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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는 통화중] 미디어사업에도 색깔논쟁이?

국내 미디어센터 1호인 미디액트를 둘러싸고 국정감사에서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미디액트가 본래 목적을 벗어나 이념교육에 이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는 말로 색깔논쟁에 불을 댕겼다. 고 의원은 ‘카메라를 든 남자’ 등의 강좌제목을 논거로 제시하며 “영화강좌를 통한 이념 교육과 투사 양성의 불순한 목적이 엿보인다”고 성토했다. 또한 지방 최초의 미디어센터 사업자로 선정된 전북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의 자격을 문제삼으며 “영화 이념 운동의 거점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대조적으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해마다 부진을 면치 못하는 종합촬영소 영상체험교육센터와 미디어센터의 실질적인 운용 성과를 비교하며 미디액트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천 의원은 “2002년 연간 참여자가 329명에 그친 영상체험교육센터와 달리 미디액트는 연간 6천여명의 교육인원을 배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비대여나 교육수강료를 통한 자체 자금 조달 부분을 통해 절반 정도를 해결하는 현재 예산에 대해 미디어센터의 공공성을 감안해 “전액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후에는 소장파 의원들이 2라운드를 치렀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정치활동인 낙선운동을 하는 단체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라며 전북 민언련을 재차 공격했다. 심 의원은 “영진위 금고가 그런 곳에 쓰이지 않도록 관리, 감독 잘하라”고 영진위에 충고했다. 곧바로 다음 질의에 나선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은 이는 “대북지원시 결핵약을 남침에 대비해 주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억지”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정상적인 과정의 사업공고와 심사를 통해 전북 민언련이 사업자가 되었다는 영진위의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게다가 낙선운동은 건전한 시민들의 유권자운동이며 미디어교육과 무관하다. 계속 지원을 확대해주기 바란다”며 색깔론에 맞대응했다.

