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영화 [7] - 호주

러셀 에드워즈/ <버라이어티> 평론가·<엠파이어> 기자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양적·질적 발전을 고려한다면 호주와 같은 주요한 무역 파트너의 경우 한국영화에 뚜렷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해도 용서될 것이다. 결국 문화는 무역의 부산물이지 않은가? 우리는 석탄, 천연가스, 오렌지 등도 맞바꾸는데… 한국영화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뭐, 우리 중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호주에서 상업적인 극장 개봉을 한 마지막 한국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로 2001년에 개봉했다.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 왔다는 것 때문이기보다 성적인 주제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고, 영화는 호주에서 흥행실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배급업자들이 다른 한국영화에 승산을 걸어보는 것을 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쉬리> 계기로 소규모의 영화 마케팅 시작되다 <쉬리>를 시작으로 일련의 소규모 회사들이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영화를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성공을 되풀이하려는 소규모 회사의 수가 배로 늘어나면서 수익은 감소했으며, 또 한국어를 하는 호주인들은 큰 스크린(해적판 비디오나 DVD가 아닌)에서 영화를 보는 새로운 즐거움도 곧 잊어버렸다. 이런 어떤 것도 호주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관객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반 호주인이라면 한국에 영화산업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어 TV 채널을 점검한다면 그 존재의 증거는 분명히 있다. 필자가 본 기사를 쓰는 현재 〈TV가이드>를 보면, 한-일 합작 첩보영화 <케이티>(KT)가 sbs에서 오늘밤 방송될 예정이고, 내일 유료TV 외국어 영화 채널 <월드 무비스>(World Movies)에서는 무협영화 <비천무>가 2주째 방영될 예정이다. 물론 매주 이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주의 한국계 인구가 소수임을 감안한다면 공정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대부분의 한국영화 배급업자들은 (1900만명 인구가 있는) 호주에서 사용 가능한 자금과 (거의 3억 인구가 있는) 미국이나 (6천만 인구가 있는) 영국같이 인구가 더 많은 영어권 국가의 것 하고 구분짓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결과, 한국영화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요청한 가격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비쳐졌고, 호주시장을 봤을 때 재정적인 자살행위와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계가 한국영화의 존재를 더 잘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사들 역시 호주 방송사들이 적절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 같다. SBS의 현재 영화 구매 담당 브레난 워런은 “우리는 돈을 많이 제의하지는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배급업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겠지만, 1998년이나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SBS 스탭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것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호주인이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 호주의 3대 영화제 그래서 한국어를 못하는 호주인이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주된 기회는 영화제를 통해서다. 확실히 제일 많이 한국계 인구가 있음에도, 시드니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호주의 3대 영화제 중 열정이 제일 저조한 편이었다. 브리스베인 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은 항상 아시아 영향이 강한 편이었고, 멜버른 국제영화제 역시 한국영화를 아주 잘 나타냈다. 올해 시드니 영화제는 6월11부터 26일까지 개최됐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비롯해 <살인의 추억>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바람난 가족>, 그리고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을 상영했다. 브리스베인 국제영화제(7월27일∼8월8일)는 올해 <바람난 가족>과 <사마리아>를 비롯해 아직 지명되지 않은 두편의 한국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또 한국 다큐멘터리 <송환>을 상영할 것이다. 지난 몇년간 그래왔듯이, 호주에서 한국영화의 주요 쇼케이스는 멜버른 국제영화제(7월21일∼8월8일)다.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한국영화의 메뉴는 훨씬 더 풍부하다. 영화제는 김기덕의 마지막 두 작품 <봄 여름…>과 <사마리아>와 함께 최근 칸 수상작 <올드 보이>와 <바람난 가족> <내츄럴 시티> <실미도> <장화, 홍련>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살인의 추억> <청풍명월> <여섯개의 시선> 등을 상영할 것이다. 한국영화를 선보이는 또 다른 호주 영화제는 시드니의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다. 나머지 세 군데보다 훨씬 작은 영화제지만, 시드니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는 2000년도 첫 영화제 개막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상영했을 때부터 항상 강하게 한국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한국인이 아니면서 호주에서 한국영화를 좇는 사람들은 작지만 커가고 있는 집단이며, 어떤 때는 모두가 호주에서의 주된 한국영화 전문가인 것처럼 자처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필자마저도!) 확실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호주에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없이 우리 중 대부분은 할 얘기가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와 호주 관객 사이에는 접점이 필요 한국영화가 호주 영화제 순회로 밖의 관객들의 관심을 자극하려면, 일종의 교차로 같은 요소가 요구된다. 무엇인가 이국적일 만큼 다르면서도 모든 경계를 초월할 만큼 정서적인 힘이 큰 것 말이다. 필자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 영화가 될 줄 알았는데, 틀렸다. 어쩌면 <집으로>도 UIP쪽에서 좀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다국적 기업의 호주 지사는 너무 게을렀던 것이다. 대신 UIP는 자막 없는 프린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작은 배급업자한테 그 영화를 맡겼다. 또 마치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히 히트치는 것도 막겠다는 식으로 UIP는 계약상으로 그 한국인 회사가 영문 신문에 광고를 내지 못하게 하기까지 했다. 뉴질랜드에 본부를 둔 배급업자인 리알토는 <내츄럴 시티>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등의 판권을 샀다. 2004년에 개봉 예정일을 둔 영화는 <올드 보이>밖에 없지만, 이 한편이 성공한다면 다른 작품의 개봉도 곧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거대 조직이 계속 앞으로 굴러가는 만큼, 단 한편의 실패작만 나타나도 “한국영화는 호주에서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금 양식화된 지혜처럼 되기 십상이다. 한국영화에 끌리는 세 가지 이유 - 한국영화의 치명적인 매혹 한국영화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험한 질문이지만 어느 곳에서 왔든 좋은 영화의 애호가로서 질문을 더 적절히 바꿔 말하면 “오늘날 한국영화의 무엇이 외국인들마저도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것인가?” 필자는 1999년 이전에 한국영화를 드문드문 보긴 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못 봤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새로운 영화의 세계를 열어줬는데, <송어>와 <박하사탕>과 나란히 본 것이 한편에 그치는 신기한 히트 정도가 아니라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국가 영화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시드니의 한국영화 비디오 가게들을 급습하면서 이전에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같은 이명세 영화들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쉬리>나 <투캅스> 등을 보면서 한국 감독들이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장르의 요건도 꽉 잡고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 1999년 이전에 내가 한국영화들을 잘못 골라 보고 있었던 것이 명백해졌다. 한국영화의 장점 : 기술적 우수함 + 배우의 연기력 + 솔직한 정서 이 모든 영화의 공통점은 기술적인 우수함이었고, 이는 문화적 경계의 침범을 더 수월하게 해준 것이다. 모든 국가의 영화는 어느 한 시점이 되면 열기가 가시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일 당장 모든 한국영화들이 형편없어진다 해도 겉보기엔 멋질 것이라고 거의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집으로>(거의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에 비전문가들을 출연시켰음에도 너무도 완벽한 작품), <눈물> <플란다스의 개> 등과 같이 세련되지 않은 작품들마저도 기술적인 한계점을 넘어선 장점이 있다. 한국 배우의 연기력 질 또한 인상적이었다. 박중훈, 안성기, 강수연, 송강호 등은 스크린에서 놀라울 정도다. 이 모든 배우들은 (그리고 다른 이들도) 거의 눈길을 줄 수밖에 없게 한다. 필자는 작가주의에 기우는 편이고 임권택, 김기덕 감독 같은 이들의 작품을 즐기지만, 실질적이지 못한 연기만큼 감독의 노고를 침식하는 것은 없다. 질 높은 연기가 갖춰지면 연출자가 다뤄야 할 문제들 반쯤이 풀리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장르적 요소가 강하고, 강렬하게 정치적이며, 흠잡을 데 없는 연출력에 원숙한 연기력을 지녔으면서도 인상적인 액션 요소들이 있는 가운데 압도적인 슬픔과 따뜻함과 진정한 위트의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대부분의 한국영화에서 볼 수 있고 또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는 최근 몇년간 어디서 왔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민족이 보인다는 것이다. 필자는 외부인으로서 밖에서 안을 쳐다보는 상황이라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자처할 수 없지만, 스크린에서 보이는 모습은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인들을 만날 때 접하는 것과 일치한다(이는 다른 나라에 꼭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밖에서 보면 한국영화는 솔직하게 느껴진다. 어떤 나라의 영화는 더 일관성 있게 시적이거나 유머러스한데, 솔직함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부양하는 것이고, 한국영화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한 필자는 장르와 상관없이 수준 높은 한국영화가 번창할 것이라 확신한다.

