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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CASHFILTER365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trc20전송대행코인현금화수수료' 검색결과

기사/뉴스(2003)

텔레비전

나는 텔레비전이 싫다. 보는 거말고 나가는 게 말이다. 우선 PD라는 신종 왕자들을 만나는 게 싫다. 90년대 들어 군사 파시즘이 물러난 자리를 차지한 신자유주의는 한국인들의 머리통에 돈이면 뭐든 살 수 있다는 믿음과 끊임없이 자기를 선전하고 팔아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놓았다. 한국은 온 국민이 텔레비전 출연을 열망하는 텔레비전 왕국이 되었고 PD들은 그 왕국을 거들먹거리는 왕자가 되었다. 지식인 나부랭이들의 텔레비전 병도 눈뜨고 보기 어렵다. 시사 프로그램 같은 데서 막간 인터뷰라도 걸릴라치면 공부고 연구고 만사를 제쳐두고 카메라 앞에 제 얼굴을 대령한다. 반 시간 넘어 이런저런 지당한 말씀을 늘어놓아봤자 정작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 몇초고 그 몇초도 PD가 멋대로 난도질(방송용어로는 ‘편집’)한다는 걸 잘 알지만 아랑곳없다. 텔레비전에 나간다면. 이런 소리를 하는 나도 텔레비전에 나간 적이 있다. 몇해 전에 에 한번 나간 적이 있고, 나와 어떤 이가 공저로 되어 있는 책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에 나간 적도 있다. 그 책은 어느 주간지에 일년쯤 연재한 대담을 묶은 것이다. 나는 그걸 단행본으로 내는 데 반대했지만 인세를 몽땅 베트남 양민학살 기금으로 보내겠다는 말에 승낙했다. 홍보 프로그램에 나간 것도 그래서였다. 에 나간 일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텔레비전을 피하던 내가 그땐 무슨 생각으로 거길 나갔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날 나는 토론보다는 불편한 자리에선 말을 하지 않는 내 습성에 충실했다. 그 일로 나는 한동안 핀잔깨나 들어야 했다. 내가 제법 말을 근사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고 100분을 기다렸으나 나는 두 마디만 하고 앉아 있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나는 싱거운 농으로 그들을 달래곤 했다. “두 마디나 백 마디나 출연료는 같아.” 속으로는 그랬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하는 놈도 있어야지.’ 존중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도 없으며, 불편하기까지 한 일에 부러 시간을 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뒤 텔레비전 출연 요청에 “텔레비전은 안 합니다” 한마디로 끊곤 했다. 이 판도 연예계의 관성이 지배하는지라 내가 언론개혁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인기 종목을 떠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니 노동자 계급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구린 종목에 매달리는 오늘은 그나마 그런 출연 요청도 잦아들었다. 몇달 전 나는 내가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 텔레비전에 한방 먹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한티재 하늘>의 권정생 선생이다. 몇달 전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선생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선정하고 녹색평론사에 연락했다. “최소 20만부를 준비하고, 표지엔 ‘느낌표 선정도서’라고 박아주고, 어쩌고….” 그러나 녹색평론사에선 “책이 그렇게 팔리길 바라지 않는다며” 그 일을 거부했다. 텔레비전은 다시 권정생 선생에게 연락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 가운데 하나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텔레비전이 없애려는 거냐.” <우리들의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삶의 길잡이가 될 책이니 그 책이 거기 소개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면 좋은 일이다. 그 책을 팔아 벌 막대한 돈도 녹색평론사와 권정생이라면 더 좋은 책을 내고 더 좋은 글을 쓰는 일에나 쓸 테니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유익들을 거리낌없이 거부했다. 그런 유익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유익들을 얻기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른 가치 때문이다. 그 가치는 오늘 인간의 위엄을 스스로 접고 사고 팔리는 물건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김규항/ 출판인

‘다모’ 열풍의 핵 이서진

마치 차인표의 출현을 보는 듯하다. 1994년 문화방송 텔레비전의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그랬던 것처럼 탤런트 이서진(30·사진)이 바야흐로 〈조선 여형사 다모〉 열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팬들의 반응만 보면 차인표도 맛보지 못한 스타 탄생의 과정을 이서진은 거치고 있다. 지난 6일 〈다모〉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이서진의 글이 하루 만에 8만회가 넘는 조회건수를 기록하는가 하면 ‘이서진’이란 이름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의 종합 인기 검색어 1위로 뛰어올랐다. ‘다모 폐인’(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이 될 정도로 다모를 좋아한다는 뜻)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다모와 이서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래원이 〈옥탑방 고양이〉에서 보여줬던 도저히 미워할 수 없이 귀여운 남자도 아니고, 차인표 같은 백마 탄 왕자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다. 서자 신분을 뛰어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한 끝에 한수 이북 제일의 무사가 된 집념과 강인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기 집안에 관노로 들어온 채옥(하지원)을 향해 마음으로부터 한없이 따뜻함을 보여주는 황보윤 종사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남성상을 펼치는 데 성공한 듯싶다. 특히 채옥을 향해 감정을 감추듯 드러내는 그의 절제된 연기는 오히려 시청자들로부터 애절한 반응을 얻었다. “어제 윤이 채옥에게 했던 말,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훨씬 다정하고 애절한 대사였소.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가슴 설레어 보긴 정말 오랜만이오.”(정선영씨의 〈다모〉가 돋보이는 이유) 드라마 첫회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매화나무 숲을 걸으면서 황보윤이 팔에 상처를 입은 채옥에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고 던진 대사라든지, 4회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끝에 자신을 떠나려는 채옥을 끌어안으며 “가거라. 그러나 반드시 살아 돌아오너라”라는 대사들이 ‘다모 폐인’ 사이에서는 회자되고 있다. 그는 게시판 글에서 팬들의 열광적 관심에 이렇게 답했다. “서자라는 신분으로 멸시받는 아픔을 가지고 살았지만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으면서부터 사랑하는 여자의 신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멸시하던 양반들에게 충성해야 하는 윤을 보면 제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습니다. 윤이 아무리 채옥을 사랑해도 여러분이 다모를 사랑해주시는 마음에는 못 미칠 것 같습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광주영화제 회고전에 부친 배창호감독의 ‘존 포드론’

