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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an 2004 - 네 안의 숨겨진 환상을 찾아줄게 [3] - 추천 판타지영화(1)

그 상상력, 뻔뻔하다 <페스티발 익스프레스> Festival Express l 로버트 스미튼 l 영국 l 90분 l 2003년 l 월드판타스틱시네마 <페스티발 익스프레스>는 1970년 여름에 있었던 캐나다 횡단 록콘서트의 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1970년은 60년대의 자유분방한 록 정신이 마지막으로 불길 속에서 산화하고 있었던 때. 지금은 전설로 남은 재니스 조플린, 그레이트풀 데드 등의 록 뮤지션들은 기차 속에서 잼세션을 벌이고, 비싼 티켓 가격에 항의하는 팬들을 위해 즉석 무료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기록들에 들떠 있다가 극장 밖을 나서면 좀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외쳤던 세대의 록 정신은 어느 순간 맨바닥에 엎어져버렸고, 화면 속에서 에너지를 분출하는 재니스 조플린은 젊은 나이에 약물로 요절했다. 33년 동안 창고에 박혀 있었던 이 다큐멘터리가 ‘월드판타스틱시네마’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은 주식투자로 한몫 벌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나라의 중년들도, 한때는 마약과 섹스와 록음악으로 자유를 갈구했던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판타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녹차의 맛> The Taste of Tea l 이시이 가쓰히토 l 일본 l 143분 l 2003년 l 부천 초이스(장편) 아마도 올해 출품된 영화들 중에서 독특함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화가 <녹차의 맛>일 게다. 어느 가족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이야기의 재미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하루노 가족은 도쿄 외곽의 조용하고 그림 같은 산골 마을에 산다. 그런데 이 가족에겐 늘 이상한 일이 생긴다. 거대한 또 하나의 자신과 맞닥뜨리는 여섯살 소녀 사치코, 첫사랑의 감정에 들떠 있는 사춘기 소년인 오빠 하지메, 오래전에 그만둔 애니메이터 일을 다시 시작하고자 그림을 그리는 엄마, 프로페셔널 최면술사이며 종종 가족을 상대로 최면을 거는 아버지 등. 평범한 듯 비범한 어느 가족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녹차의 맛>은 일상과 판타지의 자연스런 결합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은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라는 영화를 만든 적 있다. CF적 감각의 전작에 비해 <녹차의 맛>은 한층 원숙해진 감독의 작품세계를 엿보게 한다. 아사노 다다노부, 데라지마 스스무, 다케다 신지 등이 출연하고 있다. <제브라맨> Zebraman l 미이케 다카시 l 일본 l 115분 l 2004년 l 패밀리 섹션 일본 B급영화의 대명사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2004년작. 변함없이 황당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을 선보이고 있다. 신이치는 전형적인 무능한 가장이다. 그는 늘 약속시간에 늦고, 아내는 바람을 피우며, 딸은 매춘업에 발을 들여놓고,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어느 날 이 모든 것에 지쳐버린 신이치는 어렸을 때부터 유일한 위안이었던 TV시리즈 제브라맨 의상을 만들어 입고 훌쩍 길을 나선다. 그런데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제브라맨의 팬인 전학생 아사노의 집을 찾아가던 길에 연쇄살인범을 만난 그는 엄청난 힘을 발휘해 격투를 벌이고, 자신에게 숨겨진 초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제브라맨>은 황당한 사건의 연속이다. 무기력한 가장이 자신에게 숨겨진 능력을 깨닫게 되며 TV시리즈가 현실의 예언을 담고 있는 등 B급 상상력의 진수를 보이고 있다. 특촬영화의 재미있는 장면을 새롭게 인용하고 있는 것도 <제브라맨>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여러 작품에서 미이케 다카시와 호흡을 맞췄으며 ‘V 시네마의 제왕’으로 불리는 배우 아이카와 쇼의 100번째 출연작이기도 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l 이누도 잇신 l 일본 l 116분 l 2003년 l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독창적인 러브스토리는 그리 흔치 않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어느 사랑에 관한 영화다. 장애인의 사랑에 관한 영화는 흔히 그렇듯, 많은 역경과 아픔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다. 대학생 츠네오는 어느 날 길에서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손녀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노파를 만난다. 방 안에 갇혀 주워온 책들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인 손녀딸의 이름은 소설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조제. 할머니와 둘이 사는 그녀와 친구가 된 츠네오는 동정심과 애착 사이에서 점점 그녀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한동안 장애와 세상의 모든 고정관념, 제약을 뛰어넘어 아름답게 꽃피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관한 기억을 새삼 각인하고 있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어느 장애인 여성의 극단적 두려움, 그리고 세상에 관한 낯설음을 영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영화 제목 역시 그런 요소를 비유하는 것. 이누도 잇신 감독은 <금빛 초원을 지나>라는 영화를 만든 적 있는 피아영화제 출신 감독. <캅페스티벌> Cop Festival l 구로사와 기요시 외 l 일본 l 약 100분 l 2003년 l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주인공은 반드시 형사일 것, 러닝타임은 칼같이 10분을 지킬 것, 적어도 일분에 한번은 개그를 첨가할 것. 개그콘서트에나 해당될 듯한 어처구니없는 룰 같지만, 이것은 <캅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감독들이 만들고 있는 디지털 단편 옴니버스영화들이 지켜야 할 신성한 법칙이다. 이것만 지킨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 이 옴니버스 최대의 매력. 화가 나면 아토피가 악화되어 헐크처럼 변신하는 깜찍한 여형사(<아토피 형사>), 곰인형을 훔쳤다고 기관총을 퍼부어대는 열혈 여형사(<실록 키티 형사>), 형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려준 선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 안타까운 신참형사(<형사의 길>), 심지어 손바닥만한 크기인 주제에 증인을 취조하고 범인까지 검거하는 코끼리 인형 형사(<아기 코끼리 형사>)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형사들을 만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썰렁한 개그(<유령형사>)를 포함하여, 일종의 즉흥연주처럼 자유롭게 완성해나간 잼무비들을 보면서 이 영화들의 뻔뻔한(!) 상상력을 즐겨보자. 참고로 이번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2003년에 제작된 작품들. 올해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소개된 8편의 영화에 그 이후 제작된 2편의 신작이 추가되어 1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니나> Nina l 헤이토르 달리아 l 브라질 l 85분 l 2004년 l 부천 초이스(장편) 인간의 존엄성 상실, 그것은 상황의 강제인가 개인의 선택인가. 재능은 있지만 가난한 일러스트레이터 니나는 밀린 집세로 인해 집주인 노파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니나가 배고픔에 못 이겨 무심하게 고양이 사료를 씹어먹고, 자신이 사랑하는 집주인의 고양이를 내다버리고, 마음을 준 장님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면서 상황의 불합리함은 개인의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21세기 버전. 원작과 마찬가지로 살인을 저지른 뒤 히스테릭한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중간중간 삽입된 그로테스크한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후반부에서 실사로 재현한 촬영과 연출력이 인상적인 브라질영화로, 감독인 헤이토르 달리아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정은, 드라마 촬영에 영화 홍보까지 강행군

