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와의 대화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1984년작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일종의 분기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다. 스타일과 주제에 있어서 자신만의 강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탓에 항상 자신의 우주 안에서 생성된 듯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그의 영화적 궤적도 바로 그 영화를 전후로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기에 그렇다. 즉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을 사이에 두고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는 집단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모더니즘의 영화로부터 좀더 냉소적인 태도로 개인의 실존적인 위기를 들여다보는 영화로 이행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앙겔로풀로스에 대한 글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일종의 정설 같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그의 영화를 보거나 이해하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한 편의적 단순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설명의 원천이 앙겔로풀로스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특히 관객의 손쉬운 이해를 용납하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어떤 영화감독들은 자기 영화에 대한 설명을 결단코 거부하곤 한다. 앙겔로풀로스의 경우에는 그와는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시네아스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가 관객의 역할을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그 어떤 영화비평가보다 앞서서 자신의 영화에 대해 조리있고 명민하게 그리고 기꺼이 주석을 달 수 있는 해설가이며(예컨대,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비키퍼> <안개 속의 풍경>으로 이어지는 3부작이 각각 역사, 사랑, 신의 침묵에 대한 영화라고 명명한 것도 앙겔로풀로스 자신이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아트시네마’의 영역 안에서 활동하는 이의 의무 비슷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는 ‘대화’에 굉장히 성실히 임하는 영화감독이다. 그런 그가 멀리 한국에 와서도 변함없이 동일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마치 자기 영화의 한숏 한숏처럼 길게 대답하는 바람에 많은 질문을 던지지 못한 아쉬움은 자기의 영화세계에 대한 이야기에 깊이 밴 성실함으로 어느 정도 보충이 될 듯하다. 먼저 어떻게 영화와 ‘만남’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달라. 아직 영화에 대해서 잘 몰랐던 시절에 한편의 영화를 보고서 큰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보면 나의 영화 체험은 그보다 더 시기를 거슬러올라간다. 어린 시절의 나는 당시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야외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을 보러 갔었다. 야외의 한쪽 면에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그 주변은 벽으로 에워싼 곳에서 영화를 상영했는데, 나는 돈을 내지 않으려고 다른 소년들처럼 벽을 기어올라가서 영화를 보곤 했다. 그때가 전후 시기였다. 그 당시에 볼 수 있었던 영화란 거의 전부가 미국영화들이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내 또래의 친구들과는 달리 배우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게 주의가 끌리더라. 거의 본능적으로 말이다. 이건 내가 의식적으로 감지해서 일어난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니까 영화는 꼭 내가 원한 게 아니었는데도 내 삶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일반 관객의 입장을 벗어나게 되었고 영화가 내 세계 자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시네마테크야말로 나의 진짜 ‘학교’ 프랑스의 영화학교 이덱(IDHEC)에 들어갔으나 교수와 다툰 뒤 학교를 나왔다는,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당시 그곳에서의 경험은 어땠는가. 정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학교를 나온 게 아니라 퇴학을 당한 것이 맞다(웃음). 하루는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360도 파노라마 촬영을 한다는 의미로 칠판에 큰 원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내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고 “너의 천재성은 그리스에서나 가서 발휘하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렇게 다툼이 있었는데, 교수님은 교장 선생님에게 가서 나와 그 자신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했다. 당연히 교장 선생님은 교수님을 선택했고 나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런 걸 보면 그곳에선 진정한 표현의 자유가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학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특히 영화학교의 경우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보통 가르치는 것들, 이를테면 숏-리버스 숏이라든가 이런저런 카메라 앵글 같은 것들은 석달만 지나면 스스로 배울 수가 있다. 동료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그곳이 곧 학교이지 교사가 무언가를 가르치는 곳이 학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아직 병이 들기 전, 그가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로마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를 찾아가자 그는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하던 일을 멈추라고 하고는 아주 수줍은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나도, 그도 서로가 아주 만족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안토니오니에게 나는 파리에서 그의 영화 <정사>를 열세 번째 보고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자 안토니오니는 이제는 내 영화 <유랑극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게 학교라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화를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라는 ‘학교’가 좀더 당신에게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었을 것 같은데. 파리에서 공부할 때 사실 나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일을 했다. 그러면서 모든 종류의 영화를 볼 수가 있었다. 당연히 나는 시네마테크로부터 교육을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네마테크에서 모든 영화를 보았다는 말 안에는 영화의 유년기를 보았다는 것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 나는 그런 유년기와 비교해 언제부터 영화가 자기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까지도 볼 수 있었다. 