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선녀강림’ 등 한류, 美시장서 바람

고교 악동 제갈량과 말괄량이 선녀 환타가 벌이는 코믹만화, 음식과 무술이 등장하는 독특한 캐릭터 '뿌까'. 강제규 감독의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지난 3일 미국내 주요 도시에서 개봉, 첫 주말 4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려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을 포함해 영화는 물론 TV 드라마, 만화, 캐릭터 등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수요가 꾸준히 증가, '한류'를 실감케 하고 있다. 14일 KOTRA 로스앤젤레스무역관(관장 전상우)에 따르면 온라인 게임시장에서 이미 '리니지' '라그나록'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반스 앤드 노블', '북스 앤드 보더스' 등 대형 서점망, 월마트나 베스트 바이에서도 '선녀강림(유현)'. '라그라 노크(이명진)', '리버스(이강우)' 등 한국만화, 캐릭터 상품이 수요가 상당하다. 일부 만화는 영어 번역본으로 팔리고 있으나 '호호호호' , '푸악' '꽝' '악' '크악' 등 의성어는 한국어로 그대로 실릴 정도. 미 전역에 1천300여 체인망을 거느린 월마트는 한국만화 인기에 자극, 지난 8월 '신춘향전'을 추가로 반입하는 등 판매물량을 늘리고 있다. 미국내 일본만화(망가) 전문수입업체인 '도쿄 팝'의 제러미 로스 콘텐츠담당도 "한국만화 공급물량은 그동안 전체 매출의 5% 수준이었으나 수요가 늘어나 내년부터는 15-20%로 비중이 커져 적어도 500만 달러이상 규모가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캐릭터 '뿌까' 역시 미 완구업체 토이 플레이사(社)가 상품성을 높이 사 구매협상을 벌였으며 일본의 '포케몬'이나 '유기오(遊戱王)'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씨소프트社도 지난 4월말 이후 '리니지2'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미시장에 출시, 6만개나 판매했으며 '시티 오브 히어로스'도 10만 개를 소화했다. 이 업체는 지난 5월 LA에서 열린 세계 최대 게임박람회 E3 전시회에서도 '최대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몰린 LA 뿐 아니라 시카고, 애틀랜타도 <노란 손수건> 등 드라마도 영문자막으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KOTRA 관계자는 밝혔다. KOTRA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은 이같은 미국내 '한류'바람을 확산시키기 위해 오는 23일 오후 2시 코엑스 본관 4층 그랜드 컨퍼런스 룸에서 '미국 문화콘텐츠시장 진출전략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부사장 출신으로 소니영화사 컨설턴트인 마이클 헬펀드, 선우엔터테인먼트 미국지사 모재열 지사장 등이 강사로 참석해 미국 콘텐츠시장 진출 노하우 등을 소개한다. 전상우 KOTRA LA무역관장은 "연간 6천억 달러 규모의 미 대중문화 시장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처럼 대박을 얻기 좋은 황금시장"이라며 "미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철저히 관계중심의 구조로 전문적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번 서울 설명회는 대미시장 전략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룡 “희선이는 개그우먼”

성룡이 말하는 김희선과 최민수 시안(西安)에서 3일간 양가휘와 촬영을 마치고, 난저우에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아, 이 황량한 먼지 바람. 저녁 8시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따꺼!"를 외쳤다. 희선이다. 너무 너무 반갑다. 3개월 동안 촬영하면서 희선이의 이미지는 매일 바뀌어 갔다. 처음 사진이나 영화로 봤을 때는 그저 예쁜 한국의 여배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그녀에게 깜짝 놀란다. 한번도 촬영시간에 늦은 적 없고, 늦게 끝나도 마지막까지 남아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수고 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와이어에서 떨어져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스태프가 뛰어가 "괜찮냐"고 물었을 때도 그녀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했고, 영하 25도 추위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도 "괜찮다"며 촬영하는 모습에 우리 팀 모두가 희선이에게 빠져들었다. 당 감독과 양가휘, 나 또한 그녀를 위해서는 맨발 벗고, 뛸 준비가 돼 있다. 참, 희선이는 코미디 연기를 하면 아마 최고의 배우가 될 것이다. 의외로 그녀는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나다. 개그우먼 김희선 파이팅! 드라마와 영화에서 최민수를 봤을 때, 남자답고 의리있고 깊이있는 연기를 하는 멋진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로비로 걸어들어오는 민수는 씩씩하면서도 약간은 거만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당당하게 걸어와 악수를 하는 그에게 내가 "민수 씨, 방가 방가"라고 하자, 멋지게 걸어오던 민수는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왜 웃을까. 희선이가 인사말도 장난으로 가르쳐줬나? 민수는 하루종일 걸려 난저우에 도착했는데도, 나, 희선이 감독 셋을 붙들고, 새벽 4시까지 콘티 이야기를 하게 했다. 왜 최민수가 한국 최고의 배우인지 알겠다. 하지만 민수야, 잠 좀 자자. 내일 아침, 아니지 오늘 아침 7시에 촬영이다!(서울=연합뉴스)

“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걷고 내 영화를 이해해달라”

