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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그녀의 `서늘한` 매력, 공포영화 <폰>의 하지원

하지원은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서 공포영화 귀신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배우로 뽑힌 바 있다. 데뷔작 <가위>에 이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네 번째 영화 <폰> 역시 공포물인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생김새에서 풍기는 스산한 독기가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원은,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미로를 얼굴 속에 지니고 있는 배우다. 걸어감에 따라 더 어두운 골목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이 스치기도 하는, 그런 미로다. 공포영화에서 잔잔한 일상이 늘 공포를 배가시키곤 하듯, 하지원의 생김새에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표정과 유혹적인 섬뜩함이 섞여 있다. 그런 느낌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 배우인 딸을 위해 어머니가 유난히 거울을 많이 걸어두었다는 집에서, 하지원은 샤워하고 나올 때면 문득, 거울에 비친 스스로에게 무서움을 느낀다고 한다. “누군가 자꾸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스물네살 한참 밝고 발랄할 나이에 듣는 평판이 ‘공포’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보니 그리 달갑지 않을 듯도 하나, 하지원은 내심 반기는 눈치다. “사실 여배우들이 공포물이라면 시나리오도 안 보고 안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가위> 이후에 너무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질까봐 공포영화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폰> 시나리오가 아주 재미있었고, <디 아더스> 같은 영화를 보면서 공포물에서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공포영화에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가위>의 안병기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폰>에서 그녀의 역할은 원조교제 등 사회의 어두운 사건들을 발굴 보도하는 르포기자 ‘지원’. 친구 호정의 남편이 저지른 원조교제가 부른 심령 괴담에 휴대폰을 매개로 말려들어간다. <가위>의 귀신처럼 직설적인 공포연기가 아닌, 사건의 밖에서 서서히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절제된’ 공포연기를 카메라 앞에서 해보였다고. 어느 정도로 절제돼 있냐 하면, “몸은 모두 고정시켜놓은 상태에서, 동작이 전혀 없이 눈빛만으로 무서움과 놀람을 표현”하는 장면도 꽤 있다고 한다. <가위>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난 안병기 감독에게 하지원은 한마디 들었다. “너 많이 나아졌다. <가위> 때는 촬영장에서 스탭들한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 마디밖에 안 했는데, 이제는 너무 까부는 것 아니냐?”라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색하다는 하지원에게 ‘까분다’는 건 칭찬이다. 아니 원래 배우는 잘 까불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자신이 출연한 작품에 대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는 하지원. 점점 영화라는 ‘종목’과의 ‘호흡 맞추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까불기’에 맛을 들이고 있는 하지원에게 우리는, 올 여름 한줄기 서늘한 공포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월드컵: 미국전 땐가요? 축구 보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포르투갈전은 직접 인천에 가서 보았죠. 주위 관람객들과 사진도 찍고 어울려서 관전했어요. 좋아하는 선수요? 안정환하고 박지성. 저는 열심히 하는 선수가 좋아요. 아, 그런데 전부 다 열심히 해서 사실은….(하지원은 소속사가 같은 최수종이 주장으로 있는 연예인 축구팀의 서포터로, 월드컵 기간 텔레비전에 종종 모습을 비췄다. 그녀는 최수종의 소개로 알게 된 한 고아출신 축구선수- 현재 모 대학팀 소속- 의 든든한 친구이기도 하다.) 영화제: 부천영화제와 하지원은 인연이 많다. 데뷔작 <가위>가 2000년 부천영화제의 폐막작이었던 데 이어 <폰>도 올해 부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이번에는 ‘페스티벌 레이디’까지 맡아, 부천에서 그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Review] 서프라이즈