예컨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들, 독일의 무성영화들부터 전쟁 중의 영화들, 그리고 전후의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가 의식적으로 자기 언어를 갖게 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영화는 단지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문법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에 이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같은 경험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데 지침이 되어주었다는 점이다. 시네마테크를 통해 그동안 영화역사에서 행해진 모든 종류의 언어적 시도를 보았다는 경험이 뒤에 내가 나 자신의 ‘언어’를 구성해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적지 않은 영화비평가들은 당신의 영화가 안토니오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언젠가 당신 스스로도 당신이 프랑스에 갔을 때가 안토니오니의 시대였다며 그의 영화를 자주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에게 안토니오니란 어떤 존재인가. 나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시절은 안토니오니의 시대라기보다는 그 이전 영화의 초반기가 연장되던 시대라고 생각한다. 즉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칼 드레이어, 미조구치 겐지의 시대였고 내가 열광하며 본 영화들도 그들의 영화들이었다. 당시에 나는 일본영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 워낙 컸기 때문에 미조구치의 영화 10편 정도를 자막도 없이 계속 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그 영화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계속 보다보니 이해되는 순간이 오더라. 이런 열정은 나 혼자만이 가진 것은 아니었고 당시의 추세이기도 했다. 안토니오니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딱 한 가지인데, 바로 한숏이 끝나는 부분의 처리에 대한 것이다. <정사>나 <밤> 같은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을 보면 하나의 숏을 마치기 전에 다른 감독들이었다면 없어버렸을 시간을 그는 얼마 동안 남겨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보존된 영화 속의 시공간은 특별히 스토리텔링상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숏의 분위기에 차후적인 감정적 효과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숏은 마치 생물체처럼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도 그처럼 개개의 숏을 숨을 쉬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려 하는데 그 점에서 안토니오니와 유사한 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일종의 여분의 시간이 되는 몇초 안에서 특별한 음악성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런 시간이 제거되었더라면 그 숏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안토니오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면 바로 이 점일 텐데, 그것 말고 우리 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즉 안토니오니가 현재를 말하는 영화감독이라면 나는 기억을 말하는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롱테이크 숏은 나의 첫사랑 당신의 ‘호흡하는 숏’(breathing shot)은 특히 긴 호흡을 내쉬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런 롱테이크 숏은 언제 어떻게 해서 나온 산물인가. 내가 영화 만들기를 시작한 것은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가 아니라 시네마테크에서 많은 영화를 보고 영화의 역사를 알고 난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시네마테크에서의 경험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내가 본 많은 영화들은 내게 영화를 만드는 천 가지, 만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이덱 다니던 시절 내가 아주 처음으로 작은 영화를 만들었을 때 그 첫숏부터가 롱테이크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의식적으로 선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서 그것이 나온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나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롱테이크라는) 나의 첫사랑은 끝까지 남아 있을 것 같다. 첫사랑은 첫사랑이게 마련이니까. 1964년쯤, 프랑스를 떠나 그리스로 돌아온 뒤에는 영화비평 활동부터 했다고 들었다. 사실 프랑스에서 그리스로 갔던 것은 다시 떠나기 위한 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덱을 같이 다니다가 비평가가 된 한 친구가 내게 비평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서 받아들였다. 그 친구는 당시 내가 어떤 식의 글을 쓸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여하튼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당시의 나 자신도 다소 놀랐다. 아마도 그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역사는 큰 역사의 우회로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나는 그리스에 남았다. 영화비평가로서의 나는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리스의 신세대 영화감독들에 대해서 글을 쓴 유일한 사람이었다.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나로 하여금 영화를 볼 때 당연히 그 영화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그 영화가 또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러니까 영화비평가의 눈과 영화감독의 눈을 함께 가지고 영화를 봤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음으로써 결국 영화에 대한 살아 있는 관념, 그리고 살아 있는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 영화가 염세적이라면 역사가 그랬던 것 아까 당신은 자신을 안토니오니와 비교하면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감독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건 당신이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감독이라는 말과도 연관이 될 텐데, 당신의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기억 혹은 역사란 실망스러운 것, 그리고 환멸을 주는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살았던 시대는 대령들의 쿠데타와 긴밀하게 연관된 시대였다는 점이다. 그런 시대가 내가 역사와 맺는 관계의 촉매제가 되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리스의 현대사였다. 그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였다. 내 영화들을 볼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내가 ‘전쟁의 아이’라는 점이다. 내가 태어난 다음해인 1936년에 그리스의 독재시대가 펼쳐졌고, 다섯살 때에는 2차대전의 점령기가 도래했다. 아홉살 때엔 내전이 일어나 사방이 죽은 사람들로 뒤덮여 있던 때였다. 같은 해에 아버지가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다. 전쟁에서 비롯된 이런 경험들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고보면 파리에서 보냈던 시기는 그야말로 내게 가장 좋았던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유도 누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도 마음껏 보고 영화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유로웠던 만큼 사랑도 자주 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그리스로 돌아갔을 때 ‘역사’가 다시 내 인생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역사란 것은 매번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파괴적인 모습을 띠고 있었다. 