평범 소녀의 백일몽, 미소년들의 판타지,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성장통을 감상으로 바꿔버린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바다 사이트, 작가 귀여니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그놈은 멋있었다>에 관리자는 다음과 같은 소개말을 두고 있다. 어른이라면 멀찌감치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10대의 세계에 깊숙하게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들 것이며 , 10대는 자신들의 언어로 구사되는 자신들의 판타지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고. ...^0^ 판타지!!!!!!!!!!! <그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에서 동원되었다고 말해지는 판타지의 핵심은 매우 평범한 소녀가 대단히 잘난 소년들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한예원(정다빈)은 지은성(송승헌)의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늑대의 유혹>에서 정한경(이청아)은 반해원(조한성)과 정태성(강동원) 둘로부터 적극적 구애를 받는다. 이 두 영화 모두 다소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유혹의 시나리오를 가능케 만들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우연과 필연의 변주로 분주하고 시끌벅적한 서사 공간을 채우는 것은 한편으로는 휴대폰과 이모티콘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패싸움과 같은 10대 문화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출생과 성장의 비밀에 얽힌 가족 로맨스다. 소년들의 외상과 유혹의 환타지 그러나 잠깐, 판타지와 백일몽은 다르다. 아름다운 소년으로부터 사랑받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하는 보통 소녀는 백일몽을 꾼다. 이 백일몽에서 그녀는 상대가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짜기 시작한다. 그 소년의 곁을 맴도는 다른 아름다운 소녀가 도저히 제공할 수 없는 것을 찾는다. 그것은 피로 맺어진 관계 혹은 유사 혈연관계 속의 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다. <늑대의 유혹>에서 정한경은 정태성의 이른바 배다른 누이로 밝혀지며,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한예원은 지은성의 마누라 그리고 부재한 어머니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모든 잠재적 경쟁자들을 따돌린다. 다시 말하자면 미소년의 사랑을 얻기 위해 보통 소녀는 매우 낡았지만 여전히 심금을 울리는 멜로드라마의 어떤 관행 속에서 자신의 백일몽을 진행시킨다. 피할 수 없는 천륜의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적 연령으론 10대지만 사랑의 기술이 치환된 소녀의 허구화 기술은 파파노파의 그것이다. 파파노파의 픽션을 10대 문화의 그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귀여니의 그야말로 귀여운 10대 하위문화 장치들이다. 각각 101화(<그놈은 멋있었다>), 120화(<늑대의 유혹>)로 이루어진 인터넷 시리즈 연재물이라는 형식, 이모티콘 겁 없이 무제한 사용하기, 유머라기보다는 일종의 익살 만발(쏘사 쏘사 맙쏘사 등), 간략한 대화체, 발랄한 의성어(벨레레레 벨레레레레-도시의 전화벨 소리)가 노파의 얼굴 위에 놓인 발칙한 가면 위의 장식들이다. 그래서 사실 소녀는 낡은 외투를 입은 채 백일몽을 꾸고 있고, 두편의 영화에서 외상이 만들어내는 판타지극의 주인공은 미소년들이다. 정신분석학의 초창기부터 판타지는 주관심의 대상이었다. 프로이트는 판타지는 외상(트라우마) 그리고 성애와 배열을 이루는 심리적 현실이다. 성의 형성과 판타지 그리고 증후는 인과 관계를 갖고 있다. 판타지가 백일몽과 다른 것은, 백일몽은 처음부터 허구로 소개되는 반면 판타지는 분석의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증후의 배후로 밝혀지는 잠재된 내용이다. 외상적 기억의 상징에서 증후는 판타지들의 무대가 된다(“판타지와 성애의 기원들”, 장 라플랑쉬 외). 정태성 역을 맡은 강동원의 외상은 불륜에서 비롯된 자신의 출생에서 비롯된다. 지은성 역의 맡은 송승헌의 외상은 유년 시절, 아버지가 에이즈로 사망함으로써(소설에서는 참을 수 없는 여자관계가 빚어낸 병으로 설명), ‘소문’이라는 미시권력에 의해 주변으로부터 왕따를 받는다. 에이즈 간접 감염 공포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것을 경험한, 10대 후반의 지은성이 특히 혐오하는 것은 육체적 접촉이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멜로드라마적 순간에 “그놈”의 외상을 전면적으로 확대시키고, 또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결정적으로 이 외상을 불러와 그 치유를 시도한다. 영화의 결절 부분들은 다 그놈의 외상과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로 점철된다. 처음 지은성과 한예원이 상고 대 도일여고의 리플 사건으로 쫓고 쫓기는 에피소드, 한예원이 학교 담을 넘어 도망치다가 ‘그놈’의 입술에 정면으로 입술을 부딪히는 장면, ‘내 입술에 입술 비빈 뇬은 니가 첨이었어. 책임져(원문 이모티콘 생락)’라는 데서부터, 입원한 지은성에게 한예원이 보내는 모성적 애정, 그리고 유치원에서의 생일 파티, 모든 아이들이 지은성에게 다가가는 것을 피하고 있을 때 한예원만이 예외적으로 다정하던 장면의 회상 등. 영화는 제목처럼 결정적으로 상처받은 그놈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예컨대 영화는 소녀적 백일몽에서 출발해, 소년의 외상과 판타지를 멜로드라마적으로 구성하고, 액션영화의 관행을 도입해 소년들의 그린 듯한 미모와 움직이는 육체를 숭배하게 한다. 소녀가 어머니의 자리로 걸어들어가 외상을 치유해주면서, 그리고 동년배인 소녀의 위치에서 그놈을 숭배하면서 소년은 완벽해진다. 그놈은 미모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상성을 회복한다. ‘그놈은 멋있다.’ 이때 물론 소녀의 백일몽은 그런 소년을 자신이 단독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늑대의 유혹>은 외상과 유혹의 판타지가 좀더 입체적으로 전개된다. 정신분석학에서 외상은 적어도 두개의 사건들과 관계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유혹장면으로, 어린아이는 어른이 성적으로 접근하는 상황에 처해지는데 자신은 어떠한 성적 흥분도 느끼지 않는다. 이때가 전 성적인 성애 상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춘기 이후에 일어나는데 바로 이때 첫 번째 장면의 성적인 흥분이 회고되면서 일종의 병리학적 방어를 하게 된다. 심리적 외상은 이미 거기에 있던 것, 즉 첫 번째 장면을 회상하면서 발생한다. 10대 후반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청소년들의 영화는 바로 사춘기 이후 두 번째 장면을 주무대로 삼는다. 강동원의 정태성이 표상하는 멜로드라마적 상처의 근거다. 방금 상경했을 뿐만 아니라 남자친구를 친구에게 잃어버려 멍멍한 상태의 정한경(이청아)에게 버스에서 실내화를 던진 뒤 스스로를 정한경의 남자친구로 소개하게 되는 반해원(조한성)은 별다른 외상이 없는 청소년이다. 