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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김은형의 오!컬트 <트윈픽스>

언제나 양지를 지향하는 나는 “음울한”, “기괴한”, “모호한” 따위의 말을 싫어한다. 당연히 그런 분위기도 싫다. “아늑한”, “청량한”, “유쾌한” 등의 말로 수식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전에도 밝힌 것처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온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트루먼의 동네나 레이스 커튼 달린 집에서 레이스 달린 앞치마를 입고 다정하게 “Honey, I’m Home”을 외치는 남편을 기다리는 ‘플레전트 빌’이다. 그런데, 왜! 왜! 왜! 나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좋아하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잘난 척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다. 내 수준 알면서 왜 그러는가. 린치가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주의 영화를 보고 나와서 사람들이 품평을 할 때면 괜히 시계를 보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나로서는, 모호하고 난해한 린치 영화에 대한 나의 호감이 모호하고 난해하기만 하다. 내 인생 양지였을 땐 안 그랬다. <광란의 사랑>을 보고 “이 뱀가죽 재킷은 내 자유의 상징이다”라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대사를 흉내내며 낄낄대기는 했지만 감동 수준은 전혀 아니었고 <블루 벨벳>을 보고나서는 “감독, 변태 아니냐”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 정말 그때까지는 내 삶도 남부럽지 않게 청량했던 것이다. 내가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하게 된 건 텔레비전 시리즈 <트윈 픽스>를 보면서였다. 92년쯤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나는 첫 장면부터 완전히 압도돼버렸다. 멀리 떨어지는 폭포수를 어둡게 잡던 카메라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조앤 첸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다. 거기에 깔리는 바달라멘티의 음울하고 불길한(그러나 너무나 멋진!) 테마음악. 뒤로 이어지는 로라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시체와 붉은 커튼 뒤의 거인과 난쟁이, 질식할 것 같은 교외의 풍경. 모든 건 낯설고, 섬뜩했고, 그리고 매혹적이었다. 린치의 영화가 그렇듯 내 열광의 전후좌우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좀 황당하기도 하고 튀기도 했지만(전체 시리즈를 여러 감독이 나눠서 연출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당시 심야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에 게스트로 나오던 정성일씨한테) 린치가 직접 연출했다는 1, 2, 3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중에 영화로 나온 <트윈 픽스: 불이여 나와 함께 걸어라>는 맥빠지는 수준이었다.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다소 잦아들었던 나의 열광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면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조금은 깨달았다. 내 열광의 정체를. 영화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한 장면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LA에 온 베티가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까지 가는 짧은 순간이었는데 이 평범한 하나의 중간 컷을 린치는 기묘하게 꼬아서 지독하게 낯설고 황량한 풍경으로 만들어놓았다. 분석적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능력은 없지만 나에게 그의 영화가 매혹적인 건 이런 장면들 때문인 것 같다. 왜 그런 장면들을 좋아하는데 라고 굳이 묻는다면, 글쎄… 아마 내 인생 청량한 시절 다 끝났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할밖에. 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

