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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고래 촬영의 신비를 만나다, <웨일 라이더>

전세계 주요 영화제의 관객상을 휩쓴 <웨일 라이더>가 국내에 선보인 것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였다. 거의 같은 시기 이 영화를 태평양 상공의 기내에서 작은 스크린으로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당시 수영만의 초대형 스크린으로 바닷바람을 맡으며 바다를 날던 고래등의 파이를 보았던 분들의 감동은 더 컸으리라…. 니키 카로 감독은 외지인들에겐 전설이지만 왕가라 주민들에겐 역사였던 파이키아(이하 파이) 이야기를 원작소설로부터 재구성, 현실감 있는 드라마로 펼쳐 보이며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 속 할아버지와 파이간의 갈등구조는 우리에겐 진행형적 의미를 지니기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더욱 각별한 느낌을 준다. 특히 파이가 고래 등을 타고 뒤돌아보며 “괜찮아요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모습은 숨을 턱하니 막히게끔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바다만큼 깊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한장의 DVD에 담겼지만 다양한 부록을 수록하여 SE 버전 부럽지 않게끔 제작되었다. 잔잔한 목소리의 감독 코멘터리는 종종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가령 라위리 삼촌 역의 배우는 살을 찌우기 위하여 맥도널드에서 살다시피 했으며(무슨 영화가 생각나지 않는가?) 상어이빨인 ‘라푸타’를 건지기 위하여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든 장소는 사실 ‘상어의 만’이었다고 전해준다(물론 감독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27분 분량의 비하인드신에서는 3단계로 촬영된 영화 속 고래 촬영의 신비를 밝혀주는데 다큐멘터리로 촬영된 바닷속 실제 고래와 해변가의 모형 고래, 그리고 CG 처리된 고래들이 그것이다. 최소한의 CG 작업을 고집했던 니키 카로와의 작업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파이 역의 케이샤. 최대한의 CG 작업을 고집하는 루카스와의 작업은 어떻까? 루카스가 케이샤의 재능을 죽이지 않고 케이샤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3>를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캐스팅 소식] <댄서의 순정>으로 스크린 데뷔하는 ‘댄서 김’ 外

성지루, 신이, 김수미 >> 감우성과 김수로, 신구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코미디영화 <간큰가족>에 세명의 조연이 합류했다. <바람난 가족>의 성지루, <령>의 신이 그리고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수미가 간큰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가족들이 통일자작극을 벌인다는 내용의 <간큰가족>은 내년 5월 개봉을 예정으로 12월10일 크랭크인한다. 키아누 리브스 >> 키아누 리브스가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는 스릴러영화 <야경꾼>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 제임스 엘로이()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야경꾼>은, 경찰 내부의 부패를 발견하는 불명예 경찰에 대한 영화. 키아누 리브스가 신작 <콘스탄틴>의 프로모션 투어를 마치는 내년 2월경에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김기수 >> ‘한 춤’하는 개그맨 김기수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스크린에 도전한다. ‘댄서 김’의 영화 데뷔작은 스포츠댄스 선수인 언니를 대신해 한국에 온 연변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댄서의 순정>. 김기수는 남녀 주인공 문근영과 박건형을 연결시켜주는 스포츠댄스 선수를 연기한다. 한마디로 댄스 실력과 개그력, 연기력이 모두 요구되는 ‘만만치 않은’ 역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약물중독을 딛고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샤기 독>으로 오랜만의 스크린 나들이에 나선다. 팀 앨런이 주연을 맡은 <샤기 독>은 종종 양치기 개로 변신하는 한 남자의 에피소드를 그리는 코미디영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개를 이용해 기적의 신약을 발명하고자 하는 여피 사업가를 연기할 예정이다. 문소리, 윤진서, 이재응 >> 박정희 서거부터 프로야구 개막까지 격동의 세월을 배경으로, 행운의 편지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고 믿는 중학생의 이야기를 그리게 될 <엄마 얼굴 이쁘네요>의 주요 배역이 결정됐다. <효자동 이발사>에서 한 차례 모자의 정을 나눴던 문소리와 이재응이 광호 엄마와 광호를 연기하며, <슈퍼스타 감사용>의 윤진서는 광호가 남몰래 좋아하는 옆집 누나를 맡는다. 세명의 배우의 전작이 모두 비슷한 시대를 다루었다는 것은 우연한 공통점. 로라 린니 >> <유 캔 카운트 온 미>와 <러브 액츄얼리>에서 각각 남동생과 오빠에게 끝없이 베풀기만 하는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로라 린니. 그가 레이먼드의 단편을 각색한 <진더빈>(Jindabyne)에 출연한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그물에서 젊은 여인의 주검을 발견하면서 그들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다룬 영화다. 린니는 최근 개봉한 화제의 영화 <킨제이>에 출연했으며, 현재 <에밀리 로즈의 에로티즘>을 촬영 중이다.