만일 내 영화들에서 다뤄진 역사가 실망스럽고 환멸적인 것이라고 느꼈다면 그렇게 묘사하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에 비해 이후의 시대가 더 나아진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예전에만 해도 우리가 추구했던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래를 향한 행진이란 모토를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영화들이 염세적인 것들로 다가오는 데에는 특유의 풍경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그 풍경은 항상 안개와 비, 그리고 어둑어둑한 하늘로 음울하게 채색되어 있다. 심지어는 촬영이 지체되어 날씨가 좋아지기라도 하면 다음 겨울을 맞기 위해 촬영을 연기하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각 개인은 저마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독창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원초의 이미지가 창작자에게는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우연히 만나는 이미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일 수도 있다. 여하튼 어린이이건 어른이건 특별히 개방적이 되는 때, 즉 마음이 열리고 세계에 대한 첫 시선에 눈을 뜨게 되는 때가 있다. 영화감독들은 대개 카메라를 통해서 세계에 대한 그 같은 첫 시선을 가지게 되는데, 내 경우에는 첫 영화의 촬영장소를 찾아다니면 원초적인 이미지가 다가왔다. 그때 내게 온 이미지란 멀리 보이는 산, 고독, 비, 작은 마을을 걸어다니는 검은 옷 입은 여인 같은 것들이었다. 또한 한 노인이 마을의 카페에 앉아서 사랑 노래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르는 모습도 있었다. 이런 이미지가 이후의 내 모든 영화들에 반복해서 돌아온다. 예전과는 조금 다르고 새로운 상태로. 진 해크먼을 데리고 <허수아비>라는 영화를 찍은 미국인 영화감독 제리 셔츠버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내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을 봤다며 영화 내내 흐린 날씨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물어보더라. 그래서 나는 아주 간단하게 “많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필요한 시간만큼.” 셔츠버그 같은 경우는 나와 비교하면 굉장히 많은 예산을 가지고 영화를 찍는 중이었다.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돈으로도 내가 하는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문제는 돈이 아니다. 내가 취했던 방식대로 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고 나서 원하는 날씨가 되었을 때에는 내면의 풍경을 외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비나 안개 같은 것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그와 관련한 기술적인 문제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매순간 우리는 ‘집’을 찾아야 한다 <학의 멈춰진 발걸음>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린 국경을 건넜고 아직 여기에 있다. 얼마나 많은 경계를 건너야 우린 집에 도달할 것인가?”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이 대사가 특히 인상적인 건 그것이 당신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들- 경계에 선 삶와 경계 넘기, 귀향- 과 관련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경계’란 것은 내 영화의 중요한 테마이다. <학의 멈춰진 발걸음>은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제공하는 영화다. 당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로 많은 개방이 이뤄졌고 인구의 이동이 많이 일어난 때였다. 그러나 당시에 무너진 것은 단지 외적인 경계일 뿐이지 내면적인 경계라는 문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학의 멈춰진 발걸음>에서 마스트로이안니의 대사를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게 그런 문제였다. 그런데 그가 영화 속에서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대체 집(Home)이란 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까지도 던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단지 어떤 건물이 아니라 좀더 내면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어떤 균형이 존재하는 곳, 세상과 자기 자신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 <영원과 하루>의 한 장면에서는 주인공 알렉산드레가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이야기한다. “내 언어를 말할 수 있을 때… 왜 그때에만 내 발걸음이 집에 돌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죠?”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언어란 무엇인가, 내 자신의 언어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하이데거가 말하기를,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은 우리 어머니가 말하는 언어에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언어란 것이 곧 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집이란 완전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단지 짧은 순간만 집으로 느껴지다가 그 다음에는 집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매순간 우리는 ‘집’이라는 것을 찾아야만 한다. 당신 영화들의 숏 하나하나는 긴 호흡 안에 인물들의 움직임과 카메라의 움직임 등이 조합되어 상당히 복잡한 궤적을 그린다. 어떤 식으로 그것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지 궁금하다. 내가 설계한 롱테이크 안에는 경미하거나 아니면 뚜렷한 움직임이 항상 존재한다. 또한 카메라는 항상 움직인다. 그 결과 내 영화의 숏에는 시간의 흘러감이나 강물의 흐름 같은 느낌이 생겨난다. 그럼으로써 내 영화에는 내적인 음악성이 담기게 되는데, 그것은 그 순간 즉각적으로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차후에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축적시킨다. 아주 주의 깊은 관객은 아마도 내가 설계한 롱테이크로부터 관능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머리나 심장으로가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관능성이다. 사실 내게는 그와 같은 롱테이크로 영화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쉽다. 10분간에 걸친 롱테이크도 보통 준비에 하루, 촬영에 하루 정도를 소요한다. 반대로 가까이에서 사람의 얼굴을 찍는 것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근접 숏에 대해서 나는 청소년기에나 느낄 법한 수줍음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당신은 꽤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명망을 얻은, 그리스의 유일한 영화감독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점이 당신을 고독한 존재로 보이게도 만드는데. 나는 성격상 원래 고독하다. 영화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항상 고독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나의 고독이 내가 영화 작업을 하는 데 원천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이란 재능과는 관계없이 항상 영혼의 눈을 뜨고 깨어 있는 영혼을 가져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정말이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영화를 촬영하는 순간이다. 촬영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완벽한 사랑에 비유할 수 있는 충만감을 갖게 된다. 