<본 아이덴티티>의 주무대 파리에 대한 아저씨의 단상

지하철 삼성역에서 메가박스까지 가는 땅속길은 지금도 내게 미로다. 코엑스몰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상업도시는 이방인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할 만큼 거만하다. 간신히 찾은 메가박스는 여느 주말처럼 붐볐다. 아내와 나는 매표구에 다다르기 위해 40분 넘게 서 있었다. 매표구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그 이름도 찬란한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와 처음 듣는 이름인 더그 라이먼의 <본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느려터지게 줄어드는 줄 속에서 우리는 당초 <본 아이덴티티>를 골랐었다. 그런데 매표소 앞에 이르자 채플린이 그 명성의 힘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위대한 독재자>를 포함해 채플린 영화를 이미 대부분 본 터였지만, 그건 오로지 브라운관을 통해서였다. 그러니 매표소 앞의 망설임은 작은 스크린으로 이미 본 명품을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느냐, 아니면 이왕 돈 들여 시간 들여 보는 건데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는 ‘쌤삥’ 영화를 보느냐 사이의 망설임이었다. 매표원이 건네는 재촉의 눈길 속에서 망설임이 길 수는 없었다. 아내가 결단을 내렸고, 내가 맞장구쳤다. 우리는 다시 2시간 반을 기다려 <본 아이덴티티>를 봤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CIA를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체하면서도 실상 그 전능함을 선전하는 꼼수,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자기 과거의 단서를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닥쳐오는 위험,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남녀의 우연한 만남을 필연적 사랑으로 바꾸는 조홧속 등 그 상투적 코드들이 주는 기시감(旣視感)에도 불구하고 <본 아이덴티티>는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였다. 처음 이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것을 born identity, 곧 ‘타고난 정체성’으로 해석했다. 그것이 본(Bourn)이라는 사나이의 아이덴티티를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영화를 보면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말놀이일 터이다. 그러니 <본 아이덴티티>(Bourn identity)는 본이라는 사내의 ‘타고난 정체성’(born identity)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본(本)아이덴티티로도 읽힌다. 아무튼 영화 속의 제이슨 본은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늘 본능적으로 사위를 경계하고 민첩하게 위기를 벗어난다. 타고난 CIA 최정예요원답게. 그의 이름이 가장 유명한 살인면허 소지자 제임스 본드와 닮은 것도 우연 이상일 터이다. 기억 상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언젠가부터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잦다. 이게 알코올 중독의 초기 증세라는 말을 들은 듯도 하다.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긴 이튿날엔 불안과 자괴로 우울하다. 서로 다른 이름의 자기 여권들 앞에서 본이 난감해하듯, 술 먹은 이튿날에는 주머니 속에서 나온, 모르는 사람들의 명함과 메모 때문에 난감하다. <본 아이덴티티>의 주무대는 파리다. 30대에 바람이 들어 다섯해 동안 그 도시에 산 적이 있다. 그 바람의 기원은 어린 시절 텔레비전의 케미슈즈 광고에서 인상 깊게 보고들은 에펠탑과 <파리의 하늘 밑>이라는 노래인 것 같다. 자라면서 나는 그 도시에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과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앞에 신(新)자나 반(反)자가 붙은 역사학 철학 소설 연극의 이미지를, 그리고 구조주의니 해체주의 하는 기괴한 주의들의 이미지를 보탰다. 실상 이것은 파리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미국인들이기도 하다. 몇 개월 전 케이블로 본 한 미국 방송은 파리를 “2000년 동안 술과 연애에만 몰두해온 도시, 가끔 제 정신이 나면 예술과 혁명에 몰두했던 도시”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술과 연애의 도시 파리’라는 상투에 가장 충실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가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일 터이다. 술과 연애로 젊음을 탕진하는 소설 속의 미국인들, 그 ‘길 잃은 세대’는 10대의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소설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그럴듯하게 생각된 영미인들은 대체로 파리를 거쳐간 사람들이었다. 에즈라 파운드, 헨리 밀러,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코트 피츠제럴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맨 레이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 ‘파리의 미국인들’이 진짜 파리 사람들과 어울리며 빚어냈다는 1910~20년대 파리 풍경은 내 상상력 속에서 헛바람으로 한없이 부풀었다. 그러고보면 <본 아이덴티티>도 파리의 미국인들 얘기다. 술과 연애 얘기라기보다 음모와 배신과 살인, 총싸움, 몸싸움 얘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든 세대가 그 당사자들에게는 길 잃은 세대라면, 영화 속의 제이슨 본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정말로 길을 잃지 않았는가. 그 길 잃은 본이 파리의 길을 헤맬 때, 그 도시의 낯익은 거리들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이방인들의 파리 애호는 대체로 허영심과 뗄 수 없다. 내 파리 애호도 그럴 터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박한 사치를 거두고 싶지 않다. 길 잃고 망가진 40대 아저씨가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사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고종석/ 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

영화평론가 정성일,십대영화의 어떤경향에 주목하다(2)

