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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상 영화제 내달 4일 시상식

일반인 심사 반영…투명성 제고 일반인 참여로 한결 투명해진 대종상 영화제의 시상식이 다음달 4일 저녁 8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영화인들이 직접 주최하는 유일한 영화상 시상식인 대종상 영화제는 60~70년대만 해도 명실공히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수상을 둘러싼 추문과 금품로비설, 운영 미숙에 영화계 내부의 신구파 갈등과 나눠먹기식 관행 등이 겹치면서 영화팬들이 고개를 돌려 상의 권위가 추락했다. 영화제가 불혹의 나이를 맞은 지난해 40회 때부터 쇄신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지난해 대종상은 예심 과정에서 일부 투명성 논란을 빚으며 여전히 운영 미숙을 드러내긴 했지만 팬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잡음 없는 수상작 선정 결과를 내놓으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달 초 예심을 시작한 올해 영화제가 시상식을 앞두고 한층 투명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예심 과정에서 일반인 심사위원들의 심사 내용이 수치화돼 반영됐기 때문이다. 지난 해에는 일반인 심사가 수치화되지 않고 리포트 형식으로 전문가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돼 참가자와 네티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예심은 6대4(전문 심사위원 대 일반 심사위원)의 비율로 일반인들이 심사에서 차지하는 몫이 아예 정해졌다. 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태극기 휘날리며>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의외의 결과를 낳은 것도 객관적으로 점수가 합산됐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영화제의 집행위원회 구성에서 영화인협회 소속 단체 외에 문호를 개방한 것도 예년에 비해 대폭 달라진 점이다. 대종상은 그동안 영화인회의가 참여했던 2002년 39회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영화인협회가 단독으로 주최해 왔다. 올해 집행위원회에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김형준 회장과 여성영화인모임 채윤희 이사장이 포함됐으며 이충직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과 이효인 영상자료원장도 참여했으며 본심 심사위원 아홉명은 이들의 추천을 통해 선정됐다. 올해 처음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한 영화인은 "한 단체가 주축이 돼서 운영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대종상이 예년에 비해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것. 영화제측은 '붐 조성'을 위해 명보극장 앞 네거리에 조형물을 제작하고 레드 카펫 위에서 사진찍기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닷새 앞으로 다가온 영화제 치고는 너무나도 조용한 모습이다.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이 매년 줄어들다가 올해는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1억6천700만원 수준"이라면서 "영화팬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고 말했다. 올해 영화제는 7억원 규모로 치러질 계획이다. 이번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최근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박찬욱)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출품작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있다. 이밖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도 작품상ㆍ감독상과 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전도연과 이미숙이 나란히 오르는 등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다관왕을 노리고 있으며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는 작품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9개 부문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아라한-장풍대작전>(류승완)과 <장화, 홍련>(김지운)은 각각 8개 부문, <바람난 가족>(임상수)은 7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실미도>도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을 노린다. 한편, <범죄의 재구성>의 이문식과 천호진은 나란히 같은 영화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10년차 연기자 배용준은 영화 데뷔작 <스캔들…>로 뒤늦게 신인 남우상을 노리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하류인생>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노장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노린다. 제작사 태흥영화에 따르면 <하류인생>은 오는 9월 1일 개막하는 제61회 베니스영화제의 경쟁부문 '베네치아 61(Venezia 61)'에 초대를 받았다. 한국영화는 이로써 99년 <거짓말>(장선우) 이후 2000년 <섬>(김기덕), 2001년 <수취인불명>(김기덕)과 <꽃섬>(송일곤), 2002년 <오아시스>, 2003년 <바람난 가족>, 그리고 올해 <하류인생>까지 베니스 경쟁부문에 6년 연속 진출하게 됐으며 임감독은 87년 초청돼 여우주연상(강수연)을 수상한 <씨받이> 이래 두번째로 베니스의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베니스 영화제측은 <하류인생>의 칸영화제 진출이 무산되자 이 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고 지난 28일 현지에서 시사회를 연 뒤 29일 밤(한국시각) 초청 사실을 통보했다. <하류인생>은 50~70년대의 거친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쳐 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굵은 선으로 그려낸 영화. 