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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도쿄 시사기

“할머니 안에도 소녀가 있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일본에서만 2340만명의 관객 동원, 일본영화 역대흥행 1위 기록. 3년 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거둔 성적이다. 그러므로 관객과 평단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온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더이상 ‘목표’라는 뻔한 단어는 무의미하다. 평생 물질문명을 경계하고 자연친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그에게 그런 객관적인 수치는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11월20일,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작사 지브리는 6개월 전부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던 <센과 치히로…>와 달리, 개봉 한달 전까지 베니스영화제와 도쿄영화제 상영을 제외하고는 몇장의 스틸만 공개할 정도로 비밀 마케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베니스영화제 기술공헌상 수상과 기무라 다쿠야 등 유명인들의 목소리 출연,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관객의 인지도는 전작보다 높다고.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3D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비슷한 시기 전국 700여개관 배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시점, 애초 200개관 개봉을 목표로 했던 <하울의…>의 배급사 도호는 700개까지 개봉관을 늘려잡았지만 지브리는 오히려 400개 정도로, 작지만 오래가는 배급 전략을 꾀하고 있다. 3D애니메이션의 거센 도전 속에서도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지브리의 묵직한 자신감, 좀더 많은 관객에게 오랫동안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은 미야자키의 바람이 느껴진다. 미야자키의 작은 변화 - 로맨스 강조 11월8일. <하울의…>의 배급사 도호에서는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시사가 진행됐다. <센과 치히로…>가 가장 일본적인 비전과 이야기를 통해 전세계를 매혹시켰던 것을 생각할 때, 영국의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그리고 일관된 작품세계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가 하는 점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도입부, 짙은 안개 속에서 정체불명의 물체가 움직인다. 곧이어 그것은 거대한 고철덩어리 성(城)임이 밝혀진다.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성’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냘픈 네개의 다리, 연기를 내뿜는 굴뚝, 심지어 눈과 입까지 가진 성을 맞닥뜨리는 순간 관객은 미야자키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하울의…>은 기계문명과 마법이 공존하는 시대,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하루아침에 90살 노파로 변하게 된 17살 소녀 소피와 움직이는 성의 주인으로 비밀스런 이중생활을 누리고 있는 또 다른 마법사 하울의 기묘한 동거를 다룬다. 따뜻하고도 강인한 내면을 가진 소피는 철부지요 막무가내인 하울을 길들이고, 결국 소피와 하울은 세계를 구원한다. 언제보아도 꿈결같은 비행(飛行)의 순간에는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암울한 전쟁의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익숙한 부분. 그러니까 이것은 분명, 친근하게 변주되는 미야자키만의 세계다. 한편 미야자키의 오랜 팬들에게는 일단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강화했다는 점, 심지어 그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키스신(!)이 등장한다는 점이 나름의 변화로 다가올 것이다. 하울은 관계자들이 만장일치로 꼽는 ‘미야자키의 남자주인공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그 목소리는 일본 최고의 스타 기무라 다쿠야가 연기했다. 유명배우 캐스팅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작품 그 자체만으로 승부해온 지브리는, 현재 이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년과 어른의 경계, 나약함을 감추는 제멋대로의 성격을 가진 하울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기무라의 캐스팅이 영화의 성공에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은 분명하다. 또 다른 중요 캐릭터를 연기한 유명배우들도 간과할 수 없다. 소녀에서 노파까지 폭넓은 나이, 사랑을 느낄 때는 젊어졌다가도 기분이 울적해지면 다시 노파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미묘한 변화를 사실적으로 소화한 소피 역의 바이쇼 치에코는 <남자는 괴로워>로 유명한 일본의 원로배우. <모노노케 히메>에서 들개 모로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연기했던 유명한 여장(女裝) 연극배우 미와 아키히로는 자신과 똑같은 외모로 표현된 황무지 마녀를 연기했다. 하울의 견습생 마이클과 말썽쟁이 불꽃 마귀 캘시퍼, 속을 짐작할 수 없는 노견(老犬) 힌, 마지막 순간까지 소피에게 입은 은혜를 갚는 허수아비까지 각자의 사연과 매력을 가진 주변 캐릭터들도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성 안의 공간들을 재현한 전시회도 열려 시사 다음날인 11월9일. 성 안의 중요한 공간들을 재현한 전시회가 열리는 <니혼TV> 프라자 1층을 찾았다. 애니메이션 개봉과 때를 맞추어 전시를 기획하는 풍토가 일반적인 일본에서도, 이 전시회는 그 규모 면에서 눈에 띄는 사전행사. 전시장 내 입장은 무료이고 사진촬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이들이 마음대로 만져보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안전하고 견고한 재질로 제작된 전시품들, 쾌적한 관람을 위해 관람객을 100명 이하로 철저히 제한하는 규정 등은 좀더 많은 관객의 눈높이를 최대한 배려하는 세심함을 반영한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전시장을 둘러보는 젊은 엄마부터 또래 친구들과 함께 디카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중고생들, 신기하다는 듯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람객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 밖으로는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줄이 늘어섰다. 전시회 개장일인 11월3일을 기해 대대적인 광고를 펼친 <니혼TV>의 적극적인 홍보, 전시장이 자리한 시오도메가 평소 관광객과 쇼핑객의 이동이 잦은 장소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관심은 미야자키에 대한 일반인들의 변함없는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11월3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전시회장 외부 마당. 커다란 무대에 하울의 성, 허수아비, 소피의 모형이 자리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마당 곳곳은 사진을 찍는 관람객으로 붐볐다(맨 위). 전시회장에는 성 안의 주요 장면을 정교하게 재현해놓았다. 식사를 준비하는 소피 뒤로, 귀여운 노파로 돌아온 황무지 마녀의 모습이 눈에 띈다(위). <하울의…>은 원래 올해 여름 개봉을 목표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다. 미야자키가 지브리의 후진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을 것임을 선언하고, 러닝타임이 길어지면서 결국 11월까지 개봉이 미뤄졌다. <모노노케 히메> 때부터 ‘이것이 미야자키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그는, 이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깨달았다고. 그런 의미에서 미야자키가 90세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는 원작의 설정에 매료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소피는 영화 속에서 “나이가 들어 좋은 점도 있다”는 걸 계속해서 강조한다. 17살의 소녀라면 감당하지 못했을 억척스러운 일들을 소화하고, 젊음의 혈기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넉넉한 품을 보여주는 소피는 영화 속에서 진정한 성장을 경험한다. 웬만해선 마케팅에 관여하지 않는 미야자키가 직접 작성한 카피는 다음과 같다고. ‘할머니 안에도 소녀가 있다.’ 63살의 거장은 나이듦으로 가능한 마음의 여유, 그리고 그 안에도 설레는 감정과 눈부신 성장의 계기가 있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미야자키의 익숙한 변주 속에서 반짝이는 사려깊은 변화의 조짐이며, 이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관객에게 건네는 감독의 소중한 선물이다.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 인터뷰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스즈키 도시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설명하는 데 ‘조력관계’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마주>의 편집장 등으로 활동했던 스즈키는 1985년 미야자키와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이후 지브리의 거의 모든 작품의 제작에 관여했다. 뛰어난 기획력을 인정받아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이노센스>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개봉이 눈앞에 다가온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관련한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미야자키를 대신하고 있다. 감독에게 묻고 싶었던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상세한 답변을 들려줬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영화화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5년 전, 미야자키가 그 책을 보여주면서 “성이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어린 소녀가 갑자기 90대 할머니가 된다는 설정”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했다. 그는 할머니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그동안 없었다면서, 자신이 60살이 넘은 감독이기에 노인들의 기분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반대는 없었나. 사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미야자키가 스튜디오의 젊은 인재들과 기획회의를 하던 중, “소설이라면 70살 할머니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없지만, 영화는 그럴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랬더니 누군가는 “주인공이 항상 젊은 여자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하더라. (웃음) 영화에서 묘사된 유럽의 풍경은 무엇에 중점을 둔 것이었나. 특별한 모델은 없었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일본인이 보는 서양의 모습이다.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일본인들에게 서양은 꿈과 동경의 대상이었고, 60대 이상의 일본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런 게 남아 있다. 미야자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양을 그린 것이고 그것은 실제와는 다르다. 이건 여담인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때도 특별히 모델이 되는 장소는 없었다. 그런데 미야자키와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숙소 부근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근데 그 영화 속 배경과 똑같은 골목을 발견하고 정말 즐거워한 적이 있었다(추가질문 결과 그곳은 장충동 족발집 골목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후진양성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인 것은. 후진양성이란 건 어려운 일이다. 요즘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은 많은데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고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미야자키는 죽을 때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할 것 같다. 배우들 무대인사 “사람의 마음은 디지털이 아니잖아요” 11월8일 오후 7시30분. 유락초 스카라좌 극장에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VIP 시사가 열렸다. 영화 상영 직전 소피(바이쇼 치에코), 하울(기무라 다쿠야), 황무지 마녀(미와 아키히로)를 연기한 성우들의 무대인사가 있었고, 이것은 그들이 영화와 관련하여 무대에 서는 유일한 자리였다. <니혼TV> 아나운서 후쿠자와 아키라의 사회로 일종의 토크쇼처럼 진행된 무대인사.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들은, 영화와 상대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대화는 예정된 시간 30분을 넘겨 진행됐다. 소피 l 바이쇼 치에코 진심을 담아 만들었다. 소녀와 90살 역할을 한꺼번에 소화하는 것 때문에 많이 고민스러웠다. 감독님께서는 그냥 “일부러 목소리를 변화시키지 말고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할 것”을 주문했다. 같은 주인공임에도 기무라와 마주칠 기회가 없어서 스탭들에게 일정을 맞춰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웃음) 그날은 일부러 일찍 나갔는데, 너무 긴장했는지 그를 처음 보고 장난스럽게 “아잉~”이라고 말해버려서 정말 당황스러웠다. (일동 웃음) 내가 부른 영화의 주제곡 <세계의 약속>은 거의 10년 만에 부른 노래였다. 하지만 결과를 듣고나서는 내가 뭔가 굉장한 일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하울 l 기무라 다쿠야 아내와 아이가 미야자키 감독님의 열렬한 팬이다. 아무 역할이나 맡겨달라고 먼저 얘기를 꺼냈는데, 막상 내가 맡게 될 역할이 주인공, 그것도 이처럼 잘생긴 인물임을 알고 너무 놀랐다. (웃음) 바이쇼는 정말 대단하다. 작업 중에는 그가 정말 소피처럼 느껴졌으니까. 문득 옆을 보면 진짜 소피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감독님이 혹시 그녀를 상상한 뒤에 캐릭터를 그린 게 아니었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모든 것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시대이지만 사람의 마음은 디지털이 될 수 없음을 관객이 알아주길 바란다. 황무지 마녀 l 미와 아키히로 미야자키는 나에게 “아무리 고쳐그려도 황무지 마녀는 당신과 닮은 모습이 되어버린다”는 말을 하면서 나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다. 황무지 마녀의 모습을 보고, 내가 이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웃음) 나는 작업 중 기무라와 마주친 일이 한번도 없었지만, 영화 속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듣고 정말 놀랐다. 그의 목소리는 원래 어둡고 낮은 목소리였는데, 여러 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는 하울의 목소리를 정말 완벽하게 소화했고 심지어 섹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기무라 다쿠야, 계속되는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고 커튼 뒤에 몸을 숨긴다). 스마프들은 모두 노래랑 춤은 별로인데 연기는 하나같이 잘하는 것 같다. (일동 웃음)

