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격렬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미치고 싶을 때>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잃은 이들, 모두가 나처럼 이성을 잃을까.” 적어도 그들은 그렇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어도 좋다’는 듯 세상에 ‘정면충돌’하고 만다(영화의 영어 제목은 ‘헤드-온’ 즉 ‘정면 충돌’이다). 돌아가거나 쉬어갈 줄 모르는 그들은 날선 욕구와 감정을 세상에 정면으로 ‘들이대’고 그 때문에 무너져내린다. <베티 블루>의 주인공처럼 자기파괴적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 <미치고 싶을 때>는 그렇게 슬프고 격렬하고 쓸쓸한 영화다. 아내와 사별하고 폐인처럼 광인처럼 살고 있는 차히트(비롤 위넬)는 음주 운전으로 자살을 기도했다가, 병원 대합실에서 야릇한 눈길을 보내는 시벨(시벨 케킬리)을 만나게 된다. 터키계 이민자인 시벨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벗어날 핑계로, 같은 터키계인 차히트에게 다짜고짜 위장 결혼을 제안한다. 눈속임으로 결혼한 그들은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시벨은 매일 밤 클럽에서 ‘원나이트 스탠드’ 상대를 찾고, 냉소적인 차히트는 가끔 애인을 만나고 술과 마약에 절어 산다.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낀 순간, 차히트는 질투심에 불타 시벨의 남자친구를 죽이고 만다. “진짜 죽을 여자야. 죽으면 내 책임이라고.” 시벨을 ‘살리기’ 위해 위장 결혼에 응한 차히트였지만, 거꾸로 그녀가 ‘산송장’ 같던 자신을 구원하고 파괴할 거라고, 그때는 상상조차 못했다. 감독 파티 아킨은 <미치고 싶을 때>를 “단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는 이들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이스탄불로 귀향한 뒤에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시벨의 체념 혹은 발악, ‘사랑에 빠졌다’고 깨닫는 순간 양손에 유리 파편을 박고 환호하는 차히트의 기행에서 보여지듯 이들의 사랑은 너무 뜨거워 델 것 같고 너무 날카로워 벨 것 같다. 그들은 너무 오래 방황했고, 힘들게 만난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신은 우릴 시험에 들게 했다”는 시벨의 말처럼 그들 사랑의 운명은 너무 얄궂었다. 그렇게 서로를 다치게 하고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 사랑을 지켜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서 열정적이지만 냉소적이고, 낭만적이지만 냉혹한 이 로맨스는 가슴으로 끌어안거나 밀쳐내거나, 그렇게 극단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러브스토리로서는 드물게 반전이 거듭되고, 뒤로 갈수록 비척거리는 것은, 결말을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한 흔적으로 읽힌다.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미치고 싶을 때>를 두고, 독일 영화계에선 간만에 ‘독일영화’의 쾌거라고 반긴 바 있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미치고 싶을 때>는 독일 내 터키 이민자들의 삶에 주목한, 조금 ‘다른’ 독일영화다. <슈팅 라이크 베컴>이나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소수 이민자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미치고 싶을 때>는 그러나, 근거없는 희망과 화합의 비약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집안 남자들의 과잉보호에서 벗어나, 피어싱과 춤과 마약과 원 나이트 스탠드로 자유를 희구하는 시벨의 모습은, 시대와도 문화와도 불화한 채 폐쇄적인 삶을 사는 마이너리티 집단, 그 분열의 초상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독일인으로는 살 수 없다. 차히트의 정신상담의는 “딴 데 가서 죽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나서”라는 지독한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터키로 돌아가지만, 거기서도 그들은 온전하게 살지 못한다. 이민자들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미치고 싶을 때>처럼 뿌리없이 떠도는 그들의 고독과 좌절, 그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영화는 흔치 않았다. <미치고 싶을 때>는 문화의 충돌과 불화를 그린 만큼 음악과 영상에도 비슷한 컨셉을 적용했다. 고전 비극에 감화해 ‘음악극’을 도입하게 됐다는 감독은 이스탄불 항구에 터키 전통 악단을 막간 내레이터로 끌어들여 때마다 영화의 분위기와 스토리가 달라질 것을 예고한다. 이야기로 들어와서는 남녀의 광기를 오롯이 드러내는 하드 록과 차가운 침묵을 섞어가며 관객의 심박동을 뒤흔든다. 함부르크의 어두운 뒷골목과 이스탄불의 활기찬 도심을 대비한 라이너 클라우스만의 촬영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보수적인 부모에 반항하듯 포르노를 찍고 배우가 된 시벨 케킬리, 난폭하고 변덕스러워 뭇 감독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비롤 위넬 등 자신을 꼭 빼닮은 역할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넣어 황폐해진 배우들 때문에 감독은 한때 고려했던 해피엔딩을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 감독 파티 아킨 독일영화에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담겠다 <미치고 싶을 때>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파티 아킨은, 서른한살의 젊은 감독으로, 그 자신도 터키계 독일인이다. 함부르크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단편 <젠진-네가 그것이다>로 함부르크의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편 데뷔작은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일상을 그린 <짧고 고통 없이>(1998)로, 독일 평단과 관객 사이에 호평을 이끈 작품. 이때부터 그의 영화적 주제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나 마이너리티의 삶에 집중됐다. 2002년작 <솔리노>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독일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이탈리아 이민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미치고 싶을 때> 역시 그 자신이 속해 있는 터키계 독일인들의 삶을 근접 포착한 영화다. 감독은 실제로 그 자신이 동료였던 터키 여자에게 위장 결혼을 제안받았던 기억을 영화의 소재로 확장시켰다. 독일 내의 터키 공동체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찍은 영화. 그러나 파티 아킨은 어떤 의미로도 자신의 영화세계를 규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의 삶을 즐겨 다루는 데 대해서도 “나는 내 영화들을 그런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언론에선 내게 다음에도 이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묻지만, 그런 단어는 쇼비니즘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일갈할 뿐이다. 대신 이제껏 독일영화가 반영하지 않았던 문화와 인종의 다양성을 끌어들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믿음을 드러낸 바 있다. <짧고 고통 없이> <7월에>에 이어 <미치고 싶을 때>에도 비롤 위넬을 캐스팅하는 등 그를 자신의 페르소나, 더 나아가 영감의 원천으로 여기고 있으며, <미치고 싶을 때>에 터키 전통 음악을 끌어들인 것을 계기로 터키 음악과 서구 음악의 만남과 변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등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비에스 드라마 <봄날> 제작발표회 현장

