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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연애담, 다카하시 신의 두 단편집

<안녕, 파파> <좋아하게 될 사람> 내게 <좋은 사람>에서 <최종병기 그녀>로 이어져온 다카하시 신을 뒤적이는 건, 여름날 물청소를 하다 깨진 교실의 유리창을 줍는 마음이다. 거기에는 누가 읽어도 부담없는 담백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여느 착한 만화들처럼, 삶에는 서늘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지만 그곳 옆에는 언제나 따뜻한 햇살이 있음을 믿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 옆 살짝 비켜간 곳에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그럴 나이가 아냐’라고 말하는 냉담한 현실 인식이 있다. 거기에 반항하며, 내일 가장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할 게 분명한 사랑을 붙들고 있는 바보들도 등장한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삼등신의 난폭한 개그도, 우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절벽 가슴 소녀의 섹스신도 있다. 그가 내놓은 두권의 단편집(시공사 펴냄)이 그 조각난 세계를 가지런히 주워 담아줄지 아니면 더욱 많은 조각들로 우리를 어지럽게 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카하시 신의 꾸준한 독자는 물론,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도 그의 진면목을 눈치채게 해줄 것임엔 분명하다. 먼저 <좋아하게 될 사람>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첫 연재작을 그리기 이전, 투고작을 들고 이런저런 출판사들을 뛰어다닐 때 그린 단편들을 모은 작품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만화가 지망생의 초기 단편들에서 풍겨나오는 서투른 향취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자. 그는 200쪽이나 되는 단편집을 일일이 새로 고쳐 그렸다고 한다. 그 성실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만화가의 집념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 시절의 자기 세계에 대한 짙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창 시절 육상을 했던 작가의 경험 때문이겠지만, 고등학교 역전 경주, 짝사랑 때문에 육상부에 가입한 여학생, 여름휴가를 혼자만의 조깅으로 보내는 여사원처럼 달리기와 연관된 생생한 이야기들이 많다. <안녕, 파파>는 <좋은 사람>의 번외편, 혹은 완결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6살 때 자신의 집에 하숙하던 유지 아저씨를 ‘파파’라 부르며 좋아했던 소녀가 이제 14살이 되어 그를 찾아간다. 이 밖에 라이텍스 인사부 계장인 니카이도 치에의 ‘맞선으로 식사’, 영업부 바람둥이 이나바의 고교 시절 바람담 ‘프레데릭’, 라이텍스 입사를 목표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여대생 코유키가 겪는 위기의 미팅을 네명의 선배 여사원들이 해결해주는 ‘코우키랑 놀자’ 등 담백한 사랑과 상쾌한 유머가 곁들여진 작품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1]

메이킹 필름,드라마 패러디,뮤직 비디오 등 형식&내용 파격 관객몰이 120초의 승부 - 예고편의 ‘때깔’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영화의 예고편이 달라지고 있다. 인상적인 영화 컷을 끌어모아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던 단순한 클립에서 벗어나 독특한 기획력과 아이디어, 형식이 총동원된 예고편들이, 때로는 영화 본편과는 상관없이 예고편만으로 경쟁하듯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30초에 모든 것을 걸고 소비자에게 구애하는 광고처럼, 지금의 한국영화 예고편들은 2시간짜리 영화를 2분 안에 설명하고 관객의 옷자락까지 물고늘어져야 한다는 자신의 숙명을 너무도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TV광고보다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때론 본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구성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예고편들. 이런 예고편들이 어떻게 기획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세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편집자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를 고집하는 A모씨.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관람하러 극장에 갔다가 이상한 예고편 발견. 칙칙한 화면 위로 음산한 음악이 깔리면서 TV시리즈 〈X파일>의 주인공 스컬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X파일> 뉴 시즌이 나왔나?’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사이 화면에 나타난 배우들은 엄정화와 김주혁. 저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니 ‘홍반장이 어쩌고저쩌고’ 한다. ‘이게 대체 뭐야?’ 홍반장은 대체 누구고, 엄정화와 김주혁은 대체 왜 저러고 앉아 멀더와 스컬리 흉내를 내고 있지? 궁금함이 극에 달한 A모씨. 그러나 예고편은 잔인하게 끝을 맺는다. 멀더: 우선 홍반장부터 만나봐야겠어요. 스컬리: 기다려요. 영화는 3월에 개봉해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연출예고편<홍반장> 김주혁, 엄정화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틑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은 영화와 전혀 무관한 소재로 티저 예고편을 제작해 업계 안팎으로 화제가 됐던 영화다. <홍반장>뿐 아니라 올해 개봉하는 영화들 중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예고편들이 유독 많다. 스탭들의 인터뷰만을 따서 구성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티저 예고편, 강렬한 기타 솔로 위에 흑백의 거친 화면을 담아낸 <하류인생>의 1차 티저 예고편, 영화 <챔피언>의 비주얼과 <살인의 추억>의 홍보 카피를 패러디한 <목포는 항구다>의 본 예고편 등 새로운 형식의 예고편들이 마치 경쟁을 벌이듯 선보이고 있다. 이들 예고편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 조성과는 별도로 예고편 자체를 보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는 점에서 예고편에 대한 기존의 인식 바깥에 있다. 최근엔 예고편을 휴대폰의 유료 콘텐츠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실시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국영화의 예고편이 유료 콘텐츠로 손색이 없을 만큼 자체 경쟁력을 지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단순 영화 소개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전이라고 독특한 형식의 예고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처녀들의 저녁식사> 예고편, 영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영화와 별개로 촬영된 <시월애> 예고편, 클레이메이션 형식의 <주유소 습격사건> 예고편, 강한 콘트라스트의 흑백 비주얼만으로 충격적인 반전과 호기심을 자극했던 〈H> 티저 예고편 등은 색다른 시도로 영화와 상관없이 화제에 올랐던 예고편들이다. 