한류열풍, 국제적 열풍인가? 찻잔 속의 폭풍인가?

최근 몇년 동안 동아시아를 휩쓴 한국영화, 텔레비전 시리즈물, 음악, 패션에 대한 한류 열풍을 중국에선 “한훵”(한국 바람)이라 부른다. 최근 일본 웹사이트(OZmall)에서 15만7천명의 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스타를 물었을 때 10명 중 9명은 한국인이었다. 유일하게 한국인이 아닌 사람은 일본과 중국 혼혈인 금성무였는데, 겨우 7위로 들어간 것이다. △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의 유럽 흥행 성적은 수상 결과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수치다. 이는 서구권에서의 한국영화의 입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사진은 칸영화제에 걸렸던 <올드보이> 포스터(맨 위). 한류는 현재로서는 오직 아시아권 내에서만 부는 바람이다. 사진은 상하이 거리에 붙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포스터(위). 이와 비슷한 설문조사는 서구에서 시행된 일은 없지만, 만일 그랬다면 장쯔이나 공리, 성룡, 주윤발, 양조위 등의 홍콩이나 중국 본토 이름들이 독점적으로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국 바람”은 아시아 바깥으로 그리 멀리 불지 못한다. 아시아만 벗어나면 잠잠한 바람, 한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고려해보자. 올해 가장 국제적으로 두드러진 한국영화 <올드보이>는 몇몇 유럽 국가에 현재 개봉 중이다. 프랑스에선 총 15만명의 관객이 들 전망이고, 영국에선 3주 동안 지금까지 약 5만명이 들었다. 독일에서 극장 막을 내린 지금, 총 5만명 정도가 들었다(주: 특히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관객 수가 아닌 극장 수익만 발표한다. 이 기사를 위해 국가별 평균 푯값을 사용하여 수익을 관객 수로 전환시켰다. 결과는 아주 대략적일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 그림을 좀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에서 개봉한 외국어영화치고 봐줄 만한 수치다. 그러나 칸에서 각광받은 것을 생각하면(쿠엔틴 타란티노가 “개인적으로 추천”한 것에 더해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것), 실망스러운 수치다. 배급사들에 팔린 가격에, 상당한 P&A 비용을 생각하면 프랑스에서 수익을 남기지 못할 전망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돈을 벌지 못하면, 배급업자들은 다음 한국영화를 살 때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다.서구권 흥행수익 저조- 한국영화 입지는 여전히 좁다 프랑스, 영국, 미국이 서양에서 한국영화의 가장 큰 시장이지만, 각국의 비교되는 이야기들은 놀라울 정도다. 지금까지 서구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다. 미국에서 37만명, 독일에서 24만명, 프랑스에서 20만명, 영국에서 5만7천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모든 시장에서 이 정도의 전면적인 성공을 이끈 한국영화는 없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지금까지 서구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흥행성적이 좋았다(맨 위).<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에서 6만명이나 들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프랑스에서 32만명의 관객이 들어 수익을 남겼지만, 미국에선 1만명, 영국에선 7천명밖에 끌어오지 못했다. 대조적으로 임 감독의 <춘향전>은 미국에서 13만명을 끌어왔지만, 프랑스에선 5만명밖에 끌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결코 개봉되지 않았다. 다음 영화들의 결과는 더 진지하게 읽게 된다.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이 들었지만 다른 곳에선 참패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프랑스에서 6만명이 들었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미국에서 15만명을 끌었지만,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아직 개봉되지 않고 있다. <쉬리>는 영국과 미국에서 개봉되기까지 거의 5년을 기다려야만 했는데, 각각 3천명과 1만6천명밖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다른 영화의 수치도 같은 이야기를 나타낸다. 자국 내나 동아시아 내에서의 성공은 서구에서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우삼스러운” 액션영화로 잔뜩 홍보되긴 했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미국에서 4천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친구>는 서구에서 거의 개봉되지 않았고, 아시아 공포영화의 물결을 탄 <장화, 홍련>은 영국에서 겨우 1만5천명이 들었다. 다른 영화들도 극장 개봉에서 미미한 흥행 수치를 남겼다. 수익성은- 관객 수에 대비되는 것으로- 다른 문제지만, 마찬가지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 흥행으로 괜찮았지만, 배급사는 영화를 비싼 가격에 구매한데다가 P&A 비용도 굉장히 많이 썼다. <장화, 홍련>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아마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치고 P&A 비용을 가장 많이 들인 경우일 것이다. 대조적으로 <봄 여름…>과 <여자는…> 같은 영화는 P&A 비용을 덜 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더 높았다. 이런 모든 수치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한국영화가 <쉬리>로 “국제적인” 모습을 드러낸 지 5년이 된 시점에- 한국영화의 서양시장이 여전히 작다는 것이다. 이따금 생기는 성공은 특수한 이유로 인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임권택 감독의 이국적인 시대의상 영화는 프랑스인 취향에 호소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효력이 없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은 단순히 스토리가 전통적인 아시아 이미지들에 포장된 것 때문에 서양에서 성공적이었으며(그의 현대적 영화들은 전혀 성공하지 못했음), 한국 공포영화나 액션영화 시장이 작게나마 존재해도 <와호장룡> <영웅> <연인> 같은 중국 액션영화의 시장이나 <링> <검은 물 밑에서> 같은 일본 공포영화의 것에 비하면 무의미할 정도다. 한국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물은 서양에서 본질적으로 시장이 없다. △ <무사>는 프랑스에서 15만명이 들어 흥행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참패했다(위).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부활이 세계영화의 가장 신나는 발전사항 중 하나라 믿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슬픔을 갖고 이 기사를 쓴다. 서구 취향의 도서성(島嶼性)에 대한 슬픔, 타국에서 온 영화를 억누르고 그럼으로써 관객의 취향을 형성시키는 미국지배의 배급 및 극장 시스템의 힘에 대한 슬픔, 일부 한국영화 세일즈 대행사들이 실정에 맞지 않는 가격과 과다하게 높은 미니멈 개런티(MG)를 부름으로써 영화의 서구에서의 미래를 저해하는 것에 대한 슬픔이다. 5년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의 미래는 칼날 위에 서 있으며 아직 자기 정체성을 단조해나가기 위해 멀리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보통 견문이 넓고 영화에 유식한 서양 관객에게 한국영화 스타 한명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대답을 못할 것이다. 감독 이름이라면? 