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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리버티 뉴스> 제작, 그리고 3D 입체영화 조감독으로 일하기까지

50년 미국 공보원 영화부에서 내가 맡은 일은, 미국에서 제작된 홍보영화를 번역하는 거였어. 순전히 영어 실력이 요구되는 일이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거지. 다큐멘터리를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이었어. 정작 나에게 영화의 길을 열어준 건 미군이 된 셈이야. 그뒤 53년 국제연합한국재건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영화제작의 길로 들어서게 돼. 운크라(UNKRA)라고 하는 한국재건단은 50년 12월 제5차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에 따라 6·25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했던 기구였어. 국제연합 회원국들의 갹출금으로 식량 원조도 하고 산업, 교통, 통신, 의료, 교육시설을 복구하는 게 주요 임무였지. 53년 7천만달러의 기금으로 부흥사업에 착수한 이래, 60년까지 계획된 물자를 원조했는데, 그 실적은 1억2208만4천달러에 달했어. 이 기구의 원조로 건립된 주요 시설로는 인천판유리공장·문경시멘트공장·국립의료원 등이 있었지. 그런 운크라에선 전쟁 직후 한국의 실태를 알리는 다큐와 미군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홍보영화 제작에도 관여했어. 특히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방영되던 <대한뉴스>를 대신해 <리버티뉴스>를 찍기도 했어.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번역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을 따라다니며, 현장의 인력들을 대신 지휘하고, 기술자들에게 카메라, 조명기계 등의 매뉴얼을 번역해주기도 했어. 그러다가 차츰 스크립트도 맡게 되고, 카메라도 만지게 됐지. 일종의 어깨 너머 배운 지식들이야.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처럼 많은 인력이 분담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노력하에 생산됐어. 혼자서 극본을 쓰고, 카메라를 잡는 시스템이었지. 그래서 제작 전반의 지식을 얻는 것이 수월했어. 이곳 저곳을 기웃대며 얻을 필요가 없었던 거지. 그렇게 기록영화로 나 자신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전쟁이었어. 전쟁 직후의 한국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장소였어. 다큐란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 역시 외국의 시각이 아닌 한국인의 눈으로 조국의 폐해를 알리고 싶었어. 내 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든 건 미국의 (Columbia Broadcasting System)와 (National Broadcasting Co.)에서 각각 텔레비전 특파원으로 뉴스와 기록영화를 만들면서부터였어. 전쟁다큐를 찍어 뉴스거리로 제공한 것은 나중에 <대한뉴스> 재개의 시초가 되지. 55년 한국 공보처에 둥지를 튼 나는 <코리안 퍼스펙티브>와 <낙원제주> 등의 홍보영화 제작과 함께 <대한뉴스>를 주관하게 돼. <대한뉴스>와 같은 뉴스영화란 보통 1주일에 1회, 상영시간 10분 이내로 편집·제작된 것으로 정기적으로 영화관 프로로 상영됐어. 텔레비전 수상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의 뉴스영화라 지금은 옛 추억의 대명사가 되버린 <대한뉴스>는 극장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청해야 했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94년 말까지 <대한뉴스>는 한국의 대표적 뉴스영화로 살아남았어. 한국의 전망을 담은 <코리안 퍼스펙티브>와 제주도의 명승지를 한눈에 담은 <낙원제주>는 둘 다 총천연색 코닥필름으로 시도된 거였어. 한국영화로선 최초의 컬러 영상이었지. 코닥필름의 경우, 종전 뒤 구하기 어려운 힘든 물품 중 하나였는데, 다행히 근무하던 곳에서 미군을 통해 정식 절차를 밟아 수입할 수 있었어. 두 영화 모두 필름을 찾지 못해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미국에서 <코리안 퍼스펙티브>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해서 영상원에 보관 중이야. 공보처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나에게 또 한번의 행운이 찾아와. 미국 파라마운트영화사에서 <휴전>(Cease Fire)이라는 3D 입체영화를 만드는데, 조감독으로 발탁된 거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영화제작에 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을 물색하던 중 내가 적격이라는 판단을 내린 거지. <휴전>의 감독은 오언 클램프라는 사람이었어. 내게는 미국영화 신기술과 더불어, 극영화 제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 현장에서 틈이 날 때마다, 스탭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기술을 전수받았고, 기계를 다루는 것도 점점 익숙해질 무렵 영화가 끝났어. 