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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실화영화 붐 [1]

지금 한국 영화계에 실화영화 제작 붐이 일어나는 이유 충무로는 지금 ‘실화영화’ 제작 신드롬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들썩거린다는 표현이 지나치다면, 서서히 그 일각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왜일까? 이 현상을 단순히 트렌드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그러기에는 물적 규모가 너무 크고, 그 소재지가 너무 다양하며, 너무 많은 제작사에서 동시적으로 관심을 쏟고, 그 진행 속도조차 너무 빠르다. 사후약방문이란 말이 있다. 한국영화에 대한 저널리즘의 판단이 사후적인 선에서의 시체 의약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흐름의 중도에 끼어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마주해야 하는 화두가 지금의 실화영화 제작 신드롬이다. 작품 외적인 추적과 작품 내적인 분석을 결합하면서 물어보자. 왜 과거의 실화는 지금 한국영화를 찾아왔는가? / 편집자 실화가 허구를 거느리는 이 현상이 그저 잠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금 충무로에서는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작품들은 이미 촬영 중이고, 구체적인 선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작품들도 상당수다. <살인의 추억>과 <실미도>가 쓸고 지나간 일종의 흥행 후폭풍으로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고, 실제로 과연 어떤 소재와 인물이 영화화 될 것인지가 회자되었다. 그런데 현재 이 현상은 단순히 일별하고 지나갈 만한 정도가 아닌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왜 한국영화계는 가장 가까운 거리의 역사 속을 이토록 맹렬히 뒤지는가? 다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를 함께 거론하려는 이 작업에는 일정한 제약이 존재한다. 영화 관계자들은 앞으로 만드러질 영화에 관해 되도록 침묵하려 한다. 진행 중인 작업 특유의 불확정성 외에도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이 연루된 데서 오는 조심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개 속에서 앞을 짚고 그것을 과거와 현재로 연결하려는 투자에 의지해보려 한다. 역사적 소재에 대한 제작 ‘무의식’, 실화영화 붐을 일으키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실화영화 제작이 그 연쇄작용을 거듭하고 있으며, 동시적인 현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문화산업으로서 영화가 갖는 상업적 흥행의 목표치가 은연중의 결탁을 통해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본다면 역사 환기 기능이 가능한 소재를 영화화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건전한 제작 무의식이 집단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 긍정적 경향 둘 모두가 실화영화의 붐을 촉발시키는 전제라고 일단 추상적으로 말할 수 있다(때마침 마련된 2004년 상반기 <씨네21> 편집위원 좌담에서는 여기에 대한 몇 가지 연계점을 찾을 수 있는 화두들이 나왔다. 비록 그들이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세명의 편집위원이 각자의 화두로 쏟아놓은 것들 중, 한국 근대성의 트라우마에 대한 시선(김소영)과 왜 지금 한국영화는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와 마주하지 않는가에 대한 시간성 고민(정성일)과 한국영화는 지금 애타게 자기 이미지를 찾고 있다는 현재형 관찰(허문영), 이 점 모두에 ‘실화영화’ 제작 현상이 이어져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생기는 번거로움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정확함을 위해 매번 문장을 낭비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짧게 실화영화라고 부르기로 하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실화영화들 <청연><슈퍼스타 감사용>(위부터) 그렇다면 먼저 이런 점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대체 어떤 실화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기초적인 이해를 위해서라도 그 영화들을 줄줄이 나열해야 하는 불편함을 피할 수가 없다. 파악 가능한 수준에서 대략 4편의 영화가 촬영 중이고, 8편 정도가 시놉시스 및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 들어서 있다. <청연>(제작 씨네라인2, 감독 윤종찬)은 일본 강점기에 하늘을 날아오른 최초의 한국 여류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다. <역도산>(제작 싸이더스, 감독 송해성)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 스모계에 입문했지만, 재일 한국인이라는 멸시와 모욕 끝에 프로레슬러로 전향하여 수많은 인기와 비사를 남긴 본명 김신락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람의 파이터>(제작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 감독 양윤호)는 일본의 전통 무예 가라테를 근거로 극진 가라테를 창시하여 세계의 무술 고수들과 격전을 벌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무도인 최배달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슈퍼스타 감사용>(제작 싸이더스, 감독 김종현)은 한국 프로야구 창단 이후 꼴찌를 면치 못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그곳에서도 패전처리 투수로 불렸던 투수 감사용의 야구인생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들이 현재 촬영 중이다. 