어쩌면 임권택, 어쩌면 김기덕, 어쩌면 (프랑스에서나) 홍상수를 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감독들은 영화제를 통해서 알려진 이들이지, 일반 극장가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구에 장기적으로 의식을 갖고 한국영화에 관계하는 배급업자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수익성이 모든 것인 업계에서 자선사업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한국 세일즈 대행사들은 실정에 맞지 않게 높은 가격으로 가능성 있는 고객을 소원하게 하기보다 시장을 좀더 현실적이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서양 관객에겐 아시아영화라면 중국영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영화는 액션영화와 이따금 나타나서는 잘해봐야 장사가 조금 될까말까한 왕가위의 예술가 계통 영화를 의미한다. 한국영화가 발전하는 틈새가 있다치면 색다르며 종종 어둡게 폭력적인 영화쪽이다. 영국에서 <올드보이>에 대한 평은- 매우 뒤섞여 있었지만- 극도의 폭력성에 집중됐으며 <섬>이나 <장화, 홍련> <살인의 추억> <폰>과 같은 다른 영화들은 모두 “색다른” 맛이나 “별난” 맛으로 인지됐다. 관객은 동아시아 영화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한국영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름과 정체를 붙여주려고 헤매는 중이다. 단지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보러 가는 사람은 아직 없다. 위의 모든 내용은 최신작을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전문지식으로 특화된 괴짜 영화광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리고 위의 영화 중 극장에서는 평균 이하로 흥행하였음에도 DVD로는 잘 나가는 것도 여러 편 있다. 심지어 영국 배급사 메트로 타르탄은 아시아 엑스트림이라는 전문 비디오 라벨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영국의 크게 발달한 홈엔터테인먼트 시장과 같은 데서도 수치는 여전히 작다. 수천개가 나가지 수만개가 나가진 않으며, 수십만개는 더더욱 아니다. 서구 관객을 끌려면 정기적 배급이 필수 아시아에서 “한국 바람”은 겹치는 문화와 텔레비전 시리즈의 힘과 대중음악과 패션의 K.O. 효과 덕을 봤다. 서양에서의 “한국 바람”은 이런 요소들이 도와주지 못한다. 한국영화가 진정 인상을 남기려면- 간혹 나타나는 작은 성공을 넘어서- 서구 관객의 주된 의식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배급되는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고(그러므로 세일즈 대행사들이 미니멈 개런티보다 수익분배 위주로 계약건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한국 감독과 스타가 자국업계 밖에서 일을 더 하면서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것이다. 아직은 초창기다. 중국어권 영화가 현재의 국제 위상을 누리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렇지만 “한국 바람”이 지역의 비밀로 남게 된다면 끔찍하게 유감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영화의 손실이 될 것이다.

발견! 올해를 빛낸 남자 조연 6인 [4] - 조경훈

“깡패 얼굴이라면 깡패 연기의 최고가 되야지” 장윤현 감독은 <와일드카드> 현장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한 남자를 눈여겨보게 됐다. 커다란 몸집, 우락부락한 인상에 빨간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를 ‘세트’로 차려 입고 다니는 그 남자 조경훈은 당구장 주인 ‘곰탱이’로 출연하는 단역배우로, ‘내 일 네 일’ 가릴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일꾼’이자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1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몸이지만, 깡패나 양아치 역할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그를 위해 장 감독은 <썸>에 ‘추 형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넣었다. 범죄 용의자와 분간이 안 되는 험악한 인상, 연기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조경훈의 추 형사는 <썸>에 유쾌한 쉼표를 찍었고, 투박한 리얼리티를 불어넣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전북 익산의 철공소집 아들로 태어난 조경훈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어릴 때부터 그는 외모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 학교 때는 “쟤 무서워서 공부 못하겠으니, 반 바꿔달라”는 민원을 들어야 했고, 대학 입시에서 “학교 이미지 나빠진다”고 탈락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일까. 데뷔작 <삼인조>부터 <와일드카드>까지 그의 역할은 언제나 깡패 아니면 양아치였다. “난 왜 늘 깡패인 걸까, 속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조·단역에 대한 대우에 마음 상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역할에는 귀천이 있더라.”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나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는 ‘연기자’라는 자의식을 버린 적이 없었다. 부르는 이 없어도, 고마워하는 이 없어도, 스크린쿼터 집회에 자진 출석한 건 그래서였다. 내가 나온 명장면을 말한다 조경훈이 꼽는 명장면에는 최종 편집에서 잘려나간 것들이 많다. 포커스의 사각지대인 조·단역이지만, 처음으로 그가 관객의 눈에 띈 것은 <와일드카드>를 통해서다. “당구장 주인 곰탱이로 나오는데, 등장하는 신이 1분이 넘는 롱테이크다. 인사하는 장면인데, ‘어, 레자 입었네’, 이런 애드리브를 치다가 NG 내고는, 세 번째에 오케이를 받았다. 그 신이 기억에 남는다.” <썸>에서는 장윤현 감독님이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장면에 대한 애착이 컸다. “강 형사가 누명을 쓰고 쫓길 때, 위치 추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휴대폰을 켜놓고 있는 걸 보면, 그가 범인이 아닌 거라고 큰소리치는데, 휴대폰 전원이 갑자기 꺼지면서, 아닌가 싶어 머쓱해지는 바로 그 장면. 추 형사의 캐릭터는 원래 디테일이 없었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추 형사는 너다. 맘대로 해봐라’ 그러셔서, 이런저런 설정을 많이 했고, 애드리브도 넣었다.” 나를 스크린으로 이끈 것은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주말의 명화>와 <토요 명화>를 즐겨 봤다. 서부극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거기 보면 ‘산초’류의 캐릭터로, ‘나 같은 놈’들이 많이 나오더라. 주로 나쁜 짓 하는 역할들이긴 하지만. 어린 마음에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누구도 연락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도, 커다란 스크린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고 한다. “<약속> 때 같이 출연했던 진영이 형이 잠시 맡긴 트로피를 들고 있는 동안 가슴이 뛰었고, ‘경훈아, 내년엔 네가 받아’라고 덕담해줄 때 너무 고마웠다.” 오늘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것은 그런 소박한 기쁨과 희망이었다며, 그는 수줍게 웃는다. 내가 스크린 안에서 살아내고 싶은 사람은 “외모 콤플렉스가 왜 없었겠나. 그런데 이 얼굴과 이미지로 할 수 있는 게 깡패, 양아치 역할뿐이라면, 내가 우리나라에서 깡패 연기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허장강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영화 촬영장이나 극장에서 사람들이 “저 새끼, 진짜 깡패 같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더란다. “나처럼 외모 때문에 한 가지 이미지만 소모하는 배우들, 그래서 자기 얼굴 탓하는 배우들이, 나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징하게’ 그려내고 싶다는 바람을 슬쩍 흘린다. 인터뷰 말미에, 조경훈이 “꼭 써달라”고 부탁한 한마디가 있다. 배우들의 데이터베이스가 생겨서, 필요한 프로젝트에 연결시켜주는 작업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것. “배우가 없다고들 하는데, 준비된 배우들은 얼마든지 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봐달라.” 글 박은영 cinepark@cine21.com·사진 이혜정 socapi@cine21.com

