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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칸에서 환대받는 이창동 장관

한국의 장편 영화가 경쟁부문에 단 1편도 초청받지 못한 올해 칸영화제에서, 빡빡한 인터뷰와 면담 일정을 보내고 자신의 작품까지 특별상영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단연 주목을 끌었다. 16일과 17일 비평가주간이 열린 미라마 극장에서 2차례 특별상영된 <오아시스>는 현지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런 환대는 이미 베니스 영화제와 파리의 시네마테크 특별상영 등을 거친 탓에 객석의 많은 사람들이 평론가나 기자보다는 일반인이었기에 특별했다. <오아시스>는 국제비평가협회가 주최하는 이 섹션에 ‘올해의 영화’로 초청됐다. 작품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뜨겁다. 이 영화를 수입해 일본과 프랑스에서 가을쯤 개봉할 예정인 ‘시네콰논’과 ‘레 그랑 필름 클라식’은 칸 현지에서 이 장관과 작품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또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그리스 등에도 영화판매가 확정됐다. 이 장관은 17일에도 ‘복원 필름섹션’에 초청된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 상영에 참석해 신 감독을 직접 소개하고, 질 자콥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및 프랑스 CNC위원장과 면담한 뒤 ‘한국영화의 밤’ 행사에 참석하는 등 강행군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질 자콥 위원장에게 “내년에는 한국 장편 2편 정도는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영화외교’를 벌이기도 했다고. 행사장에서 만난 이 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부문 양허안 제출을 반대하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세계문화부장관 회의’에 곧 한국도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 시장 독점 문제에 민감한 언론들도, 스크린쿼터에 관한 이 장관의 인터뷰를 잇달아 내보내고 있다. 주간지 <텔레라마>의 기사에선 이 장관을 ‘무슈 쿼터’라 이름붙였으며, <할리우드 리포터>의 데일리 뉴스도 이 장관의 인터뷰를 실으며 “앞으로도 스크린쿼터엔 변함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을 전했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한국영화 관객이 두배로 늘면서 미국영화의 관객도 두배로 는 셈이다. 모두가 행복한 거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이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겠는가” 칸/김영희 기자, 사진 정진환 <씨네21> 기자

바르도

성경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느 날 야훼로부터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100살이 넘은 노파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다시 거두어가는 것은 또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에 순종한다. 제 손을 잡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아비에게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근데 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지요?” 아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산에 오른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높이 치켜든다. 순간 하늘에서 신의 음성이 들려와 그를 만류한다. 정말로 산 사람을 제물로 받으려 한 게 아니라, 그저 그의 믿음을 시험하려 했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 일화는 사람을 바치는 인신공희가 짐승을 바치는 희생양 제의로 바뀌는 시대의 상징인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을 제지한 야훼는 그에게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한다. 그때 아브라함의 눈에 저쪽에 있는 가시덤불에 양이 한 마리 걸려 버둥거리는 것이 들어왔다. 아브라함은 신의 명령에 따라 아들 대신 그 양을 제단에 바치게 된다. 물론 이 일화에서는 이삭이 아비에게 양이 어디 있냐고 묻지만, 그것은 인간 대신 짐승을 바치는 것이 널리 관행이 된 이후에 그 이야기에 첨가된 요소일 게다. 인류 문화의 특정단계에서 인간은 신에게 사람을 바치는 대신 짐승을 바치게 되었고, 그 희생양 제의 자체는 나름대로는 ‘문명화’의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신의 제단에 산 짐승을 바치는 관습은 사라졌다. 세계의 대부분은 이미 서구적 문명화의 세례를 받아, 어떤 종교집단에서 산 짐승을 죽이는 의식을 한다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되었다는 서구의 일각에도 부분적으로나마 희생양 제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몇년 전에 독일의 텔레비전에서 게르만 민속종교의 맥을 이으려는 사람들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칼로 산 닭의 모가지를 치니, 놀랍게도 목이 달아난 닭이 여전히 두발로 퍼득거리며 걸어다닌다. 대부분 우익단체의 회원인 이들은 독일 정신의 근원을 찾아 게르만족의 민족전통을 되살리려 그런 종교의식을 행한다고 했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일군의 이라크인들이 칼로 산양(羊)의 멱을 따는 장면을 보았다. 하얀 털을 적시며 흘러나오는 검붉은 피는 솔직히 끔찍하게 여겨졌다. 