그러나 이런 예고편들은 주로 일부 영화사들이 주도한 세심한 마케팅 전략의 일부였으며 당시로선 드문 경우에 속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이 한국영화 예고편의 주요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온라인 입소문 타기, 동영상이 효과적 그렇다면 왜? 영화 마케터들이나 예고편 감독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인터넷으로 인해 동영상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권영주 화이트리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은 “과거의 홍보는 지면 위주였지만, 일단 매체비가 상승하고 TV광고가 가능해지고 타깃이 어려지면서 동영상의 비중이 높아졌다”라고 부연설명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 예고편이라고 하면 조감독이 NG컷을 길이에 맞게 편집하는 정도였고, 좀더 신경을 쓴다 해도 감독이 OK컷과 NG컷을 섞어서 직접 편집하던 것이 전부였다. 예고편을 통해 관객을 후크한다는 마케팅적 개념을 끌어들이기보다 영화를 단순히 소개하는 데 중심을 둔 홍보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제작편수가 증가하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화들간의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 됐고, 이와 맞물려 예고편 전문 제작업체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영화는 기획력과 아이디어, 완성도로 승부하는 예고편을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했다. CG를 코믹하게 활용한 <집으로…> 예고편 불을 지핀 것이 지난해 나온 <집으로…>와 <싱글즈>의 예고편이다. <집으로…> 예고편은 튜브픽쳐스 영상제작팀의 이현식 감독이 만들었는데, 어린 소년과 할머니의 캐릭터를 코믹하게 설정하고 이에 걸맞은 아기자기한 CG로 효과를 내고 있다.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가 “이 예고편 이후에 화면 위에다 말풍선이나 귀여운 글씨체, 만화 같은 화면을 쓰는 예고편들이 줄줄이 나왔다”고 단정할 만큼 <집으로…>의 예고편은 대부분의 코미디영화의 예고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를 처음으로 활용한 예다. CF프로덕션 알파빌44 소속의 이성호 감독이 제작한 <싱글즈>의 예고편은 연출예고편의 성공적인 사례. 여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마케팅을 담당했던 싸이더스 관계자에 따르면 “<나쁜 녀석들2> 등과 경쟁해서 기죽지 않기 위해 일부러 컨셉을 세게 잡는” 전략을 택했다.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돋보이기 위해 별개의 콘티로 예고편 전체를 새로 촬영하면서, 퀄리티 높은 비주얼과 ‘급하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자’식의 자극적인 카피로 타깃 관객층에게 정확히 소구했다. 무엇보다도 이 예고편은 때깔있는 싱글 여성들의 섹스생활을 코믹하게 풀어냄으로써 예고편 자체가 주는 재미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이런 예고편들이 예고편 자체로도 화제가 되고 더불어 영화도 흥행하면서 이후 예고편 제작 경향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아이디어는 좀더 다양해져서 TV프로그램 <주말의 명화>를 패러디한 <광복절특사> 예고편, 할리우드식 내레이션을 삽입한 <광복절특사>, TV드라마 <다모>를 패러디한 <내사랑 싸가지> 예고편 등이 등장했다. 예고편 감독들은 “예고편 따로 찍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예고편을 제일 잘 만들 거다”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이러한 예고편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한국영화 예고편엔 내레이션이 강화돼 있지 않다는 점을 든다. 할리우드 예고편의 경우 돈 라폰테인으로 대표되는 예고편 전문 성우들이 영화를 죽 설명하는 동안 화면은 은유적인 편집만으로도 많은 임팩트를 줄 수 있지만 한국영화 예고편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 편집의 묘미만 살리자니 드라마를 설명해야 하고, 그걸 다 자막으로 대체하자니 리듬이 떨어지는 식이다. 물론 할리우드 예고편들은 지나치게 패턴화돼 있어서 예고편 자체를 보는 재미가 훨씬 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예고편 작업에서는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한다고 예고편 감독들은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는 채은석 CF감독이 제작한 <살인의 추억> 예고편이나 용이 감독이 만든 <올드보이>의 예고편이 세련된 편집감만으로 예고편 보는 재미에 충실했던 경우다. 특히 <살인의 추억> 예고편에서는 연기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자막효과와 바람소리를 닮은 음향효과도 인상적인 크리에이티브다. 두뇌게임이다, 일단 튀어라 영화 속 여주인공이 출연했던 드라마를 패러디한 <내사랑 싸가지>예고편 관객으로서는 예고편 자체를 보는 재미, 예고편 감독으로서는 예고편을 돋보이게 하는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예고편은 단지 영화를 홍보하는 광고물이 아니라 광고적인 성격의 영화로도 볼 수 있다.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강조된 연출예고편 혹은 비주얼적인 효과에 중점을 두는 예고편들의 경우 예고편 감독의 크리에이티브가 너무나 확연하기 때문에 이때는 엄연히 영화와 독립된 광고로 볼 수 있다. <홍반장>의 예고편을 제작한 이규홍 감독은 “연출예고편에 대한 욕심은 예고편 감독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면서 “영화와 별개의 연출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게 연출예고편의 묘미”라고 말한다. 반면 영화의 컷만으로 만들어지는 예고편을 고집하는 감독들은 편집에 집중하고 약간의 변형만 가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확 끌어올리는 것이 예고편 제작의 진정한 크리에이티브라고 말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예고편을 제작했던 남화정 감독은 “아이디어만 앞서가면 영화 자체는 묻힐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기획성 예고편들의 부작용을 점친다. 분명한 것은 어쨌거나 현재의 한국영화 예고편이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의 마케팅 컨셉을 공유하되 전혀 다른 기획력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독립 크리에이티브의 결과물이거나, 영화 안에서 모든 매력과 장점을 찾아내어 취사선택하는 고전적 방식, 즉 편집의 미학으로 완성된 결과물이거나. 어느 쪽이건 영화 예고편이 영화의 주제와 컨셉을 떠날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예고편의 정의는 간단하다. 영화가 재미있어 보이게끔 하고 그것이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 영화가 가진 장점을 충분히 끌어내는 동시에 필요한 말만을 하고, 동시에 영화적인 재미는 실제보다 20∼30% 정도 더 돋보이게 함으로써 관객이 그 영화에 꽂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예고편의 사명이고 예고편 감독들이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영화의 예고편은 지금 온갖 다양한 방식의 크리에이티브를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2] - 유형별로 보기