발견! 올해를 빛낸 남자 조연 6인 [5] - 우현

“카메라 앞에서 멋지게는 아니지만 꿋꿋하게 놀 순 있다” <시실리 2km>를 본 관객이라면 조폭 일당 중 막내 ‘58년 개띠’ 양해주를 기억할 것이다. <시실리 2km>의 무대인사를 계기로 조혜련의 골룸에 필적하는 ‘스미골’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조연배우 우현. 그는 스스로를 “급진적으로 운좋은 배우”라고 설명한다. 아내, 처남, 친구들까지 줄줄이 연극 혹은 영화인이었던 주변환경 탓에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처음 주역으로 부각된 <시실리 2km>를 통해 단숨에 인상적인 조연 연기자로 급부상했다. 신학 전공, 열혈 운동권, 술집 주인, 연극 제작자 겸 배우라는 이채로운 궤적을 돌아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난 ‘불혹’의 조연배우 우현.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전남 광주 출신의 1964년생 배우 우현은 신학을 전공했다. 그것도 두 학교에서. 처음 들어간 한신대 신학과는 학생운동하던 친구의 독일어시험을 대신 치러주다가 발각되어 쫓겨났다. 인생사 새옹지마. 재수를 거쳐 그는 통학할 때마다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한다. <시실리 2km>에서 임창정과 함께 그를 들볶던 똥개 역 안내상이 그의 과동기이자 20년 친구다. 대학 때는 운동만 열심히 했다. 학생운동. “화염병 던지는 거나 잘했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는 않던 그의 성격을 바꾼 것도 운동이었으리라. 이후 그는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맡아 당시 집회의 메카였던 연세대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집회 사회를 도맡기에 이른다. 졸업 뒤에도 신촌에 남아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리산이라는 술집을 경영했다. 거기서 번 돈을 <라이어> 포함해 연극 3편을 제작, 기획하면서 다 까먹었다. “연극판에 돈을 밀어넣고 아내도 얻고 배우도 됐으니까 엄청 남는 장사였다”고 술회하는 그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로 충무로에 첫발을 내딛는다. 내가 나온 명장면을 말한다 먼저 우현의 살떨리는 데뷔작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주인공의 선거포스터를 보는 선관위 직원으로 나온다. 단 한 장면인데 그 추운 날씨에 열여덟 테이크”나 찍었다고. <황산벌>에서는 ‘같이 신하로 나왔던 동료가 톤을 세게 가는 바람에’ 평소 아주 싫어하는 ‘오버액션’으로 맞대응했는데 결과는 대만족. 그는 애드리브를 자주 구사하는 편이 아니다. 출세작 <시실리 2km>에서도 그러하듯 리액션 상황에서 보여지는 표정과 제스처에서 그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임창정이 지르면 받아내는 그의 대응을 보라. 나를 스크린으로 이끈 것은 그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좋은 운은 대체로 스스로의 간절한 소망이 폭넓은 인간관계와 어우러질 때 발휘되었다. 그는 겸손하다. 프로듀서였던 친구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출연했고, 연극하던 친구들과 ‘묻어가는 군사’ 역이나 하려고 갔던 <황산벌> 오디션에서 신하로 승격된 것은 그의 성실성을 이준익 감독이 높이 산 결과였다. 그는 자신을 영화로 이끈 사람으로 친구 안내상을 첫손에 꼽았다. ‘운좋은’ 그와 달리 ‘노력 그 자체’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배우 안내상은 그에게 영화연기에 대한 완벽한 카운셀러인 동시에 가장 신뢰하는 동료배우다. <시실리 2km>에서 해주 역에 그를 과감히 기용한 이창시 PD와 신정원 감독도 그의 연기인생을 바꿔놓은 주역이다. 내가 스크린 안에서 살아내고 싶은 사람은 <황산벌>을 찍을 때 “카메라 앞에서 멋지게 놀 정도는 아니지만 꿋꿋하게 할 수는 있겠다”고 느꼈다는 우현. 그는 <시실리 2km>의 성공에 대해 냉정히 자평했다. 매우 특이한 캐릭터였고, 역으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해서 단숨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악역만 하던 사람은 코믹이 하고 싶듯” 무게있고 진지한 역할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웃으며 덧붙이길 “애가 네살인데 들어오는 역은 전부 20대 대학생 아들을 둔 노인의 연령대다. 지금 내 나이에 맞는 역을 주면 좋겠다”라고. 그의 차기작은 이달 중순 KBS2에서 방영될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다. 브라운관에서 ‘감초연기의 지존’ 임현식에게 우현이 어떤 리액션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발그레한 각오, 방방 뛰는 앳된 커플 <발레교습소>의 두 배우 - 김민정