대마초 마약규정 법률에 위헌법률 제청신청을 낸 배우 김부선

애마(愛麻)부인 김부선과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연락을 시도한 지 3일째인 10월19일, 처음으로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개별 인터뷰는 싫다고 했다. 이날 오후, 그는 대마초를 마약으로 규정한 현행 법률에 대해 해당 법원에 위헌법률 제청신청을 냈고,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의 답변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굳이 그가 배우 인생을 걸고 왜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는지 알 순 없었다. 게다가 대마초 옹호는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이었다(김부선씨에 따르면,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서 이 소송을 맡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법적으로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여론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고, 먼저 최근 출연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그는 출연 분량이 많지 않다며 인터뷰는 다음에 하자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심경이 복잡하다고 했다. 끈질긴 전화 공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유재현씨의 칼럼 때문이었을까(<씨네21> 465호 ‘김부선은 죄가 없다’). 결국, 그는 편하게 저녁이나 먹자는 말을 우회적으로 했고, 기자는 그걸 인터뷰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무례를 범했다. 현장에서 또다시 설득이 필요했던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는 말문을 연 뒤에 국가와 언론과 여론에 호도당했던 그간의 상처를 가리지 않고 2시간 동안 남김없이 털어놨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편견과 폭력에 시달렸지만 그의 말은 거침없었고, 당당했다. 위헌법률제청을 신청한 직후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대마초로 잡혀가도 누구든 판사가 가혹하게 (형을) 때리진 않겠구나 싶었다. 내가 이번에 낸 자료만 해도 굉장히 많으니까. 보면 알 거다. 대마초가 마약이 아니라는 걸. 잘한 일이구나, 사람다운 일을 했구나, 그랬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계기는 뭔가. 우선 김부선이 퇴폐범이라는, 폐인이라는 사회적인 모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또 학교에서 아스피린 한알 먹어도 ‘너, 엑스터시 하냐’고 놀림받는 내 딸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동안 대마초로 인해 나만큼, 혹은 그 이상의 아픔을 겪었을 문화예술인들의 팬으로서 대신 나선 것이기도 하다. 제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할 것인가. 한다. 혹시 대마초 전과자들 연락처를 알 수 있으면 좀 알려달라. 설득해서 같이 헌법소원 해야지. 물론 그들이 같이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갈 거다. 동참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진 않는다. 그 입장이 이해가 된다. 거절해야 하는 형편일 수 있으니까. 같이 하지 못해서 미안해할까봐 내쪽에서 말 건네기가 좀 두렵긴 하다. 전인권씨 같은 경우는 든든한 조력자 아닌가. 어제도 공연에 갔는데 또 나를 무대로 불러내시더라. 고기 먹고 나쁜 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풀 뜯어먹었다고 벌받은 사람 있다면서. 올라가서 욕만 하지 말고 관객에게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다. 한국에서 법이나 국가와 대항하는 건 목숨거는 일이라는 거 잘 알지만 응원군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장선우 감독님도 얼마 전 뵀는데, 대마초는 안 피우지만 내게 한표 주신다고 하더라. 앞으로 서명운동을 할 계획이 있다. 비난 여론이 많을 거라는 예상을 했을 텐데. 배우로서 망설임도 많았겠다. 친언니가 멍청하다고 그러더라. 왜 앞장서서 그러느냐고. 너만 피흘린다고. 조용히 2∼3년 있다 살금살금 재기하면 되는데 왜 바보처럼 그러냐고. 그런데 안 그러면 나보다 잘 나가는 스타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도 또 울면서 팬 여러분, 국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이걸로 끝날 것 같더라. 내 경우엔 숙명적으로 배우이고 싶은데 이제 그만 하라는 명령을 들은 것처럼 불쾌함도 들었고. 그렇다면 나 인간 김근희로 돌아가서 까놓고 누가 옳은지 한번 해보자. 밝은 세상 아래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한번 이 문제를 던져보자. 좋은 결과를 기대하나. 먼 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죽어서, 전에 똘아이네, 뽕쟁이네 놀렸던 사람들이 ‘되게 미안하다, 그 아줌마 말이 맞잖아’ 하면서 내 비석에 꽃이라도 한 송이 가져다주면 되는 거지. 아니면 대마초 떨이라도 남겨주거나. 법정에서도 그랬다.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줄 때 대마초가 가장 좋은 벗이었다고. 어쩌겠어. 벗이라는데. 벗이 뭔데. 구속 이후 거센 비난을 접했을 때 상처가 컸을 텐데. 댓글들 올라온 거 보면 ‘니네 딸도 먹이지 그러느냐’고 한다. 마약 딜러상하고 결혼시키지 그러냐고들 한다. 해보지도 않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난 전과 달리 우리 아이들이 영리하고 우리 사회가 굉장히 성숙했다는 믿음이 있다. 확실한 건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라는 내 진실이고, 이번 제청은 그동안 비겁하고 나약하게 살아온 내 삶에 대한 반성이다. 딸에게 대마초를 권할 자신이 정말 있나. 함께 <대마를 위한 변명>을 읽었다. 딸은 나중에 외국 가면 같이 대마초 하자고 할 만큼 깨어 있다.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아프게 자란 아이지만 그늘없이 건강하다. 물론 술, 담배, 마약 안 하고 살면 그거 이상 없겠지. 그런데 험한 세상 아닌가. 뭔가에 의해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면 난 정말이지 중독성 강한 술, 담배를 권하느니 대마초를 권할 거다. 대마초가 연기에도 도움이 되나. 일단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심장병과 녹내장을 앓고 있는데 치료 효과가 좋다. 그래서 법원에다가 나만이라도 피우게 해달라고 했다. (웃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다. 음악하는 분 말씀이 우리는 도레미만 들리는데 대마초 도움을 얻으면 도와 레 사이의 백개의 음정이 다 들린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볼 때 간단한 지문이지만 여러 가지 상상이 떠오를 수 있겠지.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를 금한 것이 새마을운동 하면서 아닌가. 여유있게 즐기는 삶이 아니라 뭐든 빨리빨리 시켜야 하니까 그걸 못하게 한 거지. 난 이 일이 끝나면 조금 빠지고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이 논쟁에 뛰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 지금은 아무런 이야기도 없으니까 그게 답답한 거지. 대마초 파동을 여러차례 겪으면서 정치적인 견해도 분명해진 것 같다. 감방에 처음 갔던 게 1986년이다. 보석으로 나가기 전에 건대 사태로 인해 운동권 학생들이 대거 들어왔다. 그들을 만났을 때 부끄러웠다. 난 최고위층들과 어울려 히로뽕을 맞았을 때 이 친구들은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던 거다. 그 친구들에게 세뇌당해서 그런가. 이후에 민방위 훈련한다고 고개 숙이라 하면 왜 그래야 하냐고 같이 반항하다가 교도소장한테 이제는 시국사범까지 하려고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때 봤던 감방 친구들이 인터뷰 보고 연락 좀 했으면 좋겠다. 최근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포함해, 활동을 재개하는 상황에서 구속이 됐다. 보석으로 나와서 연기하는데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치겠더라. 이제 좀 (연기를) 알 것 같은데. 연기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홀로 돌아서 깨우친 건데. 더 힘든 세월도 견뎌냈는데 배우 하지 말자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의견을 같이하는 감독이 있지 않을까, 내 진심을 알고 출연 제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보석이 허락된 날, 곧바로 현장으로 갔다고 들었다. 감방에 보름 있었는데 목욕 한번 못하고 부랴부랴 갔다. 아들 역인 정우성한테 한탄과 욕설을 늘어놓는 장면이었는데 리딩까지 오케이받은 대로 했는데도 감독님이 그게 아니라고 하시더라. 새벽 2시가 돼서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라는데 잠이 오나. 나야 욕설을 많이 섞어서 써야 엄마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한 건데 아무래도 등급이나 그런 문제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동네 깡패들한테 녹음기 들려줘가면서 얻은 욕설을 연습한 건데 그게 없어지고, 깎이고 그러니까 서운했다. 영화는 감독 것이니까 이해하지만 서운해서 나중에 녹음실에서 후시할 때 감독님한테 그랬다. 재기를 이렇게 막아도 되느냐고. 1980년대 출연작들에서의 본인 연기에 대해선 자책이 심한 것 같다. 너무 못했어. 나야 돈 많이 준다고 해서 데뷔를 하긴 했는데 그땐 다 세워놓고 그냥 찍었다. 근데 언젠가 언니가 촬영현장에 와서 그러더라. 너 말타는 거 죽여. 근데 그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냐. <애마부인3> 찍을 때였는데 남편이 바람 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자동차 핸들을 붙잡고 흑흑대야 하는데 그거 보고도 언니가 ‘너 또 말타더라’ 그랬다니까. 올해 부산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전혀 안 쫄았다. 어떻게 옷 입으면 섹시할까 그것만 생각했다. 그때 입고 갔던 검은 드레스는 8년 전 딸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 가서 산 거다. 빵으로 끼니 때우면서도 너무 근사해 보여서 큰맘먹고 샀다. 언젠가 영화제 같은 곳에 간다면 필요할 것이다, 하고. 8년 됐는데도 예쁘지 않았나. 자비 들여 내려가서 이창동, 김기덕 감독님을 뵙게 됐고 이런저런 이야기 했는데 다음 영화에 날 과감하게 기용하겠다는 분이 아직 없네. (웃음) 영화제 개막식 때 이스트필름 명계남 대표와 동행했는데. 전에 <북회귀선>이라는 연극할 때 처음 뵈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같이 출연했다. 이후엔 못 뵙다가 출소한 지 1주일 만에 콘서트에 갔는데 내 앞자리에 계시기에 처음엔 인사해도 모르시거나 외면하실까봐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선배님’ 했더니, 선글라스를 올려쓰시곤 ‘어, 야 임마, 너 괜찮아’ 하시더라. 5층에서 투신해서 중상이라는 오보를 접하신 모양인데 반겨주시는 게 너무 좋아서 ‘그거 다 구라예요’ 하면서 인사했고, 전인권 선배도 명 선배 소개로 알게 됐다. 영화제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이후에도 대마초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한번 해보라고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하고 내가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도우미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차승재 대표도 그렇고, 영화인들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이번에 신경을 많이 써줬다. 물론 다른 배우로 교체하면 제작비가 오버될 테니까 그랬겠지만. 차 대표하곤 한남동에서 살 때 이웃사촌이었다. 힘들 때는 서로 위로도 해주고 하면서 알게 된 사인데 그 이후 서로 돈독하게 의리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너무 거물이 되기도 했고. 후속 작품에 캐스팅해주면 인간성 좋다는 건 확실히 인정할 것 같은데. 영화는 많이 보나. 많이 챙겨보는 편이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도 봤다. 친하게 지냈던 작가 부인이 있는데 보러 가자고 해서 갔다. 그 언니는 손수건까지 준비해서 갔는데 정작 그 언니는 울지 않고 나만 울었다. 나와서 그 언니가 다 빨갱이 아니야 하는 거 보고나선 안 만난다. 빨갱이가 어딨어. 다 피해자들인데. 좀더 공부하고 싶은 게 있나. 기술적으로는 많이 모자란다. 카메라 워킹 같은 거 좀 배워야 하는데. 아직도 헤매거든. 본능적인 감으로만 하려니까 좀. 연기할때 정교하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모자람을 느낀다. 연극 한편 들어왔는데 비중이 큰데도 그거 뿌리치고 그냥 작은 배역의 영화를 할 계획이다.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밑바닥 역할은 다 해봤고 좀 다른 걸 해보고 싶다. 강금실같이 세고 그러면서도 야리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거나. 아니면 속물 같은 권력층 여자들. 백수하면서 많이 봤고 관찰했고 또 아니까 잘할 것 같다. 드라마 <불새>에서 떡볶이집 아줌마에서 신분상승해서 재벌총수 부인으로 나왔는데 마지막 촬영하는 날 건물 청소하시는 분이 내게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시면서 즐겁게 봤다고 하더라. 정작 당사자들은 불쾌하겠지만 나눠줄 줄 모르는 거지들을 고발해서 95% 서민들이 즐거워하는 배역을 맡고 싶다. 연기를 그렇게 하고 싶나. 나서기 좋아하는 광대라서 그런가보다. 고등학교 때도 내 발랄함에 제주도가 떠나갔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이 음악 틀어놓으면 끼어서 나팔바지 입고 트위스트 추고 그랬다. 시선들에 상처받고, 또 시선들을 그리워하고. 아이러니다. 사람들이 싫어서 산에 다니면서도 거기서 만난 누군가와 몇 시간 이야기하는데 못 알아보면 또 섭섭하고. <말죽거리 잔혹사>는 5분 안 되는 장면인데 내 단골들이자 올드팬들이 와서 그 영화에서 나만 보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랬지. 니네들이 음란하니까 내 숨소리만 들렸던 거 아니냐고. (웃음) 그래도 그런 말 들을 때면 자부심이 생긴다. <오! 그레이스> 같은 영화는 꼭 우리나라에서도 제작됐으면 좋겠다. 대마초를 비롯해서 금기시된 것들에 대한 다른 영화들도.