그뒤를 이어 시나리오 작업 중인 영화들. 〈TBC 사람들>(제작 마술피리, 감독 미정)은 12·12 사태 이후 무력으로 권좌에 오른 전두환 군사정권이 언론통제를 위한 통폐합 조치를 취하면서 다음해 1980년 12월 한국 최초의 민영방송인 TBC(일명 동양방송)를 공영방송의 한 채널로 통합시킨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독도 수비대>(제작 감자·청년필름, 감독 미정)는 1953년에서 1956년까지 일본의 독도 침략을 막기 위해 자의적으로 독도 수비대를 결성하여 활동했던 홍씨 문중을 비롯한 울릉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근리 다리>(제작 명필름, 감독 황규덕)는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수백명의 무고한 양민 학살사건을 동명원작에 기초하여 만들어낼 예정이다(그리고 지금 명필름에서는 한국 정치사의 중대한 실화 중 하나를 이미 감독 중심의 시나리오로 준비 중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까지 포함한다면 명필름에서만 2편의 실화영화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지강헌 사건’이 있다. 여기에서 영화의 제목을 말하지 않고 지강헌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1988년 이송 중 탈옥하여 사회에 대한 불공평을 일갈하며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고 끝내는 자살한 탈주범 지강헌 사건을 두고 <무전유죄>(가제)(제작 다인픽처스, 감독 김의석), <유전무죄 무전유죄>(제작 씨네터, 감독 미정), <홀리데이>(제작 현진시네마, 감독 미정?), 이렇게 3개의 영화사가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김영빈 감독(<김의 전쟁> <테러리스트> 등) 역시 개인적으로 이미 시나리오를 써놓은 상태였다. 한국 영화사에서 닮은꼴 소재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다발적인 지형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지강헌 사건 영화화를 둘러싼 제작사들의 동시적이며 갑작스런 경합은 실화영화에 대한 ‘제작 무의식’이 현재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잣대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 지금 충무로는 과거의 사건들을 소환하는가? 어떤 열망이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실화가 들어서도록 부추기는가?

충무로 실화영화 붐 [2]

리얼리티에 대한 믿음 <살인의 추억>과 <실미도>의 대중적 성공. 이것이 실화영화 붐을 설명하는 데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또 통상적으로 적확한 대답이다. 이 대답은 우선 틀리지 않다. “나한테만 많은 건지 영화계 전반적으로 많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실미도>를 기점으로 그런 제안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트렌드에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본다면 다음 트렌드에 대한 예측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실미도>도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었고, 지강헌 사건도 오래된 전설 같은 기획들이다. 지연되던 기획들이 <실미도>를 통해 증명되었다고 볼 수는 있다”(<실미도>의 각본가, 김희재. 현재 그가 설립한 시나리오 창작 집단 베네딕투스에서 <독도 수비대>와 <홀리데이>를 작업 중이다. 그가 들려준 바에 의하면 이 밖에도 <실미도> 이후 여러 편의 실화영화 제의가 더 있었다고 한다). 또는 “<살인의 추억>이나 <실미도>의 흥행이 투자를 받아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일을 진행하기에 유리하게 만든 건 사실”(김의석)이라는 소견도 있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살인의 추억>과 <실미도>가 지금의 현상을 즉자적으로 촉발시켰다기보다는 조심스럽게 타진해오던 여타의 기획들에 하나의 성공적인 ‘리트머스 실험지’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 혹은 <효자동 이발사> 같은 영화 역시 그 시대배경이나 조연들의 실물성으로 인해 실화영화의 어느 귀퉁이로 인지된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중요하다. ‘실화적’이라는 느낌이 그 소재의 진위를 떠나서 어떤 효과로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미도>나 <효자동 이발사> <태극기 휘날리며> 등 ‘실화적인’ 소재들(작은따옴표는 필자 강조)이 관객한테 좋은 반응을 얻더라. 그래서 한번 해봐야겠다, 영화적인 소재로 상당한 이슈가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씨네터 차성호 대표)거나, “실체가 있는 소재가 작품에 대한 믿음으로도 연결이 된다”(김영빈)는 확신. 바로 이 점, ‘과거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 이 리얼리티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역류하여 허구의 이야기들을 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판단도 있다. 특별히 실화였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다. 실화든 구라든 우리는 인간의 울림이 있으면 한다”(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특별히 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의 추억>과 <실미도>와는 상관없이 기획됐다. 오히려 우리나라엔 그동안 (실화영화가) 너무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코미디 장르, 하이틴영화들에 비하면 붐도 아니지 않은가 싶다. 