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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토종 애니메이션·게임 대작 쏟아내며 대박 꿈

새해엔 어떤 문화콘텐츠산업이 별을 쏠까? 올해엔 진짜 황금알을 낳을까 지연되는 일정과 반짝이익을 기대하는 자본들의 변덕스런 들락거림으로 지난해 문화콘텐츠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03년은 몇 해 동안 준비해 왔던 대작들이 게임과 애니메이션계에서 쏟아질 해임엔 틀림없을 듯하다. 문화콘텐츠 분야를 ‘들뜨게 하는’ 기대 프로젝트들을 중심으로 올해를 전망해본다. ■ 애니메이션 “토종들이 쏟아진다” 지난해 〈마리 이야기〉로 세계시장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애니메이션계는, 올해 극장판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대중적 검증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예정된 라인업만 보더라도 4월 〈오세암〉 〈원더풀 데이즈〉, 여름 이전 〈스퀴시〉, 6월 〈엘리시움〉, 9월 〈해머보이 망치〉 〈아크〉, 하반기 〈오디션〉 등 7편 이상이다. 큰 흐름은 우선 가족물. 고 정채봉 선생의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오세암〉(마고21)은 수채화풍의 그림과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돋보이며, 〈스퀴시〉(루크필름)는 6살 전후 연령층에게 어필할 아기자기한 그림이 특징이다. 허영만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해머보이 망치〉(캐릭터플랜)는 10대 초반 소년들의 모험담을 그린 유쾌한 작품이다. 또다른 흐름은 공상과학물로, 〈원더풀 데이즈〉(양철집)와 〈아크〉(디지털드림스튜디오)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현주소를 가늠할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디지털드림스튜디오의 전범준 과장은 “올해가 지나면 제작사별로 제작 시스템 사이클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크〉나 〈원더풀 데이즈〉는 5~6년 동안의 제작 기간과 70억~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왔다. 텔레비전용은 ‘방송시간 총량제’ 도입 여부가 시장을 판가름할 가능성이 크다. ■ 게임 “춘추전국시대 열렸다” 게임은 호조건이 많다. 우선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플레이스테이션2, 엑스박스, 게임큐브 등이 모두 한국에 출시돼 3대 비디오게임기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공급된 게임기는 30만대 정도지만, 올해가 지나면 약 100만대까지 이를 전망이다. 게임브리지의 유형오 대표는 “특히 북미와 일본에서 서비스가 개시된 비디오게임기의 온라인 서비스가 올 하반기 한국에서 본격화되면 새 바람이 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등 영화에 기반한 게임들은 비디오게임기의 콘텐츠 시장도 늘려놓은 상태다. 모바일 게임시장이 2001년 350억원대에서 2002년 1천억원대로 급성장한 것도 큰 특징이다. 아무래도 온라인게임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올해 기대작들은 이쪽에 몰렸다. 우선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혼돈의 역사〉가 있다. 전편보다 15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3차원 기법으로 암울한 중세 팬터지풍의 매력을 더한다. 소프트맥스가 ‘드라마틱 온라인 액션 롤플레잉게임’이라 이름붙인 〈테일즈위버〉도 만만찮은 상대다. 액토즈 소프트의 성인 전용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인 〈 A3 〉도 명확한 타깃층이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유형오씨는 “한국 게임시장의 핵심 소비자라 할 수 있는 10대, 20대 남성 게이머 시장이 거의 개척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는 시장 다변화가 업계의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그리고 암중모색 캐릭터, 영화, 음반, 만화는 올해 시원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는 올해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대여점이 저작권을 허가받은 뒤 영업해야 하는 대여권 도입 움직임이 있어 변동이 예상된다. 영화는 지난해 작은 영화들의 성공에 힘입어 작고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주요 흐름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자본의 철수에도 불구하고 제작과 기획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은 희망적 현상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가슴에 붕대를 감은 사연은? <마들렌> 배우 강래연

안녕하세요. 연기파 배우 강래연입니다.(^O^) 꾸벅~ m(_ _)m 요 며칠 날씨가 무척 추웠죠 감기 안 걸리셨나요 그리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셈. (*^_^*) 전 지난 한해 무척 바빴걸랑요. 여러분 머릿속에 ‘강래연’ 세 글자를 박느라 브라운관과 스크린 양쪽을 뛰어다닌데다 잘 나지 않던 여드름까지 제 일정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었답니다.(^_^;)(T_T) 그래도 <내 사랑 팥쥐>와 <막상막하>를 끝내고 나니 제 얼굴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져 기분은 좋아요. (^_^)v 아마 거의 기억하시는 분들이 없으실 줄로 압니다만, 제 데뷔작, 그러니까 드라마, 영화 가릴 것 없이 처음 카메라 앞에 선 게 영화 <짱>입니다. 그전에 거리 캐스팅으로 <쎄씨> 등의 잡지모델 활동을 하긴 했지만, 연기의 ‘연’자도 모르던 제가 어찌어찌 오디션에 붙는 바람에 영화 나들이까지 했던 셈이죠. 그때 맡았던 배역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냥 ‘칠공주파 멤버’…. 얼굴 클로즈업신이 딱 하나 있었고, 나머진 계속 뒷배경에 슬쩍 걸리는 ‘운 좋은’(;_;) 조연이었습죠. 하지만 어찌나 신나던지요. 촬영장에 놀러가는 심정으로 벼락치기 스크린 데뷔를 하긴 했지만, 가족들도 별로인 눈치고, 제 자신도 그 당시엔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답니다. 제가 화교라는 건 다 아시죠 모르시나(-_-;) (-.-;)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은 중국 산둥이고 국적이 대만이라 외국인 주민증을 갖고 있어요. 