형식과 내용을 교차하며 유형별로 보기 영화제작에서 마케팅의 영역에 속하는 예고편은 자신의 아버지인 광고처럼 ‘순간’의 예술이다. 다른 아버지인 영화의 본편은 가끔 자신을 떠올려주는 팬이나 다른 채널에 의해 뒤늦게 부활하고 복권되지만 예고편은 사람들이 본편을 기다리는 정해진 순간에만 자신을 드러내고 본편이 개봉되면 기억에서조차 말끔히 사라진다. 예고편을 제작하는 전문가들도 최근의 예고편들을 주로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예고편의 숙명에서 비롯된다. “할리우드에서도 극소수의 티저를 제외하면, 예고편 개별 제작은 없다”라고 자탄하는 한 예고편 감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자기 부정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 CF 감독, 예고편 전문 감독, 본 영화의 조감독, 영화감독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연출하는 한국영화의 예고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인 현대 한국영화처럼 강한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과잉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활발하고 다양한 예고편 제작활동은 한국영화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영화와 광고 사이를 오가는” 광고영화 혹은 영화광고인 예고편이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드러내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형식과 내용을 교차하며 유형별로 살펴본다. 1. 연출예고편-‘색다름’으로 눈길 잡는다 영화 속 이미지를 활용한 연출예고편 <시월애> 연출 예고편이란 말 그대로 새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다. 본편의 새로운 편집 버전이라는 예고편의 기본 개념을 처음부터 재설정하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시도가 본 예고편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티저 예고편의 경우에는 이러한 연출 예고편 유형이 위력이 발휘하는 경우가 잦다. 티저의 전략은 최대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내러티브보다는 형식이나 이미지에 치중하는 방식이 주가 된다. 2004년 벽두에 떠오른 가장 참신한 예고편은 괴력의 <실미도>도 <태극기 휘날리며>도 아닌 <홍반장> 티저 예고편이다. <홍반장> 티저는 한국영화 예고편의 현재 경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잘 표현했다. 홍반장의 과거를 친구에게 듣는 여주인공의 본편 내용을 〈X파일> 형식과 결합하여 효과적인 구성을 끌어냈다. <내사랑 싸가지>의 예고편이 여주인공 하지원을 활용해 TV드라마 <다모>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연출 예고편의 본격적인 출연을 알린 작품은 <시월애>다. 배우화보집을 연상시키는 이정재와 전지현 버전의 티저 예고편은 TTL로 잘 알려진 광고감독 박명천에 의해 연출되었다. 이미지즘을 극대화하고 내러티브를 최소화하는 방법론은 본편의 서정적 비주얼과도 적절히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H> 티저의 경우 찬반이 분분했던 작품이다. 개와 소녀를 다룬 이미지 구성에 대한 찬사와 함께 “영화의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연출 예고편은 대체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러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나라가 드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불필요하거나 감정과잉”이라는 비판이 있고 “관객을 기만하는” 과도한 마케팅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반대로, 갈수록 중요해지는 예고편의 차별화라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영화를 가장 이슈화하기 효과적인 방법론이며, 그래서 현재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양한 예고편 제작이 가능해진다는 부분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지점이다. 해당작품 <홍반장>(티저), 〈H>(티저), <싱글즈>(티저, 메인), <말죽거리 잔혹사>(티저), <인디안 썸머>, <내사랑 싸가지>, <목포는 항구다>, <시월애>(이정재, 전지현 편) 2. 애니메이션 예고편-아기자기한 캐릭터로 ‘쥑인다’ 애니메이션에 속하는 카툰 느낌의 그림들을 배치한 <어린 신부> 예고편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관객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애니메이션 예고편은 현재 전편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기보다는 부분적인 소스로 이용하는 경우가 잦다. 클레이메이션을 전면에 사용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유소 습격사건>의 경우처럼 애니메이션의 비중을 높인 작품들은 대체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끌어냈던 것으로 평가된다. 마케팅 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이슈화의 사례들은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예고편 전략으로 제고될 수 있다. “캐릭터를 중시하는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방향”을 고려한다면 애니메이션 예고편은 가능성 있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어린 신부>의 티저 예고편이 애니메이션에 속하는 카툰 느낌의 그림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예고편의 장점은 배우 중심이 아닌 작품 중심일 경우 작품의 컨셉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주유소 습격사건>이 3∼4명의 다수 주인공을 대상으로 하는 텍스트라는 점은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예고편 포맷과 잘 부합되는 측면이 있다. 전체 이용가의 영화라면 한번쯤 고려해볼 만한 예고편 제작방식이다. 해당작품 <처녀들의 저녁식사>, <주유소 습격사건>, <어린 신부>, <맹부삼천지교> 3. 뮤직비디오 예고편-짜릿한 혹은 부드러운 선율로 감싼다 뮤직비디오처럼 구성됐던 <와니와 준하> 예고편 예고편의 영역에서 개별적인 분야로 뮤직비디오가 존재하지만, 티저 예고편이 강화되고 음악선곡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경향에 따라 뮤직비디오 유형의 예고편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하류인생> 티저 예고편은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기타 독주의 결합을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실험적인 경향을 선보였다. 오노 리사의 〈I wish your love>가 삽입된 <와니와 준하>의 경우에는 “이게 뮤직비디오지 예고편이냐”며 제작투자자들이 난색을 표명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에 여러 편의 CF에 같은 음악이 삽입되는 파급효과를 낳았고, 뮤직비디오 경향의 예고편이 한 흐름으로 자리잡게 했다. <지구를 지켜라!> 예고편 경우에도 록밴드의 흥얼거리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리메이크 버전이 주요 대사가 등장하는 경우에만 소리가 작아지고 시종일관 예고편을 수놓는다. 이러한 뮤직비디오와 본 예고편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은 주요 관객이 같은 방식의 드라마타이즈라도 뮤직비디오 형식을 더 선호하고 뮤직비디오 채널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해당작품 <와니와 준하>, <하류인생>, <지구를 지켜라!> 4. 내레이션 예고편-말 한마디에 관객을 부른다 할리우드식 내레이션을 코믹하게 활용한 <은장도> 예고편 예고편에서 내레이션은 한국영화에서 ‘양날의 검’이다. 할리우드영화 예고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내레이션은 비주얼의 강화와 효과적인 정보전달이라는 장점과 함께 영화의 느낌을 고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약점을 지닌다. 