<빈 집>의 김기덕 감독, 이승연 귀국 공식 기자회견 제6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감독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걷고 내 영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여주인공 이승연은 "어려운 시기였지만 덕분에 좋은 작품으로 좋은 곳에 가게 됐다"며 "김감독과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달 중순께 국내 팬에게 선보일 예정이며 조만간 1주일간 소규모로 상영회도 마련된다. 다음은 기자들과 일문일답. 수상 소감을 말해달라 김기덕 영화를 찍고 결과(수상)를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베니스에서 서프라이즈 필름으로 선택하고 관객이나 비평가, 기자들에게서 상위권 점수를 받아 수상을 조금씩 기대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창의성이 좋게 평가돼 감독상과 미래 비평가상 등을 수상했다. 미래 비평가상은 전체 4천800명 지원자 중 선택된 26명이 경쟁작을 보고 뽑은 상으로, 대부분이 <빈 집>을 최고로 꼽았다고 들었다. 내 영화가 혐오감이나 불쾌감이 있다고들 알려져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상도 중요하지만 미래 비평가상도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걷고 또 내 영화를 이해하는 계기 됐으면 좋겠다. 이승연 너무 감사하고 김기덕 감독님께도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싶다. 좋은 작품 같이 해주신 스태프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별로 하는 일 없는데 조그마한 역할로 수상 기쁨을 함께 누리게 돼 좋다. 해외영화제를 다녀온 소감을 말해달라. 이승연공식적으로 큰 영화제에 다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김감독님을 다 알아보고 사인도 요청하고 <빈 집>이 좋다고 호평도 하고 그러더라. 어리둥절하고 깜짝 놀랐다. 감독님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해 놀랐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덕분에 좋은 작품으로 좋은 곳에 가게 됐다. 사실 지금도 잘 실감이 안 간다.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김감독의 영화에 찬성과 반대가 분분한 편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김기덕 많지는 않지만 내 영화를 지지하는 어떤 분들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에 대한 비판이 나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내 영화의 스타일이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가학적인 영화라는 해석조차도 내가 볼 때는 가능하고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요구가 많은 사회다. 이런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영화 감독이 되기 전에 똑같은 의식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여성학자나 여성계에서 비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한국의 또다른 윤리나 도덕을 지키는 입장이니까. 그럼에도 그것을 반역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영화의 해석으로 표면과 이면의 관계를 표현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비난이나 오해에 감사해 하면서 영화작업을 해왔다. 비주류로서 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수상을 했다. 한국 영화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김기덕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높이 사야 한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양쪽이 동등하게 발전해 갔으면 좋겠다. 앞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쉬워질 수도 있겠다. 20억 이상 되는 상업영화를 연출해달라는 러브콜도 있을 수 있겠다. 김기덕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기대도 없다. 제작사와 극장의 네트워크 자체가 허락을 안 한다. 한 자산가가 익명으로 돈을 보내주면 몰라도 자기 이름과 회사 드러내고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빈 집>도 국내 투자자를 접촉했지만 무산됐고 결국 일본의 돈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미 100만 달러 정도가 해외에서 영화제 기간 판매가 됐다. 이 영화의 배급 방식은 기존의 것과 다르다. 내가 제작하고 한국의 투자배급사에 판매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수입을 거두며 바로 수익이 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내 영화는 대부분 (수입이) 광고비를 넘기지 못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오히려 20~30억 정도 되는 돈을 외국에서 부담없이 투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제한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큰 돈은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도 같은 제작비와 15일 미만의 짧은 기간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마음껏 만들만큼 편하게 돈을 쓰는 성격도 못된다. 누군가의 피땀어린 돈이니까. 수상 이후 이승연 씨와는 어떤 얘기를 나눴나. 김기덕 이승연과는 수상 이후 오늘 여기서 처음 만났다. 아직 별 얘기 못했다. 눈빛으로 서로 고마워하고 있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기덕 해외의 평가들은 <파란대문>에서 시작됐다. 99년 베를린영화제 때 파노라마 오프닝작으로 상영될 때 유럽 프로그래머들의 관심을 모았고, 그래서 베니스나 베를린 등의 영화제에 꾸준히 다른 작품이 경쟁부문에 올랐다. 이번 수상은 이로 인해 모아온 관심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의 장점을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어떤 면에는 일본과 중국, 미국, 유럽의 상황이 바뀌어가는 시점에 한국 영화가 새로운 이미지, 드라마를 형성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해외에서)들은 얘기가 스토리의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의 영화라는 점이 좋았다고 심사위원들에게서 들었다. 내 영화는 많이 있었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다루지만 그 이상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에 대한) 해석을 저희보다 깊게 해준 것 같다. 시상식 때 임권택 감독에게 인사를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임감독은 끝난 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던가. 김기덕 시상식 때는 무슨 상인지 몰랐다. 집행위원회로부터 본상의 하나다 정도의 얘기만 들었고 혹시 (이)승연씨나 재희씨의 남우 혹은 여우 주연상을 대신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상식 때 사회자의 실수로 감독상을 빼고 2등상(심사위원 대상)이 먼저 발표됐다. 그 바람에 혹시 황금사자상을 타는게 아닐까 하는 염치없는 생각도 했다. 현지 언론의 평이 너무 좋았으니까. 임감독님께 인사를 청해야겠다는 것은 수상 5분 전에 들었던 생각이다. 어차피 수상할 것이면 감독님께 예의를 갖춰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상대에서 임감독 소개했고 이후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집행위원회에서도 노장감독에 대한 예의로 세레모니를 장식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임감독님께는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로 가서 다시 인사를 드렸다. 임감독이 "다행이다. 두 편이 와서 아무도 못 받을 뻔했다. 자네가 받아 다행이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역시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외상 수상과 국내 100만 관객 동원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김기덕 일단 사자(은사자상)와 곰(은곰상)으로 동물농장을 만들고 있다. 로카르노의 '표범'도 그리고 울타리를 치기 위해 칸의 '종려나무잎'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가 한국에서 100만명이 들었으면 좋겠다. 흥행모델을 띤 상업영화로서가 아니라 해외에서 호평 받은 한국영화가 100만 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받는 것보다 서로 오해가 풀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자꾸 이단아다, 아웃사이더다 그렇게 불리는데 실제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내 영화를 비디오로 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꼭 극장에 와야 관객인가. 그런 의미에서 100만명이 아니라 400만~500만명이 내 관객이 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한국 사람들을, 또 한국 관객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항상 야구모자를 고집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시상식에서 가족을 언급한 이유는? 부인은 수상 후 어떤 말을 해주던가. 김기덕 사실 모자를 벗을 때도 많다. 이번에도 무대에 입장할 때는 모자를 벗기도 했는데 누가 '벗는 게 낫다'고 연락해주기도 하더라. 그래서 다시 썼다. 지난 번 베를린 때 뭐 그렇게 하고(입고) 시상하느냐고 한 방송에서 그러더라. 이번에는 협찬을 받아 양복을 입고 왔지만 양복이 아니라 가시철조망처럼 불편했다. 가족에 대한 질문은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감독이고 내게 쏠린 관심과 해석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주변 것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꺼린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인생이 있다. 주로 신인 배우들과 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기덕 꼭 신인들하고만 (영화를) 하지는 않았다. 조재현씨도 스타이고 장동건씨도 스타이지 않나. 내 원칙은 내 영화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일한다는 것이다. 이승연씨나 재희씨도 사전에 대화해 내 영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알아봤고 이런 점이 캐스팅에 고려사항이 됐다. 배우 스스로의 현재 심리상태나 보이는 이미지도 고스란히 영화에 담는 편이다. 이번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테크닉이 뛰어난 높은 게런티의 배우에도 관심은 있지만 꼭 재활용품 같다. 이미 쓴 것을 남아 있는 것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배제하는 편이다. 사실 배우들의 수는 많고, 하고 싶어하고 열정이 불타는 사람도 많다. 승연씨의 경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영화에 공감하고 좋은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영화를) 했다. 그럼에도 내 영화와 배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과하고 용서해 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영화를 봐주면 고맙겠다. 이젠 그럴(용서하고 화해할) 때가 필요한 것 같다. 처음 영화를 할 때 꿈은 무엇이었나. 그 꿈이 지켜지고 있나. 김기덕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내 이름이 자막에만 들어갔으면 하고 꿈꿨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관객이 많이 들기를 바랐고, 세 번째 영화에서는 해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꿈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텅 비었다. 자꾸 지나치게 과장되는 것 아닌가 경계하고 있다. 창작의 문이 닫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존재한다. 그럴수록 이제는 블록버스터나 흥행영화라는게 유혹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수록 작고, 짧게, 영화를 찍으려 하고 있다. 제작비 10억원 안쪽으로 만든 영화가 가치를 인정받기 쉽다고 본다. 많은 돈에 톱배우 그리고 센세이션하게 관객 숫자를 늘리고 많은 돈을 버는 영화가 있지만 그 안에 본질을 담기는 힘들 것이다. 그동안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어떤 영화인가. 김기덕 다 똑같은 것 같다. <악어>가 있어 <빈 집>이 있는 것이다. 내 작품에 대해 갖는 편견은 없다. 시상식에서 '내 과거의 시간에 감사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의 오해와 열등감이 많았던 시간들이, 내 자신의 불행을 너무나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시간들에 고맙다. 현재가 높다고 해 과거가 얕다는 것 같은 함정에는 빠지지 않겠다. 현재의 높이만큼 과거의 높이도 같다. 수평적이다. 작품이든 사람이든. <빈 집>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김기덕 첫 장면의 프롤로그 부분이다. 유럽풍의 조각상과 골프망, 그 위에 맞고 떨어지는 골프공이 나오는 장면이다. 달려가지만 떨어지고 마는 우리들의 마음을 담았다. 물론 두 연기자의 연기도 굉장히 훌륭하다. 이승연 재희씨가 유령 연습을 하는 장면이 좋았다. 또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을 사이에 두고 재희씨와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마음에 든다. 많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부분이다. 대사가 없어 연기하기 힘들었겠다. 이승연 힘들었다. 힘들기도 하고 대사없어 오히려 편했던 면도 있었다. 연기할 때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나 몸짓만으로 더 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 좋았다. 재희 처음 시나리오 보고 대사가 없어 힘든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나 (이)승연 누나와 얘기를 많이 나누고 또 현장에서 승연 누나가 날 편하게 대해줬다. 서로 눈빛의 교감이 잘 이뤄졌고 이를 감독님이 잘 아줬다. 대사없는게 편안히 느껴지고 또 감정전달도 잘 됐다. 김기덕 영화에서 대사를 뺀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사라는 것이 줄거리와 앞과 뒤의 연관성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두 측면에서 대사가 없는 게 좋다. 우선 캐릭터에 내재된 본성을 들여다 보는데 도움이 된다. 또 외국에서 내 영화를 보는 데 문제없어 좋다. 굳이 신경 날카롭게 번역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나. 연기자로서 이승연 씨의 연기를 평가해달라. 김기덕 기회가 되면 두세 편 더 같이 해보고 평가하겠다. 상대의 연기에 대해 얘기해달라.(두 배우에게) 재희 사실 (이)승연 누나는 개인적으로 팬이었다. 첫 인상은 웬지 까탈스러워 보였지만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아무 벽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더라. 한참 선배이고 누나이니까 많이 얼기도 하고 그랬는데 누나가 말도 편하게 해주고 어드바이스도 많이 해줘 좋았다. 다음 작품도 누나랑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승연 재희씨가 너무 좋은 말을 많이 해줘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재희씨에게 많이 배웠다. 처음에 신인이었을 때 나도 과연 저렇게 열심해 했나 하는 반성도 했다. 지치지도 않고 오뚜기처럼 열심히 하더라. 많이 자극받고 많이 배웠다. 이번 일을 하면서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복되고 기쁜 것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다. 그래서 값진 시간이었다. 많은 분들, 감독님과 식구들에게 감사드린다. 연예계 복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승연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좋은 작품 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아득히 먼 일 같다. 베니스 갔다 오고 또 여러 일이 많아서인 듯하다.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에 감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앞날의 계획을 서둘러 잡는 것은 너무 빠른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어떻게 보면 김감독은 공교육의 최대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김기덕 질문의 해답을 울면서 신파조로 해야할 것 같지만 그런 기분은 전혀 없다. 이 사회는 모델이 필요하다.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를 재해석하는…. 학력 사회에서 학력이 아닌 것으로도 자신을 표현하고 발현하는 모델이 되면 좋겠다. 영화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김기덕 결과적으로 영화란 삶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수학이나 정치나 그리고 영화나 모든 것들이 삶이다. 영화 속에 내가 내 삶을 이해하는 태도의 무게가 연출에 반영되는 것이다. 영화는 삶이고 또 삶을 들여다 보는 작업이다. 시시한 대답같지만 모든게 삶이고 인생이다. 서울=연합뉴스, 사진=씨네21 데이터베이스