SBS TV 특별기획 <파리의 연인>을 통해 '만인의 연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은(28)이 결국 보약과 영양제 주사에 의존하고 있다. 1주일에 5~6일 드라마 촬영을 하는데다 16일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 개봉을 앞두고 홍보 활동까지 병행하고 있는 바람에 건강이 크게 악화된 것. 김정은은 어머니가 마련한 선식과 홍삼 달인 물, 보약과 함께 1주일에 두 차례씩 링거를 맞고 버텨가고 있다. 더욱이 9회가 방영되는 10일부터 드라마 시간이 5분 가량 늘어나 촬영 분량이 늘어났다. 또한 이제 겨우 중반을 향해가는데 벌써부터 대본이 늦게 나오는가 하면 수정본이 계속 나오고 있어 11일 방영분을 9일에야 찍고 있을 정도다. 점점 "드라마 제작 현실이 어려워도 스태프들과 함께 웃으며 일하고 싶다"는 김정은의 소망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는 것. 김정은의 매니저는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입술이 마를 정도로 힘들어지는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갈등 구도가 전개돼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전했다. 몸은 점점 더 녹초가 돼가지만 <파리의 연인>이 이미 '국민 드라마' 급의 반응을 얻고 있고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 시사회 반응도 긍정적이어서 영화와 드라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배우 문소리 ‘아에라’ 표지모델로

아사히 신문계열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신호(7월19일자)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 원빈에 이어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를 표지모델로 등장시켰다. 이 잡지는 문소리가 중증 장애인으로 열연한 데뷔작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라고 소개하고 그가 <바람난 가족>에서는 이웃집 고교생을 유혹하는 권태기의 여성으로 변신, 전라로 격렬한 섹스신을 펼쳤다고 전했다. <바람난 가족>은 지난달 12일 도쿄에서 개봉됐다. 문씨는 "영화 <오아시스>의 강렬한 이미지를 단기간에 무너뜨리기 위해 그 이상 격렬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며 "가부장제를 비롯해 한국의 일반가정에는 모 두문제가 있는데 결혼과 육아의 경험은 없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자신이 엄한 부친 아래서 자라 어렸을 때는 주로 클래식과 명작문학이나 가까이했지 영화, 연극관람은 엄두도 못냈다고 말했다. 그러다 대학시절 우연히 연기파 배우의 공연을 본 뒤 충격을 받아 곧장 연극서클에 들어갔고 충무로가 삶의 터전이 되고 말았다는 것. 부친은 당초 자신의 배우생활에 격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는데 "그래도 아직 내 작품을 전혀 보지 않는다. 용기가 없는 것 같다"고 문씨는 귀띔했다. (도쿄=연합뉴스)

한류열풍 진단 [2] - 지금 한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

뉴 미디어 통해 범아시아적인 드라마 소비 사태의 전모는 1990년대 초 일본과 비교해보면 선명히 드러난다.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는 동아시아에서 갑작스런 붐을 일으켰다. 트렌디드라마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고 일본 가수의 공연은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이와부치 고이치가 쓴 <아시아를 잇는 대중문화>(또 하나의 문화 펴냄)는 당시 일본 대중문화의 성공 요인을 아시아의 근대화 과정과 관련해 연구한 중요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만에서 일본 드라마가 성공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일본 트렌디드라마의 대표작인 <도쿄 러브스토리>는 대만에서 1992년 <스타TV>로 방영한 뒤 지상파를 포함, 총 6회 이상 방영됐다. 이후 일본 트렌디드라마는 대만 방송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외국 프로그램이 됐다. 이전까지 일본인들은 자국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이처럼 인기를 끌 것으로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여기서 일본 드라마의 인기가 가능했던 첫 번째 조건은 방송 환경의 변화다. 케이블TV, 위성TV 등 다양한 채널이 생기면서 자국 프로그램이나 미국 프로그램만으로 충당할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대만 역시 한국처럼 일본 프로그램에 대해 수입금지를 해왔지만 음성적인 소비가 늘자 1993년 일본어 프로그램 방송을 허용하게 됐다. 대만에서 일본 드라마의 인기는 지금도 꾸준한 상황이다. 대만의 예를 들었지만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비슷한 상황이었다. 홍콩의 범아시아 위성방송 <스타TV> 탄생으로 상징되는 뉴미디어는 국경을 초월하는 특성을 발휘했고 아시아 각국에서 TV를 중심으로 미디어 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여기엔 정치적, 경제적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를 경제블록화하려는 노력이 일어났고 초국적 기업들은 아시아 각국의 실정에 뿌리내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예를 들어 <스타TV>를 인수한 사람은 루퍼트 머독이지만 <스타TV>의 프로그램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의 미디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달라진 아시아 미디어 시장에서 일본 대중문화는 가장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류가 주목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나라는 이번에도 대만이었다. 일본 드라마로 길들여진 대만에서 한국 드라마는 일본보다 값싸면서 일본만큼 세련된 것이었다. 1998년 무렵부터 한국 드라마를 수입해 재미를 본 대만 방송사 관계자들은 한동안 ‘묻지마 구매’라고 부를 만큼 한국 드라마를 많이 수입했다. KBS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이상우 팀장은 “대만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처음 나온 반응은 일본 PD가 만드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일본 드라마가 먹혔듯이 한국 드라마가 먹힌 건데 가격이 올라가고 수입한 드라마가 너무 많아지니까 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지는 분위기”라고 말한다.