다큐멘터리에 담은 아시아의 한류 바람

‘한류’ 바람 뜨거운 아시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송된다. 오는 10일 개국하는 24시간 연예정보채널 <와이티엔 스타>가 일본, 중국, 동남아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풍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다큐멘터리 <엔터테인먼트 아시아>를 준비했다. 12일부터 매주 1편씩 8주간 방송될 이 다큐는 먼저 일본의 대중문화 현상을 점검한다. 1편 ‘일본에서 부는 한류 열풍’은 <겨울연가>와 ‘욘사마’(사진)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문화적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최대한 극대화시킬 방안이 무엇인지, 또 이에 대한 장애물이 없는지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샅샅이 살펴본다. 2편 ‘일본 가수가 사는 법’에선 한국과 달리 탄탄한 일본의 음반 시장을 소개한다. 불법 음반이 판을 치며 일부 ‘아이돌 스타’를 제외한 많은 가수들이 생계마저 걱정하는 한국 상황에서 싱글 음반이 활발히 유통되는 일본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3~8편은 중국, 홍콩, 대만, 베트남 현지의 대중문화 현황을 살펴보고, 한류가 자리잡아 가는 모습도 소개한다는 계획이다. 와이티엔 스타의 주요 프로그램은 연예 뉴스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 2시간마다 <생방송 스타뉴스>를 통해 연예계 소식을 전한다. 매일 밤 10시 방송될 <생방송 스타 포커스>는 리포터들이 연예계 취재 후기를 들려주고, 연예계 현안을 분석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4시에는 한 주의 연예뉴스를 총 정리해주는 <스타매거진>이 방송된다.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국내외 연예 산업과 함께 연예뉴스도 우후죽순 늘어나는 상황에서 24시간 연예전문 방송까지 생겨나자, 과연 기존 연예인 사생활 중심의 경박하고 상업적인 연예뉴스의 틀을 벗을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내 단신] < 나비효과 > 무삭제 감독판 특별 상영 外

<나비효과> 무삭제 감독판 특별 상영 지난 주말까지 전국 96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나비효과>의 무삭제 감독판이 12월7일과 8일 이틀간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특별 상영된다. 이날 상영될 감독판은 일반 극장판보다 7분 정도 러닝타임이 길고, 영화의 결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감독판은 이틀간 하루 1회씩 무료로 상영될 예정이며, 상영회에 참가할 사람은 www.naver.com과 www.maxmovie.com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연애술사> 크랭크인 바람둥이 마술사 연정훈과 터프한 미술교사 박진희가 선보이는 섹시코미디 <연애술사>가 12월1일 촬영에 들어갔다. 과거 연인이었던 박진희와 연정훈이 자신들의 몰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대책을 논의하는 장면이 이날의 촬영 분량. 영화 <키다리 아저씨> 이후, 현재 드라마 <슬픈 연가>에도 출연 중인 연정훈과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박진희. 두 사람이 벌이는 못 말리는 해프닝은 내년 3월 스크린에서 공개될 것이다. 단역배우 노동조합 설립 드라마, 연극, 영화 등에 출연하는 단역배우(엑스트라) 400명을 주축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11월29일 한국문화예술인노조가 단역배우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배우연합지부(지부장 최성웅)를 결성했다고 발표했다. 조합원 대부분은 작품당 계약에 따라 급여를 지급받고 특정한 회사에 소속되지 못한 비정규직 배우들이다. 올해 3월 결성된 문화예술인노조(위원장 정대홍)는 6개 분과 2천500여명 조합원이 소속된 상태(문의: 011-389-8493). <우작> 전국 순회 상영 200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터키영화 <우작>이 코엑스 아트홀에서의 한달간 상영 이후, 전국의 아트플러스 순회 상영에 들어갔다. 12월3일 프리머스 제주를 시작으로 내년 3월까지 이어질 릴레이 상영을 계획하고 있는 극장은 DMC 부산, 목포제일극장, 광주극장. 아트플러스 체인은 아니지만 일산의 그랜드시네마 역시 내년 3월 중 상영을 준비 중이다(문의: www.uzak.co.kr). 메가박스, 최고의 영화관 선정 메가박스가 제10회 ‘시네아시아’(주관: VNU Exposition Film Group)가 선정한 제10회 ‘아시아 최고의 영화관’의 영예를 안았다. 메가박스는 국내에서도 2004년 국가고객만족도, 한국 산업의 국가고객만족도, 한국서비스품질지수, 한국서비스대상, 퍼스트브랜드대상, 한국소비자의 신뢰기업대상 등 서비스품질을 평가하는 대부분의 지수나 시상에서 극장부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관객동원도 2000년 300만명을 시작으로 4년 만에 1700만명으로 급성장했다. 시상식은 12월7일부터 9일까지 타이 방콕에서 열릴 예정.

보통 사람들의 삶과 연애,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

그녀는 여전하다. 보드카를 병째 입에 물고 <올 바이 마이셀프>를 온몸으로 불러젖히며 세계 만방에 자기를 알리고 한살 더 먹었지만 33살의 싱글족이란 신분은 그대로다. 알코올과 담배? 물론 이 정다운 친구들과 절연하지 못했다. 몸무게? 행복해져서일까, 통통하던 몸매는 좀 퉁퉁해졌다. 그 무엇보다 변함없는 건 브리짓 존스를 매력적이게 만들었던 그녀만의 행동거지다. 좀더 좋은 것과 좀더 나쁜 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망설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행동하는, 그러나 이따금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를 도약시키는 재주. 그 남자들도 여전하다. 마크 다시는 냉정해보일 만큼 말끔한 표정의 기품있는 인권변호사다. 무뚝뚝한 낯빛에 그 속내가 자주 묻혀버리기는 하지만 사랑의 열정을 은근히 감춰두었다. 그래서 더 완벽한 상대가 된다. 다니엘 클리버는 섹스 클리닉을 받고 있다고 ‘신분 위장’을 해야 할 정도로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치기해가며 누군가를 침대로 끌어들이고 있다. 브리짓을 향한 유혹의 손길이 뻔뻔스러운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 콜린 퍼스의 마크, 휴 그랜트의 다니엘이 주먹과 키스 사이로 조우하게 되는 것도 전과 다름이 없다. 샤론 맥과이어에서 비번 키드론으로 감독이 바뀌기는 했으나 워킹 타이틀의 시나리오 제조기 리처드 커티스를 필두로 원작자 헬렌 필딩과 <오만과 편견>의 TV시리즈 작가 앤드루 데이비스가 이번에도 공동작업을 벌였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진 건 브리짓과 마크 다시가 서로의 진가를 알아챘다는 거다. 그들이 서로의 가슴에 오르가슴을 채워넣기 시작한 지 4주하고도 5일째다. 2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니 덤벙 스타일과 쿨가이가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밀고 당길 새로운 갈등이 필요하다. 브리짓에게 위태로운 자각을 시시때때로 주입하던 싱글의 초조함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꿰어찬 건 질투와 열등감이다. 