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해외평단의 임권택 읽기]미셸 프로동의 특별기고

그 거장은 이렇게 발견되고 인정받았다 장- 미셸 프로동/ <르몽드> 기자 한국영화의 발견, 특히 그 양적인 중요성에서뿐만 아니라 작품성, 또 다뤄지는 주제의 폭넓음에서 동시에 한국영화의 최중심 인물인 임권택 감독의 발견은 프랑스나 유럽의 시네필들에게는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몇몇 영화제들의 개척자적인 활동들에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1982년 페사로영화제가 한국영화를 전반적으로 소개했고 낭트의 3대륙 영화제는 1986년 첫 시도를 한 뒤 1989년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을 처음으로 조직했다. 다음 단계는 1993년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주최한 대대적인 한국영화 회고전이었다. 이 회고전은 <만다라>의 임권택 감독이 한국영화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한국에서 개봉된 <서편제>가 이 퐁피두 센터에서 소개된 다음 프랑스에 처음으로 상업적인 배급망을 통해 개봉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 회고전을 준비한 프랑스쪽 인사들과 이들과 협력한 한국의 영화계 인사들의 공동 노력은 많은 프랑스 비평가들이 서울을 방문할 기회를 제공했다. 나 역시 이 그룹에 포함되는 행복을 누렸다. 이렇게 나는 서울의 영상자료원에서 10여편에 달하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보고 이 감독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발견은 감독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여행 뒤 <르몽드>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한 감독이 작가로서 인정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른 주요 언론매체들, <카이에 뒤 시네마> <리베라시옹> <텔레라마> 등에서 여러 기사들이 발표됐다. 이는 (프랑스에서) <판소리 여가수>란 타이틀로 개봉된 <서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임권택 감독의 작품세계를 인정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 이뤄졌다. 나 개인적으로는 현대영화의 주요한 예술가로 생각하는 임권택 감독 작업의 진보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내가 일하는 일간지(<르몽드>)에서 그의 새 영화들을 좀더 폭넓은 방식으로 소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이 감독의 특출난 창조적인 에너지와 그의 연출에서의 예술적인 가치를 강조할 수 있었다. 또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여러 측면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유례없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즉, 한국의 과거사나 현대의 사회적 현실, 아니면 한국인이 갖는 영적인 세계와의 관계, 또 일상적인 생활습성들과 문화 등이 그의 영화세계에 포함돼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임권택과 같은 위대한 감독에 대한 인정이 이뤄지는 데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를 선두로 한국에 존재하는 영화제들은 유럽 시네필들과 한국의 예술가들(그리고 아시아의 예술가들)간에 좀더 정기적인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게 했다. 또 임권택 감독의 작품들처럼 주요 작품들이 인정을 받게 되는 데는 피에르 리시앙과 같은 ‘영화의 안내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 문화를 프랑스에서 수호하는 역할을 맡아 언론매체들과의 협력관계에서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펴고 있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손우현 원장의 역할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2000년 칸영화제에 초대된 <춘향뎐>이 비평계의 호응을 얻어낸 점과, 또 세계 최고의 영화제를 자임하는 칸영화제가 임권택 감독이 100번째 작품을 만들기 얼마 전에 마침내 이 감독을 초대하기로 결정한 것은 임권택 감독으로 하여금 상당한 반향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춘향뎐>이 DVD로 출시된 것은 이 감독이 인정받은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인정의 범위를 넓히는 수단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히 지적해야 할 것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주최한 임권택 감독 회고전의 결정적인 역할이다. 프로그래머인 장 프랑수아 로제의 결정적인 활동에 힘입어 준비된 이 회고전은 세계에서 가장 명망높은 영화기구 중 하나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위대한 작가로서 임권택 감독의 위치를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올해 칸영화제에 <취화선>이 초대된 점, 또 대단한 비평계의 호응을 얻은 점, 파테라는 가장 큰 영화제작 배급사를 통해 프랑스에 배급이 결정된 점, 마지막으로 상을 받은 점 등은 유쾌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진행된, 임권택 감독이 프랑스에서 발견되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단계가 열렸음을 알려준다. 그의 엄청난 재능에 상응하는 위치를 프랑스에서 얻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린 프랑스 비평가들은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에게 감사의 말을 던진 순간 진한 감동에 빠졌다. 장-미셸 프로동은 <르포앵>(Le Point)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르몽드> 영화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영화와 아시아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분야의 원고를 도맡아 쓰고 있으며, 등의 저서가 있다. ▶ 임권택을 바라보는 다섯개의 시선 ▶ 미셸 프로동의 특별기고 ▶ <르몽드> 장 프랑수아 로제 ▶ <리베라시옹> 필립 아주리 ▶ 샤를 테송의 <춘향뎐>론 ▶ 데이빗 제임스의 ‘임권택: 한국 영화와 불교’ ▶ 사토 다다오의 ‘한국 영화와 임권택’ ▶ 임권택 감독 인터뷰

신인감독 8인 (8) - <크랙>의 김태균 감독

