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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익숙한 장치로 서늘함 자아내는 공포영화 <검은 물밑에서>

죽은 자의 존재증명 살아 있는 것이 일개 사물로 화하는 순간, 곧 죽음의 순간을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하지만 스크린상에서 진행되는 죽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즉각 오싹한 공포가 우리에게 엄습해오리라고 가정하는 건 잘못된 것일 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나의 죽음이 아닌 타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가 결코 물리적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직접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이러한 일차적인 믿음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장르이다(만일 그런 믿음이 없다면 그 누가 영화관을 찾을 것인가). 이때 영화는 타인들의 죽음이 전시될 공간을 무대화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죽음의 광경을 볼거리로 만든다. 그리하여 공포영화는 그 과잉과 소비 혹은 낭비라고 하는 즐거운 유희와 함께 심지어 우리에게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를테면,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연작,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 같은 영화들이 그러하다. 거대한 환상, ‘억압된 것들의 귀환’ 때로 영화장치를 이용한 심리적 조작을 통해 이러한 믿음의 굳건함을 잠시나마 의심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즉 스크린은 더이상 안전한 장벽이 아니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 <링>은 이런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한을 품은 여귀는 텔레비전 모니터상에 재현된 일개 이미지이기를 멈추고 그 바깥으로 서서히 기어나와 사내의 눈앞에 선다. 그러나 공포영화가 두려움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환상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것이 사물로 화하는 순간이 우리 스스로의 실존적인 체험으로 주어지지 않는 이상 그리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사물을 활성화시켜버리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 공포영화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는, 그러나 결코 단순한 반복이 아닌 변주로서 나타나는 중요한 환상 하나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건 바로 사물(事物)이 더이상 사물(死物)이기를 멈추는 것이다. 이른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도 명명되었던 이 환상은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한 환상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저 낡은 아파트 천장의 물 얼룩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물이 그저 콘크리트의 약한 부분을 뚫고 새어나온 단순한 사물이라고 생각할 관객은 없다. 윤종찬의 <소름>에 나왔던 미금아파트 천장의 그을음, 혹은 클라이브 바커의 <헬레이저>에서 마룻바닥에 떨어졌던 몇 방울의 피, 이들은 점점 활성화되어가고 있는 ‘이미 죽은’, 혹은 ‘죽어 있는’ 것들의 존재증명이다. 그러나 <검은 물밑에서>의 주인공 요시미가 아파트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공포영화에서 사물들이 점점 생기를 띠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결국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장본인이 바로 그 사물들 곁으로 찾아온 인물들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인물들 또한 점점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보다는 다소 뒤늦지만 결국은 알아차리게 된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그 사물들이 그/그녀로 인해 활성화될 뿐 아니라, 동시에 그/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물(死物)이 되기를 멈춘 사물(事物)들은 살아 있는 것들을 사물화(死物化)하려 달려든다. <검은 물밑에서>의 아파트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바로 요시미이다. 여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가 2년 전에 죽은 소녀 가와이 미츠코의 혼령이 자신의 딸 이쿠코를 데려가려 한다며 절규할 때, 그것은 기실 그녀의 현실- 이쿠코를 두고 이혼한 남편과 벌이고 있는 양육권 투쟁- 이 환상의 공간에 확대되어 투사된 것에 다름 아니다. 미츠코의 혼령- 아파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요시미 그녀 자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미츠코를 그저 아파트라는 공간과 딸 이쿠코 사이의 감응이 만들어낸 일종의 ‘폴터가이스트’로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그저 공포영화에서의 ‘사물의 힘’과 그것의 운동을 기술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하간 나카다 히데오는 그것을 이 장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밀어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아파트 공간 이곳저곳은 생명을 얻은 사물이 터뜨리는 광기어린 움직임으로 인해 점점 빠르게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간다. 물을 줄줄 흘리며 금세 터져나오기라도 할 듯 쿵쾅거리는 옥상의 물탱크, 곳곳에서 흐르는 물로 물바다가 되어버린 405호, 그러다 마침내 서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에서 엘리베이터 입구를 통해 물이 쏟아져나오는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 거의 그대로 따온 것임이 분명하다. 큐브릭의 <샤이닝>은 공포영화의 형식적 요소들만을 차용하여 이 장르가 순수 형식의 유희를 위한 무대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입증한 바 있지만,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는 그렇게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형식의 유희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와도 같은 서사가 개입한다. 