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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제5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 <플레쉬>의 이준일 [2]

잘된 스릴러에는 인간이 있다가작 <플레쉬> 작가 이준일 성명 이준일. 경성대 무역학과 졸업. 그러나 전공과목 학점보다는 교양으로 듣던 연극영화과 수업 성적이 월등히 높았음. 32살(69년생) 되던 해에 더이상 좋아하는 영화를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고 판단, 급기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둠. “영화 마니아”로서, 부산 토박이로서 글을 써오던 중 2001년 ‘시나리오 뱅크’ 공모전에 스릴러 시나리오 <하드코어>가 당선되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함. 그리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 “잘 풀릴 줄 알고 올라왔는데”, 현재 그의 표현대로라면, “재야 시나리오 작가”군에 속해 있음. “보통 3∼4일 정도면 화장실도 안가면서 한편을 써내고, 쓰고 나서도 수정을 잘하지 않는 편”인 천재형 작가. 이미 30여편의 습작들을 써오며 정련해온 바, “이제는 좀 차분해졌고, 뭐가 뭔지 알 것 같다”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음. 그동안 써온 습작 중 한편을 공모준비용으로 다듬은 것이 이번 막동이 시나리오의 가작 당선 <플레쉬>. 크고 작은 충무로 각색 작업에 잠깐씩 참여해본 적은 있지만, “내 작품 하나 쓰고나서 각색해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인 각색 제의는 모두 거절. “이제부터는 죽을 때까지 영화만 할 거고”, “이상적인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감독도 해볼” 생각을 갖고 있음. 주로 어떻게 소재를 결정하나. 사실 나는 처음부터 글쟁이는 아니었다. 영화마니아 출신이다. 그래서 대사에도 약한 편이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 영상을 글자화로 옮기는 거다. 그럴 땐 텔레비전도, 신문도 보면 안 된다. 글하고 나하고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거다. 인물과 내가 친구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게 내 스타일이다. 시네필로서 오히려 상상력에 제한을 받는 경우는 없나.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더 독특해야 돼,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2년 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고민한 부분도 그거다. 내가 원래는 글쓰는 성향이 좀 어둡고 컬트적이다. <환상특급>류의 영화들이 내 성향에 맞는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다. 그걸 변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런 식상함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지금은 관객을 먼저 생각한다. 특히, 장르영화로. 시나리오 <플레쉬>는 스릴러다. 왜 이 장르를 택했나. 스릴러 장르를 원래 좋아한다. 스릴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영화 <이중간첩>도 좀 재미있었고, 요즘 본 것 중에는 <돈 세이 워드>, 그리고 히치콕은 지금 봐도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플레쉬>는 한 남자의 상황이 먼저 떠올랐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원래의 내용은 약간 코믹하고, 굉장히 복잡한 편이었다. 3시간 정도 분량이 될 수도 있었다. 애초 계획에는 ‘반전’도 중반쯤에 나왔는데, 분량이 길어지면서 뒤에 보여주기로 했다. 주인공 영우의 이야기를 좀더 심도있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긴 하다. 공포 요소도 섞여 있는 것 같다. 맞다. 내가 귀신영화에 관심이 많다. 단순히 귀신이 나온다는 게 아니라, 귀신의 존재감, 그렇게 되는 이유 등을 생각하며 귀신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흐름상 대립각을 설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플레쉬>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라스트신. 나한테는 반골기질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도 남들은 다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는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싶나. 각색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거의 거절했다. 중간에 엎어진 것들도 많았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원하는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 요즘에는 코미디도 한편 쓰고 있다. 아무래도 스릴러가 편하긴 하다. 멜로는 참 막막하고.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된 스릴러에는 인간이 다 있다. 글 정한석 mapping@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도쿄] 짱구의 역습

어른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의 최신작 <짱구는 못말려: 폭풍우를 부르는 영광의 불고기 로드>(クレヨンしんちゃん: 嵐を呼ぶ榮光のヤキニクロ-ド)가 4월19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됐다. 개봉 주말부터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은 총흥행수입이 20억엔에 달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걸쳐 사장을 중심으로 회사원의 생활을 그린 <사장 시리즈>,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코미디언 그룹인 크레이지 캐츠를 등장시킨 <크레이지 시리즈> 등의 코미디 시리즈는 일본영화에 황금기를 가져온 주역. 그러나 69년부터 등장한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가 96년 주연배우인 아쓰미 기요시의 죽음으로 중단된 이후엔 <낚시 바보 일기> 시리즈 등이 그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폭넓은 관객을 동원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짱구는 못말려>는 성인용 잡지에 연재되던 우스이 요시토의 만화가 원작이지만,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고, 93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 1탄 <액션 가면 vs 하이그레 마왕>이 제작됐고, 그 이후 매년 새로운 극장용 에피소드를 선보이고 있다.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1탄의 경우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사랑받았지만, 2001년에 개봉한 9탄 <폭풍우를 부르는 모레트! 어른 제국의 역습>에 이르러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를 넘어 좀더 너른 지지와 평가를 받게 됐다. 이 작품은 현대의 문명을 부정하는 조직 ‘어제여 다시 한번’(Yesterday Once More)이 70년대를 재현한 테마파크를 설립하고 어른들을 불러모으려 하자 우리의 주인공 짱구(노하라 신노스케-일명 신짱)가 그들에게 싸움을 건다는 내용으로, 복고풍의 배경과 그 시대에 대한 향수가 어른 관객에게도 크게 어필했다. 2002년에 선보인 <폭풍우를 부르는 압파레! 전국대전투>는 짱구가 전국시대로 거슬러올라가 전투에 휘말린다는 설정의 시대극이었다. 최신작 <영광의 불고기 로드>는 시리즈 중 6편을 연출했던 하라 게이이치가 콘티를, 콘티를 맡았던 미즈시마 쓰토무가 연출을 바꿔 맡은 작품.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해서, 짱구의 가족이 저녁 식사로 불고기를 먹기 위해 악의 조직과 싸운다는 내용이다. <짱구는 못말려>의 트레이드마크인 야하고 썰렁한 개그는 물론, 자전거로 하는 추격전과 액션장면 등이 첨가돼 보는 재미가 더하다. 심플하고 스트레이트한 실사 오락영화가 적어진 이즈음, 일본 영화계에서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귀중한 작품이다. 한국의 관객은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변종 호걸들 의리없는 세상으로 귀환하다,<엑스맨2>