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 군대에서 병장이 꿰어차는 ‘TV채널 선택권’ 덕분에 어느 날 병장 김태균은 텔레비전에서 단편영화 한편을 보게 된다. 무릇 군인이라면 채널을 고정시키곤 하는 쇼·오락프로가 아닌 EBS의 단편영화극장이 그날 병장 김태균이 선택한 프로그램. 거기서는 마침 스스로를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남자에 관한 장준환 감독의 단편 이 나오고 있었고, 그 영화를 보면서 김태균은 내무반 TV 앞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발견했다. 입대 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그당시 문화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를 위한 한 소통방식으로서 영화가 적합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 “저런 단편은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보태져서 제대 뒤 김태균은 <씨네21>에 난 광고를 보고 한겨레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를 들어갔다. 복학생이 별거 다한다는 얘기까지 들으며 학교에 영화제작동아리도 만들었고, <이방인의 꿈> <줄서기> 등 단편을 만들었다. 상업영화판에 발을 디딘 건 곽경택 감독과 만나면서. 동아리에서 단편상영회를 준비하던 중 <영창이야기>를 섭외하다가 곽경택 감독을 만났고, <억수탕>의 조감독으로 충무로 상업영화 일을 시작했다. 이후 <닥터K> <세이 예스> 등의 조감독을 하며 김태균은 장편 상업영화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서서히 물색해왔다. 그는 왜 <크랙>을 연출하는가 <억수탕> 때 제이콤의 프로듀서였던 현 씨앤필름 이창준 PD가 <크랙>의 감독으로 그를 강력추천했다. 이창준 프로듀서와 김태균 감독은 <억수탕> 때부터 알고 지내며 서로의 영화적 감수성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이. <크랙> 프로젝트에 대해 이 프로듀서는 “곽경택 감독과 함께 일했고 <세이 예스>도 했던 김태균이 이 작품에는 딱이다”라고 했고, 김태균 감독이 이에 “내 역량을 넓혀나가기 좋은 작품”이라고 맞장구를 쳐 손을 잡았다. 신인감독으로서 잘 갖춰진 시스템의 관리와 보호를 받는 기회도 놓치기 싫었다. 애초에 영화를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충무로에서 일하면서 언제부턴가 “좀더 많은 대중 앞에서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담보하는 장편영화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결심을 했던 터. 일견 통속적으로 보이는 <크랙>의 내러티브에 대해 그는 ‘사람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가 손수 이름붙인 <크랙>의 장르는 ‘로맨틱 스릴러’. “사람의 감정 중 가장 강렬한 게 사랑인 것 같다. 그것을 인물의 감정이 극대화되는 스릴러 장르에 끌어오고자 한다. 굳건해 보이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들이 사실은 너무나 깨지기 쉬운 것임을 보이며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인간감정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코언 형제의 <파고>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얼마 전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극장에서 보고 김태균 감독은 “아,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내심 탄성을 내질렀다고 한다.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씩 인물들간의 관계가 무너져가는 이야기. 멜로문법으로 시작해 스릴러로 끝나는 이야기. 충분히 장르적인 기법을 이용하면서 관객과 두뇌싸움을 하는 영화. 김태균 감독이 <크랙>에서 해 보이고 싶은 바로 그런 모든 것이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세련되게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사기를 꺾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의 ‘내 인생의 영화’ 이야기는 곧 “<크랙>이 바로 그런 영화가 될 것이다. 기대해달라”는 밝은 자기다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수임 sooeem@hani.co.kr ·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Synopsis 평화로운 전원주택단지. 소설가 겸 변호사로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 성재와 그의 아내 윤미 부부네 옆집에 어느 날 미모의 낯선 여자 지영이 이사를 온다. 아내 윤미와 달리 싱그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두움이 배어 있는 지영의 매력에 성재는 서서히 빠져든다. 성재와 지영이 자연스럽게 친해진 사이, 돌연히 지영의 남편이 나타난다. 성형외과의인 지영의 남편 유식은 알고보니 성재의 고등학교 동창. 성재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다가오는 유식으로 인한 압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영을 쫓는 그의 시선은 멈출 줄 모른다. 성재와 윤미, 지영과 유식, 두 부부의 관계는 점점 그 틈새가 커져가고 어느 날, 성재의 집 욕실에서 시체 한구가 발견된다.▶ 신인감독 8인 (1) - <이중간첩>의 김현정 감독 ▶ 신인감독 8인 (2) - <중독>의 박영훈 감독 ▶ 신인감독 8인 (3)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모지은 감독 ▶ 신인감독 8인 (4) -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 신인감독 8인 (5) - <빙우>의 김은숙 감독 ▶ 신인감독 8인 (6) - <동정없는 세상>의 김종현 감독 ▶ 신인감독 8인 (7) - <첫눈>의 이혜영 감독 ▶ 신인감독 8인 (8) - <크랙>의 김태균 감독

<후아유> 사이버 공간에 펼쳐진 남성 중심의 낡은 연애담

● 폴 발레리였나? 맞다. 폴 발레리였다. 하여간 이 남자가 언젠가 흥미로운 낙서를 한 적 있다고 한다. 정확한 인용은 어렵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꿈속에서 하나의 직선을 봤는데, 직선 위에는 A와 B라는 점이 있었다. 발레리는 그들에게 오르탕스와 앙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다음과 같은 간단한 법칙을 만들었다. 앙리는 오르탕스가 가까이 있을수록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오르탕스는 앙리가 멀리 있을수록 그를 더욱 사랑한다는 것이다. 가끔 나는 이 간단한 법칙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약간의 변수를 뿌린 뒤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고 싶어진다. 잘하면 작가 따위의 귀찮은 매개체 없이도 괜찮은 러브스토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발레리가 오르탕스와 앙리에게 붙여준 간단한 성격이다. 그가 자신의 로맨스에 대한 남녀의 일반적 반응이라고 믿었던 것을 여기에 대입했다고 믿어도 될까? 다시 말해 남자는 상대방의 육체적 현존이 강할수록 더 강한 애정을 느끼고 여자는 상대방이 로맨스의 대상으로 추상화되었을 때 더 강한 애정을 느낀다는 법칙 말이다. <후아유>에서도 이런 법칙은 그대로 통용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인주/별이와 형태/멜로는 오르탕스/앙리 커플과 거의 똑같은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인주는 눈앞에 있는 형태보다 얼굴도 볼 수 없는 멀리 있는 존재인 멜로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형태에게 진짜로 관심이 있는 존재는 인터넷상의 별이가 아니라 그의 눈앞에 존재하는 인주다. 물론 우린 이들의 다른 반응이 가지고 있는 정보차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전 조건을 다르게 입력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약에 인주가 처음부터 이런 사각관계의 정체를 꿰뚫고 있는 쪽이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가 관심을 가지는 쪽은 멜로였을 거다. 왜? 그게 로맨스의 재미있는 점이다. 