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드 릴리스되는 영화가 자꾸 늘어갈수록 애니메이션의 극장잡기가 어려워지지 않을 까하는 우려도 있다. 애니메이션 전용관 설립이나 다양한 상영관 개발 등 국산 애니메이션의 안정적인 배급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성훈(34.남.<그놈은 멋있었다> 조감독) 열악한 한국 영화 현실에서 <태극기 휘날리며>같은 웰메이드 영화가 나왔다는 점이 우선 기쁘다. 영화는 우선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성공한 영화가 자꾸 나와줘야 다양성도 보존될 수 있다고 본다. 최저생활비에도 못미치는 임금에 체계적이지 못한 제작 시스템은 분명 문제지만 이를 가지고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에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다. ▶서영주 (여.해외마케팅 '씨네클릭 아시아' 대표) 영화를 잘 보지 않던 연령대까지 극장을 찾는 등 시장이 확대됐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특성에 잘 맞는 소규모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현승 (42.남.영화감독) 두 편의 영화가 1천만명을 돌파한 것은 그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선례가 있다는 정도의 의미 뿐이다. 매번 그정도 관객 모을 수 있다는 얘기도 아니지 않은가? 사실, 1천만시대와 상관 없이 한국영화의 '빛과 그늘'은 여전히 존재했던 것 같다. 배급 시스템의 문제점들이나 다양한 영화의 필요성은 <살인의 추억>이 500만명을 넘었을 때도, <친구>가 800만명을 돌파했을때도 있었던 문제들이다. ▶류형진 (29.남.한국영상원 영화이론 전문사과정) 솔직히 두 영화가 1천만명을 끌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와이드릴리스(대규모 개봉)라는 배급의 힘과 엄청난 금액의 홍보비, 여기에 이 영화를 안보면 '왕따'가 되는 듯한 집단 최면의 결과다. 투자가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제작비를 모으는 게 쉬워지는 것은 일부 '큰 영화'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크게 질러서 크게 먹자'는 식의 한탕주의만 퍼질 뿐,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는 이들 영화의 10분의 1도 안되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LA] 종교영화의 바람이 분다

첨예한 종교 논쟁을 등에 업고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사진)가 잇단 ‘종교영화’ 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 첫 번째 주자로 는 지난 3월8, 9일 TV용 영화, <유다>를 미주 전역에 전격적으로 방영했다. 2001년에 제작된 <유다>는 적절한 방영 시기를 찾지 못해 사장될 뻔했으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후 높아진 종교영화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선을 보게 된 것. 원제가 <유다와 예수>인 이 작품은 가톨릭 사제가 대표인 폴리스트 프로덕션이 제작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팔즈 로버트 카너가 감독했다. 예수의 수난이라는 사건보다는 유다와 예수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차별성이 있다. 하지만 반유대적인 묘사와 수위 높은 폭력성으로 논란이 되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비교할 때, 대체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무난하다는 평이다. 당시 집권세력이던 로마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고조된 갈등에서 예수의 수난에 이르기까지의 전후 상황이 비교적 충실히 묘사되었는가 하면, 예수의 처형을 결정하는 데 로마 집정관 빌라도의 책임이 강조된 점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성서에도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유다의 개인 역정이 당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상상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맡은 톰 폰타나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듯(<오즈> <호미사이드>), 예수에게서 반로마 혁명의 가능성을 찾는 유다의 반골 기질이 로마인에게 핍박당한 불우한 성장 과정에서 기인했다는 설정 등은 상당히 ‘드라마적’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소프 오페라판 체 게바라”형 유다라는데 <유다>는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TV영화답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는 달리 일견 전형적이지만,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희망했듯 종교적인 주제에 대해 열린 대화를 이끄는 역할은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

