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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한류관광, 대중문화계도 돕는다

강제규 감독 등 24명 자문위원 위촉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류(韓流)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대중문화계의 유명 인사들이 발벗고 나선다. 한국관광공사는 해외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공헌한 문화계 인사 9명을 포함한 24명을 `한류관광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자문위원단에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과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 제작자인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영화 <무사>의 김성수 감독, 드라마 <겨울연가>의 윤석호 감독, 김영욱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박형식 정동극장 극장장 등이 포함됐다. 또 한국문화관광홍보대사인 탤런트 이병헌, 김희선, 최지우씨의 소속사 대표들도 참여한다. 자문위원단은 이들과 함께 문화관광부 권경상 관광국장, 최불암 웰컴투코리아시민협의회 회장, 손대현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 김춘추 킴스여행사 대표 등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 업계 인사들이 총망라돼 구성됐다. 관광공사는 올해와 내년을 `한류관광의 해'로 정하고 올초 유건 관광공사 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한류관광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자문위원회는 분기마다 한 차례 정례회의를 갖고 한류를 이용한 관광 마케팅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위촉식은 19일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에서 열리며 이날 제1차 자문위원회도 개최된다.(서울=연합뉴스)

패션 오브 러브스토리, <디자이닝 우먼>

Designing Women 1957년 감독 빈센트 미넬리 출연 그레고리 펙 EBS 5월16일(일) 낮 2시 영화 속 의상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최근 개봉했던 <다운 위드 러브>를 봐도 그렇다.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원색의 패션,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배우들 움직임이 흥겨웠다. 어느 바람둥이와 베스트셀러 작가의 연애담이지만 줄거리보다 시각적 즐거움이 더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다운 위드 러브> 같은 영화를 보며 만족했던 이라면 <디자이닝 우먼> 역시 비슷할 것이다. 로렌 바콜이 의상 디자이너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950년대 복고풍 의상이라고는 하지만 호화판 의상의 등장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압도할 지경이다. <파리의 아메리칸>(1952)의 빈센트 미넬리 감독작이며 그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디자이닝 우먼>은 한 남성과 여성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스포츠 기자 마이크는 취재차 방문한 휴양지에서 성공한 의상 디자이너 마릴라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린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해 충분히 파악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결혼까지 골인한다. 휴양지에게 꿈같은 신혼여행을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온 두 사람.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고 소박한 삶을 꿈꿨던 마이크, 화려한 생활에 익숙한 마릴라는 끊임없이 티격태격 다투게 된다. 마릴라는 마이크 친구들이라면 질색한다. 고전영화에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디자이닝 우먼>은 하나의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스크루볼코미디라는 장르다. 하워드 혹스나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를 통해 1930년대 이후를 풍미한 이 장르는 1950년대에도 할리우드영화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디자이닝 우먼>은 철저하게 성대결의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남녀가 각기 속한 직업의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이크가 남성적인 스포츠 세계에 매료되어 있다면 여성인 마릴라는 의상 디자인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둘의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하고 때로 삐걱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일 지경이다. 영화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마릴라의 능력 또한 마이클의 신경을 자극하게 되며 이는 결국 이혼으로 향하는 함정으로 빠진다. 그럼에도 이 커플은 온갖 곤경을 함께 딛고 일어서면서 이혼 위기를 극복해낸다. 고리타분할 지경으로 장르의 관성에 익숙한 <디자이닝 우먼>은 같은 이유로 지루한 면도 없지 않지만 경쾌하고 빠른 영화 흐름이 이를 상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어느 비평가는 빈센트 미넬리의 영화에서 주연 캐릭터들이 처한 불안정하고 모순적 상황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영화의 시각적 구성에 영향을 끼치는 양상을 논한 적 있다. <디자이닝 우먼>에선 인물들이 결혼이라는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또한 끊임없이 서로를 괴롭히는 과정, 그리고 화해에 이르는 상황이 될 것이다. <디자이닝 우먼>은 <파리의 아메리칸>이나 <지지>만큼 걸작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수작은 아니지만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훌륭한 장르영화를 만들었던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역량을 확인하기엔 족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시스템에 영혼을 팔지 말라, 배우 윤주상

연극배우 윤주상이 무대에 등장했다.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형극장이어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반면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효자동 이발사>를 보고 그가 연기한 ‘무운’과 ‘쌀집아저씨’가 동일 인물임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그가 영화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 지는 10년. <태백산맥> <쉬리> <유령> <킬러들의 수다> 등 필모그래피도 제법 화려하다. 그런 그를 관객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평범한 외모 때문이 아니라 띄엄띄엄 그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긴 간격들은, 연극 무대에 대한 그의 애정이 남달리 깊고 진했다는 것, 그리고 젊은 배우를 편애하는 충무로의 풍토가 길게 이어져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윤주상은 34년 동안 150여편의 연극에 출연했지만, 영화 출연작은 10편 안팎에 머문다. 그는 요즘 영화를 좀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한다. “젊었을 때는 연극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역시 연극 못지않은 깊이를 지닌 전문적인 영역이지 않나. 그래서 매력적이다.” 배우로서 또 다른 재미를 놓쳐왔다는 이야기.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싶은 배우로서, 영화계에 대한 바람도 잊지 않는다. “연극은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지만 영화는 언제나 젊은 얼굴을 원한다. 영화도 연극처럼 관객의 폭이 넓어지면 나도 비중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영화들에서 그런 경향이 엿보여서 기대가 된다.” 연륜이 준 선물인지, 연기에 대한 그의 철학은 근사하게 들린다. “작은 배역은 없다. 영화 속의 모든 인물에게는 자기만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겐 처음으로 관객에게 자신을 인지시킨 <유령>의 함장에서 최근 연기한 역할에 이르기까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생전 처음 와이어액션을 소화하면서 영화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무운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안성기와 함께 특별훈련까지 받아가며 노력한 끝에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제법’이라는 칭찬까지 들었다면서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효자동 이발사>의 쌀집아저씨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큰 소리로 앞에 나서서 떠들어도 정작 가장 공허한 사람”이라면서 애착을 보인다. “무대에서는 내가 제왕이라고 생각한다”는 윤주상. 혹시 오늘날 영화계 후배들의 가벼움을 우려하고 있지 않을까. ‘제왕’의 품위는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배우는 첫째로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만약’이라는 가정법 속에 자신을 옮겨넣으면서 자신의 정서적인 폭을 넓혀야 한다. 연기력은 그 다음의 문제다.” 실제로 그는 모두가 알 만한 젊은 영화배우에게 짧게나마 발성과 연기를 가르친 적도 있다. 그가 보는 문제점은 개개인의 가능성과 의욕 부족이 아니라 “배우의 영혼을 갉아먹는” 연예계의 시스템. 후배를 혹사하는 매니저에게, “니가 문제야”라며 직설적으로 말한 적도 있다. 그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목소리를 얻게 된 것은 두번의 계기 때문이다. 첫 공연 이후, “대사 전달도 안 된다”는 가혹한 평가를 받은 뒤, 발성법과 화술, 구문법까지 목소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고 그로 인해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이후 십여년 뒤. 성대수술을 해야 할 만큼 커다란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치료과정을 통해 결국 본래 자신의 음역을 넓힐 수 있었다. 이처럼 장애를 기회로 바꾸어낸 그는 앞으로도 “나이에 구속되지 않는, 늘 준비된 배우”가 되길 희망한다. “늦기 전에 내 영혼이 담길 만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그 깊은 목소리처럼, 세월따라 그의 역량도 더 깊어질 것이다.

