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70년대,영화의 경쟁자는 TV가 되었지˝

<맹물로 가는 자동차>에 이어 개봉한 <속 이별>(1974)은 선 굵은 외모에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던 패티 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였어. 그녀의 경력 중 유일무이한 스크린 나들이일 텐데, 여배우의 서구적인 마스크를 잘 살려내기 위해 나 역시 카메라 구도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었지. 딸을 키우며 혼자 살아가는 인기 여가수가 죽은 남편의 고향을 찾았다가 자유분방한 아내 때문에 고민하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실은 바로 전해에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이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어. <이별>이 크게 히트를 하자, 내용과 캐릭터는 다르지만, 제목을 그대로 따온 거지. (웃음) 물론 신 감독도 흔쾌히 허락을 했고. 60년대 후반을 거쳐 70년대 들어서면서, 아줌마 관객을 텔레비전에 뺏긴 영화계는 젊은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어. 60년대 후반에는 중앙의 5개 라디오 방송국이 방송한 연속극의 총수가 한해 160편에 달했고, 치열한 청취율 싸움이 벌어진 바 있지. 특히 1966년 MBC가 가을 개편 때 신설한 <전설 따라 삼천리>는 해설을 맡은 성우 유기현의 독특한 목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으로 10여년 동안 MBC 라디오의 대표주자였어. 더구나 당시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있던 시점이라 라디오 연속극은 쓰기만 하면 대본이 영화로 팔려나가고 인기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방송도 되기 전에 영화사에서 제목만 보고 계약을 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났지. 당시 충무로의 ‘시사통신사’(時事通信社)는 영화, 방송 등 문화·연예계에 정통한 통신사로 알려져 있었어. 시사통신에 방송사에서 기획하는 다음 연속극의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는 고정란이 있었는데 여기 소개된 작품 내용만 보고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작가들을 찾아다녔어. 1967년은 라디오 드라마에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열풍이 몰아친 해로, 동아방송의 <조선 총독부> <태평양전쟁>과 동양방송의 <광복 20년> <근세 대한 백년>, 문화방송의 <북한 7,300일>, 기독교 방송의 <한국 기독교 70년사> 등 다큐멘터리 드라마 경쟁이 본격화됐지. 이같은 현상은 그뒤 MBC가 개국하고 점차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라디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인식되면서 더욱 성해졌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968년은 라디오 연속극이 범람한 해야. 이 해를 정점으로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텔레비전 연속극 시대가 열리면서 라디오 연속극은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지지. 그동안 전성기를 누려온 라디오라는 음향매체에서 70년대 들어서 텔레비전이라는 영상매체로 넘어가는 결정적 시기를 맞은 것이야. 텔레비전 일일극이 방송의 꽃으로 자리매김하는 일대 전환점이 마련되는데, 그 계기를 제공한 것이 1970년 3월2일부터 TBC에서 9시40분에 방영하기 시작한 임희재작 <아씨>였어. 자기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간 한 여인의 한평생을 통해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을 그린 <아씨>는 다음해 1월까지 253회에 걸쳐 방영되면서 텔레비전 단일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지. 초창기 일일연속극들이 대부분 20∼30회로 횟수가 제한되던 관례에 비하면 <아씨>의 방영 횟수는 기록적인 것이었어. 이 드라마의 선풍은 텔레비전 3국이 1971년에 하루 3편, 1972년에는 하루 4편의 일일연속극을 제작 방영하는 일일연속극 전성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 이런 분위기에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제작자들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젊은 관객의 시선을 끌고자 했지. 그렇게 등장한 영화가 바로 <고교얄개>(1977, 석래명 감독), <괴짜만세>(1977, 이형표 감독) 등의 이승현표 하이틴영화‘얄개 시리즈’와 전영록 등의 인기 가수가 직접 등장하는 <미인>(1975, 신중현·이남이 주연), <제7교실>(1976, 임예진·전영록 주연), <너무 너무 좋은 거야>(1976) 등이 마구 쏟아지게 되지. 거기에 난 누구보다 빨리 적응한 거고, 제작자들이 가져다놓는 고만고만한 비슷한 기획들에 파묻히는 꼴이 됐어. 그러나 그러한 청춘물의 제작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 것일 뿐 나의 사상이나 취향과는 상관없었지. 구술 이형표/ 1922년생구술 50년대 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서 군 홍보 및 기록영화 제작구술 미국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뉴스 제작구술 60년대부터 극영화 86편 작업구술 <서울의 지붕밑> <말띠 여대생> <애하> <너의 이름은 여자> 등구술 80년대 중반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관 기획, 설계, 시공 총괄구술 현재 등급위와 진흥위원회에서 활동 중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좋은` 영화 <아이 엠 샘>이 오싹한 이유

<아이 엠 샘>은 못났지만 사랑스러운 애인 같다. 7살짜리 지능을 가졌다는 샘(숀 펜)이 이끄는 대로 132분 동안 따라다니다보면, 샘의 등 뒤에서 팔을 내밀어 그를 안고 넥타이를 매듭지어주던 리타(미셸 파이퍼)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마음 깊은 곳을 만지는 따뜻함. 우린 그것을 얼마나 바랐던가. 이처럼 따뜻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정서적 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짜여진 영화적 힘으로부터 온다. 우선 소재가 특이하고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 아버지가 어머니의 도움없이 어린 딸을 키운다는 설정 자체가 공감과 연민을 끌어들일 여지가 많다. 이러한 플롯을 선명하고 풍부한 스토리라인으로 증폭시켜가면서 관객의 감정과 여유있게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재능 혹은 할리우드의 노련미라고 해야 할까.