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로마] 나이는 18 이하, 생각은 18 이상

어린이와 청소년의 창작영화제인 18세 미만 영화제(Sottodiciotto Film Festival)가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 자동차의 도시 토리노에서 열렸다. 18세 미만 영화제는 행사 명칭 그대로 18세 미만의 초·중·고교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 성과물을 선보이는 행사. 올해 3회를 맞는 이 영화제는 여느 영화제와 다른 특색을 가진 토리노영화제와 토리노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158개의 작품이 출품됐다. 어린 필름메이커들의 작품은 학교 생활과 친구들의 이야기, 부모와의 갈등, 여행, 아기와 동물 등 신변잡기적 소재의 영화로부터 음악과 미술 등을 활용한 색다른 영상 실험을 선보인 작품까지 매우 다양했다. 또 전쟁과 기아 등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의 또래 친구들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표명한 작품이나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시사적인 다큐멘터리까지 선보여 영화제를 찾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 영화제에선 학생들의 창작품은 물론, 학교 생활과 청소년을 주제로 한 교육적인 내용의 기성 영화들이 초청돼 특별 상영됐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성장 영화 <페이퍼 문> 등이 특별상영됐으며, 개막작으로는 인도계 영국 감독 거린다 차다의 <슈팅 라이크 베컴>이, 폐막작으로는 학교생활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프랑스에서 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 <존재와 소유>(Etre et avoir)가 상영됐다.또한 어린이에 관한 영화를 즐겨 만든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특별전이 열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에선 <놀이 공원의 창>(La finestra del Luna Park), <카라브리아의 소년>(Un ragazzo di Calabria) 등의 장편과 감독이 자녀들과 함께 만든 단편 작품들이 소개됐다. 코멘치니 감독은 영화제 기간에 어린이와 청소년영화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영화계뿐 아니라 언론과 교육기관 등의 주요 인사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들은 158편의 경쟁작 중 초·중·고교생 작품을 구분하여 각각 최우수작품상을 수여하였는데, 초등학생 부문의 최우수작품상은 부레샤초등학교에서 출품한 <영상을 통한 소리의 흔적>(Tracce sonore trame visive)에 돌아갔다. 단순한 도구들을 이용하여 어린이의 창조성과 환상을 표현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 중학생 부분 최우수작품상으로는 밀라노 비메르카데중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그림을 이용한 애니메이션 <몬스터스 뮤직>이 선정됐다. 고등부문에서는 토리노고등학교의 <화면의 분노>가 선정됐는데, 문제아의 생활을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으로 구성한 이 영화는 ‘영상의 힘’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영화제 기간 동안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열렸는데, 특히 현직 교사들이 참석해 “영화와 텔레비전의 공포와 감동”이라는 주제로 뜨거운 토론이 열렸다. 또한 이번 영화제를 통해서 영화의 교육적 수단이라는 실험을 제시하였던 “학교 안팎에서 영화하기”가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영화제는 주최쪽의 조직과 운영면에서도 많은 질적 향상이 있었고, 2001년에 비해 주최쪽의 조직성에서도 많은 질적인 향상이 있었고, 지난해에 비해 관객도 25% 이상이 늘어나는 등의 좋은 성과를 올렸다.18세 미만 영화제는 해가 갈수록 그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의 교육에 해악을 미친다고 치부되던 영화라는 매체가 청소년들이 그 창조의 과정을 체험함으로써 적잖이 교육적인 효과를 주는 아이러니를, 이탈리아 교육계에서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넘어설 차별화 전략있다`