임감독의 99번째 작품으로 조승우와 김민선 등이 출연한다. 이로써 한국 영화는 올해 초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의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과 <올드보이>(박찬욱)의 칸영화제 수상에 이어 <하류인생>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연속 수상을 노리게 됐다. 3대 영화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 영화제는 신인감독이나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대상으로 2001년 신설한 또다른 경쟁부문 `업스트림'을 올해 폐지해 장편경쟁부문에서는 한층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게 됐다. 20여편이 초청되는 `베네치아 61' 섹션 외에 디지털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경쟁부문 `베네치아 디지털(Venezia Digital)' 섹션이 새롭게 마련됐으며 이밖에 젊은 관객 대상의 `베네치아 메자노테(Venezia Mezzanotte)', 새로운 경향의 영화를 보여주는 `베네치아 오리존티(Venezia Orizzonti)', `국제 비평가 주간(International Critics Week)' 등으로 나뉘어 열린다. 한편 모두 10편이 경쟁하는 `베네치아 디지털' 부문에는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제작 틴하우스ㆍ감독 김문생)가 초청작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서울=연합뉴스)

주님,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신부수업> 촬영현장

버스가 서서히 비좁은 콘크리트길을 오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녹원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고요한 낙산성당. 신학생들의 사제가 되기 위한 좌충우돌과 사랑을 그리는 <신부수업>에서 ‘신부’란 하지원에게는 신부(新婦)이며, 권상우에게는 신부(神父)이다. 매번 몸이 고단한 역할만 하다가 “이렇게 편한 줄 알았으면 진작 이런 캐릭터하는 건데”라고 너스레를 떠는 권상우가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품고 다닌 것은 <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 때부터다. 군 입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콤비 김인권이 선달 역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도 호재였다. <내사랑 싸가지> 촬영 전부터 출연을 결심하고 ‘발리’에서 돌아온 히로인 하지원의 합류로 배우진은 준비완료. 사령관은 단편 <가화만사성>, <특집! 노래자랑>으로 널리 알려진 허인무 감독. 신학생 규식(권상우)과 선달(김인권)은 신부가 되는 서품식을 앞두고 있다. 말썽쟁이 선달 때문에 나쁜 소동에 휘말린 모범생 규식은 그 대가로 변두리 작은 성당에서 ‘영상강화훈련’을 받게 된다. 규식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성당으로 미국에서 한 여자가 돌아온다. 그녀는 바로 남 신부의 조카 봉희(하지원). 규식은 얼떨결에 봉희와 키스한다. 남 신부는 그에게 봉희가 세례를 받도록 하라는 ‘미션 임파서블’을 지시한다. 이러한 ‘믿음’의 줄다리기 속에 사랑이 싹튼다. ‘세례’보다는 ‘결례’에 익숙한 봉희에게 규식이 환심을 사기 위해 묵주와 성경을 선물하는 장면이다. 벌레 때문에 하지원이 잠깐 놀란다. 한적한 시골답게 종일 울어대는 닭에게 동시녹음 감독의 시선이 쏠린다. 가까운 미군기지에서 툭하면 날아다니는 비행기도 눈총받기는 매한가지. 콘티와 다른 설정으로 변경되는 바람에 생각보다 진행이 더뎌진다. 규식에게 ‘연애의 기초’를 지시하는 선달의 연기를 보고 봉희가 한마디 던진다. “인권 오빠, 향숙이 같아.” 꼼꼼히 디테일에 대해 언급하는 베테랑 촬영감독 김재호와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배우들. 무엇보다 그것을 신중히 듣고 포인트를 짚어내는 허인무 감독의 차분함이 신인답지 않다. 오후 촬영, 해가 떨어지려는 기미가 보이자 스탭, 배우 한층 부산하게 움직인다. 낮 촬영분이 70∼80%를 차지하는 촬영 특성을 감안하면 해질녘이 제일 바쁜 시간인 건 당연하다. 조금씩 모여드는 구경꾼들 소리에 촬영을 마무리해야 하는 스탭들의 긴장감도 더해간다. 사제의 상징이자 22개의 단추가 달린 검은 ‘수단’을 입은 모범 신학생 권상우와 ‘올챙이 댄스’로 예의 발랄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괄량이 하지원의 사랑 이야기는 순항 중이다. 막 50%의 촬영을 넘긴 <신부수업>은 6월15일 크랭크업, 8월6일 개봉예정이다. 사진 이혜정·글 김수경 △ 아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올챙이 댄스’를 선보이는 봉희(하지원)와 김 수녀(김선화). (왼쪽 사진) △ 성당 텃밭에서 연애선배이자 날라리 신학생 선달(김인권)에게 교육받는 진지한 규식(권상우). (오른쪽 사진) △ “반응이 너무 빨랐어요. 반 박자 늦게 가야지.” 타이밍을 지적하는 김재호 촬영감독. (왼쪽 사진) △ 김 수녀 역을 맡은 아내를 응원하러 온 박재동 화백, 스탭과 배우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서 선물하는 중. (오른쪽 사진) △ 조용하지만 빠르게 현장을 조율하는 신인감독 허인무.(왼쪽 사진)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2]

