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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여우계단> 주인공 송지효, 박한별

보이지 않는 고통 심했어요 원래는 28개지만 절실한 소망을 빌면 29번째 계단이 열리며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화속 ‘여우계단’, 송지효(22)와 박한별(19)이야말로 29번째의 계단을 밟은 이들인지 모른다. 영화사 씨네2000이 올초 ‘여고괴담’ 시리즈 3편의 네 주인공을 뽑기 위해 만나본 이는 3000여명, 그 가운데 주인공 진성과 소희로 뽑힌 이들이니 말이다. 지난 26일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선입견도 있었다. 꽤 독한 친구들이겠군, 영화 속처럼 서로에 대한 경쟁심도 만만찮지 않을까 하지만 신문사 옥상의 정원을 보고 “와~” 탄성을 지르며 겅중겅중 뛰는 송지효, 그를 보자마자 “언니, 우리가 (영화속에서) 동성애래, 책임져!” 어리광 부리는 박한별은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한별아, 언니가…언니가…” 말하는 송지효는 영락없는 큰 언니였다. 물론 최종 오디션에 12명이 올랐을 때 “싸~하던” 분위기를 그들은 잊지 못한다. “발레복 입고 오디션을 봐야 해서 7시간 동안 배 나올까봐 물 한모금 못 먹었어요. 너무 배고파 먹는 얘기한 게 처음 말한 거예요.” 영화 속 박한별은 무엇이든 학교 1등인 소희, 송지효는 모차르트를 이기지 못하는 살리에르 같은 진성 역을 맡았다. “진성만큼 끔찍할 정도로 남을 질투하고 시기한 일은 없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 속 한구석엔 그런 감정이 숨겨져 있지 않나요”(송) “요즘 애들 그런가 오히려 친구들을 보면 요즘엔 더 의리있는 편인 것 같은데….”(박) 촬영이 끝난 뒤에야 한 발자국 떨어져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배우가, 프로가 되는 과정은 진성과 소희가 흘린 땀과 피 못지 않았다. 인문고와 세무학과를 나온 송지효는 물론, 한국무용을 예고 시절 전공했던 박한별조차도 토슈즈를 신고 몇시간 서 있으면 발가락이 터져버렸다. “보여지는 건 1시간30분짜리지만 보이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송) “여고괴담 나오면 무조건 뜬다고 하도 얘기 들으니 두려워요. 사람들은 쉽게 찍어 쉽게 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박) 여고괴담 시리즈가 배출한 배우들의 면면은 만만찮다. 최강희, 박진희(1편), 김민선, 이영진, 박예진(2편) 등이 그들. 송지효와 박한별이 부담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도 송지효는 좀 느긋한 편이다. “원래 제가 긴장을 안 하는 편이거든요. 오디션때도 제일 천하태평이란 소리도 들었고. 솔직히 좀 더 준비가 된 다음 영화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꽤 많은 CF를 했지만 “얼굴이 찍을 때마다 달라 보이는 탓인지” 길거리에 나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생활이 좋다고 털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에서 순간 집중력이 떨어져 보인다”며 장면을 이야기할 땐 신인답지 않다. 부천국제영화제에 페스티벌 레이디로 유독 박한별이 선정된 데 대해 서운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사진을 찍어도 주로 한별이를 오래 찍더라고요. 같은 주인공인데 처음엔 시기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근데 동생 같아선지, 이젠 한별아 니가 해, 자꾸 그렇게 되더라고요.” 박한별은 소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리틀앤젤스 활동을 하며 “학교, 연습, 학교, 연습” 때문에 처음 극장에 가서 본 게 “중1때 본 <여고괴담> 1편이었”을 정도. 중3때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연기자의 준비를 했지만 고2때 인터넷에 친구들이 띄운 앨범사진 하나로 ‘얼짱’(얼굴짱) 소리를 들으며 유명해졌다. 전지현을 닮았다는 얘기는 하도 들어 이제는 “무감해졌지만” <여우계단> 덕에 “전지현이 아니라 박한별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장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박한별과 달리 송지효는 “느긋하게 여행 좀 했음 좋겠다”고 말했다. 하긴 어떠랴. 이들은 이제 막 여우계단의 첫 계단을 디뎠을 뿐이다.