요시미와 그녀의 딸 이쿠코, 그리고 2년 전에 죽은 소녀 미츠코, 이 세 캐릭터는 결국 ‘하나를 위한 삼중주’이다. 그들은 모두 서로간에 문제가 있는 부모들의 자식들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간단히 말하자면 이들의 ‘엄마 찾기’, 혹은 ‘엄마 되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마 없이 홀로 놀다 옥상의 물탱크에 빠져 죽은 미츠코의 원혼은 마침내 요시미를 차지하게 되고(동시에 요시미는 영원히 곁을 떠나지 않을 딸을 갖게 된 셈이다), 엄마 없이 홀로 자란 이쿠코는 10년 만에 돌아간 아파트에서 엄마의 혼령과 조우한다. 흡사 지난해에 개봉된 영화 <쓰리>에서의 진가신의 에피소드(<고잉 홈>)처럼, <검은 물밑에서>라는 공포영화의 외피를 감싸고 있는 것은 이처럼 ‘애틋한’ 가족드라마이다. 원한, 죽지 않는 몸부림 이와 같은 서사가 일개 장식물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또한 여기서 드러나는 이른바 ‘모성’ 이데올로기를 지적하는 것은 옳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소한 문제이다.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기 위해 공포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는다(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덤’에 불과하다). 나카다 히데오는 이 서사를 진심을 다해 공들여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어디까지나 서사적 드라마를 공포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형식적 장치로 다루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허풍으로 가득한 특수효과에 의해 서사가 결국 핑곗거리로 밀려나고 마는 최근의 할리우드산 공포영화들과 비교할 때, 이 점은 물론 간과할 수 없는 미덕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요시미가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아이가 딸 이쿠코가 아닌 미츠코임을 알게 되는 장면 역시 <샤이닝>의 유명한 욕실 시퀀스와 일견 유사하지만, 거기엔 나카다 히데오의 전작 <링2>의 우물장면에서 보여졌던 썩은 몸뚱어리를 지닌 원귀의 이미지가 동시에 겹친다. 큐브릭은 결코 제시하지 않았던 추악하고 두려운 형상의 과거를, 나카다 히데오는 집요하게 드러낸다. 특히 <검은 물밑에서>는 하나의 사물, 아파트라고 하는 거대한 사물에 그보다 훨씬 거대한 감정, 즉 원한이라고 하는 감정을 덧씌운다. 서사가 작동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이다. 왜 사물은 그저 죽어 있기를 멈추는가, 라는 물음에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 즉 <검은 물밑에서>의 서사는 원한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사물의 편으로 실어 나르는 축인 셈이다. 이때 아파트-사물은 몸을 뒤틀고 눈물 흘리며 그 자체 오싹한 공포의 이미지가 된다. 그러나 이 사물은 그토록 거대한 감정을 수용할 만큼의 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결국 모든 원한은 틈을 비집고 나와 바깥으로 흘러 넘친다. 지난 세기 빠르게 들어선 새로운 주거공간으로서의 아파트, 그리고 이 공간과 결부된 가족형태의 변화가 <검은 물밑에서>와 같은 공포영화를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한때 새로운 주거공간이었던 것은 이제 오래된 기억들의 무덤, 망각된 것들을 위한 비석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검은 물밑에서>의 아파트는 곧 파괴될 것이고 거기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아파트와 무엇보다도 닮아 있는 것은 바로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이다.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은 흡사 지난 시절 공포영화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그의 영화는 공포영화 장르의 관습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지만, 이 장르를 구성하는 익숙한 요소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조합을 만든다. 이 장르에 익숙한 이들에게라면 아마 <검은 물밑에서>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주술처럼 읽힐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발견한 빨간 가방을 따라 두려움의 여정에 동참하다가 운이 좋다면 마침내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검은 물밑에서>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결말부에 살짝 달라붙은 ‘십년 뒤’ 에피소드이다. 여기서 어느덧 열다섯이 된 이쿠코는 예전에 어머니와 살던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어머니의 혼령을 본다. 이쿠코는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녀의 등 뒤에서는 미츠코의 혼령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모녀는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공포영화에서 익숙한 ‘최후의 깜짝 쇼’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정작 문제삼고 싶은 것은 그러한 상투성이 아니라 호러 장르를 다소 벗어나 드라마를 다루는 데 있어 나카다 히데오가 보여주는 안이함이다.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그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다. 흡사 <링>을 보던 중 갑자기 <유리의 뇌>가 튀어나오는 격이랄까. 활성화된 거대한 사물, 아파트는 어머니의 품으로 치환되고 만다. 간단없을 것만 같던 공포는 여기서 종결된다. 기가 질려 불가해한 대상을 응시하는 대신, 이쿠코는 등 뒤로 솟은 낡은 아파트를 뒤로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미츠코의 원한이 왜 어머니에게로만 향해야 했던가에 대해서는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 그걸 묻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검은 물밑에서>의 상상적인 속편을 머리에 그려보아야 한다.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서브웨이] 절대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프랑스의 예술지상주의