외국인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대만에 나갔다 와야 하고요. 그래도 이 얼굴이 대만에선 뜨는 얼굴이라니까요. 미안합니다. <(__)> _(._.)__ 당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전 평소 한의학을 전공하고 싶던 마음을 바꿔 세종대 호텔경영학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연기는 거의 포기했더랬죠. <짱> 끝내고 <학교1>을 찍을 때였나,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카메라에 불 들어오는 게 안 보이는 거예요. 선배들은 곁눈질로 다 보인다고 하지만, 전 늘 버벅댔더랬죠. 첨엔 조금만 하다 말 거니까 하고 자위를 했지만, 혼나는 것도, 연기를 못하는 것도 자꾸 맘에 쌓이는 거 있죠. 그래서 아예 미련없이 1년인가 쉬었어요. 근데 텔레비전을 통해 함께 연기했던 장혁, 배두나 등이 나오니까 기분이 묘해지면서, 다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맘이 불끈불끈 치솟더라고요. (^_^)ㅋ 하고 싶은 맘이 최고조에 이를 때 <꼭지> 출연제의가 들어왔고, 그때부터 연기력도 차츰 속도를 올리며 늘었습니다. <마들렌>의 ‘유정’은 극중에선 납작 가슴이 최대 콤플렉스인 말라깽이지만, 실은 매우 뚱뚱하고 작달막한 말 그대로 ‘폭탄’인 캐릭터였어요. 여배우 섭외도 다 해놓았는데, 제가 하고 싶다고 감독님께 마구 졸랐어요. 정말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거든요. 민아씨보다 큰 가슴을 감추느라 붕대까지 감고 연기한 거 아시면 넘어지실 거예요. 비슷비슷한 역할들로 한창 갈증을 느낄 때 제게 찾아와준 <마들렌>은 작은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여러분께도 제가 작지만, ‘웃음’이라는 선물을 드리고 싶은데, 어때요. 보러 와 주실 거죠?'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 [1]

거장 오시마는 어떻게 몰락했나 오시마 나기사(1932-)는 지금 와병중이다. 일본에선 그가 병상에서 다시 일어나는 일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전후 일본영화계 아니 일본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던 당대의 반역아요 미학적 혁명아였던 그래서 평생 늙을 수 없을 것같던 오시마도, 그렇게 생로병사의 마지막 지점까지 오고 말았다. 문화학교서울에서 열리는 그의 회고전은 그래서 뜻깊다. 우리는 잔인하게도 그의 전락의 이유를 따져보기로 했다. 이건 한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천재 감독에게 바치는 또다른 헌사다. 2000년 칸영화제에서 선보인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는 이 영화에 특별한 기대를 가진 많은 이들을 다소 실망시킨 영화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비평적 지지를 전혀 얻지 못했던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 같은 이는 <고하토>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쓴 리뷰에서 “시적 스타일의 승리” 운운하며 이 영화가 단연 별 네개짜리 ‘걸작’이라고 상찬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은 저널리스트들과 평자들은 이 영화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영화는 1860년대를 배경으로 신센구미(新鮮組)라는 사무라이 집단의 괴멸을 그린다. 묘한 중성적 매력을 풍기는 미소년 카노 소자부로가 이 집단에 들어오면서 사무라이들은 열정과 애욕, 그리고 질투의 늪을 헤매게 된다. <고하토>가 다루는 것들, 즉 엄격한 법도를 준수하는 억압적 조직의 내부 붕괴, 그 조직 안에서 만들어지는 에로틱한 공간, 그리고 죽음과 성적 욕망 사이의 고리 등은 오시마가 충분히 관심을 갖고 다룰 만한 주제들이었다(유사한 관심사를 다룬 오시마의 영화로는 우선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1983)가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서 오시마가 이것들을 다루는 태도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거나 갈팡질팡해하는 듯이 보이고 자연히 영화의 캐릭터와 내러티브는 필요한 추동력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고하토>는 탐미적이긴 하되 오시마 특유의, 혹은 내심 그에게서 기대했던, 도발을 보여주진 못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칸영화제 당시 어떤 언론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도발이라기보다는 ‘난센스’에 가깝다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이런 실망의 이면에는 물론 영화 자체가 비범하지 못하다는 이유 외에도 오시마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평균 이상의 기대 같은 것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전작 <막스 내 사랑>(1986)은 정말이지 실망스런 영화였다. 그러나 그뒤 14년 만에 만드는 신작은 다르지 않을까 아무리 오랫동안 메가폰을 놓고 있었대도, 그래도 오시마 아닌가’ 하는 기대. 그런데 그 오시마가 이번에도 걸작을 가지고 나타나지 못했고 그만큼 기대는 더 큰 실망으로 변질된 듯싶다(어떤 면에서는 그와 비슷한 연배인 이마무라 쇼헤이가 예전만은 못하더라도 여전히 평균 이상 되는 수준의 작품들을 내놓고 있음을 함께 상기하면서). 그렇다면 오시마란 이 영화감독이 대체 어떤 존재이(였)기에 평자들로 하여금 실망을 심화시킬 만큼의 기대 혹은 주목을 갖게 했던 것일까? 이마무라는 농부, 오시마는 사무라이 오시마의 면모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그를 어떻게 정의할까, 하는 문제부터 이야기해보자. 그를 간명히 정의할 때 자주 이용되는 것은 이마무라가 이야기했다고 하는 이런 문구이다. “내가 시골 농부라면 오시마는 사무라이이다.” 용맹스럽게 칼을 휘두르며 굽힘없이 싸우는 자로서 사무라이는 일견 오시마에게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오시마는 일본의 지배 체제와 그 이데올로기와 맞서 싸웠고, 일본영화의 전통, 그리고 기존의 ‘낡은’ 영화형식과도 전투를 감행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사무라이에 충직하게 주군을 섬기는 자라는 의미도 담겨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건 오시마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는 별칭이 될 수도 있다. 오시마는 기존의 것들과 치열하게 싸운 존재이긴 했지만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를 좀더 제대로 정의하려면 다른 말이 필요할 것 같다.