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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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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김정수 작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지 마시길

지난 10일 한국방송 주말극 <애정의 조건>(사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초반에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애정의 조건>은 지난달 시청률이 40%대까지 치솟았다. 혼전 동거·유산 등 경험을 지닌 은파(한가인)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자의 과거’라는 신파조의 다소 구시대적인 소재가 막바지 인기의 요인이 됐다. 시청률과 관련해 <애정의 조건>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다. 보통 시청률은 회가 가면 갈수록 올리기 어려운 탓에 초반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 방송가의 상식으로 통한다. 이는 이른바 ‘되는 드라마’는 떡잎부터 알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대개 드라마 1, 2회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가장 많은 시간과 돈과 정성을 투여해 ‘최상의 완성품’을 내어놓으려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들은 초반의 높은 완성도보다는 자극적인 화면과 설정으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화방송 <한강수타령>이 그랬고, 한국방송 <두번째 프러포즈>나 에스비에스 <남자가 사랑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여자들이나 너무도 당당히 바람을 피우는 남자 아니면 ‘여배우 벗기기’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이는 경기불황에 따른 낮은 광고 판매율로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청률 경쟁이 더욱 극심해진 탓이다. 지난 8월 지상파 방송사 평균 광고판매율은 사상 최저인 64%대를 기록했다.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가장 쉽게 그리고 높이 얻을 수 있는 드라마에 ‘올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변명의 근거다. 에스비에스는 이달 초 가을개편에서 금요드라마를 처음으로 편성했다. 오는 15일을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밤 9시55분부터 2시간 동안 <아내의 반란>이라는 ‘섹스 코미디’ 요소가 짙은 드라마를 내보낸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일부 관계자들은 에스비에스의 금요드라마 편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드라마 과잉 편성으로)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일으킨다”고 비판하지만, 이들도 드라마 경쟁에 나선 것은 다르지 않다. 이전 주말극 <사랑을 할거야>를 실패하고 <영웅시대>나 <아일랜드>에서도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는 문화방송은 지난 2일 시작한 주말극 <한강수타령>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고두심·김혜수 등 출연진이나 김정수 작가·최종수 피디 등 제작진의 화려한 진용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에 견줘 기존 드라마에서 선전하고 있는 한국방송도 문화방송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애정의 조건>의 높은 시청률을 잇고 <한강수타령>에 대항하기 위해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부모님 전상서>이고,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피디가 이를 위해 나섰다. 극심한 시청률 경쟁은 곧 드라마 질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 흔한 일이고 지금껏 보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벌어질 김수현·김정수 두 작가의 주말극 경쟁은 또 다른 예외를 기대하게 한다. ‘가족 이야기’에 천착해온 작가들이 ‘가족 드라마’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고, ‘신파’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을 만큼 주말드라마가 형편이 없던 중 마침 두 유명 작가가 나섰다는 점에서 또한 그렇다. 부디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신데렐라 이야기’같은 ‘마약’이 아닌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서민들을 달래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왕가위의 화려하고 비장한 ‘오페라’, <2046>

오래전 앙코르와트 사원 석벽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한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먼지 낀 창을 들여다보듯” 희미하게 지나간 날들을 기억할 뿐이라던 그 남자는 지난 사랑의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났을까. 아름답고 안쓰럽고, 그래서 궁금했던 그 남자 차우가 돌아왔다. 그는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 그건 왕가위도 마찬가지다. <2046>을 만나는 일은 <화양연화>를 거듭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낼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한 것 이상, 예상한 것 이외의 것을 보게 될 거라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예고가, 이럴 때 어울린다. 우선 그 남자의 근황. 신문사 일을 그만두고 포르노 소설을 쓰는 차우(양조위)는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가 되어 있다. 만취해 쓰러진 여자(유가령)를 데려간 곳은 오리엔탈 호텔 2046호. 사랑했던 여인 수리첸(장만옥)과 남몰래 만나고, 함께 무협소설을 써내려가기도 했던 그 방도 2046호였다. 2046호를 맴돌며 <2046>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에겐 세명의 여자, 세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2046호에 머무는 매력적인 여인 바이링(장쯔이)과는 종종 뜨거운 밤을 보내는 사이로, 그녀는 그의 ‘마음’을 원하지만, 그는 “그것만은 빌려줄 수 없다”고 버틴다. 