오! 예술 프랑스는 아직도 봉건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여성 총리가 나오면 Le Premiere 인지 La Premiere인지 고민하는 나라다. 사무엘 헌팅턴이 지난 2월 초에 파리에 있었다면 서구 전체를 상호충돌하는 여러 문명 가운데 하나로 묶은 것을 후회했을 거다. 외부세계를 중시하는 영미계열 국가들과 모든 사물들에 성별을 매기는 것을 즐길 정도로 정신세계 속으로의 몰입을 즐기는 프랑스, 독일 등의 대륙계 국가들의 차이는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무역협상이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문화시장개방 반대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방주도 세력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이 힘겨루기에서 항공기 제조업이 제조업의 총아이듯이 문화산업의 총아인 영화 및 텔레비전 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한 세력의 맏형 노릇을 하는 프랑스가 지난 2월2일부터 4일까지 세계 각국의 반대세력을 규합했던 파리회의의 내용과 형식은 문명의 충돌을 연상시켰다(한국은 예술인들의 참여로 영화산업을 지켜낸 기린아로 소개되었다). 대회의 구호인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은 이미 하나의 정치적 신념과 보편적 정의개념으로 완성되어 있었고 자국문화산업 보호라는 즉자적인 목표들에 대한 추호의 부끄러움도 완전히 녹여버리고 있었다. 회의 첫날 엘리제궁에 참가단을 초대했던 시라크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보자. “예술가는 인생과 세계에 향취와 감각과 미를 부여한다. 인류의 반사경으로서 인류의 내적 영혼을 드러낸다. 우리 역사의 증인이며, 시대의 모순에 대한 우리의 항거의 화신이며,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우리의 갈망의 화신이다…(중략)… 그는 자유와 신망을 받아야만 한다. 사회는 창작자들과 예술가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허용하는 만큼 발전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사상가들이 특정계급을 찬양하던 그 목소리, 프랑스의 어느 대문호가 사회발전의 척도를 특정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에 맞추었던 목소리가 들린다. 대회의 분위기는 반(反)WTO로 진보로 분류할 수 없는 일종의 예술지상주의 바로 그것이었다. 주최단체인 극작가/연기예술인저작권협회(SACD)의 저작권에 대한 입장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피레프트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우선 예술의 진흥이지 사회변혁도 아니고 민중해방도 아니었다.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만이 철학적 인류학적 수사들로 장식되어 그 흔한 농담 하나없이 발제시간을 넘겨가며 반복, 강조되었고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다른 진보적인 명제들과의 타협 및 연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별로 없이 주최쪽이 미리 만들어놓은 결의문이 만장일치의 박수로 통과되었다. 회의를 마치면서 느낀 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이다. 돈이라는 매개체 없이도 삶의 질을 고양하는 문화유산이 가득하고 새로운 문화유산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길거리의 휴지통과 우체통 하나도 감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미국에 유일하게 ‘No’라고 할 수 있는 힘은 이 국부(國富)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엄청난 국부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원동력은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 못지않게 사회발전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하며, 아무 부끄럼없이 “바보, 예술이 문제잖아”(It’s art, stupid!)라고 정치인들에게 외치는 예술가들의 고집스러운 신념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념은 조직적으로 세련되지도 않고 사상적으로 강고하지도 않은 삼류 노동조합식 회의에서 나온다. 필자의 눈에 허술해 보이기만 하는 회의를 하면서도 자신들이 따라가야 할 ‘국제수준’은 없다고 생각하는 프랑스가 부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오기 전날 밤 그 시대의 카뮈들이 동시대의 트로츠키들과 놀았다는 몽파르나스의 어느 카페에서 술을 마셨다. 길 건너의 다른 유명한 카페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았다. 카페주인이 손을 휘저으면서 왜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다른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느냐며 자신의 술집이 보이도록 바쪽을 향해서도 한장 박으란다. 술집주인은 자신의 카페를 일종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박경신/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새 영화] 은퇴한 나 무슨 재미로 살지? <어바웃 슈미트>

66살 전직 보험맨 아내잃고 슬퍼하다가 숨겨진 연애편지에 열받고 후원하는 6살 꼬마에게 인생푸념 늘어놓고 사윗감 맘에 안들어 딸결혼 방해작전 펴고...슈미트 역 맡은 잭 니컬슨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기 66살의 남자 워렌 슈미트가 있다. 퇴임날이다. 의례적인 퇴임파티까지 끝내고 나니 인생은 갑자기 공허해진다. 자신의 기업을 일구겠다던 젊은 날의 꿈이 조직의 체계라는 수레바퀴에 딸려들어가 버린 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는 것으로 자족하며 살아온 삶. 그런데 이제 무엇을 하지 <어바웃 슈미트>는 주인공의 직업이 보험수리사가 아니어도, 이름이 김갑돌이어도 상관없을 어느 노년의 초상화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했으며, 이웃의 문제에는 눈돌릴 짬이 없었던 중산층 보통사람의 이야기이다. 아서 밀러는 이런 인물로 <세일즈맨의 죽음>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루이스 버글리의 1996년산 소설을 짐 테일러와 공동각색한 <어바웃 슈미트>는 유머와 회한이 절묘하게 뒤섞인 희비극이다. 은퇴생활에 적응하기도 전, 42년 결혼생활을 함께 해온 아내마저 세상을 뜬 건 비극적이다. 게다가 아내가 못 견디게 그리워져 유품을 뒤적이다가 아내가 옛날 자신의 친구와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발견한 것도 비극적이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슈미트는 얼굴을 부비고 파묻던 아내의 옷들을 캠핑카에 쓸어담아다 의류재활용 통에 던져버린다. 분노와 재활용이라는 이질적 요소가 마찰하면 거기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런 식이다. 