4년만에 메가폰 강제규 감독지난 5일 오후 2시 신라호텔에서 열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발표회는 기자들과 각종 영화관계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쉬리> 이후 4년 만에 메가폰을 잡는 강제규 감독의 새영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그동안 공개석상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강 감독의 얼굴도 자못 긴장돼 보였다. 전보다 홀쭉해진 모습의 강 감독은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우려돼 몸만들기 차원에서 5kg 정도 감량했다”고 말을 꺼냈다.순제작비 130억, 촬영기간 8개월, 엑스트라 총동원수 2만5천여 명, 20여 개의 대규모 세트 제작 등 이날 공개된 제작규모는 세번째 작품에서도 한국대중영화의 기록을 다시 쓰고자 하는 강감독의 만만치 않은 야심을 드러내준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두 형제의 엇갈리는 운명을 그린 작품. 장동건과 원빈이 나란히 강제징집을 당하는 진태, 진석 형제로, 이은주가 진태의 약혼녀로 출연한다.강 감독은 두가지 면에서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첫번째 의도는 동남아를 뛰어넘는 세계시장 진출이다. “<쉬리>를 수출하며 해외시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배웠다. 한국영화가 국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아시아 뿐 아니라 헐리우드와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 내적인 완성도와 함께 해외 동시 개봉 등 배급도 개선돼야 한다. <태극기…>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발판을 만들겠다”. 장동건과 원빈을 캐스팅한 것도 아시아 시장에서 그들이 가진 스타파워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전작의 상영에 실패했던 거대한 시장 중국에서 반드시 개봉을 하겠다는 게 강 감독의 야심찬 계획이다.두번째는 올해로 휴전 50년을 맞는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 제시다. 강감독은 <태극기…>가 이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임을 강조한다. “2년 전 가을, 텔레비전에서 한국전쟁 발발 5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전쟁 당시 임신한 상태로 남편을 군에 보내고 생사여부도 모른 채 살아온 여성이 50년 뒤 남편의 유해발굴 통보를 받고 쉰살 된 딸과 함께 현장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한 인간의 삶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뜨리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재는 한국전쟁이지만 전쟁으로 파괴되는 가족과 사랑 등 관계들에 대한 성찰은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감독은 낙관한다. 대규모 전쟁 신같은 볼거리를 화려하게 준비하되 애국주의나 영웅주의적 무용담으로 흐르지 않도록 한다는 게 강제규 감독의 헐리우드와의 차별화 전략이다. 오는 10일 크랭크 인해 다음 해 설쯤 개봉할 예정. 한국전쟁 당시 쓰였던 탱크, 총기 등 군 장비 지원을 받고자했지만 육군에서 시나리오 수정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최소한의 장비를 제작하고 컴퓨터 그래픽에 상당 부분 의지해야 해 후반작업만 4개월 이상 예상하고 있다. 전체 제작비의 30%는 일본 제작사의 투자를 받아 완성한다.김은형 기자

김정영의 오!컬트,<결혼피로연>

부모님 손바닥 위에서 나이먹기 내 사촌동생은 얼굴은 조폭인데 웃으면 눈이 빙긋이 초생달처럼 그어지는 아주 매력적인 촌놈이다. 마치 만화 <엔젤전설>에서 ‘키야약’ 소리를 지르고 ‘친구 100명 만들기가 소원’인 주인공처럼 얼굴은 험상궂어도 마음속엔 소녀가 앉아 있는 녀석이다. 그 녀석이 휴학하고 군대지원서 내고 집에 내려가기 전 며칠 우리집에 머물렀다.학교 다니며 다니던 회사의 병역특례를 기다리다가 회사사정이 안 좋아져서 그냥 군대에 지원서를 낸 것이다. 말이 집이지 결혼도 안 한 30대들이 우글거리는 우리 형제들에게 20대 초반의 이 생생한 녀석은 벌써부터 암울한 미래가 감염되기 시작한다. 수칙1) 방엔 아무도 들어가서 자지도 않고 모두 거실에서 함께 잔다.수칙2) 밤마다 시작되는 우리끼리의 술마시기에 동참…. 수칙3) 텔레비전 보면서 자기 멋대로 욕하기. 수칙4) 절대로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덧 이녀석은 우리의 행각에 넌덜머리가 나는지 술 좀 마시지 말라며 뜯어말린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는 자신의 아버지(즉 나에겐 삼촌이시다)가 술 만날 마시는 것 때문에 괴로운데 이 집은 왜 이러냐 하면서… 진저리를 친다…. 그 삼촌이란 분은 잘 나가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어느 날 복어조리사 자격증을 턱 따시고 지방에서 복집을 하면서 손님들과 대작하며 사시는 술꾼 삼촌이시다. 그 삼촌이 웬일인지 양복에 서류가방을 들고 올라오셨다. 입사동기들이 이제 모두 사장이 되었다 하시면서 친구도 만날 겸 올라오신 거란다. 마침 아버지 제사도 끝내고 함께 음복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삼촌이 나를 앉혀두고 김치담그기 강의를 하신다. 동치미는 말이지 소금 위에 무를 굴려야 한다는 등….여하튼 투박한 삼촌의 김치담그기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과연 삼촌은 안정된 회사원보다는 요리사란 직업을 좋아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때 양복에 맞춰 들고 오신 서류가방을 여시더니 “옛다, 내가 콩이파리 무쳐서 들고 왔다”(경상도는 깻잎보다 콩잎을 더 많이 먹는다)며 주신다.