[새영화] <베틀 로얄2: 레퀴엠>

“<베틀 로얄2: 레퀴엠>은 골수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께서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 힘겨운 투병 중에 기획된 영화입니다. 아버지는 1편이 만들어지고 난 뒤 급박하게 변한 세계 정세를 담고 싶어하셨습니다. 촬영 도중 결국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뜻에서 레퀴엠이라는 부제를 달게 됐습니다.” 지난 11일 일본 도쿄의 도에이 스튜디오에서 열린 <베틀 로얄2: 레퀴엠>시사회장 기자회견에서 후카사쿠 겐타(32)는 전작을 연출했던 아버지 후카사쿠 긴지(1930~2003) 감독를 추모하며 말문을 열었다. 폭력의 미학을 통해 일본사회의 폐부를 드러내온 후카사쿠 긴지가 2000년 감독한 <베틀 로얄>은 늘어나는 청소년 범죄를 막기 위해 어른들이 만든 베틀로얄 법의 시범케이스로 뽑힌 같은 반 중학생들이 한명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잔인하게 서로를 죽인다는 내용으로 일본 개봉 당시 폭력성 논쟁에 휘말렸던 영화다. 2편은 9·11 사태를 염두에 둔 듯 대규모 테러가 어른들의 질서를 위협하는 시대에 개정된 법의 시범케이스로 뽑힌 한 반 아이들이 1편에서 살아남아 테러리스트가 된 나나하라 슈야(후지와라 타츠야) 일행과 전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로 1편에 비해 액션씬이 대폭 커졌다. 1편과 2편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후카사쿠 겐타 감독은 2편의 첫 촬영을 마치자 마자 쓰러져 결국 일어나지 못한 아버지를 대신해 메가폰을 잡았으며 이 영화는 그의 첫 연출작이 됐다. “첫 촬영 전날 아버지와 다투는 바람에 촬영장에 나가지 않아서 당시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몰랐고 촬영기간 내내 아버지라면 여기서 어떻게 찍었을까 고민을 했다”는 후카사쿠 감독은 “아버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스탭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영화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가한 1,2편의 주인공 후지와라 타츠야가 “부자 감독이 일어서서 연기를 바라보는 자세나 분위기,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 등이 너무나 닮아 있어 두 사람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 것처럼 아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끼친 아버지의 영향를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그는 “빠른 템포를 좋아하고 스피디한 감각이 뛰어난 아버지의 영화와 비교하면 모자란 부분이 많지만 이 경험을 교훈삼아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성숙한 연출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은유한 경찰국가의 위협이 현실화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개인적으로 일본이 과거의 전쟁포기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고 무장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베틀 로얄2:레퀴엠>은 다음달 2일 국내개봉한다.

싱그러운 청춘들의 시대착오적 로맨스,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

평범한 소녀에게 할리우드 스타와의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아이디어는 이처럼 간단명료한 소망실현의 신데렐라 스토리로부터 출발한다. 슈퍼마켓 점원 로잘리는 우연히 ‘할리우드 스타 태드 해밀턴과의 데이트’ 이벤트에 당첨되고 할리우드로 가서 꿈에 그리던 데이트를 한다. 이는 스캔들로 얼룩진 태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에이전시의 아이디어였지만, 순박한 소녀에게 반해버린 태드는 웨스트 버지니아로 날아가고야 만다. 시골 마을은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으로 술렁이고, 가장 심사가 꼬이는 사람은 로잘리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피트다. 그러니까 애초에 말했듯이 모든 것은 간단명료하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삼각관계로 살짝 양념하고 싱그러운 청춘들을 배치하면 영화는 완성된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내생애 최고의 데이트>의 그 뜬금없이 실종된 시대성이다. 영화 속 웨스트 버지니아는 마치 50년대 클래식영화들의 무대처럼 보인다. 로잘리가 할리우드로 떠나는 장면에서 소꿉친구 피트는 “처녀성을 지켜!”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영화는 50년대 배경의 영화 속 영화로 시작되고, 그것과 똑같이 재현되는 현재의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수미쌍관의 라스트신은 그 표백된 시대성에 대한 제작진의 변명이다. 매력적인 할리우드 스타를 버리고 소꿉친구의 품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섹스없는 로맨스라는 것이 ‘타락한 현대관객’에게는 지나치게 순진무구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귀향’ 로맨스들(<워크 투 리멤버> <스위트 홈 알라바마>)과 닮아 있는 대목에서는 보수화되어가는 할리우드(특히 10대물에서)와 공화당 정부의 타협점을 흥미롭게 읽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클리셰로 가득 찬 시대착오적 로맨스라도 그 순진한 미소 앞에서 끊임없이 삐딱함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블루 크러쉬>의 케이트 보스워스는 새로운 신데렐라로 완벽하고, 태드 역의 조시 두하멜은 여성관객, 혹은 몇몇 남성관객의 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피트 역의 토퍼 그레이스는 훌륭하다. <트래픽>에서 마약중독자 역을 기막히게 소화해냈던 그는, 너무도 가벼워서 바람에 날아갈 듯한 영화에 적절한 무게추를 달아주는 믿음직한 ‘배우’다. 그가 없었더라면 태드 해밀턴의 매력에 숨넘어가는 로잘리와 관객을 피트에게 되돌리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뉴욕] 어린이영화의 세계는 넓습니다