정성일 영화를 처음 만들어본 건 언제예요 조대완 본격적으로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전에, 청소년영상제작캠프에서 3박4일 동안 6분짜리를 여럿이서 만든 적이 있고,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작업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정성일 <음악에>를 같이 작업했던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이에요 조대완 <음악에>는 완전히 혼자서 했어요. 원래는 학교 영화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하려고 했는데 촬영지가 진도이다보니, 친구들 집안에서 반대를 했죠. 여름방학 때 진도에 가서 혼자 찍었어요. 정성일 진도에는 누가 계셨나요 조대완 어머니가 계세요. 몸도 좀 안 좋으시고 해서 도시에 살기가 불편하다, 하시던 차에 진도에 우연히 가게 되셨고, 그곳이 좋아서 아예 살고 계세요. 정성일 그러면 영화구상은 진도에서 한 건가요 조대완 어머니가 진도에 계시고 그곳 풍경이 좋고 하니까 거기서 영화를 찍어볼까, 했어요.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진도에 가서 썼고요. 정성일 촬영은 몇회에 걸쳐 했나요 조대완 집에 있는 장면은 하룻밤을 새워서 일산 집에서 찍었고요, 진도와 완도를 오가며 찍었는데, 진도 하루, 완도 하루 이렇게 이틀 걸렸어요. 콘티없이 자전거 바구니에 카메라 넣고 삼각대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여기 경치 좋다’ 그러면 즉석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삼각대 세우고 찍고, 그렇게 했어요. 정성일 <서편제>를 제일 처음 본 건 언제였어요 조대완 제가 1985년생이거든요. <서편제>는 굉장히 어렸을 때 개봉한 영화라서 극장에서는 못 보고,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처음엔 별다른 감흥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학교에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어요. 국어교과서에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가 있어서 수업시간에 <서편제>를 교실에서 단체관람했죠. <서편제>는 원래 보고 싶던 영화였어요. 정성일 원래 왜 보고 싶었나요 조대완 제가 학교에서 영화동아리를 만들면서 동아리 이름도 ‘bleeding eyes’(피흘리는 눈)이라고 지었어요. 청소년들이 가진 한 같은 것을 영화로 표현해보자는 의도에서였어요. <서편제>가 예술을 위해 한을 품는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정성일 <음악에>도 그런 십대의 한이 들어 있는 영화인 셈인가요 조대완 음, <음악에>는 단소는 못 불고 피아노는 잘 치는 학생의 얘기예요. 단소 시험을 앞둔 학생이 연습은 않고 걱정만 하다가 <서편제>를 보고 감명을 받은 뒤 <서편제>의 꿈속으로 빠져드는 내용인데, 꿈이 ‘너 한번 한을 느껴봐라’ 하는, 일종의 벌 같은 거죠. 정성일 그 내러티브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조대완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은 한의 길이잖아요. <음악에>에서 저는 주인공이 <서편제>의 여정을 따라 길을 걷는 것을 우리 음악을 소홀히 여긴 것에 대한 조상들의 벌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정성일 한치고는 영화가 너무 예뻤던 것 같지 않나요. 이를테면 임권택 감독은 끝내 한을 풀어 없애지 않잖아요. <음악에>는 그게 그냥 쉽게 풀려버린 게 아닌가. 조대완 만약 주인공이 나중에 단소 연주를 잘하게 됐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단소를 잘 부는 건 아니거든요. 대신 피아노를 치는데 가야금 소리가 나오는 장면으로 여운을 남겼죠. 정성일 국악에 대한 관심이 많나봐요. 국악에 대한 관심이 어디서 시작됐어요 조대완 어머니가 국악을 하세요. 정성일 그럼, 한편으로 <음악에>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면도 없지 않아 있겠네요. 조대완 네, 그런 면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하시는 국악보다 대중음악을 좋아했는데, 계속 국악을 많이 듣는 환경 속에서 살다보니까 국악이 좋아지더라구요. 지금은 여러 종류의 음악을 폭넓게 듣는 편이에요. 정성일 <음악에>에서 다른 종류의 음악을 만나게 한 것도 취향의 반영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그렇다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음악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를 택한 이유는 뭐예요. 음악을 본인이 해볼 생각은 없었나요 조대완 네,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음악을 직접 하기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았고, 연극영화쪽은 직접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하나의 길, 두 가지 풍경 정성일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조대완 제 영화에 대한 관심은 액션블록버스터영화로 시작됐어요. 오우삼 감독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좋아했는데, 오우삼 감독이 샘 페킨파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샘 페킨파 영화를 보게 됐어요.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를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정성일 샘 페킨파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 속에서 <서편제>라는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샘 페킨파와 임권택, <와일드 번치>와 <서편제>는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조대완 글쎄요…. (웃음) 거의 출발점이 다르죠. 정성일 보통은 첫 영화를 찍을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따르게 되는데, <음악에>에서 샘 페킨파의 스타일은 거의 느낄 수 없었어요. 조대완 액션영화는 찍기가 기술적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 연출에 소질도 있질 않을 뿐더러…. 제가 사실은 몸을 잘 못 써요. 굉장히 게으르고 느릿느릿해요. 정성일 조대완 학생이 생각하기에 임권택 감독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음악에>라는 영화에 <서편제>를 끌어 안았을 때에는, 조대완 학생 방식으로 그 영화의 내면을 봤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대완 임권택 감독님 영화는 <서편제> <춘향뎐> <장군의 아들> 딱 3편밖에 안 봐서…. 정성일 98편 다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몇명 안 돼요. (웃음) 제가 사실 임권택 감독님을 계속 인터뷰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에> 얘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막 웃으시더니 “그 한번 영화를 보고 싶구만” 하시더라구요. 제가 한번 기회가 닿으면 감독님께 보여드릴 생각인데. 조대완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영상과 이야기가 어떻게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까. 왠지 모르게 끌려요. 정성일 오히려 김지운이나 허진호나 박찬욱 감독 영화들이 더 끌리지 않구요 조대완 학생 세대의 영화연출 지망생들과 얘기해보면 주로 그 이름들이 거론되지 임권택 감독 이름이 나오지는 않거든요. 그런 것은 조대완 학생이 처음이에요. 정성일 <서편제>의 그 길을 실제 봤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조대완 글쎄, 왜소해 보였어요. 굉장히 먼 길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길어 보였어요. 정성일 <서편제>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때 느낌은 조대완 그 장면만 딱 떼어놓고서는 사실 주인공들간의 관계를 볼 수가 없어요. 동호와 유봉, 송화와 유봉, 송화와 동호의 복잡한 관계들이. 하지만 힘든 길을 가는 와중에 ‘놀아본다’는 것이 <서편제>에서 우리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인 것 같아요. 정성일 촬영지에서는 혼자 돌아다녔나요, 아니면 어머니랑 같이 다녔나요 조대완 혼자 다녔어요. 정성일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지만, 어머니가 국악인이고 하면, 여행다니는 주인공을 어머니로 해볼 생각은 안 했어요 조대완 애초부터 그 인물(본인이 직접 주인공 연기를 했다)을 쓰고 싶더라구요. 다른 생각은 하질 않았어요. 정성일 <음악에>에서는 <진도아리랑>을 왜 안 썼나요 조대완 사실 제가 <서편제>의 그 장소를 등장시키는 게 굉장히 위험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서편제>가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장소까지 따라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거든요. 정성일 근데도 그렇게 한 이유는 조대완 같은 길이지만, 그 길에서 인물이 하는 행위가 <서편제>와 <음악에>는 서로 다르니까요. <서편제>에서는 세 인물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그 길을 가지만, <음악에>에서는 주인공 한명이 힘들고 지치고 주저앉으면서 그 길을 걸어오죠.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핸드폰속에도 영화제가 ?