`남기남표` 여름방학 블록버스터,<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

■ Story 평화로운 어느 옛 고을에 서양귀신 드라큘라(임혁필)가 나타나 숫처녀들을 잡아가는 소동이 벌어진다. 세상의 난세에 대비하여 무술과 마술을 수련하던 갈갈이(박준형), 옥동자(정종철), 느끼남(이승환) 등 ‘갈갈이 패밀리’는 도사의 명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하산한다. 마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모여든 장비와 무당과 강시는 오히려 드라큘라의 부하가 되고, 갈갈이 삼형제는 납치된 마을 유지의 딸 아씨(김다래)를 구하기 위해 드라큘라의 거처로 쳐들어간다. ■ Review 1989년 남기남 감독이 만든 <영구와 땡칠이>는 270만명의 아이들을 동원했다. 그 270만명의 아이들은 이제 더이상 어리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남기남 감독은 또 다른 지금의 아이들을 겨냥하여 ‘남기남표’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를 2003년에 선보인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몰이에 앞장선 갈갈이 삼형제가 시대에 뒤처진 공룡 <영구와 땡칠이>를 대신하고, 나머지 개그맨들 역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전체의 내용에 상관없이 귀에 익은 유행어와 성격과 장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만약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는 아이들이라면(혹은 보고도 웃지 않는 아이들, 또는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는 매우 재미없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는 인물들의 웃기는 외양, 또는 혼자 쓰러지고, 넘어지는 바보 같은 행동들,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웃기다고 우기는 수준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재치있다고 환호받았던 그 말과 성격과 행동을 영화로 가져온다. 그래서 때때로 어느 대사는 초등학생의 유머 타이밍을 넘어서고, 그 순간만큼은 어른의 웃음도 유도한다. 영화적인 매끄러움과는 상관없이 ‘시청자’만이 눈치챌 수 있는 사전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일정한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므로, 옛날 배경에 웬 하수구 구멍이냐고 물어도 영화는 호응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주저앉혀 돈을 벌어보겠다는 제작자의 의도는 껄끄럽지만, 한 노장감독의 서바이벌 영화 만들기는 기어이 또 한번 기한을 맞춰냈다.

변태들,나가 있어!호모포비아를 조장하는 방송들

‘느끼하거나 무섭거나.’이 나라 공중파 방송에서 남성동성애자(게이)가 다뤄지는 방식이다. 남성동성애자 (캐릭터)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추적 다큐프로그램의 단골 손님이다. 이 두 장르를 통해 이들은 극단적으로 희화되거나 위험집단으로 타자화된다. 90년대 중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동성애자가 공중파에 ‘데뷔’한 이래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감생심 동성애자 내부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이들의 일상을 찬찬히 응시하는 시선을 아직 이 나라의 공중파에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애자라는 낯선 존재 앞에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포비아’(공포증)의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조금 딱하다. 최근 한 코미디와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또다시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가 전파를 탔다. KBS2TV <개그콘서트> 갈갈이 삼형제의 ‘느끼남’은 계집애 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게이 캐릭터를 대표한다. 은연중에 게이 캐릭터의 냄새를 풍기던 느끼남이 지난 6월22일 방송을 통해 드디어 커밍아웃을 했다. 아니 형제인 박준형에게 아우팅당했다. 아우팅의 과정은 이랬다. 박준형씨는 이날 ‘호모 XXX’라는 소재로 말장난을 시작했다. 개그맨들의 얼굴사진이 붙은 패널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이들에게 어울리는 ‘호모 XXX’가 무엇이냐고 묻는 방식이었다. ‘댄서 킴’으로 알려진 개그맨 김기수씨는 ‘호모 댄서스’라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느끼남’의 사진이 보여졌다. 이어지는 박씨의 자문자답. “호모 느끼스라구요? 아닙니다.” 정답은 “호모”. 관객의 느물느물한 웃음이 터졌고, 느끼남은 특유의 눈웃음으로 ‘애매호모’한 분위기를 돋웠다. ‘느끼함+자아도취+여성스러움=남성동성애자.’ 고전적인 공식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모처럼만의 노골적인 호모포비아였다. 게이 캐릭터를 지겹게 울궈 먹으면서도 끝끝내 커밍아웃하지 않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오히려 솔직했다. 홍석천씨의 ‘쁘아종’부터 숨겨진 게이 캐릭터는 개그의 단골 소재였다. 한 유명 디자이너의 여성스런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개그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그러나 어떤 캐릭터도 느끼남처럼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물론 좋게 말해서다. 당연히 이성애자의 웃음은 동성애자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을 게다. KBS의 정통 시사다큐 프로그램 <추적 60분>도 잇따라 호모포비아임을 커밍아웃했다. 제목도 살벌한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 편은 지난 7월19일 전파를 탔다.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10대 소녀 이야기를 다룬 이날 방송에서 동성애자는 다시 한번 에이즈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당했다. 소녀에게 수혈된 ‘나쁜 피’의 헌혈자가 남성동성애자였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예의 그 흐린 창과 코맹맹이의 증언으로 남성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헌혈을 통해 에이즈를 확산시키는지 증명했다. 