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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한국영화산업 X-ray 7 - 해외시장 경쟁력 확보 방안 [2]

“개별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수용상태, 인식변화에 대한 지식없이는 프로페셔널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세일즈 회사가 직면한 과제이며, 실제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1∼2년 안에 거품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 각국 시장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DB 구축, 전문적인 마케팅 능력이 필수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금 안으로부터 나오는 정보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문혜주) 요컨대 지금 해외판매 종사자들의 화두는 DB 구축과 지역화(localize)가 되었다. 이 작업은 한국영화를 사서 개봉한 외국 회사들로부터 배급 실적 보고서(sales report)를 받는 데서부터 첫 단추가 꿰어진다. 그 다음 단계는 이들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여러 개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시장 특성에 대한 분석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개별 영화의 판매가를 판단하고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으며 현지 실정에 맞는 마케팅이 이루어지도록 협의하고 지원하는 고도화된 단계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쪽에서 프로모션하는 대상은 현지의 구매자들이다. 그들이 영화를 수입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이쪽의 정확한 목표가 되어야 하고 직접 관객에게 가닿는 문제는 현지 마케터들의 소관 사항”(신철 신씨네 대표)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도 유념해둘 만하다. 현재 판매회사 가운데 일부는 외국 회사로부터 마케팅 보고서를 받아서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DB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자료에 대한 판단 능력도 초보적이거나 개안 단계라는 것이 자체 진단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민간회사 단독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이거나 효용성이 떨어지는 작업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끼어들어 근사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안성맞춤인 일인데, 민간회사는 “자료를 넘겨줘도 실적 발표용으로 쓰이고 만다”고 푸념하고 당사자들은 “여러 가지 뜻은 있지만 지금 하는 일만 하기에도 일손이 달린다”(노혜진 영진위 해외진흥부)고 하소연한다. 영진위가 무언가 발상을 바꾸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할 때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어쨌거나 이렇게 얻어진 통계들은 “해외가 단일 시장이 아니다”라는 경험 법칙을 뒷받침해준다. “일단은 검은 머리 시장과 그 밖의 시장으로 확연히 나뉘고, 같은 아시아라도 일본, 대만, 홍콩이 다르고 비아시아 시장도 유럽과 미국이 다르다.”(이송원 전 미로비전 이사) 규모로 보면 아시아가 전체의 70%, 유럽과 북미가 20∼30%를 차지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같은 시각을 얻게 된 전환점이 된 영화다(표 참조). 한국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고 스크린 수가 10개만 넘어도 와이드 릴리즈로 간주되는 홍콩에서 프린트 17벌에 박스오피스가 2천만홍콩달러를 기록한 것을 비롯, 아시아 전역에서 대부분 흥행했다. 이후 외국 바이어들이 한국영화의 상업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였고 한국영화가 안정된 가격에 협상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판매회사로서는 박스오피스와 마케팅(P&A) 비용의 관계를 인식하면서 개별 시장의 특성과 배급사의 역량에 대한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갖기 시작했다. 제작자에서는 “엽기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야만적, 잔혹한’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는 것을 몰랐다. 개봉 당시에 ‘서쪽에서 온 그녀’라는 제목을 제안받았는데 도쿄 입장에서 서쪽인 오사카 여자는 욕도 많고 드센 여자를 뜻하며 오사카에서 봤을 때는 한국이 서쪽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신철)고 했다. 결론은 제목 때문에 2∼3배의 시장 가능성을 놓쳤다는 것이다. 04. 국내 영화계 손발 맞춰야 할 때 제작사와 배급사가 대부분 국내 개봉 위주로 후반작업을 서두르기 때문에 해외 판매용으로는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예컨대 ME(music & effect)를 따로 분리하지 않아 나중에 비용이 곱절로 들거나 아예 음원이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한다. 텔레시네의 전반적인 퀄리티 문제로 반려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번짐 현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특정 공정을 밟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 저작권도 영화를 팔고나서 사후 해결에 골치를 썩이는 분야. “아시아 지역은 아직 덜 민감하나 미국이나 유럽에 팔 때는 뒷골이 당긴다”는 게 세일즈맨들의 하소연이다. 이러니 최종 합의에 1년씩 걸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 현지 배급에 맞추어 스타들이 홍보에 나설 수 있는 스케줄을 확보하는 것도 희망사항 중 하나. 중국의 불법복제에 대해서는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가 나서서 통상 문제 차원으로 협의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 현장의 불만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중국에서 800만 카피가 팔렸다는 설이 있고 전지현은 6억원짜리 CF를 하는 한류 스타가 되었지만 한국 회사는 수입이 거의 제로다. 판매회사의 역량 제고에 대한 요청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부스를 차린 회사를 기준으로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시네클릭아시아, 강제규필름, 미로비전, e픽처스, 튜브엔터테인먼트, KM컬처 등 총 7개사가 활동 중인데, 단순히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에서 한발 나아가 영화에 대한 식견과 제작 및 기술 관련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이제 기본 상식에 속한다. 아직은 부딪치면서 보충해가는 형편인데, 그나마 “파티걸 노릇에 그친다”거나 “자사 이기주의에 갇혀 큰 그림을 못 본다”는 불평을 듣는 사람도 없지 않다. 연간 제작편수 50∼60편인 나라에서 판매회사가 7개라는 것은 부담스러운 숫자인데 각자의 장점을 특화해야만 시장의 압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단순지원에서 정책수립으로의 방향전환”(이건상)에 대한 요구를 인식은 하고 있으나 몸이 따르지 않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업무는 선명하고 깔끔한 편이지만, 공적 기관이나 정부와의 관계 전반에 대해서는 요구하는 사람이나 돕는 사람이나 기대 수준이 낮다. 심지어 올해 칸영화제에서 문화관광부 고위 관료와 영진위가 보인 언행에 대해서는 “초를 치지나 말라”는 소리도 나온다. 