잭 니콜슨이 워렌 슈미트 역을 맡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슈미트의 감정기복을 드러내주는 건 편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린이구호기금 광고를 보고 그는 충동적으로 후원금을 낸다. 탄자니아의 여섯살난 은구두라는 사내아이가 양자로 배정되는데,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글은 그의 분노, 슬픔, 쓸쓸함을 털어내는 배설구가 된다. 66살 인생의 푸념의 대상이 6살이라는 것, 이것 역시 우스꽝스러운 역설이다. 이 역설 역시 슈미트의 노년비극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관객의 등덜미를 잡아채는 효과를 낸다. 감독 페인은 이른바 거리두기 작전을 성공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슈미트의 외동딸 지니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물침대 판매원인 사윗감이 맘에 들지 않지만, 슈미트는 캠핑카를 몰고 딸의 결혼식이 열릴 덴버를 향해 난생 처음 긴 여행을 시작한다. 길 위에서, 또 덴버에서 기다리는 물침대에서 잠을 잘못 자 목을 못쓰게 되고, 몸을 풀러 들어간 온탕에 안사돈(케시 베이츠)이 알몸으로 합류하는 등 참으로 어이없는 소극들이다. 결혼을 막을 수 있으면 막으리라 결심했건만, 온갖 아름다운 축복을 열거한 결혼피로연 축사는 이 소동의 극치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집에서 아름다운 반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건, 사는 동안 처음으로 자기 바깥으로 내민 손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잡아주었다는 깨달음이다. 희극과 비극은 그렇게 겹쳐지고, 겹쳐진다. 아서 밀러의 윌리 로먼과 페인의 워렌 슈미트가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다. 밀러는 “이 사람을 주목하라”며 보통사람의 폐허를 가리키는데, 페인은 그 보통사람에게 출구를 마련해준 것이다. 자신을 벗어나는 순간 생겨나는 그 기적은 반전 시위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조직가능한 연대의 시대, 또다른 세계화의 시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사실 하나. 전작 <선거>를 부산영화제에 선보인 적 있는 감독 페인은 캐나다에서 할리우드로 활동무대를 계속 넓혀온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남편이다. 7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베를린] 조지 클루니의 너무도 예민했던 2번의 기자회견 [2]

#2. 이틀 뒤 저녁 7시10분. <위험한 마음의 고백> 기자회견장 기자a | 베를린이 영화의 주무대 중 하나인데요. 왜 베를린에서 촬영을 했고, 왜 ‘그런 식’으로 촬영을 했나요? 조지 클루니 | 너무 화내지 마세요. (웃음) 미국인들에게는 냉전시대 독일의 ‘스파이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요. 스파이를 찍으려면 독일이 적격이다, 하는 식의. 그 스테레오 타입대로 찍은 거죠. 기자b | 감독을 해보니 배우보다 재미있던가요? 클루니 | 나는 배우 일을 재미있어합니다. 감독도 재미있지만 훨씬 힘든 일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내게는 대단한 경험이었지만, 단지 재미있다, 아니다 할 성질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로 제가 감독 데뷔를 했다고들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영화 하나를 만들어본 것뿐입니다. 기자c | <솔라리스> 기자회견 때 당신은 그날 밤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아직 안 한 것 같아요. 신부감으로 저는 어떠세요? 클루니 | 아, 주의를 덜 기울이셨군요. 사실 어젯밤 결혼했는데요. (웃음) 당신하고도 결혼을 하도록 하죠.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이혼을 해야겠군요. (웃음) 기자d | 척 배리스를 만날 기회가 있으셨나요? 그가 영화를 봤나요? 클루니 | 샘이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샘 록웰(척 배리스 역, 남우주연상 수상): 네, 만났습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도 보곤 했죠. 저는 그와 함께 있을 때 테이프 레코더를 늘 켜두었어요. 그걸 자주 들으며 저는 연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척 배리스는 이 영화를 보고 좋아했어요. 기자e | 영화의 비주얼 스타일이 독특한데요. 클루니 | 영화를 시작하면서, 저는 촬영을 색다른 관점에서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척 배리스가 활동했던 당시, 그러니까 1960∼70년대 미국영화의 스타일로 돌아감으로써 그것은 가능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영화들은 특별한 사실주의적 스타일을 보여줬지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인 마이크 니콜스(<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졸업> 등 연출)나 존 프랑켄하이머(<만주인 포로> 등 연출)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9살 때부터 게임 쇼를 보고 자란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게임 쇼를 만드셨거든요. <닉 클루니 쇼>라는 토크 쇼였는데, 아버지가 일하는 세트에서 당시 분위기를 많이 보고 그 안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훌륭한 스탭들이 있었기에 좋은 촬영이 가능했습니다(동석한 프로듀서는, 그러나 “이 영화는 100% 클루니 영화”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기자f | 로마 텔레비전 기자입니다. 당신은 옛날 미국 TV쇼를 이 영화에서 많이 카피했는데요. 저희는 미국 TV쇼에서 타산지석을 발견합니다. 서바이벌류의 쇼 말이죠. 좋은 TV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겠어요? 클루니 | 미국도 다른 나라 쇼에서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기자f | (상당히 뜬금없이) 우리나라는 뉴스가 진짜 좋아요. 클루니 | (그래도 친절하게) 그래요? 애석하게도 미국은 더이상 그렇지 못해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합니다. 제 아버지는 한때 뉴스 앵커맨이기도 했죠. 옛날 텔레비전이 황금기였을 때에는 정말 멋졌어요. 어떻게 좋은 TV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세계의 진실을 잘 전달해야 할 것 같아요. 뉴스가 경찰 쇼나 폭력 쇼가 돼선 안 되겠죠. 척 배리스는 가짜 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TV가 너무나 오락적으로 된 것에 대해 조금은 죄책감을 갖고 있어요. 아직도 단순하면서 사랑스럽고 도덕적인 그런 프로그램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군요. 저는 사실 요즘의 TV가 걱정스러워요.