집안의 반대 속에서도 일본 애인과의 사랑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호텔 사장의 딸 왕징웬(왕페이)과는 연애와 소설에 대해 많은 공감을 나누지만, 이들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싱가포르에서는 프로 도박사(공리)와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본명이 수리첸(과거의 그 여자와 동명이인)인 그녀는 어둡고 무거운 과거의 그늘에 묻혀지낼 뿐이다. 자의든 타의든 둘 다이든, 차우는 ‘다시’ 사랑하지 못한다. 그는 거부하는 여자에게 “과거에서 벗어나면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 자신을 향한 애원이자 탄식이다. 차우의 과거는 그의 소설, SF판타지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는 미래에 대해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쓰고 있다. 2046은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이 불변인 채 영원한 곳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이 찾아든다. ‘나’(기무라 다쿠야)는 2046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 안드로이드 승무원(왕페이)을 사랑하게 되고, “떠나자”고 청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판타지에선 현실의 왕징웬과 그의 일본 애인이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차우는 남자 주인공을 ‘나’라고 칭하고, 그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 욕망을 투사한다. 그는 기억과 과거를 상징하는 2046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진정으로 그걸 원하는지,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또한 왕징웬에게서 새로운 사랑을 예감하지만, 그녀에겐 다른 연인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이제, 사랑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2046>은 <화양연화>의 인물과 전사를 빌려온 일종의 후일담이다. <화양연화>에서 차우의 교활한 면을 부각시켜, 그가 2046을 일종의 덫으로 삼는다는 설정을 촬영까지 하고 쓰지 않았던 왕가위는 <2046>에서 조금은 교활하고 냉소적이고 색을 밝히는 옛 버전의 차우를 소환해냈다. 물론 차우의 그런 위악적인 변화는 그가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는 “친구랑 무협소설 공동 창작을 해봤는데, 잘 안 됐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거나 “내게도 해피엔딩이 있을 뻔했다. 오래전 그때”라는 대사로 <화양연화>의 그녀를 추억한다. 역시 <화양연화> 때 촬영하고 쓰지 않은 70년대 일화 속의 인물 싱가포르 여가수 루루(유가령), 차우의 회사 동료이자 그의 연애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핑도 ‘그 시절’을 환기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2046>은 신기할 만큼 <화양연화>를 닮지 않았다. 문화혁명의 자장안에 있던 1966년의 홍콩부터 먼 미래로 상정된 미지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시간의 경과를 강박적으로 보고하고, 쉼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반복하는 이 영화는 느림과 절제의 미학을 선보였던 <화양연화>와는 정반대로 달려간다. <화양연화>가 은밀하고 함축적인 ‘시’였다면, <2046>은 과시적이고 비장한 ‘오페라’다. SF소설이 끼어든 까닭이겠지만, 훨씬 문학적이고, 연극적이고, 장식적이다. 왕가위의 오랜 파트너인 미술감독 장숙평은 문화혁명기 홍콩의 불안과 열정, 허무와 쾌락의 공기를 포착한 것은 물론, 서구 평자들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바바렐라>에 비견하는 SF적 미장센으로, 아찔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양조위, 장쯔이, 공리, 기무라 다쿠야 등 중화권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스타들이 포진한 캐스팅은 그 자체로 황홀한 스펙터클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 50년째가 되는 2046년이라는 ‘시점’, 그 ‘유통기한’까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가늠하고 있다는 점에서 <2046>은 홍콩 반환이라는 예정된 소멸의 시간으로 치달았던 왕가위의 90년대 영화들과 더 많이 닮아 있다. <2046>은 <화양연화>의 후일담이면서, 왕가위 전작들의 집대성처럼 느껴진다. 왕가위는 <화양연화>라는 제목이 여인은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고, 그것은 곧 홍콩이 가장 아름답던 시절을 뜻한다고 했었다. <2046>에서는 그 여인과 그 시절을 다시 추억하면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자의 초상을 공들여 보여준다. 그건 과거에 집착해서도, 과거를 부정하거나 망각해서도 안 된다는, 왕가위 스스로의 다짐 같아 보인다. 그의 오랜 테마, 사랑과 시간에 대한 성찰, 홍콩에 대한 애정어린 향수는 <2046>에 이르러, 가장 화려한 꽃으로 만개했다. :: <2046>의 네버엔딩 프로덕션 스토리 5년동안 조금씩 바꿨을 뿐인데… “대체 이 영화는 2046년에나 완성되는 건가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촬영에 지친 기무라 다쿠야가 이렇게 불평했다는 유명한 일화. 영화제라는 데드라인도 별 강제성이 없는 것인지, 왕가위는 기정사실화됐던 2003년 칸 출품을 보란 듯이 2004년으로 미루고도, 예정된 시사를 하루 더 연기했다. 영화제에 선보였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것이 마지막 버전”이라고 다짐하면서도, “3주만 더 주면 완전히 다른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던 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늦여름 무렵에도, 왕가위가 <2046>을 찍고 있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사실이었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다시 선보이는 <2046>은 칸에서 선보인 버전보다 10여분 정도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칸 버전에서 내레이션만으로 소개됐던 왕징웬과 그의 일본인 연인과의 사랑이 추가됐다는 것. 