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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공개! 촬영장 습격사건 [5] -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

어그레시브 인라인에 청춘을 싣고 감독 정재은 출연 김강우, 천정명, 이천희, 조이진 개봉예정 2005년 2월 우리는 황량한 인천부두를 가로지르던 다섯 소녀의 매력적인 행보를 기억한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 어떤 매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스무살 무렵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인상적인 데뷔작이었다. 데뷔작 이후 3년. 정재은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거친 스포츠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20대 남자아이들의 질주를 그릴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고, 그것은 그 또래 남자아이들의 싱싱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지난 8월 말 촬영을 시작한 <태풍태양> 현장에 대한 호기심은 짙은 녹음,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돌진하는 젊은 그들의 열기로 가득한 공기를 호흡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탁 트인 야외에서 시원하게 펼쳐질 스펙터클을 기대하며 찾아간 촬영장소, 서울 강남 대청공원 내부 파출소 안에 얌전히 방치된 스케이트들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주인공들을 발견한 것은 솔직히, 다소 맥이 풀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양이를 부탁해>가 지닌 미덕에는 다섯명의 소녀들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던 내러티브와 두명 이상의 인물들 사이의 교감과 엇갈림을 예민하게 포착한 연출력도 포함된다는 사실. 10월2일, 다소 정적인 분위기의 파출소 현장은 그러한 정재은 감독의 강점에 온전히 의지한 채 진행되고 있었다.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 소요(천정명)가 유일하게 의욕적으로 매진하는 것은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팅. 이는 도심 속의 난간이나, 각종 기구 위에서 묘기를 선보이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일종을 말한다. 어느 날 그는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이는 모기(김강우)의 모습에 매료되고, 소요는 모기와 갑바(이천희), 한주(조이진) 등이 속한 어그레시브 인라인 모임에 합류한다. 그 속에서 소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에 매진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는다. 이날은 파출소에 붙잡힌 일당을 모기, 갑바, 한주가 찾아오는 장면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그레시브 인라인을 즐기지 못하도록 공원쪽이 설치한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공익근무요원들과 일행 사이에 승강이가 생긴 것으로, 영화 속에서는 그 승강이의 충격적인(?) 전모가 밝혀질 것이다. 그간 보여줬던 반듯한 이미지와는 달리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김강우, 대사도 액션도 없는 촬영분량이지만 끝까지 현장을 지키던 천정명, 엄청난 경쟁의 오디션 끝에 <태풍태양>에 합류했으며 최근 <늑대의 유혹>에서 강렬한 인상을 선보였던 모델 출신 이천희, 연기를 처음 시작한 신인답게 구김살 없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던 조이진 등 <태풍태양>의 배우들은 저마다 다양한 출신과 연기경력을 자랑한다. 정재은 감독은 그런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거나, 의견을 묻는다. 지시한 것을 배우가 불편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대화 끝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에 골몰했다. 때로 배우들에게 지금의 전체적인 문제를 알려주면, 이들이 스스로 의논하는 과정을 거쳐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민감한 두 주체, 감독과 배우들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으로, 저마다의 왕성한 혈기와 열정을 발산하는 일군의 젊은 배우들을 통제하고 연출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거는 영화 속 인물들을 너무나 닮아 있었던 배우들,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100% 혹은 그 이상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감독이 함께 만들어간 현장의 결과물은 내년 2월에 확인할 수 있다. 정재은 감독 인터뷰 “쉬는 시간에는 축구를 하지 않나, 애들이 힘이 넘쳐나요” -전작은 다섯명의 여자아이들이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아홉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등장한다. 연출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장단점이 있다. 일단은 남자들이다보니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쳐서 촬영장 분위기가 밝아진다는 점이 좋다. 언제나 기운이 남아도는 아이들이라서 쉬는 시간에는 축구를 하지 않나, 현장분위기가 시종일관 유쾌하기 그지없다. 물론,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디테일한 연기지도가 어렵다는 것이 안 좋다. -배우들의 연기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이번 영화는 호흡이 많이 짧기 때문에 한숏 안에서 배우들의 포즈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전체적인 리듬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각각의 캐릭터와 배우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시나리오 수정을 많이 한 편인가. =연기 경험의 정도가 서로 다른 젊은 배우들이 섞여 있으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케이팅을 전문으로 했던 애들과 연기가 전문이었던 애들이 서로를 가르쳐주면서 맞춰가고 있다. 애들이 서로 조언을 하면 나는 전반적인 톤을 조절한다. -지난 인터뷰 때 첫 영화와 달리 이제는 영화를 만드는 것의 즐거움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촬영이 기다려진다고 했는데. =글쎄, 아직 촬영 초반이라 뭐라고 말하긴 어렵다. 영화의 65%가 낮촬영이라 구름의 방해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 전체적인 톤 관리도 힘들고. 하지만 야외에서 시원하게 찍을 수 있어서 늘 즐거운 것도 사실이다. -배우들의 스케이팅 실력에 만족하나. =모두가 여름 내내 열심히 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몇몇 배우들은 놀랍도록 짧은 시간에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고, 이들이 최선을 다한 덕분에 나름대로 무리없이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다음 영화로 혹시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 =이제는 단둘만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다. (웃음) 액션영화를 찍고 싶기도 하고. 스케이팅 훈련 매일 7시간씩 두달간 맹연습, 무더위보다 더 살인적 <태풍태양>의 젊은 배우들에게, 지난 여름은 살인적인 더위보다도 온몸을 던졌던 스케이팅 훈련으로 기억될 것이다. 스케이트와 한몸이 되어 생활하는 영화 속 인물들을 소화하기 위해 두달간 집중, 속성 코스로 진행된 스케이팅 훈련의 책임자는 국내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 1세대이자 국내 최고의 프로선수이기도 한 두명의 테크니컬 디렉터. 훈련은 8월 말 크랭크인 전까지 꼬박 두달 동안 보라매공원 등에 마련된 게임파크에서 하루 7시간씩 매일같이 진행됐다. 첫 한달은 평지에서 전진, 후진, 회전 등 기본적인 주행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는 데 소요됐다. 나머지는 액션스쿨에서 와이어를 착용하고, 핸드레일(난간의 손잡이) 묘기 등 본격적인 기술연마 과정. 각각의 캐릭터들이 본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스케이팅 스타일을 구사하기 위한 개인훈련 과정이었다. 남자답고 힘있는 스타일의 갑바, 부드럽고 세심한 기술을 소유한 모기, 두 사람에게서 고르게 영향을 받아 둘의 장점을 모두 겸비한 소요, 그리고 나머지 6명에게도 각자의 스타일이 존재했던 것. 테크니컬 디렉터 강훈씨는, “이 정도의 기술을 두달 안에 연마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누구보다 근성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 정말 열심히 해줬기에 그만큼 좋은 성과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배우들은, 수백번씩 시도해도 실패했던 기술,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기술이 영화 속 대사처럼 “딱 되는” 희열을 최고로 꼽기도 했다. 어려운 스케이팅 장면들은 촬영 후반부에 포진돼 있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배우들은 촬영기간 중 쉬는 날이면 연습장에서 훈련을 진행 중이다.

