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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극장가 흥행제왕은 누가 될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압승? 아니면 국산 공포영화의 약진? 때이른 무더위의 여름 극장가에 전운(戰雲)이 감돈다. 관객수 1천만의 '대박' 이 두 편이나 터져나오고 한국영화의 평균 점유율이 70%대를 넘어서던 올해 초만 해도 충무로 제작자들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홍조를 머금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즐비한 올 여름 극장가에선 누구도 승자를 쉽게 예측할 수 없어보인다. 사실 여름 극장가는 전통적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강세를 띠는 시기. 2000년 이후에는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가 흥행에 성공했던 2001년을 제외하고는 <글래디에이터>(2000년),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터미네이터3>(2003년) 등 외화들이 최고 흥행작 자리를 차지했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이달 말부터 8월까지 선보이는 할리우드 대작은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반헬싱> <킹 아더> <스파이더맨2> <아이로봇> <헬보이> 등 여섯 편에 이른다. 이미 개봉한 두 편의 블록버스터 <트로이>와 <투모로우> 등이 국내 박스오피스 진입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이지만 문제는 한정된 스크린을 어떤 영화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있다. 한 마케팅 관계자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개봉 편수가 많기 때문에 전체 관객 수가 늘어나리라는 긍정적 예측도 있지만 스크린 수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선보이는 영화는 오는 30일 개봉하는 <스파이더맨2>(수입 배급 콜럼비아 픽쳐스). 인지도가 매우 높은데다 지난 2002년 전편이 전국 300만명을 불러들이며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바 있어 속편의 흥행 전망도 밝다. 2편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스파이더맨의 정체성 문제. 전편에 비해 드라마가 한층 강화됐다. 올 여름 블록버스터 중 한국 팬들에게 가장 친근한 영화는 7월 15일 개봉하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워너브라더스)일 듯하다. 1편과 2편은 2001년과 2002년 겨울에 개봉해 각각 전국 400만명 이상의 대박을 터뜨렸다. 영화는 13살이 된 해리 포터와 그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법사 시리우스 블랙 사이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23일 선보이는 <킹 아더>(브에나비스타)는 올해 <트로이>로 시작된 서사극의 계보를 잇고 있다. 영화의 크레디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이름은 제작자와 감독. 흥행의 마술사 제리 브룩하이머가 <나쁜 녀석들> <아마겟돈> <콘 에어> 등에 이어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트레이닝 데이> <태양의 눈물>의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아서왕을 기존의 영화처럼 신화의 틀에서 그리기보다는 개인적인 야망과 국민을 위한 의무와 책임감 사이에서 고뇌했던 한 영웅의 실화로 다루고 있다. 이밖에 '중세의 007' 반헬싱이 400년만의 부활을 꿈꾸는 엄청난 악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벌이는 승부를 그린 액션 판타지 <반헬싱>과 윌 스미스 주연의 공상 과학영화 <아이 로봇>은 7월 30일부터 관객들을 만나며, 만화를 원작으로 액션 히어로를 등장시킨 <헬보이>도 8월 13일 개봉해 여름 극장가의 제왕 자리를 노린다. ▶토종 공포영화 올 여름 극장가를 '습격'하는 국산 공포영화는 모두 여섯편이다. 예년보다 많은 것은 <폰> <장화, 홍련> <여고괴담:여우계단> 등의 성공이 공포영화 붐을 일으켰기 때문. 물과 전쟁, 인형, 복안(復顔)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토종 공포물이 할리우드 영화와 맞서고 있다. 특히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 이미 11일부터 상영중인 <페이스>를 비롯해 <령>(김태경.6월 18일 개봉)과 <인형사>(정용기.7월말) <알포인트>(공수창.8월 중순) 등 네 편은 신인 감독들이 데뷔작으로 선택한 공포영화다. 복안(페이스)과 여대생의 잃어버린 기억(령), 실종된 병사들로부터의 괴무전(알포인트), 구체관절인형(인형사) 등이 공포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가위> <폰>으로 한국적 공포영화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안병기 감독은 7월중 <분신사바>로 관객들을 만난다. 김규리, 이세은, 이유리 등이 출연하는 <분신사바>는 왕따 당하던 여고생들이 부른 '분신사바' 주문이 현실이 되며 엄청난 저주를 몰고온다는 이야기. 한편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은 옴니버스 <쓰리-몬스터>를 8월 중순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과 함께 메가폰을 잡은 박 감독은 괴한의 침입으로 인생을 뒤흔들만한 상황에 직면한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청춘물 3편 맞불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을 비롯해 <돌려차기>까지 세 편이 7월 23일 같은 날 개봉한다. 셋 모두 한층 낮아진 연령대의 배우들을 동원해 젊은 관객들을 타깃으로 한 영화다. 인기 인터넷 작가 귀여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그놈은…>은 어리버리하고 평범한 여고생 한예원(정다빈)이 우연한 계기로 '킹카' 지은성(송승헌)을 사귀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연애담을 담고 있다. 조한선 강동원 두 스타를 내세운 <늑대의 유혹> 역시 귀여니의 동명 인터넷 소설이 원작이다. 라이벌 관계인 두 남학생이 동시에 순진한 여학생을 '찜'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낭만적 순정멜로로 <화산고>의 김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인기 그룹 신화의 김동완은 <돌려차기>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돌려차기>는 불량 학생들로 구성된 '만세고(高)' 태권도부의 활약상을 담은 학원 코미디. 영화 <클래식>의 이기우, 각각 드라마 <보디가드>와 <첫 사랑>에 출연한 바 있는 현빈과 조안 등이 출연한다. ▶'흥행복병' 코미디 영화 18일 <슈렉2>를 시작으로 코미디 영화도 본격적으로 흥행 경쟁에 뛰어든다. 영화는 못된 영주와의 대결에서 힘겹게 승리한 슈렉과 피오나 공주의 뒷얘기를 그린다. 허니문을 마치고 피오나와 꿈같은 신혼생활을 보내던 슈렉은 장인 장모로부터 초대장을 받고 '머나먼 왕국'을 향해 떠난다. 한국 영화로는 7월 9일 나란히 개봉하는 <투 가이즈>와 <달마야 서울 가자>가 눈에 띈다. 박중훈 차태현 주연의 <투 가이즈>는 최첨단 반도체를 가로채려는 스파이 조직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간의 암투에 얼떨결에 가담하게 된 두 '나쁜 녀석들'의 모험을 담은 코믹 액션 활극이며 <달마야 놀자>의 속편 <달마야 서울 가자>에서는 전편의 스님들이 빚더미에 오른 절을 지키기 위해 건달들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한편, 애인(김상경)을 인기 절정의 여배우(오승현)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체면불구 온갖 방해공작에 나서는 노처녀(김정은) 이야기 <내 남자의 로맨스>는 한 주 뒤인 7월 16일 개봉하며 권상우 하지원 주연의 <신부수업>도 8월중으로 개봉일을 잡고 있다. 이밖에 송일곤 감독의 신작으로 감우성 서정이 출연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거미숲>(개봉 7월23일), 이병헌 추상미 최지우 김효진 주연의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8월중)와 극진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의 삶을 그린 <바람의 파이터>(8월6일)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도 흥행 대박의 꿈을 꾸고 있다.(서울=연합뉴스)

30년 전 충무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3]