시네마서비스의 삼고초려

역시 새 부대에는 새 술인가보다. 4월26일 플레너스 임시주주총회를 거쳤고, 6월1일 물적 분할하게 될 시네마서비스(대표이사 김정상 예정)에는 새 출발에 발맞춰 새 인적 구성의 바람도 불고 있다. ‘심재륜 전 부산 고등검찰청장(왼쪽)’을 회사의 고문으로 전격 영입한 것. 이런 영입 결정은 앞으로 있을 회사의 안건과 계획을 신중하고 명확하게 수렴할 수 있는 인물을 찾던 중 결정된 것이다. 실상 2002년부터 플레너스의 고문변호사를 맡아왔던 심재륜씨는 1천만 관객 시대를 연 <실미도>의 실무에도 많은 참여를 해왔고, 이번 시네마서비스의 물적 분할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입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라는데, 이유는 심재륜씨가 여러 번에 걸쳐 그 자리를 고사했기 때문. 그런데 어떻게 시네마서비스는 그들이 원하는 인재를 모셔올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강우석 감독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꽤 큰 역할을 했다. 강우석 감독은 심재륜씨에게 사적으로 존경을 표할 뿐 아니라, 차기작 <공공의 적2>의 강철중의 캐릭터를 구상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검찰청을 주무대로 할 <공공의 적2>에서 심재륜씨의 ‘전직’ 경험은 이런저런 조언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심재륜씨는 검찰계 재직 시절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 파헤쳐온 것으로 이미 명성을 알린 바 있다. 정한석

우산 없는 세상

우리 주위의 물건들은 최소한 두 가지 상이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개입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읽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이다. 예를 들어 우산은 비가 내리는 세상을 비에 젖지 않고 건너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인 동시에, 우산 디자이너의 생각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존재조건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텍스트인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책으로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담은 창고라 할 수 있다. 사물의 도구로서의 기능이 인간에게 부과되는 외부세계의 조건과 한계를 넘어서 세계를 우리의 의지대로 변형시키는 현실적인 목적에 종사한다면, 그것의 텍스트로서의 기능은 이렇게 조건지어진 우리의 존재양상을 돌이켜보는 사유에 종사한다. 전자가 ‘어떻게’라는 질문의 결과라면, 후자는 ‘왜’ 또는 ‘무엇을 위하여‘라는 질문의 원인이다. 후자의 질문은 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왜 우리는 비를 피해야 하는 존재인가를 묻고, 우리가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방법론적인 사유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사물을 이처럼 텍스트로서 읽고 사유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존재방식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 연재될 이 글은 우리 주위의 사소한 물건들과 사소한 현상들을 다룰 것이다. 주목받지 못한 채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하찮은 사물들 속에 세상에 관한 잊혀진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얘기가 나온 김에 우산을 텍스트로 읽어보자. 우산을 예로 든 것은 엊저녁 늦은 시간에 축축이 내리는 봄비 속에서 약간 감상적인 기분으로 한적한 비탈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에 우산이 날아가는 낭패를 겪은 때문이다.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낚아챈 것처럼 우산살과 천이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바람은 그것을 길가의 어두운 숲속 어딘가에 처박아버렸고 내 손에는 접이식 우산의 앙상한 하반신만이 남아 있었다. 금세 온몸이 젖어서 아내에게 구조요청을 했으나 나의 위치를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비를 맞으며 건물들이 있는 큰길까지 10여분을 걸어야만 했다. 이 무심한 자연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면구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련하게 젖은 몸을 웅크린 존재 하나가 자신의 발밑을 기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비의 신 아래서,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내가 이고 다니는 가장 오래된 우산인 머리카락과 눈썹에 의존하며 빗길을 걸었다. 예전에 잃어버리면 핀잔을 들어야 했던 우산은 이제 직원체육대회나 동창회 같은 데서 공짜로 나눠주는, 잃어버려도 표가 나지 않는 가치없는 물건이 되었다. 현관 신발장 속에, 자동차 트렁크 속에 대체 몇개의 우산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들은 명색이 내 소유물이지 언젠가 내 손에 들어와 나의 시선 바깥에서 빈둥거리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물건이 되었다. 우산의 구조는 그것이 발명된 이래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디자이너들은 그 무게와 부피를 줄임으로써 그것의 물건으로서의 가치와 존재감을 극소화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얇은 천조각 하나로 국지적인 ‘맑음’을 만들어내는 이 놀라운 존재가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죄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숙이고 건너가야 할 노천이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주차장에서 현관까지 몇 발짝 안 되는 여백만이 아직 우리의 머리 위에 남아 있다. 지구 전체가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단단한 우산들로 덮어씌워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유 또한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 때로 우리는 머리 위의 우산을 벗어던지고 비 내리는 세상을 맨몸으로 건너갈 필요가 있다. 안규철/ 미술가