장비를 철수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오언 감독에게서 편지 한통이 날아왔어. “Dear Mr. Lee”라고 시작하는 그의 편지엔 한국에서 영화촬영을 하는 동안 현장의 인력 지휘와 명령의 전달, 그리고 스탭간의 훌륭한 조직력을 이끌어낸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어. 구술 이형표/ 1922년생구술 50년대 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서 군 홍보 및 기록영화 제작구술 미국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뉴스 제작구술 60년대부터 극영화 86편 작업구술 <서울의 지붕밑> <말띠 여대생> <애하> <너의 이름은 여자> 등구술 80년대 중반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관 기획, 설계, 시공 총괄구술 현재 등급위와 진흥위원회에서 활동 중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타투>,모험을 감행하다 모호함만 남다

■ Story 이제 막 경찰학교를 졸업한 신참 슈라더는 밍크 반장에게 꼬투리를 잡혀 억지로 강력계에 들어가게 된다. 린이라는 여자의 죽음을 계기로 연쇄적인 살인 사건들의 전모가 드러나고, 슈라더와 밍크 반장은 문신이 새겨진 인체를 사고 파는 암거래망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던 군첼의 죽음과, 딸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밍크 반장의 자살. 슈라더는 진범을 잡기 위해 마지막 생존자 마야를 미끼로 작전을 펼치지만, 동료는 죽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 Review 썰렁하게 혼자 웃긴 했지만 첫 장면은 그래도 웃긴다. 인육이 뜯겨져 나간 채 피를 흘리며 거리를 헤매던 나체의 여인은 질주해오던 트럭에 받히면서 불에 타 죽는다.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웃음을 유발하다니. 보는 사람의 정신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때때로 잔인함은 폭소를 반응양식으로 비틀어 만들어내도록 작동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그 잔혹함이 건드린 무엇인가의 증후적 반응일 때도 있지만, 이 영화의 첫 씬이 웃긴 것은 이미지를 '한 방에' 디스플레이하고자 하는 감독의 강박적 욕구가 얼핏 도를 넘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들 이래도 안 무서워?' 대답. 물론, 무섭기도 하다. 텔레비전 스릴러물을 만들기도 했던 로베르토 슈벤트케는 하드고어적인 이미지들로 화면을 채우며 음산함을 피워 낸다.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는 이미지들은 냉혈한 살인의 세계를 이루는 대기가 되고, 그 안에 나뒹구는 인체들의 인육과 피는 눈을 찌르기에 충분하다. 어스름한 달빛이 스며드는 생물실을 상상하는 공포가 <타투>에는 있다. 소재의 측면에서 얼른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지만, <타투>는 그런 깔끔한 내러티브를 축으로 하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타투>는 모든 구체성을 상실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그 뒤에 남는 잔여적인 모호함들을 잡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는 부작용도 역시 있다. 인물들의 성격창조는 굳어져 있고, 모티프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결락되어 있다. 그런데도 인물들은 지칠 줄 모르고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고, 굳이 소개되지 않아도 상관없어 보이는 대사들이 내러티브를 파먹는다. 영화 전체가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각 씬에서 표현 수위가 생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엮어진 전체는 약화되는 결말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밤과 낮의 구분이 아닌 푸른 기조와 붉은 반점의 충돌로, 즉 빛이 아닌 색으로 영화를 구성해내고자 하는 <타투>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들이 갖는 일반적인 차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과장된 하드고어적 이미지들 역시, 그 깔끔한 뇌의 충격들을 뒤집어 놓기 위한 구토의 전략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의도들이 구성의 제자리에 박혔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투>는 공포와 범죄의 근원성을 끌어내는 것에 언제나 탁월한 예능을 보여왔던 독일 영화의 역사에 일면 기대어 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헐리우드의 장르적 요소들이 전혀 다른 물적 토대의 장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김형태의 오!컬트 <바보들의 행진>