“앗! 삼촌 이 서류가방에 뭔가 대단한 게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어데, 너희 반찬 하라고 이거랑 내 양말밖에 없다, 마….” 하하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술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난 웃으며 삼촌이 자신의 아들, 컴퓨터 병역특례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러 10년 만에 사장이 된 옛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해보았다. 리안 감독의 <결혼피로연>에서 마지막에 영어로 말하는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 멋진 장면. 동성애 커플이 대만에서 오신 부모님 앞에서 가짜 결혼식을 하고 그 해프닝 속에서 그들은 부모님 앞에서 영어로 싸운다(물론 대만에서 오신 부모님은 당연히 영어를 못 알아들으실 거라 생각하고). 물론 부모님은 못 알아들으신 표정을 짓고 계신다. 자기가 게이라고 밝히는 아들에게 “아버지에게는 얘기하지 마라, 돌아가실 거다”하고 받아들이는 어머니 반응과 달리 아버지는 아들의 실제 파트너인 남자와 조깅을 하다가 이 며느리(?)에게 선물을 주며 “나 영어 조금 하네” 그런다. 늙은 아버지를 잘 그리는 리안의 죽이는 저 솜씨…. 자식들은 부모가 자기를 이해 못하고 부모들은 왜 이리 고집불통인가 해도 부모들은 사실 다 알고 있다. 삼촌 서류가방 속 양말과 함께 싸온 ‘반찬’ 선물처럼 은근히 우리에게 생활의 냄새를 풍긴다…. 인생에 대해 안다고 말하지 말라며 말이다…. 삼촌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새해엔 술 조금만 드세요.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

희망의 술잔을 기울이며, <상계동 올림픽>

지루한 일상 속에서 술로 일탈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꼭 술 깨는 오후엔 따뜻한 햇볕에 몸을 데우면서 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즐긴다(물론 대부분은 수분 섭취와 잠을 자지만). 지나간 일기장을 뒤지듯 마음속으로 낙서를 하면서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얼굴이 벌게지는 일이라도 생각나면 이내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지만 기분 좋은 일이나 가슴 뭉클한 기억들이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서성이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결의(?)를 다지곤 한다. 그런 기억들은 지금을 사는 나에게 새로운 힘이 되고 활력이 되며 지침이 된다. <상계동 올림픽>을 처음 접한 때가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선배들과 함께 본 노이즈가 잔뜩 들어간 사운드와 간간이 사라져버리는 이미지들. 처음엔 뭐 그렇고 그런 운동권 비디오인 줄만 알고 봤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뭔가 모르는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였다고 할까. 투박한 내레이션 너머로 허물어져가는 집들 사이로 희망이 꿈틀거리며 생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아귀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첫 대면은 끝났고 시간을 잊은 채 2년이 흘렀다. 물론 내 기억 속에서 <상계동 올림픽>은 시간 속에 묻혔다. 첫 만남은 노이즈 잔뜩 낀 화면처럼 먹구름같이 먹먹하게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영화니 영상이니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군대에 갔고 거기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영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단편영화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영화를 한번 해보자는 결심.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만난 것이 ‘영상창작동아리 한누리’였다. 지금은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진실된 삶을 영상으로 담아내는’이라는 앞구호가 붙은 영상창작동아리 한누리의 시작은 비디오 하나와 고장난 텔레비전이 전부였다. 부족했지만 따뜻한 의지가 모인 공간, 그곳에서 <상계동 올림픽>을 다시 만났다. 첫 만남 이후에 기억 속에서 지워진 다큐멘터리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먹먹했던 가슴에 후련한 빗줄기가 뿌리는 듯했다. 상계동 173번지 철거촌. 그곳에서 카메라와 상계동 철거민은 하나가 되었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슬픔과 분노를 희망으로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고 자고 지내면서 그들을 가슴 깊이 담아낸 김동원 감독. 