아마도 개인사든 민족사든 앞으로도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마술피리 대표 오기민). 옳은 말이다. 충무로의 모든 감독과 제작자가 눈이 빠져라 실화만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이상한 것은 그렇게 무관하게 선택된 소재들이 과거의 캐릭터를 발굴하고 사건을 찾아내는 데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영화사 싸이더스만 해도 근래 영화들 중 실화를 재구성했거나 하고 있는 영화가 네편이다. <살인의 추억> <범죄의 재구성> <역도산> <슈퍼스타 감사용>. 그 ‘인간의 울림’이 과거 실화에서 찾아졌다는 말이다. 덧붙여, 지금의 실화영화 붐은 코미디나 하이틴영화의 제작 컨벤션과 비교하기에는 차원이 다를 만큼 복잡한 문제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각각의 영화사가 지닌 기획 성격에 따라, 또 그 작품을 연출하고 있거나, 곧 연출하게 될 감독의 연출론에 따라, 각양각색의 완성품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제작사에서, 어느 감독이 메가폰을 쥐는지가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 영화들은 한편으로 흥행을 목적으로 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장르의 개척으로 나아갈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역사에 대한 민감한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왜 지금 봇물처럼 나오느냐에 대한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오기민). 그러기 위해서는 그 미지의 텍스트들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왜 그 실화가 선택되었으며, 어떻게 다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두어야만 한다는 말이다(텍스트 외적인 차원에서 첨언처럼 곁들이자면 70년대 중·후반, 80년대 초반 학번의 제작자 및 감독들의 군집이 이 현상을 주도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 점 역시 무시하기 힘든 요소이다). 실화영화의 첫번째 특징: 역사의 캐릭터화 (먼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이하의 관점은 전적으로 시나리오에 기댄 것일 수밖에 없다.) 실화영화들의 내용 속에서 발견되는 우선적인 특징을 ‘역사의 의인화, 또는 역사의 캐릭터화’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에 해당되는 영화가 <바람의 파이터> <역도산> <청연> <슈퍼스타 감사용>이다. 영화의 주인공을 누구로 선택하는가의 문제는 그 영화의 욕망과 결핍과 갈등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선택된 것인가? 시나리오대로라면, <역도산>은 1950년 9월로 시작할 것이다. <바람의 파이터>는 1953년 미국 하와이에서 시작할 것이다. <청연>은 1910년 조선땅에서 시작할 것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1981년 12월로 시작할 것이다. 재일 한국인이자 일본의 영웅인 역도산, 한국인에서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일본뿐 아니라 세계 무술계를 평정한 최배달, 일제 강점기에 한국 여성 최초로 하늘을 날아오른 박경원. 영화는 이들에게서 주권없는 시기를 살아간 모호한 이중 정체성의 고난, 그러나 그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 역정의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이것은 곧 1980년대 군사정권이 시행한 스포츠 정책 안에서 꼴찌 중에 꼴찌를 차지했던 한 인간에게 보내는 구원의 휴머니즘적 격려와 다를 바가 없다. 감사용의 사적 야구인생의 진로는 역사의 공적인 강제 전환과 함께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바로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었겠느냐고 이 영화들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것이 바로 허문영이 지적한 한국영화가 찾고 있는 ‘자기 이미지’의 극한적 예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물론 <바람의 파이터> <역도산> <청연>은 아시아간 산업적 네트워크가 그 뒷배경으로 깔려 있지만 지금 이 지면에서 그것을 말하기에는 옳지 않다. 또한 그 점을 배제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충무로 실화영화 붐 [3]

실화영화의 두번째 특징: 시대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 여기서 실화영화 텍스트들의 두 번째 특징을 말할 수 있다. 역사의 의인화, 캐릭터화된 인물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것을 바로 ‘한국 근대사의 블랙홀’이라고 부르고 싶다. 실화영화의 소재에 대한 매력을 묻는 질문에 많은 제작자와 감독들은 ‘아이러니한 상황, 드라마틱한 면모, 영화 같은 사건’이 흥미로웠다고 동어반복적으로 대답하는데, 이 표현들은 진지하게 해석되어야만 한다. 왜 아이러니하고, 드라마틱하고, 영화 같아 보이는가? 즉, 자기 이미지의 탐사는 명확한 음과 양을 결론지을 수 없는 한 인간의 숨겨진 양면성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그 자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추론 불가능한 한국 근대사의 어느 지점으로 이끌리기도 하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침략을 막기 위해 국가도 모르는 사이에 의용대를 조직해 거창한 나무 대포를 깎아놓고 3년간을 가짜로 버텨낸 <독도 수비대>, 군사정권의 봉쇄정책 일환으로 언론통합되면서 겪었던 〈TBC 사람들>의 말 못할 속내, 수십년을 알려지지 않고 묻혀져왔던 미군 양민학살 사건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 <노근리 다리>,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사가 울려퍼지고, 70억원을 횡령 탈세한 독재자의 동생이 7년형을 선고받을 때, 돈 556만원 절도에 도합 17년을 언도받고 탈옥한 어느 잡범의 격렬한 외침과 자살로 끝맺은 ‘지강헌 사건’. 