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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의 김동원 감독을 부러워 하는 어느 역사학자로부터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고은, <만인보>(萬人譜) 서시 김동원 감독은 사람들이 <송환>을 “30년 넘게 감옥에 있었던 특별한 사람들을 12년간 따라다니며 찍은 특별한 다큐멘터리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절반은 동의하지만, 절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송환>을 본 사람들은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사람을 30, 40년씩 가둬놓는 한국 현대사가 특별한 것이지, 풀어주지 않아서 오랜 징역 살아야 했던 분들이 원래 특별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는 <송환>은 정말 특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송환>을 본 사람은, 특히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한국 현대사를 살짝 다룬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은 <송환>이 왜 특별한 영화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오랜 세월이 빚어낸 따뜻한 풍경 나는 1999년 늦봄부터 2000년 8월까지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한 경험이 있다. 언제 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기에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선생님 몇분이 주동이 되어 시작된 작업이었다. 꿈같은 송환이 갑자기 이루어지게 되어 작업이 중단되었지만,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을 모시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스무분 내외의 선생님으로부터 한분당 대개 이틀에 걸쳐 열댓 시간씩 출생에서 석방까지의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 나는 현대사 연구자 중에서 누구보다도 장기수 선생님 문제에 가까이 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처지에서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낀 것은 내공의 차이였다. 12년간 한우물을 파 이웃들에게 시원한 물을 나눠주는 사람을 보며 한 1년 남짓 비슷한 곳에서 삽질해대던 사람이 느끼는 존경과 부러움과 시샘을 더하여서…. 김동원 감독을 처음 본 것도 선생님들 모임이나 행사가 있으면 부지런히 쫓아다니던 그 무렵이었다. 내 기억에 어딜 가나 그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그가 카메라를 들고 선생님들을 찍고 있는 모습은 별로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냥 그렇게 선생님들 사이 어딘가에 편하게 퍼질러 앉아 있는 그의 모습, 그 자연스러운 모습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오랜 세월이 빚어낸 하나의 풍경이었다. 어떤 인터뷰에선가 김 감독이 장기수 선생님들이 30, 40년 징역을 살았다 해도 살인적인 전향공작을 30, 40년 내내 받지는 않은 것처럼 자기도 12년 내내 <송환>만 찍은 것은 아니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비전향 장기수라는 딱딱하고 살벌하기까지 한 주제를 다룬 <송환>이 그리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고 갈 수 있는 힘도 12년간 곰삭힌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148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화려한 액션도, 스타도, 특수효과도 없지만 시간은 후딱 가버린다. 그동안 관객은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 만남과 헤어짐, 회한과 부러움, 즐거움과 안타까움, 엉뚱함과 섬뜩함, “아, 맞어, 그랬어” 하며 되살아나는 기억에 대한 반가움과 희미해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 등등 우리가 살아가며 맛볼 수 있는 온갖 감정의 기복을 진하게 경험하게 된다. <송환>을 보는 동안 카메라라는 기계도 참 따뜻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12년 동안 품어온 세월 덕에 카메라란 놈도 체온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영화의 화자이기도 한 김 감독은 반공주의자였던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이 영화를 보셨다면 틀림없이 화를 내셨을 것이고, 장기수 선생님들도 썩 만족스러워 하시진 않았을 것이란 말로 영화를 시작한다. 이런 대목, 저런 장면, 틀림없이 불만을 가지셨을 거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송환>에 대해 불만을 가지셨을까? 영화의 끝부분에 가면 북에 계신 조창손 선생이 “말은 안 했지만 김동원 감독은 나에게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1년쯤 장기수 선생님들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본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런 느낌은 조창손 선생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을 비추는 김 감독의 카메라만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김 감독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시선은 더 따뜻하고 더 짠했다. 김 감독과 인사를 나누기 전에 내가 김 감독을 가리키며 “저분은 누구세요?” 하고 묻자 주변의 선생님들은 그를 보면서 “찍기는 아주 열심히 찍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셨다. 선생님들은 오랜 징역생활 덕에 똑 부러지고 깐깐한 태도가 몸에 배어 좀처럼 말끝을 흐리는 법이 없는데, 유독 김 감독 얘기를 할 때는 말끝이 흐려졌던 것 같다. 둔한 나는 처음에는 찍기만 엄청 찍고 송환운동에 도움이 되는 영상물은 만들어내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식이 뭔가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그런데 주변에서 “걔는 요새 뭐한데요?” 하고 ‘관심’을 보이면 우리 부모님들은 무어라 답하실까? <송환>이 마침내! 드디어! 기어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생님들은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 선생님들이 불만을 가질 만한 부분- 어떤 부분인지는 김 감독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이 제법 많다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어떤 할아버지가 늦둥이 손자가 태어났는데, 코가 좀 못생겼다고 내다 버리라고 할까? 은밀하게 전향당한 우리들 내가 <송환>을 본 것은 3월11일 밤이었다. 탄핵안이 발의되어 있었지만, 여느 시민들처럼 ‘설마’ 하고 있으면서 영화보고 늦게까지 술마시며 영화의 감동을 즐겼다. 다음날 원고를 써서 <씨네21>에 넘기도록 되어 있었지만, 막상 탄핵안 가결 소식을 듣고 보니 <송환>을 갖고 글을 쓰는 게 좀 한가롭다는 생각도 들고 치떨리는 마음에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어 탄핵에 대한 글을 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송환>이야말로 이 탄핵정국에 꼭 보아야 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탄핵안에 찬성한 의원들 중에 한때 꽤 괜찮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렀을까? 어찌 그들뿐이랴? 영화 속에서 “600대까지는 세었어”라는 진태윤 선장의 독백이 소름이 돋도록 전해주듯이 전향공작의 폭력성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그 폭력 앞에 무릎이 꺾인 것이라면, 그래도 언제 어디서 그랬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이미 은밀하게 전혀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전향공작에 모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닐까? 젊은 날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탄핵에 앞장선 민주당의 한 의원이 시인이었고, 그의 시집 제목이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라는 사실에 아픈 마음이 다시 한번 아려온다. <박하사탕>에서처럼 그렇게 처절하게 망가지고 난 다음에야 달려오는 기차 앞에 서서 “나 돌아갈래!”