마크 옆을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인턴 레베카가 우아한 미소와 교양있는 매너로 브리짓의 애교를 위협한다. 브리짓이 더 위기를 느끼는 건 레베카가 모델 같은 외모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제 브리짓 존스의 일기장은 애인 사수를 위한 좌충우돌기로 뒤범벅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게 살을 맞대던 사이가 순식간에 가장 먼 사이가 되고 마는 연애의 곡절(혹은 후일담)을 맛볼 준비가 끝났다. 오래되고 거대한 건물은 침묵하고 있어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스통 르루가 파리 오페라극장을 둘러보고 1911년에 펴낸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빙산처럼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매혹적인 건축물 지하로부터 음산하고 낭만적인 스토리를 캐낸 수작이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먼지 쌓인 통로로 빠져나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면, 오르간과 밀랍인형이 웅크린 동굴에까지 이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뮤지컬의 도입부를 좀더 대규모로 재현한 <오페라의 유령> 첫 부분은 오페라 극장을 뒤덮은 회색 세월의 흔적을 순식간에 걷어내면서 고속철도와 같은 속도로 샹들리에 불빛이 빛나는 전성기를 돌이킨다. 그 순간이 마법과도 같은 것은, 1년 넘게 공들인 컴퓨터그래픽의 힘이라기보다, 건축물 자체에 밴 향수 때문일 것이다. 증오로 살아남았고 사랑으로 파멸한 한 남자의 드라마가 그곳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은 눈앞에서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오페라극장을 보면서, 그리고 힘있고 비극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기꺼이 고풍스러운 러브스토리에 공감할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워킹 타이틀이란 브랜드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을 속사포 같은 유머와 재치로 낚아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는 승복할 수밖에 없는 멋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던 솜씨 말이다. 1편의 무기이자 감동이었던 브리짓의 진담이 상투어로 도배돼버렸으니. 브리짓과 마크가 아직 결과를 가리키지 않는 임신진단 시약을 앞에 놓고 계급적 갈등을 드러낼 때까지만 해도 워킹 타이틀의 전통은 지속되는 듯했다. 마크가 태어날 징조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놓고 5대째 집안 동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이튼 스쿨 운운하며 명문가 자제다운 교육관을 드러내자 브리짓은 이튼을 파시스트 학교로 치부해버린다. 놀랍게도 마크가 처음으로 ‘본색’을 보인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비틀스나 들으며 프리섹스를 하게 놔둘 수는 없어!” 충돌은 여기서 뚝 멈춘다. 브리짓다운 전투는 끝내 본론에 들어가지 않는다. 브리짓이 마크의 초청으로 변호사협회의 만찬에 참석해 “상류층 극우 대머리들”이라고 주최쪽을 내놓고 헐뜯는 것도, 부모가 벌이는 뷔페 파티에 모인 이들을 “영국 최고 변태들”이라고 쏘아대는 힐난도 뜬금없는 ‘한방’일 뿐이다. 야욕이 분명치 않은 레베카를 상대로 나 홀로 불안초조해하더니 멀고 먼 타이에서 다니엘 클리버와 금욕적인 곡절을 겪은 뒤에 터무니없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꾀죄죄한 이국의 여죄수 감방에 갇히고 만다. 브리짓이 감방의 사설 교사가 되어 마돈나의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있으면 인권변호사가 인맥을 동원해 사태를 수습하면 된다. 레베카의 정체가 반전 구실을 하나 그것이 결혼을 향한 브리짓의 맥없는 투항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싱글족의 공감가는 연대에 한몫했던 브리짓의 게이 친구나 동성 친구는 멍청한 카메오 수준이고, 주책스러운 연애주의자였던 브리짓의 엄마는 남편과 또 한번 결혼하겠다며 자기 노선을 스스로 위반한다. 따지고보면 필부들의 삶과 연애라는 게 사소함의 위기이고,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갈등으로 파국으로 치닫곤 한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브리짓의 연애사를 요란하지 않게 꾸미는 게 오히려 용기있는 전략일 수 있다. 그렇지만 브리짓의 처절한 기개, 당당한 자아까지 희석시켰으니 남은 건 익숙한 로맨틱 개그다. 원작소설 <브리짓 존스의 애인> 브리짓과 친구들의 변함없는 수다 잔치 브리짓을 둘러싸고 살해위협 소동까지 벌어지지만, 영화의 뼈대가 된 헬렌 필딩의 원작소설 속편 자체가 대단한 사연을 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소설은 브리짓과 그의 친구들이 벌여온 수다스런 잔치에 좀더 일관성을 유지한다(싱글족을 ‘모범적으로’ 배신하는 건 브리짓이 아니라 친구 주드다). 브리짓의 엄마는 정력적으로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고 브리짓의 아빠는 그만큼 절망에 빠져 알코올에 중독돼간다. 브리짓의 엉덩이를 음흉하게 주무르던 삼촌 제프리가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크 역시 한때 남색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는 브리짓의 친구 아닌 친구 레베카와 외도할 만큼 힘에 넘치는 이성애주의자다. 브리짓이 탐독하는 자기계발서는 종류만 바꿨을 뿐 여전히 그녀 주위를 맴돈다. <남자가 원하는 것> <부처가 데이트를 했다면> <예수가 아프로디테와 데이트를 했다면>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가> 등등(소설 끝무렵에 밝혀지지만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던 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되찾는 법> <사랑하고 상심해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 등). 그렇지만 브리짓은 열렬한 노동당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임을 줄곧 주창한다. “사상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섹스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총리” 토니 블레어가 선거에 이기기까지와 싱글족의 수호성인처럼 떠받들던 다이애나의 사망 사고가 그녀의 삶 깊숙이 파고든다(브리짓은 애인 마크가 보수당에 투표했던 ‘과거’를 알고 충격에 휩싸이기도 한다). 바람둥이 다니엘 클리버 때문에 방송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겨 약간 선정적이나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화두를 수집하고 다니는 건 여전하지만 일을 한 가지 더 늘렸다. <인디펜던트>의 유명인 인터뷰 기고자가 됐는데 재밌는 일화가 펼쳐진다. 그가 어렵게 처음 맡은 일은 TV시리즈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시 역의 콜린 퍼스를 로마까지 쫓아가서 인터뷰하는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브리짓의 캐릭터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인터뷰 일문일답을 그대로 싣는데, 터져나오는 웃음을 웬만해선 참기 어려운, 최대 승부처 중 하나다. 영화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만드는 타이 여행이나 그곳에서 기막힌 환각을 맛보게 해주는 매직 머시룸 오믈렛의 등장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광활한 사막 위에 펼쳐지는 비장한 남성 액션, <천지영웅>