뉴욕에서 개최된 어린이영화제에 한국인 감독의 애니메이션 3편이 출품됐다. 지난 3월5일부터 27일까지 한달여간 개최되는 뉴욕국제어린이영화제 2004(NYICFF)에는 허영만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장편 <망치>(Hammerboy)(사진)를 비롯, 김상남 감독의 2001년 단편 <일곱살>(Kid), 호주 대표로 단편부문에 출품한 수잔 김 감독의 <모국어>(Mother Tongue)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일곱살>에서 어린 남동생만 두둔하는 엄마에게 화가 난 일곱살짜리 여주인공 유주는 옥외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있는다. 하지만 바람소리와 그림자 때문에 무서움이 일자 유주는 계속 숨어 있느냐, 아니면 엄마에게로 달려가느냐를 놓고 고민한다. 이 작품을 보던 어린이 관객은 주인공이 숨어 있던 화장실에 이상한 그림자가 보이고, 바람소리 때문에 유리창문이 덜컹거리자 스크린 속의 유주와 함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76년에 호주로 이민 간 수잔 김 감독은 <모국어>에서 자신이 어떻게 모국어를 잃어버리게 됐는지를 6분짜리 짧은 애니메이션에 담았다. 먼저 이민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엄마와 함께 음성편지를 보내던 소녀는 이민을 떠날 날짜가 다가오자 엄마와 함께 모든 대화를 영어로 시작한다. 아버지에게 보내던 음성 편지에도 영어 연습하는 내용을 담아 보내던 이 소녀는 이후 한국말을 잃어버리게 됐다고 슬프게 말한다. 경쟁부문이 아닌 새로운 작품(New Features) 부문으로 나온 <망치>는 세계 프리미어로 7일 첫 상영됐다. 영어로 더빙되어 상영된 이 작품은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매진돼 행사 당일 입장권을 구입하지 못한 학부모와 어린이들이 예매 취소된 티켓을 구하기 위해 매표소 근처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리기도 했다. 어린이와 학부모 관객이 직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발해온 NYICFF는 올해부터 심사위원 제도를 추가 도입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영화감독 조너선 드미와 구스 반 산트, 영화배우 수잔 서랜던을 비롯해 어린이 방송사 프로듀서와 미디어 관계자 등 7명이 ‘특별 심사위원상’ 수상작을 선발하게 된다.

