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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이민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영 실력을 지녔다. 그가 바다를 빠르게 가를 수 있었던건 발에 돋아난 물갈퀴 덕이다. 우주는 석영(효우) 외엔 누구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한 적이 없다. 특출난 실력으로 고향을 떠나 선수 생활을 하던 우주는 점점 성적이 떨어지자 복잡한 심정을 안고 다시 고향을 찾는다. 2018년 영화 <살아남은 아이>로 데뷔한 뒤 배우 이민재는 영화 <전, 란>, 드라마 <치얼업> <일타스캔들> <약한영웅 Class 2>를 거쳐 <보이 인 더 풀>의 우주로 분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작품과 거리두기를 할 줄 아는 그에게선 신인답지 않은 미더움이 느껴진다. - 실제로 수영을 즐기나. = 물을 좋아한다. 어릴 때 스쿠버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보이 인더 풀>을 준비하면서부터다. 한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다이빙까지 배웠고 선생님이 “수영 선수 같은 몸을 지녔으니 자세만 신경 쓰면 되겠다”고 하셔서 디테일을 열심히 익혔다. - <보이 인 더 풀>의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던데 특히 어떤 부분이 그랬나. = 대만과 일본 청춘물을 좋아하는데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장면들이 자연스레 상상됐고 잘 구현되면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어 꼭 참여하고 싶었다. - 3년 전에 촬영해서인지 더 앳된 티가 난다. = 그래서 우주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이민재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고, 지금의 이민재가 했다면 모든 것이 달랐을 것이다. 우주를 준비할 때 류연수 감독님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어떻냐”는 질문을 하셨다. 나는 MBTI가 ENFP이고 그만큼 사람 만나는 게 즐겁다. 그런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혼자 있을 땐 생각도 걱정도 지나치게 많더라. 감독님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런 내 모습을 담고 싶다고 하셨고 나도 나를 더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엔 맡은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 주어진 대본을 잘 수행하는 게 중요한 연기를 했는데 <보이 인 더 풀>은 스스로를 깊게 관찰한 뒤 발견해낸 걸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이 영화에 전작 들과는 다른 나의 얼굴이 담겨 있어 신기했다. - 물갈퀴가 옅어짐에 따라 성적도 떨어지자 우주는 돌연 수영을 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 나도 종종 힘들 때 집 앞에 있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간다. 천천히 걷다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우주는 석영에게 해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고 기대고 싶었을 거다. 석영이 자신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니 까. 비록 석영이 우주가 기대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속상하면서도 그 덕에 마음을 다잡을 계기가 된다. - 석영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1등이 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좌절한다.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바라보았나. = 최근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주로 내가 왜연기를 시작했고, 지금 왜 연기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었는데 누군가는 이미 내가 배우 생활을 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 걱정, 불안은 여전하다. 그래서 예전에 아버지가 용기를 북돋 워주신 말을 생각하며 좀더 열정적으로 임해보 자고 다짐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기로 전부 씹어먹고 싶다. (웃음) 그만큼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 지난 4월 공개된 <약한영웅 Class 2>에선 우주와 다른 분위기의 농구부 학생 현탁을 연기했다. = 남고를 졸업해서 <약한영웅 Class 2>의 무드가 너무나 익숙하다. 우주는 나의 내면을 탐구해 그 속에 있던 걸 발견해 꺼내 쓴 거라 시간이 필요했는데 현탁이는 학창 시절의 기억 덕에 표현이 쉬웠다. 뒤로 갈수록 현탁인지 이민 재인지 모를 정도로 내가 많이 녹아들었다. - 태권도를 10년 넘게 배웠다던데 극 중 현탁 역시 설정이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다. = 오디션 현장에서도 발차기를 선보였는데 그걸본 감독님이 지금까지도 ‘반했다’고 말씀하신 다. (웃음) - 연기는 할머니의 제안으로 시작했다고. =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보시던 할머니가 “너도 탤런트 한번 해봐라”라고 하시더라.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바로 연기학원에 등록했고, 학원에서 몇달 배운 뒤 곧바로 필름메이커스에 프로필을 올리는 등 직접 이곳저곳의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단역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롤이 커짐에 따라 고민도 달라졌지만 연기는 여전히 재밌다. 내 안의 무언가를 계속 발견해내고 그걸 카메라 앞에서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이 무척 즐겁다. - 차기작은 드라마 <금쪽같은 내 스타>다. = 20대 초반의 독고철(송승헌)을 연기하는데 좋아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자주 웃는 캐릭터다. 장르도 로맨틱코미디이고 우주, 현탁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캐릭터라 재밌게 촬영하고 있다. 상반기를 <보이 인 더 풀> <약한영웅 Class 2>와 행복하게 보냈고 하반기 역시 건강을 잘챙기며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자 한다. filmography 영화 2025 <보이 인 더 풀> 2024 <전, 란> 2019 <판소리 복서> 2018 <살아남은 아이> 드라마 2025 <금쪽같은 내 스타> <약한영웅 Class 2> <킥킥킥킥> 2024 <하이드> 2023 <드라마 스페셜 2023-우리들이 있었다> <오! 영심이> 2022 <일타 스캔들> <치얼업> <맷돼지 사냥>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 2021 <보쌈-운명을 훔치다> <모범택시> 2020 <오! 삼광빌라> <트레인> 2018 <연애플레이리스트> 시즌3(웹드라마)

[LIST] 박지훈이 말하는 요즘 빠져있는 것들의 목록

배우. <약한영웅 Class> 시리즈, <환상연가>, <블랙의 신부>, <연애혁명> 등 출연 팝핀 댄스 배틀 유튜브에서 팝핀 댄스 배틀을 즐겨본다. 특정 채널을 찾는 편은 아니고 최신순으로 검색해서 순차대로 본다. 댄서 각각의 팝핀 스타일이나 무대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신경전, 배틀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환호 등 현장감 넘치는 모습을 볼 때 희열을 느낀다. 영상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며 감탄한다. 위켄드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아 하루에 한번은 꼭듣는 노래. 노래의 무드가 너무 좋다. 아무 생각 들지 않고 멍때리게 만드는 노래에 엄청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 그렇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FPS 게임 이건 취미가 아니라 내 특기다. 정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웃음) 하나를 꼽자면 <헬 렛 루즈>.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고, 팀 모두가 합심해서 기지를 점령해야 한다. 게임을 하다보면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전쟁영화가 엔딩에 다다랐을때 모든 사람이 전쟁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원펀맨> 애니메이션을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끝까지 다 본 유일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약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다. 상황과 인물 설정에 담긴 유머들이 너무 좋다. 레슬링 한때 나의 취미였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 들과는 싸워도 레슬링했던 사람과는 절대 싸우지 말란 말을 체육관을 다니면서 이해했다. 잡히면 끝난다. (웃음) 정말이지 매일, 매번 졌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에게도 졌다. 그러니 삶이 겸손해지더라. <약한영웅 Class 1> 직전에도 레슬링을 다녔었는데 그 덕에 체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인터뷰] 신숙옥, 촌철살인의 전사, <호루몽> 이일하 감독

