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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진짜 ‘프로’들!, <아홉살 인생> 주연배우 김석·이세영

말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다.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천진함, 그리고 곧바로 이를 뒤집는 놀라운 영리함. 영화 <아홉살 인생>의 두 주인공이자 초등학교 6학년 동갑내기인 김석과 이세영은 오랜(?) 연예계 생활로 터득한 눈치의 촉수까지 발달해 있어 더욱 감잡기 힘든 대상이다. 영화 속의 여민과 우림이 어른의 눈에 비친 아이들이기에 생동감이 덜했다면, 이 날것 그대로의 두 아이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얼마나 편견 속에서 움직이는지 순간순간 방증해 보이고 있다. 둘과의 대화를 여기 고스란히 옮겨적는 것은 그들의 불명확한 세상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세영 : (아까부터 잡담 중) 그러니까 피가 나서 (석이의) 남방이 빨갛게 물들었잖아요. 석 : 빨리 인터뷰 들어가세요. 우리 빨리 가자면서요. (기자의 휴대폰을 집어들고) 이거 6400(모델명)이에요, 6800이에요? 세영 : 언니, 명함 주세요. (없다는 대답을 듣고) 그럼 즉석으로라도 써주세요. 심심하면 전화하게요. 언니 이름도요. 그리고 <씨네21>에 <아홉살 인생> 때 인터뷰했다는 것도 적어주세요. 안 그러면 나중에 다 잊어버리거든요. 석 : (기자의 휴대폰으로 노래를 틀어놓더니) 오예∼. 정신없이 시작된 인터뷰.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어봤느냐는, 제법 무게있는 질문으로 간신히 진행됐다. 세영 : 촬영하기 전에. 도서관에서 한번, 제대로 읽진 못했는데, 엄마도 모르시는데 그냥 한번 읽어본 적은 있었거든요. 근데 그거 한다고 (영화 찍는다니까) 영화사에서 다시 한번 읽어봤어요. 첨에 읽었을 때는 진짜로 〈!느낌표〉에 나왔기에 그냥, 살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궁금해서 보잖아요. 그래서 봤는데, 재미도 있고, 요즘에는 막 지어내서 창작동화 같은 거, 코드가 좀 다른 거 같아요, <아홉살 인생>은. 석 : 음, 읽으니까는… 읽으니까요, 근데 재미는 있는 거 같았는데요, 그렇게 재밌는 건 아닌데 재밌는 거 같았는데요, 근데 <아홉살 인생> 그거랑 다르잖아요. 영화랑 책이랑, 시나리오랑 책이랑. 근데 어떤 점에선 시나리오가 더 괜찮은 거 같고 어떤 점에선 책이 더 좋은 거 같고 그런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요구에) 근데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른스럽고 터프한 신사 여민이를, 장난꾸러기에다 상대방을 적절히 무시할 줄도 아는 꾀돌이 석이가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나름대로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긴 질문을 던지고 나자 배우 김석, 오히려 질문을 이해 못하고 잠시 침묵을 유지하더니 힘겹게 입을 뗀다. 석 : 잘… 이해가 안 가죠. 근데 제가 어떻게 연기를 했냐면, 그냥 시나리오나 대본 같은 걸 보면은 그냥 그걸 죽 이어오면은 그 감정 그대로 가는 건데? (당연한 왜 묻냐는 듯) 뭐, 우림이가 (전학을) 간다고 그러면 슬픈 감정으로 가야 되는 거고. 그런 거죠. 세영에겐 촬영 중에 쓴 일기에서 ‘우림이의 속내가 궁금하다’는 구절을 읽었다고 말을 건넸다. 정말 그 속내가 궁금했을지가 궁금했다. 세영 : 네. 근데 사실은, (갑자기 어조가 좀 높아지며) 이거, 이거 그대로 써주세요? 그대로? 지금 이 말도?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거기 홍보팀 언니가 무슨 맨 처음에, 어디, 으음, 맨 처음에 포스터 찍느라고 어딜 갔어요. 근데 일기장 얘기를 내가 어쩌다가 나왔거든요? 근데…. 석 : (카메라 기자의 사진기를 정신없이 만지작거리다 말고) 그거 니가 얘기했냐? 세영 : 아 들어봐. 그랬는데, (석이가 다시 사진기에 몰두하는 동안 꿋꿋이 말을 이어나가며) 그랬는데, 그 일기장에 그냥 언니가 생각하는 걸로 봐서는 이렇게, 뭐 속내도 궁금하고, 뭐 그런 식으로 써달라고 그러고, 그냥 있는 니 생각대로 하면 되는데, 언니 말로는 그래도, 어떤 바람이 있잖아요. 눈치를 보면 알잖아요. 그러니까 그렇다고 말은 안 해도 그런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해줘야 나중에 홍보할 때, 그게 된다고, 그러니까 일기에도 우림이처럼 그렇게 써야 된다고, 그래서 그렇게 썼어요. (홀가분해하는 미소) 석 : (카메라에서 관심을 떼더니) 근데 솔직히 말하면요, 우림이처럼 쓰는 게 아니라요, 원래 이 영화 전부터 우림이였어요. 세영 : 아니야. 난 금복이였어. 석 : 우림이였어. 세영 : 금복이였어. 석 : 우림이였어. 무슨 얘기야. 세영 : 나 새침데기 아닌데? 석 : 새침데기에다 변덕쟁이. (목소리를 설득조로 바꾸더니) 그래도 금복이는요, 와락하는 성격이잖아요. 세영 : 왈가닥, 왈가닥. 석 : 그러니까 그런 성격이잖아요. 근데 얘는, 왈가닥도 아니고, 완전 막, 금복이가 튕기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근데 얘는 막 튕기고. 애가 완전히…. 얘기하는 중에 아이들의 보호자들이 스튜디오로 도착한다. 세영이가 분장실 안으로 들어가자고 조른다. 하도 간곡히 조르는 통에 석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폐된 공간으로 일동 자리를 옮긴다. 짓궂은 질문을 던져본다. 누가 NG를 많이 냈나? 석 : 세영이요. 세영 : 뭐야. 왜 나한테 그래. 난 별로 낸 적 없어. 석 : 야, 니, 3일 찍은 것도 있잖아. 3일. 얘 3일 동안 계속 찍은 것도 있어요. 한신 가지고 3일 동안 찍는 사람이 어딨어. 세영 : 그거는, 맨 마지막에 내용이 자꾸 바뀌니까 그렇지. 석 : (세영의 대답에 오버랩되어) 한신 가지고 3일 동안 찍는 사람이 어딨니∼. 세영 : 그게 맨 마지막에 전학 가는 신이 있었는데 그때 대사가 되게 길었거든요. 그래서 다 외워 갔는데…. 석 : 야, 그게 길긴 뭐가 기니? 난 A4 용지 앞뒷면으로 두장도 외웠다. 세영 : 원래는 되게 길었었어요. 근데 바뀐 거예요. 일부분일부분 바뀌었는데 자꾸 바뀌니까, 순서도 그렇고, 되게 어려워가지고…. 두 번째에는 감정이 잘 안 잡혀가지고…. 석 : 쟤는 안 긴 거라니까요. 세영 : (NG낼 때 기분을 묻자) 되게 미안하죠. 근데 제가 이걸 하면서 느꼈는데, 이거는, 틀리더라도, 미안은 한데, 그걸 너무 막 티내지 않고 여유롭게, 너무 막 조급해하지 말고 그래야 되는 거 같아요. 미안해가지고, 당황해가지고 또 틀리고. 석 : 저는 NG 별로 안 냈어요. 아니, NG가 나긴 났는데요, 많이 났는데요, 어∼ 엄청나게 많이 났는데요, 기억을 못하겠어요. (장난기 더욱 발동하더니) 힘든 장면도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지∼인짜 많았는데요, 좋은 영화를 위해서 제 풍부한 감정을 모두 소화해내서 끝까아∼지 했죠. (손짓발짓) 언더스탠? (이 장난이 안 통하는 상황인 걸 바로 파악한 뒤) 저 그런 부분은 많았어요. 이번 <아홉살 인생> 영화할 때, 선생님한테 맞을 때나, 아니면…. 세영 : 근데, 어려운 신일수록 대부분 NG가 안 나는데, 오히려 그만큼 노력을 해서 갔기 때문에. 오히려 쉬운 신에서 이렇게 맘놓고 하다가 틀리는 것 같아요. 아, 이게 제일 많이 났어요. 금복이한테 따귀맞는 신이 있었는데, 그때 직접 때리잖아요, 근데 금복이가 손이 매운 게 아니라 진짜로 세게 때리니까 세게 때리는 건데, 감독님이 액션이 커야 더 아파 보이는데 액션이 안 크니까 뺨만 아프잖아요. 이렇게 확 돌려야 되는데, 상체까지. 것도 되게 많이 했어요. 연습한다고 10번 때리고. 석 : 니는 그건 장난이야. 너 엄마한테 맞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알어? 잘 봐. 다섯번을 했다. 다섯번만 하는데, 한번 하는 데 서른네대씩 넣어. 한번 하는 데 서른네대씩이면, 내가 34번을 다섯번 했다. (한 테이크에 34대씩 맞고, 총다섯 테이크를 갔다는 뜻.) 세영 : 그만 해, 그만 해. 석 : 그럼 몇대냐? 세영 : 오사이십. 오삼십오. 170. 석 : 170대지? 그리고 또 인서트 컷 따느라고 서른다섯번 때렸다. 그걸 두번 했어. 그럼 몇대냐? 세영 :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인서트 땐 때리는 시늉만 하지 않냐? 석 : 아니. 인서트 할 때 실제로 때리구요, 얼굴 딸 때 때리는 시늉만 하지. 뭘 모르네, 아직. 산에 내려올 때가 아직 안 됐다. 다시 올라가라. 석이와 세영인 네댓살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드라마와 영화 모두 골고루 경력을 갖고 있다. 석이는 <넘버.3> <킬리만자로> <도둑맞곤 못살아> <선생 김봉두>에 이어서 이번 영화가 다섯 번째 작품. 세영이는 최근 개봉한 <고독이 몸부림칠 때>와 단편영화를 포함해 이번이 세 번째다. 두 사람은 <내사랑 팥쥐>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재회’했다는 느낌은 없는 듯하다. 그땐 3∼4회밖에 촬영분량이 없어서 서로 말도 잘 안 했었다고 세영이가 설명한다. 석이는 8살 때부터 승마를 시작해 연기와 학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전국 규모의 승마대회에서 1, 2위를 놓치지 않으면서 전교어린이회 부회장까지 겸할 정도로 모든 면에 열심이고 자신만만하다. 그렇게 열심히 장난을 치던 애가 카메라 앞에서 매컷 진지하게 포즈와 표정을 바꾼다. <아홉살 인생>에서 여민의 카리스마가 순전히 아이의 연기였다는 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세영이는 “아동복을 많이 찍어봐서 옷이 예쁘게 살아나게 찍는 게 익숙하다보니 동작이 다양하게 잘 안 나온다”고 누가 묻지 않아도 먼저 설명할 만큼 눈치가 빠른 아이다. “근데 이 말은 쓰시면 안 돼요”라고 기자에게 언질을 던지는가 하면 “방송용으로 해야지, 방송용” 하며 철없이 대답하는 석이에게 핀잔을 주고, 조금 뒤 석이가 다음 작품 이야기를 꺼내자 “그 얘기는 하면 안 되는데. 지금 우리 영화 홍보하는 거잖아요”라며 예민해 하기까지 한다. 세영이에게서 거의 반사적으로 나오는 몇 가지 ‘연예인들의 행동규칙’을 보고 있으면 이 역시 그저 평범한 아이와의 대화는 아니란 점을 새삼 상기케 된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 세계의 이전 단계가 결코 아닌 듯하다. 어림잡아 눈높이를 낮춰도 아이들의 세계를 다 볼 수 없다. 두 세계는 그저 서로 평등한 채 교집합만 있는 게 아닐까. 대강의 짐작과 말주변으로 아이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어른들의 오판일 것이다. 두어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함께했지만 다음번에 세영이와 석이를 다시 만나면 왠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박혜명·사진 이혜정

