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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코믹한 스타일과 사실적 묘사와의 균형,<대한민국 헌법 제1조>

■ Story 윤락여성이 길에서 집단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나 경찰은 피해자의 직업적 특성을 들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이에 분개한 동료 고은비(예지원)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후보로 출마한다. 여야후보들의 정치공작과 주위의 냉대로 고은비 자신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이 갖가지 시련에 부딪히지만 결국 똘똘 뭉쳐 선거 유세에 나선다. ■ Review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윤락여성과 정치인이다. 영화는 초반부에 이 두 집단을 극단적으로 희화화하면서 유사성을 부각시킨다. 야당의 정치인이 여당의 사주를 받은 윤락여성과 정사를 하던 도중 복상사한다는 설정은 이같은 희화화의 극단적인 예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이 인간성 차이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윤락여성이 강간을 당한 일에 대해 경찰과 정치인 등의 공권력이 “창녀에게도 강간이라는 게 성립하느냐”는 태도로 일관한데 반해 윤락여성들은 헌신적인 동료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집단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으로 접어들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의 맞대결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영화 속 지역 구민 혹은 영화 밖 관객을 향해 정치인은 윤락여성만도 못하다고, 혹은 윤락여성의 도덕성은 기성 정치인을 제치고 국민의 대표자가 될 만하다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선악 이분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우리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단지 ‘언니들’과 함께 울고 웃기만 하면 된다. 영화가 취하는 이같은 입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울 만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극중 베드로 신부(남진)의 말대로 예수님조차 “죄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을 뿐더러 어떤 사람의 직업적 특성이 그 사람의 존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은 현대사회가 합의한 윤리성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고은비 후보와 그의 선거 캠프에서 주변의 어마어마한 편견과 멸시를 딛고 자신들의 존엄성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는 모습은 새삼 감동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헌법 조문과 마주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총강 제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은비 일행은 윤락여성인 자신들도 ‘국민’의 일부이며 국회의원의 권력 또한 자신들을 포함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각성에 이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윤락여성도 `권력`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 영화의 세부 사항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현실로부터 직접 인용되었거나 차용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 출신 국회의원 치치올리나는 말할 것도 없고, 윤락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라는 발단은 근년 들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미군문제에서 뇌관 일부를 제거한 이슈로 보인다. 또한 극중에 등장하는 여성 경찰서장(정경순)은 윤락가를 깨끗이 청소하고 싶어했던 김강자 서장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성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파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며, 마지막에 서장이 고은비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같은 발상은 약자의 편에 서서 활동해온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공개적으로 피력한 적이 없을 만큼 도전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시선은 자못 비판적이다. 백성기(이문식)라는 정치부 기자를 통해 386세대로 상징되는 젊은 진보세력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고 조롱할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를 총체적으로 불신하면서 성매매 여성, 가난한 계층, 장애인, 노인 등 소외 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윤락녀를 가족으로 둔 부모가 “어쩌자고 텔레비전에까지 얼굴을 비추느냐. 창피해서 양잿물 먹고 칵 죽어야지 못 산다”며 울부짖는 모습은 이 영화의 코믹하고 과장된 전체 스타일에 균열을 낼 만큼 사실적이고 섬뜩하다. 좋은 감상문은 여기까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도 그 자체로 영화다움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정치의식과 영화적 세련미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다. 마치 윤리 교과서를 낭독하는 어린 학생 앞에서 망연자실한 어른처럼, 관객은 영화의 자의식 과잉과 치기를 속절없이 바라보게 된다. 룸살롱에서 폭탄주 마시면서 낄낄댐직한 농담을 코미디나 유머와 혼동하는 버릇은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자신도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자 국민이라는 각성을 갖게 된 고은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도 윤락여성`이라고 강론하는 신부님으로부터 큰힘을 얻는다. 더욱이 이 영화의 정치 의식은 최근 대중적으로 형성된 비판의식의 수준과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거나 기껏해야 모사하는 수준에 그친다. 도덕적 중심이 윤락여성에게 있고 공권력은 도덕적인 패배자로 출발해서 시종일관 희화화를 면치 못하는 설정은 그저 앙증맞은 흑백 논리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술꾼들의 농담은 아무리 유치해도 웃기는 데가 있고, 편집이 제구실을 해준다. 무엇보다 윤락가와 정가를 대비시켜 가치와 상식의 전도를 일으키는 한국 대중영화의 거칠고 무모한 힘과 용기를 근본 원인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김소희 cwgod@hani.co.kr

차승원 스토리 [1]