도쿄 한구석에 박힌 다다미 넉장 반의 단칸방. 이른 아침 텔레비전을 켠 이일하 감독은 한 여자를 마주했다. 혐한 발언에 맞서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여자는 가난한 유학생의 “움츠러든 삶에 사이다가 터지는 느낌”을 선물했다.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투쟁기인 <카운터스>를 만들면서 그와 재회한 이일하 감독은 그제야 확신했다.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 다짐을 밝히자 뜨거운 화답이 돌아왔다. “네가 찍는 거라면 내 한몸 불살라볼게!” 재일 한국인 활동가 신숙옥은 그렇게 이일하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이자 올해의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 <호루몽>에 불을 붙였다. 영화는 신숙옥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곡해한 극우 시사 프로그램 제작사와 다툰 기록을 중심에 둔다. 감독은 “소송 결과가 안 나오면 영화도 안 끝난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한달간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 기간에 판결이 나왔고, 신숙옥이 통화로 이를 전해 듣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와 한 공간에 있던 중 격앙된 소리가 들려와 바로 카메라를 잡고 튀어나갔다. 운이 좋았다.”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주요 에피소드를 지탱하는 건 여성 3대를 골자로 한 가족사와 다수의 방송 출연 화면이 증빙하는 개인사다. “가이 리치 감독을 좋아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경쾌한 다큐멘터리스트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클래시컬한” 접근을 시도하고 싶었다는 이일하 감독은 이 정보량 많은 영화를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해야 할지 골몰하다 “몸짓”을 떠올렸다. “음악을 베이스로 장면을 상상하는 습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이니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무용수들이 3대가 연결되기도 해체되기도 하는 모습을 구현해주기를 원했다.” 바닷가를 누비며 역사의 질곡을 은유하던 카메라가 신숙옥의 얼굴 앞에 멈출 때마다, 인터뷰이로서의 신숙옥은 “듣고 싶은 말을 제때 해주는 촌철살인의 전사로서 감독이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 호소력은 전주에서도 통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20대 여성들이 신숙옥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더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여성들이 신숙옥을 강하고 믿음직한 동네 언니처럼 느끼길 바랐다.” 이처럼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 <카운터스> <모어>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를 거쳐 <호루몽>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매력을 지닌 투사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반사회적 인간들, 한마디로 ‘미친놈’에 매료”되어왔기 때문이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던 청년 시절 최애 밴드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카메라는 누구를 향해 있을까. “특정한 신념이나 관심사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인생의 반을 지냈기 때문에 자이니치 친구들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건드리는 영화를 계속 찍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유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도 있다. 홍보를 위한 영상도 찍는다. 고정해서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하고 싶다.”

[조현나의 CANNES 레터 - 2025 경쟁부문] <르누아르> 최초 리뷰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님을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해보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암 환자인 후키의 아버지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고 그런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느라 어머니는 후키를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르누아르>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자신이 천착하는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공고히 한다. 데뷔작 <플랜75>을 통해 70대 여성의 시선에서 노년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선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후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무감해 보일 때가 많은데 그렇기에 죽음 전후의 상황을 긴밀히 채집하는 상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후키의 과거인지 상상인지 불분명한 신들이 아이의 현실 속에 자주 틈입하고 그 대부분이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후키와 부모님의 내면에 관한 내밀한 묘사들은 <르누아르>가 성인이 된 후키의 회상이라는 인상을 안긴다. 11살 소녀가 상상조차 불가한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11살의 소녀가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천진함만큼이나 간절함이 녹아들어있다. “10대, 20대 초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버라이어티>)고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전보다 더 안정적인 리듬의 작품으로 완성해냈다.

[기획] 최신 한국 학원물 시리즈가 그리는 혹독한 학교

