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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옥탑방 고양이>부터 <좋은 사람>까지,새로 등장한 남자 캐릭터들

귀염둥이 전성시대 못생긴 주제에 귀엽지도 않으면 죽어야 한다. 최소한 연애생명은 끝이다. 게임의 법칙이다. 아무리 개겨봤자 소용없다. 무조건 귀여워야 사랑받는다. 깜찍해야 살아남는다. 그닥 잘생기지도 않은 당신이 연애의 정글에서 강퇴당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자들은 물론이다. 남자들도 열외는 아니다. 어쩌면 남자가 더하다. <좋은 사람>의 조한선(태평)을 보라. <옥탑방 고양이>의 김래원(경민)을 잊었는가. <별을 쏘다>의 조인성(성태)은 또 얼마나 깜찍했던가. 아∼ 이 드라마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연애 황금기,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그 푼수들의 깜찍함에 자지러지고, 양아치들의 성공담에 심금을 울렸던가. 깨물어주고 싶어 안달이었던가. 이토록 훌륭한 모델을 동원해서 그토록 다양한 ‘교본’들을 날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도 조한선 따라잡기, 김래원 흉내내기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남성 칠거지악’에 해당되는 중죄인이다. 당신이 못생긴 여자는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 못한다고 여자친구를 협박하는 동안 당신의 여자친구는 못생긴 남자는 용서해도 뻣뻣한 놈은 용서 못한다는 신념을 굳혀가고 있다. 왜냐고? 귀여운 건 노력하면 되니까. 지금 드라마에서 벌이고 있는 ‘귀여운 남자’ 캠페인의 교훈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귀엽지 않은 당신, 떠나라. 아니면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개인기를 연마하고, 깜찍한 표정을 연습하라. 불철주야 텔레비전을 보면서. 당신은 이의를 달아서는 안 된다. 조인성, 김래원, 조한선은 얼굴부터 먹어준다고? 아니다. 당신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탓이다. 조, 김, 조 트리오는 2% 부족한 미남으로 ‘설정’된다. 물론 2% 부족한 미모는 귀여움으로 보충돼 100% 남성으로 완성된다. 맞다. 그 설정이 문제다. 굉장히 멋있으면서 뭔가 모자란 것으로 설정되는 것. 그래서 안 생긴 당신도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유포된다. 드라마를 본 당신의 여자친구는 말한다. “못생겼으면 귀엽기라도 해야 될 거 아냐.” 그래서 가끔 그들이 깜찍할수록 나는 끔찍하다. 그런데 조, 김, 조 트리오는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흠잡을 데 없는 미남이다. 깎은 듯이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잘생겼다. 그런데도 방송사는 “안 예쁘다”고 우긴다. 신문들은 입을 모아 “귀여운 남자가 뜬다, 안 예쁜 데도 뜬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일삼는다. 이즈음이면 귀여우면 성공한다, 는 신화까지 가세한다. 까막눈인 풋내기 연기자(조인성)는 정상급 배우로 일떠서고, 등쳐먹는 고시생(김래원)은 검사님으로 발딱 서고, 근본없는 양아치(조한선)는 마침내 뼈대있는 민주 경찰로 환골탈태한다. 귀여움이라는 필살의 무기로 일신우일신, 일취월장하여 각고의 노력없이 마침내 성공신화가 탄생한다. 물론 잘생긴 바보온달 곁에는 저고리 고름 입에 문 ‘차칸’ 평강공주가 있다(아마 이 평강공주들은 틀림없이 드라마 작가 언니들의 환생일 터이다). <좋은 사람>의 소유진,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 역시 2% 부족한 미인들이다. 심지어 기자 오빠들한테 “평범한 얼굴”이라는 심한 말까지 듣는다. 그러나 방송 못 타는 필부필녀들에 비하면 무지하게 예쁜 얼굴이다. 안 예쁘다는 말 앞에는 “김희선에 비해서, 장동건과 비교하자면”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는 것이다. 물론 평강공주들도 전가의 보도, 귀여움으로 2%의 갈증을 채운다. 사실 그 얼굴에 뭔 짓을 한들 안 귀엽겠는가. 게다가 물심양면으로 바보온달을 성공시키고야 마는 구원의 여성상이 아닌가. 작금의 강호의 도는 남녀불문하고 귀천 따지지 않고 귀여워야 사랑받는다, 는 명제로 정리된다. 바야흐로 백마 탄 왕자님들의 시대는 ‘거’했다. <옥탑방 고양이>의 이현우는 헛물만 켜다 채였고, <좋은 사람>의 신하균은 숨겨진 거짓말이 탄로나 나쁜 사람으로 몰릴 신세다. 단 한번의 윙크로 뭇 여성들을 녹이던 왕자님들은 이제 바보온달의 성공담을 빛내주는 고정 조연으로 연명하고 있다. 무릇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법. 이제 백마 탄 왕자님들은 백마 타고 떠나야 한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차인표, <토마토>의 김석훈 같은 고위층 왕자님들은 서서히 몰락해가는 이 나라 재벌들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고 있다. 강호의 남성들이여, 왕자님들과 함께 그대들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왕자님들을 흠모하는 여성들에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 보지도 마라”고 타박할 수 있었던 꽃시절은 지나갔다. “못생긴 게 성격도 나쁘다”는 타박은 “못생긴 주제에 귀엽지도 않다”는 답으로 당신의 가슴팍에 꽂히고 있다. 다 자업자득이니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지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무조건 귀여울지어다. 스마일~ (주의: 안 멋있는 당신이 깜찍한 척 하다가는 “깬다”는 구박만 당하기 십상이다. 세상에는 노력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깜찍한 짓도 깜찍한 애들이 해야 깜찍해진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