올해 완성된 <울부짖는 초원>은 ‘트릴로지’의 첫편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2, 3부의 진행과정에 대해 알려달라. 2부가 될 영화의 시나리오가 거의 끝나가는 단계에 있다. 촬영은 2005년 11월부터 시작되는 겨울에 들어갈 예정이다. 누굴 캐스팅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비 카이틀과는 계속 연락을 하고 있고 그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긴 한데, 영화의 주인공보다 그가 나이가 조금 많기 때문에 결과는 더 두고봐야 알 것 같다. 3부작의 마지막 파트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신밖에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은 보도된 바와는 달리 2030년이나 그 이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12월의 열대야> 신데렐라 입성이후…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오영심(엄정화)은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에 성공한 듯 보인다. 남편(신성우)은 실력있는 신경외과 전문의에, 시아버지(이순재)는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재벌급 의료계 원로다. 시놉시스를 보면 시어머니(박원숙)는 “교양있고 기품있는, 홍라희 호암미술관장 같은 이미지”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나 고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오영심이 이런 집안의 맏며느리가 됐다면, 그건 당연히 왕자비가 된 재투성이 이야기다. 그런데 는 결혼 뒤 이야기다. 안방극장을 명멸한 무수한 신데렐라 이야기와 달라지는 지점이다. <파리의 연인>도 <황태자의 첫사랑>도 모두 결혼 또는 사랑의 성립 직전까지가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다. 재투성이는 왕자 주변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감동적인 사랑의 꼭지점에 도달한다. 여기까지다. 신데렐라가 그 뒤 왕궁에 들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는 그 얘기를 들려주고픈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재투성이는 여전히 재투성이인 채다. 그는 예전 자신의 신분과 비교되지 않는 시집의 휘황한 광휘 안에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겨워 보인다. 평균 학력이 석사 이상인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그는 “너는 그것도 모르니”로 아침을 시작해 “도대체 니가 아는 것은 뭐니”로 하루를 마감한다. 집안 일은 모두 그의 몫이고, 누구도 그를 왕자비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경멸적 시선에 내몰린다. 그럴 것이 그는 시집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다. 그는 아랫동서될 새 신부 집에서 보내온 예단을 둘러보다, 자신에게 배당된 수표가 2000만원인 걸 알고 경악한다. 그리곤 “난 이런 큰 돈은 못 받겠다”고 한다. 식구 수를 꼽아보며 총액이 얼마가 될까 놀라워한다. 그런 그가 시어머니는 더 할 나위 없이 한심스럽기만 한다. “어디서 예단 봉투를 쑥쑥 맘대로 열어 보느냐”는 것이다. 못 배운 티 낸다는 것이다. 그에게 결혼이 돈잔치가 되는 세태는 이해할 수 없는 허영의 발로로 느껴진다.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그건 당연한 문화일 뿐이며, 중요한 건 그런 ‘관습’을 우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이다. 그와 시어머니는 한 집에 살고 있어도 여전히 계급이 다르다. 왕자조차도 그에겐 힘이 될 수 없다. 클래식을 즐겨듣는 남편과 텔레비전으로 코믹 영화를 보며 깔깔대다 잠드는 그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남편은 옛 여자친구의 적극적 구애를 받으면서도 결코 바람만은 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그건 도덕적 다짐일 뿐, 아내와의 관계는 결코 회복되지 않는다. 부부의 다름은 취향의 다름이며, 그건 이미 돌이킴이 불가능한 계급적 취향의 다름이기 때문이다. 는 수많은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간과해 온, 결혼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회 구성원 사이의 계급적 분할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나아가 그 계급의 차이는 단지 돈만이 아니라 취향을 포함하는 문화적 자산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 의 독특함이 있다. <파리의 연인>에서 보여준, 강태영(김정은)과 한기주(박신양) 사이 계급적 취향의 섞임이란 실은 실현될 수 없는 판타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답죠” <단팥빵>의 앙꼬 최강희

갈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눈을 잘 맞추지 못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숫기없는 어린아이 같다. 하지만 띄엄띄엄 자신의 연기 활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 할 땐, 속 깊이 익은 성찰이 느껴진다. 연예인 냄새가 나지 않는 배우 최강희(27)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후배처럼 꾸밈없고 솔직했다. 10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최근 한국방송 라디오(89.1㎒)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매일 저녁 8시)의 디제이까지 맡아 바빠 보였다. “라디오 한 지 오늘로 딱 12일째에요.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친구요? 청취자들이죠. 라디오를 거의 끼고 살던 중학교 때부터 디제이 해보고 싶었어요.” 꿈을 이뤘기 때문일까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꾸밀 줄 모르는 그의 참모습이 바로 드러난다. “첫 게스트로 이승환씨가 나왔고, 그 뒤로 자우림, 넥스트 등이 나왔는데요. 이분들 보고 너무 떨려서 청취자들에게 떠는 게 다 티가 났어요. 제가 연기자다 보니까 가수들 보면 보통 팬들이나 다름없거든요.” 〈단팥빵〉도 라디오와 다르지 않다. “순수한 것이 인기비결이에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지 않은 것이 매력이죠. 신데렐라도 재벌2세도 나오지 않고 그냥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친구가 있고, 친구가 나도 모르게 사랑이 되는 평범한 우리 삶과 같은 이야기를 시청자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거예요.” 인간관계는 어떨까? 낯가림이 심해 친한 연예인도 별로 없고 인간관계도 좁은 편이라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친한 사람과는 한없이 친해진단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는 말처럼요, 단 한두 사람과 끊이지 않는 인연으로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요.” 책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진다. “가장 힘든 것이 사람 대하는 것”이라는 그는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언젠가 ‘북 카페’를 열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일본의 10대가 쓴 책을 참 재밌게 봤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같은 것들도 좋고요. 홀로 무엇인가 관찰하는, 외롭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좋아요.” 연기에 대한 생각도 또렷했다. 자신의 연기는 최고일 때도 최하일 때도 있단다. “0.1%의 잡념도 없이 극중 인물에 몰입될 때가 최고죠. 10번 못해도 1번 최고가 나오면 좋아요. 전 기계적으로 연기하는 건 싫거든요.” 앞으로는 최근에 본 영화 〈비포 선셋〉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딘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은 분위기, 그런 자연스러움이 끌린다는 것. 또 하나, 영화 〈청춘 스케치〉나 〈처음 느낀 자유〉처럼 요즘 20대들,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공허한’ 20대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있다면 꼭 출연하고 싶다는 것이, 삶도 연기도 한없이 자연스러운 배우 최강희의 바람이다.