■ Story 남자친구의 귀국을 앞두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려던 미령(김민희)은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반대에 부딪히 설득할 시간을 벌기 위해 친구 하영(이요원)을 공항에 대신 내보낸다. 하영의 임무는 그 남자(신하균)가 너무 일찍 집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상태에서 낯선 남자를 길에 묶어두어야 하는 여자와, 이유도 모른 채 낯선 여자에게 끌려다니게 된 남자의 신경전이 12시간 동안 전개된다. ■ Review 청춘은 사랑만 하기에도 숨가쁘다. 그 어지러운 정열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동안 인간 관계는 얽히고 설키기 십상이다. 바로 로맨틱코미디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서프라이즈>는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산업 중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다가 이제는 소강 상태에 들어간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다시 불러내었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어떤 텔레비전 광고를 연상시킨다. 친구의 애인에게 ‘필이 꽂힌’ 여자가 친구 몰래 남자의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묘한 미소를 짓던 순간은 이후에 여러 대중가요의 가사로 변주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그 CF의 주인공 김민희가 이 영화에도 나오는데, 이번에는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길 뻔한 위기에 처하는 역할이다. <서프라이즈>는 로맨틱코미디의 플롯장치를 제법 단단하게 지니고 있다. 로맨틱코미디는 할리우드 장르의 역사로 볼 때 스크루볼 코미디와 강한 친연성을 갖는다. 서로를 오인하는 남녀가 만나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애정관계로 돌입하는 설정이 아마도 그 첫 번째 공식일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하게 성사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구조적인 요인이 끼어든다. 프랭크 카프라에 뒤이은 하워드 혹스, 프레스턴 스터지스, 조지 스티븐스 같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가들은 두 남녀의 관계에 성적 갈등이나 사회경제적 갈등을 포진시킴으로써 이 장르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1990년대에 유행했던 한국의 로맨틱코미디는 사회경제적 갈등보다는 남녀의 성과 결혼제도의 갈등에 주목했다. 여성에게 있어서 연애는 순수하고 낭만적인 것으로 신화화되지만 결혼에 이르자마자 부부의 역할이나 성의 향유를 둘러싸고 곧바로 종속적인 위치로 직행해왔다. 그러나 대중문화에 묘사된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은 대등한 입장에서 섹스를 요구하고 결혼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순간 서슴없이 이혼을 제기하는데, 이런 세태가 당시 로맨틱코미디의 주요한 구성 요인이었다. <서프라이즈>는 한국의 기존 로맨틱코미디보다는 고전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의 플롯장치와 새롭게 감지된 젊은층의 이슈 언저리쯤에서 자기의 위치를 결정했다. 하영은 미령의 남자친구 정우를 공항에서 찾아내어 12시간 동안 붙잡고 있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된 남녀는 서로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분에 대해 오인까지 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인 방어와 밀착 마크를 하며 유쾌한 에피소드를 체험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관심과 애정이 생겨나면서 내러티브의 초점이 바뀌어간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해도 좋을까’라는 관심사 외에도 ‘사회경제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사랑’이라는 주제는 <서프라이즈>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요란한 파티를 열 수 있는 커다란 저택과 골프를 즐기는 아버지로 표현되는 부잣집 딸 미령과, 손에 지문이 없어질 만큼 일하랴 손님과 원장의 비위 맞추랴 정신없는 노동계급 하영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박사과정을 마친 유능한 사업가 정우를 두고 과연 경쟁할 수 있을까? 사회구조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속삭여주는 것이 로맨틱코미디가 베푸는 팬 서비스일 것이다. 여기에 버르장머리없고 방종한 자식과 고집불통이지만 결국에는 자애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아버지는 약방에 감초다. 그런데 영화 <서프라이즈>는 정말로 ‘서프라이즈’한 갈등 해소 장치를 마련해놓는다. 오인이라는 장치를 극대화한 이 아이디어는 재미있다. 문제는 이처럼 메인 플롯에서 일탈한 ‘놀랍고’ 비약적인 갈등 해소가 이 영화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정과 애정 사이의 고민, 희미하긴 해도 의식적으로 깔아둔 사회경제적 갈등 요소 같은 것들이 내러티브 안에서 긴장감 있게 해소되기를 기다렸을 관객에게, 이 영화가 선택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절충과 깜짝 쇼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서프라이즈>가 유도하는 이야기를 쭉 따라온 관객이 정말로 보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문이 없어진 하영의 손을 두고 “무언가를 해낼 손”이라며 자신의 머리 손질을 맡겼던 남자가 잿빛 소녀를 공주로 만들어줄 바로 그 왕자이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그런 판타지가 배반되는 대신 또 다른 왕자와 우정 모두를 안전하게 거머쥐는 착한 신데렐라를 보고 싶어하는 걸까.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야기의 진행 속도다. 주인공의 사랑은 12시간 안에 마무리되는 초고속이지만, 연출과 카메라, 편집의 리듬은 12개월짜리 멜로드라마처럼 보인다. 새로운 감각과 베테랑의 기교를 동시에 필요로 했던 프로덕션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지. 김민희, 공효진은 물론이고 이요원조차도 가부키 배우의 연기 패턴만큼이나 정형화된 테두리에 갇혀 있고, 신하균이 변신의 의지에 걸맞은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점도 섭섭하다. 한국에서 로맨틱코미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TV 미니시리즈라는 형태로 계속 진화중이라는 사실을 제작진이 감안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소희/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Review] 서프라이즈 ▶ <서프라이즈> 촬영과정