영화? 세계의 터무니없음을 드러내는 표현수단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인터뷰 2년 전 인터뷰를 한 뒤,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 두편을 보았다. 당신의 영화에는 자신의 사상을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카리스마> <인간합격> <밝은 미래> 유형과, 장르의 틀을 허물고 부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나아가는 <큐어> <카이로> <도플갱어> 유형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을 창작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 * * 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기자신과 영화 자체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영화라는 틀이 서로 어우러져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밝은 미래>는 영화의 역사성보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실감쪽에 좀더 강하게 뿌리를 두고 만들었다. 한편 <도플갱어>는 영화 그 자체에 좀더 깊이 몰입해서 만들었다. 아울러 작가가 살아 있는 실감을 ‘현실’이라고 하고 영화의 역사성을 어떤 의미에서 ‘장르’라고 부른다. 현실과 장르, 작품에 따라서 비율의 차는 있겠지만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영화는 비주류다 이전에 당신은, 일본에서 영화는 비주류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여전한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했던 <춤추는 대수사선2>가 대성공을 거두었어도 그것은 TV의 연장선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열악한 상황이 일부 일본 감독들에게는 오히려 독특한 영화를 만들게 하는 조건처럼 보인다. 현재의 상황, 조건이 당신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 * 일본에서 현재 영화는 전혀 메인 미디어가 아니다. 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나 텔레비전에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서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은,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난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만든다. 돈을 벌 목적도 아니고 유명해질 생각도 없다. 이런 감독의 존재를 연명시키고 있는 것이 일본 영화계의 최대의 특징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익도 명예도 아닌 ‘역사에 남을 걸작’을 만들 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이로>같은 영화는 마치 유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 당신은 누벨바그 등 유럽영화에 심취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지옥의 경비원> 이후 만든 영화들에서 공포영화에 막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이 장르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영화에 헌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 * 난 유럽영화도 좋아하지만 할리우드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예산이 빠듯한 일본영화로 어떻게 하면 할리우드영화에 버금가는 오락성을 창출할 수 있을까 옛날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 그러던 중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공포영화라고 하는 장르에 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질의 공포는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오락으로 성립한다. 이것은 옛날부터의 영화이론이다. | 장르가 된 구로자와 기요시 <도플갱어>를 보고는, 당신이 만드는 장르영화는 이제 완전히 ‘구로사와 기요시’만의 것이 되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강령>은 장르의 자장 안에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도플갱어>는 아예 장르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린다는 느낌이다. 당신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장르를 활용하는가. * * * 영화의 장르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영화는 대개 100분 정도인데 그건 왜일까? 물론 역사적인 우연이 몇번 거듭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만, 아무래도 장르라고 하는 것은 100분을 법칙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항상 이 100분을 어떻게 구축해갈까 생각한다. <강령>에서는 한개나 두개 정도의 장르를 사용하려고 생각했고 <도플갱어>에서는 사용할 만한 장르는 다 사용해보자는 각오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르와는 전혀 동떨어진 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밝은 미래>까지도 최종적으로 100분 정도의 길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 자신한테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영화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밝은 미래>의 마지막은 묘했다.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은 불량스러운 아이들에게 과연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일까? 