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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주드 로의 팬에게 바치는 꽃다발 같은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

의 찰스 샤이어 감독은 을 연출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과 오랜 창작 파트너이자 부부였다. 마이어스의 코미디가 연애심리를 파고드는 여성지 편집자의 감각을 드러낸다면 공교롭게도 는 세련된 미녀와 고급 장신구의 이미지가 교대로 즐비한 남성 패션지의 한 섹션을 연상시킨다. 처음부터 입고 태어난 듯 구찌 슈트와 프라다 구두가 어울리는 알피 앨킨즈(주드 로)는 뉴욕의 바람둥이. 그의 직업은 ‘엘레강스’라는 간판을 단 리무진 렌터카 회사의 운전기사다. 시종처럼 벌어 왕자처럼 사는 알피에겐 맞춤한 직장이다. 알피는 유혹과 발뺌의 곡예를 반복하며 독신모 줄리(마리사 토메이), 권태로운 주부 도리, 단짝 친구의 애인 로넷(니아 롱), 정서가 불안한 니키(시에나 밀러), 화장품 재벌 리즈(수잔 서랜던)의 품을 전전한다. 그가 관계를 팽개칠 때마다 피해자는 여자들인 듯 보이지만, 기실 망가지는 쪽은 알피다. 원전인 1966년작 의 마이클 케인이 그랬듯, 주드 로는 영화 내내 관객을 향해 ‘늑대의 본심’을 귀띔한다. 주연의 해설이 주의를 독점하는데다가 카메라도 줄곧 주드 로의 얼굴에 몰두하는 탓에 의 영화적 공간은 평균보다 깊이감이 얕다. 반면 그간 조연에 치중해 변변한 클로즈업도 많지 않았던 주드 로의 팬에게, 모든 앵글을 섭렵하며 면도 자국의 매력까지 포착한 는 꽃다발 같은 영화다. 오리지널 에서 많은 캐릭터와 장면을 본뜬 점을 고려하면, 는 이상하리만큼 원전과 동떨어진 리메이크다. 케인이 분한 런던 뒷골목의 여성혐오주의자 알피는 자기가 뒤틀려 있음을 모르는 악하고 약한 남자였다. 그는 여자들을 통해 페미니즘, 성 혁명, 낙태 등 당대의 뜨거운 이슈와 마찰을 빚는다. 멸종을 앞둔 들짐승 같은 인물 알피는 진짜 나쁜 남자였고 진짜 갈등을 낳았다. 그러나 38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구문으로 만들었다. 2004년 뉴욕의 알피는 책임을 꺼리는 숱한 도시 독신남의 일원으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현대 플레이보이의 초상이라면 딜란 키드의 2002년작 (Roger Dodger)가 훨씬 생생했다. 이쯤 되면 리메이크의 정당성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2005 할리우드 빅 프로젝트 [4] - <킹콩> 외 8편