방향전환의 일환으로 최근 영진위는 프랑스와 공동제작 협약을 맺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데, 무려 40개 국가와 유사한 협약을 맺고 있는 프랑스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교환가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아직 기초적인 논의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가 안고 있는 예산상의 한계를 돌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기업 협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송원 전 미로미전 이사는 “<쉬리>를 유럽에 내보낼 때 현대자동차가 서유럽에 5천만달러를 지원하도록 설득했다가 IMF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 100만달러 정도는 단일기업에서 그리 큰돈이 아니고 영화는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도 아직 미개척인 영역이다. 재미있는 캠페인이 나올 소지가 많고 쌍방의 이익이 클 것이다. 이것은 돈이 아니라 머리의 문제”라고 제안한다. 영진위가 아직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단편독립영화다. “단편독립영화는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주류영화가 잘되는 나라는 반드시 단편독립영화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쪽 감독들은 영화제를 활용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나갈 수 있도록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단편독립영화의 제작편수는 400편대에서 고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프로모션의 혜택을 입는 것은 상위 25%이고 그중에 10편 정도가 해외 배급채널까지 닿는다. 30∼40편이 꾸준히 서클을 따라 돈다. 외국 시장 규모는 수천만원대, 국내까지 합하면 2억원 정도로 노하우나 네트워크가 쌓이면 장편처럼 큰돈 안 들이고도 활동할 수 있다. 초기 인프라 쌓는 것만 밀어달라”(구정아, 인디스토리 이사)는 요청을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국내의 각종 시스템을 효율화, 고도화하고 그것을 수행할 전문 인력과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기조다. 이것은 해외문제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브루스 리 프로젝트’라는 7천만~1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할리우드에서 추진하고 있는 어떤 이는 “과대망상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할리우드의 쟁쟁한 사람들에게 안 꿀린다. 해볼 만하겠더라. 과정은 훨씬 길고 복잡하지만 영화 하는 사람들의 생리적 화학작용은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단 한국에서 확실한 경험을 쌓고 공부해야 한다.”(신철) 이제 슬슬 움직여보는 거다.글 김소희 cwgod@hani.co.kr·편집 심은하eunhasoo@hani.co.kr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인터넷 소설은 어떻게 한국영화를 사로잡았나 [3]

명제3 | 세상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서사의 중압을 탈피하라 과거사와 인간의 내면이 더이상 흥미롭지 않다면, 의미있는 건 지금 이곳의 사건일 뿐이다. 복잡다단한 인물들의 관계는 최소로 줄어들고, 남녀는 서로간의 옥신각신, 또는 티격태격 공방전으로 거의 모든 내용을 채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엽기적인 그녀>가 나와 그녀 사이의 숨바꼭질일 수밖에 없는 이유, <옥탑방 고양이>가 주인님과 고양이의 쾌유적인 사랑놀이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여기서 구성의 미덕이나 심리적 깊이는 더이상 존중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서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멈춰서는 이야기도 있다. 앞의 사건을 뒤의 사건이 따라붙거나, 앞의 원인이 뒤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 등은 드물다. 촘촘하게 얽혀 있는 전체의 틀은 인터넷 소설과 그 영화들의 기준에서는 짊어질 필요가 없는 무게이다. 단지 유사한 양과 사건으로서의 에피소드들이 이들이 원하는 것이다. 벽돌처럼 쌓이면서 원한이 깊어간다거나, 의혹이 짙어가지 않는다. 매번 그회, 또는 그 다음회에 막을 내리며 그들 관계의 동등한 ‘다툼’의 장을 재구축한다. 영화에선 이 점이 한 공간을 구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옥탑방 고양이>의 옥탑방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2층집 공부방처럼. 물론, 그 에피소드는 단발적인 코미디의 영역에서 소재를 바꿔가며 큰힘을 발휘한다(현재 영화화되는 인터넷 소설 대부분은 유머 사이트에 올랐던 것들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보여주었던 갑작스런 에피소드들, 그러니까, 소나기 패러디, 시나리오 상상 등이 그렇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시도때도 없이 끼어드는 주변 인물들. 에피소드는 모든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의도로 차용된다. 올리고 싶을 때 올리고,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는, 그런 자유로움을 서사의 방식으로 차용한다. 영화는 그 논리를 따라 신을 나눈다. 따라서 전형적인 인과관계의 요구는 이들 사이에서 묵살당한다. 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통해서이며, 그건 그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말이다. 전형의 서사가 강박으로 흐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유쾌하게 빠져나오는 전략을 꾀한다. 여기에 만화적 상상력이 서사의 허술함을 상쇄하는 무기로 등장한다. 명제4 | 만화적 세상을 찬미하라-이모티콘 혹은 만화적 상태에의 동경 인터넷 소설 영화화과정에만 만화가 개입했던 것은 아니다. <비트>는 만화주인공을 스크린으로 데려와 감정이입시킨 성공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인터넷 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인터넷 소설의 특징이 무엇인가? 인터넷 소설의 출현을 영상세대의 소설쓰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마치 인물들의 감정과 표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모티콘이 사용된다. 일종의 약호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모티콘은 영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문자이다. 그러므로 그 이모티콘이 지배하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다시 한번 영상과 문자 사이의 재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소설이 감정의 표현을 이모티콘으로 소화했다면, 그것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다시 이모티콘을 배우들의 표정과 반응으로 연출한다. 그런 점에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의 표정은 영락없이 살아 있는 이모티콘이다. 이들의 연기가 서투르다는 건 올바른 지적이 아니다. 이들은 만화적인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인터넷 소설 중에서도 서술의 재치에 생명을 거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의 행간을 이용하여 상상의 그림을 채워 넣도록 요구하는 작품들이 있다. 10대 작가의 작품일수록 그 수위는 더하다. 이들 행간에는 만화의 그림이 빠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만화를 사이에 두고 인터넷 소설과 영화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만화적 동심의 테이블 말이다. “휜 얼굴… 짧게 올려세운 노란 머리… 쌍커풀 없지만 큰 눈… 일본 혼혈아처럼 생겨 있었다… 일본 만화책에 종종 등장하는 반항아에 전형적인 얼굴….