이 실화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도대체 처음과 끝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인도적으로 설명해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식민적 수탈과 민족주의적 방어가 해프닝에 가까운 결의로 표면화된 시대, 법과 정의 사이에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버티고 있던 시대, 기술발달과 인성주의가 대치하고 있던 시대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또는 아직까지도 그렇게 ‘미궁’에 빠져 있고, ‘미제’로 남아 있을 만큼 혼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이러니하다는 그 영화적 매력의 발산은 기형적 한국 역사성에 본을 둔 것이며, 그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거나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실미도>의 전모에 관한 해석은 아직도 분분하다. <바람의 파이터><살인의 추억>(위부터) <살인의 추억>을 감독한 봉준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덤빌 때는 그 시대에 포커스를 맞추겠다는 의도가 없었는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첫 6개월간 자료조사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사건이 실렸던 신문을 찾아 한면 전체를 복사해서 보면 항상 한쪽에 화성살인사건 소식이 있고 다른 한쪽엔 ‘아시안게임 드디어 개막!’이나 ‘문귀동 고문사건’처럼 당시에 벌어진 다른 소식들이 같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건을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읽게 되더라. 이렇게 사건을 접하는 과정에 개인적인 경험도 흡수됐다. 그 시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기억들 말이다.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 난 난생처음 미팅이란 걸 하고 있었구나, 하는 식으로.”(<씨네21> 400호, ‘<살인의 추억>의 감독, 비판자, 지지자가 가진 3각 대담 중에서) 베네딕트 앤더슨이 벤야민의 용어를 빌려와 신문과 소설로 묶여지는 “동질적이면서 공허한 시간”(homogeneous empty time)- 갑과 을은 같은 시각 어디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신문의 뉴스를 읽으면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라 부른 그 근대의 시간성을 봉준호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의 어느 신문을 읽으며 경험해낸 셈이다. 지금 실화영화 제작 붐의 실체가 이것이다. 이 경험이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는 이 영화가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 영화적 결과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결국 그 ‘왜곡된 뉴스의 시간’을 살아온 우리끼리의 근대적 시간에 모든 것이 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남한(또는 한반도)에서는 그 신문지상에서 밝혀진 내용과 진짜로 벌어진 사실이 수두룩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덮여 있거나, 왜곡되어 있는 것들이 산적해 있다. 때문에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미스터리의 상상력으로 엮여 있는 실화들이 스크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때문에 그 과거와 현재는 결코 텍스트 내에서 만나지 못하고 지금 그 바깥에서 만난다. 예컨대 <실미도> 개봉 이후 사실관계를 둘러싼 빈번한 시시비비와 <살인의 추억>을 본뜬 것이 아니냐고 떠들어대는 요즘의 살인사건들. “역사적 의식 수준이 공고해져야 한다. 그 인식의 수준이 담보되어야 한다. SF도 할 수 있고, 공포도 할 수 있지만, 한국의 과거를 스크린으로 불러낼 때는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재고된다면 다양한 목소리의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명필름 대표, 심재명) 이 상식적 태도가 필요하다. 충무로는 지금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쓰는 중 누군가의 말처럼 어차피 “역사는 불구의 지식”일 수 있다. 그렇게 공백을 다시 메워 쓰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너무 크다. 그렇다면 좌절할 것인가? 여기서 지금 충무로의 실화영화 제작 붐을 긍정적으로 예견하기 위해 한 가지 관점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지금 이 영화들은 ‘남한(한반도)의 서사학’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자기 이미지를 찾아 헤매고, 한국 근대의 블랙홀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그 일환이다. 어찌됐든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 거칠게 말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거를 다룬 한국영화는 역사를 미메시스- 모방적 재현- 로만 파악하려 들었다. 꼬리를 물고늘어졌던 노스탤지어 영화들! 사소한 소품과 복식과 운치로 당시의 정경을 어떻게 똑같이 다시 재현할 수 있는가에 매달렸다. 그런데 여기 실화가 끼어들면서 역사를 디제시스- 사건을 중심으로 한 서사쓰기- 로 풀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단언하긴 힘들지만, 스펙터클의 역사를 다시 스크린 안에서까지 함몰시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희망을 껴안아본다.