이른바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는 사회의 눈에는 이런 잔혹한 관행이 야만적으로 비칠 수 있다. ‘문명화’의 본질 중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잔혹함의 현시를 금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나 알량한 일인가? 그 문명화된 사회라고 양들로 하여금 수명대로 다 살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내가 유학 시절 학생식당에서 받아먹던 사료(?)에는 분명히 양고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로 보아 그들 역시 양을 도축함에 틀림없다. 다만 그 도살장면을 공개하지 않는 것뿐이리라. 그들은 이것을 ‘문명화’라 부른다. 우리 개고기 문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불여우(佛女優) 바르도 여사가 우연히 이것을 본 모양이다. 이 사실을 들어 그는 이슬람교도들이 무슨 야만인이나 되는 양 몰아붙였다고 한다. 물론 개를 도축하거나, 양을 공개적으로 살해하는 것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동물애호가들의 경우에는 이런 관습에 윤리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여, 그 사랑을 생명이 가진 모든 것에 확장하려다 보니 그런 문제제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브리지트 바르도 여사는? 과연 그가 이런 사람들 축에 속하는가? 그럴 리 없다. 이제 자랑할 거라고는 피부색밖에 안 남은 이 정신나간 여인의 각별한 동물사랑은 지독한 인간혐오를 위한 변명일 뿐이다. 언젠가 터키와 이라크에서 핍박을 받던 어느 쿠르드족이 서방 기자들에게 울부짖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들이 개에게 보여주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우리에게 보여달라.” 바르도 여사를 보면, 산정의 별장에서 사랑하는 개와 다정하게 노닐던 히틀러가 생각난다. 그 지극한 개 사랑의 10분의 1만이라도 유대인에게 나눠줬다면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없었을 게다. 어쨌든 툭하면 인종주의 발언을 하여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극우파 바르도 여사께서는, 내가 정보를 드렸으니, 당신 사상의 원조인 게르만 용사들이 독일에서 행하는 그 끔찍한 닭 살해의 관행에 대해서도 독설을 퍼부어주시기 바란다. 피부색 같다고 봐주지 말고….진중권/ 문화평론가

뉴스의 폐허 위에서 피는 웃음꽃,<개그콘서트>의 <9시 언저리 뉴스>

KBS2 <개그콘서트> 매주 일요일 밤 8시50분 KBS 뉴스9 2003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좋은 뉴스는? MBC의 도, KBS의 <아침뉴스>도, SBS의 <나이트라인>도 아니다. 줄곧 시청률 30%의 언저리를 맴도는 <개그콘서트>의 다. <…언저리 뉴스>의 웃음 코드 속에는 이 나라 뉴스 프로그램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이 들어 있다. <…언저리 뉴스>의 인기는 뉴스 위기 시대의 반영이다. 정보 홍수시대의 텔레비전 뉴스는 속보성은 떨어지고, 심층분석에도 실패하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척 떠들어도 상당수 시청자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뉴스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뉴스들은 수박 겉핥기식 현상전달, 찬반양론의 기계적인 나열, 교훈 섞인 마무리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구조를 고수해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든다. 게다가 시청자들은 첫마디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가에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지를 대충 짐작하는 ‘빠꼼이’들이다. 뉴스 생산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마지막 한마디까지 긴장하고 들어야 하는 ‘충격적인’ 뉴스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언저리 뉴스>의 인기비결은 도통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뉴스 프로그램의 무미건조함이다. 근엄한 ‘아버지의 얼굴’을 한 대한민국의 뉴스 프로그램들은 한없이 심각한 척하고 끊임없이 나무라고 싶어한다. 사소한 문제도 부풀리는 침소봉대, 닳고 닳은 소재도 새롭게 우려먹는 뻔뻔스러움, 잔뜩 힘을 준 지루한 어투는 뉴스 시청자들의 인내를 실험한다. 뉴스가 끝나면 우리는 시대를 개탄하고, “내 탓이오”를 되뇌이며 은근히 주눅든다. 이에 비하면 개그 아나운서 김지선과 장웅이 실없는 말장난 끝에 겸연쩍어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언저리 뉴스는 최소한 폭력적이지는 않다. 게다가 실없는 미소까지 머금게 한다. 어차피 ‘알맹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뉴스가 근엄할수록 <…언저리 뉴스>의 반전은 유쾌해진다. 뜯어볼수록 <…언저리 뉴스>의 구조는 실제 뉴스와 닮아 있다. 심각한 첫머리와 허탈한 마무리. 수미상관의 구조는 ‘대한 늬우스’ 이래로 이 나라 뉴스가 초지일관 견지해온 유구한 전통다. <…언저리 뉴스>는 단지 이 전통적인 코드를 살짝 뒤어 허탈한 설교 대신 애교 섞인 반전으로 마무리한다. 이미 뉴스의 ‘허무 코드’를 입력하고 있는 시청자들은 김지선, 장웅의 맥빠진 한마디에 알아서 웃음보가 터져나온다. 실없이 스며나오는 웃음 사이로 자못 심각한 뉴스 진행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여러분 이럴 수 있습니까. 이젠 정말 철저히 알고 드셔야겠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설치돼 있는 자판기 커피가… 맛있습니다.” 자판기 커피에 대장균이 우글거린다는 뻔한 고발은 자판기가 생긴 이래로 반복돼 왔다. 숱한 카메라 고발도, 밀착 취재도 세상을 살균하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대장균이 우글거리는 자판기 커피를 즐기고 있다. 