일본에서 당나라로 유학차 왔다 25년 동안 머물고 있는 라이시(나카이 기이치)는 왕명을 받아 사막 한 벌판에서 10년째 한 인물을 쫓고 있다. 그의 표적은 터키 포로들을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에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군인이 할 짓이 아니다”라며 거역하고 탈영한 이 부관(장원). 그는 사막의 대상(隊商)들을 호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라이시는 사막 저편으로부터 당의 수도로 불교 경전을 옮기는 행렬을 보호하고 있는 이 부관을 찾아내지만, 산적과 터키족 등이 득시글거리는 사막을 건널 때까지만 그를 살려주기로 한다. 결국 친구의 딸인 원주(조미)를 수도로 호위해야 하는 라이시 또한 이들 대열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들이 옮기고 있는 수수께끼의 ‘보물’을 빼앗기 위해 안 두령이 이끄는 산적 무리가 이들을 공격하고, 라이시와 이 부관, 그리고 이 부관이 예전에 거느렸던 무사들이 합세해 강력하게 맞서 싸운다. <천지영웅>은 언뜻 보기에도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막을 건너는 무사들과 한 여성의 모습이나 요새에서 공성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무사>와 너무 흡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천지영웅>은 <무사>가 갖지 못했던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확실한 캐릭터와 탄탄한 드라마다. 장대한 스케일에 비해 액션장면은 다소 맥이 빠지는 게 사실이지만(장원이 장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강한 남자 캐릭터들의 호흡만큼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전성기의 홍콩누아르를 보는 듯하다. 황제의 대리자인 라이시는 ‘범법자’인 이 부관을 처단해야 마땅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를 살려둔다. 경전을 싣고 가는 행렬이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만 그를 살려둔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내색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시는 이 부관을 동지로 느끼고 그와 운명을 함께하려 한다. 팽팽한 두 남자 사이의 긴장과 소통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은 채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스필버그 감독의 <레이더스>에서 착안한 것이 분명한 마지막 장면만 빼놓는다면, <천지영웅>은 남성의 로망을 한껏 품고 있는 괜찮은 캐릭터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막스의 산> <올빼미의 성> <바람의 검 신선조> 등을 통해 낯이 익은 나카이 기이치와 자신이 연출한 <귀신이 온다>에서 주연을 맡았던 장원의 연기가 돋보이며, <포타쌍등> <일광협곡> 등을 만들었으며 <열화전차> 등에 출연한 하평 감독의 연출력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열정과 애정>과 세 배우 [2]

원작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유쾌지수 영화는 원작소설에 비해 밝아지고, 다이내믹해졌다. 원작에는 브리짓의 연적 레베카가 마크의 부하직원이 아니라 브리짓의 친구로서, 미모와 재력을 갖춘데다 권모술수에 능한, 다소 사악한 훼방꾼으로 설정돼 있지만, 영화에서는 ‘유쾌지수’가 떨어질까 우려한 탓인지 어두운 그림자를 거둔 대신 신비의 베일과 반전의 키를 받았다. 원작에 비해 다니엘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 그냥 한번 스쳐가는 바람처럼 묘사됐던 다니엘은 영화에서는 브리짓의 일에 끼어들더니, 급기야 타이까지 함께 날아가고, 아찔한 유혹을 벌이기도 한다. “비중뿐 아니라 지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추가해, 평면적인 악한 신세는 면했다”는 것이 휴 그랜트의 전언이다. 그는 2편에서도 콜린 퍼스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육탄전을 펼친다. “브리짓과 결혼해라. 난 유부녀가 더 당기니까”라고 약을 올린 것이 사단이었다. 두 남자가 하이드 파크의 분수에서 드잡이를 벌이는 장면은 썩 볼 만하다. 전편에서처럼 속편의 가장 큰 미덕은 브리짓 존스, 아니 르네 젤위거다. 완전한 사랑의 환상에 젖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하고, 결국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 브리짓을, 르네 젤위거는 모습과 말과 표정만이 아닌, 몸의 연기로 보여준다. 애인에게 잘 보이려고 입은 타이트한 드레스 때문에 엉덩이를 내밀고 안짱걸음을 걷거나, 중요한 순간에 물벼락을 맞고 종종대는 건 망가지는 축에도 안 든다.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은 오스트리아의 스키장에서 위태로운 활강을 선보이고, ‘환각 버섯’에 취해 타이의 바닷가를 휘젓는가 하면, 여감방 동지들에게 <라이크 어 버진>의 가사와 율동을 가르치는 등 “제임스 본드가 된 브리짓 존스”라 부를 만큼 ‘국제적으로’ 다양한 (활약이 아니라) 사고를 친다. 샤론 맥과이어에게서 메가폰을 넘겨받은 비번 키드론(<투 웡 푸>)이 르네 젤위거를 가리켜 “버스터 키튼의 후예”이자 “영국 국보로 지정할 만한 배우”라고 칭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빼어난 원작과 흥행한 전편을 앞세운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은 넓은 무대와 다양한 에피소드, 크고 작은 반전을 배치해, 더 자주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되어 나타났다. 영화가 보여주는 연애의 후반전은 어둡고 무거운 리얼리티가 아니라 밝고 가벼운 판타지에 기대고 있는데, 더 많은 관객에게 더 살갑게 다가가기 위한 이런 시도는, 영국 개봉 주말 1천만파운드 돌파라는 기록을 올리며,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번 키드론 감독 인터뷰 “이 작업은 나에게 ‘긴 여행’과 같은 의미다” -흥행작의 속편에 연출로 합류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처음 프로듀서가 연출하겠냐고 물어왔을 때 그걸 뭘 묻냐고 했다. 지금 남편이 된 사람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거부할 이유가 있었겠나. 빼어난 코믹 캐릭터가 존재하고, 캐스팅도 환상적으로 돼 있고, 헬렌 필딩의 소설이라는 좋은 참고서가 있고, 이미 많은 것이 주어진 상태였다. 전편의 성공으로 겁이 나고 위축되기도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영화를 대하듯 접근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어떤 영화를 만들든 매번 그 자체가 ‘도전’이다. 