최신 학원물 시리즈가 그리는 혹독한 학교 상업영화 시장에서 중급 코미디와 정통 멜로드라마가 귀해진 지 오래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더 강렬하고 극적인 장르물이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 자극적인 서사가 장르물의 중심이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무대가 학교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지난 2년간 화제를 모은 학원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생존, 폭력 그리고 계급이다. 생존과 폭력이 서사를 이끄는 중심축이 되고 포식자와 피식자로 나뉘는 학생 캐릭터의 유형화는 어느새 한국 학원물의 공식이 됐다. 달리 표현하자면 한국의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인 일들이 화면 속에선 당연한 것처럼 취급된다. <피라미드 게임>(2024)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계급구조를 노골적으로 그린다. 대기업이 세운 백연여고에서는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A등급부터 F등급까지 학생 서열을 매기고 꼴찌는 반 내 합법적인 왕따가 된다. 왕따는 어떤 괴롭힘을 당해도 순응하는 게 이 게임의 룰이다. 전학 오자마자 F등급을 받은 주인공 성수지(김지연)는 밑에서부터 이 기괴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는 이사장 딸이자 절대 권력자인 백하린(장다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선의의 경쟁>(2025) 속 학교도 승패가 갈리는 냉혹한 경기장이다. 서울 명문 채화여고는 부모의 경제력과 성적이 ‘대한민국 상위 1%’인 학생들만 다닐 수 있다. 돌연변이처럼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온 지방 보육원 출신 우슬기(정수빈)는 교내 독보적 존재인 유제이(이혜리)와 관계를 맺는다. 전학 전 우슬기는 돈과 약물을 구하기 위해 불법적인 의료쇼핑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래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는데 이 과정은 상세히 묘사된다. <하이라키>(2024)의 주신고등학교는 이보다 더해 ‘상위 0.01%의 소수’만을 허락한다. ‘하이클래스’ 학생들은 미국 하이틴 드라마 주인공처럼 슈퍼카를 몰고 다니며 사교 파티를 연다. 이들은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입학한 장학생과 자신들을 넥타이 색깔로 구분한다. 서열 1위인 리안(김재원)을 주축으로 한 이들에겐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없어 이들은 따돌림과 마약, 불법 촬영과 유포 등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스터디그룹>(2025)의 교실에는 앞선 학교들처럼 상류층의 상징과도 같은 샹들리에가 없지만 변함없이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한다. 유성공고는 불량학생 집합소로 전국구로 유명하다. 조폭 연백파 수장의 아들 한울(차우민)이 실세로, 싸움 서열을 가리는 앱을 깐 전교생은 폭력적인 순위 쟁탈전을 일삼는다. <약한영웅 Class 2>(2025)에서 주인공 연시은(박지훈)이 강제 전학 간 은장고도 유성공고 못지않게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은장고가 일진 연합과 벌이는 거대한 패싸움이 이 시리즈의 후반부 하이라이트를 책임진다. 이렇듯 최근의 학원물 시리즈는 설정 단계에서부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까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왜 자극을 택했는가 “지금 자본은 순한 걸 용납하지 않는다.” 학원물 시리즈가 극단적으로 장르화된 산업적 배경에 대해 이러한 시리즈를 만든 적 있는 기획 프로듀서 A씨는 단호하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일상적인 학교 이야기는 이미 다 아는 것이라며 외면받을 수 있다. 시청자를 끝까지 붙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잦은 충격과 빠른 전개가 필요하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도중 하차’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작부터 확실한 몰입도를 보여주는 대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때 스타 신인의 등용문이자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KBS <학교> 시리즈나 <성장드라마 반올림#> 같은 TV학원물 드라마가 부활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학원물 시리즈의 조연출로 일한 경력이 있는 드라마 PD B씨는 “이런 드라마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제작비와 달라진 시청 환경, 시청층을 고려했을 때 지금 그런 작품을 기획하는 건 모험처럼 느껴진다”라고 현실적인 한계를 털어놨다. 자극 과잉의 시대, 수많은 플랫폼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학원물은 어느새 성장드라마에서 하이브리드 장르물로 진화했다. 학교는 더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이 되었다. 학원 스릴러, 학원 범죄, 학원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 코드가 학교라는 공간과 결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웹툰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은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 중 <하이라키>를 제외한 <피라미드 게임> <약한영웅 Class 2> <스터디그룹> <선의의 경쟁> 모두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이들 시리즈는 원작의 강렬한 시각성과 선명한 캐릭터, 과감한 전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각색 되었다. 이는 “원작 팬덤을 안정적으로 끌어안기 위한 전략이자 원작의 팬인 창작자들의 애정이 맞물린 결과”(기획 프로듀서 A씨)로 볼 수 있다. 성매매에 노출된 10대의 이야기를 다룬 <인간수업>(2020), <오징어 게임>(2021), 좀비와 하이틴 장르를 결합한 <지금 우리 학교는> (2022)의 흥행 이후 한국의 다크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의 관심이 높아진 점 역시 이 흐름을 가속화한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 초상화, 윈도, 스크린 앞에서, 프리츠 랑과 장 르누아르

이나라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 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는 중년 남성이 기차역에서 바캉스를 떠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배웅한다. 일거리에 파묻혀 사는 남성은 함께 떠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곗거리에 불과했던 것 같다. 가족이 떠난 후 남성은 자석에 이끌리듯 갤러리 쇼윈도에 진열된 여성의 초상화에 시선을 빼앗기더니, 저녁 무렵에는 초상화 속 여성을 꼭 빼닮은 여성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비교적 덜 알려진 프리츠 랑의 <창가의 여인>(1944)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상’ 가족을 꾸리던 건실한 남성이 범죄의 세계와 연루되고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초상화를 ‘팜므파탈’만큼이나 위력을 가진 요소로 상상한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여러 편의 고딕 로맨스물이나 누아르영화, 히치콕의 <레베카>(1940), 오토 프레민저의 <로라>(1944), 윌리엄 디터리의 <제니의 초상>(1944),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앨버트 르윈의 <판도라>(1951) 등도 초상화의 위력을 서사적 동기로 활용했다. 이중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 전설을 소재로 삼은 <판도라>에서 초상화는 영화 속 존재들에게 유령적 힘을 행사하는 유일한 사물이 아니라 유령선, 선장, 판도라적 여성 등 영화 속 여러 유령적 존재 중 하나로 나타난다. 반면 <레베카> <로라> <창가의 여인> 등에서는 초상화 자체가 위력을 떨친다. <레베카>에서 거대하고 어두운 성 복도에 걸린 망자 레베카의 초상화는 이곳에 새로 도착한 여주인공을 압도할 뿐 아니라 공간 자체를 압도한다. <로라>에서 로라의 죽음을 파헤치는 형사는 로라가 사라진 어두운 빈방에서 로라의 초상화에 매료된다. 이 두편의 영화에서 초상화를 바라보는 인물들은 어두운 극장 안에서 거대한 스크린 위의 압도적 크기의 ‘영화적 얼굴’을 바라보는 관객, 지금 여기 이 극장 안에 없는 존재의 유령적 이미지에 매혹당한 관객을 닮았다. 이들 영화에서 초상화의 위력은 육신을 가진 관람자를 오히려 압도하는 ‘이미지’의 위력이자 영화적 이미지의 위력을 드러낸다. 고딕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레베카>에서 초상화가 걸려 있는 폐쇄적인 실내공간은 초상화의 위력을 더욱 강화한다. 반면 <창가의 여인>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초상화는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에서 주인공의 욕망과 환상을 부추기는 것은 초상화일 뿐 아니라 초상화가 놓인 조건, 곧 진열장과 진열장 창이다. 갤러리의 진열장, 갤러리 진열장의 그림은 앤 프리드버그와 같은 학자가 스크린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가상 창문”에 가깝다. 