<아일랜드>가 던진 작은 교훈

소통하지 못하고 홀로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삶과 꿈을 잔잔히 녹여낸 <문화방송> 드라마 <아일랜드>가 지난 22일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김창완의 따뜻한 내레이션을 배경으로 버림받고 낙오된 네 인물의 화해와 소통, 그리고 포기되지 않는 희망 속에 이어가는 삶과 사랑을 암시하는 마무리였다. 중아는 어린 재복을 보듬어 안고, 어린 시연의 손은 국의 손에 포개어졌다. 흑백과 컬러로 한 화면에 드러난 유년 시절과 현재는 과거와 화해함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는 미래를 상징했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인정옥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말들을 만들어 냈던 <아일랜드>는 극단을 오가는 평가를 받았다. ‘남매 간에 바람을 피우는 패륜·불륜극’이라는 비난과 한국 드라마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예술 드라마’라는 극찬이 엇갈렸다. 전작 <네 멋대로 해라>를 넘어서지 못 했다는 걱정 어린 비평이 있는가 하면, 전작을 한 단계 뛰어넘어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는 칭찬도 적지 않았다. <아일랜드>는 가볍고 통속적인 소재에 천편일률적이고 식상한 이야기 구조만을 되새김질하는 한국 드라마에 적잖은 자극을 줬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중장년층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광고 수익과 직결되는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려면 주시청자들의 시선을 붙들어야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시청률 싸움에만 매몰돼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들의 껍데기만 바꿔 반복하는 드라마에 발전이란 없다. <아일랜드>는 평균 가구시청률 10.2%(티엔에스 미디어 코리아 집계)를 기록했다. 20, 30대 여성 시청률이 각각 7.7%와 6.3%로 가장 높게 나오는 등 젊은층의 시청률이 두드러졌지만, 유명세에 견줘 턱없이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기존 드라마와 달리 독특한 캐릭터와 개성있는 대사, 그 안에 녹아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으로 <아일랜드>는 반성 없는 한국 드라마에 작은 교훈을 선사했다. 기대에 못 미친 부분도 많았다. 우선 횟수가 더할수록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결함을 보였다. 서사보다는 캐릭터 위주로 꾸려진 탓이다. 영화라면 모르겠으나 캐릭터만으로 16회짜리 드라마를 끌고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개성적인 캐릭터에 탄탄한 이야기 구조까지 얹혔다면 영화가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더욱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시적인 혹은 광고 카피 같은 대사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너무 어려웠다는 대중의 평가도 있었다. 인 작가가 혹여 ‘작가주의’라는 함정에 빠져 홀로 헤맨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새겨봐야 할 지점이다. 항상 지적되는 바이나 연기자들의 역량도 부족했다. 촬영시간에 쫓겨 연기 연습할 시간도 없는 드라마가 갖는 한계라는 변명도 있을 테지만,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제작진뿐 아니라 연기자들의 노력에서도 시작된다. 사족. 현빈이 <아일랜드>의 최고 수혜자로 우뚝 선 반면, 눈에 띄는 변신으로 ‘연기파 배우’임을 확인시킨 김민정이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한 듯 아쉬움이 남는다. 여배우에게 더욱 척박한 한국 연예계에서 대중적인 인기의 길만 골라 걸어오지 않은 그가 <아일랜드>를 통해 새로 도약할지 주목된다.

22살 되는 K1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1월 1~5일 건강정보 특집 연속편성

2000년 12월 초 온나라 약국에 일대 소동이 빚어졌다. 비타민 시를 사려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20~30배나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소동 배후엔 한국방송 1텔레비전의 생활정보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월~금 오전 10시)가 있었다.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비타민 시가 여러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내보내면서 비타민 시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갖가지 실용 지식을 전파하며 시청자의 의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쳐온 〈무엇이든…〉이 어느새 22살이 된다. 11월1일 마침 한국방송 가을개편과 함께 온 생일을 기념해 1~5일 닷새 동안 건강 관련 궁금증을 풀어보는 특집을 내보낸다. ‘습관을 바꾸면 10년 젊어진다’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다. 1일 ‘그리스식 식단’, 2일 ‘걷기’, 3일 ‘잠’, 4일 ‘식습관 5계명’, 5일 ‘웃자! 웃자!’ 차례다. 〈무엇이든…〉의 역사는 ‘바보상자’ 텔레비전이 ‘척척박사’로 변신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무엇이든’ 물어왔다. “어제 뉴스에 나온 사람 이름은 뭐예요?” “우리 동네 이름의 유래가 뭐예요?” ‘만물박사’를 넘어 ‘해결사’이기를 바랐던 것일까? 심지어 “우리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일러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텔레비전이 상식의 표준을 규정하는 존재로 자리잡는 데는 실용 지식 프로그램 〈무엇이든…〉의 고투도 한 꺼풀 깔려 있다. 세월 따라 물어오는 방식에도 변화가 거셌다. 10년 전만 해도 시청자 문의는 거의 엽서나 편지로 이뤄졌다. 지금은 대부분의 문의가 인터넷을 통해 들어온다. 다만 중국이나 미국 등 재외 동포들은 여전히 온갖 궁금증을 담은 편지를 부쳐온다. 이런 왕성한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무엇이든…〉은 1년 365일 중 240일을 생방송한다. 가장 힘든 때는 시청자 관심이 쏠리는 갑작스런 사건이 발생할 경우다. 조류독감이나 극심한 황사, 식중독 따위가 벌어지면 그때까지 준비한 방송 아이템은 전면중지된다. 재빨리 전문가를 섭외하고 자료 화면을 만들고, 대본을 써야 한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커, 이렇게 시의성 있는 내용의 방송은 시청률이 평소보다 높게 치솟는 편이다. 급작스레 바뀐 대본을 차분히 소화해 전달하느라 진행자들도 맘 고생이 적잖았다. 83년 ‘김동건·유애리’ 아나운서로 시작해 어느새 ‘전인석·신윤주’(사진) 11번째 짝이 진행을 맡고 있다. 왕종근 또는 이창호 아나운서가 여전히 진행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남아있다. 제작진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현명하고 똑똑한 주부의 생활 동반자, 가족의 건강 지킴이 노릇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생일 다짐을 했다.