(-_-^)”_ <그놈은 멋있었다> “야옹이가 3개월 동안 부산대 뒷문 근처에 있는 만화방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T.T 아아~~ 그 산더미 같은 만화의 궁전… 만화책 베고 덮고 깔고 하던 그 꿈의 시절.”_<옥탑방 고양이> 에필로그 | 가능성과 한계 말하자면, 인터넷 소설의 독자와 그 영화화된 작품의 관객은 일치하는가? 또는 그 효과는 같은가? 그 사이에는 어떤 융화의 전략이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비캠의 김형준 이사는 “잘못하면 생뚱맞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인터넷 소설 영화화 과정에 신중함이 필요할 때임을 지적한다. 여기서 생뚱맞음이란 여러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관객을 자극하지 못하는 유효기간 지난 재료로 인터넷 소설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소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들의 경험에 바탕하면서도, 그 시기를 이미 훌쩍 넘어버린 관객의 ‘추억’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모색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몇 작품이 그러했듯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들은 스토리를 보충하고, 또는 덜 엽기적으로 강도를 가라앉히고, 또는 다른 장르적 코드를 가용하면서 통합적인 모습을 띨 것이다. 지금까지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흥행적으로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패러다임의 유효성에 따라 실패와 성공으로 분명하게 양분될 여지가 있다.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에 관한 제작자들의 하나같이 동일한 대답들이 오히려 그 점을 뒷받침한다. 아직 좌표를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소재 마련의 용이함이라는 측면으로 쉽게 ‘가능성’이라고 불려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상이다. 조폭코미디가 코미디를 끌어들였을 때, 그러니까 <넘버.3>가 조폭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때 그것은 가능성으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당분간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받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첨가와 수정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용의 좌표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정한석 mapping@hani.co.kr 현재진행형의 인터넷 소설들우리 수다가 영화로 된다구요? +_+/// (원작/원작자/제작사/진행상황) ■ 옥탑방 고양이 | 김유리 | LJ필름 | 시나리오 작업 중 반지하방에서 옥탑방으로 ‘위치 상승’한 25살 여주인님과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 한 마리는 3kg. 또 한 마리는 70kg. 이 큰고양이와 동거생활. 남들 머리 위에서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동거남녀의 이야기. 여주인님은 그를 야옹이라고 부른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원작에 비교적 가깝게 영화화할 예정. ■ 내 사랑 싸가지 |이햇님 |제이웰엔터테인먼트 | 시나리오 작업 중 “니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넌 내가 사랑하는 왕자님이야….” 싸가지 없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안형준. 나(강하영)의 과외선생. 또는 옵빠. 대체로 그넘이라고 부른다. 10대 인터넷 소설의 신호탄. ■ 그 놈은 멋있었다 | 귀여니(이윤세) | BM&LP픽쳐스 | 시나리오 작업 중 10대 인터넷 스타 작가 귀여니의 고2 때 작품. 곱슬머리 파마, 별로 예쁘지도 않은 한예원, 잘생기고 쌈 잘하는 사대천왕 대가리, 지은성에게 맞장을 걸다. 일본 만화의 정서에 한국 여학생의 현실? ■ 백조와 백수 | 나영준 | 청년필름 | 시나리오 작업 중> 인터넷 소설계의 노짱. 끝이 ‘지’자로 끝나는 게임을 하며 만난 그놈 혹은 그 백수. 할 일없어 보이는 그 백조. 백조와 백수가 만들어내는 유쾌한 러브 스토리. 각각 백조와 백수의 시각으로 에피소드를 이끌어간다. <품행제로>의 이해영, 이해준이 작업 중. ■ 삼수생의 사랑 이야기 | 이원영 | 튜브픽쳐스 | 시나리오 작업 중 미대생 유니(이효리 캐스팅 확정)를 짝사랑하는 어느 음대 지망 삼수생의 짝사랑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인터넷식 유머. ■ 색마전설 | 정성환 | 신씨네 | 시나리오 작업 중 하이텔 성인 유머난의 베스트셀러. 보험회사 대리인인 27살 조거봉과 노처녀 형사 오미란이 벌이는 ‘성적’ 사건들의 연속. 야한 대사, 야한 상상. 제목만큼 밝히는 그넘.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여름 노리는 헐리우드 대작 2편

<매트릭스 2>가 이제 그 기운을 다한 가운데, 여름 영화시장을 겨냥한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경쟁이 달아오르는 때다. 엄청난 물량, 스케일 큰 액션, 오락에 복무하는 이야기 등 대작영화의 공식은 철저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변종 같은 새로운 영화를 만난다. <헐크>와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는 각각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이단의 길과 관성적인 길을 걷고 있다.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액션만 즐겨라, 내용은 따지지 말고‥ 7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를 영화화한 <미녀 삼총사>(2000)는 팔·다리 늘씬한 언니들이 보여주는 컴퓨터그래픽(CG) 액션의 신선함이 있었다. 섹시한 모습은 도발적이며 여유와 유머의 기운이 있었다. 그건 이야기의 허술함을 상쇄할 만한 매력이었다. 하지만 속편격인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에서 이제 그 신선함은 유효기간에 달한 듯하다. 액션장면 재미있다. 몽고에서부터 캘리포니아를 누비며 삼총사는 긴 다리로 차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산악을 가르며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근데 황당한 이야기 속에 액션은 일관성도 논리성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삽입된, 몸매를 드러내는 춤과 노래는 섹시함과 당당함을 넘나들던 전편의 아슬아슬한 선도 넘어버린다. 1편의 멤버 그대로 나탈리(캐머런 디아즈), 딜런(드루 배리무어), 알렉스(루시 리우)는 백만장자인 사설탐정 찰리의 ‘에인절’이다. 이들은 보슬리(버니 맥)의 연결로 스피커 속 찰리의 지시를 받아 몸 바쳐 사건을 해결한다. FBI의 증인 보호프로그램의 암호를 해독하는 2개의 반지를 찾는 게 이번 임무다. 전직 ‘에인절’이자 악녀로 이 영화를 위해 온갖 성형수술을 감행했다는 데미 무어가 등장한다. 미녀 삼총사의 추리력과 운동신경, 찰리에 대한 헌신감은 언제나 궁금증의 대상이다. 어떻게 사건현장만 가면 금방 추리해내 옆동네에서 범인을 찾아내는지,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면 정확히 비행기 날개에 착 매달리는지, 어떻게 얼굴 한번 못 본 찰리에게 그리 희생적인지. 그러니까 따지지 말고 만화 같은 액션만을 즐길지어다, 언니들의 섹시함은 부록으로. 그 ‘막가는 맛’이 영화의 재미일 수도 있으니. 27일 개봉. ●리안 감독 <헐크> 억압적 대상에 무한의 힘 휘두르는 쾌감 1억5천만 달러를 들인 138분 상영시간의 리안 감독의 <헐크>는 독특한, 그리고 진귀한 할리우드 대작영화다.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의 주인공을 끌고 와 이렇게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어두운 세계를 창조한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정도일 것이다. 고담시라는 도시의 볼거리가 있던 <배트맨>은 여기에 비하면 아기자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순간의 정적 뒤에 따라나오는 폭발적인 액션의 대비는 헐크의 운명처럼 쓸쓸하고 선이 굵다.