거대한 고릴라, 부활하다, 피터 잭슨 감독이 벼르고 별렀던 꿈의 프로젝트. 을 함께 쓴 피터 잭슨과 프랜 왈시, 필리파 보옌 팀이 이번에도 호흡을 맞췄다. 제시카 랭 주연의 1976년판을 참조하지만 피터 잭슨의 목표는 1933년판에 최대한 충실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아홉살 나이에 흑백의 1933년판 킹콩 영화에 빠져든 이후 그는 이 영화가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만들었노라고 말했다. 역시 193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은 거대한 고릴라의 전설을 조사하러 탐험대와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수마트라섬 근처의 해골섬으로 떠나는 모험담이다. 수백만년 동안 숨어 있던 킹콩과 공룡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탐험대는 위협에 직면한다. 1억1천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촬영 중이다. 에 나온 것을 빼면 액션영화가 처음인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비행사 잭 드리스콜을 맡은 게 이채롭다. what's GOOD: 웨타가 만든 킹콩과 뉴욕 세트의 놀라움. what's BAD: 공룡에 비해 설명이 부족한 킹콩의 가족사. 반지와 중간계를 넘어서라, 언니 오빠로부터 따돌림당하던 루시가, 어두컴컴한 옷장 속에서 지도에도 없는 나라 나니아와 연결된 통로를 발견한 지 50여년. 는 이후,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줄지어 영화화되고 있는 판타지 소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프로젝트다. 평범한 네 남매, 나니아 왕국을 창조한 용맹스런 사자 아슬란, 나니아에 100년 동안 계속되는 겨울을 만든 사악한 하얀 마녀, 그리고 총 23종에 달하는 낯선 종족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아무래도 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뉴질랜드 출신 앤드루 애덤스()가 연출하고, 주된 촬영은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졌다. 심지어 애덤스 감독은 이 영화와 관련하여 피터 잭슨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what's GOOD: 중간계를 완벽하게 재현한 웨타가 특수효과를 담당한다면, 까다로운 원작의 팬들도 만족하지 않을까. what's BAD: 제작사는 의 나머지 6편의 영화화를 준비하며 의 뒤를 잇기 위한 투지를 불태우는 중. 그러나 모든 것은 첫 영화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 최고의 찰흙콤비가 돌아왔다,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실사의 액션물보다 더 속도감 넘칠 수 있고, 실사의 스릴러보다 더 짜릿한 쾌감을 줄 수 있을까.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발명가 월레스와 전자공학에 능하고 철학과 문학서적을 즐기는 똑똑한 개 그로밋이 세편의 단편에서 그 이상을 보여준 바 있다. 그것도 무려 10년 전에. 영국 아드만프로덕션의 닉 파크는 에서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과 장르의 재미, 무엇보다 매력만점의 캐릭터를 선사했다. 아드만과 드림웍스가 손잡고 만든 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으니 월레스와 그로밋을 그냥 놔둘 리 없다. 로봇 개와 전투를 벌이고 사악한 펭귄의 음모에 정면 대결을 벌였던 월레스와 그로밋이 ‘채식주의자 호러영화’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예정. 월레스가 꿈에 그리던 ‘고객’을 만나 이상한 사건을 해결해야 할 처지에 빠진다. 아름답고 부자이면서 미혼인 숙녀 토팅튼이 매년 주최하는 야채 키우기 경연 대회가 토끼 괴물의 출현으로 위기에 빠진 것. 설상가상 토팅튼의 부와 미모를 차지하는 동시에 영웅이 되고자 하는 구혼자 빅터가 나타나 사태는 더 꼬여간다. what's GOOD: 인간 월레스보다 사랑스러운 개 그로밋이 펼칠 대단한 활약. what's BAD: 과 의 플롯과 악한 캐릭터가 장편용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겠지. 팀 버튼의 알록달록 스펙터클, 팀 버튼 감독이 로알드 달의 책을 영화로 만든다니! 초콜릿과 크림치즈에 필적하는 달콤한 궁합이라고 환대받은 프로젝트다. 32개 국어로 출판되어 1370만권이 팔린 로알드 달의 책 은 졸아붙은 위장을 자극하는 판타지. 일년에 딱 한번 생일에만 초콜릿을 먹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 찰리 버켓의 집은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 윌리 웡카의 공장 이웃에 있다. 경품 투어에 기적처럼 당첨된 찰리는 알려지지 않은 목적을 숨긴 윌리 웡카 공장 견학에 다른 네명의 아이들과 함께 초대되어 잊지 못할 모험을 맛본다. 찰리 역의 하이모어는 에서 그의 연기에 감명받은 조니 뎁이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에는 54만달러짜리 카메라 렌즈가 합성 초콜릿 통에 빠지는 바람에 촬영이 지연되는 웃지 못할 재난도 있었다. 영화에 기초한 게임을 개봉과 거의 동시에 출시한다는 계획이 있어, 공장의 방마다 색다른 스릴과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구조를 상상하게 만든다. what's GOOD: 로알드 달과 팀 버튼에 조니 뎁까지! 천국에서 중매를 선 연분이란 이런 것. what's BAD: 무엇을 기대하든, 기대한 것만 보게 되지 않을까. 엽기적 동화의 기원을 찾아서, 그림 형제를 영화화하는 데 테리 길리엄만큼 어울리는 감독이 있을까. 우리에겐 ‘아동용 버전’으로만 알려졌던 등 그림 형제의 동화가 사실은 잔혹하고 엽기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면 말이다. 사실, 는 이들 형제 작가의 실제 삶은 아주 조금밖에 반영하지 않은 길리엄표 영화다. 영화 속 그림 형제는 마을과 마을을 떠돌며 퇴마사 노릇을 하는 사기꾼이다. 이들은 마을의 민화와 전설을 수집하면서 이 안에 깃든 악마를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명성이 나폴레옹 정부의 귀에 들어가면서 그림 형제는 진짜 악마와 맞서야 할 처지가 된다. 애초 2004년 여름으로 예정됐던 이 영화의 개봉은 2004년 11월로 밀렸다가 다시 2005년 11월로 연기되는 불운을 겪었다. 잇단 연기의 진짜 이유가 나쁜 모니터 시사 반응 때문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으로 보아, 아직 돈키호테의 저주는 길리엄 주변을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what's GOOD: 와 의 놀라운 비주얼 감각이 기대되지 않는가. what's BAD: 의 좌절과 잇단 개봉연기 소식이 불안감을 자아낸다. 스필버그가 만든 화성인은 어떤 모습일까,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H. G. 웰스의 소설에 별로 귀가 솔깃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톰 크루즈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손을 잡은 제작비만 무려 2억달러(의 1억8400만달러 기록을 넘은 역대 최고)의 엔 누구라도 기대감을 표시하지 않을까. 이미 두 사람의 합작인 를 봤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뉴저지 일대와 뉴욕에서 촬영했고 전쟁 스펙터클은 캘리포니아에서 먼저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배경이 아니라 웰스 시대인 19세기 말의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이라는 설이 분분했지만 공개된 트레일러는 현대가 배경이다. 1898년에 나온 소설은 오슨 웰스가 1938년 라디오 방송극으로 만들어 실제 화성인이 침공한 줄 알고 청취자들이 난리법석을 떤 이래로 만화, 영화, TV물로 만들어지며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 what's GOOD: 호사가들은 의 흥행신화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수군대고 있다. what's BAD: 다른 블록버스터의 제작기간(2년)에 비해 너무 짧은 제작기간. 화려하게 재현될 오리엔탈의 추억, 를 통해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롭 마셜이 2003년 말, 스티븐 스필버그, 스파이크 존즈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거쳐간 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1997년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아서 골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가 마셜의 전작과 공유하는 것은 가무(歌舞)의 세계가 화려한 비주얼로 그려질 것이라는 예상 정도다. 원작은 아홉살에 게이샤로 팔려간 바닷가 마을 출신 사유리가 금지된 사랑과 전쟁을 겪으면서 진정한 독립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작을 맡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소설을 일컬어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고 극찬한 바 있다. 과연, 공개된 몇장의 사진에는 흩날리는 벚꽃과 전통적인 치장을 한 게이샤들, 1920년대 일본을 그대로 재현한 세트 등, 매력적인 이국(異國)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장쯔이와 와타나베 겐을 비롯한 아시아 출신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What’s GOOD: . 작년 한 해, 일본문화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재미를 본 할리우드 개봉작 리스트. What’s BAD: 완전한 서구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본. 그리고 게이샤. 일본인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형적인 영웅의 비전형적 액션대작, 부터 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대작으로 톡톡한 재미를 본 리들리 스콧 감독. 노련한 거장은 장엄한 역사극과 리얼한 전쟁신이라는, 두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을 적절히 섞은 으로 다시 한번 아카데미에 도전장을 낼 셈이다. 최근 공개된 트레일러는 대규모의 매혹적인 액션으로 가득하지만, 1억3천만달러의 제작비로 완성된 대작의 내러티브는 ‘얼핏’ 평범하기만 하다. 초라한 신분의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이 훌륭한 스승의 도움으로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성지를 지켜낸다는 전형적인 영웅담, 그리고 젊은 영웅과 아름다운 공주(에바 그린)의 로맨스가 곁들여진 이 영화가 말 그대로 화제작이 된 것은, 스콧 감독이 선택한 시대적 배경 때문. 을 통해 한 차례의 정치적 의심을 극한의 사실주의로 극복했던 그가, 십자군 전쟁의 실제 영웅을 주인공으로 택하는 용기(!)를 발휘했다(사실 십자군 전쟁은, 그간 숱한 할리우드의 감독들이 눈독을 들였던 소재). What’s GOOD: 거부할 수 없는 스타일리스트 리들리 스콧. 로 부활시킨 액션서사의 전통을 스스로 심화시키겠다는 그의 야심! What’s BAD: 이라크전쟁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지금, 십자군 전쟁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