충무로의 펜 타고 날래. 시나리오 지망생들 “꿈을 향해 써라”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도 없어요.” “도무지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썼는지 알 수가 없네요.” 한 묶음의 종이를 들고 강단에 서있는 발표자를 향해 청중의 십자포화가 날아간다. 질문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발표자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다. “음, <맨 인 블랙>같은 느낌으로 코미디 반, 액션반 인 일종의 킬링타임용 영화인데…” 궁색한 답변은 “어디서 웃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라는 가차없는 비판에 금방 오그라들고 만다. <우측사진설명>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작가학교 출신으로 올해 시나리오 공모전에 수상한 작가들.(오른쪽부터) 안슬기(34) <다섯은 너무 많아>로 영화진흥위원회 독립디지털 장편 제작 지원작 선정 박신우(27) <금붕어>로 제9회부산국제영화제 선재펀드 수상 오승희(32) <퍼플 레인>으로 중앙일보 시나리오 공모전 가작 수상 김선아(33) <당신이 죽은 사이에>로 경상북도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하수진(34) <박해일과 이유정>을 제6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수상. 수강생이 직접 작품을 쓰고 그에 대한 토론을 하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는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작가학교 수업시간은 이처럼 주저없는 공격과 열띤 토론으로 늘 후끈후끈 하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 30분씩 연장되는 건 다반사. 그럼에도 수십 개의 과목 중에 수강 신청이 가장 먼저 마감되고 대기자까지 줄을 서게 하는 인기 강좌다. 지난해까지 30명으로 마감되던 정원을 올해부터 2배인 60명으로 늘였는데도 여전히 자리가 부족하다. 수강생들은 대학생에서 방송작가, 조연출로 일하는 현업 종사자에서 대학원의 시나리오 전공 학생까지 다양하고 연령대 역시 88년생 ‘고딩’에서 39년생 ‘노땅’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들의 꿈은 단 하나, 자신의 시나리오가 스크린에 화려하게 뜨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 문화의 주류 장르가 된 영화가 이제는 블랙홀처럼 문학 지망생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영화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억대의 시나리오료를 받는 스타 작가들이 탄생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문청들에게 꿈의 무대였던 신춘문예도 점차 그 화려한 명성을 시나리오 공모전에 넘겨주고 있다. 올해 <퍼플 레인>이라는 작품으로 일간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한 오승희(32)씨 역시 몇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소설 습작을 하다가 ‘전업’한 케이스. “소설에 대한 그룹 스터디를 할 때 사람들이 제 글만 보면 꼭 영화 같다고 하는 거예요. 곰곰이 따져보니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게 문학보다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그 날로 시나리오 작가학교에 등록했죠.” 최근 다니던 직장까지 접고 시나리오 전업작가의 세계에 ‘올 인’했다.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 작가학교를 7년째 이끌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심산씨는 “막연히 글쓰는 재미나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포기하는 사람이 절반 가까이 되지만, 전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한 인력이 많이 몰리고 있다. 빈곤한 충무로의 작가군이 두터워질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밝은 미래’를 점쳤다. 영화화 확률 0.1% ‘바늘구멍’그래도 통과하는 낙타 있다 한겨레문화센터와 함께 비정규 교육기관으로 시나리오 작가들을 길러내는 대표적인 곳으로 92년 개원한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산하의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이 있다. 직접 작품을 써보는 워크숍 형태로 운영되는 이 곳에서 배출된 작가들로는 김기덕 감독을 비롯해 <정사> <반칙왕>의 김대우 작가, <여고괴담> <비밀>의 박기형 감독, <조폭 마누라> <이것이 법이다>의 김문성 작가, <올드보이>의 황조윤 작가 등이 있다. 공모전 두들기고 각색작업 참여 제작자마다 아는 영화인들을 만나면 “좋은 시나리오 없어요?” 노래를 하는 충무로지만 아직까지 초보작가가 영화의 크레딧에 이름 석자 올리는 일은 바늘구멍 들어가는 데 성공한 낙타가 되는 것에 가깝다. 한해 충무로에서 제작되는 평균 제작편수 60편에 비해 각종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되는 작품수는 어림잡아도 3천여 편. 게다가 신인보다는 검증받은 작가를 선호하는 게 인지상정이다보니 작가 지망생이 자신의 이름을 스크린에 새길 수 있는 확율은 0.1%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영진위 DB 구축 끼·재능 연결 그럼에도 연영과 출신도 아니고 충무로에 연줄도 없는 작가 지망생들이 영화에 다가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공모전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매년 실시하는 극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비롯해 언론사, 영화사 등에서 해마다 수십개의 시나리오 공모를 한다. 올해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하수진(34)씨는 수상 뒤 추천을 받아 현재 촬영 중인 <키다리 아저씨>(제작 유빈 픽처스)의 각색 작업에 참여하며 충무로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씨의 경우도 그렇지만 공모에 낸 자신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면서 데뷔하는 일은 지극히 드문 예다. 여러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씨는 “수상이 곧 데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낙선이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탈락 작품이라도 아이디어나 어떤 재능이 눈에 띄는 작가들은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게 공모전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공모전이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는 작가 지망생들과 제작사를 직접 연결해주기 위해 영진위는 지난 6월 말 ‘한국영화 시나리오DB’라는 중계 사이트를 구축했다. 완성된 시나리오나 트리트먼트(시나리오와 시놉시스의 중간단계)라면 누구나 올릴 수 있는 이곳에는 지금까지 170편의 작품이 올라왔으며 최근 황인호씨의 <아리조강 납치사건>이 시네월드에 팔렸다.(아래사진 한겨레문화센터 시나리오작가학교 수업을 듣고 있는 수강생들) 억대연봉 스타급 열손가락 꼽아 당연한 말이지만 공모전 수상이나 충무로 진입이 성공가도를 열어주지는 않는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상업영화에서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비율이 높은 충무로에서 간판급 전문작가는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등에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감독으로 전업한 박정우씨, <실미도>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김희재씨, <파이란> <블루>의 시나리오를 썼고, 조역배우로도 활동중인 김해곤씨,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을 썼으며 감독 입봉을 준비하는 김대우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같은 A급 작가가 되고 흥행에 성공하면 1억원이 넘는 연봉을 챙길 수 있지만 아직도 시나리오 작가의 임금은 몇백만원에서 출발한다.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는 작가가 되더라도 때로 1년 이상 매달리는 작업에 평균잡아 2-3천만원의 보수는 높지 않다.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지는 것이 성사되는 때보다 훨씬 잦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시나리오 작가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지망생들의 열기는 식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건 배우와 아이디어 만으로 제작비가 만들어지던 전과 달리 ‘책’(시나리오)이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는 최근의 변화다. 덕분에 실력있는 시나리오 작가군의 형성과 철철이 가뭄인 양질의 시나리오 생산, 시나리오 작가들의 처우 문제는 닭과 달걀처럼 함께 맞물려 머지 않아 충무로의 체질개선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쓸 사람은 넘쳐나는데 ‘쓸만한 책’ 없다고? 쓰고자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 데 ‘쓸만한 책’이 없어 늘 아우성치는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보고된 현장 스탭 처우 문제에 아예 포함되지도 못할 만큼 전문화되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할리우드처럼 작가와 감독의 분화가 덜 되있는 데다 팀이 아닌 개인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하나의 시나리오가 여러 작가를 거치는 동안 작가 한 사람의 자리(크레딧)는 소리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나리오 작가 김형기씨는 “시나리오 작가의 전문화와 시나리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제작사들이 좀 더 과감하게 시나리오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성된 시나리오만 찾는 제작사 전문작가 키우기 과감한 투자를 “쓰겠다는 작가들이 넘쳐나니 제작사들은 완성된 시나리오만을 찾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가 일하는 영화사 우리엔터테인먼트을 비롯해 몇몇 제작사에서는 ‘작가실’제도를 도입해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작가들에게 일정한 월급과 작업공간을 주면서 안정적인 아이디어 개발을 돕고 있다. ‘작가실’은 작가들을 소속사에 묶는다는 단점도 있지만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여러 면에서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작가들이 안정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희재씨는 지난해 작가 7명과 함께 시나리오 창작회사 ‘베네딕투스’를 차렸다. 내년 개봉하는 <마파도>에서 베네딕투스의 크레딧을 첫사용하게 될 이 창작집단은 함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작가의 개성과 재능에 따라 일을 분배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젊은 작가의 경우 자신의 재능에 맞는 장르의 일거리를 찾기도 힘들고, 개인적으로 일하면 여러 면에서 고립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창작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창작집단을 꾸리게 됐다”는 게 김씨의 설립의도다. 시나리오 작가 심산씨는 “할리우드 같은 작가조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젊은 작가들을 일회성으로 소모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조명이나 촬영, 연출부같은 도제 시스템의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일거리를 찾는데 무엇보다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데다, 초보작가는 감독이나 제작자와 단독으로 협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름있는 작가의 우산 아래서 일과 영화판의 큰 그림을 익혀나가면서 작가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시스템이 확립돼야 한다”는 게 심씨의 견해다. <품행제로> <안녕! 유에프오> 각본 <아라한 장풍대작전> 각색한 이해영·이해준 작가의 ‘초보를 위한 조언’ 1. 시나리오 작가는 배고프다면서요? 우습게도 이것은 가장 잦은 질문. 혹여 이런 연유로 주저한다면 당장 떨치시라. 아직 작가군은 얇지만 이미 ‘억대 작가’가 실현된 마당에 당신이라고 그 주인공이지 말란 법은 없다. 최소한 시스템은 갖추어졌다. 작가와의 인센티브 계약도 이제는 관행이 됐고, 집필 기간 작가를 지원하는 방식도 개선됐다. 관건은 ‘얼만큼 작업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가’다. 매달 월급을 기대할 수 없는 작가에게 중요한 건 계약에 맞는 자기 시스템을 확보하는 일. 시간 한계에 맞춰 정확한 결과물을 뽑아내는 패턴을 익힌다면, 당신은 기본 이상의 연봉을 반드시 보장받을 수 있다. 2. 공모전에 당선되면 작가가 되는 거 맞죠? 아쉽게도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이 반드시 작가 데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승패는 어떤 공모전을 택하느냐에 달렸다. 공모전은 대략 두 가지다. 이벤트성과 실질적인 작가(혹은 작품) 발굴을 위한 것. 영화화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주최측의 제작 능력과 마인드다. 영화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으므로 당신의 당선작이 극장에 걸리지 않을 확률은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주최측이 함께 일할 능력 혹은 의욕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당신은 작가로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문제는 당선, 그 후다. 주최측의 성향과 심사위원들의 프로필을 유심히 살펴라. 3. 무턱대고 영화사를 찾아가도 될까요? 어디에도 인맥 안 닿는 지망생이여, 기를 펴라. 모든 영화사는 좋은 시나리오를 찾는데 언제나 혈안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다. 주눅들 필요 없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작품 접수 담당자를 찾아라. 담대히 회사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도도하게 커피를 요구하고, 자신 있게 작품을 전달해라. 그리고 답변 기한을 약속 받아라. 물론 돌아오는 답이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평가’ 그 자체다. 시장의 평가는 당신에게 부족한 것을 알려줄 것이고, 그 과정은 당신을 직업작가의 길로 한 발 가까이 인도할 것이다. 4. 시나리오 강의를 들으면 정말 잘 쓸까요? 시나리오 작법을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전수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만으로 익힐 수 있는 특정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 작품에 대한 평가와 토론의 장을 마련해주는 워크샵 형태의 강의라면 나쁘지 않다. 어떻게 쓰는가를 듣는 것보다 직접 쓰는 것이 우선이고, 일단 쓰면 ‘끝까지 쓰는 것’이 중요하다. 집필 도중 쉽게 포기하는 초보자를 부단히 쓰고, 끝까지 쓰게 만들며, 영감을 얻어 고쳐 쓰게 만드는 강좌라면 찬성. 단, 잊지 말자. 사람에 따라서는 저명한 누구의 강의보다 뛰어난 영화 한 편이 더 직접적인 선생님일 수도 있다. 5. 시나리오는 감독이 결국 다 고친다면서요? 시나리오는 소설처럼 그 자체로 목적을 갖지 않는다. 제작자나 감독, 배우, 촬영 및 모든 스탭들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도 영화를 만드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만약 당신이 영화 전체를 그릴 줄 아는 프로 작가를 꿈꾼다면,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당신 작품은 언제나 가변적이다. 하지만 그게 꼭 당신이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신은 작가이며, 시나리오 창작의 주체다. 중심에 서서 그들을 치열하게 설득하라. 또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설득하도록 만들어라. 가열찬 설득이야말로 영화의 과정을 풍부하게 만든다. “영화는 공동작업‥작가는 유연해야” <실미도> 쓴 김희재 작가의 ‘작가론’ “한 영화의 완성에 있어 시나리오 작가는 친부모같은 존재고, 감독은 양부모같은 존재입니다. 작가가 좋은 소양을 가진 아이를 낳아서 입양시키면 예쁘게 키우는 건 감독의 몫이죠.” 현재 촬영중인 <공공의 적 2> 시나리오를 쓴 김희재(35)씨는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다. 얼굴의 가는 선과 차분한 말투가 여성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의 작품 목록에는 <국화꽃 향기>, <누구나 비밀은 있다> 같은 멜로보다 <예스터데이> <실미도>같은 선굵은 액션영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만화작가 생활 10년 값진 혼란 글쓴땐 계산과 약속에 충실해야 배우 설경구, 감독 김상진과 동기인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뒤 만화 스토리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으며 2000년 대학 후배의 제안으로 싸이코 스릴러 의 각색작업을 하면서 충무로에 입성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도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첫 작품이 영화화됐으니 운이 좋은 편이지요. 만화작업을 하면서 전쟁, 역사물 등 온갖 장르의 이야기를 매체라는 정해진 틀에 쉼없이 써본 게 큰 훈련이 됐다고 생각해요.” 김희재 작가를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은 것은 <실미도>. 김 작가의 손에 들어오기 전 6명의 작가를 거치며 만신창이가 돼 나가 떨어져 있던 대본이었다. “소재가 주는 중압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장르 공식에 맞춰서 뚜벅뚜벅 써내려간 게 적중했다고 생각해요. 함축성 있는 대사의 매력을 인정해주는 게 작가로서 강우석 감독에게 느끼는 편한 점이죠.” <실미도>가 개봉한 뒤 그는 ‘아쉬운 점은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사석에서라도 감독이나 완성된 작품에 대한 언급을 안하는 게 그의 원칙이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유연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수많은 사람의 공동작품인데 자신의 생각만 고수할 수는 없죠. 그리고 현장 나가보면 그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 한 줄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속을 태우는 데 서로간의 신뢰가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지요.” “내가 쓴 한 두줄을 화면으로 완성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 감독이나 배우가 내 의도보다 뛰어나게 인물이나 상황을 해석해낼 때” 감독은 느끼지 못할 전업작가의 기쁨을 맛본다는 김씨가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누아르. 개인적으로는 <화양연화>처럼 시나리오보다 영상언어가 압도적인 영화도 좋아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로맨틱 코미디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올해부터 추계예대 영상학부에서 시나리오 작법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시나리오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계산’과 ‘약속’이라고 말한다. “대중영화 시나리오에는 정확한 계산이 필수적입니다. 멋진 그림 하나 만들자고 무턱대고 코엑스를 폭파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또 시나리오 한줄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백명,이백명의 사람들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약속에 충실하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릴레이식 제작 방식