“이봐 병태야, 너 이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그땐 무얼 할거니?’ 아름다운 햇살이 쏟아지는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영자가 병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영화가 왜 ‘바보들의 행진’인줄 몰랐다가 (몇번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다가 저 대사를 듣고서야 그 이유를 새삼 알게 되었다. 영자가 ‘이담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저 바보들…”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영화속의 병태와 영자보다 훨씬 어렸을 때인 10대때 이 영화를 보았고, 또 비슷한 또래였던 20대때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30대 말년에 또 보게 된 셈인데, 이전에는 병태와 영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래…,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뭘하고 있을까?”라며 맞장구를 쳤었다. 그런데 30대 말년에 ‘지켜보게 된’ 저 대사는 정말 바보같은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시대란 바로 그때 그들의 등뒤로 떨어지던 낙엽처럼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탈당한 청춘도 새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보들아. 청춘의 꽃이 활짝 피다 못해 흐드러져 그 향기가 진동을 하는 나이에,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관통하는 그 순간에, 다름아닌 바로 너희들의 시대였던 바로 그 당장에, ‘이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이라니, 이 바보들아. 이 멍텅구리들아. 왜 청춘은 언제나 탕진하기만 하는 것이냐. 누가 그 달콤한 꿀 같아야 할 나이에 정체도 없는 고뇌와 번민을 싸안고 자학적으로 술을 마시며 보이지도 않는 벽을 향해 몸을 던지라고 유도했더냐. 왜 꿈과 이상은 바라만 보다가 흐트러져 사라지고 마는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야 하더냐. 왜 사랑은 언제나 나중에 멀리서 찾아 올 것으로만 기대하는 것이냐. 어째서 모든 욕구와 꿈과 이상과 간절한 바램들과 절박한 그리움들을 보류하며 지금이 아니면 결코 오지 않을 ‘우리들의 시대’를 기다리는 것이냐. 바보들아. 너희는 속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20대 중반이 되어 버리는데 그때까지 마냥 ‘인생의 준비기간’인줄 알고 그저 참고 견디다가, 열심히 준비만 하다가 어느날엔가 너희의 자식들까지 대학교육을 다 마쳐 주었을 때, 그때서야 한시름 놓고 잡생각이라도 할 여유가 생길 때 아뿔사! 깨닫게 되리라. 제기랄, 우리들의 시대는 20여년전 쯤에 지나가버렸구나. 날새고 노름판 다 끝났는데, “저 아까 아까 광 팔았는데요”라고 말해봐야 광값은 커녕 바보취급만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 값 비싼 인생의 광들을 양손 가득히 쥐고서도 판에 끼어들어 승부를 보기보다 헐값에 팔아버리고도 광값도 못챙길, 너희는 바보들이다. 기득권만 믿고 사는 기성세대는 너희들이 부디 착한 학생신분으로 그 질풍노도같은 혈기와 도전정신을 학교에서, 군대에서, 혹은 깡술이나 마시고 춤이나 추다가 탕진해버리고나서 폐건전지처럼 되었을 때, 입에 풀칠이나 하겠다고 자기들 앞에 머리 조아리고 입사원서 내기를 기다린단 말이다. 그때면 너희가 갈망하던 ‘우리들의 시대’가 시작될 것 같으냐? 바보들아. 그리고 70년대 청년문화가 생맥주와 청바지와 통기타였다는 것은 가증스런 거짓말이다. 그럼 80년대는 브레이크 댄스와 전자기타가 그 시대의 청년문화냐? 이 시대 청년의 고뇌는 컴퓨터게임과 핸드폰이냐? 더러운 위정자들의 대변인들아. 그 가련한 청춘들을 고작 통기타와 생맥주와 청바지라는 싸구려 낭만에 흥청거렸을 뿐인 바보들로 날조하지 마라. 동해바다에 몸을 던진 절망의 청춘이 과연 그것 때문이더냐? 그가 잡아오겠다던 고래가 고작 맥주안주였더란 말이냐?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

<턱시도>로 스필버그와 돌아온 성룡 “진짜 드라마 있는 영화가 꿈이에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거리, 75년 된 차이니즈 극장에 은은한 불이 들어왔다. 박스오피스 정상을 노리는 할리우드의 중요 블록버스터 첫 시사회가 열리는 밤이면, 수백m 도로가 차단되고 포토라인이 쳐지는 곳이다. 지난 18일 저녁에도 양쪽 도로를 메운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키! 재키!” 20여년 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던 홍콩의 배우 재키 찬(청룽, 성룡)이었다. 스필버그 “당신에겐 ‘턱시도’가 딱이다” “어제 영화 재미있었어요” 19일 한국기자들을 만난 재키는 “영화를 만들면 아시아 팬들의 반응부터 궁금하다”며 한국어로 인사말(물론 그 이상은 힘들다)을 건네왔다. 그의 이번 영화는 드림웍스의 <턱시도>다. 로스앤젤레스의 ‘총알 택시’ 운전사 지미 통은 정보기관 최고의 비밀요원 클락 데블린의 운전수로 스카웃된다. 전자동 방어시스템이 갖춰진 신비로운 ‘턱시도’가 데블린의 비밀병기다. 