■ Story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괴한이 침입한다. 인간의 눈에 포착되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 경호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괴한은 “돌연변이에게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새겨진 단도를 남겨둔 채 사라진다. 암살기도가 있고 난 뒤 돌연변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돌연변이 전문가 스트라이커(브라이언 콕스)는 문제의 진원지로 사비에 영재학교를 지목하고 나선다. 한편 사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는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이면에 정치적 음모가 있음을 간파하고 암살자를 추적, 스톰(할리 베리)과 진(팜케 얀센)을 급파하는 한편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매그니토(이안 매켈런)를 찾아간다. 하지만 엑스맨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비에 영재학교로 스트라이커의 특수부대가 급습한다. ■ Review 묘하게도 <엑스맨>의 슈퍼히어로는 무협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정파와 사파가 대립하고 강호의 고수들이 서로 다른 무공으로 자웅을 겨루는 이야기, 그것은 정작 홍콩무협영화에선 제대로 표현되기 힘든 세계였다. 방대하고 광활한 무협지적 상상력을 가감없이 스크린에 펼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서극의 위대한 실패작 <촉산>이 입증한 대로 그것은 영영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일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엑스맨>은 흥미롭다. <반지의 제왕>이 그랬듯 <엑스맨> 또한 홍콩무협영화가 시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협지적 흥분과 쾌락에 근접해간다.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 주축을 이뤘던 <엑스맨>에 이어 <엑스맨2>에서 정파와 사파는 일시적 동맹을 맺는다. 정사의 구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위기, 강호의 피바람을 막기 위해 엑스맨과 매그니토가 힘을 합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엑스맨>은 무협지와 다르다. 1963년 마블코믹스의 만화 <엑스맨>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미국에선 ‘백인전용’이라는 간판을 단 술집과 식당이 드물지 않았다. 1편이 사비에 교수와 매그니토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의 대립구도로 이뤄진 데서 알 수 있듯 <엑스맨>은 미국의 정치, 사회현실을 판타지라는 필터에 걸러 투영한다. <엑스맨2>는 이런 점에서 1편보다 정치적이다. 2편의 오프닝에서 관객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가운데 한 문장을 듣게 된다. “우린 적이 아닌 친구입니다. 열정 때문에 우정이 깨져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링컨의 교훈은 현실의 폭력 앞에 무용지물이다. 백악관의 투어가이드가 상냥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연설을 이야기하는 동안 대통령 집무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총알보다 빨리 움직이는 돌연변이의 대통령 암살기도, 뒤이어 돌연변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9·11 이후 미국이 아랍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상기시킨다. 공화당 매파의 우두머리(혹은 이 묘사한 정치가)처럼 보이는 스트라이커가 사비에 영재학교를 소탕하려는 대목 또한 이라크전을 시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스트라이커는 학교 농구코트에서 튀어나온 엑스맨의 비행기 사진을 보여준다. 빌미가 확보되자 전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현실의 정치역학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엑스맨>의 무기는 따로 있다. <엑스맨2>는 이 프랜차이즈의 진정한 매력이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1편에서 살을 뚫고 솟아나는 칼날이 “매번 아프다”고 말하던 울버린이 같은 운명을 타고난 여인 데스스트라이커를 물리칠 때 느껴지는 상실감, 텔레파시가 점점 강해져 괴로워하던 진 그레이가 홀로 남아 염동력으로 비행기를 떠올릴 때의 희생정신, 목숨이 위험하지만 로그에게 입맞춤하고픈 욕망을 참을 수 없는 아이스맨의 순진한 열정, 강한 존재에 대한 선망으로 매그니토의 제자가 되려는 파이로의 반항심 등 <엑스맨2>는 일일이 돌보기 힘든 수많은 등장인물들에게 한순간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공감을 끌어낼 만큼 충분하지 않다 해도 액션의 리듬을 만드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1편의 악당 매그니토가 탈출하는 순간 전율이 흐르는 이유도 그것이다. 매그니토는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비에 교수에게 “학교 아이들이 잡혀가는 악몽을 꾸지 않나?”고 물어본다. 그리고 2편에서 매그니토가 예견한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플라스틱 감옥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매그니토가 악의 편이라고? 메시아의 재림처럼 위풍당당한 그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런 선입견은 철저히 무너진다. 동방불패 못지않은 위대한 악당에게 박수를! 재기넘치는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여기에 촌철살인의 유머를 더한다. 1편에서 엑스맨 복장에 대해 투덜대던 울버린이 이번엔 “이중 누군가는 알 거야”라는 매그니토의 말에 “난 할말 없소”라고 답했다가 핀잔을 듣는다. “자네만 주인공인줄 착각하지마.” <엑스맨> 시리즈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런 농담은 울버린이 무기를 버리라는 경찰의 명령에 손마디에서 삐져나온 칼을 내보이며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답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엑스맨2>의 다양한 메뉴 가운데 액션쪽은 이번에도 남자보다 여자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스틱은 2편에서 레베카 로민-스타모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며 전편에 이은 우아하고 유연한 몸동작에다 성적 매력의 파괴력을 추가했다. 2편에 새로 등장한 데스스트라이커의 예리한 발차기나 나이트크롤러의 번개 같은 움직임도 미스틱의 강렬한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프랜차이즈영화가 다 그렇듯 <엑스맨2>도 개봉하면 1편과 비교해서 나은지 아닌지에 관한 여러 견해가 나올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엑스맨2>를 보고나면 이 시리즈가 스펙터클의 규모에선 못 미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의 무궁무진함에선 <반지의 제왕>에 필적하리라, 확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40년간 발간된 만화가 인기를 유지했던 비결을 <엑스맨2>는 잊지 않고 있다. 1편은 매그니토가 만든 자기증폭장치가, 2편에선 사비에 교수가 만든 세레브로가 강호에 파란을 몰고온 ‘무공비급’이었다. 무공비급이라는 맥거핀을 차지하기 위한 강호 고수들의 격돌, <엑스맨> 시리즈는 거기에서 사랑, 성장, 배신, 질투, 복수의 드라마를 그린다. 할리우드 무협지의 최신판 <엑스맨2>는 동방의 영웅호걸들과 자웅을 겨룰 만한 상대다. 제작자 로렌 슐러 도너 “007 같은 장기 프랜차이즈 꿈꾼다” - <엑스맨> 1편을 만들 때 이미 2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영화산업이 예측불능의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엑스맨>은 40년에 걸친 스토리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 만큼 성공해서 007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를 만들길 희망했다. 본드 시리즈가 15편 넘어서며 시들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엑스맨12>를 만들고 “자, 우린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이미 3편 계약을 맺은 멤버도 있다. -<엑스맨2> 제작에서 가장 큰 도전은. 1편에서 보여준 내용을 반복해 팬들이 식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한편 1편을 안 본 관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이드라인 사이의 균형이었다. - 현란한 CG가 널린 시대에 만화책이 아직도 인기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에서 만화책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누린 것은 2차대전 직전이었다. 슈퍼 히어로를 통해 도피하면서 경찰이나 총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액션을 즐길 수 있는 방편이었다. 할리우드 역시 만화를 통해 액션영화의 새로운 차원을 얻었다고 본다. - 냉전 히스테리는 지금도 테러 등의 계기로 이어진다. 편견과 불관용은 줄곧 존재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당신이 마이너리티라도 사회 속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60년대 태어난 <엑스맨>의 또 다른 재미는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남자 흉내를 내지 않으면서도 남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찰 수 있을 만큼 세다. - 캐나다를 로케이션으로 고른 것은 저렴해서인가. 미국 달러의 65% 비용이 들고 세제 혜택도 받는다. 더욱이 눈 내리는 날씨가 필요했다. - 캐스팅이 국제적이다. 해외 시장의 중요성 때문인가. 그것보다 연기력이 우선 기준이다. 수많은 세계의 좋은 배우를 두고 미국 배우에게만 기회를 준다면 어리석다. <엑스맨> 1편은 미국 내 수입보다 해외 시장 비중이 컸다. 기본적으로는 1:1이 평균이지만. 과거에는 스튜디오들이 비미국 배우 캐스팅을 반대한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 반전 무드로 다른 나라 관객이 할리우드 보이콧 운동을 벌일 가능성을 염려하는지. 깊이 사태를 인식하며 걱정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일부 멍청한 미국인들 때문에 거대한 반미 의식이 생겨났다. 뭐, 항의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미지의 존재에 대한 한 사람의 공포가 불관용을 재난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제작노트를 당신의 말과 연결지어도 될까. 나란히 연결해도 좋다. 백악관 상영회를 해보라고? 그들이 원한다면야! LA=김혜리

브라운관 노장들“스크린을 접수하라”