현재의 시간과 만나지 못하는 역사영화들 정성일 | 과거의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를 만나야 되는데, 끝내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고 있다. 이를테면, <실미도>는 전원 자폭으로 끝남으로써 영화를 누구의 사건도 아닌 과거로 만들고, 기괴하게도 <태극기…>는 현재에서 끝날 수 있었으면서도 굳이 과거로 회귀하여 끝나고, <아홉살 인생>은 70년대에 기어이 끝내야 됐다. <말죽거리…>도 주인공이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방식으로 끝났다. 그리고 한 감독의 데뷔작과 한 감독의 아흔아홉 번째 영화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효자동 이발사>는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돌아오겠다며 끝나고 임권택 감독조차 “맑아지려는 조짐”을 말하며 끝난다.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묵시적 동의라도 한 것 같은, 시간을 정지시키려는 과거 시간에 대한 억압은 정말 이상하다. 김소영 | 나는 그것이 세트문화 때문인 것 같다. <스캔들…> <효자동 이발사> 등 최근 성공작들은 거의 다 세트를 잘 지어서 성공한 영화들이다. 세트문화는 자본의 성숙도 대변하지만, 특정한 서사의 욕망도 말하는 중층적 의미가 있다. 영화산업이 세트를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비정치적 욕망이 있고 그것이 대중적 욕망과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세트를 세우는 순간 그 안으로 함몰돼버린다. 어찌보면 60년대, 70년대, 80년대 세트가 지어지는 순간 그동안 말을 못했기에 그 안에서 너무 할말이 많아지는 역사적 허기가 있고, 또 하나는 정 선배가 지적한 대로 현재와의 대면 기피, 즉 과거를 참을 만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측면이 있다. 정성일 | 무서운 지적이다. 만약 세트 공간에 영화가 함몰된다면, 세트라는 것이 영화의 욕망이 아니라 자본과 산업의 욕망이라면, 세트라는 공간 안에 들어가서 자본을 버추얼 월드로 만들어 액추얼 월드를 밀어내버린다면, 가짜 이미지가 진짜 이미지들을 밀어냄으로써 얻는 효과일 텐데, 왜 그런 버추얼 월드가 미래의 시간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까. 허문영 | 미래의 버추얼 월드는 돈이 많이 들기도 할 거다. 김 선생의 지적은 흥미로운데 30, 40년 전 시간을 그리는 데 지금 한국처럼 세트를 많이 쓰는 데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에게 시간을 보여주는 구조물이 얼마나 있는가. 한국의 공간은 시간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재구성돼왔고 우리 생활양식도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공간 이미지 변화가 가속화하면서 탈이념화 탈역사화도 가속화한 것 같다. 또 역사의 엔터테인먼트화는 이미 90년대부터 이루어져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이 출간된 것도 그때다. 요컨대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오늘의 시간과 연관을 짓지 못한다면 그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사회문화적 변화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성일 | 과거에 매몰된 영화와 현재만 있는 영화가 있을 뿐, 이 결렬을 이어주는 영화는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세트 이야기도 했지만 정말 장소만 있는 영화들이 있다. <하류인생>도 1957년부터 1970년대를 달려가진 하지만 명동을 들락날락하고 <효자동 이발사>는 효자동, <실미도>는 실미도, <태극기…>는 한반도 안이라는 공간만 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현재를 다루는 영화들의 관심이 시간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나 <사마리아>도 그렇다. 과거를 다루는 영화들은 시간을 다루지 못하고 현재를 다루는 영화들은 미시적 시간의 흐름만 다룬다. 농담하자면 세트 공간에서 버추얼 월드를 액추얼 월드와 만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 영화들의 이미지는 시간의 구체화(crystallization)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게(de-crystallization) 만드는 게 아닐까. 아까 언급한 남성적 퇴행성이 사회적 퇴행이라면, 역사를 다룬 영화가 모던해지지 않는다는 점은 영화의 뒷걸음질 같다. 비평담론이 제작 시스템을 포괄해야 허문영 | 다른 영화들을 짚고 넘어가자. 김 선생은 <아라한…>에 대한 칭찬을 서슴지 않았는데. 김소영 | 류승완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면 체제 순응적으로 보이지만 <범죄의 재구성> 같은 영화와 비교하면 긍정적이다. <아라한…>은 아버지 세대와는 화해할 수 없지만 어딘가 있는 무언가와 공생하려고 한다. 공생과 협상이라는 말을 쓰고 싶은데, 파편적이나마 공생 방식을 상상하고 현재 서울의 지정학적 기표를 가져오려고 애쓴다. <범죄의 재구성>은 아버지도 죽이고 형도 애도하면서 안전하게 죽이고 전혀 제도와 관계 맺지 않으면서 쿨하게 살아보자는 아주 못된 영화라고 봤다. <아라한…>에 비해 여기서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허문영 | 지정학적 흔적의 요소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류 감독은 데뷔작부터 현재의 공간을 다루고 거기서 많은 것을 포착하는 점은 탁월하다. 그러나 넒은 의미의 신화를 채용하는 방식은, 상상가능한 과거와 공생한다기보다 캐릭터 강화를 위해 소재주의적으로 단순 차용한 것에 가깝다고 봤다. 정성일 | <아라한…>은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 아이디어까지만 재미있었다. 잘못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치는 “도에 관심 있냐”고 묻는 사람들을 통해 한국사람들의 복잡한 종교관과 사회적 삶 속에 도교적 세계관이 얼마만큼 들어왔을까에 대해 류 감독이 견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도교가 그 사회의 중심적 사유방식인 홍콩에 대한 감독의 직접적인 오마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마주의 원본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마지막 전쟁기념관 싸움도 도시의 활력을 다 잃고 가짜 공간에서 벌이는 기예뿐인 액션이 흥미를 반감시켰다. 허문영 | 김 선생은 저널비평 영역에서 신선한 장르적 시도로 평가된 <범죄의 재구성>이 불쾌한 구석이 있다고 했는데. 김소영 | 그런 장르적 매력은 <오션스 일레븐>을 보면 되지 않을까. 장남 이야기도, 아버지와의 관계 이야기도 아니고 차남 이야기인 이 영화는 굉장히 신선할 수 있었다. 이른바 오이디푸스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전복적으로 가기보다 ‘쿨’이라는 기표를 내세웠다. ‘쿨’을 역시 내세운 <바람난 가족>과 <범죄의 재구성>을 비교하면 이 영화는 ‘쿨’에 따르는 자기 성찰이나 상식이 전혀 없이 굉장히 안전하게 큰형, 아버지 세대를 제거하고 여자와의 착취적 관계 속에서 언더월드에서 성공한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윤리적 사고 자체가 쿨하지 못한 사고라고 생각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다. 