[인터뷰] <영웅시대> 최불암

"얼마 전 어떤 분이 찾아와 요즘 TV를 보면 걱정이 많이 된다며 아이들 교육상 좋은 드라마가 없느냐고 묻기에 바로 <영웅시대>를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의 대표적 주역들이자 이제는 고인이 된 현대와 삼성의 두 거대재벌 총수를 모티브로 한 MBC 드라마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에서 주인공 천태산의 노년시절을 연기하는 최불암(64)은 드라마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보였다. 30일 드라마 첫회분 시사회를 마치고 만난 자리에서 그는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 드라마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완전한 드라마도 아닌 다큐드라마 정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인지 연기자로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처음 대본을 보고 '우리 국민 중에 이 얘기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설정한 인물대로 연기하기 어려웠다"면서 후배 연기자 차인표와 전광렬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했다. "이병철 회장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는 전광렬과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연기하려고 일부러 공부를 안했다는 차인표의 인터뷰를 보고 갈등을 느꼈지요. 고민 끝에 결국 천태산의 캐릭터상의 이미지와 실존 모델의 이미지를 섞은 인물을 연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천태산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모델로 한 배역. 80년대 초 방영됐던 기업 드라마 <야망의 25시>에서 정 회장 역을 연기한 경험이 있고 고인과 개인적 친분도 있었던 그로서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때도 사적인 친분이 있었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 흉내를 내는 것은 좀 쉬워진 것 같네요. 20년 전에는 지금보다 말투를 더 진하게 흉내냈고 움직임도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었어요. 내 음성이 원래 굵은데 그분은 가늘어 목소리를 짜내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목소리를 짜내는 것은 이제 잘 안되더군요." 최불암은 정 회장과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시인 고 박목월 선생의 아들인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해마다 강원도에서 해변시인학교를 열어 정 회장과 동행하게 됐다고 한다. '가난한 시인들에게 라면값이라도 주시라'는 그의 청에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발뺌(?)하던 정 회장이 못이기는 척 내놓은 돈은 30만원. 결국 자신의 돈 20만원을 보태 50만원을 냈다는 최불암은 "내가 대그룹 재벌 총수와 20대 30으로 냈다"면서 껄껄 웃었다. '국민 탤런트'로 불릴 만큼 관록을 지닌 베테랑 연기자이면서도 아직도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는 혹독할 만큼 철저하다. 기자들 앞에서도 "판문점을 지나는 장면에서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분 걸음걸이가 원래 그렇지 않은데"라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는 "나라가 잘 되려면 좋은 인간 본보기가 있어야 한다"면서 "삶의 철학을 제시해주고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한 자리에 앉아 함께 보는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서울=연합뉴스)

블랙유머로 보여주는 전쟁,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Beautiful People 1999년 감독 자스민 디즈다르 출연 샤를롯 콜먼 EBS 7월3일(토) 밤 11시 해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을 유심히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경우가 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경우 혹은 특정한 정치적 이슈를 담고 있는 것, 때로는 복잡한 드라마를 고도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경우도 발견된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흥미롭게도, 이 모든 요소를 영화 한편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블랙유머로 표현하는 영화적 테크닉은 유심히 살필 만하다. 단 한 가지 관객이 쉽게 영화에 접근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다양한 인물을 카메라 앞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1999년 칸영화제 수상작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일군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월드컵 예선경기가 한창인 영국 런던에 보스니아 출신 사람들이 모인다. 보스니아 앞뒤 마을에 살던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은 런던의 버스에서 우연히 만나 다짜고짜 난투극을 벌인다. 역시 보스니아 난민 출신인 페로는 성추행범으로 오해받는 바람에 차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인턴 의사 포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산부인과 의사인 몰디 박사는 아내와의 불화로 두 아들과 보스니아의 젊은 부부, 체밀라와 이즈메를 돌보고 있다. 젊은 난민 부부는 설명하지 못할 이유로 낙태를 원하고 축구 광신자이자 헤로인 중독자인 그리핀은 월드컵 경기를 보고자 로테르담으로 간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영화들이 연상된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숏 컷>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 같은 영화가 차례로 떠오르는 것이다. 특정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조각난 내러티브를 하나씩 꿰어맞추듯 영화가 전개되는 것은 알트먼 감독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다. 영화에선 우연과 분노, 그리고 화해의 모티브가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다. 