백윤식, 변희봉, 윤여정…. 우리는 이들을 새로 발견했다. 어린시절부터 텔레비전에서 구수한 할아버지로, 잘 나가는 꽃미남으로, 말 끊이지 않는 깐깐한 아줌마로 친숙했던 이들, 지금은 ‘중견’을 넘어 베테랑 탤런트가 되어 있는 이들이 올 한국영화계를 융단폭격하고 있다. 충무로엔 “텔레비전 ‘노인’들의 스크린 역습”이라는 말까지 유행이다. ‘내공’을 갖춘 고수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업는 것도, 감초 역할도 사양했다. 새롭고 독특한 영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가족이라곤 하나도 없는 듯한 젊은 남녀가 나와 뽀뽀만 하던 영화의 시대를 지나, ‘감독영화’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내놓는 비교적 젊은 감독들이 등장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종의 ‘텔레비전 세대’였던 이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같은 욕지거리를 해도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1급의 연기’를 원했고, 스스로 팬이었던 중견 탤런트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냈다. 지난달 <지구를 지켜라>의 강만식 사장, 백윤식씨가 던진 충격은 예사가 아니었다. 드라마 <서울의 달> <파랑새는 없다>가 깊이 심어준 인상을 떠올려보라. 그의 연기는 뻔뻔스런 사깃꾼을 할 때도 진짜 악인이라기보다는 참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의 허풍 같아 연민을 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그 얼굴 때문에 영화를 보며 한순간 강사장이 측은해지려고도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술에 떡이 된 채 흘리던 외계인의 음성, ‘미친 녀석’ 병구에 끌려가 머리 깎이고 빨간 사각팬티와 레이스 달린 속옷만 입은 채 결사적으로 탈출하려던 절규, 백씨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러닝타임을 꽉 채웠다. “액션부터 시작해서 감정기복이 심하잖아요, 연기자들이 필요로 하는 감정이 다 들어갔더라고. 쭉 해왔던 연기 인생의 정점에서 나를 뒤돌아본다는 느낌이었죠.” 그는 현재 차기작을 검토중이다. “<지구…>는 특별한 케이스였지만 우리 영화엔 중견·젊은 연기자들의 대립각을 세운 작품이 별로 없어요. 우리도 좀 다양해져야 하는데….” 새까만 얼굴에 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힘겹게 써가던 <선생 김봉두>의 최노인이자 <살인의 추억>의 초반부 사건현장에서 멋진 미끄러지기를 보여주는 구식복덕방 주인 같은 구반장, 변희봉씨. 성우로 출발해 1970년부터 연기를 한 그는 텔레비전에선 “대부분 <수사반장>이나 의 도둑놈, 노인, 간첩, 점쟁이역”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라. 튀어나온 턱과 눈, 그 눈을 동그랗게 뜰 때의 기이하고 독특함은 작은 텔레비전 화면이 아니라 커다란 스크린에서 본색을 발휘한다. “방송과 똑같은 역만 들어와 절대 영화는 안 찍는다 하고 있”던 변씨는 열렬한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집요한 꾀임에 십수년 만에 <플란더스의 개>를 찍었고 <살인의 추억>까지 인연을 이어갔다. “방송은 순발력이잖아. 영화에 와서 처음엔 밖으로 표현 못했지만 속으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랑 작업한 게 정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정말 훌륭한 감독들이 많더라고. 난 아무리 영화가 상업적이라도 꼭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감독들에게 그걸 말해요. 조연만 해서 그런가, 수십년이 지난 요즘에야 연기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니까.” 한없이 겸손한 그는 <불어라 봄바람>(장항준 감독)에서 노작가로 변할 예정이다. 완성돼 개봉을 기다리는 <바람난 가족>에서 윤여정씨의 연기는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 언제나 할 말 다하는 ‘정론직필’형의 그는, 영화 출연 소감을 물을 때도 그랬다. “젊은애들이 왜 영화 하다가 텔레비전 안 하겠다는지 알겠더라고. 영화는 감독이 하루종일 붙잡고 연습시켜 1~2장면 찍잖아. 그거 못하면 연기 관둬야지.” 아버지, 어머니, 시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바람을 피우는 이 대담하고 섹시한 가족 이야기에서 그는 평생처음 육체와 감정의 요구를 솔직히 인정하고 바람을 피우는 예순살 여인 ‘홍병한’이 되었다. 윤씨는 억척스런 아줌마이거나, 도시적 여성이거나, 생의 무게에 어깨 돌리던 홀로 된 여인이거나, 아니면 그저 보통의 어머니일 때도 흔한 ‘한국의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른 이의 쓸쓸한 인생을 위안하던 그의 연기를 보며, 자기 안의 욕망을 내놓고 말하는 연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도 “맨날 밥상 차리고 눈물 짜는 역이면 안 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꼽아야 할 이들은 아직도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경상도 사투리 진하던 반장 송재호씨, 그가 <이중간첩>에서 악랄한 고문에도 맑은 얼굴로 신념을 지키던 북한 고정간첩역을 했을 때의 존재감은 어땠는가. 비교적 영화에 자주 출연해왔지만 김인문씨도 <바람난 가족>에선 ‘김기영 감독보다 더 변태 같은’ 임상수 감독을 만나 “특유의 하이톤의 쇳소리는 금지당한 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식칼’든 김자옥씨나, <오! 해피데이>에서 정말 ‘기∼인’ 육두문자 애드리브를 날리는 김수미씨는 출연시간이 짧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주목할 만한 건 관객의 주요층인 10~20대도 그들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상수 감독은 그것을 “정말 좋은 연기를 볼 때 얻는 쾌감일 것”이라 말했다. 그의 말대로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볼 또 하나의 ‘행복한 이유’를 찾은 셈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말하는 백윤식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가 백윤식씨의 팬이었다며 추천했다. 아, 그렇지, 나도 팬이었는데. 개성이 정말 강한 연기자다. 작업하며 놀란 건 많이 열려 있다는 거다. 배역에 접근하는 것도 젊은 연기자보다 더 분석적이다. 기존의 이미지나 쉽게 갈 수 있는 부분 등 자신의 메리트는 전혀 생각 안 한다. 오히려 버리려고 하더라.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랄까. 편집할 때 잘라낼 장면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전체 느낌을 보고 계산해서 연기를 배치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초반엔 물론 힘들었다. 그는 테이크 세번 안에 해결하는 연기에 몇십년 동안 익숙했으니…. 본인도 세 테이크 안에 다 뿜어버리니까 여러번 가면 에너지가 좀 떨어진다고 할까, 하지만 금방 적응하더라.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변희봉 변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뜰 때 그 밑에서 조명을 친다, 그 이미지로 <플란더스의 개>의 아파트 관리인 역을 만들어냈다. 그 영화에 혼자 10분 가까이 보일러 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로 빽빽하게 2~3장 되는 양을 스님이 불경외듯 줄줄 해내는데 정말 공력이 느껴지더라. <살인의 추억>의 반장역도 애초부터 변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 작품에 어찌나 애착이 강한지 “봉감독, 이 반장 그냥 죽 가면 안 될까” 말도 하시고, 촬영분이 끝났는데도 현장엘 직접 찾아왔다. 잘 보면 후반부에 그냥 화면을 지나가는 사람 중에 변선생님의 모습이 보일 거다. 지금 세번째 영화의 시나리오를 마쳤는데, 그 영화에도 변선생님을 등장시키려고 한다. 이번엔 선생님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다.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이 말하는 윤여정 병한역은 연기자들이 맡기 몹시 꺼려했다. 텔레비전에선 볼 수 없는, 한국사회에선 금기시하는 이야기를 뻔뻔스레 해대는 주인공인 셈이니. 캐스팅 당시 윤여정 선생님이 1순위는 아니었다. 근데 생각 이상이었다. 첫 촬영날 엄청난 대사를 2~3번 만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게 했다. 사실 난 탤런트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늘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근데 선생님과 작업을 하며 일종의 감동을 받았다. 주요 무대가 텔레비전일 뿐이지, 여전히 새 역할을 꿈꾸고 도전하는, 말 그대로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바로 다음 작품에 역할을 만들어서라도 출연시킬 생각이다. 내가 평생 영화를 만들다면 계속 함께하고 싶다. 김영희 기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현장 스케치 [2]