한국영화 예고편에서 내레이션의 사용은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도록 하거나 값싼 영화”로 인식하게 하는 위험부담을 안는다. <낭만자객>의 영어 내레이션의 사용이나 <어깨동무> 초반부의 중국어 버전 내레이션은 코미디영화 장르에 알맞게 쓰인 효과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CG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레이션의 과도한 사용은 마케팅을 극대화하는 효과는 있지만, 관객에게 부담감을 줄 수도 있다는 냉정한 자기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람의 전설>의 경우 티저 예고편에서는 내레이션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예고편 본편에서는 과감히 후반부를 음악 중심으로 바꾸는 선택을 해 결과는 긍정적인 것으로 예상된다. <역전에 산다>는 방송프로그램 포맷을 빌려 전창걸을 화자로 내세우는 패러디 전략을 택했다. 영화정보 프로그램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부분과 코미디 장르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시도였다고 본다. 비주얼이 강조될수록 내레이션에 대한 시험은 여러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전문 성우의 영역이 확보된다면, 현재의 혼란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과장된 효과를 노리기보다는 작품의 성격을 감안한 내레이션의 사용이 필요하다. 액션 대작의 경우에 산만함을 줄이는 요소로 내레이션 도입이 고려될 수 있다. 해당작품 <낭만자객>, <은장도>, <역전에 산다>, <어깨동무>, <바람의 전설> 5. 내러티브 중심의 기존 예고편-편집의 힘 CG와 음악의 과감한 사용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구를 지켜라!> 예고편 가장 많은 예고편이 이 영역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 유형에서 훌륭한 예고편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전부 영화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편집이나 사운드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친구>의 경우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을 통한 화면 감각을 전반부에 내세우면서 흑백의 비내리는 장면들을 ‘죽음’의 암시로 배치한다. 이후에는 스틸이 넘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가파른 편집을 통해 속도감을 재현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분리와 병합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구를 지켜라!> 티저 예고편의 경우 전반부는 클래식에 속하는 대작 SF의 분위기를 CG로 구성하고 우주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내부에서 영화내용을 전개시키는 대목에서는 록음악과 편집으로만 끝까지 밀어붙인다. 신하균과 백윤식이 내뱉는 대사는 단 두 마디. “고향이 안드로메다 아니십니까?”라는 질문과 “뭐라구?”라는 대답. 예고편 전문가들이 꼽는 탁월한 작품인 <살인의 추억>은 티저에서는 술집신을 메인으로 하여 다른 주요 장면들을 교차편집하고, 예고편 본편에서는 향숙이를 묘사하는 백광호의 대사가 내레이션처럼 깔리고, 영상이 흘러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 예고편의 탁월한 점은 대사나 사운드가 장면과 장면 사이를 걸치도록 편집하여 “공포나 호기심을 점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코스CF로 유명한 채은택 감독이 연출했다. 다큐멘터리적 시작과 뮤직비디오 타입의 중반부로 연결되는 <올드보이>도 비주얼을 탁월하게 사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간결한 문자화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액션신의 편집을 어느 영화보다 잘 구성해낸 <청풍명월>과 같은 대작 예고편이 있다. 해당작품 <친구>, <지구를 지켜라!>(티저),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청풍명월> 6. 그외 주목할 만한 시선 그외 주목할 만한 작품들로는 내러티브에 충실한 예고편과는 달리 스탭들의 연속적인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태극기 휘날리며>의 티저 예고편과 간결한 문자화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액션신의 편집을 어느 영화보다 잘 구성해낸 <청풍명월>과 같은 대작 예고편이 있다. 강렬한 느낌의 주인공 장동건 스틸을 전면에 배치하여 정사진의 고립된 느낌을 잘 표현한 <해안선>이나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사운드소스와 비주얼의 조합만으로 대사없이 공포감을 정교하게 표현한 <거미숲> 티저 예고편도 장르나 작품의 성격을 잘 살려낸 사례라 할 수 있다. :: <내츄럴시티> 칸느 프로모션용 예고편 제작스토리 말이 5개월이지, 장편을 만드는 악전고투로세-<내츄럴 시티> 예고편 <내츄럴시티>의 예고편은 본편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작품이다. 프로모션용 예고편의 제작기간을 묻는 질문에 최승원 감독은 “한 5개월쯤”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필름마켓에 내보내야 하는 촉박한 일정과 일반적인 키네코 작업이 아니라 풀스캔으로 진행된 까다로운 공정은 제작팀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거대하게 기획된 영화의 본편만큼 예고편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기획되었고, 그에 준하는 지난한 수정 과정을 거쳤다. 일반적으로 티저는 2달 전, 예고편은 1달 전이라는 제작관행과는 무관하게 길이만 짧을 뿐 상업 장편영화를 만드는 악전고투가 계속되었다. 이재진 음악감독의 추천으로 이 작업에 참여한 오케스트레이션 전문가 김명종씨는 “만들어진 영상에 음을 하나하나 입히는” 극한의 노력을 요하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했다. 현재 튜브 영상제작팀 팀장으로 있는 신현찬 PD는 두 사람과 영진위 녹음실을 뛰어다니며 발을 동동 굴렀다. 최승원 감독이 보여준 <내츄럴시티> 칸느 버전은 장중한 영어 내레이션이 적절히 사용되고 특유의 절제된 편집으로 비주얼이 특화된 훌륭한 예고편이었다. 이러한 산고 끝에 만들어진 작품은 마켓에서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상당한 호평과 긍정적 평가를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브영상팀과 제작투자주체간의 의견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츄럴시티> 예고편 본편은 남화정씨가 제작하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내츄럴시티> 예고편을 마무리짓지 못한 아쉬움은 누구보다도 최 감독이 더할 것이다.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4] - 헐리우드 예고편 / 국내 예고편 제작진