"달라 보이나요? 여전히 웃기고요? 그럼 됐군요." 부패 교사 ‘김봉두’가 온다. <신라의 달밤>으로 일약 코믹 캐릭터의 중심으로 도약한 차승원은 <라이터를 켜라>와 <광복절특사>에까지 그 이미지를 밀어붙였다. 차승원의 입장에서 보면 ‘삼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코믹한 캐릭터가 짙어질 것이라는 소문과 달리 <선생 김봉두>는 조심스럽게 전환을 모색하는 차승원의 행보가 보인다. 차승원은 결코 화려한 연기 인생을 살아온 노배우가 아니다. 약력을 펼쳐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흔치 않은 출구를 통해 배우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그가 살아온 ‘또 다른 나’, 영화 속 캐릭터를 따라가며 그를 물어본다. “리딩할 때부터 열심이더니 차승원은 갈수록 에너지를 쏟아낸다. 처음 만난 날이었던가. 문어체 대사를 원래 싫어하니까 그냥 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도 좋다고 했더니 그는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 시나리오를 고쳐왔다. 고3 수험생처럼 그는 시나리오를 무슨 글씨인지 모를 정도로 새까만 뭉치로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요즘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놓느라 골몰하고 있다."("<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 제작일지". 씨네 21. 361호. 장항준) “제가 워낙 소심해서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관여 안 하면 안 되는 거. 편집실에 가본다든가 포스터를 찍었는데 어떻게 됐나, 이런 거. 개인적으로 바쁜 거죠. 남들은 남는 시간에 쉬면 되지 왜 그러냐 그러는데 제가 못 견디거든요. 거의 뭐 2월 중순까지는 못 쉬었어요. 이제 조금 쉬는 거죠. 근데 쉬는 게 여유롭지가 않아요. 마음은 오히려 찍을 때보다 더 불편하고 안절부절하고.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지 않나요?”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다. <선생 김봉두>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배우’ 차승원은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긴장으로 얼룩진 기다림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에이 차승원 스토리는 무슨, 설경구 스토리라면 모를까”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어도, 그는 이제 배우에게 너그러운 휴식이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은연중에 고백하고 있었다. 만약 차승원이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고민하지 않고, “소모품”의 용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았더라면, 수려한 외모만이 배우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 말은 정말 우습고 진부하고 가식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차승원은 이미 많은 고민과 그 안에서의 몇 가지 해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승원의 말처럼 그는 이미 한 분야에서 “일등을 해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등을 해본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등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흔치 않은지는 스스로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보통의 경우들이 그렇잖아요. 그 당시의 이슈가 될 만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잘못된 용도로 쓰죠. 그리고는 얘는 별로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애, 라고 하죠. 그중에 하나였죠. 소모품이 돼버린 많은 사람들의 전철을 밟아왔던 거죠.” 차승원은 그렇게 영화를 시작했고, 또 동일한 이유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왔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기 싫어한다. 자멸의 시간을 앞당겨 간단하게 폐기처분당할 수도 있었던 궤적을 그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내가 아닌 내가 나오니까 너무 싫었어요.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남들에 의해서 그렇게 만들어지고 포장된 거니까.” 그는 99년 말부터 텔레비전 출연을 그만뒀다. 암담했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 안에는 다른 사람이 있단 말이지”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여전히 지금도 “그렇게, 그렇게 방송을 해왔을 거고, 흘러갔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그 다른 자아를 “꼭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영화의 길이 트인” 것이다. “내가 아닌 나는 너무 싫다” 그러나 그가 “어차피 산업”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처럼, 영화 역시 처음부터 그에게 자신 속의 다른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지는 않았다.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그의 첫 등장을 기억해보자. 호텔 909호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문 밖에 서 있는 벨보이를 향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없이 느끼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뭐지~?” 차승원이 영화에서 말한 첫 번째 대사다.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의 차승원은 영화 시작 30분이 지나면 죽어 잊혀지는 인물이었고, ‘완벽한 다리’의 스쳐가는 애인일 뿐이었다. 전직과 외모 탓인지 차승원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배우로서 그의 용도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고생도 안 하고 나름대로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거든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그는 라면회사 사장이라는 지위를 얻어 상류층으로 등장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약간은 치사한 사장님께서 여배우를 앞에 두고 장황하게 라면광고를 설명하며 하는 말. “너 라면 먹고 싶다!” 대사 속에 드러나는 중의적인 농담이 차승원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균열을 낸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인물 역시 스스로의 자평에 의하면 그와는 “일치하는 면이 거의” 없었다. <리베라 메>에서 차승원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연쇄방화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성 범죄자를 연기했다. “일단 비주얼로 센 걸 하면 50%는 관객에게 흡수가 빠르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인지도 모를 그 역은 새로운 도전인 셈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은 그런 걸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장르로 말하면 스릴러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는 말이 <리베라 메>에서의 희수를 자꾸만 상기시킨다. 그만큼의 아쉬움이 그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오히려 <리베라 메>에서의 연쇄방화범을 맡기까지 차승원에게는 중요한 하나의 성격이 지속적으로 부여된다. ‘바람둥이.’ 영화 <자귀모>에서 그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의 일원이 되도록 애인을 내팽개치는 몰염치한 바람둥이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는 끝내 그 바람둥이의 최후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명백하게 이 두 작품 모두 배우 차승원에게는 단 한 걸음의 전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조각 같은 외모가 이끄는 당연한 부정성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세기말>에서 보여준 그의 모럴 헤저드한 면모가 단순한 방식으로 성격화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 <세기말>은 차승원에게 무척 중요한 영화로 남는다. <세기말>에서 처음으로 차승원이라는 배우에 대해 묘한 느낌을 받았다는 말에 그는 “<세기말>은 저하고 가까운 부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경우는 그 사람이 충분히 이해가 되겠어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못 들어가고, 그래서 욕하고, 그런 게 이해가 돼요”라며 동의를 표시한다. <세기말>에서 차승원이 연기하는 대학강사 부분의 소제목은 ‘모럴 헤저드’였다. 이성복의 시와 루카치의 문장을 비틀어 인용하며 세상을 질타할 줄 아는 지식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낮에 다른 여자와 여관방을 찾아 “영혼을 잃어버리는”, 그리고 그외에도 몇명의 애인을 더 두어 결국 간통죄로 인생을 접어가는 유부남을 연기하며 차승원은 처음으로 입방체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관방에서 나와 차에 붙어 있는 불법주차 딱지를 떼며 “이런 씨발 새끼들”이라고 욕할 때의 그 대학강사의 무식한 표정과 액션은 영락없이 최기동과 양철곤과 최무석을 연기할 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차승원을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그간 술도 같이 먹고 어울리면서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이미지를 많이 봤다. 시나리오를 받아 본 차승원이 ‘이건 날 위해 쓴 시나리오’라는 말을 했는데 조금 오버이긴 해도 차승원의 실제 모습과 굉장히 닮은 인물이다. 기동이로 변신한 게 아니라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편했다. ”("쌈마이?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씨네 21. 311호, 김상진) “저를 잘 써먹은 거죠. 제가 갖고 있는 부분을. 평상시의 차승원을 써먹은 거예요. 지금도 가끔 얘기하는데, 차승원이 이런 걸 누가 알까, 이런 말들을 하거든요. 저한테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쓴 거죠. 없는 거 자꾸 꺼집어내려는 거 억지잖아요.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런 거예요.” 어떻게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 연기를 하게 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 차승원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을 알아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서 덧붙였다(차승원을 알 만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지적한 문구와 말들을 여기에 달아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같은 경우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성상이에요. 왜 고등학교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언행을 따라 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유의 남자예요. 그런 남자가 나는 매력이 있어 보이고 굉장히 투박하고 둔탁해 보이지만 또 따뜻한 마음도 있고요.” 깡패 같은 체육선생으로, 더 깡패 같은 짓을 해가면서, 정말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연기하면서 차승원은 기존의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촌티나는 체육복 안에 잘 빠진 몸을 숨기고, 공중을 날아 헛발차기를 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때부터 차승원은 과장된 코미디 캐릭터 연기라면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섰고,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심어줬다. 최기동의 캐릭터를 영화배우 차승원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신라의 달밤>에서 최기동을 연기하는 차승원의 모습은 <라이터를 켜라>의 양철곤과 <광복절 특사>의 최무석에까지 이르러 숙련된 자기만의 스타일을 세워놓은 것이다. <신라의 달밤>에서 마주친 최기동이 차승원 그 자신에게 또 다른 자신으로의 표출이었다면, 관객에게 최기동은 차승원이 연기하기 때문에 더 놀랍고 새로운 캐릭터였다. 그리고 이어진 양철곤과 최무석은 그 놀라움을 불식시키는 명료한 확인작업이었으며 수긍이었다.