“제 인생에도 ‘제2의 봄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기자들을 만나니 (연인과) 몰래 데이트를 하다가, 양가 허락을 받고 만나는 것 같아서 좋아요.” 탤런트 고현정(33)이 10년 만에 연예계 복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고현정은 9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에스비에스 드라마 <봄날>(김규완 극본, 김종혁 연출) 제작발표회에서 “열심히 연기하는 것이 팬들에게 인사하는 좋은 방법이어서 드라마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계 복귀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결심한 시점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게 여러분께 인사드리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며 “<모래시계>를 연출했던 김종학 피디와 운군일 피디 등이 복귀에 많은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귀 결정이 쉽지 않았으며 부담감도 적지 않다고도 털어놨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많아요. <모래시계>에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께 실망시켜 드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죠. 하지만 너무 잘하려고 하거나 뭔가 보여주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저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고현정은 ‘제2의 봄날’ 이야기를 하며, 지난해 11월 이혼 뒤 지금까지의 마음고생에 대해서도 에둘러 표현했다. “봄이 원래 바람도 많이 불고, 꽃이 펴서 좋은가 했더니 또 춥고, 계절따라 예쁜 옷도 입고 싶은데 감기 걸려서 집에 들어오고 그런 계절인 것 같아요. ‘제1의 봄날’이랄 수 있는 (결혼) 10년간은 좌충우돌이 많았어요. 이혼하고 1년 동안은 많은 것을 생각했죠. (이혼으로 떨어져 있는) 그 아이들은 여전히 내 아이들이에요. 아이들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따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아이 이야기가 나왔을 땐, 잠시 눈물이 맺히는 듯했지만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흰 치마와 검은 정장 윗옷을 입은 고현정은 행사가 열리는 동안 줄곧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자리한 어색함이 감춰지진 않았다. 이날 행사에는 취재진 300여명이 몰려 고현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봄날>은 오는 20일 촬영을 시작해 내년 1월8일 첫 전파를 타는 20부작 드라마다.

영원하진 않지만 강한 사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절제의 미학 먼저 원작을 읽었더라면, 어떤 느낌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죽음과도 같은 영원한 행복이 아니라, 이별 이후의 또 다른 삶이라니. 시나리오 작가인 와타나베 아야는, 대담하게도 첫 각색작품에서 해피엔딩의 결말을 언해피엔딩으로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작의 아우라는 전혀, 고즈넉한 숨결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른 해석을 가미한 것이 아니라, “두터운 골격을 압축시켜놓은 원작에 캐스팅된 배우들을 겹쳐놓고 해동(解凍)시켰다는 느낌이랄까. 주연을 맡은 두 사람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지만 단순하게 깨끗하고 예쁜 이야기만은 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플롯으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이미지의 세계에 침잠하다보면 그곳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보인다.” 와타나베 아야의 진술처럼 영화로 각색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원작의 정수를 견지하면서도, 확장된 세계로 떠난 조제의 의지와 슬픔을 보여준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와타나베 아야는, 조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 대로 나쁘진 않아.” 조제, 츠네오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오다 서로 다른 듯도 하지만, 일관된 것은 삶에 대한 긍정이다. 긍정?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죽음을 늘 생각하기 때문에 삶을 받아들인다. 어둠 속에서 이미 오랫동안 있었기에, 빛이 사라질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제는 츠네오의 손을 잡고, 토끼를 따라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들어갔듯이,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쳐 이 세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호랑이를 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호랑이를 보게 된 조제는, 이제 휠체어를 살 수도 있다. 문자를 통해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면서 얻은 지혜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일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화자는 츠네오이지만, 우리의 눈은 조제에게 박힌다. 츠네오의 마음만을 따라가면, 우리는 조제의 등을 보지 못할 것이다. 처음 만난 츠네오에게, 조제는 칼을 휘두른다. 세상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 세상은 잔인하다. 그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주변에서 들여다보기만 할지라도 뭔가 다짐과 용기가 필요하다. 오사카 사투리를 쓰는 조제의 말투는, 초등학생이 국어교과서를 읽듯이 장단고저가 없이 뱉어진다. 되도록 감정을 싣지 않고, 되도록 전투적으로. 계란말이가 맛있네요라는 칭찬에 당연하지, 내가 만든 것인데, 라고 답하고 달걀 껍질에 새똥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식중독에 걸릴 거라고 말한다. 살모넬라균 때문이고, 대학생이 그것도 모르냐고 비난한다. ‘비난한다.’ 그게 조제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되도록 두껍게 벽을 치고, 상대가 돌아서게 만드는 것. 츠네오를 빼앗긴 여인이 던진 “솔직히 네 무기가 부러워”라는 공격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말하는 조제를 보고 있으면, 조제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정글에서의 생존비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조제의 적의는, 위장된 당당함이다. 조제는 늘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 정말로 끌리는 것을 말할 때 그녀는 무장해제된다. 위험하니까 산책을 그만두라는 츠네오의 말에, “그럴 수 없어. 이런저런 보고 싶은 게 많아.”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숨가쁘게 말한다. 꽃이랑… 고양이랑… 사강의 책 <1년 후에>의 속편을 아느냐고 물어볼 때에도, 그녀는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일상적이고 뻔한 것들을 보기 위해서 때로 조제는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가면을 쓰는 것이다.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단지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급적 냉정하게, 가급적 강력하게 자신을 ‘광고’했던 것일 뿐이다. 그 가면이 차츰, 내면이 되어간다. 의자에서 내려올 때, 그녀는 다이빙을 하듯이 한번에 거칠게 뛰어내린다. 어딘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의 위협적인 다이빙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조제의 삶의 방식이다. 나는 이렇다, 라며, 이런 삶의 방식도 있다고 의식적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그게 그녀의 자립이다. 약하기 때문에, 그녀는 강해지는 것이다. 강한 척하다 보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강해지는 것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100% 연애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조제의 생명력을 단지 과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츠네오가 조제를 발견하는 이유는, 식사장면에서 드러난다. 도움을 준 대가로, 아침을 먹으라는 할머니의 권유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츠네오. 마지못해 국을 마시고, 밥을 떠먹은 츠네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오! 아주 맛있는데! 라는 말이 그대로 얼굴에 쓰여 있다. 그 만족스러운 표정,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츠네오란 인물이 단박에 들어온다. 그렇기에 츠네오는 조제를 발견한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조제에게, 가장 원초적인 이유로 끌리는 것이다. 그걸 말로 할 수는 없다.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은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라는 츠네오의 말처럼, 그건 생각이 아니라 감정이다. 어느 순간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와 주인이 되어버린 감정. 그건 말이 아니라, 츠네오의 표정으로 읽어야 한다. “마음속 내면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말로는 완벽하게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저,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쓰마부키 사토시의 말처럼.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사랑 이야기다. <오아시스>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이야기. 공주처럼 조제도 자신만의 꿈을 꾸고, 사랑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100% 연애영화’라는 프로듀서의 말처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들의 사랑과 이별 그 자체에만 몰두한다. 적어도 조제에게는, 사랑만이 유일한 통로였고 힘이었다. 이 세상으로 올라오기 위한. 하지만 남자는 비겁하고 약하다. 그건 츠네오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남자의 습성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조금씩 지쳐가다가, 더이상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넘어가버린 남녀의 마음을,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영롱하게 보여준다. 애절하면서도, 상쾌하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원작소설에서, ‘1년 후’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건 와타나베 아야와 이누도 잇신의 세계다.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사강의 소설에 나온 말들은, 조제와 츠네오의 현실이 된다.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아무리 천진하고, 귀여워도, 언제나 그녀를 업고 해변을 뛰어다닐 수는 없다. 언젠가 지치고, 언젠가 식어버리고, 언젠가 뒤돌아설 것이다. 조제는, 새로운 것,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즉각 반응한다. 감정을 조절할 줄 모른다. 너무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조제는, 세상의 모든 것에 열광한다. 하지만 터널의 빛에 감탄하던 조제에게, 츠네오는 ‘운전 중’이라고 퉁명스레 답한다. 휠체어를 사라면서, 언젠간 나도 늙는다구, 라고 말하는 츠네오의 등에, 조제는 말없이 얼굴을 묻는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할머니의 말처럼, 자신이 ‘망가진 것’임을 알고 있고, 자신을 바라보는 츠네오의 사랑이 영원한 것이 아님도 알고 있다. 츠네오는 조금씩 지쳐가고, 도망칠 것이다. 이누도 잇신은,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보여준다. 그들의 표정으로, 순간의 눈빛으로. 절제의 시선, 영화의 순도를 높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이라는 것의 무거움을 말한다. 처음부터, 조제와 츠네오는 달랐다. 츠네오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지만, 조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오랜 세월 상처받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무엇을. 이 세상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그래서 이른 새벽에만 산책을 나갔던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다행히 츠네오를 만나 조제는 세상으로 나갔고, 잠시의 영원한 행복으로 조제는 한 걸음 나아간다. 전동 휠체어를 탄 조제는,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장을 보러 간다. 여전히 의자 위에서 다이빙을 하고, 자신이 만든 맛있는 식사를 한다. 고독하게, 그녀는 살아가고 있다. 와타나베 아야와 이누도 잇신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러나 정직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조제를 바라본다. 그 절제와 고요함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순도를 100%까지 끌어올린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그 사랑이 조제를 강하게 만든 것이다.