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1- 입체적이고 윤기 흐르는 캐릭터 플롯 지향적인 영화가 대체로 캐릭터를 정형화하기 쉬운 데 반해서, 이 영화는 상당수의 인물들에 다면적인 입체감과 윤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샘이 있다. 무언가 심하게 부족해 보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한 영화가 모두 그렇듯이, ‘정상’적인 관객은 샘이 가진 결핍을 은근한 경멸이나 연민 혹은 재미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점차 그의 내면적 가치에 동화되고 급기야는 정상인 자신의 비정상성을 성찰하게 된다. 그저 무관심하게 스쳐지나왔을 어떤 존재들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편견 가득한 시선을 역전시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아이 엠 샘>으로부터 감동받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샘의 캐릭터는 첫 번째 장면부터 효과적으로 설명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습득된 규칙대로 익숙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 규칙 안에서라면 샘은 유능하고(!) 평화롭다. 스타벅스의 커피잔과 설탕을 느리지만 정성껏 제자리에 둔다든지, 누가 어떤 주문을 해도 항상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라고 말하는 일을 8년 동안 싫증내지 않고 계속하는 데는 아마도 샘이 1등일 것이다. 감탄스러운 일은 또 발견된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비관하지 않고 놀랍게도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우리가 샘과 더불어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한다면, 오직 그가 계산대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덧셈과 뺄셈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 몇초간의 인내심 정도만이 필요할 뿐이다. 결정적으로 샘은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조건없는, 아니 조건을 알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조건없는 사랑은 인간의 영혼 혹은 신성의 본질이라고 한다. 지능이 낮은 모자란 샘이라고 제시 넬슨 감독은 비틀스의 목소리를 빌려 대답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야(All you need is love). 숀 펜은 샘이라는 시나리오상의 인물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데에 각별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정신지체 성인의 보디 랭귀지를 완벽하게(우리가 보기에는) 구사할 뿐만 아니라, 제한된 육체 안에 깃들어 있는 고결한 영혼의 느낌까지도 전달한다. 그는 <데드 맨 워킹> 이후 신뢰할 만한 배우로서, 9·11 테러를 성찰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양식있는 인사로서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샘의 세계를 떠받치는 배우들의 앙상블도 재미있다. 광장공포증을 가진 피아니스트 애니(다이앤 위스트)를 비롯해서 실제 장애를 가진 두 연기자를 포함한 다섯명의 친구들이 지원 그룹을 이룸으로써, 샘을 이색적이고 어쩌면 완벽한 양육자로 만들어준다. 슬픔을 이해하고 있는 총명한 아이 특유의 얼굴을 지어 보이는 루시(다코타 패닝), 잘난 상사에게 기가 눌려 있지만 속으로는 결코 존경할 수 없는 어린 비서 등 상당수의 캐릭터가 각각의 자리에서 어떤 뉘앙스를 발한다. 체면 때문에 샘을 돕게 되는 여성 변호사 리타 해리스는 샘의 세계를 가장 극적으로 대조되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통해 <아이 엠 샘>은 가정은 소중하다는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가정은 소중하다는 진일보한 생각을 전달한다. 특히 리타가 법정에서 반대편 증인을 심문할 때 “당신은 자식을 키울 때 혼란스럽고 무기력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느냐”라고 던진 질문은 우리의 도도한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일격이다. 감독과 작가가 폭넓은 사례 조사를 통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장애를 가진 부모들을 거듭 만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일반적인 지성이란 의미에서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성격이 개방적이고 자신들이 성취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녀 양육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고결성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2- 오! 비틀스 촬영과 편집 역시 멜로적인 호소력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극영화와는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샘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려는 듯 여백과 단절이 많은 장면 설정과 촬영, 배우와 촬영감독 사이에 카메라 이외의 모든 기계장치를 배제하기, 콘티뉴이티 커팅(continuity cutting)이라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편집방식을 파괴하고 캐릭터의 감정적 기복을 따라가는 구상적이며 실존적인 편집 등이 한데 모여 밀도 높은 에너지를 구축하고 있다. <아이 엠 샘>은 또한 주인공 샘이 비틀스 강박이라는 설정을 빌려 영화 전편에 걸쳐 비틀스의 노래들을 멋지게 깔아놓는다. 하늘과 땅에 있는 다섯명의 비틀 역시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이 소외된 인간의 실존과 사랑을 이토록 일관되게 옹호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까. 특히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 이어 두번이나 최고의 비틀로 칭송된 조지 해리슨의 기쁨은 더 클 것이다. 그외에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부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성공적인 대중영화에 대한 계속된 인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레인맨>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제8요일> 등은 단순한 인용이나 추억의 차원을 넘어서 이 영화에 직접적인 영감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싹한 이유- 왜 여성의 무능에 대해서는 그렇게 잔인한가 <아이 엠 샘>에 대한 경탄은 여기까지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 훈훈한 이야기의 한켠으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듯한 찬 기운도 아울러 흐르는 것을 느낀다. 