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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들의 말마따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프로그램이 비단 위의 프로그램만은 아니라는 점. 아이들이 엄마 대신, 선생님 대신으로 삼고 있는 텔레비전이 이제 그 아이들의 뇌를 좀먹고 있는데, 어른들의 대응은 고작 ‘폐지하라’다. 그에 따른 대응책을 내놓길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일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더이상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로 더 변하기 전에 그 텃밭을 가꾸고 지켜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더이상 방기하면 정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은 이제 무시무시한 폭탄이 되었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 사진제공 SBS 홍보실

실직한 40대 가장 어느날 TV출연

영화든 만화든, 일본에는 무기력해진 40대 남자 가장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는 이야기가 많다. <행복한 가족계획>은 바로 그 전형이다. 실직한 채, 장인 장모와 함께 사는 가와지리(미우라 도모카즈)는 집안에서 발언권이 없다. 부인에게 무시당하고, 아들도 그를 비아냥댄다. 반전의 계기는 `행복한 가족계획'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가와지리 가족을 출연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찾아온다. 가족 중 한명에게 어떤 과제를 주고, 주어진 기간 안에 그 과제를 달성하면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사는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모르는 가와지리에게 일주일 뒤 `행복한 나의 집' 노래 한곡을 완주할 것을 요구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가와지리가, 가정이 파탄 직전에 이른 친구를 만나고 딸의 위로를 받고 하면서 힘들게 용기를 내어 피아노에 몰두한다. 차분한 분위기에 유머가 있고, 가와지리 주변 인물들의 묘사도 큰 줄거리와 보조를 잘 맞춘다. 익숙한 이야기여서 중간쯤 지나면 뒤가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만, 자잘하게 웃을 거리가 있어 지루하지는 않다. <남자는 괴로워>로 유명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아베 스토무의 데뷔작이다. 임범 기자

몰입이라는 이름의 카타르시스, <에이리언2>

영화에 빠져서 현실을 잊는 사람들, 비디오 테이프 10개를 대여해서 밤을 새면서 보는 사람들, 소파에 누워서 케이블TV의 영화를 하염없이 보는 사람들, 대체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영화는 심심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영화에 빠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심심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조금은 한가한 말인지 모르지만, 궁핍하단 것이 견디기 어려운 점의 하나는 심심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엷게 만들고, 주위와 어울리는 일을 힘들게 만든다.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와 마주한 집 앞의 적막함이 주던 현실감의 증발을 커서도 느낀다는 것은 단적으로 심심하다는 말이다. 마루를 같이 써야 하는 셋방의 이웃들과의 ‘강제된 친밀성’도 역시 즐거운 일은 아니다. 영화에 대한 주요한 수요가 하층계급에서 나오던, 영화사의 초기에 그랬듯이 영화관의 어둠은 빛이다. 현실 생활에서 영화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두운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어둠이 끝나는 터널 끝의 빛을 보는 일이다. 영화관의 구조, 정신분석학적 관객 이론, 카메라와 스크린의 이데올로기적 장치 등등의 이야기는 이 빛 앞에서는 모두 바래버린 얼룩조차 되지 못한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에이리언2>를 본 것은 별로 맡겨진 일이라는 걸 갖지 못하던 시간강사 시절이었고, 신혼 초였다. 결혼해본 사람은 다 알지만, 이 시기도 심심하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에이리언2>는 말이 필요없었다. 몇년이 지난 뒤에, 미래의 자본주의에 대한 묘사, 감춰진 상징적 장치, 미장센의 성적배치 등에 대해 들었지만, 그 영화가 준 것은 몰입의 체험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동시상영관에서 두번을 더 보았다. 그 극장은 친절하게 좌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중 목욕탕에서 깔고 앉는 데 쓰는 조그마한 플라스틱 의자(?)를 주었다. 배급받은 그 의자를 들고, 맨 앞 좌석과 스크린 사이에 있는 공간에 가 앉아서, 다시 몰입할 수 있었다. 뒤에 취직을 해서 VTR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테이프로 빌려 보았고, 명절 특선영화로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때도 빠뜨리지 않고 보았다. 그때의 몰입의 이유를 사후적인 가감없이 말한다면, SF영화 일반이 주는 비현실성, 즉 여기와 지금이 아닌 다른 공간, 시간에서의 사건이라는 점이 있다. 그러면서도 여늬 SF영화의 미래와는 달리, 현재로부터 많이 발전된 것 같지도 않은 우중충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아마 어떤 면에서는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눈을 끌어당긴 것은 영화에 나오는 빛들이다. 시작할 때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내부를 검사하는 빛, 수없이 나오는 모니터들의 빛, 전체적으로 너무나 어두운 영화 전체에 걸쳐서 끌어당기는 것은 그 빛들이었다. 만일 고전이라는 것이 특정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나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을 말한다면, <에이리언2>는 고전이다. 물론 지금도 그 영화가 매력적인 까닭은 그 엄청난 힘을 가진 에일리언을 화물운반용의 작업로봇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에 있다 어차피 산다는 것은 표현하는 일이다. 심심한 사람도 심심함을 표현하면서 산다. 그런 의미에서 산다는 것은 가시화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시적인 것과 과시적인 것은 다르지 않을까. 에일리언이 끔찍한 이유는, 그것이 내부에서 외부로의 표현이 극단적인 과잉에 달한 존재라는 점이다. 점액은 몸의 내부에서 만들어져서 외부로 분비된다. 에일리언의 경우 점액은 피부 전체를 덮고 있을 뿐 아니라 과도하게 흘러넘쳐 언제나 자신의 흔적을 여기저기에다 묻혀 놓는다. 자기 표현, 자기 과시의 엄청남. 그중 입이 특징적이다. 입이 벌어지면 단순히 속살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입 속에서 나온 또다른 두 번째 입을 볼 수 있다. 입을 통해서 자기를 이중삼중으로 과시한다. 그것을 넘어서서 에일리언은 상처를 입으면 강산성의 피를 흘린다. 자신의 약점, 상처로도 상대방을 제압한다. 자신의 약점과 비루한 속내까지도 고백함으로써 힘을 과시한다. 이러한 자기과시는 어떤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 존재의 생존본능이다. 그래서 도덕적 잣대나 논리적 반론은 어떤 처방도 되지 못한다. 그 존재의 문제는 그것이 언제나 무엇인가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면서 그 대상을 숙주로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엽기의 시대에는 최고의 스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업로봇은 그저 노동수단일 뿐이다. 로봇은 자기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리플리는 자기라는 것이 없는 두툼한 기계의 안쪽에 숨어 있다. 로봇이든 리플리든 자기과시와는 거리가 멀다. 리플리가 착용한 로봇은 원래 전투용이 아니라 그저 운반용이다. 또 한가한 말이겠지만 로봇이 에일리언을 이겨서 정말 다행이다. 그 결말이 <에이리언2>를 여전히 좋아하게 만든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절 멜로를 싹틔우다