프리드버그는 스크린이 17세기 대형 유리창의 확산 이후 건축과 문화의 핵심이 되었던 유리창을 대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이 실내에서 바깥 경치를 액자처럼 보여주는 틀이었다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값싼 대형 유리가 생산되면서 유리창은 상품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상품 진열장이 시각적 소비문화 시대를 열었다면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의 ‘창’은 가상 공간을 연다. <창가의 여인>에서 주인공은 밤늦게 클럽을 나서며 낮에 보았던 초상화가 놓인 진열창 앞에 멈춰 선다. 그는 진열창 ‘너머로’ 초상화를 본다. 이때 초상화 옆에 한 여인의 상이 초상화보다 더 초상화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맺힌다. 주인공 남성이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은 길에 있는 한 여인의 거울상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진열창을 통해’ 초상화를 처음 만날 뿐 아니라 초상화 속 여인을 닮은 한 여인 역시 ‘진열창에 비친’ 상을 통해 만난다. ‘진열창 덕분에’ 초상화는 진열창에 맺힌 주인공의 상과 여인의 상 ‘사이에’ 놓인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창가의 여인>의 뻔한 도덕적 결말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창가의 여인>은 중년 남성에게 아름다운 여성의 유혹에 빠진 죄과를 묻는 영화처럼 흘러간다. 남성은 의도치 않게 살인에 연루되고 협박을 받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은 순간 잠에서 깨어난다. 이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는 진열창 속 그림을 본 남성이 꿈속에서 스스로 꾸며낸 것이다. 그러니 <창가의 여인> 속 창은 한편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산보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19세기적 시각 소비문화의 진열-창이고, 다른 한편 관객을 먼 시간과 장소로 이끄는 스크린-창이며, 관객의 적극적 상상-꿈꾸기 속으로 이어지는 프레임-창이다. 그러니 <창가의 여인>은 초상화 속에서 영화적 얼굴과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기보다 창의 문화와 스크린 문화가 맺고 있는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 프리츠 랑은 <창가의 여인>을 만든 다음해에 만든 <진홍의 거리>(1945)에서도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 <진홍의 거리>는 장 르누아르의 <암캐>(1931)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오작동하는 무능한 예술가를 극 중 인물로 즐겨 소환하는 르누아르는 <암캐>에서도 자신이 실제로 태어나 자랐던 파리 몽마르트르 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고단한 삶을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그림에 위안을 얻는 아마추어 화가 모리스 르그랑(미셸 시몽)이 살인에 이르고 노숙자가 되는 과정을 영화로 옮겼다. 그런데 장 르누아르와 프리츠 랑의 영화에서 그림은 어떤 마법적 위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약탈적 사회에서 주인공의 그림은 아내나 정부에게 잡동사니 쓰레기 취급을 받거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간주된다. 이 세계에서 그림은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무자비한 작동 방식과 주인공의 소외를 증명하는 사물이다. <암캐>의 노숙자 모리스 르그랑은 갤러리 ‘진열장 너머’로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을 무관심하게 바라본다. 르누아르는 여기에서 부르주아와 노숙자,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예술과 노동, 회화와 영화 사이에 위계를 정하는 대신 이를 차별 없이 가로지르는 돈의 문화를 환기한다. 이제 미셸 시몽은 진열장 너머의 그림보다 그것을 구매한 부르주아가 던져준 20프랑짜리 동전에 더 흥분하는 걸인이 되었다. 그는 자유인이지만 돈에 종속된 자유인이다. 감독 장 르누아르는 “인생은 물살에 떠가는 코르크 조각과 같다. 물결에 몸을 맡겨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인용한 적 있다. 그런데 물결은 이제 데이터 또는 데이터가 된 돈의 흐름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할까? 이 질문은 르누아르의 쇼윈도 시대에도 오늘날 컴퓨터 윈도 시대에도 영화와 예술이 나누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인터뷰] 카메라 앞에 서면 부담이 사라진다, <폭싹 속았수다> <약한영웅 Class 2> <멜로무비> <24시 헬스클럽> 배우 이준영

2025년 봄은 바야흐로 이준영의 봄날이었다. 밸런타인데이에 공개된 <멜로무비>를 시작으로 <폭싹 속았수다>와 <약한영웅 Class 2>가 연달아 큰 호응을 얻었고, 각 작품 속 이준영의 호연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준영의 얼굴과 이름을 재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는 <부암동 복수자들>의 수겸 학생이자 의 탈영병이었고, <마스크걸>의 데이트 폭력범인 동시에 <모럴센스>의 순박한 마조히스트였다. 새삼스럽지만 이준영은 보이 그룹 유키스로 데뷔했고, 배우 활동 중에도 얼마간 아이돌 생활을 병행했다. 그렇게 이준영이 지난 9년간 축적한 필모그래피는 배역에 완전히 동화돼 자신의 개성을 지울 줄 아는, 카메라 밖 자아를 작품 안으로 틈입시키지 않는 20대 남성배우의 탄생을 입증했다. 현재 KBS2 수목드라마 <24시 헬스클럽>을 통해 코미디 근육까지 과시 중인 이준영이 <씨네21>을 찾았다. 여름의 초입, 이준영이 회상하는 지난봄과 채비 중인 한여름의 계획을 전한다. - 지난 4개월간 연달아 네 작품이 공개됐고 각 작품이 흥행한 것은 물론 배우 이준영의 연기가 모두 화제를 모았다. 교만해지지 말자고 끊임없이 되뇐다. 이런 반응이 올 줄 예상치 못했고, 이런 반응을 경험해본 적도 드물다. 작품들이 공개되기 이전 이준영의 초심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금성제, 박영범 등 캐릭터의 이름을 시청자에게 각인했다는 점도 주요한 변화다. 내 얼굴을 다방면으로 활용해 사람들에게 혼란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직업의 장점 아닐까. “이 배우가 얘였어?”라는 반응을 어느 때보다 많이 접하고 있어 배우로서 뿌듯하다. - <폭싹 속았수다>와 <약한영웅 Class 2>,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를 동시에 촬영했다고. 주변에서 만류했을 법한 업무 강도인데 각 작품을 하고 싶은 이유가 분명했나 보다. “준영씨만 괜찮다면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말씀해준 제작진의 양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스케줄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고, 내가 그들의 세상에서 쓰임이 확실하다면 몸이 고단한 건 나중 문제였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 연기도, 제안받은 작품들의 대본도 하나같이 재밌었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흥미와 도전정신, 약간의 걱정을 안고 촬영을 마쳤다. - 복잡한 스케줄을 오가는 동안 혼란은 없었나. 캐릭터들이 시대도, 계급도, 나이도 전부 다르다 보니 이동할 때마다 상기하는 과정이 필수였다. 한 현장에서 다른 현장으로 이동할 때 보통 서너 시간 정도 소요됐다. 차에 타자마자 대본을 점검하고 이전에 찍어둔 촬영본을 모니터링하며 감정선을 복기했다. 30분 정도 쪽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한 후 근처 사우나에서 급히 씻고 촬영장으로 출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기회에 스태프들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맛집도 많이 다녔다. 힘들지만 전국을 여행하니 재충전이 되더라. - 이전에는 연기 모니터링을 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배우 생활 초창기에 모니터링을 하던 중 연기가 아닌 카메라에 비친 얼굴을 신경 쓰는 나를 발견했다. 배역에 대한 존중이 없어지는 것 같아 이후엔 모니터링을 잘 하지 않는다. 액션과 컷 사이에선 무얼 해도 합법이다 - <폭싹 속았수다> 속 금명(아이유)과 영범의 이별 신이 명장면으로 널리 회자됐다. 7년을 사랑했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품 내에서 두 사람이 연애하는 장면은 적다. 