칸 버전에 2046 열차를 타는 탁 역으로 짧게 등장하고 말았던 기무라 다쿠야가 현실의 연인으로도 출연하고 있는데, 기무라 다쿠야를 중심으로 추가 촬영했다는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야기의 축도 양조위-장쯔이 단독에서, 왕페이-기무라 다쿠야 더블로 늘어났고, 여전히 특별 출연이긴 하지만 기억 속의 장만옥 장면도 약간 늘었다(장만옥과 기무라 다쿠야는 칸영화제 시사 직후 촬영분에 비해 턱없이 미미하게 줄어든 출연분에 화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2046>은 <화양연화>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2046>이 <화양연화>와 거의 동시에 제작 진행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제작 기간은 5년이 넘은 셈이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화양연화>의 후속편이나 마찬가지지만, 꼭 후속편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4년 동안 작업하면서 애초에 생각했던 캐릭터들은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변모했다.” 이를테면 2001년 <2046>에 대한 뉴스에는, 클래식 오페라를 재해석하는 3부작의 구성이며, 양조위는 우편배달부로, 유가령은 ‘나비부인’으로 설정돼 있고, 심혜진이 왕정문과 더불어, 기무라 다쿠야의 애인으로 출연한다고 돼 있다. 심혜진이 하차하고, 장쯔이가 투입되는 등 캐스트의 변화는 물론, 스토리도 애초의 것과 많이 달라진 것이다. <화양연화>의 칸 출품 등 여러 변수로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오래 작업하고, 많이 바꾸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왕가위지만, <2046>는 가장 심했던 경우다. 이에 대해 왕가위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그는 촬영 기간 중 거의 일상적으로 촬영을 중단한 채 어디론가 숨어들어가 촬영한 부분에 대해서 재검토하며 그 함의를 심사숙고하거나, 혹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을 떠올려내곤 한다”고 해명한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미술감독이자 편집가인 장숙평, 배우 양조위 등 스릴과 고통과 희열이 교차하는 왕가위와의 작업에 중독된 “충성심 증후군의 희생자”들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삭막한 도시의 밤에 찾아온 악몽, <콜래트럴>

택시를 하루 전세 내 밤새 도심을 돌겠다는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 있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섞어 뿌린 듯한 회색빛 머리칼, 딱 달라붙는 고급 회색 슈트를 입은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빈센트(톰 크루즈)다. 이런 손님이라면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가 제격일 것이다. 노스스프링에서 유니온까지는 7분, 베니스까지는 3분. LA 시내 구간구간의 소요시간을 빠삭하게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10시간 안에 도심 다섯 군데를 돌며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라면 이런 프로페셔널 운전사를 골라야 한다. 택시가 LA 야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심도 깊은 카메라로 잡아낸 이국적인 대도시의 밤풍경을 보라. 부감으로 잡아낸 풍경 속엔 밤하늘에 흩뿌린 듯한 빌딩의 노란 불빛과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야자수가 어울려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재즈로 편곡한 바흐의 가 넘실댄다. 가 끝나자마자, 택시 위로 쿵 하고 둔중한 소리가 나는 동시에 앞 유리창이 깨지고, 근심없어 보이던 도심의 풍경화에 핏방울이 튄다. “넓기만 하고 삭막해서 정을 붙일 수 없는 도시”라는 빈센트의 투덜거림이 어쩐지 불길했다. 1700만명의 다인종 인구가 북적대는 도시, LA 여러 빛깔의 피부와 여러 다양한 냄새가 들끓는 이 대도시의 야경은 기시감을 안긴다. 마이클 만의 1995년작 <히트>는 지하철 장면에서 시작, LAX공항에서 끝났다. 그는 9년 만에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와 LAX공항에서 문을 열고 지하철에서 문을 닫는다. 대로를 막고 벌어지는 경찰과 갱의 도심전으로 후끈거리는 도심의 열기를 전했던 그는 이번엔 600명의 엑스트라들이 발디딜 틈 없이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에서 총격전을 펼친다. <히트>에서 정유소, 사막 같은 주차장, 컨테이너 기지, 격납고 등 황량하고 거친 LA 공간을 그릴 때 마이클 만은 도시의 화가이자 시인이었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나게 한 알 파치노의 경찰서 내부와 로버트 드 니로의 짙은 푸른색 통유리집은 인물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마이클 만이 얼마나 날카로운 감식안의 소유자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 아니던가. 오후 6시에서 이튿날 새벽 4시까지, 기사와 승객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숨막히는 긴장이 마이클 만이 담아낸 전부지만, LA 아스팔트 위로 심장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발톱을 들고 달려들 듯한 야수의 숨소리가 들린다. “당신에게 그 사람이 도대체 뭘 잘못했소.” “오늘 처음 봤어.” <히트> <인사이더> <알리>에서 펼친 마이클 만의 세계는 완벽주의 남성이 낭만적으로 패배하는 세계다. 지더라도 무릎 꿇지 않으며, 일에 관한 한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들 사이의 긴장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첫 살인사건 뒤 택시운전사는 살인의 이유를 따지고(이렇게 대담할 수가), 살인자는 60억 인구 중 하나가 죽었을 뿐이며 르완다 종족 학살과 나가사키 원폭 피해로 죽은 사람의 운명과 다를 게 무어냐며 태연하게 대꾸한다.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비추는 카메라는 이야기에 팽팽한 장력을 더해준다. 마이클 만의 영화가 보여주는 진경은 한발도 비켜설 생각이 없는 두 남성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화해의 암시를 잡아낼 때다. 성큼 40줄에 들어서 돌연 연쇄살인마로 나타난 톰 크루즈의 강렬한 인상은 1999년 <매그놀리아>에서 서슴없이 “Respect the Cock”이라며 남자들에게 여자낚는 법을 가르치는 섹스강사 프랭크 매키를 연상시킨다. <매그놀리아>에서처럼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 겨워 더 센 척하지만 <콜래트럴>엔 아예 과거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솜씨, 한 호흡도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는 법도 없이 마무리하는 자세는 살인청부업을 기예의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여기에 살인을 합리화하는 달변의 철학, 살인 뒤의 여유를 느끼기 위해 찾는 재즈바가 우리를 경악시킨다. 아마 맥스는 <히트> 이후 등장한 마이클 만의 주인공 가운데 가장 편한 인상을 주는 사내일 것이다. 고된 노동이 그를 힘들게 할 때마다 선바이저(햇볕을 가리는 차양)에 끼워넣은 몰디브 사진을 보거나 벤츠 카탈로그를 뒤적이고, 엄마에겐 태연히 리무진 회사 사장이라고 속이는 이 사내에게 뭐 대단한 게 있을 수 있을까. 