그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알포인트>

우리 시대의 기억상실증과 싸우는 영화 <알포인트> 한국에서 ‘자기성찰적’인 베트남전 영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베트남전이 끝나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다.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1992). 할리우드의 <지옥의 묵시록>(1979)이 불과 몇년 만에 나타난 것에 비하면, 너무나 늦은 것이다. <하얀 전쟁>은 그 때늦음의 이유를 스스로 드러낸다. <하얀 전쟁>은, 79년 10·26 사태로 열린 정치적 공간에서 베트남전의 서사화를 시도하는 한 소설가의 시점을 빌려서야 베트남전의 악몽을 스크린으로 옮긴다. 92년에, 79년의 시점을 빌려 진행되는 베트남전의 영화적 서사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징후인 셈이다. 베트남전 이후 20년간의 한국 정치사가 강요했던 한국영화의 집단적 기억상실증. <하얀 전쟁>은 그 때늦음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10년 이상 그 서사화의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현재, 또 한편의 베트남전 영화가 우리의 스크린을 찾아왔다. ‘전쟁 공포’라는 형식으로 귀환한 <알포인트>. <하얀 전쟁>이 리얼리즘이라는 80년대 한국영화의 멘털리티 속에서 시도된 베트남전의 영화적 서사화라면, <알포인트>는 ‘호러’라는 장르적 화법에 기대어 그것을 수행한다. 일견, 그것은 일종의 퇴행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얀 전쟁>이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양민 학살에 대한 죄의식을 그 ‘악몽’의 한 이미지로 뚜렷이 드러내는 반면, 역시 죄의식을 공포의 한 원인으로 언급하는 <알포인트>(“전쟁에서 살인을 한 사람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건 죄의식이 아닐까.” - 공수창 감독, <씨네21> 468호)는 이상하리만치 그런 이미지를 배제하고 있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어찌보면 그것은 마치 할리우드가 걸어왔던 과정을 거슬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할리우드는 <택시 드라이버>(1976)나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베트남전으로 인한 자기분열증과 공포를 드러내고, 양민 학살이라는 외상은 <플래툰>(1986)에 와서야 뚜렷이 드러낸다). 그렇다면 <알포인트>는 ‘호러’라는 현재적 트렌드에 기대어 역사를 거스르고 있는 퇴행적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알포인트>는, 그 영화적 세공술의 부족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전의 모든 베트남전 영화를 뛰어넘어서는 ‘두터운 텍스트’이다. <알포인트>는 ‘호러’라는 장르의 외피를 쓰고 수행되는 우리 시대의 역사적 기억상실증과의 싸움이다. 피아불식(彼我不識)- 베트남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 사실 ‘전쟁 공포’라는 것은 동어반복일 수 있다. 전쟁은 그 자체가 공포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이 베트남전을 다루는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베트남전은 피아식별조차 쉽지 않은 열대의 밀림 속에서 진행된 전쟁이고, 보호해야 할 양민과 섬멸해야 할 베트콩의 구별조차 힘들었던 전장없는 전쟁(게릴라전)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베트남전 영화는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의 한순간을 담아낸다.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날아오는 총알로 인한 공포. 그 공포로 인한 과잉방어 속에서 양민을 학살하고, 그럼으로써 한층 더 증폭되는 죄의식으로 인한 공포. 그런데 정작 본격 ‘전쟁 공포’를 표방하고 나선 <알포인트>에는 그러한 영화적 클리셰가 없다. 주인공 최태인 중위(감우성)가 쏘아죽인 베트남 소녀를 제외하면, <알포인트>의 한국군 병사들은 베트남인을 단 한명도 죽이지 않는다(최태인 중위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밝혀지고, 나머지 병사들은 자신들에게 총을 쏜 참호 속의 베트남 여자조차 사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그 공포의 공간으로 끌려들어가야만 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그 공포의 공간으로 끌려들어가는가? <알포인트>의 텍스트적 무의식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이런 의문들과 대면해야만 한다. 거듭 말하지만,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은, 단지 일반적인 ‘전쟁의 공포’만을 느낀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포와의 전쟁’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들이 조우해야 했던 그 ‘공포’의 다른 이름은, 도저히 가시화되지 않는 베트남이라는 ‘타자성-타자의 욕망’이다. ‘월남 해방’과 ‘자유 수호’라는 화려한 명분과 함께 출발했던 병사들은 베트남에서, 열대의 밀림처럼 끈질기게 자신들의 침입을 거부하는, 그 타자성과 조우하게 된다. 자신들이 ‘해방’시키고자 하는 베트남 민중은 그것을 고마워하기는커녕 베트콩들과 구별 불가능하게 뒤섞여 있다. 전장이 따로 없는 전쟁. 그들은 타향에서의 객고조차 편한 마음으로 풀지 못한다(창녀촌에서 “내 이럴 줄 알았어!”라고 내뱉으며 숨을 거두는 병사). 열대의 태양 아래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명분과 이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과 하나라도 더 많이 챙겨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계산이다. <알포인트>에서 과거-유령의 침입은 바로 그러한 균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대부분의 베트남전 영화 특히 <하얀 전쟁>과 <알포인트>의 텍스트적 무의식을 갈라놓는다. <하얀 전쟁>이 현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고 끝나는 반면, <알포인트>는 과거로부터의 무전으로 시작되고 끝이 난다. <하얀 전쟁>이 현재의 시점에서 외상적 과거를 서사화하려는 절망적인 시도였다면, <알포인트>는 과거-유령에게 사로잡혀 무한한 과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전자가 베트남전 참전 ‘이후’의 외상적 경험(특히 양민 학살에 대한 죄의식)을 체제의 문제와 연루시킴으로써 스스로의 부채의식을 덜고자 하는 한 주체의 서사화라면, 후자는 체제로부터 고립된 채 끝도 없이 역사(베트남이라는 타자성의 근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한 주체를 그리고 있다. 인귀불식(人鬼不識)- 이해불능의 초자연적 힘에 대한 공포 ‘피아불식’은 근본적으로 ‘타자의 욕망’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타자의 욕망은 쉽게 초자연적인 어떤 힘으로 신비화된다. ‘알포인트’의 저주받은 저택과 사원, 그리고 그 공간에 출몰하는 하얀 아오자이 소녀의 형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제3의 시선…. 흥미로운 것은, 정작 그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제대로 보거나 느끼는 것이 오로지 최태인 중위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병사들은 자신들의 현재(특히 자신의 공범의식 또는 죄의식)와 연루되어 있는 미군-유령과 한국군-유령만을 본다. 베트남 참전 이전의 과거로부터 귀환한 프랑스 병사들 유령(무덤)과 그들과 연루된 소녀의 유령을 보는 것은 오로지 최태인 중위이다. 그래서 최태인 중위라는 캐릭터는 문제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알포인트’(베트남)로부터 초대받아 그곳에 간다(영화 초반 그에게 “Sleep, sleep…” 하고 최면을 거는 창녀. 그리고 알포인트 작전 임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베트남 소녀-게릴라의 사살). 그는 자신들이 ‘알포인트’(베트남)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것의 정체를 알고 있는(최소한 이미 느끼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나머지 병사들이 과거-유령에 빙의되는 순간,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관등성명’(과거-유령의 귀환에 저항하는 상징계의 호명) 복창임을 알고 있는 그는, 그 부름에 응하면서 동시에 그 부름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허약한 상징계는 이미 무력하다. 그는 짧은 순간 베트남이라는 타자성의 근원을 상징하는 이미지들과 접하고 끝내 ‘자살’한다(이미 소녀-유령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가 장 병장에게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분명 자살-행위일 것이다). 불귀(不歸) - 역사와 마주치지 않는 한, 돌아오지 못하리 최태인 중위의 ‘타자-되기’는 그렇듯 짧고 불완전하게 끝이 난다. 그리고 그것은 <알포인트>라는 텍스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솔직함 또는 절망이다. 텍스트 속에서 과거-유령의 귀환에 대한 유일한 저항수단이었던 ‘관등성명’ 복창은 허약하고 무기력한 것이었지만, 현실이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그것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송식은 고사하고 명분의 축적조차 스스로 포기한 채 도망치듯 이루어진 이라크 파병. 국익 또는 자본의 이해라는 이름의 그 힘.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한계 때문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파병 반대는 우리의 젊은이들의 희생 가능성에 대한 호소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초유의 청년 실업 사태 탓이었겠지만, 자발적으로 지원해서 그곳에 갔다. 그리고 체제는 그러한 희생의 가능성이 없음을 자신하거나 과장하고 있다. 베트남전이 남긴 교훈은 진정한 ‘타자-되기’의 필요성이었다. 또 하나의 타자로서의 이라크 민중의 진정한 바람과 욕망을 알지 못하면서 감행된 또 한번의 파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대의 고통의 진정한 원인과 바람을 무시하고 이루어지는 파병은 ‘침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포인트>는 때늦게 그리고 불완전하게나마 그런 ‘타자-되기’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고 두터운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이 두터운 텍스트가 전하는 마지막 교훈. 진정한 타자-되기를 통해 역사와 마주치지 않는 한, 그 역사는 끊임없이 귀환(歸還)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돌아올 수 없다(不歸)는 것….