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 등을 통해 끈질기게 가족의 관계를 파고들었던 리안 감독은, 그 고민을 헐크에게 고스란히 짊어지웠다. 1962년 시작된 만화나 77~82년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두얼굴을 가진 사나이>)와 달리, 영화의 초점은 아들과 아버지에 맞춰 있다.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는 군 기지에서 유전자 변형 실험을 하던 과학자지만 정부가 인체실험을 금지하자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는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가 끌려간 뒤 30년, 그의 아들 브루스(에릭 바나) 역시 과학자로 성장해 있다. 어느날 감마선에 노출된 브루스는 몸 안에 있는 ‘그것’을 발견한다. 분노하면 나타나는, 너무나 특별해서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 헐크를 그의 동료이자 연인 베티(제니퍼 코널리)만이 감쌀 뿐이다. 영화 시작 50여분이 지나야 등장하는 헐크는, 미스터 아메리카 루 페릭뇨가 연기했던 텔레비전물과 달리 ILM의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창조물이다. 시속 140㎞로 달리고 지상에서 4㎞까지 뛰어오르는 거대한 초록 괴물이 우습지 않을까, 커다란 슈렉은 아닐까, 말도 우려도 많았다. 분명 그런 느낌은 있다. 역삼각형 모양의 체형, 에릭 바나의 얼굴을 비슷하게 부풀려놓은 멀끔한 생김새, 통통 튀는 느낌, 무엇보다 끝내 안 찢어지는 팬츠 등이 자꾸 신경쓰인다. 근데 대낮의 광활한 사막과 그랜드 캐년 등을 날 듯이 뛰어다니는 헐크의 액션을 보다 보면 묘한 쾌감이 든다. 날쌘 배트맨의 차나 하늘을 날아오르는 수퍼맨의 망토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힘은 원시적이고 강력한 매력이 있다. “가장 두려운 건 그 놈이 날 지배할 때 내 스스로가 즐긴다는 거야”라고 브루스도 말했지만, 억압적인 대상(영화에선 군)을 향해 날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에선 ‘자유’의 기운까지 느껴진다. 우연한 기회에 힘을 얻는 코믹스의 여타 주인공과 달리, 헐크는 자기의 아버지에 의해 어두운 운명을 타고났다. “내 한계를 극복하려 했을 뿐이야. 진실을 알 때 신의 벽을 넘을 수 있어”라 외치는 데이비드와 그 운명에 분노하는 브루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갈등을 빚는 아버지와 아들인 동시에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 지킬과 하이드처럼 인간의 양면이기도 하다. 리안 감독은 이렇게 CG기술과 엄청난 제작비를 이용해 상상해볼 수 있는 모든 액션(심지어 헐크와 유전자조작된 개들은 나무 위에서 싸운다, <와호장룡>처럼!)을 해보되 드라마는 철저히 자기의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게 좀 심하면 아예 연극무대 같은 조명아래 아버지와 아들을 앉혀놓고 아버지가 연설을 하도록 한다. 베티만을 보면 마음이 녹아버리는 헐크는 어이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리 닭살 돋지 않는다. 단 한번의 유머도 없는 이 오락영화를 사람들이 얼마나 ‘오락적’으로 느낄지 모르겠지만, 할리우드 코믹스 대작영화는 <헐크>로 또 한걸음 나아갔음이 분명하다. 7월4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 촬영현장

조폭 마누라의 메멘토? 대전시 용두동 시장 어귀에 지어진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제작 현진시네마·감독 정흥순)의 야외세트장, 중국집 ‘슈’. “이렇게 하면 되나?” “확 펼쳐야지.” 신은경과 정흥순 감독은 조용조용 어떻게 반죽을 날릴 것인가 고민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신은경이 곧 날리게 될 밀가루 반죽을 ‘진짜’ 수타맨이 촬영 직전까지 다듬었다. 극중 날아간 밀가루는 젊은 처자 차은진에게 흑심을 품고 찾아온 고리대금업자 고사채(주현)의 목에 걸린다. 한편, 영화 <사랑과 영혼>을 패러디하는 것이 오늘의 또 다른 촬영 컨셉. 중국집 주방장 재철 역을 맡은 박준규는 부끄러워하다가도 “감독님 덕분에… 킬킬킬” 하며 농담을 던진다. 뒤늦게 현장에 들어선 이원종은 조동관 촬영감독의 구박에도 꿋꿋하게 슬라이트 입봉식을 거행했다.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은 전편의 여두목 차은진이 기억을 잃어버린 채 중국집 종업원으로 일한다는 설정. 그녀가 조폭 두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네 어귀 남자들은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다. <가문의 영광>의 흥행을 이끈 정흥순 감독은 텔레비젼 위에 얹힌 보자기와 벽에 붙은 메뉴판의 값까지 세세하게 챙기는 꼼꼼함을 보였다. “야, 자장면 값 저거 너무 비싼 거 아니냐? 3500원이면 너무 비싼 거야. 우동값하고 바꿔라.”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은 6월29일 크랭크업. 9월5일 개봉예정이다. 대전= 사진 이혜정·글 정한석

다큐멘터리와 사랑에 빠진 관객

<볼링 포 콜롬바인> 등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약진 ‘리얼리티’가 미국 텔레비전뿐 아니라 극장가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무인도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백만장자의 약혼반지를 놓고 경쟁하는 내용의 리얼리티 쇼가 텔레비전을 점령한 미국사회에서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주목할 만한 박스오피스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 <버라이어티> 최신호는 <볼링 포 콜럼바인>의 성공을 전후해, 오랫동안 ‘의미있고 재미없는 영화’로만 여겨졌던 논픽션영화가 최근 들어 미국 관객과 투자, 배급사에 상품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14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볼링 포 콜럼바인>의 성공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소니픽처스 클래식의 <위대한 비상>이 북미지역 절반에 해당하는 소규모 시장에서 느린 속도로 배급되었음에도 300만달러의 짭짤한 입장수입을 올렸고, 전미철자법대회에 출전했던 어린이들의 후일담을 추적한 <스펠바운드>도 최종 수입 300만달러를 점치고 있다. 롱아일랜드의 유대계 가족의 성범죄 추문을 취재한 <프리드만 가족 따라잡기>도 성공 사례. 배급사 마그놀리아픽처스는 이 다큐멘터리가 적어도 250만달러의 수입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100만달러를 ‘매직 넘버’로 보는 다큐멘터리들의 흥행은 1억달러 수입을 올려야 ‘고지’에 올랐다고 평가되는 스튜디오영화에 견주면, 물론 보잘것없는 규모다. 그러나 이들의 성과는 다큐멘터리 역사상 희귀한 결실인 동시에 잘해야 250만달러 선을 턱걸이하는 인디영화나, 외국어영화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성적이다. 흥행의 터부로 통했던 다큐멘터리가 이처럼 상업적 매력을 발휘하고 있는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최근 다큐멘터리들이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 자연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상> 정도를 제외하면 기개봉 다큐멘터리들과 연말까지 개봉 스케줄을 잡은 신작 다큐멘터리들은 모두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제공하는 오락의 성격은 판이하지만, 현실이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린 TV 리얼리티 쇼의 유행과 9·11 이후 미국인들의 의식에 침투한 진짜 휴먼드라마에 대한 갈증도 관객 취향 변화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독창성과 완성도가 없었다면 최근 다큐멘터리들의 극장 선전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니픽처스 클래식의 공동대표 마이클 바커는 “인디 영화계로부터 사람들이 기대하는 신선함과 새로움이 최근에는 다큐멘터리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에서도 다큐멘터리는 나름의 장점을 발휘하고 있다. 따놓은 프리미엄이라 할 수 있는 평단의 호의적 리뷰 위에 최근의 논픽션영화는 전에 없이 미디어의 관심까지 끌고 있다. <프리드만 가족 따라잡기>는 <피플> 기사로 주목받았고, <스펠바운드> 역시 2003년 전미철자법대회와 시기가 맞아떨어져 <오프라 윈프리 쇼> <투데이쇼> 등에 노출됐다. 교육적 성격을 살려 조류 동호회나 교사협회 등 관련 단체를 표적 공략할 수 있다는 것도 다큐멘터리만의 강점. <버라이어티>는 배급사가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인식함에 따라 올해 더 많은 양질의 기록영화를 미국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전직 미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를 통해 미국사를 다시 보는 <전쟁의 안개>, 국내에서도 개봉된 <마지막 수업>, 브라질의 하이재킹 사건을 소재로 한 <버스174> 등이 오락영화 시즌이 끝나는 가을부터 크리스마스까지 개봉날짜를 받은 영화들이다. 김혜리