를 외쳐야 하는 것일까? <박하사탕>의 김영호는 그래도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김영식 선생처럼 강제전향을 당하고 그 취소를 요구하는 분이나, 김남주 시인처럼 “이 환장할 청춘”에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이를 북북 갈며 “나의 피, 나의 칼, 나의 노래”를 지켜낸 사람들, 그들은 상처받은 몸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죽기 전에 걸어야 할 길”을 잃지 않은 분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향자들은 그렇지 않다. 상처를 안고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거나, 비전향자들이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는다고 처음의 미안함을 미움으로 바꾸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20대 때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자이고, 40대에 아직도 사회주의자이면 머리가 없는 자이다”란 교활한 말로 우아를 떨며 자기들의 전향을 합리화한다. 돌아서서 침뱉고, 자신이 한때 정열을 바쳤던 곳에 불을 싸질러버리는 자도 부지기수다. 전향공작은 살벌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울림이 있다. 저들이 꺾으려고 한 것이 꿈만이 아니라 꿈을 꿀 수 있는 마음이었다. 빼앗긴 꿈이야 다시 꾸면 그만이지만, 꿈꿀 수 있는 마음마저 빼앗긴다면 영영 꿈을 꿀 수 없다. 전향서가 “그까짓 종이 한장”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100살이 다 되어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어머니가 45년 만에 석방된 일흔이 넘은 아들을 처음 만나 “네가 어른 말 안 들어서 그래”라고 가볍게 꾸짖는 대목보다 더 극적이고, 더 한국적이고, 이보다 더 현대사의 상처를 보여주는 장면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옛날이야기라면 두 모자가 이렇게 만나 행복하게 잘먹고 잘살았다고 끝나야 마땅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김선명 선생께 연락을 주지 않았고, 묘소마저 가르쳐주지 않아 김선명 선생은 그저 선산 부근만 헤매다가 어머니 산소에 술 한잔 올리지 못하고 송환길에 올라야 했다. <송환>은 주체적으로 전향을 거부한 ‘비전향’과 아직 전향하지 않았다는- 그러므로 여전히 전향공작 대상인- ‘미전향’의 차이를 아주 열심히 보여주지만, 일부 매체는 아직도 미전향이란 말을 고집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어느 기자는 <송환>을 소개하면서 ‘미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고 버젓이 써놓았다. 게으름이 빚은 실수였을까, 아니면 확신범의 소행이었을까? <메멘토> 같은 작품의 시놉시스가 나오기 수십년 전에, 전향공작에 맞서 자기 몸에 유리조각으로 유서를 써야 했던 서준식 선생이 살아나와 인권운동을 벌인 지 10년이 넘었어도, 전향제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공언한 지 여러 해가 지났어도, 송두율 교수는 여전히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으로 몰려 있다. 그 옛날 <파업전야>를 만들었고 뒤에 명필름의 제작자가 된 이은 감독은 영화인으로서 자기가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 딱 둘이 있는데, 국외에서는 켄 로치이고, 국내에서는 김동원이라고 했다. 현대사를 대중에게 쉽게 전하기 위한 글쓰기를 모색해온 나 역시 <송환>을 보며 참 부러웠다. <말죽거리 잔혹사>와는 비교가 안 되게 잔혹했던 이야기를 어떤 코미디보다도 더 재미있고,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사람냄새 나고, 어떤 스펙터클보다도 더 보는 사람을 확 빨아들이도록 만든 그 솜씨가 정말 부러웠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마냥 조창손 할아버지뿐 아니라 다른 할아버지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식 파괴, 노련한 감독의 유쾌한 향연, <자토이치>

<자토이치> 座頭市 2003년 감독 기타노 다케시 상영시간 116분 화면포맷 1.78: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일본어 자막 한글, 일본어, 영어 자막 출시사 인트로미디어 <하나비>에서 보여준 폭력의 강렬함을 넘어선 허무주의의 미학을 거쳐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한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선 것처럼 보였던 시점에서 뒷걸음쳐 야쿠자와 폭력의 세계로 돌아갔던 <브라더>가 좋지 못한 평을 얻자, 기타노 다케시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연애물과 시대극인 <돌스>와 <자토이치>를 차례로 내놓으며 새로운 방향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탐미적이었던 <돌스>에 이어 선택한 작품이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언뜻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기타노는 이 작품을 철저하게 오락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언제나 자신의 각본으로만 영화를 만들던 그가 가쓰 신타로의 26편에 달하는 전설적인 시리즈가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이 캐릭터에 도전한 것은 그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화려한 칼싸움 장면을 실제로 구현해볼 수 있다는 순수한 오락적 즐거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영화는 원작의 기본 설정만을 이어받고 나머지는 모두 완전히 새롭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된 ‘퓨전액션시대극’이 되었는데, 이전까지 꺼려했던 컴퓨터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극사실적인 칼싸움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1.78:1 아나모픽 화면은 일본영화 타이틀 특유의 약간 뿌옇고 채도가 낮은 톤을 보여준다. 전반적인 해상도는 평균적인 수준이지만, 선명도나 투명함, 색농도가 약간씩 낮고 화면 전체에 걸친 지글거림도 조금씩 보인다. 돌비디지털 5.1 채널 사운드는 상당히 우수하다. 대사나 효과음들은 차분하면서도 정세하고 또렷하여 사실적인 느낌을 주며, 칼싸움 장면에서는 묵직한 질감과 강한 임팩트감이 두드러진다. 본편 디스크에는 예고편 모음이, 서플먼트 디스크에는 제작 다큐멘터리, 인터뷰 모음 등이 실려 있다.김태진 <영매>와 <위대한 비상>이 나란히 출시되었는데, 중복을 피하기 위해 <영매>는 다음주로 넘겨졌다. 화질과 음질이 향상된 <위대한 비상 SE>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굳건한 의지와 인내심에 새삼 경외감을 갖게끔 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LD 시절부터 컬렉션해 온 만큼 <자토이치>도 당연히 구입하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기타노 고유의 미학이 희석된 듯하고, DVD의 화질도 기대했던 바에 약간 못 미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디즈니나 픽사에도 필적할 만한 한국 애니메이션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주었고, DVD도 레퍼런스급의 화질과 음질로 극찬을 받았던 <원더풀 데이즈>가 몇몇 장면들을 추가하고 더빙도 교체되고 서플먼트도 늘어난 3장짜리 확장판으로 재출시되었다. <위대한 비상>도 감동적이었지만, 선택은 <원더풀 데이즈-확장판>이다. DVD로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주의 선택은 <자토이치>다. 쓸쓸한 이미지의 떠돌이 검객에게 삶의 환희를 입혀놓은 기타노 다케시의 연출에 넋을 잃었던 작품이다. 두 번째 선택은 짐 셰리던의 <천사의 아이들>이다. 선댄스영화제에서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너무도 조용히 출시되는 작품인데 괜찮게 봤다. <영매>는 DVD 영상도 그렇지만 그 내용이 워낙 독특해서 한번 더 봐야 될 것 같다. <아메리칸 파이3-웨딩>은 영화와 DVD 둘 다 전작보다 못해 실망이 컸으며, 사부의 <드라이브>는 이제 달리지 않고 차를 모는 주인공을 보면서 미소 짓게 만든 작품이다. 한때 배꼽을 잡게 만들었던 시리즈 <핑크 팬더>는 박스판으로 출시되는데, 가격이 싸다면 구입을 고려해보겠다. <원더풀 데이즈> 확장판을 보고나니 O.S.T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CD를 구입했는데 아뿔싸! 영화 속 음악들이 모두 담긴 게 아니었다. 확장판 DVD도 마찬가지다.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CD나 DVD나 구입한 것이 후회되진 않는다. <핑크 팬더>를 보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오프닝 크레딧만을 별도로 모두 모아 녹화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제시간에 6장의 디스크를 모두 보느라 힘들었고 영화를 보며 계속 웃느라 또 힘들었다. 이번주의 선택은 <자토이치>다. 기타노 다케시는 웃을 때나 인상 쓸 때나 모두 멋있지만 눈감아도 멋있다. 오리지널의 애절함은 없지만 대신 꽉 찬 경쾌함이 있지 않은가? <영매>에 담긴 굿소리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스코어만큼이나 좋아한다. 음악 CD도 나온 게 없으니 DVD는 그 이유 때문이라도 구입해야겠다.