[캐스팅 소식] 개그맨 김용만의 영화 데뷔작은 <가필드> 外

김용만 >> 개그맨 김용만의 영화 데뷔작은 <가필드>. 5월 개봉예정인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성영화 <가필드>의 영어판에서는 빌 머레이가 가필드에게 목소리를 빌려줬고, 한국어 더빙판에서는 김용만이 그 역할을 맡았다. 한때 ‘호빵맨’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개그맨 김용만의 외모가 이 뚱뚱한 노란 고양이와 흡사하다는 것이 이번 캐스팅의 결정적인 이유. 그는 현재, 아들이 좋아하는 가필드를 충실하게 소화하기 위해 전문 성우에게 지도를 받는 등 열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김강우 >> <나는 달린다>의 건실한 청년이자 <실미도>의 막내 부대원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강우가 최민식 주연의 새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에 합류한다. 김강우는 <나는 달린다>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뒤 끊임없이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아왔고, 그만큼 신중하게 작품을 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탄광촌의 약사 수연(장신영)을 짝사랑하는 건실한 청년 역할. 바른생활 청년으로서 계속 ‘달리는’ 김강우의 모습을 조만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헤스 레저 >> <기사 윌리엄>의 헤스 레저, 카사노바로 돌아온다. <개같은 내 인생>의 라세 할스트롬이 감독하는 <카사노바>에서 그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는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역을 맡을 예정이다. 남반구의 태양으로 그을린 이 오스트레일리아 종마가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그의 연인 나오미 왓츠(<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샤를리즈 테론 >> 샤를리즈 테론 또 다른 오스카를 꿈꾼다. <클래스 액션>에서 그녀는 남자 직장 동료들에게 성적으로 희롱당하다가 마침내 법정에서 맞써 싸우기로 결심한 여성 광부를 연기한다. 이는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직장 성희롱 케이스였던 70년대 초의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이다. 미래 여전사 <이온 플럭스>에 이어 또 다른 여성 전사를 연기할 그녀 앞에 오스카는 언제나 대기 중. 매튜 브로데릭 & 사라 제시카 파커 >> 우리 부부 금실은 스크린에서 확인하세요. <고질라>의 매튜 브로데릭과 <섹스&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 부부가 영화화되는 유명 TV쇼 <스트레인저 위드 캔디>에 공동으로 출연한다. 46살 아줌마의 고등학교 재입학을 그린 이 컬트쇼의 영화화에서 매튜는 게이 연인인 두명의 선생 사이에 끼어드는 남자로, 사라는 섹시한 프랑스어 선생을 맡아 금실을 자랑할 예정이다. 코니 닐슨 >> <글래디에이터>의 코니 닐슨이 모니카 벨루치를 대신하여 해럴드 래미스의 신작 <아이스 하베스트>의 주연을 맡는다. 모니카 벨루치는 남편 뱅상 카셀과의 예기치 않았던 임신으로 출연을 고사하게 되었다. 코니 닐슨은 변호사인 존 쿠색과 갱스터인 빌리 밥 손튼을 꼬드겨 강도짓을 벌이는 스트립클럽 주인으로 출연한다. 로마 황제도 유혹하는 그녀, 벨루치에 지지 않도록 노력 요망.