모범생은 재미없다, <캣우먼>

오리지날 캣우먼의 자유와 반항의 멋을 놓쳐버린 <캣우먼> <캣우먼>이 할리우드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명백한 교훈은 아무리 아카데미상을 받은 일급 스타와 유명한 캐릭터를 갖추었다고 해도 좋은 각본, 적어도 좋은 스토리가 나오기 전까지는 영화화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제작 전부터 돌아다니던 각본이 모든 사람들에게 최악의 평가를 받았을 경우엔 더욱 그렇고. <캣우먼>의 각본은 무엇이 문제인가? 단점들을 지적하기는 쉽다. 가장 노골적인 건 악역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초능력을 가진 슈퍼 영웅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그에 걸맞은 악역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캣우먼>의 샤론 스톤이나 랑베르 윌송은 어떤가? 윌송은 생각없는 바람둥이에 불과하고 샤론 스톤의 유일한 초능력은 불량 화장품의 부작용으로 얼굴 피부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지금 농담하나? 악당답지 않은 악당과 캣우먼답지 않은 캣우먼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문제점은 악당들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있다. 한마디로 말해 할리 베리가 연기한 페이션스 필립스라는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캣우먼’이라는 캐릭터가 아니다. 기존 캐릭터들을 재활용한 작품들이 모두 원작의 캐릭터에 충실할 필요는 없다. 보수적인 팬들의 원성을 받을지라도 변형된 캐릭터들로 성공한 작품들은 많다. 때로 그런 변화는 의무적이다. 슈퍼맨만 해도 만화 시리즈가 처음 데뷔했던 20세기 중엽과 지금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캐릭터 역시 시대에 맞추어 변형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마시길. <스몰빌>의 클락 켄트는 21세기 초를 사는 젊은이들의 심리와 모습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여전히 슈퍼 영웅계의 보이스카우트인 오리지널 캐릭터의 핵심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어떤 캐릭터가 인기있고 유명하다면 그 캐릭터의 정수는 간직하는 게 좋다. 그걸 날려버린다면 포장만 같고 내용은 전혀 다른 엉뚱한 유사품을 파는 것과 같다. 비싼 돈을 주고 판권을 구입해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페이션스 필립스 양은 어떨까? 언뜻 보면 할 건 다 하는 것 같다. 보석 도둑이고 프로 페미니스트이고 유혹적이고 고양이를 닮은 날렵한 액션을 선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말 많던 고양이옷? 분명히 미셸 파이퍼의 난도질 고양이옷보다는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배우들의 복지도 고려해야 하고(파이퍼가 <캣우먼> 영화를 거부한 게 그 불편한 옷 때문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이미 여러 번 등장한 짝 달라붙은 가죽옷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이 영화의 고양이옷은 파이퍼의 고양이옷보다 특별히 원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페이션스가 덜 고양이다운가? 오히려 미셸 파이퍼의 셀리나 카일보다 고양이 짓은 더 한다. 쥐오줌풀이 든 공이 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개들을 위협하는 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고양이 짓들 중 극히 일부이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페이션스 필립스는 캣우먼이 되기엔 너무 건전하다. 이 영화의 캣우먼은 마치 페미니스트 이론 강좌를 듣는 대학교 2학년생처럼 행동한다. <캣우먼>과 페미니즘의 연결성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배트맨> 시리즈의 악역으로 출발했던 이 캐릭터가 당당하게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주역에 설 수 있었던 건 이 캐릭터의 섹스 어필 때문만은 아니다. 캣우먼은 건전한 바른생활 주인공인 원더우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화 세계의 여성 캐릭터에게 자유를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의 세계’를 방문하자마자 미합중국이라는 시스템에 종속되어버린 원더우먼과는 달리 캣우먼은 모든 시스템과 법규, 심지어 악당들의 규율에서도 해방되어 있었다.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이 기가 막혔던 건 파이퍼가 이 극단적인 자유의 쾌감과 고통을 감춤없이 모두 표출해냈기 때문이었다. 할리 베리의 캣우먼은 이 모든 걸 놓쳐버린다. 페이션스 필립스는 자신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남의 머리를 빌린다. 여기서는 반쯤 좌절한 페미니스트 교수로 등장하는 오필리아가 그 ‘머리’이다. 따지고보면 페이션스는 극단적인 자유를 바랄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처절한 사회적 패배자로 시작한 셀리나 카일과 달리 페이션스는 괜찮은 친구들과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을 사는 평범한 직장 여성에 불과하다. 심지어 페이션스는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 못한다. 트라우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페이션스의 캣우먼은 뒤뚱거린다. 자신의 욕망도 약간 채우고, 사회적 의무감도 조금 채우고, 폼도 조금 잡으면서 좁은 울타리 안을 빙빙 도는 것이다. 아마 영감을 얻기 위해 남는 시간 동안 <오프라 윈프리 쇼>도 조금 봤을 것이다. 오프라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법률과 이성을 초월한 절대적인 자유인이어야 마땅할 캣우먼이 오프라 페미니즘 안에 얌전히 갇혀 뱅뱅 돈다면 이것은 예술적 붕괴이다. 도대체 왜 이런 모범 시민이 고양이옷을 입고 자신이 캣우먼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주홍글씨>로 돌아온 배우 한석규

<이중간첩> 개봉을 앞두고 “다음에는 밝은 이야기에서 밝은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고 했던 소망을 한석규 스스로 ‘배반’했다. 그는 <텔미썸딩> <쉬리> <이중간첩> 등에서 맡았던 비극적 캐릭터를 <주홍글씨>에서 격렬하게 되풀이한다. 범죄와 음모에 휘말리는 운명적 캐릭터, 그러나 끝내는 스스로를 회의하게 되는 캐릭터. <주홍글씨>에서 강력반 반장 기훈 역을 맡은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다. 명석한 두뇌만큼 터프하고 자신감에 넘쳐서 아내와 연인을 동시에 거느리는 사생활도,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살인사건도 거침없이 풀어간다. 문제는 아내(엄지원)와 아내의 친구이자 정부(이은주)와 맺고 있는 삼각관계가 아니라 사진관 여인 경희(성현아)에게서 터져나온다. 그녀 남편의 머리를 백주대낮에 처참하게 짓뭉갠 자가 누굴까? 기훈이 그 범인을 찾는 건 시간문제인 듯했다. 그런데 투명해 보이던 단서가 조금씩 어긋나더니 엉뚱한 데서 오래도록 고인 고름이 터져나온다. 그렇게 자신있던 비밀스런 사생활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는 절묘하게 추락해간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오간다. 마치 아내와 정부의 끈적끈적한 침대를 오가듯. <이중간첩>이 그의 앞에 버티고 선 높은 기대의 장벽을 넘지 못한 탓에 <주홍글씨>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주홍글씨>는 불륜의 치정극과 살인 미스터리를 교차시키는 상업영화다. 그 교차는 긴장과 집중의 고조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내면 혹은 진실을 비춰주는 거울 노릇을 한다. 그러다가 최후의 순간에 격하게 충돌하면서 교차의 매듭을 거세게 풀어버린다. 그런 영화의 모습이 이즈음의 한석규를 닮았다. 거침없음과 깨달음 사이에서 고통을 겪다 마침내 매듭을 잘라버리고 나선 것 같은. 그를 부산영화제가 막 열린 해운대에서 만났다. <주홍글씨>가 부산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하고 영화제에서 만났으니 이에 대한 질문부터. 개인적으로, <접속>이 제1회 부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됐을 때 관객 반응이 아주 좋았고, 그것이 그대로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던 것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영화제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나. 