동서고금 막론한 욕망의 모습 “다시 현대물을 한다면 펄펄 날 것 같아요.” 이재용 감독은 사극 연출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움직임의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꼼꼼함과 섬세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연배우들에게는 대사의 톤까지, 단역에게는 화면에 들고나는 위치와 타이밍을 정확히 짚어준다. “사람 사는 거나 인간의 욕망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내 식으로 펼쳐볼까 하는 게 관건이지. 양반집 깊숙한 곳에서 춘화를 돌려보고 또 조씨부인을 주인공으로 한 춘화가 문제를 일으키는 건 ㅇ양 비디오 사건과 다를 게 없고, 당시에 집 한채 값이라는 가채에 사대부 아녀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이탈리아 가구를 갖고 싶어하는 지금의 욕망과 다를 게 있겠어요?” 감독뿐만이 아니다. 전도연과 배용준은 이구동성으로 <발몽>이나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감독 로저 컴블, 1998)보다 <위험한 관계>가 확실히 인상적이라며 영화 <스캔들…>의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세실(우마 서먼)의 엄마가 투르벨 부인(미셸 파이퍼)에게 자꾸 경고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작업’을 방해하자 발몽 자작(존 말코비치)은 그 대가로 세실의 처녀성을 가져간다. 메르티유 백작부인(글렌 클로즈)은 처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세실에게 남편과 맘을 준 연인과 몸을 준 남자를 동시에 갖는 게 여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자유라고 조언하며 발몽을 거드는데 그건 일말의 진심이기도 하다. 죄책감이 사라진 세실에게 발몽이 ‘난 한때 네 엄마의 정부이기도 했어’라고 말해주어도 세실은 깔깔거리며 재밌어한다. <위험한 관계>의 이야기 줄기를 거의 따온 <스캔들…>이니만큼 세실의 조선시대 버전 소옥과 소옥어미도 모두 조원에게 ‘정복’당한다. 물론 조씨부인의 지원사격이 컸다. 조씨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메르티유 백작부인이 정리해주는 ‘인생관’을 참고하면 좋겠다. “처음 사교계에 들어와서 그저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듣고 관찰하면서 사람들이 숨기려는 걸 듣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전문가가 됐지. 도덕가에게서는 외모를, 철학가에게서는 생각하는 법을, 소설가에게서는 불필요한 게 뭔가를 배웠어. 그걸 합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웠어.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남자들을 지배하고 여자들에게 복수하는 거지.” 발몽과 메르티유처럼 조원과 조씨부인도 같은 부류의 인간이다. 사랑 그 자체보다는 권력처럼 위계짓는 사랑 게임을 즐기며 운명적인 사랑에 심취한 인간들을 조롱한다. 이재용 감독도 사랑에 얼마간 냉소적이다. <정사>에서 “결혼에 희망을 갖지 마라. 열정만 갖고 사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던 남편의 말에 동감하던 이 감독은 ‘솔 메이트’(영혼의 짝) 따위의 대사를 편집에서 지워버렸다. <순애보>에 다시 등장한 우인은 아야와 알래스카에서 커플이 되지만 그는 사실상 거세된 남자다. <스캔들…>에선 발정난 조원이 뒤늦게 ‘회개’를 하겠지만 운명적 멜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SF영화 만드는 상상력으로 낯선 곳에서 이야기를 끌어온 영화답게 <스캔들…>은 공간과 디테일에 대한 상상력이 ‘SF적’이다. 이것은 <스캔들…>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아온 기존 사극과 달라지리라고 예상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치질을 어떻게 했을까까지 고증하려 했으나 남아 있는 게 워낙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 먼저 상상을 해보면 대체로 맞아들어갔다고 한다. 민속촌에 가면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의 집 모양을 개괄해놓았지만 설마 사람들이 그렇게 표준적으로 살았을까 싶었다. 마침 문을 열면 트인 마당이 아니라 벽부터 다가서는 이언적의 ‘은밀한’ 집을 보고 무릎을 쳤다. 내당에 연못을 만들어놓기도 했겠지 싶어 세트를 만드려 하니 ‘그런 집’은 없었다는 반발에 부딪쳤다가 뒤에 ‘그런 집’이 있었다는 걸 찾아냈고, 예절법을 연구하다 식사 때 서양의 냅킨 같은 걸 썼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 서구식으로 방을 꾸미듯 그때는 방을 중국식으로 치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으로 밀어붙인 것도 있다. 상상력이 이런 식으로 자꾸 작동하니 ‘이건 SF영화다’라는 레토릭도 틀린 것만은 아닌 셈이다. “당시에 군자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 제너럴리스트를 추구했어요. 스스로 약을 지어 먹을 줄 알고, 운수도 볼 줄 알고, 자기 집은 자기 식대로 짓고 살았다는 거죠. 이걸 알고 나니까 사대부의 일상에 집중하는 데 많이 자유로워지더군요.” 공간에 대한 야심을 가진 사극이라면 미술비의 비중이 높을 것은 불문가지. 순제작비 45억원 중 미술, 의상 등에 들이는 돈이 20억원에 가깝다. 화려한 실내 미장센을 연출하기에 고충이 크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좌식 문화에 카메라를 다양하게 들이대기가 생각보다 갑갑하더라는 것이다. 조금만 움직이면 틀어지는 한복이나 머리, 수염 등도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는다. 조원의 잘 다듬어진 수염은 ‘리얼리티’를 위해 한올씩 일일이 붙였다. 그래도 68회차 촬영 중에 43회차를 넘기면서 중요 대목은 거의 다 찍었기 때문인지 야외촬영에선 느긋하게 즐기는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요즘 영화계의 한 경향이라 할 여성 스탭들의 파워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분장, 의상은 물론이고 프로듀서, 제작부장, 조명 퍼스트, 붐 마이크 등이 모두 여성이다. “<순애보>처럼 이것저것 살짝살짝 숨겨놓는 재미는커녕 이야기 전달에만도 힘이 많이 들어 한눈 팔 새 없을 지경”이라는 엄살은 이 영화가 매우 촘촘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에로틱함과 멜로, 유머까지 그 어느 때보다 ‘톤’이 다양한 이재용 감독의 신작이 얼마나 ‘비싼’ 결과를 낳을지 아직 알 수 없다. 우아하고 세련된 사극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스탭들이 묵는 안동 시내의 모텔은 여느 도시처럼 술집들로 포위돼 있었다. 밤늦게까지 붙잡아놓았던 감독이 돌아간 뒤 텔레비전을 켜자 한 채널에서 비디오용 에로영화가 줄창 쏟아진다. 이래저래 현실은 ‘싸구려’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치밀어오른다. “성(性)스러우면서도 성(聖)스러움이 깃든” 영화는 그래서 자꾸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편집 이다혜 배용준, 전도연 인터뷰 “용준씨, 러브신 직전까지 운동하더라” 배용준이 맡은 조원은 시, 서, 화에 능하지만 고위관직을 마다하고 뭇 여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조선 최고의 바람둥이다. 재치있는 유머와 강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할 텐데 브라운관에서 굳어진 이미지는 호탕한 남성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안경을 벗고 8kg을 감량한 얼굴은 날이 서 있다. 공식 인터뷰가 아닌 사담을 나눌수록 ‘터프’하다는 느낌이 더해진다. 배용준은 온갖 스포츠를 즐기고 또 잘한다. 그 덕에 말에서 떨어진다든지 부채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 장면에선 스턴트맨보다 훨씬 잘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선 최고의 정절녀 숙부인 역의 전도연은 잠시드라마쪽으로 나섰다가 쪽진 머리로 돌아왔다. 한담을 나누던 이유진 프로듀서는 “슛 들어갑니다”란 소리가 나자 “도연이는 굳이 지켜볼 필요가 없어”라며 연기에 대한 믿음을 표시했다. 러브신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지. 배용준 >> 한복이 입고 다니기에 좀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가끔 다 벗고 그랬어요. (웃음)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전 처음이잖아요. 찍고 났더니 전도연씨가 매니저랑 뭘 막 상의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건 너무 야하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고 뭐가 많이 나오진 않아요. 전도연 >> 저도 잘 모르고 찍었어요. (웃음) 그런데 용준씨는 그거 찍기 전까지도 분장실에 아령을 갖고 와서 운동을 하더라고요. 유머도 꽤 담겨 있다고 하던데. 전도연 >> 전혀 코믹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본 리딩에서 웃기는 대목이 많은 거예요. 뭐랄까 너무 진지하니까 오히려 웃기는. 배용준 >> 그런 점에서 기대되는 장면이 몇개 있는데, 아직 찍지 않아서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어요. 배용준씨는 첫 영화인데다 사극이어서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은데. 배용준 >> 드라마는 길게 나누어 가고 반응도 바로 돌아오니까 큰 긴장감이 없었는데 영화는 액기스만 가니까, 연기의 호흡이 빠르니까 좀더 죽기살기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맘 같아서는 다시 다 찍자고 하고 싶어요. 현대극 같지 않고 대사도 좀 힘들고, 상투 때문에 머리에 피멍이 들기도 했어요. 한복 입고 살다보니 옛날 양반들은 불편해서라도 소식을 했을 것 같아요. 촬영이 힘들어서 빠진 것도 있지만 체중 감량은 잘한 것 같아요. 전도연씨도 사극은 처음 아닌가요? 촬영이 60% 정도 진행됐는데 연기하기가 어떤지. 전도연 >> 벌써 그렇게 됐나. 장르의 변신일지는 몰라도 연기의 변신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고지순한 캐릭터라는 표현 방식만 달랐지 연기는 결국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평상시 이미지가 워낙 발랄하긴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숙부인의 조용한 성격이 저랑 많이 닮았어요. (웃음) 조씨부인(이미숙) 캐릭터가 워낙 힘있게 보이는데 저는 숙부인에게 또 다른 힘을 주고 싶어요. 자신의 순정이 사랑 게임의 대상이 된다는 게 현실이라면. 전도연 >> 글쎄. 바람둥이라도 그때그때 진심이 아닌 건 아니니까…, 넘어갔을 것 같아요. 여기선 결국 조원의 진심이 있으니까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아요.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감독 · 평론가 8명이 추천하는 단편감독 8인 [4]