선생 김봉두+질투는 나의 힘

산골아이들 오디션 볼만 <선생 김봉두>는 ‘촌지 킬러 불량 티처 고군분투 오지 탈출기’라는 홍보카피 한 줄로 모든 내용이 표현될 만큼 명확한 코미디물이다. 그에 비해 <질투는 나의 힘>은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여자친구를 빼앗긴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본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격만 본다면, 두 영화는 극과 극이라고 할 만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출시된 <선생 김봉두>와 <질투는 나의 힘>의 디브이디는 서로 닮은 점이 의외로 많아 눈길을 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적재적소’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음성해설들. 두 디브이디 모두 감독이 늘어놓는 영화의 제작 당시 상황이라는, 천편일률적인 음성해설을 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선생 김봉두>의 경우, 주요 제작진 4명이 함께 참가해 완성도를 높였다. 기획에서부터 제작 전반을 관장하는 프로듀서, 제작에 맞춰 연출을 진행하는 감독, 그와 함께 모든 장면을 찍어나가는 촬영감독 그리고 김봉두 역을 맡은 주연배우 차승원이 어울려 풀어 가는 영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부록의 중요 코너들에 별도의 음성해설이 들어 있다는 점도 색다르다. 예를 들어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이야기’라는 제목의 제작 다큐멘터리는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내용물로 여자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지만, 동시에 프로듀서의 음성해설이 따로 지원된다. 또 실제 촬영현장에 관련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메이킹 선생 김봉두’와 ‘삭제 장면’ 코너에는 감독의 음성해설이 별도로 지원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 해설 '협연' 한편 <질투는 나의 힘>의 타이틀은 또 다른 형태의 매력적인 음성해설을 선보인다. 바로 두 명의 감독이 함께 진행하는 버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박찬옥 감독과 함께 하는 또 다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으로,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답게 꼼꼼한 질문을 쉼없이 던진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질문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화면 속에 담겨져 있던 박찬옥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이다. 이밖에도 박찬옥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함께 진행하는 음성해설과 디브이디 타이틀에 삭제 장면을 수록해야만 하느냐에 대한 감독의 고민이 독특한 ‘삭제 장면’ 코너의 음성해설도 놓쳐서는 안 된다. 두 타이틀은 음성해설 외에도 탄탄한 구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선생 김봉두>의 경우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다섯 산골아이들의 오디션 장면, 영화 음악에 대한 해설, <산골마을 작은학교>를 쓴 작가의 변을 중심으로 시골 분교에 대한 추억과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정말 특별한 부록까지 가득 실려 있다. <질투는 나의 힘>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메뉴 디자인, 감독의 단편 영화 등이 실려 있어 타이틀의 색깔을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김소연/디브이디 칼럼니스트 Teacher, Mr. Kim, 2003감독 장규성화면 아나몰픽 2.35:1오디오 돌비디지털 5.1 & DTS지역 코드 3출시사 시네마서비스 Jealousy Is My Middle Name2003, 감독 박찬옥화면 아나몰픽 1.85:1오디오 돌비디지털 5.1지역 코드1, 3출시사 명필름 ▶▶▶ [구매하기] ▶▶▶ [구매하기]

옛날 TV 스타들의 역습

<미녀 삼총사> 등 70년대 TV 시리즈 줄줄이 영화화 1970년대 미국 텔레비전의 히트 시리즈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스크린으로 돌진하고 있다. 은 7월1일치 LA발 기사에서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개봉에 즈음해 1970년대 인기 TV시리즈의 영화화 붐에 주목했다.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환상특급> <아이 스파이> 같은 1950, 60년대 TV물이 할리우드에서 재활용된 역사를 생각하면 TV 유산의 발굴은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트렌드다. 그러나 최근 1970년대 TV시리즈의 영화화는 1995년의 <브래디 번치 무비> 같은 경우와 달리 호화로운 예산과 규모로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헐크>에 이어 영화로 만들어지는 추억의 TV시리즈 중 가장 개봉이 빠른 영화는 < 특수기동대 S.W.A.T. >와 <스타스키와 허치>. 1970년대 그리 오래 전파를 타지 못했으나 인상적인 액션신을 선보였던 < 특수기동대 S.W.A.T. >는 새뮤얼 L. 잭슨과 콜린 파렐이 주연을 맡고, <스타스키와 허치>는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이 타이틀 롤로, 스눕이 조연인 허기 베어 역으로 분한다. 이미 개봉한 조지 클루니 감독의 <컨페션>도 1970년대 TV쇼 호스트 척 배리스의 이야기다. 이 밖에, 1970년대 안방극장 히트작인 <판타지 아일랜드> <부부탐정>이 프로젝트 계발 중이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는 브라운관에서 거대한 스크린으로 옮겨가는 사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라는 부풀린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4년째 소문만 무성한 <원더우먼>도 제작자 조엘 실버가 필립 레벤스를 작가로 고용하면서 3개월 안에 감독, 배우 진용을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원더우먼>과 <미녀 삼총사>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레너드 골드버그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인터뷰에서 후보로 거론되던 샌드라 블럭 대신 20대 초반이나 중반 여배우를 다이애나 프린스 역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할리우드 참새들이 거명하는 유력 후보는 ‘뱀파이어 사냥꾼’ 사라 미셸 겔러. 할리우드가 갑자기 나팔바지와 디스코 리듬에 끌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 인터뷰에서 프로듀서 레너드 골드버그는 “현직 영화사 간부의 많은 수가 그 TV시리즈들을 시청하며 성장했고 호의적인 추억을 갖고 있다. 그 TV시리즈들은 지금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적었던 시대를 회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튜디오와 제작자의 향수가 이유의 전부일 수는 없다. 