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순서상 일본은 대만의 바통을 이어받은 모양새가 됐다. 일본에선 1996년 동포를 대상으로 한국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KNTV가 개국했고 위성TV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겨울연가>도 NHK가 방영하기 전에 위성채널인 BS를 통해 일정한 인기가 확인되면서 공중파를 탔다. 대만에선 <가을동화>, 중국에선 <사랑이 뭐길래>가 히트한 것처럼 아시아 각국에서 방송사가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거꾸로 올해부터 케이블과 위성TV에서 일본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한 국내에서 일본 드라마의 시청률은 평균 1%를 넘지 않았지만 10대와 20대 시청자들 가운데 골수 팬이 형성되고 있다. 일본의 <겨울연가>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 인기를 끌었던 예가 있으며 <황제의 딸> <꽃보다 남자> 등도 케이블TV에서 상당한 팬을 확보했다. 당연히 한국산 프로그램이 절대 우위에 있거나 한국 스타의 카리스마가 특출해서 한류가 생겼다는 식의 착각은 버려야 한다. 음반시장에서의 한류도 상당 부분 뉴미디어의 힘에 의존한 걸로 보인다. 24시간 뮤직비디오를 트는 채널이 아니라면 한국 댄스 가수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지금 같은 환호를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중국의 미래? 물론 환경적 요인이 모든 걸 해명하진 않는다. 일본에선 왜 하필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었는가? 중국, 홍콩, 대만 등에서 <엽기적인 그녀>는 왜 인기를 끌었는가? 이런 질문들은 또 다른 차원의 분석을 요구한다. <겨울연가>의 인기에 대한 일반적 해석은 ‘쇼와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중년 여성이 <겨울연가>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 걸 보면 타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10대와 20대가 중심인 일본 트렌디드라마에서 소외된 계층이 <겨울연가>에서 그들 시대의 사랑을 확인한 것이다. 지금의 한국을 일본의 낭만적인 과거로 채색하는 노스탤지어가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는 남녀관계를 뒤집어 최근 젊은이들의 추세를 따라잡았다는 점이 인기요인으로 손꼽힌다. 중국에서 <엽기적인 그녀>가 얻은 특별한 호응도 젊은 층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일본인들이 <겨울연가>에서 그들의 과거를 보는 동안, 중국인들은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들의 현재 또는 미래를 본다. 대중문화가 현실의 권력관계 또는 근대화 정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물론 반대의 사례도 있다. <사랑이 뭐길래>는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 경제와 문화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움직이게 마련이다). 일본-한국-중국의 이상한 서열화는 문화권력을 둘러싼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만하다. 상대적 약자인 중국이 시장 개방에 미온적인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있다. 다른 하나는 윤석호, 곽재용, 두 감독의 세계가 순정 혹은 신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아시아에서 한국은 눈물의 왕국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국적이 아니라 창작자의 취향이 원인이라는 게 명백하지 않은가. 아무튼 한류는 아시아 각 나라에 없거나 부족한 것을 메워주는 기능을 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서 일본 트렌드드라마를 베끼는 데 열을 올렸던 시절, 국내에 젊은 층에 어필하는 드라마가 없었다는 걸 기억한다면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교류는 불가피하다. 한류와 한국영화는 다른 문제 매체의 특성상 한류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쉬리>로 촉발된 일본의 한국영화 붐은 지난해까지 소강 상태였고 동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폭발적인 흥행은 드물었다. 많은 영화계 관계자들이 중국을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으로 보고 있지만 불법 DVD의 천국인 이곳에서 한국영화로 돈을 버는 일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엽기적인 그녀>는 해적판 DVD로 인해 즉각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올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가 나온 배경에 <엽기적인 그녀>의 비공식적 인기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여친소>는 국내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으며 흥행에서도 만족스런 결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여친소> 제작자인 정훈탁씨는 국내 흥행수익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며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단견으로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나 역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장기적 계획을 갖고 만든 영화”라고 말한다. 시네마서비스는 중국시장을 목표로 한국영화 리메이크 작업을 준비 중이다. <킬러들의 수다> 등 한국영화를 중국 영화사와 협력해 중국 배우를 써서, 중국어로 고쳐서 개봉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시네마서비스 김정상 대표는 “몇년 전 빌 콩을 만났을 때 중국시장은 엄두도 내지 말라고 했다. 그러더니 <여친소>를 만들어서 중국에 개봉시켰다. 한류를 적극적으로 사고하는 게 필요한 시기다”라고 말한다. 반대 의견도 있다. <올드보이>를 전세계 60여개국에 판매한 쇼이스트 김동주 대표는 “무조건 자국 시장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 한류는 없다. 우선 영화를 잘 만들고 해외에서 돈을 버는 건 보너스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격동하는 아시아 문화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분명한 것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촉발시킨 한류와 한국영화의 아시아 시장 진출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다. 한류가 한국영화에 상대적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한류스타가 나온다고 무조건 한국영화를 보러가는 건 아니며 한류의 중심에 한국영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류를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영화도 아시아의 대중문화 가운데 하나로 소비되고 유통된다는 사실이다. 격동하는 아시아의 문화 지형은 <겨울연가> 대신 <꽃보다 남자>를 택할 수도 있고, 홍콩영화의 영광을 한국이 아니라 타이에 넘겨줄 수도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절대적인 질적 우위가 보장된 경우가 아닌 한, 아시아 대중문화는 상호침투하며 언제든 대중을 놀라게 할 것이다. 지금 한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아시아 대중문화가 격동하는 현실을 바로 보라는 주문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국’이라는 국적 때문에 환영받는 시기는 이미 끝나고 있다.