겨울흥행시즌 돌입! 디즈니의 <인크레더블> 미국 박스오피스 1위

슈퍼 히어로 가족의 모험담, 디즈니의 <인크레더블>이 연말 흥행시즌을 화려하게 알리면서 박스오피스 1위로 싱겁게(?) 데뷔했다. <그러지>가 2주연속 1위를 한터라 3주차까지 1위 고수는 힘들고, 드림웍스의 경쟁작 <샤크>도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어서 <인크레더블>의 1위 탈환은 쉽게 예상됐던 일. 따라서 개봉관심사는 몇위에 데뷔하느냐가 아니라 얼마의 수익을 올리는가에 집중됐었다. 예상됐던 수치는 적게는 7천만불에서 많게는 8천만불 정도. 결과는 7천백만불에 조금 못미친다. 개봉첫주 수익 7천만불은 <니모를 찾아서>와 비슷하지만 <슈렉2>의 9천만불을 넘기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예상했던만큼의 성공만 거둔 셈이다. 미국 전역 3,933개의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한 <인크레더블>의 극장수는 역대 금요일 개봉작중 네번째로 많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에 와이드 릴리즈로 물량공세를 펼친 <인크레더블>의 최종 수익이 얼마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히트작으로 기록되기 위해선 포장된 마케팅 기술이 빠지고 작품자체가 흥행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없는 연말 극장가를 볼 때 일단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히트작품은 <슈렉2>가 4억3천6백만불, <니모를 찾아서>가 3억4천만불, <슈렉>이 2억6천7백만불로 <인크레더블>이 세작품 사이 어디쯤에 위치할지도 관심거리. 참고로 <샤크 테일>이 먼저 개봉하고 <인크레더블>이 뒤를 따랐던 미국과 달리 국내는 <인크레더블>(12월 15일)이 <샤크 테일>(내년 1월 7일)보다 먼저 관객의 심판을 받는다.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다룬 <레이>는 전주 2위를 지켰다. 극장수는 2,006개에서 2,463개로 400여개 늘었고 천3백8십만불을 더 보태 2주차 흥행누계는 4천만불에 이른다. 극장당 흥행수익도 여전히 높아 알짜배기 흥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평단의 반응도 호의적이어서 제이미 폭스의 오스카 노미네이트 가능성도 한껏 높아졌다. 공포영화로는 의외로 2주연속 1위를 기록했던 <그러지>는 두계단 하락한 3위를 차지했다. 주말사이 천3백5십만불을 더 보태 예상했던 3주차 흥행성적 9천만불에 육박했다. 극장수도 3,336개로 배급력이 뒷받침해주고 있어 다음주면 1억불 돌파가 가능해 보인다. 천만불짜리 영화 <그러지>가 극장 수입만 10배 이상을 뽑는 대박을 이뤄냄에 따라 저렴한 예산으로 검증된 소재를 사용하는 리메이크 붐과 원작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레이>만큼은 아니지만 <톱>(saw)도 착실히 흥행중이다. 전주보다 한계단 떨어지긴 했지만 천백만불 이상을 더 보태면서 수익은 3천5백만불을 넘었다. 배급사 라이온스 게이트는 <오픈 워터>(open water)에 이어 돈되는 독립영화 발굴 능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주드 로가 바람둥이로 출연한 <알피>(Alfie)는 이번주 새로 개봉해 5위에 올랐다. 바람둥이 주드 로의 상대역은 수잔 서랜든, 마리사 토메이, 시에나 밀러다. 2,215개의 극장에서 개봉해 6백5십만불을 챙겼다. 6위에서 10위는 지난주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미라맥스의 <셀 위 댄스?>는 한계단 하락한 6위로 총누계는 4천만불을 넘겼다. 전주보다 3계단 더 하락해 7위를 기록한 <샤크>의 낙폭은 가팔라지고 있다. 주말 수익도 5백만불을 채 못넘겼다.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와 <래더 49>, <팀 아메리카:세계경찰>이 그뒤로 하위권을 형성했다.