느리고 조용하게, 그러나 멋지게!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소지섭

‘미사 폐인’을 낳은 (이하 )는 감정증폭기 같은 드라마다. 사랑이 남긴 상처들로 만신창이가 됐어도 또 다른 사랑을 붙들고 싶은 무혁(소지섭), 남을 배려하고 주위에 마음쓰느라 자기 사랑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은채(임수정), 사랑이 사랑인 줄 몰랐던 순수한 철부지이자 톱가수 최윤(정경호), 사랑을 불신하지만 사랑의 순간은 알고 있는 민주(서지영). 그리고 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모성애보다 인간적인 나약함이 앞서는 여배우 오들희(이혜영). 다른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자식이 있고, 빈부 차이가 있고, 특별한 부류와 평범한 부류가 나뉘어 있지만 거기엔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관습처럼 끌어들이는 피상적인 계급 관계나 억지스런 선악구도가 없다. 그 때문에 사랑과 증오, 복수라는 익숙한 테마도 살아 있는 감정 그 자체로 존재한다.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안 아들이 친엄마에게 복수하려고 한다라는 애초의 설정만 빼고 나면 는 상황의 확장보다 상황이 남긴 감정의 여파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굴곡진 사건의 플롯이 아니라 요동치는 감정의 플롯을 짜나가는 드라마다. 이 감정증폭기에서 소지섭이 터져나왔다. 머릿속 숨골 부근에 총알이 박혀 있어 근미래의 죽음을 선고받은 차무혁은, 그 총알이 혈관을 누르는 탓에 때때로 몹시 난폭해져도 본래 따뜻하고 순한 사람이다. “누구라도 탐났을 것”이라는 무혁의 캐릭터에 겹쳐진 소지섭은 그의 타고난 이미지만 갖고도 별 아쉬운 여백을 남기지 않는다. 고분고분하게만은 생기지 않은 표정의 그늘, 까끌까끌한데 순하게 들리는 작은 목소리, 활짝 웃어도 아래로 처지는 우울한 입꼬리. 이런 인상은 소지섭이 이제껏 맡아온 캐릭터들 가운데 의 차무혁과 가장 잘 어울린다. 스물아홉의 나이, 데뷔 10년이 쌓은 연기력 덕분에 둘 사이의 궁합은 안정감도 얻었다. “는 시작할 때 주위에서 주는 부담이 컸어요. PD님도 그렇고 작가님도 그렇고 니가 잘해야 드라마가 산다, 계속 그러셨거든요. 같은 경우는 지원이도 있고 인성이도 있으니까 부담을 1/3로 쪼갤 수가 있잖아요. 근데 이건 임수정씨도 드라마 처음이지, 경호는 신인이지, 서지영씨도 그렇고. 부담의 화살이 나한테 많이 오더라고요.” 어느 누가 무엇을 선택할 때도 다 그렇겠지만 그 역시 가 이 정도까지 반응을 얻을 거라 생각하고 고른 것은 아니라 했다. “설정이 좋았어요. 머리에 총맞고 살아가는 거잖아요. 무엇보다 ‘기업드라마’가 아니고. 무슨 M&A 나오고 하는. 그런 거 진짜 싫거든요.” 그는 요점 분명한 대답을 빠르고 짤막하게 내놓았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저벅저벅 스튜디오에 들어설 것 같았던 소지섭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슥 다가와 서글하게 인사를 건네는 온순한 사람이면서, 잡다한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 단순하고 굵은 기질도 가졌다. 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칭찬도 “현장이 편해져서 그랬을 거예요” 정도로 얘기하고 넘어갔다. 영화 (2002) 한편을 빼면 줄곧 드라마만 해온 그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못견뎌하는 드라마 촬영현장의 타이트한 시스템이 몸에 익숙하다고 했다. “영화는 조명 하나 세팅하는 데도 두세 시간씩 걸리잖아요. 촬영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빠져요. 드라마는 10분이면 하거든요. 그러니까 연기도 기교로 하는 거죠. 감정을 잡는 건 그 다음에 몸이 따라주는 거고. 옛날엔 힘들었는데 이젠 완전히 적응한 거 같아요.” 사실 그는 서른살이 지나고 나면 영화를 하려고 했다. 수식어없이 요점만으로 대답을 채우는 것처럼, 이왕 할 거라면 스크린도 꽉 채우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저는 영화에서 지금 젊은 배우들을 보면 화면이 꽉 차 보이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왠지 비어 보이고. 그런 게 싫어서 저는 더 배우고 나서 하고 싶었어요. 때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민망해서. 거기 나온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이후 드라마 시놉시스와 함께 영화 시나리오들이 밀려오고 있지만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드라마보다 영화의 부담이 몇 배 크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배우로서의 삶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다. 언젠가 그만두고 싶어서다. 2년 전 그가 첫 영화를 선택했던 배경에는 전 매니저와 관련된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모델을 하게 된 까닭은 그의 친구가 “나랑 같이 내보자”며 건네준 원서로 의류 브랜드 모델 공모에, 친구는 떨어지고, 덜컥 붙어서였다. 또 그전까지 10년간 수영을 했던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몸 약한 아들에게 운동을 시키면 밥이라도 좀 잘 먹지 않을까 싶었던 엄마에게 등을 떠밀린 탓이었다. “근데 (대회에) 나가자마자 입상하는 바람에 그뒤로 쭉 하게 됐어요.” 지난 삶을 타의에 이끌려온 것 같은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자기 의지와 노력과 결실이 있겠지만, 소지섭은 무의식중에라도 자신에게 공(功)이 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의식적인 절제인지 타고난 겸손함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게 몹시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란 점이다. 인터뷰 녹음이 싫고, 사진 찍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꺼리고,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열댓명이 안 되고, 운동은 혼자 할 수 있는 종목이 좋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감독에게 술을 따르는 게 싫어 그만둘까도 했었고, 인터뷰에 대한 심한 거부감으로 기자와 싸우고 그냥 자리를 떠버린 적도 있었다는 건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다. 아마도 20년쯤 흐르고 나면, 소지섭은 라스베이거스에 근사한 호텔을 지어놓고 경영자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제 진짜 꿈이에요. 다른 데서도 얘기한 거지만 저는 연기자를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인정받고 싶은 거 같아요.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니면 피하는 거 같잖아요, 괜히. 잘 안 되니까 그만두는 거 같고. 이왕 떠나려면 멋있게 떠나야죠.” 의 무혁이가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곧 죽는다는 건 알겠는데, 걸핏하면 코피 쏟고 아무 데서나 푹푹 쓰러지는 건 솔직히 너무 쪽팔려.” 손쓸 도리가 없다는 의사 앞에서 무혁이는 그렇게 소릴 질렀다. “그러니까 제발 코피 쏟고 쓰러지고 그런 것만 안 하게 해줘! 쪽팔리지 않고 끝까지 멋있게 보이다가 죽게 해달란 말야!”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이 시작됐다. 소지섭의 몸은 움직임이 정말 느리고 작았다. 내성적인 성격이 한눈에 보일 만큼. 그러다 가끔씩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목을 살살 긁거나, 시력 나쁜 사람은 절대 못 알아볼 정도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사진 찍히는 게 싫다면서도 멋있게 찍히는 법은 잘 알고 있었다. 이왕 하는 일인데 청춘을 불살라 멋지게 해치우고 박수받으며 떠나기 위해서다. 젊은 날의 폼생폼사. 소지섭과 차무혁은 아무래도 많이 닮았다.

[드라마 칼럼] <슬픈연가>, 송승헌이 투입되었다면?

세상에 다시 없을 순수한 사랑의 상징,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 그러나 그 둘이 운명적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로미오의 실연’ 때문임을 기억하는 독자는 얼마 안된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만나기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 때문에 울고 불고 하던 남자였다. 그랬던 그가 줄리엣을 만나자마자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둘의 사랑은 의외로 쉽게 식어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에 단 한번뿐인 사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는, 그러나 그 제작과정부터가 ‘위태로운 사랑’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다. ‘권상우와 김희선의 사랑 이야기’로 흘러가는 전개를 볼 때마다 저 둘의 사랑에 송승헌이 투입(?)되었다면 극의 전개가 한참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힘든데, 적어도 드라마 제작진이 의도하는 ‘감정이입 대상’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저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라는 시청자들의 바람이 ‘권상우와 김희선’이 아닌 ‘송승헌과 김희선’에게로 향하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 ‘생에 단 한번뿐인 사랑’이라지만, 오히려 ‘그때그때 다른 사랑’의 속성을 보는 것 같아 드라마 시청이 그리 편치는 않다. 이 드라마는 언뜻 지고 지순한 사랑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준영(권상우)과 박혜인(김희선)은 헤어져도 잊지 못해 아쉬워하고, 서로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니 말이다. 허나, 6.25 전쟁통도 아니고, 만날 마음만 있다면 왜 못 만나겠는가. 둘이 헤어지던 그 순간 마음만 있었다면 혜인은 그대로 택시를 타버리지도 않았을 테고, 어떻게 해서든 준영의 친구라도 만나 자신의 바뀐 전화번호를 알렸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애초에 ‘우리 혹시 헤어지면 명동성당에서 만나자’ 따위의 약속이라도 해두었겠지. 이쯤 되면 둘의 사랑은 ‘지고 지순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지고지순하기 위한 사랑’에 가깝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듣기로는 시력을 찾게 된 혜인이 준영을 알아보지 못한다고도 한다. 한창 좋을 때 그녀가 뭐라고 했던가. 어떤 상황에서도 준영을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았던가. 허나 결국엔 알아보지 못하니 그 사랑은 얼마나 나약한지 모르겠다. 역설적이게도 이 ‘단 한번뿐인 사랑 이야기’ 속에는 오직 ‘하나’를 구하는 강인함보다는 나약함이 더 많다. 연기자들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색하다면, 그것은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대본의 문제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연기력으로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연기자에게 그 부분까지 기대해서도 안될 일이니 말이다. 결국 복제된 스토리의 문제이리라. 어릴 때부터 서로 사랑하다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중간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만 못 알아보고, 그러다가 우왕좌왕 삼각관계에 빠진다는 설정.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일본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가 인기를 끌었다고 해서 그와 비슷한 제목과 스토리의 드라마가 모두 인기를 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주 순진한 발상이다. 거의 의 속편에 가깝다고 할만한 . 전편만한 속편 없다는 속설 때문에라도 오히려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할 드라마다.