명품 환경영화 맛보기,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난 특별한 영화 5편

지난 10월22일부터 26일까지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가 열렸다. ‘환경영화’라는 이름 아래 때론 낯익고 때론 낯선 다양한 영화들이 운집했다. 필름을 환경운동의 수단으로 채택한 ‘계몽영화’들도 있었지만, 그 자체로 뛰어난 명품인 저강도의 ‘환경영화’들도 눈에 띄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헤비급 영화제와도 다른, 개봉관에 간판을 올리는 상업영화들과도 다른, 조금은 특별한 영화들의 맛을 시식해 보인다. 우도의 힘 - 송일곤 감독의 <깃> 이 영화는 공해나 수질오염 문제를 다루지도, 환경운동가가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올려졌다. 장진 감독의 <소나기는 그쳤나요>, 이영재 감독의 <뫼비우스의 띠-생각의 속도>와 함께 환경재단이 ‘주문제작’한 옴니버스 시리즈 3편 가운데 하나다. 굳이 장르를 붙이자면 <깃>은 멜로영화다. 영화감독인 한 남자가 우도라는 섬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겪는 어떤 마음의 파동을 그렸다. 이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화자인 영화감독도, 상대역인 모텔 주인아가씨도 아닌, 우도라는 섬 자체다. 스크린은 주연배우 얼굴보다 더 자주 우도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햇볕이 쨍 났다가 잿빛 하늘이 되었다가 바람이 몹시 불다가 폭풍우가 휘몰아치다가 성난 파도의 습격을 받기도 하는 이 섬의 변화무쌍한 표정은 관객의 심금을 건들며 하이소프라노의 아리아가 되었다가 물결 타고 흐르는 왈츠가 되었다가 광란의 랩소디가 되기도 한다. ‘섬처녀’인 주인공 여자는 우도라는 섬의 성질을 구현하는 페르소나다. 맑고 싱싱한 것이 천연 그대로다. 십년 뒤 우도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옛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건, 풀리지 않는 시나리오 작업의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려고 이곳에 왔건, 그 누구라도 우도 같은 섬에서 우도 같은 여자와 며칠을 지내다보면 속세의 질서가 기분 좋게 어긋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도는 제주도 성산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작은 섬이다. 이 섬엔 수국의 군락지가 있고 국내에서 하나뿐인 산호해변이 있다. <인어공주>라는 영화를 봤더니 이 섬 어느 곳엔 병을 낫게 하는 신비의 바닷물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우도는 이질적이고도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강원도의 힘과 쌍벽을 이루는 우도의 힘이랄까. 마지막 유목민 -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우르가> 우아한 레이스 뒤에서 면도날이 튀어나오듯 섬뜩한 이미지로 스탈린 체제의 출현을 그린 <위선의 태양>(1994)에 매료됐던 사람이라면, 러시아식 블록버스터 <시베리아의 이발사>(1999)가 개봉했을 때 엄청 들떴다가 약간 실망을 했을 수도 있지만, 여하간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은 그의 필모그래피의 나머지 부분이 궁금해질 것이다. 환경영화제에서 미할코프의 91년작 <우르가>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조용히 노래 불렀다. “나는 보았네.” 습도와 온도 조절이 잘 안 되는 러시아의 어느 창고에서 13년을 묵었는지 스크린에 이따금 비가 내리고 심지어 번개가 치는 일도 있었지만 이 마술적인 영화의 기(氣)를 누르기엔 턱도 없었다. 뱀처럼 구불구불 강이 흐르고 사방을 둘러봐도 집 한채 보이지 않는 몽골의 대초원에 이동식 천막 파오를 짓고 사는 일가족 이야기다. 현대문명은 60마일(약 100km) 떨어진 도시까지 들어와 있고, 이들 가족은 양을 치고 말을 타면서 누대의 조상들처럼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우르가’는, 깃발이 매달린 기다란 장대를 뜻하는데, 대개 말이나 양떼를 부릴 때 사용하지만 가끔 남녀가 수풀 속에서 정사를 할 때 접근하지 말라는 표시로 꽂아둔다. 아이 셋과 부부와 노모까지 여섯 식구가 밥 짓고 먹고 놀고 잠도 자는 원룸 천막은 성욕 같은 건 끼어들 틈도 없다. 어느 날 포장도로 건설공사장으로 가던 중년의 러시아인 노동자가 트럭을 몰고 초원의 흙길을 가로질러 가면서 깜빡 졸다가 개울에 처박히는 바람에 졸지에 이 몽골인 가족의 손님이 된다. 이쯤에서 손님과 주인 여자 사이의 섬싱을 예측한다면(나 역시 그랬지만) 상업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여기는 환경영화제이고 미할코프는 관습 따라가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러시아 남자의 등에 그려진 문신이다. 그가 이 집에 온 첫날 웃통을 훌렁 벗었을 때 등에 온통 어지럽게 그려진 문신을 보고 서너살짜리 사내아이가 입을 쩍 벌린다. “누나. 저것 좀 봐. 등에 책처럼 글씨가 쓰여 있어.” 그는 군대생활 할 때 객기로 문신을 새겼다고 해명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문신은 <만주의 밤>이라는 러시아 노래의 악보다. 애잔한 왈츠곡인데, 그에겐 전쟁 때 죽은 할아버지와 우울한 가족사의 기억이 스며 있는 노래다. 나이트클럽에서 이 남자가 윗도리를 벗자 밴드 연주자들이 그 등 뒤에 모여 연주를 하며 홀의 손님들은 이 왈츠에 맞춰 춤을 춘다. 