반면, 유년 시절 자신의 신원을 숨긴 채 아버지의 식구들, 이복누나 정한경을 만난 적이 있고 그것을 기억하는 정태성은 유혹과 외상과 판타지의 연쇄적 시나리오를 체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외상과 판타지는 몇개의 안전핀을 꼽고 있다. 우선 스타 이미지다. 외상과 상처는 꽃미남의 외양, 그 표면에서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미끄러지거나, 그 아름다움에 약간의 우수와 비애를 덧칠하는 브러시가 된다. 그리곤 외상은 감상이 된다. 폐부를 찌르는 성찰적 상처 그리고 성장통이 되는 대신 말이다. 10대 대중을 소구하는 소설과 영화적 재현에서 또 이 상처받은 아이는 또 멀리 호주로 떠난 다음 이윽고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 정한경은 바람둥이 반해원의 바람을 잠재운 뒤 함께 살게 된다.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고 불행 중의 해피엔딩이다. 근친상간적 모티브는 순애보로 치환되고, 그 순애보는 보통 소녀와 미소년의 만남의 거름으로 쓰인다. 안전하게 성장통 치러내기. 외상을 감상으로 바꾸기. 익살로 난국 타개하기. 보통 소녀의 백일몽으로 미소년의 판타지를 그려내기 등 <늑대의 유혹>과 <그놈은 멋있었다>는 소녀 작가에 의해 쓰였으나, 소녀의 삶에 대한 전복적 시선은 없다. 그 시선은 패싸움을 하는 소년들의 빠른 몸놀림에 보내진다. 이렇게 소녀들은 반항적인 소년들에게 시선을 위탁하지만 사실 그 소년들 역시 삶의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수행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소설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영화의 짜릿한 액션장면들은 더욱더 소년들을 영화의 주인공 자리로 옮겨놓는다. 처음 시작했던 소개말에 다시 기대자면, 나도 두편의 소설들과 영화로 10대 세계에 깊숙이 들여놓을 수 있기를 바랐건만, 문지방 너머 펼쳐지는 공간이 그리 깊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문지방을 놓는 일, 건너는 일이 그리 쉬운가? 10대에 의한 10대들을 위한 소설이 청소년기에서 성년으로 횡단하는 새로운 문지방을 놓기를 바랄밖에.........! “그 십대는 멋있었다!

서울판 섹스 앤 시티, <누구나 비밀은 있다>

장현수의 일탈 <누구나 비밀은 있다> 마초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장현수 감독이 세 자매를 데리고 나타났다. 영화 <라이방>에서 베트남으로 흔쾌한 방학을 보내러 간 세 남자를 대신한 채, 이번엔 세 여자를 대동하고서.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에서의 짧은 단편을 제외하고 장현수 감독에게 코미디, 그것도 여자 이야기는 당최 처음 있는 천지개벽이다. 그런 그가 한 남자와 세 자매의 연이은 정사를 다룬,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감독하겠다고 나섰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최근 <아는 여자>나 <인어공주>의 리뷰에서 영화 속의 히로인들이 한결같이 섹스리스 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을 한탄하는 평론가들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한 예로 김소영 교수는 <아는 여자>의 리뷰에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포함하는 이즈음의 로맨틱코미디는 육체적으로는 성인이며 사회적 관계에서는 유아인 남녀의 이른바 순수한 첫사랑을 보여주느라 영화 내내 키스 한번 제대로 하는 법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는 여자>의 이나영이 허리 아래 일도 좀 알았으면 바란다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한 무더기의 또 다른 ‘알아가는 여자들’을 선사할 것이다. <바람난 가족>이 너무 무겁다고 느꼈던 분들, 이 영화를 보고 배꼽 잡으면 그만일 수도 있다. 세 친구가 아닌 세 자매가 섹스 액트와 섹트 토크를 곁들이는 이 ‘섹스 앤 시티 서울 버전’은 최근의 대한민국 영화 속들이 왜 집단적으로 감행하는 섹스, 그것도 가족들간의 비밀스런 바람이 화제가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겨준다. 이 비밀스런 섹스에 대한 공모 의식, 제목처럼 ‘너도 있고 나도 있다’는 공모 의식이 바로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 깔린 집단적 무의식이자 흥행 코드의 비밀일 것이다. 남자는 세 자매를 차례로 꾀지만 거기에는 죄의식이나 허리 부러지는 도덕적 저울추의 무게가 존재하지 않는다. 화사한 화면, 근심없는 사람들. 불륜이라는 칙칙한 이름은 감추어지고 이혼도 없고 아이들도 상하지 않는다. 홍상수의 풍자와 임상수의 도발을 버리고,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유쾌하고 편안하게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안전 착지한다. 유쾌하고 편안한 로맨틱코미디 던킨도너츠의 미소를 가진 이 사나이, 수현은 만나자마자 세 여자를 흐물흐물 녹여버린다. 이병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 자매를 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세 여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층위 안에서 ‘여성’이란 위치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된 공식처럼 세 여자는 자유주의자, 독신주의자, 권태로운 유부녀의 세 계층을 표상화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숨겨진 장치인 ‘담배’에 대한 이들의 태도다. 당당하고 발랄한 신세대 미영(막내·김효진)은 누구보다 자유분방하게 담배 한대 우아하게 물 것 같지만 오히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지식으로 중무장한 숫처녀 선영(둘째·최지우)은 서툰 입담배를 뻐끔거리는 정도다. 늘 목티를 입고 다니며 가장 정숙해 보이는 유부녀 진영(셋째·추상미)은 남들 몰래 능숙하게 담배를 피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가장 억압적인 여자가 가장 일탈의 욕구가 큰 법. 사내는 섹스를 통해 여자들에게 각기 다른 선물을 준다. 자유분방한 연애는 있지만 로맨스는 없었던 미영에게는 진지한 연애담이 주는 로맨틱한 추억을, 선영에게는 지식이란 방패 뒤에 쌓여왔던 고삐 풀린 성을, 진영에게는 남들 앞에서도 목을 드러낼 수 있는 과감함을 선사한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가장 아슬아슬하고 매력적인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돈 많고 다정하고 유하고 자신에게 오는 누구도 마다지 않는 데다 여자들의 일희일비에 담담하고 관대한 이 남자 이병헌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가장 신선한 남성 캐릭터에 속한다. 그는 모든 여성들의 모든 소망이 투사된 지구상에 없을 것 같은, 그러나 한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은 남자다. 그는 솔직히 ‘애기야 가자’라고 부르짖는 또 다른 ‘왕자-마초’ 캐릭터보다 백배 낫다. 이병헌이 연기한 수현이란 캐릭터는 오리지널인 <어바웃 아담>과 비교해도 휴 그랜트가 하지 않을 바에야 아담 역할의 배우 스튜어트 타운젠드를 거뜬히 추월한다(아무리 그가 샤를리즈 테론의 애인일지라도!). 오리지널에서 아담은 루시 집을 방문했을 때, 굴비 대신 평범한 꽃을 갖다바치고 테킬라 대신 하우스 와인을 마신다. 