슈퍼히어로 3인방이 온다 - <엑스맨2> [6]

레이디 데쓰스트라이커 Lady Deathstriker 1. Who are you? 글쎄요. 좀 복잡한걸요. 일단 유리코 노리야마라고 해두죠. 스트라이커님을 도와 자비에 사단의 돌연변이들을 제거하는 일을 맡아서, 레이디데쓰스트라이커라고도 불리지만요. 제 이름에서 죽음의 향기가 나지 않나요? 2. What do you have? 울버린이라고 아시죠? 그 녀석을 제 맞수라고 말하긴 자존심 상하지만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어요. 강철 갈퀴가 손에서 나오는데요, 난 손등이 아니라 손끝에서 손톱처럼 그 갈퀴가 뻗어나온답니다. 아시아의 처녀귀신을 연상하시면 되겠네요. 아, 그리고 전 가라테 같은 동양무술도 뛰어나요. 3. What is your goal? 타도! 울버린! 이게 제 존재 이유이자 필생의 목표랍니다. 스트라이커님이 말씀하시길 그 녀석이 제 부모의 원수라더군요. 기필코 제 손으로 없애버릴 거예요. 4. Character vs Cast 아주 좋아요. <동양특급 로형사>에서 홍금보의 동료 형사로 나왔던, 캘리 후가 저를 연기한다더군요. 최근엔 <스콜피온 킹>에서 마법사로 나왔었죠. 아름답고 섹시하고 신비롭고… 사악한 기운도 풍기고. 게다가 가라테 검은 띠라지 뭐예요. 아주 딱이죠. 궁금한 몇 가지 1. 어떤 얘기인가돌연변이 격리 수용 법안의 지지 여론이 높아지는 등 돌연변이에 대한 인간사회의 반감과 혐오는 짙어만 간다. 돌연변이들의 은신처인 엑스 맨션은 그들을 말살하려는 군대들에 포위당하고, 자비에 박사의 수많은 제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반돌연변이 단체의 리더인 대부호 윌리엄 스트라이커는 자비에 박사를 납치, 그의 텔레파시를 이용해 인간과 돌연변이를 식별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혼란을 틈타 감옥에서 탈출한 매그니토는 자비에 박사에게 돌연변이들의 생존을 위해 ‘일단 연대’할 것을 제안한다. 이 와중에도 사랑은 싹튼다. 울버린과 사이클롭스는 진 그레이를 두고 연적관계가 되며, 로그는 동급생인 아이스맨과 사랑에 빠진다. 2. 뭘 보여줄까 <엑스맨2>의 가장 큰 볼거리는 전편에 이어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다. 2편은 1편의 캐릭터 대부분이 재출동할 뿐 아니라 새로운 돌연변이들과 인간 캐릭터들이 등장해 주요 캐릭터만도 10명을 훌쩍 넘긴다. 울버린, 로그, 스톰, 사이클롭스, 진 그레이, 미스틱, 파이로 등이 한층 성숙된 풍모로 돌아오고, 악마의 형상을 한 염력의 소유자 나이크클로러, 손가락에서 강철 갈퀴가 나오는 레이디데쓰스트라이커, 전신이 강철 골격으로 이뤄진 콜로서스 등이 새로이 등장한다. 돌연변이들이 더욱 막강하고 다양해진데 더해 세트 또한 웅장하고 다양하고 세련돼졌다. 1편에서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돌연변이들의 트레이닝 시설인 데인저 룸은 각종 무기와 훈련 시설, 텔레파시의 극대화를 위한 장비 등을 갖췄으며, 엑스 제트도 은청색의 슬림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보수됐다. 3. 어떻게 만들었을까<엑스맨2>는 속편의 법칙에 따라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빠르게 만들어졌다. 전편이 대중적으로 또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둠에 따라 폭스사는 속편의 제작비를 전편의 7500달러에서 1억달러 이상 훌쩍 올려잡았다. 촬영은 대부분 캐나다 밴쿠버에서 진행됐다. 이들이 밴쿠버에 지은 세트는 4만6천m2로, 북미 최대 규모. 스트라이커의 지하기지는 물론 교회 지붕과 지하통로 촬영분을 밴쿠버 세트에서 해결했는데, 이 세트에서 사용한 전선이 100km, 작업에 동원된 목수가 300명, 제작기간이 6개월에 이른다. 영화의 제작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 1편이 돌연변이 캐릭터들의 과도한 재능과 그로 인한 결핍과 내상을 소개했다면 2편은 더 어둡고 거대한, 돌연변이들의 우주와 그들을 둘러싼 또 다른 우주를 선보인다. 이야기의 연속성은 물론 캐릭터의 발전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편보다 러닝타임이 훨씬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4. 만화 vs 영화 <엑스맨2>는 마블코믹스의 <엑스맨> 시리즈 중 1982년 에피소드인 <신은 사랑하고 인간은 죽인다>를 이야기의 기본 뼈대로 삼았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대립하던 자비에 박사와 매그니토가 사악하고 강력한 인간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윌리엄 스트라이커의 등장으로,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기본 스토리와 주요 캐릭터를 그대로 따왔다. 원작 <엑스맨>의 창시자인 스탠 리가 1편에 대해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고 협조적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편성했다”고 지적했지만, 2편에선 단명한 캐릭터들까지 등장해 매력적으로 부활하니 같은 이유로 또 트집을 잡긴 힘들 것 같다. 정작 원작과 크게 다른 점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근미래 또는 현재의 느낌으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바꿔놓았다는 것. 