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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1]

톱스타 쓰니가 좋아? 쯧쯧‥ 우리도 없으면서 “아 정말 답답하네. 왜 그 사람 있잖아. <**>에서 !!로 나왔던 배우… 정말 생각 안 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 하면….” 이런 식으로 기억의 물꼬를 트게 되는 배우들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그런 배우들을 조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말라버린 기억력을 다시 길어올려야 할 만큼 그들이 가치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를까? 기억을 더듬으며 할리우드의 명조연들 12명을 여기 초대한다. - 편집자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그러니까 그는 출렁거리는 두부살 속에 예민한 촉수를 숨긴 남자 ■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Philip Seymour Hoffman 1967년 생 주요작 1992 <여인의 향기> 1997 <부기 나이트> 1998 <위대한 레보스키> 1998 <해피니스> 1999 <매그놀리아> 2000 <올모스트 페이머스> 2002 <펀치 드렁크 러브> 멍하니 벌린 입, 창백한 흰 얼굴, 근육질 제로의 두부살, 힘없는 금발머리.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모든 것은 ‘무력’이란 말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기 나이트>에서 포르노 스타 덕에게 “제발 키스 한번만…”을 애원하다 거절당한 뒤 “이 좆같은 천치야!”라고 자학하던 포르노 중독자로 나왔을 때도, <플로리스>의 게이 가수 러스티였을 때도, <매그놀리아>에서 죽어가는 톰 크루즈 아버지의 남자간호사로 등장해 전화기를 잡고 울먹거릴 때도, 그는 이보다 더 무력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놀이터에서 괴롭힘당하고 동정받는 뚱뚱한 소년 같았다. 게다가 스코티, 더스티, 러스티, 죄다 뚱보 소년의 이름 아닌가!” 또한 그는 <리플리>에서 맷 데이먼을 계속 의심하다 죽음을 자초하는 얄미운 역을 맡아도, <올모스트 훼이모스>의 음악잡지 편집장 같은 시니컬한 역할이 주어진다 해도, 심지어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애덤 샌들러를 괴롭히는 폰섹스 회사 ‘매트리스 맨’ 같은 악역을 맡아도, 악하기보다는 안쓰럽고,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고, 즐겁기보다는 슬펐다. 때론 세상사에 전 듯한 얼굴로, 때론 세상의 흐름과는 상관없다는 루저의 표정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태도로, 그는 스크린을 휘적거리고 다닌다. 뉴욕대에서 드라마와 연기를 전공했지만 배우뿐 아니라 배우 외의 일자리도 얻기 힘들었던 그는 레스토랑 웨이터도 헬스클럽 경호원도 번번이 잘렸고, 실업수당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여인의 향기>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해피니스>를 함께한 토드 솔론즈나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독립영화감독들이 앞다투어 그를 원했고, 앤서니 밍겔라, 조엘 슈마허 같은 감독들도 이 독특한 배우를 자신들의 작품에 모셔가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첫 주연작 <러브 리자> 덕에 유명 남성잡지 표지에 실리면서도 “역시 내 머리 크기는 참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자학성 멘트로 날리는 그. “나도 내가 볼품없는 남자란 건 안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 최소한, ‘귀엽다’ 정도는 말해주길 기다렸는데 한명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한숨 쉬는 그. 혹시 길모퉁이나 버스 한 귀퉁이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힘없는 슬픈 눈으로 앉아 있는 사내와 마주친다면, 꼭 이 말 한마디를 건네길. “아, 당신! 뚱뚱하고 땅딸막하지만, 참 귀엽네요”라고. 그러니까 그녀는 꼬리 아홉 달린 영국신사 ■ 짐 브로드벤트 Jim Broadbent 1949년생 주요작 1985 <브라질> 1990 <인생은 달콤하다> 1994 <브로드웨이를 쏴라> 2001 <브리짓 존스의 일기> 2001 <물랑루즈> 2001 <아이리스> 2002 <갱스 오브 뉴욕> <아이리스>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탄 짐 브로트벤트가 미국 한 TV쇼 인터뷰장에 당도했다. “여기, 호주에서 날아온 짐 브로드벤트를 만나봅시다. 반가워요. 당신은 호주 사람이죠?” 준비성 없는 무심한 쇼 진행자의 질문에 짐은 당황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로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영국사람인데요.” 그를 만나본 기자들이 “한결같고 조용하고 침착한”이라는 수식어를 이구동성으로 붙이는 사람. 그러나 짐 브로드벤트는 그리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배우는 아니다. 아무리 그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파티장 뒤켠에서 토끼꼬리를 달고 온 딸 르네 젤위거와 앉아 바람난 아내를 쳐다보며 담배만 뻑뻑 피워무는 신부복입은 불쌍한 가장으로 나왔다고 해도. 아무리 그가 알츠하이머병으로 고생하는 동반자 주디 덴치의 곁을 40년 동안 사랑으로 지키는 순애보의 주인공이었다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비정하게 외치는 <물랑루즈>의 포주 해럴드 지들러였고,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던 <갱스 오브 뉴욕>의 트위드당의 간사한 보스 윌리엄 트위드였다. 런던 음악연극아카데미(LAMDA)를 졸업해 로열국립시에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등 ‘영국 연기의 엘리트 코스’를 고스란히 밟은 짐 브로드벤트는 주로 연극계에서만 활동해왔다. “사실 잘생긴 친구들은 TV로 바로 직행했던 시절” 그런 그가 공식적으로 영화계로 발을 옮긴 것은 <시간도둑들> <브라질>을 비롯한 테리 길리엄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면서다. 이후 마이크 리의 <인생은 달콤하다>에서 희망없는 속에서도 희망을 품은 소박한 요리사 가장으로 등장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결국 우아한 영국의 티 테이블에서 우디 앨런의 수다스런 뉴욕 식탁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수다라면 떨어질 것 없는 마틴 스코시즈가 <갱스 오브 뉴욕>에 자신을 부른 이유를 “싸기 때문에”라고 대답하는 겸손한 사람. 그러나 이런 그를 뻔한 영국 노인네일 뿐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아직까지 올해 쉰네살의 이 배우의 꼬리가 몇개인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백은하 lucie@hani.co.kr 그러니까 그녀는 똑똑하다. 멍청하다. 자애롭다. 거칠다 ■ 다이앤 위스트 Dianne Wiest 1948년생 주요작 1985 <카이로의 붉은 장미> 1986 <한나와 그 자매들> 1990 <가위손> 1991 <꼬마 천재 테이트> 1994 <브로드웨이를 쏴라> 1998 <프랙티컬 매직> 2001 <아이 엠 샘> 다이앤 위스트는 <뉴욕 소나타>(1980)라는 소품 수준 로맨틱코미디의 조연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우디 앨런이 미아 패로, 다이앤 키튼만큼 사랑한 여배우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라디오 데이즈>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한나와 그 자매들> <브로드웨이를 쏴라>를 통해서 두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미아 패로, 바버라 허시와 함께한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 다이앤 위스트는 병적으로 강박증을 앓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듀서 미키(우디 앨런!)와 사귀는 여배우로 등장한다. 신경쇠약 직전의 지식인 세계에서 그녀는 충분히 미쳐버릴 만큼 ‘지적이다’. 그런데 웬걸. 8년이 흘러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다이앤 위스트는 백치와 자아도취로 무장한 한물간 늙은 여배우 헬렌 싱클레어를 연기하여 보는 사람이 미칠 만한 ‘무식함’으로 다시 한번 오스카를 가져갔다. 하여간 다이앤 위스트는 그 지성과 무지의 극단적인 간극을 지금까지도 힘들이지 않고 오간다.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그런 둘 중 하나의 성격이 자주 맡겨진다. 그리고 대부분 성공한다. <가위손>의 착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화장품 외판원 펙 보그 부인, <첩보원 가족 로버슨>의 얼렁뚱땅 로버슨 부인. 또는 <아이 엠 샘>의 착한 아줌마 애니. 또는 영재 출신으로 특수학교를 운영하는 <천재소년 테이트>에서의 제인 그리어슨과 <미스터 커티>의 능력있는 여성 샐리. 그런데 이상한 건, 그녀가 한쪽으로 나아가려고 작정만 하면 우리는 속절없이 바보라고 놀리며 손가락질을 하거나 혹은 반대로 무슨 눈빛을 짓든지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올해로 55살이 된 이 ‘할리우드 아주머니’는 여전히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한순간 세상에는 없는 듯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다가도, 또 언제 말 안 되는 대사를 내뱉을지 모를 일이다. “돈 스피크! 돈 스피크!” 정한석 mapping@hani.co.kr 명조연들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방법우리는 패밀리, 감독-배우군단 합종연횡 <오션스 일레븐> <위대한 레보스키> 폴 토머스 앤더슨이나 코언 형제, 스티븐 소더버그 등은 알려졌다시피 특정 배우들을 ‘군단’으로 묶어서 편애하는 감독들이다. 일명 ‘패밀리’로 불리는 이 배우집단은 감독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그 감독의 영화가 가진 연기력의 퀄리티를 보장한다. 물론 ‘패키지’로 이동하기 때문에 양적 보장은 기본이다. 이미 언급된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와 코언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 <바톤 핑크> <파고> <위대한 레보스키>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거기에 없는 남자> 등의 작품들, 그리고 소더버그의 <조지 클루니의 표적>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은 그들 가문에서 개성으로 승부하는 배우들을 한번에 여럿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황금맥, 말하자면 매력배우 노다지땅이다. 열두명의 리스트에서 아깝게 탈락한 필립 베이커 홀과 윌리엄 H. 메이시, 토머스 제인은 앤더슨 가의 또 다른 대표 멤버들이며, 코언 가에서는 존 굿맨, 존 터투로, 스티브 부세미,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같은 일원들이 이 리스트에 합류하는 데 실패했다. 소더버그가 아끼는 흑진주 돈 치들 역시 근소한 차이로 제외된 경우. 어쨌든 이들은 어느 한 캐릭터를 대표적으로 집어내 말하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역할과 연기력의 폭을 자랑하는 특급 연기자들이다. 항간에 ‘이것이야말로 감독 자신의 성격이 여러 개로 분열돼 있어 불가피하게 다수의 페르소나를 필요로 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라는 비전문적인 분석 견해가 나돌고 있지만 아직 증명된 바 없다. 또 패밀리 멤버십 서비스는 받고 있지 않지만 회원들과의 충분한 팀워크를 과시한 베니치오 델 토로, 엘리엇 굴드 등도 외면할 수 없는 매력적인 배우들. 가이 리치 감독 역시 <록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를 통해 이전까지 조연 역에 한정해 있던 배우들을 주연급으로 끌어올린 케이스다. 제이슨 플레밍과 비니 존스, 제이슨 스태덤 등이 그의 손에서 컸다. 특정 배우들을 꾸려 가족화하지는 않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과 <저수지의 개들>도 조연열전무대. 아만다 플러머, 빙 레임즈, 로잔나 아퀘트가 <펄프 픽션>에 출연했고 이 영화에 등장한 팀 로스는 하비 카이틀, 스티브 부세미, 랜디 브룩스 등과 함께 <저수지의 개들>에도 출연한다. 노장감독 로버트 알트먼의 작품들 역시 여러 인물들이 한 영화 속에 모여 균형있게 조율된 점에서 탁월하다. <숏컷>은 앤디 맥도웰을 위시해 매튜 모딘, 제니퍼 제이슨 리, 구스 반 산트의 <싸이코>의 앤 헤이시, <저수지의 개들>의 크리스 펜 등이 주요 출연진. <고스포드 파크>는 매기 스미스와 마이클 갬본 등과 같은 명노장배우들을 중심으로 이미 여기저기서 소개된 바 있는 연기파 배우진들이 문자 그대로 ‘한떼’ 등장하는 영화다.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 테렌스 맬릭의 <씬 레드 라인>, 존 매든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와 <로드 투 퍼디션> 등도 인상적인 조연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다. 박혜명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8]