구스 반 산트의 최고 걸작, <엘리펀트>

잔혹했던 날의 초상화 <엘리펀트> ‘추악하고 화창한 날이로다.’ 비디오 게임 하듯 아이들을 사냥한 뒤 총신에 채 화약 냄새가 마르기 전, 알렉스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날은 새소리와 총소리가 함께하는 날. 푸른 가을 하늘과 죽은 시체가 함께 나뒹구는 날. 그날. 그 찰나의 순간은 그러나 영원한 순간. 죽음은 끊임없이 미끄러져 영겁의 시간 속으로 유예되고 시간은 봉인되어 우리에게 순간순간 되돌아와 말을 건다. 정적. 그러나 소란거림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 <엘리펀트>는 13명의 죽은 아이들의 얼굴로 이루어진 일종의 점묘화이자 벗어나려 해도 자꾸자꾸 되돌아오는 시간의 원점으로 회귀하는 잔인했던 날의 초상화이다. 구스 반 산트는 시적인 우아함과 최면 같은 잔혹함으로 우리를 그 결정의 순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날, 시간은 겹쳐지고 그 속에 갇혀버린 <엘리펀트>의 그 순간은 재현될 수 없는 시간이다. 재현되어서는 안 되는 시간이다. 재현하지 말아야 하는 시간이다. 재현이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수반한다면, 그 이데올로기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무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시간이 어떻게 어긋나면서 운명적으로 아이들의 삶의 시간이 죽음의 시간으로 함께 합쳐졌는가 그저 표면으로 이야기한다. 복도에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찍기를 방해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뛰었던 존과 일라이와 미셸이 함께했던 그 순간이 다 다른 각도와 다 다른 마음의 풍경을 지녔던 것처럼. 그 순간을 잡기 위해 구스 반 산트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무려 세번씩이나 셔터를 눌러내는 사진사의 고행을 기꺼이 선택한다. 그리하여 <엘리펀트>는 가장 우아한 손길로 폭력의 재현이라는 유혹을 밀어낸다. 그 정지의 순간까지, 아이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았고 각자의 삶을 살았다. 관습을 깨고 그저,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카메라 어떻게 보면 <엘리펀트>에서 구스 반 산트의 미학적 전략은 단 한 가지이다.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본다.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의 길을 쫓던 구스 반 산트의 카메라는 <엘리펀트>에서 다시 아이들의 뒤통수를 쫓는다. 그곳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관습적인 담론들은 깨지고 구스 반 산트는 아이들의 영혼이 서서히 증발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들며 그 흔적들을 뒤쫓아간다. <엘리펀트>에서는 수업장면이 단 한번 스치듯이 지나갈 뿐이다. 오히려 구스 반 산트가 신경쓰는 것은 교실이란 중심을 벗어난 모든 것.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 흐려진 배경이다. 그곳에서 학교 안과 밖은 모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의 표지판이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는 늘 쉘로우 포커스로 찍히지만 학교 밖에만 나가면 저 멀리 있는 개미 새끼마저 드러나는 딥포커스 안에서 잡힌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투명하게 자신을 향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던 학교 밖의 아이들이 학교 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순간, 학교 안이란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세상에 자신 혼자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자폐적인 공간 속으로 내던져진 듯 보인다. 그곳에서 복도란 교실이 아닌 끝나지 않는 터널 같은 곳이고, 식당은 도시의 광장처럼 드넓고 공허하다. 사실 끝없이 미끄러지는 트래킹 숏의 중심에는 아이들의 뒤통수만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뒤편에 구스 반 산트는 숨은그림찾기처럼 여러 가지 해답들을 숨겨놓는다. 긴 체육복 바지를 한사코 입지 않겠다고 하는 미셸이 체육관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그녀가 떠난 뒤에 남는 것은 옆친구의 미끈한 다리이다(자세히 보라. 흐린 배경을 뚫고). 마찬가지로 곧 살인을 저지를 예정인 소년 알렉스는 나치가 나오는 TV화면에 눈길을 주지만 구스 반 산트가 집중하려는 것은 나치가 아니라 TV화면의 윗부분, 흐려진 창문 뒤로 총기를 들고 오는 배달원의 모습이다. 기꺼이 십대 청소년들의 집 문 앞까지 친절하게 총을 배달해주는 사회. 그러나 <볼링 포 콜럼바인>과 달리 구스 반 산트는 그 흐린 배경 뒤에 부모도 지우고 선생도 지우고 무엇보다도 폭력의 논리를 지우개질한다. 마릴린 맨슨 때문에 아이들이 사이코 킬러가 됐다고? 그러나 당신은 토론 시간에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동성애자가 되는 원인을 알아내면 동성애를 없앨 수 있을까? 필연의 선택 1.33:1 - 드러내기 보다 지워내기 위한 장치 그러한 면에서 <엘리펀트>의 화면비율이 1.33:1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필연의 선택이다. 1950년대까지 업계 표준화면으로 쓰였고 지금은 고작 TV 화면비율로 폐기처분된 1.33:1. 차 앞좌석에서 뒷좌석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그 협소한 화면비율은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고안된 장치가 아니라 거꾸로 무언가를 지워내고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영화의 제목처럼 구스 반 산트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현실의 가장 작은 얼룩들을 가지고 영화 전체를 만들어나간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진을 인화하는 일라이의 정성스런 손놀림을 볼 뿐이지만, 그 손은 그의 영혼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친구들에게 왕따당한 뒤 식당에서 머리를 감싸쥐는 알렉스의 얼굴을 볼 뿐이지만, 그 순간 클로즈업되는 소음은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임을 들을 수 있다. 불쌍한 알렉스. 그리하여 당연히 알렉스가 교실에 있었을 때, 이 장면만은 학교 안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아이들과 정반대로 딥포커스 카메라에 잡힌다. 자신들의 세상에 감싸인 아이들과 달리 알렉스는 그러한 완충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를 다 의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그 긴 터널 같은 학교란 공간에서 유의미한 대면관계란 마음 여린 존이 개와 어울릴 때나 네이던이 끈적끈적한 계집아이들의 시선을 받을 때뿐이다. 아이들은 오직 그 짧은 대면관계 때만 슬로모션으로 뒤 돌아본다. 그외에 남는 것은 소음과 적막. 텅 빈 공간들. 몸매와 쇼핑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소녀들은 텅 빈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게워내고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인 소년은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소녀는 텅 빈 체육관에 혼자 내버려져 있다. 그리하여 알렉스와 에릭의 전쟁놀이는 이 지점에서 컴퓨터 오락과 궤를 달리한다. 두 소년이 죽인 것은 자신을 왕따시킨 재수없는 아이들의 과거였지만, 거꾸로 그들이 죽인 것은 자신처럼 외롭고 혼자 훌쩍이는 아이들의 미래였다. 지금은 한곳에 모여 있지만 다 달라질 수도 있었던 미래.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을 수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엘리펀트>는 칸이 간만에 제대로 선택한 구스 반 산트의 최고 걸작이다. 칸은 타르코프스키의 <향수> 대신 거대한 이과수 폭포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던 <미션> 같은 머저리 작품에 대상을 주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은 올바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내가 말하려는 건 윤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엘리펀트>는 시적이며 동시에 잔혹한 진실을 배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유럽 작가주의를 따라했다는 오해는 정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카메라가 막 사랑에 빠진 네이던의 뒤를 쫓을 때 카메라는 영화에서 가장 긴 롱테이크로 그의 뒤를 쫓아간다. 베토벤의 <월광>을 뒤로 하고서 그 긴 테이크를 함께 따라갈 때만 비로소 우리는 네이던이 그토록 도달하기 원했던 지점이 바로 사랑하는 여자 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이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알렉스의 총구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그 시간에 정지되며 끝난다. 그 뒷모습을 통해서야만, 비로소 우리는 그때 그날 컬럼바인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TV 속의 정지된 사진 한장에 갇힌 이미지로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뚫고 그들의 심장소리에 우리의 심장소리를 겹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회의 폭력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구스 반 산트는 적어도 우리가 그들을 오래 지켜볼 순 있다고 잊지 않을 수 있다고 부드럽게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하늘. 아이들의 목소리와 바람소리가 함께 휩쓸려간 하늘. 그 푸른 하늘에는 이윽고 정적만이 감돈다. 그것은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세계. 사실 아무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코끼리는 알렉스의 방에 스케치된 채로 얌전히 네모의 흰 종이 안에 붙박혀 있을 것이다.

[외신기자클럽] 배두나는 대단한 배우다 (+불어 원문)