오히려 같은 스마트 무비(디지털적으로 통제되는 육체적 불편함이 전혀 없는 집 스마트 홈에서 가져온 개념. 현실에 없을 이야기를 시나리오 아이디어, 기획력에 의존해 장르 안에서만 살아 있도록 밀고나간 영화. 영화 밖 레퍼런스가 거의 없다)인 <라이어>가 한발 더 진전했다. <라이어>의 결론은 서울에서 쿨하게 살 수 있는 건 중산층 게이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로맨틱코미디의 자기 지반을 허문다. 허문영 | 대중영화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지능적인 범죄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을 많이 기다렸다. 한 장르의 발전 면에서도 그렇고 영화에 대한 엄숙주의적인 견해를 추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범죄의 재구성>이 완전히 좋지는 않았다. 정성일 | <범죄의 재구성>은 앞서 만들어진 ’차승재표 영화’와 일정 부분 연관되면서도 미묘한 단절이 보였다. 싸이더스보다 시네마서비스에서 나왔어야 맞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싸이더스 기획실을 통과하는 데 성공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의 무모함, 영웅주의적 나르시시즘, 그것이 자멸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와 자멸의 즐김에 있었다. 반면 시네마서비스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영악함, 정의와 영악함 사이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갈등상황이었다. 이렇게 도식화하자면, 시네마서비스 영화의 주인공들은 도덕적 선택, 싸이더스 주인공은 윤리적 선택에 직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범죄의 재구성>은 윤리적 선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로써 싸이더스 기획팀 전체의 변화 조짐을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허문영 | 차승재 대표 스스로 “내가 개별 영화에 충분한 견해를 반영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차승재적 영화라는 식으로 보면 잘 맞지 않는 영화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까 말씀하신 차승재 영화의 독특한 감수성이나 선택은 <역도산>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소영 | 우리가 장르나 작가의 시스템으로만 영화를 말해왔는데 제작자를 강조하는 비평의 방법도 중요할 것 같다. 정성일 | 비평계가 거의 모든 텍스트를 감독으로 해석하는데 그만한 전권이 있는 감독은 한국에서 두세 명에 불과하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꾸로 볼 때 완전히 다르게 설명될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예컨대 <아라한…>도 영화사 좋은 영화의 작품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아라한…>이 싸이더스에서 만들었다면 다른 영화가 됐을 수도 있다. 그 시스템을 비평담론이 껴안는 것이 중요하다. 허문영 | 동의한다. 차승재라는 제작자의 불가피한 선택의 폭이 가장 불안정하면서도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지난해라고 생각한다. 그 극적인 충돌이 저널리즘이나 평단에 강렬한 연대의식이나 친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엄격히 말하면 차승재표 영화의 변화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기본적으로 자기 영화를 만들되, 다양한 영화로 장르의 변화에는 기여한다고 방향선회를 한 지 오래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2004 상반기 한국영화 재구성 [5]

기독교적 테마를 자의식화한 김기덕 정성일 | 김기덕 감독은 베를린 감독상까지 받고도 관심을 너무 못받는 것 같다. 김소영 | 나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허문영 | 개인적으로는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세 사람 공히 평론가들이 말하기 좀 지겨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최대한 호의를 갖고 보지 않으면 정이 가기 힘들다. 그러나 짜증나는 건 어떤 비평이 <효자동 이발사>를 치켜세우고 <여자는…>을 짜증난다고 할 때다. 그러면 우리는 변호사형 비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석에서 정 선배가 일반적 평가와 달리 <사마리아>를 김기덕 영화의 어떤 진전으로 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정성일 | 제일 놀란 것은 홍상수 영화가 지겨울지언정 이제 나쁜 영화를 찍는 건 불가능하듯이, <사마리아>를 보면서 이제 김기덕 영화가 역겨울지언정 나쁘기는 틀렸구나 싶었다. 이제 그는 어떻게 영화를 찍어도 나빠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앞의 1/3을 보면서 너무 유치하고 대사들도 관념적이라 이 사람이 어쩌려고 이 지경이 됐나 했는데, 불현듯 아내의 묘지를 찾아가는 여정이 되는 순간 영화가 자기 페이스를 끌고 들어와서 홍상수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리듬을 타고 흘러갔다. 그 리듬 자체가 완전한 영화적인 생각의 시간을 끌어냈다. 홍상수가 우리로 하여금 머리로 읽게 만든다면 김기덕은 마음으로 읽도록 끌어당긴다. 둘째로 이전에는 김기덕이 종교적 테마를 끌어안거나 묘사할 때 생경했는데 <사마리아>에선 종교적 테마를 끌어안고 전개하는 방식이 자기 세계를 만들어냈다. 영화 앞의 2/3가 세상을 살아낸 여자애와 아버지의 액추얼 월드, 나머지는 생각의 버추얼 월드를 만들고 두 세계를 무리없이 연결해내서 그를 통해 이 영화의 제목인 ‘사마리아’에 대한 교훈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김기덕의 단계로 도약했다. 