모바일 영화 첫 선… 버스 개조한 모바일 영화관 등 이벤트도 풍성 우리는 지금껏 영화관이나 TV, 인터넷을 통해서만 영화를 접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매체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다소 촌스럽다는 얘기를 들을지 모른다. 손에 쥐고 다니면서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바일 영화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모바일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화제의 공식 스폰서인 SK텔레콤(대표 표문수)이 영화제 기간인 11월14일부터 22일까지 모바일 영화를 볼 수 있는 버스를 마련했다. 모바일 영화를 볼 수 있는 이 버스는 테이블과 원형의자까지 준비된 응접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각 좌석의 앞쪽에 강아지 모양의 주머니가 있어 그 속에 휴대폰을 넣어둔 채 영화를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발판까지 마련돼 있어 버스를 운행하는 내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제작된 모바일 영화 <달걀과 건달>, <마이 굿 파트너>, <프로젝트X> 등 3편의 상영시간은 각 20분∼30분이다. 또“영화는 역시 스케일로 봐야 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예측을 불허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달걀과 건달>은 이성진씨의 건달 연기가 인상적이다. 모바일 영화는 12개 정도의 시퀀스로 나누어져 있어 휴대폰 버튼을 누를 때마다 1시퀀스씩 볼 수 있도록 돼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시퀀스가 끊어지지만 오히려 다음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 오히려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영화의 세계에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모바일 영화는 버스를 개조한 모바일 영화관과 PIFF광장의 미디어 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모바일 영화관은 14일부터 22일까지, 부산 남포동 영화의 거리(피닉스 호텔)앞에서 해운대 메가박스까지 매일 아침 9시에서 저녁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물론 이용은 무료. 뿐만 아니라 푸짐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퀴즈 게임과 함께 공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PIFF광장에 마련된 미디어 센타에서는 SK 텔레콤이 제작한 3편의 영화와 함께 70여편의 영화제 출품작 예고편과 작품 소개를 휴대폰을 통해 동영상과 텍스트로 서비스한다. 모바일 영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계속되는 모바일 영화에 대한 세미나를 찾아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세미나에서는 3편의 모바일 영화 시사회와 함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와 박종원 감독, 이현승 감독 등의 유명 감독들의 주제발표와 모바일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한 감독들과의 토론의 장도 마련된다. 글/ 티티엘 최정민