이마무라 쇼헤이가 뱀장어에서 인간성의 ‘보편적’ 회복을 본다면(<우나기>), 구로사와 기요시는 해파리에게서 무리를 지어다니는 ‘동시대 도쿄’ 젊은이들의 연대를 본다. 전공투세대가 뱀장어에서 왕성한 생식과 집요한 고향 회귀의 본능을 본다면, 버블경제 세대는 해파리에게서 즉물적인 생존본능과 무조건적인 행진만을 희망한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사인만이 있을 뿐이다. 가거나, 기다리거나! 계속 기다리라고 말했던 마모루는 죽어가면서 유지에게 둘만이 약속한 사인을 보낸다. “가라!” 이제 유지의 행진이 시작된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는 없다. 한 마리의 해파리는 유지의 모이를 먹고 수백 마리가 되어서 도쿄 시내를 가로지른다. 그걸 환희에 차서 바라보는 유지의 얼굴 다음 숏은 체 게바라의 얼굴을 담은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 직장도 없고 목표도 없는 젊은이들, 그들이 좀비처럼 도쿄 시내를 활보하는 롱테이크이다. 그러면 (그렇게 기다려도 알 수 없던, 그래서 거의 지쳐버린 다음에) 이제야 비로소 영화 제목이 뜬다. (가다카나로 쓴) <아카루이 미라이>(‘밝은 미래’). 그것이 정말 ‘밝은 미래’일까? 아, 심금을 울리는구나! <천년에 한번 오는 달>(Mille Mois), 감독 파우지 벤사이디, 주목할 만한 시선 <메마른 눈동자들>(Al Ouyoune al Jaffa) 감독 나르지스 네자르, 감독주간 이 두편의 영화의 공통점 세 가지. 두편 모두 데뷔작이며, 모로코영화이며(좀더 정확하게 <메마른 눈동자들>은 탕헤르 지역영화이다), 두편 모두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나면 두편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파우지 벤사이디의 영화는 동화에 가까우며, 매우 소란스럽고, 인물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미지와 사운드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이 있다. 반면 <메마른 눈동자들>은 조용하고, 아주 슬픈 리듬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인물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미장센은 때로 군무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두편을 한자리에 부른 이유는 좀 다른 데 있다. 중동지역 영화들이 칸에 오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자기 스스로를 낯설게 만드는) 이국성(異國性)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영화를 서구영화의 전통 안으로 끌어들이는 고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말을 (칸에 가고 싶은 한국영화 신인감독들께서는) 주의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디아스포라의 정서에 기대면서, 그들 자신의 원시성을 본다. 영화 안의 삶은 누추하고, 비루하며, 봉건적이고, 미신에 차 있으면서도, 정작 그들 자신의 영화는 (서구적인 의미에서) 매우 세련된 포스트 모던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신기한 낯섦과 친숙함 사이의 이중장부의 (서구의 비평담론과의) 거래는 신중하게 토의되어야 한다. <천년에 한번 오는 달>은 모로코의 한 마을 이야기이다. 무대는 1981년. 이 마을에는 천년에 한번 오는 달을 맞이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그날 마을 사람들은 달을 맞이하러 산에 오른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 마흐디는 아버지가 프랑스에 돈을 벌러 갔다고 굳게 믿는다(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감옥에 가 있다). 소년 마흐디는 개구쟁이라서 사고도 많이 생기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사건은 계속 벌어지고, 결국 할아버지가 몰래 마흐디 학교 선생님의 의자를 내다 팔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동네를 떠나야 한다(회교권 국가에서는 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자른다!). 마흐디에게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지만, 이제 ‘철든’ 마흐디는 그냥 엄마 말을 믿는 척한다. 결국 동네를 떠나는 그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파우지 벤사이디는 시종일관 쿵쾅거리는 음악과 요란벅적한 소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소년 마흐디의 시선으로 끌고 나간다. 물론 이것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상황(<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과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정서(<하얀 고양이, 검은 고양이>)이다. 서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그 두개의 세계를 벤사이디는 아주 느슨하게 연결시키면서도 끝내 그 어느 쪽의 고리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모로코 마을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들의 생활을 낯설게 지켜본다. 거기에는 자기 영토의 삶을 ‘발견’하는 것 같은 인류학자의 시선이 있다. 그는 자기의 영토에서 살아가는 대신 그 안에서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천년에 한번 오는 달>에서의 주인공들인 하위계층(subaltern)은 자기의 삶을 받아들이는 준비론적 패배주의의 비극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생활을 담아내는 방식을 통해서 서구영화의 미학을 이용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르지스 네자르의 <메마른 눈동자>는 그것을 좀더 밀고 나아가서 변방국가의 하위계층의 문제틀과 페미니즘을 서로 뒤섞는다. 산골 깊숙이 자리잡은 베르베르는 창녀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다. 이 마을에는 “돈 없는 남자는 들어올 수 없다”. 이 마을의 큰언니이자 포주인 하라의 어머니가 감옥에서 풀려나서 25년 만에 돌아온다. 잊고 살았던 어머니가 고향에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한 남자와 돌아온다. 마을에는 소동이 일어나고, 그들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이 벌어진다. 나르지스 네자르는 그 소동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그려낸다. 녹색 들판에 붉은 깃발을 세운 화면 위로 온갖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여인들이 군무를 추듯이 달려가는 스펙터클(마치 구로사와의 영화처럼!). 그리스 무대극을 보는 것 같은 증오와 분노의 제스처들과 비명에 가까운 외침들(마치 앙겔로풀로스의 <방랑극단>을 연상케 하는 상황). 이상할 정도로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화면 구도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와 딸을 위하여 지붕 위에서 남자가 벌이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방불케 하는 슬랩스틱을 통해서 비로소 그녀들의 화해는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로코와 채플린은 어떤 연관성이 있었던 것인가? <메마른 눈동자>는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의 상호의존성이 삶을 ‘신비롭고’ (하지만) ‘불완전하게’ 화해시킨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제3세계 ‘변방’영화들의 경향은 1970년대의 ‘적극적인’ 정치적 실천을 버린 대신 ‘소극적’ 미학의 실천을 자기의 전술로 삼는다. 이들은 저항하는 대신 세계화의 질서 안에서 이미 주어진 삶을 동화, 혹은 신화, 또는 상징이거나 알레고리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우지 벤사이디의 <천년에 한번 오는 달>과 나르지스 네자르의 <메마른 눈동자>는 정말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거기에는 모더니티의 기계장치인 영화의 서구적 수사학으로 담아낸 ‘영원한 미완성의 근대’에 대한 변방의 탄식이 있다. 그들은 원치 않는 일이지만, 자기 영토에서의 패배자들이다. (내 생각에) 그것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로 시작된 이란영화의 르네상스가 (그들에게, 혹은 우리에게) 넘겨준 유산이다. 서구의 배급구조와 만나야 하는 변방의 영화들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이것이 칸에 온 남한 영화평론가의 어쩔 수 없는 근심이다(이 글은 아래 글과 함께 읽혀야 한다). 사유의 힘 <새끼 사자들>(Les Lionceaux), 감독 클레르 도이옹, 감독주간 <투쟁> (Struggle), 감독 루드 마데르, 주목할 만한 시선 <삶의 입맞춤> (Kiss of Life) 감독 에밀리 영, 주목할 만한 시선 <수위표>(水位標, Watermark) 감독 조지아나 윌리스, 감독주간 (이 글은 위의 글과 함께 읽혀야 한다) 이 네편의 영화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데뷔작이며, 여성 영화감독의 영화이며, 네명 모두 칸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출신들이다(그중에서 에밀리 영은 ‘시네 퐁다시옹’에서 추천받고, 파리에서 그의 경쟁자들과 일정한 과정을 이수했으며, 그중에서 선택되어 장편영화를 찍었다. 텔레라마의 말에 의하면 그 경쟁자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언론들은 칸에 관심이 많으며, 96년 이후 ‘어찌되었건’ 단편영화 부문에 한국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초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올해 칸에서 신인감독상의 후보작들을 집중적으로 보았으며(비평가주간을 제외한 전 부문의 신인감독들의 영화를 ‘새벽까지’ 모두 보았다), 그중에서 이 네편의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선 매우 침통하게 말하자면 ‘현실적으로’ 지금 한국영화의 (상업적인) 구조(와 이를 둘러싼 영화비평의 담론) 안에서는 칸영화제에 와서 신인감독상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나는 이 말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잠시만 참고 읽어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여기서와 저기서의 ‘좋은 영화’에 대한 기준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저기서는 너무 통속적이고, 드라마에 질질 끌려가고 있으며, 상투적이고, 이미 그런 장르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로 이 네편의 영화의 공통점은 보고나면 줄거리를 무슨 수를 써도 요약할 수 없다는데 있다. (억지로라도 요약하자면) <새끼 사자들>은 섬에서 짐승처럼(말 그대로 새끼 암사자들처럼!) 