# 스탭, 단역배우에 카메라, 소품까지 한차로 오늘 촬영은 창동 근처다. 지금쯤 제작부장은 여배우 N 양의 안국동 자택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을 것이다. 10편이나 가께모찌(주10)하는 N 양은 지난번엔 심지어 다른 영화 제작부장에게 납치까지 당했다. 그 일로 사장에게 밥값 못한다고 핀잔을 먹은 제작부장은 공주를 호위하는 무사마냥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을 게 뻔하다. 한때는 주먹으로 먹고살던 제작부장이었지만 눈에 잔주름이 생긴 뒤로는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다 탔는감? 그럼 일터로 가보자고.” 인원을 눈으로 체크하고서 K는 ‘오라이’하고 생기없는 목소리를 낸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것을 기다렸던 버스에 시동이 걸린다. 변비 걸려 헛방귀 뀌는 것마냥 버스는 털털거리며 매연을 내뿜는다. 스탭과 단역배우들은 물론이고 카메라부터 소품까지 모조리 집어삼킨 버스는 터지기 직전 김밥 같다. 뒤에서 보면 영락없이 뒤뚱거리는 오리 모양일 것이다. 그래선지 가다가 곧잘 고장이 난다. 그럴 때면 이동하다 말고 소변을 일부러 짜내야 하고 청자 담배 한대를 축내야 하지만 오스틴(주11)을 타던 시절보다 먼지는 덜 먹어서 좋다. 오늘 같으면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도착할 것 같다. 배우에게 프롬프터(주12)할 대사를 한번 읽어본 다음 K는 지난번 영화에서 만났던 허리가 잘록해 옷 매무새가 예쁜 신인여배우 J를 떠올리며 새우잠을 청한다. # 제작부장, 여배우 낚아채오기 “N은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이고.” 성난 황소처럼 감독이 씩씩거린다. 그래도 분이 안 차는지 급기야 연출부 막내 손에 들린 지랄통(주13)을 빼앗아 ‘뻥’ 하고 차버린다. “사다 미용실(주14)에서 늦어지나봅니다.” K가 나서보지만 감독의 안면근육은 진동을 멈추지 않는다. 저러다가 안 그래도 면상에 꽉 끼는 선글라스가 박살이 날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섯 막내는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진 지랄통을 주워오느라 얼굴이 새빨갛다. 그걸 보면서 K는 N양이 어젯밤 정가의 누군가에게 불려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해본다. 감독이 저러는 데는 본인의 캐릭터도 그러하지만, S군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남자배우로는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요즘 그의 주가는 트로이카 여배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여배우를 위한 영화이고 보니 그에게는 보조 역할만 돌아오는 것이다. S군. 그가 누군가. 웬만한 스타급 여배우들의 데뷔 시절부터 자신이 리드하며 짝을 이뤄왔다. 그렇다보니 충무로를 호령하는 여배우들의 안하무인이 눈에 거슬리기도 할 것이다. 200만원이 넘는다는 N양의 외제승용차(주15)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촬영장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여배우가 보는 앞에서 마가진(주16) 열어서 필름 다 버리라고 할 것 같았던 감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소품, 의상을 맡은 이들을 채근하며 촬영을 재촉한다. 주10 l 가께모찌 연간 출연 작품이 50편을 넘는 스타들이 적지 않았다. 그랬으니 1970년대 말까지 스타급 배우(사진은 <속 별들의 고향> 출연당시 장미희)들은 주로 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1960년대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건달 출신 제작부장들의 출연 협박에 못이겨 겹치기 출연이 성행했다는 말도 있다. 제작부장들끼리 결투를 벌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는데, 한때 제작부장들은 합의에 따라 오전, 오후, 밤으로 배우의 스케줄을 쪼개 나눠 쓰기도(?) 했다. 그러나 유효기간이 지난 필름을 쓰던 때였으므로 구름이 조금이라도 끼면 촬영이 지연됐고 배우를 데려가려는 쪽과 배우를 붙잡아두려는 쪽의 몸싸움은 계속됐다. 피곤에 지쳐 배우가 꿈쩍하지 않자 추운 겨울 배우의 집 앞에 놓여 있는 얼음이 둥둥 뜬 방화수에 들어가 침묵 시위를 벌인 제작부장도 있었다고. 주11 l 오스틴(Austin)2차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영국 오스틴사의 군용트럭. 1970년대 버스와 삼륜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충무로 스탭 및 영화기자재의 주된 운송수단이었다. 짐칸은 포장을 쳤는데, 덜컹거리는 그 안에서 스탭들은 잠을 청하거나, 한술 더 떠 화투를 치는 이들도 있었다 한다. 겨울에는 난로를 피우다가 화재가 난 것도 여러 번. 오스틴은 운송 외에도 영화 촬영을 위한 대도구(大道具)로도 사용됐다. 사진은 정창화 감독의 <지평선>(1961)에 등장한 오스틴. 주12 l 프롬프터(prompter)배우가 볼 수 있도록 실런더 모양의 기구에 각종 대사를 부착해놓은 것을 부르는 말이지만, 충무로는 그 역할을 대개 조감독이 대신했다. 물론 감독이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만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이만희 감독은 대사를 부르는 타이밍이 신의 경지였다고 한다. 이규웅 감독은 감정몰입을 해서 대사를 불러주는 스타일이라 몸이 덜 풀린 배우들로선 적잖이 당황하곤 했다. 사진은 김지미, 김혜정이 출연한 유현목 감독의 1964년작 <아내는 고백한다>의 촬영현장. 사진 가운데 앉아서 시나리오를 읽는 사람이 프롬프터 역할을 맡고 있다. 주13 l 지랄통쪼다통이라 불리기도 했다. 달군 숯 위에 연막탄을 넣은 깡통. 이를 돌리면 안개가 피어오르는 효과가 난다. 바람 부는 날엔 엉뚱한 방향으로 연기가 올라 지랄통, 지랄통을 돌리는 이는 현장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해서 쪼다통이라 했다. 주14 l 사다 미용실충무로 2가에 위치했으며, 이곳을 들락거려야 스타급 여배우로 인정받았다. 당시 한 연예잡지는 여배우들이 머리를 매만질 때 뭘 하는지에서 캐릭터를 엿볼 수 있다며, 윤정희는 독서를, 남정임은 수다를, 문희는 사색을, 김지미는 흡연을 한다고 썼다. 사진은 사다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있는 여배우 유미. 선배 스타들의 단골집이어서가 아니라 앞선 미용기술과 서비스가 맘에 들어서 자주 찾는다고 한마디. 주15 l 외제 승용차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스타들은 군용지프를 개조해서 만든 최초의 국산승용차 시발택시를 타고 다녔다. 1970년대 들어서 코티나, 크라운, 포드, 무스탕 등의 외제승용차를 구입했던 이들은 1970년대 중후반 국산 포니가 출시되자 너도나도 애마를 바꾸었다. 주16 l 마가진(Magasin)촬영시 필름을 장전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암실상자. 정진우 감독은 <초연> 촬영 당시 가께모찌로 인해 피곤한 여배우가 약속시간에 늦은 데다 촬영 도중 잠에 곯아떨어지자 화가 나 실제로 마가진 속 필름을 모두 꺼내 강물에 버리기도 했다. 1975년에 개봉한 <초연>은 이 사건 이후 주연 여배우를 교체한 다음 재촬영한 영화다.