서울서 펼쳐지는 유럽영화 향연

서울 한 가운데서 유럽의 향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제3회 서울유럽영화제(메가필름페스티벌)가 오는 29일부터 나흘간 강남 코엑스의 메가박스에서 열린다. 거장들의 최신작들부터 유럽에서 올해 흥행한 화제작, 신인감독의 작품까지 14개국 28편이 상영된다. 유럽영화의 미래를 가늠케 하며 할리우드식 영화에 식상한 이들의 눈길을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개막작인 <인택토>는 스페인에서 무서운 신인으로 떠오른 후안 카를로스 프레나스딜로의 데뷔작으로 스페인 고야상에서 신인감독·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비행기 추락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러시안 룰렛게임에서 항상 이기는 도박사 등 믿기 힘들 정도로 운이 따르는 이들이 자신의 운을 걸고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인다는 팬터지 스릴러 영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풍부한 상상력과 유럽적 감수성이 살아있다.유명감독들의 최신작을 중심으로 묶은 ‘내셔널 초이스’ 7편 가운데는 먼저 옴니버스 영화 <텐 미니츠-첼로>(사진)가 있다. <텐 미니츠-트럼펫>에 이어 8명의 감독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로치·마이크 피기스·장 뤽 고다르·마이클 래드포드가 이 ‘시간의 명상’에 참여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빔 벤더스의 신작 <비엘 파시에르트-쾰른에의 송가>를 놓칠 수 없다. 이번엔 쿠바재즈가 아니라, 독일 내 전설적인 록밴드 BAP를 통해 로큰롤로 들어갔다. 대니 보일의 <천국에서 홀딱 벗고 청소하기>는 텔레비전용 디지털 영화지만, 끊어지는 리듬 때로는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어지러운 영상으로 감독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준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못 가는 이들에겐 아키 카우리스마키, 마이클 윈터버텀,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들도 반갑다.올해 유럽 흥행작·화제작 10편을 상영하는 ‘핫 브레이커스’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로 입양된 미카엘이 겪는 정체성을 따뜻하게 풀어낸 수작 <죽도 밥도 아니다>(마티아스 카일라히 감독), 위기에 빠진 수도원을 구하기 위해 3명의 수도사가 세상밖에서 벌이는 좌충우돌의 이야기 <신과 함께 가라>(촐탄 스피란델리) 등이 있다. 사회성 짙은 작품을 만들어온 지미 테루 무라카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캐롤>도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다.영화제 행사장 주변에선 유럽 각국의 민속공연과 로데오 게임, 미니축구 시합 등 유럽인들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부대행사들도 마련된다. 예매는 20일부터 영화제 홈페이지( www.meff.co.kr)나 극장 예매 사이트에서 할 수 있다.김영희 기자

마니아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니 두편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디브이디 타이틀이 대원 C.I(뉴타입)와 대원 C&A에서 18일과 내달초 각각 출시된다. <신세기…>는 ‘컬트’를 넘어서 일본 에스에프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고, <센과…>는 올해 개봉되어 한국에서 일본영화 가운데 최다관객을 끌어모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이라 애니메이션 디브이디 타이틀 시장 성장에 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디브이디 타이틀 시장의 규모는 <매트릭스><해리포터> 등 화제작 출시를 계기로 급증해왔다.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기…>는 95년 일본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28회를 4회씩 나눠 7장으로 출시된다. 18일 1, 2집을 시작으로 12월 중순까지 모두 나올 예정이다. ‘세컨드 임팩트’이후 남극의 빙산이 녹아버리고 순식간에 20억명의 인구가 사라져버린 2015년의 지구가 배경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투병기군단인 사도에 의해 전멸의 위기에 처한 인류는 생체 거대로봇 ‘에반게리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그 조종자로 신지, 레이, 아스카 세 소년·소녀가 선택된다. 수수께끼같은 스토리와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은 언제봐도 사람을 끈다. 이 타이틀의 매력은 선명한 화질과 함께 텔레비전 방영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무삭제로 온전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바를 탄 레이가 자폭하는 순간, 방송분과 달리 디브이디판에선 잠깐 거대한 레이의 형태로 변하는 에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까지 기억하는 ‘에바’ 마니아들에겐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센과…>는 이상한 터널로 들어가 온갖 귀신들이 목욕을 하러 오는 마녀 유바바의 여관에서 일하게 된 소녀 치히로의 모험을 그린 작품. 2장으로 발매되는 이 타이틀은 여느 일본 애니 디브이디에 비해 그림콘티, 극장 예고편 모음 등 서플먼트가 풍부하다. <니혼TV>에서 방영됐던 <센과…>의 48분짜리 제작다큐멘타리는 한국에서 발매되는 타이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발매사쪽은 첫 발매양(초도)이 4만장 정도 될 것이라 밝혔다. 일본 애니 가운데는 <공각기동대>의 1만5천장을 훨씬 뛰어넘고 디즈니의 <몬스터 주식회사>의 3~4만장에 맞먹는 수치다. 대원 C&A에 따르면 2002년도 디브이디 시장 규모추정치는 년 8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디즈니류의 애니메이션이 80억원대, 애니 마니아층의 시장은 60억원대로 잡고 있다. 전통적인 만화산업을 주도해왔던 대원은 내달 게임큐브를 내놓는 등 게임과 디브이디 발매를 토대로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그 가운데서도 C.I는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뉴타입 디브이디’라는 브랜드로 텔레비전 애니·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분야의 로봇물, 미소년물 등을 내놓고, C&A는 지브리 스튜디오 계열의 대중적인 극장애니메이션 위주로 작품들을 출시하는 분리전략을 채택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감독-안노 히데야키/화면비율-4:3/더빙, 자막-한국어, 일본어/오디오-돌비 디지털 스테레오/지역코드-3/제작사-뉴타입 DVD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감독-미야자키 하야오/화면비율-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16:9)/더빙, 오디오-일본어(DTS-ES DIscrete 6.1), 한국어(돌비 디지털 5.1)/지역코드-3/제작사-대원C&A