나에게 누가 연출자고 누가 주민인지 모르는 헷갈림은 시간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그 작품만의 진실로 기억되고 살아난다. 물론 김동원 감독은 이 작품 하나로 무척이나 큰 짐을 지게 되었지만, 그의 다큐멘터리를 아직도 볼 수 있는 기쁨을 관객이 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하튼 우울과 몽상만으로 끝날 수 있었던 20대에 빛줄기처럼 찾아온 영화 <상계동 올림픽>은 아직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작품이고 또 나태한 나의 삶에 채찍이 되어주는 힘이다. 나의 이런 수줍은 고백은 나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지 싶다. 간간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상계동 올림픽>은 자신을 망친(?) 주범이라는 고백들을 아직도 듣고 있으니 말이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사람 여러 명 조졌다”라고 말하면서 신나게 웃던 그 술자리가 생각이 난다. (^^;;) 한편의 영화가 결코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없지만 그 영화로 하여금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면 언젠가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을까. 상계동엔 <상계동 올림픽>이 더이상 없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두 상계동 주민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계동 올림픽은 계속될 것이다. 행복한 상상에 맘껏 희망의 술잔을 채워본다.

외화는 나의 힘?

할리우드 프로덕션 유치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경쟁 치열 할리우드영화 및 TV시리즈 프로덕션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부쩍 치열해지고 있다. 캐나다 재경부 존 맨리 장관은 2월18일 저녁 캐나다에서 이루어지는 해외영화 및 TV프로덕션의 세금감면 비율을 11%에서 16%로 상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 제작자들이 캐나다에서 영화를 찍으면 캐나다 노동력에 지불한 비용의 16%를 환급받게 됐다. 최근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미국영화와 TV시리즈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위험한 마음의 고백> <스몰빌> 등이 있다. 즉시 효력을 발휘할 이번 조치는 할리우드 프로덕션 유치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부쩍 뜨거워지면서 캐나다 프로덕션 업체들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결과로 보인다. 캐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원 데이비드 다이어와 민주당 하워드 버먼 의원이 할리우드의 해외 프로덕션 바람이 미국 경제에 끼친 손실(약 100억달러 추산)을 지적하며, 임금 2만5천달러 이하 스탭 고용비에 대한 25%의 세금 감면을 제안한 것에 대응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영화 프로덕션이 시장 안에서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는 실제 비용의 7배에 달하다는 것이 통설. 세계 최대 자국영화산업이 캐나다, 호주, 유럽 등지에서 판을 벌임으로써 후반작업 시설부터 출장 요리업계에 이르기까지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에 대한 미국인들의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18일 리처드 M.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아카데미 최다 노미네이션을 따낸 영화 <시카고>가 토론토에서 촬영된 사실에 유감을 표하면서 “우리가 돈과 크리에이티브를 댄 작품의 프로덕션을 왜 해외로 내보내야 하는가?”고 덧붙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전기영화 촬영지를 몬트리올에 뺏긴 뉴욕시 영화·텔레비전 오피스도 2월18일 토론회를 열어 세금 혜택을 디지털영화에 확장하는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버라이어티>는 뉴욕시가, 닷컴기업 거품이 남긴 건물들을 스튜디오 시설로 전환하는 정책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고급한 인력과 저렴한 비용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해외 로케이션은 미국의 공세적 방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유인할 것으로 보인다. <미션 임파서블> <스타워즈> 등 블록버스터의 요람으로 주가를 올린 호주는 <피터팬> <크로코다일 헌터> 프로덕션을 유치했다. 자원과 역량을 집중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마무리짓는 뉴질랜드는 북섬에 <라스트 사무라이>의 무대인 19세기 일본을 부활시킨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외에 부상하고 있는 할리우드 해외 촬영지는 저임금의 고급 인력 외에도 유럽영화 전성기의 유적인 유서깊은 거리와 스튜디오를 보유한 동유럽. 체코 프라하는 2003년 <밴 헬싱> <헬 보이> <추한 미국인> <그림 형제> 등 4편의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와 의 히틀러 전기물 <악의 기원>에 로케이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슬로베니아는 옛 수도 류블랴나에 800만달러를 투자한 종합촬영소를 열었으며, 헝가리도 <스파이게임> <아이 스파이> 프로덕션을 끌어들인 실적을 이어나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