몽골인 일가에서 일곱살쯤 된 딸은 자기 몸통의 세배는 되는 아코디언을 안고서 귀신 같은 솜씨로 연주하는데, 나중에 이 딸도 러시아 남자 등의 악보를 보면서 신나게 아코디언을 친다. 엔딩타이틀이 오르기 직전, 이 초원에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커다란 굴뚝이 세워지고 어디선가 끊임없이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몽골인 남자와 아내가 벌판에 우르가를 꽂아놓고 만든 네 번째 아이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이다. 이 에필로그는, 이미 손색없이 훌륭한 텍스트에 붙여놓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큰 상관없을, 감독 나름의 주석이다. 나무에 관한 명상 - 빅토르 에리스 감독의 <멤브리요의 해>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는 ‘나무’를 테마로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중간쯤에 있는 스페인영화 <멤브리요의 해>는 그중 하나다. 노년의 화가 안토니오 로페즈는 자기 집 뒤뜰에 있는 마르멜로(모과)나무를 그린다. 가을이면 노랗고 탐스런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채 햇살을 받아 화사하게 빛나는데 그는 이 가을철의 마르멜로나무에 매혹을 느낀다. 그는 10월 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나무가 있는 공간을 모눈종이처럼 잘게 분할해서 그대로 화폭에 옮겨내려 한다. 하지만 하늘은 변덕을 부리고 똑같은 햇살을 만나는 건 하루에 몇 시간 되지 않는다. 11월로 접어들고 캔버스가 절반쯤 마르멜로나무로 채워졌을 때 그는 캔버스를 창고에 치워버린다. 무거운 열매를 매단 나뭇가지들이 점점 처지면서 처음과는 너무 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새 캔버스를 갖다놓고 데생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시 미완의 상태로 창고로 향한다. 그는 또다시 새 캔버스를 이젤 위에 놓는다. 12월이 되어 쭈글쭈글해진 열매들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고 이파리들이 단풍 들 때 그는 여전히 미완성인 캔버스와 이젤을 들고 뒷마당에서 철수한다. “그림을 뒀다가 내년에 완성하면 되지 않겠냐”는 친지의 말에 그는 “내년엔 나무가 영 다를 것”이라고 일축한다. 러닝타임 2시간19분 가운데 2시간쯤이 이 화가가 나무 앞에서 똑같은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다. 잠시 졸고 깨어나도 화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림엔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다면 여러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후딱후딱 그려치울 수도 있고 사진을 찍어다 두고 방 안에서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노년의 화가는 탐스럽게 열매 맺는 젊은 마르멜로나무와 연애를 즐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업, 아기사슴 밤비와 고질라의 두 얼굴 - 모건 스펄록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 마크 아흐바·제니퍼 에보트 감독의 <기업> <슈퍼 사이즈 미><기업>(왼쪽부터) <슈퍼 사이즈 미>는 잘 알려진 대로 감독이 자신을 모르모트 삼아 맥도널드에 도전해서 마이클 무어에 이어 ‘앙가주망’ 코믹 다큐의 히트작이 되었다. 14살에 147cm 117kg, 19살에 168cm 122kg의 두 미국 소녀가 패스트푸드 업체들을 고소했고 법원은 패스트푸드와 비만이 직접 관계있다는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스펄록 감독은 ‘근거’를 제출하기 위해 한달간의 ‘맥도널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원칙은, 하루 세끼 꼬박 맥도널드 음식을 사먹으며 맥도널드에서 안 파는 건 먹지 않고 점원이 “슈퍼사이즈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예스”라고 대답해야 한다. 맥도널드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일째 ‘슈퍼사이즈’가 걸렸을 때 그는 슈퍼사이즈 햄버거와 슈퍼사이즈 코카콜라를 먹다가 위장의 내용물을 다 올려버린다. 한달 뒤 체중은 12kg 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급상승했으며 심장이상을 겪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 국가는 다 못 불러도 맥도널드 CM송은 줄줄 욀 정도로 이미 패스트푸드는 개개인의 선택을 넘어 생활환경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오늘은 아기사슴 밤비였다가 내일은 고질라가 되는” 기업들의 생태를 보고한다. 노동자 인건비가 제품가격의 0.03%에 불과한 나이키의 원가계산표도 공개된다. 14달러99센트짜리 캐시리 핸드백을 만드는 중국 공장의 노동자 급료는 시간당 3센트다. IMF가 나치독일 수용소에 포로색인용 펀치카드 시스템을 제공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대 기업을 비판하는 내 영화를 거대 영화사가 배급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들로선 순전히 수익이 남으니까. 나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탐욕이라는 약점을. 기업인은 돈 벌게 해준다면 자기 목에 밧줄도 건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 밧줄인 셈이다.”