일을 다시 시작한 지 꼭 1년 만이다. 김민정은 지난해 5월, 드라마 <술의 나라> 촬영 이후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뒤 14년 동안 연기생활을 하면서 딴 생각 한번 안 했던 그가, 도대체 왜? “아마 죽을 때까지 그토록 값진 시간이 다시 올지는 모르겠어요”라고 운을 뗄 정도면, 단순한 휴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가 원래 제 살 깎아먹는 스타일이에요. 작품 들어가면 제 분량 없는 날엔 방 안에만 있어요. 감정 흐트러질까봐 친한 친구한테 전화도 안 해요. 그렇게 했는데 반응이 안 좋으면 또 왜 그것밖에 못했지 괴롭혀요.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이 말이 스스로에게 안 나와요. 오죽했으면 머리가 다 빠졌겠어요.” 잠수 끝에 김민정이 내린 결론은 “즐기면서 일하자”였다. 그때서야 부담 털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밀린 시나리오를 들출 수 있었다. “김민정은 여우다, 깍쟁이다, 말붙이기조차 어렵다더라, 뭐 이런 세간의 평들을 좀 깨보고 싶었어요. 제가 보면 털털한 면도 있고, 중성적인 면도 있으니까. 근데 어떤 캐릭터로 그걸 보여줄지는 막막한 거예요.” “언젠가 꼭 같이 해보고 싶던” 변영주 감독과의 대면은 마침, 단비였다. “보통 감독님들하고 만나면 마무리는 시시껄렁한 잡담이 되게 마련이거든요. 근데 변 감독님은 앉자마자 수진은 니가 해야 한다며, 수진의 표정이 제게 있다며, 어렸을 때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까지 줄줄이 꿰요. 나중엔 진로 상담까지 해주시는데, 그때는 신처럼 보이더라니까요.” <발레교습소>의 수진은 세상을 안다고 말하지만, 몸으로는 겪지 못한 고3 수험생. 강아지도 곁에 두지 못하면서 난데없이 제주도에 있는 대학 수의학과에 가겠다고 해서 집안을 발칵 뒤집는다. 수능시험을 치른 뒤에 선머슴 같은 딸의 성격을 개조하겠다고 팔 걷어붙인 엄마에 의해 발레교습소에 들어가게 된 수진은 그곳에서 “하기 싫은 것은 많으나 하고 싶은 것은 없는” 또래 민재 일행과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스무살 문턱을 힘겹게 넘는 인물이다. “어른인 척하지만 수진은 사실 애예요. 수진의 매력은 그거예요. 애는 애구나 느껴졌을 때, 귀여움이 느껴져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곰삭은 말투로 고백하는 김민정을 보고 있노라면, 힘든 성인식을 치러낸 영화 속 수진 같다. <버스, 정류장> 이후 영화는 <발레교습소>가 두 번째, 2년 만이다. 긴장의 족쇄를 풀었다지만 “10년 동안 몸에 밴” 불안이 촬영 도중 엄습하지 않았을 리 없다. “제 분량 촬영 일정이 지체되는 일이 잦았는데. 감정 잇기가 불안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감독님이 고민할 때마다 문자메시지로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시던데요.” “탁 던져놓고 니가 찾아봐” 하는 변 감독의 연출 방식에 주파수를 맞추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는 그는 몇번의 촬영 끝에 “던진 질문에 답이 있다”는 걸 알아냈고, 동시에 불안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메이크업도 안 하고 그냥 갔어요. 근데 어쩔 수 없나봐요. 수진 발레복 고르는 데 보라색에 손이 가더라니까요. 감독님이 칙칙한 검은색 발레복으로 교체하셨지만.” (웃음) 촬영현장에서 김민정의 별명은 ‘아줌마’였다. 썰렁한 농담에도 크게 웃어젖히는 바람에 얻은 또 하나의 이름. “전엔 다들 ‘민정씨’ 했는데 이번엔 다 ‘민정아’ 하던데요.” 키를 낮추면 또 다른 배려도 보이는 건가. 나이는 4살 오빠지만, 연기 경력은 새까만 후배인 윤계상과의 호흡을 위해 그가 준비한 건 단 하나. “편하게 해주자!” 윤계상의 현장 별명은 약수터 아저씨였던 데는 그의 천생도 있지만, 김민정의 배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쟤네 배우 맞냐?”는 핀잔을 들었을까. 두 사람이 같이 나오는 장면에선 숙제 같이 하는 꼬맹이들처럼 연신 머리를 맞대고 풀어냈다는데, 유독 한 장면, 키스신만은 예외였다. “둘 다 엄청 긴장했어요. 리허설을 그렇게 했는데도 슛 들어가니까 고개 못 맞춰서 NG, 상대 감정 끊어서 NG.” (웃음) 문제의 키스장면 촬영 뒤 윤계상의 까칠한 수염 때문에 입 주위가 빨갛게 부어올라서 병원에 다녀야 했다는 김민정은 영화 촬영 뒤 찍은 드라마 <아일랜드>에 출연하면서 이미 네티즌들의 시선을 모아놓은 상태. 욕을 입에 주렁주렁 달고 사는 에로배우 한시연으로 “달라졌다”는 찬사를 듣고 있는 그는 관객에게 곧 보여질 <발레교습소>에 대해선 “보충촬영이 없어 아쉬웠다”는 우스개로 만족감을 표시한다. “이젠 우울모드에서 좀 벗어나려고요. 더 밝게 해보고 싶어요. 코미디나 멜로나 좀 분명한 장르영화들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거든요.”

<귀여워>로 만난 스승과 제자 배우 장선우-감독 김수현

26일 개봉하는 <귀여워>는 여러모로 독특한 영화다. 신인 김수현(36) 감독이 데뷔하면서 스승인 장선우(52) 감독을 배우로 데뷔시켰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의 ‘장선우 감독-김수현 조감독’의 관계가 <귀여워>에서 ‘김수현 감독-주연 장선우’로 바뀐 것이다. 장선우가 맡은 역은 점 봐준다며 여자들 유혹하는 사이비 도사이고, 그 덕에 낳은 배다른 세 아들과 한 집에서 사는 ‘장수로’이다. 냉소적인 것 같으면서 철없는 아이들처럼 말하는 그 모습이 실제 장선우와 닮아 있어 이 영화를 두고 ‘다큐멘타리 장선우’라는 농담도 나돈다. 김/직접 시나리오 쓰게한 건 좋았죠, 쉽고 재미있는 영화 쉽지 않네요 16일 함께 만난 장선우, 김수현에 따르면 <귀여워> 촬영 도중 둘이 사이가 안 좋아진 적이 두세번 있었다. “김수현:장수로가 옥외에서 거친 정사를 하는 신을 놓고 (장선우) 감독님이 왜 그게 필요한지 나를 설득하라고 하셨죠.” “장선우:쑥스럽지. 남은 많이 벗겨봤지만 내가 하려니까. 그런데 역시 (김수현이) 감독이야. 장수로 대사가 말도 안 되는 게 많잖아. 그거 다 해야 하냐고 물으니까 대꾸도 안 해. 그래서 알겠습니다, 알아서 기었지. 그런데 말도 안 되는 대사를 하고 있으니까 재밌더라고.” “김:그거야 말로 감독님한테 제가 배운 거죠.” 장수로와 순이(예지원)의 섹스신도 마찬가지였다. “장:나는 한 번에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찍자니까 삐졌지. 전문배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난 첫 테이크가 좋더라고.” “김:감독님은 연출할 때도 첫 테이크를 좋아했잖아요.” “장:꼭 그런 건 아니고 첫 테이크가 좋은 배우가 있더라고. 나? 난 타고난 아마추어지. 아마추어니까 그런 거지.” 장/벗겨만 봤지 내가 벗으려니깐 영‥‘카오스적 미학’ 하나 건졌잖아 장선우 캐스팅은 김수현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한진희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캐스팅이 안되자 제작자들이 장선우를 추천했다. “김:그러고 보니까 장수로가 감독님과 비슷한 데가 많더라고요. 마음 먹고는 찾아가서 ‘저도 데뷔 좀 합시다’ 졸랐죠.” “장:시나리오는 그 전에 나오자마자 봤지. 좋았어. 그런데 나더러 하라니까. 5년 이상 뒷바라지 했는데 이것도 안 해주냐고 협박하고. 그래서 다시 보니까 말도 안되는 대사 투성이인 거야. 또 나도 폼 좀 잡고 싶은데 완전히 망가지는 거야. 우매한 주변 사람들은 나의 사생활과 일치시키려고도 하고.(웃음)” “김:황학동에서 찍고 세트촬영을 했는데 황학동 촬영 땐 (장선우의 연기가) 불안했는데 세트에 들어와 배우들이 모여찍기 시작하면서 느낌이 살아나더라고요.” “장:나한테도 좋은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끝나고) 한참 동안 영화를 안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영화 현장에서 놀 수 있어서 좋았고, 돈도 생기니까 좋았고, 또 다행히도 완성된 영화도 좋으니까. 역시 나는 복이 많은 놈이야.” 김수현이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장선우를 찾아간 건 93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연출부 막내로 들어갔고 그 뒤로 아이디어가 많은 만큼 포기도 빠른 장선우 밑에서 수도 없이 시나리오를 썼다. “김:연출부끼리 열심히 머리 맞대 시나리오 쓰는데 감독님이 ‘재미없다’ 그러면 그걸로 끝이예요. 그날 술 먹고 다른 거 쓰는 거죠. 그런데 연출부에 시나리오를 쓰게 한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장:<나쁜 영화> 찍을 때 (김수현에게) 촬영 맡겨놓고 놀러갔다니까. 왠만큼 믿으면 그렇게 하겠어?” 김수현이 꼽은 장선우 영화 넘버원은 <꽃잎>이었다. “김: 참 슬픈 영화 같아요. 작년에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는데 참 잘 만들어진 광주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 때는 뭘 찍는지도 모른 채 금남로 한 구석에서 타어어만 태우고 있었는데.(김수현은 그때 세번째 조감독이었다.)” “장:그랬으니까 영화가 더 슬퍼 보였겠지.” “김:제가 감독님과 닮아있는 점이요? 부지불식간에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영화할 때마다 쉽고 재밌는 영화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쉽지 않잖아요. <귀여워>도 쉽고 재밌게 한다고 했는데, 쉽지도 재밌지도 않고.” “장:카오스적 미학을 쓴 감독이 한국에 없었거든. 내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한다고 하고 망했는데 김 감독은 해냈잖아.” <귀여워>는 어떤 영화? 신인 감독들의 영화, 그중에서도 극장 개봉작을 대상으로 놓고 볼 때 지난해의 발견이 <지구를 지켜라>였다면 올해의 발견은 <귀여워>이다. 새롭고 전복적이다. 새로운 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혼돈과 축제의 미학이다. 이미 반 이상 철거돼 몰골이 전쟁터처럼 돼버린 서울 황학동 아파트에 콩가루 가족이 산다. 바람둥이 사이비 도사 아버지(장선우)와 그의 배다른 세 아들(김석훈, 정재영, 선우)로 구성된 이 가족은 주거공간이 같을 뿐 각자의 생활과 꿈은 콩가루처럼 따로 논다. 남에게 충고하거나 관여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남자 뿐인 이 집에 여자(예지원)가 들어온다. 그럼 이 여자가 접착제가 돼 가족이 복원될까. 복원 같은 건 이 영화의 안중에 없다. 여자는 이 남자들 저마다의 꿈과 욕망이 황학동으로 모이도록 하는, 축제의 호스트이다. 여자와 남자들 사이에 각각의 사연이 쌓여 기괴한 4각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이 축제엔 웃음과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이 혼란스런 축제가 끝나자 가족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흩어진다. 이건 봉합이 아니라 흩어지기 위한 축제다. 안쓰럽고 스산하다. 폭소와 스산함이 한 데 얽히는, 한국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혼란스런 감흥을 연출한다. <귀여워>는 에밀 쿠스트리차를 연상시킨다. 인종청소가 자행되던 끔찍한 유고분쟁의 와중에서 제 정신인지 실성했는지 모를 인물들이 펼치는 난장의 감흥은 <귀여워>와 닮아 있다. 그러나 쿠스트리차의 영화는 유고분쟁이라는, 누구라도 동의할 처참한 상황을 깔고 있었다. 지금의 한국과는 다르다. 철거깡패의 폭력 위협이 상존하는 철거촌이 배경이지만 그 위협에 구속당하는 이는 아들 중 한 명(정재영)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철거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 상황을 탓하지 않는 이들은 상황에 희망을 걸지도 않는다. 쿠스트리차 영화의 배경을 지금의 한국으로 바꿔내는, 그 앞서간 절망감엔 전복의 기운이 있다. 또 상황보다 개성강한 캐릭터들에 의존해 혼돈의 미학을 끌고가는 연출엔, 전압이 불안정하면서도 전력이 큰 에너지가 있다. 올해 한국 영화는 끝자락에서 새 피를 수혈할 감독을 만났다.