“과연 그녀는 사자굴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다음주 후속편을 기대하세요!” 사상 최초의 영화 예고편은 1912년 뉴욕에서 상영된 <캐슬린의 모험> 말미에 불쑥 등장했다. 뉴욕 광고인들이 세운 내셔널 스크린 서비스사가 독점 제작한 초기 예고편들은 도리어 극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제공됐다. 독점 생산된 초기 트레일러들은 스펙터클과 스타, 최대한 두꺼운 글씨체의 타이틀에 곡마단 사회자풍의 내레이션이 버무려진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몰개성한 예고편의 밀물 속에서도 데이비드 O. 셀즈닉, 세실 B. 드밀,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흥행사들의 감각은 빛났다. 특히 <싸이코> 예고편에서 베이츠 모텔 동네의 투어를 행했던 히치콕은, <로프> 예고편을 극중 인물이 영화 속 사건이 터지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는 프롤로그로 연출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상업적 편집기교를 업그레이드한 할리우드 예고편은 1975년 <죠스>가 TV광고와 전미 대규모 동시개봉 전략으로 유례없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새로운 중요성을 갖게 됐다. 한편 TV CF와 뮤직비디오의 양식미도 할리우드 예고편의 미학에 입김을 끼쳤다. 하지만 영화의 예고편이야말로 CF와 MTV의 교사라고 보는 쪽이 이치에 닿는다. 92년의 역사, 작가들도 다수 1990년대 들어 개봉 첫쨋주 성적이 흥행을 결정하는 도가 높아지면서 예고편은 더더욱 가볍지 않은 비즈니스가 됐다. <버라이어티>와 <무비폰>의 통계에 의하면 극장 예고편은 관객의 78%가 영화 선택에 영향을 받는 최고의 광고수단. 같은 상품을 구매할 고객과 정확히 일치하는 소비자를 어둠 속에 붙잡아두고 투사하는 맞춤 타깃 광고라는 점에서 76%의 TV광고를 앞지른다. 이에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평균 마케팅비 3500만달러 중 25만달러에서 50만달러를 예고편 제작에 투자한다. 4∼5개 프로덕션에 따로 하청을 맡긴 뒤 테스트 시사로 한편을 고르는 사치를 부리기도 하고 심지어 후보 예고편 중 반응이 좋은 대목만 짜깁기하는 ‘프랑켄슈타인 트레일러’까지 등장한다. 후자의 가까운 예는 <스파이더 맨>. 이 영화의 예고편은 9·11 사태로 쌍둥이 빌딩을 지우는 추가작업까지 200만달러를 소모하기도 했다. 독립영화 전문지 <필름메이커>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인디영화들이 예고편에 쓰는 돈은 1만달러에서 3만달러. 그러나 TV광고를 꿈꾸기 힘든 사정상 예고편은 독립영화들의 중대한 승부처다. 스타 캐스팅이 드문 만큼 스토리 자체의 매력을 부각시키고 비평의 상찬, 수상경력을 강조하는 것도 인디영화 예고편의 경향. 외국어영화의 경우 미국 관객에 익숙한 팝송을 예고편 배경음악으로 교체하기도 한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막론하고 미국영화의 예고편은 미국영화협회(MPAA)가 정한 까다로운 규율을 지켜야한다. 허가된 예고편 길이는 최장 2분30초. 단, 기원을 알 수 없는 예외규정에 의해 스튜디오들은 한 해 딱 한편 2분30초를 넘기는 예고편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로드 투 퍼디션>의 예고편이 유독 유장했던 까닭이다. 근거리 총격, 마약 묘사도 엄격히 통제돼 <트래픽> 예고편팀은 팥없는 찐빵을 만드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MPAA는 예고편 표현수위에 따라 예고편 라벨을 초록색과 빨강색으로 나눈다. 초록 트레일러는 G등급(전체 관람가)부터 NC-17등급(17살 미만 관람불가)영화에, 빨간 트레일러는 R등급과 NC-17등급 본편 영화에 붙일 수 있다. 예고편 사운드가 갈수록 쩌렁해지자 1999년 창립한 트레일러 음향기준협회는 볼륨 제한을 정하기도 했다. 골든 트레일러상도 제정 그러나 일단 만들어 뿌리고 나면 예고편의 노출 빈도는 극장 마음이다. 한회 상영에서 허락된 예고편 시간은 10분 내지 12분. 약 5편의 예고편을 눌러담을 수 있는 시간이다. 개봉 날짜, 본편 영화의 장르와의 조화가 선택 기준이지만, 대형 극장체인일수록 고정 거래처인 메이저 스튜디오를 고루 만족시키는 것이 큰일이다. 급기야 스튜디오들은 극장 비치 인쇄물 홍보비를 분담하거나 예고편 프린트에 일정 수 이상을 모으면 경품을 주는 쿠폰을 부착해 극장의 ‘협조’를 유도하는 한편, 자사 예고편의 상영 횟수와 배치 순서를 감시하는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한편 90년대 말부터는 스튜디오들끼리 연관된 장르영화에 타사영화 예고편을 붙여주는 품앗이의 미풍양속(?)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마케팅 도구라고 하지만 예고편 역사가 한 세기에 다다르는 동안 작가들도 등장했다. 지난 오스카 시상식 부음 코너에 소개돼 눈길을 끈 앤드루 J. 킨은 <죠스> 〈E.T.> 등 스필버그 영화로 유명한 트레일러 감독으로 우주를 유영하는 패닝숏과 “우주에서는 아무도 당신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는 카피를 매치시킨 <에이리언>의 예고편을 남겼다. 요람의 실루엣에 히스테리컬한 아기 울음을 얹은 <악마의 씨>의 예고편으로 절제미의 파워를 증명한 감독 스티븐 O. 프랑크푸르트, 현란한 편집으로 토니 스콧과 제리 브룩하이머, 마이클 만을 사로잡은 스킵 체이슨, 팔기 힘든 독립영화 예고편의 대가 제임스 브룩만도 명성을 높였다. 1999년에는 우수 예고편을 기리는 골든 트레일러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예고편 전문 사이트 ‘무비트레일러 트래시 닷컴’에 의하면 최근 미디어 환경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할리우드 예고편의 운명에 새 길을 텄다. 아비드 편집은 며칠씩 걸리던 새 편집 아이디어의 실험 시간을 30분으로 줄였고, 인터넷의 번영과 맞물려 특정 소비층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트레일러를 다운로드용으로 공급하는 시대를 열었다. 극장에 디지털 영사 시스템이 보급될 경우 상상할 수 있는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영사의 빈도와 순서에 대한 배급사의 통제력은 거의 완전해질 것이고, 이미 배포한 예고편에 손댈 수 없는 답답증도 사라질 것이다. 어제 스캔들을 일으킨 스타를, 당장 오늘부터 그의 개봉작 예고편에서 볼 수 없거나 콩알만한 크기로나 보는 날이 머지않았다. :: 국내영화 예고편-만드는 사람들은 누굴까? >>튜브픽쳐스 영상제작팀 - 동국대 영화학과 출신들 이곳은 현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가 이끌었던 영화홍보사 알앤아이에서 시작된 예고편 제작팀이다. 드라마틱한 편집감과 독창적인 자막처리 등이 돋보인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당시로서 보기 드물게 완성도 높은 예고편. 동국대 영화학과 출신들로 구성된 이곳은 내러티브 구성에 초점을 두고 영화 자체에 충실한 예고편을 주로 제작한다. 외화 예고편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춰 재작업하기도 했다. 지금의 예고편 전성기가 도래하기 직전까지 독보적인 예고편 메이커로 활동했던 최민식 감독이 이곳 출신. 현재 작업 중인 영화로는 <아라한-장풍대작전>이 있다. 주요 필모 <접속> <조용한 가족> <퇴마록>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집으로…> <죽어도 좋아> <튜브> △ 튜브픽쳐스의 신현찬 >> 픽셀 - 독수리 5형제 1999년 2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TV프로그램 프로덕션이나 CF프로덕션 등 동종 업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뭉쳐 만든 예고편 전문 프로덕션이다. 이창수, 이규홍, 고락중, 박동준, 김종석 등 5명의 감독들로 구성돼 있고 어떤 작품에 대해서도 팀 개념으로 작업하는 것이 특징.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낭만자객> 등의 예고편으로 업계 내에서 잘 알려진 픽셀은 예고편의 기획력과 아이디어를 특히 중시한다. <엽기적인 그녀> 예고편 자막에 사용된 이모티콘, <로드무비>의 메인카피로도 쓰인 ‘남자, 남자를 사랑하다’는 예고편을 제작한 고락중 감독이 낸 아이디어. 이곳은 현재 <라이어>를 작업 중이다. 주요 필모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라이터를 켜라>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챔피언> <달마야 놀자> <조폭마누라> <목포는 항구다> <어깨동무> <어린 신부> △ 픽셀의 이규홍 >> 남화정 - 광고 AD 출신 2000년 <킬러들의 수다>로 입봉한 남화정 감독은 본래 광고회사 AD 출신. 영화를 워낙에 좋아해서 “광고와 영화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예고편 감독이 됐다.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영화를 전공한 뒤 예고편에 관한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 취득. 광고회사 출신답게 뛰어난 편집 감각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작 <태극기 휘날리며> 예고편은 전쟁영화의 스케일과 여성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드라마에 강조점을 두었고, 영화 속 원빈의 대사를 좀더 서정적으로 바꿔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입혀 완성했다. 