장대한 위용으로 부활한 호머의 서사시 <트로이> [1] - 뉴욕 첫 시사기

짙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수천대의 군함, 그 바다와 하늘을 호령하는 신비로운 금빛의 용사. 트로이 전쟁의 서막은 이런 모양새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트로이>의 트레일러에서 엿본 몇 장면이다. 이때부터 궁금증에 몸살을 앓는 이들이 생겨났다. 과연 그들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어떻게 한편의 영화로 옮겨냈을까. 10년에 걸친 수만 대군의 싸움 트로이 전쟁은 어떻게 영상화됐을까. 브래드 피트와 올란도 블룸, 에릭 바나는 아이콘이 돼버린 영웅들을 어떻게 체현해냈을까. 이런 의문들을 먼저 풀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4월29일 뉴욕에서 <트로이>가 첫 번째로 그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봄꽃이 흐드러진 센트럴 파크를 지나 링컨 스퀘어의 한 멀티플렉스에 다다르는 여정은 ‘먼 여행’을 예비하는 짧은 리허설과도 같았다. 국제기자단을 태운 타임머신은 3200년 전 트로이 전쟁의 장대한 스펙터클과 가슴 절절한 그 뒷이야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흥미롭게도 우릴 이야기 속으로 안내한 가이드는 그 자신이 이미 여러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섰던 오디세우스(숀 빈)였다. 신의 손길을 뺀 <일리아드> 이야기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가 적국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의 도주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호시탐탐 트로이를 노리던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동생의 여자를 훔쳐간 파리스의 행각을 문제 삼아,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진격한다. 그리스 진영의 전사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는 오직 자신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호전적인 인물. 해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킬레스는 파리스의 사촌 브리세이스(로즈 번)를 포로로 곁에 두게 되면서, 그녀에게 마음이 이끌리는 것을 느낀다. 자신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오만한 아킬레스를 못마땅히 여기던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희롱하려 들고, 이에 격분한 아킬레스는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아킬레스가 결장한 싸움에서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사촌 페트로클레스는 스스로를 아킬레스로 위장하고 출전했다가, 트로이군의 수장인 헥토르(에릭 바나)의 손에 죽는다. 그리고 아킬레스는 이 끝없는 복수의 악순환에 휘말리고 만다.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사사롭거나 위대한 감정. 사랑과 욕망, 질투와 집착인 것이다. 알려진 대로 <트로이>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러나 <트로이>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일리아드>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원작의 잔인한 전쟁 묘사에 가려져 있던 휴먼드라마를 부각시키겠다”던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애초 의도대로 ‘인간’ 캐릭터에만 초점을 맞췄다. <일리아드>에서 수시로 출몰해 사랑과 전쟁을 배후 조종하던 신들이 <트로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아킬레스의 어머니이자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만 잠깐 등장한다). “올림포스 신전까지 아우르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영화인 만큼 인간 캐릭터를 잘 살려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의 설명. 반대로 <일리아드>에는 없지만, <트로이>에는 있는 것. 바로 트로이의 목마다. <일리아드>는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두고 다투는 것으로 시작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스의 처소에 다녀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트로이>의 제작진은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피날레를 위해 트로이 성의 함락까지를 아우르기로 했고, 이에 베니오프는 베르겔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비롯한 다른 문학 작품들을 한데 버무려 넣었다. 아킬레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 브리세이스와 페트로클레스가 <일리아드>가 할애한 것보다 큰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최강의 전사, 최강의 캐스팅 <특전 U-보트>에서 <퍼펙트 스톰>에 이르기까지 ‘사나이 이야기’를 편애해온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트로이>에서도 다시 한번 ‘형제애’를 부각시켰다. 물론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이 트로이 전쟁을 촉발시키고, 브리세이스에 대한 아킬레스의 사랑이 연쇄적인 복수극을 낳는 것처럼, 모든 문제의 발단은 ‘여자’이고 ‘사랑’이다. 그러나 극 전체를 끌고가는 정서는 사나이들의 우애와 야심이다. 파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드는 그의 형 헥토르, 아끼던 사촌동생의 죽음에 대한 앙갚음으로 피를 부르는 아킬레스의 선택이 그런 예들. 심지어 라이벌 관계인 아킬레스와 헥토르 사이에도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이 연상될 만큼 미묘한 유대감이 흐른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죽거나 죽이거나’ 판가름을 내야 할 운명에 내몰리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연민하게 된다. 페터슨 감독이 이들을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한 것은 그런 이유. 헥토르 역의 에릭 바나도 이에 동조한다. “형제를 위해 나라를 위해 마지못해 전쟁터에 나가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헥토르의 고결하고 위대한 여정이 마음에 든다. <트로이>에서 인물들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런 형제애다.” 캐릭터별 포스터 비주얼을 따로 제작했을 정도로 <트로이> 배우들의 면면은 빼어나다. 그러니, 이들의 미모와 개성과 역량이 영화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쟁 서사극이라는 장르와 형제애라는 테마뿐이었다면, 여성관객이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겠지만 당대의 꽃미남 스타들로 꾸려진 이런 진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볼프강 페터슨은 여성팬을 위한 서비스에도 꽤나 신경을 썼다. 짧은 가죽 치마를 두른 꽃미남들의 활보만도 아찔한데, 브래드 피트는 몇 차례 누드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이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아킬레스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 인간과 신의 경계에 선 강인하고 오만한 전사이지만, ‘사랑’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아킬레스의 복잡한 모순과 변화의 과정을, 브래드 피트는 무리없이 선보인다. 철없는 막내왕자 파리스 역의 올란도 블룸도 잘 어울리지만, 에릭 바나도 ‘비자발적인’ 영웅 헥토르의 아이콘에 잘 들어맞는다.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일대일’ 대결신은 <트로이>의 명장면 중 하나. 전문 무술팀이 안무한 동작을 브래드 피트와 에릭 바나가 8개월간 함께 맞춰본 결과라는데, 양국 대표선수의 맞대결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또 다른 명장면의 주인공은 프리아모스 역의 피터 오툴이다. 아들을 죽이고 그 시신을 욕보인 아킬레스에게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는 늙은 왕의 부성은, 슬픈 잔영을 남긴다. 감독은 물론, 배우들도 첫손에 꼽은 장면. 시대극 열풍의 첫 포문을 열다 1억8천만달러로 알려진 <트로이> 제작비는 상당 부분 ‘스타 캐스팅’에 쓰였겠지만, 런던과 말타와 멕시코를 오가며 ‘좋은 그림’을 만들어내는 데도 투자됐다. ‘맛보기’로 공개된 클립이 예고했듯, <트로이>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전쟁 ‘스펙터클’이다. 1천대의 군함을 시각화한 그리스 연합군의 트로이 해안 침공신, 트로이의 그리스군 불화살 공격신, 그리고 트로이성의 함락신 등 여러 차례 등장하는 전투신은 맥락에 따라 특징과 규모가 다 다르다. 특히 5만 그리스 군대와 2만5천 트로이 군대가 맞붙는 대규모 전쟁신은 널찍한 멕시코 해안에서 1천여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촬영한 뒤 컴퓨터로 재현한 가상 캐릭터를 추가해 완성했다고 하는데, 실사와 가상의 ‘이음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끈하다. 12m와 11t에 이르는 트로이의 목마,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 가장 큰 야외 화제신”으로 알려진 트로이성 함락장면도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 트로이 전쟁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3200년 전의 문명을 되살리는 것도 제작진에겐 중요한 과제였을 터. 고대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영박물관에서 살다시피했다는 미술팀은 이집트 문명의 배경 위에 미케네 문명의 디테일을 얹는 식으로 컨셉을 잡았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라”는 감독의 주문은 배우들을 향한 것이기도 해서, 당시 민속화에 묘사된 대로, 남자배우들은 근육을, 여자배우들은 살집을 늘려야 했다는 것이, 현지에서 만난 배우들의 전언이다. 최근 몇년 사이 시대극 열풍이 불어닥친 할리우드에서 <트로이>는 가장 먼저 완성돼 공개되는 작품이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이 줄줄이 스크린을 찾아오겠지만, 하나도 아닌 네댓명의 영웅들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트로이>의 야심은 창대하다. 시대극 블록버스터의 첫 주자로서 <트로이>가 어떤 출발을 했는지, 오는 5월21일이면 확인할 수 있다.