살던 두 자매 앞에 한 소년이 실려오자 벌어지는 질투와 비극의 삼각관계이다.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장-마리 쉬트라우프와 다니엘 유이레 영화의 ‘소녀용’ 순정만화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쟁>은 동구권에서 오스트리아로 불법이민 온 엄마와 딸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벌이는 생계의 투쟁이다. 이 이야기가 비엔나의 한 남자의 삶과 평행하게 펼쳐진다. 그 둘의 교차점은 매우 끔찍하다. <삶의 입맞춤>은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가 아직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동구에 있는 그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온갖 교통편을 이용하여 안간힘을 쓴다. 그 둘은 집에 올 수 있을까? <수위표>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의 과거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과거의 기억이 일으키는 충격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들의 기억은 서로 겹치지만, 때로 비어 있다. 그걸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들의 딸이다. 기억의 사다리, 혹은 퍼즐 맞추기.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사대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대의 영화에 대한 생각이 갖고 있는 미적 좌표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와 저기 사이의 간격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같은 영화에서 보려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건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그 드라마 안의 인물, 인물들의 갈등, 인과관계, 세상에 대한 모방, 긴장과 이완, 그리고 대답을 얻으려고 한다. 물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 대해서 ‘그런데’ 그것이 영화로 성립될 수 있느냐고 질문할 때 갑자기 사건은 (이야기) 관계의 결과로부터 결과의 (이미지) 관계가 된다.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도덕적 규칙성이 이야기로부터 이미지에 대한 판단에로 옮겨올 때 입장은 뒤집히게 된다. 결국 영화는 세상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화인 세상을 영화가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성립시키는 숏(들)의 개념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결국 영화 안에 사건이 아니라 사유가 있어야 한다. 칸에 (한국)영화가 오(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세상의 영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곳에서 영화를 생각해보는 것은 지구 위의 동시대성에 대한 사유의 한 가지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은 그 한 가지 견해이다. 사건으로부터 풀려나와서, 영화에 대해서 사유하는 영화. 결국 칸에 오기 위해서는 시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도깨비처럼 등장한 영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시장이 틀렸다고 호소할 생각은 없다. 또한 우리의 비평담론을 문제삼을 생각도 없다. 그것은 남한이라는 변경에서 영화를 사고하는 우리의 한계이자, 미덕이며, 전통이자, 역사의 귀결일 것이다. 그건 그대로 내버려두자. 그 대신 우리는 ‘지구를 자기의 국적으로 생각하는’ 도깨비를 기다려야 한다. 부정(父情)이라는 이름의 십자가 <아버지와 아들>(Otets I syn)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 경쟁부문 지난해 소쿠로프는 <러시아의 방주>로 에르미타쥬 성안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방을 따라가면서 타임머신과도 같은 한 숏의 영화를 만들었다. 어쩌면 그 영화는 디지털영화의 그 어떤 극단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가 정말 지루했다. 소쿠로프는 정신적인 영화를 만드는 시네아스트이지 결코 형식적인 불장난에 심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서 영화의 영혼을 보고 싶은 것이지 실험의 형식이라는 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미장-타블로(mise-en-tableau)의 우주 안에서 이 모든 것 안을 순환하는 중이다. 하지만 <몰로흐>와 <타우르스>에서 내가 본 것은 이미지들뿐이다. 그러나 소쿠로프는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5년 전에 만든 <어머니와 아들>의 속편이며, 앞으로 이어질 <두 형제와 누이>와 함께 완성될 삼부작의 가운데 이야기이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그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선 <어머니와 아들>과 <아버지와 아들>의 ‘눈에 보이는’ 차이점. <어머니와 아들>은 롱테이크의 명상에 잠겨드는 영화이다. 1시간22분 동안 고작 54숏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한다. 아들은 눈물이 흐르듯이 무너져내리는 세상의 형상을 본다. <아버지와 아들>은 1시간23분 동안 (내 복기가 틀리지 않는다면) 600숏이 넘는다. 두 번째 차이점, <어머니와 아들>이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장면들의 연속이라면 <아버지와 아들>은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카라바지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더 중요한 차이점인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스크린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소쿠로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는 반복보다는 차이에 방점을 두고 있다. 가장 의미심장한 첫 장면. 마치 피에타 상과도 같은 자세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근친상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의 환상이다. 혹은 아들의 향락이다. 그걸 소쿠로프는 일그러진 이미지를 통해서 찌그러진 거울에 비추듯이 외상을 일으켜 보여준다.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는 듯한 아들의 벌린 입의 시커먼 구멍. 그건 뭉크의 말없는 비명, 혹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뭉개진 얼굴의 블랙 홀이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다음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아들은 군사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는 아버지와 지나치게 친해서, 그를 사랑하는 연인조차 “아버지가 아니라 형제처럼 보인다”고 질투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연인은 결국 아들을 떠나간다. 그 사실이 아들은 괴롭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를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보낼 때가 왔음을 안다. 아버지는 말한다. “나는 너의 얼굴을 잊기 시작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칸 영화제 결산 [4]

“비극의 원인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황금종려상과 감독상 휩쓴 <엘리펀트> 감독 구스 반 산트를 만나다 꼭 1년 전 칸영화제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을 초청했었다. 미국사회에 전방위적 공격을 가하는 <볼링 포 콜럼바인>은 감독의 선언과 주장과 쇼맨십으로 가득한, 그렇게 떠들썩한 센세이션을 기도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소재를 정반대 스타일로 다룬 극영화 <엘리펀트>가 ‘애프터서비스’ 내지 ‘비교체험’을 권장하기라도 하듯이 올해 칸을 찾아왔다. 주관과 분석이 이상하리만치 배제돼 있는 ‘영상시’ <엘리펀트>는 욕구불만의 영화제 내방객은 물론, 잊혀져가는 어린 망자들의 넋을,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영화제 규정(특정 작품에 상을 몰아주면 안 된다는)을 어기면서까지 <엘리펀트>와 구스 반 산트에게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안기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아이다호> 이후 줄곧 남의 시나리오를 받아 컨벤셔널한 영화를 만드는 데 안주했던 구스 반 산트는 이로써 진정한 ‘시네아스트’로서의 비상을 시작하게 됐다. <엘리펀트>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을 오후의 교정을 찬찬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를 데리고 등교한 존, 오다가다 마주치는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엘리아스, 연습을 마치고 여자친구를 만나는 축구 선수 네이단, 수업 시간에 학급 친구에게 이유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알렉스,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알렉스의 단짝 에릭, 짧은 체육복 바지 입기를 거부하는 미셸, 그녀를 왕따시키는 미녀 삼총사 등등. 이들이 함께한 시간과 공간, 사건은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너번씩 반복돼 보여진다. 별스럽지 않은,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 위로 <월광소나타>와 <엘리제를 위하여>가 흐르면서, 이들의 마지막 순간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알렉스와 에릭이 왜 총을 들게 됐는지는, 끝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우린 구스 반 산트의 말처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사건의 언저리에서 맴돌 뿐이다.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어!”라고 내지르는 대신 “재미 좀 보자”(Have fun)며 총을 드는 아이들. 구스 반 산트는 그처럼 폭력은 어떠한 인과관계나 맥락없이, 우리의 일상을 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아름다운 영화 <엘리펀트>는 그렇게 우릴 슬프고 망연하게 만든다. 타이틀이 앨런 클라크의 동명영화를 연상시킨다. 앨런 클라크 감독의 <엘리펀트>는 북아일랜드의 폭력문제를 다룬 영화로, 타이틀은 거대하고 심각한 나머지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 골치 아픈 문제를 가리키는 서양 속담 ‘거실 안의 코끼리’의 뜻을 차용했다고 들었다. 나는 장님 여럿이 코끼리의 귀와 다리 등 서로 다른 부분을 만지면서 이게 나무니 뱀이니 하고 다퉜다는 인도의 옛이야기를 생각했다. 아무도 전체를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나온 뒤인데, 같은 소재를 픽션으로 재조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1년 <아이다호> 이후 한동안은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었달까. 