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들>이란 책을 쓴 모린 투림은 오시마를 ‘우상파괴주의자’(iconoclast)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따라서 이 책의 부제는 ‘한 일본인 우상파괴주의자의 이미지들’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사람들이 신봉하는 믿음들과 전통적인 제도들에 대해 끊임없이 공격을 감행하는 사람’이라면 오시마에게 이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오시마라는 이 우상파괴주의자의 면모는 영화경력의 초창기부터 드러났다. 쇼치쿠 스튜디오에 입사해 조감독 생활을 하던 시절에 이미 그는 현실성 없고 틀에 박힌 멜로드라마나 만들어내는 회사의 안이한 경영방침을 격하게 비판했다. 예컨대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 등이 50년대 후반의 쇼치쿠를 비판하면서 ‘잠자는 사자’라고 표현했을 때, 오시마는 그런 표현은 너무 점잖다며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소속 영화사를 가리켜 ‘죽은 사자’라고 불렀을 정도다. 물론 그의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쇼치쿠의 영화들만이 아니라 뻔한 장르의 틀 안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프로그램 픽처’, 그리고 전체로서의 일본영화였다. 한때 오시마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일본영화에 대한 나의 증오에는 확실히 일본영화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부정적 의미에서의 일본 상업영화들만이 아니라 서구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정제된 미학의 일본영화들(예컨대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들)과 값싼 휴머니즘의 색채를 띠는 거장들의 일본영화들(예를 들어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까지 정말이지 일본영화의 모든 것들이 오시마가 배격한 대상이었던 것이다. 오시마는 자신이 쓴 어떤 글에서 스튜디오는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내적 의식을 가진 새로운 일군의 감독들에게 자기 표현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자신에게 되돌아와 결국 현실화되었을 때 그는 과거의 것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결코 헛된 게 아니었음을 입증해냈다. 특히 1960년 한해에만 보여준 오시마의 영화적 에너지는 굉장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이 해에 그는 <청춘잔혹이야기> <태양의 묘지> <일본의 밤과 안개>로 이어지는 세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세편 모두 단명했던 이른바 ‘쇼치쿠 누벨바그’의 걸작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으리만치 활력이 넘치는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앞의 두 영화가 상업적이라고 할 만한 영화적 틀 안에다가 당대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환멸의 의식을 녹여낸 다소 절충적인 영화였다면, <일본의 밤과 안개>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급진적인 방향으로 굉장히 멀리 나간 영화였다. 처음에 쇼치쿠쪽에서는 오시마가 결혼식이 소재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기에 멜로드라마 정도를 만들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간부들을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각각 구좌파와 신좌파의 일원이었던 신랑 신부의 결혼식장에서 정치투쟁의 과오에 대한 말 그대로의 논쟁이 벌어지는 영화, 그래서 정치영화라고밖에는 달리 부를 도리가 없는 유의 영화인 것이었다. 90년대의 오시마 나기사휠체어에 의지해 <고하토>를 찍기까지 한 중산층 주부가 침팬지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그린 루이스 브뉘엘식의 코미디 <막스 내 사랑>을 내놓은 지 장편극영화로는 무려 13년 만에 발표한 오시마의 신작이 <고하토>이다. 그럼 그 1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오시마는 과연 어떤 일을 했었던 것일까 사실 오시마 자신도 <막스 내 사랑> 이후의 영화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90년에 그는 <할리우드 젠>(Hollywood Zen>이란 프로젝트에 착수할 계획이었다.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의 제작을 맡았던 제레미 토마스가 다시 관여할 이 프로젝트는 무성영화시대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던 일본인 배우 하야가와 셋슈에의 삶을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파이낸싱에 문제가 생기면서 결국 이 프로젝트는 백지화되고 말았다. 90년대에 오시마는 영국의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기획한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BBC 스코틀랜드가 기획한 영화감독들의 전기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교토, 내 어머니가 사는 곳>(1991)과 BFI 영화 100년 다큐멘터리의 일본편인 <일본영화 100년>(1995)이 그것들. <일본영화 100년> 같은 경우는 일본영화의 전개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는 다큐멘터리인데, 이것을 장 뤽 고다르가 만든 시리즈의 다른 편인 <프랑스 영화 2×50년>과 비교해보아도 이제 오시마의 창의력이 다소 쇠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한편으로 90년대에 오시마는 일본쪽 대변인의 자격으로 미국영화의 지배에 대해 세계 영화감독들이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자신이 영화경력을 시작했던 쇼치쿠로 돌아와 <고하토>를 찍기로 했던 오시마는 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이 프로젝트에도 당장 매달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오시마는 휠체어에 의지해 결국 <고하토>를 완성해냄으로써 90년대의 끝에서야 또 한편의 장편극영화를 필모그래피에 추가할 수 있었다.