연극, 영화, 시트콤으로 영역 넓혀가는 배우 안내상

배우 안내상(40)은 지난해 연말을 잊을 수 없다. 몸이 두개라도 버티지 못할 만큼 스케줄이 빡빡했기 때문이다. 주간 시트콤 를 촬영하면서 도중에 를 2편 했고, 라는 영화아카데미 작품을 포함해서 단편영화도 2편 찍었다. 쪽에서도 섭외가 와서 3회 정도 출연했다. 갑자기 밀려든 제의에 응하느라 해프닝도 많았다. 단편영화 밤샘 촬영하고 나서 한숨도 못 자고 아침에 시트콤 찍으러 갔다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외워둔 대사가 기억나지 않아 난생처음 당황했다. 강행군을 거듭한 끝에 몸무게는 7kg이나 줄어들었다. 지지리 못난 동생 종두를 벌레처럼 여기는 의 큰형, 베트남 전장의 광기와 원혼에 사로잡힌 의 소대원, 도둑질했다고 오해하여 초등학생에게 손찌검하는 의 선생,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눈에 핏줄이 선 의 조폭 등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안내상은 어느새 방송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시트콤에서 상관에겐 굽실거리고 후배들에겐 가혹한 탓에 항상 뒷다마 1순위에 꼽히는 패션잡지 편집장 역할을 맡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15년차 배우 안내상을 만났다. -피곤해 보인다. 스케줄 때문인가. =그것도 있고. 사실 인터뷰 있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폭음하고 결국 외박했다. 집이 경기도 파주라 늦게까지 술 마시면 서울에 사는 친한 형 집에 가서 잔다. -코디는 물론이고 매니저도 없는데. =매니저를 둔 적이 두번인가 있었는데 누군가 날 위해서 뭘 해준다는 게 껄끄럽고 불편해서 못하겠더라. 그때는 한적하게 영화하고 있을 때라 굳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혼자 다니게 됐는데 방송하다보니까 이게 아니더라. ‘헤쳐모여’가 반복되는데 쫓아다니질 못하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겠다. = 5회 촬영 때였나. 버스 타고 가던 여학생들이 창문 열고 “편집장님!” 하는 바람에 촬영이 중지된 적 있다. 다들 알아보니까 뻘짓도 못한다. -시트콤은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처음에 캐스팅 제의받았을 땐 사람 잘못 봤다고 했다. 사실 시트콤 출연하는 배우들 보면서 욕 많이 했거든. 그런데 기획안을 받아보니까 막가는 시트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망가지지 않고도 내 연기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시스템이 영화와 달라 애먹지 않았나. =3, 4회 촬영할 때까지는 적응을 못했다. 다들 느긋한데 나 혼자 대사를 빨리 치고 있더라니까. 여유가 없었던 거지. 다행히 술을 다 좋아하는 멤버들이라 매주 회식하면서 말도 트고 친해졌다. 사람들하고 가까워져서인지 이젠 카메라 앞에 서도 전보다 편안하다. 나도 모르게 애드리브를 날리는 거 보면. -영화 출연은 장선우 감독의 (1997)가 처음이다. =에서 행려 역할을 했는데 조감독들이 보러 와서는 같이 영화하자고 했다. 감독이 누구냐고 했더니 장선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거든. 을 수십번 봤을 정도니까. 보고는 문성근 말투 흉내내기도 하고. 시간 되면 서울역 노숙자들하고 좀 어울리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건 나한테는 명령이나 다름없는 거지. 3개월 동안 공연 끝나면 서울역 가서 행려들하고 술먹고 놀았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감독님이 “너 주인공 한번 해볼래?”라고 했을 정도다. 5개월 내립다 찍고 결국 영화에 나온 건 서너컷이지만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이후에 등에 출연했지만 단역이었다. 실질적인 데뷔작은 (2002)라고 여겨진다. =맞다. 이창동 감독님이랑 한다고 해서 많이 떨렸다. 그래서 촬영 직전까지 두달 동안 연습 무지하게 했다. 첫 촬영 때 감독님이 “안내상씨 연습했죠?” 하시더라. 그래서 “예, 당연하죠” 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현장에서 잘 안 고쳐진다고 했다. 지문도 다 잊어버리라고 했는데 그게 쉽나. (설)경구야 시나리오도 안 보고 놀고 있었는데 때 해봐서 알고 있는 거지. 미리 좀 일러주지. -생뚱맞은 질문이지만, 안내상이 본명인가. =본명이다. 7, 8년 됐나. 내 딸 이름 지으려고 작명소에 다녀오신 장모님이 이 이름 계속 쓰면 죽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안태건으로 바꿨다. 그때 같이 연극하던 친구들이 그 이야기 듣고 나 죽인다고 “내상아, 내상아” 많이들 불렀지. 난 제발 태건이라고 불러달라고 그러고. 어쨌든 안태건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크레딧에 안내상이라고 박아버렸다. 그게 더 좋다면서. 그뒤로 다시 안내상이 됐다. -10년 가까이 연극 무대에 섰다.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다닐 적에 지하생활을 너무 많이 해선지 졸업하고 나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즐겁게 살고 싶더라. 뭐가 좋을까 하다가 어릴 적 교회 다니면서 성극 하던 기억이 떠올랐고, 얼마 뒤에 우연히 공연예술아카데미 앞을 지나다 즉흥적으로 원서를 적어냈다. 오디션 보던 날 대사도 못 외워갔는데 최형인 선생님이 뽑아주었다. 돌아보면 오디션 때 말을 재미나게 해서 뽑힌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1년 동안 연기 공부하면서 개안했다. 최형인 선생님은 ‘너, 한번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 몰아치는 스타일인데 정말 새 세상이 열리더라. 그 다음해에 최 선생님에게 애걸해서 한양레퍼토리에 들어갔고 부터 2001년 까지 무대에 섰다. -대학 시절 지하생활이 뭔가. 신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아는데. =어릴 적 꿈이 목사였다. 온갖 부흥회 다 쫓아다니면서 할레루야, 아멘 했다.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도 받고 다녔고 망설임없이 신학과를 가게 됐다. 근데 막상 대학 가니까 회의가 들었다.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거다. 사실 시대 분위기가 그렇기도 했고. 처음에는 선배들이 던져주는 사회과학책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을 내가 변호하겠다”고 맘먹었다. 근데 내가 점점 빠져들더라. 유물론자가 된 거지. 하나님 버리고 마르크스를 섬기게 됐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술, 담배도 그때 입에 댔다. 이른바 언더서클에서 운동하면서 나중에 미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8개월 정도 복역하기도 했고. -무대에 서는 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같이 연극했던 친구들이 내가 쏘나타Ⅱ 몰고 다녀서 처음엔 재벌집 아들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사실은 부업을 좀 했다. 연극하는 친구들 보면 꼬장이 말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난 돈은 좀 있어야겠다 싶어 연극하면서 대학로에서 호프집도 하고 인사동에서 카페도 하고 그랬다. 처음 5년은 잘됐는데 나중에 다 까먹고 지금은 빚만 남았다. -장사를 할 만큼 호주머니에 여유가 있었나. =대학 졸업하고 나서 노동현장에 갈 생각으로 돈을 모았다. 지방에 가면 방값은 있어야 하니까. 처음에 한 건 당구장이었다. 당시 외대 앞에 400만원에 매물로 나온 게 있었는데 집에서 받은 돈으로 그걸 인수했다. 근데 6개월 지나니까 2400만원에 팔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 그런 거 보면 수단이나 운이 좋았던 듯싶다. -결국 공장엔 들어갔나. =부산의 한 공장에서 3개월 정도 있었는데 이 길이 아닌 것 같더라. 몇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 사람들하고 섞이지 못하고 벽이 있었다. 그들의 삶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다르더라. 그러면서 사실상 운동을 접었다. 그러고나서 1년 정도 술로 지내다가 연기를 만난 거지. -연극에선 코믹한 연기를 많이 했는데. 영화에서는 대부분 심각한 역할들이다. =이문식 이미지가 안 나서 그러나. (웃음)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싶어서 코믹호러 를 택한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우연히 시나리오를 보게 됐는데 너무나 재밌어서 프로듀서한테 내가 전화해서 어떻게든 참여하게 해달라고 했다.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이 없다면서 처음엔 퇴짜를 맞았는데 나중에 시나리오가 개작되면서 할 수 있게 됐다. 시나리오는 처음에 읽은 게 더 재밌었는데. -최근작 중 가장 만족스러운 영화는 뭔가. =. 성격 탓인지 몰라도 두발 내디뎌야 하는데 반발만 내놓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감독한테 지적당하면 또 움찔했었고. 그런데 이 영화는 윤인호 감독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해줬고,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애착이 간다. -에서 조승우 아버지로 나오는데 역할이 크진 않다. =다들 나보고 그런다. 역할이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고. 그런 괜한 걱정 때문에 캐스팅 제의가 더 줄어든 것 같다. 내 기준은 역할의 비중이 아니다. 과장하지 않고 일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은 일단 시나리오가 맘에 들었고, 등장이 많지 않지만 시나리오 곳곳에 아버지가 숨어서 지켜본다는 느낌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한 거다. 음, 촬영이 끝나고 나니까 신이 좀더 많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긴 하더라. (웃음) -차기작은 뭔가. =3월쯤에 들어갈 것 같은데 아직 말할 순 없고. 언젠가 영화 안에서 점점 변화하는 인물의 심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살아온 이력이 지그재그다. 어떤 우연한 계기를 만나 배우 말고 또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무위도식하면서 살고 싶다. 안 되면 말고. (웃음)