또, 거칠고 부족함이 김기덕 세계의 미숙함과 이상한 균형을 찾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이를테면 <여자는…>의 최대 단점은 여관방 촬영이 완벽한 조명설계와 공간처리와 옵티컬 프린팅으로 그 세계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에 비해 김기덕은 거칠고 미숙한 것들이 <사마리아> 안에서 완전히 자기 시스템과 방식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허문영 | 기본적으로는 홍상수 감독과는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김기덕은 영화의 카메라워크와 편집과 연기와 동선과 이야기를 자기 세계 안으로 완벽하게 끌어들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특정영화를 싫어할 순 있지만 그 세계가 가진 경지를 부인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쉽게 동의가 안 된 점은 딸과 섹스하는 자들을 징벌하고 자기도 자살하는 아버지의 선택이다. 김기덕 영화로서는 뜻밖의 선택이다. 성적 문란에 징벌자가 되는 동시에 스스로를 징벌하는 설정은 상투적이라고 느껴졌다. 차라리 스스로를 징벌하지 않았더라면 더 김기덕적이었을 텐데. 정성일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전의 김기덕과 이후의 김기덕이 따로 있다. 이전에 김기덕은 자기 테마가 기독교인지에 대해 자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봄 여름…>인지 <해안선>인지를 통과하면서 기독교 테마를 자의식화했다. 그래서 이제는 징벌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희생과 구원이다. 자해의 이유를 모르고 징벌을 내리고 부수는 과정에서 몸이 부서지는 것이 예전의 아홉편 영화 테마였다면 이제는 희생을 선택할까 구원을 선택할까 하는 딜레마를 고민한다. 허문영 | 김기덕 감독의 인물 무게중심이 이동한다는 느낌을 <봄 여름…>부터 들었는데 여기서는 방식이 너무 단순하고 어떻게 보면 주류적인 방식과 가까운 거여서 너무 스트레이트한 결말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말씀대로 극의 흐름상 치명적 무리를 초래하진 않지만 판타지를 끌어온다거나 어떤 스토리 외의 외적 요소 사운드나 다른 방식을 통해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정성일 | 그 점에서 홍상수와 김기덕이 전혀 다른 방식에서 똑같은 문제에 빠졌다. 둘 다 최대 문제는 매너리즘이다. 한 사람은 자기 형식을 완전히 마스터하고, 한 사람은 자기 테마에 대해 자의식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한 사람에게는 형식이 자기 함정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단순함으로 귀결된다. 하나의 마스터 내러티브를 갖고 순환에 빠졌다는 점에서 두 사람에게 매너리즘은 양날의 검이다. 피할 수도 없고, 피하는 순간 이 길을 버려야 하고, 그 길을 계속 가자니 자칫 진부함을 초래할 수 있다. 칸 사대주의를 끝내야 할 때 김소영 | <청풍명월> <올드보이> <여자는…> 그리고 감독 주간과 시네파운데이션에 단편이 출품됐는데 과거 <취화선> <박하사탕> 등이 초청돼 칸에 과도한 상징적 아우라를 부여했다면 올해는 기준이 단일하지 않은 영화들이 같이 다 가는 바람에 칸에 대한 과잉평가 내지 기대가 흐트러진 것이 좋은 것 같다. 한편 칸에서 수상을 하거나 경쟁부문에 들어간다는 게 아트하우스 시장에는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한국영화를 봐서는 굉장히 좋은 기회다. 적당히 긴장하면서 칸을 바라봐야겠다. 허문영 | 칸의 선택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표면적으로 짐작만 할 수 있는 건 거장 우선원칙이 쇠퇴하고 대중성을 좀더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 중요한 변화다. 거장에 대한 무조건적 배려 때문에 칸이 간혹 욕을 많이 먹었기에 어찌보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좀 우려스러운 것은, 그간 아시아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자가 칸이었고 그만큼 파워풀하기에 아시아영화의 유통 거점 역할을 했는데 올해 선택은 좀 다르다. 허우샤오시엔을 배제했고 제작일정 문제이긴 하나 임권택이 빠졌고 키아로스타미 영화 두편이 경쟁부문에서 빠져나갔다. 일본에서도 스와 노부히로, 아오야마 신지 영화를 사실 보고 싶어했을 텐데 결과는 제일 서구 어법에 가까운 고레다 히로카즈가 갔다. 한국의 <올드보이>도 지역성이 잘 보이지 않는 초국적적 영화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칸이 아시아영화에 대한 전통적 지지를 철회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57회의 셀렉션만 갖고 판단하긴 어렵고 지켜봐야겠지만 티에리 프레모가 지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안은 이 경향이 지속될 듯하고,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아시아영화와 세계 관객과의 만남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성일 | 올해 칸의 최대 특징은 새로운 이름을 모으고자 한 것 같고 그래서 상당수는 한번도 칸 어느 부문에도 초대받지 못했던 이름이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는 전례없이 많은 신인감독이 있다. 매우 유감스럽게 한국 신인은 하나도 없는데, 이 뜻은 한국영화에 미래가 없다는 신호탄처럼 보이기도 한다. 칸은 지금 시점을 세대교체의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를테면 박찬욱을 새로운 감독처럼 생각하지만 그가 첫 영화를 찍은 것이 90년의 일이고 홍상수도 올해가 10년째다. 생각하면 한국영화의 21세기 뉴웨이브는 누구도 세계의 반열에 올라서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다. 올해 칸은 거꾸로 당신들의 미래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게 아닐까. 허문영 | 칸이 미학적 기준을 더이상 제1조건으로 삼지 않는 느낌이 확실해 거기 선택되지 않음이 한국영화의 미래와 결부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성일 | 사실 김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칸이라는 권위가 우리에게 짐 지워주는 것을 탈신화화하는 일이다. 폐해가 너무 큰데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휩쓸고 지나가고 서열을 매기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할리우드로 간다는 기괴한 민족주의와 칸에 대한 사대주의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그 숨바꼭질을 이번 칸영화제를 기점으로 끝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클래식>풍의 신파 멜로 속으로 다이빙한 ‘엽기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상큼 발랄 엽기적인 그녀가 빌딩 옥상에 서 있다. 