명필름의 <안녕, 형아>, 인터넷을 통한 익명조합원 모집으로 제작비 충당 계획

인터넷 펀드가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계 제작비 조달에 물꼬를 터줄까. <해피 엔드>, <바람난 가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인터넷 펀드)해 일정부분 수익을 분배했던 명필름이 ‘인터넷을 통한 익명조합원 모집’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현재 촬영이 진행중인 <안녕, 형아>(감독 임태형, 주연 박지빈 배종옥 박원상)의 제작비 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명필름이 익명조합원 모집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택한 이유에는 저간의 사정이 있다. 명필름은 애초 <바람난 가족>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난 9월 <안녕, 형아>의 제작비 전액을 인터넷 펀드로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올해 새로 도입된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을 내세워 이런 모집이 불법이라고 명필름에 통고했다. 금융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를 받을 땐 일정자격 이상의 금융기관을 끼고 해야한다는 것이 금감원의 취지였다. 뜻하지 않은 통보를 받은 명필름은 합법적인 절차를 통한 제작비 조달을 고심해왔고 투자자모집 방법에 관한 법률자문과 내부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익명조합의 형태로 투자자 모집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상법상 ‘익명조합’이란 공동기업 경영형태의 하나를 말한다. 명필름의 경우를 보면 영업자금을 출자하는 투자자들이 ‘익명조합원’이 되고, 실제 사업수행을 담당하는 명필름이 ‘영업자’가 되어 익명조합 결성후 출자된 자금을 영화 제작에 사용한 뒤 그에 따른 수익을 익명조합원과 영업자간에 분배하는 것이다. 명필름은 “조합원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제작, 개봉에 따른 현황파악을 위한 프로덕션/개봉리포트의 발송,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서면 이의 제기 및 시정조치 요구, 영업자인 명필름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 명필름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조합원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 명필름의 손해배상책임 및 조합원들의 계약해지권 등의 보호장치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아울러 명필름은 “‘익명조합’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기존의 의도였던 ‘관객수에 따른 수익배분’과 ‘투자자혜택’의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시켜 익명조합원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즉 제작비 100%(19억 5천만원)를 익명조합 형태로 모집하고, 전국관객 120만(BEP)초과시 초과 1인당 1구좌 0.6원의 수익배분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익명조합원의 손실분담비율에 관해 손실부담의 상한을 설정함으로써 사업수행의 결과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각 익명조합원은 출자금액의 20% 한도에서만 손실을 부담하는 것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하였다. 명필름은 오는 23일(화) 오전 10시부터 24일(수)까지 이틀에 걸쳐 MK버팔로 홈페이지 내의 투자자모집 섹션(http://www.mkbuffalo.com/investment)에서 인터넷상으로 익명조합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1인 1구좌(100만원)부터 10구좌(1000만원)까지 출자가 가능하며 선착순 마감. 명필름의 이번 ‘익명조합 투자형태’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러한 투자형태가 성공을 거둬 선례로 남게 되면 ‘익명조합 투자형태’가 충무로의 새로운 제작비 조달방식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영화사들에게 대안이 될 전망이다.

새로운 물결, 디지털 장편영화 [6] 대안2-상상과 표현의 신천지 : 신재인

“캠코더인데, 하고 얕보면 큰코 다쳐” 단 두편의 독립영화로 독특한 상상력의 신인으로 각인된 신재인 감독은 첫 장편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디지털로 찍어야 했다. 밥먹듯이 “16mm카메라 앞에서 촬영감독과 싸우는 꿈을 꾼다”는 필름룩의 광신도인 그는 디지털을 ‘차악’이라 칭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때 메가박스 3관 상영에서는 “전체적으로 어둡긴 했지만 암부 디테일이 모두 표현된” 디지털 영사에 감복하기도 했다. 이어진 CJ아시아인디영화제 때 CGV용산 상영에서는 그 만족감이 철저히 배신이 되어 돌아왔지만.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먹는다’는 욕망과 신의 대결을 사유한다. 모든 것을 아는 하느님 앞에서 먹는 일은 죄이자 벌이다. 한시바삐 아무것도 먹지 않는 어른이 되기를 꿈꾸는 신성일은 식사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연인 이영애와 하느님의 품인 고아원을 탈출하려는 친구 김갑수 때문에 괴로워한다. 어떤 영화일지 쉽게 상상하기 힘든 만큼 촬영도 쉽지 않았다. 찻길 옆 축사를 개조한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파주 근처 오픈세트는 알고보니 철새도래지였다. 차는 달리고 새들은 날아들고 NG는 반복되었다. 켜켜이 쌓인 먼지와 벽을 뚫는 바람의 협공은 감독 이하 전 스탭에게 마스크를 쓰게 했다. 스탭들을 비켜간 감기는 DVX100카메라 앞에 선 25명의 아이들 사이로 페스트처럼 번져갔다. 결국 지난 1월20일 파주 세트 분량을 겨우 끝내자 제작비가 바닥났다. 보름 동안 촬영이 중단되고 스탭들은 영화 속 신성일처럼 행방불명된다. 아니 도망쳤다. 그래서 이 영화의 스탭 크레딧은 시골(고아원)과 도시로 갈린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내년 2월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될 예정. “디지털과 35mm로 구분하여 시나리오를 쓴다”면서도 필름을 선호한다고 고집하는 신재인이 만들어갈 디지털 장편 필모그래피가 궁금하다. -디지털 장편이 환영받는 이유는. =일단 막강하게 싸다. 독립장편을 35mm로 찍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매체적인 문제를 떠나 현재 독립장편에서는 유일한 대안이니 할 수 없다. 앞으로도 디지털 장편은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TV도 안 볼 정도로 필름룩을 그리워한다. 디지털은 플롯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가는 방향이 적절하다고 본다. <신성일의 행방불명>도 그런 개념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촬영 중단 이후 소요된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6500만원, 후반작업 비용 때문에 6개월간 직장을 다녔다. -디지털 장편을 만들 때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한계를 언급한다면. =제작보다는 상영이다. 특히 영사. 이번 CJ영화제 때 CGV용산 상영은 난리도 아니었다. 아침 8시40분부터 달려갔지만 결과는 포커스가 안 맞고 화면 사이즈도 축소되고, 무엇보다도 사운드가 엉망인 채로 상영되었다. 3회 상영 내내 항의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조명을 많이 써서 공들인 화면을 찍어도 이러면 아무 의미가 없다. 디지털은 각 상영관의 환경과 세팅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신성일의 행방불명>도 꼭 다시 보기를 바란다. 디지털영화의 현재 수준으로는 도저히 심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클로즈업된 인물과 그의 뒤에 선 인물이 거의 붙어 있는 것처럼 나온다. 해상도도 필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디지털 작업에 임하는 다른 이들에게. =촬영하는 친구들 중에 디지털 작업을 약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은 캠코더 기종에 따라 기계적 특성이 판이하다. 최소한 한달 전부터 준비하여 완전히 손에 익혀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 “캠코더인데” 하고 얕보면 큰코 다친다. -차기작 계획은?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마지막에 내레이션대로 <김갑수의 운명>인가. =<김갑수의 운명>은 “같은 걸 왜 반복하느냐”고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제까지 구축된 신재인표 성경 인용의 절정을 보여줄 것이고 이것과는 구조가 다르다. 그외에 <어머니가 온다> <직업선택의 자유> <5분> <재수없는 소녀> 등이 있다. 참고로 이것들은 모두 디지털용 시나리오다.