우선 익숙한 이야기부터. 리타 해리라는 여성 변호사가 맡고 있는 진부한 역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리타는 미셸 파이퍼의 이미지에 기댄 전형적인 스타 캐스팅인데, 조지오 알마니 옷을 떨쳐 입은 일중독자로서 한번도 좌절해본 적이 없는 출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들의 사랑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척하고 성질이 급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체면을 중시 여기며 권력 지향적이다. 그는 샘 앞에 눈물로 참회하고 아들과 함께 운동회에 나타남으로써 드디어 구원받는다. 지능이 부족한 샘이 스타벅스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딸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영화가, 왜 육아의 어려움 속에서 일하는 여성의 ‘무능’에 대해서는 이토록 잔인할까.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는 아직도 끈질기다. 여성이 하얀 레이스가 달린 에이프런을 두르고 남편과 아이를 시중드는 소시민 가정의 중요성을 옹호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을 무언가 결핍된 존재로 가정한 채 공격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안에서도 쉼없이 저질러지는 상투적인 편견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감행하는 무서운 이데올로기 공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 엠 샘>이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샘과 그의 친구들, 마지막에는 유능한 리타 해리스 변호사까지 가세하여 공격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바로 사회보장제도다. 아동보호소나 법원이 정하는 양부모 제도 같은 것들은 정상적인 가족 구성이 불가능한 수많은 무너진 가정들을 사회적으로 보완하려는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좌파의 입지가 극히 적은 미국사회에서 이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인 정책가들과 소수의 인권운동가들이 험난한 정치적 역정을 통해서 달성한 것이고, 이는 미국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인권 국가로서의 지표다. 그런데 <아이 엠 샘>에서 샘의 가족을 고난에 빠뜨리는 어리석고 냉혹한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면, 이러한 제도에 대해 신념을 가진 백인 활동가이거나 경찰서와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내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그룹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샘이 가족을 유지하는 것과 사회가 제도로서 지원하는 것은 왜 공존할 수 없는가. 문제가 있다면 제도의 융통성을 촉구해야지 왜 그런 신념 자체를 공격하는가. 영화는 심지어 그 활동가를 대머리라고 인신공격하고, 관객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샘과 루시를 강제로 떼어놓는 실루엣 속에 그들을 배치함으로써 적대감마저 부추긴다. 미국은 지금 사회 전반에 걸쳐 진보와 보수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인 측면을 예로 들자면, 소수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를 적극적인 형태로 입법화한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백인 중산층이 역차별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이같은 공세를 법률로 합리화하는 조치(California 209)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럴 때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가 가하는 문화적 교육은 다른 무엇보다 위력적인 정치 공세이자 이데올로기 공세가 된다. 이것이 바로 디즈니 비판자들이 줄기차게 지적하며 염려하는 지점이다(<아이 엠 샘>은 브에나비스타라는 디즈니 계열사가 배급하는 영화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흘러가고 보니 가슴 한구석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리의 샘과 루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자책 섞인 질문이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새비디오 - <이티> 외

-이티 지난해 2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한 작품. 적대적으로만 그려지던 외계인을 인간의 친구로 그려 에스에프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과학자인 이티는 동료들과 함께 지구 탐사에 나섰다가 일행과 떨어져 고립된다. 어린 엘리엇은 이티를 발견하고 집안에 숨겨주면서 둘은 특별한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그러나 결국 은신처가 발각되고 이티는 붙잡혀 감금된다. 재개봉판에서는 이티가 욕조 속에서 목욕을 즐기는 장면과 아이들이 할로윈 데이에 이티를 찾아다니는 장면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 몇몇 부분을 매끄럽게 수정했다. 존 윌리엄스 주제음악도 디지털로 재생해 음향 역시 더욱 생생해졌다. 11월1일 출시. 유니버설. -열려라! 엘모의 세상 세계적인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너인 ‘엘모의 세상’이 세권짜리 비디오로 출시됐다. 빨간 털북숭이 엘모가 만나는 춤추는 창문, 서랍, 뛰어다니는 텔레비전 등을 통해 사물과 현상에 대한 관찰력을 길러준다. 쉽고 짧은 영어 대화와 노래로 구성돼 있어 영어학습 교재로 사용할 수 있다. 1편 ‘아기, 강아지 세상’은 어린이의 눈으로 본 아기와 강아지에 대한 내용을, 2편 ‘꽃, 바나나 세상’은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을, 3편 ‘노래, 그림그리기 세상’은 노래하기, 그림그리기, 전화걸기 등 아이들의 일상적인 학습 정보를 유쾌한 에피소드로 담고 있다. 각권에는 지도용 영한대본이 포함돼 있다. 10월30일 출시. 인피니스. 김은형 기자

탄환을 동경하던 한 여자의 심장에 관한 영화,<밀애>