컬럼바인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이걸 텔레비전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 사건에 연루됐음직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다루기엔 텔레비전이 적합할 것 같았는데, 어느 방송사도 이 프로젝트를 감당하지 못했다. 에서 “<컬럼바인>은 못해도 <엘리펀트>는 할 수 있겠다”는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인물의 행동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반복을 통해 특정한 시간대를 강조한 의도는 무엇인가. 나는 이 끔찍한 사건을 묘사하고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 자신은 컬럼바인 사태에 대한 견해가 있지만, 영화 속에 드러내진 않았다. 시적인 표현과 인상들을 통해 관객 스스로 대답과 이유를 찾아가길 바랐다. 초반부엔 다큐멘터리의 인상이 강하다. 실제 사건을 영화에 얼마나 반영했나. 사건의 원인이 궁금해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4년간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다른 작가가 <토미 건>이라는 초기 시나리오를 내놓기도 했고, 나는 그 사이 <제리>라는 작품을 찍기도 했다. 이후 선정성과 오락성을 완전히 탈색시키는 방향으로 <엘리펀트>의 가닥을 잡아갔다. 스토리는 실제 사건과 상상을 뒤섞어 구성했다. 사건의 배경과 맥락을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나 충동은 없었는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볼링 포 콜럼바인>을 봤고, 정말 영리하고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클 무어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나와 다른 것 같다. 나는 총격을 벌인 두 젊은이가 인상적이었다. 지적이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그들은 자폐적으로 변해가고, 결국 자기 파괴로 나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동참을 강요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 배우들은 컬럼바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연기했나. (존 로빈슨) 컬럼바인은 엄청난 비극이고, 미국 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 사건을 다룬 영화에 출연하면서, 당시 그리고 지금의 미국 아이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꼈다. (알렉스 프로스트) 그 사건은 우리의 친구들에 대한, 학교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180도 바꾸어놓았다. (엘리아스 매코넬) 나는 홈스쿨을 하기 때문에 그 사건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학교에 가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인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앵글을 바꿔 같은 사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등의 촬영에 모티브가 있었나. 미리 계획한 것은 없었다. 초반에는 8mm 광각렌즈를 썼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나서 더이상 쓰지 않게 됐다. 내가 바란 것은 인물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주욱 쫓아가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알렉스가 피아노 칠 때 카메라가 뒤에서 바라보는 장면을 가장 아낀다. 학살장면을 보여주느냐 마느냐에 대한 갈등은 없었나. 그 대목을 배제하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다. 이 결말을 향해 이야기 전체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비관습적이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등의 작은 사건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보는 이의 뇌리에 남아 영화 전체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들을 이끌어내게 된다. 폭력이 발생하는 장면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곤 한다. 어떤 연관을 의도했나. 피아노 연주를 삽입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범인 역을 맡은 알렉스가 피아노 치는 것을 듣고, 다음날 당장 촬영장에 피아노를 갖다놓았다. <엘리제를 위하여>나 <월광소나타>는 피아노를 좀 치는 사람이라면 즐겨 연주하는 곡들이다. 특별한 의도를 갖고 음악을 삽입한 것은 아니다. 총을 난사하는 두 소년이 동성애적 관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두 사람이 샤워하며 키스하는 장면은 다양하게 해석할 소지가 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이뤄진 성적 만남이다. 죽음을, 학살을 함께 계획하고 단합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그녀들의 집으로 오세요,<장화, 홍련> 세트 [1]

그녀들의 집으로 오세요 핏빛 이야기를 머금은 공간, ‘하우스호러’ <장화, 홍련>의 세트를 방문하다 네 식구가 살 만한 한적하고 전망 좋은 집을 구하신다구요? 정말 잘 오셨습니다. 마침 딱 알맞은 기막힌 물건이 나와 있거든요. 1층만 80평쯤 되는 이층집인데 발코니도 있고 마당도 널찍한데다 온실까지 있답니다. 숲과 저수지가 지척이니까 쾌적하기 이를 데 없지요. 무엇보다 가격도 말씀하신 정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고요. 누가 압니까? 제가 주인하고 말만 잘하면 더 싸게도 가능할지. 전에 살던 사람들이요? 젊은 분이 별게 다 궁금하세요. 글쎄요… 뭐 아주아주 조용한 가족이라고 할까요? 행복이 가득한 집이었지요. 주인은 품위 넘치는 양반이었고 부인도 대단한 미인에다가 완벽한 주부였어요. 그뿐인가요. 두딸은 얼마나 해맑았는지. 지금은 뭐하시냐고요? 뭐, 식구들 모두 잘되어서 먼 나라로 가신 걸로 아는데 저도 확실히는… 그래도 계약이 성사되면 연락할 번호는 있으니 걱정마세요. 아 참, 고급스런 가구들까지 고스란히 딸려 있으니 몸만 들어오시면 됩니다. 특별한 추억이 구석구석 묻어 있으니 쓰는 기분이 남다르실 거예요. 이럴 게 아니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지금 당장 보러 가실까요? 초록빛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라. 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지요? 이 다리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예전 집주인네 자매가 자주 나와 놀던 자그마한 선착장이 있어서 발을 담그거나 낚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뭐가 걸리냐고요? 글쎄 엄청 무거운 월척이라도 있는지, 낚싯바늘에 피만 잔뜩 묻혀 돌아간 사람들이 많대요. 자, 다 왔습니다. 마당에 꽈리랑 치자가 참 곱지요? 게다가 신기한 건 몇년 전부터는 심은 사람도 없는데 울타리에는 장미가 기어오르고 물가에는 연꽃이 피더라고요. 이 집의 현관은 특이하게도 깊숙이 숨어 있답니다. 설계자가 부끄러움이 많았는지 현관까지 들어가는 길이 참 좁고 길고 으슥하죠? 이건 복도가 아니라 아예 골목이네요. 워낙 좋은 집이니까 들어가는 데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하세요. 초입의 여닫이문에는 옛날 이발소 같은 판유리를 붙였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미닫이문에는 간유리를 썼지요. 손님이 드르륵 문을 열기 전에는 누가 왔는지 알 도리가 없답니다. 그럼 1층부터 천천히 둘러볼까요. 맞은편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1930년대인가 처음 지어진 일본식 집이라 구석구석 붙박이 가구가 들어 있는데 계단 아래도 잘 보시면 수납공간이에요. 오래 된 물건이나 흉측한 아니아니, 눈에 거슬리는 물건들을 꼭꼭 처박아두는 데 안성맞춤인 집 아닙니까? 거실이 어둡다니요. 모르시는 말씀, 평소엔 이래도 서재 옆쪽 온실 문만 열면 빛이 와락 쏟아져 들어옵니다. 비밀스런 일이라도 하던 중이라면 갑자기 온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기분이겠죠? 그리고 위를 한번 보세요. 2층을 빙 둘러싼 아기 침대 같은 난간을 테두리로 거실 천장은 2층까지 뻥 뚫려 있지요? 말하자면 2층에서 왔다갔다하는 사람을 1층에서 볼 수 있고 1층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2층에서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는 소리죠. 그림과 벽걸이가 특이하죠? 저기 걸려 있는 죽어가는 듯한 광야의 고목 둥치 그림은 어느 미술도 청년이 그린 자화상이라더군요. 묵직한 샹들리에와 벽난로는 말할 것도 없고 TV까지 운치가 있어요. 1980년대 가전제품이 그런 맛이 있잖아요. 기계 같기도 하고 가구 같기도 한 것이 텔레비전도 문살이 있는 미닫이를 양쪽으로 밀어야 볼 수 있고. 이 거실은 넓어서 잔치치러도 충분해요. 한데 전에 살던 분들은 조용한 생활을 즐겨서인지 통 인적이 드물었어요. 하긴 밤이면 거실 불이 늘 꺼져 있는 게 식구들끼리도 거실에는 잘 모이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나마 부엌과 주방이 식구들이 다 같이 얼굴을 보는 곳이었다는데. 마침 4인용 식탁인가요? 아니, 구석에 의자 몇개가 더 있군요. 식기장이며 장식장이며 모두 서울 보광동 전문점에서 공수해온 값나가는 앤틱이죠. 그런데 저는 가구보다 벽지에 눈길이 가요. 윌리엄 모리스라는 유명한 영국 장인이 만든 문양을 쓴 벽지라는데, 매직아이 보듯이 가만 응시하고 있자면 꽃잎이 늪에 둥둥 떠가는 것도 같고 나뭇잎 사이로 두눈이 노려보는 것도 같고 정신이 몽롱해진답니다. 어어, 지금도 어지럽네요. 미닫이문 너머가 주방입니다. 식당과 주방 바닥은 통째로 빨강 데코타일을 깔았어요. 왜 이렇게 짙은 빨간색을 넓은 면적에 썼냐구요? 그야… 빨강이 원래 식욕을 돋우는 색이라잖아요. 뭘 흘려도 표가 안 나고. 양념이나 케첩이나 또… 자, 그만 부엌을 보시죠. 부엌 가구는 어차피 바꾸실 테죠? 3층짜리 녹색 냉장고며, 전기밥솥이며 지금은 저래도 70, 80년대 부잣집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물건이에요. 부엌이 남향이라 무척 환하죠? 부엌 바로 위쪽이 막내딸이 쓰던 방인데… 앗, 잠깐! 싱크대 밑은 절대 들여다보지 마세요! 다음 방이나 빨리 볼까요? 해지기 전에 다 둘러봐야죠. 온실 옆방은 이 집에서 제일 오래된 방입니다. 주인 서재였지요. 한데 어째 종이 냄새보다 약 냄새가 지독하죠? 직업이 약사인데다 부인께서 오래 병을 앓다 돌아갔으니까요. 예? 그러니까 아이들 생모 이야기죠. 아, 주인이 재혼을 했거든요. 부인을 돌보던 간호사와 서로 마음이 통했다나. 어쨌든 남자분이 워낙 장식 취미가 없어서 아무래도 방이 칙칙하고 케케하죠? 하지만 염려마세요. 이제부터 보실 방들은 모두 화려하고 화사하니까요. 특히 안방은 한껏 기대를 하셔도 좋아요. 보세요. 들어가는 복도부터 훨씬 천장이 높고 폭이 넓지요? 안방이 자리잡은 공간은, 새 신부 맞을 때였던가 이 집에 새로 덧붙인 동쪽 날개(wing)에 해당하거든요. 방이 멀기도 하네요. 서재나 거실이나 아이들 방으로 가려면 걸어서 한참이겠는데요. 이래서야 안방에 있으면 다른 식구들이 귀찮아서라도 안 찾아오겠네요. 어디 문을 열어보세요. 어때요? 남보랏빛 넝쿨 무늬 벽지에다 흑단처럼 검고 곡선이 날렵한 침대와 테이블이 고급 가구 브랜드의 전시장에라도 온 것 같지요? 하긴 쇼윈도라면 쇼윈도라고 할 수 있지요. 젊은 새 안주인이 전 부인의 체취를 싹 몰아내고 “이제 이 성의 여왕은 나”라고 과시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조각이 섬세한 저 삼면경 화장대를 보세요. 말이 부부의 방이지 이건 천상 여자의 방이에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는 여자야”라는 의식으로 100% 빚어진 ‘이브의 방’이랄까요. 다 보셨으면 이제 2층으로 올라가시죠. 네? 서재까지 이어지는 붉은 자국이요? 이런이런! 아까만 해도 괜찮았는데. 무슨 별난 성분의 염료를 흘렸는지 닦아도 닦아도 며칠만 지나면 다시 마룻장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와서 골치네요. 에이, 욕심도 많으시지. 아무리 이런 집이 사소한 흠도 없이 이런 가격에 나왔다고 생각한 건 아니시겠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녀가 있는 가족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집은 좀처럼 구하기 힘들 겁니다. 요즘 아이들이란 이제 좀 자랐나보다 싶기가 무섭게 제 방, 제 공간 타령을 하잖아요? 외국영화만 봐도 부모들하고 같은 지붕을 이고 사는 게 지겹다고 뜰에다 텐트를 치고 정원의 나무 위에 판잣집을 지어놓고 나름대로 또래 친구들하고 살림을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집은 그럴 필요도 없어요. 2층에 아이들 방은 물론 거실도 있고 둘이서 물장난치며 종일 놀아도 넉넉한 큰 욕실에 독립된 발코니까지 딸려 있으니까 독채나 다름없죠. 물론 굶어죽지 않으려면 밥 때문에 1층에 내려오긴 해야겠지만. 하하, 농담입니다. 이리로 와보세요. 여기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끝이 은근히 명당이랍니다. 여기 몸을 접고 앉아 있으면 1층에서는 안 보이고 1층 소리는 다 들을 수 있거든요.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중국, 배급 독점 깨진다