30년 전 충무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4]

후시녹음, 대사 불러주기 # “입이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좀 해보시어요.” 불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주인공이 앞서 걷는 남편을 붙잡고 따지다 혼자 남아 울부짖는 장면이 오늘 촬영 분량. 카메라 옆에서 K는 N에게 아무 감정을 넣지 않은 대사를 불러주지만 밤샘촬영까지 하다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것이 전부인 N은 자꾸 “말이 있으면 무슨 입이라도 좀 해보시어요”라고 잘못 왼다. 그러나 갈 길 바쁜 감독은 개의치 않고 카메라를 돌린다. 어차피 성우가 후시녹음을 할 것이니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역인 S는 이미 촬영장을 빠져나가고 없다. N이 애원하는 상대의 뒷모습은 S가 아니라 S와 체구가 비슷한 보조출연의 것이다. 카메라 뒤편으로 다소 비껴 서 있는 스탭들은 킥킥대고 있다. 손 한쪽을 내준 것뿐인데 스타의 온기를 느낀 보조출연의 몸은 뒤에서 보는 K의 눈에도 뻣뻣이 굳어 있다. 양복 안에 가려진 그의 심장은 콩닥콩닥 정신없이 펌프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카트!’ 감독은 주위를 둘러본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치인데 다들 꿀먹은 벙어리다. “자 그럼 점심 먹고 만리동 스튜디오(주17)로 넘어가자고.” # 지방흥행사 꼬드기기 점심이라야 별게 없다. 단무지와 시금치를 넣은 김밥이 전부다. “저녁에는 진고개에서 불고기 구경 좀 할 수 있으려나 몰라.” “오늘 지방에서 그 어른이 올라오신다던데.” “누구 말이에요?” “지방흥행사(주18) R 말이야. 내 아까 N의 매니저한테 들었는데 제작부장이 R을 모시러 사장하고 같이 서울역에 나갔다고 하더라고.” “지난번에도 요란하더니만 입 씼고 그냥 내려갔잖아요.” “급료 못 받은 것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으려나.” “그거 받아서 누구 코에 붙이려고. 제작자한테 연수표(주19) 받아서 현금으로 바꿔봤자 얼마나 된다고. 하룻밤 술값이지.” 스탭들의 대화를 듣다 말고 K는 지난번 시나리오 독회(讀會) 때를 떠올린다. 독회(주20)는 대개 시나리오 작가가 하게 마련인데, 내심 점찍어 둔 배우를 쓰지 않았다고 작가가 감독과 언쟁 끝에 틀어지는 바람에 조감독인 K가 긴급 투입됐다. 여관에 짐을 푼 지방흥행사는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서라벌예술대학 출신인 그는 다른 조감독들에 비해 실감나게 대사를 읊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다. 행동이 굼뜨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지금껏 조감독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독회 실력 때문이라고 믿었는데.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K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려는 찰나 R이 묵언을 깼다. “신인은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어. 여배우를 바꾸지 그래.” R은 캐스팅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촬영은 시작됐지만 N양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객기와 배포만으로 전주(錢主)한테 개겼다가는 ‘꼬르륵’ 배곯기 딱 좋으니. 원하는 대로 됐으니 R이 한턱 낼지도 모르겠다고 K 또한 은근한 기대를 품는다. 그러고보니 문제의 N양은 쌩 하고 가버려 없다. 주17 l 스튜디오1962년 영화업 등록제가 시행된 이듬해 박정희 정권은 군소 제작사를 정리할 목적으로 건평 200평 이상의 스튜디오에 35mm 카메라, 조명기 등을 갖춰야 영화제작을 허한다는 내용을 영화법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 편법이 자행됐고 방앗간에 가짜 전원스위치를 만들어놓아도 제작사 허가를 받았다. 사진은 신필림의 원효로촬영소 세트장 외경. 주18 l 지방흥행사촬영 도중에도 배우가 맘에 안 들면 갈아치웠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전주(錢主). 당시 영화제작은 입도선매(立稻先賣), 즉 지방에 미리 상영 판권을 넘긴 돈으로 제작이 이뤄졌는데 따라서 지방흥행사가 상경하면 서울역에선 서로 모시려는 제작자들의 다툼이 있었다. 주19 l 연수표당시 개런티는 현금 대신 연수표(약속어음이라고 보면 된다)로 지급됐다. 그러나 당장 현금이 필요한 이들로선 와리깡(할인)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으로 바꿔 썼다. 문제는 이를 악용한 일부 제작자가 있었다는 사실. 연수표 내주고 난 다음 그 자신이 와리깡 사업을 벌이거나 일부러 부도를 내는 등의 일이 있어 현장 영화인들의 원성을 샀다. 주20 l 독회상경해서 충무로 여관에 짐을 푼 지방흥행사 앞에서 시나리오를 읽는 일. 좀처럼 눈길 주지 않는 콧대 높은 지방흥행사 앞에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는 구성진 변사 역할을 해야 했다.

자기 페이스를 ‘아는’ 여자, <아는 여자>의 이나영

오늘도 TV를 켜면 어김없이 뽀얀 얼굴 한 가득 천상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내로라 하는 CF퀸은 아닐지 몰라도, 굵직굵직한 광고들 속에서 이나영은 마치 우리와는 다른 종족인 양 눈부시기만 하다. 그런 그가 영화에만 나오면 남자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2년 전에는 사이버 캐릭터 ‘멜로’에게 마음을 뺏겼고(<후아유>), 지난해에는 영어학원에서 귀여운 바람둥이 문수에게 꽂히더니(<영어완전정복>), 이번에는 무뚝뚝하기만한 왕년의 인기투수 치성을 10년 동안 스토킹한다(<아는 여자>).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처럼 완벽한 이나영이 그토록 평범한(!) 그들에게 매달려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영화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다. 예사롭지 않음, 혹은 엉뚱함 “그러게요.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구요. 근데 쫓아다니는 게 맘이 편하지 않나?”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나영이 말하길, 자신이 사랑받는 여주인공을 맡지 않는 이유는 창피하기 때문이란다. “누가 나를 좋아해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그리고 그러면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예쁜 연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에겐 창피한 일이 정말로 많다. 리허설 때 100%를 다 보여주면 실제 테이크에서 그대로 반복해야 한다는 게 창피하고, 남들 다 하는 영화감상, 어학공부가 취미인 것도 쑥스럽다. 하다못해 사진촬영을 할 때 듣는 예쁘다는 칭찬에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옛날부터 칭찬을 잘 못 믿었어요. 사진찍어주시는 분들이 웃으라고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일 텐데, 예쁘다는 말을 듣고 웃는 것도 창피한 일 같고.” 이나영이 별걸 다 창피해하는 여자라면, <아는 여자> 이연은 어색하고 긴장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비굴해지는” 여자다. 그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해 두리번거리며 딴청을 피우고, 사랑하는 치성을 뒤로하고 돌아설 때는 뭔가를 두고 가는 사람마냥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이 여자가 정말로 그렇게 비굴한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이연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 중요한 상황에서 엉뚱한 말을 내뱉고 후회할 때는 있어도, 체질적으로 단 한순간도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연기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나 자신이 발전한다는 거예요.” 자기 연기가 발전한다는 말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에게서 본인의 단점을 보고 고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이번에는 영화 속 이연의 구부정한 자세를 보고, 평소 자신의 나쁜 자세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자세교정을 위해 발레를 배워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예전에 <영어완전정복>을 계기로 영어공부에 대한 결의를 다졌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서 본인의 나쁜 습관을 알게 된다는 그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연은 애초부터 이나영을 향해 정조준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후아유>의 인주, <영어완전정복>의 영주도 그랬다. <아는 여자>를 본 주위 사람들은 “야, 이연이가 딱 너구나!”라고 말하지만, 그건 이전 영화를 끝내고도 매번 듣던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자폐소녀 인주, 엽기공주병 환자 영주, 미워할 수 없는 스토커 이연, 이 세 인물들은 ‘예사롭지 않음, 혹은 엉뚱함’을 배제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영화를 한번 찍으면 한동안은 자신이 연기한 인물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나영이기에 요즘에는 이연의 엉뚱함을 달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치성이 “두달만 살 수 있다고 하면 뭘 할래요?”라고 물을 때, 이연은 “두달을 꼭 채우고 죽어야 되나”라며 허를 찔렀다. 사진찍을 때 배우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묻는 기자에게 이나영은 “배우들이나 유명인들을 만나는 게 일인 기자들은 매번 어떤 생각을 할지가 예전부터 궁금했다”고 반문한다. 문득 어디까지가 영화 속 이연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의 이나영인지를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사진을 찍다가 “어! 느낌이 없어져버렸어요”라며 울상을 짓거나, 마지막 세컷만 더 찍겠다는 말에 “그러면 더 못 하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린다. 좋은 포즈, 자신이 가장 예뻐 보이는 표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매번 애쓸 뿐”이다. 세상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나영은 이런 사람’이라는 정의 역시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찾아서 영화를 준비할 때는, 막상 읽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언제나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이나영의 조급증은 유명했다. <아는 여자> 준비기간 동안, 인물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는 장진 감독 때문에 “어떡해 어떡해”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아는 여자>를 마치고 얻은 깨달음은 이렇다. “치성을 연기한 정재영 선배처럼 배우가 영화 한편을 하나의 톤으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자기만의 페이스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멀리서도 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풀숏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를테면 이연의 풀숏은 ‘비굴함’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처럼. 배우가 자신의 몸 전체를 통해 확실하게 그 인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멋진 일이잖아요.” 그는 정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그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래야 한다’라는 원칙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자신이 변화하는 유연함이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은근한 페이스로 승부하는 것이나, 자기만의 느낌으로 풀숏을 채우는 것. 이나영에게는 이제야 알게 된 배우의 중요한 덕목들이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실천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업과 연기에서 의외의 행보 보여주는 배우 정준호

