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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그림 같은 풍경, 연인의 속삭임,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스물세살 시절의 셀린느와 제시를 기억한다. 1994년, 열차에서 만난 그와 그녀, 비엔나, 철교, 두 연극배우, 전차, 진실게임, LP가게, 박물관, 묘지, 저녁 풍경, 키스와 포옹, 놀이기구, 손금쟁이, 카페, 교회, 부랑자 시인, 클럽, 길거리 공연, 식당과 전화놀이, 선상 카페, 돌계단, 포도주 한병, 풀밭, 섹스, 아침, 하프시코드, 눈으로 찍는 사진, 동상, 비엔나역, 약속과 헤어짐. 그리고 9년 뒤, 서른살을 지난 두 사람을 우린 안다. 파리, 셰익스피어 책방, 제시의 책 <이번에는>, 주름지고 마른 얼굴의 그, 모든 삶은 드라마다, 만남과 인연, 재회, 아름다운 미소의 그녀,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셀린느, 거리의 악사, 9년 전 약속, 골목, 카페, 담배, 현실 속 이상주의자, 산책, 그날 우리가 섹스를 했던가, 공원, 벤치, 제시의 결혼, 센강, 유람선, 노틀담성당, 책을 쓴 이유, 차 안에서의 고백, 꿈, 포옹, 고양이 ‘체’, 그녀의 집, 셀린느의 왈츠, 니나 시몬, 그녀의 춤과 몸짓, 그의 시선.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사랑의 시작이다. 그래서 행복할수록 아쉬운 시간은 미련을 남긴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열려진 미래에의 약속이다. 약속이 이루어질까 궁금했던 만큼 다시 만난 둘의 미래가 궁금하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감독과 두 배우가 만드는 ‘길의 노래’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그대로 이야기로 구성되고, 감독과 두 배우의 생각은 두 주인공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은 프랑수아 트뤼포보다 에릭 로메르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다(기차에서 눈빛을 나누는 첫 장면은 <훌륭한 결혼>(1982)의 마지막과 닮았다). 바람처럼 스치는 우연의 영롱함이여. 그간 DVD 제작에도 정성을 기울였던 리처드 링클레이터를 안다면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DVD에 별다른 부록이 없음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먼저, 위에 적힌 장소와 속삭임들을 하나씩 기억해보라. 그들의 작은 손짓과 눈빛 그리고 대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데, 더이상 무엇을 듣고 싶을까, 보고 싶을까. 두편 DVD의 담백한 외양은 사랑스러울 정도로 작은 영화에 대한 예의이자 감독의 배려란 생각이다. <비포 선셋>에 담긴 10분짜리 메이킹 필름의 모습이 영화 본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게 그 증거다. 비엔나와 파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깔끔하고 뽀얀 각각의 영상이 주는 만족감에 비해 소리는 아쉽다. 캐스 블룸과 줄리 델피의 노래가 주는 감동이 여전하다고 해도 그 공간의 소리를 모두 듣고 싶은걸 어찌하겠나.

<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시각들 [1]

지난 1월24일 저녁, 용산CGV 극장의 전관을 빌려 치른 <그때 그 사람들> 시사회가 끝난 뒤 제작사인 MK픽쳐스의 이은 대표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심재명 사장, 임상수 감독, 그리고 백윤식과 한석규 등 20여명의 출연진과 스탭 그리고 송강호를 비롯한 명필름의 지인 등 40명이 대학로 카페 장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1월21일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 1차 심리가 열린 직후였고 28일 2차 심리가 열리기 전이라서 그런지 25일 저녁의 그때 그 사람들 입가에선 영화 시사회를 마쳤다는 기쁨과 불안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영화상영 가부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2월1일 이전에 나올 예정. 11개 극장을 차례로 돌며 관객과 인사를 나누고,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적 질문의 포화에 갇혀 있던 탓인지 영화조차 보지 못한 백윤식과 한석규 등 출연진의 입가엔 피로감이 묻어나왔다. 혹시 있을지 모를 테러에 대비, 제작자와 감독에게는 보디가드가 따라붙었다. 처음엔 임상수 감독과 심도있는 인터뷰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인터뷰가 법적인 판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임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여 인터뷰는 미루기로 했다. 임 감독은 설령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본안 소송으로 다시 상영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까지 임 감독의 휴대폰은 수시로 울려대며 각계의 반응을 알려왔다. 물론 상영금지는 가능성에 불가하지만, 이런 법적 공방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옭아맬 수 있는가를 이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찬반이 분분한 영화에 대해 남재일, 인정옥, 최보은, 허문영(가나다 순), 네명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함께 실었다. 이 색다른 목소리들이 영화 외적인 공방에 파묻혀 있는 영화의 얼굴을 관객에게 돌려줄 것이다. 임상수는 김기덕 반대편에 서서, 역시 김기덕만큼 고독하게 작업하는 스타일리스트다. 이해 못지않은, 아니 더 큰 오해를 받으며 억압적인 가부장제와 싸우지만, 두 사람은 노선만큼이나 싸우는 지점도 내용도 다르다. 김기덕이 최근 구도자적인 행보를 보이며 잠시 멈춰 있다면 임상수는 <그때 그 사람들>로 섹스에서 정치로 무대를 넓히며 의욕을 다지고 있다. 이른바 임 감독의 ‘떡’ 3부작(<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바람난 가족>)은, 섹스신 하나조차도 비관습적인 체위와 촬영기법으로 만든 개성적인 작품이다. 이 3부작은 선정적인 외피 속에 가족주의의 어두운 그늘을, 말맛이 살아 있는 대사에 신랄한 성 모럴 비판을 담고 있다. 임상수가 네 번째로 들고 나온 것은 그러나 의외의 정치드라마였다. 현대사의 전환점이라 할 10·26 사태를 다룬 <그때 그 사람들>에선 떡 3부작과 맥을 함께하면서도 그 세계와 결별하고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나서려는 임 감독의 야망이 엿보인다. 권위주의 시대는 끝났다 성 모럴이라는 전선에서 싸우던 임상수는 <그때 그 사람들>로 군사정권의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전선을 확대한다. 