<에비에이터>가 영국아카데미상도 수상할까?

마틴 스코시즈의 는 2004년 최고의 승자로 등극할 수 있을까? 지난 16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가 영국아카데미영화상(BAFTA)에서도 14개 부문 최다 후보로 올랐다.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상인 BAFTA가 1월17일 발표한 후보작 리스트에 따르면 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영화제작자이자 비행사이자 억만장자인 하워드 휴즈의 삶을 다룬 는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여우조연상(케이트 블란쳇) 등 총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다음으로 후보지명이 많이 된 작품은 마크 포스터 감독의 와 마이크 리 감독의 로, 각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특이한 것은 케이트 윈슬럿이 여우주연상에 이름을 두 번이나 올렸다는 사실이다. 과 두 편의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 수상 확률이 다른 배우보다 2배나 높은 셈이다. 가 후보작 리스트에서 빠졌다는 점도 이슈로 떠올랐다. 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 주연을 맡은 신작으로, ‘이스트우드의 최고 걸작’이라고 호평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국 일간지 는 후보작 발표전인 1월14일에 이미 ’BAFTA의 우발적인 퇴짜‘라는 제목으로 누락의 이유를 밝혔다. 이유인즉슨, 의 시사일정이 너무 촉박하게 잡히는 바람에 BAFTA 투표인원 6240명 중 100명 정도만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또 최근 BAFTA가 선정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한 것이 오히려 이런 불상사에 한몫했다. 예전에는 누락된 영화를 최종리스트에 임의로 추가할 수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982년에 골든 글로브상 선정위원에게 뇌물을 주고 신인상을 수상했던 배우 피아 자도라의 경우를 고려하면, 이런 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가 덧붙였다. 덕분에 의 강력한 경쟁작이 사라지게 됐다. BAFTA수상결과는 2월12일에 알 수 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산행 [1] - 오대산의 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여행을 꿈꾼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며 새로움에 대한 경험이다. 그러기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떠남은 돌아옴이 약속된 여정이고 새로움은 오늘에 대한 반성을 먼저 필요로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겨울 산사로 떠나는 여행은 각별하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세속의 즐거움과 단절하고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스님들의 모습과 절집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과 절제된 생활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한다. 여행길 등에 둘러멘 작은 배낭 하나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반성의 기회가 될 것이다. 오대산과 설악산 인근의 절집들을 소개하는 것은 꼭 산사여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겨울에 쉽게 찾게 되는 동해로 가는 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찰들이기 때문이다. 사찰 경내의 찻집에서 잘 끓인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2005년을 더욱 알차게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편집자 1만의 문수보살 덕에 비움의 지혜 배웠네요 오대산 상원사·월정사를 가다 밤길입니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1만이나 거한다는 오대산에서 지내는 밤. 이미 겨울은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쯤 오대산은 온통 하얀 눈에 뒤덮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운 것은 쉽게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올 겨울 오대산에서조차 유난히 눈이 귀합니다. 눈을 찾아 밤길을 나섰습니다. 더 솔직하자면 겨울 밤 하늘 유난히 빛나는 별빛에 오히려 사무치는 외로움을 떨치고 싶었습니다. 염불소리와 바람소리 들으며 오르는 비탈길 상원사를 지나 오르는 비탈길. 오대산 최고봉인 비로봉 중턱의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를 비장했다는 곳입니다. 눈이 귀해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나무에 기대 가쁜숨을 달래게 될 때마다 옷깃을 꽁꽁 여며보지만 파고드는 바람은 여전합니다. 쉬엄쉬엄 가쁜 숨을 달래며 1시간여 비탈길을 올랐습니다. 바람이 제법 세차졌습니다. 그 바람소리에 섞이지 않는 또 다른 소리는 염불소리였습니다. 이미 깊은 밤. 적멸보궁 법당에는 신도들이 가득합니다.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적멸보궁 법당에는 부처의 상이 없습니다. 부처 상이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방석만이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 뒤로 난 창 어딘가에 석가의 진신사리가 있다 합니다. 그러나 그 사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끝없이 허리를 숙여 절하고 모은 두손을 풀지 않게 하는 그 힘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기원. 그것은 내 마음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믿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악의 유혹 앞에서 흔들릴 때 선의 마음을 일으켜 붙잡아주는 힘은, 헤어짐에 눈물지을 때 또 다른 사랑이 있음을 일러주어 다시 서게 하는 것도 결국 내 가슴 어딘가에 웅크린 ‘또 다른 나’가 내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불가에서 ‘부처는 바로 자기 마음속에 있다’라고 이르는 것도 결국 내가 모르는 그러나 언제나 나와 함께하는 ‘또 다른 나’를 찾으라 이르는 말인 것만 같습니다. 상원사의 이름없는 돌탑 앞에서 다시 아침을 맞는 곳은 상원사입니다. 이름 갖지 못한 돌탑 앞에 섰습니다. 이미 솟은 아침 해를 맞이한 첩첩한 산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멀리 하늘에 기댄 봉우리에는 간밤 그리움을 알았는지 겨울이 눈을 한 움큼 뿌려놓았습니다. 눈을 덮은 봉우리와 달리 잎을 떨군 나무들이 가득한 산자락은 보랏빛입니다. 보랏빛은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있는 색입니다. 막 해가 떨어진 저녁 하늘이 보랏빛이고 막 아침 해를 맞이하는 하늘의 색이 보랏빛입니다. 보랏빛을 지나면 어둠이 시작되고 보랏빛을 지나면 밝음이 시작합니다. 결국 끝과 시작은 함께 있는가 봅니다. 끝을 맞았다면 또 다른 출발을 할 수 있으니 용기를 가져도 될 것입니다. 무언가 시작하고 있다면 또 끝도 멀지 않으니 겸손해야 합니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가득한 겨울 숲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빛 어딘가에 봄을 준비하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이미 봄이면 초록으로 피어날 작은 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목탁소리가 상념을 깨웁니다. 천년도 더 오래된 그 옛날. 제대로 된 지도도 없었을 그 시절에 이 첩첩한 산중에 찾아들어 절을 세운 옛사람의 눈은 혜안 그 자체일 것만 같습니다. 첩첩산중임에도 시야는 막히지 않고 그러기에 마음속 응어리졌던 그 무엇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빈 가슴속에 의문이 찾아듭니다. 