[새 영화] 나이아 바르달로스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

시끌벅적 결혼과정, 미 전역이 환호했다. “우리가 철학을 할 때, 너희 조상은 나무를 탔다구.” 시카고에서 이름도 근사한 그리스식당 `춤추는 조르바'를 운영하는 그리스계 미국인의 민족적 자긍심은 하늘을 찌른다. 등교길의 딸들에게 상기시키기를 잊지 않는다. “그리스의 3대 발명은” 입을 모아 하는 대답, “천문학, 철학, 민주주의!” 딸들은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의 딸 툴라가 앵글로 색슨 남자와 결혼을 하겠단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긴 하는데, 신랑감 이안은 50명 대가족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야단법석 절차를 치뤄내야 한다. 이 시끌벅적한 결혼이야기 <나의 그리스식 결혼>은 2002년 할리우드 최대의 돌출 성공작. 영화는 주인공 툴라 역의 그리스계 카나다인 니나 바르달로스의 1인극이 원작이다. 14일 개봉. 툴라가 당신을 얼마나 닮았느냐는 한 영화잡지의 질문에 니나 바르달로스는 “바로 내 얘기”라고 대답했다. 니나는 그리스 이민 2세대고, 툴라처럼 뒤늦게 이안 고메즈라는 `기사'를 만났고, 이안은 영화속 이안처럼 그리스 대가족에 합류하기 위해 영세를 받고 그리스 정교도가 되었다. 모험심이야말로 현실과 허구의 두 인물의 공동자산. 툴라가 자기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식당을 벗어나 대학으로 갔다면, 니나는 캐나다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그러나 `소수민족' 그리스계 배우에게 기회는 바로 주어지지 않았다. “네 얘기로 직접 연극을 하면 어때” 한 친구의 말에 되묻기. “무슨 얘기” “네 결혼 이야기.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렇지, 내 결혼과정의 문화충돌기는 털어놓기만 하면 파티장을 웃음으로 뒤흔들었지. 그래서 니나 바르달로스의 그리스식 결혼은 스탠드 업 코미디로 태어났다. 이것이 바르달로스 출세기의 제1장. 1인극의 관객 중에 톰 행크스의 아내 리타 윌슨이 있었다. 리타는 즉각 남편에게 이걸 영화화하자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지, 라는 제안에 바르달로스는 대뜸 시나리오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극은 입소문이 나서 몇몇 영화사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고 써둔 시나리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스를 이탈리아나 히스패닉으로 바꾸자는 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무슨 소리야”라고 거절을 해왔던 것. 그런데 리타에겐 그리스피가 반쯤 섞여 있었다. 그리스계, 당연히 원작대로 통과. 영화는 작게 시작됐다. 바르달로스가 받은 각본료는 5백 달러, 출연료는 15만 달러. 제작비는 5백만 달러였다. 감독으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몇편 만든 조엘 즈윅이 선정됐지만, 바르달로스에겐 캐스팅부터 음악과 편집까지 전과정을 주관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졌다. 그리스계 배우들로 `들끓는' 촬영현장에서 그래도 유명배우는 이안 역의 존 코빗. 바르달로스와 코빗의 만남도 극적이다. “그리스식 결혼에 관한 영화대본을 받았는데, 맘에 들어 연락을 해보니 제작진이 미국에 없다는 거야.” 영화촬영 차 머물던 그가 친지에게 투덜대는 그 순간, 그 호텔 레스토랑에 바르달로스 일행이 앉아 있었다. 영화는 배급도 작게 시작됐다. 마케팅 예산이 1백만 달러.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보통 그 25배를 쓴다고. 대신 적은 수의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입소문과 웃음소리가 그곳에서 터져나오게끔 했다. 그리스계 미국인들의 지지는 없었냐고 웬걸. 이탈리아나 유태인 영화는 있었어도, 그리스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는 처음이라서 일대 소동에 가까운 열광이 터져나왔고, 그 환호는 미국 전역으로 전염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남은 논란은 니나 바르달로스가 신데렐라냐, 미운 오리새끼냐 정도라 할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지난 1월26일 현재 미국에서만 2억3천 88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기록했고, 바르달로스는 할리우드가 가장 탐내는 인물 대열에 올랐다. 지금, <코니와 카를라>라는 영화를 준비중이다.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새 영화] <언디스퓨티드>

무적의 교도소 권투선수에 도전자. 의 감독 월터 힐의 신작 <언디스퓨티드>는 남성의 육체성을 과시하는 순수 권투영화다. 권투선수 초년병 시절, 아내의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러 결과적으로 살인을 한 뒤 종신형을 선고받은 먼로 허친(웨슬리 스나입스)은 교도소 무적의 챔피언. 바깥세계의 챔피언 아이스맨 챔버스(빙 레임스)가 마이크 타이슨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강간혐의로 이곳에 수감된다. 격돌이 없을 수 없다. 형사 콜롬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온 피터 포크가 둘의 대결을 주선하고, 교도소에서 일전이 벌어진다. 월터 힐은 힙합과 일대가격을 연상시키는 화이트아웃의 효과정도를 가미했을 뿐, 정말 노골적으로 단순하게 대결의 순간으로 내닫는다. 이건 마치 랩과 권투경기의 결합 가능성을 묻는 시험용 영화같다. 시험 결과는 월터 힐의 다음 영화 어디선가 확인해봐야 할 듯. 경기 결과를 밝혀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성 싶다. 아이스맨은 출옥하여 라스베가스에서 케이오 승을 거둔다. “무적자 아이스맨”을 연호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방송으로 보던 감옥 동료들은 안다. 진짜 무적자는 먼로 허친임을. 그 아이러니가 영화의 미덕이다. 그런데 월터 힐은 이 역설로 단편을 만들었거나, 디테일을 더 채웠거나 양자택일을 했어야 했다. 7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새 비디오] 섹스 앤 시티 시즌 3