데뷔작부터 줄곧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영작(映作)은 구경꾼이자 참여자로 시대를 향해 발언했지만 그의 자리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중앙정보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주영작 과장은 총부리를 권력의 수뇌부에 들이대며 공적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다. “언제부터 형사와 검사들이 내 아랫도리를 관리해온 거니”라고 묻던 호정의 대사(<처녀들의 저녁식사>)를 <그때 그 사람들>의 문맥으로 바꾸자면 “언제까지 국가권력이 내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관리할 거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임 감독은 풍자라는 해머와 삽을 들고 나와 공권력과 극우세력이 땅에 파묻고 자물쇠로 걸어잠근 역사적 사실을 파헤친다. 그리고 그 사실을 현실정치의 장으로 복귀시킨다. 이순신 장군 동상 위를 날아가는 헬기장면은 임 감독의 시야가 어떻게 확장되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다. 쿠데타를 상징하는 라이방 선글라스를 낀 채, 자신이 시대적 좌표로 내세운 이순신의 머리 위를 날면서, 각하는 물개 불알의 행방을 걱정한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배꼽 아래 일은 문제삼는 게 아니라”는 마초의 철학을 동원한다. 그의 채홍사인 주 과장은 이 최고권력자의 ‘배꼽 아래’를 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렌즈다. 직장인 여성과 10대 그리고 중산층의 성 모럴을 통해 권위주의와 위선을 통렬히 비웃던 임상수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18년간 절대권력을 구가했던 이의 ‘아랫동네’를 들춰낸다. 이런 지점에서 이 작품은 정치적으로 시야를 넓힌 ‘떡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애들은 매를 맞아야 큰다’고 믿는 후진적인 정치철학의 소유자이자 철권의 독재자를 질펀한 주연의 장으로 끌어내 확인사살까지 하는(그렇게 표현하는) 뜻은 선명하다. 권위주의의 뿌리 노릇을 했던 각하의 뿌리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여자 품에 안겨 노래를 듣고자 했던 생리적 본능과 일제시대에 맞고 산 몸의 기억의 합이 각하의 삶을 구성한다. 물론 이 장면은 <바람난 가족>에서 아이를 공사장 위에서 집어던지는 것만큼이나 선정적인 장면으로 비판받을 수도 있다. 부패한 권력을 요약하는 단 하루 영화는 부패한 시대의 총체적 자화상을 그리기보다는 시대의 횡단면을 그리는 데 주력한다. 정권 핵심부 바깥을 그린 장면은 고등학생들이 애국가가 나오는 가운데 횡단보도 앞에서 건널지 말지 우왕좌왕하는 장면과 옹색한 중앙정보부원의 셋방을 보여줄 때가 전부다.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만찬장 대통령 피격사건을 축으로 삼은 이 영화는 짐승의 시대를 단 하루 안에 축약해 담아낸다. 생략과 도약은 불가피했고, 이 빈 지점을 메우는 것은 거울에 비치는 김 부장 장면을 비롯한 세련된 스타일이다. 초대된 여대생의 노랫가락을 우아한 현음악으로 덮어씌우고 카메라가 만찬장에서 빠져나와 건물을 훑는 장면이나, 주 과장이 살해된 대통령 경호원을 확인하는 부감숏 장면은 비극적인 정서를 증폭시킨다. <바람난 가족>에 이어 함께 짝을 이룬 임상수-김우형(촬영)-고낙선(조명)은 치밀하고 모던하게 매신을 구성했다. 쿠데타 지지자들과 대통령 측근 사이의 불화와 반목을 극화하느라 논점은 분산되고, 감정이입의 지점은 넓어졌다. 총체적인 리얼리즘 대신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선으로 하루를 잡아냈기 때문이다. 떡 3부작에서도 여러 주인공을 내세운 점을 돌이켜보면 임상수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로버트 알트먼의 <숏컷>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다중적인 관점인 듯하다. 다만 만찬장 장면 앞부분이 만찬장의 긴장감을 입체적으로 고조시키느라 많은 시간을 지체하고, 만찬장 뒤에선 사건 종결 이후 세 장소로 흩어져 산만하게 극이 진행된다는 점이 지루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각하와 그 정부를 신랄하게 비웃다 각하를 표적으로 삼고 풍자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 칼날이 겨누고 있는 것은 동시에 역시 군부 출신인 쿠데타 주모자들이다. 쿠데타가 유신정권의 심장을 쏜 신념적 판단에서가 아니라 그저 순간적인 감정적 폭발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비웃음이 시종 배경음처럼 울린다. “대장부라면 확실하게 끝을 맺어야 할 텐데”라는 김 부장의 말에, 직접 의사 가운을 입고 감독은 “사무라이 좋아하시네”라고 비웃는다. 거사는 민주주의의 신념이 아니라, 대통령 삽교천 시찰을 가는 헬리콥터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하고, 술자리에서도 2인자인 차 실장에게 무시당한 김 부장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됐다. 거사는 조마조마할 정도로 무계획적으로 진행되며, 얼떨결에 사건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원들은 총 한 자루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들은 죄없는 사람을 국가사범으로 엮어내는 데만 능숙해 보인다. 김 부장은 (쿠데타가) ‘사나이의 길’이라고 자못 감동적인 대사를 내뱉지만 만찬장에 부른 여자들로부터 각하의 시신 처리, 국무회의 방향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1인자를 처치한 뒤 낮잠을 자는 그의 모습은 한심하며 애처로움까지 자아낸다. 국가의 안위를 결정하고 책임짓는 행정부와 국군수뇌부도 막상막하다. 최고권력 국무위원들은 대통령 서거 이후 권한대행을 어떻게 지명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육군본부에서는 내부로 걸어들어온 대통령 살해범을 어떻게 잡을지 몰라 좌충우돌한다. 각하와 그 정부는 권위주의로 시대를 내리눌렀지만 그 권위의 내용은 이렇듯 대책없이 부실했다는 게 영화의 증언이다. 지엽적 문제와 영화의 공과를 혼돈말길 불행한 시대의 초상화를, 임 감독은 모순되게 배치했다. 부마항쟁 사진으로 시작하는 사진첩은 그 시대의 불의에 온몸으로 맞서던 청춘들을 기린다. 사진첩을 닫으면서 영화는 연도에 서서 아버지라도 잃은 듯 오열하는 시민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다. 젊은이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흘린 피와 시민들이 독재자의 죽음에 슬퍼하며 도로를 적신 눈물이 한데 뒤엉켜 불행했던 시대의 추억을 완성하는 것이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재자의 아들과 딸을 비추며 도발적인 물음표를 내던지고 끝을 맺는다. 이게 바로 이 영화의 상업영화로서의 자의식인 셈이다. 이전 임 감독의 작품이 늘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때 그 사람들>이 불러온 바람은 더욱 거세다. 일찌감치 작품이 스캔들의 소용돌이 안에 휘말려듦으로써 작품 내적인 성취를 온전히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건 이 작품과 임 감독 나아가 영화를 즐길 관객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엔카와 일본어 대사라는 지엽적 문제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법적 공방은 이 영화의 역사적 공과를 부식시키고, 영화 자체의 미학과 실패에 눈멀게 한다. 바로 여기가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다.