[현지보고] 케빈 스미스의 6번째 장편 <저지걸> 월드 프리미어

‘저지걸’(jersey girl),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뉴요커들이 누군가를 향해 촌스럽다는 조소를 보내기 위해 곧잘 사용한다는 속어. 하지만 지난 3월4일, 한번도 뉴저지를 떠나본 적 없는 그곳 출신의 케빈 스미스는 <저지걸>이라는 제목으로 6번째 장편영화를 들고 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시사회를 열었다. 데뷔 시절 그의 영화 전력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또 한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조롱 섞인 맞대응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케빈 스미스는 의외로 진지하다. 2000년, TV만화시리즈 <클라커즈>(그의 1994년 장편 데뷔작 <클라커즈>에서 상황과 인물들을 가져왔다)의 각본과 프로듀서를 맡고 있던 케빈 스미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누워 있는 아내와 두달 된 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만약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 혼자 딸을 키운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문득 궁금해한다. 두 시간 만에 40쪽 분량의 시나리오 일부를 썼고, 우연한 기회에 친구 벤 애플렉에게 그것을 보여준다. <체이싱 아미> 같은 영화를 한번 더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던 벤 애플렉은 당장 너의 다음 작품은 이것이 돼야 한다고 바람을 넣었고, 어느 유쾌한 홀아비의 육아일기는 그렇게 탄생하게 된다. 음반 사업계의 전도유망한 홍보부장 올리(벤 애플렉)는 아름다운 여인 거트루드 스테이너(제니퍼 로페즈)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른다. 둘 사이에 딸 거티(라켈 카스트로)가 태어나지만, 아내 스테이너는 출산 중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아내의 죽음을 잊기 위해 일에만 매달리던 올리는 동료 아서(제이슨 빅스)의 충고도 무시한 채 한창 주가를 올리던 가수 ‘윌 스미스’(윌 스미스)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실수를 범하면서 직장에서 쫓겨난다. 고향 뉴저지 하이랜드로 돌아온 올리는 아버지(조지 칼린)를 따라 청소용역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면서 딸 거티를 키운다. 7년이 지나 딸 거티는 또랑또랑한 소녀가 되었고, 올리는 우연히 만난 비디오 가게 점원 마야(리브 타일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거티의 학예회에서 같이 노래를 불러주기로 약속한 올리는 잡기 힘든 회사 면접기회와 날짜가 겹치자 딸과 회사 중 후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대기실에서 윌 스미스를 만나 진정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형식보다 진심 앞세운 13살 이상 관람가 영화 시작부터가 그러하긴 하지만 케빈 스미스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성장한 뉴저지의 하이랜드를 영화의 주배경으로 한다. 유년 시절 스스로가 그토록 좋아했으면서도 볼 수 없었던 손트 하임의 뮤지컬 <스위니 토드>(위층 이발소에서 사람을 죽여 아래층 파이집으로 내려보내 인육 파이를 만든다는 내용)를 영화 속 거티의 학예회 장면으로 삽입하기도 한다. 뉴저지의 지명을 악용해서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이름을 빌려 오히려 부드러운 쇄신을 시도한다. 여기에는 물론 가족 구성원이 되는 배우들의 몫이 마련되어 있는데 절친한 친구 벤 애플렉이 전작들에 이어 다섯 번째 익숙한 출연을 했고, 아직 그때까지는 애플렉의 연인이었던 제니퍼 로페즈까지 동시에 출연했다(그러나 출연 분량은 아주 적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티 역의 아역배우 라켈 카스트로를 두고 “벤과 제니퍼를 반반씩 닮은 것 같다”고 신기해했다. 실제로 케빈 스미스는 라켈 카스트로가 제니퍼 로페즈의 웃음을 닮을 수 있도록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또, 요정의 옷을 벗고 당돌한 아가씨로 변신한 리브 타일러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보다는 훨씬 생동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케빈 스미스는 <저지걸>을 “부모가 된다는 것의 책임”을 생각해보는 영화이며, “아버지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그 말은 곧 이 영화 안에서 욕쟁이 제이와 사일런트 밥(항상 케빈 스미스 자신이 연기해온 그 배역), 아이스 하키에 대한 침튀기는 설왕설래, 막 나가는 신의 천사, 코믹북 주인공들의 찬란한 명단, 듣기 민망한 성인용 욕설 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벤 애플렉이 말하듯, “케빈 스미스가 만든 첫 번째 13살 이상 관람가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케빈 스미스는 늘 발휘하던 수다의 재치와 이야기의 상상력을 가족이라는 세계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유연하게 변용한다. 전에 없이 조롱보다는 안식이 배어 있고, 싸움보다는 화해의 무드가 강하게 깔려 있다. 분명히 이것은 형식적으로는 예외적인 경우이며 감정적으로는 화목함이다. 그러나 전작 <체이싱 아미>에 비교한다면 그 예외를 경험하는 재미만큼 독창적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아마도 <저지걸>은 케빈 스미스가 형식보다 진심을 앞세워 만든 영화라고 인정하면 될 것이다. 4월9일이 오면 그 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감독 케빈 스미스 “내 영화들은 모두 내 인생의 스냅사진이다” <저지걸>은 지금까지의 당신 영화와 많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영화들은 모두 그 당시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스냅사진 같은 것이다. 확실히 이 영화를 만들 때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온통 내 사고를 채우고 있었다. 이전에 만들었던 <제이 앤 사일런트 밥>과는 확연히 다른 영화지만, <체이싱 아미>와는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코미디와 드라마가 섞여 있고 단지 레즈비언과의 관계가 아니라 어린 딸과의 관계를 다뤘다는 것 정도가 다를 뿐이다. 미국인들이 “저지걸”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저지걸을 화려한 머리 스타일에 물빠진 청바지를 입은 여자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사람들의 그런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어 어린 소녀를 저지걸로 표현해낸 것이다. <저지걸>을 케빈 스미스의 예외적인 작품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앞으로의 향방을 예측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봐야 하나. 아마도 이번 영화가 유일한 경우가 될 것 같다.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이 영화 안에서 모두 한 셈이다. 아버지로서의 나의 이야기는 아마도 내 딸이 십대가 되어 남자친구를 사귀고 약을 하고 반항기에 접어들 때쯤 새롭게 할말이 생길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이 한번으로 족하다. 로맨틱코미디의 관습들을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뛰어넘으려 했나. 난 이미 적지 않은 로맨틱코미디를 찍은 셈이다. <몰랫츠>도 어느 면에서는 로맨틱코미디의 성격이 강하고, <체이싱 아미> 역시 그런 영화이다. <저지걸>은 로맨틱코미디이긴 하지만 성격이 좀 다른 영화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두 남녀 사이의 로맨스가 아니라 딸과 아빠,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로맨틱코미디라기보다는 관계에 관한 영화이고, 그런 영화야말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 주연배우 벤 애플렉 “혼자 아기를 키우는 아버지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당신을 그토록 매혹시켰나. 케빈의 시나리오는 항상 좀 긴 느낌이 있다. 그런데 <저지걸>에서는 초반 40쪽까지 아내의 죽음, 아버지가 혼자서 아기를 키워야 하는 상황, 잠들어 있는 아기에게 다짐하는 장면 정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바로 그 혼자 아기를 키워나가는 아버지라는 상황 설정과 감정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았고, 그래서 케빈에게 꼭 계속 시나리오를 완성해달라고 말한 것이다. <체이싱 아미> 때의 어려움과 비교하면 어땠나. 제일 큰 차이점은 <체이싱 아미>가 예산 25만달러밖에 안 되는 소규모 영화였다는 점이다. 그 예산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정말 고된 일이다. <저지걸>은 훨씬 큰 규모의 영화이고, 시간 여유도 많았고, 로케이션 장면 역시 원하는 대로 찍을 수 있었다. 실제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전기 작업을 하거나, 트럭을 몰거나 하면서 현장과 관련된 일들을 동시에 해야 했다. <저지걸>에서는 연기만 하면 됐고, 잠을 잘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케빈 스미스 감독과는 많은 논의를 하면서 작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도 그런 특별한 장면이 있었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긴 하지만, 주로 내가 시나리오를 읽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거야?”라고 물어보고, 아니라면 더 논의하고 맞다면 계속 가는 그런 정도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케빈은 훌륭한 작가여서 내가 도움을 줄 일이 별로 없다. 영화 속에서 리브 타일러(마야)와의 로맨스는 본격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 점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일단 이 영화는 올리와 마야의 로맨스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사실 둘 사이의 관계를 더 진전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딸아이를 둔 아버지의 로맨스가 아니라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야의 존재는 올리에게 과정의 시작점이며, 정서적인 상처의 치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점이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에나, 문학의 밤