개인적으로 페스티벌을 부담스러워한다. 반대로 말하면 관심이 없다는 뜻도 된다. 해외영화제는 가본 적이 없다. 부산은 1회 때 왔었는데 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 게 오히려 인상에 남는다. 아파트가 많아지고, 없던 다리가 생기고. 전에는 공항에서 해운대쪽으로 오는 데 요금을 한번 내면 됐는데 이번에는 3번을 냈다. 그게 인상 깊다. 나중에는 몇번을 더 내야 할까? (웃음) <주홍글씨>에서 기훈은 센 사내다. 우리가 아는 한석규의 이미지와 달리 영화에서 그 이미지를 꽤 오래도록 밀어붙인다. 어땠나, 힘들지 않았나. 악역을 하면 쾌감을 느낀다. 악역이라면 <넘버.3>의 태주, <서울의 달>의 홍식, 그리고 <주홍글씨>의 기훈 정도를 들 텐데, 이번에는 그런 인물을 해보고 싶다기보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인물 때문에 영화를 했던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기훈 역을 하면서 쾌감을 느낀 것도 있는 반면에 어려웠던 것은…, 음~, 없네. 한석규라는 인간을 변주하고 왜곡한 것이지 완전히 다른 걸 한 건 아니다. 앞으로는, 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나가서 할 수 있을지 궁금한데 그런 걸 해보고 싶다. 나로부터 완전히 탈출해서, 초탈한 그런 느낌을 갖고 싶다. 그에 비하면 이번 기훈은 변주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해서 말인데 솔직히 ‘불륜’으로 당분간 뭘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주홍글씨>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 같다. 결혼 전에는 관객에게 해주고 싶다는 걸 못 느꼈던 이야기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 하려는 사람들, 했던 사람들에게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밝고 긍정적인 쪽보다 어둡고 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앞으로 더 들려주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틈틈이 더. 그런 작업을 통해 역으로 사랑의 좋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주홍글씨>는 기훈이 사랑이란 소재를 통해 성장하는, 남자어른의 성장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훈이 믿었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기훈이 연인과 나란히 누워 “나도 (아내) 사랑하고, (아내도) 날 사랑해”라고 힘주어 말하는데 그는 바람을 피우면서도 무엇을 믿고 싶었던 걸까. 성장영화라? 맞는 말이다. 옛날 <서울의 달> 대사 중에 명대사라고 생각했던 게, “사람은 누구나 제비 한 마리쯤 키우고 있다”고 홍식이 말하는 대사였다. 굉장히 좋은 대사인 것 같다. (현실에선) 속에 있는 제비를 날릴 것이냐 아니면 속에서 삭이고 삭여서 말려죽일 것이냐의 차이다. 이번 작품에선 여러 마리를 날려도 자신있게 날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얼마든지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제비를 다 예쁘고 행복하게 날려줄 수 있다고 믿는. 그것을 완벽한 사랑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그런데 기훈은 계속 잘했을 것이다. 여기서 두집 살림을 하지만 다섯집 살림을 해도 완벽하게 모든 여자를 다 사랑했을 것이다.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를 통해서 자중하자, 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웃음) 그런 기훈이 자기가 다루는 사건과 본인이 겪는 개인적인 사건을 통해 마지막에 뭔가를 깨달은 모습이다. 영화의 헤드 카피가 ‘어긋난 사랑의 대가’다. 어긋난 사랑은 치우고, ‘대가’다. 내가 내뱉었던 말들, 했던 행동들의 모든 결과물. 영화에서 사랑을 통해서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을 떠나서 모든 말과 행동들이 부르는 책임과 결과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주홍글씨>를 만든 게 아닐까. 작품 하기 전에 감독님과 궁합이 잘 맞고 서로 너무 좋아했던 게 이런 것에 의기투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근데 이거 좋은 답이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자꾸 선문답하는 것 같다. 비록 누군가 죽지만, 그 대가라는 것을 긍정적으로 다루려는 듯했다. 그가 이 사건을 겪으므로 해서 앞으로는 달라지니까? 긍정적인 대가로 볼 수도 있겠네. 그래도 그가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반성하고 착하게 산다? 비로소 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것인데, 그 마지막의 이미지가 배우 한석규의 평소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근래 부쩍 들어서 내가 쌓아왔던, …내가 쌓아온 건가? 그런 것에서 다 그만두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제는 그만! 앞으로 얼마나 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걸 해보고 싶다. 악역이든 뭐든. 나이가 한두살 더 먹으니까 성장영화랄까 그런 걸 하고 싶다. 그러면 불륜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려나? 성현아의 캐릭터가 특히 그랬는데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에 대해 한수 가르쳐주려 했던 건가. 맞다. 그렇다. 잘못 생각하고 착각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영화 후반부의 차 트렁크 장면은 언뜻 굉장히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테마를 건드려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힘들게 찍었을 것 같다. 굉장했다. 아주 끔찍했다. 시나리오 봤을 때부터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장면이다. 촬영하면서 문득문득 스탭들에게 물었다. 이 영화에서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십중팔구 다들 이 장면을 이야기했다. 관객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고 싶다. 한번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찍기 전에 은주랑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다, 지옥문을 열어보자고 했다. 3일간 찍었는데 너무 힘들었고…. 결과는 모르겠다. <이중간첩>에서 고문받을 때 뒷모습 누드를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좀더 자주 보여준다. 그 점에서도 <주홍글씨>는 센 영화다. 그렇다. 트렁크를 열었을 때, 모르겠다, 직감적으로 벗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에는 옷을 걸치고 있다. 감독에게 벗고 싶다고 제의했다. 떡볶이처럼(웃음), 피를 흠뻑 뒤집어쓴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 센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신들은 이은주와의 베드신들인데 시나리오에 강력하게 써 있다. 찍으면서 진솔한 베드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나는 베드신이 있는데,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의 식탁 위 베드신, <몬스터볼>의 베드신 같은 것. 맨 처음 베드신을 읽고는 <포스트맨…>의 장면을 떠올렸다. 두 인물의 감정이 관객에게 딱 다가가는 장면이 돼야 할 텐데, 그 걱정만 했다. 살아 있는 베드신이었으면 했다. 이은주랑 같이 벗었다, 가 아니라. 어땠나? …예뻤다. 예쁘면 안 되는데…. 쉽지가 않더라고. (웃음) 같은 남자로서 보기에 왜 기훈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을까. 잘난 척해서 그렇지 뭐. 똑똑한 척하고. 그러다가 대가를 받은 거지. 1995년에 영화 데뷔작 <닥터 봉>을 내놨지만, 실제로 영화 카메라 앞에서 선 지 10년 됐다. 소회는. 많이 좋아졌다. 연기가. (웃음) 이제 좀 볼 만하다. 얼굴도 괜찮아진 것 같고. 전에는 인생의 쓴맛이 없는 얼굴이었는데. 