‘OCN과 함께하는 한국인의 100대영화’ 결과 발표

6월 30일까지 두달간 진행되었던 ‘OCN과 함께하는 한국인의 100대영화 이벤트’의 결과가 나왔다. 홈씨어터와 대형 텔레비젼을 비롯한 푸짐한 상품들을 100명의 참가자들에게 추첨으로 선물하는 이번 이벤트는 온라인으로만 총 오만명이 넘는 사람이 응모하여 응모횟수로는 27만을 기록하는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되었다. 1위 <쉬리>를 비롯한 한국영화, 100편 중 총 37편 포함, 10위권 내에 6편. 총 득표수 11,918표를 기록한 <쉬리>가 당당히 1등을 차지했으며 100위 안에서 무려 37편, 십위 권에서도 6편이 선정되는 등 한국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특징으로는 한국영화의 경우 선정된 작품들이 대부분 제작된 지 10년 이내의 것들임에 반해 외화들은 대부분 10년이상 된 것들이라 지난 10년간의 한국영화의 발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 4편 포함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작품 4개를 100위 안에 올려놓으며 역시 한국 최고의 감독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최근작인 <취화선>(7위)의 칸영화제 수상의 힘이 클 지라도, <춘향전>(94위), <장군의 아들>(95위), <서편제>(12위) 에 올려놓으며 과거작과 최근작을 골고루 인정받았다. 홍콩영화는 단 3편만 랭크 80년대 한국 영화시장을 주도하던 홍콩영화가 과거의 명성과는 달리 <영웅본색>(47위) <소림축구>(52위) <첨밀밀>(83위) 등 단 3편만 랭크시키면서2002년 시점에서는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기억속에도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ollywood을 먹여 살리는 감독들- 스필버그, 루카스, 카메론 스필버그(6편), 조지 루카스(5편), 제임스 카메론(4편) 등 많은 수의 영화들을 랭크시키면서 Hollywood를 대표하는 감독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물론 이들이 직접 감독한 작품이 아닌 제작이나 각본, 원안 등으로 참여한 작품들까지 고려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이들 손을 거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는 5편(에피소드 1,2,4,5,Special Edition)이 모두 랭크되었고 에피소드 2(98위)는 개봉 전임에도 불구하고 랭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애니메이션은 단 1편 랭크 걸작이라 칭해지던 무수한 애니메이션들 중에 <슈렉> 만이 80위에 랭크되면서 애니메이션이 관객들의 마음속에 걸작영화로 자리잡기는 상당히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소위 ‘영화’로 인정 받은 애니메이션은 <슈렉> 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애니메이션은 어쩌면 아직은 ‘영화’와는 구분되는 장르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OCN에서는 2002년 8월 3일 부터 매주 토요일 10시‘한국인의 100대영화’를 특별 편성하여 8월 3일 토요일 오전 10시 부터100대영화 중 25편(<쉬리>, <대부>, <러브레터>, <러브스토리>, <유주얼 서스펙트>, <첨밀밀>, <플래툰> 등 ) 을 엄선하여 매주 토요일마다 방영 예정이다. 인터넷 콘텐츠 팀 cine21@news.hani.co.kr

그리워라, 알랭 들롱의 번들거리는 상반신이여, <태양은 가득히>

사실 내 인생에 그리 중요한 영화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보았던 모든 영화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 깊숙이 박혀 있어 나는 그 내상을 모르고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때 영화란 친구와 마주앉아 쉼없는 노가리를 까듯이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데 사용됐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기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교복 안에 갇히고 학교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가 영화관에 가는 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는 매주 텔레비전 앞에서 ‘명화극장’ 시그날뮤직만 들어도 왠지 기분이 들뜨고, 명절날 역시나 같은 영화를 또 틀어주어도 기쁘기 한량없었던, 그런 지루한 시절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 지루함 사이사이를 꽉 채워주던 것 중 하나가 역시나 영화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영화는 확실하게 ‘소중한 시절’을 잘 흘러 보내게 한 중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시험기간이 되면, 그 짧은 오전수업(시험) 끝에 오는, 햇살 좋은 거리를 쏘다닐 수 있는 좋은 시간 때문에 괜히 마음이 설레곤 했다. 당연히 그 시간에는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막 돌아다니기 좋을 만한 곳이 없었던 까닭에 영화관에 가는 일이 흔한 일정이 되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날도 시험이 끝나고 친구 놈을 꼬드겨서 아시아극장에 갔는데, 알랭 들롱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그 영화를 보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그때는 당연하고도 물론이지만 우리는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영화관 앞에서 얻는 스틸 사진의 멋스러움에 결정을 내리곤 했었다. 아! 이소룡의 영화를 빼고는 말이다. 그 영화가 머릿속에 박혀서는 며칠 몇날을 두고 나에게 약한 두통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양은 가득히>를 보며 ‘태양이 가득히’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전율을 느꼈던 건, 머릿속의 기억이 아니라 내 몸 구석에 나른한 살떨림으로 남아 있다. 완전범죄(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지만)라고 믿어버린 알랭 들롱의 미끈한 육체 앞으로 시커먼 자루 하나가 요트에 끌려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여기서 영화가 끝나다니 하고 대단히 놀라워하면서 지루한 설명으로 끝맺음하는 방화를 비웃었던 기억이 있다)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 영화의 분위기와 부분 묘사에 완전히 압도당했는데, 알랭 들롱의 반짝이는 원형 목걸이랄지 그가 펜을 쥐는 손의 모양 또는 상반신을 벗고 누워 있던 침대의 형태(쇠창살 같은 형태의 그 금속성), 그리고 양말 없이 신는 남성용 단화의 멋스러움 등이 사춘기 소년의 불두덩을 바짝 죄었던 여주인공의 누드 상반신보다 더 오래 잔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이 영화 이전에도 보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지중해의 낯간지러운 햇살과 돈푼깨나 있는 젊은 남자의 세상 움켜쥐기에도 어느 정도 흥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속물근성은, 이 영화를 보면서 알량한 열서너살의 청춘에 세포를 모두 열어젖히고 막연한 환상을 구체적으로 새겼던 나를 굳이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주는 야릇함의 흥분은 결코 이성(여자주인공)에게 닿아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성에 눈을 뜨게 했던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흐트러진 하얀 침대 시트(친구의 죽음을 알리는 알랭 들롱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슬퍼하는 침상의 여주인공이 나오는 그 장면)는 동일한 성적 자극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도무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일찌감치 싫증을 냈던 것 같다. 또한 감독(그땐, 나에게 감독이 중요하지 않았다. 전혀!)의 의도나 진의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동성애 취향은 아니지만(아니, 아직 이 나이에도 내 안에 숨어 있는 동성애 취향을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미끌거리는 알랭 들롱의 각지고 번들거리는 상반신을, 그의 열린 동공과 매끈한 요트의 등을 바라보던 나에게 영화를 요것저것 뜯어내고 알았다고 하는 일은 하찮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그 영화는 중삐리의 오후를 홀라당 빼앗아버리고 이후에도 내 몸 안에서 곧잘 시간을 훔쳐내곤 했다. 정말로!