묘사되는 순간이 적을수록 장면마다 감정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일이 배우에게 요구되는 몫일 터. 이별 신에 이르기까지 영범의 감정선을 어떻게 세분화하고 구체화했나. 서로 툴툴대거나, 떠나려는 금명을 영범이 붙잡는 식의 장면이 많다 보니 둘의 사랑을 상상으로 채워야 했다. 그래서 아이유 배우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자주 시간을 보내며 둘의 관계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가까운 사이만이 보일 수 있는 말투, 표정, 몸짓 등을 함께 연구했다. 영범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감정의 강도를 수치화하는 작업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를테면 이 신에선 10만큼, 다음 신에선 30만큼 영범이 감정을 표출하는 식으로 감정에 점수를 매기고 나니 나아갈 길이 보다 명확해졌다. 이별 신을 찍을 때 어쩐지 영범의 눈이 슬픔으로 퉁퉁 부어야 할 것 같았다. 그건 분장으로 만들 수 없는 눈이라 차 안에서 미리 10분쯤 엉엉 울고 카메라 앞에 섰다. -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없는 것이 임상춘 월드의 특징 아닌가. 이 점을 임상춘 작가가 주지하던가. 별다른 코멘트는 없었다. 다만 작가님이 “준영 씨가 잘해줄 거라 믿어요”라고 말씀해준 적은 있다. 작가님의 작품을 전부 재밌게 본 입장에서 이 응원이 약간 부담으로 다가왔다. 촬영 전엔 내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촬영 후엔 내가 만족할 만한 연기를 못한 것 같아 후회한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만큼은 그 부담이 사라진다. - 오히려 연기하는 순간에는 상념이 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액션’과 ‘컷’ 사이에선 정해진 약속만 지키면 무얼 해도 합법이지 않나. 그래서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려는 마음이다. 캐릭터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찰나의 자유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 영범을 연민하게도 되던가.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여자가 첫사랑이고, 그 여자와 자신의 생일날 헤어진다. 어쩌면 가장 비참한 결말에 놓인 인물이다. 늘 금명을 그리워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날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흘러 50대가 된 영범이 어머니에게 만족스럽냐며 원망을 퍼붓는 장면을 찍을 땐 실제로 몸 한구석이 얼마간 아팠다. 그제야 비로소 내가 영범을 불쌍히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동정할 만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새로웠다. (웃음) - <약한영웅 Class 2> 속 ‘연금대전’이라 불리는 연시은(박지훈)과 금성제의 액션 시퀀스가 큰 화제였다. 5일 정도 나누어 촬영했다. 첫 사흘은 연속해 찍고, 마지막 이틀은 얼마간 간격을 두고 촬영했다. 오래 싸우다 보면 성제도 지칠 테니 기진한 듯한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대기시간마다 뜀뛰기를 하는 등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특히 시은과 싸울 때 성제가 느낄 법한 희열에 집중했다. 성제가 현탁(이민재)과 싸울 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현탁이 전투 불능 상태에 놓이자 최소한의 관심마저 거둔다. 그런데 시은과 싸울 땐 내내 웃는다. 성제 또한 이렇게까지 사력을 다해 싸울 기회를 고대했다는 태 도로 임했다. - 한준희 감독은 언제나 이준영의 댄서 경력이 액션에 도움을 준다고 평가하더라. 인터뷰마다 감독님이 그 말씀을 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다. (웃음) 실제 춤처럼 액션을 하면 오케이 안 하실 거다. 순서를 외우거나 리듬감을 요하는 동작이 비슷할 순 있겠다. 춤과 달리 액션은 실제로 주먹이 오고 간다는 타격감이 있어야 하지 않나. 를 찍을 당시 내 주먹이 가짜처럼 보이는 게 아쉬워 이종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 “낭만 합격”은 어땠나. 대사만 봤을 땐 막막했을 것 같다. 쉽지 않았지만 그 대사를 누가 받는지를 생각하니 어렵지 않았다. “낭만 합격”은 준태(최민영)의 투지에 감화된 성제의 감정이다. 그래서 준태에게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 “낭만 합격”의 촬영도 준태의 혈투 시퀀스 이후에 이루어졌다. 현장에 머물며 앞 촬영을 함께 지켜봤다. 준태와 최민영 배우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 배역으로서 인물을 응시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하나. 금성제를 예로 들면 나백진(배나라)을 바라볼 땐 눈에 초점이 없는 반면 연시은을 바라볼 땐 눈에 살기가 형형하다. 백진은 언제든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백진이 아무리 군림하려 들어도 성제는 백진 밑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연기하니 눈에 초점이 자연스레 없어졌다. 반면 시은은 성제에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차지하고 쟁취하고 싶은 상대다. 그런데 시은을 가질 수 없으니 성제가 얼마나 애가 탔겠나. (웃음) 눈이 돌 수밖에 없다. - <멜로무비>의 오충환 감독이 <씨네21>과 인터뷰에서 네 캐릭터의 감정 진척 속도가 전부 다른데, 그중 시준의 속도가 가장 느려 연출자로서 걱정했다고 한다. 배우 본인도 유사한 고민을 했을까. 이미 관계가 일단락된 상황에서 시작하는 멜로는 처음이라 쉽지 않았다. 시준이 쉽게 내보이지 않는 무뚝뚝한 감정이 작품 후반부에 해소되기 위해 내 연기가 어떤 설득력을 지녀야 할지 감독님은 물론 전소니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히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준을 바라보는 게 한결 편해졌다. - 시준과 주아(전소니)의 사랑에 집중한다면 <멜로무비>는 두 연인의 이별 방도에 관한 연애담이다. 시준과 영범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헤어진 연인은 지난 사랑을 털어내고 자기 삶을 살고 있는데, 이 남자는 과거에 매몰돼 현재의 삶마저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 감각 때문에 또 한번 아팠다. 지금껏 연기한 배역 중에 시준이 가장 세심한 남자였다. 그 세심함을 사람들이 잘 몰라준다. 대사 중 “남들이 그만두라 하기 전에 내가 내 주제를 알고 그만둬야지”는 보자마자 과거의 내 맘 같아 대본을 읽을 때부터 눈물이 났다. 자존감이 바닥이라 그렇지 우리 시준이, 예쁜 구석이 있는 놈이다. - 현재 방영 중인 <24시 헬스클럽> 속 도현중을 통해 작심하고 코미디 연기를 보이는 중이다. 웅장한 저음과 잔뜩 기합이 들어간 말투를 구현했다. 실제 헬스트레이너인 친구의 특성을 역이용해 만든 캐릭터다. 가늘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진 친구인데 그 목소리로 운동을 가르칠 때 재밌길래 이 모습을 반대로 가져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친구에게 저음으로도 말해보라고 한 후 그 톤으로부터 현중의 목소리를 만들어갔다. 현중이 워낙 개성이 넘치기 때문에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잡아야 이 캐릭터를 우주로 날려보내지 않고 땅에 묶어둘 수 있었다. - <모럴센스> 때도 한 차례 증량한 바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몸을 한껏 키웠다. 나를 포함해 정은지, 이미도, 이승우 배우 모두 촬영 내내 운동 스케줄과 식단을 철저히 준수하는 훈련의 시간을 보냈다. 보통 촬영 중엔 맛집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싸오기도 하는데, 이번 촬영 땐 모두가 식단을 관리하는 바람에 다들 도시락에 닭가슴살밖에 없더라. 대기 중에도 실제 세트가 헬스장처럼 만들어졌으니 내내 운동만 하고. (웃음) 춤추고 그림 그리며 삶을 즐긴다 - 댄서가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한창 쓰다가 중단한 것으로 안다.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이야기가 아쉽진 않나. 전혀.