감염된 피를 헌혈한 사람이 남성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계집애같이 논다”는 증언까지 끌어들였다. ‘나쁜 피’의 주인공과 인터뷰는 남성동성애자를 파렴치한 집단으로 낙인찍는 화룡점정이었다.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 편이 방송되자 <추적 60분> 홈페이지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자)들이 득달같이 모여들었다. 게시판에는 ‘동성애자=정신이상자, 신이 만든 불량품’, ‘엽기, 변태 동성애자 때려죽이자’ 등 부화뇌동이 판을 쳤다. 몇몇 네티즌들이 ‘에이즈 수혈감염보다 당신들의 호모포비아가 더 무섭다’고 반박하기는 했지만 이미 공중파가 전국에 뿌려놓은 편견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에이즈를 매개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에둘러’ 드러내는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는 앞으로 반복될 동성애 혐오증의 전조로 읽힌다. 최근의 시사다큐 프로그램은 동성애자를 대놓고 ‘변태’로 몰지는 못한다. 그만큼은 이 사회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증거다. 호모포비아의 현재형은 동성애자를 ‘청소년을 물들이는 오염집단’, ‘에이즈를 퍼뜨리는 위험집단’으로 은유하는 것이다. 하긴 동성애자들이 지워진 존재였던 시절,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동성애자의 존재를 증명해 동성애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했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남성동성애자들이 모두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나 <파니 핑크> 등 서구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들이 묘사하듯 이성애자 여성의 가장 좋은 친구, 관계의 현자들은 아니다. 일본 야오이 만화의 꽃미남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이 보여준 촌스러운 재현방식은 이 나라 공중파의 현주소를 확인케 한다. 그들의 ‘개혁 의지’가 협소한 정치의 울타리에만 갇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 이 나라 공중파에서 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곧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인 명제, 침묵은 곧 죽음이다, 가 왜 진실인지를 공중파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다. 게이들은 조롱당하는 정체성마저 감지덕지할 형편이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그 미국 할머니, 한국말도 잘하네”, <집으로…>

돌이켜보면 나의 외할머니는 무식했으나 나름대로 당당했고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맞은편 동네의 따뜻한 백열전구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져 어슬어슬 건너다 보이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저 집도 오늘 저녁 끼니는 거르지 않는구나’라고 서로를 안심하던 달동네. 그 달동네 외가댁에서의 기억은 곧 외할머니와의 추억이다. 나의 수호천사 외할머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의 사랑을 주셨다. 그러나 유일하게 화를 내며 주장하시던 일이 있었는데 ‘밤에 똥을 누지 말라’는 것이었다. 손자에게 이끌려 푸세식 뒷간 문 앞을 지키고 앉아서 “똥 누냐? 밤똥 누지 마! 먹은 것도 없는데 배를 비우면 아침에 배고파지잖아∼”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면 나오던 응아도 당황하고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배설을 참으면 배가 덜 고프리라 여기시는 할머니의 사랑(?)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유난히도 튀어나온 텔레비전의 뒤통수가 손도 못 대게 뜨거워지도록 TV 보는 일이 낙이었던 할머니께서 어느 날 <제시카의 추리극장>이라는 외화를 보시고는 기분 좋게 껄껄 웃으시며 “아이고 그 미국 할머니. 참 한국말도 잘하네” 하시는 것이었다. 나 <소머즈> 같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나이든 제시카 할머니의 한국어가 대견해 보이셨나보다. 외할머니가 뒤늦게 한글을 배우시느라 겨우겨우 한 글자씩 연습하시는 걸 본 것은 아홉살 때였다. 난 ‘그럼 할머니는 바보같이 여태 글자도 못 썼어?’라며 싸가지 없는 질문도 서슴없이 해댔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인생을, 손자들까지 줄줄이 등장해서 야금야금 갉아먹었던 할머니의 세월을 철부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68살로 비교적 일찍 세상을 뜨셨을 때 난 무척이나 울었다. 큰딸인 내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우리 엄마한테는 이제 엄마가 없구나’ 싶어 마냥 안쓰러웠기도 했지만 장례를 마치고 몇달 동안은 길을 걷다가도 할머니 생각만 하면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육남매를 낳아서 그중 한명을 저승길에 먼저 앞세우고 가슴 깊이 묻었다는 외할머니는 맞벌이하는 큰딸 내외를 위해 외손자까지 기르시느라 평생 허리 펼 날도 없었던 분이셨다.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엔딩 타이틀에 관한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라는 영화를 봐야 할 것 같았다. 눈이 어두운 외할머니 옆에서 바늘귀를 꿰어주는 영화 속 상우의 모습이 그 또래 그 옛날 내 모습 그대로였고 안채에서 멀리 떨어진 냄새나는 뒷간 앞에서 상전 기다리듯 꾸부리고 앉아 손자를 기다리던 상우할머니의 모습은 바로 나의 외할머니 모습이었다.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수많은 멋진 영화들을 접어두고 <집으로…>를 이 글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도 외할머니 살아생전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과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러요? 할머니라고 안 부르고요.” 다섯살인 내 아이가 물었을 때. “내가 너냐? 임마”라고 본데없이 대답하고 후회했던 만큼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서툰 일이기에 하나뿐인 아이를 데리고도 쩔쩔매며 친정어머니의 신세를 지는 일이 다반사다. 외할머니가 된 내 어머니는 ”외손자 길러봤자 다 소용없다고들 하더라” 하시면서도 일한답시고 잘난 척하는 딸의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시고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에게 보약을 지어 먹이시는 일도 자진해서 하신다. 아직도 짐을 덜어주지 못한 딸 주제에 말하기는 뭐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의 외할머니는 나의 외할머니가 사신 세월보다 더 오래 건강하고 유쾌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배우출신 감독, <컨페션>의 조지 클루니