<바람난 가족> 서 바람난 시어머니 윤여정

"김기영감독 없어서 십수년 영화 안했다 최근 촬영을 마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야심적인 캐릭터”는 옆집 고삐리와 바람나는 30대 아내 은호정이나 남편의 애인인 20대의 김연 보다도, 60살의 시어머니 홍병한 여사다. 알콜중독으로 골병든 남편과 지난 15년간 잠자리 한번 없다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며 삶에 희열을 느끼는 인물. 문소리·황정민 등 젊은 배우와 함께 ‘온가족이 바람나는’ 이 대담하고 뻔뻔스런 가족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역할로, 윤여정(54)씨가 스크린에 복귀한다. 고 김기영 감독의 미개봉작 <죽어도 좋을 경험>(88) 이후 십수년 만인 셈. 지난주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동대문의 한 캬바레에 예의 그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기영 감독과 명자 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화녀><충녀>와 텔레비전 <장희빈>에 잇달아 출연할 때 윤씨는 ‘한국의 팜므파탈’이라 불렸었다. 어느 작곡가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당한 뒤 주인집의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고 소유욕에 미쳐 남자에게 동반자살을 강요하는 명자, 윤씨의 나이 불과 23살때였다. “김기영 감독, 되게 집요해요. 당시 최무룡씨가 날 예뻐해서 고영남 감독에게 데려가 영화를 찍고 있었어. 그때 김감독이 자꾸 오더니 그때까지 찍었던 비용까지 다 물어줬다니까. 점점 사슬에 묶였지.” 계약조건에 몇달동안 하루에 1~2시간씩 감독과 만나는 게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이야기하며 매일 보러다니던 영화가 나중에 생각하니 “엄청난 수업”이었다. 김감독이 리얼리즘 경향에서 인간, 특히 여성의 내면세계를 ‘해부’하는 영화로 옮겨갈 때, 윤씨는 김감독의 ‘명자’였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20대초반의 나팔 청바지 펄럭거리며 발랄한 이미지였던 윤씨에게서 김감독은 “청승스러움”을 미리 보았고, “내 말을 유일하게 알아듣는 배우”라며 아꼈다. “김감독처럼 대단한 사람이랑 처음 영화를 하고나니 다른 사람이랑 못하겠더라고. 그 분이 없어서 그동안 영화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임상수 감독과 병한 그랬던 윤씨가 병한역을 맡은 건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50대이상 배우에게 흔히 요구하는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다른 역 하는게 가장 좋아. 이것도 맨날 눈물지으며 쌀 씻는 역이면 안했어요.” “원래 내가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우. 감독이 거짓말 했으면 그때 안한다고 했을꺼야. 영화촬영이란 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데다 감독이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와 내가 너무 다르지 않을까 겁도 났지. 근데 걱정하는 내게 임상수 감독이 ‘연기는 해석 아닌가요’ 하더라고. 그래, 배우는 해석자지. 또 물었지. 근데 시나리오에서 왜 애는 느닷없이 죽이우. 임감독이 ‘우리모두 느닷없이 죽지않나요’했어요. 그래, 우린 참 느닷없이 죽지.” 50대의 나이가 되었으면 둥글둥글도 해지련만 윤씨는 싫은 사람에게 좋다고, 연기 못하는 사람에게 잘한다고 말할 줄 모르는, 대신 자신이 납득하면 몇배의 정열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김기영 감독이 사람연구를 참 많이 한 사람이었다우, 근데 임감독을 보고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난 나보다 못한 사람이랑 작업은 싫지만, 아 저사람이 나보다 낫구나 싶으면 납작 고개 숙여요.” 이날 촬영을 위해선 생전 처음 며칠간 사교댄스 하드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90년대 윤씨가 도시적이며 깐깐한 어머니, 특히 억센 운명을 담배 연기 한모금으로 날려버리는 여인을 연기할 때, 비록 작은 텔레비전 화면일지라도 사람들은 매순간 자신을 불사르는 듯한 그를 느꼈었다. 여성들이 볼 때 정말 통쾌함이 느껴지는”(임감독) 영화에서 윤씨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이 특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명필름 제공)