당대에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로맨틱하고 과장스럽고 요란한 1970년대 대중문화의 키치적 스타일은 오늘날 할리우드의 기획자들에게 달콤함과 자극을 요하는 대형 오락영화의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상업 TV네트워크가 3개밖에 없었던 시대 덕분에 미국인의 집단 무의식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영화 소재로서 1970년대 시리즈가 자랑하는 강점이다. 일례로 흥청망청한 재미와 액션을 등지고, 리얼리티와 캐릭터를 강조하기 시작한 80, 90년대 미국 TV시리즈들은 한 세대가 흐른 뒤 다시 영화의 소재로 각광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은 분석했다. ‘싸구려’라고 혹평받아온 1970년대 미국 TV시리즈를 재평가하는 시선도 등장하고 있다. 미디어 학자 피터 바르다지는 “70년대 TV시리즈들은 그 과감성과 혁신성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다. <미녀 삼총사>는 범죄와 싸우는 여성 영웅을 보여줬고 < 특수기동대 S.W.A.T >의 폭력 묘사는 시대를 뛰어넘었다. 이 작품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같은 내용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혜리

날아라, 피곤한 29살아..<싱글즈>

누구에게나 ‘9’자가 들어간 나이야 싱숭생숭한 법이지만, 그 중에서도 남자의 39살 만큼이나 우울한 게 여자의 29살이다. 거기다 미혼이라면. 가족과 주변의 온갖 결혼 압력도 그렇지만 길거리만 나서면 팽팽한 20대 초반 아이들이 까르르거리고 다니는데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은근히 새침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직장 말이 커리어우먼이지, 잘나가는 몇 명 빼놓는다면 위아래로 치이기 십상인 나이다. <싱글즈>의 나난(장진영)과 동미(엄정화)도 딱 이런 대한민국 29살 직장여성이다. 직장 스트레스로 머리에 난 구멍을 발견한 날, 나난은 남자친구에게 차인다. 거기다 디자이너실에서 밀려 레스토랑 매니저로까지 발령난다. 확 그만둬버려 “대출금 이자 내야지, 공과금 내야지, 카드값 메꿔야지” 한달에 100만원은 꼭 필요한 나난, 눈물 머금고 레스토랑에 출근한다. 그런 나난에게 트렁크를 열어야 차문이 열리는 고물차를 끌고다니며 ‘작업’엔 능숙한 남자 수현(김주혁)이 접근한다. 보증금이 없어 어렸을 적부터 친구 정준(이범수)과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동미(엄정화), 매번 사귀는 남자를 당당히 집안에 데려올 정도로 분명한 연애관과 섹스관을 가진 그다. 직장 상사는 그가 몇달을 매달린 프로젝트의 성과를 빼앗고 은근히 유혹까지 한다. 확 그만둬버려 동미는 해낸다. 유혹하는 상사의 바지를 벗겨 사람들 앞에 패대기친다. 동미와 정반대로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순수한 사랑을 그리는 정준과 어쩌다가 동침,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 <싱글즈>는 칙칙한 현실과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균형을 잘 잡아나간다. 그동안 텔레비전 트렌디 드라마에서 싱글들은 소비문화의 첨단처럼 그려져왔다. 혼자 살아도 일하는 사람 쓰는 것보다 더 깨끗하고 윤기나는 집안 가구와 주방, 깔끔히 정리돼 있는 침대 시트까지. 아침에 깨워주는 이도 없이 자명종에 의존해 회사에 뛰어가야 하는 싱글들에게 이런 집안 환경이 가능한 일인가 영화 속 동미와 정준의 집은 흔히 보는 다세대 주택이고, 나난의 방은 깨끗하긴 하지만 적당히 여기저기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런 현실적 환경의 묘사에서 영화는 사실감 있는 상황들을 구축해간다. 그렇다고 대중적인 상업영화의 규모를 넘진 않는다. 눈길을 끄는 배우들(특히 엄정화)의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연기와 생활밀착형 대사,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현실의 고민을 끌어오되 경쾌한 스타카토처럼 짧게 끊어 넘긴다. 아는 남자와의 섹스 꿈을 꾼 친구에게 “그러다 병 걸린다, 지랄밝힘증”이라고 대꾸해주거나, “우리 나이에 목돈 마련하는 길은 결혼하는 것밖에 없다”는 말은 이즈음 나이라면 누구나 해봄직한 말들이다. 영화에서 남자는 딱 두 부류다. 나난과 동미의 직장상사처럼 수고한다고 여직원들 엉덩이나 툭툭 치고 “여자가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 봤습니까”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나쁜 남자들’과, 정준이나 수헌(김주혁)처럼 건강한 친구로 남는 ‘착한 남자들’이다. 그 중간 스펙트럼 없이 친구 아니면 적으로 나뉘는 건 아쉽지만, 적어도 이 구도는 여성의 일과 여성간의 우정이라는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는 데는 일조한다.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동미와, 인간성 좋고 조건도 좋은 남자친구와의 결혼·유학의 길을 미룬 채 동미의 옆에 남은 나난이, 영화처럼 밝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온갖 선입견과 여성에 대한 장애물 가득한 사회에서 그들의 선택이 과장스럽게 보일지라도, 눈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를 뛰어가는 저들의 뒷모습은 무조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싶다. 11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영화사 신문 제14호 (1937~1938)

영화사신문 제14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이유란 1937 ~ 1938 위대한 애니메이션 태어나다<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흥행가도, 비평계에서도 높은 점수 월트 디즈니는 1937년 겨울 최초의 컬러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개봉했다. 이 작품의 엄청난 성공은 디즈니에 해마다 장편 만화영화 한편씩을 공개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1938년 초, 영화 사상 최초의 장편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가 개봉 전의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또한 1937년 12월21일 첫 공개된 이래 비평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백설공주…>를 두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사실 개봉 전 할리우드 안팎에는 <백설공주…>가 ‘재앙’이 될 거라고 경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은 본프로 전에 ‘끼워’ 상영되는 5, 6분짜리 단편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례를 깨고 장편을 만든다면, 그것도 <백설공주…>처럼 뻔한 이야기를 애니메이션화한다면 대체 누구 돈을 주고 보러올 것인가 하는 회의가 팽배했던 것이다. 더구나 <백설공주…>는 애초의 제작기간과 제작비를 크게 웃돌면서 우려를 부추겼다. 7개월로 예정된 제작기간이 30개월을 끌었으며, 그러는 동안 제작비는 25만달러에서 175만달러로 치솟았던 것이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는 굴하지 않고 모든 역량을 <백설공주…>에 쏟아부었다. 스튜디오 직원들의 여자친구, 부인까지 동원돼 그림을 셀룰로이드에 옮기고 색을 칠할 정도였다. 그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창조를 꿈꿨다. 그래서 풍성한 디테일 묘사를 위해 통상의 셀보다 큰 셀을 이용했고 화면의 전·중·후경을 서로 다른 속도로 촬영할 수 있는 ‘멀티플레인 카메라’라는 새 장비로 입체적인 화면을 만들어냈다. 또한 주연과 조연, 심각한 캐릭터와 웃긴 캐릭터를 골고루 배치하고 번번이 노래와 춤을 삽입했다. 뒤늦게 디즈니호에 승선, 배급을 맡은 RKO 또한 <백설공주…>의 흥행으로 큰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원래 <백설공주…>의 배급사는 유나이티드아티스트(UA). 하지만 계약이 만료된 1937년 가을, 디즈니가 UA의 계약 연장조건인 ‘텔레비전 방영권 양도’를 거부하면서 계약은 종료된다. 이때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디즈니 스튜디오에 유일하게 관심을 보낸 회사가 바로 RKO였다. 