이로써 관객은 영화 속 캐릭터를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됐다. 5. 감독 가라사대“엑스맨은 어둡고 신랄하다. 그래서인지 스파이더 맨 같은 종전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열혈팬들에겐 그들만의 우주가 있지만, 그외 다수의 대중은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엑스맨은 외계인 같은 낯설고 괴기스런 존재다. 그런 현실은 원작을 해석하는 나의 비전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다른 슈퍼히어로와 비교할 수 없는, 엑스맨만의 색다른 매력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클래식 음악과 화해하기,<렛츠 브라보 뮤직>

클래식 음악을 싫어한다고 고백하는 건 쉽지 않다. 무지하고 품위없고 몰상식하다고 매도될까봐 두려워서다. 거짓말을 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나서서 떠들어댈 생각은 없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겉멋들리고 잘난 척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란 구설수에 오르기 싫기 때문이다. 오페라가 대중예술이던 구소련의 예를 보면, 클래식 음악이 인간의 본성과는 원래 맞지 않는 존재인 것 같지는 않다. 많은 한국인이 클래식에 대해 솔직할 수 없는 것의 원흉은 아무래도 음악 수업인 것 같다. 학교 수업이란 게 다 그렇지만 음악과 미술과 체육 시간은 특히 괴로웠다. 잘 부르고 잘 그리고 잘 달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늘 그랬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악보를 볼 줄 모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감상 시간이면 무조건 음악을 틀어주고 졸면 때렸다. 최악은, 모두의 눈과 귀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리코더도 불고 오르간도 쳐야 했던 기말고사였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운 음악과 클래식 음악은, 음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말고는 아무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렛츠 브라보 뮤직>은 음악 액션게임이다. <비트 매니아>나 <이지 투 디제이> 등 선풍적 인기를 끈 게임들과 다른 점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연주자도 아니고 지휘자, 그러니까 그 모든 악을 총괄하는 대마왕 역을 맡아야 한다. 악기 하나 다루기도 벅찬데 이 무슨 재앙인지 모른다. 실제 플레이해보니 걱정했던 것 이상이다. 신경써야 할 게 너무 많다. 우선 주어진 템포에 맞춰 박자대로 정확하게 버튼을 눌러야 한다. 가끔 템포가 바뀌기도 하는데 허둥대면 절대 안 된다. 강약도 신경쓰고 독주 악기에 신호도 해주고, 훌륭한 지휘자가 되기 위한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잘했나 못했나 박자마다 판정이 뜨고 마디별로 점수가 나온다. 한 박자라도 실수하면 냉정하게 ‘좀더 열심히’다. 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도 있다. 아무래도 전부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출신인 것 같다. 점수가 조금만 떨어지면 야유가 빗발치고, 일정 점수 이하로 떨어지면 콘서트가 중단되어버린다. 음악 시험의 악몽이 사이버 공간에서 재현된다. 가족 모두가 즐기는 게임을 표명했지만 이 게임의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다. 아무리 음악에 재능이 없다지만 몇 시간이나 매달렸는데도 한곡도 클리어 못했다. 그래도 때려치우지 않고 계속하는 건, 관객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덜 쪽팔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박자대로 꾹꾹 버튼을 누르는 데만 바쁘지만 하다보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실력없는 지휘자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눈물겨울 정도로 잘 따라준다. 박자를 놓치면 다시 누를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다음 소절로 안 넘어가고 기다린다. 아무리 느리게 가도 졸지 않고, 성급하게 휘둘러도 불평없이 쫓아온다. 어쩌다 실수로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면 흘러나오는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해봤자 또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음치들을 괴롭히기 위해 치밀하게 짜여졌던 음악 수업만 아니었다면 클래식 음악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쉬웠으면 아니면 이지 모드라도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거란 마음은 여전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