1950년부터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쨌거나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법. 50년대 중후반은 폐허와 절망 위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려 안간힘을 쓰던 고난의 시대였다. 유두연은 이 전후재건기를 대표하는 시나리오 작가다. 영화는 이 궁핍했던 시대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위로한 거의 유일한 오락수단이었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이전이므로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는 직직거리는 소음을 대동한 라디오 드라마가 전부이던 그 시절, 영화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고 눈물로 한(恨)을 씻어내게 만들었던 무소불위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유두연은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30편에 이르는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60년대에 크게 유행한 전후 멜로드라마의 기초를 닦고 한국영화 부흥의 초석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된다.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한 유두연은 해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경응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식민지의 엘리트청년이었다. 40년대 후반부터 선진적인 영화평론을 발표해오던 그는 한국전쟁 동안 부산으로 피난온 영화쪽 사람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시나리오 데뷔작은 환도 직후인 1954년 발표된 신상옥의 <코리아>. 당시의 시대정신에 발맞춰 우리의 국토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제작된 작품인데, 명승지와 관련된 고사들을 극화하여 삽입한 일종의 문화영화이다. <유전의 애수>는 부잣집 아들과 창녀가 부모의 반대와 사회적 매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맺으려 애쓴다는 내용으로 당대의 관객에게 눈물을 펑펑 쏟도록 만든 작품인데, 이후 60년대 후반까지 크게 히트한 이른바 ‘한국적 멜로’의 한 맹아를 보여준다. <마인>과 <실락원의 별>은 우리나라 추리소설계의 거목 김래성 원작의 장편소설을 각색한 작품. 특히 자신의 애독자와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유명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실락원의 별>은 흥행에 크게 성공해 이듬해인 1958년 그 속편까지 만들어진다. 유현목이 만든 <잃어버린 청춘>은 25시간이라는 한정된 타임프레임 안에 당대의 청춘들이 겪어야만 했던 불안하고 절박한 시대상황을 솜씨좋게 묘사해낸 수작으로 꼽힌다. 임화수가 제작한 <그림자 사랑>은 최무룡, 윤일봉과 더불어 홍콩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킨 한·홍합작의 멜로드라마로 홍콩에서는 <다정한>(多情恨)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홍성기가 촬영과 감독을 겸한 <산넘어 바다건너>는 당시 떠오르던 청춘스타 김지미의 매력이 마음껏 발산된 초특급 흥행작. 고아로 자라난 스물두살의 아름다운 처녀 윤경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모든 인간들에게 저주있으라!”며 절규하던 장면이 일품이었다는 것이 모든 원로영화인들의 한결같은 회고다. 당시 수십만명을 헤아리던 전쟁미망인들의 애달픈 삶을 안타깝게 묘사한 것이 유두연의 감독데뷔작 <유혹의 강>. 엄앵란과 노경희를 비롯하여 나애심, 김의향, 정애란, 김신재 등 당대의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는 숱한 여성관객의 옷고름과 손수건을 적셨다. <귀거래> 역시 전쟁미망인이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시대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멜로. 홍성기의 <춘향전>은 같은 해 개봉된 신상옥의 <성춘향>과의 맞대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 두 감독이 각각 자신들의 아내인 김지미·최은희를 내세워 정면대결을 펼쳤는데, 흥행결과는 배급업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성춘향>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 맞대결의 결과 그동안 멜로 분야에서 절대우위를 지켜오던 홍성기의 위세가 차츰 사그라든 반면, 신상옥은 승승장구의 연타석 홈런으로 충무로의 패자가 된다. 평생 8편의 영화를 연출한 유두연의 마지막 감독작품은 자유당 시절 국회의 부패상을 낱낱이 파헤쳐 고발한 정치영화 <어딘지 가고 싶어>. 최무룡이 개혁의지에 불타는 젊은 국회의원으로 나와 열연을 펼친다. 전쟁 직후와 혁명 직후 각기 다른 내용과 스타일의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을 보면 유두연에게는 확실히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볼 줄 아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54년 신상옥의 <코리아> 1955년 김성민의 <망나니비사> 1956년 유현목의 <유전의 애수> 1957년 한형모의 <마인> 유현목의 <잃어버린 청춘> ★ 홍성기의 <실락원의 별> ★ 1958년 김화랑의 <그림자 사랑> 홍성기의 <산넘어 바다건너> ★ 유두연의 <유혹의 강> 1959년 정창화의 <사랑이 가기 전에> 권영순의 <양지를 찾아서> 1960년 이용민의 <귀거래> 조성호의 <바위고개> 1961년 홍성기의 <춘향전> 1962년 유두연의 <어딘지 가고 싶어> ★는 자(타)선 대표작