한류열풍 진단 [4] - 일본 내 한류의 오늘과 내일 (2)

올해 개봉되는 한국영화 30편 넘어 그렇다면 영화는? 올해 일본에서 개봉되는 한국영화는 30편을 훌쩍 넘는다. 몇주씩 상영이 보장되는 블록부킹시스템을 감안하면 하루도 한국영화가 걸려 있지 않은 날이 없는 셈이다. 같은 날 두편 개봉도 드문 일이 아니다. <스캔들…>과 <조폭마누라>, <실미도>와 〈4인용 식탁>, <태극기 휘날리며>와 <고양이를 부탁해>가 같은 날 극장에 걸렸다. 콧대 센 도호를 제외하곤 3대 메이저인 도에이, 쇼치쿠도 움직이고 있다. 지금의 한국영화 ‘개봉 붐’ 앞에는 몇편의 영화가 있다. 2000년 <쉬리>가 대중적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면 그 전해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일본 영화계에 한국영화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도쿄국제영화제의 아시아부문 디렉터 데루오카 소조는 “한국영화를 색다른 게 아니라 ‘공통의 문화’로 수용하는 데는 <쉬리>보다 〈8월의…> 등장이 의미가 컸다”고 말한다. 그전까지 한국영화는 아무튼 ‘어두운 분위기’였다. 80년대 소수에게 ‘창호 형제’(일본에선 이장호와 배창호의 이름 발음이 같아 형제라는 소문도 있었다)가 허우샤오시엔 등과 더불어 ‘아시아의 뉴웨이브’로 인식됐지만, 여전히 한국영화의 절대다수는 “조선시대 배경, 불쌍한 여자, 여자를 때리는 강한 남자”(몬마 다카시 메이지가쿠인대 교수)라는 인상이었다. 몬마는 “〈8월의…>를 보며 처음으로 한국에도 저런 남성이 있구나 싶었다. 또 한국영화는 나이든 배우들의 활약이 없어 깊이감이 적은데 신구의 존재감이 그걸 바꿔놨다”고 말한다. <쉬리> 이후 일본에서 블록버스터급 개봉을 한 작품들이 몇편 있었지만, 아직 <쉬리>의 기록, 18억5천만엔(관객 126만명)은 깨지지 않았다. 2위 <공동경비구역 JSA> 12억엔, 공식집계가 끝나지 않은 <스캔들…>을 제외하면 <폰>이 8억6500만엔, <엽기적인 그녀>가 4억8천만엔 정도로 뒤를 잇는다. 미국 직배사인 부에나비스타가 배급한 <폰>을 제외하면 한국 대중영화의 이미지는 아직 협소하다. 80년대부터 김기영, 이만희 감독 등을 일본에 소개해온 이시자카 겐지 국제교류기금 전문위원은 “<쉬리> 이후 지금까지 정착된 한국영화 이미지는 할리우드적인 액션, 전쟁의 대작영화 그리고 웰메이드 러브스토리란 두 가지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쉬리>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김윤진과 한석규의 멜로라인 부각이었다. 한국의 메인포스터가 한석규만을 내세운 데 비해 일본에선 김윤진과 한석규가 마주보는 포스터가 사용됐다. 아직까지 인기있는 배우는 일본에서 드라마가 방영된 경우다. <실미도>의 담당자인 도에이의 노무라 도시가 “한국의 톱스타 설경구가 일본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실미도 사건이 일본인에겐 전혀 생소하다는 점이 선전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시자카는 “이미지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특히 한국영화는 젊은 세대가 타깃인 영화가 많은데 일본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극장에 안 간다. 영화사의 1년 라인업을 보면 청춘영화부터 어린이, 노인영화까지 다양하다”고 말한다. “10년 전 홍콩스타의 인기도 지금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런 인기는 5년을 못 가더라.” 물론 기존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뛰어난 연출의 인공적인 맛이 한국전쟁의 본질을 회피했다”(<영화예술>)거나 인물의 비현실성을 지적받긴 하지만,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성취한 ‘울리는 영화’로 받아들여지며 특히 엄청난 스케일과 촬영엔 모두 탄복하는 분위기다. 말 그대로 “아시아의 할리우드 이미지”(평론가 다나카 치세코)다. <실미도>는 설경구, 안성기의 연기력과 출연진의 고른 앙상블이 압도적이라는 평가다. 일본영화가 오락영화와 대중이 이해 못하는 작가영화로 극단화됐다는 반성과 더불어 영화평론가 데라와키 겐의 문화청 문화부장 취임을 계기로 ‘한국에서 배우자’ 식의 논의도 활발해졌다. 하지만 결국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이제까지의 이미지 또는 선입견을 깨는 작품들이다. 올해 비평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은 <오아시스>와 <나쁜 남자> <살인의 추억>이다. 평론가 기타고로 유지는 <살인의 추억>의 평에서 <박하사탕>과 비교하며 “봉준호의 명쾌하며 중후한 연출은 단순한 과거에의 회귀나 역사를 이야기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미해결의 사건, 재앙은 결코 질서의 회복이나 치료가 아니라 사라져가지 않는 흔적=망령으로서 공동체에 계속 달라붙어 있다. 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나가야 할 ‘역사’가 아닐까?”라며 극찬했다. 여배우 중에선 인기는 전지현이지만, 문소리, 배두나가 서서히 진지한 주목을 끌고 있다. “앞으로 문소리의 영화는 놓치지 않으리라”(<마이니치 신문>)거나 “소녀들을 그린 청춘영화 중에서도 저항없는 공감을 획득한 드문 예의 작품…. 배두나는 윤기나고 싱싱하다”(<요미우리 신문>)는 얘기도 결국 <오아시스>와 <바람난 가족> <고양이를 부탁해>의 개봉과 각종 영화제를 통한 <플란다스의 개>의 소개 덕이다. 작은 작품들이 블록버스터식 대작들과 동시에 소개되며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다양화하는 효과는, 요즘 영화저널리즘에서 분명 읽혀지기 시작한다. 이창동, 홍상수와 함께 일본이 주목하는 감독은 곧잘 기타노 다케시와 비교되는 김기덕이다. <사마리아>가 고급(?)영화의 상징이라는 에비스 시네마 가든(우디 앨런 영화는 무조건 이 극장인 식이다)에서의 상영을 타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에선 어느 지역, 어느 극장에 걸리느냐도 작품의 인상을 가늠하는 잣대다. 큰 규모로 4주냐, 규모를 줄여도 길게 갈 것이냐(<스캔들…>은 7주 이상 전략을 택했다)도 중요하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오락영화로는 정착하기 어렵다 일본에서 블록버스터는 3대 메이저 회사의 극장 체인을 끼워서 동시에 200개 이상 스크린에서 상영됨을 의미한다. <태극기…>는 <쉬리>의 기록을 능가할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되지만, 모든 영화가 이런 식으로 공개될 순 없다. 벌써부터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영화계의 엄살을 감안하더라도, 때로는 높은 수입가격이 어쩔 수 없이 블록버스터식 배급을 강제하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다. <키네마준보>에 따르면 2002년 19편, 2003년 26편이 수입됐는데 1작품 평균 가격이 그 사이에만 34만3940달러에서 42만3076달러로 상승했다. <올드보이> <실미도> <태극기…> 등 100만달러 이상 작품도 적지 않다. 몇억엔 규모의 마케팅을 벌이다가 그중 몇편만 실패해도 ‘한국영화는 안 된다’는 인식이 쉽게 퍼져 열기가 식지 않겠냐는 것이다. 도쿄필름멕스의 디렉터 이치야마 쇼조는 “한국영화가 일본에서 할리우드나 일본 오락영화 같은 식으로 정착하는 건 무리”라고 잘라 말한다. 그가 얘기하는 건 프랑스영화식의 정착 가능성이다. 일본에선 여전히 프랑스의 최신 영화가 꾸준히 소개된다. “물론 우연히 한 작품이 대성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춤추는 대수사선2>가 한국에서 큰 호응이 없듯 한국의 인기가 일본에서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질 좋은 작품이 꾸준히 소개돼 한국영화의 수준이 높다는 인식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정착의 길”이라는 것이다. 데루오카 소조는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홍콩영화 붐이 사그라든 가장 큰 요인은 결국 같은 배우, 같은 스타일의 영화가 반복된 탓”이라 말한다. 계속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열정’과 장기적인 전략을 생각하는 ‘냉정’이 필요한 시기다.

