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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장가] 나른한 늑대냐, 고난의 예수냐

4월 첫 주말, 개봉작 가운데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양동근, 황정민 주연의 <마지막 늑대>는 계절과 무관한 내용이지만 봄 기운처럼 온 몸을 감싸는 나른함이 친근하게 전해지는 영화다. 한 형사가 험악한 서울에서 범인을 잡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 추운 겨울에 달리는 차에 매달리고, 연휴로 전원을 꺼버린 엘리베이터 안에 사흘 동안 갇힌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서 일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는 강원도 정선군의 한적한 산골 마을 파출소로 전근간다. 서울서의 고생담을 다룬 짧은 도입부를 지나 화면 가득 펼쳐지는 강원도 숲속에는 봄 햇살이 가득하다. 이 형사는 그 안에서 돗자리 깔고 자고, 깨어나면 동식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일에 시달리며 시간에 끌려가지 않고, 시간을 좋게 써보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시간과 친구가 돼 함께 흘러가는 그 나른한 모습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세상은 일하지 않는 자를 놓아두지 않는다. 파출소 폐쇄방침이 발표되고 이 형사는 일부러 사건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후반부 이야기 전개가 맥이 좀 풀리지만 영화가 풍기는 나른함이 신선하다. 아! 일하기 싫어서 슬픈 짐승, 인간이여. 2일 개봉영화 중 가장 화제작은 배우 멜 깁슨이 감독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이다. 예매순위가 압도적으로 1위에 올라 있는 걸 보면(맥스무비 집계) 미국에서의 흥행세가 한국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12시간을 따라가는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 예수가 겪는 육체적 고통을 중계하는 데에 주력한다. 매맞아 찢어지는 피부, 떨어져나가는 살점, 흐르는 피를 2시간 넘게 보면서 예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에겐 복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지겹고 고통스런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김래원, 문근영 두 청춘 스타를 내세운 <어린 신부>는 정반대로 아주 가볍다. 팬시상품처럼 두 스타의 매력을 전시하고 소비하면서 이들의 팬을 유혹한다. 이것도 영화라는 매체의 한 특장일 수 있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의 그외 주말 개봉작 리뷰 소심남이 화끈녀를 만났을때, <폴리와 함께>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자신을 삶을 구축해온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는 건 사실 ‘사건’이다. 길거리의 보도블럭만큼이나 흔해빠진 게 연애이고, 넘쳐나는 게 로맨스 영화지만 누구나 한번은 빠져봤을 사랑,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근사한 데이트, 짜릿한 키스의 순간이 지나가면 한두가지씩 드러나는 상대방과 나의 차이점들,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상대방의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제 사랑은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라 정글 속을 헤쳐나가는 듯한 모험과 전투로 변모한다. 해리와 샐리가 그랬듯, 모든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고, 손잡고 같이 영화를 보는 커플 관객도 예외는 아니다. 잘나가는 남녀들이 모여들어 사랑의 화살표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뉴욕의 두 청춘 루벤(벤 스틸러)과 폴리(제니퍼 애니스톤)도 마찬가지. 익숙한 줄거리 그렇고 그런 웃음, 애니스턴 신선한 매력이 위안 유능한 보험회사 손해사정인인 루벤은 모든 선택을 하는 데 위험도와 안전도를 계산해서 결정하는 소심남이다. 딴에는 완벽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아내가 신혼여행때 스쿠버 강사와 바람이 나자 루벤은 충격을 받는다. 더욱 움츠러든 그는 친구에게 이끌려 간 파티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폴리를 만나고 자신보다 더 모범생이었던 폴리가 분방한 히피처럼 변한 모습에 호기심을 느껴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러나 폴리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루벤은 복통을 일으키고, 폴리가 즐기는 살사춤 클럽에 가서 루벤은 그 ‘대담함’에 아연해진다. 길거리에 떨어뜨린 초콜렛을 툭툭 털어 다시 입에 집어넣는 여자와 술집 땅콩은 지저분하다고 건드리지도 않는 남자, 그 둘은 과연 ‘사랑’이라는 지뢰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당연히 답은 ‘살아남는다’다. <폴리와 함께>는 이미 검증된 줄거리와 웃음의 코드로 엮어가는 안전한 로맨틱 코미디이므로. 