그 밤에, 그 높은 곳에, 그 처연한 표정은, 왜일까. 옥상 끝에 걸린 두발이 흔들리면서, 그녀는 바람을 타고 한없이 아래로 미끄러져내린다. 평온한 얼굴 위로 흐르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바로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의 이름은 경진이다. 그녀의 이름을 말하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에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층 빌딩에서 추락하고 있는 ‘그녀’를 소개하는 남자친구의 목소리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에 대해 우리가 오해한 것이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과 곽재용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제목부터 명랑한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클래식>풍의 신파 멜로 속으로 다이빙한 ‘엽기녀’는 웃거나 웃기기보다는 울거나 울리길 더 자주 한다.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에서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했던 연인과의 ‘사별’은 <여친소>에서 그녀가 감당해야 할 현재다. 다시 말해, <여친소>는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고, 삶을 긍정하게 되는 한 여인의 성장기, 즉 <엽기적인 그녀>의 전편(속편이 아니라)에 해당하는 영화다. 열혈 경찰 경진(전지현)은 어리숙한 물리 교사 명우(장혁)를 소매치기로 오해하면서, 엉뚱한 첫 만남을 갖는다. 유흥가 청소년 지도 단속을 계기로 다시 만난 그들은 장난 삼아 나눠 찬 수갑 열쇠를 잃어버리면서, 파출소 숙직실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과격하고 무모한 여자친구 걱정에 사건 현장을 찾은 명우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연인의 죽음을 자책하던 경진은 죽음을 재촉하듯 점점 위험한 현장 속으로 돌진해 들어간다. 연인의 수호천사가 된 명우의 영혼은 ‘바람’이다. 명우는 엽기녀의 파트너 견우처럼 유약하고 순종적인가 하면, 연인의 보호자를 자처할 만큼 자상하고 믿음직한 남자친구. 사건 현장에 끼어들었다가 도리어 여자친구의 구조를 기다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일도 있지만, 쌍둥이 언니를 먼저 떠나보낸 여자친구의 상처를 부드럽게 보듬을 줄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불길한 말을 자주 한다. “내가 없을 때 바람이 불면 그게 나인 줄 알아. 난 죽으면 다시 바람이 될 거야”라든가, “내가 죽으면 너도 따라 죽을 거야?”라든가. 그러다 정말로 죽고, 바람이 되어서, 여자친구의 곁에 남는다(한때 이 영화는 <바람개비>라는 가제로 불렸고, 영문 제목은 <문스트럭>을 응용한 <윈드스트럭>(windstruck)이다). 무한정 연인을 배려하는, 촌스럽지만 순수하고 ‘클래식’한 사랑. 그것은 아마도 곽재용 감독의 영원한 테마일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선물하고, 종이 비행기에 사랑을 띄워 날리는 그들의 사랑법은 이 시대의 것도, 현실의 것도 아니다. 경진이 명우에게 들려준 ‘새끼손가락’에 얽힌 전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공주와 왕자의 약속, 그 사랑의 ‘전설’은 예언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경진과 명우의 러브스토리는 그러니까, ‘전설’의 경지다. 하지만 사랑(전반전), 이별(후반전), 극복(연장전)으로 구성된 이 사랑의 전설은 눈물과 한숨, 죽음에의 매혹을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진하게’ 드러내서, 손수건을 준비한 관객마저 지치게 할 위험이 있어 보인다. 아시아 스타로 성장한 전지현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인 만큼 <여친소>는 전지현의 매력 종합선물이랄 만하다. 교복 맵시가 좋았던 전지현에게는 경찰 제복도 참 잘 어울린다. 바람 속에서, 비 속에서, 햇살 속에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말갛게 웃는 그녀를, 카메라는 홀린 듯이 비춘다. 엽기적일 뿐 아니라 자기 일에 열심이기도 하고, 비탄과 체념의 정서를 표현하기도 하는 그녀는 ‘엽기녀’시절 보다 한결 깊어진 듯 보인다. 문제는 ‘스타’ 전지현의 이미지가 작품과 캐릭터에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 의류 광고에서처럼 <울리불리>가 흐르는 가운데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릴 때, 영화 제목을 카피로 내세운 CF에서처럼 “꺾어 먹는” 요구르트를 떠먹을 때, 그가 광고하던 샴푸의 로고가 새겨진 애드벌룬이 어른거릴 때, 그 주도면밀한 스타 마케팅에 감탄하게 되지만, 영화에 정서적으로 몰입하기는 힘들어진다. “기회가 되면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곽재용 감독은 <여친소>를 바로 그 ‘기회’로 삼았다. 여주인공을 경찰로 설정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건 사고와 액션 구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러시아 마피아 밀매 조직과의 총격전을 필두로, 인질범 추격신, 탈주범 총격신, 차량 폭파신까지 연출했고, 수중 촬영과 항공 촬영도 선보였다. 감성 멜로의 틀과 정서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액션 스펙터클의 비중을 늘려, 시각적 쾌감이 있는 멜로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야심인 것이다. 엽기녀 혹은 전지현 효과에서 파생된 영화 <여친소>는 전지현과 곽재용 감독에게는 물론, 본격 아시아 프로젝트로서도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와호장룡>과 <영웅>의 프로듀서 빌 콩이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고, 해외 배급을 책임지기로 결정해 화제가 됐던 <여친소>는 6월3일 한국과 홍콩에서 동시 개봉하고, 중국에서도 6월8일에 개봉한다. 