배두나가 대단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마임과 마술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 배우다.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 <튜브>의 타이틀에서 그녀는 양손으로 매혹적인 발레를 연출해낸다.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에서 그녀로 하여금 수화로 말하게 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올 여름 나는 연극 <선데이 서울>에 출연한 배두나를 볼 기회가 있었다.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녀가 자주 서민 출신 여자 역을 연기하는 이유가 화장을 하지 않고 등장하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수천개의 일상적인 동작에 그녀만의 매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끊어지는 법 없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그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그녀를 보라. 이런 가장 평범한 동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영화의 본질 자체, 무성영화(물론 채플린 같은)와 관련된 것이다. 배두나는 그래서 움직임의 연기자다. 그녀는 갇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영화인들은 그래서 그녀를 인천으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에 뛰어 올라타게 하고(<고양이를 부탁해>), 배구를 하게 하고(<굳세어라 금순아>), 테러리스트로부터 탈출하게 하는 것(<튜브>)을 좋아한다. 상대역을 삼킬 듯 바라볼 때(<청춘>)의 그녀의 시선은 매력적이며 요염하기까지 하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그녀의 시선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배두나는 자신의 육체를 원자재로 하여 창조하는 예술가이다. 가느다랗게 뻗은 긴 실루엣에 놓인 어릿광대 같은 얼굴로 그녀는 여러 영화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데뷔시기에 대중의 호기심에 큰 바람을 일으킨 그녀는 그뒤 자기 커리어에 연속성을 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녀의 위치는 한국영화의 갑작스런 성장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녀는 조역을 맡기에는 너무 카리스마적이고 다수의 대중의 마음에 들기에는 너무 독특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에는 다수의 대중 외에는 대중이란 없다. 주요 배역을 얻기 위해서는 타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배우가 영화를 하기 때문에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광고나 TV활동을 통해) 유명하기 때문에 영화를 하게 된다. 연기자로서의 재능 외에도 대중의 마음에 들게 하는 재능 또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연기생활에 다른 방향을 제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위에서 말한 유의 연예인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는 영화인들의 수가 폭넓은 연기자들의 양성소를 보유하기에는 너무 적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소피 마르소와 이자벨 아자니 또는 에마뉘엘 베아르 옆에 카랭 비야, 실비 테스튀드 또는 올해 여름 연기생활 20년을 맞아 축하를 받은 베아트리스 달 같은 비정형의 배우들을 일선에 남아 있게 하는 팬들이 있다. 미국에는 스칼렛 요한슨과 제니퍼 제이슨 리가 니콜 키드먼 옆에 존재한다. 이 두 부류는 상호 비침투적이지 않다. 멕 라이언은 제인 캠피온에게서 연기의 맥을 찾을 수 있고, 할리 베리와 샤를리즈 테론은 독립영화에서 톱모델로서의 이미지를 포기할 수 있다(오스카상을 획득하면서 말이다). 한국영화는 이러한 두 번째 허파 없이 완벽하게 숨을 쉬고 있다. 여러 차례의 성공은 인기가 확실히 보장된 인물들만을 전방에 내세우는 정책의 효과를 증명했다. 그렇지만 이런 경향은 두 번째 호흡 위를 짓누르는 베개와 같은 무게를 갖는다. 동시에 재능과 개성의 좀더 많은 다양성을 꽃피우는 데 제동을 건다. Bae Doo-na et le poumon manquant du cinema coreen. Trop peu s'en apercoivent : Bae Doo-na est une actrice exceptionnelle. Elle possede un talent de mime ou de magicien. Dans le generique de Tube, film pourtant rate, elle cree de ses mains un fascinant ballet. Rien d'etonnant a ce que Park Chanwook lui fasse parler le langage des signes dans Sympathy for Mr.Vengeance. Cet ete j'eu l'occasion de la voir au theatre dans Sunday in Seoul. En la regardant passer l'eponge sur une table je compris que si elle interprete regulierement les filles du peuple, ce n'est pas parce qu'elle accepte d'etre filmee sans maquillage, mais parce qu'elle imprime une grace personnelle aux milles gestes du quotidien. Ses mouvements s'enchainent sans rupture, avec fluidite : regardez la allumer une cigarette dans Take Care of my cat, voyez la distribuer des tracts dans Sympathy for Mr.Vengeance… Cette facon de magnifier le geste le plus banal touche a l'essence meme du cinema, au jeu du muet (Chaplin notamment). Bae Doo-na est donc une actrice du mouvement. Elle ne supporte pas l'enfermement : les cineastes aiment la faire bondir dans le dernier train pour Incheon (Take Care of my cat), jouer au volley (Saving my hubby) ou echapper a des terroristes (Tube). Son regard peut etre charmeur, limite coquin, lorsqu'il devore son partenaire (Plum Blossom). Il peut aussi nous appeler au secours (Sympathy for Mr.Vengeance). En un mot Bae Doo-na est une creatrice, une artiste dont la matiere premiere est son propre corps : un visage clownesque pose sur une silhouette longiligne, dont elle explore, film apres film les possibilites. Apres avoir declenche un puissant vent de curiosite a ses debuts, elle a semble-t-il du mal a donner suite a sa carriere. Son statut illustre les limites du boom du cinema coreen. Trop charismatique pour jouer les seconds roles, elle est aussi trop originale pour plaire au plus grand nombre. Or, en Coree il n'existe pour ainsi dire pas de public hors du grand public. Pour toucher le haut de l'affiche, il faut etre consensuel. Voila pourquoi, tant d'acteurs ne deviennent pas celebres parce qu'il font du cinema, mais font du cinema parce qu'ils sont celebres (par la pub ou la tele). En plus de leur talent de comediens, ils doivent developper celui de plaire aux masses. Il est presque impossible de donner a son travail une direction differente car les cineastes qui peuvent se passer de ce type de tete d'affiches ne sont pas assez nombreux pour entretenir un large vivier d'acteurs. En France, a cote de Sophie Marceau, Isabelle Adjani ou Emmanuelle Beart, un pan du cinema permet a des comediennes atypiques comme Karin Viard, Sylvie Testud ou Beatrice Dalle, dont on fetait cet ete les vingt ans de carriere, de rester au premier plan. Aux Etats-Unis, Scarlett Johansson et Jennifer Jason Leigh existent a cote de Nicole Kidman. Ces deux mondes ne sont pas impermeables : Meg Ryan peut se ressourcer chez Jane Campion, Halle Berry ou Charlize Theron enterrer une image de top model (et decrocher un oscar) dans un film independant. Le cinema coreen respire parfaitement sans ce second poumon : ses nombreux succes ont prouve l'efficacite d'une politique qui consiste a ne mettre en avant que ceux dont la popularite est assuree. Mais son poids pese comme un oreiller ecrase sur un second souffle. Il constitue aussi un frein a l'epanouissement d'une plus grande diversite de talents et personnalites. Adrien Gombeaud, Critique et journaliste a Positif