[김형태의 생각도감] 집16 - [가지 많은 집]

집은, 한 그루의 나무다. 면면히 이어온 뿌리가 있고, 중심이 되는 줄기가 있고, 또 갈래갈래 가지를 치고, 꽃피우고 열매 맺고, 그리고 또 씨앗들을 떠나보낸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듯이 자식 많은 집에 근심걱정 끊일 날이 없는 것이 인생이다. 변덕 심한 봄바람에 새잎을 흩날리며 흔들리는 가지 많은 나무- 집을 그리자니 부모형제, 일가친척들의 지난한 인생역정들이 그려놓은 가지와 잎새 수 만큼 머릿속에 스치운다. 그리고 두 그루의 쓰러진 나무 이야기-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 유현목 감독, 1963년작)과 <휘청거리는 오후>(박완서 원작, 주영중 감독, 1978년작)를 생각한다. <김약국의 딸들>의 김봉제씨에게는 다섯딸이 있고, <휘청거리는 오후>의 허성씨에게는 세딸이 있다. 이 여덟명의 딸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이지만 그들이 받아내는 세파의 바람은 한결같이 모질고 험하다. 다섯딸의 순탄치 못한 삶 속에 김 약국이 몰락하고, 가난한 집안의 내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세딸의 불행한 삶에 아비 허성씨의 인생 말년이 휘청거린다. 제 스스로 곧게 자라지 못한 가지는 병들어 썩어버리기도 하고, 곧게 자라나려고 애썼지만 너무 심한 바람에 가지는 부러지기도 한다. 가지가 너무 심하게 다치면 나무는 결국 죽어버린다. 15년의 시차를 둔 두 집안의 몰락의 스토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40년, 25년의 시차를 둔 오늘이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젊은 나뭇가지들은 더욱 무성해졌으나, 무성해진 만큼 비좁고 여리고 나약하다. 세파의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닥치니 미숙한 가지들이 방황하고 다치고 절망하고 있다. 꽃 하나 피워내고 열매 한번 맺기가 만만치 않은 계절이다.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무는 아프게 몸살을 앓고 있다. 집은 물보다 진한 피가 흐르는 나무이다. 피는 사랑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오늘, 우리는 또 허리가 아프게 휘청거리고 있다. 나무가 휘청거리고, 숲이 휘청거리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새 여름하나니, 뿌리여 버티어 주소서.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

[인터뷰] <어린 신부>의 김래원, 문근영

"근영 양이 잔소리하고 화내면 약이 올라야 하는데 웃음이 나오고 예쁘게 바라볼 수밖에 없더군요. 이렇게 편하게 연기한 적은 이번이 최초입니다."(김래원) "처음으로 남자 배우랑 같이 연기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너무 편안하게 대해줘서 즐거웠어요. 멋진 오빠가 생긴 것 같아 너무 좋아요."(문근영) 김래원과 문근영이 여섯 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물론, 영화에서다. 다음달 2일 개봉하는 영화 <어린 신부>(제작 컬처캡미디어)는 가장 주목받는 두 남녀배우들의 매력이 넘쳐나는 영화. 간혹 지나친 비약이나 억지 설정 등이 눈에 띄지만 김래원의 눈웃음 한번에, 문근영의 깜찍한 춤솜씨에 이런 흠들을 눈감아 주기에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어보인다. 바람둥이 남자 대학생 '상민'(김래원)과 꿈많은 여고생 '보은'이 양가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약속 때문에 강제로 결혼해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워간다는 것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 23일 오후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에서 열린 첫 시사회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래원(23)은 "연기가 아쉬운 점은 항상 남지만 너무나 따뜻하고 좋았다"고 영화를 본 소감을 밝혔으며 문근영은 "부끄러웠지만 재미있게 봤다"고 수줍어했다. 영화 속에서 상민은 주변 여자들에게 음흉한 눈빛이 거둬지지 않는 대학교 4학년생. 어린 신부 보은의 잔소리를 기분좋게 웃어넘기는 넉살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경민과 비슷하다. "너무 편했어요. 그게 영화에 묻어나는 게 보기 좋았고요. 감독님이 편함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덕분이죠. 노래방에서의 댄스 장면도 놀랐어요.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나요?" 한편, 보은은 일찍 결혼을 했을 뿐, 수다스러운데다 시험걱정에 꿈도 많은 전형적인 여고생이다. 문근영의 경우 뭔가 걱정이 있어 보이는 기존 캐릭터에서 변신을 보여준 셈. "촬영 때는 부담이 없었는데 개봉을 기다리다보니 걱정이 되네요. 지금까지 어둡고 슬픈 역을 많이 맡았었는데 이제야 제 진짜 모습과 비슷한 역을 맡게 됐네요. 물론 제가 보은보다는 더 철이 들었겠지만요." 영화 속 결혼 장면의 촬영을 마친 후 문근영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고. "막상 진짜 결혼한다고 생각해보니 이유없이 울음이 터져나오더라"는 것이 지금에서야 털어놓는 이유다. 고등학생 신부와 대학생 신랑 사이의 결혼이 현실에서는 가능할까? 두 사람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상황라면 절대 못하죠"라는 말은 김래원의 대답. 문근영은 "사실 영화 찍기 전이라면 덥석 하겠다고 했겠지만 영화를 찍고 나니 결혼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한편, '유부녀' 보은이 선배 야구선수와 피우는 '바람'에 대해서는 김래원이 "보은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반면 문근영은 "바람은 절대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상민처럼 저렇게 넓은 마음을 갖지 않았다면 이런 훌륭한 연기는 절대 못합니다."(김래원) "바람인지 모르고 피운 바람이니 영화속에서는 행복해 보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결혼하면 절대 바람은 안피울 거예요."(문근영)(서울=연합뉴스)