맛있는 섹스·당당한 독신,커리어우먼 4명의 자아찾기 30대 독신 여성들의 사랑과 섹스에 대해 대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 <섹스 앤 시티> 시즌3이 비디오로 출시됐다. 현재 캐치원과 OCN을 통해 방영중인 이 드라마는 <프렌즈>, <앨리의 사랑만들기>에 이어 케이블 드라마 붐을 몰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섹스 앤 시티>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연애와 결혼관을 가진 네명의 뉴요커 여성이다. 잘 나가는 홍보회사 대표인 사만다는 그야말로 ‘맛있는’ 섹스에만 일로매진하는 섹스지상주의자이고, 변호사인 미란다 역시 결혼과 동거에 냉소적이고 안정적인 연애마저 불편해하는 강박적 독립주의자다. 이들의 반대편에 낳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놓을 정도로 결혼을 꿈꾸는 미술관 큐레이터 샬롯이 있고 그 가운데 쯤에 하룻밤의 사랑과 안정적인 관계 사이에서 망설이는 캐리가 있다. 칼럼니스트인 캐리가 연재하는 ‘섹스 앤 시티’라는 칼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30분짜리 드라마는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한다. “뉴욕의 멋진 40대 남성은 왜 모두 유부남이거나 게이일까”“여자의 미모는 지성이나 유머감각보다 중요한가”등 캐리가 던지는 질문은 그 회의 주제이고 이와 관련된 네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코믹하게 얽힌다.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인 HBO에서 98년 첫방영된 이 드라마는 이전의 섹스 코미디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노골적인 이야기들로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여성시청자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섹스’를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세워놓았던 남녀의 관계를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네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그들이 스쳐가는 “그 많은” 남성들은 도구적인 존재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함께 잤던 남자의 성기크기를 야유하거나, 괴상한 성적습관을 놀잇감으로 만드는 등 ‘남자들끼리의 대화영역’이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섹스 코미디’로만 소개하기 부족한 건 섹스라는 매개를 통해 독신여성의 삶과 관계에 대해서 간단치 않은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시즌 마지막에서 결국 애인과 결별한 캐리는 “내가 빅(자신을 차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애인)을 길들이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그가 나를 길들이는 데 실패했을 뿐이야”라고 결론내린다. 네명의 주인공들은 오색찬란한 남성편력과 좌절을 겪으면서 그를 통해 자아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체 12편으로 엮였던 1,2시즌과 달리 18편(전 6권)으로 나온 세번째 시즌에서 샬롯은 ‘드디어’완벽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성적 문제 때문에 3개월 만에 별거에 들어간다. 미란다는 오랫 결심을 흔들며 다감한 남자 스티브와 동거에 들어가고, 캐리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지만 옛사랑의 그림자를 잊지 못한다. 여전히 도시적이면서 젊은 여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유머가 풍부하지만 시즌1,2에 비해서는 다소 진지해졌다. 이번 달 초부터 캐치원에서는 시즌5를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방영하고 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48권의 책으로 읽는 감독의 길 -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5]

아니메의 모차르트, 혹은 사람의 아들 <만화가의 길> 분명히 세상에는 천재가 있다. 살리에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보다 뛰어난 만화를 그린 만화가는 시라토 산페이나 쓰게 요시하루 등등 많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분명 데즈카의 작품들을 능가한다. 하지만 작품의 방대함과 그것이 만들어낸 세계 전체를 들여다보면, 데즈카에 필적할 인간은 없다. 세계를 창조한 신이라면 모를까. 그렇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의 신이다. 단순한 치사가 아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죽었을 때 ‘데즈카 선생은 외계인이다. 어딘가 우주 저편에서 지구로 와서 사명을 다하고 돌아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후 일본 만화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만화로 만들어냈다.