[칸 2004 ] “<올드보이> 경쟁부문의 첫번째 충격적인 물결”

<올드보이> 기자회견의 황금 좌석들은 일찌감치 도착한 한국기자들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외국 기자들에게는 기이하게 비추어 졌을 광경, 아니나 다를까 다들 만면의 미소를 채우고 한국 기자들을 쳐다보며 기자 회견장으로 입장했다. 한국 기자단들의 암묵적인 법칙이 ‘외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양보하자’이기라도 한 듯. 한국기자들의 눈과 귀는 프랑스어와 영어로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을 앞다투어 하는 외국 기자들에게 온통 쏠려있었다. 재치있는 질문들에 박찬욱 감독은 예의 그 장난스러운 얼굴로 조리있고 재미있는 답변들을 쏟아내었고 기자 회견이 끝난 이후에도 그의 답변들이 각 잡지들의 데일리와 방송들에 반복적으로 소개가 되어졌다. 특히나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올드 보이가 한국에서 빌을 죽이다(Old boy kills bill in South Korea)’라는 재기넘치는 제목을 달고 칸 영화제에서의 <올드보이> 센세이션을 소개하기도 했다. 기자 회견에서 질문을 던지던 어느 외국 기자의 표현처럼 <올드보이>는 ‘경쟁부문의 첫번째 충격적인 물결(the first shock wave in the competition)’로 칸 영화제의 관심이 이처럼 집중되고 있는 중이다. 한편 각국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누어 지고 있는 상황. 매일매일 데일리를 편찬하는 미국 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평점은 2.4점으로 현재까지 공개된 경쟁작 6편중 2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첫번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프랑스 영화잡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를 위시한 4개의 프랑스 언론은 평점없는 소위 ‘폭탄’을 <올드보이>에 안겨주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각국 기자들의 의견도 “내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하나였다. 판타스틱하다(루이 페드로 테니이나 –포르투갈의 프리미엄 TV-)”라는 찬사와 “지나치게 과시하는 스타일에 함몰되어 있는데다가 스토리가 반복적으로 늘어진다(제레미 매튜스-데일리 유타 크로니클)”라는 평가로 양분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올드보이>가 이 권위로 가득찬 오래된 영화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격론의 재미를 안겨주고 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고 들었는데, 이 영화에서 원작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면 구도 같은 것이 이미 다 완성되어 있는 상태여서 더 쉬울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영화와 만화는 다른 매체니까 서로 취할 것이 없었다. <엑스맨>이라면 의상이라도 참고 했을텐데. 건물 복도의 장도리 액션 씬이 인상적이다 ▶복잡하고 낡은 배관이 많은 좁은 장소에 세트를 만들었다. 한 사람이 20여명과 싸우려면 좁은 공간이라야 배치가 가능하니까. 원래는 수백개의 샷을 이용해 만화적인 액션장면을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활력과 만화적 쾌감을 살리기 보다는 오대수의 고독감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가 될것이라고 생각해서 바꾼것이다. (최민식에게) 어떤 상태로 영화에 몰입하고, 거기에서 빠져 나왔는가 ▶15년의 감금생활을 했던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준비과정이 길었다. 감금 이후의 복수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오대수의 모습을 위해 체중감량을 했고 육체적인 스트레스와 인고의 세월을 표현하기 위해 권투를 연습했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만화도 보았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전략적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들어오면 바로 돌진할 준비가 되어있다. 빠져나오는 건, 뭐 영화를 마치면 언제나 감독과 술을 마시지(웃음). 영화속의 폭력이 흥미로운데 ▶폭력적인 부분이 이유없이 쓰이진 않았고 육체적인 폭력보다는 심리적인 폭력성을 나타내고 싶었다. 물론 볼거리로서의 폭력, 몸의 움직임이 주는 활력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쾌감 같은 폭력의 유희적 느낌을 좋아한다. 그러나 폭력의 아름다움에는 사실 관심이 없다. 폭력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재미있으나 그것을 재미로 만드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폭력의 결과가 무엇인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하는 문제이다. <올드보이>는 복수 삼부작의 2번째 영화이다. <복수는 나의것>과 이번 영화의 스타일이 많이 다른데, 3부작의 마지막 편은 어떻게 만들 예정인가 ▶<복수는 나의것>은 건조하고 차가운 영화이고 <올드보이>는 더 습하고 뜨거운 영화다. 3편의 각본은 이제 막 쓰기 시작한 단계라 뭐라 할말이 없다. 미국에서 리메이크를 계획중이라고 들었다. 어떤식으로든 참가할 예정이 있는가, 희망사항이 있다면 ▶내 영화의 스토리가 미국에 팔려나가 리메이크 되는 것은, 내 영화가 수출되어 그나라에서 그대로 개봉하는 것에 비하면 별로 재미가 없는 일이다. 사실 리메이크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아주 뛰어난 감독이 리메이크를 내 영화보다 더 뛰어나게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웃음) 현재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해서는 참석자 모두 답변을 해달라 ▶(박찬욱)한국영화 산업의 특징은 예술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대중의 외면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최민식)국위선양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창작의 자유가 구속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고, 그것을 벗어난 90년대 중반부터 그 권위에 억눌려 있던 인재들이 비로소 봄의 개구리처럼 튀어 나와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것이 한국 영화 산업의 원동력이다. ▶(강혜정)한국 영화는 좋은 시기를 맞이했다. 좋은 시기가 시작되었다기 보다는 좋은 시기가 마침내 성장을 시작했다라고 생각한다. ▶(유지태)한국 영화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의 자본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나의 바람은 그런 성장속에서 체계가 잘 잡혀나가서 독립 영화와 B급 영화까지 배급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청청훈)관객들에게 한국영화가 외면받던 시기가 있었다. 배급력을 탓할 수는 없었다. 좋은 기술로 좋은 영화를 만들면 한국 영화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두 캐릭터가 동창으로 설정되어 있음에도 나이 차가 별로 나 보이지 않는다. ▶이우진 캐릭터는 누나의 죽음으로부터 받은 충격으로 성장이 멈추어 버린 것처럼 설정 되어졌다. 그래서 젊어보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보톡스를 맞는 것으로 설정하려고도 했다.(웃음) 사실 한국에서는 나이와 서열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젊은 사람이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을 가지고 놀고 조롱하는 것은 한국 관객에게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 (강혜정에게 질문)감독이 당신에게 어떠한 것을 요구했나 ▶”공간에 익숙해지라”라는 말을 했다. 감독에게 그게 무슨말이냐고 물어보니 2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더라. 첫번째는, 내가 연기 경험이 많이 않기 때문에 연기하는 공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자기 집과 남의 집에서 행동하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두번째는, 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지어진 세트는 내부 공간이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촬영전에 그 공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떤 영화들로부터 ‘복수’라는 주제로 영화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나. <킬빌>? ▶<킬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복수라는 주제는 고대 신화나 그리스 비극에서 현대 영화까지 변함없이 즐겨 다루어진 소재이다. 내가 복수 3부작을 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사적인 보복’이라는 것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기에 도전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니까. 사실 한국에서 <킬빌>은 <올드보이>와 동시에 개봉하는 바람에 흥행에 성공할 수 없었다. 미술과 촬영이 훌륭하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한 장면들. 현재 한국의 디지털 영화 상황은 어느정도인가 ▶사실 이 영화에 디지털로 찍은 장면은 없다. 부분적으로 컴퓨터 스캐닝으로 디지털 색보정을 했다. 그렇게 눅눅하고 아련한 회상장면을 창조하고 싶었다. CG분량이 꽤 많은 편인데 한국 CG의 수준은 굉장히 높다. 뉴질랜드에서 찍은 장면도 있다. 상당히 큰 자본의 영화인 것 같은데 어떻게 제작비를 끌어들였나 ▶뉴질랜드 장면은 사실 뉴질랜드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저 겨울 장면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대부분의 영화 장면들과는 다른 느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한국영화로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옛날 에로영화를 보러갔다, 한국 ‘에로틱 ’영화 상영회