몇년 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요즘의 일본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래서 흥미롭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 * 물론 젊은이에게는 미래가 있다. 나한테도 있고, 누구라도 나름대로 다 미래가 있다. 이것은 ‘일본의 미래’, ‘한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라고 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젊은이들에게만 ‘일본의 미래’를 다 맡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보기엔 우리 기성세대가 이해 못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는 것은 곧 매력적인 것이다. 반대로 이해는 위선이다. 인간이 타인을 애써 무리하게 이해하려고 할 때, 오히려 ‘굴욕’이라든가 ‘굴종’이 작용한다. 나는 그런 게 싫다.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적어도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러나 대화한다. <밝은 미래>의 해파리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보살핌이 필요하고 건드리면 독을 뿜는 존재는 젊은 세대를 말하는 것인가. * * * 그렇다. 해파리는 원래 바다 생물이니까 바다로 돌아가면 되지만, 인간은 젊은이든 그렇지 않든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반사회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해파리가 아니다. 사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들을 사회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나는 존재를 인정하는 시점에서 출발하고 싶다. <밝은 미래>에서는 기성시대와 젊은 세대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그런 세대간의 대화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 * 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젊은이뿐 아니라 타인이라면 누구라도)는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도 대화는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알고 있은 것을 다 가르쳐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해가면서 결코 이해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도플갱어>의 하야사키를 인공 신체를 연구하는 학자로 설정한 이유는. * * *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트럭으로 옮길 수 있는 것, 그리고 많이 흔들리면 부서지는 것, 그런 기준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도플갱어>에서 왜 하야사키는 도플갱어를 보고도 죽지 않는 건가. <카이로>에서는 ‘귀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는 단지 자신의 내면을 본 것뿐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도플갱어는 무엇인가. * * * 마지막에 등장하는 하야사키는 어느 하야사키일까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면 줄거리상 하야사키 본인은 이미 죽었다. 분명히 이해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도플갱어는 하야사키한테 살해당했고, 하야사키 자신도 차에 깔려 죽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제3의 하야사키로 등장한다는 구조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 <도플갱어>, 인간과 세계의 분열 하야사키와 도플갱어가 함께 등장할 때, 화면분할이 빈번하게 쓰인다. 그것은 그들의 상황만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점유한 영역을 말하는 것 같다. 화면분할의 의도는 무엇인가. * * * 말한 대로다. 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인간이 분열하여, 동시에 그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도 분열을 시작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에서 갈등하고 있는 장면으로서 합성화면을,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장면으로서는 편집에 의해 교체를, 그리고 두 사람의 인간이 두개의 세계에 공존하고 있는 장면으로서 분할화면을 사용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서 미국영화에서 유행했던 분할화면을 언젠가는 해보리라고 30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실현된 셈이다. 도플갱어가 죽은 뒤, 그의 존재는 마치 하야사키 안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야사키의 내면에 숨겨진 것이 드러났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야사키가 도플갱어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 * * 하야사키는 모든 걸 깨달은 전혀 별개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가 손에 넣은 것은 새로운 세계다. 그것은 일명 ‘자유’라는 이름의…. <도플갱어>의 이야기는 불쑥불쑥 튀어드는 사건들로 연결된다. 