영화 <컨페션>은 미국 리얼리티 쇼의 창시자인 척 배리스의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척 배리스는 자신이 텔레비전 쇼의 프로듀서였을 뿐만 아니라 전 CIA 암살요원이기도 했다고 술회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걸출한 시나리오 작가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고, 조지 클루니는 한눈에 그 시나리오에 매혹되었다. 영화 제작자로서 스티븐 소더버그와 한팀을 이뤄 ‘섹션8’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기도 하는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의 제작(미라맥스)을 돕는 차원에서 출연을 결정했고, 주인공 척 배리스를 CIA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CIA 요원 ‘짐 버드’ 역을 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컨페션>의 감독이 조지 클루니였던 것은 아니다. 사실, 브라이언 싱어, 데이비드 핀처, P. J. 호건, 커티스 핸슨 등 수많은 유명감독이 물망에 올랐었다. 그러나 영화화는 제작준비과정 중 여러모로 암초에 걸렸다. 끝내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의 연출을 직접하기로 결심했고, 감독으로서의 데뷔전을 치러냈다. 무엇보다 그는 텔레비전 쇼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토크 쇼의 사회자(조지 클루니에 의하면 제리 스프링어에게 처음으로 기회를 준 것 역시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였고, 그 점이 “이 영화의 감독을 맡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70년대 내내 텔레비전 세트 뒤에서 살았고, 그들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스탭들과는 척 배리스가 연출한 <신혼부부게임> <데이팅게임> <땡쇼> 등의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연구했다. 실제로 일부는 영화 속에 직접 삽입되기도 한다. 반면 조지 클루니는 ‘클루니 커넥션’을 이용하여 하나둘씩 친구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영화적 스승 스티븐 소더버그에게는 여러모로 조언을 구했다. <웰컴 투 콜린우드>를 찍으며 단 3일을 같이 한 것뿐이지만, 주인공 척 배리스 역으로는 샘 록웰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2500만달러의 몸값을 자랑하는 줄리아 로버츠와 드루 배리모어를 단돈 25만달러를 주고 모셔왔다. 할리우드의 미남배우들인 브래드 피트와 맷 데이먼에게는 버트 레이놀즈와 톰 셀렉이 <데이팅 게임>에 나와 낙방한 과거를 들먹이며 재미삼아 출연해보라며 끌어들였다. 근거없는 자서전에, 기이한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유명배우들의 조연과 카메오 출연. 이 엉뚱한, 또는 기막힌 조합으로 자신의 감독 데뷔작 <컨페션>을 완성한 조지 클루니에게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돌아온, ‘감독’ 조지 클루니의 답변. 우선 꼭 필요한 질문. 당신은 <컨페션>의 어떤 점에 매혹되었나? 어떤 면이 이 영화를 연출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했나. 척 배리스의 인생 그 자체. 그가 쓴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공한 남자가 그런 책을 썼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만약 사실이라면 굉장한 일이고, 거짓이라면 더 흥미로운 일이다. 어느 경우이든지 내게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연출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나는 영화제작이라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스티븐 소더버그와 함께 제작에 참여해왔다. 그런데 <컨페션>은 척 배리스의 이야기와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그 영화의 제작에 도움을 주고 싶어 CIA 요원 역을 자청한 것이다. 하지만 그간 몇번 제작상의 실패가 있었고, 그러던 중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물어보았다. “까짓거 내가 한번 해볼까?” 그도 좋은 생각이라며 격려했고, 그간 오랜 준비과정을 함께해온 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처음 당신은 이 내용을 접했을 때 <컨페션>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라고 이해했는가. 무엇보다 척 배리스의 원작 <위험한 마음의 고백: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부터 언급하고 싶다.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나서는 자신이 과거에 바랐던 인생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바로 그런 것. 그러니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생각 같은 것 말이다. 그 순간에 분노의 상대는 바로 자신이다. 제작 전에 척을 만나 이 이야기의 세부사항과 배경 등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이 척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그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컨페션>은 주인공 척 배리스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줄리아 로버츠를 조연으로,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을 카메오로 출연시켰다. 당신은 동료들과의 친밀도를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 그들의 출연이 <컨페션>에 어떤 장점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는가. 멋진 친구들이다! 