˝이 나이에 데뷔한 게 난 참 좋다˝<동갑내기‥> 김경형 감독

김경형 감독은 마흔세살이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이 스물한살이니, 그는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이 싸우고 연애하는 이야기로 첫 번째 영화를 만든 셈이다. 경험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는지라 이 나이먹은 신인감독은 물론 걱정이 많았다. “본격적인 청춘영화라… 내 나이가 벌써 몇인데.” 그러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토닥토닥 치고받는 경쾌한 대사와 단 한 장면에도 미련을 남기지 않으면서 빠르게 종종걸음치는 전개로 공감을 얻어 개봉한 지 3주 만에 전국관객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점과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엽기적인 그녀>와 자주 비교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2년 꿇은데다 방자하기 그지없는 문제적 고등학생 지훈과 한 학기 등록금이 아쉬워 지훈에게 도전하는 과외선생 수완이 이끄는 코미디. 이 영화는 “진실성이 없다”거나 “청춘이 그런 것만은 아닐 텐데”라는 비판과 함께 젊은이들의 감성을 놀랄 정도로 밀접하게 따라붙었다는 칭찬을 동시에 얻었다. 그 자신의 설명대로 “젊어 보인다기보단 철딱서니없어 보이는” 외모와 행동을 지닌 김경형 감독은 “첫 번째 영화에서 내 모든 걸 보여줄 순 없지 않겠나”라는, 약간은 속편한 대답으로, 일단 흥행에선 뿌듯한 성공을 거둔 자신의 데뷔작을 옹호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예상보다 훨씬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축하인사를 많이 받을 것 같다. → 뭐, 별로 그렇진 않다. 평소 덕을 쌓지 못해서. (웃음) 영화만 봤을 땐 감독이 이 정도로 나이가 많을 줄은 몰랐다. 너무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라서 부담스럽진 않았는가. → 내가 한 건 요즘 아이들 듣는 CD를 항상 들은 정도? 그래도 뒤처지지 않은 까닭은, 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기 때문이라고 하고, 집사람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웃음) 원작과 시놉시스를 받고 삼일 동안 고민하긴 했다. 처음 원작을 읽고나선 이게 어떤 영화가 될까, 영화가 되긴 할까, 걱정됐고, 내 나이가 몇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자신없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작으론 가벼운 영화가 좋겠다 싶었다. 드라마에 승부를 걸고 시나리오를 쓰면 괜찮을 것 같았고. 찍다보니 내 안에 코미디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발견의 기쁨’도 겪었다. 캐릭터나 이야기가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 원작엔 캐릭터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없었다. 대신 원작자 최수완의 문체가 독특했다. 발랄했고, 자극을 받았을 때 움츠러드는 대신 팍 치고 일어나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 느낌을 살려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수완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훈은 많이 달라진 경우다. 원작엔 사마귀처럼 눈도 찢어지고 얼굴도 길다고 나오는데 잘생긴 부잣집 자식으로 바꿨다. 지훈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권태로 잡았다. 권태는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지만, 살아가는 목적이 없는 아이의 특징이 아닐까. 지훈이 말수가 적은 것도 세상과 문을 닫은 아이로 설정한 탓이다.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고나니 드라마가 필요했다. 지훈이 가출하고 수완과 맺어지는 부분은 원작엔 없다. 앞서 드라마에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느닷없는 장면들도 있다. 지훈을 짝사랑하는 동급생 호경이 술마시는 지훈과 수완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장면이 그렇다. → 남자를 정말 좋아하면 다 그렇게 된다. (웃음) 방송작가로 드라마를 쓰면서 우연은 세번까지 용서가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열심히 썼다. 우연이 몇번이나 되는지. (웃음) 사실 신경을 안 쓴 건 아니다. 수완의 집안 형편으로 보면 지훈을 강북으로 불러내서 술을 마셔야 했겠지만, 지훈을 찾아 헤매는 호경 눈에 띄는 장소여야 했다. 그래서 압구정동 실내포장마차를 섭외해서 찍었다. 수완은 지훈과 계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형편이 차이나는 데도 그 간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 그런 문제를 생각하면 또 다른 층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말자고 결정했다. 