물론 브리짓 존스는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영화였기 때문에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이 있긴 했다. -르네 젤위거는 이제 브리짓 존스 그 자체로 보인다. 겪어보니 어떻던가. =르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배우이고, 감정 표현이 뛰어나다. 와일드 카드 같은 존재라고 할까. 그녀는 표현력이 좋은 코미디언이다. 버스터 키튼 세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게 말의 코미디와 몸의 코미디가 모두 뛰어난 여배우를 찾기란 힘들다. 웬만한 스턴트는 직접 시도할 만한 강단도 있다. 르네는 자발적으로 브리짓이 됐다. 체중을 늘리고 영국 악센트를 익히는 준비도 철저히 했다. 관객이 브리짓과 맺고 있는 관계, 그 감정이 매우 중요한데, 르네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메타포가 됐다. -전편에 비해 현실감은 좀 덜하다. 영화의 톤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텐데. =타이장면의 톤은 사실 약간 좀 만들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관객이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이라는 이국적인 세팅은 원작소설에 있는 설정이다. 브리짓은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들을 겪는다. 물론 현실성이 많지는 않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코미디 콘텍스트다.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영화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닌 선에서, 약간의 하이 톤으로 정해야 했다. 중요한 건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의 감정을 적절히 드러내고, 그 유머와 감동을 관객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여성감독으로서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코미디를 만드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런 면이 있다. 남성감독들이 그려낸 여성 캐릭터는 좀 밋밋하고 어설퍼 보이지 않나. 이 작업은 나는 물론 르네에게도 헬렌 필딩에게도 ‘긴 여행’과 같은 의미다. 개인적으로 코미디와 드라마 다 좋아하지만, 관객에게 생기를 주고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코미디의 위력을 믿는 코미디 신봉자다.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평가절하돼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사실 남을 웃기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웃어주면 무척 기쁠 것 같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 열정과 애정>과 세 배우 [3] - 르네 젤위거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앙상할 정도로 마르고 작은 체구, 진갈색 단발머리에 심플한 검은 투피스를 차려입은 르네 젤위거가 방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가늘고 부드럽고, 꿈꾸는 듯 나른한,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인 것을 알았다. 웃을 때 초승달이 되는 눈, 말할 때 하트를 그리는 입술, 턱을 괴고 심각하게 듣는 표정 하나하나가 영락없는 브리짓이었지만, 가끔 ‘노’라고 외치며 눈이 서늘해지고 목소리가 칼칼해지는 ‘낯선’ 순간들이 있었다. 부스스한 금발 머리에, 볼살이 통통하고 뱃살이 출렁이는 귀여운 브리짓을 지우고, 촬영 중인 영화 <신데렐라 맨>의 캐릭터로 돌아온 르네 젤위거와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변신’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수시로 달라지는 당신 모습이 스스로 혼란스럽지 않은가. =아니, 거꾸로다. 내 모습이 달라지는 걸 볼 때 혼란이 오는 게 아니라 조바심이 난다. 작품을 위한, 역할을 위한 준비가 충분히 안 돼 있을까봐 그게 걱정이다. 그 역할로 보이고 느껴질 만큼 내 모습과 말투가 완전히 달라졌어야 하는데, 그게 아닐까봐 늘 걱정이 된다. -브리짓 존스는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지만, 속편 출연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길을 가다보면 ‘내가 브리짓 존스’라고 고백해오는 사람들이 많다. 또 ‘르네’가 아니라 ‘브리짓’이라고 불리는 일도 많다.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연기한 것 중에서 관객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간 역할이었던 것 같다. 속편 출연을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또 동일시하는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내 어머니의 애장 비디오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원하니까, 같은 역할이라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을 것이고, 그 자체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다시 살을 찌우고 뺐다. =배우로서 나는 맡은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야 한다. 완벽한 브리짓으로 보이도록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체중에 대한 질문에는 날씬한 체형이 더 아름답고 바람직하다는 함의가 있는 것 같아서 싫다. 솔직히 나는 살찐 모습이 더 마음에 드는데…. 체중 조절, 이건 수학이다. 영양사가 짜준 식단과 운동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게 다다. 개인적으로 나는 적어도 할리우드식 살빼기 경쟁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브리짓이 아닌 르네로서의 선택은 마크와 다니엘 중 누구인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나와 친구들의 경험을 되살려, 나쁜 남자를 식별하는 법을 터득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남녀 관계에서 중요한 건 진실된 마음이다. 유머 감각이 있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라면 좋을 것 같다.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는 아주 솔직하고 따뜻하고, 위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당신을 브리짓 존스와 동일시한다. 실제로 당신은 브리짓과 얼마나 닮아 있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와 브리짓은 많이 닮았다. 