<정오의 신비한 물체> Mysterious Object at Noon 2000년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상영시간 85분 화면포맷 1.66:1 비아나모픽 음성포맷 DD 2.0 타이어 자막 영어 출시사 플렉시필름(영국) <렌쿠 애니메이션: 겨울날> 連句アニメション 冬の日 2003년 감독 가와모토 기하치로 외 34명 상영시간 39분 화면포맷 4:3 음성포맷 DD 2.0 일본어 자막 일본어 출시사 이마지카(일본) <다섯가지 장애물> De Fem benspænd 2003년 감독 요헨 레스 & 라스 폰 트리에 상영시간 87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D 5.1 덴마크어 자막 영어 출시사 코치로버(미국) 제9회 부산영화제에서 설화에 토대를 둔 <열대병>의 갑작스런 후반부 전개에 관객이 당혹한 모양이지만 (나는 <열대병>을 보지 못했다) 전작인 <정오의 신비한 물체>에서 감독은 같은 방식을 이미 보여주었다. 즉 <정오의…>는 ‘신비한 물체’와 ‘정오’의 두 부분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영화였다. 그런데 <정오의…>가 밴쿠버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예가 있지만 릴레이 방식의 작품 만들기가 문학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취화선>에도 나오지만 여럿이 함께 초현실주의적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프랑스에도 있어왔고 이것을 영화방식으로 사용한 사람이 아핏차퐁이다. 감독은 직접 마을주민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따라 ‘장애인 학생과 선생의 이야기’가 스스로 흘러가게끔 방치해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로 시작해서 판타지로 넘어가다가 외계인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SF와 호러무비로 끝나게 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구전되는 이야기가 설화로 발전되는 신비한 과정도 경험할 수 있다. 아핏차퐁의 방식을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한 사람도 있다. 퍼펫애니의 대가 가와모토 기하치로 역시 릴레이방식의 그림 그리기에서 영감을 받아 연작 <하이쿠인 렌쿠>를 34명의 감독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옮겼다. DVD는 영어자막조차 지원되지 않지만 부산영화제서 <겨울날>을 본 관객은 한글자막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겨울날>은 노르슈테인부터 포야르까지 현존하는 최고 애니 작가들의 솜씨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작품이다. 라스 폰 트리에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요헨 레스 감독은 조금 다른 방식의 공동작업으로 <다섯가지 장애물>을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 선보였다. 이 영화는 폰 트리에가 던진 화두에 따라 레스가 연출하는, 두 사람에 의한 5편의 단편 연작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레스를 ‘완벽한’에서 ‘인간적’인 상태로 끌어내리고자 폰 트리에는 악마적 장애물을 던지지만 레스는 번번이 숙제를 아름답게 해결한다(롱테이크를 즐기는 감독에게 0.5초마다 편집해야 함을 지시하는 심보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폰 트리에는 수신자를 자신으로 한 장문의 편지를 적고 그걸 레스로 하여금 읽게 만드는데 그 때문에 마지막 에피소드는 폰 트리에 자신의 독백 및 자기반성일 수도, 레스에 대한 바람일 수도 있다. 대화부재의 시대에 이들 작품들에 담긴, 외부와 소통하고자 하는 감독들의 화술이 놀랍기만 하다. <정오의…> DVD에는 감독과의 인터뷰가, <겨울날>에는 부산영화제서도 선보였던 메이킹 다큐가, <다섯가지 장애물>에는 작품의 토대가 된 레스의 67년 단편 <완벽한 인간>이 각각 포함되어 있다. 조성효