익숙한 이야기, 익숙한 인물들임에도 본 영화 또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제니퍼 애니스톤의 세련된 옷차림과 아직 영화에서는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매력 때문이다. 애니스톤은 지나치게 소년 같고 어리광 심한 멕 라이언보다는 성숙해 보이고, 자기도취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산드라 블럭보다는 담백하다. 그러나 루벤 역의 벤 스틸러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웃음제조기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만 식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의 테드와 <미트 페어런츠>의 그렉에 이어 이 영화의 루벤역으로 벤 스틸러는 도시적인 소심남 역할로 자신의 캐릭터를 굳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밥의 그 나물 같은 지루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한물 간 배우로 루벤의 친구를 연기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느끼하기 짝이 없는 직장 상사를 연기한 알렉 볼드윈의 연기가 오히려 더 신선하고 즐겁다. 2일 개봉. “맙소사, 내가 남편을 죽였다니…”헬리 베리 주연 ‘고티카’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한 조엘 실버와 <증오>로 27살에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마티유 카소비츠, 그리고 <몬스터 볼>로 흑인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 베리가 한 작품에서 만났다. 적어도 라인업으로 보자면 한번 더 눈길을 끌게 하는 모양새지만 <고티카>는 결과적으로 매우 평범해져버린 공포영화다. 정신과 의사인 미란다(할리 베리)는 남편이 소장으로 있는 여성 감호소에서 범죄자들의 정신상담을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운전 중에 불쑥 나타난 소녀를 피하려다 사고를 내고 의식을 잃는다. 며칠 뒤 무거운 통증 속에서 눈을 떠보니 감호소의 독방에 갇혀있는 자신을 발견한 미란다는 3일 전 남편이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 지난 3일은 깨끗이 지워져 있다. <고티카>는 조엘 실버와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등을 감독했 로버트 저메키스가 함께 만든 공포영화 전문제작사 ‘다크 캐슬’의 네번째 작품이다. <고티카>는 다크 캐슬의 전작들보다 많은 욕심을 가지고 출발한 듯하다. <헌티드 힐> <고스트쉽> 등 전작들에서 자주 등장하던 유령이야기에 사이코 스릴러라는 장르를 더하고 여기에 망자의 원한이라는 동양적 정서까지 접목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접합점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아서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행동에 충분한 원인이 제공되지 않는다. 주인공 할리 베리의 연기는 무난하다고 해도 비중있는 조역인 페넬로페 크루즈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종 사건의 중심에서 떨어져 변죽만 울린다. 그러다 보니 공포영화의 기본요소라고 할 긴장감의 밀도가 옅어지고, 모든 사건이 동양 귀신과 서양 사이코의 합작품이라는 결론도 어색하기만 하다. 2일 개봉 프리키 프라이데이 <프리키 프라이데이>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코미디다. 몸이 바뀐 인물, 거기에서 오는 혼란으로 벌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들, 한국 영화 <체인지>에서 톰 행크스 주연의 <빅>까지 우연히 벌어진 ‘몸 따로 마음 따로’를 소재로 삼아온 영화는 드물지 않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에서 바뀐 건 24시간 전쟁 중인 엄마와 딸이다. 보수적이며 유능한 심리치료사 테스(제이미 리 커티스)와 공부에는 관심없는 록밴드 기타리스트 애나(린제이 로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녀다. 이들의 사이를 중재하려는 신의 뜻인지 어느날 중국식당에서 열어본 행운의 쿠키의 쪽지에 알듯 모를듯한 암시가 적혀있고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두 사람의 몸은 바뀌어 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사무실과 교실이라는 서로의 공간에서 엉뚱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몸바뀐 엄마와 딸, 야릇한 사랑전선 여기까지는 매우 상투적으로 흘러가지만 두 사람이 각자의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사랑에 빠지는 전개는 자못 신선하다. 애나가 좋아하던 남자친구 제이크는 모녀의 몸이 바뀌기 전, 엉뚱하게 엄마 테스에게 호기심을 가진다. 이 호기심이 몸이 바뀐 뒤까지 이어져 결국 엄마의 몸 속에 들어간 애나와 사랑에 빠진다. 내용은 10대 두 남녀지만 형식은 40대 중년여성과 10대 소년이니 둘이 하는 키스는 뭔가 야릇한 긴장감과 웃음을 준다. 재혼을 앞둔 테스의 약혼자 라이언이 테스, 그러나 속 내용은 10대인 애나를 껴안으며 성적인 요구를 하는 것도 야릇하기는 마찬가지.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고 평이하지만 천방지축인 10대를 연기하는 제이미 리 커티스의 몸따로, 행동따로를 보면 웃음을 참기 힘들다. 능청맞게 ‘꼰대’를 연기하는 어린 배우 린제이 로한의 연기도 준수한 편. 4월2일 개봉.