국산 애니들 “무더위 가면 뛴다”

<마리이야기>의 안시 애니메이션 그랑프리 수상소식으로 들뜨긴 했지만, 정작 ‘애니메이션 시즌’이라 할 만한 여름에 개봉하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한 편도 없다. 가을·겨울 개봉 예정인 한국 애니메이션 4편이 있어 아쉬움을 덜어준다. 이들이 ‘막판 뒤집기’를 해줄지 궁금하다.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연말(12월20일)에 개봉될 예정인 공상과학물 <원더풀 데이즈>(오른쪽 사진) 다. 현재 80% 정도 제작이 완료됐는데, 데모 테이프나 지난 5월에 연 홈페이지(www.wonderfuldays.co.kr에서 미리 엿본 장면들은 만만치않은 수준을 보여준다. 22세기 환경오염이 극한에 달한 지구에선 맑은 하늘을 볼 수조차 없다. 소수의 권력과 기술을 가진 이들이 실험용으로 발아시킨 유기체 식물도시 에코반에 모여들고, 여기에서 쫓겨난 난민들은 주변 오염지역 마르에 정착해 살고 있다. <원더풀…>은 평면기술(2D)과 입체기술(3D)에 미니어처 실사촬영을 합한 ‘멀티레이어 합성방식’으로 제작된다. 캐릭터들은 평면으로 그려 최대한 미묘한 표정들을, 총기류 등은 입체기술로 그려 금속성 질감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깊이있는 공간감을 보여주는 미니어처로 촬영된 배경들이 인상적이며 묵시록같은 분위기의 미래가 느껴진다. 존 우 감독이 속해 있는 배급사 ‘디지털 림’이 미국 배급을 맡으며 겨울께 한·미 동시개봉할 SF 서사 팬터지물 <아크>(디지털드림 스튜디오)는 현재 후반작업중이다. 알키온이라는 행성에서 시비안과 스토리안 두 종족의 전쟁이 벌어진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를 피해 신비스런 여사제는 돔형의 대도시를 건설해서 움직이는 거대한 로봇 ‘아크’의 등에 얹어 놓는다. 그러나 아크를 빼앗은 스토리안족은 도시를 조종하기 위해 여사제를 찾는다. ‘로봇 등에 올려진 100만명의 도시’라는 상상력이나 거대한 스케일의 그림이 매력적이다. <엘리시움> 외계인과 전쟁 일보직전 화해 내용. 반응 좋으 해외 개봉 뒤 국내 올 듯 이미 서울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개막작으로 공개됐던 입체 애니메이션 <엘리시움>(빅필름)은 먼저 해외 개봉을 한 뒤 겨울에 한국관객을 만난다. 20만달러에 수출돼 8월 이탈리아 개봉이 확정됐고 9월께엔 러시아에서도 공개된다. 외계의 엘리시움인들이 모략에 휘말려 지구를 침략한다. 지구의 전사들은 고대 엘리시움인들이 사랑하는 지구를 위해 숨겨놓은 로봇과 함께 이에 맞서 싸운다. 결국 모략의 실체를 밝혀내고 지구인들은 엘리시움인들과 화해한다. 빅필름쪽은 <엘리시움>에 대한 해외의 반응이 호의적이라며 “디즈니나 드림웍스 같은 메이저 제작사들은 가족용 애니메이션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초등~고등학생들이나 게임마니아 같은 이들을 주 타겟으로 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공상과학물들은 가능성 있는 틈새시장”이라고 말했다. 공상과학물들의 공세 가운데 가족애니메이션 <오세암>(마고21)은 따뜻한 감성으로 관객층을 공략할 예정이다. 고 정채봉 선생의 동화 <오세암>을 원작으로, 텔레비전 시리즈 <하얀 마음 백구>의 제작진들이 다시 뭉쳤다. 특히 마고21쪽은 11월 한달간 강남의 계몽아트홀과 종로의 아트선재센터를 아예 전용관으로 대관키로 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벌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