그건 난데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필요없는’ 장면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예를 들어 하야사키를 쫓던 무라카미는,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트럭에 깔려 죽어버린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불가해하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 *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대답할 지식도 자격도 없다. 그건 모르겠다. 세계는 불가해하고 터무니없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사에 의한 영화만이 이런 터무니없는 세상을 터무니없는 사실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양질의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희망을 원하는가? 당신의 영화는 늘 사회에서 이탈하거나 멀어져가는 사람을 그려왔다. <큐어> <카리스마> <카이로>를 지배하는 것은 비관적인 정조다. 그런데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의 결말에서는 묘한 희망 같은 것이 엿보인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 당신은 비관적인가, 희망적인가. * * * 나는 항상 희망적인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희망이 사회적 가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때로 인간은 완전히 반사회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절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자유스러운 상황이 갑자기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배려없이 행한 행동이 남을 구할 수도 있다. <카이로>까지 나는 ‘사랑과 증오’, ‘사회와 반사회’, ‘자유와 부자유’라고 하는 것을 가능한 한 대등한 가치에 두도록 유념했었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밝은 미래>부터는 좀더 명확한 ‘사랑’, ‘사회’, ‘자유’의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려고 생각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인지, 9·11 사태를 겪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나이 탓일까. 앞으로 당신이 꼭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 * *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나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절대 변경 불가능한 현실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지금까지의 나 자신과 영화 그 자체와의 갈등 속에서 작품을 성립시켜왔다. 또 한 가지 요소, 즉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요소를 가미하면 어떨까, 한번 실험해보고 싶다.김봉석 lotusid@hani.co.kr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1]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2]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

[Interview 2] \"<조폭 마누라> 스타일의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로빈슨 표류기> 배우 양귀매 양귀매가 부산에 다시 왔다. 그녀는 "솔직히 언제 왔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그 때보다 활기 있고 풍부해졌다"고 놀라워한다. 그녀로부터 <애정만세>에서 20분간 울어대던 도시의 그 슬픈 여자를 상상하는 것은 이제 어렵다.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활력과 매력으로 양귀매가 이끄는 인터뷰. -차이밍량과 많은 작업을 했었다. 이번에 린쳉솅과 작업을 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던가. =사람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그 둘은 성장배경도 다르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한 가지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진실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를 찍는 방식에서의 그 차이란? =차이밍량과 <애정만세>를 작업할 때는 감독이 정해 놓은 공간에서만 연기를 한 반면 <로빈슨 표류기>에서는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인물과 실제로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장소를 돌아보았다. -<애정만세>로 부산을 찾았을 때 후반부 우는 장면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만큼 힘든 장면이 있나? =이번데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 첸상치와 술에 취해서 우울하게 나무 밑에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린쳉솅 감독이 요구한 건 실제로 술을 마시고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술 알레르기가 있어서 맥주병에 술을 따라내고 와인을 조금 넣어 마셨다. 한 두어 모금 마셨는데, 정말로 취해서 일어나질 못할 정도였다. 촬영이 끝나고, 카메라가 모두 이동하고, 감독이 됐다고 했는데도 계속 그러고 있었다. 정말 취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 장면은 굉장히 좋았다. -당신의 언어로 이번 영화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차이밍량과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예를 들면 영화의 마지막에 왜 결과가 없이 흐지부지 끝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실제로 고독이나 상실감을 느낄 때면 ‘아, 그때 그 장면의 심정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 역시 결말이 없어 보이지만 그 감정은 몇 년 뒤에 당신들도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이밍량과 작업을 많이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이강생이었다. 