[새영화] <허니>

<바람의 전설>(4월9일 개봉), <더티 댄싱>2편(4월15일 개봉) 등 올 봄 극장가에 불 ‘춤바람’의 첫 스탭을 밟는 영화 <허니>가 26일 개봉한다. 거리와 뒷골목에서 아이들이 추는 힙합 춤을 스크린 안으로 옮겨온 <허니>는 매력있는 춤꾼의 꿈과 투쟁이라는 면에서 80년대 춤영화의 최고 인기작이었던 <플래시 댄스>와 같은 모태를 가지고 있다. 뉴욕 브롱크스의 청소년 센터에서 댄스 강사를 하는 다니엘즈(제시카 알바)의 꿈은 전문 안무가가 되는 것이다. 연줄도 돈도 없어 번번이 오디션에 낙방을 하던 어느 날 댄스바에서 발휘한 실력이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에 눈에 띄면서 다니엘즈는 쇼비즈니스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역학논리 앞에서 그가 꿈꾸던 춤의 세계는 치졸한 욕망과 권력의 투기장으로 변질된다. <허니>는 ‘춤의 달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플래시 댄스>와 통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건전’하다. 그 건전함은 영화의 관객층을 더 넓힐 수는 있겠지만 춤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매력은 반감시킨다. 다니엘즈의 꿈은 프로 안무가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춤을 추면서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마약과 범죄의 음지에서 끌어내 양지의 무대 위로 올려놓으려고 한다. 이런 그의 꿈은 뮤직비디오 감독의 음험한 욕망으로 좌절된다. 이제는 지극히 상업적인 대중문화의 코드가 됐기는 했지만 무기력한 현실에 대해 내뱉는 독설같은 거리의 힙합문화를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학예회’같은 무대로 끌어놓는다는 발상이 지나치게 계도적으로 느껴진다. 그 탓인지 춤 자체가 관객을 빨아들이는 흥분도 그리 강력하지 않다. 다만 이 영화로 주인공 데뷔를 한 제시카 알바의 상큼한 매력은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다크 엔젤>에 출연했던 제시카 알바는 할리우드의 최고 유망주 가운데 한 명이다. 역시 이 영화로 장편영화 감독 데뷔를 하게 된 빌리 우드러프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 미국 최고 스타들과 작업했던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다.