시간옮겨 접근성 높이길

텔레비전 경찰드라마가 사라진 것은 1990년 10월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다. 1971년 3월에 시작해서 20년 가까이 인기를 모았던 문화방송의 <수사반장>이나 한국방송의 <형사 25시>도 이때 막을 내렸다. 1990년대 중반 <경찰청 사람들>이나 <사건 25시> 등이 방송되었지만 경찰드라마로 보기 어렵고, 가 방송중이지만 추리의 재미를 주지 못한다. 40대 이상의 시청자는 <수사반장>이나 <형사 콜롬보>를 기억한다. 낡은 레인코드를 입고 범죄현장을 지휘하던 <수사반장>의 최불암이나 어눌하지만 논리적으로 상류사회의 이중성을 밝혀내는 <형사 콜롬보> 피터 포크의 뒷모습만 아련하게 추억할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텔레비전에서 경찰드라마는 여전히 인기 장르지만, 우리 시청자는 경찰드라마의 재미를 완전히 잊어버린 듯하다. 따라서 오랜만에 접하는 문화방송 경찰드라마 는 새롭게 다가온다. 는 과거 <수사반장>이나 <형사 콜롬보>와 같은 인간적 매력을 지닌 경찰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최첨단 장비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과학수사대 반장을 맡은 윌리엄 피터슨(길 그리섬)의 차가운 연기는 돋보이나, <형사 콜롬보>의 피터 포크와 같은 은근한 매력을 지니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는 시청자와 수사대의 관점에서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는 과거의 사건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추리와 긴장의 재미를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아쉬움은 드라마 자체에 있기보다 편성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토요일 오후 1시에서 평일 심야시간대로 편성시간대를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토요일 점심 시간대에 살인과 마약 등의 소재와 폭력적인 내용의 경찰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무리한 편성이다. 15살 이상 등급을 표시하고 있지만, 등급표시가 어떤 실효성을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다. 의 방송시간을 옮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찰드라마를 좋아하는 성인 시청자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토요일 오후 1시는 경찰드라마를 보고 싶어하는 성인 시청자의 접근 가능성을 제약한다. 유일한 경찰드라마인 이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도 시청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드라마 장르의 폭은 매우 제한돼 있다.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룬 트랜디 드라마, 역사드라마 그리고 멜로드라마 이외에 볼 수 있는 드라마 장르는 거의 없다. 가 편성시간을 옮겨서 등급제의 실효과도 거두고 성인 시청자의 접근 가능성도 높이기를 기대한다. 주창윤/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과

열광을 재우고 일상을 깨울 때

월드컵이 폐막되고 나니 나 같은 사람도 뭔가 허전하다. 여기서 나 같은 사람이란 그동안 축구에 대해서 무지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열광했던 사람을 뜻한다. 무엇이 아쉬운 것일까. 이젠 다 끝났는데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월드컵 후일담으로 축구선수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세세하게 읽거나 외출을 해야 하는데도 엉거주춤 선 채로 화면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번 기회로 축구 보는 재미를 새끼손톱만큼 알게 된 사람이 이런데 처음부터 축구에 열광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찾아든 공허는 어떠할까. 아직 축구에 대한 열기로 채워져 있는 신문 한 귀퉁이에 일본 산카이주쿠 부토(舞蹈)무용단이 내한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언제 한번 꼭 보고 싶은 공연이었는데도 그냥 넘겼는데 나보다 나중에 기사를 읽은 함께 사는 사람이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였다. “시체들의 기괴한 몸부림”이라는 헤드라인을 본 순간 속으로 그 사람의 관심을 끌겠군, 했는데 틀리지 않았다. “부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시인 김혜순씨로부터 들은 바가 있었다. 여간해서 주관적인 평을 잘 하지 않는 편인 그가 한마디로 “굉장하다”고 했다. “온몸에 회칠을 하고”라며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모습이 떠올라 신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 R석이 3만원이라고 해서 다른 공연보다 저렴하네, 생각하며 선뜻 R석으로 하루 전에 예약을 했다. 당일 아침에 그쪽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내 예약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아르바이트생인데 공연료를 잘못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지불한 돈의 좌석은 A석이고 R석으로 하려면 2만원을 더 추가해야 한단다. 그러면 그렇지, 싶은데도 R석에 앉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가 A석에서 봐야 한다니 부당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는 사람과 동반하려고 4장을 예약해놓은 터였다. 전화를 걸어온 쪽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기색이 아니었으면 화라도 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어째야 하나 잠깐 망설이고 있는데 그쪽에서 죄송해요, A석 중에서 최대한 좋은 자리로 배치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과정을 지루하게 이야기하는 건 이게 바로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부토는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탄생한 일본 전위무용의 한 계보다. 부토의 창시자는 부토를 설명하기를 “시체가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이라고 했다. 짐작을 하고 갔는데도 온몸에 회칠을 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더 느렸다. 어느 순간 보는 사람을 벌떡 일어나고 싶게 할 정도였다. 내가 정상적으로 서거나 걸을 수 있는 인간인가 아닌가, 확인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얼굴은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만큼 무표정해서 허무했으며 손이나 발 허리는 충격을 받아 기형이 된 사람들의 그것처럼 겨우겨우 움직였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태아를 연상시켰고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의 음향은 팔에 소름을 돋게 했다. 무표정의 육체가 비틀렸다 풀어질 때마다 금이 간 것처럼 움직이는 뼈를 한 시간도 넘게 지켜보는 어느 순간 나는 왜 엉뚱하게 월드컵 기간의 광화문 네거리가 떠올랐는지. 독일과 경기가 있던 날이었던가. 사직동의 친구네 집에서 함께 경기를 보고 끝난 뒤에 구경 삼아 광화문에 나가 보았는데 경기는 졌는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마음껏 노래부르고 걸어다니고 외치고 뛰어다녔다. 부토의 느리고 고통스럽고 기괴한 움직임 위에 왜 광화문 네거리에서 마주쳤던 힘차고 발랄하고 거침없던 육체들이 겹쳐졌는지.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지난 한달과 같은 열광의 나날이 아니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다. 느리게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를 유지시킨다. 지루하고 재미없어 이따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회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불시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거나 가까운 누군가 불치의 병을 앓게 되면 새삼 별일없이 유지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깨닫게 되기도 한다. 지금은 고통도 열광도 아닌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때인 것 같다.신경숙/ 소설가