사실 ‘아담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오리지널의 아담은 오히려 모든 남성들이 부러워하지 않은 악마적인 바람둥이의 느낌쪽으로 저울추가 기운다면, <누구나…>의 수현은 오히려 모든 여성들이 한번쯤은 구애를 받았으면 하고 원하는 자상한 천사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놈은 정말 멋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구나…>든 <어바웃 아담>이든 그 이데올로기는 미심쩍다. 대체 이 여성들의 집단적 억압과 집단적 엑소더스는 꼭 남성들의 성수 같은 섹스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가? 이 여성들을 옭아매는 저 그물처럼 단단한 대타자들, 시스템이라 불리는 저주받을 억압의 기원은 그리하여 정말 황홀한 섹스 한방에 다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웃자고 행복하자고 만든 영화에 뭘 더 바라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게임의 규칙>과 <라이방>을 만든 장현수의 것이라는 점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아니 거꾸로 장현수 감독도 웃기는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 장현수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움직인다. 같은 상황이 반복돼도 숨겨진 숏 하나만 붙이면 완전히 다른 맥락이 되어버리는 편집의 포인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상큼함이고 그의 연출 포인트는 이러한 점에서 옳다고 본다. 미영이 수현에게 과감하게 프로포즈하는 장면에서 자매들은 울고 웃는 상반된 행동을 보내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누군가 한 남자와 정사를 나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매들의 숨겨진 마음과 설렘이 숨겨진 하나의 숏 사이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떠오를 때, 영화의 너무 밝기만한 채도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이 영화에는 여백을 주는 숏이나 숨을 고르는 정지 숏이 거의 없었다. 시사회장에서 장 감독을 만나 크레인 숏이 유달리 많다고 하자, ‘이번에는 움직이고 싶었다’고 짧게 대답한다. 아마 가볍게 놀고 짧게 끊어치고 싶었다는 말 같다. 그러나 <라이방>의 첫 장면이 선풍기의 시점 숏이었던 것처럼, <게임의 규칙>의 엔딩신에도 360도 트래킹 뒤 한순간 정지하던 그 적막과 박중훈의 피눈물이 잊혀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장현수 감독의 연출이 좀 덤덤하다 싶다가도 치고 올라가는 한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 이 영화에서 뭘 원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크레인과 팬으로 철저히 인물과 사건의 뒤를 쫓는 이번 영화에서의 연출은 상업적이고 유려하지만, 막상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여성영화를 만든 이 마초 감독이 오리지널을 모사하고 상업감독으로서 위치를 다지는 것 외에 여성들의 경쟁 심리와 억압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바웃 아담>이란 일링 스튜디오 코미디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에서 장현수 감독은 다리는 있지만 혀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남성영화를 만들 때의 <게임의 규칙>과 <라이방> 때의 장현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영화에는 늘 어둡고 비정한 사회의 저변을 훑는 살아남으려는 사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그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다. <게임의 규칙>에서 초라한 도박꾼 이경영은 도박판에서 크게 한탕을 한 뒤, 뜨내기 건달 박중훈에게 공중전화로 사이판에 가자고 얘기하고, <라이방>의 남자들은 베트남에 가자고 한다. 그러니 그의 데뷔작이 <걸어서 하늘까지>임에는 말해 무엇하랴. 남성 공동체에 대한 매혹과 늘 이 처연한 사회 밑바닥의 탈출을 꿈꾼다는 점에서 장 감독은 김성수와 유사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투박하고 겉멋 부리지 않는 뚝배기의 정직함이 있었다. 나는 장현수 감독 면전에서는 “감독님, 코미디 잘 만드시네요. 하나 더 만드시죠”라고 말하면서도 슬금슬금 그의 마초 정신이 일렬종대한 남성영화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마초 감독의 한계는 있지만 사실 한창 잘 나가는 미국 여배우인 케이트 허드슨을 데려다가 영국 코미디를 완성하는 일링 스튜디오의 전략안에 있기는 하지만, 오리지널 <어바웃 아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숨은 배경은 이 영화가 아일랜드 더블린산이라는 점일 것이다. 가톨릭에 대한 숭배가 사회적 지배력과 함께하는 아일랜드에서 세 자매와 한 남자의 정사라는 이데올로기는 2000년 개봉 당시에도 상당히 발칙하고도 흥미로운 도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점이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환심을 산 것 같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평론가인 하비 오브라이언은 <어바웃 아담>을 여성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더이상 ‘아일랜드적이지 않다’는 점을 반기고 있다. 만들었다 하면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나오고 아일랜드 역사와 사회 비판, 피임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줄줄이 대가족이 나오는 아일랜드 영화 풍토에서, <어바웃 아담>은 똑같은 아일랜드 로맨틱코미디인 <브랜단 앤 트루디>와 달리 아일랜드 위스키 냄새를 풀풀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케이트 허드슨(리메이크판에서는 막내인 미영 역할)이 노래를 부르는 술집은 이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코스모폴리탄적인 곳이다. 결론적으로 장현수의 리메이크판이 오리지널보다 더 못 만들었다고 할 만한 구석은 없다고 본다. 심각하지 않은 호기심과 상업적인 안전판 위에서 도발을 감행하는 이들 코미디의 비교우위에서, 오히려 리메이크판의 최지우·김효진·추상미의 강렬한 섹시 무드 터치는 판타지의 수위를 높이며, 영화의 최면과 웃음의 수위를 올라가게 만든다. 끝으로 오리지널을 보아도 리메이크를 보아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하나. 세 자매의 이름을 딴 진선미와 에로스의 결합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비밀의 규칙은 알겠는데, 왜 젊디젊은 자매들에게만 이병헌의 선물이 돌아가야 하는가? 이건 오리지널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고 이왕 주장할 바에야 비밀의 공평성도 지켜달라고. 진심으로 섹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세 자매의 어머니, 선우용녀에게도 이병헌의 미소와 리비도의 미덕은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고, 이 연사 불볕더위에 글품을 팔며, 이것만은 목놓아 주장하고 싶어진다.