<바람의 전설> 감독·주연배우 수다난장 [1]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이성재(34)와 박정우(35) 감독은 종종 밤샘 통화를 시도한다.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놀랄 일이다. 촬영현장에서 그렇게 붙어다니면서 떠든 것도 모자라(심지어 집도 지근이라 촬영장을 오가는 동안 이성재가 운전하는 차에 박정우 감독이 동승했다) 집에서까지 교신을 시도하냐고. 본인들 스스로 ‘미친 짓’이라면서 수화기를 들곤 한다니 못 말릴 일이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4월9일 개봉하는 <바람의 전설>은 두 사람을 더욱 각별하게 만든 계기임에 틀림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로 만나 인연을 이어온 이들이 이번엔 감독과 배우로 만났다. “온 세상이 춤바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는 <바람의 전설>은 제비라고 불리지만 스스로 예술가라고 자처하는 춤꾼 풍식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클로즈업한 영화. 성석제의 소설 <소설쓰는 인간>이 원작이다. 말솜씨 좋은 극중 풍식을 불러들여 한살 터울의 초짜 감독과 베테랑 배우가 벌인 티격태격 설전의 일부를 소개한다. # 1 ‘예술’가지고 예술한다고 하대요 “제 이름은 박풍식. ‘왕제비’로 불리죠. 양식있는 사람들은 ‘사교댄스의 황제’라고 합디다만. 50년 전 ‘헌병대 대위를 사칭하면서 능란한 춤솜씨로 카바레를 전전하며 70여명의 여대생을 농락한’ 박인수와 같은 핏줄이라는 풍문을 퍼뜨리는 자들이 있는데, 다 ‘예술’을 모르는 자들이 지껄이는 말들이니 신경 두지 마시고. 요즘엔 그래도 많이 좋아졌나 봅니다. 볼룸댄스 동호회다 뭐다 전국에 저를 지지하는 이들만 400만명이 넘는다니까. 5년 전에 소설가인 성석제씨가 저를 거둬들이셨을 때만 해도 전 어둠의 자식이었거든요. 지난해에 박정우, 이성재 두 남자가 찾아와서 제 인생을 영화로 찍겠다고 했을 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했습니다.” 박정우 5년 넘게 꼬불쳐놨던 시나리오야. 이걸 쓴 게 <키스할까요> <산책> 썼을 무렵인데. 누구한테 각색을 부탁받았는데 원작을 보니까 괜찮더라. 그래서 10일 만에 쓱 썼는데, 영화가 흐지부지됐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공력이 좀 쌓이면 그때 직접 연출해야겠다고 묵혀놨었지. 이성재 데뷔작이었던 <간다>가 안 돼서 한 거잖아. 박정우 <간다>는 니가 하겠다고 해서 엎어졌잖아. 원래는 20대 배우를 써야 하는데 니가 하겠다고 해서 올드한 영화가 돼버린 거지. 그래서 보류됐고. 이성재 다음에 할 땐 김래원, 조인성 뭐 이런 배우들하고 해야겠다. 박정우 넌 그때 카메오나 좀 해주라. 나 입봉 때 너한테 ‘박정우 감독 작품 커밍∼순’ 뭐 이런 예고편 멘트 부탁하려고 했는데 못했으니. 이성재 왜 그러셔. 박 감독이 만드는 캐릭터 중에 나를 염두에 안 둔 게 있나. 박정우 <주유소 습격사건>의 노마크만 하더라도 훨씬 젊은 배우가 했으면 했던 거야. 주인공 결정됐다고 해서 사무실에 갔더니만 나이 먹은 니가 앉아 있어서 ‘아, 이 영화 찍기도 전에 끝났구나’ 속으로 그랬으니까. 이성재 나도 무슨 작가가 저러냐 그랬으니까. 자기가 무슨 로커인 것처럼 머리 기르고 창문에 삐딱하게 기대 서 있는데. 첫인상이 저 사람, 인생 참 막살았구나 싶더라. 박정우 넌 원래 사람 대할 때 개무시하잖아. 이성재 누가 들으면 진담인 줄 알겠네. 그럼 나랑 왜 했냐? 박정우 촬영장에 갔는데 니가 너무 업되어 있더라고. 손에 은반지 하며 지포라이터며 설정들도 만들어오고. 자기가 쓴 시나리오에 광분하는 배우 보고서 싫어할 작가가 어딨냐. 친해진 것도 그때부터네. 이성재 이번엔 나한테 이거 해볼래, 라고도 안 했잖아. 그냥 그러려니 있었는데 출연 기사부터 났더라고. 박정우 니가 딱이지. 물론 니가 춤을 못 추는 걸 미리 알았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만. 가까이서 오래 보니까 너한테도 일탈 욕망이 있구나 싶더라. 남들 앞에서 못해서 그렇지 욕설이든 음담패설이든 하는 것 들으면서 너의 쌈마이 같은 모습들을 본 거야. 추하기도 한 그런 모습이 풍식의 캐릭터하고 많이 비슷하지. 이성재 배우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게 있지. 나도 멜로연기 하는 것보다 그런 게 좋다고. 내 안에 내재된 욕구가 담긴 캐릭터를 연기할 때 훨씬 편하고. 근데 박정우 하면 조폭 나오는 코미디를 기대할 텐데 그게 아니라서 관객이 실망하면 어떡하냐. 박정우 일반 관객이야 박정우가 누군지 잘 모르는데, 뭘. 하긴 우리 가족도 편집본을 보고 첫 장면부터 당황스러워 하더라. 코미디가 아니라면서. 그런데 이번에도 뭐 하나에 꽂혀서 그거에 죽도록 매달리는 인생이 주인공이라는 건 같지. # 2 할렐루야, 일요일 예배당 같던 크랭크인 날 “지난해 9월. 사모님들까지 이승엽 홈런볼 잡겠다고 야구장에 가버렸는지 춤방은 텅텅 비었더랬습니다. 혼자서 데굴거리고 있는데 영화사에서 대관령에서 첫 촬영한다며 구경오라더군요. 너무 바빠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 한손으로 수화기를 붙잡고 뜸을 들이면서도 한손은 구깃한 의상을 펴느라 바빴습니다. 연미복 입고 에나멜 구두 신고 영화인들과 춤을 나누는 제 모습을 상상하니 짜릿했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감독과 배우가 촬영을 앞두고 기도를 드리다니. 혹시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같은 종교영화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절 과거를 회개하고 주님의 자식으로 거듭나는 순한 양으로 그리는 건 차마… 순간 전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박정우 그거 알아요? 