우린 로맨스와 로맨스의 대상을 이상화시키고 순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섹스나 결혼과 같은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대상보다 로맨스 자체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에겐 이런 경향이 강하다. 이게 정말 성적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인주 & 형태와 반대되는 경우도 꽤 많이 봤으니까. 멀수록 더 자극적인 로맨스도 있다 로맨스에 더 치중하는 사람들에겐 원거리 로맨스가 더 자극적이다. 원거리의 로맨스는 당사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며, 우리가 가진 불쾌한 단점들을 사전에 봉쇄한다. 애정 표현의 전달 과정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이들의 로맨스는 더 ‘순수해지며’ 그 결과 더 강도도 높아진다. 19세기까지 가장 화끈한 러브스토리의 반 이상이 서간체였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시대에서는 인터넷의 가상세계가 굼벵이 편지를 대신해 이런 순수화의 필터가 되어준다. 인터넷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의 육체처럼 불쾌한 것들을 사전에 제거해주면서도 은근히 기능이 많다. 아니, 요새 같은 브로드밴드 시대엔 순수주의자들을 불안하게 할 정도로 기능이 많다. 몸을 직접 부딪히지 않을 뿐이지, 데이트에서부터 섹스까지 할 수 없는 게 없으니까. 물론 익명성도 이제는 선택이다. <후아유>의 세상은 선배영화 <접속>의 세계와 다르다. <후아유>의 연인들은 이제 육체를 가지고 있다. 디지털 정보들로 구성된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에 불과하지만 분명 육체는 육체다. 다행히도 이 육체는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고 잘 때 코를 골지도 않고 쓸데없이 몸을 부대끼며 옆사람을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후아유> 게임의 아바타는 컴퓨터의 전원만 끄면 사라진다. 인주/별이에게는 딱 좋을 정도의 존재감이다. <후아유>에서 인주의 이야기는 비교적 전통적이다. 약간의 갈등을 겪는 동안 인주는 가상 캐릭터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실제 인물에게서 사랑을 찾는다. 비교적 건강한 결론이다. 물론 건강하다는 것은 인주라는 사람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좋은 선택이라는 이야기지, 특별히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왜 건강함이 늘 유일하게 올바른 선택이어야 할까? 물론 건강한 선택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인주의 삶은 이전보다 평탄해질 것이며 그 사람의 삶도 비교적 현실적인 단계로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형태/멜로의 이야기는 그것과 다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형태는 별이에게만 만족할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형태가 인주라는 자연인에 대한 정보를 훨씬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형태는 자기가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화장품 모델 같은 미모에, 구식 순정만화에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격과 과거를 지닌 전직 수영선수라는 걸 안다. 이걸 알면서도 이 친구가 과연 도시 저편에서 조종받는 이미지 조각에 만족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지. 잠깐, 여기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형태가 자연인 인주에게 별 문제가 없는 건 특별히 형태가 현실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닌 것 같다. 암만 봐도 인주에게는 이상적인 로맨스에 특별히 대단한 방해가 될 만한 불편한 요소가 적다. 성격에서부터 외모에 이르기까지, 인주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로맨스에 맞게 얌전하게 재단되어 있다. 처음부터 인주는 로맨스를 위한 버추얼 캐릭터다. 특별히 필터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인터넷의 필터는 인주라는 인물과 로맨스를 트는 데 방해가 된다. 시치미를 뚝 떼고 무장 해제된 상대방한테서 여벌 정보를 끌어내며 수작을 거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걸 빼면 말이지만. 결국 이런 식의 기성품 로맨스는 버추얼 게임일 수밖에 없다. <후아유>의 러브스토리가 소재가 가지고 있던 가능성에 비해 약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 영화가 모범적인 장르물이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모범적인 장르물인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지만 현실과 가상세계의 갭을 다루는 영화에서 현실의 힘이 약하다면 그건 꽤 큰 문제다. <접속> <유브갓 메일> <후아유>의 밥맛 없는 남자들 지금까지 내가 본 세편의 온라인 러브스토리인 <접속> <유브갓 메일> <후아유>에서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게 초반이건 중반이건 결말이건, 늘 한쪽이 다른 쪽의 정체를 먼저 알아내고 그것을 관계맺기의 무기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또 무슨 우연인지, 세 영화 모두 그런 무기를 쟁취한 사람들이 모두 남자다. 이 세 남자들 모두가 나에겐 상당히 밥맛으로 보였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내가 케이틀린 켈리였고 막판에 내 인터넷 데이트 상대가 조 폭스였다는 걸 알았다면 ‘당신이기를 바랐어요’ 따위의 간드러진 고백 따위를 하는 대신 그 남자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한방 날리고 나왔을 것이다. <접속>의 동현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 멀리서 수현을 바라보는 그 친구의 모습은 거의 간접 추행처럼 느껴진다. 형태는 어떻게 보면 그중 가장 악질이다. 조 폭스와 동현의 연애담은 적어도 시작할 때는 공평한 게임이었다. 그들이 상대방의 정체를 먼저 알아낸 것도 그렇게 음모의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형태는 게임 시작부터 자신의 사각관계를 꿰뚫고 있었다. 나중에 이 친구가 공식을 따라 ‘진지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도 이 관계의 악독함을 특별히 가려주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그게 죄책감이라는 드라마의 도구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후아유>는 그렇게까지 캐릭터의 내면이 깊이있게 묘사된 영화도 아니다. 형태가 인주에 비해 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들의 연애장소인 <후아유> 게임의 개발자였기 때문이다. 형태가 몇달째 땡전 한푼 못 만지는 친구라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들의 세계에서 유산계급이다. 그는 그들이 만나는 세계를 통치하고 그 세계의 신민들인 베타 테스터들의 모든 온라인 자산을 관리한다. 어떻게 보면 인주와 형태의 관계는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관계보다 더 불공평하다. 