옴니버스 <1,3,6>은 어떤 영화?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지정된 3부작 옴니버스 영화 (가제)은 디지털 단편 영화 세 편으로 구성된다. 지난 6일 서울에서 크랭크 인해 현재 제주도 우도에서 촬영 중인 송일곤 감독의 <깃>을 시작으로, 이영재 감독의 <뫼비우스의 띠- 마음의 속도>와 장진 감독의 <소나기는 그쳤나요?>가 잇따라 촬영에 돌입한다. 촬영 시한은 이달 말. 서울환경영화제가 다음달 22일 개막하니 시간이 많지는 않다. <깃>은 우도에서 만난 두 남녀의 조용한 소통을 그린다. 송감독은 " <깃>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고 싶었다. 깃은 바람이 있어야 존재한다. 우리는 깃이고 우리의 운명은 바람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내 마음의 풍금>을 만든 이영재 감독의 <뫼비우스의 띠 - 마음의 속도>는 각각 자전거와 자동차를 애용하는 남녀의 소통을 그린다. 두 남녀가 이동수단을 바꿔타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변화를 그린다. <소나기는 그쳤나요?>는 장진 감독다운 영화다. 황순원의 <소나기> 그 이후를 다룬다는 발상 자체가 재기발랄하다. 장감독은 이 영화에서 소녀가 죽고 난 후 소년이 슬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개울가, 원두막, 조약돌 등 소녀와의 추억이 어린 자연과 함께 표현한다. 의 총괄 프로듀서 김철환씨는 "환경영화제로부터 '재미있게만 만들어달라'는 말만 들었다. 환경영화제와 관련이 있는 영화지만, 특별히 제약을 받지는 않았다. 장르 역시 규정짓지 않았는데, 감독님들 모두 자연스럽게 멜로를 선택했다"ㅡ고 밝혔다.(서울=연합뉴스) 제주 우도서 <깃> 막바지 촬영중인 송일곤 감독 “섬의 안식 그리고 싶다” "섬이 인간에게 주는 안식을 그리고 싶다." 옴니버스 멜로 영화 (가제) 중 가장 먼저 촬영을 시작한 <깃>의 송일곤 감독이 제주도 우도에서 살을 벌겋게 태우며 막바지 촬영을 하고 있다. 우도라는 천혜의 도화지 위에 외로운 남녀의 소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 그는 "<깃>이 사람들에게 낮잠과 같은 쉼을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우도를 찾은 지난 14일은 1주일 여의 비바람이 가시고 모처럼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덕분에 그늘 하나 없는 촬영장에는 벼를 익게 하는 가을 햇살이 부지불식간에 살갗을 태웠다. 송감독은 결국 오른쪽 팔에 화상 비슷한 증세까지 얻었다. <깃>은 좀 특별한 영화다. 오는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가 후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깃>을 비롯한 세 편의 단편 영화를 묶은 은 오는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광화문 씨네큐브 등에서 열릴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송일곤 감독의 바통을 이어 이영재 감독, 장진 감독이 잇따라 30분 단편 멜로 영화를 찍는다. 모두 디지털영화다. 가제 은 한국의 환경지수가 세계 136위라는, 부끄러운 성적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환경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송감독은 "환경에 관한 영화라고 꼭 계몽적일 필요는 없다. 환경이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생각하게 하는, 어찌보면 철학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섬은 나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던 공간이다. 그런 곳에 와서 원기를 회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환경보호를 외치기보다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깃>은 10년 전 연인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도를 찾은 한 남자와 그를 맞이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영화감독, 여자는 남자가 묵는 모텔 주인의 조카딸. <거미숲>에서 형사로 출연한 장현성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소옥' 역을 맡은 이소연이 호흡을 맞춘다. 환경과 인연이 깊은 영화라 그런지 제작진은 유달리 '친환경적(?)'으로 촬영을 해야 했다. 비바람이 불면 그 비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촬영했고, 심지어 태풍을 맞는 바닷가에서 낚시 장면을 찍기도 했다. <깃>의 이용주 프로듀서는 "예산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특수효과나 장비도 자연 그대로의 효과를 못 낸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다. 그래서 파도가 6~7m나 치는 방파제 위에서 낚시 장면을 찍고 강풍 속에서 옥상 촬영을 하는 등 자연을 그대로 이용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한 상황. 그러나 '영화쟁이'들의 욕심은 자연 그대로를 화면에 담고 싶어했다. 이 프로듀서는 "그 때문에 메이킹 필름 장비들에 물이 찼다. 일일이 분해해서 에어컨에 말리는 등 후유증이 컸다. 그러나 그것을 감수할 만큼 여기 우도의 풍광은 모든 것이 참 예쁘다. 할리우드 특수효과 팀도 내기 힘든 효과를 자연에서 그대로 얻었다"며 웃었다. 송감독은 "솔직히 <거미숲> 때문에 너무 지쳐, <깃>을 촬영하면서 좀 쉬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하루 네 시간씩 자기에도 벅차다. 비바람 때문에 거의 '재난 영화'를 찍은 느낌이다. 우리 메이킹 필름을 환경영화제 개막작으로 트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내려와 촬영을 하니 너무 즐겁다. 이런 촬영환경이 내 체질에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주=연합뉴스, 사진=씨네21 데이터베이스

[현지보고] 속편의 원칙을 지킨 영화,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 LA 시사기

슬리퍼 히트작의 속편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 LA 시사기 할리우드의 속성이란 한번 돈이 되기 시작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2년 처음 발표된 <레지던트 이블>은‘슬리퍼 히트’(Sleeper hit)를 한 영화였다. 슬리퍼 히트란 저예산으로 싸게 만들어져 대규모의 프로모션을 거치지 않으나 뜻하지 않게 흥행작으로 떠오르며 블록버스터급으로 신분 상승하는 영화들을 지칭하는 말. 싸구려 액션영화로 시작했으나 대규모 프랜차이즈로 성공한 <록키>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2년 전 저예산 B급 사이파이(sci-fi) 좀비호러영화로 만들어진 <레지던트 이블>은 원작 게임의 인기와 영화화된 작품의 완성도에 힘입어 뜻하지 않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전세계 6300만달러의 수익을 낳았다. 물론 1편의 내러티브 자체가 후속작을 예견하며 끝나기는 했지만 불과 2년 뒤 전작의 몇배가 넘는 예산으로 후속작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와 같은 성공에 힘입은 바가 크다. 8월29일 저녁 LA 센추리시티 AMC에서 처음 선보인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는 무릇 속편이란 더 크고 더 나은 액션과 스펙터클, 그리고 특수효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블록버스터 속편의 원칙에 충실한 작품이다. 전편보다 복잡한 이야기와 고난도의 액션 스펙터클 <레지던트 이블> 1편의 액션 무대가 엄브렐러 컴퍼니의 한 건물에 제한되어 있었다면 2편에서는 라쿤 시티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된다. 넓어진 액션 무대를 채우는 것은 수적으로 더 많아진 좀비들과(한 도시의 시민 모두가 좀비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각양각색의 무기들, 마지막의 원자폭탄까지 동원된 다양한 폭발장면, 그리고 헬리콥터, 오토바이 등 각종 운송수단을 동원한 고난도의 액션 스펙터클이다. 교회, 학교, 시청, 공동묘지, 길거리, 다리 등 도시 곳곳을 가득 메운 수백, 수천 좀비들의 군상과 죽지 않으면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사방이 통제된 도시 안에서의 절박함이 주는 공포가 가히 ‘아포칼립스’라는 부제와 어울린다. 형광빛과 금속성의 날카로움, 자본과 첨단기술이 주는 세련된 이미지가 전편이 추구했던 영화의 분위기라면 속편은 어둠침침하고 으슥한 버려진 도시의 눅눅한 밤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이룬다. 