옛날 에로영화를 보러갔다 60~80년대 한국 ‘에로틱’영화 13편을 통해본 사회사 “배꼽 이하의 겹침은 불허한다!”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베드신은 상반신 연기에 불과했다. 웃통이라고 하지만 남녀배우들의 얼굴을 번갈아 클로즈업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검열의 가위는 번듯한 하체가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흥분해서 잘라내기 바빴고, 가슴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용납치 않았다. 그걸 아는 감독과 제작자들도 거기에 길들여져갔다. 오직 땀으로 범벅된 손바닥과 꼼지락대는 발가락만이 자유로운 연기를 허락받았던 시절이었다. 5월18일부터 22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서초동 소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되는 13편의 에로영화들에는 그러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깊고 깊은 그곳에-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이란 행사명에 이끌려 영화를 봤다간 “저게 무슨 에로영화냐”고 코웃음을 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봉 당시에는 소재와 표현을 두고 적잖은 파장과 논쟁이 일었던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이들 영화에는 급변했던 사회의 잔물결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어떤가. 옛날 에로영화들에서 그 시절의 공기를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편집자 ‘깊고 깊은 그곳에’ : 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 □ 일시: 5월18일(화)∼22일(토)(5일간) □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시사실 ‘봄’ □ 안내: 02-521-3147 내선 1번 및 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 □ 시사료: 2천원(경로우대증 지참시 1천원) □ 시간표: 바로가기 <산불> 감독 김수용 출연 주증녀, 도금봉, 신영균 개봉 1967년 4월22일 “너만 재미보기냐!” “흙냄새 몽쿨한 죽림(竹林)의 욕정” 포성이 그치지 않는 1950년대 지리산 자락의 한 마을. 빨래터에선 “똥개 팔자만도 못하다”는 과부들의 푸념이 끊이질 않는다. 남자라곤 피골이 상접한 노인네 한명이 전부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 과부촌에 전직 교사였던 공비 규복(신영균)이 숨어들어온다. 규복은 대밭으로 그를 안내해준 점례(주증녀)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지만, 얼마 안 돼 이 사실을 알고 국군에게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사월이(도금봉)에게도 몸을 내줘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차범석의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무지와 가난이 빚은 우리 민족의 처절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묘파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토속적인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배우들의 열연 또한 박수를 얻었다. 수천평의 대밭이 불타는 엔딩은 강렬한 성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제작자인 김태수는 이 4분 동안의 촬영을 위해 거금 150만원(이 영화의 제작비는 1100만원)을 들여 전남 담양의 죽림을 사들였고, 호사가들로부터 ‘산불이 아니라 돈불이구먼’이라는 말을 들었다. 주증녀의 허벅지가 잠깐 나오는 것을 빼곤 노출장면은 거의 없지만 실제 현장은 뜨거웠던 듯. 도금봉은 개봉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영균이 “테스트 촬영 때는 점잖다가 레디 고가 내려지면 퍽 열심히 그리고 억세게 주물렀다”면서 “무슨 사내가 돈 벌어가며 여자를 주무르고 시치미를 떼노?”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내시> 감독 신상옥 출연 윤정희, 신성일, 남궁원 개봉 1968년 12월11일 “밀폐된 근세왕궁, 그 원색의 카-텐을 걷어보자” 패션과 영화의 공통점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 아닐까. ‘무장공비 침투가 잇따르고 반공소년 이승복의 외침이 울려퍼졌던’ 1968년. 명동은 1년 만에 여성 복장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미니스커트 물결이었고, “에로티시즘과 쌔디즘, 마조히즘을 전면에 내세운” 궁중 사극 <내시>는 충무로에 ‘섹스영화’ 제작 붐을 일으켰다. “역사적 교훈을 남겨줬던” 기존의 사극들과 달리 <내시>는 “요구가 거세된 도착적인 인물”을 보여주면서 “성과 잔인한 행위, 그 자체를 구경거리의 요소로 만들어” 주목받았다. 1970년대 초반 한 잡지에 실린 ‘스크린을 통해 본 한국영화의 섹스’라는 글에 따르면, <내시>는 “섹스를 실감있게 묘사한” 최초의 영화이며, “남녀가 궁중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 숨결을 대중에게 전함으로써 관중의 호기심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일까. <내시>는 예상을 깨고 해를 넘겨 3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 1969년 흥행 톱을 차지한다. 성애 표현이라고 해봤자 정작 흥분의 순간에는 “바다의 물결이 해안선을 때리거나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뻔한 비유로 대치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그 시절. <내시>는 동성애를 암시하는 설정까지 끌고 들어오는 대담함도 선보인다. 왕에게 간택된 궁녀 자옥 역을 맡은 윤정희는 데뷔한 지 고작 2년밖에 안 됐지만, 이미 출연작이 100여편에 이를 정도로 톱스타. 자옥의 아버지에게 매맞고 ‘남성’을 잃었지만 연인이었던 자옥을 따라 궁에 들어가는 내시 역의 신성일 또한 당대의 ‘섹스 심벌’이었으며, 명종 역의 남궁원 또한 “가슴에 난 육감적인 털”을 무기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벽속의 여자> 감독 박종호 출연 문희, 남궁원, 남진 개봉 1969년 5월28일 “육과 영혼의 갈림길을 방황하는 젊은 여인의 애정심리” “네개의 벽, 그것은 여인의 진정한 행복을 감싸는 베일인가. 몸부림치며 흐느껴 울어도 벅차기만 한 육체의 대화” 1969년 7월15일. 지구촌은 달나라 여행으로 들썩였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아폴로 11호의 발사를 하루 앞두고 어른들은 TV 손질에 바빴고, 아이들도 달나라에 토끼가 정말 사는지 두눈으로 확인한다며 법석이었다. 그러나 충무로는 축제 분위기에서 예외였다. 서울지검 음란성범죄 특별단속반이 4편의 영화에 음란죄를 적용했기 때문. <벽속의 여자>도 그중 하나였다. 죄목은 음화제조. “주인공 성민(남진)과 미지(문희)의 5분 동안의 애무가 지나치다”며 감독이 입건, 불구속 기소됐다. 물론 이 장면을 그때나 지금이나 볼 수 없다. 그때 검찰이 문제삼았던 것도 이미 검열에서 잘려나가 문화공보부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조각 필름들이었다(성교를 암시하는 휴지마저 잘릴 정도였으니 온전할 리 없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성불구가 된 약혼남 성민을 돌보던 미지가 우연히 중년의 허 선생(남궁원)을 알게 되고 성에 눈뜨게 된다는 줄거리. “여인의 성적 욕망이 강렬한 색감과 오브제를 통해 표현됐다”고 하지만 뭉텅이로 잘려나간 장면이 많아 삼각관계의 긴장은 떨어진다. 119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 개봉됐던 해 한국영화 흥행 3위에 랭크됐다. <성숙> 감독 정소영 출연 양정화, 장용기, 서유석 개봉 1974년 10월18일 “아직 풋과일처럼 익지도 않았는데…” “쇼킹한 애정추파” “지성(知性)팬 일색, 초만원” “너, 아직 슈베르트니?” 