[국내 단신] 제1회 종로영화제 열려 外

제1회 종로영화제 열려 11월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열리는 제1회 종로영화제는 개봉을 기다리는 화제작들과 놓쳤던 수작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문화일보 AM7과 시네코아가 주최하는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모두 28편. 올해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작인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를 시작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이와이 순지의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 미라 네어의 <베니티 페어>,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린>,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허진호, 장준환, 이재용 등 국내 유명감독들의 단편을 볼 수 있는 섹션도 마련되어 있다(문의: www.cinecore.co.kr(시네코아 홈페이지), 02-2285-2090, 1588-2093). <마이 제너레이션> 극장 개봉 노동석 감독의 디지털 장편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사진)이 12월3일 하이퍼텍 나다 등 아트플러스 배급망을 통해 극장 개봉된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예술영화 전용관 네트워크 아트플러스가 <송환>에 이어 배급하는 두 번째 작품. 아트플러스는 <마이 제너레이션>과 다른 디지털 장편영화 1편을 나란히 개봉하는 안도 고려 중이다.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개최 제12회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가 11월19일 오후 6시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올해 행사에는 <송환>(김동원), <실미도>(강우석), <올드보이>(박찬욱) 등 34편이 출품됐으며, 11월10일부터 13일까지 실시되는 본심에서 수상작을 결정하게 된다. 아시아나단편영화제 폐막 벨기에 니콜라 프로보스트 감독의 <엑조티코어>와 한국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이 10월31일 폐막한 제2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고요한 마니석>(완마 차이단)이, 감독상은 <망각>의 릴자 앙골프스도티르 감독이, 아시아나 고객인기상은 <견제부자>(홍성혁)이 받았다. 이들 수상작은 2005년 1∼6월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기내에서 상영된다. <효자동 이발사> 도쿄영화제 2관왕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가 10월31일 폐막된 제17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비경쟁 부문인 ‘아시아의 바람’ 부문에 출품됐던 <가능한 변화들>(민병국)은 최우수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했다. 한편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은 제49회 바야돌리드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 스파이크상을 받았다. 또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단편영화제인 2004 숏쇼츠아시아영화제에서는 <비둘기>(강만진)와 <인생>(김준기)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하지원·연정훈 주연의 <키다리 아저씨> 청주 촬영현장

지난 10월24일 일요일 오후, 단풍마저 절정에 오른 충북 청주대학교 교정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촬영현장 공개가 있었다. J. 웹스터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키다리 아저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라디오 작가 영미(하지원)와 그를 남몰래 사랑하는 준호(연정훈)의 로맨스를 담백하게 그리는 영화. 이날의 촬영분은 두 사람이 방송사 로비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었다. 짧은 장면이지만 배우들의 동선을 맞추고, 두 사람이 엇갈리는 순간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 위해 카메라 감독은 연신 고민 중이다. “두 사람의 동선이 화면에서 만나는 부분을 조금 더 일찍 해보자구!” “지원씨, 카메라에서 조금만 더 떨어져서 걸어보면 어떨까?” 카메라 감독의 외침과 함께 배우와 스탭들은 분주하게 새로운 동선을 만들어나간다. 4번째 촬영.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방송사 로비로 들어오는 영미. 그런 영미를 바라보며 조용히 애달픈 시선을 던지다가 비디오 테이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마는 준호. 바닥에 깔린 트랙을 따라 미끄럽게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 조용한 가운데 감독의 입이 열린다. “오케에에이!” 밝은 주황색 니트를 걸친 하지원은 연신 생글거리고 있다. “다른 영화에서는 귀여운 척, 발랄한 척도 많이 했지만 <키다리 아저씨>에서는 그런 척 안 해도 되니까 너무 편하다”는 그에게 다작 때문에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제가 체력이 되거든요!”라며 씩씩하게 웃는다. 연정훈은 <키다리 아저씨>가 스크린 데뷔작이다. 하지원과의 연기호흡에 대해서 그는 “서로 동갑이라 친근감도 느끼고. 이젠 서로 뒷모습만 봐도 오케이인지 아닌지 알 정도로 느낌이 잘 맞는 것 같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키다리 아저씨>가 데뷔작인 공정식 감독은 <본 투 킬> <남자 이야기> 등의 조감독 출신. “영미라는 캐릭터는 앞만 보고 달려간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파하고 힘들어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영미와 준호를 통해서 살아가면서 매 순간 벌어지는 것들이 소중하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그는 “연출자로서 내가 울 수 있다면, 관객도 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 믿음은 바람이 쌀쌀할 내년 1월에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5] - 장선우 감독의 <천개의 고원>