나는 정말 그들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드루 배리모어와 샘 록웰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조건에 출연을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해줬다. 특히, 줄리아 로버츠는 환상적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다소 사악한 면을 드러내주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녀는 완벽하게 해냈다. 사실 그녀 덕분에 샘을 끌어들이기도 훨씬 좋아졌다. 조연에 스타를 캐스팅하면, 주연배우를 선정하는 것은 훨씬 수월해진다. 또… 그녀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돈도 얼마 못 벌었을 테고…. 척 배리스 역의 샘 록웰을 소개해준다면? 그는 당신만큼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다. 나는 샘을 할리우드의 한 바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웰컴 투 콜린우드>를 촬영하면서 친해졌다. 그때 샘과 작업하면서 그가 척 배리스 역에 적임자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왜 샘이 그 역에 적격인지를 두고 제작사인 미라맥스를 설득해야만 했지만(<컨페션>의 제작사 미라맥스가 당시 척 배리스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는 벤 스틸러라고 한다). 또한, 줄리아와 드루의 캐스팅이 확정되자 제작사도 마음을 놓았다. 물론 샘이 <그린마일>이나 <미녀 삼총사>에서 다소 엉뚱한 역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싫어할 수 있을까? <애정과 욕망>의 잭 니콜슨을 보라. 때때로 배우들은 엉뚱한 배역을 맡기도 한다. 그것은 배우로서의 필수적인 재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요한 자질이긴 하다. 샘 록웰을 척 배리스로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고심한 점은 어떤 것인가? 누구보다 당신 스스로가 대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를 어떻게 ‘인물’로 만들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사실 척 배리스 역은 잘 알려진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유명한 배우는 유명한 인물을 연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샘은 완벽한 적임자였다. 촬영 전에 샘은 몇달을 척과 함께 지냈는데, 나중에 척이 현장에 찾아 왔을 때는 둘의 너무 닮은 모습에 모든 스탭들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편으로는 그 인물을 그대로 옮겨놓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 척이라는 인물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야 하긴 하지만, 주력해야 하는 부분은 인물을 모방하는 것보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정확하게 모방하려 드는 것은 곧 실패를 의미한다. 오직 그 외피만을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샘은 이 점을 이해하는 배우였다. 척처럼 박수치고, 머리를 긁적이고, 어눌하게 발음할 줄 알면서도, 동시에 인물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장면에 융화시킬 줄도 알았다. 그는 정말 멋지게 척을 소화해낸 것이다. 또한 수많은 스타 조연들의 틈바구니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영화 내내 스스로를 잃지 않는 능력을 선보였다.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는 ‘변신, 개조, 각색’과 같이 인물들의 이중적인 위치 또는 변신의 과정을 갈등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은 거의 언제나 ‘카프카’적이다. 혹시 이런 생각에 충고를 해준다면. 나는 찰리 카우프만이 현재의 할리우드에서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라고 생각한다. <컨페션>의 시나리오는 정말 끝내준다! 찰리 카우프만은 <컨페션>에서 스탠리 큐브릭이 <닥터스트레인지 러브>를 통해 보여준 것 같은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신랄한 냉소주의와 블랙유머로서 말이다. 척에게 프로듀서로서의 삶과 비밀요원으로서의 삶은 어느 순간 어느 것이 진짜인지 헛갈리게 된다. 그 점이 카프카적인가?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충고로 받아들이겠다.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 중 <컨페션>은 가장 ‘찰리 카우프만답지 않은’ 스타일이 되었다. 그건 당신의 역량이 그만큼 많이 작용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휴먼 네이쳐>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에서의 그로테스크함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조지 클루니식의 영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당신의 스타일을 설명해줄 수 있나. 왜 <컨페션>이 찰리 카우프만답지 않은(UNCHALISH)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매우 찰리 카우프만다운(CHARLISH)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여서 누군가에게 들려주거나, 보여주기에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타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멋진 시나리오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에는 어느 정도 충실했는가? 당신의 소신에 따라 시나리오와 달리 바꿔 끼워넣은 장면, 또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6년여에 걸쳐 서로 다른 배우와 감독이 물망에 올랐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기본적인 맥락은 유지되었다. 오랜 기간 같은 맥락에서 작업할 수 있는 데는 프로듀서 앤드루 라자와 작업 내내 고문 역을 톡톡히 해준 척의 도움이 컸다. 척에게서는 영화제작상 필수적인 쪽지를 거짓말 안 보태고 수 백개나 받았을 정도였다. 