차라리 ‘맛있다’는 경험이 훨씬 진실에 가깝다. “다음은 가슴 훈훈한 소식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떡볶이 장사를 해서 30억을 모은 할머니가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서울대 총장실을 찾아가… 자랑했답니다. 30억인데∼ 30억인데∼.” 뻔한 고발에 이어지는 지겨운 미담.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서 할머니의 “30억인데”는 솔직하다, 통쾌하다. 가슴이 후련하다 못해 훈훈해지기까지 한다. 어차피 뉴스의 ‘진심’이 의심 받는 시대이므로. <…언저리 뉴스>는 각종 패러디를 양산하며 진실은커녕 사실마저 왜곡하는 뉴스에 대한 비판 코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이 활발하던 무렵에 유행했던 가 그 사례다. “드디어 이라크 군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동맹군의 용맹과 화력에 무력화된 이라크 남부 지역의 사단장과 부하 8천여명이 집단으로… 무너진 채 흩어져 싸우고 있습니다. 용감하게. 아… 무서버라.”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는 덧붙여졌다. 의도를 가진 뉴스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언저리 뉴스>들이 양산될 것이다. <…언저리 뉴스>는 뉴스의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서 피는 웃음꽃이다. 뉴스여, 제발 목에 힘빼고, 어깨에 뽕빼라. 고리타분한 설교를 집어치우지 않는 한 그대들의 시청률은 <…언저리 뉴스>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할 테니. 참, 제목만 훑어봐도 8할은 짐작 가는 신문의 위기는? 이미 <딴지일보>가 ‘똥꼬 깊수키’ 가르쳐주지 않았는가.신윤동욱/ <한겨레> 왜냐면 담당 기자 syuk@hani.co.kr

칸의 두 감독, 폰 트리에와 반 산트

미국 겨눈 <도그빌>·<엘리펀트>, 심드렁했던 '칸'의 선택은‥ 21일(현지시각) 까지 경쟁작 20편 가운데 15편의 봉인이 뜯기면서 다소 심드렁했던 56회 칸 국제영화제의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칸 경쟁부문에만 5번째 초청된 60대의 거장 라울 루이즈는 미래의 스위스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코믹 살인극을 마술적 리얼리즘의 터치로 그린 <그 날>을 들고와 ‘영원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유쾌하게 증명했고, <욜> 이후 12년 만에 칸에 초청된 터키 영화 <우작>(누리 빌게 세일런)은 관조하듯이 그려낸 깊은 삶의 성찰로 현지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로드무비에 포르노그래픽을 방불케 하는 절망적인 사랑을 그린 빈센트 갈로의 <브라운 버니>는 찬반이 분명하게 갈렸고 따뜻한 성장영화를 들고 온 구로사와 기요시(<밝은 미래>)는 아시아 기자들에 비해 서구 기자들의 반응이 썰렁했다. 앙드레 테시네, 푸비 아바티, 헥토르 바벤코 등 유명작가들의 신작은 평이한 대중영화에 그쳤다. 하지만 뭐라해도 중반이후 칸을 흥분시킨 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사진)와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이다. 아직 클린트 이스트우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등의 작품이 남아있긴 하지만 몹시도 논쟁적인 주제를 완전히 새로운 영화형식으로 다룬 이 두 작품은 현재까지 현지 평론가들의 가장 높은 평균점수를 받으며 적어도 하나씩 상을 가져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 두 작품은 모두 '미국'에 관한 이야기다. 칸/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 정진환 <씨네21> 기자 jungjh@hani.co.kr ★'엘리펀트' 구스 반 산트 감독 "시처럼 푼 콜럼바인" 고백하자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던 기자는 마지막 1/4부터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칸에 온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콜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을 빚은 미국사회를 '확대경'으로 펼쳐놓았다면, 한 편의 시 같은 반 산트의 영화는 같은 소재로 그 대척점에 섰다. 고교생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해 16mm 영화 포맷인 1.33대 1로 찍은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3/4을 어느 가을날, 한 고교 학생들의 잔잔한 생활을 보여주는 데 바친다. 존은 차 열쇠를 학교사무실에 맡겨놓고, 엘리아스는 연인들의 사진을 찍고, 축구를 마친 네이트는 여자친구 캐시를 만나러 간다. 그것은 삶의 한 단면인 일상적인 하루다. 다른 인물로 넘어갈 때마다 카메라는 그 주인공의 등을 조용히, 길게 따라간다. 때로는 같은 순간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여러번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건의 원인이나 해결책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흐르며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을 잘라 보여주고 사건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앞에 나왔던 아이들이 총을 맞고 쓰러져갈 때, 이제까지 쌓여온 이미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보는 이의 감정을 폭발시켜버린다. 비극을 전달한다는 면에선 무어의 작품이 갖지 못한 미덕이다. 내용을 모르면 충격적이고 알고 보면 너무 슬픈 영화. 몇 년동안 김빠진 맥주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던 반 산트는, 혼란스런 10대들을 쓸쓸하며 애정있게 바라보던 80년대 자신의 영화의 정신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학생들 잔잔한 일상 따라다니며 혼란스런 10대 향해 애정어린 눈길 제목의 의미는? 북아일랜드의 폭력문제를 다룬 영국 앨런 클락 감독의 89년작 <엘리펀트>에서 따왔다. 클락 감독은 ‘거실 안의 코끼리’라는 서양 속담처럼 무시되기 쉽다는 뜻으로 썼다고 들었다. 