성재 꿈이 목사였다는 거. 이성재 초등학교 때 이야기지. 그때는 체육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만날 양복 입고 다니는 선생님들 보다가 체육 시간에 운동복 입은 선생님 보면 어찌나 좋던지. 박정우 아닐걸. 공 하나 던져주면 편하게 수업 마칠 수 있으니까 그랬던 것 아닌가. 이성재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했다간 욕먹는다니까. 박정우 우리가 성격은 딴판인데 어울리는 것 보면 참. 이성재 사람한테도 그래. 난 누가 나한테 잘해준다 싶으면 좀 부담스럽게 생각하는데 박 감독은 누가 잘해주면 좋다고 하니까. 정에 굶주린 사람처럼. 박정우 넌 특히 여자들이 나한테 잘해주는 걸 못 참지. 상대방의 선의를 항상 의심하고 와이프한테 이르겠다고 엄포나 놓고. 이성재 그게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야. 박정우 난 너처럼 드라이하게 살고 싶진 않거든. 속아가면서 사는 거지. 이성재 본인이 좋다고 하면이야 내가 뭐라 하나. 근데 나중에 기분 나빠하고 싫어하니까 미연에 방지하라는 거지. 박정우 미운 오리새끼처럼 자라서 그렇다. 그래도 종교가 같아서 그나마 잘 붙어다니는 것 아닌가 싶다. 종교라는 게 한 사람의 세계관에 기본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거니까. 게다가 이번엔 우연찮게 독실한 신자들이 많았잖아. 이성재 제작발표회 때 예배 보자고 그랬는데 안 된다고 해서 그럼 농담처럼 크랭크인 때 하자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지. 박정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뭐 시작할 때 항상 기도를 드리니까. 사람들한테 성경책이나 하나씩 챙겨와라, 했더니만 다들 가져오더라고. (김)수로가 사회를 봤지. 수로는 독실하긴 한데 기도 스타일이 좀 이상해. 이를테면 ‘하나님 아버지 우리 소원 들어주시옵고’ 뭐 이래야 하는데 ‘하나님, 있잖아요. 이래선 안 되는 거잖아요?’ 뭐 이런 식이잖아. 거의 대화체로 기도를 하지. 경건해야 하는 순간인데 수로가 다 버려놨지. # 3 발바닥에 물집 좀 잡혔었겠군 “만날 붙어다니는 감독과 배우가 그날 밤 소주 한잔 사면서 이 영화는 이런 거다, 설명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오해할 뻔했습니다. 첫 촬영 때 첫 스텝을 밟는 배우의 춤도 저를 돌리는 데 한몫 했죠. 전문가조차 감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영화 대충 찍어 한몫 잡겠다는 인생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게 보여줬거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춤방에서만 하더라도 ‘너절한 춤솜씨하고 상판대기만 믿고 제비짓 하다가’ 감옥 가는 친구들 많습니다. 제 친구 만수(아버님 존함이 한때 중동의 카사노바였던 ‘쿠웨이트 박’이었던가는 정확지 않습니다만)처럼요.” 이성재 어느 정도 연습하면 나머진 대역 쓰는 줄 알았지. 춤 배우러 학원에 갔을 때 어디 나랑 비슷한 체격의 남자 없나, 부터 봤다니까. 박정우 대역 쓸 생각은 없었어. 다만 니가 춤 연습하는 것 보면서 저건 안 되겠네 하나씩하나씩 포기한 거지. 이성재 내가 안 되더라도 그냥 하려고 한 건가? 박정우 그냥 될 때까지 해야 한다, 뭐 그랬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손 따로 음악 따로 가는, 누가 봐도 대역 쓴 것처럼 보이는 게 제일 싫었거든. 감독이라면 배우가 수준이 떨어졌을 때 앵글이나 편집으로 커버할 수 있어야지. 이성재 운동은 빨리 익히는 편인데 춤은 고역이더라. 고3 때 공부한 것 다음으로 열심히 한 게 이번이었다니까. 몸이 좀 됐으면 더 나았을 텐데. 기본이 워낙 없어서. 박정우 난 안 배워서 그렇지. 리듬은 좀 타는데. 이래봬도 중3 때 혼자 마이클 잭슨 스텝 독학해서 선보였다고. 반응? 폭발적이었지. 내가 춤을 배웠으면 배우들한테 더 부담스럽고 거북한 거 요구했을지 몰라. 다만 춤을 추면 행복해진다, 뭐 이런 영화인데 정작 연기하는 배우들은 힘들어하니까 내가 사기치고 있나 싶어서 미안하더라. 너나 (박)솔미는 천부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요 아무래도 부담이 됐을 거라고. 시작이야 쉽지만 어느 경지에 오르기는 어려우니까. 이성재 풍식이처럼 첫 스텝 밟을 때야 ‘찌릿’ 하는 건 없었지. 그래도 느린 왈츠 같은 거는 느낌이 묘하더라고. 집에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스텝을 밟기도 했고. 왜 그 ‘나도 (필이) 온다’고 문자메시지도 보냈잖아. 요즘은 여기저기 춤 잘 춘다, 고 기사가 뜨는데 오히려 과대포장돼서 나중에 영화 보고 실망할까봐 걱정이라니까. 기대보다 잘하더라 뭐 이 정도면 딱 좋겠는데. 박정우 <쉘 위 댄스> 보면서 ‘저건 춤도 아니야’라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 이성재 춤 모르고 볼 때는 드라마나 정서에 빠져서 간 거지. 엊그제 DVD로 다시 봤는데 우리 초보 때 하던 자세들이 나오더라. 박정우 처음부터 그 영화는 무시하고 시나리오를 썼지만 사람들은 자꾸 한국판 <쉘 위 댄스>다, 뭐다 그렇게 비교할 거란 생각은 했지. 그래서 촬영 임박해서 배우들이 수준이 안 되면 촬영일정을 연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근데 중간에 한번 갔을 때 <쉘 위 댄스> 광팬인 안무가 선생이 ‘훨씬 낫다’기에 욕은 안 먹겠다 싶어 갔지.