월드 프리미어는 5월28일 투자 및 제작사 애드코가 있는 홍콩에서 열렸다. :: <여친소>를 보면 떠오르는 영화들 <엽기적인 그녀>에서 <칼리토>까지 <여친소>를 보면 떠오르는 영화들은 물론,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 등 곽재용 감독의 전작들이다. 서정적이고 최루적인 멜로드라마로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곽재용 감독이 즐겨 쓰는 표현들은 <여친소>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경과 명우의 첫 데이트에 쏟아진 소낙비(사랑의 시작이다), 수업 시간에 이뤄지는 구애의 이벤트(이번엔 장미꽃이 아니라 도시락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여경의 슬픔과 죄의식, 이야기 속의 이야기(‘엽기녀’의 영화 이야기와 <클래식>의 엄마 이야기에 이어), 1인2역(이번엔 모녀가 아니라 쌍둥이다), 창가에 날아드는 흰 비둘기(다른 차원, 다른 이야기로의 초대) 등이 그것이다. 또한 소문난 영화광인 감독의 이력을 되짚지 않더라도, 그가 참고했음직한 영화들을 몇편 떠올릴 수 있다. 우선 연인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여인이라는 설정에는 <사랑과 영혼>과 <러브레터>가 겹쳐 떠오른다. 특히 초기 시나리오에 존재했던 캐릭터 앙드레 김은 <사랑과 영혼>에서 생사를 초월한 연인의 만남을 주선했던 우피 골드버그의 캐릭터와 닮아 있다(이 캐릭터에 얽힌 에피소드는 촬영되지 않았다). 또한 책을 매개로 과거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 에필로그는 <러브레터>를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총격 액션신에서는 <언터처블>과 <칼리토>, 그리고 오우삼의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읽을 수 있다.

괴상하고 웅장한 앙상블, <킬 빌 Vol.2>

타란티노의 대서사시, 음과 양의 조화 속에 끝맺다 자, 그리고 모험은 계속된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2부작 대하 펄프액션 드라마 <킬 빌>은 “신부”라 이름 붙여진 슈퍼여걸(우마 서먼)이 마침내 복수를 달성하면서 만족스러운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유혈 낭자한 전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콤한(?) 사연과 분위기로 이루어진 후편의 내용은 적잖게 놀라운 것이다. <킬 빌 Vol.2>(이하 <킬 빌2>)을 정확히 봄바람 같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음성을 낮춰 매우 저음으로 말하는(물론 “말한다”는 점을 좀더 강조하고 있겠지만)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전편의 노골적인 내용이 양(陽)의 기운에 해당한다면 후편의 미묘함은 음(陰)의 기운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킬 빌2>는 마치 즐기기라도 하듯이 살육의 장면들을 뒤로 미루어놓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예 카메라를 빼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전편에서라면 거의 로드러너 만화 수준으로 대사가 없었을 장면들에서 <킬 빌2>는 딱 좋을 정도로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거의 모든 대결장면들이 캐릭터들이 격돌하기 전 황당할 정도로 장황하게 이어지는 설전을 거치는데,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극악무도한 빌(데이비드 캐러딘)이 지루한 거짓말과 대금 연주의 대가임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가히 그 절정이라 하겠다. 전편이 블랙스플로이테이션과 야쿠자영화의 요소들을 뒤섞어놓았다면, <킬 빌2>는 마카로니 웨스턴과 60, 70년대 홍콩 무협영화 사이를 왔다갔다하는데, 이 두 세계를 각각 주재하는 두 신성(神聖)은 세르지오 레오네와 호금전이다. 영화 <킬 빌2>의 핵심은 성질 사나운 흰 눈썹의 승려 파이 메이(타란티노가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이 역할은 왕년 쇼브러더스 영화의 베테랑 유가휘가 맡아서 소화해냈는데, 똑똑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가 여주인공을 연습시키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챕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잡한 와이드 화면으로 휑한 세트에서 진행되는 이 장면은 기괴한 분장과 엉성한 극전 비약, 그림자 무술장면의 삽입 등 70년대 무협영화에 대한 유쾌한 오마주이다. <킬 빌2>는 숱한 회상장면과 엉터리 지식들, 여자들끼리의 쿵후 싸움, 배경투사 촬영장면, 그리고 70년대 브로드웨이 관객의 즐거운 야유를 받기에 충분했을 속임수와 익살로 넘쳐나지만 강한 암시의 작용 역시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주인공의 생매장 장면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킬 빌2>가 전편보다 반 시간 이상 길고 훨씬 신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편보다 더 빈약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타란티노가 전편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이거나 (사실 이것보다는 훨씬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데) 상업적인 요구에 따라 작품을 분할해서 상영하게 된 상황을 활용하기 위해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 구조를 하나의 방편으로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킬 빌2>의 마지막 시퀀스는 전편의 시작과 함께 일종의 운율을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다소의 단순화 및 재구성된 연대기적인 느낌도 있다. 하지만 좀더 큰 리듬감은 상실되어 있는데 사실 전편 <킬 빌 Vol.1> 속의 어떤 장면들은 후편에서, 그러니까 주인공의 이름이 비어트릭스 키도임이 밝혀지면서 좀더 복잡한 과거의 이야기를 암시하는 부분에서 쓰일 때 훨씬 큰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킬 빌1, 2>는 누적된 전체로서의 힘을 보여주고 있으며, 타란티노는 우마 서먼을 액션영화의 창대한 하늘 속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그녀는 가히 전설적 흥행사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작품 속에 투영된 마를렌 디트리히(역주: 초기 무성영화 시대의 유명 여배우, 스턴버그 감독의 탐미적인 작품에 출연하였으며 우아한 각선미로 그레타 가르보와 함께 할리우드의 양대 여왕으로 군림했었다)의 타란티노적 현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불러일으킨 곡예와도 같은 대유행의 바람은 사실 그녀의 연기를 초월하는 것이다. 