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불새>를 비롯하여 SF <메트로폴리스>와 <우주소년 아톰>, 의학물 <블랙 잭>, 종교물 <붓다>, 정치물 <아돌프에게 고한다> 그리고 <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 <키리히토 찬가> 등 엄청나게 광범위한 소재와 주제를 작품에 담아냈다. 일본 애니메이션도 데즈카 오사무의 손에서 출발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데즈카 오사무는 세계 전체를 재창조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데즈카 오사무와 동등해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데즈카 오사무는, 범인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타고난 천재일까? <만화가의 길>(황금가지 펴냄)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의사생활을 하면서 십여편 이상의 만화를 그리고, 그 와중에 1년에 365편이 넘는 영화를 보는 생활은 보통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데즈카가 다니던 의대 교수가 “이 상태로 의사 공부를 계속한다 해도 어차피 제대로 된 의사는 되지 못할걸세. 아마 환자 대여섯은 죽이고 말걸.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의사는 그만두고 만화가가 되게나”라고 충고했어도, 듣지 않는다. 어머니의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거라”는 말을 듣고 만화가의 길로 정진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부를 계속하여 의사 면허를 딴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가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과거지사를 들어보면, 천재가 만들어지는 것은 재능 이상으로 역시 ‘꿈과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즈카는 2차대전 당시 청소년기를 보냈다. 만화에 미쳐 있던 데즈카 오사무는 폭탄이 떨어지는 군수공장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만화를 그렸다. 단지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매일 아침 화장실 안쪽 벽에 만화를 붙였다. 쭈그리고 앉으면 누구나 볼 수밖에 없는 정면의 벽에. 그렇게 날마다 만화를 그리고, 의대에 가서도 변함없이 만화를 그렸다. 데즈카 오사무 지음 | 김미영 옮김 | 황금가지 펴냄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만화의 영역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극렬한 호기심으로 얻은 지식들을 자신의 작품에 투여했다. 영화적 기법을 만화에 도입하여 스토리 만화의 기틀을 잡았고, 소재와 주제를 바꿔가면서 독자를 사로잡았다. 한마디로 데즈카 오사무는 엄청난 일중독자였다. 한때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일어났을 때, 데즈카 오사무가 처음으로 한 말은 “제발 부탁이니까 일을 하게 해줘”였다. 데즈카 오사무는 자신의 주장과 논점이 명확했다. 영화에서 펠리니는 좋아하지만 고다르는 평론가와 마니아나 좋아할 감독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몇 작품을 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내용이 무의미하고 안이하다”고 비판한다. 좋다. 만화의 신인 데즈카는 그럴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신랄한 비판이 가능했던 이유는 데즈카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다듬었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 데즈카의 작품을 읽고 자란 사이토 다카오, 다쓰미 요시히로 등이 만화가로 데뷔하여 ‘극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를 만들어내며 성인 독자가 증가하던 시기가 있었다. 질투심과 함께 매너리즘이라는 독자의 비판을 받은 데즈카는 노이로제가 심해져 계단에서 구르기도 하고, 마침내 의학도로 돌아가기 위해서 나라에 있는 은사를 찾아가 공부를 하며 학위까지 받는다. 한 편집자는 높이 쌓인 만화잡지를 엄청난 속도로 넘기며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검토하던 데즈카의 모습을 전해준다. 데즈카 오사무는 언제나 맹렬하게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쏟아냈던 작가였다. 일본 만화의 신은, 신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데즈카는 언제나 자신을 의심하고, 타고난 호기심과 노력으로 신천지를 만들어낸 위대한 인간의 자식이었다. 데즈카 오사무가 걸었던 <만화가의 길>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인간 데즈카의 땀냄새와 일상의 유머가 가득 배어 있기 때문이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데즈카가 더 궁금하다면 <만화가의 길>은 에세이풍으로 듬성듬성 쓴 자서전이다. 유머가 풍부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 있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성장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보완을 원한다면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데즈카 오사무 지음/ 누림 펴냄)를 보면 좋다. 86년부터 88년까지 데즈카가 했던 강연과 각종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중학생 시절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대부의 아들>도 전편이 담겨있는데, 이지메당하던 데즈카가 만화를 통해 마음의 교류를 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역할을 알고 싶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을 정리한 책 <일본의 아니메>(日本のアニメ/준비위원회 지음/ 보도사 펴냄)의 7장 ‘데즈카 오사무-국산 30분 텔레비전 아니메의 시조 데즈카 오사무. 그 거대한 발걸음’에 잘 정리되어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인터뷰] 매춘여성 국회의원 ‘예지원’