[국내 단신] <올드보이>, 대학생이 뽑은 올해 최고 영화 外

<올드보이>, 대학생이 뽑은 올해 최고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대학생 전문주간지 <대학내일>의 설문 결과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올드보이>는 대학생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4.5%의 지지를 받았으며,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아는 여자> <범죄의 재구성>이 뒤를 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올해 최고의 감독으로 뽑히기도 했다. 한편 올해 최고의 배우는 최민식과 문근영이 선정됐다. 신촌에 영화보러 오세요 신촌지역 대학 영화동아리들이 주최하는 제1회 신촌대학영화제가 11월18일부터 20일까지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소극장에서 열린다. 상영작 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장준환, 봉준호 감독의 영화아카데미 시절 공동연출작 <포도씨앗의 사랑>도 포함돼 있다. 두 감독은 영화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문의: www.suff.co.kr). 프랑스 문화원, 김태우와의 만남 프랑스 문화원은 11월26일 오후 6시30분 <얼굴없는 미녀>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출연한 김태우와의 만남을 갖는다. 만남에 앞서 김태우가 선정한 프랑스영화를 함께 보는 시간도 갖는다(문의: 02-317-8564).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본선작 확정 제12회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의 본선 진출작 10편이 확정됐다. 시상식은 11월19일 오후 6시 경기도 양주시 장흥 관광단지 내 특설무대에서 열린다. 본선작은 다음과 같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장현수), <바람의 파이터>(양윤호), <송환>(김동원), <실미도>(강우석), <아홉살 인생>(윤인호), <어린 신부>(김호준), <올드보이>(박찬욱), <인어공주>(박흥식),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천년여우, 여우비> 영진위 제작 지원 이성강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가 영화진흥위원회 2004년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선우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고 시나리오 작가 심산이 참여한 <천년여우, 여우비>는 여우 설화를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 올해부터 한 작품에 집중지원한다는 변경된 지원 방향에 따라 <천년여우, 여우비>는 총 8억원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

해외신작 <인크레더블>

세상이 단 한명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슈퍼히어로가, 밥 파의 집에는 네명이나 있다. 늘어난 허릿살을 부여잡고 회사와 집을 오가는 평범한 샐러리맨 밥 파는, 한때 미스터 인크레더블이라는, 좋았던 시절의 닉네임을 먼지 속에 파묻고 사는 슈퍼히어로다. 그의 아내 헬렌 파도 한때 팔다리가 고무처럼 늘어나 일라스티 걸이라 불렸던 슈퍼히로인 출신이며, 검은 생머리를 흩날리는 바이올렛 파와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대쉬엘 파는 초인의 피를 이어받은 슈퍼 칠드런들이다. 갓난아이 잭잭 파만이 아직 정체불명. 픽사스튜디오의 신작 <인크레더블>은 이 가족들이(당연한 플롯이지만 조금 갑작스러운 분위기를 더하여) 어느 날, 정부로부터 일급기밀의 임무를 맡아 다시금 슈퍼히어로 복장을 챙겨입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품을 만들어낼 때마다 놀라운 크리에이티브와 기술적인 완성도, 균형감 있는 주제의식으로 평단과 대중 어느 한쪽의 외면도 받지 않은 ‘인크레더블’한 픽사인 만큼, 이번 작품에도 세간의 주목은 자석처럼 들러붙을 수밖에 없다. 더욱 솔깃한 대목은 감독이 <아이언 자이언트>를 연출했던 브래드 버드란 점이다. 우주에서 느닷없이 지구로 떨어져 내려온 로봇과 인간 소년의 우정, 가족애를 모던하면서도 깊은 정서적 울림으로 그려낸 전작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인크레더블>을 이루는 몇개의 주요 모티브가 어떻게 이야기와 그림으로 형상화될지 관심을 저버릴 수 없다. 슈퍼 파워를 잊거나 감춰야 했던 슈퍼히어로 가족, 에서 착상을 시작한 브래드 버드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고감도의 스파이 어드벤처”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가족의 파워”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인크레더블>은 픽사 스튜디오 작품으로선 최초로 거의 모든 캐릭터가 ‘사람’이다. 컷 수는 <몬스터 주식회사>보다는 600개 이상 많고, 50년대의 사람들이 상상했던 21세기를 표현하고자 100개 이상의 세트를 창조했다. 근육을 덮고 있는 지방의 출렁거림, 스릴러영화에 걸맞을 법한 조명 기법, 거대한 전투신을 위해 카메라 앵글에 맞춰 제작된 도시 세트. 크리에이티브를 실현시키는 데 기술적 불가능은 용납할 수 없었다는 ‘인크레더블’한 정신의 픽사스튜디오는, 오는 12월15일, 슈퍼히어로의 의상디자이너가 슈퍼히어로와 함께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을 한국에 떨어뜨릴 계획이다.