<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시각들 [3] - 4인4색 감상 ② 인정옥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임상수 말이다. 어느 날 10·26을 얼빵이들의 소동극으로 꾸리기로 결심한 임상수 말이다. 나도… 임상수가 만든 <그때 그 사람들>처럼, 임상수를 깔짝거리고 싶다. 재밌겠다. 어느 날 임상수의 시야에 10·26이 걸려들었다. 그때 쓰여진 임상수의 낙서다. 첫째 재밌겠다, 그냥. 그냥 막. 둘째 재밌자면 쿨해야 한다. 쿨은 내 거다. 셋째 쿨한 나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이 엄숙한 결단에서 나올 거란 건 환상이다. 어쩌다보니 똥 같은 상황이 된 거다. 자료봐라. 진짜루…. 다섯째 그때 그 사건의 현장에서 그 사람들도 뻔하다. 인간들 다 그렇다. 그냥 밥먹고 똥싸다가 넘어졌는데 그게 역사가 된 거다. 여섯째 근데… 지들이 알아서 웃기고 자빠진 것들도 있지만, 영문도 모르고 뒤엉킨 사람들도 있다. 좀 억울하겠다. 이건 좀 달래줄라구…. 영화 만들면서 보자. 어떻게 되겠지, 뭐. 일곱째 중요한 역사이고 재밌어야 되니까 당연히 블랙코미디다. 블랙기조의 고급스런 색감과 음악 깔고, 쌈마이짓 뻘짓하는 캐릭터들로 도배해서 코미디 된다. 블랙과 코미디. 그래서 결론. 그냥 뭐 다 놀고 자빠진 역사라는 거다. … 근데 쿨할까? 쿨해야 되는데… 끝.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은 이렇게 기획되었다. 뻥이다. 그럼 어떤가. 나 재밌자고 하는 짓인데… 근데, 이런 식으로 임상수에게 깐죽대면 사람들은 재밌어할까? 재밌자고 하는 짓 재밌어야 하는데… 재미없으면 죽음인데…. 재미없다. 지루하고, 한심하고 재수없다. 깐죽대다가 끝나는 내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술자리 뒷다마다. 우웩.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도 그랬다. 재미없다. 역사를 보는 그의 농짓거리도 재미없고, 영화를 이끄는 궁정동의 소동극도 재미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허하고 진한 블랙도 없었고, 인간들 부딪치는 실없는 코미디도 없었다. 10·26의 주역들에 대한 역사적 희극이기엔 웃기지가 않았고, 영문 모를 총격전에 휘말린 이름 모를 단역들의 역사적 비극이 되기엔 슬프지도 않았다. 역사적 희극도 비극도 아닌 역사적 깐죽거림만 남았다. 깐죽거림에는 원칙이 있다. 그 대상과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실체와 대상없는 허공에의 깐죽거림. 이것이 임상수의 <그때 그 사람들>이다. 게다가 김윤아와 윤여정의 내레이션은 이 영화 최고의 미스터리다. 왜 그녀들에게 그때 그 사건과 사람들을 빈정댈 자격을 주었는지는 임상수만 아는 비밀 같다. 다시 내 맘대로 글쓰기. 아마도 김윤아가 분한 심수봉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그녀만은 구출하고 싶었나보다)와 배우 윤여정에 대한 신뢰. 이것 말고는 모르겠다. 나는 임상수를 좋아한다. 한국의 몇 안 되는 훌륭한 영화감독들이 다른 훌륭한 국내외의 영화와 감독을 모델 삼아 그들의 창의력을 키워가는 데 비해 임상수의 창의력은 그의 내부에서 표출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감독으로선 유일한 자생적 창작자다. 내 멋대로의 판단이지만… 그래서 임상수가 좋다. 그랬는데… 이 영화가 싫다. 이 영화를 <바람난 가족>과 비교하는 일은 할 수 없다. 그의 전작을 비교하며 후작을 논하는 일이야말로 엇비슷한 업종의 사람으로서는 무책임한 잣대를 들이대는 행위다. 단… 굳이 전작을 언급하는 이유. 그러면 안 되는데 전작을 들이민 이유. 나를 물고늘어지는 그의 재산. …쿨.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단어, 쿨… 그것 때문에…. 그걸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임상수가 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하기가 나로선 곤란하다. 임상수는 쿨함에 속박당했다. 쿨을 인생과 영화의 지표로 삼는 듯하다. 엄숙함과 쿨함은 필요에 따라 단장하는 옷일 뿐이다. 회색 양복과 꽃무늬 남방의 차이일 뿐이다. 임상수는 회색 재킷도 어울린다. 무대인사할 때 봤다. 꽃무늬 남방에 몸을 가둘 필요가 없었다. 그의 영화의 미덕은 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전작은 미덕이고 후작은 악덕이다. 그의 영화의 미덕은 오히려 인물행태에 대한 집요함이다. 전작은 했으나 후작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작은 상쾌하고 쓸쓸했지만, 후작은 벙찌고 지루했다. 전작보다 더 집요했어야 할 10·26이었다. 10·26은 단지 1, 0, 2, 6이라는 숫자일 뿐이라는 벙찌고 지루한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외부적 영향보다는 자생적 창의력이 충만한 감독 임상수를 놓치고 싶지 않다. 단… 임상수가 경계해야 하는 하나의 단어, 쿨. 이것만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 아님을, 그때 그가 알았었다면 내가 재수없게 그를 깐죽대지 않았을 거다. …아쉽다.

<씨네21> 설 특별 프로그램 [5] - 만화

1979년 소개된 <캔디캔디>와 그 애니메이션의 열풍에 힘입어 한국 순정만화의 독자층과 그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리고 뒤이어 <베르사이유의 장미> <유리가면> 등의 해적판이 소녀들의 손아귀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맛을 본 소녀들은 더 많이 읽기를 원했고, 그 틈을 타고 해적판 및 일본소녀만화의 번안물이 그녀들의 손에 쥐어졌다. 80년대 ‘순정만화’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전유한 자신들만의 욕망을 위한 매체이자 장르, 혹은 욕망의 구조물이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순정만화는 어디쯤 있을까? (Caution: 여기에서 제공하는 순정만화의 다이제스트는 몇몇 대형 히트작들을 완전 무시하는 등 편향된 시각과 무례한 요약, 일방적인 오독으로 가득 차 있음) 80년대 - 최초의 순정세대, 그리고 최초의 ‘여성’ 세대 80년대 중반, ‘온전한 자신의 창작 이야기’로 데뷔한 일련의 작가들에 의해 창작순정물의 시대가 본격화된다. 이 작가들의 이름은 김혜린, 김진, 신일숙, 강경옥 등이다. 그렇게 일본 소녀만화와 독립된 한국 순정만화가 본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이때 순정만화 소비자들이었던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80년대 초·중반에 이런 만화들을 읽고 자란 소녀들이 지금의 30대 초·중반이다. 당시의 소녀들은 한국에서 ‘대량으로 직장여성이기 시작한’ 첫 세대였다. 동시에 이들은 ‘엄마로서 소비하기’, ‘주부로서 소비하기’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가지고 떳떳하게 소비하고 행동하기를 막 처음 시작한 세대였다. 그녀들이 대학에 들어갔던 시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즉 이 세대들은 ‘엄마와는 다르게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이 새로운 여성들을 만족시켜줄 문화상품은 당연하게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소녀만화가 그들의 욕망의 대리물이 되었다. 이 작품들의 도래는 잠재된 수요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빅뱅.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순정만화’는 한국에서 여성들이 최초로 전유한 자신들만의 욕망을 위한 매체이자 장르, 혹은 욕망의 구조물이 되었다. ‘순정만화’는 사회진출을 시작하는 여성들과 기대와 불안, 그리고 욕망의 행보와 함께 맥동하고 있었다. 진취적인 소녀들은 선행자 없는 자신의 불안한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자각하고 있었고, 그들이 나이가 들고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순정만화라는 장르도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아갔다. 한국 순정만화의 역사에서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신이 독자와 함께 성장해나가면서 ‘여성만화’로서의 역할까지 포용해나가는 진취적이고 아름다운 보기 중 하나이다. 그리고나서 순정만화는 다시 ‘소녀만화’로서의 속성으로 회귀하게 되지만. 좌우간 그 대목 중 몇 가지를 확인해보자(내 맘대로). 혁명순정물 대가 김혜린, 천재 김진의 대가족 잔혹사 김혜린은 83년 <북해의 별>을 위시한 일련의 작품으로 순정물 고유의 로맨스와 현실 사회변혁의 열정이 뒤섞인 경계에서 양쪽 다를 잡아내며 자신만의 사회파 순정물을 이끌어냈다. <북해의 별>을 당시의 운동권 학생들이 돌려 읽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한참 정국이 시끌시끌하던 88년에 ‘르네상스’에 연재한 <테르미도르>와 그 차기작인 <비천무>는 김혜린 미학의 완성이었다. <비천무>의 작화와 시가(詩歌)의 인용들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인물들이 관통하는 사회적 현실과 비참함은 한국의 현실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미리 말해두지만 영화와는 내용이 크게 다르다). 80년대 후반, 그 시기에 못사는 사람들의 혁명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다. 김혜린이 대가라면 김진은 천재였을 것이다. 대하판타지이든 소박한 가족물에서든 김진은 한국형 대가족 내부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질서의 균열과 파멸을 노래했다. 그의 만화에서 아버지는 폭력적인 가부장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반목하고 가족들은 그 사이에서 공포와 증오, 자폐적인 심리를 담은 눈으로 이를 목격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살육과 몰락이 펼쳐지고 절대로 그 폭력을 멈추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광증이다. 게임화가 되기도 한 <바람의 나라>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신들의 황혼>)나 이탈리아 갱단(<밀라노… 11월>)에서부터 고구려 상고사(<바람의 나라>)까지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이러한 주제의식을 변주하고 펼쳐내었다. 