<거칠게 잠자기> - 정재은 감독

<거칠게 잠자기> 네덜란드/ 2002년/ 84분/ 감독 유제니 얀센 20일 오후 8시 메가박스 6관 작년 1월말 나는 첫 장편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들고 로테르담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로테르담영화제가 신인감독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화제라는 얘기를 해주었지만 나에겐 현실감없는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난 영화나 많이 보리라 마음먹고 영화제 내내 여러대륙의 신인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지냈다. 사실 네덜란드나 로테르담에 대해선 솔직히 별로 관심가져본 일이 없었지만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영화 한편 보는 것도 괜찮지 싶었다. 그렇게 선택해서 보게된 영화가 유제니 얀센 감독의 <거칠게 잠자기>였다. 이 영화 역시 <고양이를 부탁해>와 마찬가지로 로테르담영화제의 경쟁부문인 타이거상의 후보이기도 했다. 난 영화를 보고 ‘이 영화에게 타이거상이 돌아가겠군’이라고 속으로 예측했었다. 감독의 영화속 인물들을 보는 어른스러운 시선과 관찰자적인 접근이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의 예상대로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후후후…. 이 영화는 심술많고 뒤틀린 자아를 가진 퇴역군인 할아버지와 소처럼 슬픈 눈을 가진, 수단에서 온 흑인 소년이 조금씩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거의 과장없이 끌고나간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그 못된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덜란드나 로테르담에 대해서 잘알지는 못하지만 그들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인생을 살고있는 것이다. 몇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푸른초원에서 커다란 젖소의 목을 끌어안은 흑인소년의 얼굴표정, 병원에 문병 온 친구들에게 심술부리던 노인의 표정, 커다란 창으로 소년이 있는지를 몰래 내다보던 노인의 뒷모습 같은 것들…. 며칠후 나는 식사 자리에서 감독인 유제니 얀센, 그녀를 만났다. 나는 그녀의 작품이 좋았다고 인사했고 그녀도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았다고 인사했다. 우리는 잠시 영화 만드는 방식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쪽에서 일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은 거의 아마추어라고 했다. 난 주로 아마추어배우들의 연기 연출의 비결에 대해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착한 미소로 웃기만했다. 난 바로 이 착한 미소가 연기 연출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 후후후…. 내가 암스텔담에서 며칠 놀다가 영국에 친구를 만나러 놀러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선뜻 암스텔담에 오면 공짜로 재워주겠다며 웃는다. (으윽 그때 주소만 받았어도 밤늦은 암스텔담에서 싼 숙소를 찾아 온 거리를 헤메이진 않았을 텐데….) 그녀의 영화는 영화제와 텔레비전을 시장으로 보고 만들어진 영화라고 느껴졌다. 한국에서 영화제가 아니라면 그녀의 영화를 보기 어려울것이다. 이 영화는 조용하고 사려깊은 미소를 가진 감독이 만든 영화이다. 파티를 즐기러 가기 전에 보는 것보다 광란의 파티를 마치고 혼자 집에 가는 길에 보면 더욱 좋을 영화이다. 정재은 감독 - <고양이를 부탁해>

<임소요> Unknown Pleasures

<임소요> Unknown Pleasures 아시아 영화의 창/ 일본·한국·프랑스/ 2002년/ 113분/ 감독 지아장커/ 오후 8시 대영시네마 1관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소무>와 <플랫폼>에 이은 지아장커의 세 번째 장편 <임소요>는,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제작한 단편들인 <공공장소>와 <개들의 처지>의 무대가 되었던 바로 그곳, 산시성(山西省) 따퉁(大同)에 거주하는 19살 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서로 동갑내기인 빙빙과 샤오 지는 영락한 탄광촌인 따퉁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쏘다닌다. 빙빙은 가끔 여자친구를 만나 함께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보곤 하는데 그녀는 곧 대학입시를 치를 예정이며 합격하게 되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샤오 지는 어느 날 댄서 차오차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에겐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나 지금은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빙빙과 샤오 지의 비루한 삶은 출구가 없어 보이고 결국 그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서툰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샤오 지는 도주하고 빙빙은 홀로 공안에게 붙잡힌다.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우리가 <임소요>의 이미지들에 해석을 가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전에 그들은 어느새 아픈 칼날이 되어 우리의 심장으로 날아든다. 특히 <임소요>에서 지아 장커가 일상의 소리들을 영화적으로 운용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배경들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게 뒤섞여 있는 동시대의 징후들 - 댄서를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류홍보이벤트, 따퉁의 공기를 가르는 복권광고, 미군기의 중국영공침범이나 베이징까지의 철도건설계획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등 - 은 또한 인물들과도 충돌하면서 모순과 균열의 지점들을 때로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가슴아프게 노출시킨다. 차오차오와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샤오 지가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장면과,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역시 <펄프픽션>을 모방한 그들의 댄스장면은, 정말이지 젠체하는 오마쥬나 우스개로 끼워 넣은 패러디가 아니라 비통한 진심이 담긴 자화상인 것이다. 미학적 과시로 넘쳐나는 거장들의 영화들 틈에서, 지아 장커의 <임소요>는 영화작가 자신이 놓인 현실에 대한 냉철한 사유의 흔적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영화이자, 포스트 천안문세대의 작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는 증거이며, 부산을 찾은 여러분이 꼭 봐야 할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 유운성