ROK스튜디오 작품 쏟아진다

최근 발표된 출시 소식 중 가장 흥분되는 건 미국 워너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라인업이다. 이제껏 출시되지 않은 것 자체가 뉴스였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걸작을 보유했던 스튜디오지만 영화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DVD로 접하기 힘들었던 RKO의 작품들이 눈에 번쩍 띈다. 자크 투르네르의 <과거로부터>, 로버트 와이즈의 <셋업>, 에드워드 드미트릭의 <살인, 내 사랑>은 누아르 팬이라면 꼭 보아야 할 것들. 그리고 RKO 하면 잊을 수 없는 제작자 발 루튼이 만든 매혹적인 B급 호러들인 <캣 피플>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일곱 번째 희생자> <죽음의 섬> 등은 박스로 나온다. 물론 스튜디오 전성기 작품들을 빼놓을 순 없다. 킹 비더의 <대행진>, 에른스트 루비치의 <죽느냐 사느냐>, 빈센트 미넬리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조지 쿠커의 와 그레타 가르보 탄생 100주년 특별 박스 등이 관심의 대상이다. 존 휴스턴의 <아스팔트 정글>, 조셉 H.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 샘 페킨파의 <오후의 총잡이>와 <관계의 종말>, 존 스터지스의 <블랙 록에서의 운없는 날>, 로만 폴란스키의 <뱀파이어 킬러>, 켄 러셀의 금지된 영화 <악마>, 린제이 앤더슨의 <오, 럭키맨>과 막스 형제의 미출시작 박스 세트는 별난 장르 팬을 위한 선택이다. 또한 히치콕 영화 중 이제 몇편 남지 않았던 미출시작들- <스미스 부부> <의혹> <나는 고백한다> <다이얼 M을 돌려라> <누명 쓴 사나이> <무대 공포증>도 있다. 우린 이런 걸 즐거운 기다림이라고 부른다.이용철

한국영화의 ‘소년성’에 대한 단상 [3]

3. 소년기의 대단원, 혹은 어떤 밀월의 추억 나는 한국영화가 소년기 혹은 성장영화 시대를 경과해왔고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를 특징짓는 젊음은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양자의 육체적 연령의 문제를 포함한다.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된 199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1천만 관객시대가 개막된 현재까지의 시기를 한국의 젊은 감독과 젊은 관객의 밀월기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60년대 세대의 감독들은 관객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70, 80년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서적 통로를, 전통적인 영웅상이 아니라 양자가 공유한 소년성에서 찾았다.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품행제로>와 같은 자전적 색채가 강한 회고적 청춘드라마이건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좀더 양식화된 장르영화이건 또 아니면 <실미도>처럼 역사적 사건을 직접 다룬 드라마이건 한국의 젊은 감독들은 가장 넓은 의미의 성장영화를 만들어왔고, 객석의 대부분을 채운 젊은 관객은 그 영화들 속에서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자기 이미지를 발견하고 갈채를 보냈다. 가족관람 시대가 끝나고 청년 관객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1960년대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영화에 속하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도 고전기 서부극의 친공동체적 영웅서사를 청춘드라마가 가미된 반영웅의 로드무비로 변주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성장영화 시대가 이제 대단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첫째 이유는 1천만이라는 숫자 자체에 내포돼 있다. 관객이 1천만이 되기 위해선 1년에 영화를 한두편 본다는 40, 50대가 대거 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편의 영화가 연이어 이 숫자를 돌파했다는 건 관객 연령의 확대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안정적 추세가 돼가고 있다는 의미다. 대중영화는 결국 관객의 욕망과 함께 걷게 마련이며, 젊은 감독과 젊은 관객의 밀월의 농도는 관객 연령대가 확대되는 만큼 옅어질 수밖에 없다. 감독도 관객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들 속에 있다. 소년들의 시련을 초래한 건 <실미도>에선 무자비한 국가권력이었고, <태극기 휘날리며>에선 참혹한 전쟁이었다. 홀로 남겨진 소년의 비극을 빚어내는 데 전쟁보다 더 강력한 소재를 찾긴 힘들 것이다. 먼 길을 걸어온 소년은 이제 막 가장 가혹한 시련을 경과했다. 어디에선가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겠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그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돼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일었던 재난영화 붐은 토네이도, 화산폭발, 홍수 등의 온갖 재난을 거치고 난 뒤 1998년 <딥 임팩트> <아마겟돈>에서 지구 일부가 파괴되는 가공할 스펙터클에 이르자 조용히 사라졌다. 2004년 충무로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효자동 이발사>를 비롯해 다수의 가족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3년 충무로에서 만들어진 희귀한 어른의 영화 <바람난 가족>의 성공 사례는 이미 한국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른이 돼가고 있다는 징조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한국영화는 홀로 남겨진 소년들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있다.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4]