최근 <밀라노… 11월>이 재간되었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절판이 되기 전에 구할 것. 대화하는 강경옥, 한국 야오이의 선구자 이정애 강경옥이 86년 <이 카드입니까>으로 데뷔한다. 강경옥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넌 왜 나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왜 지금은 또 나를 싫어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그리고 납득하는 것이다. 강경옥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90년에 완결된 SF판타지인 <별빛 속에>이다. 강경옥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강경옥의 어두운 점과 밝은 점을 모두 아우른다. 어두운 점이라면 영화화가 거론되기도 한 <두 사람이다>와 같은 최근의 공포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항상 독백하고 생각하며 ‘내면의 필터‘를 거쳐서 사건을 받아들이는 강경옥의 인물들은 90년대의 순정만화의 경향을 미리 예시한 셈이었다. 86년에 데뷔한 이정애의 작품에서는 남성 캐릭터들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철학과 신학 등 현학을 내세우며 신과 인간이 반반씩 결합된 반신반인이다. 그들의 정념은 종교적 순수와 지식욕과 동일시된 플라토닉 러브의 변종이다. 지금과 같은 의미에서의 본격 야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정애를 한국 야오이물의 선구자라고 평하는 것은 무리없는 일일 터이다. 94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이정애의 대표작 <열왕대전기>로부터 이러한 면모를 본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원물로 시작해서 구세주와 적 그리스도의 대결을 그린 이 종말론적인 작품은 명실공히 컬트의 반열에 오르며 확고한 지지층을 결집하게 되었다. 이정애의 또 다른 걸작인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의 경우 심의의 제재에 의해 몇 장면이 수정되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 순정만화가 예술적으로 커나가는 방향에서 기존 만화에 대한 인식과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쉽지 않은 소재를 자신만의 개성과 주제의식으로 완성도 있게 풀어나간 뛰어난 작가였다. 90년대 -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작가들의 등장 드디어 90년대가 되면 순정만화는 이미 확고8한 자리를 잡게 된다. 순정만화의 독자들이 대학생이 되었고, 통신공간을 통해 순정만화의 작가론 등 담론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서 가장 큰 변화는 대하서사물의 맥이 끊긴 것이다. 물론 김혜린 등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고 많은 작품들이 90년대에 새로 출발했지만, 적어도 이 시기에 새로 데뷔한 작가들 중에 대하서사를 그리는 작가는 없었다. 이때 데뷔한 70년대생 작가들의 특성은 강경옥이 예시했던 경향을 가속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는데 문화적 트렌드나 쿨한 감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80년대의 작품들이 외부의 사건에 의해서 운명적으로 지배당하는 주인공을 내세웠다면 이젠 일상의 사건에 대한 내면의 독백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나예리, 박희정, 이강주, 이진경, 한혜연, 문흥미 등의 데뷔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90년대 후반에 잡지 <나인>(Nine)이 등장하며 ‘여성만화’를 표방했다. 이 잡지에는 작품성 위주의 수준 높은 선별이 이루어졌고 굵직한 신인들이 비평적으로도 뛰어난 수작을 내어놓으며 ‘제2의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졌지만 결국 2000년으로 넘어가서는 버티지 못하고 만다. 비평적 성취는 높았지만 상업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서 순정만화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연결된 하나의 사이클을 종결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경향을 예로 들어보자. 페미니즘과 지적 경향성의 공유 90년대의 대학의 지적 경향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경향성이다. 80년대 작가들의 작업에 현학적 경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정애- 차이가 있다면,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의 문화적 코드를 주저하지 않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이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한 여성 세대이며 강한 페미니즘적 경향성과 지적 경향성, 그리고 문화적 차별성을 지녔다. 달리 말하면 여성으로서의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논리적이고 성찰적이며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녀들은 교육받은 것이 부끄럽지 않으며 오히려 무기가 된다. 이러한 흐름의 작가로서 90년대 초반과 중반, 후반에 걸쳐 순차적으로 데뷔한 이진경, 유시진, 권교정을 들 수 있다. 가장 처음 데뷔한 이진경인데 잡지 <나인>에 <사춘기>를 연재하자마자 걸작의 칭호를 얻는다. 아직 학생운동의 기운이 남아 있는 90년대 초 대학의 풍경을 예민하게 포착한 <사춘기>는 페미닌하면서 고급했고, 퀴어적인 성향, 미술학도로서의 아트한 성향, 지식인적 성향을 고루 가지고 있었다. 1권에서 “남자 선배의 탈을 쓴 마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거리하는 장면은 인구에 회자되던 명장면이었다. 뒤이어 유시진이 90년대 중반 <마니>로 자신의 지분을 선언하고 <쿨핫>으로 그것을 굳건히 한 뒤 <폐쇄자>로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였다. 유시진은 폐쇄적인 자아의 심상판타지를 추구한다는 면과 가부장제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진의 후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김진이 아들의 캐릭터를 통해서 가부장제를 관철한다면 유시진은 그 딸의 시각으로 가부장제에 대한 집착과 속박을 표현한다. 이 경우 가족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아버지와 그 저주받은 가부장적 후계로서의, 아버지를 증오하는 딸이 있다. 적어도 <쿨핫>의 살부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는 주인공 김동경의 눈동자는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남겼다. 그리고 이 경향의 마지막 주자 권교정이 90년대 후반 <헬무트> 등을 위시해서 자신만의 울림을 가진 장르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권교정의 특징은 능숙하게 “장르의 핵심요소”를 분해-재결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각색’된 장르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셋 중 가장 유희적인 성격이 짙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러한 ‘각색‘을 통해서 장르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좀더 보편적인 방향으로, 그리고 좀더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권교정의 가치다. 예를 들어 <헬무트>의 유명한 대목 중 하나- 영주의 딸이 지나가는데 하인 소녀가 피부가 곱다고 감탄하자, “너도 나처럼 밭일 한번 안 하고 실내에만 있고 가꿀 시간이 있으면 네 피부도 나만큼은 곱겠지”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현대적인 시각으로 중세물 장르를 바라본 것이다). 일상성과 환상성을 결합하는 흐름 이와는 다른 축으로 잡지 <나인>을 통해 데뷔한 몇몇 작가들을 더 언급할 수 있다. 이것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순정만화의 고급화의 흐름 중 일부로서 일상성과 환상성을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이전에도 활약하던 이강주가 <캥거루를 위하여>로 자신의 작품 활동에 한획을 그었다. 이 작품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내 얼굴이 캥거루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라는 카프카와 하루키가 뒤범벅된 발상으로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 같은 잡지에서 이향우가 1권짜리 <우주인>으로 여성 백수의 이야기를 큐티한 캐릭터와 세련된 에피소드로 보여주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나는 우주인이다, 이곳에서는 나를 일컬어 백수라고 한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우주인>은 이강주와 함께 잡지 <나인>에서 일상성과 그 일상에 대한 이질감에서 출발한 환상성의 결합을 추구하는 흐름을 이루었다. 2도 채색으로 인쇄되었던 이 만화는 선물용으로 적합하리만큼 충분한 팬시성을 갖고 있었으므로 일반 만화와 다른 마케팅과 홍보가 뒷받침되었다면 다른 지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일상성과 환상성, 그리고 그로테스크함을 추구했던 이애림의 가 준 충격도 만만찮은 것이었다. 이애림의 체모에 대한 강박적인 묘사와 일그러진 우화의 전개는 강한 인상으로 다가갔다. 이러한 인디적인 흐름은 최인선 등의 ‘예쁘지 않은 스타일’과 결합하여 하나의 작은 흐름을 형성하였고 실제 인디만화의 흐름과 결합하기도 했다. 2000년대 - 하나의 사이클을 종결한 ‘순정만화’ 2000년대의 흐름은 어떨까? 