MBC <‥사실은> 1돌 이끈 신강균 기자

문화방송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사진)이 19일 첫돌을 맞았다. 신강균 차장은 지난 17일 밤에도 19일 방송될 164회(〈미디어비평〉을 빼면 46회)분 기사 마감을 앞두고 바쁜 모습이었다. 피곤한 목소리였지만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 긴장하게 만들려면 우리는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땐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지난해 말 〈미디어비평〉이 〈사실은〉으로 바뀌자마자, 올해 초부터 탄핵정국이었죠. 이어 총선이 있었고 바로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있었고요. 정신없었죠. 일주일에 3일은 철야를 했고, 모든 팀원이 매주 ‘올인’했습니다.” “4대개혁 잘 안되면 노무현 정권 비판나설 터”전두환·서울시·SBS 등 성역없는 보도 앞장서 〈사실은〉은 지금껏 다양하고도 굵직한 사안들을 다뤄왔다. 대한적십자사 비리,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 문제, 군 방탄장비 결함, 과거사 청산 논란,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 에스비에스 특혜 의혹 등을 깊이 있게 보도했다. 특히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해서는 8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시청자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들을 보도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여당 편향적이라는 거센 비판을 해온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일부 편파방송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신 차장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어찌 보면 공교롭게도 (여권 개혁세력과) 뜻이 같았을 뿐입니다. 이를테면,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거죠. 위에서 보면 나란히 달려가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양쪽에서 달리는 이들은 서로가 보이지 않잖아요. 노무현 코드에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의 필요성에 따라 매체 비평과 다양한 의제 설정을 통해 (개혁을) 줄기차게 외쳐왔던 겁니다.” 몇 차례 실수도 인정했다. 대표적인 것이 총선 직전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과 관련한 잘못된 녹취. “큰 실수를 저질렀음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조작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조·중·동은 자신들이 평소 해온 ‘아전인수’ ‘침소봉대’ 식 보도를 우리가 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실수의 크기에 맞는 적절한 비판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 차장은 1년이 지난 현재의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열심히 뛰어왔는데, 아직도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서요. 현실적 변화는 좀 회의적이라는 거죠.” 그래서 지속적으로 개혁을 외치겠다는 각오다. “이제 50년 개발독재의 구조적 병폐를 털 기회가 왔습니다. 이번 겨울 동안엔 4대 개혁입법을 지켜보고 안되면 집권자들을 향해 개혁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갈 생각입니다.” 또 한가지 바람은 방송 시간대와 관련된 것. 최근 가을 개편으로 방송 시간이 기존 밤 11시15분에서 11시40분으로 늦춰졌다. “밤늦게 외로이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을 보면 시청자들의 가장 큰 요구가 시간을 좀 당겨달라는 건데요. 내년 봄 개편 땐 조금 이른 시간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첫돌 특집으로 ‘〈사실은〉의 1년을 말한다’(19일 밤 11시40분)를 마련했다. 8명의 문화방송 청년시청자위원들이 시청자·언론 종사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사실은〉을 직접 비평하고, 〈사실은〉이 지금껏 보도해온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애프터서비스’ 시간도 준비했다.

세계적 톱스타 르네 젤위거, 주성치 나란히 12월 5일 내한예정

오는 12월 5일(일), 인천국제공항에 진을 치고 있으면 세계적인 톱스타 두명을 만날수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 홍보차 르네 젤위거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데 이어 주성치도 신작 <쿵푸 허슬> 프로모션과 TV출연 등을 위해 입국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배우가 동행하지는 않는다. 공교롭게도 입국 날짜가 겹친것 뿐이다. 한국방문이 처음인 르네 젤위거는 6일(월)에 기자회견을 하고, 같은 날 저녁 8시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프리미어 시사회에 참석해 국내 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혹시 이때 르네 젤위거를 보게 되는 팬들은 겉모습에 너무 실망마시길.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편 출연을 위해 몸무게를 다시 11kg이나 늘렸기 때문이다. 속편은 모범 남친 마크와 드디어 연애를 시작하는 브리짓 앞에 초절정 바람둥이 다니엘이 다시 나타나 그녀의 맘을 흔들어 연애사업이 꼬여간다는 얘기.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이 그대로 제작을 맡았으며 지난주 미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었다. 국내 개봉은 12월 10일로 이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UIP는 꼭 작년 그때쯤 <러브 액츄얼리>를 개봉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었다. 한편 주성치는 르네 젤위거보다 다소 빡빡한 방한 스케줄을 짜 놓았다. 주성치는 극비리에 추진중이라는 영화계 프로젝트를 참관하고 국내 톱스타와 함께 TV에 출연하며 신작 <쿵푸 허슬>의 프로모션까지 병행한다. <쿵푸 허슬>은 <와호장룡>을 제작한 미국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영화사 아시아 프로덕션이 <와호장룡>의 2배에 달하는 300억원 규모의 제작비로 완성한 주성치의 신작이다. 지난 10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바 있으며 ‘기존 주성치의 이미지와 상상력을 뛰어 넘은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성치는 <쿵푸 허슬>에서도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감독, 주연, 각본, 제작의 1인 4역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박스오피스 2주연속 1위를 차지했던 <영웅>보다 더 큰 배급규모로 개봉될 예정이어서 <와호장룡>, <영웅>에 이어 다시 한번 아시아 파워를 보여줄지가 관심거리다. 국내에서도 전작 <소림축구>를 제외하고는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주성치가 <소림축구>의 흥행기록을 넘을지도 궁금하다. 국내는 내년 1월 14일 개봉예정이다.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들