카우리스마키의 무표정한 살의 음산한 개그

아키 카우리스마키(44)는 낯선 이름만큼 서먹한 얘기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핀란드 감독이다. 다섯 해 전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란 영화로 한국에 상륙했지만 그 진면목을 알리기도 전에 잊혀졌다. 21일 서울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개봉하는 <성냥공장 소녀>와 <레닌그라드…>는 카우리스마키 자신이 걸작과 졸작으로 꼽은 1989년작들로 세계 영화계가 일찌감치 알아 본 이 컬트 감독이 지닌 `겨자맛'을 강렬하게 풍긴다. <성냥공장 소녀>는 과묵한 영화다. 비쩍 마른 몸, 밋밋한 얼굴, 바삭거리듯 물기 없는 모습을 한 소녀(카티 오우티넨)는 말이 없다. 말을 잃었다. 어머니와 의붓 아비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이미 잠들어 있다. 소녀는 무거운 짐짝처럼 그에게 얹혀져있는 부모를 위해 해가 뜨면 성냥공장으로 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지리멸렬한 일상이 꾸역꾸역 계속되다 기껏 나오는 대사가 “밥먹자”나 “맥주 한 잔”이다. 오히려 뉴스에서 긴급하게 보도되는 중국 천안문 사태 화면이 더 영화같다. 소녀는 고무같이 질긴 현실을 견디고 또 견딘다. 무지막지한 사막을 낙타처럼 건너던 소녀가 어느날 문득 멈춰선다. 우연처럼 찾아온 사랑이 무시받고,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을 만큼 벽에 내몰렸을 때, 소녀는 묵묵한 인내가 조롱받는 세상을 저주하고 복수에 나선다. 피 한 방울 튀지 않는 살인 또한 건조하기 짝이 없다. 소녀는 무표정하게 부모가 먹을 밥과 애인이 마실 술잔에 쥐약을 탄다. 술집에서 지분거리는 사내에게도 쥐약 한 방을 먹인다. 비통하면서 우습다. 소녀가 터뜨리는 분노조차 슬프고 우스꽝스럽다. 대사 대신 흐르는 음악이 노래한다. “모든 것을 주고 실망할 때에는 더욱 힘든 일이지… 너의 차가운 시선과 얼음 같은 웃음이 사랑을 죽여 버렸으니까.” 86년작 <천국의 그림자>, 88년작 <아리엘>과 함께 <성냥공장…>이 `프롤레타리아 삼부작'이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마도 소녀가 대표하고 있는 `노동자 계급'을 향한 카우리스마키의 지지와 이해, 소외된 계층에 대한 동지애 때문일 것이다. 사람 죽이는 기계적 자본주의 사회를 향해 던지는 카우리스마키의 풍자는 <레닌그라드…>에서 더 졸깃해진다. 딱따구리 머리에 괴상한 옷차림을 한 록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가 미국에 온다. “아메리카에서는 뭐든 팔 수 있다”는 흥행업자 꼬임에 넘어간 핀란드 툰드라 촌놈들이 고생 끝에 낙을 얻는 곳은 멕시코다. 황량한 들판을 달리는 이들 얼치기 카우보이 뒤를 쫓는 카메라는 `로드 무비'풍이지만 흥겨운 음악 속에 비벼넣은 음산한 개그와 코미디는 쌉싸름하게 보는 이의 코를 자극한다. 87년작 <햄릿, 장사를 떠나다>에서 카우리스마키가 던진 한마디는 이랬다. “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재숙 기자