추천자 : 탐미적이고 어두운 미학적 성취 <사춘기>의 제찬규 감독 김지운 감독 날카롭고 현대음악 느낌의 현과 피아노가 도발적으로 귀를 자극하면서 흑백화면이 열린다. 화면 가득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느릿하게 돌아가고 있고 한 소녀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 <캔디>의 낭랑한 대사들이 음침한 공간 안에서 역설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들린다. 방 안은 온통 이상한 조짐들로 가득하고 텔레비전을 주시하던 소녀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시선은 집 어디선가 들리는 녹슨 파이프관을 따라 흐른다. 모기향 접시에 퍼덕거리며 원을 그리는 나방,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구식전화 벨소리, 방 안 한구석에서 이마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잠을 자는 엄마, 이 모든 것들이 사춘기 소녀의 오감에 불길하게 와닿는다. 아니 소녀를 억누르고 있다. 소녀의 엄마는 한쪽에 축 늘어진 채 소녀를 이 불길함에서 구해줄 능력을 상실한 듯 보인다. <사춘기>의 공간들은 온통 낯설고 그로테스크하다. 친숙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한 공간인 집과 병원, 병원의 긴 복도와 육중한 엘리베이터, 그리고 택시 안은 최대한 단순하게 공간을 닫아버리고 스멀스멀 불길한 전조를 드리운다. 이렇게 사춘기의 소녀 앞에 놓인 모든 대상들은 낯설고 불안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존재한다. 지난해 이맘때쯤,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나는 두편의 놀랄 만한 작품을 만났다. 그 한편은 대상 작품이었던 신재인의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이었고 다른 한편은 공포판타지 부문 대상작인 제창규의 <사춘기>였다. 우선 신재인의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은 기발한 이야기 소재에 엉뚱하고 성숙한 유머를 천연덕스럽고 솜씨있게 비벼놓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모든 감독들을 한방에 보내버렸다(뒤에 알았지만 그에게 매료당한 영화인들이 꽤 있었던 걸로 안다). 이 작품과 마지막까지 대상을 놓고 각축을 벌인 작품이 바로 제창규의 <사춘기 >였는데 나는 극히 현실적인 공간을 어둡고 낯설고 기이한 공간으로 연출해낸 제창규의 탐미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에 매료당했다. 서양화 전공의 미대 출신답게 그는 엄격한 구도와 텍스처의 질감을 세심하고 유려하게 그려나갔다(물론, 미대 출신이라고 다 화면구성력이 뛰어나고 표면재질감을 훌륭하게 그려내는 건 아니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바로 텍스처의 표현능력이다. 한국영화 중 단편, 장편 통틀어 최근에 그만큼 텍스처를 뚫어져라 바라본 사람을 못 봤다. 뭐 그다지 별거 아닌 것에 호들갑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일반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영화풍경 안에서 신선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물론 그에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표면에 세심한 나머지 이야기 전개의 허술함을 낳았고 알레고리의 중첩과 과잉은 모호한 결말을 도출한다. 마치, 그는 관객에게 잔뜩 분위기를 잡아놓고 허둥지둥 알레고리 안에서 이야기를 찾으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뤄어낸 공간의 은밀하고 어두운 세계의 미학적 성취는 더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지금 그는 촬영감독으로 데뷔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와 잘 맞는 소재와 감독이라면 금상첨화, 기대만빵이다. 그가 대형 스크린 위에 그려놓을 그림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와 함께했던 촬영, 음악, 편집, 미술을 맡았던 스탭들의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되며 특히 음악을 맡은 임지윤은 왠지 천재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와일드 와일드 투캅스,정진영+양동근

봄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와일드’하게 비가 내렸다. 그리고 <와일드카드>의 두 형사들을 기다린다. 먼저 형님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담배를 물어 피우고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공간을 익힌다. 깡패들에게는 무섭게, 가족에게는 부드럽게, 그렇게 이중의 생활을 오차없이 끌어나가는 형사 오영달의 노련함은 그 느긋한 걸음에도 배어나온다. 그건 배우 정진영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함이다. 방제수 역의 양동근이 들어섰다. 거침없이 자리에 앉는다. 물어보기 전까지는 한마디 말도 없다. 범인을 잡으러온 형사 방제수처럼 거친 숨을 가라앉히며 시선을 내려꽂는다. 우회하지 않고 숨기지 않는, 그래서 친구와 적이 분명한 양동근, 발로 뛰고 주먹으로 생각하는 돌출적인 형사 방제수 역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적임자를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러가도 같은 영화는 안 볼 것 같고, 음악을 들어도 다른 종류만 들을 것 같은 두 사람. 빼어난 말솜씨로 ‘그것을 알려주는’ 형님과 말보다는 ‘구리뱅뱅’ 랩으로 의견을 뱉어내는 것에 능숙한 동생. 달라도 많이 다를 것 같았던 이 15살 차이 형님 동생은 마치 영화 속 파트너처럼 다정하고, 격의없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욕심없음’, ‘가식없음’ 등의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양동근, “둘 다 나쁘죠”. 정진영, “둘 다 죄악이죠”. 퍽치기가 더 나쁜가, 강간범이 더 나쁜가, 라고 물어보자 낱말의 선택이 다를 뿐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나이차를 무색하게 하는 친밀감은 그렇게 비슷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낯가리기로 유명한 양동근이 인터뷰 도중 웃음을 띠는 것은 정진영이 말을 건넸을 때이거나, 정진영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뿐이다. “형님은 주먹내세요. 저는 가위낼게요.” 포즈를 취하며 던지는 썰렁한 농담 한마디에도 정진영은 허허 웃으며 시키는 대로 한다. “내가 형 좋아하는 거 알죠?”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형사 방제수의 모습, 허허실실 눙치며 동생을 이끄는 형사 오영달의 모습 그대로이다. 두 사람은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서로를 설명하는 것에 더 능숙하다. 그래서 양동근을 알기 위해서는 정진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정진영을 알기 위해서는 양동근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말들은 결코 의례적인 겉치레가 아니다. 정진영이 말한다. “연기 무지하게 잘하고, 에너지를 갖고 있는, 한마디로 뜨거운 청년이죠.” 그만의 진솔한 표현이다. 양동근이 말한다. “정의로우세요. 여러 방면으로, 전체적으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을 꺼낸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진짜라는 얘기다. 비맞으며 들어온 두 형사들, 잠복근무 중에 대화하는 낮은 톤으로 서로를 감싸안았다. 투명한 남자 집요한 연기 정진영은 시나리오를 읽어보기도 전에 영화의 출연을 결정했다. 김유진 감독에 대한 철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김유진 감독에 대해 “<약속>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해준” 분이고,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뵈며 여러 가지를 많이 배우는, 배울 게 많은 어른”이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우리 오야지”라고 부른다. “오야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일본말이긴 하지만, 그 말 안에는 신뢰와 존경이 있는 거죠”라고 단호하게 밝힌다. 그래서 “형사 얘기다” 한마디만 듣고 “예”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믿고 따라가면 돼요. 그리고 따라가는 게 옳아요. 또 따라가면 옳게 돼요”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면 갖기 힘든 생각”이라고 정확하게 덧붙인다.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와일드카드>는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영화의 매력은 그거죠. 어렵다는 내색 안 하는 거, 각을 잡거나 포즈를 취하지 않는 거.”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 오영달을 연기하기 위해 정진영은 절에 들어가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그저 “집중할 장소를 선택”한 것뿐이라고 공치사를 마다하지만, 거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나는 현장에서 갑자기 드는 생각을 신뢰하지 않아요. 영화라는 게 앞뒤가 다 맞아야 하는 건데 즉흥적으로 하는 건 잘 못 믿겠어요. 그러니까 그 전에 공부하는 수밖에 없죠.” 자신을 가리켜 “현장에서 갑자기 하자면 잘 못하는, 순발력이 떨어지는 배우”라고 낮추어서 표현했지만, 그건 그에게 흠이 되지 않는다. <약속>에서 시작된 배우 정진영에 관한 신뢰도는 점점 더 폭을 넓혀간다. “진정성 있는 영화, 소재와 무관하게 코미디건 뭐건 꼴이 투명한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는 문제에 부딪히면 해결을 해야 하는 성격이다. 