오는 22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는 특별행사로 ‘존 포드 회고전’을 마련했다. 존 포드(1895~1973) 감독은 모뉴멘트 밸리, 존 웨인 등 서부극의 아이콘을 만들어내면서, 이전까지 다분히 미국적인 이야기로 여겨져온 서부극을 세계적인 장르로 확장시킨 거장이었다. 서부극뿐 아니라 전쟁물, 전기영화, 사회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아카데미상을 6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역마차> <황야의 결투> <분노의 포도> 등 그의 대표작 몇 편이 70~80년대 텔레비전을 통해 국내에 여러차례 방영됐지만, 이번처럼 그의 영화 15편을 온전히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영화팬이라면 놓치기 아깝다.(상영작은 위 세 편을 포함해 <청년 링컨>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그들은 소모품이다> <아파치 요새> <리오 그란데> <웨건 마스터> <조용한 사나이> <태양은 밝게 빛난다> <모감보> <수색자>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일곱 여인들>) 청년시절부터 존 포드의 팬이었던 배창호 감독에게 존 포드에 대해, 또 존 포드의 영화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글을 청탁했다. 영화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배 감독은 흔쾌히 수락했다. 편집자 "존, 천상에서도 '인간'을 찍으시나요" 내가 태어나던 1953년 존 포드의 <역마차>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영화광이셨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유년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게 되었고 유난히 서부극을 좋아했던 나의 기억 속에는 <아파치 요새>나 <기병대> 등의 존 포드 영화가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다. 은행원이셨던 아버지는 어린 나를 재우면서 ‘넓고 넓은 바닷가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자주 불러주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나 구슬픈 가사와 아름다운 곡조에 엉엉 소리내어 울곤 했었다. 그 후 성년이 되었을 때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라는 이 미국민요의 제목이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의 원제목임을 알게 되었고, 주인공 헨리 폰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하고 먼 하늘 아래 말을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이 애창곡이 흘러나올 때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던 기억이 새롭다. 존 포드라는 감독을 정말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텔레비전의 ‘주말의 명화’ 시간에 방영되었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라는 영화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시민 케인>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영국 웨일스 지방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어느 광부 가족에 대한 추억을 그린 영화인데, 흑백화면으로 펼쳐지는 꿈결같은 영상과 서정성이 당시 영화감독 지망생이던 젊은 나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후일 감독이 되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영화를 만들 때 원작에도 없는 광부의 삶을 덧붙인 것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데뷔 때부터 한동안 소설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소설의 원작을 각색할 때 자주 참조하게 된 영화가 존 포드가 만든 존 스타인벡 원작의 <분노의 포도>였다. 현실을 고발하는 원작의 인위적인 결말부분을 과감히 삭제해 버리고 방랑자로서의 인생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내는 존 포드의 보편성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분노의 포도>는 신인감독 시절의 연출 교과서 역할도 하였는데 언제나 절제를 잊지 않는 카메라의 구사와 빛과 어둠의 대비, 그리고 조형적이면서 서정적인 영상미의 표현법 등을 이 영화로부터 배울수 있었다. 그 후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 <허리케인>, <모감보> 등의 존 포드 작품들을 보게 되면서 센티멘탈리스트로서의 나의 정서적 기질과 인간의 선성(善性)을 지향하는 따스한 관점이 존 포드와 닮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1987년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 <황진이>가 소개되었을 때 미국의 어느 평론가가 <황진이>에서 어딘지 존 포드 영화의 체취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사극 <황진이>에서 존 포드 영화의 느낌을 발견하는 이 평론가의 성찰력이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선이 굵고 폭이 넓은 인간성에 놀라곤 했다. 그의 대표작 <수색자>에서 북군을 지휘하는 주인공에게 남군의 어린 병사가 사로잡힌다. 주인공은 적군 어린병사의 엉덩짝을 몇 대 갈려주며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으라면서 돌려보낸다. <아일랜드의 연풍>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 마찰을 일삼던 구교와 신교 신도들이 힘을 합쳐 곤란에 빠진 구교 신부를 도와준다. 이렇듯 전쟁터에서 적군 병사를 살려보내주거나 아일랜드 같은 나라에서 신구교도가 상대방을 돕기 위해 힘을 합하거나 하는 설정은 리얼리티를 초월한 존 포드의 삶에 대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1956 <수색자>, 1953 <모감보> <역마차>에서 지명수배범을 보안관이 스스로 도망시켜주거나 <허리케인>에서 주인공의 탈출을 총독이 방관하는 장면 등은 인간에 대한 애정 없이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장면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섬세함은 부족하더라도 대신 감독의 품성에서 배어나오는 서정성의 향기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무성영화시절부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영화를 만들어온 존 포드는 감독생활의 마지막 무렵 <샤이언>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 선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그의 서부극에서 악역으로만 묘사되었던 원주민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지난 겨울부터 <길>이라는 제목의, 떠돌이 대장장이의 삶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우연히 다음과 같은 존 포드의 일화를 읽게 되었다. 존 포드가 즐겨찾던 로케이션 장소인 모뉴멘트 밸리에 날씨가 잔뜩 찌푸려 촬영이 어려운 조건임에도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우들과 리허설을 계속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카메라맨이 이 궂은 날씨에 무엇을 찍을 수 있겠냐며 존 포드에게 불평을 터뜨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을 찍으려고 하지. 그건 바로 사람의 얼굴이야” 그렇다. 나는 존 포드로부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라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게 된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공포,<거울속으로>