순정만화가 ‘사회 진출을 시작한 여성’들이 가지는 일단의 정체성과 결별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현재의 순정만화는 좀더 당연하게 유희적이며, 야심보다는 소녀들의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한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흐름일 것이다. 이전의 순정만화가 ‘여성만화’로서의 진지한 흐름과 ‘순정만화’로서의 장식성과 유희적인 흐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면 이 두 가지는 사실 분화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흐름이 더욱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사실 80년대의 몇몇 작품은 그 내용의 진지함과 무거움이 도저히 소녀가 볼 만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의 구체상황이 연표와 함께 낱낱이 등장하며 그것이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테르미도르>와 같은 것이 그렇다. 역할모델로서의 성인여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은 이들 세대의 특성상 이때부터 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순정만화’는 ‘여성만화’로서의 속성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내용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진취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여성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위하여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은 만화만이 아니며 지금 소녀들이 이러한 절박함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리하여 순정만화는 10대들의 만화로 자신의 역할을 다시 확실히 한 셈이다. 20, 30대를 위한 ‘여성만화’는 이와 따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풍경이다. 20대 여성들의 직장생활과 섹스, 삶을 만화장르로서 수용하는 일본의 레이디스 코믹스(Lady’s Comics)와 같은 흐름이 한국에도 등장하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운 일일 터이다. 결국 ‘순정만화’라는 이름은 이제 ‘여성들이 보는 만화’를 총칭하지 못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분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여성만화’를 표방한 잡지 <나인>의 폐간 이후 성인 여성잡지를 표방한 <오후>(Owho)의 창간(2003), 그리고 25∼30살 여성을 타깃으로 했음을 천명한 <허브>(Herb)의 창간(2004)이 이러한 변화한 지형도를 대변하고 있다. 창간 1년 뒤 폐간된 <오후>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경직, 축소된 만화시장이 그걸 녹록하지 않게 만들고 있지만 말이다. 더구나 30대에 만화를 읽는다는 게 어디 한국에서 평범한 일이겠는가? 선보는데 다음과 같이 말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어디 많을까? 남자: 취미가 뭔가요? 여자: 만화 보는 거요.

한국 최초 영화 <아리랑> 원본필름 발견되나

전설적인 영상수집가로 불려온 한 일본인의 죽음이 영화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가 소장해온 것으로 전해진 춘사 나운규의 걸작 <아리랑>이 햇볕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제 시대와 전후의 귀중한 영상들을 수집해 보관해온 오사카의 영상수집가 아베 요시시게(81)가 9일 지병으로 숨졌다. 그는 생전에 5만점이나 되는 소장 필름에 대한 전문가 조사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해 많은 영화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그가 상속인 없이 사망함에 따라 이 필름들은 법적 절차를 거쳐 일본 문화청의 소유로 넘어가게 됐다. 문화청은 곧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필름센터를 통해 본격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최대의 관심사는 그의 소장 필름 가운데 <아리랑>의 원본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 우리 민족의 한을 담은 ‘문화유산’인 이 필름은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전해졌으나, 1970년대부터 아베가 갖고 있다는 얘기들이 널리 퍼졌다. 아베가 직접 영상을 보고 작성했다는 소장목록의 동양영화 55번째 항목에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필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아베는 조선총독부의 경찰의사였던 아버지 대부터 필름을 수집해왔다. 남북한 영화 관계자들은 <아리랑>의 필름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였으며, 영화를 좋아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쪽에선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 영화제작소 소장이었던 여운각씨, 남쪽에선 다큐멘터리 작가 정수웅씨가 영상편집기기 등의 선물을 들고 찾아가 아베를 설득하느라 안간힘을 쏟았으나 거절당했다. 아베는 “<아리랑>은 식민지 시대의 반일영화인 만큼 일본인으로서는 생각할 부분이 있다”며 “그렇다고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통일되면 평화를 위해 내놓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병상에 누운 아베를 문병갔던 여씨와 정씨는 원본이 발견되면 복사해 남북이 하나씩 가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일본 문화청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한국의 전문가에게도 협력을 요청해 조사하겠다”며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뿌리인 만큼 발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영화평론가는 한국전쟁 때 없어진 다른 많은 필름들도 발견될지 모른다며, 한국 영화사 연구의 공백기를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요절한 한국 영화의 선구자 나운규가 1926년 각본·감독·주연을 도맡아 제작한 무성영화인 <아리랑>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고문으로 미치광이가 된 대학생이 귀향한 뒤,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덕지주이자 일본 경찰의 앞잡이를 낫으로 죽이고 잡혀가는 내용이다. 그가 오랏줄에 묶여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 울려 퍼지는 아리랑 노래는 압제에 시달리던 조선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MBC 멕시코 이민 100돌 기념 다큐 ‘에네껜’

한인 후손들의 성공담 엮여 1905년 제물포를 출발한 조선인 1천여명은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용설란의 일종인 ‘에네껜’(henequen) 농장에서 비참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무더위와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이들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했다. 2세들을 위해 서당을 짓고, 조국 독립을 위한 성금을 모았으며, 군사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100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3·4세 후손들은 현지인들과 결혼해 스페인어를 쓰고 있으며, 멕시코와 쿠바에서 하원의원, 주 대법원장, 병원장, 화가, 연주가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화방송의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 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에네껜>(20, 27일 방송)에서 이들의 성공담과 과거 한인노동자들의 실태가 소개된다. 3·4세들 하원의원 등으로 성장 에네껜 ‘주급 명세서’ 최초 공개 노라 유는 멕시코 한인 후손 중 첫 하원의원이다. 노라 유의 증조부는 에네껜 이민 1세 유진태씨로,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종숙이기도 하다. 후아레스시 시장이 꿈인 그는 “동양계라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시간이 더 많이 들었고, 여자라서 남자들의 두 배 이상 일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인 4세인 리스벳 로이 송은 동양계 이민 여성이란는 약점을 극복한 멕시코 낀따나 로주의 대법원장이다. 아버지는 플로렌시오 송, 어머니는 중미 벨리스 출신의 떼레사 엔깔라이다. 그의 조부모는 에네껜 농장에서 일하다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며 성공을 일궜다. 뻬드로 가브리엘 총 킹은 멕시코 티후아나의 어린이 자선병원 원장이다. ‘총 킹’은 ‘정 김’이 변형된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호세 김, 할머니는 마리아 윤으로 서울 출신이다. 외할아버지는 뻬드로 정이고 외할머니는 마리아 엘리나 장이다. 이들은 모두 멕시코에서 양파 농사를 짓다 정착했다. 멕시코 유카탄의 마야 유적지 관리소장인 한인 3세 라몬 리 레혼과 부산 출신 김발명의 후손으로 베라크루스 최고의 법의학 전문가인 앙헬 에레라 김도 만나본다. 쿠바의 알리시아 데 라 깜빠 박은 유명 화가다. 쿠바 아바나에서 스페인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요즘 에네껜에 몰두하고 있다. 100년 전 멕시코와 쿠바로 건너 온 조상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으로, 촘촘이 늘어선 밭 가운데 한복을 입은 그의 조부모가 서 있고 하늘에는 태극 모양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세실리오 박 김은 연주가다. 한인 3세로 올해 일흔일곱인 그는 아리랑과 애국가, 노사연의 <만남> 정도는 부르고 연주할 줄 알지만, 한국어는 모른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조상의 나라인 한국 땅을 밟아보는 것이다. 산띠아고 데 쿠바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넬슨 울리세스 임 장은 독립운동가로 한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임천택의 후손이다. 임천택의 아들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참여한 뒤 식품청장을 지낸 헤로니모 임 김은 넬슨의 아버지다. 넬슨은 현재 한국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의 바람은 외교 관계가 없어 조국의 실체를 잘 모르는 쿠바의 한인들에게 한국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 다큐멘터리에서 에네껜 노동자의 실태와 노동 상황을 알 수 있는 ‘주급 명세서’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 명세서는 1908년 7월27일부터 8월1일까지 한인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임금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시청률 높지만 원성도 높은 ‘일일드라마’