팝 아트, 40여년만의 귀환

퐁피두 센터에서 ‘팝의 시대’ 전시회 열려 지난 3월15일부터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팝의 시대’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오는 6월18일까지 지속될 이 전시회는 1956년부터 1968년 사이 팝아트의 등장과 그 영향을 미술, 건축,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총괄해 보여주고 있는데, 전시회와 병행해 팝아트를 주제로 한 영화제도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흔히 팝아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인 앤디 워홀의 회고전과 함께 조나스 메카스, 스탠 브래키지, 브루스 코너 등과 같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영화제 목록에 포함되어 파리에서도 흔히 접하기 어려운 실험영화들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팝아트는 미국과 서구 유럽에서 50년대 이후 2차대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경제가 재건되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매스미디어와 가정용 전자제품이 급속히 보급되어 본격적인 ‘소비사회’가 도래한 시기에 함께 등장한 ‘대중예술’을 가리킨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특징되는 새로운 삶의 조건 속에서 현대사회의 새로운 징후들을 때론 열광적으로, 때론 비판적인 시선으로 찾아낸 이들 작품들은, 미술의 경우 현실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상실한 표현주의적 추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되고 있다. 1957년 화가 리처드 해밀턴이 정리한 팝예술에 대한 다음의 정의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팝아트는 대중적이고 (대중을 위해 창조된 것), 일시적이고 (단기간 동안 지탱), 소비가능하고 (쉽게 잊혀지고), 싸고,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젊고 (젊은이가 대상), 정신적이고, 야하고, 환상적이고, 관능적이고, 돈이 벌리는 것이다.’ 타 예술분야에서 팝아트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면, 이번 영화제에 선정된 영화들을 보면 과연 팝아트란 이름으로 같이 묶여질 수 있는지를 반문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상업적인 영화관습들과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영화를 통한 지각훈련에 가까운 실험적인 영화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영화와 팝문화’, ‘영화와 정치’라는 두 주제로 분류된 영화들 중 ‘영화와 팝문화’는 40여편의 앤디 워홀의 작품과 함께 마릴린 먼로나 브리지트 바르도와 같은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다룬 영화들을 함께 상영한다. ‘영화와 정치’로 선정된 영화는 대부분 다큐멘터리 영화들로 요리스 이벤스, 크리스 마르케 등과 같은 좌파감독들의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타 예술과 달리 영화는 이미 시초부터 대중 상업영화가 지배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작업들의 목표 중 하나가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이 영화제에 선정된 작품들과 일반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간의 시선에서의 이질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파리= 성지혜 통신원

입소문? 없으면 만들어!