■ Story 30대 초반의 주부 미흔(김윤진)은 어느 날 갑자기 집안으로 뛰어든 남편의 애인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미흔의 건강이 여의치 않자 남편(계성용)이 나서서 남해안의 한 마을로 거주를 옮긴다. 이웃에 사는 인규(이종원)가 미흔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4개월간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누되 사랑한다고 발설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탐닉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격렬함을 향해 치닫는다. ■ Review 유순하고 청결하고 어떤 야릇한 연약함을 가진 여성이 남편의 외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회복할 길 없는 상처를 시위라도 하듯이 그는 오래도록 방황한다. 그러니 설혹 불륜에 빠지더라도 그것은 은연 중에 남편의 책임이기도 하다. <밀애>의 프롤로그로부터 이런 냄새를 맡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분노와 눈물을 뒤섞은 페미니스트 신파쯤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그건 당신의 속단이다. 미흔(김윤진)의 육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남편의 외도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고 할 것이다. 미흔의 몸은 마치 탈출을 위해 어딘가 빗장이 열리기를 기다려온 마그마처럼 끓어오른다. 그러니 이 영화는 발칙하다. 발칙하다는 말은 존중받도록 되어 있는 어떤 근엄한 것에 도전하는 것에 붙여진다. 그래서 발칙한 것들이란 대체로 호응과 질타로 양분된 격렬한 반응에 휩싸이고, 그런 반응 자체가 엄숙하게 고정되어 있던 세계의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다. 작가들은 그중에서도 불륜이라는 테마를 사랑한다. 불륜은 가족제도의 틀을 벗어난 성애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일처의 단혼 소가족을 바탕으로 삶의 틀이 유지되는 체계를 고안한 현대사회에서 성애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반면에 인위적으로 짜여진 질서에 반발하려는 작가들은 끊임없이 그 문제를 건드린다. 그 도발이 지루한 수준이면 통속적인 3류 드라마가 되고, 무언가 팽팽한 긴장을 지니고 있을 때에는 제도에 대한 개인의 반발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밀애>는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해보인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우선 영화는 미흔이 관객에게 어떤 핑곗거리를 가지지 못할 만큼 그의 일탈을 멀리까지 끌고가버린다. ‘그럴 만도 하지, 남편이 너무 했어’라거나 ‘저 정도면 복수한 거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뭐 심한 짓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변명이 안 통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을 혼자 남겨두고 잠옷 바람으로 창문을 넘어 애인의 집에 찾아들었다가, 위험한 짓은 하기 싫다는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고 와서는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한다. 핑곗거리 뒤에 숨어서 도전적인 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밀애>는 페미니즘의 울타리 안에 있는 보수주의자들과 어느 정도 결별했다. 이 영화는 또한 육체의 욕망을 복권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흔과 인규(이종원)의 첫번째 정사 장면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원작소설이 갖고 있는 언어의 묘사력에 상응하는 영상의 묘사력을 보여준 장면일 것이다. 단지 육체에 대한 매혹만으로 사랑을 출발시킨 두 사람은 서로의 심금(心琴)이 아닌 육금(肉琴)을 정교하게 울릴 수 있는 숙련된 연주자의 자질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제도가 허용하지 않은 사랑은 불법이고 정신적인 사랑이 없는 사랑은 타락이라는 사랑의 신화가 산산이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두 주연배우의 적절한 감정 표현과 아울러, 어둠과 역광의 조화로 얻어낸 묵직하게 밝은 인상주의 톤의 조명, 숙련된 달리 맨의 덕을 본 정교한 이동 등을 통해 상당히 성공적으로 연출되었다. <밀애>는 아마도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하나의 남성 캐릭터를 끌어낸 영화로도 기억될 만하다. 대한민국에 바람 피우는 남자는 매우 많고 개중에는 쿨 하게 밀고 나가는 남자도 없지 않을 테지만 인규처럼 권태롭게, 죄의식은커녕 자의식도 없다는 듯이 멀뚱한 느낌으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스크린에 주인공으로 나타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권태란 육체가 한가한 사람들이 햇빛이든 고요든 일탈이든 구속이든 무언가가 숨을 막히게 할 만큼 많아서 시시해 미칠 것만 같다고 느끼는 것을 뜻한다. 권태는 현대성의 본격적인 도래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권태에 사로잡혀 게임을 하듯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지극히 징후적이다. 인규라는 캐릭터는 한국의 멜로드라마가 모더니즘 영화로 비약하는 과도기적인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남편의 애인이 집안을 침범한 어느날 이후, 미흔의 삶에는 균열이 생긴다. 결혼생활에도, 미흔의 내부에도 더이상 안온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윗집 사는 의사 인규는 미흔에게 사랑 대신 섹스만 하는 게임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육체에 대한 매혹만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남해안의 공간과 빛도 인상적이다.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공간을 포착하는 영화는 일단 지지해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영화의 앞뒤로 붙은 페미니스트 신파의 기색은 “이런 건 가벼워야 하는데”라는 인규의 대사에 담긴 염려 그대로 이 영화를 무겁게 만든다. 폴란드에서 온 스탭들이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이동차는 좀 덜 썼더라면 어땠을까. 먼저 찍힌 시퀀스일수록 감독의 몸이 덜 풀린 듯한 어색함은, 천하의 변영주라도 어쩔 수 없이 데뷔작 만드는 신인 감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연작을 한창 쏟아내던 당시의 변영주 감독이 자신의 다음 영화는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극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섬찟한 느낌에 얼이 빠져 있는 내게 “멋지지 않아요”라고 되물었더랬다. 제목은 달라도 이 영화 <밀애>는 탄환을 동경하던 한 여자의 심장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된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영화사들 잇단 소송 ‘배신감 때문에?’