내게 ‘엘리펀트’는 여러 장님들이 각자 코끼리의 귀, 다리 등 다른 부분을 만지면서 서로 이게 나무니 뱀이니 다퉜다는 인도의 옛말처럼 ‘아무도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나? 99년 사건 직후엔 범인인 두 소년에 초점맞춘 드라마를 만들려 했다. 왜 그랬고 의도는 뭐였나 하는. 물론 그때도 무어처럼 전체를 보여주기 보다는 두 소년에 집중하려는 생각이었다. 제작자를 구하러 다니며 시간이 흐르는 사이 다른 사람이 같은 소재로 쓴 <타미 건>도 나오며 생각이 더 발전했다. 보는 이마다 각자 다른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에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설명이 없다. 구체적 설명을 안 주는 게 목표였다. 관객이 의문을 갖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물론 내 나름의 콜럼바인 사건에 대한 생각이 있다. 난 그걸 설명하기 보다 시와 같은 표현으로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그는 프랑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나를 형사 콜롬보라 생각한다.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이라고도 말했다.) 범인이 되는 학생이 치던 ‘엘리제를 위하여’가 총격장면에도 나오는데? 범인역을 맡은 에릭이 우연히 피아노를 치는 걸 듣고 다음날 촬영장소에 피아노를 갖다놓아 영화에 집어넣은 거다. 이런 식이 많았다. 아주 거친 스크립트만 있고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대사로 했다. 지난해 작품 <게리>를 찍으며 난 다시 이런 방식으로 돌아왔다. ★'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나는 미국이 무섭다" 이번에는 사전정보를 가지고 들어가야지, 결심한 기자는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자료를 읽고 절망했다. 무려 2시간58분짜리(한국 등 일반개봉땐 2시간 편집본이 걸린다)인데, 이렇다할 세트도 없이 바닥에 분필로 누구집, 누구집 써놓은 스튜디오 안에서 6주동안 찍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우화였다. 프롤로그와 9장으로 나뉜 영화는 존 허트의 내레이션으로 대공황시기였던 1930년대 미국의 록키 산맥 막다른 기슭에 있었다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그빌’, 말 그대로 ‘개 마을’이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 아름다운 도망자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나타난다. 작가이자 자칭 마을의 철학자 톰(폴 베터니)은 사람들에게 그를 숨겨주자고 한다. 그레이스의 추격자들이 수배 전단을 붙이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착해 보였다. 하지만 위험인물을 숨겨준다는 의식이 번져나가며 남자건, 여자건, 아이건 변한다. 너무나 잔인하게. 목에 개목걸이가 묶인 채 밤마다 남자들의 성욕을 푸는 대상까지 된 그레이스는 죄수이자 노예다. 지옥같은 세상으로부터 이 마을로 도망쳤던 그레이스가 발견한 건 ‘개처럼 본능에 따르는’ 사람들의 똑같은 지옥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폰 트리에가 ‘미국 3부작’ 가운데 1부로 명명한 이 영화를 신랄한 미국역사에 대한 야유로 보이게 했다. 영화가 끝나면 데이빗 보위의 ‘영 아메리칸’이 흐르며 미국정부가 30년대 대공황시기에 가난한 이들을 찍어두었던 흑백사진이 겹친다. 대공황시대 '개마을'에서 벌어지는 3시간에서 2분 모자란 잔혹한 우화 어떻게 시작했나? <어둠속의 댄서>때 칸에서 미국기자들로부터 ‘미국도 한번 안 오고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드냐’는 질문을 듣고, 그래, 더해보자 생각했다. <카사블랑카>를 만들 때 미국인들이 카사블랑카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난 들어보지 못했다.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나? 브레히트의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에 복수의 내용을 담은 ‘해적 제니’라는 노래에서 처음 출발했다. 형식은 70년대 세익스피어 왕립 극단의 텔레비전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난 <킹덤>이후 기술적이며 기교적인 영화를 배제하려 했다. 세트와 소도구를 최소화한 이 영화는 관객들이 캐릭터에만 집중하도록 할 것이다. 꼭 미국의 모습이라고만 볼 순 없지 않나? 물론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얘기다. 인간에겐 선과 악이 모두 있고, 상황에 따라 그것들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것이 진짜 미국의 모습이라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난 내 머리 속에 있는 미국이란 말이다. 그 이미지는 덴마크의 텔레비전의 80% 이상을 채우는 미국의 작품이나 미국의 뉴스에서 나온 거다. 타자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자신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안티 미국 영화인가? 누군 날 공산주의라 할지 모르지만 난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심지어 미국정보에 휩싸여 사는 난 나를 미국인이라고 조금 느끼기까지 한다. 아니, 되고싶다.(웃음) 하지만 미국이 무섭다. 잘못된 정보건, 어긋난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든. 난 ‘미국 해방’ 캠페인부터 벌이고 싶다. 그건 ‘이라크 해방’ 캠페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3부작은 어떻게 진행되나? 그레이스한테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나 따라갈 것이다. <맨덜레이>와 <워싱턴>이라는 제목이다. 바로 어젯밤 키드먼에게 2, 3부의 내용을 얘기해줬는데 계속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 앞에서 확인해줘요, 니콜!