자니 윤 10년만에 토크쇼 컴백

국내 텔레비전에 본격적인 심야 성인 토크쇼를 선보였던 쟈니윤이 10여년 만에 다시 텔레비전 무대에 선다. 그동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연예활동을 계속해온 그는 오는 14일부터 방송되는 경인방송(iTV)의 <왓스 업>(일요일 밤 10시30분)에 출연해 새로운 토크쇼의 매력을 선사한다. 토크쇼와 시트콤의 장점을 결합한 <왓스 업>은 30~40대 시청자를 겨냥한다. 쟈니윤은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시트콤)이자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토크쇼)로 나선다. 그때그때 화제의 인물을 초청해 진행하는 토크쇼가 40%, 토크쇼 제작을 둘러싼 얘기가 30%,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미국에서 겪는 일상생활이 30%를 차지한다. 쟈니윤은 1992년 에스비에스 <쟈니윤 쇼>를 진행하며 국내에 성인 심야 토크쇼의 씨앗을 뿌렸다. 약간 혀꼬부라진 소리로 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농담은 종종 세간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쟈니윤은 한 나라의 부와 자유를 재는 척도가 토크쇼라고 강조한다. 국민들이 굶주리고 억눌려 있으면 토크쇼가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0년 전 한국은 그에게 적지 않은 굴레를 씌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들어갔을 때였죠. 나라에는 전통이 있어야 하는데 ‘전통’이 없어졌다고 조크를 던졌는데, 나중에 보니 잘렸더군요.” 쟈니윤은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대통령이건 시골 농부건, 유치원 아이건 누구라도 토크쇼에 초청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청률을 노린 탓인지 연예인 일색일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한 1년 지나자 더이상 부를 연예인이 없었다. <왓스 업>의 첫번째 토크쇼는 가수 조영남과 함께한다. 평소 형님아우하는 이들의 스스럼없는 대화가 안방을 찾는다. 병역기피 파문을 일으킨 가수 유승준도 미국의 일상생활을 담은 시트콤에서 모습을 보인다. 쟈니윤은 유승준에게 “이제 미국 시민이니 미국 군대나 가지 그래”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진다. 두번째 토크쇼의 손님은 ‘5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의원이다.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의 비화가 공개된다.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토크쇼가 넘쳐난다. ‘토크쇼 공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의 평가는 당부에 가깝다. “한국에서도 토크쇼가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나가야 합니다.” 유강문 기자moon@hani.co.kr