그 얘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문학의 밤>을 떠올리는 일은- 이를테면 남자들끼리 몰려간 커피숍에서 <우유>를 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것은 연미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든지, 동원예비군훈련에 바비 인형을 가지고 가는 일과도 흡사하다. 저기… 이게 뭡니까? 이건… <문학의 밤>입니다. 뭐랄까, 그런 기분이다. 좀 오래된 얘기 같지만, 그러나 확실히, 옛날엔 <문학의 밤>이란 것이 있었다. 무릇 세상엔 여러 가지 밤이 있겠지만, 이보다 복잡한 기분의 밤은 없을 거란 생각이다. 묵묵히 한잔의 우유를 마시며, 나는 <문학의 밤>을 떠올린다. 마치 바나나와 딸기와, 또 초코 맛의 우유가 나오기도 전의- 오래된 옛날 같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바다 속에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의 행사였는지도 모른다. 검은콩 우유를 마시는 당신이라면, 영원히 그 물속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래서다. 나는 그래서 시를 썼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 무렵엔 시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여학생들이 돈보다는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배겨낼 재간이 나로선 없었다. 마침 허영만 화백의 <카멜레온의 시>가 모두를 사로잡아, 나는 로트레아몽의 시집을 하여간에 외워야 했다. 학급의 실장이었던 J는 겨울부터 내내 <알함브라의 궁전>을 연습해왔고, 폭력서클의 보스 N은 인근 여상의 백합- L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낭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극부의 Y는 벌써부터 러브레터를 받기 시작했고, 축구부의 K는 도대체 뭘 하려는지, 팔굽혀펴기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축제의 전날 밤엔, 축제 전날에만 뜰 수 있는 붙박이 달이- 내내 한자리에서 불면의 밤을 비춰주곤 했다. 그 순백의, 우유 빛의, 달빛이란. 고백하건대 나는, 얼굴을 마주한 모든 여학생들에게 “로트레아몽을 아시나요?”라고 정말이지 물었고, J는 뭐랄까 <알함브라의 판잣집> 같은 걸 연주했으며, N은, 맙소사 N은 <목마와 숙녀>를 낭송하다 정말로 눈물을 흘렸고, Y의 공연은 질투심 때문에 가보지도 않았으며, K는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려다 그만 분위기에 휩싸여 말춤을 열심히 추었다. 하여간에,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행사를- 하지만 세상의 여학생들은 용서해주었다. 아니 솔깃, 해주었고, 환호해주었다. 놀랍게도 얼굴을 마주한 여학생 모두가 로트레아몽을 알거나, 아는 척했고, 알함브라의 판잣집 따위에도 앙코르를 외쳐주었으며, 의외로 심약했던 문제아의 시낭송에 함께 눈물을 흘려주거나, 허벅지가 굵어 슥삭슥삭 소리가 나는 말춤에도 휘파람을 불어주었다. 세상에나, 문학의 밤이여. 그 <문학의 밤>으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마치 거짓말 같다. 취업의 밤, 재테크의 밤, 부동산의 밤, 주식의 밤, 혹은 원조교제의 밤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어딘 가에서 아틀란티스 대륙 같은 것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아니, 이곳은 물속이다. 고백하건대 문학의 밤을 보내고도, 우리는 <별 수 없이> 세상의 노예가 되었다. 세상에나, 이제 문학의 밤조차 보낼 수 없다면, 또 보낸 적이 없다면, 그럼 우리에겐 어떤 <별 수>가 있는 걸까?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래서, 이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이 예비군훈련장에 나는 왜 바비 인형을 가지고 들어온 걸까? 저기… 이게 뭡니까? 이건… <문학의 밤>입니다. 뭐랄까, 그런 기분이다. 그래도 문학의 밤을 생각하니, 바다 밑바닥의 아틀란티스 유적 위에서 한잔의 우유를 마시는 기분이다. 박민규/무규칙이종소설가