한편, 월트 디즈니는 앞으로 해마다 장편애니메이션 한편을 공개한다는 계획 아래, <피노키오> <밤비> <판타지아> 등 세편의 제작을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다. 에이젠슈테인, 돌아오다 9년 만에 유성영화 <알렉산더 네프스키>로 컴백 12세기 게르만족의 침략에 대항해 러시아 민중을 이끈 슬라브 영웅 알렉산더 네프스키 왕자의 이야기를 다룬 에이젠슈테인 감독의 <엘렉산더 네프스키> 마침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 돌아왔다. 1938년 12월 에이젠슈테인은 그의 첫 유성영화 <알렉산더 네프스키>와 함께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낡은 것과 새 것> 이후 무려 9년 만이다. 물론 그 사이에 전혀 영화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32년작인 <멕시코 만세>는 제작을 맡긴 소설가 업튼 싱클레어가 에이젠슈테인을 불신해 촬영 막바지 단계에서 제작을 중단시킨 뒤 자기 멋대로 영화를 편집했기 때문에, 사실상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또 1935년에는 유성영화 <베진 초원> 제작에 착수했지만, 스탈리의 신임을 받고 있던 국립영화사 소유즈키노의 대표 보리스 슈미야츠키가 딴죽을 거는 바람에 1937년 제작이 중단됐다. 슈미야츠키가 숙청되지 않았다면 <알렉산더 네프스키>도 미완으로 끝났을지 모른다. 슈미야츠키는 집요하게 에이젠슈테인을 물고늘어졌다. 그는 모스크바에 돌아온 에이젠슈테인이 착수하려는 프로젝트마다 트집을 잡았다. 그 트집이 얼마나 집요했냐 하면, <베진 초원>을 찍을 때 <프라브다>를 통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에이젠슈테인이 과거의 오류를 인정했지만, 그와 무관하게 영화를 찍고 있다”고 비난한 적도 있다. 소문에 따르면 슈미야츠키는 괴짜 같은 성격과 불손한 유머감각을 지녔다는 이유로, 에이젠슈테인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에이젠슈테인은 슈미야츠키가 면직된 이후에야 <알렉산더 네프스키>의 제작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대규모의 예산이 들어간 <알렉산더 네프스키>는 12세기를 배경으로 게르만족의 침략에 대항해 러시아 민중을 이끈 슬라브 영웅 알렉산더 네프스키 왕자를 주인공으로 영화. 에이젠슈테인은 프로덕션 세부는 물론 화장과 의상디자인까지 직접 맡으며, 혼신을 기울여 이 영화를 완성했다. 더러운 나치스트 다큐, <올림피아>히틀러 49번째 생일 축하 상영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 2부작이 1938년 4월20일 히틀러의 49번째 생일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상영됐다. 이는 나치의 선전상인 괴벨스의 아이디어였는데, 그는 <올림피아>를 보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라고 극찬했다. <올림피아>는 리펜슈탈이 <의지의 승리>에 이어 나치의 의뢰를 받아 만든 다큐멘터리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대해 담고 있다. 나치는 리펜슈탈에게 “국가 사회주의의 이념을 칭송하는 노래처럼 보이게 올림픽을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나치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리펜슈탈은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었다. 2주간의 올림픽 동안 40명의 카메라맨이 동원됐는데, 다이빙 장면을 연속적으로 찍기 위해 카메라맨들은 몇 개월 동안 수중촬영 훈련을 받기도 했다. 또 공중촬영을 위해 비행선을 띄웠다. 그렇게 해서 촬영한 필름이 400km였으며 이를 편집하는 데 2년이 걸렸다. 리펜슈탈은 이 필름을 2부작(총상영시간 225분)으로 완성했는데, 1부가 <민족의 향연>이고 2부가 <미의 향연>이다. 올림픽 경기를 통해 나타난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힘에 집중하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에는 아리아족 선수들의 수상을 강조하고 다른 경쟁자들의 인종적 열등함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곳곳에 배어난다. 프랭크 카프라-해리 콘 다시 악수1년간 법적 소송 마무리, 새 프로젝트 협약 프랭크 카프라와 해리 콘이 드디어 화해했다. 오늘의 콜럼비아를 있게 한 주역인 이 사람은 1937년 가을 근 일년을 끌어온 법적 소송을 해결하고, 새 프로젝트인 <당신은 그걸 가질 수 없어>에 착수하기로 했다. 제작자와 감독으로, 10년 넘게 함께 일해온 두 사람이 법정까지 가게 된 사연은 이렇다. 카프라의 1934년작 코미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의 대성공 이후 ‘카프라’라는 이름은 흥행의 보증수표가 됐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콜럼비아 사장 해리 콘은 B급영화인 <당신이 요리만 할 줄 안다면>를 영국에 배급하면서 제작사를 콜럼비아가 아니라 ‘프랭크 카프라 프로덕션’으로 명기했다. 흥행을 위한 꼼수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한 카프라는 해리 콘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콜럼비아를 떠나기로 결심, 다른 영화사나 독립 제작자들과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해리 콘으로서는 카프라를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카프라가 누군가? 신문이나 잡지에 리뷰도 실리지 않는 싸구려영화나 만들던 콜럼비아에, 자산 규모가 파라마운트나 MGM의 수십분의 일에 불과한 이 작은 영화사에 명예와 부를 동시에 안겨다준 감독 아닌가? 카프라를 붙잡기 위해 해리 콘은 카프라의 요구대로 20만달러를 주고 <당신은 그걸 가질 수 없어>의 저작권을 사들였다. 콜럼비아로서는 파격적인 액수다. 카프라는 1930년대 초 콜럼비아와 장기계약을 맺었다. “어떤 스튜디오도 줄 수 없는 재량권을 얻기 위해서”다. 그에 대한 대가로 해리 콘은, 카프라가 완전히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카프라에게 상당한 권한을 일임했다. 그리고 카프라는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석권한 <어느 날 밤…> <디즈씨 도시에 가다> 등 잇단 성공작을 내놓았다. 차기작인 <당신은 그걸 가질 수 없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판 코믹버전. 두 사람의 ‘애증’관계를 잘 아는 콜럼비아 내부 인사의 귀띔에 의하면, 시나리오를 쓰면서 카프라는 남녀주인공의 결합을 막는 양가 아버지에게 해리 콘의 성격을 절반씩 나눠놓았다고. 곧 한 사람은 저속하고 야비한 사업가인 반면 한 사람은 확고한 이상주의자란다. 이 사실을 해리 콘은 알까, 모를까? <거대한 환상>으로 돌풍 일으킨 장 르누아르 감독“인류의 공통된 인간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의 1936년작 <인생은 우리들의 것>을 패러디해서 말한다면 ‘1937년은 장 르누아르의 것’이다. 르누아르는 <거대한 환상>의 개봉과 동시에 프랑스 평단과 극장가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나아가 이 영화는 정치·사회적으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예컨대 <거대한 환상>을 보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민주주의자라면 누구나 보아야 할 영화”라고 강추한 반면,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영화 제1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거대한 성공’을 뒤로 하고 그의 두 번째 인민전선영화 <라 마르세예즈> 준비로 바쁜 그의 시간을 조금 빌렸다. 제목이 왜 ‘거대한 환상’인가. 제목도 정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 촬영과 편집이 끝난 다음에야 <거대한 환상>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달리 마땅한 제목이 없었다. 전쟁영화이지만 전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상황을 선택했다. 비행사들은 진흙탕 참호와 포탄에 으깨어진 음식과 거리가 멀다. 보병들의 고생을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인류의 공통된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독일 장교로 출연한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과의 작업은 어땠나. 