부부문제 낱낱이 털어놓는 <터닝 포인트 사랑과 이별>

<터닝 포인트 사랑과 이별> SBS 토요일 밤 11시50분외주 제작 리얼리티 비전 <터닝 포인트 사랑과 이별>(이하 <사랑과 이별>)은 11시50분, 밤 늦은 시간에 방송된다. 상처받은 자들이 잔뜩 웅크린 시간이다. 사회자 한선교와 양금석, 그리고 패널 두명은 조용히 앉아 있다. 오늘도 문제 많은 부부의 산을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괜히 텔레비전 앞에 웅크린 마음이 무거워진다. 소개와 함께 상처받은 부부가 등장한다. 6개월치 밀린 월급을 결혼이라는 중대결정으로 갚아버린 남자와 남편의 외도로 의심만 늘어가는 여자와 이해할 수 없는 생활습관 덕분에 차라리 배우자가 없었으면 하는 여자와, 외도도 아니라는데 불쑥불쑥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 나이 많은 남자가 무조건 보기 싫다는 여자, 그들 앞에 남은 것은 이혼뿐인 것처럼 보인다. 구경하는 자의 자만이 불쑥 튀어나온다. 저러니 헤어지고 말지, 힘들게 뭐가 있어. 이혼은 쉽다. 가끔 말만큼 쉬울 때도 있다. 가끔 구경하는 것보다 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구경하는 자의 마음은 상처가 없다. 상처받은 자들은 어렵게 생각한다. 명쾌하지 않다. 어렵다. 에둘러 가는 길, <사랑과 이별>은 그들의 편에 서서 어려운 길을 택했다. 시시콜콜한 인터뷰, 구질구질한 당신 삶으로 부부관계를 탐색하는 프로그램은 많다. 수많은 TV드라마들이 부부문제에서 출발한다. 부부의 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부부의 상황을 재연하는 프로그램(<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KBS2))도 있고 문제를 가진 부부를 출연시켜 서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는 프로그램(<아침마당>(KBS2)의 ‘부부탐구’)도 있다. 그런 중 <사랑과 이별>의 특별한 점은 출연자들이 용기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용기의 포스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 부부관계를 낱낱이 털어내는 데까지 끌어올려져야 한다. <사랑과 이별>은 대략 한달간의 제작기간을 거친다. 그래서 동시에 네개의 조가 움직인다. 섭외중, 촬영중, 후반작업중, 작업 끝내고 쉬는 중. 남/녀/합동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뷰는 촬영 전 2∼3일에 이루어진다. 첫날의 인터뷰는 4시간에서 6시간에 육박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연 시나리오가 짜인다. 이후 촬영을 진행하는 10일 내내 출연자들의 옆에는 카메라가 붙어다닌다. 촬영을 할 수 없는 경우, 부부만이 있어야 하는 상황에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한다. 대략 카메라는 4대가 설치된다. 그 카메라를 제작진은 관찰카메라라 부른다. 정신과 상담과 심리극, 심리검사는 모든 부부들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다. 케이스별로 갖가지 특이한 프로그램이 뒤따른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극기훈련을 거치고, 아내가 가꾸지 않는 것이 불만일 경우는 아내의 모습을 바꾸어주기도 한다. 남자가 권위적이고 여자가 억눌려 살 경우 예절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부부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보면 구경하는 자들의 쉬운 해결책을 버리고 급작스런 반전이 일어난다. 그들은 서로를 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옛기억을 떠올린다. 밀쳐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과 이별>에서 문제부부를 관찰하는 카메라는 관음증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은밀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질구질한 당신 삶으로 안내한다. 즐거움이라 한다면 자신의 삶보다 더 구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한에서 일어난다. 보는 순간 어떻게 얼굴을 내놓는 출연(40% 정도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성변조는 하지 않는다)을 결정할 수 있었는지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그들은 적나라하다. 텔레비전에서 절대로 비쳐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우리의 더러운 모습, 누추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들을 바로 그 현장에서 중계된다. 그러다 그 관찰카메라는 이상하다. 우리는 어떤 시선 앞에서 움찔한다. 그것마저 적나라하다. 69회 ‘돈이 뭐길래’의 경우 심리극에 참여한 부인은 남편에게 억눌렀던 감정을 표한다. 갑자기 돌변한 부인에게 당황하며 남편은 말한다.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다른 회, 남편이 부부싸움에서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이자 부인은 말한다. “카메라 의식하는 거냐.” 그들에게 카메라는 그 순간 ‘중계’를 담고 있지 않다. 최선을 다한 당신, 떠나라 관찰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상황은 돌변한다고 다큐멘터리의 교과서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정직한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없음을, 그런 시차적응 전 다큐멘터리는 애초에 정직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런데 <사랑과 이별>의 관찰카메라는 관찰하기 시작하는 순간의 돌변 상황을 그대로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간의 다큐멘터리의 허점을 장점으로 바꾼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터닝 포인트’다. 카메라는 그들을 부추기고, 서로의 감정의 극단까지 가도록 부추기면서 ‘터닝’을 돕는다. 그러나 구경하는 사람에겐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극적인 구성을 위한 편집 권리를 가진 제작진, 그들은 상처자국을 급하게 봉합해버린 채 박수치고 떠날 수 있다. <사랑과 이별> 기획부장이자 작가인 최은영씨는 그들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갈등을 쌓은 시간에 비해 카메라가 다가가는 시간은 아주 짧다.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정을 했다면 후회없는 결정인가는 물어봐야 한다. 결혼이 중대사이듯 이혼도 마찬가지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어야 한다. 몇년을 같이 살아온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우리 팀의 선전을 두고 차범근 해설위원이 승리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뒤에 오는 부산물이라고 한 말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랑과 이별>에 출연한 부부가 이혼을 한 경우는 별로 없다. 다음날 예정된 심리극을 마다하고 사라진 남편을 두고, 혼자 심리극에 참여한 부인이 이혼을 결정했던 예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들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때 그들은 관계개선의 첫 발자국, 시작이 반이라면 관계개선의 반을 지났다. 용기와 마지막 배려는 출구를 뚫었다. 저기 내 얼굴이 보이는군요 <사랑과 이별>의 방송이 끝나는 1시까지 제작진들은 사무실에 남아 있다. 저녁에도 울리지 않던 전화벨이 그때쯤 울린다. 텔레비전에 나의 얼굴이 보이는군요, 절망적인 우리 관계를 이야기할 용기가 이 늦은 밤중에 나는군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한 아줌마는 밤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나보다 더 지겨운 삶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얄팍하지만 결말에 질투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 말하는 게 나하고 똑같다, 내가 들어도 짜증나네, 라고 스스로를 반성한다. 그들은 인생의 벼랑에 도달해 있다.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부부간 기강을 되살려야 한다는 교회의 새해 설교는 이혼이라는 주홍글씨를 목에 단다. <사랑과 이별>의 웅변은 간곡하다. 연사의 목은 막혔다. 이혼이 그렇게 쉽습니까. 구둘래 kuskus@dreamx.net제작진의 노하우로 전하는 부부생활 증진법 양말 냄새 맡을 때는 안 보이는 데서 부부 사이에 대화를 많이 하라는 것은 건강한 부부생활 증진법의 1조1항이다. 하지만 이 대화법에는 특별한 조례가 있으니. <동물원 사람들>의 운종과 하영처럼 30분 동안 할말이 없어 방바닥 때만 벗기는 일도 있지만, 격하게 마음이 쌓인 경우 서로 자기말만 쏘아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들을 것. 전문가들은 5분 동안 자기 말을 하고 5분 동안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것을 제안한다. 그 5분을 다른 사람이 소화하고 있는 경우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라도 참아야 한다. 남이 떡이 커 보인다고 남의 5분이 더 길어 보인다면 앞에다 시계를 가져다놓는 것도 준법시민의 자세다. 부작용은 시계에만 몰두하다보면 상대방의 소리가 째깍째깍으로 들린다는 것. 시계바늘 소리는 너무 크지 않는 것으로 가져다놓는 것이 좋다. 벽이나 천장이나 문에다가 상대가 자신한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과 했으면 하는 것을 정리하여 적어놓는 방법도 유용하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라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의 항목을 적는 것에 손이 떨리는 유치함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꿋꿋이 참으며 항목을 적어내려가다보면 그간의 문제들이 일목요연하게 보일 것이다. 사람 부딪히고 사는 것은 유치한 것투성이라서 상대방의 양말 냄새 맡는 버릇(양말 냄새 맡을 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라)과 아껴놓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얌체 같은 행동(아이스크림 먹을 때는 소유주를 확인하라) 따위가 그녀 혹은 그의 냉전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 그런 항목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웃지 말고, 꼭 양말은 그냥 벗어라. 대화법에 못지않은 증진법은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로간의 양보가 없는 부부들은 ‘니 탓이요, 니 탓이요, 니 탓이요’라고 생각한다. ‘니가 못해줘서 내가 그렇지, 니가 잘해주면 내가 못해주겠냐’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 ‘니가 못해줘도 내가 해준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것을 조건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가 아니라)는 속담은 고언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이 상황에는 부적절하다.