지난해 8월 ‘X-nergy’라는 예고편 전문 제작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현재 <투 가이즈>를 작업 중이다. 주요 필모 <일단 뛰어> <몽정기>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맹부삼천지교> △ 남화정 >> 모팩 - 사운드디자인 겸비 인하우스 프로덕션 1995년 전문CG업체로 시작한 모팩은 2000년 <반칙왕>을 기점으로 예고편 시장에 뛰어들었다. 장성호 실장 후임으로 모팩 예고편팀을 맡은 한동성 실장은 뮤직비디오 컨셉을 도입한 <와니와 준하>가 예고편 입봉작이다. 모팩은 사운드디자인을 포함해 인하우스 프로덕션이 뒷받침되는 스튜디오. <나비>의 3가지 버전 예고편, 사운드 소스를 직접 만들어 제작한 <거미숲>처럼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진행한다.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압축하는 모팩의 감각은 그들이 만든 명필름과 싸이더스의 리더필름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거미숲> <효자동 이발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을 작업 중이다. 주요 필모 <반칙왕> <신라의 달밤> <피도 눈물도 없이> <해안선> <광복절특사> <지구를 지켜라!> <질투는 나의 힘> <바람난 가족> <여섯개의 시선> <빙우> <아홉살 인생> △ 모팩의 한동성 이외에도 튜브 출신의 이현식, 성우정, 최승원 감독 등은 현재 프리랜서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예고편 메이커들. 이현식 감독은 <집으로…> <동갑내기 과외하기> 〈4인용 식탁>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을 제작했고, 성우정 감독은 <여우계단> <청풍명월> <그녀를 믿지 마세요> <바람의 전설> 등을 제작했으며 현재 <돌려차기>와 <범죄의 재구성>을 작업하고 있다. 최승원 감독은 <내츄럴시티> 칸 마켓 프로모션용 예고편을 비롯해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귀여워> 등의 예고편을 만들었고 현재 <가족>과 <썸>의 예고편을 제작 중에 있다.

깜찍함으로 승부하는 얄팍한 결혼 이야기, <어린 신부>

가족 제도에 대한 독한 회의(懷疑)가 그 주제만 아니라면, 결혼제도의 인위적 성격은 로맨틱코미디가 꽃피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따라서 아무리 극단적으로 다른 커플이라도 결혼반지라는 절대반지의 구속에 스스로를 변모해내게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결말이 이미 내장되어 있는 바에야 그 설정이란 여하간 상관없는 편이다. 여기, 24살의 바람기 다분한 청년 상민(김래원)과 16살의 보은의 결혼도 그렇다. 건강이 악화된 할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하기 싫은 결혼을 ‘어쩌다 보니’ 했지만 그 다음은 모두 진짜 부부가 되기 위한 도상일 뿐인 것이다. 여기서 개화기도 아닌 요즘 세상에 정혼 같은 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따위의 질문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포인트는 ‘정혼’을 통해 파격적으로 삭감된 신부의 ‘나이’이다. 그러니까 ‘낭랑 18세’가 아니라 ‘낭랑 16세’ 정도랄까. 그러나 이 ‘두살’의 의미는 적지 않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가 이 사이에 놓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TV드라마와 두는 차별성도 거듭 원조교제를 의심받는 이 아슬아슬함에 있다. 게다가 아직 정절의 의무를 알 리 없는 열여섯 꿈 많은 신부가 야구부 남자 선배와 벌이는 외도(?)까지 겹치면 영화는 자체 내장된 결말로 가기까지 무척 지난한 여정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그 결말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게으르다. 교생실습 온 상민을 향한 노처녀 교사의 육탄공세, 상민이 학교에서 보은의 팬티로 땀을 닦는 장면과 같은 해프닝들로 느슨하게 러닝타임을 소모할 뿐이다. 이어 추억의 장치들이 억지스럽게 끼어들고 일장연설과 갈채로 부부애를 확인하려는 감동의 마무리가 기다리지만 아연 얄팍하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깜찍한 여고생과 허허실실 매력남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두 배우의 매력이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연인들끼리의 케미스트리조차 없다는 점. 하여 두 배우의 매력과 개인기는 각자 소구해야 할 관객층을 향해 시종 따로 논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아무리 잘 봐줘도 매력적인 오누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의 목표는 ‘깜찍함’으로 결혼드라마를 물타기하려는 것임을. 다만 ‘(남편은 있어도 남자친구는) 없어요’라는 대답 정도가 이 영화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유효한 농담이라는 것이 유감이다.

평이한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 <폴리와 함께>

영화가 시작하자 <폴리와 함께>의 주인공 루벤 페퍼(벤 스틸러)는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아내의 이름은 ‘폴리’(제니퍼 애니스톤)가 아니라 ‘리사’이다. 신혼의 꿈은 아내가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스쿠버다이버와 바람을 피우면서 순식간에 파경에 이른다. 그것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여자의 이름이 비로소 폴리이다. <폴리와 함께>는 한번의 가짜 이후에야 진정한 진짜를 찾게 된다는 다소 계몽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서사를 끌어간다.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자기 변화의 감동적인 모티브와 실수 연발의 웃음 코드들이 배치되어 있다. 우선은 그 캐릭터들의 상충되는 면이 호기심을 자아내고, 그 성격차가 웃음을 유발하는 촉진제가 되며, 다시 진지한 사건의 갈등에 이른 뒤에, 중요한 일생일대의 감정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도착하게 된다. 말하자면, 루벤은 삶을 위험도의 확률로 계산하며 살아가야 하는 손해보험사정사이고, 조금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어도 곧장 과민성 대장증세에 시달리는 민감성 인간이며, 술집에서 내주는 땅콩에서조차 세균을 걱정하는 소심한 남자이다. 결혼 실패 이후 상심에 젖어 있던 루벤은 우연히 중학교 동창 ‘폴리’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폴리는 유년 시절의 모벙생 기질을 벗어던진 활달하고, 격정적이며, 자유분방한, 혹은 덜렁대는 그러니까 살사댄스를 즐기고, 세상 어디에도 여행을 가보지 않은 곳이 없고, 열쇠를 냉장고에 넣고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여자이다. 그들 루벤과 폴리가 교제를 시작한다. 행복으로 향하던 감정은 아내 리사가 돌아오면서 다시 엉클어진다. 루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제목이 말해주듯 사랑은 이미 폴리에게 예약되어 있는 셈이다. <미트 페어런츠>와 <쥬랜더>의 각본을 쓴 존 햄버그가 이 영화의 각본 및 감독을 맡았다는 점에서 영화의 장단점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선 두편의 영화에 모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벤 스틸러가 다시 등장하여 허약하고 실없지만, 밉지 않은 남자의 매력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행동반경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 특히 친구 샌디 라일 역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은 그 과장됨과 상관없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폴리와 함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서사를 뒤집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대니 드 비토가 제작을 감행한 영화 중 가장 덜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공포영화의 종합선물세트, <고티카>