마약에 취한 인물이 유엔 구호품에 실려 전쟁터로 떨어지고, 우연하게도 누군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는 에피소드는 설득력 있다. 전쟁의 순간에 생긴 원치 않았던 아기, 그리고 전쟁터에서 사람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 지옥의 현장을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역설의 영화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지나친 감상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민족분쟁이나 전쟁의 상처를 스크린 밖으로 전하는 것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비극적인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에 예상 밖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치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순간으로 다가온다. 보스니아 출생인 자스민 디즈다르 감독은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애니메이션과 단편영화,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실험적인 활동을 계속했던 것이다. 단편영화 <우리의 사랑스런 고향>으로 해외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디즈다르 감독은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에도 참가하는 경력을 쌓기도 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썼으며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그는, 생사와 애증이 교차하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 그리고 삶의 기막힌 우연의 이야기를 솜씨 좋게 완성해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본격적인 한·미 합작, <레드 스노> 제작, 에기픽처스 대표 김수진

1999년까지 한국에서 프로듀서, 영화수입, 제작 등의 일을 해온 김수진(36)씨는 지금 미국에서 영화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 그가 설립한 제작사 이름은 에기픽처스(Eggy Pictures, 愛氣), 영화 제목은 <레드 스노>다. 종군위안부로 팔려간 두명의 한국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놓고, 할리우드의 최고 에이전시 회사로 꼽히는 윌리엄 모리스사가 “거짓말이다 싶을 만큼”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돕고 있다고 한다. <꽃잎>과 <나쁜 영화>의 프로듀서로, <강원도의 힘>의 기획자로, 91년 설립한 영화사 ‘영화센터’의 대표로 제작과 수입일까지 했던 이 영화인은 지난 5년 동안 어떻게 지내다가 이런 의외의 프로젝트를 들고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건지,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쉴새없이 일만 해와 지쳐 있었던 데다 할리우드영화 같은 때깔나는 영화가 만들어보고 싶어 미국영화협회(AFI)로 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광주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합류했던 <꽃잎>의 인연으로 장선우 감독과 <나쁜 영화>까지 작업하고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까지 끝낸 상황이 그랬다. <꽃잎>을 하기 전까지 그는 시나리오만 보고 <레옹>을 사고 파리여행을 갔을 때 극장에서 본 뒤 “단지 너무 좋아서” <퐁네프의 연인들>을 사들인 감각있는 수입업자이기도 했다. ‘영화센터’에서 제작한 첫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도 흥행시킨 제작자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지방업자에게 사기를 당했고, 회사를 부도낸 파트너가 종적을 감춰 혼자 빚을 해결해야 했었다. 지칠 만도 했다. 프로듀서 과정을 전공하기 위해 AFI를 들어간 뒤, 그는 전혀 다른 경험을 새로 쌓기 시작했다. 삶에 있어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을 소재로 만든 졸업작품 <방문>(The Visit)으로 미국감독협회가 주는 학생작품상을 받았고, 1만 대 1의 경쟁을 뚫어 <매트릭스>의 제작자인 조엘 실버의 실버 프로덕션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갔다. 졸업 뒤엔 워너브러더스에서 영화 투자와 합작, 구매 등을 결정하는 부서에 1년 반을 근무했다. 그리고 2년 전 자신의 두 번째 제작사를 미국에 세웠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싸안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배운 걸 써먹기에 두 나라의 시스템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은 철저하게 에이전시를 통해 움직인다. 에이전시들은 자기네가 데리고 있는 감독과 배우를 묶고 협찬사로 붙여 패키지를 만든 다음 제작사에 판다. <반지의 제왕>도 ICM이 패키지를 만들어 뉴라인에 판 상품 아닌가.” 현재 제작 준비 중인 <레드 스노>는 1년 전에 산 시나리오다. 좋은 징조인지 한달 뒤 이십세기 폭스사가 주최하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MPAA와 RKO가 공동주최하는 시나리오상 할리 메릴상 대상을 탔다. 시나리오를 읽어본 모리스사는 종군위안부라는 소재가 “유니버설하다, 전세계에 먹힐 것”이란 평가를 내렸다고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마틴 스코시즈 등의 감독들과 수많은 유명 스타들, 나이키, 코카콜라 등의 브랜드를 클라이언트로 데리고 있는 에이전시가 평생 만나보기도 힘든 감독들의 리스트를 그에게 건네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들은 돈이 되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확신이 서면 철저하게 돕는다. 패키지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뒤끝은 없다.” 이번에 돌아가면 그는 아시아 및 한국 내 배급권을 국내 영화사가 확보하도록 계약조건을 조정하는 미팅을 갖는다. 아직까지 믿기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가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하는 당연한 바람이 그의 표정엔 가득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된다.” LA의 따가운 태양에 오랫동안 그을렸나. 유난히 남들보다 까만 살갗 때문에 그에게서는 신입생 같은 힘차고 씩씩한 인상이 한껏 풍겨나왔다.