지혜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입니다. 배워야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지혜는 태어나기 이전의 그 어떤 존재일 때부터, 그러니까 사람의 형상을 갖기 이전부터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 지혜를 갖추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며 즐거움 또한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지식으로 알 수 있는 지혜의 모습입니다. 그 지혜를 갖추면 그리움과 외로움, 사랑과 집착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원사는 지혜의 상징인 1만 문수보살이 상존한다는 오대산의 봉우리들은 보여주지만 지혜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떠한 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세속과 단절하고 산중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스님들은 어쩌면 가장 용기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집 마당에서 만난 스님께 두손 모아 인사를 건넸습니다. 용기를 가진 자에 대한 경의였습니다. 돌아오는 스님의 인사가 유난히 맑습니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년) 신라의 보천왕자와 효명왕자에 의해 창건된 절입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이야기도 많습니다. 세조가 친견한 문수보살이라는 문수동자상이 있고, 세조를 자객으로부터 구했다는 고양이상은 법당 계단 옆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의 아름다운 문양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귀한 것은 쉽게 보이지 않는 법. 상원사의 귀함도 눈에 보이는 몇몇 유물보다는 그 정신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상원사를 세운 신라의 두 왕자는 스스로 초막을 짓고 수행과 공양으로 세속의 지위가 가져다준 권력으로부터 스스로 낮추는 삶을 살았습니다. 보천왕자는 왕위를 거절하면서까지 그 삶을 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는 한암스님 또한 서울 봉은사 조실자리를 박차고 1925년 오대산에 입산해 입적할 때까지 수행자의 삶을 지켰습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오대산 모든 사찰들이 불태워질때도 스님은 상원사 법당에 꼿꼿이 앉아 절집을 지켰습니다. 상원사를 불지르기 위해 산에 올랐던 국군장교는 결국 스님의 자세에 탄복해 법당의 문만 떼어내 불을 질러 마치 상원사가 불태워진 것처럼 꾸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상원사가 북방제일선원으로서 이름나게 된 것도 한암스님이 세운 전통 탓일 것입니다. 제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세조 역시 상원사에서 제 죄업을 참회했다고 합니다. 가지기도 쉽지 않지만 이미 가진 것을 버리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르면 내려가야 하고 그릇은 비워져야 채울 수 있습니다. 상원사를 내려가는 길. 겨울나무들은 지난 여름 빼곡했던 잎들을 버린 나목으로 겨울바람을 이기고 있습니다. 지난 잎들을 버렸기에 저 나무들은 다가오는 봄 새로운 초록으로 다시 계절을 맞이할 것입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지만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상원사를 내려갑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적막한 월정사에서의 산책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가는 20여리 길은 귀한 길입니다. 아스팔트가 뒤덮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꽁꽁 얼어붙은 흙길은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를 폴폴 날리지만 머지않아 그 먼지는 사라질 것입니다. 오대산의 산중 사찰들은 그 길에 이제 자동차의 출입도 막겠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은 걸어야 합니다. 걷는 것은 당장의 고통이지만 걸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몸이 건강해질 것이고 길가의 생명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생명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은 마음까지도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월정사는 이미 산중에 자동차를 사라지게 하는 첫 발자국을 떼었습니다. 법당 앞 마당에 깔려 있던 자갈을 이미 볼 수 없습니다. 걸을 때마다 자박거리던 그 자갈 밟히는 소리는 흙에 기대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작은 생명들의 아우성 소리였습니다. 자갈이 치워지고 드러난 흙빛과 어우러진 월정사 8각9층 석탑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월정사의 조치들은 인간이 편리함을 버리고 생명의 존귀함을 찾아가는 첫 징검돌입니다. 월정사 금강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을 걷습니다. 겨울이라 찾는 이 귀하고 한낮인지라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습니다. 적막함이 있어 뒹구는 낙엽이 남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얼어붙은 계곡 물소리 들리지 않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습니다. 수십 미터에 이를 정도로 곧게 자란 전나무는 여전히 초록입니다. 두팔을 가득 벌려 나무를 보듬어 봅니다. 얼굴을 자극하는 나무의 촉감이 거칠면서도 부드럽습니다. 혈관으로 전해지는 차가움은 차가우면서도 따듯합니다. 겨울 오대산. 채우려면 비우라고 이릅니다. 잃으면 얻는 것이 있음을 말합니다. 오대산 산사를 가려면 스님들 계실 때는 조용조용히~ 정보 | 오대산은 불교의 성지인 만큼 사찰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에서 찾기 쉽다. 특히 오대산 이름의 유래가 된 오대에는 각각의 사찰들이 있는데 상원사 인근의 서대 염불암은 전통 산간가옥인 너와집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 다만 스님들의 정진도량이라 찾을 때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오대산 사찰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월정사 홈페이지(www.woljungsa.or.kr) 참조. 오대산 인근에는 대관령 삼양목장, 방아다리 약수, 오대산 소금강 등 관광지가 많다. 용평리조트, 휘닉스파크 등의 스키장과도 가깝고 강릉과도 1시간 내의 거리라 겨울여행의 기점으로도 적당한 곳이다.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으로 나와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그 길을 따르면 월정사에 이른다. 국립공원 매표소를 지나 식당가를 지나면 월정사 주차장이다. 상원사까지도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월정사를 지나면 비포장도로다. 전나무 숲길부터 제대로 즐기려면 식당가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것이 좋다. 5분쯤 걸으면 일주문이 나오는 데 일주문으로 들어서야 전나무 숲길을 만날 수 있다. 월정사를 지나 부도밭의 숲도 꼭 돌아보도록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강릉이나 원주에서 진부로 와서 상원사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월정사를 경유해 상원사까지 하루 12차례 다닌다. 문의: 월정사(033-332-6664∼5), 평창군청 문화관광과(033-330-2399) 숙박 | 월정사에서는 숙박이 곤란하다. 상원사에는 하룻밤 묵을 방이 있지만 동안거 기간 중이라 사전에 확인(문의: 상원사 033-332-6661~5)해보는 것이 좋다. 상원사에 묵을 때는 반드시 예불에 참여해야 한다. 월정사 입구에 여관과 오대산호텔, 민박이나 펜션 등이 많다. 월정사 앞 식당가의 산채정식은 반찬의 가짓수와 정갈한 산채요리로 유명하다.