나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분명히 나는 태어날 때부터 급하거나 안절부절못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느긋하고 여유있는 작태에 어른들이 놀라곤 했다. 엄마- 넌 태어나자마자도 주변을 확인하고 여기가 어딘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다 살핀 뒤에 울기 시작했다. 니가 다른 태아들보다 3분 정도 늦게 우는 바람에 우린 목청없는 아이를 낳은 줄 알고 기겁을 했었지…. 자라면서도 그랬다. 학교의 등교시간이 내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3교시가 끝날 때쯤 들어가도 그다지 조바심나지 않았다. 1, 2교시에 배운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야란 예측과 더불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잘 버티는 맷집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그랬다. 언제나 여유가 있었고 여백이 넘치는 생활이었다. 난 언제나 삶에 여유가 있었고…. 그것은 다른 인생들과 구별되는 아주 착하고도 영특한 습성이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급해졌다. 식당에 가서 첫마디가 “뭐가 빨리 되요?”, 촬영장에 가서도 “대사 좀 빨리해라”, “필름 좀 빨리 돌려”, 집에 갈 때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있는데도 문닫힘 버튼을 계속 누르고 집 초인종을 누른 뒤에 아무도 “누구세요?”라는 말을 안 했는데 먼저 “나예요!!!”라고 소리지르고….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는데 손은 이미 종이컵을 감싸쥐고 고개 숙여 나오는 커피를 보고 있고, 운전할 때도 내 앞의 신호등은 안 보고 옆차선 신호등이 주황색이 되면 일단 출발하고, 군대에서 사격할 때도 타깃은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방아쇠 당기고, 야구도 초구에 방망이 돌리는 선수가 좋고 <스타크래프트>도 저글링 러시나 1마린 9SCV 러시가 짱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가끔씩 나도 나에게 자문한다. ‘너 왜 그래? 너 왜 이렇게 급하게 세상을 사니? 너 왜 이리 조급해졌어? 너 안 그랬잖아? 도대체 무엇 때문이니? 말해봐? 왜 그래? 왜? 말해보라니까? 빨리 말해!! 묻고 있잖아 얼른 말해봐!!! 이거 참 답답하군… 어서 좀 말하라니까….’ 아∼ 난 정말 여유있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엄마 때문인가? 하긴 엄마는 날 깨울 때 언제나 “얼른 일어나”라는 말부터 시작하시지…. 군대에서 바뀌었을까? 하긴 선착순 돌 때… 일단은 빨리 와야 다시 뛰지 않으니…. 신호등도 문제야, 횡단보도 건널 때 여유있게 건너다가도 점점 깜박이며 촉박한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빨라지면 덩달아 급한 마음에 뛰게 되고…. 생각해보니 내 이름도 문제군. 누구나… “장진!” 하고 부를 때 장∼을 장음으로 소리내는 사람은 없지. 그래서 자∼앙∼진∼ 이렇게 발음을 안 해. 내 이름은 언제나 급하게 소리가 나와 “장진!” 지금 이 글 읽으면서도 다들 한번씩 소릴 내보는 거 알아. 거봐 짧게 나오지? 그렇게 “장진! 장진!” 자꾸 급하게 들으니 내 성격이 급해져. <씨네21> 남동철 편집장을 예로 들면… ‘남 동 철!’ 이 이름은 장음으로 소리나고 자연히 천천히 부르게 돼 있잖아. 누가 이 이름을 ‘남동철!’ 하고 단음으로 급하게 부르겠어? 한두 가지가 아니네.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를 급하게 만드는 것들… 조급하게 만들고 그래서 작은 일에도 어쩔 줄 모르고 쉽게 당황하고 아등바등하게 만드는… 수많은 것들…. 우리 주변에서 늘 ‘시간이 없어요’라고 외치는 것들!! ‘그냥 오세요’라고 안 하고 항상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냥 ‘잘 자고 잘 일어나라’라고 말해도 될 것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라고 말하는 어른들, 기왕에 뽑은 대통령 뭘 하든 지켜보고 기다려보면 될 것을 마땅한 대안들도 없구만 뭐가 그리 조급한지 안 돼요, 왜 그래요, 거기서 그만, 이라고 종용하는 사람들…. 누군가 여유있고 느긋하면 오히려 ‘저 친구 참 속터지겠네’라고 핀잔을 주는 세상 분위기…. 이런 것들이 없어지고 조금 늦으면 어때? 조금 천천히 가면 어때? 조금 기다려보는 것도 좋지. 오늘 안 되면 내일 하자고, 이런 기분들이 당연하고 상식적인 그런 세상이 된다면 나의 이 조급한 성격도 예전처럼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쓰는 이 글도 그래. 오늘이 원고 마감이라고 자꾸 전화하면 어떻게 해? 그냥… ‘아, 아직 안 썼어요? 그럼 뭐 글 써질 때 써서 아무 때나 편할 때 주세요’라고 말해준다면… 그런 세상이 된다면… 참 괜찮을 것 같다 이거지 뭐…. 장진/ 영화 감독