몸으로 하는 재키의 액션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이 적잖이 등장하는 <턱시도>가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재키 찬이 보여주는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와 춤, 특유의 무술 연기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전화를 해왔다. 만나러 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스필버그가 ‘내 아이가 팬’이라며 사인부터 해달라더라. 사인을 해주며 ‘어떻게 공룡과 사람이 함께 걸어다니는 영화를 찍냐’고 물어봤더니 ‘굉장히 쉽다, 이 단추 저 단추 꾹꾹 누르면 된다’고 대답하는 거다. 이번엔 스필버그가 ‘재키, 당신은 어떻게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날아다니며 연기를 하느냐’고 묻길래 ‘그건 더 쉽다, 롤링! 액션! 점핑! 컷!이 전부’라 말해줬다.” 4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너지와 유머가 넘쳤다. “스필버그가 멋진 아이디어가 있는데 ‘턱시도’가 나에게 딱이라 말하더라. 처음엔 입는 턱시도인 줄 알았다.” 동양의 꼬마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6살 때 경극학교에 들어가 스턴트맨이 될 운명이었던 그는 ‘제2의 리샤오룽(이소룡)’으로 영화계에 들어와 그의 액션 연기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70년대 후반 이미 아시아의 스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81년 <캐논볼>을 위해 할리우드에 왔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동양의 꼬마’였다. “홍콩에서 왔다 하면, 일본의 한 지역이냐 물을 정도였다. 어쩌다 알아보는 사람은 여자친구가 중국인이라 당신의 영화를 봤다는 사람 정도였다.” 홍콩으로 돌아가 그는 <프로젝트 A><폴리스 스토리> 등을 꾸준히 자기식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95년 <홍번구>는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첫 홍콩영화가 되었다. “이젠 ‘재키 식 영어’를 해도 할리우드가 먼저 날 부른다. 실패 이후에도 재키식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든 것, 그것이 내 첫번째 성공요인이다. 또 다른 요인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미국의 새로운 세대들이 어려서부터 내 영화를 비디오로 본다는 점이다.” 영화 뿐 아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미국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재키 찬 어드벤처>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다. “언제나 변하고 싶다” 요즘 그의 활동은 연기와 제작쪽으로 중심이 옮겨져 있다. “감독을 맡으면 일단 시간이 걸린다. <미라클> 찍는데 1년 반, <프로젝트 A>는 9개월이 걸렸다. 배우를 하면 1년동안 3편은 찍을 수 있다. 난 더이상 젊지 않다. 은퇴하기 전 더 많은 영화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물론 꿈이 있다. 진짜 드라마가 있는 영화를 하는 것이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나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도 왜 못하겠는가. 물론 죽어도 해안가에서 여자들과 슬로우 모션으로 뛰어다니며 키스하는 영화는 못 찍겠지만….” 그는 “변하고 싶다”를 반복해 말했다. 뉴욕에 가서 앙리(이안) 감독을 만나고, 베이징에 가 장이모우 감독을 만나 새 영화를 의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폴리스 스토리 1, 2, 3… 관객들은 좋아하지만, 나에겐 너무 괴롭다. 나는 변하고 싶다. 이번에 <턱시도>지만 차기작 나 <샹하이 나이트>는 또다른 캐릭터다.” 재키의 소박함과 에너지는 만나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마력과 같은 듯 했다. <턱시도>의 케빈 도노번 감독과 주인공인 제니퍼 러브 휴잇도 인터뷰 내내 재키의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스튜디오와 예산과 일정문제로 감독이 힘들어하면 재키는 감독에게 “힘내라”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부모잃은 자매 웃어도 웃는게 아니지 <작별>