“소년과 말의 지극한 러브스토리다” PPP에서 만난 신작2 - 장선우 감독의 <천개의 고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이후 장선우 감독은 영화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수백번 했다. 흥행 참패와 평단의 외면 때문은 아니었다. “10년을 돌아보니 하고 싶은 영화 많이 했구나, 이제 그만 해도 되겠구나 싶었거든.” 그냥 빈둥댈까, 귀농할까, 그것도 아니면 입산할까. 행로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장 감독을 지인들과 후배들이 가만뒀을 리 없다. 시집 <이별에 대하여> 출간과 영화 <귀여워> 출연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렇다면 이번에 그가 부산을 찾은 이유는. 혹시 <귀여워>의 배우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니다. 그가 부산에서 꺼내든 것은 몽골의 마두금 전설을 바탕으로 한 신작 <천개의 고원>(가제)이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나봐. 다시 돌아온 것 보면.” <천개의 고원>은 몽골의 마두금(馬頭琴) 전설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다. “지난해에 몽골에 간 적 있는데 초원에서 말타고 한없이 놀고 싶은 거야. 말타고 달리던 유목민의 DNA가 되살아났는지도 몰라. 하루에 8시간씩 말타고 그랬어.” (웃음) 농으로 여기서 영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동행했던 누군가가 장 감독에게 마두금에 관한 전설을 이야기해줬다. 마두금은 두줄로 된 몽골의 전통 악기. ‘모린 호르’라고 불리는 이 악기는 사람들 마음을 달래주는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어지며, 이에 대한 전설은 17개나 된다는 게 장 감독의 설명이다. “두줄이니까 단순무식한 악기지. 그런데 그게 굉장히 슬퍼. 애조가 있어. 우리 해금처럼. 올해 초에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낙타의 눈물>이라는 몽골영화를 봤는데 거기 보면 마두금 연주를 들려줬더니 낙타가 울더라고.” 장 감독은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천개의 고원>이 ‘소년과 말의 지극한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1800여년 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훈족 소년 수호는 어느 날 어미를 잃은 새끼말을 얻게 되고, 말은 소년의 보살핌으로 누구나 탐낼 만한 명마로 자라난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전쟁은 수호의 말을 필요로 하게 되고, 징발당한 수호의 말은 결국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상실한 소년의 꿈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말은 제 몸을 악기로 만들어 연주해달라고 하고, 수호는 말의 가죽으로 통을 만들고 말의 머리뼈로 장식한 마두금을 만든다. 마두금 소리가 울려퍼지자 세상은 평온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 <천개의 고원>의 맺음이다. 장 감독은 “영화 속에서 말은 소년의 죽은 엄마의 환생이라고. 소년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말이 죽고 난 뒤 마두금을 연주하면서 비로소 엄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돼”라고 덧붙인다. “이번엔 애들이 엄마 손잡고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웃음) 나야 한번도 그런 영화를 한 적 없으니까 나한테는 모험이지.” 그렇다고 <천개의 고원>이 ‘아동용’ 영화라는 건 아니다. 그러려면 굳이 직선의 시간을 거슬러,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이야기를 펼칠 이유가 있겠는가. 장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자유’다. 욕망이 증식하는 억압의 문명에서 벗어나 거세됐던 유목민들의 자유로운 삶을 환기하려는 의도다. “쉽게 말하면 이 영화는 ‘잘살아보자’ 캠페인 같은 거야. ‘훈’은 중국어론 바람이고, 몽골어론 사람이란 뜻이야. 집착 버리고 욕망 지우고 웰빙하자는 거지. 요즘 다들 노마디즘에 주목하는 것도 그런 것 아닌가.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에 끌려가지 않고 버티면서 대안적인 행복이 뭔지 찾아보고 싶어.” 가족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전쟁에 나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보다 침묵으로 욕망을 다스리는 훈족들의 풍습에 대한 조사는 이미 마친 상태. 최종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지만, 고고학자 출신의 현지 로케이션 매니저인 오키르와 함께 “그 자체로 미네랄 워터”라는 홉스굴 호수 등을 돌며 촬영장소를 눈여겨봐둔 상태다. 장 감독은 “피를 흘리게 하지 않고 고통없이 상대의 목숨을 끊는” 훈족의 전쟁장면 묘사를 위해서 몽골의 국민감독 발 딘 얌에게 전쟁장면 연출을 의뢰할 계획. 공동 프로듀서인 명계남 대표와 류진옥 프로듀서는 몽골쪽에 촬영 지원을 요청해둔 상태이고, 프랑스, 일본의 배급사 등과 투자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성사되면, 파격과 실험의 지그재그 행보를 계속해온 장선우 감독의 ‘자유론’은 다국적 프로젝트 형태로 가시화될 듯하다.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600회 특집, <그러나, 기억하라>