수완이 지훈 집에 처음 찾아가는 장면에서 그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김하늘과 의논을 했다. 그냥 씩 웃자고 합의를 봤다. 나는 한 학기 등록금 구하려고 너네 집에 와서 과외를 한다. 너는 이만큼 잘사는구나. 근데 그게 어때서? 이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도 어쩌면 그런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 안에도 분노는 있는 거다. 김하늘과 권상우는 그렇게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선 캐릭터와 잘 맞는 연기를 보일 뿐 아니라 호흡도 잘 맞는다. → 권상우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배우다. 그만큼 노력을 한다. 초반엔 경직돼 있었지만, 세트 촬영에 들어가니 애드리브도 늘었다. 김하늘에게 “내 아를 나도” 하고 소리지르는 건 권상우의 애드리브였는데 그대로 살려줬다. 김하늘은 좀 다독였다. 내가 수완이에게 이메일을 쓰는 것처럼 “수완아, 오늘은 잘 지냈니.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닭 배달은 잘했는지 모르겠구나” 하면서 메일을 보냈다. 그게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은 두 사람이 워낙 친해져 내 역할이라고는 사소한 조율이 전부였던 것 같다. 난 연출하는 사람은 배우를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이 나이에 데뷔한 게, 난 참 좋다. 경력이 참 다양하다.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는가. →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서울극장에서 <대부>를 보고 필이 꽂혀서 재개봉관까지 쫓아다니며 서른번도 넘게 봤던 게 영화를 처음 하고 싶었던 때다. 그랬는데 이번에 서울극장 간판에 내 이름이 떡 하니 써 있어서 너무 기뻤다. (웃음) 하지만 대학에선 영화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경희대엔 영화과가 없었다. 제대하고 나니까 영화 동아리가 생겼더라. 영화평론가 이효인씨가 창단멤버여서 믿고 찾아갔는데 그분은 없고 애들만 서클룸에 있었다. 그애들이 복학생은 안 받아준다고 했다. 그래서 8mm 카메라와 영사기를 샀다. 학보사 기자했던 고학번들한테 장학금 주는 게 있었는데 집에는 말 안 하고,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장학금으로. (웃음) 그 카메라로 무지 많이 찍었다. 가투며 연극공연이며 다 찍다가 방송사에 특채로 들어갔는데, 재미없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 들어가자마자 8·15 특집극 찍는데 쫓아다니다가 더위 먹어서 입원까지 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왔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조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그뒤 한참 공백이 있다.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인맥이 참 재미있었다. 김성홍 감독에 각본은 강제규, 배우로는 이범수, 공형진, 연출부엔 <단적비연수> 박제현 감독도 있었다. 근데 그 사람들이 전부 중앙대 출신이었다. 그 사이에 끼어서 무지 외로웠다.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긴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웃음)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 나니까 전망이 너무 불투명했다. 사람들도 못 믿겠고, 막 직배가 시작되던 때라 산업적인 기반도 불안정했다. 도대체 언제나 기회가 올까 막막한 심정에 환경마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방송사에서 일할 땐 그 무렵에도 텔레시네가 있었다. 그런데 충무로에 오니까 편집실 바닥엔 담뱃불 구멍투성이고 바퀴벌레가 막 기어다니고…. 편집할 땐 영사기로 벽에다 화면을 쏘는 거였다. 심지어 영화하겠다면 금치산자 취급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여자친구도 도망가고. (웃음) 유학도 고려했지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CF 연출을 시작했다.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건방이 들어서 독립제작사를 차렸는데 6개월 만에 망했다. 그냥 혼자 시나리오나 쓰고 있는데 친구인 오종록 PD(<피아노> 프로듀서,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촬영 중)가 전화해서 혹시 괜찮은 작가 없냐고 물어봤다. 있다, 누구냐, 나다, 그랬다. (웃음) 그렇게 방송작가를 시작했는데, 연예인들이 술도 자주 사주고 내가 쓴 대로 드라마를 찍고 그러니까 그 달콤한 맛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굳이 영화로 돌아온 까닭은 뭔가. →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항상 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시기를 놓치면 영영 못할 것 같아서, 97년에 작가일을 완전히 접었다. 