또는 그 전에 지뢰들을 미리 제거한다. 영화의 한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자, 사진을 찍고 한참 뒤 다시 다가와서 먼저 말을 꺼낸다. “근데 아까 말한 거 있잖아요….” 그런 집요함이 배우 정진영의 힘이다. 한없이 스트레이트한 양동근은 결코 신발에 발을 맞추지 않는다. 연기에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한 자리에 있는 낯선 자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아니, 양동근처럼 돌리지 말고 표현하자. ‘기분 정말 더럽다.’ 하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에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아니라고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위장을 하고, 웃음을 흘린다. 그런데 양동근은 웃음 대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터뷰 너무 많이 잡으니까 싫죠.” “할말이 없어서요.” “그런 거 없었는데요.” “그게 무슨 의미냐, 무슨 뜻이냐 돌려서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난처한 대답이지만, 친구가 되어 마주한다면 들을수록 솔직한 말들일 것이다. 그 솔직함은 형사 방제수의 행동처럼 간결하다. 그에게 긴 말은 거짓이다. 그래서 양동근에게 20자 넘는 대답을 얻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는 것처럼 어렵다. “양동근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아무 생각이 없는 애. 그냥 하는 애. 근데 얘는 묻는 대로만 대답해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물어봐야 돼요.” 정진영이 일러준 힌트. 말하자면 그가 요구하고 지키는 원칙은 솔직함 더하기 정확함 더하기 열정이다. 짧게 표현하지만 정확함을 전제하고, 정확하지만 뜨겁다. 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양동근은 형사 방제수를 “멋있어요”, 한마디로 표현한다. 형사 방제수의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냐고? 이건 코웃음칠 질문이다. “시나리오를 참조했죠.” 그는 분석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대로 하면 정확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동물적 본능’ 운운하는 거창한 말을 그는 “그냥, 그저”로 바꿔 말한다. “어떻게 같은 신을 두 가지 기분으로 찍어요. 몰입이요? 배우가 다 몰입하죠. 어떻게 몰입하냐, 그런 거 웃긴 거 아니에요?” 그렇게 양동근은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웃을 때는 천진난만해 보이고, 말할 때는 돌덩이 같지만, 연기할 때는 그 누구와도 견줄 만한 에너지로 넘치는 ‘프로’이다. 텔레비전 시트콤에서 <수취인불명> <해적, 디스코왕 되다> <와일드카드>에 이르기까지 그는 재미없어하며 일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음악과 연기는 “병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있고 성격이 다른” 것일 뿐이다. 때문에 그 즐거움은 에너지가 되고, 캐릭터가 되어 그의 배우로서의 긴 생명력을 예감하게 한다. 자유의 촉수를 뻗어 연기하는 날것 그대로의 몸짓, 그것이 배우 양동근의 힘이다.

혼란스럽지만,영리하고 보편적인 <어댑테이션>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쓰고 스파이크 존즈가 연출한 <존 말코비치 되기>는 코믹하면서도 머리를 쥐어짜게 만드는 이야기를 가지고, 추리를 즐기는 관객의 두뇌회전을 자극한 바 있다. 같은 팀이 만들어낸 대단히 영리한 후속작 <어댑테이션>은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어떤 기대를 받고 있는지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웬만한 관객의 두뇌게임 도전은 간단히 물리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잘 짜여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어댑테이션>의 각본작업에 빠져들게 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탁월하다. “내 머릿속에 독창적인 생각이라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작가 찰리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대뜸 묻는다. 이렇듯 <어댑테이션>의 많은 부분은 관객을 카우프만의 신경증적 의식의 흐름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불안 때문에 어찌나 호들갑을 떨며 안절부절 늘 떠들어대는지 심지어는 우디 앨런조차도 그와 비교하면 경건한 보살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어떤 작은 대목도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찰리의 정체성 혼란은 무려 40억년 전 지구 첫 생물 출현 시기로 플래시백했다가 이 작가의 탄생과 함께 다시 현재로 돌아와 스튜디오 이사(틸다 스윈턴)와의 오찬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희귀화초와 희귀화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해 수잔 올린이 쓴 기나긴 보고서 <난초도둑> 각색작업을 그에게 맡아달라고 한다. 찰리는 이 일을 맡지 않기 위해 갖은 수를 다 동원하지만 결국 작업은 그에게 떨어진다. 타자기 앞에 앉은 찰리의 고통은, 수잔 올린(메릴 스트립이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은 얼마나 쉽게 보고서를 썼을까 하는 상상 때문에 더욱 커진다. 이쯤에서 카우프만은 자신의 모든 이야기 재주를 한데 끌어모은다. 찰리가 미친 듯이 일감을 매만져감에 따라 <어댑테이션>은 점점 조프 다이어의 97년작 와 닮아간다. D. H. 로렌스에 관한 연구라고 추정되지만, 정작 내용은 그런 연구보고서를 쓸 능력이 안 된다는 다이어의 이런저런 고백과 푸념으로 가득한 그 작품 말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의 울림도 담겨있다. 비록 찰리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라는 고뇌에 찬 거장과는 그 명성에서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수잔 올린의 작가 사진과 텔레파시적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겪고 있는 패닉과 자기혐오 외에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황당할 정도의 상호텍스트성(mad intertextuality), 시간을 마구 뛰어 넘나드는 진행, 온통 평행적으로 병치된 액션 등에도 불구하고 <어댑테이션>은 전적으로 문학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테크닉이 지나치게 번지르르한 것도 아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가 영화연기에 관한 영화였음을 상기해본다면, 존즈가 배우들을 장악하고 연기를 이끌어내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크리스 쿠퍼가 연기하는 존 라로시는 카리스마 넘치게도 앞니 하나가 빠진 모습으로 떠버리 천재를 열연하며, 스트립은 맨해튼의 디너파티 접대를 맡은 단 한 장면만으로도 오스카 조연상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케이지는 찰리 역할뿐 아니라 그의 쌍둥이 동생 도널드까지 맡아 연기하면서 오스카에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선다. 형의 경멸을 받는 도널드는 찰리가 보기에, 온갖 잡스럽고 어리석은 아이디어의 쓰레기통임에도 불구하고 첫 작품인 라는 다중인격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스릴러를 어마어마한 값에 간단히 팔아치울 뿐 아니라 여자를 낚는 데도 재능을 발휘한다. 이쯤에서, <어댑테이션>은 몇 가지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는 비록 긍정적인 도널드 카우프만의 손을 들어주고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버젓이 소개하기까지 하지만, 도널드 카우프만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변화해야 하며 그 변화는 반드시 그들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말을 카우프만은 거만스럽게 받아들여 양면적으로 활용한다. 과 마찬가지로, <어댑테이션>은 자신의 꼬리마저 즐거이 삼켜버리는 영화다. 액션이 일단 도널드의 각본을 따라 움직이지 시작하면, 우리는 갑자기 사이버포르노와 이국적 마약과 자동차추격전과 간통과 살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버린다. 어쩌면, 브로마이드를 들어 보이며 해피엔딩을 주장하는 끝대목이야말로 내러티브의 습지에서 피어난 한 떨기 난초일지 모른다. 창의성이란 면에서 전혀 지칠 줄 모르긴 하지만, <어댑테이션>은 조금 사람을 피로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어댑테이션>이라는 이 영화 제목은 이 작품이 올린의 책을 가지고 각본을 쓰는 데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린 극임을 가리킨다기보다, 노골적으로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생명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 진화할 수 있는지에 관한 반복악절이라고 보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옳을 것 같다(즉, 여기서 ‘어댑테이션’이란 ‘각색’이 아니라 ‘적응’을 뜻한다는 말 - 역자). 다시 말해, 할리우드에서 이루어지는 창조과정에 대한 풍자를 담은 이 이야기가 보편적인, 최소한 20세기적인, 다시 말해 당신의, 나의, 그리고 영화들의 최고의 요구들을 다 담고 있다는 뜻이다.