잠자는 걸작 10편, 깨워라! [4] - 팜므파탈

<팜므파탈>(Femme Fatale) 히치콕, 누아르에 입맞추다 유럽영화에서 할리우드영화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너의 징후를 즐기라며 핏대를 세우고 의자를 옮겨다니던 슬라보예 지젝은, 여전히 현대 영화이론을 매혹시키고 있는 두 가지 소재를 선언하며 마지막 장의 첫 문단을 시작한다. ‘히치콕의 영화와 필름누아르.’ 이 둘은 한 등에 붙어 있지만, 한 몸통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히치콕은 히치콕이며, 누아르는 누아르이다. 그러므로 세상 어느 영화이론가보다도 히치콕을 잘 알고 있는 히치콕 문하생 브라이언 드 팔마가 필름누아르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면 ‘히치콕적 누아르’는 그 어디에서도 손쉽게 탄생할 수 없다. 이 희박한 창조적 결합의 순간만으로도 <팜므파탈>의 존재는 희귀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묻어둔다면 언제 다시 히치콕과 누아르의 대면을 목도하게 될지는 정말 자신할 수 없다. 아름답고 치명적인 매혹적 요부, ‘팜므파탈’. 때로는 순수함으로, 때로는 요염함으로 비정의 탐정을 파멸의 순간까지 끌고 가는 거미 여인들. 또는 필름누아르의 뻥 뚫린 이데올로기적 허점, 그러나 장르의 대중적 불로장생을 약속하는 아이콘적 여신들. 파리의 호텔 방. 바깥에는 이제 막 칸영화제의 개막식이 준비 중이다. 팔등신의 미인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여자는 남자를 향해 총을 쏜다. 빌리 와일더의 필름누아르 <이중 배상>의 클라이맥스. 텔레비전을 보던 여자는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이 여자가 영화의 팜므파탈? 그렇지 않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첫 장면의 인물을 곧잘 맥거핀으로 사용한다. 이 영화의 진정한 팜므파탈 로리에 의해 그녀는 가슴에 달린 10만달러짜리 황금 장신구와 함께 곧 죽어 사라진다. 황금을 가로챈 로리는 동료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그녀를 자신의 딸 릴리로 착각한 한 노부부는 로리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욕조에 피곤한 몸을 뉘인다. 7년 뒤. 미국으로 건너간 로리는 미국 대사관의 부인으로 파리를 찾는다. 파파라치가 그녀의 행적을 따라다닌다. 동시에 옛 동료들도 황금을 되찾기 위해 로리를 뒤쫓는다. 그녀는 파파라치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팜므파탈의 본색을 드러낸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바로 이 팜므파탈에게 히치콕적 세례를 내린다. 팜므파탈과 히치콕적 주인공의 결합은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기발하다. 영화 속에는 1인2역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두 여자의 이중적 정체성! 브라이언 드 팔마는 <현기증>에서 히치콕이 보여준 마들렌과 주디의 이중성을 자신의 영화 <팜므파탈>에서의 로리와 릴리의 관계로 치환해놓았다. <현기증>의 서사는 그녀 둘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스코티(제임스 스튜어트)에게 있었다. 스코티에게 마들렌과 주디는 언제나 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그래서 줄곧 의문으로만 쫓아다녀야만 하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는 만약 마들렌과 주디의 서사를 축으로 영화를 다시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이어주는 이미지에는 데자뷔가 적당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느린 지각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만큼 비약적으로 펼쳐진다. <팜므파탈>을 보는 누군가가 스토리가 단순해서 미칠 것 같다고 좀더 오래 불평하면 할수록 그가 속고 있는 시간은 그만큼 더 길어지는 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명백히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의식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의 뫼비우스적 구조를 공간의 모자이크와 대위적으로 관계지어놓고 있다는 사실쯤이 될 것이다. 로리를 둘러싼 시간의 데자뷔와 그녀의 동행자인 사진기자 니콜라스가 붙여나가는 파리의 공간들은 중요한 순간에 서로를 보완한다. 하지만 이미 사건은 성립되어 있다. 그리고 불가해하게 반복되는 데자뷔의 이미지들은 찾아온다. 여기에는 분명 힌트가 있다. 이상한 사물의 멈춤이 있다. 수사가 아니다. 세심하게 릴리의 주변을 따라 훑다보면 아마도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 영화의 트릭이 <창 안의 여자>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게 될 것이다. 이미 프리츠 랑의 미국 시절 누아르 <창 안의 여자>를 본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이 글의 목적이 <팜므파탈>을 보기로 굳게(!) 선약한 관객을 위한 글인 만큼 모호함의 미덕을 갖추기로 한다. 그 약속이 지켜질 수만 있다면, <팜므파탈>은 히치콕, 필름누아르, 프리츠 랑, 데이비드 린치, 그 모두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사유의 장이 될 것이다.