빈센트는 난처한 수수께끼로 목을 조여오는 악마다. 그가 맥스에게 던지는 제안은 살인을 돕거나 아니면 죽거나다. 맥스는 어떻게 곤경을 벗어날 수 있을까. 또 빈센트는 어떻게 맥스를 협박해 자신의 임무를 완성할 것인가. 관객은 빈센트의 손아귀에 잡혀 끌려다닌다. <콜래트럴>은 마이클 만의 대중적인 감각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600명의 한국인 엑스트라를 하루 12시간 동안 붙들고 찍은 나이트클럽 총격전의 생동감, 긴장과 이완이 꼼꼼하게 계산된 드라마에서 숙련된 장인의 기량이 배어나온다. 선명하게 잡은 도심의 야경은 서늘하기 그지없다. <히트>와 <인사이더>가 유장하게 풀어낸 대형 벽화라면 <콜래트럴>은 꽉 짜인 소품이다. 모자란 듯한 품을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이 매끄럽게 메운다. 기운 자국 하나없는 장인의 솜씨임은 분명하지만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 묵직한 존재감은 없다. :: 조연배우들 <알리>의 배우들, 한 몫 했네 <알리>의 배우들이 <콜래트럴>에선 큰 몫을 한다. 테일러 핵포드 감독의 <레이>(미개봉)에서 레이 찰즈 역을 맡기도 한 맥스 역의 제이미 폭스는 <알리>에선 쥐가 가운데 머리를 파먹은 듯한 독특한 헤어 스타일의 코너맨(링 사이드에 오르는 권투 코치진) 드루 분디니로 나왔다. 윌 스미스나 존 보이트에 가리긴 했지만 허풍과 술주정조차도 밉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택시운전사 역으로 러셀 크로나 애덤 샌들러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제이미 폭스가 결국 맥스를 맡았다. <알리>에서 알리의 섹시한 첫 연인으로 나왔다가 일찌감치 사라진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이후 <매트릭스> 2, 3편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콜래트럴>에선 처음과 마지막의 결정적 장면을 떠맡았지만 마이클 만의 영화가 그러하듯, 여성 영웅을 위한 장소는 넓지 않다. 이번 영화에서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알리>에서 변덕스럽고 아쉬울 때만 알리를 찾는 후원자 허버트 역을 맡았던 배리 샤바카 헨리의 얼굴은 잊기 어려울 것이다. 재즈클럽의 사장이자 트럼펫 주자인 다니엘 역이다. 그가 빈센트와 1960년대 재즈의 전성시대를 떠올릴 때 이 비정한 도시에도 황금시대가 있었음을 믿게 된다. 잔소리와 애정을 절묘한 비율로 섞어 표현하는 맥스의 엄마 이다는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아들 맥스 못지않다. 바로 <레이디 킬러>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이르마 홀이다. 머리를 뒤로 묶은 스마트한 형사 패닝 역의 마크 러팔로, 위엄과 농담을 함께 구사하는 갱 두목 펠릭스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 등 조연진이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더 조여준다. 톰 크루즈와 그저 어깨 한번 부딪치고 사라지는 <스내치>와 <이탈리안 잡>의 인상적인 대머리 존 스태트햄이 카메오일 정도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쉽게도 알 파치노(<알리> <인사이더>), 존 보이트(<알리> <히트>) 등 깊은 주름살 사이로 지혜와 연륜을 보여주는 배우가 <콜래트럴>엔 없다. 아무래도 마이클 만의 영화는 늙어갈수록 더 깊고 멋있어지는 배우들을 만나야 충만해진다.

진주만 공습 예견한 한국인 한길수 영화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참전을 유도한 진주만 공습을 예견해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된 한국인이 있다. 이 사람이 진주만 공습 자체를 촉발한 인물이라는 해석까지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지만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중첩자로 활동하는 바람에 한국 현대사에서 크게 주목 받지못한 인물 한길수이다. 진주만 공습을 예견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이중첩자 한길수의 이야기가 전격적으로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파일명 한길수>라는 이름으로 영화사 트라이엄프 픽쳐스 제작을 하고 이 영화사의 대표인 이인수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총 제작비 50~60억 원 규모로 11월 사이판에서 크랭크인한다.(사진은 영화 <진주만>의 한 장면) 현재 주인공 한길수역 캐스팅이 막판 진행 중이다. 여자 주인공 나나미역으로는 영화 <까불지마>의 임유진이 출연하며 한인수, 고정일 등이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된 상태다. <파일명 한길수>는 이 감독의 집요한 의지에 힘입어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한길수라는 인물의 연구에 매달린 이 감독은 2002년 KBS 1TV '수요기획-최초 공개 한길수 X-파일' 2부작을 직접 연출해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사재까지 털어 제작비의 일부를 댔다. 메가폰을 잡은 이 감독은 방송 외주 제작사인 채널 세븐 코리아의 대표도 맡고 있다. 채널 세븐 코리아는 KBS <수요기획>, <일요스페셜>, <현장 르포 제3지대> 등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전문 외주 제작사다. 이 감독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을 알게 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국 전쟁, 코리아 게이트 그리고 한길수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주목을 하는 인물이 국내에서는 무시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실제로 한길수는 한국이 해방을 맞게 된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진주만 공습의 예견과 촉발을 통해 미국이 참전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한길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라이벌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하와이의 한인 독립 단체 SKPL의 요원인 한길수는 미국 해군정보부 소속으로 일본 영사관에 들어가 신임을 얻는다.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키게 함으로써 조선의 독립을 얻으려는 목적이다. 일본 영사관에서 진주만 공습을 위한 해상 지도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한 한길수는 이후 일본의 진주만 공습 계획을 미 정보부에 보고하지만 묵살당하고 만다. 실제로 한길수의 노력은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언론에 의해 크게 부각된다. 일본에서도 1993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바 있다. 우리 학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일본을 위해 일한 이중간첩'이라는 오해 때문에 그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서울=연합뉴스)