이런 암울한 도시의 분위기는 모두 캐나다 토론토와 부근 해밀턴에서 연출됐다. 전편에 비해 복잡해진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전편의 감독이었던 폴 W. S. 앤더슨의 시나리오에 기인한 바 크다(물론 스토리에 대한 이해는 영화의 처음과 끝을 볼 때만 필요하다. 영화 중간에는 그저 액션을 즐기는 데 집중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앤더슨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를 감독하느라고 이번엔 시나리오만 쓰고 메가폰을 신인 알렉산더 위트에게 넘겨줬다. 위트는 <블랙 호크 다운> <글래디에이터> <본 아이덴터티>와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세컨 유닛의 액션 담당 디렉터로 일하다 <레지던트 이블>로 데뷔하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가 외국 출신이라는 것. 러시아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온 영화의 히로인인 밀라 요보비치는 물론이고 악덕 시장 역의 토마스 크레치만 또한 유럽 출신이다. 전직이 동독 올림픽 수영선수였던 그는 영화 속에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억양이 분명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비디오게임의 캐릭터인 질 발렌틴을 연기한 시에나 길로리 또한 영국 배우. 영국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의 바람피우는 여자친구로 나왔던 이 배우는 끈없는 튜브톱에 미니스커트, 검은 단발머리로 게임 속 캐릭터를 스크린에 옮겨냈다. 게임 속 괴물 니메시스, <에이리언4> 연상시켜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게임 마니아들의 기대는 과연 속편이 니메시스라는 게임 속의 괴물을 어떻게 형상화했느냐에 쏠려 있다. 특수분장팀은 전직 경찰이자 보디 빌더였던 매튜 테일러의 몸에 실리콘, 폴리우레탄, 가죽 그리고 금속을 이용, 첨단 지능과 막강한 무기로 무장한 괴물 니메시스를 탄생시켰다. 속편에서 앨리스에겐 니메시스야말로 좀비보다 더 무서운 적임에 틀림없다.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둘 사이의 숙명의 대결 도중 니메시스가 사실은 전편에서 앨리스와 함께 살아남았던 동지 맷이 돌연변이한 괴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니메시스를 죽이려 할 때 앨리스는 울퉁불퉁한 괴물의 살점 속으로 살짝 비친 그의 눈빛을 통해 이를 알아챈다. 이 장면은 <에이리언4>에서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우주선 안에서 자기 자식격인 에일리언과 맞닥뜨리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엄마, 나한테 왜 그래…”라고 말하는 듯, 우주의 저 어둠 속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사그라지던 순간 에일리언이 던진 그 원망과 슬픔이 담긴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다.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시고니 위버의 만감이 교차한 듯한 표정 연기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니메시스의 눈빛과 “미안해”라고 말할 때의 밀라 요보비치의 연기는 그런 감정의 깊이와 아픔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속편에서 앨리스는 티-바이러스로 인해 더욱더 강력해진 인간병기로 표현된다. 모든 액션연기를 스스로 소화해내려고 고집하던 밀라 요보비치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주요 몇신의 고난도 액션은 스턴트맨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웬만한 액션은 스스로 소화해내며 연기에 몰두하는 자세를 보였다. 명백하게 암시된 3편에서 우리는 티-바이러스로 인해 좀더 강력한 인간 병기이자 슈퍼우먼으로서의 앨리스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3편에서 보일 앨리스가 가진 강력한 파워는 각종 킥과 권총술이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조정하는 괴기적인 초능력적 파워일 듯하다. 앨리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엄브렐러 컴퍼니를 다시 탈출할 때 보이는 초능력적 힘은 마치 한국형 귀신영화를 보는 것처럼 관객을 오싹하게 만든다. 3편에서 괴기적 파워를 가진 앨리스를 다시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는 2편의 성공에 달려 있다.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는 9월10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다. 앨리스 역 밀라 요보비치 인터뷰 코너에 몰릴수록 맞서는 게 내 성격”“담배 피워도 될까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가볍게 입장한 밀라 요보비치의 첫마디다. 흡연자들에게 적대적인 LA란 도시도 미모의 여전사에게만큼은 약한가보다. 그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담배 끊긴 끊어야 하는데…”라는 흡연자들의 뻔한 레퍼토리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예기치 않게 가슴 성형수술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으나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그녀 탓에 정작 영화에 관한 깊이있는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운동과 몸관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벌떡 일어나 운동의 여러 동작을(말타기!) 시범해 보이기까지 하는 밀라 요보비치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연기, 노래, 작곡, 의상 디자인까지 섭렵하는 다재다능한 끼와 에너지, 그것이 감독을 포함해 같이 출연한 배우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그녀의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외모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주위에서 예쁘다고 하면 기분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미모란 자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서 배우였던 어머니가 어렸을 적 항상 나에게 너의 외모는 엄마 아빠로 인한 결과물일 뿐이다, 예쁘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가르치셨다. 미모란 순간적인 것이고 언젠가 신이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액션영화에 많이 출연해왔는데, 좀더 감정이 개입되는 캐릭터를 하고 싶지 않은가. 물론 액션을 좋아하고 인정도 받고 있지만 또한 그것이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 그 누구도 지금 나에게 로맨틱영화의 주연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고 싶어서 되도록이면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에 번갈아 출연하려고 노력한다. 곧 <페이드 아웃(Fade Out)>이라는 영화에서 빌리 밥 손튼의 부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배우로서 어두운 캐릭터에 끌리는가? 자기 자신 안에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물론 삶에 관해 철학적이고 진지해질 수 있지만. 내가 어둡다기보다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싶은 쪽에 가깝다. 내 안에 앨리스가 튀어나온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1981년에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왔다. 형편이 어려워서 모두 일을 해야 했고 처음에 왔을 때 나는 영어를 못했다. 다섯살 때 동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괴롭힘을 당할 때가 있었다. 코너로 몰렸던 나는 벌떡 일어서서 그 애들을 향해 러시아어로 꺼지라고 바락바락 대들며 소리질렀다. 이때 내부의 앨리스가 튀어나왔던 게 아닐까. 코너에 몰릴수록 수그러드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맞서는 게 내 성격이다.