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아직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야기를 만들기엔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시나리오 작법을 제대로 배워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다. - 댄스 중에도 프리스타일을 특히 선호한다고 들었다. 연기를 할 땐 대본과 디렉션 등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춤을 출 때만큼은 제약이 덜한 프리스타일을 선호하는 건가. 처음 듣는 노래에 맞춰 프리스타일 추기를 즐긴다. 아이돌 활동 시절엔 짜인 군무를 추다 보니 내 만족과 내 멋에 따라 움직이고 싶은 열망이 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프리스타일이 좋다. 4분여의 시간을 온전히 내 몫으로 누릴 수 있으니까. 올해 초에도 프리스타일 힙합 배틀에 출전했다. 많이들 배틀이 댄서간 결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춤꾼 사이의 소통이자 교류라 보는 편이 정확하다. 상대가 선호하는 무브먼트, 동작에 따라 선호하는 음악을 어떻게든 눈에 담고 이를 연습실에서 내 방식대로 소화하는 과정이 즐겁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탈출구다. - 입대 전 앨범 발매를 준비 중이라고. 모처럼 가수 이준영도 볼 수 있는 건가. 회사 A&R팀과 함께 열심히 회의 중이다. 곡도 많이 받았다. 이준영의 라스트 댄스랄까, 이 앨범으로 마지막 불꽃을 불태워 후회 없이, 미련 없이 20대를 보내주려 한다. - 그렇다면 이번 여름엔 앨범 준비로 보낼 예정인가. 사실 곧 차기작을 확정할 예정이다. 열심히 작품을 촬영하며 나다운 날들을 보낼 계획이다. - 이준영다운 게 뭘까.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지 않아요?”다. 정말 달라진 건 그 점 하나다. 내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나의 일상을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지는 못한다. 여전히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춤추고 그림 그리며 삶을 즐기는 중이다.

[특집] <누벨바그> <에딩턴> <르누아르> <다이, 마이 러브> 최초 리뷰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리처드 링클레이터 / 프랑스 / 2025년 / 105분 / 경쟁 <카이에 뒤 시네마> 사무실의 서랍을 열어 지폐 몇장을 몰래 훔치는 청년, 장뤼크 고다르(기욤 마르벡)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4:3 흑백 셀룰로이드 화면에 대고 말한다. “영화를 비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링클레이터가 택한 가장 좋은 방법 역시 그렇다. 1959년 촬영한 고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작업기를 경쾌하게 좇는 신작은, 고다르의 걸작보다 <누벨바그>를 먼저 볼 세대를 위해 앞장서 띄우는 한통의 러브레터처럼 다가온다. 오토 프레민저 감독과의 악명 높은 작업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온 할리우드 배우 진 셰버그(조이 도이치)가 고다르의 즉흥성과 충돌하며, 프로듀서인 조르주 드 보르가르는 대중을 위한 플롯과 메시지를 역설하는 상황. 넷플릭스 코미디 <히트맨>과 194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로 돌아간 소니 영화 <블루 문> 이후 칸에 입성한 링클레이터는 인디영화와 상업영화를 횡단하는 동안에도 작가성을 유지해온 자신의 여정에서 누벨바그라는 출처를 찾는다. <보이후드> <블루 문> 등에서 영화의 시간성을 조각해온 정신 또한 고다르와 일군의 친구들에게서 수혈된 것이다. 다만 그는 영화사에 기록된 혁신적 문법을 자신의 스크린에 외형상 재현하는 고다르의 경구들을 되새기고 당대의 에너지를 옮기는 데 충실하다. 이 점이 곧 <누벨바그>의 매력이자 결여일 것이다. 독창적 각주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누벨바그>의 세련된 경쾌함, 링클레이터다운 온유함이 일면 해석의 부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온기, 유머, 관용의 거장인 링클레이터의 미덕이 날 선 누벨바그의 기수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임은 분명하며, 올해 칸영화제에서만큼은 경쟁부문의 어떤 영화보다도 애정 어린 호응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영화들에 깃든 오래된 유산을 향해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에게 뤼미에르 대극장은 길고 신나는 박수로 화답했다. /김소미 에딩턴 Eddington 아리 애스터 / 미국 / 2024년 / 145분 / 경쟁 아리 애스터의 신작 <에딩턴>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풍자하는 광란의 사회실험극이자 공동체의 파멸을 선고하는 아리 애스터식 아포칼립스다. 트라우마로 점철된 장르의 세계에서 현대 미국 웨스턴으로 초점을 확장한 아리 애스터의 신작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정면으로 반영한 최초의 할리우드영화이기도 하다. 연대기적 상징성을 떠나 아리 애스터 필모그래피의 시계열을 넓혀 바라볼 때 중요한 분기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팬데믹, 인종 갈등, 온라인 음모론, 쇼츠와 가짜 뉴스, AI 빅테크 기업의 침투 등 동시대 미국의 지옥도를 대변하는 요소들을 작은 집단에 거침없이 욱여넣은 모양새다. 때는 2020년,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보수 성향의 마을 보안관 조(호아킨 피닉스)는 극우 유튜버를 신봉하는 아내(에마 스톤)와 장모 사이에서 무력한 나날을 보낸다. 진보 성향의 시장 테드(페드로 파스칼)가 펼치는 보건 정책에 반감을 품게 된 그가 직접 차기 시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는데, 소통 대신 폭력을 택한 주인공의 폭주와 함께 후반부는 전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그랬듯 초현실적인 피카레스크를 향해 내달린다. 칸 현지 반응은 극렬히 나뉘었다. 미국 기자들은 자국을 겨냥하는 과격한 촌극에 손을 들어준 한편, 노골적 도상들로 가득 찬 쇼케이스를 과시하는 아리 애스터의 호들갑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급진화된 백인 청년들의 모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그려지는 온건파 흑인 경찰들의 무고한 희생 등 주변부의 묘사가 외려 날카롭게 반짝인다. /김소미 르누아르 Renoir 하야카와 지에 /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 2025년 / 116분 / 경쟁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유키 스즈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를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하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기까지, 이 모든 건 암환자인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시한부인 아버지,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는 어머니에겐 딸을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데뷔작 <플랜 75>를 통해 노년 여성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버블경제 붕괴 이전, 풍요로웠던 사회의 외형과 반대로 가족간의 유대는 약화된 1980년대 일본의 시대상이 바탕이 됐다. 자전적 작품인 만큼 성인의 관점에서 회상한 과거임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후키의 과거, 상상의 결과물이 현실과 자주 교차되는데 여기엔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필사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소녀의 간절함이 녹아들어 있다. 소마이 신지의 <이사>,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의 자장 아래 놓인 작품임은 분명하나 <플랜 75>보다 한층 과감한 시도, 안정된 만듦새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다진다. /조현나 다이, 마이 러브 Die, My Love 린 램지 / 캐나다 / 2025년 / 118분 / 경쟁 잡화점 직원이 묻는다. “필요한 건 다 찾으셨나요?” 여자는 받아친다. “뭐, 인생에서?” 직원은 꺾이지 않고 유모차의 아기한테 찬사를 쏟아낸다. “어머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봐요.” 