7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흔히 통용됐던 말이다. 슈베르트가 만들었던 교향곡 <미완성>에서 착안, 그 시절 대학생들은 숫처녀, 숫총각을 그렇게 불렀다. 서슬 퍼런 긴급조치에 숨죽이는 것은 면죄됐다 하더라도 여관 구경 못해본 젊은이들은 ‘덜 여문 인간’ 취급을 받았다. 서울 소재 K대 앞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스트리커들이 등장, 급기야 경찰서에 ‘나체질주자 수사본부’가 차려진 것도 1974년. 개봉 당시 <성숙>이 “20대 청춘들이 꼭 봐야 할 성교육 지침서”라는 평판을 얻어들었던 데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끼친 듯하다. “무분별한 외래의 후리 섹스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한국적 모랄을 제시했다”는 <성숙>의 결론은 ‘사랑없는 섹스는 상처만 남긴다’는 것. 미혼모가 된 여대생 지숙은 “도대체 순결이란 뭔가”라고 자문하고 탄식한다.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로 유명한 정소영 감독 작품. <흑녀>(1974)로 데뷔, 이 영화에서 청순한 마스크를 선보였던 양정화는 이듬해 여자 연예인들을 돈으로 유혹해 한강변의 고급 맨션에서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던 모 재벌 총수의 아들 박동명 리스트에 연루되면서 짧은 연기 생활을 마감했다. <겨울여자> 감독 김호선 출연 장미희, 신성일, 김추련 개봉 1977년 9월27일 “장장 2000m의 장사진 앞에 누가 뭐라 말할 건가.” 종로3가 단성사 앞에서 비원 앞 물만두 집까지 늘어선 기다란 행렬. 당시 <겨울여자>의 포스터에 쓰여진 문구는 1970년대 들어 정부의 감시와 통제정책으로, 또 브라운관에 밀려 관객을 뺏기고 수모를 당해왔던 충무로의 자존심 회복 선언처럼 보인다. 원작이었던 조해일의 동명소설이 일간지에 연재되며 화제를 모았고 단행본으로 출판돼서도 10만부나 팔릴 정도로 인기여서 흥행은 예상했지만 결과는 기대를 넘어섰다. ‘여대생의 성적 방황’이라는 소재를 다룬 <겨울여자>는 4개월 넘게 상영되며 58만5700명이라는 관객을 동원. 한 남자가 비관자살한 것을 계기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자들에게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뒤 “세 사나이를 전전하는” 이화 역의 장미희는 이듬해 <속 별들의 고향>에 출연 또다시 ‘흥행 퀸’에 올랐다. 당시 한국영화 속 여성은 하이틴영화에서의 ‘순수한 소녀’ 아니면 호스티스영화에서의 ‘성적 개방성을 지닌 여자’였는데 장미희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줘서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후일의 분석. <죽음보다 깊은 잠> 감독 김호선 출연 정윤희, 신광일, 김희라 개봉 1979년 12월7일 “이해 겨울 잿빛 추억에 몸부림치던 그녀 다희가 방황하는 도시에서 당신의 품을 찾았습니다” 한발의 총성으로 폭정의 제왕이 몰락했던 1979년.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여배우 세대 교체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문희-남정임-윤정희 트로이카가 저물고, 대신 장미희-정윤희-유지인 트로이카가 대신했다. 새로운 미녀삼총사 모두 호스티스영화를 발판으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것이 공통점. 정윤희 또한 <욕망>(1975)으로 데뷔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1977년 박호태 감독의 <나는 77번 아가씨>에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서울에 올라와 호스티스 생활을 하는 윤고나 역으로 관심을 끌었다. <겨울여자> 이후 2년 만에 김호선 감독이 만든 <죽음보다 깊은 잠>은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해 2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던 작품. 정윤희는 의처증이 심한 아버지의 폭행이 싫어 집을 나와 가난한 음악도 영훈(이영욱)과 동거하는 여대생 다희로 나온다. 우연히 만난 재벌 2세 경민(신광일)의 부를 좇아 순정을 버리지만, 다희는 결국 마네킹 같은 삶을 살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맛본다. “1천만원 상당의 차를 벼랑에서 불사르는 등” 멜로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제작비로 1억원을 들였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감독 정진우 출연 정윤희, 황해, 최윤석 개봉 1981년 10월24일 “사랑 앞에 무엇을 감추랴. 대자연도 침묵을 지킨 강렬한 사랑 표현”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를 내놓은 다음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 중이던 정진우 감독은 어느 날 갑자기 안기부에 끌려간다. 정부 고위층이 원하는 여배우를 기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죄목. 서대문형무소에서 한달 동안 붙잡혀 있던 그는 <여명의 눈동자>의 제작을 중단하겠다 각서를 쓰고 나서야 풀려났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는 그때 감옥에서 구상한 이야기로 원제는 <내일은 침묵>이다. 남매 사이지만 연인 사이기도 한 수련(정윤희)과 문(최윤석). 아버지가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 때문에 남매로만 지내야 하는 두 사람은 감시의 눈을 피해 자신들만의 ‘낙원’에서 서로를 탐닉한다. 강촌 구곡폭포, 오대산 월정사 연못, 영월 고수동굴 등에서 번갈아 찍은 남녀의 애정 행각은 1970년대의 그것과 여실히 다르다. 심지어 수중에서도 사랑을 나눈다. 이 장면은 감독이 직접 만든 카메라로 찍은 것. 이 장면 촬영시 15번의 NG 끝에 손현채 촬영감독은 익사할 뻔했다고 전해지며, 정윤희 또한 8m 수심 아래로 밀어넣는 무지막지한 감독의 욕심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애마부인> 감독 정인엽 출연 안소영, 임동진, 하재영 개봉 1982년 2월6일 “지금 애마부인이 몸 전체로 숨가쁘게 달려온다” 교복 자율화 발표가 나오자 까까머리 소년들과 갈래머리 소녀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이미 거리에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중이었다. “여성들의 옷이나 화장이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대담하고 화려해진” 것. 의상은 핑크 아니면 보라색이었고, 그 위에는 요란한 모양의 장신구가 어김없이 얹혀졌다.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했던 여인들이거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미지의 성에 눈떠가는 여인들이 전부였던 이전 영화와 달리 <애마부인>의 여인은 스스로 원하는 성을 찾고자 말에 올라타는 독특한 캐릭터. 에로틱한 장면에 너그러웠던 전두환 정권 덕도 있지만, 그에 앞서 패션은 물론이고 “맞바람도 불사하겠다”는 여성들의 변화된 의식이 아니었다면 그만한 반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1만여명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 된 <애마부인>은 개봉 당시 수도권에서까지 밀려든 인파로 “극장 유리창이 깨지는” 소동을 빚기도. 이 영화에서 큰 가슴은 물론이고 하반신의 곡선까지 대담하게 드러낸 안소영은 1982년에만 7편의 영화에 출연, 한해 수입이 5천만원에 이르는 고소득자가 됐다. <안개마을> 감독 임권택 출연 정윤희, 안성기 개봉 1983년 2월12일 “안개 속에 감추어진 무서운 인간 본능. 간밤에도 갈대숲엔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개봉 당시 기성 평론가와 젊은 영화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처음부터 음란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킨다. 