결국 <후아유>의 이야기는 외양이 어찌됐건 변장한 귀족 청년이 가난한 시골 처녀를 농락하는 이야기와 특별히 다르지도 않다. 물론 내가 인주였다면 형태의 정체를 알자마자 주먹부터 날리고 봤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형태에게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형태의 정체가 밝혀지자 분노한 인주는 외친다. “이게 너에게는 게임이니?” 흠… 인주는 논점 근처에는 갔는데, 논점의 정곡을 찌르고 있지는 않다. 게임이라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애당초부터 이들의 연애 무대인 <후아유>는 게임이고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게임 파트너였다. 순수한 연애라는 것도 사실은 게임이다. 전통적인 연애담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인 두 연인들이고, 진지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쪽은 여자주인공이 억지로 결혼해야 하는 나이든 뚱보 아저씨다. 두 연인들이 자기네 감정이 주는 쾌락을 좇는 동안 그 뚱보 아저씨는 후손을 낳아줄 실팍한 엉덩이의 젊은 여자와 결혼에 따른 감세 효과를 진지하게 계산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여러분이 두 진실한 연인들을 경박하다고 밀어붙이지도 않을 테니, 게임이 게임이라는 이유로 박해당할 이유는 없다. 진짜 문제는 이 러브스토리가 불공정 게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공정함이 지젤과 알브레히트 때와 특별히 다르지도 않은 성적 권력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더욱 불편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대비할 방법이 있다. 사랑과 전쟁은 모든 것들이 용납되는 게임판이다. 결국 여기서 처참하게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끌어올 수 있는 소스는 모두 가져와 활용해야 한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진지한 연애를 할 생각이라면 그 세계에서 단순히 소극적인 사용자로 안존하며 만족하지 말기를. 방심하다간 언젠가 디지털 알브레히트에 넘어가 디지털 윌리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여러분이 예쁘게 디자인된 텔레비전 광고에 혹해서 순식간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용서해버리는 단순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이런 경고도 필요없겠지만. 듀나 djuna01@hanmail.net

토마스 엘새서의 <디지털 시대의 영화>

저명한 영화학자 토마스 엘새서가 편집한 <디지털 시대의 영화>의 원제는 <영화의 미래>(Cinema Futures)이고, 그뒤에는 ‘카인, 아벨 또는 케이블?’(Cain, Abel or Cable?)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엘새서에 따르면 성경에 나오는 반목하는 형제 카인과 아벨은 각각 텔레비전과 영화를, 그리고 케이블은 이 두 미디어가 뉴미디어로서 맞이하게 될 변형 혹은 재형성화를 가리킨다. 이쯤만 말해도 이 책이 과연 무엇을 그 주요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인가를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부제 뒤에 붙은 물음표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카인’과 ‘아벨’, 그리고 ‘케이블’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단정적인 논의를 펼치는 책이라기보다는 그 관계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는 비유 자체에 대해 조심스럽게 사려 깊은 의혹을 던지는 책이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세를 얻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미디어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려 했다. <디지털 시대의 영화>의 편집자인 엘새서는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예단된 미래로 곧장 나아가려는 성급함을 반대한다. 편집자의 그런 진중함이 아마도 이 책의 첫째 미덕일 듯싶다. “그래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해 논의하면서, 나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평가하기 위한 척도를 얻기 위해서 무엇보다 역사적인 전망이 필요한다고 생각한다”는 문구를 서론에서 인용했듯이, 엘새서는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역사를 경유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그는 ‘디지털 시대의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이 책에서 이른바 영화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지점으로, 즉 루이 뤼미에르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뤼미에르를 우리가 흔히 가정하게 되는 어떤 유의 영화의 역사가 아니라 그가 실재했던 역사 속에 존재하게 하려고 고투한다. 엘새서는 뤼미에르를 영화적 리얼리즘의 대부가 아니라 오히려 가상성(virtuality)의 선조와 산파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른바 미디어의 고고학을 흥미롭게 펼쳐놓는 ‘루이 뤼미에르: 영화 최초의 버추얼리스트?’라는 앨세서의 글은 그 과거에 대한 탐구가 어떻게 현재에 대한 사고와 만나는가를 잘 보여준다. 아울러 디지털이 현재의 영화와 텔레비전에 대해 ‘사유’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요점을 단 그의 또 다른 글 역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엘새서 같은 영화학자들 외에 저널리스트, 작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활동분야에 속해 있고 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필자로 참여한 책이니만큼 <디지털 시대의 영화>는 사실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결론이 명백한 어느 하나의 길로 인도해주진 않는다. 그래도 그 다양한 스펙트럼에 속한 글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들 모두가 급격한 변화를 겪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월드컵 열풍 속 흥행호조, <해적, 디스코왕 되다> 김동원 감독