한류열풍 진단 [5] - 이봉우 시네콰논 사장 인터뷰 + ‘서촌 사이트’

비디오사들의 구매 증가는 위험 신호 얼마 전 TV도쿄에선 ‘한류를 시작한 인물’이란 제목으로 이봉우 시네콰논 사장의 특집 다큐를 방영했다. 시네콰논은 최근 도쿄 유락초에 직영 극장을 추가시키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등 주목되는 작품개봉을 앞두며 새로운 일본영화의 전진기지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쉬리> 때는 무모하다는 말도 많았다던데, 어느 정도가 ‘무모’한 건가. =130만달러에 사서 프린트 마케팅(P&A)에 3억5천만엔 들었다. 94년 <서편제>를 나름대로 성공시켰다는 자신감이 배경이었다. <서편제> 때 집착한 건 긴자에서 상영하는 것이었다. 긴자는 흥행의 중심가이면서 좋은 영화의 상징이다. <쉬리> 때 생각한 건 한국영화가 마이너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메이저로 보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큰 극장 상영을 고집했다. 당시 가장 큰 게 1200석의 시부야 판테온과 1250석의 신주쿠 미라노좌였다. 극장주들은 1주 뒤엔 200석관으로 넘어간다는 조건을 걸었다. 당시 <쉬리> 앞뒤에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등 할리우드영화가 있었지만 승산있다고 판단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다음주로 넘어가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큰 관에서 계속 작품을 걸자 지방 흥행주들이 몰려들었다. 16개관으로 시작해서 3주째 38개관, 5주째 120개관, 6주째 180개관까지 늘어났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평일 관객이 많은, 드문 영화라 들었다. 1800엔 팸플릿이 비싸다는 원성은 자자하던데. =아줌마 관객이 절대적이니까. (여성할인이 있는) 수요일 숫자만으론 박스오피스 1위다. <스캔들…>은 21일 현재 50만명을 넘어 최종 70만…80만명, 흥행수입 10억엔 정도는 갈 걸로 예상된다. 지금까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다음이다. 흥행보다 자부심을 느끼는 건 그동안 일본에서 그나마 잘된 한국영화가 모두 남북관계를 다뤘던 데 대해 또 하나의 가능성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팸플릿은… 전시회를 포함해 그것도 이번 작품의 선전전략인데. 우리에게 약점은 배용준이 갓 쓰고 도포 입고 안경 벗고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럴 때 전략은 우아하게, 고급화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론 <태극기 휘날리며>가 잘되기를 정말 바란다. 만일 올해 일본 내 한국영화 1위가 <스캔들…>이 된다면 매우 안 좋은 결과다. -<살인의 추억>은 호평에 비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쉽고 미안하다. 우리가 실패한 점이 있다. 일본 내 마케팅을 고민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게 안 잡혔고 한국식 선전을 따랐다. 지금 다시 하라면 달라질 것 같다. 제목도 ‘살인의 추억’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었고, 미해결 사건이란 얘기를 해서도 안 됐고, 강한 이미지의 포스터를 내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현상에서 우려되는 점은. =한국영화 수입가가 올라간 거야, 내 책임도 반은 있으니까. 걱정되는 건 영화사라기보다는 정확히는 비디오업체인 회사들의 구매가 크게 늘고 있다는 거다. 그들은 극장 흥행보다는 결국 비디오 판매에 더 신경을 쓴다. 홍콩영화가 망할 때도 그랬다. 당장의 가격보다 작품에 맞는 전략과 조건을 갖춘 회사들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직배를 할 수도 있고. 물론 일본시장 만만치 않다. 적어도 1년에 P&A 비용 20억엔은 있어야 하고, 극장 시스템상 현지 파트너십을 맺어야 할 텐데 아직 일본의 메이저사들은 거기까지는 관심없는 듯하다. -지금과 같은 스타 중심 논의는 계속될까. =한국영화 조류가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거다. 한국영화는 일단 겉으론 스타 중심, 내용적으론 프로듀서 중심이다. 일본은 절대적으로 감독 중심 시스템이다. 한국영화가 계속 논의되려면 감독을 떠나선 힘드니까 밸런스가 필요한데, 지금 시스템에선 결국 눈에 보이는 배우 중심으로 얘기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계획은. =늦가을에 <복수는 나의 것>을 선보인다. 크게 풀진 않는다. <올드보이>와 비슷한 시기를 택한 건, 개인적으로 박찬욱이란 감독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시네콰논은 뭔가 다른 한국영화를 보여준다는 인식을 주고 싶다. 요즘 생각하는 건 한·일 동시 개봉이다. 프린트, 마케팅 비용 절감도 크다. 직접 투자에도 참여한 <남극일기>가 그 첫 작품이 될 것이다. 이한국영화 팬들의 집결지 ‘서촌 사이트’ 좋은 한국영화 소개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일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을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겨울연가> 팬들이 새롭게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진 층이라면, 이들은 ‘자주적’인 행사를 통해 꾸준히 한국영화에 대한 지지를 보내왔고 또 보낼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98년 만들어진 ‘서촌 사이트’(www.seochon.net, 정식 명칭 코리안 무비&한글)이다. 메일 매거진 <코리안 무비 뉴스>는 작품의 리뷰부터 일본 내 개봉예정일 안내,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일본 내 각종 영화제 소개, 한국 내 소식까지 알차다. 서촌은 운영자인 니시무라 요시오의 한국식 발음에서 따왔다. 고교 때 영화부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대학 시절 한국 유학생 친구와 한국문화원의 상영회를 다니며 한국영화를 접했다. 비슷비슷한 이미지에 한동안 한국영화를 멀리하던 그는 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영화가 다양하게 만들어지는데 일본 배급회사들은 수입할 생각도 하지 않는구나.” 다음해 2회 영화제 때 <접속>을 보고 “이 작품이라면 일본의 젊은 여성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해 서촌 사이트를 만들었다. “한 영화사 사장에게 <접속>을 수입하자고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때 그가 ‘그렇게 좋은 작품이라면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올해 4회를 맞은 ‘시네마 코리아’ 영화제다. 처음엔 나고야의 60석짜리 극장의 심야상영 한회를 빌려 76명의 관객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는 7월31일부터 나고야, 도쿄, 삿포로, 오사카 등 4곳에서 순차적으로 열리는 행사로 성장했고 3500∼4천명 관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네마 코리아의 특징은 운영비를 대부분 관객 입장료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기업의 스폰서나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불경기가 되거나 정부 방침이 바뀌었을 때 행사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운영자의 사정으로 폐쇄됐지만 한국영화 팬들이 정보를 얻던 또 한곳의 집결지가 한국영화 동호회였다. 동호회의 한 회원은 “계기는 <쉬리>였지만, 계속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김기영의 영화 등 옛날 한국영화들을 꾸준히 봐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영화 개봉 붐은 반갑지만 마니아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의 개봉 붐 속에서 정말 소개되어야 할 좋은 작품들이 외면받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동화적 치유의 판타지, <인어공주>

모든 사소한 것들을 경배하는 <인어공주> 영화 <인어공주>는 뻔하다. 우연히 낯선 세계에 빠져들어 과거의 엄마를 만난 주인공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는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뻔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인어공주>에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구석이 있다. 또한 뻔한 걸 재미있게 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낯익은 동화적 서사 앨리스는 토끼를 따라 구멍 속으로 빠져든다. 앨리스가 모험에서 깨어났을 때는 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다. 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는 일어나 그저 언덕을 뛰어내려가지만, 이미 꿈꾸기 전과 똑같은 아이는 아니다.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현실과 꿈의 경계에 대해 의식적으로 물음을 던지는 아이로 성장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성장담의 구조는 소설이나 영화를 포괄하는 대부분의 서사 장르에서 일반적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동화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살았대요”라는 안정과 평화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다른 장르와 어느 정도 변별된다. 그 결말은 대부분 가족의 회복으로 통한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런 이야기를 밤마다 들으면서 가슴 졸이고, 안도하고, 기뻐한다. 오히려 이야기를 몇번 들어본 아이일수록 그 감동은 더 커지곤 한다. 