정준호를 두고 이제 무거움이나 진지함의 형용사를 떠올릴 사람은 없다. <두사부일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가문의 영광> <동해물과 백두산이> 등의 필모그래피를 이어오면서, 소심하고 순진한 옆집 남자의 캐릭터를 일관되게 코미디영화 속에서 보여온 정준호. 올해 첫 작품으로 최근 개봉을 앞둔 <나두야 간다>도 조폭 두목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삼류 소설가의 좌충우돌을 다루면서 코미디의 함량을 높인 영화다. 당연히, 같은 장르를 고집하는 이유와 속생각들이 궁금해졌다. 또 하나. 그는 지난해 제작사를 꾸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그의 영화사 주머니필름이 제작한 첫 영화다. 대표 직함은 달고 있지 않지만 최종 결재권을 행사하고 있고, 최근엔 호텔사업도 시작했다고 한다. 사업에 남다른 욕심을 보이는 그의 또 다른 행보는, 뭐든 다 내줄 것만 같은 사람 좋은 미소에서 잘 연상되지 않는다. 필모그래피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 다른 어떤 배우들보다도 짐작이 되지 않는 정준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뒤에 약속이 있다며 예의 점잖은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최근 출연한 오락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내며 “그렇게 착하게 생긴 여학생들 중에 친구의 연인을 뺏은 사람이 13명이나 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여러 번 놀라움을 표했다. 그렇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영화 속 캐릭터와 꼭 닮은 소박한 인상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당당한 야심이었다. 본인도 당연히 예상했을 법한 질문일 텐데, 코미디영화를 계속 해오고 있다. 본인이 코미디 연기를 했느냐 상황이 웃겨준 것이냐를 떠나서, 왜 계속 같은 장르를 선택하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신선했다. 워낙 단정하고 바른 이미지라 그런 게 깨지는 데서 오는 재미도 있었고. 그러나 그것이 큰 변화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본을 볼 땐 장르를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는 여러 대본들을 읽다가 제일 매력있게 다가오는 걸 선택하게 된다. 나도 어떤 영화가 드라마쪽이라고 생각해서 선택을 하지만, 마케팅을 해야 되는 제작자나 홍보쪽 입장에서는 흥행이 될 만한 방향을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대본이 바뀌는 수도 있고, 한쪽 면만 부각되기도 하는 거다. 어쨌든 나는 아직까지 시나리오에서 받은 느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데,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더 중요한 게 감독이라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 감독의 예술이고 감독에 의한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거다라는 점. -그런 식으로 영화가 달라지면 본인이 의견을 어필하기도 하나. =한다. <나두야 간다>도 나는 누아르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다. 순수했던 소설 작가가 돈을 벌기 위해 자서전 대필을 하게 되면서 전혀 다른 집단에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깡패가 돼 결국은 어느 순간 제2인자한테 칼을 맞는 과정들이 그랬다. 그래서 난 주인공이 죽는 걸로 결말을 맺었으면 했다. 결국 내 인생의 선택은 옳지 않았다라는, 가족한테는 적절한 아픔을 주고 인생을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그걸 요구했지만 투자자나 배급사 입장에서는 흥행이 되는 쪽으로 가려면 재밌는 게 더 좋겠다고 얘기를 해왔다. 그럴 때 내 의견을 더 피력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성격이 좀 우유부단하다. 그런 일로 사람들하고 트러블이 생겨서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면 나도 불편하니까 거국적인 측면에서 (웃음) 그렇게 결말이 났다. -인간관계가 일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앞으론 처음부터 상대방의 확고한 의지를 들어놓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영화 만들다가 사람 잃고…. 인기와 배우의 생명은 하루아침에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은 천하의 별이라고 해도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 취향이 변하면 떴다가도 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는 게 뭐냐는 거다. 인기를 잃었는데 사람까지 잃으면 안 되잖나. 옛날에 포장마차에서 같이 소주 마시면서 만날, 형, 나 도와줘야 돼, 이랬던 사람들인데, 나는 먹고살 만큼 잘 풀렸다고 그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거다. 그나마 내가 도움 줄 수 있을 때 나한테 부탁을 해라, 그래서 이렇게 됐다, 핑계라면. (웃음) 핑계라면 이렇게 됐는데, 그 대신 배우로서 나한테 가장 부담되고 무서운 건, 상품을 선전할 때 덮어놓고 무조건 좋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럴수록 관객과 나와의 신뢰는 점점 무너져가고 내 살 깎아먹기밖에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하면서 나는 솔직하게 아쉬움이 정말 많다. 점수로 따지면 20점밖에 안 된다’라고 얘기하는 게, 제작자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 좋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유일한 살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에 대해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눈앞에 둔 영화들이 <가문의 영광2> <투사부일체>(<두사부일체> 속편) <역전의 명수> 등 모두 코미디다. 전작이나 제작사에 얽힌 인간관계가 있었겠지만 <가문의 영광2> 같은 건 본인이 더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소문이 좀 잘못됐다. <가문의 영광2>든 <투사부일체>든, 영화를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서 안 한다고 통보를 했다. 인맥하고는 상관이 없다. 만약 (출연)해서 전편보다 더 잘됐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배우로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에게 저런 면도 있구나, 하는 것도 가끔이지, 여기 써먹고 저기 써먹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제작을 해야겠다고 말한다면 나도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역전의 명수>는 코미디영화가 아니다. 1분20초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이야기인데, 하나는 아주 거칠고 남자답고 순수하게 자란 친구(명수)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을 위해서 모든 걸 버리는 아주 악랄하고 못된 친구(현수)다. 그리고 어머니는 현수의 성공을 위해 명수를 희생시키지만, 결국 남는 것은 상처뿐인,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1인2역을 한다는 데 매력을 느꼈고, 정말 연기에 몰입해서, 두 인물을 아주 극단적이고 대조적으로 보여줘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어 결정했다. -지난해에 주머니필름이라는 제작사를 만들었다. =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아주 강한 사람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매니저를 안 보내고 내가 직접 만나는 편이다. 거절하더라도 직접 찾아가서 거절하고. 배우로서의 인생만 산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난 배우의 인생을 떠나서 개인적인 야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그 야망에는 배우로서의 성공도 있고 사업가로서의 성공도 있다. 그래서 호텔사업도 그렇지만, 영화사 같은 경우는 내가 영화배우로서 활동하는 동안 좋은 작품을 여건만 되면 시기와 상관없이 만들 수 있고 또 내가 출연할 수도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어서 차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거다. 