르네 랄루 & 롤랑 토포르의 <판타스틱 플래닛> [1]

르네 랄루의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은 탄생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정식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프랑스의 애니메이터 르네 랄루는 1960년 단편 <쥐의 이빨>로 그의 세계를 열었다. 이 작품은 한때 정신병원에서 치료의 일환으로 인형극과 연극을 상연했던 르네 랄루가 환자들의 집단 창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뒤 르네 랄루는 단편 <데드 타임즈>(1964)와 <달팽이들>(1965)을 만들었고, 1973년에는 장편 데뷔작 <판타스틱 플래닛>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르네 랄루는 <타임마스터>(1982), <간다하르>(1988)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지닌 애니메이터로 인정받아왔다. <씨네21>은 애니메이션의 철학적 신기원을 이룬 르네 랄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지만, 갑자기 날아온 비보는 그의 죽음을 대신 전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쓰여진 글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지금 이 글은 르네 랄루에 관해 쓰여진 이 세계의 마지막 변론일 수 있다. 김준양/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저자원제가 ‘미개의 행성’(La Planete sauvage)인 장편애니메이션 <판타스틱 플래닛>에 대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1년 그것을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미술의 부재를, 그리고 미술의 부재가 자신들을 2류로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은 ‘애니메이터’이기 때문에 미술이 선행하는 영화창작에 대해 저항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상당히 분별없는 폄하를 하였다. “그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기술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공명은 할 수 없었다. 보기를 아주 잘했지만 두번 볼 생각은 없다.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조잡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포르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을 전개시키기에 적당한 원작을 찾은 것은 아닐까? 그 영화에서 주제가 성공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토포르의 세계가 명백하게 영화 속에 창출되어 있었다.”-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1979∼1996> 도쿠마 쇼텐, 1997년, 149쪽. 롤랑 토포르의 일러스트를 위한 작품이라고? 우선 내가 위와 같은 글을 인용한 이유는 <판타스틱 플래닛>의 이야기가 조잡하다고 주장하고 싶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칸의 심사위원들이 그림만 보고 이 영화에 특별상을 줄 만큼 바보였을 리도 없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대로 <판타스틱 플래닛>을 창조한 두 주역인 르네 랄루와 롤랑 토포르가 미술 경력을 가진 이들이고, 특히 후자의 미술 감각이 그 작품 세계의 구축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것은 토포르가 빠진 상황에서 만든 르네 랄루의 이후 장편들인 <타임마스터>(Les Maitres du temps, 1982)과 <간다라>(Gandahar, 1987)의 화면이 비록 뫼비우스와 필립 카자 같은 걸출한 만화 작가와의 작품이었을지라도 <판타스틱 플래닛>의 그것과 크나큰 대조를 보이는 점에서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롤랑 토포르는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인 동시에 작가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폴란드 출신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주연(이자벨 아자니와 함께)의 라이브액션영화 <하숙인>(Le Locataire, 1976)의 원작자이고, 앙리 조뇌 감독의 <후작>(Marquis, 1989)에서도 원작과 미술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라 있다. <후작>은 애니메이션과 라이브액션, 인형극과 관상술을 조합한 이색적인 가면극 형식에 대혁명 직전의 바스티유 감옥 안에서 사드가 자신의 페니스와 논쟁을 하는 도발적이면서도 사변적인 내용의 영화이다. 그러므로 토포르가 자신의 미술을 내세우기 위해 타인의 원작을 골라서 <판타스틱 플래닛>을 만든 것 같다는 미야자키의 추측은 한마디로 난센스이다. 르네 랄루 역시 미술로 시작하긴 했지만 ‘애니메이터’이기도 했으며 더욱이 줄곧 시나리오를 (토포르, 뫼비우스와는 공동으로) 직접 쓴 시네아스트였다. 그가 당시의 누벨바그, 특히 트뤼포의 작가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토포르에서 뫼비우스로, 뫼비우스에서 필립 카자로 옮겨가면서도 그의 애니메이션들은 늘 일관된 경향, 특히 타자의 시간과 타자의 장소를 소환하는 경향을 갖는다. 거대해진 달팽이들이 인간의 문명세계를 파괴한다는 아이디어에서 르네 랄루의 초기 단편인 <달팽이들>(Les Escargots, 1965)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보다 20년 정도 앞선 작품이었다. <달팽이들>을 함께 만든 르네 랄루와 롤랑 토포르가 그것의 상상력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다음 작품이 바로 <판타스틱 플래닛>이다.

르네 랄루 & 롤랑 토포르의 <판타스틱 플래닛> [2]

핵 공포, 프라하 침공을 스크린으로 옮기다 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이루는 세계관과 인물은, 대규모 전쟁 이후 근대문명을 잃고 퇴행해버린 인류, 이런 인류를 대신하여 지구를 지배하는 거인 종족, 그리고 이 존재들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도하는 현자로 요약된다. 이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물론이고 <판타스틱 플래닛>의 제작 기간에 해당하는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연달아 발표된 <행성 탈출>의 5부작도 떠올린다. 흥미롭게도 <행성 탈출>의 원작자 역시 피에르 불이라는 프랑스 작가이다(그는 <콰이강의 다리>(1957)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들 ‘포스트 묵시록적’(post-apocalyptic) 장르의 공상과학영화들이 갖는 공통점이 핵 시대의 히스테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환경이 아니라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일본 사람들의 내셔널리즘적 운명에 관한 영화이다. <행성 탈출>의 속편 <원숭이의 행성 아래에서>(1970)는 동굴 속 세계에서 원자폭탄을 신으로 숭배하며 숨어사는 피폭 생존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비슷하게 핵을 모티브로 한다고 해도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그것은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핵 또는 핵 전쟁은 거인 종족이 인류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주 간접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예의 영화들과 달리 핵 폭발 자체는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판타스틱 플래닛>이 주로 그려내는 것, 관객의 시선의 중심에 제시하는 것은, 인간이 거인 종족에 의해 하찮은 벌레처럼 다뤄지다가 급기야는 박멸의 위협까지 맞이하게 되는 섬뜩한 장면들이다. 걸리버의 거인국 여행으로 시작한 환상은 인류가 거인 종족의 거대한 공에 깔리고 진공 청소기로 빨아들여지고 살충제에 중독되며 대량으로 죽어가는 홀로코스트로 변한다. 이런 면에서 주인공의 성장과 그의 선택이 출애굽기의 모세와 유사한 점도 퍽 의미심장하다. <행성 탈출> 5부작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핵이 이야기의 구조를 이루는 반면,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그것은 하나의 시대적 배경으로만 머물고 홀로코스트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 이러한 차이는,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과 일본의 그것에 대해 갖는 지정학적 차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차이를 드러내주는 또 다른 사례는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두편의 영화이다.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현장을 담은 <밤과 안개>(1955)로부터 4년 뒤에 시선을 원폭의 현장으로 향하여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을 만들었다. 전자가 다큐멘터리, 후자가 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같은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한편 <판타스틱 플래닛>은 그것이 만들어진 곳에서 그 무렵 실제로 일어난 정치적 사건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당시 체코의 국영영화사인 크라트키필름의 이지 트릉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제작에 돌입한 해는 1968년이었으며, 때마침 그 나라에서는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자유화 운동을 소련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르네 랄루는 대담하게 이 사건을 영화의 시대 배경으로 의도하였고, 그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판타스틱 플래닛>의 제작 기간이 5년 남짓의 세월에 걸쳐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판타스틱 플래닛>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결정적 차이 좀더 나아가서 우리는 ‘미개의 행성’을 의미하는 이 영화의 원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미개의 행성’은 사실 거인 종족이 지배하는 행성의 ‘위성’에 해당하며 거인 종족의 ‘번식’을 위한 장소로 이용된다. ‘미개’의 ‘판타스틱’한 그 ‘위성’은 말하자면 일종의 식민지인 셈이다. 그런데 왜 이 전후의 영화에서 식민지적 음영이 부조되어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프랑스는 전후까지도 식민지를 유지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특히 1954년에는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운동에 대한 무차별 진압 전쟁이 자행되기도 했다. 결국 알제리의 독립은 1962년에야 성취되지만, 그로부터 몇년 뒤에 비슷한 성격의 전쟁이 일어난 베트남도 100여년간 프랑스 식민지였다. 68년 5월혁명과 더불어 전후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목되는 알제리 전쟁은 오랫동안 불문에 부쳐져 프랑스사회에 역사의 기억상실을 초래하였지만, 누벨바그 감독들은 당국의 강력한 검열을 받으면서도 그 문제에 천착하였다. 식민지 문제에 대해서는 르네 랄루도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판타스틱 플래닛>에서 거인 종족은 단순히 막연한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는 초과학 문명을 이룩하고 민주적인 의회 정치를 운영하면서 명상을 하루 일과로 삼으며 세포 재생술로 몸을 유지하는 웰빙 생활을 영위하지만 자기들과 다른 인간들을 위험하다는 혐의로 벌레처럼 취급하고 간단히 박멸을 결정해버린다. 인간들이 거인들의 지식과 테크놀로지를 배우고 연대 투쟁하여 새로운 위성에서 독립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은 식민지 독립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르네 랄루는 그뒤에도 <타임마스터>에서 행성들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시간(=역사)을 역행시키는 수수께끼의 지배자들에 관해 언급하고, <간다라>에서는 유전자적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과정에 희생되어 그 변방에 숨어사는 기형 신체의 흑인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피해자의 고통만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자의 형상을 영화 속으로 소환하여 피해자의 고통과 병치시킨다. 이것은 서두에 인용된 미야자키 하야오와 결정적인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모두가 그저 피해자일 뿐 가해자의 형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원폭이 일본 사람 전부를 순식간에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탓일까? 미야자키는 과거에 제국으로서, 그리고 전후에는 선진국으로서 일본이 아시아에 대해 갖는 가해자로서의 위치에 별 의식이 없어 보인다. 유럽과 일본이라는 이분법적 공간만을 축지법으로 왕복하는 그는 <판타스틱 플래닛>을 보고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술을 삼류 싸구려라고 개탄하면서 그 원인을 ‘풍토의 상실’에서 모색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술이 삼류 싸구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풍토’가 아닌 ‘역사’의 상실에 있을 것이다. <판타스틱 플래닛>의 이야기가 조잡해 보였다면, 그것은 영화가 자꾸만 초현실적 풍경들 사이로 현실의 삶의 기억인 역사를 끌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삶이란 대개 늘 조잡해 ‘보이지’ 않던가? 우리의 실제 삶에서 그렇듯 이 애니메이션영화에는 <행성 탈출> 같은 충격적 반전이라든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드라마틱한 희생과 눈물이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낯설게 다가오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낯섦 가운데에 우리 자신의 억압된 현실과의 조우, 이것은 <판타스틱 플래닛>의 미술이 기초하고 있는 초현실주의의 미학이기도 하다. 미야자키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미야자키 하야오도 아마 이제는 조잡한 이야기의 미덕을, 기억상실 상태에 있는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너무 늦기 전에. 동시에 이것은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에도 해당하는 과제이다. 교육과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마리 이야기>의 준호들과 남우들도 여전히 많지만,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실 분’이라는 거리의 광고들도 불과 수십년 전에 식민지 시대를 마친 한국사회의 현기증나는 동시대 현실이기 때문이다.