여성 감호소에서 범죄자들의 심리상담을 맡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미란다(할리 베리)는 악마에게 강간당한다고 주장하는 환자 클로이(페넬로페 크루즈)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미란다는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원래 가던 길이 아닌 우회로를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우회로 한복판에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흐느끼고 있는 피투성이 소녀를 보게 된다. 그녀를 만난 직후, 미란다는 집이 아닌 감호소의 독방에서 깨어난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감호소장 더그의 살해범으로 3일 동안 구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녀에게 있어 3일 동안의 기억은 송두리째 사라진 상태다. 마티외 카소비츠의 신작 <고티카>를 보고 있노라면 <스크림>에서 공포영화의 규칙들을 열거하며 농담 따먹기를 즐기던 주인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오컬트 무비에서 사이코스릴러로, 그리고 동양적 한을 접목시키는 데 골몰한 듯한 최근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공식까지, 어떤 한 가지 특성이 유행의 첨단으로 등장하는 순간 곧바로 진부해져버렸던 ‘게임의 규칙’을 다시 한번 아우르는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물론 영화 만들기에 있어 짜깁기의 미학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으나, 문제는 ‘익숙함을 얼마만큼 새롭게 활용하고 역전시키느냐’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고티카>는 관객과의 심리 게임을 조율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엉거주춤하고 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할수록 미친 게 아니라고 주장할수록 다른 이들에게는 정말로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분석하던 이에서 순식간에 분석당하는 이로 추락한 미란다 역을 맡은 할리 베리는 그 무기력한 분노와 광기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무난히 잘 소화했다. 그러나 감독의 시선은 할리 베리의 스타 파워에 집중한 나머지 그 이외의 사람들, 그러니까 정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는 그들 때문에 미란다의 불안이 한층 생생하게 증폭될 수도 있었을 조연들(클로이를 비롯하여 미란다를 흠모하면서도 의심하는 동료 의사 피트, 미란다의 남편 더그, 병원 동료 필과 보안관 밥)이 보여주는 모호함은 단편적인 스케치로만 흘려보낸다. 결과적으로 <고티카>가 안겨주는 공포의 핵심이었어야 할 절박한 긴장감은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영화 속 비밀들은 지나치게 뜬금없이 출몰하는 듯한 인상만을 남긴다. “무서워요?” 클로이가 미란다에게 묻는다. “아뇨.” “무서워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고티카>는 이 자신만만한 발언에 미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인터뷰] <바람의 전설> 박솔미

"배우라는 소리 듣는 배우 되고 싶다" 툭하면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 주먹질하며 사고치고 다니는 오빠.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직업. 여형사 연화의 삶은 신나는 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 것은 바로 춤. '전설의 춤꾼'을 잠복수사하던 중 알게 된 춤의 세계는 따분하던 그녀의 삶에 바람을 일으킨다. 4월 9일 개봉하는 영화 <바람의 전설>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전설적인 춤꾼이 된 풍식(이성재)의 이야기를 그린 본격적인 춤 영화. 여주인공 연화 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에 데뷔하는 박솔미(26)는 춤을 연기에 비유하자면 춤에 미친 풍식보다는 이제 막 춤의 재미를 알게 된 연화에 가까워 보인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5개월 동안 춤 연습에 매달리던 그녀는 발목 인대 부상까지 당했으며 겨울이었던 촬영 기간 내내 추위에 시달려야 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배우 같은 배우 소리를 듣고 싶다'고 당차게 말하는 이 여배우는 영화 연기의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댄스 스포츠 정복기 = 댄스 스포츠는 처음이었지만 사실 그녀의 춤 솜씨는 몸치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대학(상명대 연극영화학과)에서 발레와 한국 무용도 배웠고 간혹 나이트클럽도 즐길 정도.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혼성 댄스그룹의 멤버로 가수 데뷔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댄스 스포츠는 조금 다른 얘기. 그녀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5개월 동안 1주일에 3~4일씩 하루 7~8시간 동안 '댄스 스포츠 스쿨'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솔직히 즐겁기보다 지겨울 정도였다"는 게 솔직한 설명이다. "영화 속 연화처럼 춤을 즐겁게 배우지는 못했어요. 하루 한두 시간쯤이면 즐겁겠지만 오후 늦게까지 춤을 추고 나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피곤하거든요. 게다가 빨리 배워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너무 힘들었어요. 이젠 영화가 끝났으니 즐기면서 춤을 출 수 있겠죠." ▲이성재와 박정우 감독 = 같이 호흡을 맞춘 이성재에 대해 묻자 네 번이나 '너무'라는 표현을 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많이 좋은 파트너였어요. 차가워 보이면서도 따뜻하게 잘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썰렁한 듯 하면서도 재미있는 유머도 즐거웠고요" 박솔미는 이성재와 함께 박정우 감독을 '고마운 분'으로 꼽았다. "항상 같은 표정인 듯한 표정이면서도 유머를 잊지 않고 연기지도를 해줬다"는 설명이다. 반면, 촬영 도중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추위를 꼽았다. 유난히 추위를 싫어하는 데다 촬영은 한 겨울에 병원 옥상과 바닷가 등을 오가며 진행됐다. "후반부에 등대 앞에서 자이브를 추는 장면 있죠? 그때 온도가 영하 18도였거든요. 바람이 어찌나 차가웠던지…. 춤추는 장면이라 옷도 상당히 얇았거든요." ▲다이어트 = 지금은 50㎏를 넘지 않는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이지만 박솔미가 한때 70㎏이 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얘기다. 그녀는 대학 1학년 때 넉달동안 20㎏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고. 다이어트 성공의 비결을 꼽아달라고 하자 `충격'과 `운동'을 들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짝사랑하던 선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선배가 어느날 저를 보고 '입고 있는 바지가 불쌍하다'고 놀리는 거예요. 