내가 배우로서 평생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없다. 어느 순간 2선으로 물러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줄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측면도 있다. 그래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차렸다. -주위에서 어떤 이유를 들어 반대했나. =선배님들이 시행착오를 겪어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까 반대를 했다. 영화사를 차리든 다른 비즈니스를 하든, 배우가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게 되면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인이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입방아에 오를 소지가 많다. 공인이기 때문에 타깃이 자기한테 돌아오는 거다. 만약 이쪽에서 돈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일반 사람들이 한 일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일도 정준호란 사람이 사기를 쳤다, 횡령을 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언론에서도 어? 정준호 고소당했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다, 시나리오를 쓰자면. 그러면 고소한 사람 입장에서는 아, 이게 무기구나. 그렇게 되는 거다. 결국 그걸 막기 위해 돈으로 입을 막고…. 그랬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배우가 연기만 하면 됐지, 왜 사업을 해서 골치를 앓느냐며 말렸다. -직접 해보니까 어떤가. =배우가 제작자를 겸한다는 건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더라.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쓸데없이 들어가는 제작비 문제, 배우 캐스팅에 걸리는 시간문제, 홍보·마케팅에서 배우가 임하는 자세문제 등등. 첫 작품(<동해물과 백두산이>)으로 크게 손해는 안 봤고, 느낀 것도 많다. 영화제작은 전문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 좋은 영화사가 되려면 각자 파트에 맞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경력이 많은 사람, 의욕이 많아서 발로 뛰어줄 사람. 여러 가지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좋은 영화사의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는 걸 한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다. 영화를 많이 제작하는 할리우드나 유럽에서는 배우가 제작사를 가진 경우가 많다. 좋은 작품을 언제든지 만들어서 출연할 수 있다는 시스템을 갖춰놓은 것뿐이지, 내 입장이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호텔사업은 언제 시작했나. =3월1일부로 인수를 해서, 1대 주주로 있다. 사업이면서 일종의 재테크이기도 하다. -앞날을 내다보고 차근차근 뭔가 해나가는 것이, 미래에 대해 책임감을 가진 계획적인 사람인 듯하다. =인터뷰하면서 할 얘기는 아닌데, 써도 좋고 안 써도 좋지만, 나는 되게 잡초처럼 살아왔다. (한참 침묵) 깡패두목 김태촌 같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격동의 세월을 거쳐오면서(웃음)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때론 한 여자를 사랑해서 집까지 나가본 적이 있고, 때론 약한 자를 괴롭히는 놈을 때려서 벌도 좀 받아봤고. 내 자랑을 좀 하자면, 학교 다니면서 러브레터를 하루에 몇십통씩 받았다. 내가 등교하는 시간에는 여학생들이 창문을 다 채우고 막 소리지르고 그랬으니까. 고1 때 대학교 4학년 누나하고 연애도 해봤다. 그 누나가 나 아니면 죽는다고 할 정도로 나는 매력적인 학생이었다. 그땐 거칠 게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바닷속의 진주가 갖고 싶다면 산소통 안 메고 들어갈 정도로 난 강했거든. 친구들 몫까지 뒤집어쓰고 벌도 받을 만큼. 배우생활 하면서 많이 약해진 거다. 난 온실 속에서 보호받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 모진 세파에 휩쓸려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 속에서 정준호라는 사람이 보여준 거는 내가 갖고 있는 것에 1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무섭게, 몰라,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부분들이 있을 거다. -복안이라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더더욱 내 자신한테 충실한 건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겉모습이 부담을 주기 때문에 부담없어 보이는 편안한 연기자로 가는 메이킹 중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 되면, ‘저것 봐, 저 사람 심각하면 재미가 없다니까’ 이런 게 아니라 심각하면서도 ‘저 사람은 저기서 뭔가 하나 해줄 거야’라는 기대감을 주게 될 거다. 말하자면 배우로서 내 상품을 관객에게 애프터서비스도 해주고, 수요자들의 불만 사항도 접수하고 그래서, 이제는 견고한 상품으로 만들어서 하자가 없게(웃음) 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거다. 관객이 목말라할 때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데 본인이 안 하고 있다. 노래도 웬만큼 하고, 독특한 색깔도 있는데. 한번은 불러야 될 텐데. 술자리 끝나기 전에. (웃음) 타이밍이 좋을 때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람들이 화장실 갔을 때 말고, 다 모여 있을 때 불러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게 어느 때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파격적인 변신을 할 때가 오겠지. -국문과를 전공해서 그런지 몰라도 비유가 재미있다. =졸업은 아니고 중퇴했는데, 음…, 내가 사실은, 책을 좀 많이 읽는다. 책 속에 들어가면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다. 집에 있을 때에도 서재에 있을 때가 가장 좋고 편하다. 책들마다 다 사연이 있다. 예를 들어 아, 저 책은 샌프란시스코 갈 때 누구랑 기내 안에 있으면서 읽었던 책이야. 겉표지를 펼치면 그런 게 쓰여 있다. 내가 다 써놓는다. 몇년, 몇월, 며칠, 날씨 맑음. 오늘은 누구랑 어디를 가는 길에… 뭐 이런 식으로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을 간단하게 써놓는다. 다이어리에다도 조그맣게 써놓고. 달력에도 뭐가 막 써 있다. 그때 만났던 사람, 종로3가 어디 술집에서. 간단간단하게 써놨지만 그런 것들을 죽 넘겨보면서 과거를 돌이켜보곤 한다. 이사갈 때도, 다른 건 다 이삿짐센터에 맡겨도 내 책은 내가 다 박스로 싸서 끈으로 묶고 내 차에 싣고 간다. 그리고 그것만은 직접 정리한다. 박스 겉에다가 개인소장품, 보물1호, 이렇게 써가지고. (웃음) -몇권 정도 되나. =창고까지 다 합치면 1천권 정도 될 것 같은데. -변신하겠다는 의지와 욕구를 밝혔지만, 정말 본인이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려면 앞으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스/노를 분명히 하는 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일 것 같다. =내가 사람들한테 주는 것만 좋아하니까 어머님이 어렸을 때 늘 그러셨다. 넌 왜 그렇게 실속이 없냐. 지금도 하루에 몇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실속을 차리자. 이제는 싫은 소리도 해야 할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조금 서운하게 하더라도, 배우 정준호가 하고 싶은 영화, 정준호가 관객에게 특별히 보여주고 싶은 역할, 그런 걸 한번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고, 이제 지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통고를 해야지. 앞으로는 개인적인 부탁이나 이런 거 힘듭니다. (웃음) 내 인생의 역작이 될 수 있는 영화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정말 지독한 감독하고, 아주 지독한 감독하고, 내가 다시는 영화하기 싫다 할 정도로, 그런 정도로 나를 끌어낼 수 있는 감독하고라면, 나는 바치겠다. 그런 거에 나도 굶주려 있고, 또 그 굶주림을 영화로 표현해낼 수 있는 나이가 돼가니까. (웃음)