외화상영 통제 완화, 사스공포 감소로 극장가도 활기 중국 영화시장을 덮고 있던 ‘죽의 장막’이 조금씩 틈새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새로운 배급회사인 화하전영공사가 6월20일에 창립된다고 발표함으로써, 2년 전 외국영화 수입과 상영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완화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지금까지 중국에선 중국전영공사가 영화배급을 독점해왔다.중국의 옛 명칭에서 이름을 따온 화하전영공사는 전 중국영화국 장관 리우지엔종이 대표로 취임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다른 영화 관련 회사 간부들이 영입되면서 현재는 결과가 불투명해진 상태. 화하전영공사는 7월부터 B급영화 몇편을 시험삼아 배급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수입을 허가하는 외국영화는 1년에 모두 20편. 화하전영공사는 중국전영공사와 각각 절반씩 외화를 나누어 배급하며, 중국영화 배급은 1년 동안의 실적을 평가해서 배당받게 된다.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은 새로운 배급망의 등장을 환영하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중국 정부가 좌우하는 중국전영공사와 차이나 미디어 그룹이 화하전영공사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미디어 그룹이 소유한 지분은 단일 회사로는 가장 높은 수치인 20%. 거기에 애초 2년 전에 창립됐어야 할 화하전영공사가 중국전영공사 및 지방전영공사들 사이의 이권 다툼 때문에 창립 일정이 밀렸다는 전적도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어느 미국 영화관계자는 “일단 경영을 시작하면,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질서도 그 활동을 돕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은 2003년 말까지 디지털 스크린 수를 100개까지 늘릴 예정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상영될 외국영화의 쿼터 제한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스때문에 문을 닫았던 극장들은 이번주부터 할리우드 화제작을 연이어 상영한다. TV와 영화제작 분야도 이전보다 많은 부분을 개방하고 있다. 파룬궁에 대한 보도 때문에 제재 조치를 받기 전, 영국 방송사 는 <텔레토비>를 방영해 큰 성공을 거뒀고,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스타 그룹은 광둥지역에서 엔터테인먼트 채널권을 확보했다. 공동제작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과 존 달의 <그레이트 레이드>가 지난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촬영을 했고, 올해 1월부터는 마이클 윈터보텀이 홍콩과 상하이에서 < 코드46 > 촬영을 시작했다. 이안 소프틀리의 <상하이>도 제작준비가 되는 대로 상하이를 찾을 예정. 이 영화들의 제작사인 미라맥스는 중국 최대 규모의 수출작이었던 장이모의 <영웅> 미국 배급을 맡으면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사스 확산이 주춤해지면서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 극장가의 기지개다. 7주 동안 문을 닫았던 베이징 극장들은 이번주부터 할리우드 화제작을 연이어 상영한다. 6월20일 <데어데블>을 시작으로, 27일에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 7월18일엔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상영되는 것. 중국에 기반을 둔 홍콩 영화제작사 만다린엔터테인먼트 역시 다국적의 아시아 배우들을 캐스팅한 코미디영화 <잃어버린 수평선>을 비롯해 그동안 미뤄둔 10편의 영화제작 일정을 재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만다린엔터테인먼트는 사스에 관한 세편짜리 옴니버스영화를 제작, 영화계뿐 아니라 홍콩 경제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사스의 기억을 털어버리겠다고도 밝혔다.김현정

공포심의 노예가 될래,말래?

로션이 떨어져서 화장품가게에 갔더니 점원 아가씨가 로션을 팔고나서는 다른 상품들도 권한다. 이거 한번 써보세요. 요즘은 이렇게 비누도 크림 형태로 나오지요. 아직도 딱딱한 비누로 세수하세요? 어쩌나, 피부가 거칠고 빨리 노화되는데. 집에 자녀는 몇이시죠? 아이들은 특히 피부가 약해서 빨리 비누를 바꿔주셔야 돼요. 초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 영어교실’을 시키고 있는데, 한 외국어고등학교 교사가 와서 부모들에게 외고 입학과 수능시험에 대비한 특강을 하니까 오라고 한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 그럴 필요 있겠냐고 안 가겠다고 하자 선생님이 놀라서 소리친다. “수능, 그렇게 먼 거 아녜요. 지금부터 준비하셔야죠.” 요즘 TV에 나오는 손해보험협회의 공익광고캠페인도 장난이 아니다. “아빠, 일찍 들어와” 하는 어린 딸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로 깔리면서 희미하게 웃음짓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다음 순간 이것이 교통사고로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하는 남자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어 자막이 뜬다. ‘가족과의 소중한 약속, 속도를 줄이면 지킬 수 있습니다.’ 공포영화 스타일을 차용한 캠페인이라니! 세끼 밥의 반찬쯤으로 공포를 떠먹이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줄기차게 아침저녁으로 상쾌한 비누세수를 해왔건만 그 익숙한 비누로 세수를 하는데 이젠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젠장. 미국의 ‘꼴통’ 반골인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은 공포심을 퍼뜨려서 권력을 유지하는 집단과 공포심을 퍼뜨려서 돈을 버는 집단을 성토하는 다큐멘터리다. 앞의 것의 대표적인 예는 공화당 정부이고 뒤의 것의 대표적 예는 무기산업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총기협회 회장 찰턴 헤스턴은 “총으로 사회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테러사건에 연루됐던 자칭 좌파 인사는 “썩어빠진 사회를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컬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동 사건 때 문제학생들이 마릴린 맨슨의 팬이었다는 이유로 맨슨이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로 집중공격을 받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다큐멘터리 인터뷰들에서 가장 논리적인 건 마릴린 맨슨이다. “텔레비전은 온통 공포를 조장한다. 홍수, 에이즈, 살인…. 광고도 공포효과를 노린다. 그게 우리 경제의 기초다? 사실, 공포의 메커니즘이란 모든 조직과 사회의 실존적 기반이다. 그것은 인류역사만큼이나 유서 깊다. 그것은 역사의 지층들을 통과하는 동안 상식이 되고 관습이 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에 대한 악소문이 종교가 다른데다 우수한 소수자에 대한 박해 차원에서 생성된 것처럼, 호남 사람들의 인간성을 매도하는 말들도 ‘차령 이남 사람은 등용 안 한다’는 고려조 이래 지배권력이 피억압지역인 동시에 곡창지대인 이곳 사람들을 견제하려고 퍼뜨렸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수많은 속담이나 미신들도 가만히 보면 모두 어떤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 가령, 밤에 손톱을 깎으면 재수없다는 것도, 옛날에 어두컴컴한 호롱불이나 촛불 밑에서 손톱을 깎다보면 다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밤에 휘파람을 불거나 피리를 불면 귀신 또는 뱀이 나온다는 속담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규율을 관철시키는 손쉬운 방법이다. 브라질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한다. ‘망고를 따는 사람이 그걸 먹으면 병 걸린다.’ 이 속담은 농장 주인들이 지어냈다고 하는데 그 의도가 빤히 보인다. 망고를 따는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망고를 슬쩍슬쩍 먹으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도 공포의 유령들이 그야말로 떼거지로 배회하고 있다. ‘개혁이 나라 망친다’는 공포도 그중 하나다. 재수가 더럽게 꼬여서 ‘극렬 좌경 세력’에 국가권력을 내주긴 했지만 10년 이상은 절대 용납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개혁에 대한 공포를 퍼뜨리는 주범이다. 하나, 전세계적으로 공포제조의 명가는 역시 부시 정부다. 대량살상무기의 이동을 막기 위해 북한을 해상봉쇄해야 한대나 어쩐대나. 조간신문을 열면 아침밥과 함께 입속으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공포들이 떠밀려들어온다. ‘이 공포신드롬 가운데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반드시 가려내야 해. 그걸 못하면 너는 공포심의 노예가 되고 마는 거야!’ 등골이 서늘하다. 아니, 이건 또 누가 퍼뜨리는 거지? 조선희/ 소설가

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2]