■ Story 곧 재개장을 앞둔 한 백화점, 깊은 밤 홀로 늦게까지 남아 있다 퇴근하던 한 여사원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분신에 의해 끔찍한 죽임을 당한다. 이튿날엔 백화점에 근무하는 또 다른 직원 하나가 역시 자신의 분신에 의해 살해당한다. 경찰에서 은퇴한 뒤 백화점 보안실장으로 근무하던 영민(유지태)은 이 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고 느끼는데, 과거 그의 동료였던 현수(김명민)는 이 사건을 연쇄살인으로 단정하고 수사에 뛰어든다. 이때 백화점 화재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자신의 언니가 여전히 백화점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지현(김혜나)이 나타나고 끔찍한 살인사건은 계속된다. ■ Review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반영이 더이상 단순한 반영이기를 멈추고 자율적인 의지를 지닌 분신처럼 행동한다면? 호러장르에서라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이러한 설정은, 좀 멀게는 독일 호러영화 <프라하의 대학생>- 제정 시기(1913), 바이마르공화국 시기(1926), 그리고 나치 집권기(1936)에 걸쳐 총 세 차례 영화화되었던 작품이다- 을 떠올리게 만든다. 거기서 다소간 파우스트적인 계약에 말려든 주인공 발트빈은 분신이 저지르는 끔찍한 악행을 막을 방편으로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일찍이 영화학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그의 유명한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이러한 발트빈의 모습은 매시기 독일인들의 이중적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03년 여름은 바야흐로 한국 공포영화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 가운데 그간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신인감독 김성호의 데뷔작- 각본 또한 감독 자신이 직접 썼다- <거울 속으로>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 나의 반영과 동시에 나를 배반하는 분신을 생산하는 거울이라는 소재가 얼른 불러일으키는 것이 매혹과 공포라는 이중적 감정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거울 속으로>의 주된 소재 자체는 많은 공포영화가 목표로 삼는 심리적 기제의 이중적 작동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잘 어울리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간단히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울 속으로>는 오싹한 공포를 유발하는 영화가 아니며 동시에 그다지 매혹적이지도 않은 영화다. 차라리 정신분석학적 영화연구 수업이나 이미지 분석 연습을 위한 보조교재로 쓰기 위해 만든 프레젠테이션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영민은 경찰로 근무할 당시 거울에 비친 상을 실재로 착각했다가 결국 인질로 잡혀 있던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간 뒤 폐인이 되다시피 한 인물이며,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백화점 안을 떠도는 원귀의 쌍둥이 동생 지현은 거울이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설정 등은, 영화의 소재와 캐릭터간의 유기적 관련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너무 과도하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공감을 주는 데 실패한다. 게다가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내민 유지태, 각각 <소름>과 <꽃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김명민과 김혜나는 <거울 속으로>에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거울 속으로>가 거울에 얽힌 ‘전설’을 구성하기 위해 끌어들인 벨라스케스, 얀 반 아이크, 조르주 드 라투르,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회화들, 그리고 좌우가 뒤바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서명에 관한 야사 등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흡사 프리프로덕션 단계의 조사물들을 그저 고스란히 펼쳐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거울 속으로>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는 영화의 플롯 자체에 내재해 있다. <거울 속으로>는 <장화, 홍련>식의 ‘허무호러’(?)를 요령껏 피해나가기는 하지만 결국 기업 내부의 음모와 배신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닳고 닳은 이야기를 해결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 속으로>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타깃으로 삼는 시청자들과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공포영화의 관객들을 동시에 끌어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양자에게 공감을 사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거울 속으로>가 어느 정도는 그간 한국에서 일어난 ‘원인은 있으되 누구에게도 책임은 없는’ 인재(人災)에 대한 함의를 담으려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한데 그것을 기업 드라마의 상투적 플롯 안으로 축소시키고 진부한 거울놀이를 통해 결함을 애써 감추려 드는 동안, 거울 너머의 대상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자꾸 원한을 토로할 것이다. 벽 너머에 있던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안병기의 <폰>과 마찬가지로 포의 소설을 빌려 마무리한 <거울 속으로>가 정작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크라카우어 식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에 관심있는 이라면 이 영화가 아주 흥미없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지도 모른다. :: <거울 속으로> 김성호 감독 이번 영화는 ‘실물과 반영’, 다음 영화는 ‘현실과 기억’ 첫 장편으로 호러 장르를 택했다. 특별히 공포영화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거울 소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시초였다. 거울 이미지를 줄곧 생각하다보니, 거울 속 내가 다르게 움직인다면 혹은 다른 인간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었고 그로부터 스토리를 짜 나가다보니 무서운 느낌이 많아 공포영화가 됐다. 그래도 호러로서 장르적 완결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지 않았나. <거울 속으로>에는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판타지 요소와 죽은 이가 거울에 보인다는 호러적 요소가 있었다. 한쪽으로만 기울기엔 아쉬워 접점을 찾아 동시에 풀어가기로 했다. 드라마, 호러, 판타지, 코미디를 모두 포함하는 형태가 된 것 같다. 기존 한국 공포영화에 대한 견해는. 