38년간 美영화협회장 지낸 잭 발렌티 사임

무려 38년 동안 미국영화협회(MPAA)와 영화협회(MPA) 회장직을 지낸 잭 발렌티가 1일 마침내 사임을 발표했다. 발렌티(82)는 "그것은 롱런이었고 대모험이었다"고 회고하고 "나는 영화산업을 사랑한다. 나는 매일 아침 깨어나 열심히 일에 임해 왔다. 그러나 이젠 모든 일들이 끝났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업전문 미디어인 PR뉴스와이어에 따르면 그는 1966년 5월 린든 존슨 대통령의 백악관 특별보좌관직을 사임하고 1922년 설립된 MPAA의 세번째 회장에 취임했다. 그가 MPAA 회장직을 수행해온 동안 대통령은 8명이나 갈렸다. 38년 동안의 재임 중 그는 영화와 TV 풍토의 대변혁을 주도해왔다. 그가 회장직을 맡았을 때 회원사들은 주로 극영화와 TV프로 위주의 국내활동에 관여하고 있었다. 발렌티의 취임 무렵인 1967년, 할리우드 주요 영화사들의 총수입은 12억6천만달러였으며 이 가운데 국제시장 수입은 4억1천200만달러로 33%에 불과했다. 그후 외형의 성장과 개혁을 통해 세계적 연예산업과 문화 경제산업의 선도자임을 자처해온 MPAA와 MPA는 2003년 총수입이 약 412억달러에 달했다. 이 중 국제시장으로부터의 수입은 40%인 166억을 차지했다. 발렌티는 MPAA의 위임은 "미국영화와 TV프로를 보다 자유롭고 경쟁적으로 전세계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라고 자주 말해왔었다. 그리고 최근 몇년 동안엔 "디지털환경에서 도난을 방지토록 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1960년대 후반 영화산업이 폭력 및 섹스물을 둘러싸고 이를 규제하려는 관리들과 보다 많은 자유를 원하는 제작자들 간에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었을 때 발렌티는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MPAA 전 회장 윌 헤이즈가 만든 헤이즈검열규정을 버리고 대신 혁명적인 자율영화등급제도를 창출했다. 그로서는 전임자의 규정이 수용할 수 없는 검열제도였다고 본 것이다. 발렌티의 새 등급제도의 목표는 영화마다 등급을 정함으로써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하는 영화를 자율적으로 선별하도록 해주려는 것이었다. 제작자나 감독은 영화에 대해 등급을 매기지 못하게 했고 어떤 강요도 못하도록 했다. 이 제도가 탄생한 것은 1968년 11월 1일이었다. 그후 이 제도는 꾸준히 부모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발렌티는 또 미국영화에 대한 대대적 해적행위가 있을 것을 예측하고 전세계로부터의 도둑질을 퇴치하기 위해 1975년 대(對)해적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최근 몇년 동안엔 영화들이 도난을 당하지 않고 디지털시대에 진입하도록 하는 데 동료들과 함께 시간과 정력을 쏟아왔다. 美영화협회, 발렌티 후임 신임회장에 댄 글리크먼 선임 미국영화협회(MPAA) 이사회는 1일 댄 글리크먼 전 농무장관을 MPA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기업전문 미디어인 PR뉴스와이어에 따르면 글리크먼은 38년 동안 회장직에 봉직한 후 이날 정식 사임을 발표한 잭 발렌티의 후임이다. 글리크먼은 오는 9월 1일부터 회장직을 맡게 된다. 발렌티는 그 때까지 CEO직을 계속 수행키로 합의했다. 글리크먼 선임은 중역탐색회사인 스펜서/스튜어트가 무려 4년 6개월 동안 전국을 뒤져 발렌티의 후임을 물색한 끝에 결정됐다. 그는 "나의 열망은 국제영화계에서 MPAA의 역할을 지속시키고 확대시키는 것"이라며 "미국의 가장 바람직한 수출산업인 미국 영화를 위해 국내외의 새 동료들을 비롯 의회, 연방정부 및 모든 대륙의 국가 관계자들과 긴밀한 협력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리크먼은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고 있는 아들을 통해 영화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며 "오랫동안 영화산업에 깊은 애정을 품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18년 동안 의회 의원으로 봉직하며 대부분 기간을 법사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다. 저작권 및 지적재산소위 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5년 글리크먼은 농무장관에 임명돼 6년 동안 봉직하면서 600억달러 이상의 연간예산과 10만 직원을 감독하는 직책을 수행했다. 장관 재임 기간 그는 미국 정부와 농업분야를 위한 강력하고도 성공적인 옹호자란 평판을 얻기도 했다.(서울=연합뉴스)

정의(正義)에 대하여