매혹적인 일본 다큐 걸작과 만난다,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

일주 아트하우스 아트큐브, 11월19일부터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 상영 일본 대중영화 46편을 무더기로 소개한 메가박스일본영화제(11월10∼24일)에 이어, 일본 현대의 사회상을 스크린을 통해 전언하는 또 하나의 영화제가 열린다. 단, 이번에는 직접화법만 쓰는 영화들이다. 일주 아트하우스와 일본 국제교류기금은 11월19일부터 28일까지, 193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일본 다큐멘터리 16편을 한데 모아 상영한다.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역동의 기록, 매혹의 필모그래피’라고 명명된 이번 행사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을 꿰뚫는 테마는, 일본이 체험한 전쟁과 산업화의 격동과 여파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영화가 주시하는 개인의 조건과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격동과 여파는 다양한 모습으로 기록된다. 필름은 때로 역사의 이행기를 만나 자신의 노동이 새로운 역사로 직결되는 모습을 목격하는 인간의 감격으로 요동치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역사의 죄악과 오류가 남긴 낙진 같은 흉터와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순간을 더욱 집요하게 응시한다. 상영작 16편의 감독은 11명. 일본 다큐멘터리 역사의 명인들로 기억되는 가메이 후미오, 하니 스스무, 쓰치모토 노리아키, 하라 가즈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작품이 각기 두편씩 소개되어 긴 호흡의 관람을 권유한다. 이 밖에도 다큐멘터리의 역사에 <산리즈카 7부작>과 야마가타영화제라는 귀한 선물을 남긴 오가와 신스케의 1982년작 <일본국 후루야시키 마을>, 미조구치 겐지의 제자였던 신도 가네토 감독이 퍼즐 맞추듯 집요하게 완성한 <어느 영화감독의 생애: 미조구치 겐지의 기록>도 만날 수 있다. 영화제 기간 중인 11월27일에는 이번 프로그램에 포함된 <아가 강에 살다>의 사토 마코토 감독이 연출자이자 다큐멘터리 연구자로서 일본 기록영화의 역사와 전망을 논하는 강연이 마련된다(홈페이지 www.iljuarthouse.org). 김혜리 vermeer@cine21.com 교실의 아이들 敎室の子どもたち 감독 하니 스스무 l 흑백 l 35mm l l 30분 l 1954년 1949년 학술 출판사 이와나미 서점이 세운 이와나미 영화제작소는 계몽적인 교육·과학분야 기록영화로 일가를 이뤘다. 문부성 후원으로 만들어진 <교실의 아이들>은 이와나미 제작소의 존재감을 세간에 알린 작품이다. 산만한 소학교 2학년 교실. 온화하고 세심한 여교사는 교실을 휘어잡는 남자교사의 권위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통솔보다 소통이 우선이라 깊이 믿는 그는 아이들을 독립된 개인으로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하품을 자주 하는 소녀는 부끄러움이 많고 신체발육이 더딘 소년은 학습 흥미도 덩달아 낮다. 명랑하고 착실한 아이가 있는 소그룹은 과제에 실패해도 웃음이 터진다. 한 오라기의 감정과 생각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들의 투명한 얼굴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다. 1955년 <키네마준보> 연례 베스트 10에서 3위를 차지했다. 기자재와 촬영 테크놀로지가 충분히 발전되지 않아 기록영화에도 약간의 연출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당시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이 놀라움을 자아냈고 심지어 몰래카메라로 찍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베니스영화제 교육부문상을 탄 1956년의 후속작 <그림 그리는 아이들>과 묶여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어느 기관사 조수 ある機關助士 감독 쓰치모토 노리아키 l 컬러 l 35mm l 37분 l 1963년 어촌 주민들의 수은 중독 실태를 고발한 15편의 미나마타 연작으로 명성을 드높인 쓰치모토 노리야키 감독의 초기작이다. 일본국영철도(JR)의 의뢰로 제작됐다. 기관사의 꿈을 오랫동안 키워온 주인공은 일본국영철도의 기관사 조수로 일하고 있다. 쉴새없이 석탄을 퍼넣고 기관의 정비 상태를 점검하며 눈코 뜰 새 없이 기관사를 보조하는 것이 그의 임무. 도쿄에 가까워질수록 열차도 많아지는 철도망에서 운행시각 준수는 사고 예방의 기본이다. 단 몇분의 연착을 안전운행수칙을 준수하면서 만회하는 숨가쁜 과정을 상당한 서스펜스를 의도한 편집으로 재현했다. 영국의 존 그리어슨 감독 작품에 비견되기도 했다.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같은 감독의 영화 <길 위에서>는 택시기사를 주인공으로 도쿄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도시 교향악을 그린 작품이다. 가라유키 상 からゆきさん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l 컬러 l 16mm l 76분 l 1973년 평론가 사토 다다오에 따르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극영화의 소재와 모델을 하도 철저히 취재한 나머지 급기야 조사과정 자체를 영화로 만드는 편이 편리한 지경에 이르렀다. <마담 옹보로의 생활>과 <가라유키상>도 그런 경우. <가라유키상>은 일본이 처음 인력을 ‘수출’한 태평양 전쟁기에 납치되어 말레이시아 사창가에 팔려 다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73살 키쿠요 할머니의 이야기다. 납치당해 실려온 배삯부터 당장 벌어야 했던 19살 매춘부는 늘어만가는 빚더미를 겨우 갚고 몇 남자와 살림도 차리지만, 타국에서 손자들에게도 경멸받는 노년을 보낸다. 일본은 외화벌이에 이용한 그녀들을 전혀 기억하지 않았고, “담배만 있으면 족하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포주에 대한 증오조차 더이상 느끼지 않는다. 진짜 충격은, 덤덤한 할머니의 진술을 듣고난 감독이 일본에 돌아와 할머니의 옛 고용주와 이웃을 만났을 때 찾아온다. 제3자가 증언하는 키쿠요의 가족사와 인생은 너무나 가련하고 참혹한 것이어서, 그녀가 얼마나 불행에 둔감해졌는가를 관객에게 일깨우기 때문이다. 천왕의 군대는 진군한다 ゆきゆきて、神軍 감독 하라 가즈오 l 컬러 l 16mm l 122분 l 1974년 2차대전 말 뉴기니에 참전했던 62살의 오쿠자키 겐조는 인육까지 먹는 극한 상황에서도 결사항전 명령에 내몰리는 생지옥을 경험하고 생환한다. 이후 그는 전쟁 책임을 면제받은 천황을 저격하는 등 여러 차례의 테러로 13년9개월을 복역한다. 석방 뒤에는 종전선언에도 불구하고 탈영 죄목으로 사살된 두 젊은 병사의 살해경위를 조사한다. 정의실현과 진실규명이야말로 자신을 살려둔 신의 뜻이라 믿는 그는 새로운 의미의 ‘신군’이 되어 가차없이 진군한다. “목적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살아 있는 한 폭력에 의존할 것”이라고 말하는 오쿠자키 겐조의 취재는 드물지 않게 멱살잡이로 끝난다. 형제를 죽이고 먹었을지도 모르는 자와 유족이 마주앉은 테이블에 흐르는 긴장은 소름끼친다. 종교적 열의에 들뜬 주인공, 명료한 선악구분, 명예율의 충돌,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는 직설적 대사와 액션, 거짓이 섞인 증언의 조각으로 진상을 맞추어가는 과정이 어느 미스터리스릴러도 감히 따를 수 없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하라 가즈오 감독의 또 다른 상영작 <극사적 에로스>는 그를 떠난 전처를 쫓아다니며 페미니스트로서 분방하고 격렬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생활을 담은 끈질긴 다큐멘터리다. 어느 영화 감독의 생애: 미조구치 겐지의 기록 ある映畵監督の生涯 溝口健二の記錄 감독 신도 가네토 l 컬러 l 16mm l 150분 l 1975년 미조구치 겐지가 타계하고 18년이 지난 1974년, 제자였던 신도 가네토는 카메라를 들고 살아 있는 미조구치의 이웃과 영화동료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조구치는 촬영 중 집중을 깨기 싫어 간이 용변기를 쓴 감독이었고 밤새 지은 세트를 2m 옮기려고 몇번을 지었다 부순 폭군이었으며 현장에서 원한에 찬 여인에게 피습당한 바람둥이였고 사케 마시는 법을 아는 술꾼이었다. 신뢰하는 배우와 스탭일수록 가혹한 기대치를 강요하는 고집쟁이였지만,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념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내이기도 했다. 압권은 <오하루의 일생>의 주인공 다나카 기누요의 인터뷰. 말년의 미조구치가 공공연히 구애했던 여배우는 침착하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선생은 나를 통해, 오하루나 오치카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물기를 반짝이며 조용히 덧붙인다. “후일 나도 사랑 비슷한 것을 느끼긴 했지요.” 150분의 회고는 쓸쓸히 숨진 미조구치의 마지막 노트로 끝난다. “벌써 가을의 한기가 왔다. 당신들 모두와 다시 한번 일하고 싶다.” 우민추: 노인과 바다 老人と海 감독 존 준커만 l 컬러 l 16mm l 110분 l 1990년 남지나해 연안 마을의 늙은 어부. 아침에 바다로 나선 그가 쪽배 한척과 낚싯줄과 작살로 청새치를 뒤쫓는 동안 늙은 아내는 남편의 무사한 귀가와 풍어를 기도한다. 그러나 잡히는 것은 저녁거리 잔챙이뿐. 정성스런 기원과 기다림 끝에 할아버지가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올린 날, 가족과 따스한 밥상에 둘러앉은 노인의 뺨에는 어린애 같은 홍조가 어린다. 30년간 일본에서 거주한 존 준커만은 2개월 일정으로 어부의 생활을 찍기 시작했으나 청새치를 잡는 장면을 얻기까지 2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내 아내는 필리핀 여자 妻はピリピ?ナ 감독 데라다 야스노리 l 컬러 l 16mm l 100분 l 1993년 1990년대 초 일본 청년이 체험한 국제결혼의 실상을 스스로 기록한 사적인 다큐멘터리. 그러나 우리에게도 보편적인 생각거리를 준다. 영화학도 데라다가 도쿄 유흥가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 테레사와 결혼을 결심하자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동생은 오빠를 이용하려는 결혼이 아닌가 의심하고 아버지는 절연을 선언한다. 둘은 결혼하고 딸도 태어나지만, 테레사는 필리핀의 가족에게 송금하기 위해 계속 술집에 나간다. 혼자 버려지다시피 자라온 그녀는 딸에 대한 모성보다 친정에 대한 부양의무를 더욱 무겁게 느끼는 것이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멀지만, 젊은 부부는 소소한 다툼과 갈등을 감당하며 서두르지 않고 가정의 둥지를 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