시사 때 내 연기,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좀 쓸 만해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 보여줬던 신중함에 비하면 굉장히 과감하게 작품을 선택하고 밀어붙이는 쪽으로 바뀐 것 같다(그의 차기작이 사실상 제작에 들어갔다). 그렇지는 않은데. 앞으로도 궁합이 맞으면 또 모르겠지만. 이제는 게임 자체를 좀 폭넓게 하고 싶다.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려서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았던 것 같다. 이제는 좀 넓어진 것 같다. 상대방이 경계하는 것도 잘 보이고, 감독이 지시하는 것도 잘 들리고, 경기를 보고 있는 관객도 잘 보이고. 점점 시야가 더 넓어지겠지. 그 경기 자체를 즐긴다고 할까,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경기를 하고 싶다. 경기의 중반전을 뛰었고, 이제 후반전에 들어가는 건데, 후반전이 더 중요하다. 전반전 때는 내리 달리기만 했다. 골대는 저기다, 하고 지르기만 했는데 이제는 패스도 좀 하면서 하려고 한다. 기쁘고 멋진 경기를 해서 잘 마무리하고 싶다. 데뷔 초반 무렵 함께 일했다가 최근 다시 작업하게 된 영화인들에게 물었더니 ‘원래 적극적이지만 더 적극적이 됐다’, ‘이전에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좀 유들유들해졌다. 그러니까 편해졌다’ 등의 평을 꺼내더라. 나도 들었다. 무슨 의미일까, 좋게 이야기하면 관리를 잘했다는 건데,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아까 이야기한 이제 좀 쓸 만해졌구나, 하는 뜻이 아닐까. <접속> 하고 그럴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참 불안불안했는데, 두드리고 또 두드려보고 갔으니까. 지금도 두드리긴 하지만 전에는 열번 두드릴 거, 이제는 한번 두드려보면 딱 나온다. 내가 했던 것을 싫어한다기보다 좀더 중요한, 그리고 좀더 궁극적인 쪽으로 가고 싶다. 역시 남자배우는 40이 넘어야 한다는 말이 맞다. 궁극적인 걸 하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고 싶은 캐릭터가 하나 있다. 조신이란 인물. 이인모라는 인물이 있었지만 <이중간첩>을 통해서 어느 정도로 풀어냈고. 연극으로 <조신의 꿈>이 있는데 이 불교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조신의 꿈>은 지금 절실한 욕망이 결국 고통의 근원이며 미래의 굴레가 된다는 설화). 정확히 말하면 배창호 감독님의 <꿈>을 리메이크하는 거다. 왜 조신인가. 그 이야기가 좋으니까.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또 이런 이야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 내 처가 나의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근데 어떤 여인을 만났는데 아니었던 거다. 이 여자가 진짜 사랑인 거 같다. 그러면 어떡하나? (웃음) 이걸 어머니에게 한번 농담처럼 물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냐고. 평소 같으면 바로 뭐라고 했을 텐데, 심각하게 오래 생각하시더니 ‘그럴 때는 산에 가라’ 하시더라. (웃음) ‘산에 가서 그러면 안 된다, 맘을 가다듬고’ 오라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면 아내에게도 말을 건네봤을 텐데. 아내한테는 아직 말 안 했는데, 이거 오늘 가서 해야겠네. (웃음)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영화에서 장르의 다양성을 확장시켜오는 데 주도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새로운 멜로를, <텔미썸딩>으로 스릴러다운 스릴러를, <쉬리>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은행나무 침대>에선 CG와 판타지영화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와 함께 한국의 장르영화가 성장해왔고, 장르별로 태어난 또 다른 최고의 배우들이 그뒤를 잇고 있다. 이제 당신의 작품 선택 기준은. 장르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 모든 장르를 다 해보고 싶다. 독립영화도 해보고 싶고. <도그빌>을 보고는 그런 영화도 해보고 싶었다. 장르보다는 이야기다. 건방진 말 같지만 영화는 이야기가 전부인 것 같다. 두 시간 동안 관객에게 자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고 들려주는. 고정관념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끝으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예전에 “연기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연기가 더 힘들 듯이 인터뷰도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왜 그렇게 인터뷰를 안 하려고 하나(이번 인터뷰도 길고 긴 난항을 거쳐 성사됐다). 하면 다 하고 안 하려면 다 안 해야 하는데, 그거 대가 아닌가. 배우라는 일은 말보다는 몸으로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로, 언어로 하는 직업이듯. 그리고 말이라는 게 5년 정도 지나니까, 내가 했던 말들이 다 쓰레기 같은 말들이었다. 그때는 내 잘났다고 떠들었던 말들인데, 좀 지나고 보니 다 쓸데없는 말들뿐이었다. 그래서 느꼈던 게 말보다는 몸으로 하는 직업이구나, 였다. 배우로서 행로가 중요하지 어떻게 어떤 연기를 했느냐, 인생이 어떠냐 하는 게 뭐 중요할까. 내가 이렇게 2004년에 <씨네21>과 인터뷰한 걸 누가 기억해주겠나. 말보다는 몸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인터뷰가 싫다. 대가도 치러야 하고. (웃음)

드라마만 보면‥대한민국은 불륜공화국?

한국방송 <두번째 프러포즈>와 <부모님전상서>에선 남편의 불륜이 이혼 사유가 되거나 부부관계의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등장한다. 문화방송 에선 아내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불륜에 목숨거는 주체로 나온다. 에스비에스 <아내의 반란>은 성적 트러블 때문에 빚어지는 부부의 맞바람을 경쾌하고 코믹하게 그린다. 우측 첫번째 사진부터 <아내의 반란>, <부모님 전상서>, 드라마만 보면, 대한민국은 가히 ‘불륜 공화국’이다. 현재 지상파 방송 3사의 방영 드라마는 모두 23편. <한겨레>가 하나하나 따져보니 이 가운데 불륜 코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작품은 8편 뿐이다. 65% 가량의 드라마는 어떤 형식으로든 불륜을 극 전개의 주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국회 개헌의결선에 근접하는 비율이다. 방송사 별로도 큰 차이가 없다. 한국방송은 11편 드라마 중 <알게 될거야> <이순신> <반올림>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금쪽같은 내새끼>를 뺀 6편의 드라마가 불륜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유혹>과 <두번째 프러포즈> <부모님전상서> 등은 30대의 현재진행형 불륜을 그리고 있고, <티브이소설 그대는 별>과 <오!필승 봉순영> 등은 부모 세대의 불륜이 극 장치로 배치됐다. 금요일 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은 이혼부부 사례에 기초한 실화드라마답게 불륜이 드라마의 핵심 소재이자 주제다. 문화방송은 좀 더 심각하다. 시트콤을 빼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는 모두 6편. 이 가운데 불륜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은 것은 20대 후반 남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루는 일요 아침드라마 <단팥빵> 하나다. 월화 드라마 <영웅시대>는 주인공 기업가의 과거 얘기 속에 불륜을 녹여내고 있고, 주말드라마 <한강수 타령>은 언니(김혜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생(김민선)에게 접근하는 남자(최민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새 수목드라마 에서 엄정화는 남편을 속이고 불륜에 빠졌다 결국 이혼한다. 아내의 불륜이 비극 단초를 제공하는 아침드라마 <빙점>으로 하루를 시작해, 부모 세대 불륜의 어두운 후과가 펼쳐지는 저녁 일일드라마 <왕꽃선녀님>을 거쳐, 날마다 다른 색깔의 불륜 이야기를 담은 밤 시간 드라마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게 했다. 한편빼고 전부 ‘불륜’인 방송사도 에스비에스도 다르지 않다. 심혜진과 이종원이 불륜남녀로 그려지는 아침드라마 <선택>에서 ‘부부 치유 드라마’를 표방하며 부부 3쌍의 맞바람 기싸움을 묘사하는 금요드라마 <아내의 반란>까지, 6편 드라마 중 5편에서 불륜이 주요 코드로 등장한다. 