매일 새로 시작하는 오래된 연인, <첫키스만 50번째>

상대를 바꾸지 않고도, 오래된 연인 사이로도, 그 사랑이 매일 새로울 수 있을까. 매일 사랑에 빠지고, 매일 첫 키스를 나누는 기쁨에 취할 수 있을까. <첫키스만 50번째>의 연인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루만 지나면 전날 기억을 까맣게 잊는 여자, 수많은 여성들과 하루 동안의 ‘시한부 로맨스’ 만들기에 열중하던 남자가 만나 눈이 맞아버린 것이다. 아내의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사진과 문신으로 기록하는 <메멘토>의 레너드, 동네 미아 찾기에 동참해 ‘내가 누구지?’를 연발하는 <니모를 찾아서>의 파란 물고기 도리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루시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루시가 인지하는 시점은 사고 이전과 사고 당일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헨리는 루시에게 접근하고 사랑을 예감하지만, 루시에겐 바로 전날 데이트한 헨리를, 다음날 소 닭 보듯 하는 망각의 일상이 반복된다. 헨리는 그런 루시에게 매일매일 그들의 사랑과 현실을 일깨워주기로 한다. <첫키스만 50번째>는 설정만으로 보면, 같은 하루에 갇혀사는 남자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랑을 얻고 냉소를 걷어낸다는 이야기 <사랑의 블랙홀>을 닮아 있다. 하지만 그 ‘반복되는 하루’가 자신을 객관화하고 운명을 바꾸는 기회로 작용한 <사랑의 블랙홀>과 달리, 이 영화에선 두 남녀의 사랑에 방해물인 동시에 초강력 촉매제로 편리하게 연동된다. 천하의 바람둥이가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진척없는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개과천선의 과정은 별 설득력이 없어 ‘운명’ 또는 ‘업보’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던 그 순간’에 영원히 갇혀, 사랑의 유통 기한 따위 잊고 싶다는 열망이 빚어낸 판타지다. 하와이의 노을과 야자수와 바다가 조성하는 로맨틱 무드처럼 달콤하고 비현실적인 판타지. 매일 새로 시작하는 오래된 연인에 어울리는 캐스팅이랄까. <웨딩 싱어>의 천진난만한 연인 애덤 샌들러와 드루 배리모어가 다시 만나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부를 때 그 모습이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건 흠이라면 흠이다. 애덤 샌들러의 영화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짝 친구 롭 슈나이더의 화장실 유머, <반지의 제왕>에서 충복 샘으로 열연한 숀 오스틴의 충격적인(!) 변신은 주인공들의 순애보가 무거워질 만하면 수시로 치고 나오지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럽게 만들곤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조차 저절로 오지 않는다

심영섭의 반론을 읽었다(<씨네21> 445호 참조). 그녀는 글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반여성주의는 김기덕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전 역사에, 나를 길러준 전 가족 안에, 지금도 이 사회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여성으로 나는 피해 의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 경험이 있다. 나의 페미니즘은 바로 그런 삶 속에서 태동한 것이다.” 내 글의 반론이지만, 참으로 의미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디 심영섭뿐이겠는가. 이 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성들이. 나는 그녀들의 고통을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다. 지금과 같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특히 남성사회의 일원인 나는 반성을 한다. 때문에 나 역시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속성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심영섭의 글을 읽으면서 대단히 절망했다. 심영섭은 나에게 “제발 대학원으로 돌아가서 페미니즘 이론 공부를 제대로 하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살아가면서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하루에도 몇번씩 절감하고 있는 나에게 좋은 충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심영섭은 이후 뭐라고 했는가. 페미니즘을 “당신처럼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페미니즘은 “나의 삶”이라고 단정했다. 결국 심영섭은 체험하지 않고 머리로 공부하는 남성은 도저히 페미니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심영섭은 왜 나더러 학교에 돌아가 페미니즘 이론 공부를 제대로 하라고 했는가? 체험할 수 없는 남성이라면 공부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심영섭은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었다. 가령 그녀는 “김기덕 감독이 가만히 있었는데 여성 평론가들이 비평 글을 썼는가?”라며 ‘여성’을 강조한다. 나는 내 글에서 ‘여성 평론가’라는 말을 단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고통을 논의의 시작으로 삼지만 여성의 전유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심영섭은 왜 이렇게 여성과 남성을 분리시켜놓고 논의를 전개하려 하는가? <씨네21> 340호에서 심영섭은 “세상에 재미없는 게 남자는 남자편 여자는 여자편 드는 게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혹 그동안 생각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가? 생물학적 성별이 절대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심영섭은 이걸 알고 있는가? 만약 그녀의 말이 성립한다면, 더이상 심영섭은 김기덕의 영화를 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왜냐고? 그것은 그녀가 체험하지 못한 ‘남성’ 김기덕이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심영섭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체험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 안 된다. 페미니즘이 뭔가? 남성, 여성 갈라놓고 싸우자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싸우자고 논쟁을 시작한 게 아니다.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을 토대로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지 않는다. 만약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성을 토대로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키울 뿐이다. 인간에게 생물학적 성의 분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에 비해 명확한 한계가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속박 구조를 깨자는 것이 페미니즘 아닌가. 그런데 심영섭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놓고 자신은 여성의 범주 안에 들어가 내 글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 이제 심영섭이 제기한 문제를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는 먼저 내가 제기한 폭력적인 글쓰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 지적에 대해 심영섭은 “마음에 들지 않는 단 한 단락만을 이용하여 돌팔매질을 하는, 파울 플레이 메타 비평”이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답답했다. 그래서 심영섭이 말한 대로 다시 한번 그 글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읽고 나서도 나는 한 단락만 이용해서 돌팔매질을 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심영섭은 그 글에서 그토록 길게, 그리고 교묘하게, 그것도 가장 중요한 후반부에 문제의 ‘정신과 환자 운운하는’ 그 문장을 위치시킴으로써 김기덕을 정신과 환자처럼 진단했다. 설령 그가 느낀 김기덕 감독의 에너지가 증오라고 해도, 단지 그 ‘사실’을 비평적으로 밝혀내는 것에 그쳐야지, 임상심리의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감독을 정신과 환자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오버이며 인격모독이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김기덕 감독에 대한 심영섭 비평의 에너지가 증오처럼 보인다. 그리고 심영섭은 곧이어 “강성률씨의 이러한 비판은 페미니즘 비평이 누구를 인신공격하거나 <섬> 같은 영화에 창녀가 몇명이나 나오나 세어보는 그런 식의 그런 비평은 아닌가 하는 대중의 오해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나를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정말 이런 식의 비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문제삼은 것은 심영섭이 행하는 폭력적 글쓰기였지 “창녀가 몇명이나 나오나 세어보는” 그런 비평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 않는가. 그런데도 심영섭은 의도적으로 내 논의를 흐트려놓으려고 이런 식의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내가 제기한 폭력적 글쓰기의 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다. 또한 심영섭은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자신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백상빈의 “그 글은 심영섭에 대한 정신분석이지 심영섭의 <섬>에 대한 메타 비평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참 황당했다. 어떻게 그 글이 심영섭에 대한 정신분석이 되는가?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심영섭의 <섬>에 관한, 동종의 사람이 행한 메타 비평이었다. 설령 한발 양보해 그것이 심영섭에 대한 정신분석이라고 하더라도, 그 글은 <섬>이라는 영화평론을 쓴 영화평론가 심영섭에 관해, 그 글과 더불어 분석한 것 아닌가? 