류 승 완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감독 옛날 옛적 이 땅에 뮤턴트들이 살았나니? <변강쇠> 1986 | 감독 엄종선 | 출연 이대근, 원미경 <사망유희> 재개봉! 충청남도 온양에 있을 때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1986년이었을 것이다. 난 스크린에 부활한 이소룡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동시상영관 중앙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합기도장에 다니던 친구와 함께였는데, 우리가 당도했을 땐 동시상영작인 <변강쇠>의 프린트가 먼저 돌아가고 있던 차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성적 판타지의 대리물은 학교 앞의 영화포스터만으로 충분했다. <어우동> <어울렁 더울렁> 등등. 가슴을 풀어헤친 포스터 속 여인네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교하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맞아줬는데, 그래선지 굳이 에로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은 좀처럼 일지 않았다. 그날 <변강쇠>를 굳이 봐야 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변강쇠>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 매점 옆의 의자에 앉아 비디오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했는데 그만 매표소 아저씨가 “바깥에서 누가 보면 안 된다”고 우리를 극장 안으로 떠밀었던 것이다. 장내는 대만원이었다. 특히 변강쇠가 폭포수 같은 오줌을 날리는 장면에선 폭소가 터져나왔다. 언덕에서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댄 것이 분명한데도 누구도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저렇게도 영화를 찍는구나” 하고 킥킥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악역 전문 조연이었던 장혁 아저씨가 원미경 아줌마의 가슴을 더듬는 장면에선 나 또한 아저씨들과 함께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대개 이야기를 들어서라도 알고 있겠지만, 영화에서 변강쇠가 판을 벌이면 여인네들은 쓰러지고, 옹녀가 판을 벌이면 줄초상이 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에게 해를 가하는 조선시대 성적 초능력자들이다. 변종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보면 과장일까. <엑스맨> 시리즈보다 한참 빨리 나왔던 셈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변강쇠와 옹녀가 사람들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엔딩이 슬펐던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인 듯하다. 10대 시절에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에로영화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문 승 욱 - <이방인> <나비> 감독 외계에서 온 천사의 슬랩스틱 <미스터 빈> Mr. Bean | 1990~1995 | 연출 존 버킨 외 | 출연 로완 앳킨슨 어느 날인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미스터 빈>이란 영국의 코미디 단막극을 보았다. 거의 무성영화에 가깝게 대사없이 슬랩스틱으로 꾸며진 코미디였다. 많이 웃었다.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가뭄에 콩나듯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서 매우 점잖은 영국식 악센트를 느낄 수 있었고 엎어지고 무너지는 과장된 슬랩스틱한 몸짓이 아닌 꽤나 우아한(?) 작은 몸짓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기이한 코미디를 난 그때 정말 인상적으로 보았다. 나중에야 그 코미디가 <미스터 빈>이란 제목으로 설날마다 우리의 안방극장을 찾던 유럽식 시트콤이란 것을 알았다. <미스터 빈>을 보던 날은 비가 몹시 오는 그런 우중충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영화의 투자자를 찾는 기약없는 나날이 몹시도 나를 지치게 하던 그런 비오는 날…. <미스터 빈>은 세상에 나말고도 외롭고 지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가 벌이는 코미디의 포인트는 자기의 얄팍한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멍청한 잔머리 굴리기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상처받기 쉬울 것 같은 여리고 소심하지만 맑은 그의 외로움이 기이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미스터 빈의 낡고 작은 아파트로 찾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정말 바보 같이 느껴질 때 찾아가서 위로받고 싶은 그런 친구 같다. 외롭지만 꿋꿋하게 잔머리를 굴리며 오늘도 세상과 한바탕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이는 미스터 빈에게 살아갈 여유도 얻을 수 있다.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 그날 미스터 빈으로부터 받은 위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미스터 빈은 혼자 허름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산다. 여자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낸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서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 아니면 외계인 같다고 해야 할까? 지구라는 세상을 그리고 인간을 처음 대하는 그런 신기함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거…. 사실 좀 거창하게 예기하면 예술가들의 그런 천진함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미스터 빈>을 보면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가 생각난다. 그래… 어쩌면 미스터 빈도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지상에 떨어진 이유는 너무 잔머리를 굴려서일 것이다. 천사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잔머리였지만 닳고 닳은 우리에게는 불어터진 자장면처럼 김이 빠지지만…. 그래도 그의 잔머리에서 천사들의 소박함을 느껴본다. 너무 감상적인가? 후후… <미스터 빈>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감상적이 된다. 민 규 동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공동감독 야동 세상의 복음서 <색즉시공> 2002 | 감독 윤제균 | 출연 임창정, 하지원 1.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가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웃긴 춤을 춰. 풀 죽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야. ‘사람들을 웃겨라!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외치는군. 윤제균 감독의 영화는 날 위로해줬어. 왜냐고? 웃기니깐. 2.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양’보다 스테파네트의 ‘질’을 택하리라 맘먹던 시절, <그로잉 업>이라는 걸출한 영화를 만난 뒤, 미국 10대의 섹스코미디는 모조리 훑었지. 결국 라는 전설적인 영화도 만났어. 스쿨버스 맨 뒷좌석, 남자애들 4명이 순진한 여학생 한명의 옷을 벗겨 한 꺼풀, 또 한 꺼풀, 이내 질 속까지 탐구해 들어가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영화야… 아! 그 영화는 끝내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직도 왜 이렇게 기억이 선명한 걸까? 3. 기숙사는 늘 침투해보고 싶은 곳이었어. 특히 여대생 기숙사엔 만날 아라비안나이트가 펼쳐질 것 같았어. 낙엽 쓸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치마 벗는 소리로, 커피 따르는 소리는 비누 거품 샤워소리로 들리던 곳. 이 영화는 다 알지만, 보고 싶지만, 잘 모르고, 보고 싶지 않은, 태고 때부터 한치도 진화하지 않은 아·우·性을 양념으로, ‘주인공은 죽도록 고생할 것 그리고 절대 희망을 잃지 말 것’이라는, 채플린이 막스 형제에게 그리고 우디 앨런에게까지 절절히 이어준 코미디의 2가지 원칙을 다채롭게 풀어내는군. 그가 어느새 이 비법을 체화한 걸까? 4. 나도 한때 사람들을 웃기는 걸 소명을 삼았던 광대였어. 말 못할 고독과 슬픔 따윈 가면 뒤로 숨길수록 좋다고 믿었어. 그래야, 사람들이 웃고 지나간 뒤 곤혹스럽게 찾아오곤 하던 허무감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니깐. 발가벗고 무대 위에 올라 한바탕 쇼를 보여주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 다음 레퍼토리를 고민하는 그를 사랑해. 그의 쇼가 추잡하다고? 쳇, 또 볼 거면서! 5. ‘Sperm Fry’ 먹어봤니? 진짜 해봤다. 그거 안 된다더라. 말이 많더군. 실은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생텍쥐페리처럼 사막에 좌초됐는데, 어린 왕자를 못 만난다면, 어떻게 살아남을래?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이거 괜찮은 것 같애. 틈틈이 정액을 짜내서 태양으로 튀긴 스펌 프라이 먹고 살아 남는 거야! 그나마 당최 꺼지지 않는 마법의 샘 아니니? 6. 추신. 요즘 불만사항? 요새 왜 이렇게 메일이 많이 오니? 에잇, 긍휼할 야동 천지 세상! 인데, 너무들 하는 거 아냐? 박 기 용 - <모텔 선인장> <낙타들> 감독 오, 고독한 늑대의 낭만이여! <돌아온 외팔이> Return of the One Armed Swordsman | 1969년 | 감독 장철 | 출연 왕우 1970년대 중반, 서울 종로의 재개봉관 화장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의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 차림의 중학생들이 볼일을 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는 까불거리던 아이들도 왠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었다. 모두들 방금 보고 나온 <돌아온 외팔이>의 비장한 무사 왕우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반에서 제일 덩치가 크고 쌈을 잘하던 창식이는 혼자 창 밖 야경을 바라보며 고독을 씹다가 피우던 담배를 발로 천천히 비벼 끈 다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나가서 한잔 때리자.” 모두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때, 화장실 문이 ‘팍’ 하고 열리면서 처음 보는 다른 중학교 애가 화장실 안으로 튀어들어왔다. 모두들 그 애의 입에서 나온 “단속 떴다” 한마디에 순식간에 혼비백산이 되어 서로 먼저 화장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도망가려고 난리가 났다. 고독한 무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철부지 중학교 2학년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 중학교 시절은 이소룡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4편 모두 평균 30번 정도는 봤고 우리집 빗자루대와 개줄은 전부 쌍절곤 재료로 쓰여 남아나질 않았다. 이소룡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시절 왕우는 이소룡과는 다르게 나를 사로잡았다. 이소룡이 현대적이고 가벼운 느낌이라면 왕우는 고전적이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미국 물을 먹은 이소룡이 서구적이었다면 왕우는 철저하게 동양적이었다. 이소룡이 주로 맨손이었다면 왕우에게는 장검이 있었다. 이소룡이 요절한 천재였다면 왕우는 호흡이 긴 남자였다. 이소룡의 절권도가 스포츠 같았다면 왕우의 검술은 필살의 무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우는 외팔이였고 늘 고독한 냄새가 났다. 시쳇말로 ‘독고다이’였다. 그때는 ‘외로운’, ‘외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전율이 났었다. 동네 고아원 애들이 부럽기만 하던 나이였다. 오래 전 영화계를 떠난 왕우가 대만 암흑가의 두목이 됐다는, 그리고 진짜 외팔이가 되었다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왕우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왕우라면 영화 밖에서도 강호의 의리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영화의 내용은 거의 다 잊었지만 부러진 칼을 들고 상대방을 길게 응시하던 짙은 눈썹의 왕우의 이미지는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1]