남자의 외도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문제시되지 않던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장길산>이 유일하게 빠졌다. 드라마가 그리는 불륜의 양상은 다채롭기까지 하다. <오!필승 봉순영>이나 <왕꽃선녀님> <남자가 사랑할 때> 등에선 과거 부모 세대의 불륜이 자녀 세대의 운명에 개입하는 요소다. 대기업 후계자의 사생아로 태어난 오필승은 백수건달에서 순식간에 회사 차기 경영자로 올라선다. <왕꽃선녀님>의 초원은 호텔사업가 아버지와 무녀 사이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과 파양을 겪은 끝에 결국 무녀의 길을 밟게 된다. <남자가 사랑할 때>에선 부모 세대 불륜과 치정, 복수극이 자녀 세대의 사랑과 얽히며 남녀 주인공 고수와 박정아가 모두 숨지는 비극을 부른다. 젊은 시절 사랑했으나 여자의 신분상승 욕망 탓에 헤어져야 했던 고수-박정아 사이에도 법적 불륜의 ‘결과’인 아이가 남는다. 방송 3사 드라마 65%가 ‘불륜코드’ 작가·피디들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 시청자 게시판 “아예 불륜광고 질타” 반면 수요일 밤 맞붙는 한국방송 <두번째 프러포즈>나 문화방송 는 부부의 불륜을 정면으로 다룬다. 둘 다 남부러울 것 없던 부부가 새로운 사랑 앞에 흔들리며 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차이도 있다. <두번째 프러포즈>에서 남편(이영호)이 불륜을 운명적 사랑으로 당당히 선언하는 주체로 나온다면, 에선 엄정화가 자식과 가정을 버리고 남편 아닌 남자를 선택하는 아내로 등장한다.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 속 시각도 엇갈린다. 한국방송 주말극 <부모님전상서>에서 남편 허준호의 불륜은 절실한 느낌없는 한때의 바람 또는 외도로 묘사된다. 물론 아직 그의 바람은 건전한 가정을 위협하는 칙칙한 뒷골목 냄새가 배어있다. 에스비에스 금요드라마 <아내의 반란>은 경쾌한 어조로 부부 불륜을 다룬다. 조민기-변정수 커플은 성적 트러블 때문에 서로 맞바람을 핀다. 부부관계에서 성이 사소한 문제일 순 없지만, 애절한 사랑이나 심각한 갈등 따윈 따르지 않기에 둘의 불륜은 한없이 가벼워 코믹하기까지 하다. 지난주 끝난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아일랜드>에선 불륜이 아예 그 ‘부도덕’의 흔적을 지워냈다. 중아-강국과 시연-재복은 서로 ‘교차 불륜’에 빠져들지만, 서로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담담한 여정처럼 그려질 뿐이다. 영혼을 잠식하는 죄의식과 불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아와 강국은 사랑의 상대를 바꿨으면서도 둘의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하고, 친구로 남는다. 1996년 유부남(유동근)-유부녀(황신혜)의 불륜을 그림같은 영상으로 잡아낸 드라마 <애인>은 국회 상임위에서 ‘불륜 조장 드라마’라는 질책을 받았다. 지난 3월엔 방송위가 아침 드라마의 ‘불륜성’에 따끔한 일침을 놓기도 했다. “최근 지상파 3사 아침드라마는 불륜과 치정에 따른 애정갈등과 가족 반목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익성 윤리성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불륜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드라마 소재로 가장 빈번히 차용된다. 작가와 피디들은 “드라마가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내의 반란> 연출을 맡은 곽영범 피디는 “여러 아줌마들 만나서 얘기들어보면 강남쪽의 유부녀 치고 애인없는 사람이 없단다”고 말했다. 필연적 묘사까지 도매금으로‥ 그럼에도 불륜 일색의 드라마 구성에 대한 시청자의 눈길은 따갑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아이디 ‘캣크라이’는 “가뜩이나 이혼율도 높은데 드라마가 아예 이렇게 하면 불륜 성공한다고 광고를 해댄다”고 질타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불륜 소재에 집중하는 탓에 드라마 자체의 다양성과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도덕적 비난 못지 않다. 삶의 다양한 계기에는 눈돌리지 않고 천편일률로 불륜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는 드라마 자체의 활력까지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네티즌 ‘은피아’는 “<풀하우스> <대장금>의 인기는 건강드라마였기 때문”이라며 “난 불륜드라마는 절대로 안본다”고 했다. 현실 묘사를 위한 불륜의 소재화는 불가피할 터이지만, 드라마 속 불륜이 현실의 과잉된 반영이진 않은지, 그 때문에 우리 삶의 다른 굴곡들은 외면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필연적인 불륜묘사마저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게 된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시점이다.

하지원, “사랑은 그리워하는 것”

영화 <키다리 아저씨>에 출연 "사랑이요? 전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사랑 아닐까요? 꼭 말로 해야 사랑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폰>과 <색즉시공>, <내사랑 싸가지>, <신부수업> 등을 잇달아 흥행시킨 하지원이 로맨스물 <키다리 아저씨>(제작 유빈픽쳐스,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화 속 여주인공 영미로 '변신'한 하지원을 24일 촬영이 진행 중인 충북 청주대학교에서 만났다. 영화 <키다리 아저씨>는 미국 작가 J. 웹스터의 동명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하지원이 연기하는 영미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랐지만 밝은 아가씨. 원작 소설에서처럼 영미도 대학 4년 내내 자신 몰래 누군가 등록금을 대신 내준 '키다리 아저씨'를 마음에 품고 있다. 영화는 방송국 작가로 일하게 된 영미와 방송국 자료실 직원인 준호(연정훈) 사이의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랑은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그는 사실 "아직 그리워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고. "올 가을에는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할 사람을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주인공 영미에 대한 설명은 '평범한 캐릭터'라는 것. "귀여운 척 하거나 엽기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그는 "영화 출연 계기도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주는 편안한 느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가 주는 멜로의 느낌이 우선 마음에 들었어요. 그 다음에 와 닿았던 게 이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다르게 제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였고요." 하지원은 상대역 연정훈과의 연기 호흡에 대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둘은 1978년생 동갑내기. '야자' 트는 사이라는 연정훈에 대해 칭찬이 흘러나왔다. "TV에서만 봤을 때는 '느끼한' 바람둥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같이 연기해보니 영화 속 준호처럼 차분한 역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매너가 좋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후반으로 갈수록 연기 호흡도 잘 맞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하고 있어요" <다모>와 <발리에서 생긴 일> 같은 TV 드라마와 영화 <내 사랑 싸가지>와 <신부수업>까지 하지원은 최근 1년 새 특히나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는 물론 <형사>에도 일찌감치 캐스팅이 된 상태. '다작배우'라는 말에 그는 "체력이 허락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다"고 대답했다. "특별히 많은 작품에 출연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겹쳐서 출연을 한 적도 없고 그저 출연할 작품들이 계속 이어지는 셈이죠. 자꾸 (연기)하고 싶은 좋은 작품이 나오는데다 체력에서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쉴 틈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막바지 촬영 중인 <키다리 아저씨>는 내년 1월 개봉할 예정이다.