쿠르드족 남매들의 치열한 삶을 묘사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200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공동수상한 두편의 이란영화 중 한편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한 아이를 인터뷰하는 어른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하는데 근래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관찰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자신이 태어난 쿠르드족 마을을 배경으로 성인들과도 같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마을 시장에서 허드렛일이라도 (그리고 때때로는 이란-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금지 품목을 밀수하는 험악한 일까지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척박한 현실 속의 아이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중심은 서서히 다섯 고아 남매에게로 옮겨가는데, 이중 15살의 마디는 걸음마를 뗀 아이 정도밖에 자라지 못한 왜소증 환자로 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면 징징거리기 일쑤다. 자신의 어린 동생과 누이들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마디는 (영화는 배우들의 실제 관계를 극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목숨을 6개월가량 연장해줄 수 있다는 수술을 받지 못하면 당장 10일 안에 숨을 거둘 운명에 처해 있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소외계층의 이야기는 세계 어디서건 인디 영화계의 금과옥조라고나 할까? 역시 쿠르드족 지역에서 촬영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조감독으로 작업한 바 있는 33살의 고바디 감독은 이란의 첫 번째 쿠르드족 출신 감독이다. 고바디 감독은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려하지 않는다. 장면마다 감독은 관객을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한가운데로 내던져버린다. 그 투쟁적 상황들은 격렬하면서도 혼돈스러운데, 이라크 국경 수비대가 금지 서적들로 가득한 트럭을 수색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족히 수마일은 떨어져 있을 집을 향해 눈밭을 나뒹군다. 한마디로 외곬의, 때때로 번민스럽기까지 한 이 영화는 사실 추위를 이기도록 하기 위해 말들에게 보드카를 먹이는 밀수업자들의 수법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 마디의 누이는 동생을 수술시키기 위해 한 쿠르드족 사내와 약혼을 하는데, 이 장면에서 왜소한 마디는 신부의 짐짝 속에 문자 그대로 “덜렁덜렁 매달려” 간다. 하지만 신랑의 식구들은 마디를 거부하고, 대신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몰래 그를 들여가는 데 쓰일 당나귀 한 마리를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이라크가 이란보다도 기술적으로 진일보하고 (심지어 훨씬 안전하기까지 한) 나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놀랍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지뢰밭을 헤치며 국경을 넘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영화는 용감하게 표현의 경계를 넘어 전진한다.

<연인>의 장예모 감독, 장쯔이, 유덕화, 금성무, 정소동 무술감독 내한 인터뷰

장예모 감독의 <영웅>에 이은 두번째 무협 대작 <연인>(원제 <십면매복>)의 공식기자 회견이 11일 오후 3시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장예모 감독뿐만 아니라 주연배우 장쯔이, 금성무, 유덕화에 정소동 액션감독까지 모두 참석한 이날 회견장에는 수많은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 세계적인 스타들의 방문열기를 실감케했다. 지난 7월 중국에서 개봉해 현재까지 <영웅> 이후 두번째 역대 흥행작인 된 <연인>은 장르와 스케일, 특유의 색감 등에서 볼때 <영웅>과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장예모 감독은 "<영웅>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다뤘다면 <연인>은 사랑을 위해 모든것을 내던지는 사랑 이야기"라고 말해 두 영화가 내용적으로 서로 상반된 위치에 있음을 강조했다. 해적판으로 인한 중국내 흥행 악영향을 의식해서인지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10분 정도의 하이라이트 필름만 공개되었다. 액션, 무희, 소리, 색상, 사랑의 5가지 주요 테마별로 이루어진 편집본은 세련된 이미지, 뛰어난 색감,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장면을 전체 맥락에서 고려할 수 없어 얼마나 유기적으로 조화가 되었는지는 모를일이다. 게다가 가장 뛰어난 장면만을 추려낸 편집본이니 장면 하나하나를 놓고 왈가왈부 할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전작 <영웅>보다 스케일적으로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연인>의 배경은 한창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9세기의 당나라. 반군과 정부군의 전쟁이 바람잘날 없는데 반군 중에서도 가장 이름난 반란조직이 바로 비도문(House of Flying Daggers)이다. 성의 관리인 리우(유덕화)와 진(금성무)은 이 비도문의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을 받고 계획을 짜던 중 맹인 무희 메이(장쯔이)가 이 조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낸다. 메이를 심문하던 리우는 그녀가 입을 열지 않자 진을 '풍'이라는 떠돌이 무사로 변장시켜 메이를 감옥에서 구출해내 신임을 얻은 후, '비도문'의 은신처로 동행하게 하는 책략을 꾸민다. 계획은 성공을 거둬 진과 메이는 비도문의 은신처까지 긴 동행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미묘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이 운명의 러브 스토리를 장예모가 감독하고 유덕화, 장쯔이, 금성무가 주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거리. 하지만 <연인>의 수려한 스탭진은 미공개된 필름에 한층 궁금증을 자아낸다. 제작은 <와호장룡>과 <영웅>을 제작했던 빌 콩의 에드코 필름이 맡았으며 <영웅>의 세계적인 무술감독 정소동이 다시 합류했고, 코카콜라와 아르마니 향수 등으로 광고계에서 명성을 떨친 자오 샤오딩이 카메라를 잡았다.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 <시황제 암살>로 칸 영화제 미술상을 받은 후오팅샤오가 미술을,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의 <란>을 통해 아카데미 의상상을 거머쥔 에미 와다가 의상을, 왕가위의 <화양연화>에서 음악을 맡았던 시게루 우메바야시가 음악을 맡은 것도 주목할만한 점. 거기다 세계 3대 소프라노 중의 하나인 캐슬린 배틀이 주제가를 불러 안팎으로 '최고'들만 꾸렸다. 스케일은 장대했으나 이념적으로 퇴행했다는 평가를 받은 <영웅>에 이어 장예모가 정치색을 배제한 액션과 러브 스토리만을 그렸을지도 궁금한 점. 국내에서 200만을 동원한 <영웅>을 넘을지도 관심사다. 어쨌거나 모든 확인은 9월 극장 개봉후에나 가능하다. "삼계탕이 그렇게 맛있는줄 몰랐다"는 장쯔이를 비롯해 감독 장예모, 배우 금성무, 유덕화, 무술감독 정소동의 인터뷰를 아래에 싣는다. 각자 한국에 온 소감을 말해달라 장예모 : 다시 만나 반갑다. 한국관객이 <연인>을 많이 사랑해주면 고맙겠다. 정소동 : 굉장히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연인>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 부탁드린다. 