특히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높은 하이힐을 신고 레드 카펫 위를 걸어갈 때마다 ‘브리짓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브리짓이 그렇게 어설프고 황당한 실수만 저지르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런 실수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브리짓의 그런 성격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속으론 우리처럼 걱정이 많으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씩씩하게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전진해가는 모습 때문에 관객도 호응하는 게 아닐까. -2편에선 몸의 코미디가 늘었다. 어떤 경험이었나. =너무너무 즐겼다. 특히 2편에선 브리짓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몸을 많이 쓰는 것이 필수였다. 어리석기도 하고, 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내면을 형상화해야 하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상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너무 신났다. -2편에서 브리짓은 여행을 많이 다닌다. 실제 당신도 여행을 즐긴다고 알고 있다. =여행 다닐 때 언제나 공항에서 엑스트라 체크를 당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한다. 내가 브리짓처럼 커다란 속옷을 입는지 어쩌는지 알아보겠다는 태세다. 정말 민망하다. 그래서 요즘은 속옷만큼은 택배로 부친다. (웃음) 여행을 많이 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 주어진 특혜다. 세상엔 알고 느낄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부모님이 여행을 좋아하고 세상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내주셨다고 할까. 여행을 통해 내 인생관,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남들(후진국)이 우리보다 덜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자만이라는 것도 알았다. -당신은 전형적인 금발 미인 스타일이지만, 수수하고 편안한 이미지다. 변신을 고려하고 있나. =내 이미지를 조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무비스타라는 사실에 적응이 안 된다. 맙소사, 내가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관심이 정당화될 수가 있다니. 하지만 연기는 다르다. 연기할 때 나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내 이미지도 배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4 한국영화가 찍지 못한 장면들 [2]

<인형사>배우 부상 때문에 달라진 결말 <인형사>는 극장판과 DVD판(대여용이 아니라 판매용에 한해서) 결말이 다르게 됐다. 대역없는 격투신에서 발생한 배우의 부상 때문이다. 부상을 입은 이는 미술관 관장(천호진)에게 붙들려 있던 중년 남자 역의 남명렬. 시나리오대로라면 그는 인형조각가 해미(김유미)와 미술관을 탈출하다가 분노한 인형들의 공격을 맞아 격한 몸싸움을 벌인 뒤 극적으로 탈출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쇄골이 부러진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인형들의 공격과 이에 맞서는 마지막 싸움을 찍을 수 없게 됐다. 자리를 뛰쳐나온 인형들 무리에 밀려 뒷걸음질치다 건물 밖으로 밀려나는 설정으로 대체했으나 썩 만족스럽지 못했고, 이 대체장면까지도 포기하면서 미리 찍어놓은 결말장면들을 한꺼번에 들어내게 된 것이 제작진의 안타까운 속사정이다. 정용기 l 원래는 그렇게 격한 싸움 끝에 빠져나와서 김유미와 함께 인형을 찾아 없애야 하는데 탈출장면부터 어긋났으니 뒷부분을 다 날리고 다른 결말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거다. 쇄골은 금방 붙는 뼈라고 하더라. 하지만 그게 프로덕션 말미에 잡힌 스케줄이었고 개봉 날짜도 임박해 있었기 때문에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장면이 엎어지는 바람에 극장판은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어딘가 어설픈 엔딩이 됐다. 대신 DVD 본편은 격투신을 대체한 탈출장면과 그 이후에 맞는 원래의 버전을 새로 편집해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믹싱도 새로 했고, 러닝타임은 극장판보다 4분 더 길게 나왔다. <거미숲>겨울 꼬마배우가 하늘로 솟기엔 와이어가 무섭지? 거미숲에 얽힌 소년, 소녀의 이야기에서 죽은 소녀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하늘로 올라가는 판타지 장면이 있다. 송일곤 감독은 이 장면을 준비하면서 소녀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소녀가 떠오를 때 아주 높이 올려 숲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익스트림 롱숏으로 촬영해 소녀가 거대한 숲의 바깥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보여주려 했고, 소녀의 시점에서 숲 위로 떠오르는 장면도 찍으려 했다. 하지만 때는 겨울이었고, 장소는 어둠이 깃든 숲이었으며, 와이어에 매달릴 배우는 아이였다. 와이어의 기술적 한계, 아이라는 위험부담, CG를 쓰는 한계 등이 겹쳐 실제로는 4m만 올려서 찍었다. 송일곤 l 소년의 판타지였는데 좀더 비현실적이고 좀더 만화적이며 아름답고 서정적인 큰 화면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실제의 숲이란 공간을, 그것도 밤의 숲을 조명으로 치기가 쉽지 않았다. 거대한 숲을 조명으로 다 비춘다는 건 결국 예산과 시간의 문제였다. 결과물은 어색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또 터널신에서 감우성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도 강하게 높이 튕겨올라갔다가 ‘쿵’ 하고 세게 떨어지는 느낌을 한컷으로 주려고 했다. 와이어 액션과 CG를 섞어 한컷으로 가긴 했으나 애초 생각보다 100분의 1 정도를 해낸 것 같다. 사운드로 효과를 보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것도 예산과 기술의 문제였다. 애초 CG팀에서 가능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런지의 여부를 나도 잘 몰랐고, 다른 방법으로 준비도 못했다. <쓰리, 몬스터>임원희를 사티로스로 분장시키는데만 1천만원 임원희가 엑스트라 시절을 이병헌에게 회상시켜주는 시퀀스에서 물안경 쓰고 오리발 끼고 버둥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애초 구상은 그리스 신화의 이미지를 따오는 것이었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염소인 사티로스를 특수분장으로 제작해서 뒤집어쓰고 기괴한 캐릭터의 연기를 시키는 게 원안이었다. 뜻밖에도 제작에 필요한 예산과 시간문제가 지나치게 컸다. 제작비만 1천만원이 넘었고, 인형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모형을 만드는 데 기술적으로도 부담스러워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었다. 염정아에게 피빨리는 노인 마네킹은, 사람이라서 그나마 수월했다. 이만큼의 비용으로 제작을 했지만 사티로스는 결국 포기했다. 박찬욱 l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건 영화감독 이병헌이 어떤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원희의 엑스트라 캐릭터들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로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도록. 