하나의 요소나 소재만 갖고 끝까지 가는 단선적인 면이 제일 아쉬웠다. 이야기 자체가 풍부하길 원해 <거울 속으로>는 캐릭터의 색깔, 다양한 이야기를 깔아놓고 후반에 한꺼번에 거둬들이는 ‘멀티레이어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며, 그중에서도 나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출발점은 그렇다. 많은 공포영화에서 ‘괴물’은 프레임 밖에서 들어오거나 홀연히 나타난다. 하지만 <거울 속으로>에서는 가장 무서운 대상이 바로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는 점이, 외부의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거나 내부의 무엇이라는 점이 재밌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주온> 같은 영화를 보면서 역시 분칠하고 산발한 귀신이 제일 무섭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거울 속으로>에서 무서운 존재들은 우리의 온전한 모습 그대로다. 무섭다기보다 장면 자체가 흥미로웠으면 했다. 배우들의 연기 톤이 다소 불균질한 것 같다. 배우와의 소통 문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마지막 편집 과정에서 다듬다보니 누락된 부분도 생겨 설득력이 반감된 부분도 있다. 거울 장면과 관련된 촬영기법을 설명한다면. 거울상과 실물의 상이 분리되는 장면은 컷으로 나누면 재미가 덜할 것 같아 되도록 롱테이크를 취했다. 우영민이 잠에서 깬 장면은 좌우가 뒤바뀐 동일한 세트를 2개 만들어 찍었고, 김 부장이 나오는 탈의실 신은 거울을 정면에 붙인 채 찍은 뒤 거울에 비친 스탭들을 CG로 지웠다. 후반의 장면은 그대로 찍은 뒤 후반작업에서 좌우를 통째로 뒤집었다. CG 분량은 140컷, 15분가량이다. <예스터데이>를 작업한 팀이 맡았는데 SF인 <예스터데이> 못지않게 많다고 하더라. (웃음) 단편 시절부터 보여준 ‘거울을 사이에 둔 이원적 세계상’에 대한 집착은 이제 일단락됐나. 다음에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거울이나 기억처럼 경계에 서 있는 이야기, 경계에서 어디로 갈지 확정짓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끌린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한국 찾은 일본애니메이션 거장 다카하다 감독

우리에겐 70년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빨강머리 앤〉 정도밖에 정식 소개된 작품이 없지만, 다카하다 이사오(67,사진)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일군 장본인이자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끄는 거장이다. 〈반딧불의 묘〉(1988), 〈추억은 방울방울〉(1991), 〈헤이세이 너구리전쟁 폼포코〉(1994), 〈이웃의 야마다군〉(1999)에 이르는 그의 극장 장편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가 단순히 미야자키의 파트너가 아니라 미야자키와는 또다른 세계관을 지닌 작가임을 인정할 것이다. 특히 인간의 자연개발에 맞서 둔갑술을 이용해 막다가 실패해 영원히 인간으로 변해 살고 있는 너구리들의 이야기 〈헤이세이…〉는 염세적일 만큼 비관적이면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자유주의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지난주 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강연을 위해 1박2일로 방한한 그는 몹시 순하고 겸손해 보였지만, 자신의 세계관을 이야기할 땐 단호하고 힘있었다. 다카하다 감독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 불렀다. “이상주의자는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야자키도 언제나 괴로운 얘기만 하지 않냐.”(웃음) 1945년 종전 때 9살이었던 그는 “일본이 신의 나라라는 믿음도 그리 깊지 않았고, 어제까지 다른 이야기를 하던 학교 선생이 갑자기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등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걸 보면서 자란 내 세대에게 가치는 상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기에 종전 직후 고아가 된 오누이의 비극적 죽음을 담담히 그린 〈반딧불의…〉 같은 작품이 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일본의 피해자의식을 부추겼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는 “그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싶다”라면서도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그런 비판을 한다면 이해한다”고 답했다. 그는 만주에서 중국인을 노예처럼 부리게 된 일본인의 ‘일상’을 다룬 작품을 기획했지만, 천안문 사태로 무산되기도 했었다. “군사적 협력말고도 일본이 평화 공헌할 방법은 많다”며 최근 일본사회의 우경화 움직임을 비판할 땐 현실주의자이면서도 평화주의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다카하다 감독은 미야자키와의 차이점을 묻자 “그는 천재이고 난 천재가 아니다”라면서도 “미야자키는 재능이 많고 재미있지만 그런 식으로 될까”라며 유보조건을 달았다. “만들 때마다 서로 비판한다. 서로 다른 걸 만들려고 하니까 비판은 당연하다”라는 그는 좋은 애니메이션의 조건으로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작품”을 꼽았다. 다카하다는 요즘의 일본 애니가 “감동적이다, 위안을 준다는 평만 들을 뿐”이라며 비판했다. 최근 프랑스의 애니 〈키리쿠와 마녀〉를 일본극장에 거는 일에 전력을 다한 것도 “일본 작품엔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한국 애니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짧은 일정에서도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 감독과 3시간 가까이 만난 이 노감독은 흥행이 안 되었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애니메이션사에 남을 작품이니 그런 데 개의치 말고 작품을 만들어주길” 당부했다고 한다. 최근 신작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으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가장 부각되는 소재,형사물 <와일드 카드><나크>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 영화 등 다방면에서 가장 뜨거운 소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바로 ‘형사’들이다. 형사물들이 이렇게 다시 뜨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와는 달리 그들의 활약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실적인 묘사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우리나라와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의 디브이디가 최근에 출시되었다. 첫번째는, 영화 <약속>의 김유진 감독과 이만희 작가가 다시 한 팀을 이뤄 2년여에 걸친 강력반 취재를 바탕으로 완성했다는 ‘리얼형사활극’ <와일드 카드>다. ‘퍽치기’ 일당을 뒤쫓는 강력 3반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로, 시종일관 발로 뛰고 맨손으로 싸우지만 위급한 상황에는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실제 형사들의 거친 일상을 그대로 화면 속에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로서의 <와일드 카드>뿐만 아니라, 이 타이틀에는 다른 타이틀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몇 가지 특별한 요소가 갖춰져 있다.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메뉴화면의 독특함이다. 