사진은 힘이 세다, <이미지 프레스>

포토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지 않을 만큼 우리는 사진의 힘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그 힘은 때로는 왜곡과 은폐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함정을 피하지 못한다면 청맹과니보다 못하다. 세상을 똑바로 보는 사진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집단인 이미지프레스에는 ‘한장더’라는 메뉴가 있다. 그곳에는 김일성 초상 사진이 두대의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 풍경은 사진마저 우상숭배를 받는 비인간화의 현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인즉 습기가 찬 전시물을 말리고 있는 일상의 한순간에 불과하다. 이미지프레스는 이런 함정을 피해 삶의 진실을 향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지프레스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멋진 사진만 보여주는 갤러리 사이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사진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의욕 넘치는 광장이며,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이미지프레스의 사진들은 현장에 가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등 세계의 현장을 누비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피사체의 현란함보다 작가의 성실한 여정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사진은 그곳의 역사와 삶을 지켜보는 시선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뽀르따쥬’, ‘포토 에세이’ 등의 이미지프레스 갤러리를 둘러보았다면 ‘워크샵’의 글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사진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볼거리만큼 읽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곳이 이미지프레스이다. 김성환/ 인터뷰 전문웹진 퍼슨웹 편집장 ▶ <이미지 프레스> 바로 가기 : http://www.imagepress.net

소재주의에 머문 산악영화, <빙우>

연출의 중심이 조금만 더 반대쪽으로 기울어졌더라면 한국 최초의 본격 산악영화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빙우>는 주무대인 아시아크에 ‘그곳에 오르면 잃어버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진부한 사연을 입히고, 함께 조난당한 두 남자가 실은 한 여인을 사랑했었다는 우연을 억지로 끼워맞춤으로써 산악‘멜로’에 머물고 말았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풀어나가는 회상구조의 짜임새와 세부도 느슨해 흡입력도 떨어진다. <버티칼 리미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조난장면은 볼 만하지만 산악등반 장면은 앵글을 좁게 잡은 탓에 장엄한 영상미를 보여주지 못해 캐나다 로케이션의 빛이 바랬다. 기존의 산악영화들과 차별화될 만한 인상적인 장면이나 느낌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점도 소재주의에 머물고 만 듯한 아쉬움을 준다. 아나모픽 2.35:1 영상은 윤곽선이 또렷하지 못하고 색조가 탈색된 한국영화 DVD의 전형적인 영상 톤으로 일관하고 있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전체적으로 채도가 탁하고 색 순도도 낮아 색조와 질감이 거칠게 보여져, 기대했던 시원한 영상미의 구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돌비디지털 5.1 채널 음향은 천둥·번개소리가 임팩트감 있고, 날카로운 바람소리도 사실감 있게 재현된다. 대사 전달력은 일반적인 수준이지만, 음악의 분리도는 매우 좋다. 감독의 단편 <우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