처음엔 이런 감정을 느낄 줄 몰랐다. 단지 에스메랄다처럼 “삶을 돌아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윤락녀 캐릭터를, 무엇보다 “여성이 이끌고 나가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깜찍하고 발칙한” 발상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출연하게 됐다. 배우 예지원, 아니 기호 4번 고은비 후보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기’다. 헌법 제1조를 아시나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처음엔 대사로 줄줄 외웠죠. 하지만 영화속 합동유세때 실제 장애인, 노숙자분들 등 150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추운 날씨 아랑곳 않고 고은비를 환호하는 데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왜 이들은 1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할까. 고은비가 그랬듯이.” 선거를 치르며 고은비가 점차 못가진 자, 소외된 자의 상징이 되어간 만큼 예씨는 소중한 감정을 배우게 된 듯 했다. 영화의 대부분 촬영은 전주에 있는 실제 윤락가에서 촬영됐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우릴 미워하면 어떡하나. 근데 그곳에 있는 분들 정말 평범해요. 단지 밤이 되면 진한 화장과 야한 옷을 입는다는 것 뿐이에요. 방 빌려줄테니 와서 쉬라는 언니, 옷 빌려주겠다는 언니, 와서 밥먹으라고 부엌 빌려준 주인… 모두 못 잊을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실제 고은비의 감정을 못 느꼈을 거에요.”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한 ‘국회 월장’ 촬영까지 마치고 영화개봉을 앞둔 지금, 예씨는 ‘국회의원 당선소감’을 당당히 밝혔다. “말단 샐러리맨이 사장될 수 있고 소외받은 소시민이 능력 발휘하는 세상, 그것이 고은비가, <대한민국…>이 바래는 사회죠. 노무현 대통령도 어떤 의미에선 고은비인 거에요. 이전같으면 이 영화가 ‘시원하다’는 소리만 들었겠지만 이젠 좀더 실현이 가능해진 것 아닌가요” 전주 매춘가에서 촬영 ‘어색한 거 깨게… 뽀뽀 할까요’ 당돌하게 말하던 <생활의 발견>의 쓸쓸한 얼굴의 명숙처럼, 바람처럼 길처럼 자유로워보이는 예씨는 한 구석 애잔함을 간직한 배우다. 으로 데뷔해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촬영중인 <귀여워> 등 어느 하나 ‘교과서에는 없는’ 캐릭터를 맡아온 이 배우는 “관객들에게 팬터지를 주는 역이 아니라, 관객들과 비슷해 그들이 위로해주고 싶은 역들이죠. 남들은 그만 망가지라지만 전 너무 즐거워요. 속이 후련해요”라 말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꼭지><줄리엣의 남자> 정도를 제외하곤 “자주적이고 개척하는 여자”를 해온 셈이다. 촬영중 남진씨의 팬들이 서울에서 버스 하나를 대절해 김밥싸고 내려왔던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그 나이에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겠어요” 말하던 예지원 ‘당선자’에게 궁극적인 포부를 물었다. “가만 있어도 향기가 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영화? 야당의 국회의원이 여당쪽에서 보낸 듯한 윤락녀와 정사를 벌이다 복상사(물론 대외발표용은 ‘과로사’다)하며 여야 동수가 된 가운데 수락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린다. 여당, 야당, ‘단군할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를 외치는 무소속 후보에 기호 4로 이 도시 윤락가에서 일하는 고은비가 출마한다.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동료 사건이 윤락녀란 이유로 수사조차 못받자 분개해, 사투리 ‘징하게’쓰는 욕쟁이 괴짜신부 베드로, 아나운서를 꿈꾸는 동료 세영 등의 도움으로 나섰다. <대한민국 헌법제1조>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시원하리 만큼 명확하다. 여기서 악은 국민들의 속내엔 관심없는 정치인들의 우스꽝스런 모습 그 자체다. 반대편엔 윤락녀를 비롯해 장애인, 노숙자 등이 있다. 정치적으론 너무나 올바른 의식이 장점이라면, 풍자라 하기엔 너무 직설적이고 단면적인 묘사방식은 단점이다. ‘사실적’이라고 넘어가기엔 전반부의 과도한 섹스코드는 불쾌감을 줄 정도. 그럼에도 이 거친 대중영화는 ‘내질러 보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감정과 의식과잉 속에서도, 정많고 서로를 보다듬는 소수자들의 따뜻한 마음만은 진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사가 있는 출연자만 75명인 영화 속에서 임성민, 최은주 등이 연기한 윤락녀 동료, 기호 3번 후보역의 장대성, 386 세대를 풍자한 듯한 캐릭터 방송기자역의 이문식까지 많은 배역에 골고루 눈길이 가는 것도 미덕. 특히 베드로역의 남진은 안정감있게 영화를 뒷받침해준다.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