친솅치와 연기하며 달라진 점은. = 큰 차이는 없다. -다른 점이 있다. 친솅치가 더 잘생겼다. = 하긴, 만약에 내가 극중 인물이라면 절대로 이강생과는 사귀지 않을 거다. 이건 정말 극중 얘기다.(웃음) -<구멍> 이후 <더블비전>까지 4년 동안 영화작업이 없었다. 이유는. =일반적으로 지금 대만의 영화감독들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자기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지난 4년 동안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도 이번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그 4년 동안 줄곧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만을 했다. -그렇다. 당신에게는 ‘아름답지만, 외로운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런 이미지가 왜 심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생활은 안정적이고 풍족하다. 내가 정말 내 영화 속 인물의 상황이라면 답답해서 죽을 것이다. 나는 직설적이고 활기차기 때문에 마음에 고민이 있을 때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털어버리는 성격이다. 그런데 감독들이 나에게 항상 요구하는 것은 고독하고 말도 없는 그런 역이다. 하지만, 진짜 내가 그렇다면 아마 질식사할거다. -차기 계획은? =앞으로 찍고 싶은 영화 스타일이 하나 있다. <조폭 마누라>다. 굉장히 가볍게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자매지간의 정, 비록 조폭과 조폭이지만 형제간의 의리. 굉장히 가볍고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 그런 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 -이강생은 이번에 감독으로 부산에 왔다. 당신은 어떤가.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도 감독이 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연기를 하는 생활이 만족스럽다. 적어도 배우를 하면서는 이 인물 저 인물을 하며 누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감독을 한다는 건 누리고 즐긴다기보다는 자기의 인생을 투자해야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감독이 되면 여러 방면으로 공헌을 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글 정한석 / 사진 손홍주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주 지사 당선

‘돌아온 터미네이터’가 ‘희망의 땅’ 캘리포니아를 접수했다. 배우 출신으론 1966년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주 지사로 당선된 뒤 두번째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47년 미국에 이민간 아널드 슈워제네거(56)는 70년대 숱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날린 뒤 최정상의 액션배우로, 이번엔 정치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번에 철저하게 할리우드 방식으로 선거에 임했다. 주지사 출마선언을 8월6일 〈에이비시방송〉의 ‘제이 리노 투나잇쇼’에서 발표해 미국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선거 초반 상한가를 치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9월 중순엔 역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아내와 함께 출연했다. 공정성 시비는 있었지만, 여성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이 토크쇼 출연과 맞물리며 그의 지지율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신 후보들간의 텔레비전 토론엔 단 한차례만 응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도 최대한 선거전에 활용했다. 유세 때마다 “터미네이트 데이비스”(데이비스 주지사를 퇴출시키자)를 외쳤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는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슈워제네거는 할리우드에선 드물게 공화당을 지지해왔지만, 낙태와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등 정통 공화당 주류에선 약간 벗어나 있다. 이런 점이 이번 선거에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모으는 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아내는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딸인 마리아 슈라이버(47). 성추문, 히틀러 찬양 발언 등 잇단 악재 속에서 슈워제네거를 구해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엔비시방송〉의 인기 앵커이자 민주당원인 슈라이버는 슈워제네거의 공화당 색깔을 탈색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일 잇따르는 성추문 폭로로 슈워제네거가 궁지에 몰리자 슈라이버는 “내 남편은 에이 학점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옹호했다. 