지난해 6월 시작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일일드라마 <금쪽같은 내 새끼>와 <왕꽃선녀님>이 지난 11일 나란히 8개월여의 대장정을 마쳤다. 서영명·임성한이라는 두 ‘문제 작가’ 덕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 안고 출발했던 두 드라마는 방영 내내 20% 중후반을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마무리는 애초 우려를 벗지 못했고 극적 완결성 따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평가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시청자들의 특성을 적절히 이용한 결과로만 보일 뿐이다. <이 남자가 사는 법>(94년), <부자유친>(96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아온 서 작가의 <금쪽같은 내새끼>는 지난해 말까지 큰 무리는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6개월쯤으로 예정된 방송 기간이 연장되면서,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홈 드라마’라는 주제의식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다툼있는 집안에 착한 며느리가 들어와 가족을 화해시킨다는 주요 내용은 이미 지난해 11월께 마무리가 됐으나, 방영을 늘리면서 억지스런 내용이 들어간 것. ‘착한 며느리’ 희수(홍수현)가 갑자기 ‘트러블 메이커’로 바뀌고, 희수 오빠는 동생 시어머니의 악행을 소설로 쓰겠다고 하는 등 주요 캐릭터의 성격이 돌변했다. 부모와 자녀가 원수지간처럼 바뀌면서 가족의 모습은 한없이 뒤틀려 버렸다. 전작 ‘금쪽같은…’‘왕꽃선녀님’ 고무줄 편성·작가교체 등 삐걱 <왕꽃선녀님>은 이보다 더 했다. 전작 <인어아가씨>(2003년)에서 비윤리적인 소재와 파행적인 스토리 전개로 ‘안티 바람’까지 불렀던 임 작가가 ‘무녀’를 앞세워 나타났을 때부터 입길에 올랐는데, 지난해 10월엔 갑작스런 집필 거부 소동을 벌여 신인 김나현 작가로 교체되는 풍파도 겪었다. 작가가 바뀌면서 오락가락한 인물들은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했고, 꽤 비중있던 한혜숙과 정혜선은 아무런 설명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마지막회는 “초원(이다해)은 무빈(김성택)과 결혼 후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예고가 방영 15분전 자막으로 흘렀으나, 이와 무관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버리는 ‘방송 사고’도 터졌다. 현재 일일드라마는 9시 메인뉴스를 앞둔 프라임 시간대인 저녁 8시에 방영되기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은 이들이 시청한다. 그래서 홈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의 따뜻한 이야기로 폭넓은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일일드라마는 극적 완결성이나 재미, 혹은 도덕적 교훈 등 모든 측면에서 미니시리즈 드라마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나친 시청률 경쟁에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지만, 광고가 없는 한국방송 1텔레비전과 제2의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이 자극적이기만한 일일드라마로 이전투구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두 방송사는 14일 새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와 <어여쁜 당신>으로 맞대결을 이어간다. 과연 후속 드라마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문화방송 <굳세어라 금순아>(이정선 극본, 이대영 연출)는 어린 과부 금순의 굴곡진 삶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 나간다.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금순은 좋아하던 오빠와 21살에 결혼하지만 곧 남편을 의료사고로 잃고, 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미용사로 열심히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출생 비밀, 삼각관계 등이 빠지지 않는데, 금순이 남편을 죽게 한 의사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한다. 후속작들도 자극적 소재는 여전 가족드라마 취지 살릴지 주목 한국방송의 <어여쁜 당신>(박정란 극본, 이민홍·이정섭 연출)은 이혼과 불임, 고부갈등을 주 소재로 다룬다. 초등학교 동창인 인영과 기준은 결혼 뒤, 고부갈등과 불임으로 이혼하지만 부부 관계는 계속한다. 그러나 인영이 또 다른 남자 재민과 결혼을 약속한 뒤, 기준의 아이를 임신하고 기준은 이미 재혼을 한 상태다. 얼개는 정통 스타일의 일일극이지만,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온 이야기 구조와 소재를 담은 터라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MBC ‘굳세어라 금순아’ 한혜진 “꿋꿋한 금순이역 연기 욕심” 탤런트 한혜진(24)이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어린 과부 금순이를 맡았다. 얼마 전 종영한 아침드라마 <그대는 별>에서 인경이라는 반듯한 여성 역을 맡았던 그에게 이번 드라마는 연기 변신의 장이다. “주위에서 다른 역할을 해보라고 권했는데, 엉뚱하고 맹랑하면서도 꿋꿋한 금순이가 바로 그런 캐릭터예요.” 더구나 한혜진은 자신이 인경과 금순의 성격을 반씩 갖고 있다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엉뚱과 맹랑은 지난 3일 촬영한 결혼식 장면에서 남김없이 드러났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금순이 발을 잘못 디뎌 ‘큰 대’자로 넘어지는 장면이었다. 10여 차례 되풀이된 넘어지는 연기 뒤에도 한혜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있는 모습의 금순이 역에 욕심이 났고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연출자 이대영 피디는 “이미지나 연기력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어려움 속에서도 강하고 진실한 금순이의 모습을 가장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 연기자가 한혜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방송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은 한혜진이 지금껏 장서희, 이다해 등 많은 주인공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문화방송 일일드라마에서 얼마나 성숙한 연기력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KBS ‘어여쁜 당신’ 이보영 “주옥같은 대사가 입에 딱” “부담반 기대반이지만, 걱정보다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 더 많이 나아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장면이 너무 많아 연기가 쑥쑥 늘 것 같거든요.” <어여쁜 당신>의 주인공 인영은 탤런트 이보영(26)이 연기한다. 시청자들에게 아직까지 광고 모델로 더 익숙한 그는 최근 주말드라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얼굴을 알린 초보 연기자에 가깝다. 그는 첫 주연을 맡은 것 같지 않은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오히려 “주옥같이 예쁜 대사가 입에 딱 맞는다”고 드라마 자랑까지 덧붙였다. 불임과 이혼 등 소재가 거리감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상황이 이해되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차게 답했다. 캐릭터와 관련해선 “매력적이고 현실적이며 당찬 생활력도 갖고 있어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기도 했다”고 했다. 이보영은 “시청자들의 사랑이 제겐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달리다 지쳐 목이 마르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며 “20대 초반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감동 받을 수 있는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미스코리아·슈퍼모델 입상 경력으로 2003년 연예계에 데뷔한 이보영의 연기가 어떤 빛을 낼지 눈길이 모인다.