<바람의 전설> 감독·주연배우 수다난장 [2]

# 4 감독 맞아? 배우 맞아? “이왕 바깥 바람 쐰 김에 제작진에 얹혀지내면서 휴가나 보내자고 맘먹었습니다. 도시락 나오겠다 숙소 있겠다, 금상첨화지요. 그런데 얼마간 섞여 있다 보니 눈치가 보이더라구요. 뭣보다 감독과 배우 사이가 듣던 것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습니다. 저도 영화에 대해서 좀 알거든요. 춤이라는 게 테크닉만 갖고선 안 되거든요.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시는 파트너를 배려하려면 박학다식해야 하죠. 그래서 말인데 영화는 감독 예술 아닙니까. 그런데 배우가 감독 무시하고 반기를 드는 일이 종종 있더라니깐요. 더 이상한 건 촬영이 끝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감독과 배우가 사이좋게 차를 타고 가더란 말이죠.” 박정우 처음엔 날 감독이라고 생각도 안 했는지 무시 많이 했지. 이성재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영화 찍긴 나도 처음이라고. 대사 어미 하나 내 맘대로 했다고 화를 내놓고선. 대사 입에 들러붙게 쓰는 재능은 알겠는데, 자기가 무슨 박수현(김수현 작가를 빗대서)인 줄 알고 그러니. 이유를 말해줘야 배우가 납득하고 따르지. 무조건 그렇게 하라는데 누가 하나. 내가 애들도 아니고. 박정우 내가 만날 그랬냐. 특별히 어미를 신경써서 썼던 부분만 그랬지. 내 시나리오 보면 알잖아. 대사 중에 …도 있고 …도 있고. 호흡 길이까지 염두에 두면서 쓰는 건데. 그때는 분명히 말을 끝내고 나서 다음 문장을 시작해주길 바랐는데 니가 리허설 때 이어서 대사를 치니까 그렇지. 결국 니 맘대로 하라고 했잖아. 이성재 날 나쁜 사람 만들지 말고. 내가 그 다음부터선 어미 하나하나 다 물어봤잖아. 박정우 카바레에서 춤추는 장면도 그래. 내가 이렇게 하라 했더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랬잖아. 내가 오죽 민망하고 무안했겠냐. 그렇게 당하고 모니터 앞에 왔는데 스크립터가 피식 웃더라. 이성재 했던 말 또 와서 하려는 것 같기에 그냥 그런 건데, 뭘. 그걸 서운하게 생각하면 쓰나. 다음에 다시 작업하면 개인적인 친분을 현장에서 너무 드러내면 안 되겠더라. 다른 스탭들이 불편해지니까. 박 감독하고 첫 작품 무조건 하겠다고 약속했던 건 이렇게 편한 감독이랑 영화를 찍으면 촬영현장이 얼마나 즐거울까 뭐 그래서 한 건데 그게 너무 심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 썰렁한 분위기가 되더라고. 그래도 박 감독 현장 통솔만큼은 중견감독 이상이었지. 박정우 조감독 때 나 성질 더러운 걸로 악명 높았거든. 작가할 때는 그럴 일이 없었고 나이도 들고 했으니까 성격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안 변했더라구. 세팅하는 시간에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더라구. 그러니까 막 소리를 지르면서 작업하게 되더라. 난 현장에서 머리 쥐어짜는 게 싫어. 그냥 이게 맞다고 우겨야 할 때가 있는 거지. 결과적으로 더 좋은 거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것도 맞는 거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 헷갈리는 거거든. 필이 가는 대로 한 호흡으로 쫙 밀고 가는 게 편집실에서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지. 그게 니 입장에선 아무 생각없이 찍는 것처럼 보였을래나. 이성재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하면 순발력이 꽤 중요하다고 보거든. 내가 처음으로 칭찬한 날 있잖아. 대전에서 라스트 장면 찍을 때.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카메라 두대로 40컷을 찍어야 하는데 스탭들은 다들 내일까지 찍겠거니 했다고. 근데 찍고 나니까 2시가 조금 넘은 거야. 빨리 찍는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별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걸 보면 능력이 있긴 하지. 박정우 그 장면은 조감독이 ‘이건 불가능한 일정이다. 숙박 일정 연장하자’고 했던 건데 ‘일단 점심 먹을 때까지 찍어보자’고 해서 그렇게 된 거야. 찍고 나서 허전하고 불안하고 찜찜했으면 다시 찍었을 거야. 이번에 내가 촬영기한 어긴 적이 있나. 힘조절은 내가 좀 하지. 공들여 찍을 건 제대로 찍거든. 그런 내가 왜 이제 입봉을 했을까? 이성재 잘난 척하긴. 어떨 때는 스트레스 받는다니까. 차 타고 같이 가면서 ‘오늘은 너무 잘 찍었어’ 이럴 때는 대꾸도 하기 싫어. 박정우 전에 한번 겸손한 척했더니 사람들이 더 재수없다고 하던데. 어차피 첫 작품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순 없는 거라고 봐. 그렇다면 내가 썼던 시나리오만큼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만 확인하자는 거지. 그래야 다음 작품에서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거고. 이성재 이번이 마지막이면 어떡하나? # 5 자기 스텝에 자기 발 걸린 사연 “춤을 한 3년 배우면 자기 스텝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때를 조심해야죠. 응용동작이네 어쩌네 하다보면 스텝이 꼬여 멋대로 춤추게 마련이거든요. 이거 고치기 어렵습니다. 배우로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두 사람도 그런 적이 있지 않았을까요. 문득 그게 궁금해졌습니다. 게다가 정상에 오르는 데 정도(正道) 보다는 사술(邪術)의 유혹도 있을 테고, 물리치지 못해 된통 당하는 수도 적지 않거든요. 그때야 ‘진정 춤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뒤늦게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답니다. 저라고 별수 있었겠습니까. 꽃뱀한테 몇번 당하고 난 다음에야 철들었거든요. 그때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쪽팔려서.” 박정우 작가 처음 할 때 학교 후배들이 ‘형 거는 재미는 있는데 깊이가 없어요’ 그러더라. 그때 충격 먹었지. 겉으로는 가벼워도 속에서 건져낼 게 없는 것이 아닌데 그걸 몰라주나 싶어 섭섭했고. 표면적인 대사들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뻔한 기술자가 다 됐구나 싶더라. 코미디 장르가 말이 안 되는 상황들의 연속이잖아. 그러다보니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넘길 수 있는 기술들이 생겨서 몸에 뱄더라고. 나중엔 신인감독들한테 ‘걱정하지 마. 내가 넘겨줄게’ 그랬을 정도니까. 그런 잔기술 부리고 또 그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져간 데는 내가 작가생활에 애착이 별로 없어서 무책임하게 반복한 것 아닌가 싶어. 내 것은 감독하면서 보여주겠다 뭐 이런 것이랄까. 돌아보면 치열한 작가 의식도 별로 없었던 거지. 1천만명 동원 작가니, 고료 1억원 작가니 하는 것도 별로 안 기뻤거든. 감독할 때 작가 경력이 도움되겠구나 싶었던 정도지. 이제 그만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인간관계나 돈 뭐 이런 것 때문에 끌려간 것 아닌가 싶고. 이성재 은근슬쩍 자신이 천만 작가인 걸 상기시키네. 난 아직도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상황이고 후배들 끌어줄 여유도 없고. 내 것 만들기도 솔직히 벅차거든. 상대배우 챙기는 것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고. 연기에 정상이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 서운하더라. 지르고 터트려야만 연기라고 봐주잖아. 그걸 잘하면 인정해줘야지. 그런데 수위 조절하면서 극의 줄기를 끌고 가는 연기에 대한 평가는 박해. 사실 그게 더 머리 아픈 건데도 잘 모르는 거지. 박정우 그거 알지? 나 처음에 미쳤다고 욕 많이 먹은 거. 이번 작품 한다고 했을 때 위에서 스탭이나 배우를 짜줬잖아. 이왕 A급영화라는 모양새가 갖춰지면 입봉하는 나로선 좋지. 적당히 포장되면 난 묻어갈 수 있으니까. 근데 그게 어느 순간 너무 재미없는 게임 같은 거야. 촬영은 A급 기사가 해주고 미술은 또 누가 해주고. 난 현장에서 편하게 컷이나 나누고 그러면 되겠다 싶으면서도 만들어가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성재 나한테 기자들이 만날 드라마 안 하세요, 하는 거랑 비슷하지. 금전적인 거 생각하면 눈 딱 감고 두달 찍자 그러면서도 안 돼. 순간적으로 그럴까 하다가도 마는 거지. 촬영할 때도 준비없이 갈 수도 있지만 성격상 쉽게 가질 못하니까. <빙우>까지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 안에 억지로 나를 뀌어맞추는 식이었는데 요번만큼은 좀 다르게 가자 싶었어. 이전 작업방식이 오히려 방해되는 것도 많았던 것 같더라고. 그래서 캐릭터가 어떻다, 이런 규정 말고 내가 그냥 그 인물이려니 여겼지. 촬영 전에 대본 덜 보고 현장에서도 느낌대로 가려고 했고. 그러니까 첫 촬영 때 촬영시작한 지 3, 4주 지난 것 같더라고. 전엔 6, 7회차까지 항상 힘들어 했거든. 이젠 닫혀 있고 막힌 캐릭터를 연기하더라고 전보다 좀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 6 초심을 잊지 말자고요 “무도(舞蹈)가 예술이냐 아니냐는 어쩌면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초심(初心)을 얼마나 되새기고 있느냐가 관건인 거죠. 돌이켜보니 흔들렸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던 저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가능햇던 데는 ‘첫 스텝을 밟는 순간 소음투성이 세상이 진공상태가 되고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관통하던’ 순간이 떠올라서였을 것입니다. ‘삼고초려 끝에 스승에게 세숫물까지 떠받쳐가며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한 발자국씩 내딛었던’ 고통스런 순간이 기억의 수면 위로 부상해서였을 것입니다. 플로어에서 상대를 리드해가며 만끽할 수 있었던 저만의 세상을 향한 항해가 여전히 행복하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성재 처음에 방송사에 공채로 들어가긴 했지만 한달에 많이 나가면 5번, 평균 3번 정도만 나가니까 할 일이 없었지. 내가 단번에 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딱 눈감고 2년만 연수하자 그랬느데. 그래도 집에서 갓난애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왜 나를 선택 안 할까. 뭐가 부족한가. 쌍꺼풀 수술이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박정우 너도 아픔이 있었지. 역할 맡은 거 다른 사람한테 뺏기고. 나는 일부러 약속을 만들었어. 바쁘게 살려고. 몇시에 누구 만나고, 몇시에 누구 만나고. 연출부 생활 때는 잠이 모자랐지. 일하고 밤에는 시나리오 쓰면서 몸을 학대했고. 그러다가 <키스할까요>부터는 시나리오만 계속 써서 들고 갔는데 문전박대 당할 때는 허송세월하는 것 아닌가 갑갑하더라. 충무로 처음 들어가서 첫 촬영 때 슬레이트 치잖아. 엄청 연습했는데 역시 실수했지. 그런데 카메라가 돌아가는 ‘삐’소리를 듣는 데 울컥하는 거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개봉 때 연출부 크레딧에 내이름 올라갈 때, <키스할까요>로 작가 박정우 크레딧 올라갈 때, <주유소 습격사건> 매진됐을 때도 그랬지. 이성재 이번에도 감독 박정우 하는 순간에 울컥하겠네. 예고편에 박정우 감독 작품, 이렇게 써줬으니 이미 울컥했을지도 모르겠고. 박정우 근데 내부에서 장사에 도움 안 된다고 본편에선 뺐어. 이성재 하긴 나도 늘 촬영현장 옆을 우연히 지나가기만 해도 찌릿해. 후배들한테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고. 박정우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 뭐에 꽂혀서 주변 안 보고 미친 듯이 가는 거잖아. 설령 무모하다고 할지라도 말이지. 그런 사람들을 대접해주지 않는 사회가 싫지. 이성재 박 기사 이제 그만 하고 집에 갈 차나 좀 대절하지. 박정우 만날 니가 내 운짱 했는데 오늘은 내가 해야 하니 좀 어색하네.