끝없는 욕망의 원죄, <주홍글씨>

두방의 총탄은 트렁크 바깥에서 안으로 뚫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뚫고 나간 것이다. 첫 장면은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정보를 갖지 못한, 혹은 후반부를 목격하지 않은 어느 누가 이 순간 총탄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 이 첫 장면은 <주홍글씨>가 다룰 내용에 대한 요약이다. 김영하의 단편소설 <사진관 살인 사건> <거울에 대한 명상>을 원작으로 한 변혁의 두 번째 장편영화 <주홍글씨>는 바로 그 보이는 사실과 숨겨진 진실의 경합에 대해 진술하고 있으며, 엇갈린 애정의 총탄이 어디로 날아가 어떻게 박히는지 그 탄착지를 추적해가고 있다. 살인 사건 현장에 도착한 강력반 반장 기훈(한석규)은 사진관 여주인 경희(성현아)를 만난다. 그녀는 유력한 살인 용의자다. 기훈은 보험금을 노린 사진관 여주인 경희가 그녀의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였다고 짐작하지만, 증거를 잡지 못한다. 게다가 점차 그녀는 묘한 성적 매력까지 풍기며 기훈의 판단을 흐린다. 쉽게 풀릴 듯했던 사건이 점점 미궁에 빠질 무렵, 기훈의 사생활이 등장한다. 외양만으로는 임신한 아내 수현(엄지원)과 행복한 신혼 살림을 살고 있는 기훈,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연인 가희(이은주)가 있다. 그리고 가희와 수현은 대학 동창이다. 아내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기훈의 사생활과 치정이 일으킨 듯한 사진관의 살인 사건, 그 두축이 기훈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간다. 영화의 후반부, 가희의 생일날 인적 드문 교외에 차를 세워놓고 로맨스를 즐기던 기훈과 가희는 얼떨결에 트렁크에 갇히게 된다. 결국 그 속에서 진실은 튀어나온다. 관습적인 제약을 벗어나서 이해할 경우, <주홍글씨>는 전작 <인터뷰>가 취했던 후던잇(whodunit) 구조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조는 단순히 상업적인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채택된 것이 아니다. 동시에 장르의 체질에 기대서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장르의 근친성 안에서 스릴과 반전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던진 질문의 망과 인물들의 관계 자체가 그 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인터뷰>는 실상 영희라는 미지의 인물에 관한 한 영화감독의 심리적 애정 추리극이었고, 그녀의 정확하지 않은 진술들의 연쇄가 지어내는 모호한 이야기 집의 건축 과정이었다. <인터뷰>에서 영희는 곧 사건이었고, 대상이었고, 해법이었다. 변혁은 <주홍글씨>에서 그 방식을 버리지 않고 재가동한다. <인터뷰>에서 그 많은 ‘진술’들이 카메라를 들이댄 감독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었다면, <주홍글씨>에서는 범인을 쫓고 사생활을 돌보는 형사의 위치에서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변혁은 그것을 전작과 마찬가지인 두개의 이야기 구조로 만든다. 기훈의 불륜이라는 화자의 내부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그가 마주친 타인의 유사한 사건에도 동시에 관심을 쏟는다. ‘개인 사례의 일반화’, ‘객관과 주관의 넘나듦’이 바로 영화 <인터뷰>가 담고 있는 중심이다. 결국엔 그 영화의 화자인 영화감독도 수많은 일반인들의 사랑 경험 중 하나로 선례를 남긴다. 그 점에서 <주홍글씨>의 기훈이 도전하는 미제 사건의 본질은 스스로가 겪고 있는 불륜의 치정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주홍글씨>의 주인공 기훈은 진의 모를 진술을 거듭하는 경희(마치 <인터뷰>의 영희 같은)를 상대해야만 하고, 한편으론 스스로가 처한 곤란한 사랑을 관객에게 관찰당하는 위치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그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인터뷰>는 선함에 대한 결말에 이르고, <주홍글씨>는 악함에 대한 결말에 이르는 차이를 보인다. 중반까지 과소의 힘으로 버티던 영화는 기훈과 가희가 자동차 트렁크 안에 갇혀 지내는 순간부터 과잉의 힘을 발산한다. 한석규, 이은주 두 배우들은 극한의 에너지를 요구받고 견뎌냈음이 분명하고, 한석규는 ‘파멸하는 남자’의 오열을 충분히 토해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물들의 관계는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 기훈을 제외한 인물들이 자아를 갖지 못하고 서성이는 쪽에 가까운 건 치명적인 결함이다. 예컨대 성현아가 맡은 경희는 <인터뷰>의 영희보다 훨씬 덜 미스터리하게 보이고(더불어 그녀의 내러티브는 첨언처럼 보이고), 수현은 눈여겨보아야만 존재를 알 수 있다. 혹은 기훈을 둘러싼 안과 밖의 이중구조가 메시지를 확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나 명확한 동심원을 가지면서 죄악의 미스터리는 힘있게 팽창하질 못하고, 엇갈린 애정관계 속에 들어 있어야 할 인물들의 더럽고, 구차하고, 치사한 감정들은 양식적으로 느껴지는 죄악과 대가의 드라마로 마무리된다. 그 미시적인 드라마가 인류 일반의 원죄(영화 도입부에 인용된 창세기)라는 거대한 선악의 본질에 거꾸로 닿으면서, 오히려 추악한 욕망의 날카로운 표면들은 뭉툭해져버린다. 인물들은 진흙탕에 빠져 있는데, 그들의 감정은 하늘에 닿아 있다. <주홍글씨>는 보기 드문 통찰의 힘을 갖고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당연히 있어야 할 더럽고 거친 정서의 울림이 부재하는 영화이다. :: 변혁 감독 인터뷰 “<주홍글씨>는 <죄와 벌> 같은 이야기다”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또 표현하고 싶었나. 욕망과 그 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표적으로 그걸 나타내는 방식이 사랑이다. 불륜에 대한 이야기지만, 좀더 중요한 건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욕망이다. <주홍글씨>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넓게 보면 <죄와 벌> 같은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김영하의 <사진관 살인사건> <바람이 분다> <거울에 대한 명상>에서 캐릭터와 내러티브 설정을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는. 끝내는 영화 속에 두편을 썼다. 세편 다 넣기에는 버거웠다. 세편 모두 정상적인 애인관계가 아니고 어긋난 사랑을 다루고, 엇갈린 관계가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구조적인 비슷함을 끌어다가 쓴 것이다. 김영하 소설에는 현대적인 싸늘함이 있다. 그 주제나 세계관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느낌상으로는 공감한다. 그래서 그 분위기와 플롯을 따온 것이다. 왜 <주홍글씨>라는 제목을 붙였나. <주홍글씨>라고 했을 때의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나. 사회적인 금기, 불륜 같은. 그 제목 자체가 갖는 주제적인 유사성, 또는 코드가 있는 것 같았다. 트렁크에 갇히는 상황이 어떤 느낌을 주었기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선택하게 된 것인가. 소설에서는 그 설정이 크게 발전되지 않는다. 옛날이야기를 회상하는 정도다. 사실 트렁크라는 공간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둘만의 공간이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가면 못 견디게 힘든 공간이 되고, 차라리 이 꼴을 보이느니 안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곳이다. 그러니까 처음 가졌던 욕망의 시작, 환상 같은 것들이 계속 이어질 경우, 그 끝이 굉장히 끔찍한 것이라는 점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주인공 이기훈이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 아닌가. 굉장히 예뻐 보이는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한 공간이다. 두개의 이야기 구조가 있다. 그중 사진관 살인 사건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기훈이 담당한 그 사건은 사적인 이야기하고 겹치면서 거울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진관에서의 사건은 후반부의 사건과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떤 특수한 한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탐욕, 죄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내가 원래 이중구조에 천착하기도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데에는 그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랑 연기를 배워가며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 정우성, 손예진 인터뷰 알츠하이머를 소재로 한 최루성 정통 멜로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25일 오후 CGV용산11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연배우 정우성, 손예진은 "처음으로 영화를 봤는데 머리 속이 하얘진 것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날 시사회장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연출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 영화를 왜 선택했나. 