낡은 사진첩 속의 얼굴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모노톤의 인물들에 색이 입혀지며 영화가 시작된다. 사진첩 속의 단란하던 일가는 갑자기 닥친 자동차 사고로 산산조각 난다. 부모와 막내를 잃고 세상에 내던져진 열일곱 살의 메메(잉그리드 루비오)와 여덟 살의 아네타(히메나 바론) 자매는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빌라 빅토리아를 떠나 두 고모가 살고 있는 우루과이로 간다. 사고로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하는 메메는 고향을 떠나며 “이 빌어먹을 동네에 다신 오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아홉 살 터울의 메메와 아네타 두 자매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행복했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아네타는 늘 가족 사진첩을 끼고 다니며 펼쳐보는 게 일이다. 그럴 때마다 언니 메메는 “사진 좀 그만 봐, 다 죽은 사람들이야!”라고 구박한다. 언니로서 엄마 노릇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메에겐 오히려 과거를 직시할 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메는 아기를 낳는 게 소원이다. 추억의 힘에 기대 살아가느니 빨리 사랑을 찾고 아이도 낳고 새로운 삶을 가꾸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웃 청년이든 유부남이든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메메의 구애는 늘 상처만 남기고 실패로 끝난다. “불완전한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이라는 메메의 말처럼, 영화는 너무 어린 시절 남다른 상처를 안은 두 자매가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고모네 집에 얹혀 살다 우연히 만난 엄마의 친구 돌로레스(노르마 알레안드로) 덕분에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을 맛보지만,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메메는 유산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 술과 담배로 스스로를 학대한다. 사고 때 폐 하나를 잃은 메메에게 흡연은 자살행위와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 속내를 감추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특히 메메의 밝은 미소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신산함을 알아버린 주인공이 복잡한 내면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마지막 자막이 뜰 때 나오는 노래 호안 마누엘 세라트의 <내가 기억하는 작은 것들>은 영화를 보며 감상에 젖길 즐기는 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히 애닯고 서정적이다. 지난 96년 산세바스찬 영화제에서 스페인 영화 <가을의 태양>으로 주목을 받은 에두아르도 미뇨냐(62)는 소설가로 출발한 아르헨티나 감독. 지난 83년 <에비타, 민중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그녀>란 작품으로 데뷔한 뒤 텔레비전 프로듀서로 경력을 쌓았다. <작별>(원제는 ‘남쪽의 등대’)은 그의 98년 작품으로, 스페인어 영화권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고야상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7일 개봉. 글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O.S.T

시사회장에서 안내를 맡은 분이 ‘장선우라는 이름을 지우고 영화를 보라’고 주문하여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그게 잘 안 된다. 장선우라는 이름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임이 분명하다. 성냥팔이 소녀는 총을 들고 게임 속에 재림하여 호접지몽의 사상을 몸으로 살고 열린 내러티브, 열린 결말 속으로 사라졌다. 이 어찌 장선우답지 않다 하겠는가. 이 영화는 후진 현실을 뒤엎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총질한다. 아니, 최소한 ‘야, 이거 시적 아름다움 맞지?’ 하고 자기 거울에다가 되뇐다. 음악은 여전히 달파란이 맡았다. 그간 장선우 영화에서 달파란이 해낸 역할은 상당하다. ‘싸구려틱한 샘플’들을 가져다가 뭔가 세련되고 알뜰하며 정확한 방식으로 다시 엮는 특유의 ‘뽕테크노’는 <나쁜 영화> 이후의 장선우 영화에서 중요한 코드로 작용해왔다. 물론 지난 영화들과 이번 영화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음악도 그에 걸맞게 달라진다. 지난 영화들이 일상의 진부함과 벌거벗은 인간성을 적나라한 화면에 담는 ‘산문적’인 의식의 작업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그 헐벗은 절망이 장자적인 상상력과 만나 고통을 털어내는 ‘시적’인 연금술의 과정이 덧붙여져 있다. 그 과정이 영화 전체를 통해 성공했는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음악에 관한 한 그러한 과정이 비교적 일정한 성과를 낸 것 같아 보인다. 지난번까지는 뽕짝의 두 박자 리듬을 하우스의 두 박자 리듬과 개념적으로 겹꿰매면서 줄줄이 소리들을 재단해나갔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물론 이박사나 남대문 시장 유의 ‘히, 히’ 하는 외침을 코러스로 쓰는 일도 여전히 마다않는다. 다시 말해 싸구려를 포용하는 시도는 여전하다. 그러나 두 박자의 리듬을 벗어나 약간은 정글이나 빅비트의 리듬 쪼개기를 떠올리게 하는 펑키한 그루브를 기본 박자로 도입하는 시도가 보인다. 또 국악이나 기타 민속음악적 리듬에서 차용한, 약간 무당기가 서린 리듬들을 도입하기도 한다. 불교음악에서 차용한 대목도 보이는데, 그건 아마도 장선우 감독의 주문을 많이 반영한 것이리라. 게다가 케미컬 브러더스 류의, 샘플된 스트링을 과감하게 기름진 테크노 리듬과 섞어돌리는 방식도 보인다. 