정말 돈이 없을 때만 간간이 대본을 썼다. 그뒤 5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어떻게 버텨왔나. → 영화가 몇편 엎어지다보면 5년, 금방 간다. (웃음)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들을 설득하다가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1년이 훌쩍 가 있었지만, 그 1년의 하루하루는 무척 고달팠다. 영영 데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건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주변엔 정신병원에 간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영화제작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소재도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나는 한번도 나 자신을 입증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잊혀지는게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꿋꿋하게 견뎠다. 힘들어질 땐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즐겨 부르면서(웃음) 자기 최면을 열심히 걸었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게 가장 큰힘이 됐다. 곁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던 장르,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던 영화로 시작했다. 만족하는가. → 감독이 어떤 영화를 택할 때는 그 장르가 적용하는 룰에 맞추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다. 지훈과 수완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할 수 있는 데도 안 했다는 변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 주어진 일정, 조건, 장르 안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절대 감상적이어선 안 되는 영화였고, 사랑이 막 시작되려는 쿨한 느낌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영화였다. 그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었다면 다른 영화를 해야 했을 거다.최소한으로 잡은 목표는 가짜 휘발유나 불량식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거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갱스 오브 뉴욕> 맛보기 광고만으로 주말점령

마틴 스코시즈의 대작이 한국 극장가에 바람을 일으킬까. <갱스 오브 뉴욕>은 극장티켓 사이트인 맥스무비의 예매순위에서 26일 오전 현재 예매율 35% 정도로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3위로 끌어내리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극장이나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인 맛뵈기만으로도 압도적인 느낌의 화면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 인기도와 비평 면에서 모두 지지를 얻는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듯. ‘뻔한 신파’일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베스트셀러의 원작을 차분한 감정으로 연출해낸 멜로물 <국화꽃 향기>는 예매순위 2위에 올랐다. 영화인회의의 박스오피스 발표가 중단(<한겨레> 25일치 39면)되면서, 흥행의 윤곽은 이같은 예매순위와 각 영화사가 자체 발표하는 수치에 기대어 잡아볼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지난주는 유난히 수작들이 한꺼번에 개봉해 다양한 영화에 목말라하던 관객들에게 행복한 주였을 듯싶다. 일단 성적상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는 홍콩 누아르의 부활이라는 <무간도>. 영화사 쪽 집계에 따르면 전국 15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전통적인 장르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감상적이거나 남성적인 영웅주의가 아닌 이야기가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은 에미넴이 인기가 있다지만, 아직까지 랩이라는 장르가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실정에선 전국 12만명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보였다. 전국 6만명에 머물렀지만, 감정몰입이 쉽지 않은 영화 <디 아워스>가 전국 6만명 가까이 든 것도 반가운 소식이며, 일본의 공포영화 <검은 물밑에서>는 높은 객석점유율을 보였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