가독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글자들을 회전시켜 만들어낸 세련된 디자인은, 타이틀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것. 한편 부록에서는 ‘비디오 코멘터리’라고 이름 붙여진 새로운 형태의 음성해설이 등장한다. 4명의 주요배우들이 모여 앉아 본편 영화를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주 화면으로, 그리고 영화는 작은 화면으로 나오기 때문에, 평소 궁금해하던 음성해설 녹음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각자가 맡은 역할 부분 외에는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색함이 자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 밖의 특별한 부록으로는 ‘연장’, ‘짭새’ 등 형사들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은어들을 풀이해주는 ‘형사들의 전문용어’ 코너가 있다. 국내에서 개봉할 당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감독과 배우들을 대신해 제작자인 탐 크루즈의 이름이 부각된 형사영화 <나크>도 새로운 형사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속에서 만나보는 미국 마약반 소속 형사들의 실상이 기존 할리우드 형사 영화들에서 묘사된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특히 상부, 피해자, 범인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까지 포함된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형사들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는 압권이다. 부록에는 영화의 순탄치 않았던 제작 과정과, 이 영화의 전범이 되었던 영화 <프렌치 커넥션>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장면들에 대한 설명들이 가득 들어 있다. 또한 감독이 편집자와 진행하는 음성해설을 통해, 각 장면에서의 기본 의도를 포함한 영화 촬영과정에서의 세부적인 정보들도 충실히 제공해주고 있어 영화를 좀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김소연/ DVD 칼럼니스트 <와일드 카드> SE ,(2003) 감독 김유진 화면 아나몰픽 1.85:1 오디오 돌비디지털 2.0, 5.1 & DTS 지역 코드 3 출시사 시네마서비스 <나크>, (2002) 감독 조 카나한 화면 아나몰픽 1.85:1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지역 코드 3 출시사 아이비전 엔터테인먼트 ▶▶▶ [구매하기] ▶▶▶ [구매하기]

일본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 인터뷰

세계적인 영화평론가이자, 재작년까지 도쿄대 총장을 지낸 하스미 시게히코(67)가 광주국제영화제의 게스트로 한국에 왔다. 이 영화제가 마련한 존 포드 특별전의 부대행사로 열린 세미나에 하스미가 발표자로 참석한 다음날인 지난 25일 광주에서 그를 만났다. 불문학을 전공해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찌감치 일본에 푸코와 들뢰즈를 소개한 선구적 지식인인 하스미는, 도쿄대 불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70년대 도쿄대와 릿쿄대에서 영화 강의도 시작했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링>의 나카다 히데오, <큐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유레카>의 아오야마 신지 감독 등이 그의 강의를 들은 제자들이다. 영화뿐 아니라 문학비평도 꾸준히 쓰고, 2001년 도쿄대 총장 시절 도쿄대 졸업식장에 당시 서울대 이기준 총장을 초청해 함께 일본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등 정치적 발언도 삼가지 않는 하스미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명이다. 하스미는 올해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자신의 저서 <감독 오즈 야스지로>(한나래출판사에서 번역 출간)에 80페이지 정도를 새로 써 증보판을 내고, 도쿄대가 주최하는 기념행사의 기획위원장을 맡는 등 오즈로 바쁜 해가 될 것이라는 근황을 전했다. -한국의 영화제에 처음 오면서, 존 포드 감독 세미나 참석차 왔다. 존 포드를 그렇게 중시하는 까닭은? =우선 존 포드는 무성영화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감독이다. 무성영화는 언어가 안 되니까 시각적 소스, 이미지로 전달한다. 존 포드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만 해도 무성영화의 경험이 없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두번째로 존 포드를 옛날사람으로 취급하려고들 한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취급하지 않으면서 죽은 지 30년밖에 되지 않는 존 포드를 옛날 사람 취급하는 경향과 싸우고 싶다. 그는 20세기의 모차르트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오페라를 좋아한다며 독일에서 5시간짜리 바그너의 오페라를 봤다. 그런데 그는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를 세편밖에 안 봤다고 했다.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시간이면 미조구치 영화 3편, 임권택 영화 2편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20세기 예술을 무시하는데 그럴 게 아니다. -광주영화제의 인상은? =세계 영화계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모리스 피알라나, 조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작품을 영화제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혜택이다. 대단히 좋은 프로그램의 영화제다. 초청해준 데 대해, 또 일본 감독에 대해서가 아니라 존 포드라는 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작가를 주제로 불러준 데 대해 매우 감사한다. 오는 8월31일은 존 포드가 작고한 지 정확히 30년 되는 날이다. 그 날 막을 내리는 이번 영화제는 정말 의미가 깊다. 영화 하면 곧바로 관객의 수로, 양으로 평가하는데 영화제만큼은 질을 중시해야 한다. 질에 충실하다면 관객이 적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성공 아닌가. 이 영화제의 영화를 보고 영향을 받아 그 소수 가운데서 10년 뒤에 작가가 나올 거다. 그게 얼마나 큰 수확인가. -영화평론이 영화라는 시각매체의 풍성함을 단순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걸 열어주는 글쓰기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신문에도 영화평을 많이 써왔다. 그 지론을 살려서 신문에 짧은 글쓰기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두가지 글쓰기를 한다. 신문에 쓸 때는 영화의 좋은 면을 부각시켜서 독자들이 바로 극장으로 올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긴 글을 쓸 때는 영화의 풍성함을 손상하지 않고,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관심 있게 봐 온 것으로 안다. =임권택 영화는 순수 예술은 분명히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할리우드 스타일인데, 그 안에서 가치를 살리고 자기 의미를 드러낸다. 또 제재 자체는 센티멘탈하다. 그런데 거기서 그냥 흘러버리지 않고 절제하는 연출 기법이 빼어나다. 존 포드와 닮았다고 할까. 지금 그런 식으로 영화 하는 감독이 없다. -2년 전 <씨네21>과 인터뷰했을 때, “<쉬리>는 추상적이고 <거짓말>은 구체적”이라고 말한 표현이 인상깊었다. 임권택 외에 주목하는 한국 감독이나 영화를 꼽는다면? =나는 국적을 따져가면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국가의 상황에 따라서 뛰어난 작가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배창호 감독도 좋았지만, 70년대에 이장호 감독의 영화가 매우 좋았다. 10년 뒤에는 대단한 작가가 될 것으로 봤는데 지금 영화를 안 하고 있다. 