영화감독 16인이 밝힌 '나를 매혹시킨 영화' 16편 영화의 매혹은 때때로 너무 지나쳐 보는 이의 취향, 이데올로기, 노선, 철학을 보잘것없게 만들곤 한다. 스크린 위로 퍼지는 빛의 포자가 일단 뇌리에 진득이 달라붙기 시작하면 감성은 이성을 배반하고, 흥분은 지성을 지배하며, 쾌락은 도덕을 압도한다. 객관적으로야 대단할 게 없지만, 정말 사소한 이유 때문에 마력을 발휘하는, 이런 영화들은 이율배반의 긴장을 동반한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터. 영화가 뿜어내는 강렬한 섬광에 눈이 멀어버리는 건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의 내밀한 구석을 추적하는 박기용 감독은 <돌아온 외팔이>의 왕우에게 홀딱 반했고, 코미디의 대가 장항준 감독은 영국서 날아온 삼류 멜로영화에 눈물을 쏟았다. 굵은 선의 남성영화가 트레이드 마크인 김성수 감독은 ‘호스티스영화’ <벌레먹은 장미>에 충격받았고, <색즉시공>은 섬세한 감성의 민규동 감독의 성장선에 자극을 줬다. 그리고 ‘쌈마이 코미디’의 대가 김상진 감독은 빔 벤더스의 시적 영상에서 영화를 발견했다니…. 한국을 대표하는 16인의 감독이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세계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들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 영화들에 대한 애정을, 드디어 고백했다. 이름하여 감독들의 ‘나 홀로 사랑한 영화’, 또는 커밍아웃. - 편집자편집 권은주 곽 경 택 - <친구> <챔피언> 감독 거세된 남자 사이로 보이는 감독의 힘 <내시> 1986년 | 감독 이두용 | 출연 안성기, 이미숙 그때 <내시>가 상영되던 극장으로 들어간 건 우연이었다. 대학 1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 부산 극장가에 나갔을 때 시간대가 맞고 표가 남은 것은 <내시>밖에 없었다. 결국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눈물을 머금고’ 극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후궁으로 들어가자 그녀를 따라 내시로 입궐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선 안성기가 주인공 내시 역할을 맡았고, 남궁원이 내시들의 대장인 내시감으로, 길용우가 왕으로 나왔으며, 이미숙, 김진아도 출연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는데, 우선 영화의 템포가 엄청나게 빨랐다. 한 장면 안에서 기승전결을 다 보여주느라 축축 늘어졌던 당시의 한국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편집 리듬은 굉장히 가벼웠다. 내시끼리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내시감이 방문을 열고 뛰어들어오는 장면이 바로 이어지는 식으로 이야기는 순발력이 있었다. 영화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내 눈에도 또렷하게 남았을 정도였으니까. <내시>는 내시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도 뒤집는다. 특히 남궁원은 간사한 목소리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지 않고, 그 특유의 굵은 목소리와 뛰어난 무공을 보여준다. 왕을 최측근에서 모셔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저렇게 무술을 잘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인형을 감싸안으며 왕에 대한 경호 훈련을 받던 내시들을 남궁원이 몽둥이로 때리자, 안성기가 머리로 남궁원을 치받는 장면이나 거세당하면서 울부짖는 내시의 모습 등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시들의 바지를 벗기고 ‘검사’를 하는 장면에서 고등학생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다는 뒷이야기도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다. 그때 이후로 나는 <내시>를 비디오로 한번 봤고, <친구>를 끝내고 잠시 사극을 고민할 때 영상자료원에서 프린트를 텔레시네로 떠 몇 장면을 참조한 적도 있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굉장히 전형적인 영화며 당시 유행하던 코드들을 뒤섞은 작품에 불과하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떡치는’ 영화라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시>는 내게 영화감독이라는 지위를 인식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뒤에 있는 감독이, 힘있고 템포 빠른 영화를 만드는 이두용 감독이 처음으로 내 눈에 보였던 것이다. <내시>는 나의 뇌리 속으로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열심히 ‘뻠뿌질’해준 영화인지도 모른다. 김 상 진 -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감독 천사가 꾸는 꿈, 인간이 되는 꿈 <베를린 천사의 시> 1993 | 감독 빔 벤더스 | 출연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르틴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베를린의 하늘에서 사람들을 살펴보고 기록하는 임무가 있었다. 다미엘은 그렇게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때론 그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며 그냥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엘은 서커스에서 가짜 날개를 달고 공중곡예를 하는 여인을 발견하곤 깊은 연민과 사랑을 시작한다. 이 여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천사’ 같은 인간 마리온이었다. 천사 다미엘은 천사였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영화배우 피터 포크를 만나게 되고, 결국 다미엘은 천사로서의 생명을 끝내고 한 인간으로서 마리온을 찾아간다. 이것은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빔 벤더스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사가 인간이 된다는 것과 덧붙여 천사였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영화배우 피터 포크를 만난다는 설정 때문이다.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할 것 같은 이 영화에서 갑자기 나타난 피터 포크를 보는 순간의 반가움과 그 발상의 기발함이란 눈앞에서 별이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건 막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동숭아트센터에서 하는 시사회를 보러 갔는데 독일어 대사에 프랑스어 자막이었다. 그러니 내용에 충실하기보다는 영상과 느낌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영화가 가진 심오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글자막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그렇지만 느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베를린 장벽, 시민, 기념탑, 문, 낙서 이런 것들이 풍겨오는 것에서 천사인 주인공이 왜 불멸을 포기하고 그 속의 인간이 되려고 하려는지…. 물론 내 자신이 전쟁에 대한 심오한 사상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고 구원하고 싶어하는 천사의 느낌만큼은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았다. 이소룡의 영화들, <영웅본색>, 그리고 수많은 할리우드영화들을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던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아, 영화를 통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덧붙여 언젠가 베를린에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화 속에 나오는 그 수많은 전쟁의 상처가 깃든 곳들을 꼭 가봐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까지 수차례에 걸친 유럽 여행과 출장을 갔으면서도 아직 베를린을 못 간 이유는 왜일까? 그 영화 속 모습들이 현대적 모습으로 바꿔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언제가는 베를린에 꼭 가볼 결심을 새삼 확인하며…. 김 성 수 -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감독 에이젠슈타인이 다 뭐냐! <벌레먹은 장미> 1982년 | 감독 정회철 | 출연 정윤희, 이영하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82년인가 83년이었다. 저녁에 TV를 켜면 늘 미디엄바스트숏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나왔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냥 깜깜했고, 앞으로 무얼 하며 살지 답답했다. 대체 나란 인간은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가망없는 청춘이었다.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는 데는 술먹고 꼬장부리거나 동시상영하는 변두리 극장을 찾는 게 최선이었다(그때까지 영화를 만든다거나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군입대를 얼마 앞두고 학내 연극에 흠뻑 빠져 있던 그 무렵, 과 동기인 세명의 단짝 친구들과 함께 화양리 동부극장에서 한국영화 <벌레먹은 장미>를 봤다. 스토리도 가물가물하지만 웬일인지 몇몇 시퀀스는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학원생 이영하를 뒷바라지하는 착한 술집아가씨 정윤희는 작은 아파트에서 여동생(친동생은 아니었지 아마)과 함께 살았는데, 이영하와 정윤희가 그 짓을 할 때면 여동생은 어김없이 벽에 난 구멍(평상시엔 <펜트하우스>의 성기모양 립스틱이 그려진 종이로 가려져 있음)으로 훔쳐보며 자위행위를 했다. <해피엔드>만큼이나 그 당시로선 무척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바로 그 장면 중간에 뜬금없이 대로변에서 복개공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육교가 뒤로 보이는) 이어서 건장한 남자가 굴착기로 땅을 뚫는 장면이 클로즈업되고 그 요란한 진동소리와 함께 훔쳐보는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후반부에 이영하가 정윤희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차 안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핸드브레이크가 풀려 강으로 빠져 죽는, 착한 술집여급을 배반한 기회주의자의 인과응보를 그토록 자극적으로 묘사하다니…. 우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셋은 썰렁한 극장 안에서 쉬지 않고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비아냥거리는 투로 낄낄댔지만 사실은 한국영화도 진짜 꼴X게 만든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것 같다. 함께 영화를 본 두 친구(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와 MBC의 안판석 감독)는 몇년 뒤 같이 영화서클을 만들었고, 이른바 고상한 유럽영화를 안주 삼아 떠들다가도 이따금 <벌레먹은 장미>를 떠올리곤 했다. 격동의 80년대 초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론에 필적할 만한 한국영화가 있었노라고! 한국영화 보는 걸 부끄러워하던 그 시절, 외국영화만 화제로 삼던 그 무렵 <벌레먹은 장미>는 혈기방장한 우리를 흥분시킨 걸작이었다!! 김 용 균 - <와니와 준하> 감독 링 위는 지옥이다. 외롭고 추운 <지옥의 링> 1987년 | 감독 장영일 | 출연 조상구, 전세영, 신성일 나는 가끔 뒤지게 얻어맞는 꿈을 꾼다. 아무 이유도 없다. 날 때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길 가다가도 누군가 다짜고짜 퍽치기를 할 것 같아 움찔 놀라곤 한다. 왜 그런 망상에 사로잡히나 생각해봤다. 지은 죄가 특별히 많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약간의 정신병이겠거니 여기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맞는 게 죽기보다 싫다. 