연예뉴스 ‘폭발’, 공급측면에서 빅뱅수준

연예뉴스가 폭발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선 거의 ‘빅뱅’ 수준이다. 지난 반년 사이 대형 포털 사이트에 연예정보를 대는 신생 매체만 6개가 새로 생겨났다. 기존 스포츠지 5개사에 더해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 통신사, 〈기독교방송〉 노컷뉴스 등도 연예뉴스 공급을 대폭 확대했다. 〈내외경제〉도 〈헤럴드경제〉로 이름을 바꾸면서 연예 콘텐츠를 크게 강화했다. 이들말고도 인터넷 경제전문지 〈머니투데이〉가 창간한 〈스타뉴스〉, 국민일보의 〈쿠키뉴스〉, 〈고뉴스〉 〈와이이티〉 〈팝뉴스〉 〈리뷰스타〉 〈조이뉴스24〉 〈연예정보신문〉 〈연예영화신문〉 〈브레이크뉴스〉 등 10여개의 연예뉴스 인터넷 매체들이 각종 연예뉴스를 인터넷 포털에 공급하고 있다. 포털만이 아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연예뉴스는 날로 확산되는 무가지의 주요 콘텐츠로 다뤄지고 있다. 방송에서도 연예뉴스의 공급은 확대일로다. 〈섹션티브이〉 〈생방송 티브이연예〉 〈연예가 중계〉 등 기존 지상파 방송의 연예정보 프로그램과 연예정보 전문 채널인 〈이티엔〉에 더해 올 12월엔 〈와이티엔 스타〉가 또 하나의 연예정보 채널로 문을 열 예정이다. 한국방송은 11월 가을 개편을 통해 2텔레비전 〈아침 8시 뉴스〉에서 매일 30분씩 연예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연예뉴스 바람이 방송으로까지 번져가는 모양새다. 수년전부터 최고인기 메뉴 연예뉴스의 급증은 기본적으로 수요 측면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대중문화의 발전에 따른 대중들의 연예정보에 대한 추구가 그 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연예가 인터넷 포털의 가장 인기있는 뉴스 메뉴로 떠오른 것은 이미 수년 전 이야기다. 연예산업의 발달과 한류 물결 등 산업적 외형의 성장도 배경의 하나다. 하지만 직접적으론 지난 7월 신생포털 파란의 등장에 따른 후폭풍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케이티 계열의 한미르에서 이름이 바뀐 파란은 단기간에 포털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연예뉴스의 주공급원인 스포츠신문 5개사와 독점계약을 맺었다. 이에 맞서 미디어다음과 네이버 등 기존 포털들은 〈연합뉴스〉에 전재료 인상을 약속하며 연예뉴스 확대를 요구하는 한편, 신생 인터넷 연예뉴스 전문 매체들을 대거 대타로 기용했다. 이를 계기로 〈연합뉴스〉만 하루 연예뉴스를 40건으로 늘려 공급하되, 절반은 포털에만 독점제공하는 등 연예뉴스의 대대적 공급 확대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거론된다. 자극적인 제목뽑기 등 지나친 선정성 경쟁이 우선적으로 지적된다. 〈브레이크뉴스〉가 ‘기자가 몸팔아서 스타 인터뷰하는 현실’이란 제목의 연예칼럼을 올렸다가 ‘여기자 비하’ 논란에 휘말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칼럼 작성자가 ‘기본적인 사실확인 결여’를 인정하고 사과기사를 내야 했다. 〈뉴시스〉 또한 ‘전지현 결혼’이라는 단정적 제목을 달았다가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연합뉴스의 한 기자는 “기사 내용은 비슷비슷한데, 제목만 좀 더 고강도로 뽑아 독자 눈길을 끌어보려는 제목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수요가 늘어나면서, 하나의 완성된 기사로 충분할 내용을 조각조각 내 여러 개의 ‘쪼가리 기사’로 파편화하는 모습도 늘어나고 있다. “비가 맡은 〈풀하우스〉의 영재는 철이 없다”고 한 송혜교의 말을 “비가 철이 없어서 싫다”고 한 것으로 보도한 뒤, 곧바로 송혜교의 해명을 다시 기사화하는 등 연예인 인터뷰가 주변적인 사적 발언 중심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형일 영남대 교수는 “인터넷 속성상 속보 경쟁에 따른 무리한 기사 작성이나 홍보자료를 그대로 기사로 옮기는 등 예전 스포츠신문의 부정적 보도관행이 인터넷 연예언론을 통해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장조차 안 맞거나, 기사에서 ‘피디님’이라는 존칭을 일상적으로 쓰는 따위의 기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사가 양산되는 등 질 저하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1년쯤 지나면 옥석 가려질 것” 일부에선 시간이 흐르면서 자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도 내놓고 있다. 한 포털업체 관계자는 “벌써 일부 뉴스에 대해선 ‘이것도 기사냐’는 네티즌의 짜증 섞인 반응이 커지고 있다”며 “1년쯤 지나면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연예뉴스의 폭발이 제대로 된 연예 저널리즘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좀 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주형일 교수는 “가십과 스캔들을 좇는 황색 저널리즘 자체는 앞으로 더욱 번성하겠지만, 그와 달리 연예인의 공적 역할이나 문화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비평 저널리즘의 필요성 또한 커질 것”이라고 적극적 분화 가능성을 짚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도 “지금처럼 표피적 흥미 경쟁에 치우칠 경우 연예뉴스의 신뢰성 자체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연예분야도 문화 분석의 범주 안에 넣어 트렌드나 내용을 살피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예뉴스 고정배치 KBS ‘8시 아침 뉴스타임’ “연예정보와 저널리즘 가미한 실험이다” “정통 뉴스에서 다루지 않던 연예·오락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보도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 가수 ‘비’가 일으킨 경제적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를 기획 취재해 보도하는 등의 방식이죠.” 정규 뉴스에 처음으로 연예 뉴스를 고정배치한 한국방송 2텔레비전 의 최창근 뉴스제작팀장(우측 사진)은 지난 10일 새로운 연예 보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은 국내외 최신 뉴스와 문화예술·각종 트렌드를 보도함과 동시에 ‘연예수첩’이라는 고정 꼭지를 만들어 대중문화 뉴스를 지향한다. 우선, 연예인들의 스캔들 위주로 보도되던 기존 연예 뉴스와 차별화 하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생각이다. 최 팀장은 “30, 40대 주부를 주 대상으로 쉬운 뉴스를 보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뉴스 프로그램으로서 연예뉴스를 고정 배치했지만, 기존 연예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신문 등의 보도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며 “아이템 등을 달리해 품위있는 고급 여성잡지 스타일의 새로운 연예·오락 보도의 전형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 연예뉴스와 차별화가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이에 대해 최 팀장은 “전문 엠시인 경동호씨를 내세우고, 앵커로 양영은, 박태서 기자가 직접 연예 뉴스를 전하는 만큼 시간이 지나 ‘정착’되면 이같은 우려는 불식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이어 “연예정보와 저널리즘을 가미한 실험적 프로그램으로서 시청자 욕구에 맞추려는 선택이었다”며 “시청자들에게 외면받는 딱딱한 뉴스에서 벗어난 ‘티브이로 보는 고급 여성 잡지’라는 감각적인 프로그램으로 주부들이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자로 부활한 선생 김봉두, <여선생 vs 여제자>