오락계의 희귀종

KBS1 <가족오락관>은 멸종동물을 보는 것 같은 신기함을 준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1984년 4월에 첫 방송을 시작해 20년 동안 장수하고 있는 <가족오락관>이 6월19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다.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이 토요일 오후 6시 ‘황금시간대’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프로그램의 포맷이 20년 전의 원형질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근근이 연명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10% 안팎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같은 시간대의 오락 프로그램에 전혀 밀리지 않는 수치다. 장수 중에서도 건강 장수인 셈이다. 무릇 모든 장수에는 ‘비결’이 있게 마련이다. <가족오락관>의 장수 비결은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다. 우선 장수의 기본원칙인 단순함을 잃지 않는다. O, X 게임, 스피드 퀴즈, 앙케트 맞히기…. 조금만 ‘참고’ 보면 단순한 즐거움에 빠질 수도 있다. 조금만 더 ‘참고’ 보면 그 단순함이 멈춰서 있지 않고 서서히 진화해왔음도 눈치챌 수 있다. 스피드 퀴즈는 단순한 문제 맞히기에서 문제 맞히면서 돈세기로 진화했다. 센 돈까지 정확히 기억해야 맞힌 점수를 주는 것이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들이 외국 프로그램 베끼기 시비에 휘말릴 때, 이 프로그램은 나름의 양식을 진화시켜온 것이다. 그 진화의 동력은 주요 시청층인 주부들의 날로 높아져가는 ‘눈높이’였을 게다. ‘오버’해서 말하면, 장수 프로그램답게 인생철학도 담고 있다. 여성 3명으로 구성된 룰루랄라 시스터즈가 나와 엉뚱한 노래에 이상한 가사를 붙여놓고, 그 가사 중의 일부가 어떤 노래인지에서 따왔는지를 맞히는 ‘룰루랄라 노래방’이란 게임이 있다. 이 게임에서 어떤 노래인지를 맞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래를 맞힌 팀이 먼저 노래할 기회를 갖지만 음정, 박자, 가사 중 하나만 틀려도 땡! 기회는 상대팀으로 넘어간다. 그 노래를 상대팀이 ‘완창’하면 승리. 이처럼 ‘룰루랄라 노래방’에는 ‘인생역전’의 진리가 담겨 있다. 또 다른 코너인 ‘퀴즈 5인5답’에는 ‘인생무상’의 교훈이 녹아 있다. 예컨대 사회자가 동명이인 연예인을 대라는 문제를 낸다. 5명이 잇따라 정답을 맞혀야 승리할 수 있다. 4명이 정답을 맞히더라도 마지막 1명이 틀리면 꽝! 역시 기회는 상대팀에 돌아간다. 색다른 룰은 상대팀은 먼저 팀이 말한 정답을 그대로 반복해도 된다는 것.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다보면 결국 두팀이 서로 ‘공조’하는 효과가 생긴다. ‘커닝’만 잘하면, 정답을 더 적게 생각해내고도 이길 수 있다. 잘난 놈이 꼭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인생 교훈, 이라면 오버일까? 이 프로그램에서 진짜 ‘오버’하는 사람들은 방청객이다. 아니 그들은 박수치는 방청객이 아니라 참여하는 응원단이다. 부녀회, 동창회 등에서 나온 중년 여성들은 도통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는다. 박장대소를 하고, 정답도 슬쩍 알려준다. 게임에 참여해 노래도 부른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돼, 방청객이 출연진을 초청해서 동네잔치를 벌이는 분위기다. 동네잔치를 벌이려는 부녀회가 너무 많아서 방청을 하려면 6개월씩 기다려야 한다. 이제는 ‘브라운관’에서 보기 힘든 그때 그 얼굴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얼굴의 늘어난 주름살을 보면서 가끔 ‘센치멘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물간 연예인만 나올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최근에만 코요테, 베이비복스가 <가족오락관>에 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는 사회자 허참이다. 허참은 87년 교통사고로 입원해 단 한번 쉰 것을 빼고는 20년 동안 개근을 했다. 그동안 정소녀에서 장서희를 거쳐 이주희까지, 16명의 여성 사회자가 거쳐갔다. 터줏대감 이경규에 김용만, 박수홍 같은 ‘잘 나가는’ 연예인을 내세워 여전히 시청률 30%대를 유지하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20년 동안 같은 사회자를 고수한 <가족오락관>은 대조되는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사이 <가족오락관>은 ‘주부오락관’이 됐다. 가족 모두가 보는 인기 프로그램에서 주부들이 주로 방청하고, 시청하는 마니아 프로그램으로 바뀐 것이다. 돌이켜보면, 20년 전에는 <가족오락관>의 이름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주말이면 엄마, 아빠, 아들, 딸이 모여 앉아 <가족오락관>을 보고는 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르는 동안, 텔레비전 앞에 ‘바람난 가족’들은 떠나고 주부들만 남았다. 토요일 저녁, 남편은 일하느라 늦고, 자식들은 노느라 바쁘다. 그 변화는 한국사회 가족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가족오락관>은 또한 한국사회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상징한다. <가족오락관>은 트렌디한 드라마, 화려한 쇼 못지않게 순박한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직도 한국사회의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세월이 갈수록 세대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오락관>은 자주 잊혀지고, 때때로 무시당하는 그 감수성의 존재증명이다. 그래서 <가족오락관>은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한 시대를 상징하는 지표처럼 보인다. 이 프로그램들은 가족드라마, 가족오락 프로그램이 사라진 (혹은 사라져가는) 시대에 살아남은 희귀종들이다. 비록 화려한 조명은 받지 못할지라도 굵고 짧게 살다가 숱한 인기 프로그램의 묘비명 틈새에서 <가족오락관>은 가늘고 길게 살아남았다. 그 질긴 생존은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전원일기>의 종결이 한 계층 역사적 퇴장, 한 시대의 마감을 상징했던 것처럼.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

평화, 우리가 지킨다

놈이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이것을 안정된 시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우리가 지키고 다짐해야 할 행동지침으로 삼는다. 크게 세가지만 말하겠다.” “근데 왜 니가 그런걸 말해?” “반장이 지금 결석해서 유고 상태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반장은 왜 안 왔대?” “식중독이래? ... 며칠 동안 못 온대.” “와 부럽다....” “그래, 알았어. 부반장 말해.” 놈은 부반장이었다.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미군의 병력 재배치와 이라크 차출에 관련해서 우리 유소년들이 심각한 안보 공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 이동이 결코 모든 안보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우린 알고 있다.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주지 시켜주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문제다. 세 가지만 말한다.” “첫째, 심리적 공포와 불안에서 탈출하자. 보병의 자리 비움은 어쩔 수 없지만 거기에는 고성능 현대 무기의 추가 배치로 결국은 전력의 극대화를 꾀하게 된다. 문제는 심리적인 공포와 그로인한 우리 어린이들의 안보 불안이란 말이다. 그래서 밖에도 잘 안나가는 애들이 많아지고 그로인해 학원가는 것도 꺼리게 되고 난데 없이 라면과 아이스크림을 사재기로 사다가 비축하려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지는데 그러지 말란 말이다.” “우린 뭐 그렇게 무섭거나 그러지 않는데….” “너 어제 학원 안왔잖아. 안무서우면 왜 안왔어 그럼?” “그게 그런게 아니지….” “자… 자 자네들 모두 이번 미군 이동에 불안해 한다는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방은 더욱 강해지고 있고 전력 누수 현상은 전혀 없으니..이것을 이해하고 심리적 불안에서 떨고 있는 주변 여학생들과 가족들이 동요되지 않게 우리가 잘 잡아주어야 함이 우리의 당면 과제다.” “둘째, 영원한 우방은 없다. 언젠가 대통령 아저씨가 말씀하신 대로 언젠가는 우리도 자주 국방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국력을 키워서 !!… 아, 뭔말인지 잘 모르나 본데 쉽게 말하면 6학년 선배들은 언젠가 졸업한다… 그러면 주변 학교들로부터 우리가 이 학교를 지켜야할 시간이 온다 이거다 그러려면….” “5학년 형아 들도 있잖아.” “그러게….” “맞아, 맞아.” “이보게들, 5학년 형아들이 6학년이 된다는 것은 그 5학년 선배들도 결국엔 졸업을 하게 된다는 말이지... 그렇게 되면 우리 4학년이 이 학교를….” “그러네…맞다맞다….” “역시 부반장이다.” “계속해라….” “자주 국방을 위해서 우리 유소년 들이 인문계열의 학과인접 학원을 선택해서 다니는 것 보단 태권도나 복싱, 아니면 쿵푸나 양궁 같은 격투나 완력 보양의 학원을 다녀서 국력증강에 일조를 하자. 셋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고민하자. 언제까지 우린 예산의 많은 부분을 국방비로 쓸것이며 좁은 국토를 군사적 전략적 이유들 대문에 비효율 적이며 비산업적으로 이용해야 하는가... 이 모든 것들이휴전 상태의 국가현실 때문이다. 지금은 감이 없겠지만 얼마안있어 우리 유소년들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가게 되는데... 아까운 청춘을 2년동안이나….“ “와 그럼 진짜 총도 만져보고… 총알도 주지? “바보 당연하지 난 전투기도 몰건데….” “지금 그 얘기 하는게 아니다… 여하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이 되면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고 미군이 이 나라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럼 영어 학원에 안가도 되겠네….” “근데, 부반장 숙제 안걷냐? 선생님이 걷으랬는데….” “난 어제 밤새도록 이 생각을 하느라 숙제를 못했다 니들이 걷어서 내라.” “너 죽었다 선생님한테….” “그것이 두려웠다면 이런일 시작하지도 않았다. 아무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 우리 유소년들은 옆반 아이들과 사이 좋게 지내기, 여자애들게 행하여지던 성희롱적인 행동 금하기, 엄마 아빠 부부 싸움할때... 경찰에 알리기... 등등 주변부터 평화롭게 비폭력적으로 가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시작으로 이따가 행여 선생님이 숙제 안했다고 나를 가격하는 행위 있을때 영철이 니가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민태야 니가 신고해 곧장…알았지?“ 장진/ 영화감독