반복되는 이야기에 대한 반복적인 기대는 인간이 이야기에 가지는 보편적인 기대 중 하나이다. 영화 <인어공주>는 이러한 기대의 지평에 놓여 있다. 현실이 지겨운 나영이 꿈꾸는 것은 연수 기회로 주어진 뉴질랜드 여행뿐. 그러나 나영이 이 여행을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처음에 이미 암시된다. 사진에서 살아 넘실대는 뉴질랜드 바다 위로 목욕탕이 오버랩되며, 어머니가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많은 동화에서 가출은 어머니 때문에 발생한다. 대개의 경우 아버지는 처음부터 없거나, 있어도 ‘너무 착해서’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어공주>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딸을 생활 전선으로 내몰고, 담배만 피워대다 이제는 중병에 걸려 가출까지 한다. 아버지를 찾지 않는 어머니 때문에 나영이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나영이 뉴질랜드 여행을 포기하고 배를 탈 때, 여행은 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고 되뇔 때, 그녀는 이미 부모의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며 서사의 방향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화해로 정해진다. 길은 다른 세계로 열린 통로이자 집으로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향 섬의 낯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우체부가 젊은 시절의 아버지 진국으로 변하며, 나영은 자연스레 과거로 빨려든다. 나영은 여기가 어디냐고 묻지도 않고, 연순과 진국도 나영이 연순과 닮은 것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는 관객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팅커벨의 가루를 묻히고 웬디가 날아올랐을 때 아이들이 “사람이 어떻게 날아?”라고 묻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팅커벨의 가루를 묻혔으니까. 사소함의 재발견과 웃음 나영이 빠져든 세계에는 긴박한 모험도, 놀라운 사건도 없다. 모든 사건이 단조로워지며 환상의 세계는 진국과 연순의 감질나는 사랑이 엮이는 작은 공간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이 환상은 나영의 몽상 범위로 한정된다. 나영이 과거로 빨려들 때나 현재로 돌아올 때 만나는 인물 중에 나영의 시간 여행을 증명할 사람은 없다. 과거의 공간에서는 나영이 끼어들 수도 관찰할 수도 없는 상황, 연순과 진국의 은밀한 만남까지도 포착된다. 나영이 과거 여행을 했다는 증거는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잠시 모호하게 하여 관객의 감각을 교란시키는 장치이다. 이러한 교란은 당황스러움을 유발하며 재미를 형성하지만 익숙한 방식이기에 크게 주목을 끌지는 못한다. 다만 익숙하고 편안한 서사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익숙한 구성에 친절한 암시, 놀라울 것 없는 속임수로 안정된 서사를 구축하고 있는 <인어공주>에는 반전이랄 게 없다. 그 대신 웃음은 있다. 칸트에 의하면 웃음은 무언가를 기대하다가 뜻밖의 결과가 나타날 때 긴장이 풀리면서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인어공주>는 예상을 뒤엎는 착상으로 관객을 웃기고 있는가? 진국과 연순이 빚어내는 사랑은 웃음을 유발하는 에피소드의 나열로 구성되는데, 중심 모티브를 이루는 것은 ‘까막눈’이다. 여기에서 파생시킨 상황들이 특별히 기발한 것은 아니다. 벽의 낙서나, 버스 차장의 오라이 소리, 옛 가요 등은 과거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주 익숙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는 점이다. 황동규 시인이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라고 했던가? <인어공주>는 이러한 사소함을 경배한다. 정성스레 다루어지는 사소함들은 푸른 하늘을 품은 바다, 해녀들의 물질 정경, 자전거의 딸랑대는 소리와 어우러지며 편안하고 안정된 고향 정서로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 관객은 정겨운 웃음을 기대한다.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 만큼 관객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놀랍지 않으면서도 놀라운 이 영화의 매혹일 것이다. 환상 아닌 환상의 구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판타지는 <반지의 제왕> 정도는 되어야 한다.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인 J. R. R. 톨킨은 성공적인 환상이 이루어지려면 1차 세계(현실)와는 다른 2차 세계가 창조되어야 하고 모든 사건은 그 세계의 법칙 안에서 진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능은 1차 세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인어공주>의 환상성은 미약하다. <인어공주>는 시간 구조상으로만 환상성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에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관객을 다소 놀라게 하고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은 나영이 젊은 진국과 연순을 만나는 장면 정도이다. 그 이외의 전개는 대부분 현실적인 개연성의 원리를 따라 진행된다. 나영이 볼 수 없는 장면이 표출되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시간 조작만으로 환상 아닌 환상을 구현한다. 이 영화는 나영이 과거로 가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엄마를 만난 것 때문에 환상적인 게 아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잠시 뒤돌아보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나영이 과거로 감으로써 잊었던 시간을 현재로 불러들여 병치시킬 수 있었기에 환상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인어공주>는 과거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 현재가 배치된다. 앞에 제시된 현재에서 엄마는 그악스러운 때밀이 아줌마다. 엄마는 당당한 앞모습으로 다가오는 데 비해 아버지는 주로 뒷모습이 비쳐진다. 그는 축 처진 어깨로 시계추처럼 출퇴근하고, 말없이 담배만 피우는 인생의 패자다. 외삼촌은 악의는 없지만 이기적이고 말 많은 푼수다. 나영이 과거로 가서 연순, 진국, 영호를 대면하고 현재로 돌아올 때, 그들의 과거는 현재로 들어와 그들의 이미지에 겹쳐진다. 나영이 현재로 돌아오자마자 바닷가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젊은 시절 진국의 뒷모습을 보는 장면은 친절하게도 이를 잘 보여준다. 다른 인물의 이미지는 관객의 머릿속에서 오버랩된다. 이제 뒷부분에 나오는 현재의 엄마는 앞부분의 허접한 엄마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병치되면서 인물이 재발견되는 것이다. 박흥식 감독의 전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도 주인공의 과거는 현재로 틈입한다. 원주는 버스의 창을 통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봉수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을 무동 태우고 있는 아버지를 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보습학원 강사로 살며 건너편 은행원이나 짝사랑하는 정원주는 새롭게 이해된다. 소박한 환상을 빌려 선조적 시간을 단순히 해체함으로써 당장 보이는 것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더 큰 환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환상은 이를 통해 인물들이 행복을 찾는 데 있다.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손을 가진 김봉수와 정원주는 가까이에 있는 서로의 존재를 재발견하면서 화합으로 나간다. 여기에는 과거를 잊어야 화합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지난 세월을 인정하여 현재의 균열이 사소한 것임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다. 착한 판타지의 힘 <인어공주>는 박진감이 넘치는 흥미로운 영화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좋은 영화들처럼, 일상적 인식을 뒤집고 현재의 문제를 첨예화하며 고민을 심화시키는, 전복과 균열의 서사도 아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 젊은 날의 정직함과 열정을 믿고, 서로의 시간을 대면할 수 있다면 현재의 균열이 치유될 수 있으리라 믿는 영화다. 소박한 환상을 통해 현실에서 해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심리적 불안이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영화다. 그래서 <인어공주>는 착한 영화다. 영화에서 나영이 “착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라고 말하자, 연순이 “그래도 사람이 착해야죠”라고 강경하게 말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인어공주>가 선택한 뻔한 서사는 이러한 믿음에 기반한다. 박흥식 감독에게는 영화 자체가 이러한 환상의 매체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워 주인공의 시련과 모험을 가슴 졸이며 듣다가, 주인공을 괴롭히던 요소가 제거되고 가족에게 돌아올 때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든 것은 결국 잘된다는 낙관적 안식 속에서 잠이 든다. 