DVD 프라임이 추천하는 베스트 타이틀 3편

1.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1년 12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DVD를 만든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곧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너무 낮아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하긴 <나쁜 영화>를 찍고 남은 자투리 필름까지 공수받으며 완성된 16mm 저예산영화에 어느 누가 DVD로서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건네받은 샘플 DVD를 접하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DVD 제작에 너무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투입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련된 메뉴화면은 코드 1번의 어떤 레퍼런스 타이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본편 영화의 열악한 AV적 퀄리티를 보완하기 위해 수록된 풍성한 서플먼트는 당시까지 발매되었던 한국영화 DVD 중 최고수준이었다. 재치넘치는 류승완 감독의 음성해설은 자신의 영화와 DVD에 대한 애정이 넘쳐흘렀고 서플먼트로 수록된 <다찌마와 LEE>는 본편보다 더 좋은 화질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DVD 출시에 임박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류승완 감독은 “제작 당시 영화가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였기 때문에 (웃음) DVD로 만들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네거필름은 내 방 장롱 속에 처박혀 있었는데 DVD 제작을 위해 텔레시네를 거친 화면을 보니 나도 어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과연 DVD의 본편 퀄리티는 아마도 ‘최악’이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엄지손가락만한 스크래치가 비오듯이 화면을 가득 수놓는가 하면 모든 음향이 센터 채널에서만 출력되는 1채널 모노 사운드는 저예산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독립영화에 대한 DVD 소비자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류승완 감독과 제작진은 DVD 제작에 모든 열성을 다했고 DP는 인터뷰-프리뷰-공동구매로 이어지는 3연타 지원으로 아낌없이 ‘팍팍’ 밀어주었다. 더불어 류승완 감독 또한 공동구매에 참여한 DP 회원들을 위해 200장의 오리지널 포스터에 손수 친필사인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2. <파이란> DVD로 제작된 <파이란>은 개봉 당시의 흥행성적을 고려하면 꽤나 많은 사랑을 받은 케이스다. 이전에 잡지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DVD의 프로듀서로 참여했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높았지만 DP 운영진 전체가 그해 최고로 꼽은 한국영화이기도 했기 때문에 출시 한달 전부터 이틀에 한번꼴로 전화를 걸어 ‘샘플 디스크가 언제 나오느냐’며 이른 제작을 ‘독촉’했다. 지금 봐도 그다지 부족함이 없는 타이틀이지만 당시에 처음 접한 <파이란>의 DVD는 무엇보다도 헐리우드영화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화질을 보여주었고 송해성 감독과 주연배우 최민식, 프로듀서, 음악감독까지 무려 네명의 제작진이 음성해설에 참여한 것 또한 당시로서는 신선한 시도였다. 또한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직접 DVD 제작에 참여해 인터뷰 클립 등을 촬영하는 등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의 제작진과 DVD 제작진, 팬들의 애정이 똘똘 뭉친 <파이란> DVD는 영원한 한국영화 타이틀의 모범이다. <파이란>은 현재 진행 중인 DP 어워드의 ‘BEST 한국영화 DVD’ 부문에서 가장 높은 추천율을 보이고 있다. 3.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확장판 <두개의 탑> 개봉으로 지난해 겨울에 이어 전세계가 다시금 ‘절대반지’의 열풍에 휩싸여 있는 지금 시점에서 굳이 이 타이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다. 극장 개봉시 볼 수 없었던 30여분의 미공개 장면이 더해진 확장판을 두고 제작사인 뉴라인은 “<두개의 탑>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반지원정대> 확장판 DVD의 사전 감상은 필수적인 코스”라고 밝히고 있다. 무려 28명이 참여한 네 개의 음성해설과 100% 16:9 아나모픽을 지원하는 스페셜 피처는 그 구성면에서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작에 대한 체계적인 조명과 크랭크인까지의 사전제작, 촬영, 편집, 음향, 특수효과, 의상, 개봉 뒤 반응에 이르기까지 영화제작 전 분야에 걸친 다양한 메이킹 다큐멘터리는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지금까지 발매된 모든 타이틀과 비교하여 그 격을 달리한다. DP가 굳이 밀어주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구입할 타이틀이지만 ‘설마‘ 아직까지도 이 DVD를 구매하지 않은 애호가가 있다면 지금 당장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할 것을 권한다. 피터 잭슨과 배우들, 이하 스탭진들이 이루어낸 영화적인 성과에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DVD 애호가들은 DVD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최대한도로 이끌어낸 DVD 제작진에게도 동일한 평가를 해주어야 함이 마땅하다.백준오/ DVD 칼럼니스트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벼락부자된 전과자 부부이야기 <스몰 타임 크룩스>

혹시 시간은 남아돌고, 주머니 사정이 마침 허락한다면, <웰컴 투 콜린우드>와 <스몰 타임 크룩스>를 비교 검토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텔레비전 영화프로그램들이 시도할지 모르지만. 1958년산 이탈리아 코미디 <마돈나 거리의 빅 딜>에서 함께 출발했다지만 두 영화는 아주, 너무 다르다. <웰컴…>은 원작을 리메이크했고, <…크룩스>는 그걸 실마리로 차용했다는 건 도리어 사소한 차이. <웰컴…>의 젊은 형제 감독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과 밀도를 뽐낸다면, <…크룩스>의 우디 앨런은 모든 걸 초월한 듯 자유롭게, 가볍게 이 23번째 영화를 풀어간다. 하잘 것 없는 싸구려 사기꾼들 얘기라고, 제목에서부터 선언해놓고. 여기서 우디 앨런은 전직 스트립댄서 프렌치(트레이시 울먼)와 착실하게 접시를 닦으며 살아가는 전과자. 그런데 누추한 삶을 날려버릴 큰 건수를 발견한다. 은행 옆 가게가 피자집이 비었는데 이걸 임대하면 은행으로 연결되는 땅굴을 팔 수 있다! 지하실에선 땅굴을 파고, 지상층에선 프렌치가 과자를 구워 판다. 은행털이 계획은 실패. 여기까지가 마돈나 거리 얘기에 기댄 부분이다. 과자가게는 기적처럼 성공.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서 레이와 프렌치 갱단은 제과업계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두번째 단락은 프렌치의 상류사회 진입작전.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우아한 교류를 시작하려던 프렌치는 벼락부자의 싸구려 취향을 뒤돌아서 낄낄거리는 그들의 반응에 낙담한다. 