5. 뭐 어떡하나.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거지 뭐 이번 영화 끝나고 또 다음 영화 준비하고 내년에 5월 세금땜에 아껴쓰고 저축하고 한푼두푼 모아모아 부모님께 집한칸을 간만에 서울에 와서 친구들과 술한잔을 -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인간 양동근은 좋고 싫은 게 확실하다 정말. =(단호하게) 맞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당황스럽겠지만 지금 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이런 질문 처음 받아보겠지만. =나는 정치는 잘 모른다.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뭐 솔직히. 국민으로서는 부실한 자세인 거는 나도 알지만. 근데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그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 다 눈먼 사람들 같아서. 물론 그런 것들이 나와 관계가 있으면 음악으로든 얘기하겠지. 나랑 관계도 없는데 이야기하는 건 그런 건 거짓말이다. -인간 양동근은 장래 계획 같은 거 세우고 그러는 사람인가. =(단호하게) 아니. -어. 대체 뭔가. 그럼 2집 앨범의 <착하게 살어>에서 ‘이번 영화 끝나고 다음 영화 준비하고 세금 아껴 저축하고 부모님 집한칸을’이라고 했던 랩은 뭔가? 이런 것도 일종의 장래 계획 같은 거 아닌가. =계획이 아니라 그건 그냥 머리에 있는 생각 다 내놓은 거다. 그건 <마지막 늑대> 다음에 <바람의 파이터>가 있으니까 그냥 한 이야기이고. 그냥 했으면 좋겠다. 내가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들을 랩으로 한 거뿐이다.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다 해야지 그런 생각은 없다. 그냥 마음만 간절할 뿐이지. -<마지막 늑대> 홍보하고 그리고 <바람의 파이터> 촬영 끝난 이후 잡혀 있는 스케줄은. =음반. 새 음반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 작업 중인가. =음. 작업 들어가야지. 2집을 냈는데 활동을 하나도 못했다. 1집 그 다음 1.5집도 다 그랬고. 1집 때는 좀 활동을 하기는 했는데. 음반 내고 활동 못하니까 안 내느니 못한 거지. 솔직히 나는 뭐 상관없다. 일이 워낙 고되니까 쉬는 게 나는 좋지. 그런데 음반 낸 사람이…… 불쌍하잖아. (같이 폭소) 뭐 돈을 좀 쓰고 했으면 음반을 찍고 나서 건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활동을 안 하면 그런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음반 낸 사람이 계속 우는 소리 하니까. 내가 해야지. 뭐 어떡하나, 열심히 해주는 수밖에. (웃음과 한숨) -오호. 보기와는 다르다. 자기가 하는 일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굉장히 책임감 많이 느끼는 성격인 것 같다. =책임감? 음… 책임감이랑은 좀 다르고. 그냥 나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러는 거다. 뭐 어떻게 보면 책임감일 수도 있고. (웃음) -바쁘게 달려왔다. 앞으로 좀 푹 쉬고 싶은 생각 없나. =생각은 굴뚝인데 실제로 그게 안 되는 거지. 해외 여행? 가보자 하는 생각은 정말 많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해외에 나가 있다. 그렇지 뭐. 항상 몸은 여기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다른 데 있다니까.