촌지 챙기기 바쁜 불량교사 김봉두를 교화의 길로 이끈 건 코는 흘리되 때는 묻지 않은 시골 아이들이었다. 김봉두는 시골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선생’이 되고, 그 다음에야 세상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김봉두의 갱생 스토리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판타지라고 해도, 본디 사람은 선하게 태어난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 영화의 순진함을 믿고 싶어하는 관객은 많았다. 장규성 감독의 <여선생 vs 여제자>는 전작 <선생 김봉두>의 속편이라고 부를 만한 영화다. 그런데 이번엔 눈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서울찬가를 부르는 산골 아이들은 나오지 않는다. 카메라가 찾아간 곳은 남도의 한 조그마한 도시의 초등학교. 교실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으로 직행하고, 담임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뺨을 때리는 선생을 동영상으로 찍어 고발하는 지금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과연 이런 곳에서도 ‘선생’이 태어날 수 있을까. <여선생 vs 여제자>가 끌어들인 실험 대상은 초등학교 교사인 여미옥(염정아)이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교편을 잡은 지 꽤 된 노처녀 선생. 노모와 함께 사는 여미옥은 따분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어서 빨리 청산하고 임용고시를 새로 쳐서 서울 학교로 전근갈 생각뿐이다. 그러니 새로운 제자들과 만나는 개학 첫날에도 지각을 할 수밖에. 그러고선 애들은 처음부터 휘어잡아야 한다며 벌을 주는 뻔뻔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하의 젊고 잘생긴 미술 선생 권상춘(이지훈)이 새로 부임하고, 노처녀 여미옥의 얼굴에도 볕이 든다. 여미옥은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료들을 따돌리는 데까지 성공하나 예상치 못한 강적이 등장한다. 전학생 고미남(이세영). 아이들 사이에선 고미남이 미술 선생과 데이트를 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여미옥은 뒷짐지고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영화는 스무살 터울 두 여자의 우스꽝스러운 대결로 전반부를 꽉꽉 채운다. 캐릭터를 소개하는 첫 장면. 여미옥은 카레이서가 부러워할 터프한 운전실력을 선보이고, 고미남은 같은 반 불량소녀 네댓을 손쉽게 물리친다. 만화적인 과장으로 두 여자가 만만치 않은 성깔의 소유자임을 설명한 뒤, 두 여자의 못말리는 질투 게임을 하나둘 늘어놓는다. 권상춘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가 하숙하고 있다는 반장의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여미옥은 급기야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바라는 선생으로 오해받고, 고미남은 미술 선생과 연애한다면서 놀리는 아이들을 패주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다. 연적 사이가 된 두 사람의 설전은 장학사가 방문한 날에도 계속되고, 이 사건으로 두 사람 중 누군가는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선생 vs 여제자>의 전반부 전략은 간단하다. 여미옥은 대결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애가 된다. 반대로 고미남은 점점 어른이 된다. 둘의 싸움은 점점 대등하게 되고, 그래서 볼 만하다. 갖은 수단을 부린 끝에 여미옥은 고미남을 불러앉혀놓고서 “우리 여자 대 여자로 허심탄회하게 얘기 한번 해보자”고 설득한다. 고미남은 그런 여미옥의 철없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어이없어한다. 여미옥이 청와대에서 내려온 지시라며 난데없이 학생들의 가슴 검사(?)를 하는 장면 등은 지나친 희화화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겠지만, 천연덕스런 배우들의 연기가 그런 약점을 가리고 메운다. 처음으로 코미디에 도전한 염정아는 <선생 김봉두>의 차승원만큼 능청스럽고, 이세영은 투톱 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하다. 여미옥의 엄마 역으로 나오는 나문희와 교장 선생님으로 나오는 변희봉도 <여선생 vs 여제자>의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에 힘을 보탠다. 여선생과 여제자의 으르렁은 갈 데까지 간다. 아이들에게 크게 한방 먹고 나서야 여미옥은 선생 자격이 없다고 자책하고, 고미남은 숨겨온 진심을 털어놓을 때 선생은 이미 학교를 그만뒀다. 전반부에 웃음을 지핀 다음 영화는 중반을 넘어 공통된 유년의 상처와 기억과 마주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비추면서 눈물을 훔칠 손수건을 준비하라고 여러 번 재촉한다. 동시에 사제지간의 오해와 갈등의 매듭을 잘라내기 위해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한번 떠올려보라고 제시한다. “선생이 뭐 별거냐. 먼저 나서 뒤에 사람 본보기 되게 잘살면 그게 다 선생인 거지.” 선생을 그만두겠다는 여미옥에게 노인대학에서 노래를 가르치는 어머니는 충고한다. 막바지에 이르러 아이들이 <스승의 노래>를 부르다 말고 <어머니 마음>로 건너뛰는 에피소드는 그저 웃자는 의도는 아니다. 가진 것 탓하지 않고 베푸는 부모의 심성이야말로 선생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거다. 그 가르침이 이따금 누선을 자극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눈물을 흘려도 가슴이 후련하진 않다. 왜 그럴까. 여미옥은 뉘우친다. 그런 선생을 아이들은 쉽게 용서한다. 여미옥이 저지른 악행은 영화가 마련한 한 차례의 고백성사를 통해 면죄받고 지워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받았던 상처가 정말 가벼운 생채기처럼 말끔히 아물었을까. 성숙한 아이들이고 하니 어쩌면 이쯤에서 싸움을 접자는 휴전은 아니었을까. 손찌검이 웬말이냐며 따지러 온 학부모들이 “애들이 맞을 짓 했으면 맞아야지”라고 물러서는 데에서부터 해묵은 교권 불가침 논리가 반복되고,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다. <선생 김봉두>를 보자. 김봉두의 악행은 애초 죄로 생각되지 않는다. 개울물 마시고 사는 아이들은 봉두의 행위를 선의로 해석하는 놀라운 우둔함으로 영화에 방어막을 친다. 그러나 이번엔 명백히 상황이 다르다. 컨셉이 분명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는 재주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감독이 설파하는 성선설에 동의하긴 여전히 어렵다. :: 장규성 감독 인터뷰 “현실에선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없었다” 전작 <선생 김봉두>의 속편 같은 느낌이다. 일부러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캐릭터 만드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선생 김봉두>보다는 못하다면서도 그런 의도에는 공감했다. 엔딩은 무조건 재밌게 간다, 이게 원칙이었다. <선생 김봉두>보다 상업적인 코드가 훨씬 더 강한 영화다. 현장에서 추가된 장면이 많은 듯하다. 더 좋은 게 있으면 바꿔야지. 카메오 등장은 모두 현장에서 추가된 것들이다. 나머지는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해주는 장면들이 더해졌다. 여미옥이 마지막에 차를 돌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경찰관 에피소드는 없던 것인데 새로 만들었다. 여미옥과 고미남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 다음에도 이 두 인물의 감정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도 새로 찍었다. 애드리브는 너무 많아서 셀 수 없다. 사람은 본디 착한 존재라고 믿나. 상처받았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쉽게 용서한다. 중학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는 선생님이 없다. (웃음) 이름도 모르겠고, 얼굴도 기억 안 난다. 현실적으로 그렇다기보다는 바람을 담고 싶었다. 희망사항인 거지. 다음 작품은 <군수와 이장>인가? 역시 코미디인데. 우리 정치판을 군으로 축소해서 비꼬는 건데. 패턴은 많이 바뀔 것 같다. 웃음을 주겠다는 강박관념을 좀 떨구고 드라마에 힘을 실을 생각이다. 이번 영화가 전작과 비슷하다는 말 적지 않게 들었다. 스스로도 변화를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코미디라는 장르는 계속 갖고 갈 거다. 내게 영화는 분석하면서 보는 게 아니라 보면서 웃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