가볍고 상쾌, 살짝 여운까지 있는 와인 같은 영화, <사이드웨이>

남자들 머릿속엔 퇴행적 욕구가 잠복해 있다. 머리가 굵어지면 그 퇴행욕구를 세련되게 위장하고 퇴행을 미화한다. 술을 마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어릴 적 구강기에 대한 강한 아쉬움 때문이다. 술병 주둥이는 어른 남자에게는 엄마의 젖꼭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같은 술이라도 와인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와인엔 그런 퇴행 욕구를 덮을 만한 두터운 문화적 휘장이 있다. 오랜 역사, 다양한 품종은 섬세한 취향을 요구하고 이 취향은 어른스러운 것으로 인정된다. 물론 이 취향을 위해선 많은 돈이 든다. 결혼을 앞둔 일주일 동안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농가)를 돌아다니며 마지막 자유를 누려보겠다는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러 나선 마일즈(폴 지아매티)의 여행 이야기는 사실 귀가 솔깃해질 내용은 아니다. “우리 나이에 돈, 능력 없으면 도축장 끌려가는 소”라고 느끼는 중년 남자 둘이 길을 떠난다는 내용만 들으면 벌써 이런 감탄사가 절로 떠오른다. 꽤나 지루하겠군. 고급스런 와인 취향에서 속물 냄새까지 맡는다면 이건 최악이다. 미국의 비평가들이 모두 엄지손가락 두개를 들어올리며 상을 받았다는 얘기엔, 캘리포니아 와인협회가 혹시 와인을 상자째 돌린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음모론까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두 남자가 재수없는 돈만 많은 남자들이 아니라는 점. 못생기고 잘 나가지도 못하는데 무척 사랑스럽다. 그들이 택한 길은 캘리포니아, 하고도 아름답기 짝이 없는 포도밭들이다. 게다가 사랑도 이루어진다. 이런 즐거운 판타지가 있나. 와인을 좋아한다면 입맛을 더 다시게 될 것이다. 흔히 남자들이 길을 떠날 때 품게 마련인 성적인 환상(느닷없이 퀸카가 나타나 자신을 덮칠 거라는)까지 더해진다면 더 좋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게 마련인 테루아(terroir: 와인의 환경)와 거친 자연의 시련을 떠올리며 인생을 와인에 비유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에 더욱 공감하기 쉬울 것이다. 피노, 카베르네 소비뇽, 리슬링 등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포도 품종이 영화 속의 캐릭터를 암시할 때면 키득거리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일렉션> <어바웃 슈미트> 등을 만든 알렉산더 페인답게 폐인스러운(또는 루저스러운) 남자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 마일즈는 <일렉션>의 매튜 브로데릭만큼이나 답답하고 소심하며 <어바웃 슈미트>의 잭 니콜슨만큼이나 일이 잘 안 풀린다. 교사가 아니라 작가로 성공하고 싶지만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곳이 없다. 아내는 2년 전 떠나고 빈자리는 우울증 약과 빈 와인병이 채웠다. 익숙한 먹물형 주인공이다. 그의 꼬인 인생을 풀어주는 계기를 주는 이가 있으니 결혼을 앞둔 친구 잭이다. 잭이 마일즈에게 내리는 처방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우울증 약도 끊어.” “섹스 부족이야.” “여자가 꼬리치는데 내빼?” 세제 광고류의 광고 모델로 근근이 배우 자리를 유지하는 처지가 마일즈보다 나을 리는 없지만 그는 캘리포니아 햇살을 만끽할 줄 아는 낙천주의자다. 이들이 길 위에서 만난 여자 둘은 이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현명하다. 마야(버지니아 매드센)는 늙고 수줍음 많은 소설가 지망생 마일즈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스테파니(샌드라 오)는 자기 집에 두 남자와 마야를 함께 초대해 인연을 엮어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 풍요로운 햇살과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으로 성숙해진 와인은 네명의 남녀를 맺어주는 놀라운 사랑의 묘약 노릇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인생과 사랑의 미묘함을 비유하며 영화의 향을 한층 복잡하고 감미롭게 한다. 마야가 마일즈에게 묻는다. 왜 피노를 좋아하냐고. 마일즈는 피노가 재배하기 힘들고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어려운 품종이지만 그래서 맛이 더 오묘하다고 답한다. 마야는 마일즈의 섬세한 취향을 존중하며 은근히 사랑의 눈빛을 보내고, 마일즈는 피노 키우듯 사랑을 소중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에둘러서 답하는 것이다. 너무 진지해서 따분하다고? 아니다. 영화는 그때 잭과 스테파니가 침대 삐걱거리게 하기 게임을 하면서 내는 재미있는 배경음을 들려준다. 묵직하고 중후한 레드와인쪽보다는 가볍고 상쾌하며 살짝 여운까지 있는 화이트와인쪽에 가까운 작품이다. <사이드웨이>에 등장하는 와인들 사람과 와인은 오래될 수록 좋다 마야의 입을 빌리면 너무 오래돼 힘이 떨어지기 직전의 와인이 가장 아름답다. 영화는 마치 무르익은 중년의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듯하다. 페인 감독은 장면과 성격에 맞게 와인을 직접 골라 플롯 안으로 와인향이 스며들게 했다. 마일즈와 잭의 여행은 피노 누아로 만든 1992년산 샴페인으로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부푼 마음을 샴페인 거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들른 샌포드 와이너리에서 마일즈는 뱅 그리를 마시며 잭에게 시트러스, 딸기, 아스파라거스와 치즈향이 난다고 말한다. 마일즈가 얼마나 예민하며 뛰어난 표현력의 소유자인지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좋은 와인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마일즈는 프래스 캐년에서 맛본 와인에 대해 구강세척제 같다, 버스 매연 맛이다라고 가차없는 평가를 내리는데 이런 와인 맛은 마일즈와 잭이 여행 중에 맛보게 될 고난을 비유한다. 네명의 주인공 남녀가 우아하게 레스토랑에 앉아 먹는 밝고 환한 색상의 소비뇽 블랑은 가슴 설레는 중년 남녀의 얼굴과 교차하며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무르익을 것인가를 예감하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와인을 합해도 단 한병의 와인에 미치지 못한다. 마일즈가 애지중지하며 아끼는 와인이 그 주인공으로 주인공만큼 나이를 먹은 1961년산 슈발 블랑이다. 보르도 생테밀리옹 지역을 대표하는 초특급 와인으로 흰 말이란 뜻이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보르도의 와인 가운데서도 샤토 마고 등과 더불어 8대 와인으로 꼽힌다. 슈발 블랑을 만드는 주품종은 보르도 와인의 주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니라 늘 조연 자리에 머무는 카베르네 프랑크다. 생의 변방에서 조연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나름의 깊고 진한 향을 풍기며 사는 중년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과연 마일즈는 두고두고 아낀 이 와인을 언제, 누구와 마시게 될까? 이 질문은 마일즈와 마야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독립영화 찍는 충무로맨 [3]