개막작 혹평 속,최고 최대 영화제 칸이 56번째 문을 열다 [2]

지난 5월 14일 페넬로페 크루즈, 뱅상 페레, 키아누 리브스, 모니카 벨루치 등을 레드 카펫에 불러모으며 시작된 칸영화제는 올해도 언제나처럼 `스펙터클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5월14일 페넬로페 크루즈, 뱅상 페레, 키아누 리브스, 모니카 벨루치 등을 레드 카펫에 불러모으며 시작된 칸영화제는 올해도 언제나처럼 ‘스펙터클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개막작 <팡팡 라 튤립>을 상영한 다음날 아침 <매트릭스2 리로디드>를 이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스펙터클의 영화에 대한 지지와 성원의 뜻을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각각 유럽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의 비전을 함께 보여준다는 의미. 그러나 이런 시도는 환영받지 못했다.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자 활극이자 러브스토리인 <팡팡 라 튤립>은 52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기도 한 크리스티앙 자크 영화의 리메이크로, 프랑스 대형 액션영화 붐을 선도한 뤽 베송이 제작하고, 그의 자랑스런 후계자 제라르 크라브지크(<택시2> <택시3> <와사비>)가 연출했다. 한동안 영어권 영화에 개막작 자리를 뺏겼던 프랑스의 자존심 회복? 결과는 그 반대다. 새로운 해석도, 새로운 형식도, 시대 정신도, 캐릭터도 없는 이 영화가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영화제의 개막작이라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뜨악해할 뿐이었다. <리베라시옹>은 “전세계의 명망있는 매체 기자들이 고군분투 끝에 칸에 왔는데 이런 영화를 개막작으로 보여주다니, 머리 숙여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다”라고 빈정대기까지 했다. 애초 많은 기대와 화제를 모았던 <매트릭스2 리로디드>에 대한 반응도 별 하나 정도로 중지가 모아지는 등 좋지 않은 편이다. 구스 반 산트의 화려한 귀환 매체의 성격과 노선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감독과 작품들을 밀어주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현지 언론의 눈길은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과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두편에 집중되고 있다. <어둠 속의 댄서>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3년 전, 라스 폰 트리에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는 그의 미국영화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도그빌>의 연극적 문학적 실험에 감복, “라스 폰 트리에의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이 기대된다”고 할 만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르몽드>도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탐구자적 정신, 영화제작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힘” 등을 높이 사고 있다. 칸과 통 인연이 없어 보였던 구스 반 산트는 마이클 무어가 다뤘던 총기난사 사건을 모델로 한 극영화 <엘리펀트>를 들고 온다. <리베라시옹>은 “시네필들에게 작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구스 반 산트의 화려한 귀환”을 크게 반기고 있다. 이 밖에 칸에 모인 기자들의 의견을 취합해보자면,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아버지와 아들>, 피터 그리너웨이의 3부작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모압 스토리>의 영상미학에도 기대가 모이고 있다. 터키의 누리 빌게 세일란, <수쥬>로 알려진 로우예 등이 다크호스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으며, <버팔로 66>의 빈센트 갈로의 신작 <브라운 버니>가 지난해 <돌이킬 수 없는>의 악명에 버금가는 스캔들로 떠오를 것이라고도 한다. 남은 열흘. 테러와 파업과 사스의 현실을 위무하는 ‘서프라이즈’를 만나게 될 것인가. 모두가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칸의 한국영화 칸에 한국영화가 없다고? 천만에 올해 칸에 한국영화가 없다는 것은 오해다. 우선 <굿나잇> <사연> <원더풀 데이> 등의 단편 셋이 비평가 주간과 감독 주간에서 상영되며,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가 회고전에서, 이창동 감독(장관)의 <오아시스>가 비평가 주간에서 상영된다. <상록수> 상영 직전엔 이창동 장관이 무대에 올라 신상옥 감독을 직접 소개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 장편영화가 공식부문에서 상영되지 않는 대신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 시장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연예주간지 <텔레라마>는 한국영화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당신이 시네필이고, 서양인이고,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한국으로 가라”고 운을 뗀 뒤, 한국영화 시장의 근황과 쿼터제에 대한 이모저모를 이야기하고 있다. <친구>에서 발화된 조폭영화 붐, 그리고 <쉬리>에서 출발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선전, ‘사도마조히즘’을 다룬 작가영화(<거짓말> <섬>)의 면면 등 지난 몇년의 한국 영화계의 경향을 되짚고, 자국 시장에서 크게 흥행한 코미디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는 등의 소식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창동 문화부 장관을 ‘미스터 쿼터’로 소개하며, 영화감독 출신인 그의 활동상에 대한 기대를 표했다. 