최근 영화사와 배우 사이에 두 건의 소송이 잇달아 영화계가 씁쓸해 하고 있다. 우선 <친구>의 820만 관객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곽경택 감독과 배우 유오성씨가 각각 관계된 진인사필름과 JM라인이 소송을 내고 곽 감독이 지명수배를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지난 7월 <챔피언>의 개봉도중 투자배급사인 코리아픽처스 등이 자신의 동의없이 광고를 내보내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유씨가 소송을 낸 데 이어, 지난달 31일 제작사인 진인사필름은 유씨를 상대로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다. 진인사 필름의 양중경 대표는 “곽 감독이 그간 민사소송의 참고인으로 소환받았지만 그동안 유씨와 관계를 생각해 출두하지 않았더니 지명수배가 내려졌다”며 “조만간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을 것”이라 전했다. 또 한 건의 주인공은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둘러싼 명필름과 김혜수씨다. 김씨가 텔레비전 드라마 <장희빈>과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이미 6일부터 새 영화의 촬영스케줄을 짜두었던 명필름은 사실상 영화촬영이 불가능해졌다며 김씨에게 5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명필름쪽은 “김씨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영화의 모든 게 스타에 의해 휘둘리는 충무로의 관행을 우리만큼은 거부하겠다는 의미”라 말했다. 반면 김씨는 전화통화에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배우가 되길 꿈꾼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였다”라며 “끝까지 양해를 얻으려고 방송국과 계약도 마지막까지 미뤘으며 지금도 영화에 출연할 자세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두 건의 소송은 모두 남다르게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던 영화사와 배우 사이에 일어났다. 당사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돈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배신감과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한 치밀한 계약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인간적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하면 더 치명적이다. 당사자들이 하나같이 ‘도덕적인 우위가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언론을 통한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해결의 길이 아닌 듯 하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작가영화(1)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감독의 이름을 보는 사람. 시네마테크의 크고 작은 행사가 늘 모자란 듯 아쉬운 사람. 영화제에서 일년치 영양 보충을 해야 한다고 덤벼드는 취미가 있는 사람. 동서양의 거장과 예비 거장들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올 부산영화제는 다종다양한 ‘성지순례’ 코스를 제공할 것이다.문석 / 박은영 / 김현정 / 유운성(영화평론가) 임소요 Unknown Pleasures ▶ 아시아 영화의 창/ 일본·한국·프랑스/ 지아 장커/ 2002년/ 113분 ▶ 11월 16일 오후 5시 대영1, 11월 20일 오후 8시 대영1 중국 탄광촌 아이들의 ‘청춘잔혹이야기’. <소무>와 <플랫폼>에 이은 지아 장커의 세번째 장편 <임소요>는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했던 단편 <공공장소>와 <개들의 처지>의 무대가 되었던 바로 그곳, 샨시성(山西省) 따퉁(大同)에 거주하는 19살 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서로 동갑내기인 빙빙과 샤오 지는 영락한 탄광촌인 따퉁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쏘다닌다. 빙빙은 가끔 여자친구를 만나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빌려보는데 그녀는 곧 대학입시를 치를 예정이며 합격하게 되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샤오 지는 어느 날 댄서 차오차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에겐 과거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나 지금은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빙빙과 샤오 지의 비루한 삶은 출구가 없어보이고 결국 그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배경들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게 뒤섞여 있는 동시대의 징후들- 댄서를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류 홍보 이벤트, 따퉁의 공기를 가르는 복권광고, 미군기의 중국영공침범이나 베이징까지의 철도건설계획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등- 은 또한 인물들과도 충돌하면서 모순과 균열의 지점들을 때로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노출시킨다. 가령 차오차오와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샤오 지가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장면과,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역시 <펄프픽션>을 모방한 그들의 댄스장면은, 정말이지 젠체하는 오마쥬나 우스개로 끼워넣은 패러디가 아니라 비통한 진심이 담긴 자화상인 것이다. 미학적 과시로 넘쳐나는 거장들의 영화들 틈에서, 지아 장커의 <임소요>는 영화작가 자신이 놓인 현실에 대한 냉철한 사유의 흔적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영화이자 부산을 찾을 여러분이 꼭 봐야 할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름다운 시절 The Best of Times ▶ 2아시아 영화의 창/ 대만, 일본/ 장 초치/ 2002년/ 109분 ▶ 11월16일 오후 2시 대영1, 11월20일 오후 5시 대영1 가진 것 없는 젊음, 총 한 자루를 얻었다. 첫장면을 꼭 기억해두고 싶은 영화가 있다.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낮고 맑게 깔리는 음악 속에 하루를 시작하는 소음이 섞여들고, 카메라가 부엌과 식당과 방을 침착하게 오가는 <아름다운 시절>이 바로 그런 영화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번 끌려들어간 시선을 접을 수도 없다. <아름다운 시절>의 화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십대 소년 웨이. 불치병을 앓는 누나가 있는 웨이는 사촌 지에와 함께 범죄조직 수금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둘은 첫번째 임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권총까지 한자루 받아들지만, 성미 급한 지에가 그 총으로 다른 조직 보스를 살해하면서 궁지에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시절>은 범죄영화와 가족영화, 성장영화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처럼 들어차 있는 영화다. 총을 얻고 기뻐하는 아이들, 도망간 아이들이 보내는 한때, 그들이 막무가내로 붙들고 있는 믿음. <아름다운 시절>은 아무런 할 일을 찾아낼 수 없는 이 젊은이들의 무력한 현실을 서글프면서도 희미하게 빛나도록 담아냈다. 금요일 밤 Friday Night ▶ 월드 시네마/ 프랑스/ 클레어 드니/ 2002년/ 90분 ▶ 11월15일 오후5시 대영1, 11월22일 오후5시 메가박스6 충동적인, 그러나 예비된 일탈의 하룻밤. 모두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추운 겨울의 금요일 밤은 특히 그렇다. 내일이면 남자친구와 동거에 들어가는 로르는 저녁 약속을 위해 차를 달려보지만, 교통 체증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고, 인내심을 잃은 사람들은 도로 위에서 우왕좌왕한다. 그 혼란 속에 정지화면처럼 홀로 서 있던 남자가 로르의 차 안으로 들어오고, 그 밤에 그들은 헤어짐과 만남을 거듭한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대상이고 객체였던 여성의 자리를, 클레어 드니는 남성에게 물려준다. <아름다운 직업> <잠이 오지 않아> 등에서 남성의 육체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았던 클레어 드니는, <금요일 밤>에서도 하룻밤 일탈의 자유와 주도권을 여성에게 쥐어주고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할리우드 스타와 범죄전력