희망과 냉소의 상반된 테마가 뒤엉킨 춤곡, <바람의 전설>

‘춤영화’ 하면 흔히 연상되는 스토리가 있다. 춤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 갖은 어려움을 뚫고 댄스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하거나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 <플래시 댄스> <더티 댄싱> <댄싱 히어로> 등 수많은 영화로 익숙한 이 패턴은 춤을 구애의 방식으로, 흥겨운 축제로, 직업으로, 스포츠로 이해했던 서구영화의 전통을 보여준다. <바람의 전설>은 그와 반대다. 철저하게 한국적 맥락에 서 있는 이 영화는 ‘춤’ 하면 ‘제비’를 떠올리는 오랜 습관에 기댄다. 우연히 춤의 세계에 뛰어들어 최고의 제비로 인정받았던 한 사내, 그의 성공과 쇠락이 영화의 뼈대를 이룬다. 여기서 제목에 등장하는 ‘바람’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불륜’을 뜻하는 ‘바람’이자 ‘춤바람’의 그 ‘바람’이다. 처음엔 순전히 춤바람에서 시작됐다. 주인공 박풍식(이성재)은 제비짓을 해서 먹고사는 친구 송만수(김수로)의 권유로 춤을 배운다. 첫 스텝을 밟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경험을 하는 풍식. 5년간 전국을 돌며 춤의 스승을 찾아다닌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춤솜씨로 서울 카바레에 입성한다. 풍식의 춤에 넋을 잃은 여인들이 돈다발을 갖다바치면서 풍식은 최고의 제비로 주가를 높이고 가난에 찌들었던 풍식의 집은 정원에 골프코스가 설치된 그림 같은 저택이 된다. 그러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 풍식은 카바레에서 만난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바람의 전설>의 원작은 성석제의 단편소설 <소설 쓰는 인간>이다. 앞서 요약한 줄거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에는 소설에 없던 인물 송연화(박솔미)가 등장한다. 형사인 연화는 서장 부인과 바람을 피운 풍식의 자백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풍식에게 접근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란을 느끼는 연화, 무료한 삶에 피로를 느끼던 그녀는 풍식에게 춤을 배우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는 걸 경험한다. 풍식이 처음 춤을 접했던 것 같은 전율이 연화가 풍식의 삶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원작에 없는 연화의 이야기는 <바람의 전설>을 이중 구조의 영화로 만들어낸다. 먼저 풍식이 연화에게 자기 삶의 궤적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내레이션은 풍식이 과연 예술가인가, 제비인가에 맞춰진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어리석은 한 인간을 보여준다. 타인의 순정을 무참히 짓밟은 대가로 자신의 순정이 짓이겨지는 이 남자는 일류가 되고 싶었지만 결코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바람이 그를 데려간 곳은 결국 비참한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를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풍식의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 연화를 데려가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은 연화와 풍식의 로맨스를 덧붙인다. 대부분의 댄스영화처럼 <바람의 전설>도 절망이 아니라 희망쪽으로 스텝을 옮기고 싶은 것이다. 이게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건 성석제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 쓰는 인간>은 삼류인생의 허영심과 기만을 꼬집는 이야기이고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냉정한 시선이 만들어낸 소설이다. 그러나 <바람의 전설>은 삶의 활기를 되찾아주는 춤에 관한 영화다. <쉘 위 댄스>처럼 춤이 있어 다시 세상과 맞설 용기를 내는 사람의 이야기다. 결국 영화는 상반된 테마가 뒤엉킨 춤곡이 된다. 어느 장단에 발을 옮겨야 할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긴 상영시간에도 풍식이 어떤 인물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풍식은 지탄받아 마땅한 인간으로도, 그저 상황에 떠밀려 못된 짓을 한 인간으로도 보인다. 혹시 바람 혹은 불륜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서라면 너무 멀리 에둘러 갔다. 이 영화는 춤바람이나 불륜을 직시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풍식과 연화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 것도 아니다. 둘의 교감은 어렴풋이 짐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바람의 전설>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정우의 감독 데뷔작이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를 한두편은 봤을 테지만 <바람의 전설>은 묘하게도 자신이 시나리오만 썼던 영화들과 상당히 다르다. <바람의 전설>에서 박정우의 코미디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아쉬운 대목은 등장인물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척이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 여인인 풍식의 아내나 풍식을 만나 삶의 출구를 발견한 중년 부인 경순은 단지 희화화될 뿐이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조연들을 다소 희생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그게 모두 중년 여인들이다. 불쾌한 편견에 기반한 설정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그래도 웬만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주인공 풍식이나 연화도 그리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그렇다. :: 박정우 감독 인터뷰 내 기준에서 풍식은 예술가다 원작소설 <소설 쓰는 인간>에는 연화의 이야기가 없다. 연화를 등장시킨 점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인데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1인칭 시점에서 회고하듯 풀어도 되지만 영화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자면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연화의 시각과 감정을 통해 풍식을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화 입장에선 풍식이 제비처럼 보일 때도 있고 감정적으로 동화될 때도 있다. 소설은 노골적으로 자신을 왕제비라고 말하지만 나는 풍식을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풍식을 예술가로 묘사하기 위해서도 연화가 필요했다. 연화의 이야기가 등장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냉소적인 시선의 소설과 달리 영화를 따뜻한 감정으로 끌고가고 싶어서 아니었나. 이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사람들이 춤을 좋게 봐줬으면 해서다. 춤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했으니까 연화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풍식을 예술가라고 믿는 입장인가. 그렇다. 난 남들이 예술이 뭐냐고 물으면 어떤 사람이 뭔가에 끌려서 죽기 살기로 매진한 결과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풍식은 그런 사람이다. 남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내 기준에서 풍식은 예술가다. 하지만 풍식의 정체는 다소 모호하다. 실제로 제비짓을 한다. 아주 순수하게 그릴 수도 있겠지만 춤이 갖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영화의 바탕에 깔아놓고 싶었다. 아무튼 풍식은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자기 행동에 나쁜 의도가 있던 건 아닌데 상황이 순수하게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걸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 아닌가. 춤추는 자의 애환이나 갈등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지만 그 전에 음지에 있는 걸 일단 끄집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풍식은 손가락질 당할 일을 하긴 한다. 그리고 그 죗값을 치른다. 여러 등장인물 가운데 풍식의 아내를 지나치게 악녀로 그리고 있다. 초고가 나왔을 때부터 의견이 분분했던 부분인데 풍식이 집에서 뛰쳐나오게끔 하자면 필요한 인물 설정이었다. 대부분 풍식 같은 인물이 자기 꿈을 펼칠 때 발목을 잡는 건 가족문제 아닌가. 현실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타협한 게 있다면 풍식의 아내를 청순가련, 현모양처로 그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 풍식의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될 것 같았다. 내 스타일이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등장인물이 보통 사람보다 사려깊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 편이다. 작가 시절 영화들과 연출한 작품이 상당히 다르다. 작가생활 할 때 했던 코미디를 계속한다면 감독이 되는 의미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내 기본적인 취향도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아니다. 신인감독으로서 내가 어떤 놈인지 내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촬영부터 편집까지 이 영화는 전적으로 내 맘대로 했다. 상영시간이 2시간 넘는 것도 그래서다. 강우석 감독이 3시간 가까운 편집본을 좋게 봤고 내게 많은 걸 맡겼다. <실미도>로 바빠서 내 영화에 신경을 못 쓰기도 했고.

인디문화의 힘, 홍대를 지켜라!