즉, 훌륭한 시나리오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내 소신이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마이크 니콜스, 존 프랑켄하이머의 영화를 참조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참조했는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애정과 욕망>(Carnal Knowledge), 존 프랑켄하이머의 <만주인 포로>(The Manchurian Candidate)에서의 인물묘사에 모두 관심이 갔다. <애정과 욕망>에서 여주인공 캔디스 버겐은 책 니콜슨 때문에 아픔을 겪는다. 하지만 잭 니콜슨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고, 난 샘에게서 니콜슨의 연기를 원했다. 물론 척 배리스는 페니에게 변명을 하거나 매몰차게 굴지는 않았다. 또한, <만주인 포로>에서의 캐릭터와도 유사한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존 프랑켄하이머 역시 1950년대 텔레비전 프로듀서였고, 그뒤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덧붙이자면, 조지 클루니는 어느 인터뷰에서 <컨페션>에는 존 프랑켄하이머의 <킬로만자로의 눈>(The Snow of Kilimanjaro)에서 훔쳐온 장면이 있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다). <컨페션>의 마지막은 굉장한 냉소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척 배리스라는 인물을 통해 당신은 지금 ‘미국의 정신병’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은 연예정보프로를 뉴스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척은 솔직한 프로그램을 만든 최초의 프로듀서다. 괴짜 노인들의 자살 게임 쇼라니 대단하지 않나. 당신은 <컨페션>이 감독 데뷔작이라는 말에 “나는 단지 영화 한편을 만들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두 번째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는가? 좋은 각본과 제작자를 구해 스튜디오 체계 안에서 적합하게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제작이 내가 더 소질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있다면, ‘No’라고 답하진 않을 것이다.

[장 외스타슈, 필립 가렐 특별전] 누벨바그는 어디로 향했는가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공동 주최하는 ‘누벨바그 이후, 뜨거운 영화의 심장- 장 외스타슈, 필립 가렐 특별전’이 오는 8월8일(금)부터 15일(금)까지 8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 등 프랑스 누벨바그 기수들의 영화가 그동안 꾸준히 관객을 만나온 것에 비해, 장 외스타슈와 필립 가렐의 영화들은 각종 영화제를 통해 다소 산발적으로 소개되어왔을 뿐 국내 관객에게는 낯선 편이다. 장·단편을 포함한 장 외스타슈의 영화 7편과 필립 가렐의 영화 6편이 상영되는 이번 특별전은 두 감독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38년 태어나 시네필 시절을 보냈고, 60년대 초반 고다르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장 외스타슈는 주로 파리 젊은이들의 삶을 영화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으며, 1963년 첫 중편 <로빈슨의 집> 이후, <나쁜 친구들> <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가졌다> 등에서도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장 외스타슈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을 주로 해왔으며 1973년작 <엄마와 창녀>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 장 외스타슈는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나가던 중 1981년 권총자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나쁜 친구들>(1963)은 여자를 유혹하려는 두 20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누벨바그 세대들에게 미학적 지지를 얻어냈고, <산타클로스는 파란 눈을 지녔다>(1966)는 누벨바그의 얼굴 장 피에르 레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장 비고에게 오마주를 바쳤다. 1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두편의 연작 <페삭의 처녀>(1968/1979)는 가장 고결한 처녀 선발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장 외스타슈의 대외적인 대표작 <엄마와 창녀>(1973)는 애인 마리에게 얹혀 사는 지식인 알렉상드르와 그가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베로니카와의 관계를 통해 68혁명 이후 프랑스 젊은이들의 공허함과 절망감을 개인의 관계로 전치하여 질문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알릭스의 사진>(1980)은 그의 유작이다. 장 외스타슈와 함께 포스트 누벨바그 세대에 속해 있으며, 프랑스영화의 랭보라고 불리기도 하는 필립 가렐은 프랑스의 유명배우 모리스 가렐의 아들로 1948년 출생, 열여섯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연출 작업을 시작했다. 16살에 장 뤽 고다르의 <알파빌>을 본 뒤 영화의 길을 걸었고 자전적, 실험적, 시적인 영화를 지향했다. 그의 나이 19살에 연출한 <추억의 마리>는 작가적 통찰력을 예감하게 했으며, 70년대 초반 <내부의 상처> <고독의 높이> 등으로 그 예감을 증명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실험적인 형식에 담아내는 필립 가렐의 영화는 오프닝, 엔딩 크레딧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첫 장편 <추억의 마리>(1967)는 사랑하는 두 연인간의 소통문제를 주요한 고리로 삼았고, 무성영화의 형식을 빌려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실험한 <폭로자>(1968)는 부부와 아이를 주인공으로 어떠한 사운드도 없이 영화를 완성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싱어 니코가 여러 명을 동시에 연기하는 <내부의 상처>(1970)는 신화적인 전통을 가져와 만들었으며, 필립 가렐 스스로가 “새로운 출발점의 영화”라고 일컬은 바 있다. 그 밖에도 <사랑의 탄생>(1993)은 고다르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라울 쿠타르가 촬영을 맡았고, <밤의 바람>(1999)에는 카트린 드뇌브가 출연한다(문의: 02-743-6003, 02-720-9782, www.cinephile.co.kr, www.cinematheque.seoul.kr).