미녀 배우 위노나 라이더(31)가 절도 혐의로 최근 유죄평결을 받은 가운데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7일 그녀의 재기 가능성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범죄전력을 다룬 기사를 게재, 관심을 끌고 있다. 라이더는 평소에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기인(奇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난해말 베벌리힐스 고급의류점에서 5천500달러짜리 옷을 훔친 그녀의 좀도둑 행각은 그녀에 대한 이러한 평판을 더욱 무색케 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한물간 배우들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추락한 배우들에게 두세번의 기회를 주는 관습도 있다. 유죄평결을 받았지만 실형은 면할 것으로 보이는 라이더는 재기를 위해 영화 관계자들에게 그녀에 대한 신뢰감을 확신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리처드 기어와 주연을 맡은 <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 등이 극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그녀가 출연한 영화 흥행에도 이미 좋지 않은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녀의 복귀 가능성과 관련, 힛 뉴스(Heat News) 편집자이자 유명인사 해설가인 폴리 허드슨은 "그녀가 살인을 한 것은 아니므로 (할리우드에)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도 또한 그녀를 용서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폭스사 출신의 제작자인 탐 세락은 “할리우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가슴을 갖고 있다. 그녀는 훌륭한 배우이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복귀 가능성을 점쳤다. 휴 그랜트, 할 베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도 범죄 후 스타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할리우드 배우들이다. 휴 그랜트는 지난 95년 매춘부와 관계를 가진 것이 알려져 명성을 쌓아가던 배우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래리 킹 등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 그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팬들과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 헐리에게 공개 사과를 했고, 팬들은 솔직한 그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노팅 힐> <브리짓 존슨의 일기> 등의 흥행과 함께 A급 배우로 성장했다. 할 베리도 재작년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집행유예 3년, 1만3천500달러의 벌금 및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지만 최근 2년연속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스타급 배우가 됐다. 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지난 96년 코카인.헤로인과 권총을 차량에 불법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아 1년을 복역했으며, 재작년에도 코카인 불법소지로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상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내년 출시 예정인 영화 <노래하는 탐정(Singing Detective)>에 주연급 배우로 캐스팅됐다. 재판중에 영화 출연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라이더에게는 이번 재판이 그녀에게 다시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킬 최상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3] - 루크레시아 마르텔

재능이 길을 열어준 건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부터 찍고 보자는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방법은 맨땅에 헤딩하기만큼이나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데뷔기는 좀더 신중했고, 프로듀서의 조력도 있었다. 영화전공자가 아닌 그녀는 30대 중반에 데뷔를 마음먹고는, 효율적으로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영화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 →투자자 확보 →영화 완성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 →유럽 수출로 수지를 맞추고 두 번째 영화를 안정적으로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36살보다 젊어 보이는 이 미인 감독은 서툰 영어를 안타까워하면서 자기 뜻이 제대로 전달됐다 싶을 때까지 수차례 말의 방향을 바꿔가며 설명하는 열의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면서 곁눈질처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지만, 실력이 안 됐다. 영화를 시작한 동기는 단편 시나리오가 상을 받으면서였다. 95년에 그걸 영화로 만들어 또 상을 받았다. 그뒤 장편 <늪>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걸 본 당시 텔레비전 프로듀서 리타 스탠틱이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내보라고 했다. 영어로 번역해야 하고, 우편으로 부쳐야 하고 귀찮아서 말려고 했는데 그가 계속 부추겨 보냈다. 그 시나리오가 당선되니까 돈줄을 찾기 쉬워졌다. 원래 당선되면 일본 와 <브뤼셀TV>가 지역 배급권을 사게 돼 있었고, 이들 외에 이탈리아-스위스 합작인 몬테치네마, 스페인 방송사, 프랑스 정부 지원금 등을 지원받았다. 또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지원금 20만달러를 받았다. 그래서 120만달러로 만들었다. 상업적인 영화가 아닌데도 큰돈을 모아 영화를 만든 건 행운이었다. -흥행은. =영화 완성뒤 2001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과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두곳에서 초청이 왔다. 아무래도 경쟁이 낫겠다 싶었고, 또 칸영화제 전에 개봉을 해야 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3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이런 성격의 영화치고는 성공인 셈이다. 또 베를린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17개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면 본전치기는 했다. -두 번째 영화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10대 소녀의 이야기이다. 신이 자기를 여기에 살게 만든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소녀가 길거리에서 50대 남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 소녀는 ‘아! 신이 나더러 저 남자를 구원하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는 거꾸로 그 남자를 쫓아간다. 제목은 <홀리 걸>로 그동안 수차례의 오디션을 통해 1300명 가운데서 두명의 소녀 배우를 뽑았다. 일종의 블랙코미디인데, 종교와 섹스가 섞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스캔들이 일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화제가 될 테니까 아무래도 흥행도 좀 낫지 않을까. 이미 유럽에서 투자자들을 확보했고, 시나리오도 완성된 상태다. 