정우성 마지막 신 때문이었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기존의 정통 멜로 영화들과는 차별화를 이루는 장면이었다. 잡히지 않을 듯한 희망에 기대를 거는 철수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순간 철수가 수진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얼마나 소중한가. 손예진 알츠하이머 병이라는 소재가 독특한 느낌이었다. 기억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게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했다. 수진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멜로 연기를 한 소감이 어떤가. 정우성 늘 진지한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내 20대를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점이 청춘멜로 영화를 못 해본 것이다. 철수는 사랑을 간직했을 법한 인물이지만 사랑을 못해본 인물이다. 연기하면서 멜로 연기에 대한 갈증 등을 이입시키며 연기를 했다. 목 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면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다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숙제다. 손예진 나 같은 경우에는 왜 계속 멜로 연기만 하냐고 묻는데,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아, 이번에는 진짜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각오가 새롭게 든다. 멜로 연기는 끊임없이 도전하며 완성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일본에 일찌감치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기분이 어떤가. 정우성 굉장히 기분 좋은 소식이다. 돈을 떠나 현지에서 개봉을 하면 기대치에 맞는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랄 뿐이다. 실제로 연인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다면? 정우성 철수가 수진을 찾아 요양원에 간 장면에서 감정을 잡는데 무척 고생했다. 순간 나 정우성이 생각하는 사랑이 불현듯 내 머리 속에 들어와 철수의 감정을 방해할것 같았다. '그러면 넌 영화에서와 같은 사랑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그리 쉽게 대답할 질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영화처럼 상대방을 그만큼 사랑했다면 아마 끝까지 지켜주려고 노력은 할 것 같다. 손예진 수진과 똑같이 헤어지자 할 것 같다. 그것이 처음에는 힘들어도 5-6년간 병이 악화해가는 모습을 다 겪고 헤어지면 서로 너무 아플 것 같다. 행복할 때 헤어지는것이 좋을 것 같다. 정우성 씨는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려왔는데 조만간 연출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있어왔다. 정우성 연기는 계속 할 것이다. '청춘의 아이콘'은 버리기 아까운 수식어다. 청춘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 하고, 나 역시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출연할 용의가 있다. 20대에 연기하는 청춘은 거칠다. 지금 청춘을 연기하면 좀 더 성숙한 사고를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연출은 서른이 되면 하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민망하다. 항상 '내년에는 연출을 해야지'라고 생각해 왔는데 올해 역시 '내년에는 해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극중 수진이 남성 스킨향에서 추억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그런 냄새가 있나. 손예진 여름 바람 냄새가 좋다. 문득 창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바람 냄새가 대학때 친구들과 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정우성 여름날 소나기 냄새가 좋다. 또 가을날 포장마차에서 풍겨나오는 튀김 냄새도 좋다. 묘하고 훈훈하다. 정우성씨는 TV 드라마에 출연할 생각 없나. 정우성 난 배우다. 극중 철수가 목수인것처럼, 영화는 수공예적인 만족도를 준다. 물론 이점이 대중에게는 즉각적으로 다가가지 않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다만 요즘에는 내가 작품에 출연하는 텀이 기니까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속 편하게 드라마 한편 찍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앞으로 잡혀있는 영화들이 있다. 서울=연합뉴스, 사진=싸이더스 제공

MBC 새 수목드라마 <12월의 열대야>

문화방송 새 수목드라마 〈12월의 열대야〉에서 엄정화가 남편과 자식까지 버리고 젊은 남자와 지독한 사랑에 빠지는 결혼 10년차 주부 역을 맡았다. 드라마 출연 계획이 없었는데 대본에 끌려 출연을 결정했다는 그는 자신도 불나방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뛰어드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또 불륜 드라마냐’는 비판을 예상했는지 “여러 삶의 모습 중 하나로, 영화나 소설 보듯 공감하면서 봐줬으면 한다”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12월의 열대야〉는 어쨌든 불륜 이야기다. 기존 드라마와 차이가 있다면 ‘바람’의 주체가 아내라는 것뿐. 남편과 시가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던, 푼수끼 다분한 주부가 우연히 아픔 많은 젊은 남자를 만나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순진한 유부녀 엄정화-젊은 남자 김남진.“억압된 여성의 감정·자아 풀어놓을 것” 연출자 이태곤 피디는 “‘센 드라마’를 하고 싶은 생각에서 출발했다”며 “냉대하는 가족에 둘러싸여 겨울 같은 환경에 놓였던 주인공 영심이 젊은 남자를 만나면서 열정적인 사랑으로 불면의 밤을 맞게 돼, 제목을 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륜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여자가 젊은 남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며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감정이나 자아, 사랑은 철저히 억압돼 왔는데 바람난 여성을 남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경쾌하면서도 무게 있게 다뤄 보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대 경쟁 드라마인 한국방송 〈두 번째 프러포즈〉와 같이 불륜을 소재로 해서인지, 차별성 강조에 애를 썼다. 불륜이라는 소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코믹 요소도 가미했다. 주로 엄정화가 코믹 연기에 나선다. 조용한 시동생의 결혼식장에서 혼자 큰 소리로 운다거나, 자리를 피해 식장에서 뛰쳐나오다 한복을 입은 채 두 손을 들고 넘어진다거나 하는 모습은 시트콤으로 보일 만큼 ‘오버’ 일색이다. 문제는 코믹한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뼈아픈 사랑의 비극적인 상황을 소화해낼 것인가다. 자칫 잘못하면 ‘코믹’과 ‘비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칠 수도 있다. 제작진이나 출연자도 이에 대한 고민을 감추지 않았다. 엄정화는 “오버하는 연기와 그렇지 않은 연기 사이에 경계 설정이 너무 힘들고, 감정을 누르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 피디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혼재돼 음악 선정이나 연출이 고민스럽지만, 영심의 캐릭터에 주안점을 두고 후반부 비극적인 부분에까지 영심의 가벼움을 가져가 밝은 톤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주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은 〈아일랜드〉의 후속작임과 동시에, 현재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인 한국방송 〈두 번째 프러포즈〉의 경쟁작이기도 한 〈12월의 열대야〉. 흔하지만, 쉽게 시선을 끌 소재와 설정으로 안정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륜에 물린 시청자들이 웃음이라는 포장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도시를 질주하는 젊은 퓨전 스릴러, <썸>의 재구성 [1]