왕가위를 다시 생각하며

“우리가 함께한 이 1분을 결코 잊지 않겠다.” <2046>을 보다가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은 장국영이 말한 그 1분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 장만옥은 그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즉 ‘화양연화’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죽어가는 장국영은 그 1분을 기억하지 못한다(기억했다 해도 그에겐 그냥 장난이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생의 전부인 것이 상대방의 마음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같은 시간, 같은 감정을 나눈대도 영원한 사랑을 보장받을 순 없다. 왕가위가 믿는 유일한 방법은 <화양연화>의 양조위처럼 앙코르와트의 돌벽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봉인하는 것이다. <2046>은 <화양연화>의 후속편인 동시에 <아비정전>의 후속편이다. 차우는 <화양연화>의 장만옥을 잊지 못하는 인물인 동시에 <아비정전>의 바람둥이 장국영이며 양조위다(양조위의 등장에서 막을 내린 <아비정전>의 이상한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라). <2046>을 보면서 <화양연화>의 차우가 그리워지는 건 자연스럽다. <2046>의 차우는 <화양연화>의 차우처럼 순진한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소설을 쓰는 대신 이 남자는 여자의 몸을 탐하고 화대를 지불한다. 사랑을 향한 문을 굳게 걸어 잠근 것이다. 난 <2046>이 <화양연화>만큼 좋진 않지만 몇몇 대목에서 그렇게 황폐해진 차우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팠다. <비포 선셋>의 대사처럼 수리첸과의 사랑에 “모든 로맨티시즘을 쏟아부어,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널리 인정하듯 왕가위는 멜로드라마의 거장이다. 그의 영화는 하나같이 절절한 러브스토리였고 번번이 새로운 유행을 창조했다. 그런데 <2046>에 관한 인터뷰를 보다가 왕가위는 이번 영화를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러브스토리와 사랑에 관한 영화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왕가위는 한번도 사랑이 결실을 맺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양조위와 왕정문이 마침내 다시 만나는 <중경삼림>조차 따지고보면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사랑이 비껴가거나 서로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화들을 찍었다. 난 왕가위가 사랑의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서 사랑은 언제나 손에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손을 내밀 때마다 뒤로 물러선다. 왕가위는 그 이유가 비극적 운명 때문이라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왕가위의 시공간은 사랑의 밀도 높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실제 행위는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아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상대방이 없는 빈 방을 청소하거나 타인을 흉내 내는 일로 감정을 표현한다. 반대로 왕가위 영화의 시공간이 황홀한 이유는 그것이 빗나간 사랑, 잃어버린 사랑, 좌절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뿐 아니라 다른 영화들도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사랑의 불가능함에 관한 영화로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왕가위는 거꾸로 생각한다. 그는 사랑을 그리지만 그 방식은 사랑의 불가능함을 통해서다. 달리 말하면 그는 사랑의 불가능함을 깊이 고민했기에 독보적인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어쩌면 왕가위에게 영화는 앙코르와트의 돌벽처럼 불가능한 사랑을 봉인하는 구멍이 아닐까. 그리하여 왕가위 영화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사랑의 승리와 환희를 다루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영화는 무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 때문에 감동을 준다. 아무리 왕가위식 촬영과 조명을 모방해도 왕가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2046>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스타일리스트 왕가위의 한계’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난 왕가위의 다음 영화가 다시 4년 뒤에나 나올까봐 여전히 조바심이 난다. PS. 며칠 전 <씨네21> 전 편집장 조선희 선배가 전화를 했다. 지난주 ‘편집장이 독자에게’에 틀린 것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씨네21>과 부산국제영화제가 동갑내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듣고나서 생각해보니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1회를 시작해 9회를 맞았고, <씨네21>은 1995년 창간해 9주년을 맞았다. 같은 아홉살이라도 1년 이상 차이가 난다. 틀린 정보를 내보낸 점, 무척 창피하다. 독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ㅜㅜ