부산, 오늘의 단신

‘한국과 대만 독립영화의 현황’오픈토크 오픈토크 ‘한국과 대만 독립영화의 현황’이 20일 오후 2시 부산 대영극장 6관에서 열렸다.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오픈토크에는 <아름다운 시절>로 대만 금마장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장초치 감독과 <몽환부락>의 청웬탕 감독이 참석했고, 한국에서는 <욕망>의 김응수 감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세 감독이 각자의 입장에서 한국과 대만 독립영화의 현재를 간략히 소개한 뒤, 오픈토크는 관객과 감독의 자유로운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장초치 감독은 “독립영화 감독은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다. 힘들더라도 즐겁게 일해야 한다”고 말해 의지와 끈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만 감독 야외무대 대만의 영화 감독들이 21일 오후2시 PIFF 광장에서 무대인사를 했다. 대만영화계의 ‘따거’ 허우샤오시엔 감독을 비롯해 <베텔넛 뷰티>로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았던 린쳉솅 감독, <방아쇠>의 알렉스 양 감독, <함두장>의 왕밍타이 감독 등이 무대에 올라 부산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씨네21 손홍주 기자 호주영화 세미나 21일 오후2시 해운대 매리어트 호텔에서 주한 호주대사관 주최로 호주영화 세미나가 개최된다. 최근들어 세계영화계에서 촬영지와 후반작업지로 각광받고 있는 호주 영화산업의 현황과 호주 정부의 정책, 각종 지원단체들의 역할, 영화 인력의 양성 등에 관해 논의하는 이 행사에는 뉴사우스웨일즈 필름&텔레비전 오피스의 킹스턴 앤더슨, 호주필름커미션연합(AusFilm) 대표 트리샤 로드크란스 등이 발제와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오후4시에는 콜린 헤슬타인 주한 호주 대사 주최로 리셉션도 열릴 예정이다. 부산영화제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 부산국제영화제는 11월30일까지 ‘부산국제영화제 발전을 위한 공모’를 실시한다. 부산영화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한 방안이나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기 위한 경영전략, 발전방향 등을 홈페이지(www.piff.org)를 통해 응모하면 된다. 12월9일 홈페이지를 통해 결과가 발표될 이번 공모의 우수작 1편에는 디지털 캠코더, 가작 2편에는 DVD 플레이어가 주어진다. <사랑해> 대신 <로드무비> 야외무대 21일 오후 3시에 잡혀 있던 <사랑해> 야외무대(PIFF 광장 야외무대) 행사 일정이 감독과 일행의 방한이 늦어져 취소됐다. 20일 도착하기로 한 장위엔 감독과 제작자 핑 동이 각각 스케쥴 문제로 21일 오후 늦게 도착할 예정이어서 불가피하게 야외무대 행사가 취소된 것. <사랑해> 야외무대 일정 변경으로, 22일 오후 2시에 예정된 <로드 무비>가 하루 앞당겨 관객들에게 인사를 올린다. <로드무비> 야외무대에는 김인식과 황정민이 오르기로 했으나, 황정민 대신 서린이 방문한다. 폐막작 기자시사, 기자회견장 변경 폐막작 <돌스>의 기자시사장과 기자 회견장이 변경됐다. 당초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22일 오후 4시 30분에 열리기로 했으나, 메가박스 4관으로 변경됐으며, 기자 회견장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파라다이스 호텔 카프리룸으로 바뀌었다. 기자 회견 역시 시간은 변동 없이 7시에 진행될 예정. 한국영화의 밤 개최 20일 밤10시30분 해운대 J-Pop 라이브 하우스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는 한국영화의 밤 행사가 열렸다. 주최자인 이충직 영진위 위원장을 비롯,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용관 부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영화의 성장세와 미학적 성취 등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포동 거리 사람 줄었다 영화제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영화의 거리가 비교적 한산해졌다. 가장 많은 관객이 몰렸던 주말 16일과 17일 당일 평균 예매·현매 편수가 대영 시네마의 경우 2500건이던 것이 19일 하루 동안에 500건이 준 2000건 정도, 해운대의 경우 대부분 인터넷 예매로 매진이 된 터라 현장에서 표를 구하는 인파는 주말 도합 서른 명 정도에 불과했으며, 평일은 더욱 줄어든 모습이었다. 남포동과 해운대를 합친 전체 예매·현매 인원을 비교하면, 16일에 7922명, 17일 6794명에 비해 19일 6167명, 20일 5289명으로 주말 최고 인원에서 무려 2천명 가까이 떨어졌다. 주말에 비해 평일 영화 예매수가 줄어든 것은 당연하지만, 티켓팅을 담당한 현장 자원봉사자들은 입을 모아 “예매 문화가 완전히 정착했고, 피프 캐시의 성공적 활용이 현장 발매율을 낮춘 가장 큰 이유”라고 답했다.