월드컵 열풍으로 파리 날리던 극장가에 <해적, 디스코왕 되다>가 뜻밖의 바람을 몰고왔다. 개봉 첫 주말인 지난 6월8∼9일 이틀 동안 전국 51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스타 파워가 센 것도 아니고, 감독도 신인이고, 80년대로 보이는 복고적 시대배경에 멜로와 코미디와 춤이 두서없이 어울려 딱히 장르를 구분하기도 애매한 이 영화의 흥행은 뜻밖이다. 김동원(28) 감독의 말마따나 “순진하고 솔직한” 영화의 모습이 그 비결인 듯하다. 복고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긴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김 감독은 요즘 젊은이들 같았다. 얘기 도중 “이거 말 되나요?” 하며 곧잘 웃는 표정에서 재기가 읽혔고, 가끔씩 20대 답지 않게 속깊은 말을 하기도 했다.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포스코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랐다. 학창 시절 서울에서 화제가 되는 영화나 연극이 포항제철소 직원들을 위해 바로바로 포항에 내려왔고, 그때마다 포철 직원들 틈에 끼어서 구경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텔레비전에서 봤던 한 한국영화가 그의 진로를 결정했다. “영화는 재밌든 재미없든 나름의 법칙으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영화를 보니 나도 저것보다는 잘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감독이 되자고 마음먹고는 고교 졸업 뒤, 해병대를 갔다와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이곳저곳 워크숍에 참여하다가 서울예대에 들어가서 졸업작품으로 98년에 만든 단편이 였다. 그걸 장편으로 확대한 <해적…>으로 김 감독은 데뷔하자마자 흥행감독이 됐다. 한번 한 얘길 다시 하면서 데뷔한다는 게 드문 일인데. 장편 준비하면서 포기해버려? 그런데 버릴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식 못 버리듯. 이건 내가 해야 해. 세편은 해봐야 감독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적…> 하면서 많이 배웠다. 25억원짜리 과외였다. 한번 더 해보면 좀더 배우고, 세 번째는 홈런 날려야지. 후회없는 영화. 물론 <해적…>도 후회는 없지만 연출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 80년대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있나. 그런 건 아니다. 장편 만들면서 현재의 이야기로 해보려는 생각도 했다. 원조교제도 나오고, 춤은 힙합 추고…. 그런데 자신이 없더라. 나는 자신없으면 못한다. 디스코가 좋고 옛날 이야기가 더 편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왜 힙합이 재미없지? 코미디도 구봉서, 이기동 그런 분들의 만담 같은 개그가 좋다. 구조나 형식이 요즘 코미디와 비교가 안 된다. 예술이다. 영화도 고전이 좋고, 요즘 건 재미없다. 그때면 10살 무렵인데 디스코 췄나. 영화의 춤은 디스코라기보다 그냥 춤이다. 차차차를 변형한 것도 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춤을 연출한 거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장편 준비하면서 봤는데 너무 시시했다. 그러니까 80년대라는 건 과거라는 이미지의 추상형에 가까운 것인가. 그때 재밌게 기억되는 것들을 집어넣었다. 서울우유 병 같은 거. 베지밀은 병이 나오는데, 우유는 왜 병이 안 나오지? 병이 팩보다 느낌이 좋은데. 그런 게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 같은 거다. 이사할 때 뒤에서 이삿짐 밀어주는 정서, 지금은 없다. 너무 삭막하다. 죽일 때도 열번, 스무번씩 찌르고. 나는 <친구> 재미없게 봤다. 초반 30분만 재밌었다. 뒤는 억지 같았다. 내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 단편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점에 끌렸나. 이야기 자체가 특이하고 재밌었다. 교복입고 나와서 춤추고 싸우고. 춤과 액션이 있고, 싸움꾼이 춤으로 여자를 구한다…. 650만원을 여기저기서 빌려서 찍다보니까 이렇게 할 게 아니다 싶었다. 또 시나리오는 더 길게 해야 할 이야기인데. 그래서 장편을 했다. 그러다보니 내 20대가 <해적…>과 함께 갔다. 이대근의 첫사랑이 해적의 어머니라는 건 좀 무리 아닌가. 장편 시나리오 작업 하면서 마지막 부분이 잘 안 풀렸다. 해적이 디스코경연대회에서 1등을 해서 봉자를 구한다는 설정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배제했다. 1주일 만에 디스코왕이 된다는 건 웃기지 않은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엄마가 나와서 말도 안 되는 장난을 해결해준다는 발상이 떠올랐다. 어색할 수는 있지만 귀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단편에선 해적이 막춤을 춰서 1등을 한다. 단편에는 그런 게 많았다. 마지막에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럼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는 거야?”라는 희망적인 대사로 끝낸 것도 지금 보면 창피하다. 너무 얄팍한 것 같다. 자료조사하다가 81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넣은 건데. 그래서 장편에서는 솔직하게 간 거다. 나는 80년대 모른다. 그냥 해적이 춤을 잘 춰서 1등상을 받는 걸로 했으면 안 될 이유가 있나. 나는 어설픈 게 좋다. 약간 뒤떨어지고, 잘 넘어지고, 바보 같고. 해적이 1등 해서 봉자와 끌어안고 그런 건 어색하다. 물론 춤의 비주얼을 <울랄라 씨스터즈>처럼 했다면 관객이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랑루즈>처럼 못할 바에는 어설프게 가는 게 더 낳지 않은가. 다음엔 잘해야지. <물랑루즈>처럼. (웃음) 처음부터 컨셉을 어설픈 걸로 잡았다. 데뷔작이니까 솔직하게 하자. 나름대로 실험도 해보고 싶었다. 드라마도 기승전결이 아니라, 처음부터 파동치는 형태로 했고. 딴에는 젊은 감독답게 한 건데, 봐주는 사람들이 다른 의미에서 어설프다고 한다.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어설프다고. (웃음) 준비중인 다음 영화가 있다는데, 거기에도 춤과 액션이 있나. 있다. 어설픈 느낌을 지워서 보는 이들이 “저 감독 맞아?” 하게 할 거다. 영악하게, 하나도 안 순진하게 할 거다. 그런데 <해적…>은 내가 50살쯤 돼서 봐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꼼수를 안 부린 것 같아서 좋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않고. 이대근의 졸개로 나오는 주명철씨가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아름답소!” 하는 대사는 압권이다. 나는 배우들의 애드리브를 많이 존중해준다. 그러다보니 단역들끼리 경쟁이 심했다. 쟤가 저렇게 재밌게 해? 나도 뭔가 하자. 그런 식이었다. 촬영 전에 스스로 뭔가를 궁리해서 가지고 온다. 주씨도 그랬다. 들어보니 재밌어서 하자고 했다. 그뒤부터 촬영장에서 유행어가 됐다. 믹싱, 편집하는 분들이 작업 중간중간에 “아름답소!”를 연신 외치고, 다른 스탭들도 지나가는 여자 보고 또 그러고. 똥장면이 유달리 많고 실감난다. 마지막에 해적과 성기, 봉팔 셋이서 똥 푸는 장면은 진짜 똥으로 했다. 진짜 똥을 퍼봐야 연기가 실감날 것 같아서였다. 그 장면을 맨 먼저 찍었다. 그때 미술팀이 진짜 똥을 보고나서 가짜 똥을 만드는데 너무 실감나는 거였다. 똥장면을 일부러 많이 넣자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 봉팔 아버지가 똥차 밀다가 사고나는 건 이야기의 시작이니까 뺄 수 없고, 그뒤에 봉팔이 혼자 푸는 건 봉팔의 고생을 표현한 거고, 마지막에 셋이 푸는 건 우정이고.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외국영화는 잘 안 본다. 이장호, 배창호, 이명세 이 라인을 좋아한다. 이 라인이 이명세에서 끊겼다. 그게 참 안타깝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연출부 일을 했는데, 기회만 됐다면 이명세 감독 밑으로 갔을 거다. 배창호 감독 영화 중엔 어떤 게 제일 좋은가.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놀이터에서 안성기가 최불암에게 안겨 엉엉 우는 장면, 너무 좋다. 실험도 많았던 것 같다. 안성기가 김서린 안경으로 황신혜를 보는 건, 아마도 김서린 안경을 카메라에 걸고서 찍었을 텐데 재밌지 않은가. 밝고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나. 그런 편이다. 나는 매우 긍정적이다. 