[팝콘&콜라] ‘-25% 빚테크’ 쪽박 거위에 채운 재갈

<달마야 놀자> <황산벌>을 제작한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는 한국 영화의 돈굴리기를 ‘빚테크’라고 말한다. 한 영화의 흥행이 터져도 전에 만든 망한 영화의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고, 이미 제작 들어간 영화가 또 빚을 만들고 있고 그래서 다시 새 영화를 만들고…. “제작자가 게을러도 빚 갚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이 대표는 그래서 “한국 영화의 힘은 빚”이라고 규정한다. 관객 1천만 시대를 맞은 한국 영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돈이 투자, 재투자되는 구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소수의 영화가 크게 터질 뿐 다수의 영화는 손해를 본다. 제작자나 투자자별로 대차대조표를 맞춰보면 남는 장사를 한 데가 많지 않다. 지금은 남아도 몇개월 뒤 어떻게 될지 항상 불안하다. 당장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흥행 저조가 하반기와 내년 초의 자금사정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99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지금 20곳 가까이 되는 100억원 규모 영상투자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25%를 밑돈다. 안정적으로 돈이 쌓이는 곳은 멀티플렉스 극장과 그걸 체인으로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다. 충무로에선 영상펀드 자본 시대에서 90년대 중반처럼 다시 대기업자본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수의 제작자들은 투자자를 옮겨다니며 위태로운 ‘빚테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명필름은 지난해 <바람난 가족>의 투자자를 찾아 헤맸으나 구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인터넷 펀드 모집이라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한 계좌당 100만원씩 1인당 10계좌로 상한선을 정해 이익이 나면 나눠주고, 손해볼 땐 최소 원금의 70%는 돌려준다는 조건이었다. 600여명으로부터 20억원이 들어왔고 흥행에 성공해 투자 세달 뒤 원금에 60%를 얹어 돌려줬다. 대박 터진 다른 어떤 영화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이익이 분배됐다. 또 영화에 투자할 기회를 일반인에게 넓혔고, 이에 따른 영화로의 관심 증대라는 부대효과까지 얻었다. 물론 흥행이 됐으니까 하는 말일 수 있다. 흥행에 실패했을 때, 사정이 좋지 않으면 약속한 원금 보장 한도도 못 지키는 사태가 생길지 모른다. 인터넷펀드를 빙자한 사기극도 예상할 수 있다. 인터넷 펀드는 제작자들에게 상용하긴 어렵지만 가끔씩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떠올랐다. 명필름이 최근 <안녕, 형아>를 기획하면서 다시 인터넷 펀드로 19억5천만원을 모으겠다는 광고를 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올해 새로 도입된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을 내세워 이런 모집이 불법이라는 통고를 지난 14일 명필름에 해왔다. 금융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를 받을 땐 일정자격 이상의 금융기관을 끼고 해야한다는 게 그 취지다. 금감원의 우려는 이해가 가지만 영화계의 원활치 않은 돈 흐름에 숨통을 트게 한 인터넷 펀드 방식을, 피해사례가 생기기도 전에 막아버리는 건 안이한 관료주의에 가깝다. 금감원은 명필름에 보완책을 마련해 오면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명필름은 금감원과 협의해 합법적일 수 있는 방식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혜안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