근래에는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이 탁월한 영화였다. 그의 다음 영화들은 아직 못 봤고.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히 뛰어난 게 대상들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16㎜ 영화 중에서 가끔씩 대상을 빼어나게 포착하는 게 나오는데, 이 영화에 그런 느낌이 있다. <거짓말>은 남녀관계라는 소재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일본의 젊은 감독 중에서 기대주를 꼽아본다면? =압도적으로 구로사와 기요시다. 아오야마 신지도 좋은 영화가 몇 편 있지만. 가와세 나오미도 완전히 승복하긴 어렵지만 주목하고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학생 때 16㎜로 찍던 정신과 기법이랄까, 그게 35㎜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개성적이고 자기 세계를 꾸준히 판다. 매우 비타협적이다. 이제서 관객들이 그의 영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는 심리상태를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화면으로 먼저 제시해버린다. 그렇게 묘사해가는 게 아주 뛰어나다.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로 만드는 신작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허우샤오시엔이 <밀레니엄 맘보> 찍을 때 온천장 손님으로 출연해달라고 해서 거절했다. 그래서 이번엔 출연했는데 헌책방 손님으로 30~35초 정도 나온다. 대사는 “이것 주십시오, 감사합니다”가 다고. 편집 때 잘릴지도 모르겠다. 영화제목은 <커피 시광(時光)>인데, ‘시광’이라는 말이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따뜻한 시간을 가진다는 뜻이다. 완전히 픽션이고, 오즈가 나오지도 않는다. 오즈 영화의 분위기나 정신 같은 걸 담는 거다. 촬영 때 헌책방이나 다방에 카메라를 숨겨놓고 찍어서, 일반 손님들이 영화 찍는 줄 모르고 들어와 커피마시고 나간다. 바로 옆에 주연인 아사노 타(#다#)나노부가 앉아 있고. 그렇게 자연스런 스타일로 찍고 있다. -허우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과 개인적으로 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밀레니엄 맘보>에서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는데 어떻게 보나? =그 전 영화 <해상화>는 연출, 카메라 움직임, 내용, 모든 게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였다. <밀레니엄 맘보>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놀랐다. 자기가 갖고 있던 예술세계를 일거에 버리고. 큰 모험인데 나는 그 모험을 지지하고 싶다. <커피 시광>은 오즈에 대한 오마주여서 대단히 차분하기는 하지만 그 양반 행보로 봐서 어쩔지 모르겠다. -베니스, 로카르노 등 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서구의 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이 사라지지 않는 건 왜라고 보는지? =동양 전체의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의 한국, 현대의 일본을 밀도있게 다룬 영화들은 절대 수상 못한다. 임권택 감독도 결국 옛날얘기로 상을 받았다. 문제는 심사위원들에게 있다. 그 질이 형편없다. 텔레비전을 의식해서 여배우들을 심사위원으로 앉히는 것도 말이 되는가. 유럽영화제는 심사위원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해질 수 있다. -도쿄대 총장 할 때 서울대발전연구회 회원으로 몇차례 한국에 오기도 했다. 그때 느낀 한국 교육의 문제점 같은 게 있는지? =지금은 서울대 총장이 바뀌어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번은 회의할 때 참석자들이 ‘한국 사람들은 독창성이 없다’고 말했을 때 반발심이 생기더라. 일본에서도 회의하면 ‘일본 사람들 독창성 없다’는 말 많이 한다. 그때 그랬다.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사실을 들어, 독창성 없는 나라의 감독이 왜 상을 받았겠냐고. 지금 상황이 나쁘니까 바꾸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대학이 마비됐다, 이렇게 말하면 좋은 대안이 안 나온다. 지금 잘 하는데 좀더 나은 쪽으로 가자, 이래야 한다. -영화비평의 임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의 어떤 면을 옹호, 지지할 것이냐는 문제다. 미래가 있는 영화를 지지해야 한다. 이전 영화보다 좋아졌다, 이런 게 아니라 언젠가 폭발할 수 있는 여백을 가진 영화가 있다. 그게 미래가 있는 영화다. 영화는 달리 비유하자면 시한폭탄이다.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 대해 30년대 이전의 평들을 보면 나루세 미키오가 언젠가 터질 거라는 예감을 전혀 못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고양이를 부탁해> <거짓말> 이런 영화는 미래가 있는 영화다. 또 영화비평이 좋다고 했다가, 나쁘다고 했다가 이런 식으로 왔다갔다 하면 안 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도 존 포드 당시에 그의 영화가 형편없다고 했다. 지금 쓴 평이 30~40년 지나도 일정한 가치와 설득력이 있는, 그런 글을 지향해야 한다. 광주/임범 기자 isman@hani.co.kr,사진 광주영화제 제공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

인간도 세상도 영화제도… 선명한 것은 없구나 김기덕 감독과 동행한 정한석 기자의 로카르노 다이어리 현지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김기덕(사진 맨 왼쪽) 감독. 로카르노=글·사진 정한석 mapping@hani.co.kr 나쁜 남자 혹은 선승과 함께 8월12일, 로카르노의 여행길에 과거의 나쁜 남자, 혹은 지금의 선승을 만나다. 10여 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환승 비행편을 기다리던 중 김기덕 감독은 대뜸 영화제의 상 얘기를 꺼낸다. “영화상영만 딱 하고 바로 오면 좋죠. 하지만 사정상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폐막식까지 있는 거예요. 사실, 나는 내가 영화제에서 상 못 탈 거라는 걸 알아요. 왜냐하면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전문적으로 영화를 보는 비평가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취향이 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거기 때문에….” 이번 영화제 참석에 대한 사연에서부터, 지금의 사회분위기, 영화철학, 자신을 해석하는 한국 영화비평 담론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인 <빈집>(가제)에 대한 단초에 이르기까지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며 그렇게 두 시간을 훌쩍 보내다. 드디어, 한밤중에 도착한 로카르노,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보인다. 27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기온은 41도까지 달아올랐지만, 도시의 중심부를 끼고 도는 커다란 호수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카사노바> 순환 혹은 정지 8월13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기자시사가 2시 그루잘 극장에서 열리다. 올해 로카르노에 출품된 한국영화는 총 3편. 