시벨 케킬리, “슬펐지만 자유로움 느꼈다”

독일 영화 <미치고 싶을 때> 여배우 회견 "없애지 않으면 (괴로움은) 점점 더 커지거든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 수상작 <미치고 싶을 때>(원제 Head on.11월12일 개봉)의 여배우 시벨 케킬리(24.Sibel Kekilli)(사진은 <미치고 싶을 때>의 시벨 케킬리)가 12일 저녁 서울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미치고 싶을 때>는 보수적 가족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한 이슬람 교도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시벨은 터키계 독일인으로 보수적인 가족을 벗어나기 위해 마약중독자인 터키계 남성과 위장 결혼을 한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 영화가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덕분.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는 케킬리씨는 "부산영화제에서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아 무척 기뻤다"고 소감을 밝히며 "특히 상영이 끝난 영화표를 간직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나를 알아보고 사인을 청한 팬들의 정성에 감격했다"고 말했다. 올해 초 베를린영화제에서 호연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시상식 다음날 포르노영화에 출연한 전력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주인공처럼 독일에 사는 터키계로,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과거'에 대한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는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독일 속담에 '없애지 않으면 점점 더 강해진다'라는 말이 있어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슬퍼지지만 이미 극복했으니 이제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독일영화로 18년만에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미치고 싶을 때>는 독일 개봉 당시 터키계 독일인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예술영화로서는 드물게 전국 80만명의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는 "당시 영화가 터키계 가족들을 보수적이고 강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사실적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이 봤다"며 "사회나 문화, 가족이 정해 놓은 규율에 맞춰 살기보다는 자신에 맞고 또 스스로가 선택한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근 독일영화계의 경향에 대해 묻자 그는 "독일도 한국처럼 자국의 영화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동안 할리우드 영화가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독일 영화가 국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자국의 문화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프랑스나 한국, 터키처럼 독일 정부도 자국 영화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어떤 386의 코미디

“국보법은 국보(國寶)다.” 과연 대한민국이다. 이 세상에 인권을 침해하는 나라는 많아도, 그 짓을 “국보” 삼아 하는 나라도 있던가? 그 점에서 나의 조국은 독보적이다. 국제사회에서 폐지를 권하는 악법. 그 야만적 습속이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영원무궁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 오늘 버스 타고 남대문 옆을 지나다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국보(國保) 1호는 숭례문. 그럼 동대문은 긴조(緊措) 1호? 국보법 논란 덕에 요즘 느닷없이 학생운동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 대학가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경로대학 총학생회. 얼마 전 비상시국선언을 하더니 앞으로 거리에 나와 직접 민중과 결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도부가 쟁쟁하다. 80년 5월의 총리 신현확, 언론통폐합의 허문도, 땡전뉴스의 김원홍. 5공의 용사들이 80년 5월 전두환 장군처럼 구국의 일념으로 떨쳐일어선 것이다. 쿠데타 선동 발언으로 유명한 이화학당 김용서 학동이 거기에 빠질 수 없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 대중의 자생적 투쟁에 의식성을 부여하기 위해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이 연일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지침”을 담은 팸플릿을 내보내고 있다. 남을 설득하려면 “스스로 이념무장, 사실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월간조선> 같은 매체와 좋은 책으로써 공부해야 한다”. 아울러 거기에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국민여론을 잡기 위해 “강연, 대화, 토론, 책 읽기, 밥 사주기, 공부하기, 대중 집회, 공연의 문예활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한마디로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는 얘기. 이렇게 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하던 것을 요즘은 우익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그 팸플릿의 마지막에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합법적 저항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 합법적 저항의 길이 봉쇄된다면 (…) 마지막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갑제 동지가 주창하는 게 무엇인가. 그 유명한 레닌주의 원칙, 즉 합법과 비합법의 배합의 원칙이다. 이런 거, 어디서 배웠을까? 학생 시절 옥살이까지 했던 <조선일보> 류근일씨. 40년 만에 운동의 전선으로 복귀했다. “좌파 통일전선”을 흉내내어 거기에 맞설 힘있는 “범자유민주 대안진영”을 창출하잔다. 안 하는 게 없다. 꼴에 반정부 운동이라고 할 짓은 다 한다. 