<솔라리스>, 원작과는 색다른 소더버그와 카메론의 색깔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는 장점이 많고 매력도 많으며 하는 말도 많은 소설이었지만,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고딕 로맨스적 요소였다. 한마디로 렘의 <솔라리스>는 유령 이야기였다. 유령 이야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순수한 공포물로 이런 이야기에서 유령은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다. 다른 하나는 로맨스로 이 이야기에서 유령은 허망한 두 번째 기회이거나 맺어질 수 없는 운명의 상대이다. 이야기에 따라 둘은 종종 중복되지만 그렇다고 이 두 요소의 성격이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솔라리스>로 돌아가보자. 이 소설의 기본 스토리는 무엇인가? 아내를 잃은 심리학자가 아내의 유령과 재회해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기본 유령 이야기와 다른 점은, 이 이야기의 무대가 솔라리스라는 행성의 스테이션 안이고, 아내는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가 남편의 기억에 남은 아내의 상을 이용해 창조한 뉴트리노 유기체라는 것이다. 설정 자체만 해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철철 흐른다. 주인공 크리스 켈빈에게는 19세기 유럽 고딕소설 주인공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음울한 자괴감과 상실의 고통이 가득 하다. 그의 뉴트리노 유령 아내인 하리는 그녀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처럼 허망하면서도 꿈결처럼 아름답다. 실제로 그녀는 말 그대로 켈빈의 꿈이기도 하다.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가 자료로 삼은 건 바로 켈빈의 기억과 욕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렘은 연애 이야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진지한 SF작가였다. 하리의 유령과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는 그에게 사유의 질료였다. 의식있는 외계의 존재와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 만약 그들과 의사소통이 불가하다면 그들의 의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크리스 켈빈과 하리의 로맨스는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었지만 좀더 거대한 비전을 제공하기 위한 창문이었다. 로맨스 요소를 최대한 살리다 그러나 여기엔 하나의 소박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로맨스 자체가 훌륭하다면 왜 그것만 집중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가? 그렇게 다룬다고 해도 원작의 아이디어에 깃든 철학적 사유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단지 집중하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이미 걸작이라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도 렘의 원작에 그렇게까지 충실한 영화는 아니지 않나? 스티븐 소더버그와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솔라리스>는 바로 그 시도를 했다. 보기보다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거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겠다. 이건 제작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마케팅의 문제이다. 마케팅 담당자에게 러브스토리와 SF는 섞이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 연애담과 섹스를 첨가할 수 있지만 순수한 러브스토리만으로 SF를 채울 수는 없다. 액션과 특수효과와 같은 ‘남성적’인 것이 추가되어야 한다. <솔라리스>의 마케팅 담당팀은 좀 바보 같은 짓을 했는데, 그건 장르를 속이는 것이었다. 아니, 장르를 속이는 것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아주 서툴게 해치웠다. <솔라리스>의 멜로드라마 예고편은 바로 그들의 기만의 희생자였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SF적인 비주얼을 제거하고 영화를 로맨스로 분류해 광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트릭에 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예고편은 아주 억지스러운 로맨스영화의 예고편이 돼버렸다. 마치 <총알 탄 사나이 3과 1/3>을 위해 만든 가짜 로맨스 예고편처럼 말이다. 왜 그들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최근 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성 SF/판타지팬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몇몇 작품들에서는 남성 팬들의 수를 능가한다. 아마 <버피>에서 여성팬들을 제거한다면 그 시리즈는 처음부터 허물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다루어도 문제가 될 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소더버그와 카메론은 <솔라리스>를 어떻게 각색했을까? 그들은 두 가지 접근법을 택했다. 원작에서 로맨스의 요소를 최대한으로 뽑아내고 어떻게든 유명한 타르코프스키 영화와 스타일과 내용면에서 차별화를 주기로 한 것이다. 덤으로 뉴트리노를 힉스장과 힉스입자로 고치는 식의 업그레이드를 하기도 했고. 타르코프스키 영화와의 차별화는 눈에 쉽게 들어온다. 그건 거의 공인된 걸작에 대한 치기 가득한 도전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길고 장황하며 묵직하다. 하지만 소더버그의 영화는 짧고 간결하고 빠르며 상대적으로 가볍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60, 70년대 유럽 멜로드라마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그건 쓸쓸하고 정갈한 가을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고(이 영화의 지구에서는 늘 비가 내리고 있다) 연애의 주인공들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교육받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솔라리스>의 러브스토리는 감정보다는 그런 감정을 끌어내는 상황의 독특함에 의지하고 있다. 아무리 순수한 러브스토리를 만들려고 애를 써도 이야기의 성격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바뀐 것은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느냐이다. 원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소더버그/카메론의 <솔라리스> 전체를 지탱하는 것은 로맨스의 불합리한 논리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 둘이 살아 있는 동안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둘 중 하나가 죽으면서 시작된다. 구식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과 상대방이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믿음이다. 죽음은 이 믿음에 심각한 상처를 낸다. 만약 로맨스의 논리가 강요하는 근거를 받아들인다면 논리적인 해결책은 자살이다. 자살로 끝나는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수많은 로맨스 소설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런 논리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길 만큼 용감하지 않으며 우리가 무시하기엔 삶의 욕망이 너무 강하다. 여기엔 이타성을 위장한 로맨스의 이기성이라는 또 하나의 심각한 아이러니가 끼어든다. 한번 생각해보자. 논리적으로 로맨스의 대상과 일체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SF세계인데 텔레파시가 있지 않느냐고?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무리 기를 써봐야 어쩔 수 없는 타자인 상대방과 접촉하고 이해하고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감각과 이성을 동원하는 것뿐이고, 그 결과 우리가 얻는 것은 우리 머릿속에 저장되는 감각적 정보들과 행동 패턴에 대한 기억뿐이다. 복제의 아이디어를 확대 과장 크리스 켈빈은 어정쩡한 생존자다. 그는 아내가 죽었다고 따라죽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상실감과 죄의식이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아마 그는 그걸 그대로 잊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의 고통은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하며 소유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솔라리스에서 아내의 유령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함정이 두개 숨어 있다. 함정 하나. 그가 솔라리스에서 마주친 아내 레아는 진짜 아내가 아니라 아내의 복제물이다(렘의 소설이나 두 영화는 모두 기겁한 켈빈이 첫 번째 아내의 복제물을 우주선으로 쏘아버리는 에피소드를 첨가해 이 복제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만약 레아가 살아 있고 그가 레아의 복제물과 사랑에 빠진다면 그건 불륜일 것이다. 그렇다면 레아가 죽었다고 해서 레아의 복제물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죽은 아내에 대한 배반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있을까? 함정 둘. 이건 진짜 흥미롭다. 레아는 진짜 레아의 복제물이 아니라 켈빈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레아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론상 가짜 레아는 진짜 레아보다 더 진짜같다. 크리스 켈빈은 끝끝내 아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어느 누구도 타자를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레아의 이미지는 그의 갈망과 기억이 뒤섞여 만들어낸 그 자신의 창조물로, 실제 레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솔라리스의 가짜 레아는 그가 잃고 괴로워하던 대상과 더 가깝다. 솔라리스의 가짜 레아에 대한 켈빈의 사랑은 순수하고 격렬하고 로맨틱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위의 두 함정을 번갈아 검토해본다면 로맨틱한 사랑 자체가 자위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 하는 로맨틱한 감정이 극도에 도달할수록 로맨스 자체는 오히려 자기 속에 함몰하고 만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흠…. 거의 하드 SF적인 상상으로 이어가는 원작과 러시아풍의 우울함으로 가득한 타르코프스키 영화와 달리 소더버그와 카메론의 <솔라리스>는 별다른 장식없이 이 딜레마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편이다. 원작과 첫 번째 영화와 달리 이들의 <솔라리스>는 복제의 아이디어를 확대 과장하는데, 결과적으로 영화는 사랑의 주체와 대상의 관계라는 로맨스의 기본 구조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런 접근법은 결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영화 후반부에서 크리스 켈빈은 지구로 돌아오고 아파트에서 자신이 진짜 자신이 아니라 솔라리스의 방문객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앞에 살아 있는 레아가 나타난다. 이 결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지구로 돌아간 건 켈빈의 복제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모든 건 솔라리스에 남은 켈빈의 복제물이 겪는 환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들 모두가 솔라리스의 바다에서 구축된 환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느 게 진실이냐가 아니라 그 결말의 내용이다. 어느 게 진실이건 영화는 진정 효과를 가지고 있다. 결국 크리스 켈빈은 그의 아내 레아를 만나고 두 번째 기회를 얻으며 그들의 사랑은 영원하다. 영화가 거의 강요하다시피 인용해대는 딜런 토머스의 의 다음 구절을 한번 들여다볼까? “Though Lovers be lost love shall not.” 어디에선가에서 사랑이 영원하다는데,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필멸의 연인들이 어디 있는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프로그래머 서동진,오키 히로유키 감독을 만나다