남녀의 육체가 얽히는 장면이 간단없이 삽입되고 여교사가 하숙하는 방 옆에서는 성행위의 신음소리가 지나치리만큼 크게 울려퍼진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주제성의 탐구보다도 요즘 한국 영화계의 유행인 까닭없이 노출된 에로티시즘에 좀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싶다”는 비난이 나왔다. 그러자 “이 영화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문제의 중심은 ‘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의 배설적 기능이 폐쇄된 친족 부락을 ‘깨철’이라는 사내와 술집의 ‘춘심’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또한 그것을 여선생의 시점을 통해 관찰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설정으로 보여진다”는 옹호가 맞섰다. 이문열의 소설 <익명의 섬>이 원작. 극중에서 벌어지는 군상의 성행위나 사건보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서로 다른 윤리가 작동하는 공간의 대립구도가 더 에로틱하게 느껴진다. 촬영은 2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뤄졌다지만, <만다라>(1981), <오염된 자식들>(1982)에 이어 정일성 촬영감독, 안성기 등의 스탭, 배우가 가세한 영화라 “팀워크가 느껴진다”. <무릎과 무릎 사이> 감독 이장호 출연 이보희, 안성기 개봉 1984년 9월30일 “와-정말…대담한 텃치! 프랑스 낭뜨도 경탄할 이장호의 LOVE REPORT”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아 대한민국>에 이어 <건곤감리 청홍백> <아름다운 우리영화> 등의 건전가요가 방방곡곡에 울려퍼지던 때. 오락실과 만화방만은 그나마 전국적인 소음에서 안전했다. 대신 그곳에 가면 다리를 X자 모양으로 꼬아 허벅지를 드러내고는 항상 정면을 응시하던 포스터 속 여자가 있었으니, 그 여인이 바로 이보희. <일송정 푸른 솔은>(1983)으로 데뷔한 뒤 쭉 이장호 감독과 짝을 이뤘던 이보희는 <과부춤> <바보선언> 등에도 연이어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이 감독이 흥행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첫 번째 영화 <무릎과 무릎 사이>는 평론가들로부터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1984년 <고래사냥>에 이어 흥행 2위에 오르면서 이보희는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유년 시절 외국인 가정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음대생 자영 역으로 나오는 이보희는 성충동을 죄악시하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으로 비정상적인 성충동에 이끌리는 인물을 연기한다. 감독은 에로물이라는 외피 안에 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가는 사회 분위기를 담으려 했지만 메시지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반복적이라 별 감흥은 없다.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감독 박용준 출연 오수비, 김동현 개봉 1985년 6월28일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를 들으면서 당신은 눈뜰 것이다. 오수비의 하이볼륨 엑센트!” 2대 애마부인 오수비를 앞세웠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끈적한 여름 선을 보였지만 1만7천여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엇비슷한 제목과 내용의 성애영화들이 쏟아지면서 부부간의 성 트러블을 다룬 에로영화는 더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뒷짐지고 구경하던 정권이 ‘음란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매를 들고 나선 것도 작용했다. 연초 일본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헤이본 판치>가 한국 특집호를 내면서 오수비, 유지인, 안소영 등 10여명의 한국 여배우들을 모델로 반나 포즈의 사진을 게재해 물의를 일으키자 공연윤리위원회는 곧장 영화, 연극, 비디오 등에 대해 사전심의를 강화한다고 발표했고, 4월 들어 정부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극장들의 간판을 철거했다. 이 와중에 <마타하리>의 개봉을 앞두고 실비아 크리스텔이 방한, 수입이 보류되고 있던 “<엠마뉴엘>이 포르노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성적 충동이 아니라 예술을 위해 연출자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답해 이목을 끌었다. <뽕> 감독 이두용 출연 이미숙, 이대근 개봉 1986년 2월8일 “뽕 따러 가세. 뽕 따러 가세. 인간사 허무한데 ‘뽕’ 따러 가세” <어우동>이 불러일으킨 고전 에로영화 바람은 <뽕>으로 계속됐다. 가슴에 술을 따라 왕을 굴복시켰던(이 장면이 외설적이라는 지적이 나와 결국 심의 뒤 공륜 위원장이 교체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조선시대 기생 어우동(이보희)에 이어 아낙네 안협(이미숙)은 고의적삼 안으로 비치는 까무잡잡한 살결로 일제치하 용담골을 술렁이게 만든다. 13만7천여명의 관객을 모으며 1986년 한국영화 흥행 6위에 오른 <뽕>은 평론가들로부터 “에로티시즘이 짙은 작품이란 것은 인정되지만 여타의 아류작품들보다 드라마의 재미나 표현기법의 매력 등에서 성공한 것이지 섹스상표만을 갖고서 관객을 흡인하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면죄부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주는 제6회 영평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땟물 묻은 차림에 뽕잎을 한짐 지고서 엉덩이를 흔들며 동네를 휘젓는 이미숙과 다른 남정네에게는 몸을 내주면서도 자신에게만은 쌀쌀맞게 굴자 안달하는 머슴 이대근의 모습이 인상적. <매춘> 감독 유진선 출연 나영희, 마흥식, 김문희 개봉 1988년9월24일 “추석이 되도 고향엘 못가고 치마폭에 쌓이는 것은 돈 대신 눈물 뿐이다! 어둠의 딸들아. 너희가 바로 천사 가브리엘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할리우드 직배사인 UIP의 국내 상륙이 시작됐던 시기, 한국영화는 저질 시비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다. 한해 동안 쏟아져 나온 에로물만 30여편. <합궁> <떡> <맷돌> <씨내리> <빠걸> 등 “영화제목부터 낯뜨거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며 심의를 완화한 공륜에 직격탄이 쏟아졌다. 에로물이 이처럼 급증한데는 “사회민주화에 따른 검열 완화”도 있지만, 제작비가 저렴하고 지방 흥행 및 비디오 시장의 수익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최대 이변은 올림픽과 추석이 겹친 시즌에 개봉한 <매춘>의 흥행. 연극무대에 올려졌을 때부터 외설시비가 일었던 <매춘>은 지상 최대의 쇼 올림픽을 제치고 서울에서 43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부잣집 딸에게 애인을 빼앗긴 뒤 건달에게 성폭행 당하고 결국 몸을 파는 처지에 이른 콜걸 나영(나영희)이 추석에 고향에 못가고 그렇다고 올림픽 경기를 구경할 수도 없는 이들의 동정을 사는데 성공한 것. 헌데 <매춘>의 흥행을 ‘야하다’는 소문에 따른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혹시 “열쇠 3개 건네주고 사 자(字) 남편 얻는 건 매춘 아니냐”는 영화 속 항변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참조 <동아연감> <한국영화연감> <영화잡지> <국제영화> <여성영화인사전> <옛날 신문을 읽었다><한국영화 70년 대표작 200><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