심지어 국보법으로 탄압도 받는다. <월간조선> 조갑제 학동, 인터넷 대자보에 글 올려 노골적으로 내란과 쿠데타를 부추기다가 결국 국가보안법 제7조 l항 국가변란을 선동한 죄로 고발당했다. 코미디를 해라, 코미디를…. 이것이 우익 386들, 즉 3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권력을 누리고 늙어서 60갑자(육갑)를 떠는 사람들이 요즘 하는 짓이다. 이 우익 장수무대에 이회창 옹(瓮)이 우정 출연했다. 국보법을 수호하는 성스런 싸움에 야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안보는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 그 젊은이들의 리스트에 이회창 옹의 두 아들만은 얌체같이 빠져 있다. 그렇게 걱정돼? 그럼 두 아들, 군대나 보낼 일이지. 저들의 운동권 흉내는 저들이 지배세력에서 저항세력으로 누추해졌음을 의미한다. 그 제스처의 격렬함은 그들이 처한 상황의 다급함을 보여줄 뿐이다. 저들의 “내전” 놀이는 피식 웃어넘기자. 국보법 논란은 그것을 깨끗이 폐지하는 순간 저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은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킬 뿐. 안보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덜려면, 실제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공격적으로 제시해 나가라. 가령 안보에 관심이 남다른 층을 상대로 ‘국방헌금’을 신설한다든지…. 진중권/ 문화평론가

[비평 릴레이] <여자 정혜>, <귀여워> 김소영 영화평론가

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에서 수상한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우측 사진)는 내년쯤에나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리뷰하는 것이 영화 비평 릴레이가 독자와 맺고 있는 약속이지만, 뉴 커런츠 부문 한국 영화 상영작 중의 두 편인 〈여자, 정혜〉와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를 소개하고자 한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투덜거렸듯이 저예산 영화의 극장 상영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적 공간이 상영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자, 정혜〉는 혼자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우체국에 나가 소포의 무게를 재고 우표를 붙이는 일을 하는 정혜(김지수)의 일상을 그린다. 또 그 일상을 헤집어 아찔하게 만드는 기억과 교차시킨다. 그 결과, 영화는 정감 있고 정확하다. 정혜는 버려진 작은 고양이를 데리고 와 기름진 참치를 먹이고, 자신의 김밥 속을 골라 먹지만 나쁜 기억을 솎아내지는 못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 어떠한 결정적 상처가 유년에 가해지는 장면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만큼 〈여자, 정혜〉는 매 장면들을 작은 긴장들로 은근하게 채운다. 아마도 허진호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허 감독의 영화처럼 슬쩍 무심하다기보다는 번쩍 유심하다. 실제로 여자 정혜가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아기 고양이를 다시 밖에 내려놓는 장면에서 나는 얼른 뛰어가 그 고양이를 돌보고 싶었다. 한편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우측 사진)는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표현처럼 에미르 쿠스트리차를 불러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대단히 공을 들이고 있는 서울 황학동에 대한 지정학적, 인류학적 고찰이 한국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황학동 철거 지역을 공간적으로 탐사함과 더불어, 이 영화의 가장 파격적인 창안은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공생을 해학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장선우 감독이 연기한 무당이자 바람둥이인 아버지 역에는 최우수 연기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다. 그는 권력은 없으나 매력은 남아 있는, 저물어가는 중년 남자를 참 태연하게 잘도 연기한다. 반면 아버지와 세 아들 모두에게 마술같은 사랑을 발휘해 그들을 이상한 성적 공동체로 만들어버리는 여자 순이 역의 예지원은 그야말로 차도에 뛰어드는 등의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연기하는데도, 완벽한 미스캐스팅이다. 안타깝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이 확산됨에 따라 아트하우스 극장들이 감소하고, 생산자의 의도와는 달리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제용 영화들이 늘어가고 있다. 〈여자, 정혜〉가 그 운명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썸> 당신의 예정된 죽음을 보았어

새 영화 〈썸〉의 첫 장면은 영화의 절정 부분과 띠처럼 이어져 있다. 치사량의 마약 주사를 맞고 의식을 잃은 유진(송지효)의 얼굴이 잠자는 유진의 얼굴과 겹친다. 그러니까 잠에서 깨어난 유진이 앞으로 24시간 동안 겪는 일은 그가 이미 어디선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썸〉은 이 24시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벨 소리에 눈을 뜬 유진은 디지털카메라동호회의 한 회원에게 전달하라는 부탁과 함께 MP3 칩을 받는다. 영문 모를 물건을 가방에 넣은 채 출근길에 나선 순간부터 그는 정체 모를 사람들에게 쫓기고, 자취를 감춘 100억원대 마약의 행방을 찾는 형사 강성주(고수)와 조우한다. “이 남자를 기억해.” 어디서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릿 속에 각인된 강성주와 얽혀갈수록 유진의 눈에는 기억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펼쳐지고 잠입수사를 하던 강성주는 범인으로 오인을 받아 궁지에 몰린다. 유진이 겪는 기시감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고편이다. 동시에 예견된 운명을 주인공들이 어떻게 벗어날까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일종의 미끼다. 극 초반 성주를 언젠가 봤던 것으로 착각했던 유진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예지’로 바뀌어 가면서 일면식도 없던 성주와 유진을 하나의 끈으로 묶고, 두 사람은 이미 신의 손을 떠난 운명,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맞서게 된다. 미래를 보지만 도무지 자신이 어떤 사건에 휘말렸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유진의 공포와 (관객이 보는)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정된 파국에 가속기를 밟는 성주의 질주가 영화의 긴박감을 가파르게 몰아쳐간다. 