세상 모든 호로자식들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2]

어머니에게 보내는, 뒤늦게 쓴 반성문 -작가 노희경이 말하는 <꽃보다 아름다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고독>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한때 자신들이 추앙해 마지않던 작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부터. 결국 2년 뒤 <꽃보다 아름다워>란 드라마와 함께 무덤에서 걸어나온 노희경에 대한 궁금증과 조급증은 최종회를 쓰기 위해 “점이 돼서 안 보일 만큼” 말라버린 그의 목에 빨대를 꽂는 만행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고독>을 끝내고 꽤 방황했던 것으로 안다. =배운 게 많았다. 내가 어느새 장사를 하고 있구나, 같지도 않은 기교를 부리는구나, 섣부르게 이 정도쯤이면 드라마의 무게감을 줄 수 있겠지,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게 시청자들에게 들키니까 창피했다. 결국 내가 제일제일 싫어했던 작가가 돼버렸구나, 정말 바닥을 쳤다는 생각이 끔찍하게 들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느낀 치욕감 같은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드라마를 끝내고 나서는 소설도 읽고 다른 작품을 보는 데 시간을 썼는데, 이번엔 내 안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절에서 명상도 했다. 정말 쓸 거리가 남아 있는지, 지난 10년 동안 내가 뭘 했나, 세상을 보는 눈이 어땠나 하는 근본적인 생각. 사실 지금도 그런 고민의 연장이다. -표민수 PD와의 작업을 포기한 것은 일종의 결단처럼 느껴진다. 윤여정씨가 “당신들 또 같이 드라마 찍으면 망해”라고 했다던데. =윤여정 선생님뿐 아니라 박성미, 배종옥씨 등등 표 PD와 나, 둘을 너무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말렸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볼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들게 합의를 봤다. 이번만은 다른 사람들 충고를 들어보자고. 표 PD는 가족 같은 사람이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서로 참 많이 좋아하고, 너무 잘 알게 됐다. 처음 작업할 땐 정말 애인이 하루 걸러 싸우듯이 싸웠는데, 어느 순간 서로가 화면의, 글의 행간을 너무나 잘 읽게 되면서 오류에 빠진 거다. 딴죽을 걸고 서로 채찍을 때리는 사이가 돼야 했는데, 그러려니 넘어간 게 많았다. -김철규, 기민수 PD와의 작업은 어떤가. =절대 내 대본에 안 속더라. (웃음) 표 감독의 경우엔 둘 다 감정적이다 보니 대본에 연출까지 더해지면 감정이 아주 끝까지 간다. 그에 비해 김철규 PD는 드라이한 편이라서 시청자들을 덜 힘들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정반대의 조화가 나쁘지 않다. 평균적으로 나오니까. 표민수 감독은 호흡을 중심으로 연출하고, 그는 상황에 중심을 둔다. 사실 이 드라마는 여러 색깔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톤을 유지하고 고르는 데 김철규 PD나 기민수 PD가 가진 객관적인 눈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꽃보다 아름다워>에는 노 작가 개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이 녹아 있는 것 같다. 뭐랄까, 뒤늦게 쓰는 반성문이랄까. =난 참 게으른 사람이었는데, 엄마 돌아가실 때 이를 악물고 생각한 게 성실해지겠다는 거였다. 어미가 죽고나서야 정신을 차린 거지. (웃음) 암으로 저 세상 가시기까지 자식 여섯이 돌아가면서 당신 마음을 다치게 했다, 집 나가, 공부 안 해, 싸움 해, 담배 펴, 술먹고 뻗어, 파출소 들락거려. 순하디 순한 사람이라서 말 한마디 못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렇다고 본다. 심한 표현으로 하면 자식들이 사슴 목에 빨대 꽂아놓고 피 쪽쪽 빨아먹는 거다. 죽을 만하면 빨대 빼고, 또 살 만하면 다시 빨대 꽂고, 그것도 한명씩 돌아가면서 쪽쪽. 그런데 자식들은 이걸 합리화한다. 부모는 희생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그러다가 돌아가시면 후회하고, 반성하고, 노래방에서 <불효자는 웁니다> 이런 거 부르면서 운다. 그런데 결국 자기가 부모가 되면 똑같이 당한다. 인과라고 하잖나. 이 당연한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단 하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부모에게 한 짓을 처절하게 반성하는 거다. 효도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해야 한다. 자기 합리화에서 빠져나와 지금 당장. -많은 이들이 영자씨가 자기 엄마 같다고들 하더라. =처음 이 드라마의 제목은 <울엄마는 바보>였다. 모든 엄마는 바보다. 그런 바보에게 받을 땐 다 받다가 주어야 되는 입장이 되니까, 귀찮고 다 무시하고 싶은 게 자식이란 동물이다. 우리가 가장 잔인하게 구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가. 삶의 가장 약자… 그런데 그 약자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너무 많다. 사실 영자라는 캐릭터는 고두심이라는 배우와 함께 더욱 깊어진 역할이다. 대본을 쓰면서 어느 누구보다 참 많이 의지하고 있다. 고두심씨는 너무 도시적으로 예쁜 얼굴이고 똑똑한데, 가끔 보면 맹한 구석이 있다. (웃음) 제주도 촌여자의 순박함 같은 게 보인다. 그게 이 여자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배우들은 40, 50이 되었을 때는 진짜 무르익은 연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걸 보여줄 기회가 없다. 이들을 밥상만 들게 하는 것은 문화재를 박살내는 것과 같은 거다. -재수 역의 김흥수는 이 드라마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우연히 한 쇼프로에서 이 친구를 처음 봤는데, 무슨 일인지 짜증을 내고 있었다. 헐렁헐렁해 보이는데 눈이 참 매서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시트콤을 보면서도 성깔있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자고 했다. 아니나 달라, 얼굴이 매웠다. 21살짜리가 산전수전 다 겪은 느낌이 있었다. 별 고민없이 결정했다. 고두심씨 아들이 김흥수랑 나이가 비슷하고 키가 멀대같이 크다. 진짜 엄마나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아버지는 가장 악당인데도, 쉽게 욕할 수가 없다. =선악의 구분을 지으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거다. 사람들이 엄마에게 많은 동정표를 보내면서 왜 아버지에게도 같은 희생을 강요하는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이 여자가 싫은데. 다른 여자가 좋은데. 게다가 좋아하는 여자가 아픈 데 가만히 죽일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뻔뻔하다는 걸 알지만 콩팥을 달라고 하는 거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비판을 할 수가 없다. 누가 누굴 욕하고 단죄할 수 있겠나. 인간은 자기가 자기 잘못을 깨닫는 순간, 가장 고통받는 그 순간에 스스로 구원받는 거다. -결국 <꽃보다…>는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것에 대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위로라, 결국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표현방식이 위로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안쓰러움, 엄마라서만이 아니라 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친구라서만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안쓰러움. 그런 측은지심이 있으면 세상이 훨씬 더 편할 것 같다. 동물들은 서로 혀로 핥아주면 약을 안 발라도 상처가 낫는다. 배가 아플 때 손만 쓸어줘도 낫는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아프고 병들 때 서로가 서로를 핥아주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거짓말> 이후 7년이 흘렀다. 그때의 열혈 시청자들도, 작가도 나이가 들었다. 혹시 사랑에 대해 회의적이나 냉소적인 시선이 생기진 않았나. =사랑은 안 변한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거지. <거짓말>은 지금 다시 써도 그렇게 쓸 것 같다. 다만 끝이 달라졌을 거다. 결국 준희가 성우에게 갔을 거다. 그때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남한테 상처주고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준희와 성우의 마음도 결국 변할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을 가둬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마음이 열린 상태로 지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마지막 30회까지 남은 숙제는, 아버지에 대한, 형제나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에 대한,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용서는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적선 같은 느낌이다. 용서라는 말보다 어떻게 상대방을 ‘인정’하냐는 것이 될 거다. 미옥이는 결국 결혼식장에 가서도 아버지 손을 안 잡고 들어간다. 그러고나서야 이렇게 후회한다. 버릴 수 없다면 품어야 되는 게 옳지 않았을까, 하고. 우리 아버지가 바람을 참 많이 피웠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30년 넘게 미워했고. 그러다 지난해 여름에 처음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도리라고 생각해서였을 거다. 사실 자식인 나도 우리 아버지만큼 연애를 많이 했다. 단지 아버지는 결혼한 사람이고, 나는 결혼 안 한 사람이라는 거, 안 들키고, 들킨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렇게 인정하고나니 100%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마음이 편하더라. 미워하면 뭐 하겠나. 그렇다고 버려지지 않는데. 그리고 미워해도 기쁘지가 않은데. 가족이란 게 그런 거다. 사실 이렇게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 가족이라니, 공주 왕자가 안 나와도, 너는 아주 판타지드라마를 쓰는구나,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판타지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그나저나 오히려 용서나 인정은 쉽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기억이다. 기억이 더 무섭다. 그게 미수에게 남은 숙제다. 골이 찢어지는 것 같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뭔가. =과연 이 이야기를 잘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충분히 반성을 안 하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 서로의 존재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걱정. 그래도 낼모래 죽을 건 아니니까, 계속 반성하고, 계속 생각하고, 나중엔 잘 써야지 하는 자기 위로. (웃음)

악!소리 나는 온라인 만화방, <악진>

공짜만화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만화방에서 한권값 내고 친구와 돌려보다가 면박당하는 건 예전 일이다. 포털 사이트마다 공짜 만화가 널려 있고, 조금만 손품을 팔면 방금 대여점에서 빌려와서 스캔 떴다는 신간만화들을 공짜로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만화를 보기 위해 수고하기란 여간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길이 가는 만화 사이트가 있으니, 악진(http://www.akzine.com)이라는 웹진이다. 악진이란, 비명소리인 ‘악’과 웹진의 ‘진’을 합쳐 만든 말이라고 한다. 비명만큼이나 악 소리 나는 소개글이 있다.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절대 오프라인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만화를 선보인다. 만화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저주받은 장르를 보호한다.” 정말 그렇다. 악진에는 별별 만화들이 다 들어 있고, 이런 만화를 오프라인에서 출판해줄 곳은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 재미있고, 한편으로 불편하고 불쾌한 것도 많다. 인터넷 만화방의 대부분은 종이만화의 재탕에 불과해서 온라인다운 매력을 찾을 수 없다.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어 일간지 연재로까지 나아간 신예작가의 경우에도 비슷한 경우를 자주 봐왔다. 화면으로 보느냐 종이로 보느냐의 차이뿐이다. 그러나 악진은 종이스럽지 않고 온라인답게 자유분방해서 좋다. 앞으로 온갖 만화들이 그곳으로 더 모여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장 인터넷다운 만화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회원가입하고 로그인을 한다. 김성환/ 인터뷰 전문웹진 퍼슨웹 편집장 ▶ <악진> 바로 가기 : http://www.akz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