씩씩한 프렌치,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영국인 미술품중개상 데이비드(휴 그랜트)에게 부부의 교양 개인교습을 청한다. 예상대로 레이는 공부를 중도포기하고, 프렌치는 우아하고 섬세한 데이비드에게 빠져든다. 파국이다. 하지만 다시 예상대로 레이는 고급교육으로 고급 사기술을 연마한 전문가(여기서는 회계사)의 덫에 걸려 파산. 또 다시 예상대로 레이는 데이비드에게 버림받는다. 세번째 단락 결말도 미리 공개해도 좋을만큼 당연하게, 레이와 프렌치의 재결합이다. <…크룩스>의 묘미는 사건의 발전이 아니다. 상류사회의 폐쇄성과 속물근성, 우아하게 포장된 사기성 따위를 비꼬는 디테일들이다. 계급구조가 완성된 사회에서 신분상승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영화 등등의 자습서식 정리를 접어두자. 아주 느슨하고 아주 잡담이 많은데, 그게 이 영화의 묘미다. 24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디카프리오 상큼한 부활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티븐 스필버그가 레오나드 디카프리오와 톰 행크스를 불러들여 만든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설명은 이것으로 족하다. 17살의 나이로 미국연방수사국의 수배자 명단에 오른 천재적 사기꾼이야기, 라는 것이 보충설명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레오, 디카프리오의 부활여부가 궁금하다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비치>에서 대니 보일과 동반추락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가뿐하게 배우로서의 상승궤도에 재진입시켰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팬암사의 조종사를 사칭하며 비행기를 공짜로 타고다니고, 위조수표를 남발하고, 의사를 사칭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내던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비그네일 이야기로 스필버그는 또하나의 아메리칸 드림을 완성시켰다. 오프닝 크레딧만 봐도 영화가 어떻게 달려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프랭크와 연방수사관 핸래티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애니메이션으로 요약한 2분40초짜리 크레딧은 경쾌하다. 프랭크 애비그네일은 어떻게 거짓말에 성공했나 우선 영화는 전학간 학교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사칭'하며 교실의 말썽꾼들을 평정하는 순간부터 그의 재능을 입증해놓는다. 다음은 당대의 인기직 비행조종사가 되는 법. 소년은 우수조종사로 뽑힌 베테랑을 찾아가 인터뷰를 통해 조종사들의 전문용어와 행동방식을 배운다. 그리고 실행한다. 착실한 배움을 통해서, 조종사의 제복을 맞춰입고, 수표를 발행하고, 비행기 무임승차를 한다. 팬암 비행기를 욕조에 가득 담아놓고 팬암 상표를 떼내 조종사용 수표를 만들어내는 소년 프랭크의 재치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들만 하다. 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생활속의 발견이 거대한 시스템을 공략하는 비기란 말이지.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 법정 드라마를 보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할 정도다. 프랭크 애비그네일은 왜 거짓말에 손을 댔을까 매끈한 추격전의 바탕에 스필버그는 아버지의 존재를 깔아두었다. 아버지 프랭크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 발버둥치지만, 세무당국의 추적을 받아 철저하게 경제적 능력을 빼앗기는 인물. 아내에게도 버림받는다. 가정의 행복이 깨어진 뒤, 아들 프랭크는 아버지를 돕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위조수표로 거금을 손에 넣은 뒤, 새차를 몰고 아버지를 찾는다. 실패한 아버지를 향한 연민은 이 `결손가정' 청소년이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결핍은 또 새로운 아버지의 등장으로 보상받는다.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핸래티가 바로 그 새 아버지다. 자신이 추적하는 인물의 재능에 감탄하게 되는 핸래티는 결국, 그를 프랑스의 비인간적 감옥에서 그를 구출해 미국의 `안전한' 감옥으로 피신시켜주는 역할을 맡는다. 아버지 핸래티는 이쯤에서 아버지 미국과 동격이 된다. 그는 비뚤어진 재능조차 바로 잡아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도구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탈선 10대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까지의 과정, 그것이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다. 디카프리오는 한편으로는 가정을 잃은 10대로서 동정을, 한편으로는 경쾌한 두뇌게임의 수행자로서 사랑을 받으며 이 신화의 완성에, 자신의 배우이력의 재정립에 성공한다. 스필버그 식으로.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SF로 본 <시몬>,코미디로 본 <시몬>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의 유쾌한 SF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은 달세계 독립운동을 벌이는 일단의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혁명의 실질적인 수뇌는 마이크라는 슈퍼 컴퓨터인데, 자신의 존재를 비밀에 부치기 위해 애덤 셀렌(Adam Selene)이라는 가공의 선동가를 창조해낸다. 문제는 혁명이 무르익자, 애덤 셀렌이 더이상 숨어서 글만 발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이크의 해결책은 애덤 셀렌이 등장하는 비디오 화면을 조작하는 것이다. 이 계획을 듣자, 이 소설의 화자이자 동료 혁명가인 마누엘은 질겁하며 외친다. “넌 목소리는 아주 잘하고 있어. 몇천 가지 결정을 1초 동안에 할 수 있는 정도니까. 하지만 비디오는 사정이 달라. 그걸 하려면 매초에 몇천만번이나 결정을 내려야 해. 마이크, 넌 너무 빨라서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야. 하지만 비디오 화면을 내보낼 정도로 빠르지는 못해.” 하지만 마이크는 해낸다. 마누엘은 마이크의 스크린 위에 뿌연 구름 같은 것이 떠오르더니 그게 점점 사람의 얼굴로 굳어지는 것을 지켜보다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하인라인은 지금 컴퓨터그래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예언한 1966년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1966년 작품이고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달세계 혁명은 21세기 후반에 일어난다. 당시에 활동했던 많은 SF작가들처럼 하인라인도 심각한 계산 착오를 일으켰다. 그는 우주선과 같은 거대한 기계들의 발전을 과대평가했지만 인터넷이나 디지털 혁명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초는 어떤가 우린 마이크와 같은 생각하는 컴퓨터도 없고 달식민지도 개척하지 못했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하인라인이 상상도 못했던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하인라인은 컴퓨터그래픽에 대해 대충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 가능성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달식민지가 세워지려면 앞으로도 반 세기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적인 컴퓨터그래픽 인간은 그보다 훨씬 일찍 나올 것이다. 