독립 ‘씨네21’대표이사 맡은 한동헌 씨

"고급정보지로서의 가치 굳건하게 지키고 싶다" 영상 주간지 <씨네21>이 한겨레신문사로부터 8월1일 분사함에따라, ‘씨네21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를 한동헌(45)씨가 맡게 됐다. LG 텔레콤, 웅진 코웨이 이사 등을 역임한 한씨는 한겨레신문사의 CEO 공모절차를 거쳐 대표이사로 뽑혔다. 한 대표이사는 서울대 경제학과 시절, 노래동아리 ‘메아리’에서 대학가의 애창곡인 <그루터기>, 나중에 김광석이 다시 취입한 <나의 노래> 등 20여곡을 작곡한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영화주간지의 CEO에 응모한 계기는? =9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부터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하자고 생각했다. LG미디어에서 게임 수입과 음반일을 잠깐 하다가 통신사업쪽 구조조정일을 했다. LG텔레콤에 영국 브리티쉬텔레콤의 외자유치를 하는 일이었다. 2000년부터는 나눔기술, 웅진코웨이개발에서 음반, 패션, 음식, 라이프스타일 등등 문화와 관련된 일을 했다. 그러나 끝까지 결실을 맺을 만큼 안정적인 환경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씨네21>의 CEO 모집 공고를 봤다. 오랜 구독자였고, 생각해보니까 음악뿐 아니라 영화쪽도 내 주된 관심사였고. 큰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매체는 매출액의 크기에 국한되지 많는 영향력이 있다. 거기에 매력을 느꼈다. 전문경영인이 사장으로 오면서, 경영논리로 <씨네21>이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는데? =사업적으로 만드는 것과 상업적으로 만드는 건 다르다. <씨네21>은 영화를 보는 것뿐 아니라, 글로 읽는 것도 재미가 있다는 걸 알려준 잡지이다. 그걸 통해 한국영화의 부흥에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가 중심이 되지만, 다른 매체를 포함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고급정보지로서의 가치도 크다. 그걸 굳건하게 지키고 싶다. 그점에서 비즈니스를 강화하려 한다. 지적이면서도 대중잡지임을 잊지 않고. 또 항상 20대와 호흡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고. 그러면 영향력이나 여론을 선도하는 매체가 될 거다. 별도의 회사가 됐으니 다른 사업들도 구상할 텐데? =매체 사업의 강점이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라고 생각한다. 정보와 지식에 초점을 맞추고 그 수요를 개발해나가려 한다. 뉴스·정보의 서비스 기능을 강화해서 <버라이어티> 같은 업계 사람들을 위한 정보를 주고, 이건 잡지보다 인터넷으로 유료화하고. 또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백과사전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걸 기초로 단행본들도 낼 수 있을 거다. ‘탤런트 에이전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연기자보다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작가를 비즈니스와 연결시켜주는 일 같은 것. 이런 인재를 키워내는 아카데미도 마찬가지고. 결국, 영화·영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집적체가 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좋아하는 국내외 감독을 꼽는다면? 또 작곡을 계속할 생각은? =외국 감독은 고다르, 알모도바르, 루이 브뉘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한국 감독은 이창동, 송능한, 박찬욱, 송해성(<파이란>), 김지운(<반칙왕>)…. 그 이전의 한국영화들은 유학중이어서 잘 보질 못했다. 작곡은, 막 만들 때 좀더 왕성하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 때가 있는 건 같다. 그 때가 지나서는 힘들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담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오! 이거 마릴린 먼로 필름이잖아

1954년 한국 위문공연 2분짜리, 미군기지서 낡은 무성필름 발견 한국전쟁 휴전 50주년을 맞아 미국 신문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들의 근황을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는 가운데 1954년 한국에 위문공연을 왔던 마릴린 먼로가 몰래카메라에 포착된 2분짜리 무성필름이 발견돼 화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8월3일치에 실린 “한국 비를 맞으며 노래하는 마릴린 먼로”라는 기사에서 최근 중부 캘리포니아의 파소 로블스에 위치한 미군기지인 캠프 로버츠에 수십년간 버려져 있던 낡은 트렁크 속에서 한국의 마릴린 먼로를 찍은 16㎜ 흑백 무성필름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마릴린 먼로의 한국공연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지난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등 공개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 발견된 필름은 마릴린 먼로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찍힌 유일한 동영상이란 점에서 높은 연구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필름을 발견한 사람은 캠프 로버츠의 사진사인 프랑코 페데리치. 