경쟁작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그리고 ‘오늘의 시네아스트’ 부문에 박경희 감독의 <미소>(박경희 감독의 <미소>는 이미 모든 공식일정이 끝난 뒤였다)와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이 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김기덕 감독의 신작은 이 올해의 대상 예상작으로 고바야시 마사히로의 <헤어드레서>와 함께 손꼽을 정도로 이미 기대를 모았다. 미리부터 진을 치고 있다가 극장의 문이 열리자 쏟아져 들어가는 기자들의 표정에서도 같은 기대를 엿볼 수가 있다. 영화의 타이틀을 뒤로 하고, 사계절을 돌아 다시 봄까지 인간(승려)의 한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여 만들어낸 이 영화는 김기덕의 영화세계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영화는 ‘고립’의 장소에서, 다시 제자리로 ‘귀환’하고야 마는 인물들을 통해 김기덕의 순환 논리를 여전히 유지하지만, 전에 없이 ‘한국 문화’의 정서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남들은 김기덕이 위선을 부린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모자를 벗은 기분으로 만든 영화”라고 김기덕 감독은 표현했다. 시사회가 끝난 저녁 ‘한국영화의 밤’ 행사장에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 집 앞>의 김진아 감독과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로서 이곳을 찾은 UC어바인의 김경현 교수 등이 자리했고, 이렌느 비냘디 로카르노영화제 집행위원장 외에도 세계 각국의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모여들었다. 애초 끈질기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초청하고자 노력하다 결국 로카르노에 넘겨주게 된 산 세바스찬 영화제 집행위원장 미켈 올라시레구이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변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작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며, 질적인 단절보다는 양상의 변화로서 이번 영화를 평가했다. 그렇게 한국영화에 대한 호응과 갈채를 뒤로 하고 피아자 그란데로 향한다. 로카르노영화제의 상징이자, 자랑인 피아자 그란데의 야외상영.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스크린, 거기에서도 가장 맨 앞에 앉아 올해의 로카르노가 오마주를 바친 작품 중 하나인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사노바>를 본다. 텔레비전 모니터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판타지의 장중함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 화려한 매혹의 강도로 본다면 그의 영화 <사티리콘>과도 비교가 가능할 정도이다. 젊은 날의 카사노바가 수많은 여인들을 거치며 끝내는 노쇠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니노로타의 음악과 펠리니가 자신의 영화 에 출연하여 “나의 알리바이”라고 말했던 치네치타 스튜디오가 모든 환상을 뒷받침한다. 그러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난데없이 삽입되는 늙은 카사노바의 얼굴 클로즈업. 쭈글쭈글한 주름과 반쯤 뒤집혀 벌건 살을 들어내는 눈꺼풀, 한 노인의 초라한 얼굴을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심정이란. 이렇게 갑작스럽고 강렬한 클로즈업은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오프닝 장면이나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눈알을 베어내는 정도가 아니라면 줄 수 없는 충격이다. 어떤 영화들은 짧은 한숏으로 그 영화의 모든 의미를 정지해 설명하고 버텨내는 때가 있다. <카사노바>가 그렇다. 대상작 <카모스 파니>는 어떤 영화? 파키스탄 여성 형실 고발 황금표범상을 받아든 <카모스파니>의 감독 사비아 수마르 제56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을 받은 <카모스 파니>는 파키스탄 여성감독 사비아 수마르의 첫 번째 극영화이다. 사비아 수마르는 <누가 처음 돌을 옮길 것인가?> <왜냐고 묻지마라> 등 두편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시작하였으며, 파키스탄 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을 영화의 전면에 세워왔다. <카모스 파니>는 1970년대 말 군사정권 시기하에 한 청년이 이슬람 종교에 빠지면서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어머니를 박해하여 그녀를 자살로까지 몰고가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영화생산이 전무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한 파키스탄에서 여성감독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의 운명을 유연하게 재조명한 고발정신”이 돋보였다는 것이 심사평이다. <카모스 파니>의 수상은 현재 이렌느 비냘디 체제하의 로카르노영화제가 추구하는 정치적인 지향과 어울렸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사비아 수마르는 이 영화에 대해 “<카모스 파니>는 저항할 수 없는 바로 그 역사와 정치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이며, 격동하는 변화와 삶의 끝없는 길을 내포한 파키스탄”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1]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3]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1]

규모의 팽창보다 균형있는 수상을 로카르노만의 특색 잃고 사회성 짙은 작품에 편중, 대상작은 논란 여지 남겨 로카르노=글 임안자/ 해외특별기고가·사진 정한석 1920년대 유럽 예술인들은 로카르노를 유토피아의 도시로 불렀다. 그리고 1947년 이곳에 영화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유토피아의 꿈은 영화예술과 조우하고는 오늘의 이름난 국제적 영화제로 성장해왔다. 이런 오랜 문화의 전통을 배경으로 한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가 8월6일 저녁 대형 야외상영장인 피아차 그란데에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1953년작 뮤지컬코미디 <더 밴드 웨건>(The Band Wagon)으로 차분히 막을 올렸다. 이날은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7500석의 광장이 관객으로 꽉 찼고, 이곳에서 열흘 동안 매일밤 새벽 두세시까지 영화축제가 계속됐다. 56회 행사의 특징을 말하자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커진 프로그램과 혼란스럽도록 여러 갈래로 갈라진 부문이었다. 듣자니 2003년 영화제에 참가신청을 요구한 영화는 모두 1440편. 그 가운데서 뽑힌 장·단편 440편이 15개 부문을 통해 7개 상영관에서 상영됐는데, 440편은 20∼30년 전만 해도 상상키 어려운 많은 숫자이고 지난해에 비해서도 100편이 더 많다. 지난해에 비해 관객 수가 20% 늘어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상영관이 모자라 숱한 영화들이 한번 상영으로 그쳐 아쉬움을 낳았다. 브에나 비스타 스위스 대표 크로티는 8월13일치의 <바즐러 자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로카르노영화제는 소규모 영화제 중에서 큰 영화제로 남는 게 큰 영화제 중의 작은 영화제가 되는 것보다 낫다고” 충고를 보냈다. 