또 같은 기사에서 올 칸영화제에서 <상록수>의 복원판을 상영하게 될 신상옥 감독에 대한 소개와 지난해 <취화선>의 영화제 수상으로 현지에서 비교적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신작 준비 상황 등을 싣고 있다. <무빙픽처스>도 칸영화제 프리뷰 특별판에서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기사를 7페이지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이 기사는 자국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은 한국영화 시장을 눈여겨보라고 제언하고 있다. 또한 한국 감독들의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프리 세일의 가능성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제와 별도로 진행되는 칸 마켓의 정보지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미로비전은 <스크린 인터내셔널>에서 펴낸 영화제 데일리의 커버를 <원더풀 데이즈>로 장식한 뒤, 마켓 프리미어를 실시했다. 이 밖에 시네클릭 아시아는 <장화, 홍련> <똥개> <올드 보이> 등 현재 제작진행 중인 작품들의 프리 세일을 준비하고 있으며, 튜브의 <튜브>, CJ의 <살인의 추억>, 강제규필름의 <블루> <몽정기> 등이 세일즈 목록에 포함돼 있다. 한편 쇼박스에선 <태극기 휘날리며>가 일본에 프리 세일됐다고 밝혔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이 사나이 순정에 반해도 되나?,<죽도록 사랑해>

좌우명 이유없이 맞지 말자. 직업 나이트클럽 영업부장. 취미 권투. 애창곡 <그집 앞>. 학력 고졸. 해병대 제대. 장래희망 나이트클럽 사장. 나이 20대 중반. MBC 주말드라마 <죽도록 사랑해>의 남자주인공 김재섭(이훈)의 프로필이다. 때는 아직 서울에도 ‘동네’가 있던 1970년대. 초등학교 친구들이 평생 지기가 되고, 이웃집과 사돈을 맺는 시절이다. 홀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대학 진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재섭은 고3 때 경찰서 피의자 대기실에서 만난 또래의 설희(장신영)를 평생 ‘죽도록 사랑한다’. 그러나 이수일의 순정보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믿는 설희는 그를 이용하고 끝끝내 내친다. 속칭 피엑스(PX) 양키 물건 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양공주 출신 언니를 보면서 자란 설희에게 사랑은 거추장스러운 사치일 뿐이다. 재섭은 오래간만에 브라운관에서 만나는 일편단심 민들레, 고전적인 남성상이다. 한국사회는 더이상 이 촌스런 남성상에 열광하지 않지만, 여전히 일군의 마니아 집단은 남아 있다. 대한민국 10%의 시청자들은 주말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정의의 주먹을 휘두르고, 친구에게 의리있고, 가족에게 기댈 언덕이 되는 이 청년에게 빠져든다. 근육질의 착한 남성(우겨서 선한 마초)은 여전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더구나 비열한 마초와 수다스런 꽃미남이 점령한 브라운관에서 선한 마초는 희귀동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재섭은 직장에서 부패척결에 앞장서는 용기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나이트클럽 부장이 돼 ‘사나이답게’ 부하 직원들의 상납금 받지 말자고 상사들을 설득하고, 클럽 무대에서 말썽의 소지가 큰 저항가요인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른 가수를 감싸준다. 그에게 나이트클럽은 일종의 지역사회운동이다. 재섭이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장시간 노동에 지친 동생 같은 여공들이 마음놓고 즐기고, 매형 같이 주눅 든 만년 과장들이 가벼운 호주머니로 스트레스를 푸는 나이트클럽을 하고 싶다”고 말할 때면 적금이라도 털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건강한 육체에 깃든 건전한 정신, 한국 근대 교과서가 권장해온 남성상이다. 주인공 커플이 곰 같은 사내와 여우 같은 여성의 대립이라면, 나머지 커플은 무능한 남성과 억척스러운 여성들의 조합이다. 우선 <죽도록 사랑해>의 여성들은 모두 커리어우먼이다. 이들은 일하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일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다. 제 몸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헤어진 재섭의 어머니는 갈빗집을 해 세 남매를 키웠고, 착하지만 무능한 아버지를 둔 재섭의 형수 광숙은 여공 출신 의류업체 사장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양공주, 술집 마담도 마다지 않는다. <죽도록 사랑해>는 한국 근대를 밀어온 힘은 여성 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남편들은 부재하거나 무능하다. 