〈썸〉은 영화 전체를 감싸는 강한 테크노 비트처럼 빠르고 단절적이다. 충분한 사전 설명 없이 짧은 컷으로 편집된 영화 초반의 흐름은 감각적이고 속도감이 넘치지만 흩어진 이야기를 하나로 조합해내기까지는 인내심을 요한다. 영화 전반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이 리듬감이 사건을 봉합시키는 결말에 가서 두 사람의 멜로에 치중되며 느슨해지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씩 헐거워지는 미스터리 구조를 빈 틈을 메우는 건 충돌의 이미지들이 발산해내는 정서다. 거대한 모니터로 문제의 차량이 이동하는 공간을 하나씩 포착하는 유진의 눈에 잡히는, 느리고 충격적인 죽음과 성주의 차가 가로지르는 서울의 복잡한 도심이 빗 속에서 정지되는 듯한 풍경 등 숨가쁜 영화의 리듬을 순간순간 잡아채며 멈춰서는 장면들이 강렬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22일 개봉. <썸> 장윤현 감독 인터뷰 “흥행보다 호평 받았으면” <접속>(1997) <텔 미 썸딩>(1999)이후 5년 만에 새영화 <썸>을 내놓은 장윤현 감독(37)은 “전작 개봉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초조하다”고 고백했다. 후반작업 내내 만족과 불만족이라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는 장 감독은 “흥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치있는 영화다, 이래서 한국영화가 좋다는 평을 받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17일 오후 씨앤필름 사무실에서 장 감독을 만났다. 기시감이라는 소재가 독특하다 3년 전에 엎어진 에스에프 영화 <테슬라>가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 바깥에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다른 세계’에 대한 영화였다. <썸>에서는 이 세계가, 우리의 의식과 현실이 분리되는 순간, 즉 잠을 잘 때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정했고, 보통 사람에게는 망각되는 이 세계 또는 경험을 기억하는 유진의 기시감이 운명과 맞서는 의지로 작동하게 된다. 전작에서부터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자동차 추격씬의 절정을 보여준다. 자동차는 도시적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소품이기 때문에 늘 특별하다. <썸>에서도 자동차는 사건의 동기나 전환점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촬영기간 7개월 가운데 2개월은 자동차 장면만 찍을 만큼 공을 들였다. 어려웠던 건 스케일 큰 사고씬보다 달리는 자동차의 좁은 실내를 다양한 각도로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스릴러에서 출발해 멜로로 사건을 봉합하는 결론이 관습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멜로 감정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유진은 <접속>에서 자신을 열어보여주려는 수현과 <텔 미 썸딩>에서 상대방을 지켜보는 수연이 중첩돼 있는 인물이다. 수현과 수연이 그랬듯 유진은 이런 감정들을 통해 남자를 움직이게 하고 이 과정에 멜로라는 감정은 필연적이다. 다만 <썸>에서는 멜로의 정서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만 깔아놓으려고 했다. <썸>을 통해 제작자에서 감독으로 복귀하는 것인가 5년 만에 감독으로 나서니까 초반에는 어색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더라.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가능하면 2년에 세편쯤? 그동안 계산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영화만 연출해왔는데 이제는 좀 지겹다. 앞으로는 배우들의 연기가 좀 더 자유로운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29살의 그녀가 쓴 20대 일기장,

29살의 그녀가 쓴 20대 일기장을 들추니 빼곡하게 적힌 여관 이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여관 이름들은 적어놓았을까, 또는 왜 여관이라는 단어만 붉은 등을 켜고 있는 것일까. 애틋하기는커녕 얼굴 붉어질 여관방의 기억이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이것이야말로 성에 눈떠가는 젊음의 궤적일지 모른다. 게다가 일기를 쓴 나지니(김선아)와 주요 등장인물인 지니의 역대 애인 명단(이현우, 김수로, 공유)을 보건대 이 일기장의 문체가 웃음기 가득한 발랄한 것이며, 적나라한 성애 묘사엔 별 관심이 없음을 짐작하겠다. 어찌 훔쳐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일기장이 돌연 (지니를 떠난) 이기적인 수컷들을 응징하기 위한 증거 자료로 채택되면서 그나마 일기장에 흐르던 따스한 분위기가 증발되고 우린 어리둥절해진다. 증발되기 전, 처음엔 싱그럽고 풋풋했던 한 에피소드.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사포를 쓰고 성가를 부르는 한 여자의 눈빛은 그야말로 사랑으로 충만하다. 성가대 지휘자 구현(이현우)를 향할 때마다 그렇다. 혹시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얼굴을 붉히며, 눈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 나지니(김선아).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볕은 이 풋사랑에 던지는 축복 같다. 성가대 지휘자 구현을 굳이 영어 개인교사로 끌어들인 재수생 시절은 흥분과 낙담이 교차한다. 선생은 <애너벨 리>를 외우고 제자인 지니는 시구를 해석한다. <애너벨 리>를 읽다 말고 한낮의 정사를 나누는 사제지간을 너무 비난하지는 말자. 실수였다는 구현의 구차한 변명과 지니를 사랑했기에 후회없었다는 투의 회상이 철지난 여성지에서 많이 보던 것이라고 타박하지 말자. 지니는 두 번째 남자 정석(김수로)을 만나서 성에 눈뜨고 동거를 감행하더니 세 번째 애인인 연하의 유인(공유)과는 먼저 즐겁게 ‘합체’를 외친다. 초경을 축하하며 엄마(나문희)가 선물한 작은 일기장엔 동시에 눈물과 한숨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나 몰라라 유학을 떠난 구현, 카레 만드는 방법만 달랑 남기고 떠난 정석,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유인. 과연 이 남자들이 지니를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 또 지니는 이들을 어떻게 사랑한 것일까. 첫 만남의 설렘과 지루한 신경전 따위는 건너뛰고 곧바로 침대로 뛰어드는 영화는 바로 이런 중요한 질문에 제대로 답을 들려주지 않고 대신 지니가 이들 치사한 수컷에게 펼치는 복수극으로 대신 답한다. <위대한 유산>에서 ‘백조’의 페이소스와 자격지심을 웃음으로 전환시켰던 김선아는 이번엔 그런 배경없이 그저 욕탕과 화장실에서 분투하며 웃음을 얻어내려 한다. 많이 봐줘도 복학생 이상으로 보이는 대학생 김수로와 엄마에게 유독 절절매는 공유보다, 의외로 이현우가 끊어질 듯한 위태로운 웃음의 리듬을 살려낸다. 말을 듣지 않고 마구 커지기만 하는 성기 때문에 고뇌하는 신부가 그와 퍽 잘 어울린다.