예술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

강북에 동숭아트센터가 있다면, 강남에는 LG아트센터가 있다. 두곳 다 정부가 아닌, 기업 혹은 개인이 운영하는 문화재단을 축으로 하여 시장의 실험을 견디고 살아남았으며 올해 들어 다양한 문화적 실험과 시도들로 확장 하는 중이다. 동숭아트센터는 올해 ‘연극열전’이라는 연간 단위의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LG아트센터는 무용, 연극, 음악계를 국내외의 전위적인 그룹들과 풀어보는 참신한 기획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ll 동숭아트센터 1989년에 개관,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불리던 대학로에 ‘민간 종합 공연장 시대’를 연 동숭아트센터는, 밖으로는 대극장과 소극장, 하이퍼텍 나다, 동숭씨네마텍 등을 통해 연극과 영화를 아우르는 기획을 선보이고 있으며, 안으로는 옥랑문화재단을 통해 국내 문화예술 활동 및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예술이 돈을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돈을 버는 수단도 된다”는 김옥랑 대표의 신념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장진 l 문화창작집단 수다 대표 겸 영화감독 - “시장성과 대중의 기호를 파악하지 않으면 좁은 그릇 안에서 복닥거리는 것밖에 안 된다. 동숭아트센터의 활동 가운데서 ‘2004년 한국 연극 최고의 프로젝트’를 내세운 ‘연극열전’ 시리즈는 단연 돋보이는 기획으로 세간의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지난 24년간 국내에서 화제작으로 손꼽힌 연극 15편을 1월부터 12월까지 공연한다는, 이 비상한 기획은 동숭아트센터 프로그래머인 홍기유의 머리에서 시작됐다. 거기에 문화창작집단 수다의 대표이자 영화감독인 장진의 머리가 포개지면서 ‘연극열전’이라는 프로젝트가 탄생되었다. 총 15개의 작품에 10개 극단이 참여하고 수십명의 프로듀서와 마케팅 인력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에 드는 비용은 40억원 상당. 어지간한 영화 한 편의 제작비에 ‘불과’하지만 연극계로서는 초대형 프로젝트다.‘판짜기의 달인’ 장진과 ‘서비스 정신만이 연극계의 희망이다’를 외치는 홍기유가 만나면서 불꽃이 불길이 돼버린 것이 바로 연극‘열’전이다. "이미 지나가버려 전설처럼 이름만 남은 연극들을 영화처럼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는 연극으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시한부’적 삶을 지닌 연극을 생생한 것으로 만들었고, 대학로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영화계로 걸어가 돌아오지 않는 배우들"로 인해 죽어가는 연극계에 대중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을 대거 ‘돌아오도록’ 해 배우들로 하여금 "관객과 호흡하고 싶다"는 열망을 되찾게 한 점도 이 프로젝트의 주목할 만한 점 중의 하나. 그외에도 ‘연.애.인(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 캠페인, ‘열전자봉’(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 시스템)을 통해 관객을 연극 스스로가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상업시장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 순수예술의 정신만을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시장성을 고려하고 대중의 기호를 파악하지 않으면 좁은 그릇 안에서 복닥거리는 것밖에 안 되는 거다. 예술, 그거 혼자서만 한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연극도 생계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장진의 말이다. 홍기유 l 동숭아트센터 프로그래머 - “연극열전은 시대정신의 릴레이가 아니다. 중심은 레퍼토리의 정확한 재현에 있다.” 15개 작품 릴레이 상연, 유명 배우 대거 유입 현재 중반에 들어선 동숭아트센터의 ‘연극열전’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상업적인 기획에 불과해보이던 레퍼토리 시스템을 한 단계 끌어올려 문화의 흐름을 인식하게 했고, 그때그때 임시로 기획되던 연극계에 장기적인 프로듀서 시스템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낡았다’, ‘시대착오적이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프로그래머 홍기유는 이에 대해 "연극열전은 시대정신의 릴레이가 아니다. 시대정신은 계속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열전의 기획의도이자 중심은 레퍼토리의 정확한 재현에 있다”고 답했다. 연극이 시대를 정확하게 재현하고 기록하는 장르로 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연극은 결코 관객에게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홍기유는 내년에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하는 ‘캐주얼한’ 국제 공연 예술제를 기획 중이다. ll LG아트센터 2000년 3월에 문을 연 LG아트센터는 LG연암문화재단이 문화예술의 창작과 교류를 통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과 ‘문화 인프라 구축’을 내걸고 건립한 다목적 공연장이다.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강남에 문화예술 공연장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LG아트센터는 그동안 독일 피나 바우쉬의 부퍼탈 탄츠테아터,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유럽 연극의 새로운 강자 독일 함부르크의 탈리아극장, 20세기 ‘디지털 미디어 연극’의 개척자인 로베르 르파쥐, 현대음악의 선구자인 필립 글래스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초청하여 국내에 선보였으며, 대중적인 감각의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쇼’, 팻 메스니 그룹,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등을 소개해 ‘예술과 시장논리의 조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국내 예술단체와의 공동 기획을 통해 우수한 레퍼토리 개발에 힘써왔으며 국내 공연작품에 대한 관객의 호감도를 꾸준히 높여왔다. 2004년 기획은 선명한 프로그래밍과 장르의 특화된 구분 쪽으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연극 분야에서는 해외 대형 뮤지컬(<미녀와 야수>)의 국내 공연 유치를 기본 플랜으로 실험적인 경향을 지닌 젊은 연극인들의 작품(젊은 연극인 시리즈)을 올렸으며, 무용 분야에서는 전위적인 유럽 무용계의 흐름(세드라베, 사샤 발츠, 랄랄라 휴먼 스텝스)을 주목하면서 국내 젊은 안무가들의 참신한 공연(4인의 안무가 시리즈)을 선보였다. 음악 분야에서는 창의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클래식 연주자들(비온디&갈란테, 스티븐 이셜리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과 재즈·월드 뮤직의 공연(제인 버킨, 게리 버튼,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 그리고 영화음악계의 거장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독특한 프로그램들(탄둔, 마이클 니만 밴드)이 눈에 뜨인다. 선명한 프로그래밍과 장르의 특화 정재왈 l LG아트센터 운영부장 겸 공연평론가 - “검증된 작업과 실험들을 적절하게 배치한다면 관객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공연평론가이기도 한 LG아트센터의 정재왈 운영부장은 “공간적인 특성 살리기, 즉 대극장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LG아트센터 극장이 실험의 공간에 걸맞다는 것이 2004년 프로그램 구성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LG아트센터의 기반인 강남 중산층 관객의 취향을 그는‘아방가르드하면서도 동시대적’이라고 정의했다. 이때문에 그동안 ‘명품 공연만 수입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던 LG아트센터가 최근에는 다분히 선동적인 수준의 실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사실 관객의 취향이 진보하는 것은 유명 공연보다는 개성 강한 동시대의 작품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몸집 크고 취향 ‘우아’하기로 정평난 LG아트센터가 실험이나 전위(Avant-garde)의 짐과 냉대를 과연 얼마나 견디며 지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에 대한 LG측의 해법은 ‘절충’이다. “국내 관객의 취향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가야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까지는 국내 관객의 ‘취향’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고 본다. 쏠림(유행)이 취향처럼 발산될 뿐이고 그만큼 주관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유행에 편승하지 못하면 묻혀버리고 마는 단점이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오히려 취향의 부재란 새로운 것을 그만큼 발빠르게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검증된 작업과 실험들을 적절하게 배치한다면 관객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본다.” 연극인의 입장에서는 ’아, 너무도 달콤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LG측이 지고 있는 현실적인 짐도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20억원이 넘는 임대료에 대한 부담과 재단의 자산으로 돌리는 재테크도 요즘에는 원활하지 않다고. 이 문제에 대한 현실적이고 강력한 해답 중의 하나는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대기업들이 세금감면을 위한 차선책으로 주로 이용하는 문화 관련 사업을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때다. ‘문화 인프라’의 확장은 개인이나 재단이 아닌 국가 전체가 이끌어나가는 것이라는 상식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가 아닌 개인이나 기업의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일궈나가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문화행정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동숭아트센터나 LG아트센터와 같이 적잖은 경험을 축적하고 열정도 보존하고 있는 현장에서 발굴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정안나/ 연극인 thanna@hanmail.net·사진 정진환 terran61@hani.co.kr