이튿날 거의 모든 신문엔 슈라이버가 남편에게 키스하는 사진이 실렸고, 이걸로 민주당의 성추문 공세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박기형 감독 인터뷰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이 바로 두려움의 시작 “제발 호러 전문 감독이라고 쓰지 말아주세요. 다음엔 코미디 하고 싶어요.” 다소 의외지만 박기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996년 단편 <과대망상>에서 올해 <아카시아>까지 7년간 어두운 상상력에 짓눌렸던 탓이다. 어쩌면 <아카시아> 이후 한동안은 박기형의 공포영화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오랜 시간 공포영화를 고민했던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아카시아>는 <여고괴담>의 제목이 될 뻔했다고 들었다. 오래전부터 아카시아에 대한 공포영화적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아카시아에 대한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다. 아카시아향이란 게 따로 방향제로 팔 만큼 향기롭고 꽃이 피면 예쁘고. 어릴 때 노래 있었잖나.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그런 식으로, 아련하고 예쁘고 추억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아카시아 나무가 일종의 괴담에도 등장한다. 가령 워낙 생명력이 강해서 주변 식물을 고사시킨다든지, 어느 무덤을 팠더니 아카시아 나무뿌리가 관을 뚫고 시체를 옭아매고 있더라, 그래서 집안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었다라든지, 일본에서 우리나라 식물을 고사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아카시아 나무를 심었다든지. 어느 하나도 정확한 근거가 있는 얘기는 아닌데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호러영화의 기본개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고괴담>을 할 때도 <여고괴담>이라는 제목이 강하긴 한데 고등학교 시절이 갖는 아련하고 예쁜 기억 이면에 삭막하고 힘들었던 느낌이 표현될 수 있는 것 같아서 <아카시아>라는 제목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카시아>는 배우들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기 속내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고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 그것은 정말 너무 넘쳐서도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되는 미묘한 균형을 표현하는 작업인데 연기를 통제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 배우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했는데, 표정이 읽히면 안 된다, 당신이 지금 여기서 어떤 상태인지가 상대배우에게 읽히면 안 된다, 그게 극중 인물이 견지할 입장일 수 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다른 가족에게 읽히지 않게 해야 한다, 라고. 그러면서 긴장이 쌓이고 그러면서 갈림길에 서는 영화라고. 그런데 배우 입장에선 자기가 어떤 심정인지 아는데 그걸 표현하는 걸 최소단위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어려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안으로 쌓는 연기를 했고 그런 면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심혜진, 김진근의 캐스팅은 어떻게 결정했나? 심혜진은 오랜만에 주연을 한 영화이고 김진근은 낯선 배우인데. 김진근은 주연급으로는 처음 나오는 배우인데 사적으론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배우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높다는 건 배우로서 기본이지만 <아카시아>에 캐스팅한 데는 ‘인성’(人性)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굉장히 성실한 사람인데 영화에 나오는 성실한 가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그런 성실함이 어떤 사건에 엉켰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보통 때 부드럽고 신사적인데 저 사람, 화를 내면 엄청 무서울 거 같다는 느낌, 섬뜩함이 이 영화에 필요했다. 심혜진은 시나리오 볼 때부터 딱 맞는다는 느낌이 있었고 제작사쪽에서도 미리 얘기가 오간 상태였다. 요즘 영화들 보면 30대 여배우들이 맡을 역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그 배우들에게 기회가 많아졌으면 싶다. 배우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생명력을 길게 만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심혜진이라는 배우를 쓸 수 있는 기획이라는 사실이 내가 이 영화에 좀더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박기형 감독의 영화는 <여고괴담>에서 <아카시아>까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식을 깔고 있다. <여고괴담>의 학교, 늙은 여우와 미친 개, <비밀>에서 미조의 부모, 원조교제하는 어른 등, 기성세대는 썩어 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질식당한다.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일부러 그랬냐고? 글쎄.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기성세대라는 게 어떻게 보면 가진 사람, 이룬 사람, 그런 걸 텐데 반감 같은 게 있나보다. 영화를 하면서 뭔가 비판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양심, 그런 건지도 모르고. 