문화예술인들은 왜 백주에 옷을 벗고 거리로 나섰나 지난 3월22일 서울의 홍익대 앞에서는 ‘문화예술장례식’이 열렸다. 사)문화마을 들소리의 심장을 쿵쾅대는 북소리와 함께 8·15퍼포먼스록밴드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애국가’, ‘순수예술 장례식’을 마친 뒤, 검은 천으로 아슬아슬하게 성기를 가린 나체의 20여명 문화예술인들이 상여를 멨다. 오는 4월 폐관을 맞게 될 극장 씨어터 제로의 운명이 이 지역 문화에 위기를 몰고 올 것임을 염려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퍼포먼스였다. 압도된 좌중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거리 퍼포먼스를 시작하려는데 ‘경범죄 처벌법상 과다노출’의 죄목으로 경찰이 저지에 나섰다. 검은 천 대신 팬티를 입으라고 요구했고 다음에는 다시 바지를 입으란다. 전자음악의 긴박한 리듬과 쟁쟁한 악소리, 경찰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문화지구 지정이 문화를 죽인다? 씨어터 제로 앞에서 시작하여 홍익대 앞까지 상여를 메고 퍼포먼스를 벌였던 이들 행위의 표면적 이유는 임대료 인상과 재건축 예정 등으로 인해 폐관 위기에 놓인 실험예술극장 씨어터 제로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02년 4월 인사동을 문화지구로 지정한 데 이어 오는 5월에는 대학로를, 올해 말에는 신촌과 홍익대를 ‘문화지구’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동인구가 자연스레 많아지게 될 ‘문화지구’가 ‘투기지구’로 될 것임을 재빠르게 간파한 사람들에 의해 유흥과 환락의 가능성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전위예술가 박미루씨는 알록달록한 비즈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마도 ‘관’에서 개입하면 저 언니들에게 미관을 해친다고 나가라고 할지도 몰라요. 문화는 자생적 흐름이에요. 이 지역의 컨셉이 이거니까 이렇게 하라고 억지로 규정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화는 죽어요.” 이런 예측을 단순한 기우로 치부할 수 없는 여러 증거들을 우리는 이미 봐왔다. 2002년 11월 개관한 활력연구소는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시 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서울시 문화정책의 부재와 운영예산 지원번복 등등의 문제들로 인해 위태롭게 1년을 보내다 결국 지난해 12월22일 문을 닫게 되었다. 당시 영화인 등 문화계의 많은 이들이 활력연구소 내 분향소를 설치하여 추도 상영회, 활력연구소 공간의 죽음을 상징하는 장례 이벤트 등을 통해 내부 투쟁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12월22일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고 활력연구소는 이날을 서울시에 의해 살해당한 날이라 규정지었다. 우리나라 사립미술관 등록 제1호로 개관과 함께 유럽 미술을 적극 소개, 동시대 서구 미술과의 격차를 좁히는 일에 기여했던 서울미술관이 3여년 전 경매에 부쳐진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미술관 부지를 프랑스 문화원 이전부지로 구입할 뜻을 비치고 매각협상을 1년 반이나 끌다가 특별한 이유없이 결렬시켜 미술관에 재정적 부담을 안기게 되었던 때문이다. 문화는 자생적 흐름이다 문화지구로 지정된 대학로 또한 지난해 가을부터 건물 임대료와 공연장 대관료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가난한 입주 소극장들과 극단들이 문을 닫거나 공연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렇다고 문화지구가 문화인을 몰아낸다는 극단적 논리비약도 적절하지 않지만 현실이 이렇게 펼쳐지다 보니 문화예술인들은 “관의 행정놀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문화시설은 그 특유의 공익성 때문에 공공지원이 당연한 것이고, 지원이라 함은 재정지원과 함께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병행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모범사례로 고려될 만한 것이 정동 세실극장이다. 건물주인 성공회쪽은 지금의 씨어터 제로 건물주가 그렇듯이 수익이 없는 세실극장을 일반 사무실로 개조하려고 했다. 이때 제일화재가 임차료를 해결해주며 극단 로뎀과 제휴했다. 극단 로뎀+제일화재+성공회의 노력을 통해 1976년 개관했던 이 극장이 ‘제일화재 세실극장’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영화 <구름>은 지금 이곳의 현실과 매우 유사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아르헨티나 시내 곳곳은 재개발이 시작되고 극장은 철거의 대상이 된다. 배우들의 저항과 막막한 기다림, 마지막 장면에서는 극장으로 구름과 함께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는 한 극장이 철거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주인공의 바람이 판타지로 재현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한국에서도 예술가와 비영리 문화공간의 힘겨움은 그 무게가 전혀 덜어지지 않고 있다. 글 신선경,이나영/객원기자·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스크린’ 바람 났어요, <바람의 전설> 박솔미