나는 여기서 비평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비판에 대해 반론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비평가라면 자신의 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내 글에 대한 반론을 제외하면, 심영섭은 자신의 글에 대한 반론을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심영섭의 비판을 받은 구보씨가 반론을 했을 때도 그녀는 재반론을 하지 않았다. 이번 논쟁에서의 그녀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 대해서도 그녀는 이미 재반론을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아니, 내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이것은 명백한 비평가의 책임회피이며, 불성실한 태도이다. 여성적 정체성/시선 연구의 심화가 필요하다 이제부터 내가 제기한 문제를 짚어볼 차례이다. 폭력적 글쓰기와 더불어 내가 제기한 문제는 페미니즘 비평이 말하는 주체적 여성(또는 여성적 주체)에 대한 정의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것과 페미니즘 비평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심영섭은 내가 제기한 첫째 문제에 대해 답은 하지 않고 그 대신 내가 예로 든 것을 비판했다. <피아노>에 대해 그녀는 “제인 캠피온은 이러한 생각이 여성에게 인간에게 얼마나 폭압적인가를 드러내는 장치로 에이다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또 그녀는 “동일한 행위도 역사적 시대적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동일한 행위도 역사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나 역시 <피아노>의 그 행위가 심영섭이 말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심영섭에게 물어보자. 그녀는 정말 ‘여성에게 폭압적인가를 드러내는 장치’와 ‘여성에게 폭압적인 장치’를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것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다르며, 상황에, 감독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심영섭의 말을 빌리자면, 비평가들은 자신의 주관이 공정하다고 믿을 뿐이다. 난 페미니즘 비평이 정말로 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 즉 주체적 여성(또는 여성적 주체)에 대한 논의를 좀더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정반대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심영섭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김기덕 ‘연구’를 집중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금까지 행해온 짧은 글로는 김기덕 비판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심영섭은 <집으로…>를 논했다. 먼저 논의를 명확히 하자. 나는 페미니즘 평론가가 <집으로…>를 극찬했지, “<집으로…>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극찬했”다고 한 적이 없다. 심영섭을 비롯한 일련의 페미니즘 평자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 평했다고 한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 심영섭 아니던가. 심영섭은 이 영화를 두고, “우리가 어렸을 때 느끼고 혹은 바랐던 우리의 근원적인 욕망을 그러나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욕망을 할머니의 품속에서 찾게 하는 데 감동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모든 것을 덮어주고 항상 내편이 되는 사람을 찾은 듯싶은 기쁨, 어떤 원형적인 힘이 관객을 끌어모은 것은 아니냔 말”이라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의구심이 들었다. 심영섭이 논한 대로 영화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남성의 시각이다. 할머니를 인고의 대상으로 상대화해 놓는 ‘못된’(?) 손자의 시선이다. 적어도 페미니즘 평자라면 여성의 시각, 즉 인고의 할머니의 시각으로 이 영화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의 삶이 페미니즘’이라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기본적인 페미니즘 마인드는 있어야 한다. 세상의 가장 큰 차별이 남성에 의한 여성 차별이라는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놓칠 수 있는가? <집으로…>를 칭찬하더라도 ‘페미니스트’ 유지나는 “아무리 희생적인 어머니, 인고의 어머니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허상이라도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어머니의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유지나,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생각의 나무, 2002년, 18쪽)고 했다. 뭔가 다르지 않은가? 칭찬하더라도 페미니즘 시각으로 꼼꼼히 따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심영섭이 자유롭고 싶다며, “지금처럼 장르가 보이면 장르로 가고, 여성이 보이면 페미니즘으로 가고, 감독이 보이면 작가주의로” 간다는 것도 그렇다. 페미니즘과 장르가, 페미니즘과 작가주의가 상호 배타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심영섭이 행하는 김기덕 비평이 바로 페미니즘 작가주의 비평이다. 페미니스트들이 행하는 멜로드라마 연구가 페미니즘 멜로드라마 연구이다. 어떻게 심영섭은 이것을 두부 모 자르듯이 분리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삶이 페미니즘’이라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기본적인 페미니즘 마인드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심영섭은 <집으로…>를 두고 “왜 재미없게 페미니즘의 잣대로 논의되어져야 하는가”라고 오히려 나에게 반문한다. 내가 여기서 눈여겨본 것은 “재미없게”라는 단어이다. 자칭 페미니즘 평자라는 사람이, 페미니즘이 자신의 삶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페니미즘을 두고 감히 “재미없게”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나는 페미니즘 평자들이 김기덕만 집중 공격하고 다른 감독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했었다. 그런데 심영섭은 비평은 공정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내가 제일 황당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내가 제기한 문제는 페미니즘 시각으로 비평을 한다면 적어도 영화를 볼 때 그 잣대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복잡미묘한 세상의 모순을 제대로 직시할 것 아닌가. 적어도 페미니즘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심영섭은 갑자기 비평은 공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방법론과 비평이라는 일반론이 어떻게 동급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심영섭은 글 서두에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사회의 모순이지, 그 모순 속에서 태어난 예술 작품(혹은 비평)이어서는 안 된다”는 푸코의 말을 인용하고, 이후 “세상은 불공평한데 페미니즘 비평만 공평해야 하나”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결국 그녀는 세상이 모순되기 때문에 자신의 비평이 공평할 필요가 없다는 장막을 치고 있는 셈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지만)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김기덕 영화 역시 비판받을 필요가 없다. 김기덕을 그렇게 만든 사회를 비판해야 하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학문, 윤리, 실천의 영역 나는 심영섭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이 땅의 모든 여성은 페미니스트이다. 이 땅에 살면서 차별을 느끼지 않은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녀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미 생활이 페니미즘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가부장적 이분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페미니즘이 단지 삶의 한 부분일 뿐인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절대 인간 해방을 이룰 수 없다. 페미니즘은 학문의 영역이면서 윤리의 입장이고 실천의 운동이다. 공고한 마초 가부장의 틀을 깨는 이론적 틀이 있어야 하고, 그런 틀을 깨기 위해 싸워야 하며, 한편으로 페미니스트는 마초의 행동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밝히는 이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심영섭은 나에게는 대학원에서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라면서 정작 자신은 “학교에서 여성주의나 영화에 관한 수업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심영섭이야말로 대학원으로 돌아가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라고 진정으로 권하고 싶다. 모든 노동자가 마르크시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의식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 같은 원리로 삶이 곧 학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심영섭은 “삶 속에서 태동한” 페미니즘을 이론과 실천의 영역으로 심화해 철저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차별이 없는 세상이 빨리 오지 않겠는가. 내가 처음 비판한 것은 페미니즘 평자들의 폭력적 글쓰기가 문제가 있다는 것, 페미니즘이 말하는 주체적 여성(또는 여성적 주체)이 살아 있는 영화에 관한 정의가 너무 추상적이라는 것, 그리고 페미니즘의 잣대가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목소리만 컸던 심영섭은 그 어느 것도 답을 주지 못했다.

[현지보고] 원더풀 <스캔들…>, 뷰티풀 <봄 여름…>!