그때 '충격'을 받고 앞뒤 안 가리고 운동을 시작했죠. 화장실 갈 때도, 물 마시러 갈 때도 계속 뛰어다니고. 특별히 식사량을 줄인 것은 아니지만 계속 움직였더니 어느새 체질도 바뀌더군요" ▲콤플렉스, 닮고 싶은 배우 = 박솔미는 외모 중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화가 잘 된 얼굴일 뿐 예쁜 얼굴은 아니다"고 겸손해했다. 많은 팬이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입술은 사실 자신에게는 콤플렉스라고. "입술이 좀 작았으면 좋겠어요. 도톰하니까 잘못 보면 꽤나 웃기거든요. 입술을 내세우기 싫어서 립스틱도 안 바르려고 해요. 될수 있으면 감추려고." 닮고 싶은 배우가 있느냐고 묻자 위노나 라이더를 꼽았다. 차가운 외모에 따뜻한 눈빛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좋아하는 영화로도 그녀가 출연하는 '크루서블'을 꼽았다. "착하기만 하고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은 매력이 없어요. 위노나 라이더처럼 강하면서도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인터뷰] <바람의 전설>의 이성재

배우는 만물상자같다. 뚝딱 한번 치면 살이 수십 ㎏ 늘어나고, 뚝딱 하면 운동 선수가 되고…. 이번엔 뚝딱 했더니 춤꾼이 하나 탄생했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울랄라 시스터즈>처럼 춤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었지만 거기서 주연 배우들의 춤은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했다. 영화 속 설정이 아마추어여서 그래도 됐지만, 그 때문에 이 영화들을 ‘춤 영화’로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바람난 전설>은 ‘춤 영화’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주인공 박풍식은 춤에 문외한이었다가 전설같은 춤꾼이 돼 날렵한 춤솜씨를 수시로 선보인다. <바람의 전설>이 드라마를 따지기 이전에 우선 춤을 보는 맛과 재미를 채워주는 영화가 된 건 박풍식 역의 이성재(34)의 공이다. 몸이 뻣뻣하기 그지 없던 이성재는 세달 동안 하루 종일 춤만 춘 결과, 대역 없이 100% 자기 춤으로 영화를 채웠다. 한국 영화의 소재와 장르를 넓히게 하는, 의미있는 정성이다. 석달간 하루 10시간씩 춤만 춰 “처음엔 대역을 쓸 걸로 생각했다. 몇 달 배울 순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프로 춤꾼이 될 것같지 않았다. 대학교 때 디스코장 가서 춤추다 거울 보면 내 모습이 그렇게 어색할 때가 없었다. 그런데 박정우 감독이 대역 없이 내가 출 걸 요구했다. 그 요구도 요구지만, 춤 학원 원장이 첫날 추는 것 보고는 ‘정말 이 사람이 할 거냐’고 묻더라. 그때 오기랄까, ‘그래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이성재가 할 수 있는 건 ‘시간투자’밖에 없었다. 아침 9시에 학원가서 오후 6~7시까지 추고 집에 오고, 그 단순한 삶을 한창 더울 7월부터 세달간 살았다. 그 덕에 촬영에 들어갔을 땐 “춤 춘다기보다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춤을 출 수 있었다. 이성재의 춤은 군살 없이 검소해 보이는 그의 몸과 안무에 충실한 동작으로 인해 느끼함이 없다. 날렵하지만 섹시하다기보다 품격이 있어 보인다. 그게 자신을 ‘제비’ 아닌 ‘예술가’로 믿는 박풍식의 캐릭터에 어울린다. 풍식은 꼬집어 말하기 힘든 인물 <바람의 전설>에서 이성재는 이전과 조금 다른 태도로 연기에 임했다. “유일하게 캐릭터를 생각하지 않고 들어간 영화다. 박풍식 캐릭터를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고, 감독도 모르겠다고 하고, 그래서 그냥 내가 하는 게 박풍식의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나중에 영화보면 관객들이 인물에 어떤 느낌을 갖겠지 하며 열린 마음으로 했고, 그게 편했다.” 이전에 이성재가 맡은 역들은 그 자체가 개성이 강한 인물이라기보다 개성 강한 이들 사이에서 균형잡는, 이성재의 말로 “코미디 영화에서 나만 코미디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자유롭게 튀기 힘든, 상한과 하한이 정해진 역이었다. “<빙우>에서 내가 까부는 표정이 나오면 영화 분위기가 흐려질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여러모로 캐릭터를 생각하지만 겉으로 잘 나타나진 않는 연기가 “<공공의 적>처럼 목적이 분명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하는 역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영화를 내가 다 고르는 게 아니라 나한테 요청이 들어온 것 안에서 고르니까….” 다음엔 트럼펫 불어야 하는데… 차분하고 술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이성재는 촬영 없을 때 집에 죽치고 지내는 자신이 ‘참 재미없게 사는 것같다’고 전부터 말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춤이 새 취미가 됐을 법한데 “일로 배워서 그런지 나중엔 몰라도 별로 추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배운 춤 중에 빠른 라틴댄스가 아닌 느린 왈츠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이성재답다. 다음 영화 <신석기시대>를 위해 지금 트럼펫을 배우고 있고 이게 새 취미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성실한 태도,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는 모습 등 여러 면에서 안성기를 닮은 이성재의 안성기에 대한 언급. “데뷔 때부터 워낙 닮고 싶어했던 배우다. 안 선배의 연기도 좋아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배우의 느낌, 그걸 나도 갖고 싶다. 그게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온 데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꼭 안 선배를 따라 한다는 게 아니라, 나도 열심히 살다 보면 그걸 갖게 되지 않을까.” 스텝 밟고 전기 튀다, 그 남자 작은 대리점 관리사원으로 아무런 삶의 의미도 재미도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사는 풍식(이성재). 어느날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 만수(김수로)는 이른바 사교춤 강사로 풍식에게 춤을 배우라고 꼬신다. 한참을 거절하다 첫 스텝을 밟은 그의 몸엔 전기가 일어나고 그의 마음 속에는 광풍이 불어온다. 살아야 할 이유가 섬광처럼 그에게 떠오른 것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정우 감독의 연출 데뷔작 <바람의 전설>은 그의 시나리오 이력과는 다르게 자못 진지한 드라마다. 영화는 친구 만수의 사기로 대리점에서 쫓겨난 풍식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숨어있던 춤의 고수들을 찾아 춤을 연마하는 과정, 마땅히 춤출 곳이 없어 고민하다가 진출한 캬바레에서 뭇 여성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본의 아니게’ 제비가 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남들이 뭐라건 간에 풍식은 자신을 예술가라고 지칭한다. 주변 사람도 비웃고, 관객들도 웃는다. 그러나 풍식의 춤을 향한 열정은 정말 진지하다. 실은 ‘한 끝차이’라도 있는 건지 의심스럽지만 ‘예술가’와 ‘제비’ 사이에서 풍식의 정체성은 강제로 균열당한다. 그 아이러니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연출이 신선한 유머를 준다. 다만 대한민국 춤꾼 세계의 사실적인 디테일이 빈약하고, 그때문에 이들의 비애같은 것이 제대로 배어나오지 못하는 것같은 점은 아쉽다. 무엇보다 <바람의 전설>의 가장 큰 재미는 나도 한번 춤을 배워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춤장면들. 이성재, 박솔미를 비롯해 출연배우들의 훈련된 춤솜씨가 눈을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