영화판에서 디지털 배우는 더이상 SF의 영역이 아니다. <타이타닉> 이후 수많은 디지털 스턴트 더블들이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쥬라기 공원> 이후 할리우드 SF영화를 점령하고 있는 디지털 괴물들도 디지털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배우들만 등장한 <파이널 환타지>의 영화 버전이 제작될 때, 많은 배우들은 정말 긴장했었다. 다행히도 영화의 결과가 기대보다 못한 편이어서 지금은 다들 조금씩 안심하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파이널 환타지>가 제작될 무렵, <시몬>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앤드루 니콜은 정말로 디지털 배우 주인공 시몬 역으로 디지털 배우를 쓸 생각까지 했다. 사실 진짜로 배우 조합 사람들의 신경을 긁은 영화는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영화였던 <파이널 환타지>가 아니라 일반 극영화인 <시몬>이었다. 결국 니콜은 그 계획을 포기했지만 후유증은 심각했다. 나는 아직도 <시몬>이 흥행 실패를 한 이유 중 하나가 할리우드 사람들의 신경을 잔뜩 긁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실수는 영화의 소재인 디지털 배우라는 컨셉을 영화가 채 시작하기도 전에 SF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실제 세계인 할리우드에 던졌다는 데 있었다. 현실을 앞서고 능가해야 할 장르영화의 소재가 영화 개봉 이전에 벌써 일상적인 개념이 되어버렸으니, 결코 만만한 장애가 아니었던 셈이다. 코미디 <시몬>, SF <시몬> <시몬>은 SF이고 코미디다. 이 둘이 모순되는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이 두 장르가 각각 자신만의 주제를 따로 배정받고 있다. 코미디로서 <시몬>은 할리우드에 대한 풍자극이다. 영화는 먼저 값어치에 비해 쓸데없이 비싸게 구는 스타들을 조롱한다. 이 영화에서 대표적인 타깃이 되는 인물은 위노나 라이더가 성깔있게 연기한 니콜라 앤더스다. 대우에 불만을 품은 니콜라 앤더스가 영화를 관두고 뛰쳐나가자 주인공인 영화감독 빅터 타란스키는 디지털 배우인 시몬을 니콜라 대신 등장시키는데, 시몬은 돈 한푼 안 받고 어떤 특별 대우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니콜라보다 더 나은 일을 해낸다. 여기까지는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책임지는 위치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스타들의 변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신나는 복수극이 된다. 영화는 타란스키로 대표되는 영화감독들을 놀려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타란스키는 시몬이 탄생한 뒤 ‘스타들에 의해 놀아나는 감독’ 역할에 더 충실하게 된다. 타란스키는 시몬을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스타로 만들었지만, 시몬의 명성이 그의 명성을 넘어서게 되자, 그는 문자 그대로 시몬에게 종속되게 된다. 한마디로 함정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다른 함정에 빠져버린 셈이다. 시몬이 스타로 떠오르면, 영화의 타깃은 할리우드가 생산해내는 번지르르한 허상들을 게걸스럽게 삼켜대고 재생산해내는 매스컴과 대중으로 옮겨지게 된다. 시몬이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 소동에서 아무런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것도 약간의 상상력을 처바른 이미지와 사운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유감스럽게도 앤드루 니콜은 그렇게까지 좋은 코미디 작가가 아니어서, 이런 주제들을 살리기 위해 그가 동원한 농담들은 그렇게까지 효율적이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가 계속 키들거리며 웃었다는 것도 대단한 증거가 못 된다. 내가 이런 가짜들의 이야기를 특별히 편애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특별히 나쁠 건 없지만 비교적 만만한 코미디는 <시몬>을 실제 이상으로 단순한 영화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은근히 <시몬>의 줄거리와 비슷할 수준으로 아이로니컬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편리한 도구로 사용된 코미디가 너무 단순하고 쉽게 쓰여진 나머지, 그 단순한 코미디가 영화 전체를 대변하게 된 것이다. 슬슬 여기서 <시몬>의 SF적인 면을 끄집어낼 때가 됐다. 자, 그럼 <시몬>은 어떤 종류의 SF인가 절대로 하드SF나 사이버펑크는 아니다. 둘 다 치밀한 과학기술지식 묘사가 필수적인 소장르인데, <시몬>이라는 영화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다. 하긴 앤드루 니콜의 다른 SF 각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기본 아이디어만 취하면 설정이 아무리 비현실적이어도 대충 무시한다. 덕택에 유전자 검색을 수초 안에 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신분증의 사진 대조도 하지 않는 보안체계나, 특별히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은 텔레비전 쇼를 위해 달에서도 보일 만한 거대한 세트를 짓는 방송사 같은 것들이 그의 각본에는 당연하게 등장한다. <시몬>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시몬이 컴맹 중년 감독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해낼 만한 계획일까 환상의 힘, 무엇이 나쁜가? 만약 이야기가 이 정도의 비현실성에서 안주한다면, 우린 영화가 진짜로 하려는 이야기가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경고보다 더 추상적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가타카>와 <트루먼 쇼>에서 니콜의 주제는 조작된 환경 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시몬>도 그런가 답변하기 전에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살펴보자. 지금까지 니콜이 쓴 세편의 SF들은 모두 사기와 기만에 대한 것이었다. <가타카>에서 주인공은 출세를 위해 시스템을 속인다. <트루먼 쇼>에서는 오락을 위해 전세계 시청자들과 방송사가 주인공을 속인다. <시몬>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으려는 영화감독이 전세계를 속인다. 세편의 영화에서 사기는 모두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가타카>에서 사기는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무기이다. <트루먼 쇼>에서는 대중이 주인공을 박해하는 도구이다. <시몬>에서는 앞의 두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더이상 사기 행위를 통제하는 쪽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기 행위로 창조된 환상은 그 자체의 힘을 갖고 속이는 쪽과 속는 쪽 모두를 휘둘러댄다. 