이러한 경험은 성장 과정에서 내면화되며 세파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고 무의식적 억압에 대응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낙관적 인식을 잃지 않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뻔한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용되면서,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또다시 그 딸들에 의해 아이들의 잠자리에 전래되고 어른들의 몽상 속에서도 노닌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환상일지라도, 때로는 현실을 도피하고 왜곡하는 것일지라도, 그것마저 없다면 이 힘든 세파를 어찌 견딜 것인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귀신’을 불렀다,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미이케 다카시는 ‘미친’ 감독이다. 필모그래피가 50여편이 넘는다. 매년 대여섯편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작품의 질도 천국에서 지옥을 오간다. 그러나 말 그대로 그가 작품을 쏟아내놓을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영화 신도들은 그 질에 상관없이 같이 미치고, 준엄한 척 일본의 B급영화를 경시하던 평단도 그 광기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고나면 미이케 다카시는 다시 훌쩍 몇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면서 멀리 도망간다. 그의 영화 속에 들어 있는 피의 철학과 웃음의 부조화에 내기를 걸려고 마음먹을 때 언제나 먼저 백기를 흔드는 것은 보는 자들이다. 그가 한국에 개봉하는 자신의 첫 영화 <착신아리>에 대한 변을 보내왔다. 무성의한 듯, 심오한 듯, 헷갈리게 하는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세계의 기운이 이 대답들 속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영화 중독자’ 미이케 다카시의 음성을 읽어보자. 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제외한다면, <착신아리>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하는 당신의 첫 영화다. 내 영화 <오디션>이 한국에서 수입·보류된 것에 대해서는 좀 섭섭한 마음이 있다. 부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오디션>을 필두로 내 영화세계를 인식하게 되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나는 다작을 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착신아리>가 한국 관객에게는 첫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오디션>을 거쳐 <착신아리>까지 엽기적이고 장르성이 강한 작품만을 봐왔으므로 나의 그런 특이한 면만을 부각해서 보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겐 이 영화들이 매우 긴장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도가와라는 메이저 제작사와의 첫 작품이므로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된 작품이다. 그전의 제작 방식과는 매우 달랐고, 감독으로서 힘든 점도 있었고 배울 점도 많았던 작품이다. 당신은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착신아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다 표현하게 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줬던 다이에이가 가도가와와 합류하고 나서의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공포물에 대한 선택은 다이에이로부터 들어온 제안이었다.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꼭 귀신이 나와야 공포물이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착신아리>에서는 결국 귀신이 등장한다. 그건 가도가와로부터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많은 대중이 공포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귀신이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 생각에 내가 동의를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귀신이 나온 것이 잘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귀신이 없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느끼게 될 공포감 역시 알 수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착신아리>는 그래서 귀신이 나오는 영화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태어난 이후의 일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착신아리>의 저주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여인의 소망에서 출발한다. 그건 <오디션>의 여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오디션>과 <착신아리>의 여성 캐릭터, 특히 원한을 가진 여인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여성이란 존재는. 영화 안에서는 특별한 존재로 그려져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마음에 쌓아 둔 것은 죽어서도 따라다닌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영혼이 된 순간에 인간으로서의 원한과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광기(狂氣), 산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바로 영화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남자인 이상 남자 귀신이 저주하는 것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자의 한이라는 영혼으로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말하면 굳이 여성에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착신아리>는 일본의 메이저인 가도가와 영화사에서 만들었다. V시네마에서 출발한 당신이 볼 때, 거대 영화사와 소규모 영화사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앞서 말한 것처럼 가도가와의 제작방식은 분명 그전에 내가 경험한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건 감독으로서 좋은 점일 수도 있고 나쁜 점일 수도 있다. 사실 많은 사람과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면 힘든 점이었다. 이제 모든 문화적 행위가 시스템화되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점점 블록버스터화되고 더 많은 관객을 타깃으로 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시스템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착신아리>는 그런 점에서 이전의 내 작품보다 더 많은 공력과 시간이 투자된 셈이다. 당신은 V시네마로 시작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거장이 되었다. 외국의 평론가나 언론이 당신 영화의 어떤 점에 주목한다고 생각하는가. 핵심이 되는 팬층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일본 내에서나 세계의 평론가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들은 내가 다작을 하면서도 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평가해주는 것 같다. 혹은 배반도 실망도 아닌 감정으로 미이케니까 어쩔 수 없다… 저게 미이케 스타일이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늘 다음 작품에는 뭔가 새로운 걸 들고 나타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어쨌든 내게 우호적인 평론가들이 많다는 건 참 행운이다. 한때 당신은 1년에 5, 6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지금도 3, 4편씩은 만드는 것 같다. 예전에도 ‘그냥 시간이 있어서’란 답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영화를 많이 만드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런 작업방식이 당신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다. 올해는 평소보다도 적게 작업하고 있다. 그것 역시 <착신아리> 이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많다, 적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제작예산에 관한 것일 뿐 나의 에너지 혹은 노동력은 언제나 충만해 있다.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나는 TV드라마의 보조로서 10년간 일을 한 사람이다. 그때도 촬영에서 시간기록까지 세웠던 사람이다. 나는 쉬는 것보다 차라리 촬영하고 있는 게 편하다. 빨리 찍는 감독이라는 평은 촬영 자체에 대한 중독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3년 전에 당신은, <고로시야 이치>가 가장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고 말했다. 지금 당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에 기획하고 있는 작품이 가장 찍고 싶은 작품이다. 아직 제작발표를 한 작품이 아니라서 구체적인 것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다룰 것이고,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캐릭터가 장대한 싸움을 펼치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트로이>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장대한 영화라고만 말해두어야 겠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작이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풀어보려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영화, 좋은 영화, 걸작이란 무엇인가. 