잠자는 걸작 10편, 깨워라! [1] - 임소요

개봉촉구! <임소요>에서 <아들>까지, 반드시 ‘극장에서’ 만나고 싶은 걸작 10편 지지선언 수입은 해놓고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이 있다. 때로는 걸 만한 극장을 찾을 수 없어서, 때로는 수입사 스스로 흥행 가능성에 자신이 없어서, 때로는 심의문제가 걸려서. 영화사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런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의 각종 매체에서 그해 베스트 10에 꼽힌 작품들이다.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경탄을 자아내고 열렬한 지지를 받은 영화들을 하루빨리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씨네21>의 이번 특집은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임소요> <큐어> <해피니스> <팜므파탈>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아들> <막달렌 시스터즈> <볼링 포 콜럼바인> <노 맨스 랜드> 등 10편에 대한 추천사를 모은 이번 특집이 관객의 조바심을 재촉해 정식 개봉의 그날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임소요> 마음을 얻고 나는 쓰네 2000년 중국. 그러니까 이제 막 21세기에 들어선 중국의 변경 도시 따퉁에는 시골집에서 가출해서 지금 막 상경한 두 소년이 있었다. 그들은 도시에 가면 금방 취직이 되고, 돈을 벌어서 금의환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처럼 모든 것이 잘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춥고 배고프게 지내야만 했다. 도시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이제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두 소년은 국수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베이징 근처의 석가장에서 폭파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려주었다. 범인인 실직한 노동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집을 폭발시켜 버린 것이다. 그때 한 소년이 다른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 폭탄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서 그 은행을 털든지 아니면 폭발시켜 버리자. 그 소년들은 은행 강도가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사제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비장해진 두 소년은 그들이 빌려다 본 불법 복사 홍콩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고향에 계신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한 소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라디오에서 (대만 가수가 부른) 유행가 <임소요>(任逍遙)가 흘러나왔다. …어떤 후회나 슬픔이 와도 사랑만 있다면 상관이 없다네.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이 있다 해도 나는 바람처럼 자유롭지. 내가 만일 영웅이라면 당신은 내 출생의 미천함을 물어보지 마시오. 높은 야망으로 내 가슴은,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나 사랑만은 잊을 수 없네. 평생 동안 간직했으나 이룰 수 없었지. 영웅은 초라한 태생을 두려워하지 않지. 내 마음은 야망과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네. 그러나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랑. 평생 동안 헛되이 간직해왔건만 사랑에 빠져 나는 눈멀었네, 애증이 가슴에 가득 하구려. 운명은 진정한 사랑을 갈라놓으니, 내 어찌 당신을 잊으리오…. 열아홉살 소년은 그 가사를 베껴 써서 그의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것이 그가 보낸 마지막 고향 편지가 되었다. 두 소년은 은행을 털러 들어갔다가 미숙하게 폭탄을 만지는 바람에 그만 폭발하였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신문은 이 사건을 사회면의 작은 난에 실었다. 그리고 그걸 지아장커는 읽었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이걸 읽으면서 망연자실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곡을 찾아서 다시 한번 들어보았다. 그리고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따퉁을 찾아갔다. 그는 매일 출근하듯이 아침 6시에 따퉁에 도착해서 저녁 9시까지 따퉁의 여기저기를 찍었다. 거기서 두 소년과 같은 수많은 19살을 만났다. 그렇게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의 시나리오는 거리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는 유릭와이가 촬영하는 디지털카메라의 도움으로 따퉁의 거리에서 19일 만에 촬영을 끝냈고, 편집을 비밀리에 끝냈다. 칸에서 이 영화의 공식상영은 2002년 5월23일 오후 4시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그 자리에 있던 관객은 기꺼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아장커는 그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여섯달 뒤에 나는 부산에서 물어보았다. 칸에 온 것이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지아장커는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운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버림받고, 죽어가고, 묻혀질 때, 아무도 그 아이들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일깨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가 지구 반대편에 와서, 그 아이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만들 때, 나는 그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너희들은 잊혀진 것이 아니야. 너희들의 분노, 너희들의 슬픔, 너희들의 고통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나는 그렇게 자꾸만, 자꾸만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지아장커의 <임소요>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이다. 그는 더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소연하듯이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이 사무친다. 나에게 영화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진심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안고, 절실하게, 정말 소망할 때, 그 영화는 내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영화관에 가서 시시하게 팝콘이나 처먹고 콜라나 마시면서, 거기서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아장커의 <임소요>를 보기 위해서라면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그 영화를 보고, 그 마음에 응원을 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영화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다.