캐러딘의 연기 역시 훌륭한데 그는 마치 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 지난 30년간을 침묵하며 기다려 온 듯하다. 타란티노의 페르소나는 이미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이지만 그의 열정만은 여전히 새롭게 다가온다. <킬 빌> 시리즈는 사랑보다 신앙의 산물이라는 느낌이다. 굉장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재활용(?)이나 70년대 사이키델릭 음악의 도용, 그리고 정교한 카메오의 활용 등 이 모두는 가히 히브리어로 만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맞먹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경외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네가 하토리 한조의 검을 가지다니!?!?”와 같은 억지 대사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이 부활할 뿐만 아니라 타란티노는 <킬 빌> 시리즈를 통해서 자기 스스로의 성서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영화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아마도 “오우!-내-젖꼭지-바”( My Oh My titty bar)의 이니셜이나, 이 이야기가 <쇼군자객>의 버전으로 계속될 수도 있음을 말하는 조롱하는 듯한 힌트에서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킬 빌> 시리즈는 괴상하고 웅장한 하나의 앙상블이다.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서 40년대의 TV만화 클립으로 보이는 장면을 통해 (이 장면에서 한 우스꽝스러운 동물이 다른 동물에게 “까마귀는 네가 존경할 만해”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경배를 보낸다. 이제 여주인공 “신부”의 임무는 끝났다. 하지만 영화의 운명은 전편과 후편이 제대로 “결혼”(?)을 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짐 호버만/ 영화평론가·<빌리지 보이스> · 번역 권재현

反부시 다큐 <화씨 9/11> 내달 국내 개봉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이 다음달 국내 극장가에 공개될 예정이다. <화씨 9/11>은 오사마 빈 라덴 일가를 포함한 사우디 명사들과 미국 부시 대통령 일가의 관계를 파헤쳐 9ㆍ11 전후 부시 대통령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 미국 언론들은 이 영화의 칸 영화제 수상을 `정치적 수류탄'이라고 표현하며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화는 미국내 배급 계약을 협상중이던 디즈니사가 협상을 중단하는 바람에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근 새로운 배급사를 찾아 오는 25일 미국 개봉일을 정해놓은 상태다. <춤추는 대수사선>, <고하토> 등을 수입한 바 있는 영화사 제이넷이미지(대표 김준로)는 "최근 이 영화의 국내 배급권을 얻어냈으며 다음달 중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라고 3일 밝혔다. 이 영화사의 이상원 실장은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는 지침을 갖고 있지만 국내 개봉 시기는 미국 개봉 1~2주 뒤인 7월이 될 것"이라면서 "현재 배급사를 물색하고 있는 단계라서 정확한 개봉 규모는 말할 수 없으나 서울 기준으로 10개 스크린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개봉에 맞춰 마이클 무어의 방한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가운데서는 지난해 4월 <볼링 포 콜럼바인>이 국내에 선보여 단 두 개 스크린에서 1만1천250명을 동원하며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서울=연합뉴스)

대종상 영화제, <올드보이>가 휩쓸것

한국갤럽 영화 팬 869명 조사 결과 네티즌들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인 <올드보이>가 4일 열릴 제41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상을 휩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갤럽이 1∼2일 20∼49세의 패널 869명(인터넷 이용자 특성분포에 따른 층화 무작위추출)을 대상으로 대종상 예상 수상작을 점치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드보이>는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에서 1위에 올랐다. 최우수작품상 부문에서는 응답자의 50.6%가 <올드보이>의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내다봤으며 <실미도>(38.3%),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6.1%),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1.7%), <바람난 가족>(0.7%) 등이 뒤를 이었다. 감독상 예상 수상자는 <올드보이>의 박찬욱(39.3%)에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31.7%), <실미도>의 강우석(23.2%), <봄여름…>의 김기덕(3.6%), <스캔들…>의 이재용(1.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남녀 주연상 부문에서는 <올드보이>의 최민식(61.0%)과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34.6%)가 장동건(30.9%)과 염정아(16.8%)를 큰 득표율 차이로 따돌렸다. 신인배우상에는 <스캔들…>의 배용준과 <어린 신부>의 문근영이 각각 25.9%와 38.0%의 지지로 예상 수상자에 낙점됐고 조연상에는 <실미도>의 허준호(51.8%)와 <바람난 가족>의 윤여정(41.3%)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