억척스러운 여성들은 돈 벌고 아침상 차리는 것도 모자라 상처받은 남성들을 보살피고 껴안는 역할까지 도맡아야 한다. 시국 사건으로 폐인이 된 재섭의 형은 아내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만년 과장인 재섭의 매형도 아내의 힘으로 세상을 근근이 버텨간다. 이처럼 <죽도록 사랑해>에서 남자들은 비틀거리고 여자들은 초지일관한다. 그러나 주인공 커플의 캐릭터만이 역전돼 있다. 재섭은 보살피고 설희는 배신한다. 사랑받는 남성들 속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재섭의 불행은 더욱 도드라진다. 비틀거리는 남성들 속에서 재섭의 묵묵한 어깨는 더욱 빛난다. 어떤 이의 말처럼 매력없는 근육덩어리였던 이훈은 재섭을 통해 비로소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 김운경은 <죽도록 사랑해>에서도 조연 캐릭터를 살리는 솜씨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엿장수 이씨(임현식)는 서민들의 해학을 능청스럽게 드러내고, 현실순응 체질인 남 과장(이문식)은 소시민의 비굴함을 가감없이 연출한다. 한편 김운경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조봉암 사건, 여공들의 노동운동, 시국사건 피해자 등 역사를 좀더 직접적으로 드라마에 끌어들인다. 역사에 대한 언급만큼 조연들의 감칠맛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웃음을 자제하는 모습은 김운경 드라마의 ‘정공법’인지도 모른다. <죽도록 사랑해>의 작가 김운경의 드라마에는 마초이즘이 흐르고 있다. 다행히 그 마초이즘은 폭력적이기보다는 귀여운 쪽에 가깝다. 정의의 주먹, 의협심에 대한 찬가는 <파랑새는 있다> <서울의 달> 등 김운경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줄기였다. 그래서 가끔씩 반성도 하게 된다. 과연 선한 마초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것인가. 사나이 순정 드라마에 열광해도 괜찮은가. 그래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드라마라고 나의 취향을 변명할 것인가. 어쨌든 죽도록 사랑하지 못하는 현실이 <죽도록 사랑해>를 사랑하게 한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3]

그러니까 그는 무섭게 생겼다. 하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 ■ 루이스 구즈만 Luis Guzman 1957년생 주요작 1993 <칼리토> 1997 <부기 나이트> 1998 <스네이크 아이> 1999 <매그놀리아> 2000 <트래픽> 2001 <몬테크리스토 백작> 2002 <웰컴 투 콜린우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배우 루이스 구즈만이 갖고 있는 별명은 ‘늑대인간’이다. 사진을 보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 것이다. 이런 생김새를 잊기란 쉽지 않다. 밤에 한적한 골목길에서 마주친다면 발이라도 얼어붙을 것이다. 감독들도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인상을 갖다 쓰자. 그래서 루이스 구즈만은 1980년대 <마이애미 바이스> <헌터> <호미사이드> 등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냉혹한 갱스터 또는 살인청부업자로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이 배우에게서 얼굴과는 딴판인 따뜻한 심성의 연기가 배어나왔다. 그 모습은 그에게 충복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1993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에서 루이스 구즈만은 노쇠한 갱단의 칼리토를 충실하게 모시는 심복 ‘파창가’를 연기했다(끝내 배신하기는 하지만). <칼리토>는 그에게 일종의 전환이었다. 그뒤 루이스 구즈만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백작을 모시는 하인의 역할을 했으며, <플루토 내쉬>에서는 에디 머피와 <칼리토>를 패러디한 관계가 되었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는 아이 같은 사장을 따라 한마디 불평도 없이 푸딩을 사러 나선다. 이제 험상궂은 얼굴의 위협은 사라지고, 배신은 익살의 행위를 덧붙여갔다. 여러 명의 돈키호테를 모시는 할리우드의 ‘산초’가 탄생한 것이다. 여전히 죄수, 마약상 등의 범죄자를 연기하지만 이제 그의 연기에는 친근함이 있다. 감독들은 그런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사랑과 슬픔의 맨하탄>에 등장한 루이스 구즈만을 일찍부터 찍어둔 폴 토머스 앤더슨은 7년 뒤에 그를 <부기 나이트>로 불러들였고, 루이스 구즈만을 향해 “마법사이자 야바위꾼이며 또 진짜 노동자”이기도 하다며 그의 다면성을 치켜세웠다. 루이스 구즈만은 연이어 <매그놀리아>에까지 출연했다. 스티븐 소더버그 역시 <영국인> <트래픽> <웰컴 투 콜린우드>로 이어가며 루이스 구즈만의 자리를 남겨두고 있다. 루이스 구즈만은 자신의 역할을 야구선수에 비유한다. “나는 전천후 플레이어를 좋아합니다. 나를 당신 팀에 넣어주기만 해봐요. 나는 2루수도 볼 거고 중견수도 볼 겁니다. 잡을 거고 또 던질 겁니다. 포지션이 뭐가 됐든 말이죠.” 