리타 스탠틱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는 뉴 아르헨티나 무비에 관심을 갖고 TV에서 영화로 뛰어든 뒤 많은 젊은 아르헨티나 감독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부드럽고 섬약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원칙주의자였다. “보수적이고 인종편견이 심한” 북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보수성뿐 아니라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에 가깝고, 이 나라 영화가 미국영화에 눌리고 있는 사실을 개탄했다. -아르헨티나 경제난으로 영화인들도 힘들지 않은가. =힘들다. 90년대 들어 영화학교가 급증하고 많은 감독 지망생이 나왔지만, 99년 경제난 이후로는 특히 더 국내 영화산업이 그들을 소화해내지 못한다. 나는 운좋게도 경제난이 터지기 전에 <늪>에 착수해 정부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이 경제난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난 이전의 90년대 초·중반은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은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인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그대로 까발려지게 됐다. 이런 정체성을 확인하는 건 영화를 만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영화의 내용면에서는 도움이 되더라고 실제로 돈 구하기는 힘들 것 아닌가.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나 아이디어 없이 돈만 있다면 뭘 하겠는가. 우리가 정말 현명하다면 새로운 계기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 생각하게 하는 기회다. 아르헨티나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2] - 데이비드 고든 그린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아직까지 몸이 가볍다. 비싸게 굴지 않는다. 광주국제영화제쪽으로부터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바로 다음날 가겠다는 대답을 보냈다. 광주 체류 중에도 인터뷰, 대담, 파티 등의 행사가 10∼20분씩 늦어져도 군말없이 앉아 있는다. 27살에 연출작이 한편밖에 없는 신인 감독으로서 당연한 태도라고 여겼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165cm 남짓한 자그마한 체구의 이 젊은 청년은 1∼2년 뒤면 인터뷰하자고 명함도 내밀기 힘든, 할리우드의 거물 감독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돈을 모아 만든 첫 영화가 호평을 받아, 두 번째 영화가 발표되기도 전에 미라맥스 영화사와 세 번째 영화 계약을 맺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드루 배리모어 등이 제작자로 참여하는 큰 예산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게 성공하면 그는 스티븐 소더보그, 쿠엔틴 타란티노의 뒤를 이어, 미국 인디 출신의 드문 스타감독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예술학교를 졸업한 98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 그의 행보는 성공사례로 꼽기엔 너무 드문 행운의 연속이었다. -첫 작품 <조지 워싱턴>을 어떻게 만들었나. =졸업 전부터 1년 반 동안 7개 직업을 전전하면서 3만5천달러를 모았다. 카지노의 잡역부, 정신병원 청소부, 의료기구 회사의 주사기 포장작업, 마케팅 회사…. 문손잡이 만드는 회사에도 다녔는데 거기선 산을 다루는 일을 했기 때문에 보수가 높았다. 또 정자은행에 정자도 팔았다. 여자친구 아버지에게서 1천달러를 꾼 것 합해서 4만달러로 촬영을 시작했고, 편집한 것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투자를 받았다. 그래서 후반작업 때 6만달러를 더 얻어 전체 제작비는 10만달러 정도 들었다. (기존의 제사를 찾아가보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연줄이 전혀 없어서 시도하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자기 돈으로 만들면서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건 특이하다. =장비 대여회사에 가장 좋은 걸 빌려달라고 했더니, 시네마스코프용 장비를 빌려줬다. 또 내 첫 영화를 시네마스코프로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흥행은. → 원래 저예산이어서 돈을 벌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미국 내 80개 도시에서 개봉해 나 개인을 빼고는 영화에 참여한 모두에게 적절한 보수를 줄 만큼의 수익은 올렸다. 물론 비평가들의 찬사에 비하면 흥행은 훨씬 저조한 편이다. 그러나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 배급이 이뤄지고 텔레비전 방영권도 팔아서 아직도 돈이 들어오고 있다. <조지 워싱턴>이 비평가들의 눈에 띈 건 2000년 베를린영화제에서였다. 이 영화제 영포럼 부문 상영을 계기로, 그해 토론토, 토리노, 스톡홀름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미국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 감독상을 받아 같은 해 말 미국 개봉의 길이 열렸다. 곧이어 제작자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니픽처가 두 번째 영화의 돈을 대겠다고 나서더니, 스티븐 소더버그가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다. -베를린영화제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처음 선댄스영화제에 필름을 보냈다가 탈락했다. 그런데 상영작 선정위원 중 한명이 영화가 무척 좋다며 베를린영화제쪽에 추천을 해줬다. 그뒤 베를린에서 연락이 왔다. -두 번째 영화는. =소니픽처에서 다음 아이템이 있냐고 먼저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쓴 시나리오에, <조지 워싱턴>의 스탭과 배우 그대로 참여하는 <올 더 리얼 걸스>를, 제작비 200만달러를 미리 받고 찍었다. 소니픽처는 일년에 몇편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래도 통상 완성된 영화의 배급권을 사는데 이번에는 먼저 돈을 줬다. 미친 게 아닌가 싶다.(웃음) 촬영은 다 끝났고 내년 2월 개봉예정이다. -첫 번째 영화 10만달러에서 두 번째 영화 200만달러, 세 번째 영화는 미라맥스 제작인 만큼 예산이 더 클 것 같다. =64년에 쓰여졌는데, 저자가 자살한 뒤인 88년에 발표된 소설이 있다. 존 케네디 툴의 <바보 동맹>(A Confederacy of Dunces)인데, 이걸 영화로 만들려고 스캇 크레이머라는 프로듀서가 22년 동안 매달렸다. 거기에 스티븐 소더버그, 드루 배리모어가 제작자로 가세해 나를 찾아왔다. 원래는 소더버그에게 감독을 맡기려 했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나를 떠올린 것 같았다. 이제까지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디렉터-라이터’만 생각했는데, 믿을 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미라맥스에 가지고 가 계약을 맺었다. 시나리오는 완성됐고, 캐스팅과 예산을 짜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한 배우를 내가 제안했더니, 그 배우보다 비싼 스타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예산이 커질 것 같다. 나는 프로젝트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데.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대 교수이고 세 누나가 모두 교직에 종사한다. “아카데믹한” 집안 분위기에 어긋나게, 막내인 그만 “학교 수업 빼먹고 여행 다니며”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엄청난 행운아다. =내가 보고 싶어서 만든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행운이지만 세 번째 영화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전 같으면 내 취향대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세 번째 것은 제재가 많지 않겠는가. -미국 독립영화에서 모처럼만에 큰 기회를 맞은 감독인 것 같다. 그런데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이는 너무 빨리 성공해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가 절대 성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나는 느슨할 수 있는 게 좋다. 다음에는 제작을 할 수도 있고 음악을 맡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감독 영화의 촬영을 할 수도 있다. 테렌스 맬릭을 존경하는데, 그는 조류관찰자이면서 야구도 잘하고 철학교수이다. 영화는 세편밖에 안 찍었지만 모두 좋지 않은가. 그렇게 쿨한 게 좋다.