이 점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 같다. <시몬>이 다루는 환상은 더이상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인간적 가치를 부여받지 않는다. <시몬>에서 시몬은 거대한 자연의 힘처럼 그냥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시몬의 가치가 아니라 시몬의 영향력이다. 코미디 <시몬>에서 시몬은 기본적으로 껍질만 있는 공허한 존재이다. 하지만 SF <시몬>에서 시몬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는 괴물이다. 시몬을 살아 있는 괴물로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을 달아줄 필요도 없다. 시몬을 움직이는 생명력은 타란스키와 매스컴이 알아서 보급해준다. 그들의 사랑, 욕구, 갈망은 약간의 상상력, 예술적 터치와 결합해 시몬이라는 인격체를 만들어낸다. 타란스키는 SF의 가장 오래된 주인공 중 한명과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그는 할리우드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심지어 세례명도 같다). 그의 여정도 유명한 선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괴물을 창조하고 그 괴물을 통제하려 시도하다가 결국 괴물을 죽이려고 시도하고 그러다가 결국 괴물의 힘에 넘어가버린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SF <시몬>이 시몬을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타란스키를 일련의 난처한 시련 속에 던져넣는 코미디 <시몬>과는 달리 SF <시몬>은 그에게 분명한 해결책을 마련해준다. 타란스키는 시몬과 싸워서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해결책은 시몬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때려부수기엔 환상의 힘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까지 나쁜 일이 아니다. 과연 가짜가 그렇게까지 거부해야 할 존재인가 어차피 할리우드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상품은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된 환상이며 픽션이다. 그 상품들을 이미지와 사운드로만 구성된 환상의 존재가 개입해서 만든다고 해서 우리가 공포에 질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 결과물은 진짜 사람들이 만든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우리가 진짜로 신경 써야 할 건 그 출신 성분이 아니라 결과물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완성도가 아닐까 우리가 그 가짜들을 어떻게 생각하건 실제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애덤 셀렌은 결국 달세계를 지구로부터 해방시킨다. 나중에 어떤 역사학자가 애덤 셀렌이 가공의 존재라는 것을 밝혔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달세계의 독립에 끼친 업적이 갑자기 사라지는가 앤드루 니콜이 정말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사기꾼들을 주인공들로 내세운 영화 각본을 써왔던 이 뉴질랜드 남자가, 가짜와 허상의 힘에 대해 심사숙고하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이치에 안 맞지는 않다. 만약 그가 잘하지 못하는 코미디를 거두고 좀더 정공법을 택했다면 이 주제는 좀더 잘 먹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디지털 배우에 놀아나는 할리우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코미디 이외의 장르를 택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김형태의 오!컬트,

“저한테 귀신이 7명이나 붙어 있었대요. 그거 다 떼고 왔어요. 아주 용한 분 계시는데 소개해드릴까요” 오랜만에 연락이 온 그녀의 근황은 이러했고, 나는 얼마 전에 <차인표의 블랙박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빙의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심심풀이 땅콩 정도의 호기심으로 본 적이 있다. 심심풀이 땅콩 정도의 호기심이라 함은, 그것이 현실성이 없어서 시시하다거나 혹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라 놀라운 일이어서가 아니다. 모처에 귀신이 출몰한다거나, 미확인 비행물체가 목격되거나 눈빛으로 숟가락을 구부러뜨리는 일쯤이야 사건도 아니다. 그런 사건을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익히 들어서 알고 있고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논란의 여지는 이제 진부하기만 하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당신은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믿느냐’라는 질문보다는 ‘외계생명체의 존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느냐’라는 질문이 조금 더 현실적인 질문이리라. 과학이라는 절대적 진리는 고작 물리적 현상을 숫자로 표기하거나 화학적 현상을 임의의 기호로 표기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바람은 왜 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과학적 설명이란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의 물리적 이동을 설명하는데, 그것은 ‘왜 부는가’에 대한 답변이 아니고 ‘어떻게 부는가’에 대한 답변일 뿐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이란 ‘왜’에 대한 해답은 없고 단지 ‘어떻게’에 대한 설명만 임의의 수치와 기호, 수식과 공식으로 설명할 뿐이다.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생명체란 과연 무엇일까.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시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신은 이 세상을 왜 창조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그리고 현생 인류의 의식수준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해답들. 이런 질문들은 한번 시작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이런 유의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가슴은 답답증에 폭발할 것만 같고 머릿속은 ‘잘못된 연산을 수행’한 컴퓨터처럼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만다. 그 끝이 어디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 속 작은 별 하나 위에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태어나 목적도 이유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설픈 지적 생명체. 공포의 근원은 무지이다. 보이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것. 그것이 공포의 근원이다. 그래서 어두움, 낯선 사람, 모르는 길은 공포이다. 본 적이 없는 생명체, 원리를 알 수 없는 자연현상들은 우리에게 공포를 안겨준다. 그 공포를 피하고자 인간들은 과학적 규칙과 종교적 원론들을 만든다. 