여성 감독들, 여전히 설 곳 없다

영화산업에서 가장 소외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영국의 온라인은 최근 영미권에서 여성 인력이 감내하는 열악한 지위에 관해 보도하면서 “여성은 영화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여전히 힘들게 투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1년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250위 안에 드는 영화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6%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2000년의 11%에서 절반 가까이 떨어진 비율이기도 했다. 250편의 영화 중에서 여성 작가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00년의 14%에서 10%로 내려앉았으며, 여성 촬영감독은 단 한명도 없었다.여성 영화인의 경력 향상과 권리 보호를 위한 조직 ‘우먼 인 필름 앤 텔레비전’(WIFT)의 회장 제인 커슨스는 이런 현상을 “매우 절망적”이라고 표현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카데미위원회가 올해 두명의 흑인배우에게 트로피를 안긴 데 반해, 지금까지 감독상에 지명된 여성 감독은 단 두명뿐이었다. 그러나 제인 캠피온과 리나 베르트뮐러 모두 수상은 하지 못했다. 커슨스는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여성 감독은 여자들이 모여앉아 퀼트나 만드는, 젊은 여자애들이 나오는 영화밖에 연출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공격했다.영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영국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치는 여성 감독은 부천영화제 개막작이자 박스오피스 성공작인 <슈팅 라이크 베컴>의 거린다 차다와 <마번 칼라>로 올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스콧 린 람제이 정도. 커슨스는 이런 현실에 대해 “여성 감독을 고의적으로 차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아직도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사람들은 여자가 상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