라운지적인 데도 있고. 이번에 특히 돋보이는 건 달파란의 ‘서정성’이 추가되었다는 점. 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모든 음악적 재료들이 테크노적 방법을 통해 버무려진다. 사이키델릭한 키보드와 노이즈와 어울리며 때로는 B급영화의 펑키한 테마들로, 때로는 시적인 꿈들로, 싸구려 오락실의 테마로 변주된다. 달파란의 테크노는 이제 스타일화의 경지에 도달하는 듯하다. 달파란은 송곳이다. 딱 필요하다 싶은 자리에 다트놀이 하듯 리듬을 팍! 꽂아넣는다. 리듬이 복잡해졌다고 해서 너저분하게 들리진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특이한 대목 중 하나는 강타가 달파란의 곡에 노래를 했다는 점. 아예 강타는 거의 뮤직비디오처럼 영화의 3분 정도를 완전히 자기 코너로 만들고 있다. <나쁜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든 장선우 감독의 영화에 강타가 등장한 것은 왠지 뜻밖. 노래도, 달파란의 곡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타스럽다. 케이블 텔레비전 같은 데에는 이 노래가 O.S.T의 타이틀 곡으로 홍보되겠지?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MBC 선정적 화면 가장 많아

MBC가 방송3사 가운데 올 여름철에 신체노출 및 신체접촉행위 등의 선정적 장면을 가장 많이 방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하윤금 책임연구원은 지난 8월19~25일 「지상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선정성 분석」에 관한 모니터 보고서를 25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19~25일 평일 오후 5시 이후와 주말 종일 KBS1,KBS2,MBC,SBS의 전 프로그램(스포츠 제외)을 대상으로 선정성 빈도를 조사한 결과, 총 690건의 선정적 장면 중 MBC와 KBS2가 각각 213건과 211건을, SBS가 202건, KBS1이 64건을 방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정성은 신체노출과 선정적 동작, 신체접촉행위 등으로 나누어 조사됐다. 선정적 장면수가 가장 많은 프로그램은 조사 기간에 해외의 누디스트 생활을 다뤘던 MBC <와! e멋진세상>(28건)이었고, KBS 2TV 영화 <식스데이 세븐나이트>(25건)와 MBC <섹션TV 연예통신>(22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섹션TV …>(3위), KBS2 <연예가중계>(5위)등 연예정보프로는 특정 연예인의 출연 드라마 중 자극적인 장면만 모아 반복해서 보여주는가 하면 MC와 패널, 리포터들의 옷차림에서도 여성의 과다 노출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4위), KBS2 <영화 그리고 팝콘>(7위), SBS <접속무비월드>(11위) 등 주말 오전 시간대 방영되는 영화 정보 프로그램도 정사 장면 등 가족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선정적 화면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프로그램 장르별로는 드라마(54건), 시트콤과 오락버라이어티(24건), 영화(12건) ,뉴스(11건) 순으로 선정적 장면 빈도가 높았다. 특히 신체노출이 이뤄진 장면 총 359건 중 여성의 노출이 252건(70.2%)에 달해 여성의 신체가 TV프로그램에서 선정적 소재로 이용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비디오, 주말에 뭘 볼까

챔피언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챔피언 레이 맨시니에게 도전했다가 사망한 복서 김득구의 삶을 그렸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김득구는 막연한 성공의 꿈을 안고 상경해 보따리 장사로 전전한다. 권투 명문 동아체육관의 김현치 관장과 우연히 만난 그는 권투선수로 입문해 빠르게 성장한다. 체육관 아래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애인 경미에게 챔피언 벨트를 매고 돌아온 뒤 결혼하자고 약속하며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곡을 비롯해 촌스런 운동복, 바가지 머리 등으로 드러나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복고적 분위기가 감독의 전작 <친구>와 비슷하다. 곽경택 감독. 엔터원, 25일 출시. 미션 바라바 텔레비전과 책으로도 소개됐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국인 아내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야쿠자 출신 나카지마 데쓰오의 실화가 바탕이다. 산세가이파와 나카모리파의 대결 속에서 각각 중간 보스 격인 유지와 시마는 오히려 자신의 조직에 쫓기는 신세들이 된다. 이들에겐 한국인 아내가 있다. 은둔생활을 하며 방황하던 유지는 교회를 통해 새 삶을 찾고,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죄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일본종단 십자가 행진에 나선다. 유치한 감정표현도 있지만, 두 야쿠자들의 팽팽한 긴장감과 내적 갈등을 잡아내는 연출은 매력적이다. 한국인 아내 역으로 나영희·윤유선이 출연했다. 사토 고우이치 감독. 인피니티, 30일 출시.