급성장의 후유증 그럼 급성장의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에선 두개의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로카르노영화제가 2002년부터 A급 영화제로 급상했다는 점과 또 하나는 현 집행위원장 이렌 비냘디의 야심과도 관계되는 문제인데, 한마디로 기존의 조그만 영화제의 틀에서 벗어날려는 집행위원장의 영화제 정책이 낳은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2001년, 말썽 많던 마르코 뮬러가 물러나고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비냘디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스위스 영화계는 두손 들어 환영하면서 ‘로마의 여사자’라는 애칭을 달아주었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새 집행위원장은 조직위와의 고질적인 불협화음을 협조적 분위기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고 그의 특유의 열린 대화 스타일 덕분에 대중매체와도 쉽게 가까워졌다. 그 결과 짧은 시간에 비냘디의 인기는 높게 치솟았고 이 여인이 오르는 무대마다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좀 달랐다. 먼저 박수가 뜸해졌고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 비냘디의 얼굴이 시종 그리 밝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불러일으킨 급성장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로카르노영화제가 과연 A급으로 탈바꿈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은 비냘디 부임 훨씬 이전부터 진행됐었다. 그러나 약한 영화산업과 영화시장의 한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고, 그래서 신인 감독의 초기 작품에 초점을 둔 중형 영화제를 택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제로 발전했다. 하지만 비냘디의 영화제 철학은 실용주의보다는 팽창주의쪽으로 기우는 듯하며 그 결과로 이젠 칸, 베를린, 베니스, 산 세바스찬 같은 유럽의 덩치 큰 영화제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특히 불과 2주를 사이에 두고 치러지는 같은 언어권의 베니스와는 비냘디 스스로의 말마따나 피나는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02년부터 대상영화의 수상금을 평소의 곱절인 9만프랑으로 올린 것도 베니스를 의식해서 결정된 것이다. 아무튼 A급 영화제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선 좋든 싫든 할리우드를 피할 수 없는데, 문제는 로카르노영화제가 고질적으로 예산부족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제적 경쟁력에서 떨어질 게 뻔하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900만스위스프랑을 조금 넘은 것이었는데, 그나마도 정부나 시의 지원은 반절도 못돼 대부분을 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로카르노까지 온 할리우드 제작은 영국 감독 나이젤 콜의 영화 <칼랜더 걸즈>뿐이었고, 그렇다고 호기심을 일으킬 만한 유럽의 이름난 감독의 영화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 세바스찬 영화제와 ‘싸워서’ 이긴 영화는 올 경쟁부문에 올랐던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고, 그것도 실은 감독이 로카르노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저런 2003년 행사는 A급 영화제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점쳐보고 특히 집행위원장의 영화선정 방향과 성향을 좀더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올해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선정 방향을 짚어본다면, 한마디로 사회성 짙은 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예를 들면 종교적 대립과 분열, 전쟁과 그 후유증, 소수민족과 여성에 대한 차별대우, 청소년 문제를 사회·정치적, 또는 가족관계의 차원에서 다룬 영화들이 부문에 상관없이 올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고, 모두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존중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보였다. 특히 경쟁영화 부문은 동남아시아, 동유럽 그리고 중동지역의 영화가 다수였는데, 그게 영화제 사이의 경쟁이나 돈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 같고 집행위원장의 영화제 철학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듯하다. 비냘디는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새로운 경향은 없다. 영화제의 각 부문은 경쟁영화 성격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유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영화감독들의 영화에 관심을 두었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인간문제를 주요시했다”고 영화 선정의 기본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저개발 지역 감독들과의 연대의식을 강조한 발언이었는데 그런 차원에서 켄 로치 감독에게 명예표범상이 주어졌고 획기적인 119편의 ‘재즈와 영화’의 회고전도 따지고보면 미국 백인사회의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재즈 문화의 황금기를 이룬 흑인 음악가들에 대한 헌정식이었다. 더불어 로카르노영화제는 지난해부터 ‘인권’부문을 새로 만들어 인권에 관한 영화상영과 심포지엄을 주선하고 있으며 다른 영화제서보다 여성감독의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크다. 연대의식도 좋지만 한 기자는 로카르노영화제가 유엔총회를 닮아간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비냘디의 연대의식에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다만 영화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평형을 잃을까 싶고 그런 미심쩍음은 올해의 수상작 선정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올해 대상을 받은 파키스탄의 여성감독 사비아 스마르의 영화 <말없는 (우)물> (Silent Water)의 수상 결과에 대해 스위스 국영 텔레비전의 기자나 주요 일간지인 <취리히 차이퉁> 기자는 심사위원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고 평했다. 심사가 제대로 됐더라면 김기덕 감독에게 대상이 주어졌을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집행위원장 자오라로바는 “김 감독 영화는 이제 클래식 수준에 올랐다”고 극찬하면서 “대상을 받고도 남는다”고 했다. 또 김 감독과 인터뷰를 한 23명의 국제 매체기자들이 모두 통역을 맡은 내 앞에서 대상을 받을 것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올해 경쟁영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독창적인 영화로 꼽혔던 김 감독의 영화가 대상을 놓친 건 무척 아쉽지만 다음 영화를 기대하면서 스위스 불어권의 일간지 <트리뷴 드 제네브>에 실린 8월15일치의 두 기사 가운데 에마뉘엘 쿠에노 기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최근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행해지는 우수작을 곡해하는 잘못된 심사 경향을 불신해야 한다. 지난해에 구스 반 산트의 영화에 대한 오판이 있었음에도 이번 김기덕의 새 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또 실수를 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 영화야말로 경쟁부문에서 제일 우수했을 뿐만 아니라 2003년에서 본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1]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2] ▶ 제56회 로카르노영화제 결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