금성무 : 한국은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매번 1~2일 정도밖에 못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이 없어 아쉽다. 이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해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으며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유덕화 : 오늘 새벽 5시에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까지 일사천리로 왔다. 한국에서 차가 안막히는걸 본건 오늘이 처음이다.(웃음) 여전히 팬들이 환호해줘서 고맙고 늘 곁에 있는 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장쯔이 : 올때 한국 비행기를 탔는데 스튜어디스가 어찌나 상냥하게 잘 챙겨주는지 정말 감동이었다. 그리고 회견장에 들어오기전 스탭들과 모두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건지 몰랐다(웃음). 관객들이 어떤 시각에서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나. 그리고 제작전에 흥행성공에 대한 예측을 어느정도 했나. 장예모 : <영웅>을 본 관객이라면 매우 상반된 영화임을 눈치챌 것이다. <영웅>이 개인적 협의를 통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다뤘다면 <연인>은 사랑을 위해 대의마저 버리고 모든 것을 내던지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이다. 그리고 감독인 나는 영화작업시 스토리, 즉 영화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킨다. 흥행 여부에 대한 판단은 제작자나 투자자가 주모면밀히 판단할 일이다. 장쯔이가 주연을 맡은 <연인>은 9월에 한국에서 개봉하고, 뒤이어 10월에는 이 개봉한다. 장예모 감독, 왕가위 감독 모두와 작업을 해봤는데 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 장쯔이 : 기본적으로 두 감독의 성격이 매우 다르고 촬영과정 또한 상이하다. 하지만 모두 뛰어난 감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배우인 나는 두 감독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다. <영웅>과 동시에 기획한 영화인가. 두 작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장예모 : 두 영화는 시나리오를 동시에 진행했고, <영웅> 촬영도중에 <연인>의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동시에 두편을 진행해서 서로 상반된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영화 모두 '미(美)'를 강조한다. 정소동 감독과 나의 작업관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점이 중국 무협영화가 외국영화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장쯔이는 <영웅>과 <연인> 두 편 모두 출연했다. 작업에 임했을 때 차이점을 말해달라. 장쯔이 : <영웅> 촬영시에는 기본적으로 '배운다는 자세'로 임했다. 양조위, 장만옥, 이연걸 등 뛰어난 배우들이 어떻게 작업하는지도 궁금했고 그들을 통해 많이 배울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작업하면서 장예모 감독이 끊임없이 용기를 복돋아줬다. <연인>을 작업할때는 금성무와 유덕화가 '춤'을 비롯해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장쯔이는 <연인>에서 무희로 나온다). 두편 모두 배우로서 많은 것을 배울수 있는 기회였다. 금성무와 유덕화의 시대극 출연 소감은? 금성무 : <연인>이 첫번째 무협물이다. 걱정도 많이 했고 세계적인 감독과 작업한다는게 상당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장예모 감독과 많은 토론을 통해 격려를 받자 촬영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새로운 액션을 시도하고 새로운 의상을 입어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유덕화 : 무협물은 오랜만이지만 그 느낌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표준어를 써야 했다는 점이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 고전물이기 때문에 현대어가 아니어서 대사 자체를 처리하는데 애를 먹었다. 또 하나. 정소동 감독과 액션작업을 할 때 찍은걸 나중에 보니 실제보다 훨씬 멋드러지게 나오더라. 그래서 다음에도 꼭 정감독과 작업하고 싶다. 정소동 : 여자역할을 맡겨도 하겠나?(웃음) 장쯔이는 맹인 역할을 맡았는데 촬영할 때 시선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또 앞으로의 연기 변신 계획은? 장쯔이 : 맹인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전혀 알수가 없었으므로 처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13살때부터 맹인이 된 분을 소개해줘 함께 생활을 통해 움직임과 느낌을 배웠다. 이런 작업을 2달이상이나 지속했다. 실제 촬영을 했을때는 더 힘들었는데 맹인이면서 춤을 추고 액션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의 감정까지 표현하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조만간 미국영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전부 영어라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다. 배우들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금성무 : 대사자체가 시적이고 당나라 시대라 거의 구어체다. 그래서 실제 대사를 할때 '내가 여자친구한테 이렇게 말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어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훌륭한 번역을 해줘 고맙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음..."내가 돌아온 건 한사람을 위해서!" 장쯔이 : 결말부문의 "당신(유덕화)이 진(금성무)을 죽이면 나도 칼을 빼서 죽겠다"는 대사. 유덕화 : "너희들에게는 끝이 없다". 이건 같이 있을수 없다는 뜻이다. 정소동 무술감독이 액션배우로서 세 사람의 성적을 매긴다면? 그리고 누가 가장 훌륭한 액션배우라 생각하나. 정소동 : (주저하지 않고) 모두 훌륭하다. 유덕화는 TV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두루 작업해서 기본기가 탄탄하다. 항상 노력하는 자세, 힘들어도 해내는 자세를 보면 진짜 프로페셔널이라 생각한다. 장쯔이는 <영웅>에서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어서 훨씬 수월했다. 금성무는 액션 영화 경험이 전무했지만 똑똑한 배우라서 금방 따라오더라. 그리고 크랭크 인 전에 세명 모두 각각 북경, 홍콩, 일본에서 연습을 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점수를 매긴다면? 모두 100점이다. 마지막으로 각자 인사말을 해달라. 장예모 : 나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다. 흥행작이나 평가가 좋은 작품들은 빼놓지 않고 거의 다 봤다. 중국과 한국이 서로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세계영화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정소동 : <연인>이 여러분의 마음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금성무 : <연인>에 많은 사랑부탁한다. 맛있는 한국음식 먹으러 조만간 꼭 오고 싶다. 유덕화 : <연인>은 사랑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랑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다. 장쯔이 : 좋은 영화는 국적이 없다. <연인>은 중국영화이지만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 부탁한다.