제작자가 슈트로하임을 캐스팅하자고 제의했다. 그가 수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흥분했다. 원래 그 독일 장교 역은 5분이 안 되는 작은 역이었는데, 그가 캐스팅되면서 시나리오가 크게 바뀌었다. 촬영 초기엔 그와 다툼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당신과 다투느니 연출을 포기하고 말겠다’고 하자 울면서 노예처럼 나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라 마르세예즈> 준비는 잘돼가나. <인생은 우리들의 것>을 만들면서 노동자 계층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 속에서 우리의 파멸적인 이기심에 대한 해독제 같은 것을 보았다. <라 마르세예즈>는 비관례적인 모금 방식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는데, 미리 표를 구입한 사람은 무료로 영화를 볼 권리를 얻는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치에 저항할 책임이 있다. <인생은 우리들의 것>을 찍을 때도 느낀 건데, <라 마르세예즈>는 내게 인민전선의 의기양양한 기운을 숨쉬게 해준다. (이 인터뷰는 르누아르의 자서전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단 신 들 히치콕 할리우드 진출 영국 감독 히치콕이 할리우드로 간다. 1937년 8월 히치콕은 미국에서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을 만나 타이태닉호 침몰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1939년 4월부터 발효된다. 얼마 전 <숙녀 사라지다>을 마무리한 히치콕은 미국으로 가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새 영화 <자마이카인>을 찍을 예정이다. 로마에 유럽 최대규모 스튜디오 오픈 1937년 3월28일 로마 근교에 유럽 최대의 스튜디오인 ‘치네치타’가 문을 열었다. 로마 근교 투스콜라나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치네치타는 60ha에 이르는 부지에 실험실, 강당, 9개의 사운드 스테이지, 제작진 숙박시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영화의 선전성에 주목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영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치네치타를 설립했다. 무솔리니가 1년 전 직접 건설현장에 와서 첫삽을 뜰 만큼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런 때문. 이러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 듯 스튜디오 문의 입구에는 “영화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국제영화자료실 설립 1938년 7월15일 파리에서 국제영화자료실(Federation International des Archives du Film, 이하 FIAF)가 설립됐다. 국제적인 연대와 교류를 통해 영화자료에 관한 보존과 연구를 도모한다는 것이 창설목적이다. FIAF 설립을 주도한 앙리 랑글루아는 “세계 영화유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라이브러리간에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라고 설립배경을 밝혔다. 스펙터클의 창시자, 멜리에스 별세 1938년 1월25일 영화적 스펙터클의 창시자, 조르주 멜리에스가 파리 ‘페르 라세즈’ 묘지에 묻혔다. 향년 78살. 이날 장례식에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인 앙리 랑글루아와 조르주 프랑쥐 등 많은 멜리에스의 추종자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안개 낀 부두>에 흔들린 우정 1938년 5월 프랑스, <안개 낀 부두>가 두 친구의 사이를 벌려놓았다. 장 르누아르가 이 영화에 대해 “파시스트 프로파간다”라며 반감을 표시했기 때문. 르누아르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부도덕한 인물들이 “행복하게 독재자의 손을 흔들어주는 파시스트”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스스로를 반파시스트라고 믿는 시나리오 작가 자크 프레베르는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말괄량이의 작별인사,6월29일 타계한 캐서린 헵번

1907년에 태어나 아흔여섯해를 살았고, 그중 60년을 카메라 앞에서 보냈으며, 12번의 오스카 후보에 올라, <모닝 글로리>(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 <겨울의 사자>(1968), <황금연못>(1981)으로 4개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손에 쥔 그녀에게 20세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찬탄이 과찬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 찬사는 그저 영전 앞에 놓이는 조화가 되었지만…. 캐서린 헵번이 2003년 6월29일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오드리 헵번이 치마를 입은 말괄량이였다면, 그보다 20년이나 먼저 데뷔한 캐서린 헵번은 바지를 입은 말괄량이였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부르는 캐서린이라는 이름이 싫어 머리를 손수 깎고 자신을 ‘지미’라고 소개하던 그 이상한 소녀가 연극무대를 거쳐 영화에 도착했을 때, 1930년대 미국은 새로운 여성상을 마주해야만 했다. 모두가 롱치마와 밍크코트로 몸을 두르고 맵시를 뽐낼 때, 툭 튀어나온 광대뼈를 숨김없이 드러내던 캐서린 헵번은 과감하게 치마를 벗어던지고 헐렁한 남성용 바지와 굽 낮은 구두를 신었다. 그녀의 복장은 1930∼40년대 미국의 패션에 변화를 주었고, 그런 남성적인 의복에 어울리는 그녀의 외모는 ‘완고함, 씩씩함, 무뚝뚝함’ 같은 수사들을 동반하며 독립적이고 의지력 넘치는 여성상으로 스크린 속 자신의 이미지를 세워갔다. 1932년 조지 쿠커의 <이혼 약정서>로 데뷔한 캐서린 헵번은 단 세 번째 출연작 <모닝 글로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리고는 ‘말괄량이 영화’(flapper movie) 장르와 스크루볼코미디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행진을 계속했다. <작은 아씨들>(1933)에서는 말괄량이 둘째딸 ‘조’ 역을 맡았고, 하워드 혹스의 <아기 키우기>(1938)에서는 캐리 그랜트와 호흡을 맞춰 자유롭고 활발한 상속인 ‘수잔’ 역할을 맡았다. <아기 키우기>의 흥행실패가 그녀에게 “흥행 독약”이라는 악의 섞인 별명을 선사했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꿋꿋했다. <휴일>(1938)에서는 씩씩한 사교계 여성으로,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에서는 좌충우돌형 여성상 ‘트레이시’로 등장하여 명예를 회복했다. 1952년 <아프리카의 여왕>의 캐서린 헵번에게 아프리카 외지에 살고 있는 도덕과 의지로 똘똘 뭉친 여성상이란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씩씩함과 완고함, 도덕성은 늙어가는 그녀에게 현명함의 이미지를 덧붙였다. 캐서린 헵번의 생애 마지막 출연작 <러브 어페어>(1994)에서 그녀는 주인공 워런 비티의 다정한 아주머니로 등장하여 엇갈린 두 남녀의 사랑에 조언을 주는 인생의 현자로 남는다. <러브 어페어>의 마지막 모습이 어울렸던 건, 그녀 자신이 실제로 그런 사랑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캐서린 헵번은 <아담의 갈비뼈> 등 9편의 영화에 같이 출연한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기혼남이었다)와 1967년 그가 죽는 순간까지 27년간 열애를 유지했으며, 끝내 죽을 때까지 ‘미스’로 남았다. 12번 오스카 후보에 올랐어도 단 한번도 행사장에 나간 적이 없고, 인터뷰를 거절하기 일쑤였던 캐서린 헵번은 1991년 말년에 <나의 모든 것>이라는 자신의 텔레비전 자서전 제작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에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그녀의 의지 때문이었겠지만, 기다림에 대한 믿음 때문은 아니었을지. 그래서, 우리의 쓸쓸함을 대신하는 말로, “천국에서도 행복하시길”. 글 정한석·사진 SYG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