농담을 막 던지면서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 어떤 사람이 곧 죽는데, 가족들 다 모인 자리에서 “슬퍼하지 말아라, 음악을 틀어라” 하는 거. 나도 그렇게 죽을 것 같다. 죽을 때도 웃는 게 좋다. 얻어터져도 웃고. 나는 어떻게든 재밌게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어설프든 세련됐든…. 다른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제일 싫어하는 게 ‘무서운 여자들’이라고 했던데. 여자들 무섭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자기 관리를 잘하고, 더 이성적이지 않나. 영화평론가도 유지나, 심영섭 무섭다. 변영주 감독 무섭다. 남자보다 여자 좋아하고, 말은 또 얼마나 잘하나. 여자들한테 많이 당한 것 같다. 여자들이 나를 보면 보호해주고 싶은가보다. 편안해하고 그러는데 나중에 보면 당한 게 많다. 여자들은 심중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들은 알기 쉽지 않은가. 꼭 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사랑영화, 슬픈 사랑이든 웃기는 사랑이든. 여자들 무섭다면서. 안 무서운 여자 골라서. <정사> 보면서 이재용 감독 되게 부러웠다. 내가 저런 거 해야 하는데. <지독한 사랑> 보고서는 내가 <지독한 사랑2>를 찍고 싶었다. <기쁜 우리 젊은 날>도 사랑 이야기이고. 나는 보고나서 어떤 장면이 오래도록 각인되는 영화가 좋다.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택시 타고 강원도까지 가고 이영애가 기다리고 그런 장면. <해적…>에서 관객이 오래 간직했으면 싶은 장면이 있다면. 봉자가 디스코경연대회 전날 밤 이불에서 혼자 구르는 장면이 있다. 뭔가 되게 바라면서 엉뚱한 짓을 하는 게 사실적이지 않은가. 그때 창가에 비치는 초승달은 이명세식 표현주의이고. 이 초승달은 이명세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홍상수식 사실주의와 이명세식 표현주의의 중간단계쯤? 말이 되나? 아쉬운 건. 좀더 영화적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25억원을 들였으면 그만한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품을 잘 만든다는 건 아직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참 애매하다. <포레스트 검프> 같은 것도 너무 짜여져 있으니까 재미가 덜하다. 뭐가 답인지 잘 모르겠다. 정말 대중영화라면 할리우드 같은 상품을 내놔야 했겠지만…, 왠지 그런 건 잘 안 할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니까 영화적 표현기법을 쓰는 솜씨가 대단하더라. 그런데 그런 건 앞으로 다른 감독들도 잘할 것 같다. 이제는 철학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이 색을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 그게 최고의 철학 아닐까. 어떤 제작자가 영화를 하려면 개똥철학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라는 건 참 고급예술 같다. 글 임범 isman@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아! 너무 일찍 져버린 꽃이여, <로빙화>

아무도 믿어줄 사람이 없을지 모르지만, 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축구선수였다. 건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학교 축구선수 생활은 그런 이유로 시작되었다. 그랬다, 중학교 때 ‘축구선수였다’는 사실은, 실은 가난하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남의 집에 고구마라도 몇개 들고 가 마당에서 텔레비전을 훔쳐보아야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슬픈 이력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지금 온 나라는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고, 난 문득 옛날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런 어린 시절에 대한 강렬한 회상과 지독한 감정이입을 허락한 영화가 있다. 내가 <로빙화>를 본 것은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인형작가인 이승은, 허허선 부부의 <엄마 어렸을 적엔>란 소재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던 시절이다. 일산 스튜디오에서 자료를 모색하던 중 그만 기획 스탭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원래 눈물이 많은 탓도 있지만 가슴이 저려오는 한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 앞에 감전되고 말았던 것이다. <로빙화>는 차밭 한구석에서 봄이 되면 피어나는 아주 아름다운 꽃이다. 아름답지만 너무도 생명이 짧은 이 꽃의 생장과 죽음을 은유로 <로빙화>는 천재적인 미술 재능을 지닌 한 소년의 삶을 애달프고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작농의 아들이어서인지 영화 속 주인공인 고아명은 나의 어린 시절을 너무도 강렬하게 떠올려준다. 고아명은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이다. 천재적인 미술 재능이 있었지만 부잣집 아들의 농간으로 사생대회 학교대표에서 떨어지게 된 고아명은 “부잣집 애들은 뭐든지 잘해요”라며 울부짖는다. 그런 자기 분노는 나의 슬픈 어린 기억들을 대신 외쳐주는 카타르시스를 던져주었다. 이후, 그림 연습을 위해 황소 얼굴에 진흙 바르기, 생강 훔쳐먹기 등의 영상은 어린 추억이 아직 내 마음속에 일렁거리고 있음을 알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뒤늦은 영화입문에서 만났던 강렬한 기억들을 가지고 난 영화업계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독립영화 워크숍 6기에 최고령 입학을 필두로 업계 이곳저곳 현장을 열심히 뛰어다닌 지 12년,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니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형국이 되었다. 이 늦은 시작은 앞으로도 제2기 영화진흥위원으로 남보다 할 일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요절한 천재미술가 ‘고아명’과 누나 ‘고아매’, 하늘나라에 간 엄마 설정이 <로빙화>라면 천진난만한 ‘길손’과 눈이 보이지 않는 ‘감’이 그리고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가 그려내는 잔잔한 이야기가 <오세암>이다. <오세암>이 정채봉 원작동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기획을 마치고 나서 문득 생각해보면, 두 작품이 이처럼 닮은꼴일 수가 없다. <로빙화>를 보고 “나도 꼭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지”란 각오를 한 것이 나도 모르게 <오세암>이란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게끔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다. “별들은 말이 없고, 인형은 엄마를 닮았네 하늘의 눈은 반짝이고 엄마의 마음은 로빙화 차밭에 꽃이 피어 엄마는 즐거워 하시네 엄마의 모습 생각하니 눈물은 로빙화네 눈물은 로빙화 됐네” “난 저 산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서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던 주인공 아명의 속삼임이 아직도 내 귓전에 맴돌며 나를 영화로 이끈다. 아! 아! 내 로빙화여….