[도쿄] 부산 따라잡기, 성공할까

부산국제영화제를 따라잡아라! 지난 10월23일부터 31일까지 계속된 제17회 도쿄국제영화제는 일본 영화계가 한국 영화계를 의식하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난 행사였다. 비록 개막식이 열린 시각, 니가타현에서 규모 7의 강진이 발생해 관심이 줄어들긴 했지만 지난해 영화제의 제너럴 프로듀서로 취임한 가도카와 스구히코(가도카와 그룹 사장)가 영화제의 개혁을 다짐한 뒤 본격적으로 열린 영화제라 큰 관심을 모았다. 일단 규모면. 도쿄영화제는 ‘세계 10대 영화제’임을 강조하며 도쿄판타스틱영화제, 도쿄국제여성영화제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협찬기획의 영화제까지 포함해 전세계에서 351편의 작품을 초대했다. 메인 상영장이 16년간 열리던 시부야 분카무라와 함께 롯폰기 힐스까지 두곳으로 늘어났고, 도쿄의 새 상징인 화려한 롯폰기 힐스 앞에 레드카펫 행사가 펼쳐진 뒤 열린 개막식엔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개막작은 일본의 노장 야마다 요지 감독의 전작 <황혼의 사무라이>보다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막부 말기, 작은 시골지방의 사무라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숨은 검>이었다. 적어도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이방인의 눈으로 ‘장엄하게’ 그려내던 사무라이가 아니라, 진짜 일본의 근대를 살아가던, 무기력한 듯해 보이지만 새로운 삶을 찾는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야마다 감독은 올해 일본인으로선 처음으로 이 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추대돼 한국의 이창동 감독 등과 함께 심사를 맡았다. 개막전야제 작품으로 이 상영되며 기무라 다쿠야가 무대인사를 하고, 개막식 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일본에서 첫 공개되는가 하면 폐막작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터미널> 상영에 맞춰 톰 행크스가 일본을 찾는 등 대중적인 면에선 이전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다. 눈에 띄는 시도는 부산영화제의 PPP를 의식한 마켓의 신설이다. 영화제 초기 별 성과없이 폐지됐던 마켓이 12년 만에 ‘도쿄 국제 엔터테인먼트 마켓’과 ‘도쿄 국제 필름&콘텐츠 마켓’으로 부활한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마켓은 10월22∼24일 치바현 컨벤션센터에서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를 중심으로, 필름&콘텐츠 마켓은 10월25∼27일 롯폰기 힐스에서 영화와 TV 프로그램 중심으로 열렸다. 필름&콘텐츠 마켓엔 일본, 한국, 홍콩, 인도 등의 제작사 80여곳의 부스가 설치됐다. 사카이 마사요시 조직위 사무국장은 “이제까지 일본은 해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90년대 말부터 한국영화의 성공을 보며 콘텐츠의 중요성에 새삼 주목했다”며 “영화만으로는 부산영화제와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TV 프로그램과 애니메이션까지 범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도쿄영화제쪽은 “적어도 5년 안에 자리잡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영화 부문을 대폭 강화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경쟁부문과 함께 메인부문인 ‘아시아영화의 바람’에는 지난해의 두배가 넘는 35편이 초청됐다. 니가타영화제의 우에쓰카 마사유키는 “아시아인들은 물론 유럽, 미국쪽에서도 아시아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으로 몰리면서 도쿄영화제가 확실히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최신 일본영화를 선보이는 ‘일본영화, 어느 시점’, 도쿄아니메영화제, 도쿄 넷 무비 페스티벌 등 새로운 부문을 대거 신설했다. 원래 일본의 주력 부문부터 첨단 분야까지 한꺼번에 영화제에 아우르려는 의욕 넘치는 시도였지만 깊이보다는 버라이어티에 치중한 느낌이었다. 마켓 또한 부산영화제와 아메리칸필름마켓(AFM) 사이에 시기가 끼어, 비행기표와 숙박비까지 전액 대며 초청을 했지만 참가사는 일본 제작사가 대부분이었다. 도쿄영화제에서도 최근의 ‘한류’ 붐은 지속됐다. 특별초청 작품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예매 2분 만에 완전매진을 기록했고 경쟁부문에 오른 <효자동 이발사> <바람의 파이터>, 아시아영화의 바람 부문의 <꽃피는 봄이 오면> <늑대의 유혹> <가능한 변화들> <이공>도 일찌감치 표가 동이 났다. 일단 가도카와 사장이 영화제를 맡으며 예산과 규모를 대폭 늘리는 데 성공한 도쿄영화제가 앞으로 부산영화제와 경쟁할 정도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

기억과 사랑의 관계,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두눈을 바라보면서 옛 애인 이름을 부르고, 그것도 모자라 사랑한다 말할 때 그걸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줌을 지리며 하나둘 기억을 잃어가는 스물일곱의 아내를 눈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불치병의 아내를 잃는 영화 <러브 스토리>의 구조를 취하고 있는 순애보다. 벼락처럼 떨어진 조발성 불치병을 앞세워 관객에게 눈물을 요구하는 영화인 만큼 처음 장면부터 클로즈업으로 손예진의 눈물을 잡아낸다. <약속>이나 <편지>류의 과잉 멜로의 뒤를 따르면서도 조금 낯선 점은 기억과 사랑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나한테 잘해줄 필요없어. 다 잊어버릴 텐데” 같은 대사들이 오히려 이 영화의 숨은 매력이 될 수 있다. 기억없는 사랑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 사랑이란 기억의 공유인가 같은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기억의 쇠퇴는 숙명처럼 들이닥치는 것이니, 당신이나 당신의 배우자가 기억상실에 걸렸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진(손예진)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샀다가 지갑과 콜라를 두고 나온다. 되짚어간 편의점에서, 콜라를 들고 나오는 철수(정우성)와 부딪히면서 엉뚱한 오해가 가느다란 운명의 끈이 되어 두 사람을 이어준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우연의 일치를 이들에게 한번 더 허락한다. 수진의 아버지는 건설업체 사장이며, 현장소장이자 건축사 지망생 철수는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공사장 장면을 비롯해 철수의 삶에 생활의 냄새를 불어넣는다. 자와 망치 등 공구를 가지고 다니며 의자와 조각품을 만들고 심지어는 여자의 고장난 핸드백까지 수리한다. 이재한 감독은 철수의 삶의 터전인 공사장에 노을을 깔고 <라 팔로마>의 선율을 흘리며 철수에게 애정을 표한다. 진흙 묻은 지프와 적당히 때묻은 작업복도 철수의 매력을 더한다. 자신의 직장 내부 공사를 아버지에게 부탁하면서 수진과 철수는 한번 더 우연하게 만난다. 수진은 핸드백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연필(“볼펜을 잘 잃어버려서…”)과 건망증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기껏 차 문을 열었을 뿐인데 핸드백 날치기가 나동그라지는 철수와는 조금 다르다. 수진은 누군가가(그건 관객일 것이다) 보호해야 할 사람인 것이다. 우연의 시간이 지나면 필연적인 사랑의 시간이 찾아온다. 핸드백 날치기를 잡느라 유리창이 다 깨진 채로, 철수는 고글을 쓰고, 수진은 안전모를 쓴 채 밤의 한강변을 달리는 장면은 다시 한번 흐르는 <라 팔로마>와 함께 설렘과 기대 그리고 통증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제 관객인 당신은 조금씩 아파하게 될 것이라며, 영화는 고통의 가속도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야구연습장에서 철수가 수진에게 ‘공을 끝까지 보라’며 배트 휘두르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 철수가 바르는 이발소 스킨 로션, 철수가 가르쳐주는 ‘야바위’ 카드 뒤섞기, 철수의 방에 45도로 흘러내리는 햇살은 두 사람의 사랑을 무르익게 하는 효모 노릇을 한다. 왜 수진이 아니라 늘 철수만 시혜자냐고 묻지는 말자.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화집을 보거나 수진의 얼굴을 닮은 나무 조각을 파는 철수의 취미가 너무 고급스럽다고 불평하지 말자. 우리의 눈동자는 ‘난 어릴 적부터 어른이었다’고 말하는 철수보다는 순정파이며 울보인 손예진에게로 향해야 한다. ‘공사판 노가다 같은 놈’을 사귀는 것을 불편해하다가 나중에는 흔쾌히 승낙하는 수진의 아버지도, 철수를 낙태시켰어야 했다고 날뛰는 철수 엄마(김부선)도, 수진을 배신함으로써 큰 충격을 준 유부남(백종학)도 이 영화에서는 주변부에 불과하다. 기억의 소멸이 사랑의 소멸이라는 서글픈 진실을 이 영화는 알려준다. 손아귀 틈새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기억은 수진의 몸 바깥으로 달아난다. 수진이 철수와의 행복했던 기억만이라도 움켜쥐려 할 때, 도화지에 온통 철수 그림만 그릴 때, 마지막 남은 기억을 다해 사랑의 말을 전할 때 손예진의 투명한 눈동자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런데 그 눈동자로 가는 길이 조금 멀다.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매일 다시 기워야 하는 수진의 삶이, 수진에게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려 이발소 스킨을 다시 바르는 철수의 눈물이 우리의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지는 못한다. 수진의 정신적 죽음 앞에서 우리가 눈물을 제때 떨구기 어려운 까닭은, 우리가 수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노을과 햇살 그리고 스타일이 자리를 차지했다. 오페라 아리아 <공주는 잠 못 들고>가 흐르는 가운데 가스레인지 불을 줄이러 가는 철수를 슬로모션으로 잡는 장면이나, 오광록 같은 배우가 담뱃불을 빌리러 의미없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장면 등이 그렇다. ‘용서는 마음의 방 한칸만 있으면 된다’는 등의 겉도는 대사도 그래서 울림이 적다. 일본 <요미우리 방송>이 2001년에 제작한 드라마 <순수한 영혼>이 원작. 소설가 김영하가 각색을 맡았다. :: 영화 속 알츠하이머병 정신적 죽음을 불러오는 지우개 수진이 마련한 이층짜리 도시락은 철수의 공사판 점심상에서 단연 빛난다. 동료들은 철수가 도시락 뚜껑을 열 때 질투와 선망으로 바라본다. 첫 번째 도시락을 열자 윤기가 흐르는 쌀밥이 나온다. 다음 도시락은? 역시 쌀밥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조용한 포식자다. 볼펜, 지갑, 가스불 잠그기…. 수진의 뇌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이 포식자는 식욕을 조금씩 불려나간다. 친구들에게 “집을 잘 못 찾아가겠어, 이상해”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오늘이 며칠인지, 생일은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도 “내가 원래 수학에 약하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증상은 악화일로, 나중엔 결혼한 사실까지 잊는다. 수진은 알츠하이머병의 권위자 이 박사(권병길)를 찾아간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아내를 잃은 뒤로 50년 동안 알츠하이머병만 연구한 사람이다. 이 박사가 설명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이상 단백질이 혈관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수진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까닭은 유전적 요인이 큰데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매년 5%씩 뇌세포가 소멸하며 기억기능과 관련된 뇌부위는 매년 10%씩 세포가 죽는다. “정신적 죽음이 육체적 죽음보다 먼저 온다”는 이 박사 말대로다. 이 박사는 수진에게 직장을 빨리 그만둘 것을 충고한다. 정신적 죽음 다음에는 사회적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 상실로 출발해 인지장애와 성격변화, 육체 쇠약, 환청과 환각 증상으로 자신의 영토를 넓혀나간다. 짧게는 영화 <아이리스>에서 아이리스 머독처럼 3년, 길게는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마침내는 사람을 쓰러뜨리고 만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이 병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아직 밝힐 수 없다는 데 있다. 다른 질병보다 유전 요인을 가리기가 힘들고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하는지 무엇이 그 유전자의 작동을 결정하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864년에 태어난 독일의 신경병리학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딴 이 병은 미국의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쓰러뜨렸고, 전세계 노인의 10명 중 한명을 괴롭히고 있다.