그리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모두 논의의 가치조차 없는 미신이거나 과대망상에 의한 착각으로 규정하고, 종교적으로는 절대존재가 언급하고 일러준 진리라는 것에서 벗어난 여타의 의문과 재론의 여지들은 차라리 죄악으로 간주하여 근본적으로 무지로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컬리와 멀더가 담당했던 수많은 미결 사건들은 열람금지 x파일이 된다. 한때 내가 즐겨보던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라는 프로그램도 종교단체의 반발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모두 가치관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무지라는 것은 눈가리고 귀막음으로 보호할수록 더욱 커지는 것이다. 한편 우주의 모든 가능성에 마음을 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요지경인들 그리 무서울 것도 없다. 기밀문서 X파일이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 방영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그 초자연적 사건들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많은 것을 ‘알게’ 하였으니까.김형태/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www.hshband.net

옥신각신 유쾌한 사랑 만들기 <동갑내기 과외하기>

대학생 수완은 닭집 주인인 엄마(김자옥)의 성화에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과외전선에서 고군분투중이다. 일주일 만에 그만둔 집에 이어 막강한 적을 만났으니, 벼락부자 아버지(백일섭)를 둔 지훈이다. 고3만 3년째, 싸움은 학교 짱이지만 ‘권력’엔 관심없고 쫓아다니는 여학생들이 한 트럭인 캐릭터. “수업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선언하더니, 촌스러워 보이는 수완을 “복길아, 복길아” 부르는가 하면, 두번째 과외에 똑같은 옷을 입고 온 수완에게 “과외 유니폼이냐” 약올린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쿨하고, 유쾌한 웃음을 주는 영화다. 동갑내기가 과외선생과 제자로 만나 옥신각신, 익숙치 않은 연애감정을 느껴가는 과정이기에 애초 커다란 반전이나 극적인 갈등, 가슴 저릿한 리얼리티의 감동을 기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영화는 이 뻔하고 다소 인위적인 설정을 신파적 감정이나, 억지웃음에 의존하지 않고 인물들의 자연스런 표정과 치고받는 대화로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다. 특히 김자옥과 백일섭의 연기는 매콤달콤한 소스처럼 코미디의 맛을 돋궈준다.원작은 2년전 인기를 모았던 통신연재물이다. 인물들의 발랄함을 적절히 수위조절하고, 텔레비전 코미디극 같은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영화로 무리없이 확장한 것은, 이 영화로 데뷔한 김경형 감독의 능력으로 보인다. 7일 개봉.김영희 기자

[로마] 나이는 18 이하, 생각은 18 이상

18세 미만영화제 토리노에서 열려, 다양한 내용과 형식 돋보여어린이와 청소년의 창작영화제인 18세 미만 영화제(Sottodiciotto Film Festival)가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 자동차의 도시 토리노에서 열렸다. 18세 미만 영화제는 행사 명칭 그대로 18세 미만의 초·중·고교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 성과물을 선보이는 행사. 올해 3회를 맞는 이 영화제는 여느 영화제와 다른 특색을 가진 토리노영화제와 토리노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158개의 작품이 출품됐다.어린 필름메이커들의 작품은 학교 생활과 친구들의 이야기, 부모와의 갈등, 여행, 아기와 동물 등 신변잡기적 소재의 영화로부터 음악과 미술 등을 활용한 색다른 영상 실험을 선보인 작품까지 매우 다양했다. 또 전쟁과 기아 등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의 또래 친구들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표명한 작품이나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시사적인 다큐멘터리까지 선보여 영화제를 찾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이 영화제에선 학생들의 창작품은 물론, 학교 생활과 청소년을 주제로 한 교육적인 내용의 기성 영화들이 초청돼 특별 상영됐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성장 영화 <페이퍼 문> 등이 특별상영됐으며, 개막작으로는 인도계 영국 감독 거린다 차다의 <슈팅 라이크 베컴>이, 폐막작으로는 학교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프랑스에서 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 <존재와 소유>(Etre et avoir)가 상영됐다.또한 어린이에 관한 영화를 즐겨 만든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특별전이 열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에선 <놀이 공원의 창>(La finestra del Luna Park), <카라브리아의 소년>(Un ragazzo di Calabria) 등의 장편과 감독이 자녀들과 함께 만든 단편 작품들이 소개됐다. 코멘치니 감독은 영화제 기간에 어린이와 청소년영화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영화계뿐 아니라 언론과 교육기관 등의 주요 인사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들은 158편의 경쟁작 중 초·중·고교생 작품을 구분하여 각각 최우수작품상을 수여하였는데, 초등학생 부문의 최우수작품상은 부레샤초등학교에서 출품한 <영상을 통한 소리의 흔적>(Tracce sonore trame visive)에 돌아갔다. 단순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어린이의 창조성과 환상을 표현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중학생 부분 최우수작품상으로는 밀라노 비메르카데중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그림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몬스터스 뮤직>이 선정됐다. 고등부문에서는 토리노고등학교의 <화면의 분노>가 선정됐는데, 문제아의 생활을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으로 구성한 이 영화는 ‘영상의 힘’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영화제 기간 동안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열렸는데, 특히 현직 교사들이 참석해 “영화와 텔레비전의 공포와 감동”이라는 주제로 뜨거운 토론이 열렸다. 또한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영화의 교육적 수단이라는 실험을 제시하였던 “학교 안팎에서 영화하기”가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영화제는 주최쪽의 조직과 운영면에서도 많은 질적 향상이 있었고, 2001년에 비해 주최쪽의 조직성에서도 많은 질적인 향상이 있었고, 지난해에 비해 관객도 25% 이상이 늘어나는 등의 좋은 성과를 올렸다.18세 미만 영화제는 해가 갈수록 그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의 교육에 해악을 미친다고 치부되던 영화라는 매체가 청소년들이 그 창조의 과정을 체험함으로써 적잖이 교육적인 효과를 주는 아이러니를, 이탈리아 교육계에서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이상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