점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자가 일축한다. “댁은 생각은 하면서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쉬지 않고 입을 나불나불하는 건가?” 이 가시 돋친 여자의 역설적인 이름은 그레이스. 배우는 이런 부류의 대사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제니퍼 로런스다. 파트너 잭슨(로버트 패틴슨)과 그레이스는 자력으로 장만할 수 없는 넓은 집을 잭슨의 숙부가 물려주자 뉴욕에서 몬태나의 외진 시골로 이사하고 곧 아기가 태어난다. 왕성하던 섹스는 드물어지고 깊어가는 고립 속에 작가지망생인 그레이스는 책상에 앉지 못한다.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한 여자의 욕구불만은 관계를 잠식하고 말 그대로 집을 파괴해간다. 벌레의 웅웅거림과 아기의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히스테리가 불꽃놀이를 벌이는 <다이, 마이 러브>는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럼에도 이 불꽃놀이에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다. <케빈에 대하여> <너는 여기 없었다> 등에서 정신적 만성통증의 탁월한 연구자임을 보여준 린 램지 감독은 관객의 청각, 촉각, 시각을 난사하며 관객을 한 여자의 신경증 속으로 데려간다. <툴리>를 비롯해 산후우울증을 다룬 많은 영화들과 다르게 린 램지는 그레이스를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건전한 정상성의 세계로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벽지를 손톱으로 긁고 타일을 부수며 그 뒤쪽의 무엇을 잡아 쥐려는 그레이스의 폭력적 몸부림을 변명하지 않는다. 한동안 스타덤에 의해 거세됐던 제니퍼 로런스의 야성과 무시무시한 재능이 봉인해제된 이 영화는 <가여운 것들>이 에마 스톤에게 그랬던 것처럼 로런스의 연기 편람으로 내년 오스카의 영광을 점치게 한다. <다이, 마이 러브>의 억압은 나쁜 남편, 못된 시어머니보다 거대한 것으로부터 온다. 잭슨과 그의 어머니 팸(시시 스페이섹)은 결코 악역이 아니다. 외려 남편의 죽음으로 가족에 봉사하는 역할을 완료한 팸과 출산에 의해 그 길목에 접어든 그레이스가 마주 보고 만들어내는 그림은 이 영화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 /김혜리

[Masters' Talk] 정통 뱀파이어와 오리지널 시나리오 사이의 묘, <씨너스: 죄인들>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 X <잠>의 유재선 감독

호러영화 연출자들의 마스터스 토크 시네마엔 국경이 없다는데, 게다가 같은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이 만나면 대화가 더 잘 통할까.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이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그 가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회문화적 맥락이 녹아든 블랙 호러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하 <씨너스>)을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지난 5월16일 러브 스토리와 호러를 절묘하게 엮은 <잠>의 유재선 감독과 온라인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었다. 전통적인 고딕호러의 소재인 뱀파이어를 1932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이식시키는 이야기로 운을 뗀 이날의 대화는 오랫동안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았던 공포소설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미국의 86년생 젊은 감독과 한국의 89년생 신인감독간 만남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기존 창작자들과 달리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원작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씨너스>로 북미 극장가에서 흔치 않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영화가 2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가족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이후 8년 만의 기록이다. 게다가 그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와 협상을 벌여 2050년이면 <씨너스>의 저작권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원작이 될 창작물의 판권을 사거나 리메이크에 몰두하는 사이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기존의 관행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는 쿠글러 감독 특유의 젊은 에너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물론 그가 이끄는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도 마스터스 토크 지면을 통해 공개한다. <씨너스>를 본 관객은 물론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이날의 대화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유재선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씨너스> 굉장히 잘 봤고요.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마스터스 토크에 참여하지만 이제 영화 한편을 연출한 감독으로서 배우는 학생의 느낌으로 <씨너스>를 보고 궁금했던 질문들을 왕창 쏟아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라이언 쿠글러 아닙니다. 유재선 감독이 품은 어떤 질문이든 그를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행복한걸요. 이렇게 유 감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며, 부산에서 제 영화 <블랙 팬서>를 촬영하고 그곳에서 큰 시사회를 가진 적 있습니다. 부산이 참 그립네요. 젊은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완성한 유재선 감독의 멋진 커리어에도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 첫 번째 장편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마쳤을 때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땐 저 역시 영화를 계속해서 배우는 중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장편영화, 단편영화, 학생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걸 결국 해냈다는 의미더군요. 지금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실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저는 유 감독님을 학생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우리가 만난 ‘마스터스 토크’라는 코너도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유재선 정말 감사합니다. (웃음)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블랙 팬서>를 한국에서 촬영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봉준호 감독님의 <옥자> 연출팀으로 일하던 당시, 많은 스태프들이 <블랙 팬서> 촬영에 참여했고 그 현장을 너무 즐겁게 추억하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블랙 팬서>가 한국을 배경으로 두었기 때문에 한국 관객에게도 특별히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씨너스>를 이야기하는 자리지만 <블랙 팬서>도 굉장히 잘 봤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의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잖아요. 전작인 <크리드>는 원작 영화가 있었고, <블랙 팬서>는 원작 코믹스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씨너스>는 감독님의 오리지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연출하셨을 때 전작과 다른 접근 방식이나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전작을 창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교훈으로 삼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이 영화가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하룻밤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24시간 영화’가 되리란 걸 알았어요. 