“관습을 깨는 액션을 보여줄 기회다” 무술 _ 허명행 단련된 전문가가 펼치는 무술스턴트가 깡이나 악으로만 될 리 없다. 류승완 감독의 일련의 초기작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독립영화에서는 차에 부딪히는 장면을 빼고 액션영화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그럴 때면 달려가야 할 곳이 한국무술스턴트의 요람인 서울액션스쿨이다. 무술스턴트 7년차 허명행(26)씨는 국가대표 무술감독 정두홍의 애제자이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김성수 감독의 인터넷 단편 <빽>, <올드보이>의 장도리신,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고깃집신에서 짧은 머리, 동그란 눈의 그를 발견할 수 있다. “툭하면 건달 역으로 출연”해달라는 친구들의 제안으로 인연을 맺은 독립영화는 그에게 “상업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장”으로 자리매김했다. * 어떻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나? 다른 파트와는 달리 무술은 “독립영화에서 스턴트가 필요하다고 액션스쿨로 전화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현실. “상업영화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만드는 독립영화에 참여”하는 반대 수순을 밟은 것도 그런 작업특성이 작용했을 터. 따라서 허명행씨도 친구, 선후배 사이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출연제의에 가까웠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무술스턴트나 무술지도의 방향으로 향해갔다. 액션스쿨 1기인 김권군의 <발차기, 허공을 가르다>를 도왔고, 필감성 감독의 소개로 만난 영화배우 김인권의 졸업작품인 <쉬브스키>에서 무술스턴트를 하면서 그의 얼굴은 서서히 독립영화계에 알려지는 중이다. * 독립영화를 하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많아도 상업영화에서는 제작비나 촉박한 시일 때문에 거절되는 사례가 많다. 독립영화에서는 돈만 제외하면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친한 사람들이고 연령대가 맞기 때문에 논의가 쉽고 정서를 공감하는 것도 빠르다고. 실제 스턴트나 장르적 관점에서는 “상업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덩치 큰 배우들을 쓰러뜨리는 것에 고정되지만, 독립영화에서는 덩치 큰 배우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역발상도 가능”하다. 액션장르의 클리셰를 뒤집고 새로운 액션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독립영화라고 스턴트의 난이도가 낮다고 짐작하는 것은 금물. 배우 유지태가 연출한 <장님은 무슨 꿈을 꾸는가>의 촬영에서 시각장애인이 건널목을 건너다 차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설정임으로 스턴트맨 지중현이 차를 쳐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차와 부딪친 뒤 와이어에 끌려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고난이도의 장면. 머리가 찢어진 상황에서 일곱 테이크나 투혼을 발휘한 선배 지중현을 보면서 와이어를 잡았던 허명행씨의 손에는 땀이 흥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긴장감은 고스란히 판단력이나 현장관리의 경험으로 그의 몸에 새겨진다. * 독립영화에 바란다 “<매트릭스>에서 봤다,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하던데.” 허명행씨가 지적하는 가장 곤란한 상황이다. 연출자들은 다른 영화에서 봤던 것은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것에 투입된 막대한 투자와 시간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는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는 단편영화 연출자들이 과감하게 액션스쿨의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는 사람들하고만 작업하는 상황을 넓히는 것은 가능하므로 연출자들이 활용하길 바란다는 취지에서다. * 필모그래피 상업영화 <쉬리> <무사> <공공의 적> <올드보이> <태극기 휘날리며>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다수 독립영화 <쉬브스키>(김인권), <발차기, 허공을 가르다>(김권군), <죽탱이를 돌려라>(이성태), <장님은 무슨 꿈을 꾸는가>(유지태) 등 다수 “함께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믹싱 _ 김수덕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독립영화의 성장기를 함께한 김수덕(45)씨에게는 독립영화의 친구보다는 ‘대부’라는 호칭이 어울린다. 50여편에 달하는 상업영화, 그리고 1995년부터 만들어진 독립영화의 과반수를 포함하고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대략적인 헤아림도 불가능한 상태. 2003년, 양수리 녹음실에서 홍릉 영화진흥위원회 공공영상기술지원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개설한 사이버기술지원센터(필름이즈: nsc.kofic.or.kr/forum/category.asp) 활성화로 여념이 없다. 웬만해선 거절하곤 하는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 역시, 영화제작 전반에서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됐음에도 여전히 기계와 기술을 어려워하는 독립영화인들에게 이 인터넷 포럼이 실질적인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수줍은 고백이다. * 어떻게 독립영화를 하게 됐나? 그는 1990년 영화아카데미 6기를 수료한 뒤, 영화진흥위원회 녹음실로 첫 출근했다. 당시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여긴 그로서는, 미숙한 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독립영화가 한결 익숙한 작업이었을 것. 이것은 피차 배우는 처지였던 독립영화 감독들도 마찬가지여서 연출의 의도를 최대한 수용하려는 그의 작업방식은 감독들 사이에서 점점 유명해졌고, 언제부턴가 녹음실에서는 독립영화라면 으레 그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이 세세한 단계로 분화되어 있는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는 모든 믹싱 과정을 기사 한 사람이 총괄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단편이라도 집중적인 믹싱기간은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그러나 그는 총체적인 과부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독립영화가 아마추어리즘의 장은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노력을 기울였고, 이것은 다시 스스로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어 주었다, 고 그는 말한다. * 독립영화를 하는 이유는? 상업영화에 비해 독립영화 감독들은 영화 한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게 마련. 김수덕씨는 그러한 “전력투구의 결과물”을 감독과 함께 만들어가면서 한 사람의 교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독립영화작업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1주에서 한달까지 끌게 되는 믹싱기간. 돌이켜보면 영화 속 사소한 장면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의 인생관으로 연결되고, 끼니마다 양수리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수다를 이어가다보면 작업은 뒷전인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절친해진 감독의 작품은 믹싱을 거치면서 한결 발전하고, 완성된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감독은 그 작품을 발판으로 메이저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함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은, 어떠한 경제적 보상도 대신할 수 없는 희열. 그러한 기쁨이야말로, 김수덕씨가 힘겨운 독립영화 믹싱에 계속해서 욕심을 내게 만든 힘이었다. * 독립영화에 바란다 저렴한 작업료 덕분에 수많은 독립영화 일감이 영화진흥위원회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무조건 사적인 관계로 밀어붙이는” 것은 커다란 문제. 현재 어떤 단계까지 믹싱작업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없이 무조건 찾아와 마감기한을 들이밀면서 “일단 뭉개고 보는” 경우는 아직도 허다하다. 현장의 사소한 기술적 실수 때문에 믹싱실에서 다소간의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작품의 방향과 관련한 연출자의 고집이야, 좋은 영화가 나오기 위한 기본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독립영화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막무가내식 작업 요구는, 시스템을 준수하는 수많은 독립영화에 피해가 될 수 있는 ‘절대악’이라고. * 필모그래피 상업영화 <중독> <휘파람 공주> <아 유 레디?> 등 다수 독립영화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대부분, <노을소리>(홍두현) <거칠마루>(김진성)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