<반 헬싱>의 케이트 베킨세일 Kate Beckinsale

“<다이하드> 같은 액션영화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다.” 자주 맡던 로맨틱한 캐릭터와 동떨어진 <언더월드>의 배역을 왜 맡았냐는 질문에 대한 케이트 베킨세일의 답변이다. 과감한 승부수였던 <언더월드>의 셀린느 역은 그녀에게 행운을 몰고 왔다. <언더월드>를 연출한 렌 와이즈먼과의 재혼, <언더월드> 후편의 기획, 그리고 <반 헬싱>의 안나 발레리우스 역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반 헬싱>의 안나 역은 케이트 베킨세일에게는 바둑으로 치면 ‘복기’에 가깝다. 늑대인간과 흡혈귀의 대결구도, 악을 일깨우는 동력이 되는 인물을 둘러싼 쟁탈전, 주인공이 괴물사냥꾼이라는 것 등 <언더월드>와 <반 헬싱>은 유사한 설정이나 겹치는 캐릭터가 많다. 다만 무대 중심에 휴 잭맨이 서 있다는 점은 예외지만 말이다. 타이트한 가죽의상을 걸치고 주윤발과 트리니티의 퓨전을 연기하는 <언더월드>, 고공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몸을 내던지는 <반 헬싱>을 통해 그녀의 우아한 ‘공주님’ 이미지는 말끔히 세탁되었다. 케이트 베킨세일의 얼굴은 표정에 따라 니콜 키드먼과 줄리아 로버츠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다. 사랑에 속고 순정에 우는 기존 이미지를 전복시킨 <언더월드>와 <반 헬싱>의 여전사 캐릭터의 생성도 여기서 출발한다. 미간을 중심으로 코와 눈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다. 그래서 얼굴을 찌푸리거나 이를 앙다물면 매우 강한 인상으로 돌변한다. <반 헬싱>에서 그녀가 인상을 쓰면 미간에 ‘11’자가 새겨진다. 이럴 때 옆얼굴에 나타나는 그녀의 눈매는 매우 날카롭고 입 주위 근육의 움직임은 미묘하다. <진주만>에서 그를 발탁한 제리 브룩하이머는 “케이트는 예민함과 품격을 동시에 지녔다. 그것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드라마와 유머를 넘나든다. 수년 전의 멕 라이언을 보는 것 같다”고 평했다. 미래의 지나 데이비스 혹은 캐서린 헵번을 꿈꾸는 그녀는 배우 집안에서 자라났다. 어머니 주디 로는 영국 TV드라마와 시트콤에서 활동했다. 아버지 리처드 베킨세일은 아주 유명한 TV코미디언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그녀가 어렸을 때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런던에서 보낸 그녀의 소녀 시절은 연기와 문학 사이를 가로지른다. 10대 시절 스미스서적이 주관한 젊은 작가공모에 시와 단편소설로 두 차례 당선된다. 이후 드라마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학에서 불문학과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세렌디피티>에서 특유의 영국 악센트로 두운(頭韻)을 만들어내며 “플레밍, 페니실린”이라고 대사를 읊조린다. 또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운명을 시험하는 이 영화의 속 낭만적인 모습은 그녀의 ‘소녀시대’가 반영된 자화상이다. 영화쪽에서 그녀의 연기가 시작된 계기는 대학 1학년 때 참여한 케네스 브래너의 <헛소동>이었다. 2년 뒤 그녀는 연기를 위해 대학 3학년을 마지막으로 과감히 병행하던 학업을 포기한다. “자신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노예가 가장 예속적인 노예다”라고 단언하듯이 그녀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다. 샤를리즈 테론이 <스위트 노벰버>로 돌아서는 바람에 전격 ‘대타’로 기용되어 20만달러 개런티로 열연한 첫 대작영화 <진주만>은 이제 아련한 추억거리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작품은 다시 그녀가 큰 폭의 변신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케이트는 마틴 스코시즈의 신작 <비행사>(The Aviator)에서 에바 가드너 역을 맡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하워드 휴스의 프로포즈를 단칼에 거절하고 프랭크 시내트라에게 달려간 전설의 여배우가 그녀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비행사>는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될 예정이다. 다섯살 여자아이 릴리의 엄마, 73년생 이 여배우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바람의 파이터>에 출연한 일본 배우 가토 마사야

지난 8월3일, <바람의 파이터>의 기자시사를 앞두고, 최배달 최고의 적수로 등장하는 일본의 ‘국제’ 배우 가토 마사야(41)가 한국을 방문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비행학교 시절 최배달의 상사였고, 한 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는 일본 무도 협회장”으로 등장한다. <고질라> 같은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홍콩,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영국까지 5개국에 걸친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이제 <바람의 파이터>를 통해 한국 현장까지 경험한 가토 마사오.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어서 택한 국제적인 활동이 이제는 배움의 계기가 되어줬다”고 회상하는 그에게, 세계 각국 영화 현장의 분위기를 물었다. “할리우드에서는 모두가 소리를 지르고, 프랑스는 뭐든지 천천히 한다. 홍콩의 현장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한국은 다들 심각하게 회의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외국 진출을 위해 무술을 시작한 그는, 실제로 사무라이나 야쿠자 같은 몸을 많이 쓰는 악당 역을 주로 맡았지만, “요즘은 나이도 들고, 격투기가 많이 힘들어져서 다른 역을 맡고 싶다”면서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바람의 파이터> 이후 벌써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홍콩 영화 두 편의 촬영을 끝낼 정도로 활발한 그의 활동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인들과 국적을 묻지 않고 작업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인 뒤, 상기된 표정으로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한류바람’ 독일로 전선이동

<올드 보이> 전국 상영시작, 내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 회고전 등 독일 영화제작/배급사인 ems가 오는 9월 2일 독일 전역 1백50여 개 극장에서 <올드보이>의 일제 상영에 들어감으로써 내년 가을까지 독일에서 벌어질 한국 문화 잔치가 시작된다. ems가 독일에선 처음으로 한국 영화 9편을 수입, 1년간 월 1편 꼴로 연속 상영한다는 계획만 해도 획기적인 것이다. 또 내년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선 한국 영화를 알리는 또다른 주요 행사가 열린다. 영화제 조직위는 영화제 기간에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베를린 영화제가 회고전을 연 영화의 경우 대부분 작고한 감독의 작품들이었으나 아직 현역으로 활동중인 임 감독 회고전을 여는 것은 파격적 대우다. 디터 코슬릭 조직위원장은 임 감독의 작품 100여편 가운데 <족보> <만다라> <춘향뎐>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편제> <취화선> <하류인생> 등 20편을 선정해 상용키로 이미 합의했으며, 세부적인 일들만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탄 데 이어 벌이는 이런 행사로 한국 영화에 대한 독일의 평가와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 뿐 아니다. 출판협회를 중심으로 한 우리 문화계와 정부, 지자체, 기업 등은 이미 내년에 독일에서 한국과 관련한 각종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산업 전시회 등에 참여할 준비를 해오고 있다. 2005년 10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이자 문화.지식 교류장터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베를린시가 주최하는 9월의 아시아 태평양 주간 행사에 각각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을 계기로 주독 대사관이 내년을 우리의 문화와 경제를 알리는 `한국의 해'로 삼자고 건의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올 가을부터 내년 한해 내내 문학과, 음악, 미술 등 각종 예술분야 단체와 개인들의 강연과 공연, 전시가 독일 전역에서 열린다. 인쇄와 도자기 등 전통문화를 알리는 행사도 잇따라 개최되고 해군 순양함이 함부르크항에 들어와 군악대 퍼레이드를 할 예정이다. 또 양국 학술.연구 단체들이 한반도 및 동서독 통일이나 경제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하고 자매도시를 체결한 서울시와-베를린시 등 지자체들 간의 교류 행사도 계획돼 있다. 여기에다 아직 북한 측의 답변과 구체적 논의 과정이 남아 있으나 독일 의회는 내년 봄 베를린에서 남북한 의회 관계자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남북한과 독일 의원 토론회도 제안해놓고 있다. 올 가을 부터 1년여 동안 집중적으로 열리는 한국 관련 또는 한국 알리기 행사가 독일에서 단순한 `한류 바람'이 아닌 한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넓히게 되면 양국 간 문화와 정치.경제 등 각 분야 교류.협력이 한 차원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베를린=연합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누구나 비밀은 있다> 의 ‘수현’