좋고 나쁜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영화와 하기 싫은 영화가 있을 뿐이다. 그게 결국 좋고 나쁨을 얘기하는 거라면 당신의 이견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객관적인 기준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요즘엔 좀 달리 생각하는 점이 있다. 바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관객과 타협하는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면, 타협이 아니라 서로 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의미한다고 대답하고 싶다. 내 경우엔 작품도 많았고 관객이 미이케 스타일이라고 먼저 받아들이니까 공감대를 얻기 쉬워진 점도 있다. 당신 영화는 폭력의 강도가 꽤 세다. 그리고 변태적인 행위들도 자주 등장한다. 반사회적인 행동과 생각들을 자신의 영화에 자극적으로 담아내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특별히 폭력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러나 분명 폭력적이라는 우려는 낳을 수 있으므로 그 폭력이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 때까지 가버리게 하는 것이다. 조연이 얻어맞았다고 치고 그 상황에서 끝나면 조연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어차피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기게 된다면 조연을 좀더 멋있게 처리해줘서 반감을 완화한다든지 그런 감정적인 화해의 빌미를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폭력적인 표현 자체가 사람에 대한 나의 애정표현이라고 봐주었으면 좋겠다. 보여지는 것만을 통해 ‘폭력’이라고 정의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의 영화는 무정부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고, 어떤 가치관이나 규율에 속박되지 않은 채 자신의 선택만을 중시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D.O.A.2 도망자>의 두 남자처럼, 악당 하나를 죽이면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몇명 구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 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멋있는 남자’란 무엇인가. 나의 꿈과 이상과 실제 나 자신의 한계를 이어가려 하고 있다. 그 사이를 좁혀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무 멋있는 모습은 비현실적인 것이니까. 일본으로 말하자면, 다카쿠라 겐과 같은. 내가 어떻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빨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스타일, 내 철학으로 다른 사람을 빨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생각이 다르지 않나?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그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영화는 침체, 라는 말과 지금 원기 회복 중, 이라는 말이 몇년간 반복되는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본영화의 현재는 어떤가. 혹시 요즘 재미있게 본 일본영화와 감독이 있다면. 최근, 특히 쓰카모토 신야 감독에게 관심이 끌리고 있다. 어렸을 때 유명해지고 싶어서 세계적인 규모의 영화계에 심취했으며 다시 일본의 현실로 돌아와 일본을 베이스로 제작에 임하면서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을 느끼며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부딪혀가는가에 흥미가 있고 쓰카모토 감독의 앞으로의 작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너무 폭발적으로 나아가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의 본질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어떻게 조율해가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기대하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본성을 나타내기 어려운 것이 영화이지만, 자신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감독을 계속 기대하고 있다. 당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일본의 미래는 무척 비관적인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본과 일본영화의 미래는 무엇인가. 일본 영화계가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여러 영화와 문화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사람을 움직이는 영화는 역시 일본 감독만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세계적인 영화들 속에서 일본영화가 다시 부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먼저 일본 관객을 바라봐야 하고 다음에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50편이 넘는다. 그중에서 한국 관객에게 3편을 추천한다면. <방문객 Q> <오디션>을 추천한다. 좀 치우친 영화이므로 이런 영화들에 지쳤다면 〈DOA>가 기분 전환용이 될 것도 같다. <착신아리>는 개봉영화이므로 제외한다.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 계획하고 있는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과 또 다른 생명체가 대결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 그 이상의 혹은 그 이면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평범한 것은 어찌보면 위선일 수도 있다. 우리 내면에는 많은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갈 곳없는 그의 엉뚱한 보금자리, 해외신작 <터미널>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나보르스키(톰 행크스). 가공의 동유럽국가 크라코치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 사내는 뉴욕 JFK공항에서 고국에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교 단절로 미국에 들어갈 수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나보르스키는 그냥 공항에 눌러앉는다.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공항 안의 작은 공간만이 그가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땅이 된다. 스필버그의 <터미널>은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마찬가지로 실화에서 출발한 영화다. 1988년, 이란의 난민 메르한 나세리는 유엔에서 발급한 난민 증명서를 도난당하는 바람에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살아야 했다. 이 사건은 1993년 프랑스 감독 필립 리오레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아무튼 스필버그가 주목한 것은 실화를 그대로 옮기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공의 나라를 설정한 것부터 좀더 우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스필버그는 나보르스키의 반대편에 출입국사무소 직원 프랭크 딕슨(스탠리 투치)을 위치시킨다. 딕슨은 나보르스키가 법을 위반하기를 기다린다. 또는 정치적 망명의사를 표하기를 기대한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그의 눈앞에 거추장스런 인물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진행된다. 나보르스키는 몇몇 공항 직원들과 친해지고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가며 빈자들의 영웅이 된다. 미국에서 지난 6월20일 개봉한 <터미널>은 첫주 흥행수입, 약 1900만달러를 기록했다. 스필버그의 영화치곤 적은 액수지만 스필버그의 실패작이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찬반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쪽이다. 로저 에버트, A. O. 스콧 등이 적극 옹호한 반면 찰스 테일러, 피터 트래버스 등은 실망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공통된 평가는 최근 스필버그의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따뜻한 영화라는 점이다. 스필버그가 원래 그렇긴 하지만 최근 영화 가운데 단적으로 휴먼코미디라고 할 작품은 없었다. 지금까지 나온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캐치 미 이프 유 캔> <캐스트 어웨이> <포레스트 검프> 등 톰 행크스의 지난 영화들과 상당 부분 비슷한 면이 있어 보인다. 톰 행크스는 이번에도 누구나 신뢰해도 좋을 인물로 나온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스튜어디스 아멜리아 역을 맡았다. 불륜에 빠진 그녀는 누구한테도 털어넣을 수 없는 비밀을 나보르스키에게 말한다. 스필버그는 <터미널>에서 스펙터클 대신 웃음과 감동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