할리우드영화 인터넷 마케팅, 가짜 팬사이트 제작에 열올려 영화팬인 당신은 좋아하는 영화의 공식 홈페이지와 팬사이트 중 어떤 것에 더 마음이 끌리는가. 물론 거칠지만 생생한 느낌이 살아 있는 팬사이트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온 할리우드영화의 팬사이트에 접속할 땐 눈을 크게 뜰 필요가 있다. 팬사이트임을 자처한 여러 사이트 중에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가짜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의 기사에 따르면 최근 LA 인근 지역의 한 컴퓨터 박사는 여러 스튜디오에 영화 15편의 가짜 팬사이트를 만들어주고 15만달러의 거액을 챙겼다고 한다. 주당 1만달러가 넘는 이 알짜배기 아르바이트의 핵심은 좀더 촌스럽게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 홍보용 사진 대신 잡지책에서 오린 사진을 쓴다거나, 혹은 스튜디오에서 제공한 일부러 엉성하게 찍은 세트 사진을 쓰거나, 일부러 덜 세련된 디자인의 글씨체를 쓰거나 하는 것이 구체적인 방법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주소를 추적해도 스튜디오의 이름은 찾을 수 없도록 해 홈페이지에서 제작사의 정체를 못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 이들 임무의 마지막. 가짜 웹사이트들의 목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입소문을 내는 것이다. 영화관계자들이 관련 게시판에 들어가 팬을 가장하고 글을 올리거나 하는 방법이야 이전에도 많이 쓰였지만 팬들이 만든 비공식 홈페이지들이 점차 힘을 얻으면서 이처럼 스튜디오들이 사이비 팬사이트를 조작하는 것이 새로운 게릴라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입소문에 목숨 거는 스튜디오와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이 만나면서 영화 <블레어윗치>가 낳은 인터넷 마케팅 바람이 약간 이상한 방향으로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블레어윗치>가 실화를 가장한 홈페이지로 관심을 모은 것처럼 뉴라인시네마가 지난해 제작한 스파이크 리의 영화 <뱀부즐드>는 영화 속에 나오는 텔레비전 쇼의 내용만을 가지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곳을 찾은 팬들로 하여금 텔레비전 쇼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3개국의 영화팬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카운팅다운 닷컴’(countingdown.com)의 경우 ‘최고의 팬사이트’를 자처하며 영화팬들을 위한 각종 영화정보와 포럼 사이트임을 내세우지만 지난해 드림웍스가 소유권을 일부 갖게 되면서 아직 시나리오도 써지지 않은 <인디아나 존스4>의 홍보에 나서는 등 스필버그 영화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 순수 영화팬 사이트로서의 성격을 잃고 있다. 이처럼 활개치는 가짜 홍보 사이트에 대해 아직 이를 규제할 법은 없는 형편이다. 각종 미디어의 광고를 관할하는 정부기구인 연방무역위원회와 연방통신위원회 역시 아직 감시의 손길을 뻗질 않고 있어 이같은 가짜 사이트에 대해서는 스튜디오의 양심에 모든 걸 맡겨야 하는 상태다. LA=이윤정 통신원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나의 영화들이 겉으로 진중한 주제를 다룬다해도 영화찍는 즐거움이 그 안에 녹아들어가 관객에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꼭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구경거리가 아니더라도 인생이 힘들 때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영화가 돼야한다는 걸 염두에 둔다.” `누벨바그의 어머니'로 불리는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73)가 제3회 서울여성영화제가 마련한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 행사를 계기로 방한해 16일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나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1962년작)에서 영화의 시간을 실제 시간과 똑같이 찍고 편집하는 등 바르다는 여러가지 형식실험으로 영화의 폭을 넓혀왔지만 국내에는 텔레비전에서 와 <행복>(1964) 등 2편이 방영됐을 뿐이다. 한국에 처음 왔다는 바르다는 “내 영화를 본 관객이 한국에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이번에 내 영화가 상영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에 상영되는 그의 최근작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2000)는 파리의 시장 상인들이 문을 닫고 청소부가 청소하기 전까지 시장바닥에 떨어진 곡식이나 과일들을 줍는 사람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이제는 정치, 철학, 사회문제 등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큰 주제보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가가 어떤 느낌을 나누고 연대감과 동지애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등 초기작들에 대해 “나이 들면서 갖게된 가벼움에 대한 관심이 그 영화들에는 담겨있지 않다”고 말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자살하고 마는 부인을 그린 <행복>에 대해서는 “행복, 사랑에 대해 당시의 틀에 박힌 사고를 깨야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직업적으로 영화를 찍기보다 뚜렷한 영감이나 강력한 동기가 있을 때만 영화를 만들며 그런 게 없다면 안찍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는 바르다는 “내가 새로 만드는 영화에 대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지 말고 꼭 `최근 작품'이라고 불러달라”며 웃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