그게 선명하게 잡히면 아무래도 모델이 된 영화감독을 짐작하게 되고 논란이 될 것 같았다. 웃기는 건,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약간 다르기는 해도 사람 얼굴에 짐승의 몸을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각본에 넣었는데 이것 역시 비용과 기술 면에서 자신이 없다고 해서 못할 것 같다. 제작비 부담이 없다면 테스트를 여러 번 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할 수도 있겠으나 감독은 영화 전체에서의 비중과 가격대 성능을 비교해야 하니까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린다. 나로서는 장난기 있고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은 건데 영화 전체를 위해 포기하는 거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성실성이 부족해서 대충 넘어간 장면이 뜻대로 안 나오는 건 굉장히 아쉽지만 돈문제 때문에 찍지 못한 건 그렇게까지 안타깝지는 않다. <범죄의 재구성>카체이싱 헬기에서 찍으려니 장비도 경험도 없네 최창혁(박신양)과 경찰간의 자동차 추격신은, 헬기로 찍을 수도 있었다. 차가 폭발하면서 최창혁이 스스로를 사고사로 위장하는 이 장면은 애초 터널이 아니라 공장지대에서 찍을 계획이기도 했다. 자동차 추격 및 폭발신을 부감으로 잡기에는 공장지대 주변에 적당한 고층 건물이 없어 부산영상위쪽에 헬기 동원을 요청했다. 부산에서 많은 분량을 촬영한 제작진한테 영상위는 그러마고 했다. 곧, 공장쪽과는 이야기가 어긋나고 도와주겠다던 부산영상위쪽이 헬기 동원 협조건을 난감해했다. 하긴, 헬기를 탄다고 바로 촬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카메라의 흔들림을 방지하는 마운트 등 마련해야 할 부수적인 장비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자동차 추격신은 대전의 한 터널에서 벌어졌고, 부감은 14층 건물 옥상에서 잡았다. 아울러 카메라 3대가 터널 주변에 배치됐다. 최동훈 l 원래 우리나라 영화들이 자동차 추격장면을 잘 못 찍는다.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좀 멋있게 찍어보고 싶었는데, 헬기에서 스파이캠으로 찍었을 때 화면이 어떻게 나올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찍었다. 지금 생각엔 헬기를 동원했으면 영화를 더 못 찍었을 거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식하게 수작업하는 게 제일 좋다. (웃음) 이석원 프로듀서랑 상의해서, 헬기가 안 된다면 거기에 드는 예산을 다른 데 쓰겠다고 했다. 덕분에 모빌 캠 같은 장비는 원없이 쓸 수 있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사대문 안 항공촬영 금지법이란 게 있네요 봉인에서 풀려난 절대악 흑운(정두홍)이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숨은 칠선의 기운을 감지하는 순간. 빌딩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흑운의 모습을 지미집(무인 조종 크레인)을 이용해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원래 항공에서 헬기를 통해 찍으려 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는가. 서울의 사대문 안 항공촬영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남한 영토는 아직 전시상황, 보안 위협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다고 고궁과 빌딩 숲이 섞여 있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이 장면을, 사대문 밖에서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제작진은 이 땅의 통일을 기원하면서 애초의 아이디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찍지 못한 장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주저없이 이 장면을 꼽은 이춘영 PD의 반응에서, 감독 이하 제작진이 느꼈을 나름의 허탈감이 느껴진다. 류승완 | 도시무협이라는 컨셉 때문에 도시 이미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 가급적이면 도시전경을 보여줄 수 있는 숏을 많이 배치하려고 했고, 그래서 옥상 위에서 촬영도 많이 했다. 항공촬영은 좀더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법률적인 이유로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찍어놓고 보니 현재의 결과가 더 만족스럽다. 아마 항공촬영을 했다면 많이 흔들리고 불안정했을 텐데, 지미집을 이용해서 말끔하게 끝난 것 같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결국 사대문 안 항공촬영을 했다고 하더라.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2004 한국영화가 찍지 못한 장면들 [3]

<우리형> 장치적 캐릭터는 장치일 뿐… 조용히 사라진 성현과 미령과의 재회 정회석 프로듀서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미령(이보영) 캐릭터가 갑작스레 없어진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고, 상황상 찍지 못한 장면을 별 고민없이 꼽았다. 영화는 성현(신하균)과 종현(원빈)이 고등학교 때 함께 연모했던 여학생 미령의 이야기를 둘의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더이상 담지 않지만, 미령인 그후 아마추어 연극배우와 내레이터 모델을 겸하며 살고 있었다. 대학생이 된 성현이 학교 앞에서 우연히 미령을 만나고, 미령이 연극표를 건네주며 “공연 한번 보러오렴” 하며 인사한다. 이 장면을 찍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후반부에 해결해야 될 두 형제의 갈등이 극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부산대를 섭외하고 촬영일정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찍을 때가 되니 배우 스케줄이 어긋나고 그래서 미루고나니 장마가 찾아왔다. 안권태 l 미령은 이 영화에 잘 맞는 캐릭터이지만 또 전형적인 장치적 캐릭터라 분량을 늘려도 스토리상 유기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겠다는 판단이 됐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고등학교 시절에서 결론을 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그 문제를 두고 프로듀서와 황기석 촬영감독과 끝까지 상의했다. 개인적으로 또 아쉬운 건, 성현과 종현이의 아역 분량이다. 고등학교 시절과 성인 시절을 다 찍고 나서 아역 분량을 찍었는데 이미 그때의 스케줄과 러닝타임과 예산만으로는 시나리오대로 다 찍으면 상당히 오버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종현의 관찰자적 시점 내레이션으로 상당 부분 밀고 가버렸다. 아역 시절을 더 찍을 것인가도, 보충촬영하는 날까지 굉장히 고민했던 부분이다. <인어공주> 물속에서 동화책 읽기, 촬영팀에 뇌졸중 경고 또 하나의 엔딩신이 있었다. 섬마을의 우체국 직원 진국(박해일)과 스무살의 해녀 연순(전도연)이 물속에서 동화책 <인어공주>를 함께 읽는 모습. 엄마 연순의 첫사랑 시절을 딸 나영이 시간여행하듯 되돌아가 지켜본다는 판타지를 담은 이 영화가 생각해둔 또 다른 엔딩신이었다. 