<아직 멀었어요?> 미국 흥행 1위

아이스 큐브 주연의 가족코미디영화(Are We There Yet?)가 미국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1월 넷째 주말동안 2709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1850만달러를 벌어들여 가볍게 1위에 올랐다. 바람둥이 닉(아이스 큐브)이 이혼녀인 여자친구의 두 아이를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데려가기로 약속을 하는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엄마의 남자친구는 죄다 싫어한다는 것. 결국 닉은 24시간동안 악몽같은 여행을 하게 된다. 미국 극장가는 연초부터 현재까지 큰 흥행작이 없는 소강기가 계속 되고 있다. 이런 상태는 2월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주에 1위였던 농구드라마는 입장수입 1100만달러를 거둬 2위로 하락했다. 3주 연속 1위를 지켰던 는 개봉 5주차에도 3위에 올라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현재까지 누적수입은 2억4770만달러다. 외에 유일하게 10위권에 진입한 새 개봉작은 (Assault on Precinct 13). 702만달러 수입을 올려 6위에 데뷔한 이 영화는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작을 장 프랑수아 리셰가 리메이크한 범죄물이다. 자 룰과 에단 호크, 로렌스 피시번 등이 출연했다.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에 새로 등장한 두 편 모두 흑인 랩퍼 겸 배우(아이스 큐브와 자 룰)가 주연한 영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를 배급한 소니의 로리 브루어 사장은 “완벽한 가족영화”라며 “아이스 큐브가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고 설명했다. 골든 글로브상 3관왕이 된 마틴 스코시즈의 는 개봉 6주차로 9위에 머물렀다.

<슬픈연가> 판에 박힌 장면·뻔한 공식…아! 슬픈 드라마여

문화방송 를 보면 영화 가 떠오른다. 시나리오 한 우물만 파던 ‘할리우드 키드’는 결국 자신의 ‘걸작’이 할리우드 영화의 짜깁기임을 깨닫는다. 는 내 것과 남의 것 사이 긴장을 놓친 ‘할리우드 키드’처럼 공식과 새로움 사이의 긴장을 버리고 전자에 안주한다.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는 사랑이고 빠질 수 없는 갈등은 질투일 테니 ‘또 삼각관계냐’라는 냉소는 접더라도 는 장면, 대사, 인간관계, 캐릭터까지 어디선가 본 듯하다. ‘한류’를 목표로 만들다보니 보편에 기댈 수 밖에 없음을 감안해도 ‘낡은 한국 드라마 공식의 완전정복’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결정적 장면들’ 중에 하나를 들라면 준영(권상우)의 혜인(김희선) 구출작전이 있다. 버려진 공장 터, 혜인은 불량배들에게 붙들려 울부짖는다. 각목 하나 달랑 든 준영이 날아 들어오고 멋진 발차기를 날린다. 착지한 준영이 카메라를 향해 눈빛을 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건우(연정훈)가 미국에서 혜인에게 ‘꽂히는 순간’도 그렇다. 건우는 분수에 빠져 젖은 혜인이 감기 걸릴세라 고급 옷가게로 데려간다. 건우가 골라준 붉은 코트를 혜인이 입고 나올 때 슬로 모션과 음악이 빠질 리 없다. 멈칫한 건우의 넋 나간 눈동자는 의 박신양이 충분히 보여줬던 것이다. 또 미국인 교수에게 찍힌 건우가 기지로 신임을 얻는 장면은 의 김래원과 짝을 이룬다. 이런 장면들은 식상한 캐릭터와 관계설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성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남성, 여리고 수동적이며 남성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환상 속의 그대’가 엮이려니 인물들은 고정된, 가부장적인 성역할에 충실하다. 준영은 주먹을, 건우는 현금을 날리며 ‘능력있는 남성’이 되어야 하고 혜인은 스웨터와 함께 눈물을 수시로 짜며 ‘착한 여자’로 남아야 한다. 관계설정의 ‘고전성’은 남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준영과 건우는 주먹다짐 끝에 서로의 남성성을 인정하며 우정을 다짐한다. 인물의 성격이 평면적이니 대사와 에피소드도 뻔하다. 혜인은 “준영아, 보고 싶어, 사랑해” 그리고 “흑흑흑” 말고 그만의 대사는 거의 없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준영의 어머니가 모질게 내치지만 분노도 없다. 준영에 대한 그리움 외에 그가 느끼는 고통이나 욕망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드라마가 다 그렇지 뭘 그러냐’라고 할 수 있는데 다 그렇지 않다. 새로운 관계설정에 대한 상상이나 캐릭터의 다변화는 이미 형성중이다.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폐인’을 만든 등엔 ‘캐릭터의 다른 면모’가 있었다. 드라마의 자기복제가 결국 한류의 퇴보를 가져올 거라는 거창한 이유까지 들지 않더라도 단지 ‘보는 재미’를 위해서 공들인 가 ‘드라마 키드의 생애’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 그 사람들>의 재구성 [2]