주먹세계 오야붕은 연기도 오야붕, <야인시대>서 구마적 열연 이원종씨

에스비에스 드라마 <야인시대>(월·화 밤 9시55분)가 35%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야기는 김두한(안재모)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는 드라마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균형추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구마적을 맡은 이원종(37)은 주먹뿐만 아니라 두목으로서의 통큰 통솔력을 선굵게 연기해 드라마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의 한 극장 근처에서 최근 그가 출연한 영화 <남자 태어나다>의 시사회가 끝난 뒤 그를 만났다. 사실 손가락이 좀 굵어 손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좀 크다는 점을 빼고는 그에게서 `조선 주먹의 오야붕’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청바지와 검은 재킷차림에다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인 것은 극중에서와 같은 두툼한 궐련이 아닌 가는 담배였기 때문이다. 구마적이 본 ‘구마적-쌍칼-하야시’=구마적은 아주 정치적인 인물이다. 그는 김두한이 등장하기 전 강한 주먹과 포용력을 두루 갖춰 10여년간 주먹세계의 ‘오야붕’으로 군림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최근 야쿠자와 손잡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야시의 마수에 걸려 발을 잘못 내디딘 것이다. 이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은 나중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 쌍칼은 참으로 멋진 인물이다. 성급하게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던져 깨지지 않았더라면 구마적의 후계자로 삼을 만하다고 본다. 하야시도 제대로 된 건달이다. 안하무인적인 신마적은 오히려 구마적의 정치성을 잘 드러나게 한다. 신마적이 구마적 앞에서 막되먹은 행동을 해도 구마적이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액션연기 어렵지 않나=쉽지 않다. 매일 운동을 할 수도 없고 기본체력으로 버티는데 점점 힘들어진다. 다행히 드라마에서는 실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두번밖에 없다(그는 `오야붕’으로 그동안 싸울 일이 없었다). 지난번 쌍칼과의 대결장면을 뒤에 모니터해보니 많이 아쉽더라. 연기인생과 가족=대학재학중이던 86년 극단 `미추’ 입단으로 시작해 마당극 등 연극을 30여편 했다. 텔레비전은 `용의 눈물’로 데뷔해 <왕과 비>, <야망의 전설>에 출연했다. 영화도 <달마야 놀자>, <신라의 달밤>, 이번에 섬마을의 코믹한 권투선생역을 맡은 <남자 태어나다> 등 10여편 출연했다. 연극은 내 연기인생에서 `젖줄’이자 `삶을 돌아보는 공간’이다. 지금도 1년에 1편씩 꾸준히 출연하려 하고 있다. 아내 김영화는 국악방송(99.1㎒)에서 <우면골 상사디야> 진행을 맡고 있다. 그리고 큰딸은 7살, 작은딸은 다음달 12일이 돌이다. 오셔서 축의금 좀 내고 가시라. 이원종은 최근 인기 바람몰이를 하면서 유명세도 많이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길 가다 아는 체하며 사인을 부탁하는 팬들 때문에 때론 “불편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다음달 4일 경기 부천 세트장에서 <야인시대>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김두한과의 마지막 결투장면을 찍는다. 주먹세계에서 진자는 말없이 떠나듯 시청자가 그를 볼 날도 머지 않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레니 리펜슈탈 49년 만의 신작 다큐 <해저의 인상>

독일 파시즘 선전영화의 대표적 인물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추앙과 질책을 동시에 받아왔던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지난 8월에 100살을 맞았다. 여인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가장 말썽 많았던 인물”답게 숱한 화젯거리를 만들면서 미디어의 여파를 계속 타고 있다. 우선 독일에서만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쥐트도이치 차이퉁> <디 차이트> 등 일급 신문에서부터 <보그> <안나벨> 등의 대중 여성잡지에 이르기까지 100주년 생일을 배경으로 큼직큼직한 기사가 나갔고 독일의 제1, 제2 국영 텔레비전과 아르테는 물론 지방 방송사들이 서로 다투어 특집 프로그램을 짜서 여러 차례 방영했다.그 밖에도 그와 관련된 전기, 사진집들이 새로 출간되고 그의 영화에 대한 글과 회고전이 여러 곳에서 발표되는 등 그야말로 리펜슈탈 증후군이 퍼지고 있는 와중에 100살 노인이 ‘세상을 위한 선물’을 내놓아 또 하나의 화제가 됐다. 선물의 내용물은 9월 초 베를린에서 초연된 신작 다큐멘터리 <해저의 인상>으로 리펜슈탈이 1956년 영화작업을 중단한 뒤 49년 만에 다시 연출한 것으로서, 71살 때 스쿠버다이빙 시험을 통과하고는 2천번이나 바닷속을 드나들며 30년에 걸쳐 끝마친 현대판 오디세이 작품이다.스위스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의 일부를 봤지만, 무거운 산소 호흡기를 달고 지중해의 깊은 바다 밑에서 물고기떼들을 따라다니며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감독의 얼굴엔 어떤 비장한 결의마저 엿보였고, 영화에 대한 집념 또한 대단해 몇 십년 동안 찍은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집에서 혼자 편집했는데, 이 영화에 자신의 명예를 걸고 있는 듯 작업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것 같다.리펜슈탈은 작품 동기에 대해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1965년 연설 가운데 ‘나에겐 꿈이 있다’를 인용하면서 “내 꿈은 지구의 자연 보존이며 나는 70년대 초부터 녹색운동 그린피스의 회원”이라고 했다.동기야 어쨌든 리펜슈탈은 <해저의 인상>을 들고 영화감독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어쩌면 정치와 상관없는 ‘비전’의 영화를 만들어 과거의 누명을 씻고 다시 감독으로서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 않는 듯하다. 독일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봐서 리펜스탈에 대한 경계심이 그렇게 쉽게 늦추어질 것 같지 않고, 한동안 그토록 푸짐했던 언론 프로그램도 따지고보면 인간 리펜스탈보다는 이제 몇 남지 않은 나치정권의 심벌로서 더 관심을 끌었던 게 사실이다. 