마지막 촬영지인 필리핀 세부에서 찍기로 했다. 일정은 전도연이 다른 해녀들과 물질하는 장면 뒤로 잡았다. 그러나 계획한 엔딩신을 찍기도 전에 애초 체류예정기간인 나흘에서 하루가 더 흘러가버렸다. 물속에서 하루 10시간씩, 산소통을 하루 다섯개씩 소비한 수중촬영팀의 몸은 이상징후가 나타날 태세였다. 산소통을 기준치 이상 마시면 혈관 속에 기포가 생겨 뇌졸중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 전문가가 수중촬영팀에 3일 휴식을 권했다. 체류비용이 1일 500만원이니까 엔딩 촬영일 하루를 더하면 추가되는 예산이… 2천만원.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 믿고, 크랭크업을 외쳤다. 박흥식 l 진국이 연순에게 글을 가르쳐주며 사랑을 키워간 모습을 연순의 기억으로 상징화하고 싶었다. 둘이 공부하는 장면을 바닷속에서 표현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수중촬영팀이 쉬어야 할 상황이 됐고, 하루만 쉬고 다음날 촬영하려니 서울 가는 비행기가 없다 그러더라. 그래서 나흘 정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에 대한 아쉬움은 현장에서만 있었다. 영화에 안 들어가서 아쉬운 건 없다. 막상 들어갔으면 닭살 돋고 그랬을 거다. 그런 거지, 뭐. 애초에 예정된 걸 현장에서 못 찍으면 뭔가 빼먹은 것 같고 이빨 한두개 빠진 것 같고 그런 아쉬움.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촬영장은 예측불허, 상량식 장면 스케쥴 문제로 하루 전 포기 건축가가 된 철수(정우성)가 언덕 위에 짓던 집말고 또 하나 건물을 짓는 게 있었다. 지반 공사부터 시작해 1층, 2층, 3층 등 차례로 건축물이 완성돼가는 장면. 빌딩이 쌓아올려지면서 시간의 압축과 철수가 건축가로 발전하는 모습을 다이내믹하고 멋지게 보여주는 설정이었다. 직접 다 지으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 CG로 합성하기 위해 소스 촬영도 했고, 철물 골조를 다 올린 뒤 상량식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스케줄까지 잡아놓고는 촬영을 접었다. 원하는 퀄리티를 얻기 위해선 다른 스케줄과의 조정 등 몇 가지 문제가 생긴 터였다. 김상민 프로듀서는 “상량식 장면은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큰 그림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감독님의 의욕이 대단했지만 타협을 잘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한 l 시간을 계산하면 2년 정도의 흐름이 있다. 그 시간을 압축하는 요소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장면을 인상적으로 찍고 싶었다. 사실 찍다보니 너무 지치기도 했고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포기하게 됐다. 다른 장면들이 어느 정도 시간의 흐름은 보여주긴 하지만 좀더 비주얼적인 영화 장치들을 가져가지 못해 아쉽다. 찍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게 또 있는데, 촬영 전날 접은 장면이다. 수진(손예진)이 오줌을 싸는 등 알츠하이머병이 심해지면서 철수를 옛 연인 영민으로 잘못 알아보는 대목에서 성적으로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장면이 있었다. 수진이 철수더러 “영민씨, 영민씨” 하면서. 그래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강하게 던지는 장면이다. 그 다음날 “영민씨, 사랑해” 하는 장면으로 충분할 것 같아서 촬영을 안 했는데 넣었더라면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누가 빼자고 한 건 아닌데 지금도 잘한 건지 판단이 잘 안 된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바람이 된 명우’ 찍으려면 외국에서 장비 구해와야 일명 ‘빤스남 거리’. 경찰인 경진(전지현)이 여관에서 마약하던 이들을 검거하는 장면이었다. 경진이 도주하는 빤스남을 추격하는데 바람으로 존재하는 명우(장혁)가 경진을 따라다니며 도와주는 장면. 이 추격전에서 알 수 없는 뭔가가, 즉 바람이 경진을 앞질러가서 빤스남을 ‘자빠뜨리는’ 상황이었다. 전지현을 앞질러가는 바람을 찍는데 자동차에 카메라를 싣고 촬영하는 등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효과와 느낌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부산 시내 한복판에서 진행된 현장은 전지현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로 아수라장이 됐고, 급기야 간질을 앓고 있던 엑스트라가 한바탕 ‘일’을 치르는 상황까지 겹쳐 촬영은 중단됐다. 육상경주 중계방송 등에 쓰는 케이블캠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곽재용 l 촬영 전부터 케이블캠을 알아봤는데 국내에선 그걸 다루는 이들이 없었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봤으나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중요한 건 바람의 시점으로 경진을 추월하고 도와주는 장면을 찍고 싶었다. 다른 몇몇 장면에서 바람의 시점이 있긴 했으나 이 장면에서 강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한두달 촬영이 지연되고 외국에서 장비를 들여오면 찍을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곤란했다. 프리프로덕션이 충분하면 다른 방식으로 고쳐보는 게 가능할 텐데, 결국 프리프로덕션의 문제였다. <주홍글씨> 마운트 장비 없어 막판에 무산된 헬기 촬영 헬기 두대를 띄워 아래쪽에 있는 헬기의 프로펠러가 회전하는 걸 슬로모션으로 찍는다. 그 헬기가 천천히 빠지면 화면이 쭉 자동차까지 내려간다. 기훈(한석규)과 가희(이은주)가 한적한 강가의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있다가 구출되는 장면은 이렇게 공중 시점에서 역동적으로 잡아낼 계획이었다. 헬기 대여와 공중촬영 허가까지는 어렵사리 받아냈으나(로케이션 장소가 환경보호구역이었다) 카메라를 헬기에 부착하는 마운트 장비가 없었다. 외국에서 임시로 들여와 부착하더라도 헬기와 무선으로 연락하면서 앵글을 잡아 ‘합’을 맞추는 데만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강민규 프로듀서가 첫 번째로 꼽은 아쉬운 장면이었으나 감독은 다른 장면을 더 아쉬워했다. 한석규가 성현아를 그룹섹스의 느낌으로 바라보게 되는 환상장면이 있었다. 사진관 천장에 달린 조각을 올려다보는데 그것이 갑자기 움직이고 어느 순간 그것이 성현아가 되고 정사하는 움직임이 되며 자기도 끼어드는 듯한 판타지. 남자 무용수 4명과 성현아가 한달 가까이 안무 연습을 했고 CG를 위한 소스촬영도 했는데 끝내 포기해야 했다. 변혁 l 국내에서 항공촬영이 얼마나 경험이 없고 열악한지를 경험했다. 항공촬영이 잘 나온 건 <번지점프를 하다> 같은 극소수의 작품인데 그나마 외국에서 찍어온 것이다. 한석규가 등장하는 긴 자동차 도로신도 항공으로 근접촬영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기술적인 난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지형 자체가 이런 촬영을 허용하지 않더라. 판타지 장면도 결국은 기술적인 문제였다. 환상의 느낌이 너무 강해서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 비해 너무 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CG를 쓰더라도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