<겨울연가>의 오채린, <올인>의 서진희. 두 인물 모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자신감이 넘친다. 4살 때부터 고2 때까지 피아노를 배우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머지 생을 다 보내야 하는 것이 싫어서” 과감하게 피아노를 그만둔 뒤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한 박솔미는 이 두편의 인기드라마에서 차갑고 도도한 인물을 연기해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박솔미의 스크린 데뷔작 <바람의 전설>의 송연화는 어떤가. “신경질적인 여자예요. 웃지도 않고,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거죠. 그러다 엔딩에는 한번 활짝 웃게 돼요.” 세상사 제맘대로 되지 않아 분통을 터트리는 터프한 여자 형사라니. 의외다. 박솔미는 의사표시가 선명하다. 사진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거리낌없이 혼잣말로 “재미있어, 재미없어”를 번갈아 되뇐다. 첫 영화 <바람의 전설>에서 송연화 역할을 ‘따낸’ 사연도 그녀의 솔직하고 직선적인 기질을 단박에 보여준다. 연화 역은 애초 내정된 배우가 있었다. 매니저는 박솔미에게 그 배우가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아직 찍지 않았을 뿐이라며 단념을 권했다. 그렇다고 앉아서 당하기만 할 것인가. 박솔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 여행을 중도에 작파했다. 함께 간 친구들은 안중에 없었다. 곧장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박정우 감독을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제작사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뒤. 박 감독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저없이 ‘그녀’를 선택했다. ‘열의’만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진 않았다. 박솔미는 첫 대본 연습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국어책 읽듯 ” 대사를 쳐서 박 감독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잡아야 할 풍식을 이해하지 못해 허둥대는 영화 속 연화처럼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박솔미는 한동안 낯선 분위기와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박 감독에게조차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외에 다른 말은 붙여보지도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어느 장면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근데 연기나 감이 좋다면서 한번 더 찍자고 하신 적 있거든요. 그게 칭찬인지는 나중에 알았어요. 성재 오빠가 그런 감이 세번 정도 오면 배우 소리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현장 적응력은 늘어갔지만 엔딩장면 촬영을 견디기란 고역이었다. 눈발이 오락가락하는 악천후에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서 아주 얇은 의상과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춤을 춰야 하다니. 게다가 1∼2분만 춤춰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라틴댄스를 100여번 반복하는 동안 인내는 바닥이 났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6개월 내내 춤연습을 했던 이 배우의 머릿속은 “이렇게까지 꼭 해야 하나” 싶은 불만으로 가득했다. “근데 성재 오빠가 이런 등대 아래에서 춤을 춰볼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거예요. 그때 그 말 듣고서야 영화가 도대체 뭔가 싶더라구요. 그때서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된 거죠.” 3개월 동안의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박솔미는 박 감독에게서 1만원짜리 지폐 한장을 건네받았다. “카메오는 안 시켜. 다음 작품 계약금 미리 주는 거야.” “힘든 만큼 얻는 것도 크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몸으로 깨달았다는 그녀.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연기만 바라보고 덤벼들 작정이다.

일본 거장들 영화, 줄줄이 개봉

국내 영화가에 일본 거장 감독들의 작품이 잇따라 선보인다. 이달 말까지 극장가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사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와 <강령>,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랴퓨타> 등 다섯 편의 작품이 내걸린다. 23일 개봉하는 <고하토>는 <감각의 제국>, <열정의 제국> 등을 만들며 일본의장뤽 고다르로 칭송받은 거장 감독 오시마 나기사(81)가 만든 1999년 작품. <막스내사랑> 이후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감독은 제작발표회 이후 뇌일혈로 쓰러져 결국 휠체어에 앉아 어렵게 영화를 완성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 차원에서나 금기에 도전해오던 이 노장 감독이 이번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무라이 집단 내의 동성애. 다른 무사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미소년 무사 가노 소자부로(마쓰다 류헤이)를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같은 날부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되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로 두 차례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다. 주인공은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고 가정에서도 외면당한 40대의 가장 요스케.그는 친구의 유언을 따라 어느 바닷가 마을의 붉은 다리 옆집에 숨겨둔 보물을 찾아가지만 그 집에서 성욕이 생기면 몸에 물이 차오르는 이상한 증세를 가진 미모의 여성 사에코를 만난다. 2001년 작품으로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와 <의랏차차 스모부>와 <우나기>에 출연했던 시미즈 미사가 호흡을 맞춘다. 서울 종로의 코아아트홀에서는 23일부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와 <강령>을 교차로 상영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세계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일본 감독 중 한 명. <인간합격>, <위대한 환영>, <카리스마>, <회로>, <밝은 미래> 등이 세계 3대 영화제에 초청된바 있으며 지난 달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성황리에 열린 바 있다. <밝은 미래>의 주인공은 특별한 꿈 없이 평소 잠자기를 좋아하는 스물 네 살 청년 니무라 유지(오다기리 죠). 감독은 세대간의 갈등과 일본 젊은 세대의 희망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강령>은 방송국 음향담당인 가쓰히코와 영험한 능력을 지닌 부인 준코의 이야기를 다룬 호러영화. 야쿠쇼 고지와 구사나기 쓰요시 등이 출연한다. <미래소년 코난>, <모노노케히메> 등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는 30일부터 상영된다. 하늘을 떠다니는 라퓨타 제국과 전설의 비행석을 둘러싼 모험을 그린 작품으로 <걸리버 여행기> 중 3부에 등장하는 `공중에 떠 있는 성 라퓨타`를 모티브로 86년 제작됐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중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센과 치히로…>, <붉은 돼지> 이후 여섯 번째 극장에서 개봉하는 작품이다. 이밖에 서울아트시네마는16-25일 '영화의 스승'으로 불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거장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15편을 상영하는 회고전을 마련했다. (서울=연합뉴스)