예상대로 감독의 나치정권 협조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와 더불어 예술의 창조적 자유와 감독의 사회모럴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여론을 들끓게 했다.그런 상황에서도 리펜스탈은 조금도 자성하는 낌새를 보이지 않은 채 한결같이 "나는 나치 당원도 아니었고 나치 이데올로기를 따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내게 중요한 건 영화의 형식미고 내용엔 관심이 없다.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는 히틀러의 위탁으로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난 그 때문에 숱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라는 이미 너무도 잘 알려진 무죄 주장을 반복했고, 여인의 뻔뻔함에 분노한 언론쪽에선 리펜스탈을 대고 “동침을 못했던 히틀러의 연인(<슈피겔>), 홀러코스트 경고 기념물(<디 차이트>), 파렴치한 인간(<팍트>)” 등의 악평을 퍼부었다. 그리고 런던의 일간지 <디 인디펜던트>는 “리펜스탈이 나치 과거를 파묻기 위하여 마지막 시도로서 물고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리펜스탈은 자신의 과거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자기는 전후 50건의 법적 소송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지로는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빈틈없는 전략의 결과다. 예를 들어 히틀러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춤을 췄다는가, 아돌프 아이히만을 위해 집단수용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비방이 사실이 아님이 판명된 정도다. 그와 달리 리펜스탈은 1969년에 나치 시기에 나온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용권 신청을 했으나 판사로부터 무효 판결을 받았고, 최근에 리펜스탈의 거짓말이 폭로되는 사건이 터져 지금 법적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리펜스탈은 1940∼44년 사이에 <낮은 땅>을 만들면서 집시들을 단역배우로 썼고 이들 거의가 나중에 집단수용소에서 죽었다. 그럼에도 리펜스탈은 올 4월에 어느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자신의 영화에 협조한 덕분에 안 죽고 모두 살아 남았다고 했는데, 그게 유가족들의 소송으로 거짓말임이 드러났고 리펜스탈의 입에서 처음으로 용서를 비는 말이 나왔다. 리펜스탈은 언젠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공격에 분노하여 “나는 기자들의 공격에 죽임을 당하여 유령이 됐다”고 했는데, 리펜스탈의 유령 현상에 대해 영화평론가 엘리자베스 부론펜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리펜스탈은 창조면에서는 세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오늘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데가 있다. 문제는 여인의 꺾일 줄 모르는 자가당착이며 그로 인해 생기는 역사에 대한 왜곡을 우리는 받아줄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내 여론과 아옹다옹하는 사이에 리펜스탈을 지지하는 단체나 개인이 9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갈수록 늘고 있다. 리펜스탈은 <프랑크푸터 룬트샤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언론은 아주 긍정적이다. 조디 포스터, 스티븐 스필버그, 마돈나가 나의 삶을 영화화하고 싶어하고 나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고 하면서 현재 자기 영화는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 일부 여성 언론·영화인들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리펜스탈의 삶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이름난 페미니스트 언론기자 엘리스 쉬바르저는 “살인적인 시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리펜스탈은 오늘 틀림없이 20세기의 천재 여성감독으로 인정받았을 텐데, 독일 국민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도 히틀러에 홀렸던 것인데 그들과 다른 점은 히틀러도 리펜스탈에 홀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독일의 페미니즘 영화감독 헬마 산더 브람스는 “리펜스탈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50년이 지난 뒤에도 그의 영화를 배척하는 독일 지성계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면서 남성평론계에 항의 질문을 던졌다. 또 미국 웨슬리언 칼리지의 영화학 여교수 지닌 베이싱어는 만일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를 남성이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그리피스 다음가는 유명 감독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대학의 저명한 영화학과치고 리펜스탈의 작품을 사용하지 않는 데가 없지만 감독의 이름은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고 공정치 못한 학계의 현실을 비평했다.그런가 하면 할리우드의 배우 출신의 감독인 조디 포스터는 “20세기에 어떤 여성도 리펜스탈처럼 비방과 찬사를 받지 못했다. 그는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여성이 될 재능을 갖고 있다”며 리펜스탈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들 예정이며 연기와 연출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여성 수필가 수잔 손탁은 리펜스탈의 영화는 파시즘의 미학을 기본틀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의 미화, 건강한 신체의 강조, 흠 없애기” 등을 예로 들었다. 바젤=임안자/ 해외특별기고가▶ 리펜스탈의 다섯 조각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