코미디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드라마 #3. 실내. 궁정동 별관 복도 화장실-밤 (한쪽 다리는 완전히 바지를 뺀 채 변기에 앉아 있는 박 부장. 갑자기 휴지도 사용하지 않고 바지를 입고 물을 내린다.) 박 부장/ 제길, 되는 일 하나 없네.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인가. TV와 인터넷에서 방영 중인 이 작품의 예고편에서 백윤식이 화장실에서 짓는 표정과 묘한 효과음은 자체로 작은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고, 이 작품이 당시 권력 핵심부에 대한 희화화가 아닐까 예상하게 한다. 그러나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가 그저 코미디영화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을 보면 주인공 도시로 미후네가 칼싸움을 하다가 한 여자의 남편을 죽이는 장면이 있다. 도시로가 이 장면을 회상할 때는 사무라이풍으로 멋진 결투가 벌어진다. 이 사건을 몰래 봤던 나무꾼 증언에 따르면 또 다르다. 도시로가 싸울 때 그의 손은 벌벌 떨린다. 싸움도 개싸움 하듯 볼품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게 희화화라고는 할 수 없다. 영화의 관습적인 표현을 뛰어넘는 리얼리즘적인 장면이다. 멋있게 쏘고 죽고 하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라 칼을 든 손이 벌벌 떨리고 서로 품위없게 부둥켜 싸우는 게 리얼리즘이다.” 당사자에겐 절박한 것이 구경꾼에게는 코미디로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만찬장에 참석했던 이들은 생사를 걸고 다퉜지만 자신 같은 제3자가 보기엔 코미디라는 것이다. 임 감독은 코미디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더 다가서려 했다고 말한다. 이 문제의 장면은 예고편을 본 관객뿐 아니라 실제로 촬영 내내 스탭들 또한 웃음 도가니로 밀어넣었다. 첫 테이크를 찍는데 감독부터 쿡쿡대며 웃는 바람에 NG가 났다. 임 감독은 웃음을 참을 자신이 없는 스탭들은 먼저 나가라고 말하고 다시 찍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장면을 다시 촬영한 뒤 모니터 앞에 앉은 임 감독. 그러나 헤드폰 속에선 또 웃음소리가 잡히는 게 아닌가. 문제의 웃음소리는 김우형 촬영감독의 것이었다. 미처 촬영감독의 웃음소리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카메라 위에 모포와 매트리스를 덮어씌워 웃음소리를 막은 다음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정원중(조 실장)이 화장실로 숨어들어가는 장면도 웃겨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나는 이게 영화가 잘 찍히고 있다는 징조라고 믿는다. 코미디를 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인물의 이면을 누구나 느낄 수 있게 찍을 때 웃음이 나오는 거다.”(임상수) 한국 현대사의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총격신 #4. 실내. 별관 만찬장-밤 (문 앞에서 심호흡하고 들어가는 박 부장. 심 집사와 눈이 마주친다. 노래는 끝나 있다.) 조 실장/ …탱크로 갈아버려도 충분해요. 짜식들, 쥐죽은 듯이 엎어져 있을 것들이…. 박 부장/ (눈에 살기가 가득하다) 조 실장/ 자자, 진정하시고, 언니들은 이런 숭한 얘기 못 들은 거야, 알지? 이른 아침부터 양수리 종합촬영소 세트장에 집결한 스탭의 손놀림이나 눈동자에선 당일 촬영장면 못지않은 긴장감이 감돈다. 지붕 위의 조명 설치 및 조정, 그리고 각도를 달리한 카메라 두대의 운용만 해도 만만치 않은 품이 든다. 촬영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 멜라토닌을 먹고 있는 임상수 감독은 여느 때보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간다. 10·26사태의 몸통을 다뤄야 하는 만큼 주요 배우들도 다 출연하고 총기 사용장면도 나온다. 혈액도 적지 않게 사용될 것이다. 제작부가 총기와 화약, 피를 쏟아낼 에어건과 가스통 그리고 피를 흘려보낼 고무호스를 점검한다. 송재호, 권병길, 백윤식, 정원중 등 배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트장에 도착했다. 양수리 촬영소의 숙소인 춘사관에 묵은 이도 있지만 대개는 매니저 없는 나 홀로 드라이브족들로, 아침 일찍 손수 운전해서 촬영장에 왔다. 그 흔한 스타크래프트 하나 보이지 않는다. 김윤아와 조은지가 등장해서야 매니저들도, 스타크래프트들도 보인다. 여느 촬영장에 가면 가장 선배급 대접을 받을 정원중, 한석규 등이 여기에선 한참 손아래다. 하나, 둘, 시∼작. 이것은 슛, 레디, 액션으로 이어지는 보통 큐사인이 아니다. 임상수 감독의 조금은 장난스럽기까지 한 시∼작 소리가 들리고 나자 이 영화의 심장부라 할 만찬장 저격신이 펼쳐진다. 만찬상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 태양 담뱃갑, 재떨이, 시바스 리갈을 담은 주전자가 놓여 있다. 김영삼, 데모, 미국대사관, 카터 대통령 등 정치적 안줏거리들이 올라왔다가 다 떨어질 무렵, 함께 자리에 배석한 혜선과 초대가수 금자가 흥을 돋우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조 실장도 끼어들어 을 부르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파장 무렵의 만찬장, 술기운이 올랐는지 조 실장이 자신의 충성을 과시한다. “걱정마십시오, 각하! 캄보디아에서는요, 100만명이나 죽였어요. 우리두요, 한 만명만… 아니야, 천명만….”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그러나 이 캄보디아 정치철학 강의는 얼마 안 있어 강제로 중단된다. 조 실장은 자신의 말이 마지막 말이 될 줄 알았을까. 이 만찬이 최후의 만찬이 될 줄 알았을까. 이제 곧 해일이 들이닥칠 것이다. 임 감독은 이 장면 앞뒤로 5분간 관객은 영화의 정점이자, 한국 현대사의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덧 점심시간, 밥차 10여대 가운데 가장 맛있다는 밥차가 도착해 식사시간을 알린다. 밥차에 제일 먼저 줄을 선 임 감독부터 스탭과 배우들이 차례로 길게 줄을 섰다. 밤샘 촬영이 될지도 모르니 든든히 먹어두어야 한다. 수많은 기구들에 전원을 넣느라 전압이 불안정해 난로도 제대로 켜지 못한다. 11월 초겨울의 추위가 실내 스튜디오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배우들은 수시로 분장실로 몰려들어 창살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정담을 주고받는다. 관록 넘치는 배우들이 대거 주역으로 나서다보니 영화사는 이들의 건강을 챙기지 않을 수 없다. 젊은 배우들 하듯 강행군을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프로농구선수단의 전담 안마사를 불러 배우들의 몸을 살펴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전부리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사탕을 복도에 챙겨두는 세심한 배려도 물론이다. 박 부장의 느닷없는 총격에 아수라장이 된 만찬장 장면을 찍으면서부터 오후의 양수리 촬영장도 숨이 가빠진다. 각하의 셔츠가 피로 물들 것을 대비, 10여장의 여벌의 셔츠도 마련했다. 난방 기구 하나 없는 썰렁한 만찬장에서 송재호는 몇번이나 셔츠를 갈아입는다. 김윤아는 촬영된 장면을 확인하느라 촬영장과 모니터 사이를 잰걸음으로 바삐 오간다. 제작부와 코디네이터들은 병풍이며 주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촬영 테이크 전후의 핏자국과 부위가 같은지를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단풍든 양수리 촬영소 앞산 너머로 일찍 해가 넘어간다. 어제의 실세, 하루 만에 국가사범으로 전락 #5. 실내. 육본 벙커 상황실. PM 8:05 (실내 체육관만한 넓은 상황실 안으로 참모총장과 박 부장, 민 대령이 들어선다. 민 대령은 구겨신은 구두를 신고도 당당하다.) 참모총장/ 국방장관 합참의장한테 연락해. 바로. 참모총장들하고, 해군 공군… 수도군단장… 빨리. 상황실장/ (다급하게 수첩에 받아 적는다.) 참모총장/ (상황실장이 넘겨준 전화를 받으며) 장관님. 급한 일이 생겼으니 바삐 원 벙커로 나오셔야 겠습니다. 공포영화를 찍은 곳이어서였을까. 정원의 꽃들은 시든 지 오래고, 이따금 박살난 유리창도 있고, 곳곳이 녹슨 폐교 안에 마련된 벙커 상황실. 영화 속 상황실은 CG의 도움을 받아 실제 규모보다 더 크게 보여질 것이다. 전체 46회차 촬영 중 44차 촬영이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세트를 만드는 스탭의 손길이 부산하다. 수십명의 대역배우를 동시에 부리느라 조감독들은 정신이 없다. 각각 다른 군복과 계급장, 모자를 맞춰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2월 초의 쌀쌀한 날씨에 폐교 운동장에서 밥을 타먹는 보조출연자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선다. 꼭 예비군 훈련장 같다. 촬영이 끝난 권병길, 김성욱(주 과장 운전사 역, 듀스의 김성재 동생이다) 등이 응원을 하러 나왔다. 감독 눈에 띄어 캐스팅된 제작사 명필름의 이우정 PD도 어색한 듯 중령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백윤식을 비롯해 참모총장 역의 정종준, 김응수 등 배우들이 상황실로 들어서 리허설을 하면서 현장의 공기가 팽팽해진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정종준의 어조는 화급하고, 정종준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을 맞추며 급히 보고를 하고 각 요처에 연락을 취하는 상황실장(배장수, 회고전을 해도 좋을 만큼 출연작이 많은 기자)의 목소리도 긴박하다. 박 부장은 궁정동에서 육군 참모총장을 이끌고 자신의 본거지인 남산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여의치 않게 참모총장과 함께 육군본부로 오게 된다. 그러나 정작 육군본부 정문 앞의 초병들은 박 부장의 차를 타고 온 총장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복 차림에 남의 차를 타고 왔으니 당연한 대접이다. 이 영화와 그리고 실제 10월26일 당일엔 이런 일부러 꾸민 듯한 드라마 같은 상황이 적지 않다. 주 과장은 해병대 동기인 청와대 경호처장을 쏴야 하는 운명과 맞닥뜨리고, 참모총장은 정작 자신이 이끄는 육군본부의 초병들이 몰라봐 자신이 누군가를 한참 설명해야 하며, 보안사 사령관 출신인 박 부장은 자신이 이끌던 보안사 조사실로 끌려들어가 한참 새카만 후배에게 얻어맞아야 한다. 불과 하루 만에 벌어지는 이런 극적인 이야기는 누가 일부러 꾸미려고 해도 힘들 것이다. 박 부장은 구두도 신지 않고 급히 현장에서 나오느라 구멍난 양말 차림이다. 박 부장은 민 대령에게 급히 구두를 빌려 신고, 민 대령은 운전사 신을 뺏어신고 육군본부에 들어선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박 부장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리라고 믿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