지금 뉴욕에서는 한국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링컨센터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공동주관한 영화제인 제33회 뉴디렉터스/뉴필름스 시리즈(3월24일∼4월4일)에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관객은 물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상영됐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둔 것은 물론 배급사들로부터도 과거 한국영화들과는 다른 적극적인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이번 행사가 큰 의미를 갖게 됐다. 특히 이번 영화제 뒤 4월2일부터 뉴욕과 LA 개봉에 들어간 <봄, 여름…>은 대부분의 평론가들로부터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두고 있다. 뉴디렉터스/뉴필름 시리즈는 신인감독들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좋은 창구로, 작품 상영은 물론 감독과 관객 사이에 질의 응답시간을 마련해 영화학도는 물론 일반 영화팬에게도 인기있는 행사다. 이번 영화제에는 김 감독과 이 감독이 직접 참석,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링컨센터 월터리드 시어터에서 상영된 <봄 여름…>은 김 감독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3월31일 2회 상영이 모두 매진됐다. 링컨센터 앨리스 털리홀에서 소개된 <스캔들…>의 경우 비교적 관객이 몰리지 않는 월요일에 첫 상영이 편성됐음에도 불구하고 800여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 등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스캔들…>을 관람한 관객은 이 감독에게 “영화가 너무 아름답다”는 인사로 매번 질문을 시작했다. 이중 한 관객은 “특정영화나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이 감독은 “특정 작품이나 감독이 아니라 지금까지 봐왔던 많은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은 많은 여행을 하면서 받은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관객은 <스캔들…>에 대한 한국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봄 여름…> 관객은 과거 김 감독의 작품과 이번 작품이 서로 크게 다른 느낌을 준다며, “혹시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이번 영화가 과거의 영화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며 “늘 인간의 삶이 잔인하다는 것을 소재로 다루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장면을 스크린에서 직접 보여주지 않았을 따름”이라고 답변했다. <뉴욕타임즈>, <스캔들…> 호평으로 관객 불러 이 감독의 <스캔들…>은 아직 정식으로 미주 배급사가 없기 때문에 매년 이 영화제의 모든 영화를 리뷰하는 <뉴욕타임스>만이 평론기사를 썼다. <뉴욕타임스>의 리뷰는 저예산 독립영화나 외국영화들에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일부 경우에는 영화 개봉시 흥행은 물론 각종 권위있는 영화제의 후보에 오르는 데도 큰 입김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리뷰는 영화제 당시 프린트된 평론기사를 정식 개봉 때에도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스캔들…> 리뷰를 쓴 <뉴욕타임스> 평론가 엘비스 미첼은 성적인 정복을 잔인하리만치 잘 다룬 이 작품이 크리스토퍼 햄튼의 버전 <위험한 정사>의 구상 메커니즘을 사용했다며, 여기에 18세기 조선시대의 사회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압박을 가미해 재편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작품화된 이야기에 이 감독의 또 다른 버전을 보여준 것을 호평했다. 이번 <스캔들…>의 2회 상영회는 <뉴욕타임스> 리뷰로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지난 2002년 배급사 엠파이어픽처스를 통해 <섬>으로 미국에 첫 인사를 했던 김기덕 감독은 지금까지 낚싯바늘의 독특한 사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러나 이번 <봄 여름…>을 통해 또 다른 면모를 선보여 평론가들의 연이은 호평을 받고 있다. 평론 전문 웹사이트 ‘라튼 토마토 닷 컴’(www.rottentomatoes.com)에 따르면 4월6일 현재 접수된 총 20개의 리뷰 모두가 호평이어서, 전체 리뷰 평균이 100%를 기록했다. 이중에는 <뉴욕타임스>는 물론 <빌리지 보이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뉴욕 데일리 뉴스> <뉴욕 포스트> <타임 아웃 뉴욕> 등 대표적인 미디어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의 케네스 투란은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명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평했고, <뉴욕타임스>의 A. O. 스콧은 “이 섬세한 작품에서 김기덕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정수를 분리시켰고, 놀랍게도 이와 함께 인간 경험의 영역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뉴욕 매거진>은 “감상적이진 않지만 욕망과 노화에 대한 강렬한 일깨움을 준다”고 했고, <뉴욕 포스트>의 V. A. 뮤제토는 “종반에는, 스크린에서나 관객 모두에서 내적인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썼다. 이외에도 <할리우드 리포터>의 커크 허니컷은 “소재와 리듬, 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컨트롤을 보여준다”고 했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오언 클리버맨은 “이 영화의 업적은 관객이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어렴풋이나마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희망과 파괴, 고뇌, 희열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영화 섹션의 첫 페이지 전면을 할애한 <타임 아웃 뉴욕>의 마이크 드안젤로는 “피의 남작에서 선 매스터로”(from blood baron to Zen master)라는 제목으로 김 감독에 대한 인터뷰 기사와 리뷰를 다뤘다. 평론가들은 <봄 여름…>을 현재 개봉 중인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마틴 스코시즈의 <쿤둔> 등에 비교하면서, 이들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인간 본성 속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교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또 4월2일 개봉한 <봄 여름…>은 뉴욕과 LA 6개 극장에서 개봉해 4만2561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는 4월2∼4일 주말 흥행 순위로 볼 때 55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스크린당 평균 수익으로 보면 7093달러를 기록, 최근 개봉된 <도그빌>(7813달러)과 흥행 1위를 차지한 <헬보이>(7652달러), <좋은 여행>(7608달러)에 이어 4위를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뉴욕의 대표적인 독립영화 극장 안젤리카 필름센터와 링컨 플라자 시어터에서 개봉된 이 작품은 9일에는 LA 인근 지역에서 확장 상영되고 16일에는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포틀랜드에서 개봉되며, 23일 댄버, 30일 댈러스, 디트로이트 미네아폴리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5월7일에는 시카고와 뉴헤이븐 커네디컷, 세인트 루이스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개인적인 스케줄 때문이 이번 뉴욕 방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는 이재용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간다”며 “영화 내용이 외국에서 너무 잘 알려진 내용이라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많이 들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반응이 상당히 좋아 놀랐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의 리뷰 효과가 이렇게 큰지 몰랐었다”는 이 감독은 이번 방문 동안 이 작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인 배급사 키노 인터내셔널 대표들과 <스캔들…>의 미국 수출 건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키노 인터내셔널은 과거 <취화선>과 <텔미썸딩>을 미국에 배급한 바 있다. 이같은 배급사들의 적극적인 자세는 과거와 다른 큰 변화로 눈길을 끈다. 특히 김 감독의 영화를 미주에 배급하는 소니픽처스의 경우 홍보에 적극성을 띠었다. 김기덕 감독, 소니픽처스와 미팅 <섬>과 <나쁜 남자> <해안선> 등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은 외국에서 임권택 감독과 함께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영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5회 이상 회고전이 열린 김 감독은 특히 미국의 경우 <춘향뎐>과 <취화선>을 개봉했던 임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2개 작품을 정식 개봉하게 된 연출가이기 때문. 이번 작품의 뉴욕 홍보 담당자 소피 글룩에 따르면 방문 기간 동안 김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타임 아웃 뉴욕>과 <빌리지 보이스> 등의 대표적인 뉴욕 주간지는 물론이고 , 인터넷 연예 사이트 ‘살롱 닷 컴’(Salon.com), <토론토 글로브> <보스턴 헤롤드> 등의 취재 요청이 잇따랐다. 김 감독은 작품 홍보를 위해 뉴욕 외에도 LA와 샌프란시스코, 댈러스, 워싱턴 D.C. 등도 방문하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이렇게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 “영화는 관객과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미국은 동양의 사상과 문화정신적인 세계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며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번 방문 기간 중 소니픽처스와 이같은 소재를 가진 영화 제작에 대해 미팅을 가졌다”고 밝혔다. 김 감독에 따르면 아직은 이른 단계이지만 아시안 정서를 다룬 영화 제작안에 대해 소니픽처스쪽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스크립이 준비되는 대로 더 자세한 내용을 논의하게 된다고 했다.