이렇게 스스로를 평하는 루이스 구즈만은 대기만성형의 배우이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그러니까 그는 톰 사이즈모어 TOM SIZEMORE ■ 전쟁과 범죄를 전담한 인간적인 마초맨 1964년생 주요작 1993 <사랑의 동반자> 1994 <킬러> 1995 <스트레인지 데이즈> 1995 <히트> 1998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00 <레드 플래닛> 2002 <블랙호크다운> 이탈리아계답게 꺼칠꺼칠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덩치 좋은 배우 톰 사이즈모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작품은, <씬 레드 라인>과의 양자택일 기로에서 선택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이후 그는 <진주만>과 <블랙 호크 다운> 등 두편의 전쟁영화를 더했다. <진주만>에서는 아주 단순한 역으로 찰나 스치고 말지만, <블랙 호크 다운>에서 아군 호송 임무를 맡아 험비를 타고 무식하게 내달리는 대니 맥나이트 중령은 그에게 더이상 적격일 수 없는 역할이었다. 그 덕에 한동안은 ‘전쟁영화 전문 조연’ 같은 닉네임이, 남은 미래가 아직 밝은 배우에게 암울하기 그지없게 따라다니기도 했다. 사이즈모어는 고집스런 성격과 제멋대로 날뛰는 난폭하고 거친 아이로 10대를 보내며 “몽고메리 클리프와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를 보면서 배우가 되겠다고 꿈꿨었다”. 89년 <탈옥>으로 데뷔한 이래 얇게 다문 입술이 주는 무서운 인상과 함께 얼티밋 터프가이 혹은 아주 남성적인 조연 캐릭터로 90년대에 주목받기 시작했고, 범죄와 관련된 액션스릴러과의 영화들, 말하자면 <패신저 57>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올리버 스톤의 킬러> <스트레인지 데이즈> <히트> 등은 그의 이미지를 전형적인 악당이나 형사로 제대로 풀어낸 필모그래피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밀러 대위와 함께 얼굴도 모르는 일병 라이언을 구하러 떠나는 휴머니스트 정예요원으로 선택받기 전까지 그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에게서 좀더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면 <빅 트러블>이 있다. 이 영화에서 교도소 탈출 강도로 출연하는 그는 여전히 힘자랑깨나 하면서도 맞기도 하면서 수시로 자빠지고 바닥을 뒹군다. 심지어 검정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구멍만한 술집을 털러 쳐들어간다. 말 그대로 얼뜨기 ‘일자무식’ 캐릭터이지만 코미디 연기를 시도해보인 사이즈모어의 신선한 매력을 즐길 거라면 절대 실망스럽지 않다. 여기에 <스트레인지 데이즈>를 봤던 사람은 그가 가죽 재킷에 록밴드 보컬처럼 어깨 너머로 머리를 길러 늘어뜨린 적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질 거다.박혜명 na_mee@hani.co.kr 그러니까 그녀는 언제나 유쾌해! 그녀가 있는 세상도 언제나 유쾌해! ■ 조앤 쿠색 JOAN CUSACK 1962년 생 주요작 1988 <워킹걸> 1992 <토이즈> 1993 <아담스 패밀리 2> 1997 <인 앤 아웃> 1999 <런어웨이 브라이드> 2000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인 앤 아웃>에서 애인 하워드(케빈 클라인)와 바로 조금 전까지도 행복했던 에밀리는, 곧 결혼할 자신의 남자친구가 게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그러나 그녀는 심각해도 우리는 웃음을 터뜨린다. 드디어 결혼한다는 행복감에 젖어 있던 착하고 순진한 에밀리의 모든 미래가 한순간에 무너질 판국이지만, 그래서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쿠색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럴 수밖에. <토이즈>에서 장난감 회사 사장의 다 큰 딸이지만 여전히 철없이 노는 걸 즐거워 하는 알리시아, <런어웨이 브라이드>에서 매기(줄리아 로버츠)의 솔직하고 푼수 같은 친구 페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친구 커플이 깨질 위기를 조율하느라 애쓰는 리즈가 모두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사랑스런 여인들. 그리고 에밀리와 함께 이 모든 캐릭터는 조앤 쿠색이란 배우에게서 창조된 캐릭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유쾌하다 못해 호들갑스러운, 괴짜스럽고 터무니없는 말로 주변을 썰렁하게 만들어도 사랑스러운 그의 캐릭터들은 쿠색의 외모가 주는 인상에서부터 이미 절반 이상 결정된다. 심지어 <아담스 패밀리2>의 연쇄살인마 데비 젤린스키까지도 결국 그녀의 다른 캐릭터들과 한줄에 묶이는 굴비다. 데비는 돈많은 남자들만 골라 계획적으로 결혼한 뒤 살해하고 장례식 날 돈 갖고 튀는 끔찍한 인물. 그러나 이 요녀가 남자를 꼬시기 위해 온갖 순진과 애교를 동원하는 모습은 쿠색만의 것이다. 그의 엉뚱하고 별난 모습은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하던 시절에 Ark Theater에서 즉흥 코미디 클럽 활동을 하면서 다듬어졌다. 그는 아무리 세련된 차림에 도도한 척을 해도 분명 어디선가 한번씩은 발목을 삐끗할 것으로 여겨지고, 혀짧은 발음과 동그랗고 맑은 눈에 도톰한 입술 덕분에 소녀처럼 앳된 인상은 덤으로 얻은 셈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던 주걱턱의 외고집스러움까지도 가뿐히 소멸될 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얼굴근육에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조앤 쿠색. 그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을 멕 라이언이나 줄리아 로버츠의 작위적인 귀여움과 발랄함보다 더 믿어주고 싶어진다면 그건 거만한 스타들에 대한 괜한 질투심의 반작용이 아니라 쿠색의 매력을 충분히 깨달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박혜명 na_mee@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