올해 51살인 페데리치는 최근 지역 텔레비전 방송이 캠프 로버츠의 역사를 특집으로 다루려 하자 영사기를 빌려 트렁크에 들어있던 10여개의 필름들을 처음 틀었다고 한다. 첫번 째 돌린 필름에서 곧바로 마릴린 먼로가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장면이 나와 깜짝 놀랬다는 것. 처음엔 로버츠 캠프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했지만 뒷배경에 눈이 쌓여있어 캘리포니아는 아닌 것이 확실해 군인들의 군복을 조사한 결과 1954년 한국공연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마릴린 먼로는 한창 인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시기였으며 한국공연 때 군인들이 거의 난동에 가까울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털어놓곤 했다. 먼로는 “한국은 내게 일어난 최고의 사건”이라며 “그때처럼 내가 스타임을 가슴으로 느낀 적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탱크를 탄 먼로, 그리고 비를 맞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먼로가 담긴 이 2분짜리 필름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먼로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자의식이 강해 집밖으로 나갈 때는 몇시간씩 화장에 공을 들이고 사진을 찍거나 할 때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연출했기 때문에, 자연스런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먼로가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찍힌 이번 필름이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필름을 누가 찍었으며, 어떻게 버려진 트렁크 속에 담겨있게 되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 페데리치는 캠프 로버츠가 한국전 참전 군인들의 훈련장소였고, 또 할리우드와 깊은 연관을 가졌다는 점을 토대로 추적해갈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캠프 로버츠 출신 사병이 캠프의 카메라를 빌려 먼로의 모습을 찍은 후 현상을 위해 일본으로 필름을 보냈고, 그 필름이 도착하기 전 전사해 캠프 로버츠로 운구됐거나 아니면 필름을 받아 사물함에 던져넣은 후 잊어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이남·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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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키드 3-D> <심해의 유령들> 등으로 다시 주목받는 3-D영화 <스파이키드 3-D>의 개봉에 즈음해, 3-D영화의 부활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3-D영화란, 인접한 두대의 카메라로 좌우 시야에 해당되는 앵글을 촬영한 뒤 두개의 이미지를 약간 어긋나도록 겹쳐 영사하여, 셀로판지로 만든 특수안경을 쓴 관객이 입체적인 하나의 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영화. 3-D영화는, 1950년대 텔레비전의 약진에 맞서 영화만의 오락거리를 고심하던 할리우드가 향기나는 영화, 시네마스코프 같은 발명품과 더불어 내놓은 관객 유인책이었다. 은 1950년대 신기한 구경거리로 잠깐 시선을 끌었다가 영화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던 3-D영화가 1980년대의 짧은 리바이벌을 거쳐 최근 10년간 새로운 생존 가능성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신기술은 3-D영화의 고질적 딜레마인 관객의 두통과 눈의 피로를 완화시켰고 IMAX극장의 대형 스크린은 향상된 화질을 가능하게 했다. 한편 3-D 영상은 유니버설의 ‘슈렉 어드벤처’ 등 각종 테마파크의 가장 인기있는 놀이시설로 자리잡아 매력을 입증했다. 현재 3-D영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은 영화 테크놀로지의 개척자 제임스 카메론 감독. 미니 잠수함에 실은 소형 디지털비디오로 촬영한 폐선의 3-D 영상에 인물의 영상을 이중인화해 <타이타닉>의 다큐멘터리 <심해의 유령들>을 완성한 카메론은 차기작을 디지털비디오 3-D 시스템으로 찍을 계획이다. 카메론의 디지털비디오 시스템을 대여하고 모니터링 시스템을 확충해 찍은 <스파이키드 3-D>는 20년 만에 전미 개봉한(극장 수 3500개관) 3-D영화로서, 7월 넷째 주말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스파이키드> 시리즈의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3-D영화에 관한 전망은 낙관적. “요즘 청소년 관객은 입체안경을 공짜 장난감인 양 좋아라 받는다”고 웨인스타인은 자랑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3-D영화의 상업적 근거지는 아이맥스 시장이 될 전망. “3-D를 하나의 트릭이 아니라 스토리에 효과적으로 통합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이맥스영화의 관객이 진정 원하는 오락이다.” 브래드 왝슬러 아이맥스사 공동대표의 장담이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