장준환과 <지구를 지켜라!> 탄생기 [4]

04. 당신은 외계인을 믿으십니까? 강사장/ 지구를 처음 발견한 건 칠십오 대조 선왕님이셨어 강사장/ 선왕께서는 이 아름다운 행성을 푸른 행성이라고 불렀지.당시 푸른 행성은 멍청한 파충류들이 지배하고 있었어.(중략)실험대 위에서 아기 공룡을 해부하는 외계인들. (시나리오 중) 2000년 가을, 수서 작업실 다시 찾아온 슬럼프. 시나리오의 진도도 잘 나가지도 않고 컨디션도 좋지 않은 감독은 멍하게 누워 시체놀이를 즐기고 있다. 곧이어 굼벵이놀이로 전환, 뒹굴뒹굴 몸을 굴리던 감독의 눈에 며칠 전 길거리에서 받아서 바닥에 던져놓았던 전단 하나가 눈에 띈다. ‘외계로부터의 xx… 라엘리언 어쩌고저쩌고….’‘음… 저기에 가면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몇 시간 뒤, 종로 탑골공원 근처 전단지를 든 감독, 종로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다. 한참을 헤매다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감독은 얼마 전 자료조사차 마네킹 공장을 방문해 눈치없이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경쟁회사의 스파이로 오인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영화 속에서 병구는 부업으로 마네킹을 만든다).경계의 눈길을 풀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감독. 강의실 입구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 행사장은 썰렁하다. 감독은 입구 탁자에 놓인 1천원짜리 팸플릿과 엽서 몇장을 산다. 불순한 의도로 이곳에 온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감독의 전략이다. 엽서에는 고대 불상 벽화에 그려져 있는 비행접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외계인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외계인으로 오인된 강 사장을 감금하는 지하실, 외계인과 UFO 그림 스케치, 병구 지하실에 수집해놓은 각종 기괴한 표본들. 모든 아이디어를 꼼꼼히 스케치했다. 사실 감독은 외계인의 존재엔 별 관심이 없다.잠시 뒤 사회자가 나와서 이러저러한 인사를 하고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틀어준다. 카메라에 잡힌 각종 비행접시의 사진들, 영국 밀밭에 그려진 미스터리 서클들, 로즈웰 사건에 대한 설명과 외계인 해부장면 등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각종 자료들이 보여진다. ‘음… 그럴듯한걸….’ 감독은 아무래도 외계인이 정말 존재할 것 같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다음 테이프를 트는 사회자. 외계인을 만나서 영적 능력을 얻었다는 한 프랑스 남자가 소개되고 그는 아직도 외계인과 텔레파시로 교류하고 있으며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잘 나가다가 저런 황당한 이야기를….’ 감독의 뺨에 흐르는 한 줄기 땀방울.다시 사회자가 나오더니 세례의식을 진행한다. 영적 능력을 가진 사회자가 물을 찍어 이마에 바르면 자신의 유전자 정보가 외계인들의 컴퓨터에 등록되고 나중에 말세가 와도 복제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쭈뼛거리던 사람들 중 몇몇이 교단 위로 올라가 세례를 받는다. 이마에 물을 찍어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외계인의 컴퓨터에 등록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은 생각한다. ‘아 세상엔 병구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구나….’ 칼바람 맞으며 열연한 신하균의 유인원 연기, 지구를 지키려는 병구와 졸지에 외계인으로 지목된 강 사장이 마지막 대결을 펼치는 연구실 장면 등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 제목만큼이나 촬영현장도 기발하고 신났다. 05. 초저예산영화의 꿈, 무참히 밟히다 “강원도 태백산 위에 만든 병구네 집 세트에만 한 2억 정도요. 전체적으로 미술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죠. 그런 디테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감독님이 집요하게 원하시기도 하고, 장근영 미술감독도 그렇고….” (김선아 프로듀서와의 인터뷰 중) 2000년 가을, 감독의 방 시체놀이와 굼벵이놀이 속에서 데뷔작의 밑그림을 꽤 꼼꼼히 그린 감독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래 지하실 세트하고 몇몇 로케이션만 오가며 찍는 저예산영화야! 데뷔작품으로 완벽해!’바로 그 순간, 감독은 희미한 불안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취향과 감성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그리 공유할 것이 없었다는 뼈아픈 과거사를 떠올린 그는 제3자의 눈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검증하고 싶어진다. 2000년 가을 어느 카페 감독은 봉모 감독을 비롯한 몇몇의 영화아카데미 동기생 친구들에게 트리트먼트를 보여준다. 꿀꺽. 친구들이 돌려 읽는 동안, 감독은 손바닥엔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훌륭해!”, “엄청난걸!”, “대박이구먼!”, “그런 의미에서 한잔 사!” 등등의 찬사가 쏟아진다. 이들의 추임새를 사실로 받아들이곤, 벌어지는 코와 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입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애쓰는 감독. 그의 가슴이 벅차오르며,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 난 천재가 아닐까? 나도 내 재능이 무서워….’ 2001년의 어느 날 싸이더스 사무실 감독은 친구이자 이 프로젝트의 프로듀서를 맡기로 한 김선아씨와 마주하고 있다. 감독: 어때? (재밌고, 의미심장하고, 위대하지?)소심한 감독은 짧게 물어본다.김 PD: 음….어색한 침묵에 자신감이 떨어진 감독은 영화의 미덕을 애써 강조하려 한다.감독: 그래도 예산이 아주 적게 드니까 괜찮겠지?김 PD: 글쎄, 아무리 줄여봐도 한 30억 정도 들 것 같은데….‘헉! 사사삼십….’ 감독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태연한 척해야 한다. 감독이란 모름지기 그런 것이다.감독: 응… 그래…. 생각한 거보다 ‘좀’ 드네….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첨엔 저예산영화로 생각한 거였는데….김 PD: 콘티를 봐라, 콘티를. 이렇게 특수효과가 많고, CG도 장난 아니고, 촬영도 이렇게 많은데 이 정도도 선방한 거야.감독은 방을 나가며 생각한다. ‘그래 크게 한번 놀아보는 거야. 까짓 거 30억이 별건가? 잘 만들어서 한 1천만명만 들게 만들면 되지 뭐!’ 불끈 움켜쥔 감독의 손. 몇 시간 뒤 잠잘 시간, 불 꺼진 감독의 방 말똥말똥. 감독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음… 그래도 30억이면 좀 부담이 되기는 해…. 관객이 적어도 120만 정도는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거기다 홍보비까지 포함하면…. 아~ 첨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방금 전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감독은 불면의 밤 속을 헤맨다.