세상에는 수많은 악당이 있고, 그 악당들이 저지르는 악행이 있고, 그 악행들로 인한 고통과 슬픔과 공포가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다행스럽게,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인간들은 대체로 이기적이며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진실보다는 거짓이 유리하고, 이성적 논리보다는 물리적 폭력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세상은 분명히 썩어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전쟁은 점점 더 잦아지고, 더 많이 죽이고, 더 무서운 광기를 보이고, 더 천박한 명분으로 싸운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예술이 온갖 휘황찬란한 꽃을 피워도 인류의 미움과 반목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시들기는커녕 지구를 뒤덮을 기세로 퍼져가는 곰팡이 같다. 이러다가 어느 세월에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날이 올까. 과연 정의는 세상의 모든 부정과 불의를 물리치고 지상낙원으로 우리를 인도할까.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지만 의외로 악한들이 죽는 날까지 잘 먹고 잘사는 일도 허다하고 착한 사람들이 마음 약하게 조심조심 살다가 갑자기 봉변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가. 슈퍼 히어로가 있다. 외계에서 온 슈퍼맨, 우연한 사고로 돌연변이가 된 스파이더맨, 또 배트맨, 플래시맨, 아쿠아맨, 원더우먼…. 모두 초인적인 특별한 능력으로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수호자들이다. 착한 사람들의 선의와 순리가 나쁜 놈들의 악행과 폭력 아래 신음하는 세상에서 슈퍼 히어로는 얼마나 든든한 희망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대부분의 슈퍼 히어로들의 전략은 테러리즘이다. 평소에는 평범 이하의 얼뜨기로 존재를 숨기고 있다가 마음껏 활개를 치는 악당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마구 혼내준 다음에 부랴부랴 현장에서 달아나야 하는 테러리스트들이다. 진리는 이르기를,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쳤건만, 정의의 용사들은 숨어 살아야 하고 악당은 실질적으로 현실의 많은 부분에 실세로 개입되어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믿는 정의가 꼭 정의가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악이라고 증오하는 것도 꼭 무조건 물리쳐야 능사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은 분명히 썩어가고 있지만, 썩지 않도록 부득부득 막겠다는 정의로운 의지도 꼭 대의명분을 위한 선의라기보다 개인의 간절한 바람이거나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과일이 너무 익어서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떨어져 썩고, 썩어야 새로운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듯이, 하나의 종말은 또 다른 탄생이라는 차원에서 지금의 썩어가는 세상을 바라보면 과연 진정한 정의가 무엇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현실은 만화와는 다르게, 악행을 저지르는 테러리스트들은 복면을 하고 테러를 자행하고 있고, 정의의 이름으로 그들을 응징하는 아메리칸 히어로들은 당당한 신분으로 진군하고 있다. 만화와 반대라서 헛갈려서인지 우리는 그 어느 쪽이 정의라고 판단할 수 없다. 모두가 정의의 이름으로 살육을 교환하는 고통스러운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큰 진리에 눈뜨는 지혜만이 우리를 현명하게 인도할 것이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

2004년 상반기 영화제작 감소

관객 1천만명 돌파 영화가 2편이나 나오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호황의 모습과는 달리 올해 상반기 들어 영화제작 편수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의 금년 1-6월 등급분류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한국영화 등급분류 편수(단편영화 포함)는 47편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65편에 비해 18편이나 줄어든 것이다. 한국영화 등급분류 편수는 2000년(68편), 2001년(73편), 2002년(132편), 2003년(117편) 등 2000년대 들어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영화계 일각에서는 영화가 대작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대작화 경향을 보이면서 자금이 한 곳으로 몰리는 바람에 제작편수는 도리어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는 게 아닌가라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한맥영화 김형준 대표는 "극장용 장편영화 제작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비디오 시장의 지속적인 불황으로 이 시장을 겨냥해 만드는 이른바 비디오용 영화제작이 위축된 데 따른 결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 기간 외국영화 등급분류 편수는 지난해 99편에서 140편으로 늘었다. 외국영화의 등급분류 편수는 2000년(363편), 2001년(329편), 2002년(256편), 2003년(235편)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다. 수입추천을 신청한 외국영화 편수도 이 기간 지난해 123편에서 150편으로 늘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