여섯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2)

광화문 네거리를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 ‘횡단’한다. ‘대륙횡단’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예를 들어 동화면세점쪽에서 교보문고쪽으로 건너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될지 모른다. 그가 지하도를 이용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리프트라곤 하나도 없는 지하도로 건너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 그는 그냥 차 쌩쌩 다니는 지상도로를 목발에 의지해 걸어 건넌다. <대륙횡단>의 마지막 에피소드 <대륙횡단>의 장면이다.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은 장애인을 테마로 한 인권영화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가 우연히 나았다”는 여균동 감독은, 자신의 경험에다가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를 술에 취해 그냥 지상으로 건너던 선배의 이미지가 떠올라 어렵지 않게 이 주제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처음엔 아무런 장치없이 실제로 횡단을 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장애인에 관한 영상물을 찍어온 단체들에서 문제를 제기하더라. 사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종로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허가를 받고 반쯤만 실제상황으로 찍었다. <대륙횡단>은 <대륙횡단>을 포함한 1분 정도의 짤막짤막한 원신 원컷 에피소드 13개와 주인공 배우인 김문주씨의 셀프카메라로 이루어지는 16분가량의 영화다. 지하철 자동사진촬영기에서 정상인 같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주인공이 한두방 뜻대로 되어서 기분이 좋아 웃는데 그 순간 가장 장애인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사진이 찍힌다는 에피소드 <이력서>를 비롯, 외출을 하기 위해 어렵사리 현관문을 잠그고는 열쇠를 떨어뜨린 주인공에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집에 들어가려는 것인 줄 알고 문을 따고 집안에 들여보낸다는 등 장애인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밀한 사건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단편 안에 여러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조각조각 붙어 있는 이 영화의 형식을 여균동 감독은 ‘엽편영화’라고 부른다. 이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서 어떤 방식을 취해 이 영화를 찍을 것인가 생각하던 끝에 나온 결과. “다큐를 할 것인가, 극을 할 것인가 얘기가 많았다. 결국 극은 극대로 찍되, 전체 촬영 과정을 6㎜카메라에 메이킹 다큐 형식으로 따로 기록하기로 했다. 또 이번 단편에 담길 극 안에도 일반시민을 상대로 한 몰래카메라 등 다큐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주인공 배우인 김문주(30)씨는 자신이 뇌성마비로 18년 동안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스물이 다 되어 사회에 나온 이다. 노들야학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노들야학 MT에서 “아 어쩌란 말이냐” 하는 <가슴앓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여균동 감독이 자료조사용으로 찍던 테이프에서 보고 캐스팅했다. 여균동 감독은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자연히 <대륙횡단>에는 그가 실제 겪은 일들이 많이 담겨 있다. <대륙횡단>은 인권영화 프로젝트 중 가장 빨리 진행돼 이미 셀프카메라를 제외한 촬영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공개여부는 모르겠지만 메이킹 다큐가 앞으로 주인공 배우의 일상까지 추가로 찍어 완성될 것이라고 여균동 감독은 밝혔다.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대륙횡단>은 어떤 영화내가 겪은 세상은 중증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 열세편이 모자이크된다. 황당하거나, 속상하거나, 때로는 행복한 일들. <이력서>에서는 자동사진촬영기에서 사진찍기, <횡재>에서는 힘들어서 앉아 있는데 지나가는 아이가 동전을 주고 가는 일, <한 시간 동안 구라를 푼 후>에서는 어느 여자와의 대화, <친구>에서는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귀갓길, <인어공주>에서는 채팅을 하다 일어난 일, <내가 본 것>에서는 장애인이동권 보장시위 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가족들과 함께 보는 장면, <누가 나를 볼 때>에서는 텅빈 집에 혼자 있는 한때, <음악감상시간-즐거운 우리집>은 지하철 리프트 타기, 에서는 현관문을 잠그다 일어난 일, <예행연습>에서는 2차선 도로 건너기, <약혼식>에서는 여동생의 결혼식날 혼자 집에 남던 일, <굳은 살>에서는 양말신기가 그려진다. 그 이야기들은, 마지막 에피소드 <대륙횡단>에서 주인공이 광화문 네거리를 홀로 횡단하는 심리적인 이유를 은연중에 말해준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김문주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각 에피소드 사이에는 첼로로 연주한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가 한음씩 삽입된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