<야인시대>,<장희빈>으로 부활한 그들의 가상대화

* <야인시대> SBS 월·화 밤 9시55분* <장희빈> KBS 수·목 밤 9시55분 김두한: 안녕하쇼, 나 김두한이요. 장희빈: 과연 배짱깨나 두둑한 인물이로구나. 네가 한때 조선의 국모였던 내게 이다지도 방자한 태도를 보인단 말이냐. 김두한: 이거 왜 이러쇼. 지금은 21세기요. 17세기에 살았던 사람이라 잘 모르나 본데,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말은 오래 전에 사라졌어요. 요즘은 돈 많고 유명한 사람이 대접을 받는다오. 나는 월요일과 화요일, 희빈 마마는 수요일과 목요일에 이 나라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처진데, 내가 마마랑 맞장을 못 뜰 이유가 없지. 21세기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스타’라고 부르는데, 그건 알랑가 모르겄수. 장희빈: 만나는 사람들마다 맞장뜨는 걸 업으로 삼더니, 네가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다. 내가 살아생전보다 죽고 난 뒤에 더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나라고 왜 모르겠느냐. 남인과 서인이 서로 물고 뜯는 와중에 전하(숙종)마저 내게 등을 돌리고 결국 억울하게 죽음을 맞았는데, 그나마 후세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어 조금은 위안이 되는구나. 김두한: 생각해보면 마마도 참 장하쇼. 대체 몇 번째요 방송만 따져도, 이 땅에 텔레비전이 보급된 뒤에 가장 자주 등장한 인물이 아닌가 싶은데. 윤여정, 전인화, 정선경 같은 연기자들이 마마의 분신으로 활약했지, 아마 이번에 나오는 김혜수라는 배우는 한번 출연하는 데 700만원이나 받는다던데, 마마의 몸값이 그야말로 금값이구려. 장희빈: 내 삶이 허구의 형식을 빌려 인구에 회자된 것이 어찌 방송에서뿐이겠느냐. 심지어 내가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 발표되었더니라. 웬수 같은 서인놈들 중에 김만중이라고 글깨나 쓰는 인물이 있었는데,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에서 인현왕후를 편들고 나를 몹쓸 첩으로 몰아대지 않았겠니. 그때부터 줄곧 인현왕후는 어질고 후덕한 왕비로, 나는 야심 많고 질투 심한 첩으로…, 어리숙한 숙종의 혼을 빼놓고 종사를 어지럽힌 못된 여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느니라. 요새는 이런 여자를 ‘팜므파탈’이라고 하는데, 무식한 네가 그걸 알는지 모르겠구나. 김두한: 역시 희빈 마마시구려. 농담 한번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으니. 그래도 이번에 방송하는 <장희빈>은 좀 다를 거라고 들었수. 장희빈: 시대가 변하질 않았느냐. 가부장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남성중심 사회에서야 내가 ‘현모양처 신드롬’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 시청자들도 보는 눈이 생겼느니. 날 때부터 이마에 ‘악녀’라고 써붙이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다더냐. 중인인 아버지와 그 집 종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남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대주던 숙부의 간계로 궁궐에 들어갔고, 당시 20대였던 전하를 만나 한때 좋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 같은 천출이, 남인과 서인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궐 안에서 제 명대로 살자면 독한 맘을 품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남정네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평범함을 거부했던 한 여인의 삶이 얼마나 신산하고 덧없는 것이었는지, 이번에는 좀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좋겠구나. 자네야 늘 영웅으로 묘사되니 나 같은 설움은 없겠구먼. 김두한: 천만의 말씀이요. 애초에는 “인간 김두한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겠다”고 하더니, 내가 종로바닥 평정하는 과정에서 시청률이 50%까지 오르니까 그 부분을 주야장창 늘려서 벌써 두달 넘게 싸움질만 하고 있수. 이런 이야기를 할 거면서 왜 굳이 나를 불러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강호를 평정하는 무사를 등장시킬 것이지. 마마는 시대가 변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니까. 시청자들은 우리 삶의 한 단면만 좋아하거든. 마마도 안심하지 마세요. 희빈 마마가 인현왕후와 맞장을 뜨고, 서로 시기 질투하는 부분에서 시청률이 높아지면 재해석이고 뭐고 물거품이 될 테니. 장희빈: 허허, 자네가 품은 한이 있었던 게로군. 그래도 그리 꽁한 마음을 먹을 일만은 아니네. 방금 자네가 말한 그 부분이, 우리가 끊임없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일제시대에 종로를 주먹으로 평정하고,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양반 출신의 중전과 대적해 승리하고. 그래도 자네와 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 장희빈과 김두한에 대한 드라마가 이처럼 끊임없이 만들어지면, 드라마 속에서 우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그 시대를 읽는 잣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그게 후손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게야. 김두한: 희빈 마마가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네. 근데 이걸 어쩌지 벌써 하야시와 맞장뜰 시간이요. 오늘은 이쯤 해두고, 다음에 또 찾아뵙겠수다. 장희빈: 그러시게. 나도 갈 길이 멀구먼.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