장려했던 도시의 낙일을 노래하다, <트로이>

시간의 먼지가 트로이의 성벽만큼 쌓이기를 수십번, 버려진 무수한 주검에 목구멍이 메었던 강의 신 크산토스마저 전쟁을 잊었을 이 즈음에, 장려했던 도시의 낙일(落日)을 노래하는 거대한 영화가 다시 완성되었으니 위대한 것은 옛 시인의 영감이요, 생생한 것은 4년 전 서사극 <글래디에이터>의 영광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전쟁의 기원은 터무니없다. 기원전 1200년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무력을 앞세워 그리스 세계 통합을 꾀하는 동안 동생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우스는 트로이와 강화를 맺는다. 형 헥토르를 따라 트로이의 사절로 스파르타 궁을 방문한 왕자 파리스는 메넬라우스의 비(妃) 헬렌과 갑작스런 사랑에 빠지고 귀향하는 배에 그녀를 숨긴다. 고귀한 헥토르는 아우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나, 이미 불붙은 메넬라우스의 분노에 동생이 죽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 무모한 연인들을 데리고 귀국한다. 그렇지 않아도 트로이의 주권을 넘보다 핑계를 얻은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을 소집하고, 무적 장군 아킬레스는 왕의 욕심을 경멸하면서도 사랑하는 사촌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출전한다. 반신반인으로 태어난 그에게 혁혁한 전공이 가져다줄 불멸은 치명적 유혹이었다. 제작사 워너에도, 감독 볼프강 페터슨에게도 <트로이>는 <글래디에이터>에 비해 위험한 프로젝트다. <글래디에이터>의 2배에 육박하는 1억7500만달러의 제작비와 긴 러닝타임도 부담이지만, 트로이 전쟁사의 갈등구조와 스토리는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스가 갈등하지만 가시적 사건은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전쟁이고, 선악의 분별 또한 대체로 헛되다. 시나리오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드>, 호머의 <오디세이아>,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참조해 <일리아드> 이전과 이후를 포괄하되 그리스군 상륙 뒤 9년의 세월은 생략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작가로 부상 중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전세를 쥐락펴락하던 신들을 몰아내고 영웅들이 각자 다른 이기적 동기로 참전했음을 강조한다. 아가멤논은 권력과 부를 위해, 아킬레스는 명예를 위해, 오디세우스는 약소국의 연명을 위해, 파리스는 사랑을 위해, 헥토르는 가족과 동족의 안전을 위해 살육한다. 테티스의 군더더기 출연을 제외하면 모든 신이 퇴장한 가운데, 혹시 아프로디테만 암약했는지 <일리아드>에서는 영웅들을 흔든 적이 없었던 로맨스도 만연한다. 감독과 작가가 연민하는 쪽이 궁경에 빠진 트로이 진영이라는 점은 첫눈에도 분명하다. 품위있는 트로이의 기병에 비해 그리스 병사들은 야만스러워 보인다. 근사한 대사는 주로 미남 헥토르 형제의 몫인 반면, 둔하고 털 많은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의 캐릭터는 유난히 평면적이다(둘의 결말로 미루어보아 두 캐릭터는 작가가 보기에도 거슬렸던 모양이다). 전쟁과 액션이라면 한두 가지 아는 볼프강 페터슨 감독과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처럼 공중 숏을 애용한 로저 프랫의 카메라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그러나 감독은 잔혹한 사지절단을 최소화하는 한편, 액션의 정점을 정적 속에 완벽하게 무대화한 일대일 대결에서 찾는다. 홀리필드와 알리의 대전 스타일을 본뜬 헥토르와 아킬레스의 결전에서 절정에 달하는 창검과 방패의 액션은 고대의 전투를 전에 없던 상상력으로 재현한다. 특히 ‘공중 270도 돌아 급소 찌르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아킬레스의 동작은, 날랜 드리블 끝에 덩크슛을 꽂아넣는 농구 선수의 그것이다. 약간 귀찮은 듯이 중력을 희롱하는 그의 움직임은 브래드 피트의 어떤 대사보다 반신반인 아킬레스의 캐릭터를 잘 설명한다. 그러나 영화의 심장은 정녕 헥토르의 것이다. 헬렌을 돌려보내라고 충고하자 “돌아가 싸우다 죽어버릴 테야”라고 토라지는 동생에게 헥토르는 말한다. “사람이 죽는 걸 봤느냐? 사람을 죽여봤느냐? 나는 죽음을 보았고 죽였다. 인간이 죽는 일에는 아름다움도 영광도 없다.” 명예를 아는 그가 목숨을 구걸하는 동생 때문에 비겁하게 적을 찌르는 장면은 <트로이>를 통틀어 가장 비통하다. 그래서 헥토르가 숨진 뒤, 트로이가 화염에 휩싸이고 몇몇 주요 인물의 운명이 갈리지만 맥빠진 후주의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뜻밖에 <트로이>는 교훈까지 안긴다. 꼬투리를 잡아 연합군을 출병하고 무고한 도시와 백성마저 멸하는 이야기는 친숙하다. 그나마 아가멤논의 시대에는 명예로운 교전수칙과 포로와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엄연했으니 역사가 전진한다고 누가 말하리오. :: <트로이> WHO’S WHO 가이드 트로이의 벌판을 수놓은 인물 열전 아킬레스 (브래드 피트) 최고 용사끼리의 전투로 승부를 가리기로 적국의 왕과 합의한 아가멤논이 기세좋게 아킬레스를 호명하자 병사들이 쭈뼛쭈뼛 아뢴다. “아킬레스 장군님 안 나오셨는데요.” 애국심은 없지만 대단히 유능한 군인. 삶이 지겨운 듯, 사지임을 알면서도 미르미돈군을 이끌고 트로이 전장으로 떠난다. 그리스 진영의 제임스 딘. 자아도취가 강하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위인전을 쓴다. 파리스(올란도 블룸) 트로이가 불타는 불길한 태몽으로 태어난 그는 양치기로 길러졌다고 한다. 수호신 아프로디테가 사라진 영화에서는 결투 중 도망쳐 형에게 목숨을 기대는 망신을 초래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로 변신(?), 궁술을 뽐낸다. 작가 베니오프는 “나 역시 영웅들처럼 군중 앞에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없다. 그래서 파리스는 내가 감정을 이입한 캐릭터다”라고 말했다.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 트로이로 출항하는 배의 돛에 바람이 불지 않자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다. 정이 떨어진 왕비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전쟁 중 새 사랑을 만나 귀향한 남편을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영화에서는 다른 여자의 손에 죽는다. <엑스맨2>의 악역 브라이언 콕스가 분했는데 <엑스맨>의 타일러 메인(세이버투스)을 아이아스 역으로 끌고 나왔다. 브리세이스(로즈 번)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갈등을 불러 전쟁의 국면을 뒤바꾸는 결정적 인물임에도 <일리아드>에서는 이름만 언급되는 그녀를 <트로이>의 작가 베니오프가 100% 창조했다. 헥토르와 사촌이라는 설정을 추가해 아킬레스의 사촌 파트로클로스의 비극과 대구를 이루었으며 노예에서 여사제의 신분으로 상승했다. 로즈 번은 한때 헬렌 역으로 물망에 올랐다. 메넬라오스(브랜든 글리슨) 오쟁이진 남편. 제우스의 딸인 절세미인 헬렌을 차지하고, 다른 구혼자들로부터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적극 해결에 협력한다는 맹세를 받아두었다. 전설은 그가 어여쁜 아내를 되찾고 그녀의 교태에 전쟁이 있었던 사실까지 잊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파트로클로스(가렛 헤드룬드) 아킬레스의 깊은 사랑을 받은 사촌으로 <일리아드>는 그가 죽자 아킬레스가 자해하지 않을까 전우들이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아킬레스와의 동성애적 관계가 추측되기도. 아킬레스에게 직접 고하고 갑옷을 빌렸던 <일리아드>와 달리 몰래 출전해 용맹을 떨치다 헥토르 손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