가을이 깊다. 거의 끝자락에 온 듯하다. 이제 곧 저 찬란하게 물든 잎새들은 지고, 낙엽마저 세찬 바람에 날리다 마침내 서리에 하얗게 덮이리라. 그렇게 가을이 가기 전 <그러나, 기억하라>(윤지련 극본, 최창욱 연출)를 만난 것은 작지만 단단한 기쁨이다.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600회 특집으로 지난 5일 밤 안방극장을 찾은 단막극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 ‘재난 후일담’을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 아직 기억에 생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 환(김정근)의 이야기가 큰 축이다. 환은 아내(신은정)를 따라 프랑스로 가기 위해 청국장을 좋아하면서도 프랑스 요리를 전공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한다. 드라마는 초반 임신한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배가 눌리지 않게 머리를 감겨주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숨이 막힌다, 사랑한다’는 아내의 휴대전화를 받고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면, 끝없는 절망의 심연에 갇히고 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는 절망을 술로 달랜다. 누구 하나 뚜렷한 원망의 대상을 찾을 길 없는 상황을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취기 속에서 문득 문득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비극을 부른다. 술김에 싸움을 벌이다 차에 치일 뻔한 그를 구해내고 결혼을 앞둔 경찰관이 숨진다. 그 경찰관의 애인 선영(정애연)은 이미 아이를 품은 채다. 여기서부터의 이야기는 사실 쉽게 짐작된다. 둘은 만나 갈등과 번민 속에서도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위안이 돼 준다. 결론이야 그래도 넘어설 수 없는 서로의 아픔 탓에 이별을 하거나, 우여곡절 끝에 새 희망의 근거를 만들거나이다. <그러나, 기억하라>는 후자를 택함으로써, 평이한 설정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짐작 가능한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준다. 그건 드라마 곳곳에 밴, 삶과 인간에 대한 성숙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아내를 잃은 남자 때문에 애인을 잃은 여인은 ‘미안하다’고 하는 그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와눈헤쿤.” “라코타 인디언들에겐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그런 말이 없대요. ‘와눈헤쿤’, 모르고 한 일이라는 뜻인데,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모르고 저지른 잘못에는 그것으로 족하다는 거죠.” 선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은 참 오랜만에 편한 잠에 빠져든다. 환의 장모(윤여정)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 또한 기억될 만하다. 그는 가끔 사위를 찾아, 예전에 남자가 아내에게 했듯이 사위의 머리를 감겨준다. 사위가 끝내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통렬한 성찰의 화두를 던지는 것도 그다. 사위가 “왜 하필 우린데? 왜 하필 수현(아내)이었는데?”라고 절규할 때 그 역시 울먹이며 말한다. “나 그거 수천번, 수만번 해봤는데…. 환아. 질문이 틀렸더라. 왜 다른 사람은 되고, 우린 절대 안돼?” 아픔과 상처의 기억은 눈물겹고, 그 눈물을 머금고 피어난 또 하나의 사랑과 희망은 마지막 가을빛살마냥 찬란하게 아름답다.

정재은 감독 <태풍태양> 촬영현장을 가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강남 테헤란로의 한 빌딩 앞. 차가운 금속과 유리 자재가 보는 이를 주눅들게 만드는 화려한 장식 벽 꼭대기를 두개의 바퀴가 비웃듯 ‘드르륵’ 긁어 나간다. 1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높이의 얇은 벽을 타고 오다가 뛰어내리는 스케이터의 등을 와이어가 부축하고 있지만 아슬아슬하기는 매한가지다. 도심의 기물을 자유자재로 타고 노는 젊은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터들의 비상을 담아내는 〈태풍태양〉(제작 필름매니아)의 촬영현장. 악으로 깡으로 인라인을 타는 ‘깡맨’ 역의 가수 출신 배우 김상혁이 벽을 타고 뛰어내리다가 부상을 당하는 위태로운 연기를 하는 동안 김강우, 천정명, 이천희 등 다른 배우들은 한 구석에서 놀이를 하듯 연습을 한다. 여름분을 찍느라 얇은 셔츠 차림인데 경쟁적으로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기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들의 젊음 앞에서 입김을 호호 불게 하는 늦가을의 밤추위가 무색해진다. “대단한 에너지예요. 다른 현장 같으면 배우들 쉬는 시간에도 이 친구들은 같이 축구하고 농구하고, 배우들이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현장 분위기가 늘 북적거리고 밝은 게 좋네요.” 11월7일, 이틀째 꼬박 밤샘촬영이지만 좀처럼 지치지 않는 배우들 덕에 정재은 감독은 피곤한 내색도 하지 못한다. 이십대 초반 여자 아이들의 성장담을 섬세하게 그려낸 〈고양이를 부탁해〉에 이은 두번째 연출작으로 이번에는 ‘목숨걸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 아이들의 꿈과 좌절을 그려낸다. 〈해안선〉 〈실미도〉에 출연했으며 이번 영화로 첫 주연을 맡게 된 김강우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신인급으로 8월말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 두달 넘게 하루 열두시간 이상 스케이팅 훈련을 했다. “40년 만의 더위였잖아요. 하루에 티셔츠 3개를 갈아입었는데 타다 보면 땀 때문에 옷이 너무 무거워져서 아예 윗도리를 벗고 연습했어요. 덕분에 초기 촬영 때는 모두들 얼굴이 새카맸어요.” 며칠 전 서강대교에서 밤섬까지 헤엄쳐 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종일 한강 물속에서 고생해야 했던 김강우는 “이상하게 몸고생 많이 하는 영화에만 출연하게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분위기로 보나 나이로 보나 처음으로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돼서 즐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남 일대의 고층 건물들과 올림픽 공원, 일산 호수공원 등 인라인 스케이터들의 집결지에서 전문 스케이터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찍고 있는 〈태풍태양〉은 2월 중순, 겨울 끝물의 매운 바람을 후끈하게 녹이며 관객들을 향한 질주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