[영화가 단신]<송환>, 다큐 최다관객 신기록 외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다룬 영화 <송환>이 12일까지 1만8천명을 동원해 <영매>가 가지고 있던 다큐멘터리 최다 극장 관객수 기록(1만6천명)을 경신했다고 14일 밝혔다. <송환>은 전국 5개 스크린에서 상영중이며 15일부터 서울 코아아트홀에서, 16일부터 목포의 제일극장과 안산의 시네마이즈 극장에서 각각 추가상영될 예정이다. ▶9일 개봉한 영화 <바람의 전설>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이 발매됐다. <바람의 전설>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30대 회사원이 어느날 우연히 사교댄스를 배우며 `인생역전'을 경험한다는 줄거리의 영화로 OST에는 엔딩 장면에 흐르는 'He was Beautiful'과 주인공들이 자이브를 출 때 나오는 'Hit the road Jack' 등 13곡을 담고 있다. ▶코아아트홀은 23일부터 이 극장에서 교차로 상영되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밝은 미래>와 <강령>에 대해 현장에서 표를 구매하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두 편 을 1만원에 관람하는 할인가격을 제공한다. ▶윤도현 밴드가 영화 <효자동 이발사>(제작 청어람)의 프로모션용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한다. 윤도현밴드는 남진의 히트곡 '님과 함께'를 락 버전으로 편곡해 리메이크하며 제작사는 이를 바탕으로 홍보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방송 매체나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송강호 주연의 <효자동 이발사>는 소박하게 살아가던 이발사가 우연히 대통령의 이발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휴먼 코미디로, 신인 임찬상 감독의 데뷔작. 다음달 5일 개봉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2] - 상영작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상영작 스가타 산시로 姿三四郞 1943년/ 흑백 / 82분 1936년에 도호영화사의 전신인 P.C.L(Photo Chemical Laboration)에 입사해 영화계에 입문한 구로사와에게 감독의 직함을 준 그의 데뷔작. 영화는 스가타 산시로라는 청년이 스승의 지도 아래 훌륭한 유도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평소 유도에 관심이 많았던 구로사와는 이 영화를 일종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로 만들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평생의 중요 주제가 될 사제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그려내기도 했다. 초심자의 영화답게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안달이 난 수다쟁이”가 만든 것 같다는 평을 들은 이 영화는 급속한 리듬의 편집이라든지 기후의 극적인 기능 같은 요소들에서 구로사와의 차후 발전을 예고한다. 개봉 당시 비평과 흥행에서 꽤 성적이 좋아서 스튜디오의 지시에 따라 구로사와는 1945년에 속편을 만들었다. 주정뱅이 천사 醉いどれ天使 1948년/ 흑백 / 98분 음습한 슬럼가를 배경으로 상충하는 두 인물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리얼리즘적인 터치로 그려진다. 술에 절어 살지만 직업 정신만은 투철한 의사 사나다에게 마츠나가라는 야쿠자가 치료를 해달라며 찾아온다. 마츠나가를 진찰한 사나다는 그가 폐병에 걸렸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겉으로 강직한 사내인 체하는 사나다는 마츠나가의 도움을 거절한다. 인물의 심리 묘사와 그에 상응하는 공간 처리가 뛰어난 이 영화는 구로사와가 특히 좋아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 마침내 나는 내 자신이 되었다. 이것은 내 영화였다”라고 구로사와는 말했다. 한편으로 <주정뱅이 천사>는 이후 구로사와의 얼굴이 될 미후네 도시로가 구로사와와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영화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 영화이기도 하다. 들개 野良犬 1949년/ 흑백 / 122분 실제로 권총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형사의 이야기를 들은 구로사와는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영화화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조르주 심농식으로 만들어보고자 의도한 결과 나온 영화가 <들개>이다. 영화는 어느 몹시 더운 날 만원버스 안에서 그만 권총을 소매치기당하고 만 신참 형사 무라카미가 잃어버린 자신의 권총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담았다. 마치 줄스 다신의 다큐누아르영화 <네이키드 시티>를 연상시키듯 꼼꼼하게 수사 과정을 그려가면서 구로사와는 그 과정 안에다가 패전 뒤 혼돈에 빠져든 일본의 단면들도 담아냈다. <들개>는 범죄영화의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선악의 판단의 문제를 진지하게 묻는다는 점에서 구로사와의 초기작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종종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이키루>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나온 영화다.” <이키루>의 착상에 대해 구로사와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영화는 죽음이 자신의 코앞에 닥쳤을 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된 인물을 통해, 그의 임박한 죽음을 통해, 올바른 삶을 성찰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암에 걸려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시청 공무원이다. 이 인물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의 숭고함을 빼어나게 묘사한 <이키루>는 구로사와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정교하게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예를 들어 영화학자 노엘 버치는 여기서 알랭 로브그리예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정밀한 형식화를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키루 生きる 1952년/ 흑백 / 143분 구로사와의 최고 걸작이며, 일본 영화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 잘 알려져 있듯 영화는 산적들로부터 빈번히 약탈당하던 농부들이 산적들에게 맞설 사무라이들을 고용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7인의 사무라이>는 우선 그 스타일의 역동성으로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영화다. 구로사와는 빼어난 미장센과 편집을 통해 움직이는 사진으로서 영화는 운동감을 가져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편으로 여기서 구로사와는 일곱명의 사무라이들 모두에게 캐릭터를 부여주고는 그들이 누구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를 묻는다. 박진감 넘치는 최상급의 엔터테인먼트가 되면서도 인간을 들여다보는 구로사와의 깊이있는 시선도 들어가 있는 영화, 그렇게 해서 관객과 역동적인 대화를 나누는 영화가 〈7인의 사무라이>이다.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년/ 흑백 / 207분 구로사와가 50년대에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으로 꼽히는 <거미집의 성>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개작한 영화다. 마녀로부터 영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 와시즈는 그 예언에 따라 계략을 써서 영주의 자리에 오르지만 결국은 파멸하고 만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구로사와 자신의 말에 따르면 <거미집의 성>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안개와 바람 같은 기후 요소들을 드라마틱한 요소로 만들어낼 줄 아는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한다. 한편으로 출중한 아름다움과 형식적 정밀함이 돋보이는 <거미집의 성>은 일본의 전통극인 노(能)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양식화한 연기, 전형화한 인물, 여백이 많은 배경, 정적과 격발의 교차 등은 모두 그 실례가 되는 요소들. 거미집의 성 蜘蛛巢城 1957년/ 흑백 / 110분 숨은 요새의 세 악인 隱し砦の三惡人 1958년/ 흑백 / 139분 구로사와가 처음으로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도전해 만든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그가 호쾌한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임을 입증하는 영화다. 16세기의 전국 시대. 우연히 황금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차지하려는 두 농부, 그리고 그 황금의 소유자인 공주와 그녀를 호위하는 장군이 황금을 짊어진 채 적진을 통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구로사와에 대한 비평서를 집필한 영화비평가 도널드 리치는 마치 루이스 브뉘엘이 만든 <쾌걸 조로>와 같다는 비유로 이 영화를 잘 정의내린 바 있다. 재미있는 모험극인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은 무엇보다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적진에서 공주를 데려온다는 <스타워즈>의 기본 설정뿐 아니라 R2D2나 C3PO 같은 캐릭터들도 루카스가 구로사와의 영화로부터 ‘모방’한 것.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惡い奴ほどよく眠る 1960년/ 흑백 / 151분 구로사와 프로덕션을 설립한 구로사와 감독이 그 첫 번째 영화로 만든 작품. 구로사와는 자신이 운영할 회사의 첫 영화로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함의를 가진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하는 부패와 부정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데 뛰어들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영화는 대기업 회장의 딸과 회장 비서의 결혼식 피로연에 의문의 케이크가 배달되는 것을 시작으로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되는 절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노엘 버치는 그런 이야기를 담은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에 대해 ‘대기업이란 사악한 세계’에 대한 격렬하고 풍자적이면서 도덕적인 비판을 담은 영화로 오시마 나기사 영화의 한 국면을 미리 보여준다고 썼다. 요짐보 用心棒 1961년/ 흑백 / 110분 두 대립하는 집단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이들을 물리치는 한 떠돌이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그린 활기 넘치는 시대극. 개봉 당시 일본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둔 <요짐보>는 당대 일본의 시대극 영화들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심지어 당시 점점 인기를 잃어가던 그런 유의 영화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기도 한 영화였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시대극 장르의 틀 밖으로 멀리 나가지 않으면서도 종래의 틀을 벗어나기도 하는 ‘파격’ 혹은 ‘혁신’을 선보였다. 