영화 포스터에 대해 몰랐거나 오해했던 것들 [3]

다양한 버전들 - 길가에 깔리면 작업 끝 아냐? 이렇게 물을 포스터 디자이너는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포스터 디자이너들은 영화에 관한 비주얼을 ‘총체적으로 책임질 것’을 영화사와 계약하는 사람들이다. 시나리오북에서부터 보도자료, 극장 전단지, 지면광고, 버스 및 지하철에 게시될 옥외광고, 그리고 인터넷 광고까지 일체를 작업한다. 지면광고도 신문이냐 잡지냐에 따라, 신문 4단에서 10단에 어느 사이즈냐에 따라, 잡지 1페이지냐 2페이지냐에 따라 사이즈를 달리 작업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개봉 한달 전 티저 비주얼 단계, 개봉 임박해 메인 비주얼 단계, 개봉 뒤 제3의 비주얼 단계로 갈 때 디자이너는 매번 작업한다. 심지어 영화가 너무 훌륭하면 영화제 초청에 각종 해외 프로모션건이 줄줄이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를 대비해 해외 프로모션용 포스터와 보도자료를 작업해놓는다. <박하사탕>을 작업한 김혜진 실장은 “그 영화만 1년 넘게 했다. 아무리 해도 안 끝났다. 매일매일 해도 할 게 너무 많았다”고, 그 길고 길었던 순간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들은 계속 더 많은 인력과 손잡고 더 복잡한 작업 단계를 거쳐 정교한 소통이 가능한 포스터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갈수록 비주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는 요즘의 경향은 이 정교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89년 <애란>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수백편의 한국영화 포스터 촬영작업을 해온 손기철 사진작가는 “현재 영화의 주관객층이 20대 여성”이라는 점을 들면서 “그들이 보는 패션지만 펼쳐봐도 훌륭한 광고들이 정말 많다. 그런 데에 관객의 눈이 길들여졌으니 영화 포스터가 패셔너블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많은 마케팅 관계자들과 디자이너, 사진작가들이 포스터 시안과 컨셉을 논의할 때 각종 사진자료를 방대하게 참조한다. 관객들의 높은 눈높이를 맞춘다는 대원칙은 <나쁜 남자> <장화, 홍련> <스캔들…> <누구나 비밀은 있다> <주홍글씨> 등처럼 우아함으로, <몽정기> <오! 해피데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처럼 아기자기한 꼼꼼함으로, <챔피언> <실미도> <효자동 이발사> <가족> 등처럼 간결우직함으로, <박하사탕> <반칙왕> 등처럼 독창적으로 다양화되어 나타난다. 이날 <사과>의 제작팀도, 포스터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대변할 만한 광고컷을 콘티북에 붙여놓고 있었다. 트렌드의 최첨단을 반영하는 광고. 그것에 길들여진 관객. 그들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영화사. 관객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예술에 대한 분명한 욕구를 가진 디자이너, 그리고 사진작가. 포스터는, 이들간의 역학관계가 가장 발전적으로 나아간 순간의 결과물인 셈이다. :: 관계자들이 말하는 영화 포스터의 정의 단 한컷에 드라마가 담겨야 한다 “포스터란 비주얼로 하는 마케팅이다. 영화와 관객을 소통시켜주는 제1의 매개체. 그리고 최전방에서 관객과 만나는 전도사 같은 거다. 왜, 전도사들이 ‘하나님을 믿어라’ 하는 것처럼 포스터도 ‘이 영화를 사랑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가 나쁘면 포스터가 사이비란 얘기를 듣지.” - 배광호 실장(디자인사 그림커뮤니케이션·<8월의 크리스마스> <동갑내기 과외하기> <와일드카드> <인어공주> <썸> 등) “영화를 한장으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 영화는 동영상인데 그것을 단 한장의 정지스틸로 잡아냈을 때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포스터엔 드라마가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 박혜경 실장 (영화사 봄·<쓰리> <장화, 홍련> <4인용 식탁>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달콤한 인생>)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도구. 예고편과 함께 영화를 홍보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무기 중 하나. 둘 중의 우열은 가리지 못하겠다. 영화에 따라 어떤 건 포스터의 덕을 많이 보기도 하고, 예고편의 덕을 많이 보기도 하니까. 기본적으로 포스터는 인지도 상승에, 예고편은 선호도에 많이 작용한다.” - 장보경 과장 (영화사 싸이더스·<정글쥬스> <무사> <말죽거리 잔혹사>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영화 포스터란 포장지 같은 것이다. 이런 제품이 있습니다, 라는 걸 다른 어떤 홍보물들보다도 가장 처음에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풀고 싶게 만드는 것. 그냥 상품광고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영화 포스터는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더 중요하다.” - 임혜선 팀장(영화사 LJ필름·<라이터를 켜라> <주홍글씨>) “그것에 대해 고민을 계속해왔는데, 포스터는, 영화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존재같다. 그 정체성을 단 한장으로 구현하는 것. 그래서 가장 좋은 마케팅은 영화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 김상만 실장(디자인사 스푸트닉·<해피엔드> <바람난 가족> <범죄의 재구성> <주홍글씨> <청연> <여자, 정혜> 등) “영화는 길다. 그걸 단 한장으로 설명해야 하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 포스터가 작품의 힘이 될 수도 있다. 그 영화가 보존되게 만드는 힘.” - 김혜진 실장(디자인사 꽃피는 봄이 오면·<파이란> <나쁜 남자> <몽정기> <누구나 비밀은 있다> <귀여워> <주먹이 운다> <태풍태양> 등) “굉장히 커머셜한 작업이란 느낌은 들지만, 포스터 컷은 단순히 광고가 아니라 순수예술의 영역에도 어느 정도 걸쳐져 있다. 강영호 사진작가는 ‘영화를 함축한 한장의 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이재용 (사진작가·<무사> <봄날은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천년호> <말죽거리 잔혹사>) “그게 예술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영화적이고를 다 떠나서, 가장 중요한 건 지나가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전문가 말이, 지나가는 사람이 포스터를 보고 스치는 데 평균적으로 0.5초 걸린다고 한더라. 진짜 관심있어서 봐야 3∼4초다. TV광고를 봐도 스무개 지나가면 한두개 겨우 기억나듯이, 영화 포스터도 그렇게 기억에 남는 한두장이 어쨌든 가장 훌륭하다고 본다. 사진만 좋다, 디자인만 좋다, 그런 것은 없다. 결국 카피와 제목, 다 함께 가는 것이다.” - 손기철 (사진작가·<애란> <결혼 이야기> <하얀 전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남자는 괴로워> <손톱> <편지> <아나키스트> <간첩 리철진> <달마야 놀자> <황산벌> <달마야, 서울가자> <귀신이 산다> 등 약 150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