바람처럼 화면 속에 동화된 음악, <붉은 돼지> OST

‘피곤하여 머릿속이 두부처럼 되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만화’를 표방한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1992년작이다. 이미 VCD라든가 DVD로 접한 팬들이 많겠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하야오의 작품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애니메이션은 1차대전 뒤 삶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 돼지가 되어버린 조종사 프로코 로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 역시 그의 다른 것들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식 문명비판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 음악은 역시 히사이시 조가 맡았다. 히사이시 조는 잘 알려진 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둘도 없는 단짝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천공의 성 라퓨타>를 거쳐 <이웃집 토토로>에 이르면 이 둘의 팀워크는 한몸처럼 긴밀해진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히사이시 조가 들려준 자유자재의 편곡 테크닉은 영화를 자연스럽게 살려주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붉은 돼지>에서도 히사이시 조의 그러한 테크닉은 빛을 발한다. 히사이시 조는 드라마의 구성이나 화면의 전개 바깥으로 절대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단 한번도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영화음악은 그런 것이라는 점을 히사이시 조만큼 잘 보여주는 음악가도 없다. 그는 나서지 않고 차분하게 화면을 보조하는 데 주력한다. 음악을 일부러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 음악들은 마치 바람소리처럼 화면의 일부분이 되어 사람들에게 눈치채지 않은 채 흐른다. O.S.T 음반에는 모두 23개의 트랙이 들어 있다. 전형적인 히사이시 조의 통속적 테마인 <시대의 바람-사람이 아름다웠던 때>는 영화의 분위기와 맥락을 되짚는 오프닝 넘버이다. 특유의 자연스러움과 심플함이 귀에 감기는 멜로디 속에 녹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번 그의 멜로디가 똑같은 기분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웃집 토토로>가 전원적인 분위기와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함께 전달해주는 데 주력했다면 <붉은 돼지>의 취향은 그것보다 약간 성인취향이다. 좀더 감각적이고 센슈얼한 구석도 느껴진다. 이런 대목은 히사이시 조의 새로운 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O.S.T에서 히사이시 조 말고 주목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일본 뮤지션이 있는데, 다름 아닌 가토 도키코이다. 이 가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스탠더드 가수의 한 사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그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O.S.T에는 장 밥티스트 클레망의 샹송을 원곡으로 하고 있는 <체리가 익어갈 무렵>과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나오는 <때로는 옛이야기를>, 이렇게 두곡이 실려 있다. 모두 잔잔하고도 통속적이면서 약간의 격조마저 느껴지는, 전형적인 일본풍 ‘어덜트’ 취향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성기완/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은밀한 ‘키득거림’, 김행장 <좀비콤비>

이른바 스포츠신문 만화가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보통 4쪽 이하의 컬러만화는 양영순의 <아색기가>류라, 6쪽 정도의 이야기 만화는 허영만의 <타짜>류라 부를 만하다. 이중 우리에게 익숙한 정통 스포츠신문 만화의 스타일은 후자다. 허영만의 <타짜>류는 계보를 거슬러올라가면 고우영의 극화가 있다. 국내 스포츠신문의 원조격인 <일간스포츠>는 고우영의 극화를 연재하며 70년대 극화 열풍을 불러왔다. 이 고우영 극화는 초기 화려한 필력과 진지한 이야기를 보여준 <임꺽정>, 가장 문학적이고 섬세한 <일지매>와 당대의 풍자 센스가 고전으로 해석된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가루지기전>과 같은 2개의 스타일로 양분된다. 80년대 5공 정권의 스포츠 정책과 함께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며, 고우영의 첫 번째 극화스타일은 제자격인 방학기로 이어진다. <감격시대> <바람의 파이터>와 같은 방학기의 극화는 전형적인 남성형 극화. <스포츠조선>이 창간되며 스포츠신문 3파전이 되면서 만화는 더욱 중요한 콘텐츠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허영만의 <아스팔트 사나이>, 이현세의 <남벌> 같은 전형적인 남성형 극화는 물론 신일숙, 김진과 같은 여성작가들의 만화도 연재되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이후 후발주자로 <스포츠투데이>와 <굿데이> 등이 합류하며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는 그 폭과 다양성이 확대되었다. 김행장의 <좀비콤비>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영순이 보여준 <기동이> <아색기가>의 맥을 잇는 ‘성 해프닝 만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컬러에 과장되게 그려진 주인공들이 등장해 은밀한 농담으로 했음직한 이야기를 버젓이 지면으로 토해낸다. 이 만화를 처음 보는 독자들은 때때로 낯선 당혹감을 느끼는데, 조금만 적응하면 금방 ‘중독’된다. 가장 많이 차용하는 소재는 성적 농담과 조폭. 술만 먹으면 질펀하게 내지르는 농담 같은 성과 폭력의 이야기가 4쪽에 가득하다. 맞다. 이 만화에서 문학적 향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밀한 ‘키득거림’을 주도록 창작되었다. 그런데 그 키득거림이 당대의 한국적 현실과 엮이며 묘한 뒷맛을 남긴다. 삭막한 사회, 소통의 부재, 믿지 못하는 삶 뭐 그런 걸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어쩌면 이런 느낌도 난센스일 수 있지만). 아무튼, 매일 신문이나 온라인을 통해 짤막하게 보던 만화를 한권으로 묶어보니 그 맛이 또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는, 여러분이 확인해볼 일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