나는 나의 관객이 새로운 감각을 느끼길 바란다. 일본 퀴어영화 감독 오키 히로유키가 특별전을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 오키 히로유키를 초청한 이번 특별전의 프로그래머 서동진씨가 대담자로 나섰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정식으로 소개된 바가 없지만, 오키 히로유키는 일본 퀴어영화 진영의 중심에 서 있는 감독이다. 1990년 이미지 포럼 영화제에서 <수영금지>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오키 히로유키는 야마가타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일본을 대표하는 실험영화 감독으로서 많은 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대표작으로는 <천국의 여섯개의 상자> <네가 좋아, 네가 너무 좋아> 등이 있다. 오키 히로유키와 서동진씨는 공간, 몸, 기억을 통과하며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일본 퀴어영화의 자유로운 실험가 오키 히로유키를 소개한다. # 공간 서동진(이하 서) |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데, 삶은 이야기인가? 감각인가? 말하자면 당신은 건축학을 전공했다. 나는 당신의 영화를 보면서 이미지를 건축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당신의 영화에서 늘 느끼는 것은 공간의 문제이다. 그런데 당신의 영화에서 상정하는 공간은 물리적이고 서구적인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인 것 같다. 당신에게 공간이란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하다. 오키 히로유키(이하 오키) | 일단 공간은 사람이 사는 장소다. 우주도 공간이다. 그것이 전제가 된다. 공간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공간 없이는 호흡도 할 수 없다. 반드시 공간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 | 그럼 당신이 건축학에서 배운 공간과 인간의 체험이 깃들어 있는 공간은 어떤 차이인가. 오키 | 예를 들면 건축을 디자인하는 등의 문제는 나의 관심이 아니다. 건축의 공간이란 바로 라이프이다. 지금 우리가 차를 마시고 있는 이곳도 디자이너와 목수가 만든 공간이지만, 그 사람이 만든 공간에 우리가 있다는 건 의미가 다른 것이다. 여기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건축가가 만든 공간과 다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그 체험적인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 | 내가 알고 있기에 공간은 행위와 사건의 배경이다. 그런데 당신의 영화에서는 그 공간이 모두와 결합되어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공간에 대한 체험이 오키 감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오키 | 한자로 공간은 사이 간자를 쓴다. 바로 그 사이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카메라가 있고 대상이 있으면 그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데, 그 사이에는 거리뿐만 아니라 사이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회화로는 보여주기 힘든 점이다. 서 | 내가 보아왔던 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는 단순하게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풍부한 감각으로 이루어진 장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장소에 대한 감각성이 당신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오키 | 반복되는 부분인데, 공간이란 카메라 대 사람이 아니다. 카메라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이는 관계도 아니고 거리도 아니다. 컷과 컷 사이에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그 사이를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점을 은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나의 목적이다. 현대사회는 그 자체가 영화적이다.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서 | 카메라와 대상 사이의 거리도 있고, 컷과 컷 사이의 거리도 있다. 우리는 카메라와 대상 사이를 공간이라 부르고, 컷과 컷 사이를 시간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 둘을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오키 | 공간이 있으면 언제나 시간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걸 나누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공간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몸이기도 하고, 목소리이기도 하다.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살아 있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 몸 서 | 우리가 알고 있는 카메라는 눈, 즉 원근법으로서의 눈이다. 하지만 당신의 카메라는 항상 몸이다. 멀고 가까움을 재는 도구가 아닌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독특한 기계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카메라가 항상 몸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키 | 카메라는 손이기도 하고, 물리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품한 에 그런 경향이 있다. 카메라를 통해 본다는 건 종교이기도 하고, 페티시즘이기도 한 것이다. 설명하기는 좀 곤란한데.. 그러니까 카메라 자체는 제국주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바로 이 공간에 카메라를 대면 공간은 변해버리는 것이다. 카메라는 그 변형을 담아내는 것이다. 서 | 당신의 영화에서 많은 소년들이 고정된 채 비쳐진다. 그런데 그것은 초상이 아니라 마치 카메라로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미 당신의 카메라와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많은 영화들은 우리가 성행위라고 표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당신은 성행위를 통해서 드러날 수 없는 몸의 성질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점이 오키의 영화가 갖고 있는 섹슈얼리티에 관한 아주 중요한 영화적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키 | 여기 그림이 있다고 치자. 그 그림에 성행위 장면이 그려져 있다고 하자. 성행위 자체가 그려져 있다고 해도 본질적인 섹슈얼리티의 의미와는 다르다. 이야기 전달상의 섹슈얼리티도 있겠지만, 나는 카메라와 대상이 성행위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페티시즘이라는 말을 아까 했는데, 이건 바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카메라를 보며 흥분을 느끼는 걸 변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극단적인 표현이 영화가 갖고 있는 복잡성, 또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거지만 사실 그건 텔레비전에 의해서 우리가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인 새로운 모럴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성희롱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서 | 많은 서구의 게이영화들은 동성애를 정상화시키려 하고 있다. 정상적인 욕망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서구영화의 경향이다. 그런데 당신은 영화에서 새로운 윤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 서구의 급진적인 지식인, 푸코 같은 사람들은 마이너리티 사회에서 윤리성을 찾으려고 했다. 당신은 관습적인 퀴어영화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퀴어영화란 무엇인가. 오키 | 퀴어가 반드시 섹슈얼리티의 문제만을 다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양사회에 비교하면 일본도 마이너리티이다. 퀴어영화는 유니크한 점을 찾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사회적으로 위치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개인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퀴어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 | 게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정체성을 가정하고 쓰는 것이다. 퀴어라는 용어는 그 일반성과의 차이를 가정하는 것이다. 차이를 강조하는 퀴어라는 의미를 당신은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일본적인 것을 찾고 있다고도 말한다. 일본적인 것이란 언제나 국민적인 같음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엉뚱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내셔널리티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키 | 그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나의 영화는 서구의 퀴어영화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내 영화는 게이적인 요소가 있다. 나 스스로 게이이다. 또 일본인이기도 하다. 게이인가 일본인인가 묻는 것은 같은 질문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애리조나, 티베트, 오카야마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내셔널리티의 의미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고치현에 살고 있는데, 국가가 아닌 하나의 지역적 ‘풍토’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아닌 현, 그 안에는 분명한 코뮤니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 | 풍토로서의 사회라는 표현이 상당히 흥미롭다. 이건 정서적으로 결합된 사회를 가리킨다. 게이 코뮤니티는 특정한 장소에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공동체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풍토로서의 사회와 게이 아이덴티티로서의 사회는 어떤 점에서 통하고 있는가. 오키 | 섹스라는 표현이 한국에도 있는가? 성교라는 표현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잘 안 쓰는 표현이다. 왜 물어봤냐하면 성교라는 한자어는 아시아적인 말이다. 하지만 섹스는 일반화된 외래어이다. 게이라는 말도 외래어이다. 이 말이 일본에 들어온 지는 10년밖에 안 된다. 서구에서는 운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건 정상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정보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만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본질성이 바로 풍토로서의 사회다. # 기억 서 | 나는 오키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생각난다. 그 사람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소설로 썼다. 당신의 영화를 볼 때마다 정보와 이야기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감각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으로써 당신의 영화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감각을 다루는 당신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을 촉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키 | 감각은 모든 것에 통하게 마련이다. 굉장히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서 극장을 나서면 세상이 빛나 보이고, 활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내 영화에서 그런 것을 다루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이 빛나게 보인다는 건 극장의 어둠 속에서 본 영화가 이미 완결됐다는 의미이다. 내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자극을 주어서 지금까지 활동하지 않았던 세포들을 활동하게 하거나, 새로운 감각을 감지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관객에게 바라는 것이다. 내 영화를 보고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문을 계속 유지해서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 그게 내가 관객에게 바라는 바다. 서 | 내가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표현은 플래시백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화는 시간의 되돌림을 물질적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오키 감독 역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건 개인적인 기억이 아니라 마르셀 푸르스트의 소설에 나오는 기억에 가깝다. 오키: 기억이라는 건 하나의 전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의 기억은 평생 생각 안 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한다. 볼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알게 됐다고. 그건 하나의 유전자의 기억이다. 영화는 하나의 기억이고, 기록이다. 서 | 나는 당신 영화의 기억이 당신 개인의 기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촉발되는 방식은 나의 기억이다. 내가 잊고 있었던 구체적인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방식이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기억을 당신의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고쳐 읽어도 무방하겠는가? 오키 |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 스스로는 기억을 찍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을 찍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기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리 정한석 기자 mapping@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