<묻지마 패밀리> O.S.T

장진이 기획한 <묻지마 패밀리>는 세편의 중편을 한데 모으고 있다. 다 다른 영화지만 배우를 비롯하여 서로 연결되는 고리들을 가지고 있다. 장진의 기획력. 감독은 다 다르다. 박상원, 박광현, 이현종 세 감독 모두 신인이다. 색깔도 모두 다르다. 박상원이 감독한,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인 <사방에적>은 장진 냄새가 가장 짙게 풍기는 작품이다. 시나리오가 탄탄하다. 이 영화는 장르영화적 클리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장진이 그걸 가지고 논다. 두 번째 영화는 박광현이 감독한 <내나이키>. 세 작품 중 가장 감각적이고 자연스럽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 번째 영화는 이현종 감독 작품인 <교회누나>. 연애영화다. 이렇게 다 다른 색깔을 지닌 영화지만 음악은 한 사람이 맡아 했다. 한재권. 그는 이미 여러 번 소개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영화음악가. 이번에도 그런 면모를 보여준다. 세편의 영화 가운데 음악적으로 가장 탄탄한 영화는 <사방에적>이다. 마지막 박자에서 오픈되며 반복하는 하이 햇 심벌과 업비트로 시작하는, 우리의 귀에 조금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을 주는 테마, 그리고 냉혈적인 느낌의 쿨 브라스 섹션과 워킹 베이스 프레이징이 어우러진 메인 테마는 상당히 공을 들인 트랙이다. 왠지 복도 신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음악은 브라스도 시원하고 장르영화적 진행을 음악적으로 암시하고 유도하는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다른 트랙들도 영화 속에서 적절히 등장하면서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다. 두 번째 영화의 음악은 조금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느낌을 준다. 메인 테마를 연주하는, 어눌한 느낌의 아코디언 소리를 내는 신시사이저는 즐거운 기분으로 추억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우스꽝스러움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그 이외의 트랙들은 그보다 덜 인상적이다. 어딘지 이런 분위기의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옛날 느낌을 내기 위해서는 동요 <땡그랑 한푼>이 편곡되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코믹하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미디 작업한 분위기가 조금 많이 난다.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당대의 사운드를 차용할 필요는 없지만, 당시의 기분을 되살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영화인 만큼 최소한 그때의 사운드와의 관련성 정도를 깊이 고민해보는 작업은 필요했을지 모른다. 세 번째 영화는 교회에서 만난 누나를 사랑하는 어느 이등병의 휴가기이다. 교회 종소리와 교회 오르간 소리를 동원해 교회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고 코믹하다. 그렇지만 연애영화이므로 감상적인 느낌도 살려주어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상쾌함을 잃어서도 안 된다. 조금은 복합적이라 할 이런 분위기의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재권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접합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내고 있다. 그런데 역시 급하게 만든 듯한 느낌이 있다. 평범한 라인 바깥을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냥 분위기를 따라가 주고 있다. 하긴, 우리나라의 영화음악가들(외국도 거의 마찬가지겠지만)처럼 서둘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으랴. 오늘 테이프 가져다주면서 내일까지 해내라는 식이니. 장르영화의 경우는 어차피 클리셰들의 연쇄들을 어떻게 잘 짜맞추어 내느냐가 관건이므로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영화음악 분야가 점점 공장도 생산라인을 갖추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링으로 되살아온 김득구 영화 <챔피언>

권투선수 김득구(1955~82)의 삶을 영화로 옮긴 〈챔피언〉의 개봉(28일)을 한 주 앞두고 ‘섀도복싱’(단독연습)으로 몸을 풀고 있는 곽경택(36·오른쪽 사진) 감독을 라커룸에서 만나봤다. 미리 엿본 〈챔피언〉에는, 그가 1970년대의 도시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친구〉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또 20년 전 링에서 숨져간 권투선수의 삶이 정말 그랬을 법하게 구체성을 얻고 있었다. 김득구(유오성)의 한맺힌 삶이 스크린에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곽 감독의 실사구시 정신 덕분이다. “〈친구〉가 끝나자마자 〈챔피언〉의 시나리오를 쓰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친구〉 때문에, 언론사 인터뷰는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광고 출연 제안까지 들어왔습니다. 이럴 때 잘못하면 야전에 있어야 할 사람이 파티에 익숙해지는 일이 생기겠다 싶어서 다음 작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조감독들과 함께 김득구의 고향인 강원도 고성군 거진으로, 밥 지어 먹고 텐트 치거나 민박하면서 고등학생 식의 ‘캠핑’을 떠났습니다. 그때 거진에 일주일 묵으면서 〈챔피언〉의 초고를 완성했죠.” 그러나 〈챔피언〉의 시나리오가 영화답게 되기까지는 그뒤 적어도 세 번의 결정적인 만남을 거쳐야 했다. 첫번째 만남은 김득구의 고향인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에 도착했을 때 닥쳐왔다. 곽 감독 일행은 먼저 그의 무덤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행은 동네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작정 김득구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이때 곽 감독은 ‘소름이 쫙 끼치는’ 답을 들었다. “내가 김득구 형이오.” 