타잔의 목소리로 엄마 찾아 삼만리

“나쁜 애들도 다 엄마가 있는데…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돌아가신 엄마를 찾아 여행하는 ‘길손이와 감이의 로드무비’ 애니메이션, <오세암>의 주제가를 부를 맑고 우렁찬 목소리가 결정됐다. 한국 가요계의 타잔 윤도현이 애니메이션 <오세암>의 메인 주제가를 부르기로 확정된 것. 윤도현은 이미 가수로 성공하기 전부터 그들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정글스토리>로 영화와의 연을 맺었었다. 윤도현은 이 밖에도 록오페라 <개똥이>, 록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하드락 카페> 등의 주연을 맡으면서 밴드 외적인 솔로 활동으로 동분서주해왔다. 또한 여균동 감독의 영화 <맨?>의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었다. 이번 작품의 메인 주제가를 부르게 된 데에는 여균동 감독의 <맨?>에서 음악감독 및 작·편곡을 맡았던 강호정씨와의 친분도 상당한 계기가 되었다. 윤도현, 한영애, 이정열 등의 프로듀싱을 해온 강호정씨는 이번 작품 <오세암>의 음악을 책임지고 있다. <오세암>에는 윤도현 외에도 <서방님>의 가수 이소은이 참여할 예정이다. 윤도현의 우렁찬 목소리와 이소은의 맑은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듀엣곡이 있다면 금상첨화!동화작가 정채봉씨의 원작을 바탕으로, 극장용 국산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오세암>은 텔레비전애니메이션 <하얀 마음 백구>의 감독 성백엽씨가 연출한다. 4월25일 개봉예정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역사의 상처,<레전드 오브 리타>

■ Story 독일이 두개의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1970년대. 서독의 적군파(RAF), 리타와 앤디는 테러운동을 벌인다. 본의 아니게 살인이 일어나고 그들은 도망자가 된다. 리타는 동독 정부의 비밀요원 에빈의 도움으로 가명을 써가며 생활을 이어간다. 점점 더 멀어지는 리타와 앤디의 관계. 수잔나로 이름을 바꿔 공장에 취직한 리타는 타탸나와 우정을 쌓아간다. 그 즈음 국경을 넘으려다 사살된 앤디의 얘기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리타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신분이 탄로나 다시 이름을 바꾸고 거처를 옮긴다. 캠프관리 교사 사비나로 신분을 바꾼 리타는 물리학도 요헨과 연인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쫓기기 시작한다. ■ Review 그녀의 본명은 ‘리타’다. 하지만 그녀를 살아남도록 해주는 가명은 수잔나와 사비나다. 무엇이 그녀에게 숨겨야 할 이름과 숨기 위한 이름을 가져야만 하도록 만들었는가. <레전드 오브 리타>는 그 거둘 수 없는 운명에 관한 영화이다(‘레전드’는 동독의 비밀경찰들이 신분조작을 가리켜 사용했던 은어라고 한다). 서독의 남자(앤디)와 동독의 남자(요헨) 둘 모두 그녀를 버렸고, 두개의 국가 서독과 동독도 그녀를 버렸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렇게 들뜬 통일의 기쁨이 서로를 얼싸안게 할 때, 정작 리타의 자리는 남겨진 그 잔해 아래 묻혀버린다. 신분조작까지도 도맡아 해주던 동독 정부가 그녀를 더이상 보호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서독의 적군파로 활동하던 리타는 두 정부 사이의 불온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폐기서류 정도가 되고 만다. 이것은 그녀의 끝을 의미한다. 이제 그 어디에도 거처를 호소할 곳이 없는 것이다. 염색공장에서 만난 친구 타탸나를 통해, 그리고 비록 떠나가버렸지만 한때 그녀에게 애정을 쏟아주었던 요헨을 통해, 리타는 이데올로기의 감옥을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가정으로 들어서기를 희망한다. 염색공장 노동자 수잔나, 캠프교사 사비나로 살아가던 도피의 길에서 그녀의 안식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느끼던 사랑이었다. 그러나, 허망하면서도, 갑작스러운, 또는 되돌아갈 수도 없는 그녀의 마지막 선택. 이데올로기가 화해하고, 역사가 화합하는 순간에, 리타는 존재할 곳을 잃어버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통일의 뒤안길에 남겨진 사람이 있음을 슬프게 기억한다. 모두가 술잔에 기쁨을 담아 마실 때, 어딘가 에는 그 역사의 상처가 뒹굴고 있을 것임을 폴커 슐뢴도르프는 주인공 리타의 삶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실존했던 1970년대 독일의 적군파 테러리스트 잉게 비트를 모델로 한 <레전드 오브 리타>는 소재에서 슐뢴도르프의 초기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시기에 폴커 슐뢴도르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던 <양철북>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한 늙은 아이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한 역사, <양철북>으로 197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폴커 슐뢴도르프는 새 영화 <레전드 오브 리타>를 침묵처럼 조용한 양식으로 담아냈다. 그러나 한없이 낮아진 그 양식 안에는 돌아보기 두려운 역사의 숨결이 담겨 있다. 정한석 기자 mapp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