다만,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든, 코믹스를 각색하든, <록키> 세계관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든 간에 거기엔 연출자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해요. 예술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죠. 이번 작품 <씨너스>는 따라야 할 스토리의 규칙이 없고, 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관객도 감을 잡을 수 없어 오히려 신났어요. 물론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에서 이미 다룬 ‘뱀파이어’를 소재로 작업했기 때문에 관객이 뱀파이어 서사에 기대하는 지점과 규칙들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화나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 때와 비슷한 지점도 있으나 더 쉽기도 했고, 때때로 더 어렵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씨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영화를 판매하는 거였어요. 영화를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게 무척 어려웠죠. 세상엔 볼거리가 많잖아요. 관객 입장에선 익숙한 세계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죠.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기엔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실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오리지널 영화를 홍보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유재선 이 영화를 제작했을 때 어려운 점이 영화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마케팅 부분이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감독님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프로듀서인 아내에게 최초로 피칭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본 적 있습니다. <씨너스>를 처음 어떻게 소개하고 피칭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네, 피칭했죠. 진지 쿠글러는 제 프로듀서이자 아내이고, 파트너인 세브 오해니언 세 사람이 같이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린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작업 전에 아이디어 테스트하는 것에 익숙해요. 아내 앞에서 스토리에 대해 피칭하고 제가 상상한 것들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진지는 정말 좋은 첫 번째 반응자예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제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죠. 제가 얘기하면 진지는 “이건 잘 모르겠어” 아니면 “이거 좀 멋지네”라고 말하곤 해요. 이번엔 집에서 피칭했는데 이야기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진지가 듣고는 “꽤 괜찮네”라고 말했어요. 이야기를 다듬어서 캐릭터들이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떤지에 대해 확고히 해야 했죠. 이 영화는 블루스 곡 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한 건물에 여러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여는 내용의 노래예요.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여 멋진 파티를 열고 그 파티에 초자연적 만남이 벌어지는데 정말 멋지죠. 진지와 저는 이 아이디어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뱀파이어가 돼야 할까? 늑대인간이 돼야 할까?”라면서요. 유재선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늑대인간 소재도 고려했는데 뱀파이어로 최종 확정 지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라이언 쿠글러 뱀파이어는 제 초기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다른 신화적 존재들이 뭐가 있을까 살펴봤지만, 계속 뱀파이어로 돌아왔어요. 제가 뱀파이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스티븐 킹의 뱀파이어 소설 <살렘스 롯>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살렘스 롯>은 정말 강렬한 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소설이었어요. 저는 항상 이 소설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령, 늑대인간, 크리처, 그리고 좀비들까지 다 좋아하지만 이번엔 뱀파이어가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들보다 뱀파이어가 이 영화에 잘 어울렸습니다. 유재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뱀파이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뱀파이어 설정이 테마와 맞물려 있어서 이보다 더 완벽한 선택이 있었을까 싶어요. 라이언 쿠글러 네, 확실히요. 음악산업, 자본주의, 편견, 종교 등 모든 것이 뱀파이어란 개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현대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 모두 그랬죠. 지금 돌이켜보면 뱀파이어 외에 다른 소재였다면 이렇게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프록시미티 미디어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제작자인 진지 쿠글러, 제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세브 오해니언이 2018년에 설립한 멀티미디어 제작사다. 음악감독 루드비그 예란손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운드트랙 음반을 제작한다. 설립한 지 약 3년 만에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로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결과를 냈다. 참고로 라이언 쿠글러는 1986년생, 진지 쿠글러는 1985년생, 세브 오해니언은 1987년생 젊은 영화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라이언 쿠글러와 오해니언, 예란손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문이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은 <살렘스 롯>이란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이 1975년 출판한 공포소설로, <캐리>에 이어 두 번째 집필한 책이다. 주인공 소설가 벤이 다음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만에 고향 메인주 ‘살렘스 롯’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벤은 마을의 텅 빈 유령의 집이 오스트리아 이민자 커트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긴 여행을 떠났다는 커트는 마을에서 보이지 않고, 어쩐 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사망했거나 사라진 주민들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돌아다닌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살렘스 롯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으로, 책 <살렘스 롯>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킹은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활용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유재선 감독의 마스터스 토크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