<비포 선셋> 5인5색 감상문 - 그리고 삶은 ‘구차하게’ 계속된다

그리고 삶은 ‘구차하게’ 계속된다 이 영화의 신화- 통속의 공포를 피하는 잔인한 위로 사랑이 늙으면 통속이 된다.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이 <비포 선셋>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두려웠다. 1995년은 오래전에 지나가고 이제는 2004년이었다. 어떤 청춘도 결국 소멸하고 만다는 것을, 그 시간들은 내게 담담히 가르쳐주었다. 스물세살, 순수한 유목민이던 제시와 셀린느가 서른두살이 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나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제도의 안도 밖도 아닌 곳에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머물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한 채, 얇은 사과 껍질처럼 무감한 생을 견디고 있으리라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삼십대 초반에 다시 만난 그들은 한순간도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경쟁하듯 삶에 대한 불만을 과장하고, 자조 섞인 냉소를 허공에 날린다. 9년 전 그 하룻밤에 대한 추억은 종종 엇갈린다. 콘돔 상표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제시의 말에 셀린느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시치미를 뗀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맨홀로 미끄러져 들어갔으며, 미래의 나날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시간은, 제시의 이마 한가운데 흉터 모양의 얕은 주름을 흔적으로 남기고 침묵할 뿐이다. 제시가 ‘보육원을 차린 수도승’ 같은 결혼생활을 토로하면서 아이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할 때, 나는 셀린느 못지않게 당황했다. 뻔한 통속의 레퍼토리를 뱉어내는 그의 눈빛에 진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그만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강파르게 야윈 얼굴만큼이나 냉소적으로 변한 셀린느가 “그해 여름엔 희망이 넘쳤는데, 지금은…”이라며 말꼬리를 흐릴 때, 그리고 그날 밤의 섹스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내숭이었음을 고백할 때는, 바보처럼 조금 눈물이 났다. 시간의 파괴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비포 선셋>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떠올리게 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마 나는 소주를 마시러 갔을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인간존재가 다만 생래적인 괴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까발려 드러낸다. 잔혹하지만, 잃어버린 낙원이 없으므로 아플 것도 없다. 그러나 <비포 선셋>은 다르다. 이 영화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절, 너도 ‘괴물’이 아닌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극장을 나와, 술을 마시는 대신 나는 거리를 오래 걸었다. 바람이 반대쪽으로 불었다. 자동차들은 하나둘 전조등을 밝혔다. 익숙한 도시의 길들이 미로처럼 느껴졌다. 너무 멀리 떠나와버렸다는 자각보다 더 뼈아픈 것은, 아직은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끝자락에서 둘이 함께, 셀린느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낡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밤의 비엔나와 낮의 파리를 거쳐 그들은 마침내 생활의 공간에 당도하였다. 뉴욕으로 돌아가야 하는 출발시각이 얼마 남지 않은 채로, 제시는 셀린느의 소파에 편안히 파묻혀 있다. 영화는 거기서 갑자기 끝난다. 제시는 곧 일어나 공항으로 갔을 수도 있고, 셀린느의 방에 그냥 머물렀을 수도 있다. 재회한 뒤 입맞춤조차 하지 않았던 그들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변치 않은 사랑을 확인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까? 삶은 구차하게 지속되는 것. 여기는 더이상 1995년의 세계가 아니고, 나는 스물세살이 아니다. 결말을 유예시킬 수는 있지만 머지않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환희의 순간도 시간의 유한성 앞에 조롱당한다. 해피엔드의 찰나 너머 겹겹의 층위로 도사리고 있는 현실의 덫. 제시의 네살짜리 아들과 종군 사진기자로 전쟁터에 간 셀린느의 애인 때문만은 아니다. 각자 귀환해야 할 일상은 동굴 같은 입을 벌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시간은 미완으로 끝나지만, 그러므로 오히려 사랑은 통속의 공포를 피해 더욱 아련한 신화로 봉인되었다. 그 매혹적인 기만은, 현실의 시간을 잔인하게 위무한다. 정이현 / 소설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