어디나 고수(高手)는 있다. 쭉정이를 가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기판 앞에서 제 전적을 떠벌리며 허풍 떨기 바쁜 인간은 미안하지만 진짜가 아니다. 어떤 분야든 절대강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고요히, 다만 나비처럼 날아와 벌처럼 쏠 뿐이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의 수현은 로맨스계의 초 고수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사려 깊은 눈빛으로 무장한 그 남자는 목표물을 향해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냉철한 사수다. 물론 은색 벤츠와 아담한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매력의 강도를 가일층 상승시킨다. 참고로, 그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연애 분야’ 로 말할 것 같으면, 바둑이나 포커, 리니지 게임이나 클레이 사격처럼 일부 특정한 계층이 ‘그들만의 리그’ 를 만들어 ‘지들’ 끼리 노는 동네가 아니다. 일곱 살 유치원생부터 일흔 살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호시탐탐 참여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생활체육 한마당인 것이다. 속세에는 이미 로맨스 테크닉 연마를 위한 오만 가지 실용서가 난무하는 바, 수현은 가히 걸어 다니는 연애실용전서라 할 만 하다. 여자의 몸과 마음이 ‘준비 될 때’까지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주기, 각종 이벤트 마련하기, 가려운 곳 정확하게 긁어주기, 윤리와 욕망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만끽하게 하기 등등 그 남자의 연애술은 보통의 경지를 훌쩍 넘어선다. 바람처럼 다가 왔다가 평화로운 파국 이끄는 햐~이남자 ‘신의 아들’아냐 그리고 결정적 한방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바람둥이의 초강력 필살기! 그것은 바로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깨끗하게 헤어지기’ 전법이다. 고수는 절대로 먼저 이별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하이 레벨의 선수일수록 이별의 상황을 더욱 정교하게 설정한다. 악역은 슬쩍 파트너에게 떠넘겨진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나비처럼 날아와 벌처럼 쏜 다음 모기처럼 도망간 뒤에도 상대방은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의 가해자’ 가 되었다는 양심의 가책과 달곰쌉쌀한 추억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프로가 아마추어에게 베푸는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수현은 결국 결혼식장에서 버림받은 신랑의 역할을 쿨하게 연기함으로써 아무도 다치지 않는 평화로운 파국을 주관한다. 절대지존의 솜씨다. 기이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깜빡하고 말았다. 세 자매가 아니라 수현에게 감정이입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싸, 이 영화 꽤 위험한 세계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한 남자가 자매들을 차례로 정복해 간다는 구도는 낡디 낡은 남근적 판타지의 변형이고, 세 자매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작위적이다. 근데 왜 재밌었던 거지? 나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수현은 어차피 범속한 인간 세계의 인물이 아니었던 거다. “아니, 누가 감히 신(神)의 가호를 거부할 수 있겠어요? 불경스럽게.”

<풀하우스>의 늦깍이 신인 김성수

<풀하우스>의 인기를 업고 늦깎이 신인 김성수(29)가 주목받고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풀하우스>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에 능력있고 쿨한 유민혁 역을 연기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으로 주연을 따낸 후 올 초 염정아의 파트너로 나온 MBC TV 수목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를 통해 브라운관 데뷔를 한 걸로 돼 있었다. 연이어 주요 배역을 따내면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그의 과거(?)가 얼마 전 밝혀지며 화제가 됐다. 그는 "과거가 있는 몸이라 진짜 잘해야 해요. 절 보고 있는 팬들이 많거든요"라 말한다. 1998년 패션 모델로 활동할 당시 어린이 대상 SF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다. 바로 아직까지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구용사 벡터맨>. 거기서 벡터맨 이글을 연기했던 것. 5살에서 10대 초반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도 아이들 때문에 자연스레 그 배역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는 "매니저도 없던 시절 정말 연기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진지한 생각으로 출연한 작품이었고, 정말 조용필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고 웃으며 "다른 연예인에게는 사인해 달라고 하는데 내겐 '변신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과거' 이야기를 더 끄집어내자. 184㎝에 72㎏의 미끈한 체격은 1996년부터 패션모델로 활동해왔음을 저절로 드러내보인다. 그런데 처음부터 모델 조건에 맞는 체격은 아니었다. 무려 20㎏을 감량했던 것. 다이어트를 위해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군대 갔다온 후 처음으로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연기가 하고 싶었다. 어떻게 연기자가 돼야 하는지 몰라 모델부터 시작하자고 결정했다. 그 좋아하는 술도 끊으며 다이어트를 했는데 여자친구를 만나면 자꾸 먹게 됐다. 헤어지며 한 마지막 말이 '너를 만나면 운동을 못해'였다." 싱긋 웃으며 말하지만 연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하는데 이보다 더 절절한 '과거'가 또 어디있을까. 지금은 그 때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7년째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같은 혈액형(B형)이어서인지 잘 통한다는 여자친구가 있다. 자, 이제 그의 '과거'에서 나와 '현재'를 들여다 보자. "난 찢어진 청바지가 어울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생각하는데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있으니 좀 어색하다"고 했다. 디자이너 진태옥씨가 특별히 제작한 양복이 그의 극중 캐릭터를 설명해준다. "영재(비)와 지은(송혜교)이가 티격태격,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면서 사랑 싸움을 벌일 때 옆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영재가 지은이를 사랑한다고 느끼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주는 인물"이라 소개했다. 능력있고 집안도 괜찮으며 바람둥이 기질까지 있어 여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인물이다. 그는 주요 배역중 가장 연장자답게 자칫 붕붕 뜰 수 있는 극 분위기를 안정시키는데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연기가 아직 미흡하고 답답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 "아직 내 연기가 폭발력이 있거나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 유민혁을 표현하는데 좀 소심한 측면도 있다. 남은 기간 좀 더 적극적으로 연기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시청률이 좋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웃으며 일한다"고도 전했다. 요즘 가장 힘든 건 더위다. 사무실 장면을 찍을 때 주5일제를 실시하는 한 건물에서 주말에 찍는데 전체 냉방시스템이라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10여명의 스태프가 뜨거운 조명을 켜놓고 촬영하니 말 그대로 '더위와의 전쟁'이다. "날 지켜봤던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김성수는 "살아오는 동안 난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단계 한단계 밟아가는 심정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진지하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