나는 사람을 때리는 것도 싫다. 아마도 사람을 때리는 일이 생긴다면 맞기 싫어서 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키 크고 힘센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동네 극장 앞에서 평소 그 친구를 경계하던 무리들과 맞닥뜨렸다. 녀석들 중 하나가 시비를 걸더니 다짜고짜 선빵을 날렸다. 기습적으로 얼굴을 가격당한 친구는 상대의 멱살을 잡고 버티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내 친구를 에워쌌다. 나는 녀석들에게 덤비지 않았다. 점잖게 타일렀다. 친구는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외롭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덤벼들지 않았고 극장 앞이라 말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그뒤 오래도록 나는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다. 까짓 좀 맞으면 어때서 친구가 맞는 꼴을 보고만 있었다니. 그 무렵 나는 이현세와 허영만의 만화를 즐겨봤다. 주인공 까치와 강토의 공통점은 깡말랐지만 열정적이고 의지력이 강한 인간이면서도 한편 너무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결국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 영웅이라는 것이다. 내 취미는 까치의 눈빛 만들기, 목표는 강토의 몸 만들기였다. 현재 나는 살은 뺐지만 배는 볼록 나왔고 눈빛은 술 먹어서 뻘겋기만 하다. 까치는커녕 토끼눈이 됐다. 이현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지옥의 링>을 나는 고3 때 봤다. 진주 고향집을 가출한 뒤 무작정 서울로 왔는데 고작 영화라니. 하지만 링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심정이던 내게 이 영화는 절실했다. 영화적으로야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세상이라는 링 위에 선다는 것은 지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임을 보여준 까치의 눈빛은 여전히 절절하다. 맞는 건 누구나 두렵다. 맞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도 여전히 맞는 건 두렵다. 하지만 괜찮다. 자꾸 맞다보면 그것도 쾌감이 생긴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 비록 죽더라도 그게 뭐 대수인가? 열심히 싸웠으면 됐지.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가편집본 인터넷 유출 뒤 악성 리뷰에 시달리는 <헐크>

헐크의 화를 돋우는 건 영화 속 악당만이 아니다. <와호장룡>의 성공으로 작가주의 블록버스터 대열에 동참하게 된 리안 감독의 <헐크>(미국 개봉 6월20일, 국내 개봉 7월4일)가 개봉 직전부터 사나운 ‘입담’에 시달리고 있다. 첫 시사를 2주 정도 앞두고 가편집본이 인터넷에 유출된 ‘사고’가 시작이었다. 가편집본이 인터넷을 통해 나돌아다니게 된 운명은 <스파이더 맨>이나 <니모를 찾아서>도 겪은 일이지만, 문제는 악성 리뷰다. 미완성본을 돌려본 네티즌들이 영화에 대한 가십을 다루는 웹사이트 ‘에인트 잇 쿨 뉴스’에 불만족스런 리뷰를 잔뜩 올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탄생한 헐크가 표적이었다. “이 영화의 성공은 관객이 헐크가 사실적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린트는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헐크>에 1억5천만달러로 추정되는 제작비를 쏟아부은 유니버설이 가만있을 리 없다. CG 작업이 끝나지 않은 걸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건 공정치 못하다며 인터넷사이트쪽에 리뷰 삭제를 요청했다. 어쩐지 이 사태는 영화 속에서 브루스 배너 박사가 감마선을 잔뜩 뒤집어쓰고 고통스런 주인공이 된 사고를 연상케 한다. 북미 개봉 직전, 각종 매체가 포문을 열었다. <뉴욕타임스>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제목이었던 를 빗대 “믿을 수 없을 만큼 길고(러닝타임 137분),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장됐다”고 몰아쳤다. “문제는 그들이(리안과 프로듀서이자 각본을 맡은 제임스 샤무스) 동시에 10가지의 다른 방향으로 영화를 몰고가더니 제작과정에서 시각적 명쾌함, 내러티브의 힘, 감정적 효과 등과 같은 기초 요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는 좀더 진중한 표현을 썼지만 우호적이지는 않다. “결말을 제외하고는 10대 초반의 관객이 혼동을 일으키거나 당황케 하는 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스파이더 맨’의 군중이 그리스 비극의 이중적이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갈등의 이야기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란 힘들어 보인다.” 물론 호평도 있다. <뉴스위크>의 데이비드 앤선은 “어쨌든 <헐크>를 봤다면 누구나 원시적이고 강력하면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미지를 잊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헐크>는 매혹스런 통합체다. 낡은 것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기도 하며, 어디선가 차용한 듯하기도 하며, … 녹색의 그 무엇이기도 하다”고 칭찬했다. 비평의 수위가 어찌됐든 가장 궁금스런 대목은 성난 ‘헐크’의 이미지다. <롤링스톤스>의 피터 트래버스는 이 영화에 별 셋을 주면서 오래된 질문부터 시작했다. “15피트에 이르는 거대한 녹색 헐크로 변할 때, 이런 궁금증을 떠올리게 된다. 왜 브루스의 바지는 찢어지지 않을까?” 트래버스는 헐크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헐크의 몸은 중량감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그가 사막에서 녹색 비치볼처럼 튀어오를 때.” 과학자 브루스 배너 역을 맡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에릭 바나는 배너가 헐크로 변한 뒤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녹색 거인 헐크는 컴퓨터그래픽으로 탄생됐으니까. 그런데 실은 그 녹색 거인을 리안이 ‘연기’했다면? 리안은 기술 스탭에게 자신이 원하는 헐크의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커다란 옷을 입고 직접 실연을 했고 이를 카메라로 찍어 활용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글쎄, 사랑도 변하더라니까, <봄날은 간다>

사실 그날 밤 우리가 왜 다퉜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개의 부부싸움이 그렇듯이 싸우다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말다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공간에서 마음속에 높은 담을 쌓은 채 누군가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화풀이 상대로 고른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보다가 혹시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워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말 한마디만 하면 나도 모른 척 넘어갈 텐데, 미안하다고 말할 텐데…. 1분 1초가 흐르는 것조차 셀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가는 시간 앞에 헛기침 한번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잠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무력감과 허탈감. ‘나는 속상해서 죽을 지경인데 잠이 오나?’ 정말 야속하다. <봄날은 간다>를 토요일 밤. 하필이면 남편과 싸운 그날 밤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쌩하니 아리다. 특히 상우가 은수에게 했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혼잣말 같은 이 말은 큰소리가 되어 한참을 머릿속에 뱅뱅 돈다. 결혼하기 전 어느 해인가 많은 눈이 내렸던 12월31일. 그는 한해의 마지막날에 내 얼굴 한번 보겠다며 연휴 근무를 선배와 바꾸고 목포에서 서울까지 길이 얼어 차가 빙빙 돌고 갓길로 처박히는 무시무시한 고속도로로 차를 끌고 온 적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해 그가 열심히 내게 삐삐(비퍼)를 치는 그 시간에 나는 입사 동기들과 종로거리를 헤매느라 그가 온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그가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며 그날 밤 목포로 돌아가버린 사실을 이튿날 알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는 연락 한번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다 잡은 물고기(?)라고 이럴 수가 있나? 누구든 그랬겠지만 적어도 내 사랑은 남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우리의 사랑은 처음 그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되도록 백년해로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아니 그것도 모자라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우리 또 결혼하자고 했었는데 다 철없을 때의 이야기인가? 그날 밤 내린 결론, ‘그래 우리의 사랑도 변했다!’ 그렇게 영화는 완전한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 사랑이 변하면 끝장나는 거야. 난 상우의 열병 같은 첫사랑을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대나무숲에서 들리는 소소하지만 부드러운 바람소리가 좋았다. 초등학교 다닐 적 해남 외갓집 담에는 하늘처럼 높은 대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댓잎을 꺾어 조리를 만들고 입으로 피리를 불어봤지만 풀풀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또 외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일가친척이 다 모여 하얀 쌀떡을 조청에 찍어 먹던 기억과 깨끗한 적삼저고리를 입고 은비녀를 꽂은 외할머니의 단아한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기신 외할머니가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간혹 정신을 놓으신다는 엄마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었지. 내 봄날은 영화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사랑이 지나가버린 기억 속의 봄날이지만 나는 끝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 내 감정도 내 일상도 봄을 지나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날 어느 하루쯤에 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누가 먼저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변한 것 같다. 다음날 회사에서 방송을 준비할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목소리. “영아야. 지금 나 출근하는데 비가 내리네. 우산 안 가지고 왔지? 회사 앞에 나 와 있어. 지금 바로 내려와.” 퉁명스럽던 내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지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룻밤 뒤척이면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연분홍 치마처럼 휙… 하니 날아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