제목만큼이나 모호한 베일에 싸여 있던 <썸>이 그 실체를 공개했다. <접속> <텔미썸딩>에 이은 장윤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썸>은 5년의 긴 기다림만큼이나 다양한 기대와 추측을 불러왔다. 결국 <썸>은 세간의 예상과도 다르고, 장윤현 감독의 전작들과도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은 영화로 나타났다. 마약 탈취 사건을 수사 중인 형사, 그의 죽음을 (예견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교통 리포터가 24시간 안에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 한다는 기둥 줄거리는 비교적 심플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운명은 의지다’라는 믿음을 설파하려는 시도는 물론 여전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야기의 모티브인 데자부의 여운, 빠르고 화려하고 역동적인 영상의 힘이 압도하는 영화다. “온갖 스타일과 장르를 몰아 만들었다”는 감독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7개월 동안 촬영하고, 3개월 넘게 매만진 정성은 영화 곳곳에 드러나 있다. “데뷔하는 것처럼 긴장되고 떨린다”는 장윤현 감독에게 만남을 청해, <썸>을 특징짓는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어디에도 쓰이지 않은, 정형화되지 않은 단어를 제목으로 붙여, 일종의 브랜드나 고유명사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처럼, 영화를 본 관객이 “이 영화, 과연 ‘썸’하다“라고 반응할 수 있을지는 10월22일 이후를 기약해봐야 할 것 같다. Keyword1 FUSION - 장르는 섞이고, 시점은 나뉘고 <썸>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영화다. 특히 장르를 따지고 들어가면 혼선이 생긴다. <접속>의 멜로 코드와 소통의 주제, <텔미썸딩>의 스릴러 구조와 단절의 주제, 윤종찬 감독이 진행했던 <그녀의 아침>의 판타지적 요소와 데자부라는 소재, 장윤현 감독이 과거 수년간 준비했던 <테슬라>의 SF적 요소와 다세계 개념을 모두 쓸어넣은 영화가 <썸>인 까닭이다. “퓨전으로 보면 된다. 재료가 저마다의 맛을 갖고 있지만, 섞여서 새로운 맛을 낼 수 있어야 퓨전이다. 그동안 내가 지나왔고, 또 생각해온 모든 장르, 스릴러, 미스터리, 멜로, 판타지를 섞어서 한 줄기로 엮었다. 각 장르의 요소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그걸 모아 새롭고 특별한 맛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텔미썸딩> 때 어렵다는 지적을 많이 들어서, 그런 선입견을 지우고 싶었다. 이게 이해가 되나, 설명이 되나, 하는 고민이 늘었고, 그래서 촬영 기간이 길어졌다.” 굳이 정체성을 이야기하자면,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그날의 결론이 바뀌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 강조되는 만큼, 스릴러라기보다는 ‘미스터리 액션멜로’로 보는 것이 맞다는 설명이다. 장르가 혼재돼 있는 탓에 시점도 복잡해졌다. 데자부와 현실의 시점이 다르고, 배경과 인물에 따라 시점이 바뀐다. 물론 데자부로나 현실로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서유진(송지효)의 시점이 중요하게 다뤄지며, 모니터를 통해 강성주(고수)를 거듭 ‘바라보는’ 행동으로 은근한 멜로 무드가 연출되기도 한다. “멜로는 정서적, 감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둘의 시점으로 디테일하게 파고든다. 스릴러는 사건의 진행을 따르는 만큼 1인칭 시점이 적절하다. SF는 신기하게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 보여줘야 한다. 이 모든 장르를 아우르다보니, 이전보다는 복잡한 시점의 영화가 되었다.” Keyword2 DEJAVU - 과학보다 가깝고, 현실보다 먼 <썸>은 데자부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기억과 경험,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남자를 기억해”, “오늘 하루가 내 기억 속에 있어”라고 되뇌이는 여자. 이 데자부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생인가, 평행 우주인가, 아님 닥쳐올 미래인가. “경험했던 하루, 그러나 인지하지 못해서 경험이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하루다. 수십번 수백번 경험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인지하는 건 그중 하루뿐인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린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더 오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평행 우주나 다세계 가설보다 쉽게 풀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경험, 다른 삶이 진행되는 때는 의식과 현실이 단절되는 시간, 잠을 자거나 눈을 떴다가 감는 순간이라고 가정했다. 유진의 데자부는 모두가 잊어버리는 그 경험, 그 기억의 흔적이고, 이는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운명을 만들어갈 기회로 이어진다.” 유진의 데자뷰는 <썸>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가장 핵심적인 설정이다. 한발의 총성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데자뷰, 혹은 환상은 하루 종일 그녀를 쫓아다니며 ‘계시’적인 조각을 보여준다. 이 ‘계시’ 혹은 ‘기억’에 대해 장윤현 감독은 유진의 데자뷰가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운명을 만들어갈 기회”라고 설명한다. 영화 속에서 데자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어떤 찰나적 직관에 가까운 ‘사인’(sign), 그리고 존재했던 과거로서의 구체적인 ‘기억’이 나란히 이어지는 식이다. ‘사인’은 영상과 음향이 약간 흔들리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기억’으로서의 데자부는 얼굴 뒤로 과거의 사건이 파편처럼 떠오르거나, 바랜 듯한 옐로 톤으로 처리되는 다소 고전적인 기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기시감이 중요한 모티브이긴 하지만, 기시감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처리할 생각도 했지만, 이건 엄연히 현실을 타고 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도드라져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예지력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표현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로서의 데자부를 어떻게 영상화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던 고민이다. Keyword3 NEW FACE -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얼굴과 함께 <썸>의 남녀는 젊고 밝다. 장윤현 감독의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멜로에서든 스릴러에서든, 대체로 어둡고 느리고 정적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커다란 변화다. “<접속>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텔미썸딩>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의 얘기였다면, <썸>은 아직 희망이 있고, 싱싱한 젊은 친구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친구들의 얘기다. 전부터 서른 이전의 젊은이들의 얘길 한번 해보고 싶었다.” 우선 강성주는 기존 영화에서 만나왔던 강력계 형사와는 그 외양부터 다르다. 마약 거래 정보를 캐기 위한 위장이긴 하지만, 외제차와 피어싱과 문신이 썩 잘 어울리는 요즘 청년. 피로와 의문과 혼란이 휘몰아칠 때도, 상대에게 손을 흔들며 ‘난 괜찮아’ 하는 사인을 보내는 것이 습관일 만큼 낙천적인 캐릭터다. “경찰 이미지가 너무 고정돼 있어서, 달리 가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 언제나 남자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사건에 끌어들이는 전작의 여자들처럼, 교통 리포터 서유진도 영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해리 포터>의 영특한 꼬마 숙녀 ‘헤르미온느’의 이름을 ID로 쓰고 있는 서유진은 인간이라면 망각해야 마땅한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려내는 ‘신통력’을 발휘하고, 이로써 자기와 엮인 강성주의 운명을 바꿔놓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는 CCTV로 “어디선가 우릴 지켜보고 있고, 느닷없이 그 목소리를 들려주는” 교통 리포터라는 직업이 주는 신비감과도 맞물린다. “서른 이전의 젊은이들의 얘길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장윤현 감독은 고수와 송지효라는, 어찌보면 의외의 캐스팅을 했다. 그 결과 바른생활 청년이었던 고수는 터프하고 와일드한 강력계 형사로, 호러 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던 송지효는 평범하면서도 강단있는 교통 리포터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가 젊어졌으니 배우들이 젊어지는 건 당연했지만, 고수와 송지효의 캐스팅은 당시로선 의외의 선택으로 여겨졌다. 고수는 박카스 CF에서 비롯된 건실하고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가, 송지효는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의 호러 소녀 이미지가 강했고, 둘 다 영화로는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 다른 감성을 원했던 장윤현 감독은 그 자신처럼 그들 또한 “변신을 필요로 했고, 그러면 신선하겠다 싶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전에 본 적 없는 터프하고 와일드한 고수,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송지효의 모습은 그런 대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현장에서 당일 대본을 받아 촬영한 이들 ‘초짜’ 배우들의 불안과 혼돈이, 불길하고 숨가쁜 하루를 미덥게 만들어주는 데 일조한 것도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