[주말극장가] 칸이 인정한 <판타스틱 플래닛>

4월 둘째주말, 9일 개봉작 가운데는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려웠던 걸작 애니메이션 한편이 포함돼 있다. 르네 랄루 감독의 프랑스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은 73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면서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금까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애니메이션이 진출한 건 이 작품과 2001년 <슈렉> 둘 뿐으로, <슈렉>도 상을 받지는 못했다. 인간과 조금 다르게 생겼으나 매우 진화된 문명을 누리고 사는 거대한 종족이 사는 별에, 이 종족의 엄지손가락만한 인간들이 기생해 산다. 거대한 종족은 인간들을 애완동물로 사육하기도 하고, 야생으로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바퀴벌레처럼 죽여버리기도 한다. 미개해 보이던 인간들이 거대한 종족의 지식을 훔쳐 학습하고서 반란을 꾀한다. 쉬운 이야기, 평화공존이라는 메시지는 어린이들과 함께 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엉뚱하면서도 신선한 유머와 지적인 통찰을 곁들인다. 쉽게 설명하기 힘든, 묘한 재미를 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마침 르네 랄루 감독이 지난 3월14일 7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이 영화의 개봉이 남달라 보인다.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는 건 아무래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흥행작의 시나리오를 잇따라 써온 박정우 작가의 감독 데뷔작 <바람의 전설>이다. 세상의 언어는 가끔씩 구별하기 힘든 것들을 극단으로 갈라 놓는다. 사교댄스를 추는 ‘무도인’과 ‘제비’가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 영화는 한 ‘무도인’의 회고담이다. ‘나는 예술가로 살았는데 세상은 나를 제비라 하네’ 하는 식의…. 발상에 비하면 디테일이 약한 편이지만 춤 장면에 흥이 살아 영화를 받치고 간다. 따듯한 가족영화 <저지 걸>, 전편을 잇는 폭력미학을 추구하는 <배틀 로얄 2: 레퀴엠>, 청춘 로맨스물 <연애사진>도 함께 개봉한다. 주말 개봉작 <연애사진> 리뷰. 달콤한 과거와 미궁속 현재 '충돌' 연애의 완성, 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모든 연애는 2편으로 완성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고, 같은 공간의 공기를 마시며 다투기도 하는 현재형으로서의 연애와, 만남이 종지부를 찍은 다음에도 기억으로 오랫동안 주변을 맴도는 과거형으로서의 연애. 한때는 지갑 속에, 책상 위에 놓여있었지만 이제는 서랍 속으로 자리를 바꾼 두 사람의 사진은 과거형을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환기시키는, 아프지만 버릴 수도 없는 상처의 딱쟁이같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마코토(마츠다 류헤이)에게 시즈루(히로스에 료코)도 이제는 사진으로만 곁에 있는 과거의 연인이다. 어느날 그는 뉴욕발 소인이 찍혀 있는 편지를 한 통 받는다. 3년 전 뉴욕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던 시즈루가 자신의 전시회에 초대하는 편지였다. 이 편지는 묻어두었던 기억의 먼지를 다시 털어 현재로 끌어내온다. 영화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시즈루와 마코토가 처음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시간을 아름다운 스틸사진의 파노라마처럼 이어서 보여준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쓰쓰미 유키히코는 색색 사인펜과 예쁜 그림, 스티커로 가득한 여고생의 다이어리처럼 깜찍하게 이들의 지나간 시간을 그린다. 그러나 친구들로부터 문득 시즈루가 죽었다던데 하는 모호한 말을 들은 마코토가 달랑 사진 한장을 들고 뉴욕으로 떠나면서 영화는 미스테리 구조로 빠져들어간다. 시즈루가 보냈던 뉴욕의 풍경을 실마리 삼아 거리를 헤매고 다니던 마코토에게 시즈루는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사람들만 시즈루의 흔적을 조금씩 쥐어준다. 이렇게 시즈루의 그림자만을 더듬는 동안 마코토는 현재형의 연애 동안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시즈루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그 과정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 된다. <연애사진>에서는 지나치게 달콤하게 묘사되는 과거와 뉴욕의 갱까지 등장하는 미궁의 현재가 충돌한다. 뭔가 뒤틀리고 어색해 보이는 점도 있지만 현재와 대화하고 현재를 움직여가는 기억으로서의 연애에 대한 해석이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