우선 칼로 몸을 벨 때 리얼한 사운드 효과를 부가하는 것부터가 이전의 시대극 영화들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구로사와는 잘린 손목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폭력의 묘사를 좀더 리얼한 수준으로 끌고 갔다. 일본에서 얼마 뒤 이른바 ‘잔혹영화’라 불리는 일종의 장르가 생겨난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영화가 <요짐보>와 후속작인 <쓰바키 산주로>였다. <요짐보>의 상업적 성공 이후 그 속편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구로사와가 만든 영화가 쾌활한 사무라이 영화 <쓰바키 산주로>이다. 영화는 전편에 이어 떠돌이 사무라이 산주로가 등장해 이번에는 정의롭기는 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한 젊은 사무라이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쓰바키 산주로>는 비록 <요짐보>의 후속편이긴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의 속편은 아닌 영화이다. 장르에서 전통적인 시대극에 가깝다는 점이나 전반적으로 좀더 직설적인 유머가 구사된다는 점에서 <쓰바키 산주로>는 전작과 구별된다. 구로사와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젊은 관객은 <요짐보>를, 그리고 좀더 나이가 많은 이들은 <쓰바키 산주로>를 좋아했다고. 몸에서 분수가 터지듯 피를 뿜어내는 마지막 대결장면은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쓰바키 산주로 椿三十郞 1962년/ 흑백 / 96분 에드 맥베인의 오랫동안 잊혀졌던 펄프추리소설 <왕의 몸값>을 영화화한 <천국과 지옥>은 구로사와가 현대 스릴러영화에서도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걸작이다. 구두회사의 이사인 곤도에게 아들을 납치했으니 거액의 몸값을 준비하라는 전화가 걸려오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이어서 영화는 곤도의 딜레마에서부터 유괴범의 체포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천국과 지옥>은 ‘천국편’과 ‘지옥편’이라 불릴 수 있는 두개의 파트로 구성된 영화다. 이 가운데 그야말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곤도의 저택에서 펼쳐지는 전반부가 곤도의 딜레마가 중심인 일종의 도덕극스릴러라면 시선을 곤도의 저택 아래로 가져간 후반부는 본격 경찰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이 기하학적인 내러티브에다가 도덕적 딜레마, 범죄영화로서의 흥미, 당대 사회에 대한 시선 모두를 담으려 하는 욕심을 부린다. 천국과 지옥 天國と地獄 1963년/ 흑백 / 143분 <붉은 수염>은 <요짐보>와 <쓰바키 산주로> 이후 그것들과는 다른 식의 영화를 시도해보고자 했던 구로사와의 의중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대극이긴 하되 활극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시대극이 만들어졌다. 도쿠가와 시대 말기, ‘화란’에서 선진 의술을 배워온 야스모토는 니이데가 소장으로 있는 시골 마을의 공공 진료소에서 수련의로 일해야 하는데, 자신과 같은 인재가 그런 곳에서 썩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다. 그러나 진료소에서의 경험은 야스모토를 의사다운 의사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시켜준다. 여기서 그는 일명 ‘붉은 수염’ 니이데에게서 인간성, 인내, 용기, 통찰력을 배우게 된다. <붉은 수염>은 사제관계에 대한 교훈극이지만 그런 고리타분하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루함 없이 극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흥미롭게 들려줄 줄 아는 영화다. 붉은 수염 赤ひげ 1965년/ 흑백 / 185분 란 亂 1985년/ 컬러 / 160분 거의 10여년 동안 구로사와의 머릿속을 떠돌던 <란>이라는 프로젝트는,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을 영화, 그래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영화가 될 만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완성된 <란>은 시각적 화려함으로 넘쳐나는 거대 규모의 에픽이 되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느슨하게 스크린 위에 옮겨놓는다. 70평생의 대부분을 전쟁을 치르며 살아온 늙은 영주 히데토라는 이제는 세 아들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나눠주고 여생을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셋째아들의 충고를 듣지 않은 그는 그런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몰랐다. “미친 세상에서는 오직 미친 자만이 정상이다”라는 히데토라의 외침이 절절하게 들리는 이 영화에서 구로사와는 하늘 위에서 인간의 조건을 진단하고자 한다. 꿈 夢 1990년/ 컬러 / 119분 노년의 구로사와는 제작비를 구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전작 <란>도 힘들게 제작자를 구해 만들었던 그는 그 영화를 만든 이후에도 또다시 5년이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번에는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가 도움이 되었다. 영화는 여우가 시집가는 행렬을 훔쳐보고 두려움에 떠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여우비>부터 모두 8개의 에피소드를 모아놓았다. 각 에피소드가 시작하기 전에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자막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건 철저히 ‘나’의 꿈을 모아놓은 영화, 즉 구로사와의 지적이고 사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꿈>은 그 함의가 긍정적인 것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든 몽환의 제의를 벌이는 영화이고 아울러 구로사와가 돌비 사운드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실험해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마다다요 まあだだよ 193년/ 컬러 / 134분 작가인 우치다 햐켄의 노년의 삶을 그린 <마다아요>는 구로사와의 마지막 영화이다. 영화는 햐켄이 글을 쓰는 데 집중하기 위해 교직을 떠나던 1943년부터 1962년 그의 77살 생일 파티가 있던 날까지 일어난 일들을 전형적인 구로사와적인 목소리보다는 좀더 나직한 톤으로 일종의 에세이를 들려주듯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이미 교직을 떠났어도 제자들에게 여전히 스승인 햐켄은 상상력과 감수성이 유별난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구로사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늙은 햐켄이 꾸는 꿈 안에서 아름다운 색깔의 구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것은 영화 속 햐켄의 상상일 뿐 아니라 구로사와가 우리에게 보여준 마지막 상상력의 재현이란 점에서 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1] ▶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2] - 상영작 소개

일본대표 작가주의를 만나다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감독으로 꼽히는 구로사와 기요시(49)(사진)의 최근작 두편이 동시에 개봉한다. 2000년작인 <강령>은 개인 욕망과 가족 가치 사이의 균열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깔끔한 공포물이며, 2003년작 <밝은 미래>는 불안하기 그지없는 젊음의 풍경을 따듯하게 그리면서 그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일본·유럽 영화는 홀대받는 상황에서 이 두 영화는 서울 코아아트홀에서 23일부터 번갈아 상영된다. 파국 부르는 욕망 ‘정교한 공포’ 강령=녹음기사 사토(야쿠소 고지)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아내와 산다. 아내 준코(후부키 준)는 <식스 센스>의 꼬마아이처럼 죽은 사람을 보며,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기까지 한다. 어느날 사토가 숲에서 바람소리를 녹음하고 있는 사이에, 유괴된 소녀가 도망치다가 사토의 녹음기기를 담는 트렁크 안에 숨는다. 이를 모르는 사토는 트렁크의 자물쇠를 잠그고 집에 와 이틀 동안 방치한다. 아내 준코의 영감이 작동해 트렁크 속의 소녀를 찾아낸다. 다행히 소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준코는 소녀를 부모에게 돌려주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사토에게 잔 꾀를 낸다. 제3의 장소를 경찰에게 알려주고, 소녀를 그곳으로 옮겨놓자는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3의 장소로 옮기기 전에 소녀가 사고로 죽고 궁지에 몰린 사토부부는 소녀의 시체를 야산에 매장한다. 좀더 화려하게 살고 싶은 중산층 부부의 욕망이 결국 파국을 불러오는 설정은 많이 봐온 것이다. <강령>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소녀의 시체를 묻고 괴로워하는 사토 부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준코의 능력이 저주받은 능력인 것만 같다. 그러나 마지막의 반전은 그 모든 걸 뒤집어 엎는다. 정말 불행은 그 저주받은 능력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데에 기인하며,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개인의 욕망은 부부애를 결정적으로 배신한다. 그 결론도 섬뜩하지만, 더 섬뜩한 건 결론을 넌지시 던져놓고 바로 영화를 끝내버리는 정교한 구성이다. 여운이 오래 가는, 잘 쓰여진 단편 소설 같은 느낌의 영화다. 불안한 청춘 향한 따뜻한 시선 밝은 미래=20대의 니무라(오다기리 조)와 마모루(아사노 다나노부)는 공장 동료다. 니무라는 자면서 이런저런 꿈을 꾸는 게 취미이고, 마모루는 독이 강한 붉은 해파리를 애지중지 키운다. 둘 다 자신의 삶에 미래를 어떻게 위치지워야 할지 모른 채 대충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얌전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공장 사장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해고된 마모루는 바로 그날 사장 가족들을 살해하고 감옥에 가서 자살한다. 혼자 남은 니무라는 극한의 불안 속에 방황하다가 마모루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조금씩 현실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밝은 미래>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20대 불안한 청춘을 바라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시선이다.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손가락질도 예찬도 하지 않는다. 자신도 답을 모르지만 그들처럼 괴롭고 불안하다는 듯한 태도로 그들과 함께 간다. “우리 자신이 주위를 비추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해파리처럼 자기 자신만은 빛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게 구로사와 기요시의 말이다.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이었던 후지 다츠야가 마모루의 아버지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