김득구와 배다른 큰형인 그분은 처음엔 김득구의 무덤에 함께 가려 하지 않았다. “바로 코앞”이라며 손짓으로 알려줄 뿐이었다. 그러나 곽 감독 일행이 산꼭대기까지 헤매다 끝내 못 찾고 다시 내려오자, 그는 “내가 하도 (산소에) 안 올라오니까 나 오라고 그러는구먼!” 하면서 김득구의 무덤을 직접 안내했다. 그날 곽 감독 일행은 오징어회에 소주를 마시며 김득구의 큰형으로부터 그의 어린 시절을 절절하게 들을 수 있었다. 초고를 좀더 영화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곽 감독은 연세대 상남경영관에서 2고를 썼다. 이때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한 건, 그가 김득구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는 기사를 보고 나타난 어느 스포츠 신문의 기자였다. 그는 신문사의 선배가 김득구로부터 입수한 그의 낡은 대학노트를 한 권 들고 나타났다. 곽 감독은 이 노트의 첫 장을 넘기며 다시 한번 전율이 온몸을 감싸는 체험을 했다. 노트 첫 장 상단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나에겐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노라.” ‘용기’와 ‘의지’라는 낱말엔 볼펜으로 덧칠까지 돼 있었다. 곽 감독은 20년 전 링에서 숨을 거둔 가난한 권투선수가 남긴 대학노트의 낡은 책장들을 넘기며 울음을 삼켰다. 거기엔 길창덕의 인기 만화 꺼벙이를 베낀 낙서에서부터 영어 단어를 연습한 흔적까지, 주먹 하나로 삶을 헤쳐온 이의 고독한 기록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외국에서 경기를 치를 때 최소한의 인사 같은 건 해야 하니까, 그런 영어 단어를 연습한 거 같습디다.” 노트 마지막 장에 남아있는 다른 사람의 필적은 “열쇠를 …에 두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체육관에서 김득구 선수가 제일 늦게까지 남아 연습하다 마지막에 갔다는 뜻이죠.” 김득구의 노트가 시나리오를 좀더 생생하게 만들긴 했지만, 곽 감독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비주얼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영화엔 치명탑니다. 캐릭터가 설득력이 없어져 버리고, 나아가 영화 전체에 믿음이 가지 않고, 재미가 없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친구〉에서 낡은 철대문의 부식도까지 꼼꼼하게 챙겼던 곽 감독의 장인정신은 〈챔피언〉에서도 바래지 않았다. 소품 담당자로부터 “곽 감독이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또 만들면 다신 같이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그는 권투경기장에 울려퍼지는 낡은 ‘공’과 김득구의 운동화 끈 색깔까지 챙겼다. 그 결과 〈챔피언〉은, 텔레비전에 한번 비치기 위해 아나운서와 해설자 뒤에서 몸싸움 벌이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진수성찬 오층금탑처럼 촌스럽기 그지없는 한국 챔피언 트로피와, 사천왕처럼 권투체육관에 내걸린 챔피언벨트 맨 권투선수들의 빛 바랜 사진에 이르기까지, 70~80년대 권투경기의 풍물을 기록영화 이상의 꼼꼼함으로 되살려냈다. 그래도 곽 감독은 불만스런 게 있었다. “어떤 사람을 영화에서 캐릭터로 만들 땐, 피상적인 걸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 버릇, 걷는 폼, 마 이런 걸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김득구의 그런 걸 아는 사람을 찾아야 했죠.” 뭔가 미진한 2고를 좀더 다듬어 3고를 쓰기 위해 취재에 박차를 가할 때였다. 모든 얘기가 김득구의 친구이자 그 자신 권투선수로 한국 챔피언까지 올랐던 이상봉이란 인물로 모아졌다. 사람들로부터 “그 얘긴 이상봉씨가 정말 잘 알텐데…”란 답이 계속 돌아온 것이다. 그에 관한 소식은 그가 영등포에서 육체미 체육관을 하다 아이엠에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정도였다. 스태프는 영등포 일대의 모든 육체미 체육관에 전화를 돌렸다. “사장님 계십니까? 혹시 이상봉씨라고 모르십니까?” 이 두 마디가 전화 취재의 모든 메뉴였다. 이씨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다는 건 백여 통의 전화를 돌린 뒤 알게 됐다. 곽 감독은 그 다음날 바로 오스트레일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9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챔피언〉의 김득구는 몸가짐과 습관과 즐겨 불렀던 노래와 말투와 삶의 잔잔한 고뇌 따위를 얻게 됐다. 김득구가 조용필의 〈정〉을 개사해 즐겨 불렀다는, (영화에선 유오성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깔리는) “권투란 무엇일까/ 때리는 걸까/ 맞는 걸까/ 때릴 땐 꿈속 같고/ 맞을 땐 지옥 같아” 하는 노래에서부터, 김득구에 관한 숱한 디테일이 이상봉씨로부터 나왔다. “이때부터 시나리오에서 ‘내레이션’으로 처리했던 부분들이 거의 없어지고 대사로 바뀝니다.” 내레이션이 대사로 바뀐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가 생생하게 자기 모습을 그려 보여준다는 의미다. 비운의 권투선수를 스크린에 불러들이는 지노귀굿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던 곽 감독은 〈챔피언〉 후반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벌써 다음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다음 작품은 코미디입니다. 죽은 이의 삶을 그리는 작업은 사실 제게도 매우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좀 부추길 겸 코미디를 할 겁니다.” 곽 감독은 부산고 동창인 양중경(36) 대표와 함께 차린 제작사 진인사 필름에서 다른 감독의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도 관여한다. 박흥식 감독의 〈연〉이 그 첫 작품이다. “남의 작품 뒷바라지하는 건 처음이지요. 그동안 엄마 노릇만 했다면, 아버지 노릇도 한번 해보는 거죠.” 글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 1982년 링에 쓰러진 뒤 마지막 힘을 다해 일어나려던 김득구 선수의 모습(위·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