순수한 영화적 재미만으로 가는 게 태생적으로 자꾸 안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 당신의 영화들에서 사람들은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을 추구한다. <여고괴담>에서 진주가 그랬고 <비밀>에선 텔레파시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 <아카시아>에서는 아이와 나무의 대화를 단절시키려는 데서 문제가 벌어진다. 소통하려는 의지와 그것의 단절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사람끼리 부딪치면서 살아야 하는 거고. 개인적으로도 사람들 만나면 어떻게 소통하지, 걱정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소통이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 겁나기도 하고. <여고괴담> <비밀> <아카시아> 세편 모두 피를 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고괴담> 때 피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일화가 떠오르는데 늘 피가 많이 필요한 영화를 찍는다. 피가 흥건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이 규모가 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필요했다. 사람과 공간만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극적 정점에 이르면, 일종의 이 영화 안에서의 스펙터클로서 화면을 온통 피로 적시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제한된 틀에서 움직이던 영화가 쫙 펼쳐지는 느낌을 주자면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뭘까, 하다보면 피가 나오게 된다. 자꾸 그런 그림이 떠오르고 대중영화의 미덕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호러는 피의 장르’라고 말했는데 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호러가 여러 가지 이미지로 변형되지만 본질적인 것은 피의 이미지가 아닌가. 김지운 감독과 했던 인터뷰를 보니까 스스로 한국적인 공포영화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엔 미국 공포영화와 대비되는 동양적 공포가 무엇인지 고민했다면 얼마 전부터 일본영화와 다른 공포에 대해 궁리가 많다. 일본 공포영화는 동양적 공포의 모범적인 텍스트로 보이는데…. 모르겠다. <큐어>가 정말 잘 만든 공포영화이긴 한데 한국 관객에겐 어떨까, 생각해보면 반반인 것 같다. 왜 그럴까?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독하고 너무 정확한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너무 차가운 느낌. 그래서 ‘신파’라는 정서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과대망상>을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적으로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찍을 감독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아카시아>까지 장편 세편이 모두 공포영화 혹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영화였다. 이런 장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과대망상>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겉으로 공포영화라는 장르로 장식을 하면서도 지금 사회에 대한 비판적 관찰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공포영화 장르를 택한 것은 그냥 테크닉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테크닉을 사용하긴 하지만 앞뒤를 잘 맞추는 쾌감은 사실 찾고 싶지 않다. 난 호러에서 기술보다는 정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호러나 스릴러 장르를 택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보는 관점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이야기라도 다르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계속 호러를 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내 정서가 좀 어두워서일 순 있지만 내 정서가 밝아지면 전혀 다른 장르를 할 수 있을 거다. 달라지지 않겠나? 사실 호러영화 만들면 만드는 재미는 있는데 너무 힘들다. 밝고 신나는 얘기가 아니니까 만드는 내내 밝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별로 없다. 감독 입장에선 시나리오 쓰는 내내, 촬영하는 내내, 편집하는 내내 그런 무드에 젖어 있으니까 그렇게 산다는 게 힘들다. <과대망상> 때부터 7∼8년 그렇게 지내니까 다른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나 코미디처럼 다른 장르에 손을 대고 싶다. 멜로는 <비밀> 때 해봤는데 나한테 멜로 감성은 별로 없구나 싶어서 멜로드라마는 아닌 것 같고. 지금 내가 다른 장르의 영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소문을 많이 내서 호러말고 다른 기획이나 시나리오 의뢰가 왔으면 싶다. (웃음)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정진환 terran61@hani.co.kr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어떤 일그러진 ‘스위트홈’의 기억 현대가족의 이면을 그린 또 하나의 공포영화 <아카시아> 그리고 감독 박기형 가족은 괴물이다. <장화, 홍련>이나 처럼 박기형 감독의 신작 <아카시아>도 가족의 폐부에 기생하는 비극을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그려낸다. 화사한 꽃무늬로 단장한 집이 기괴한 사이코드라마의 무대가 됐듯, 단란한 가족을 위해 마련한 4인용 식탁에 죽은 아이들의 냉기가 자리하듯, 앙상했던 아카시아 나무가 꽃을 피울 때 그 속에선 죽음의 향기가 배어난다. 2003년의 가족호러 3부작라 불러도 좋을 세편 가운데 <아카시아>는 못지않게 불온한 영화다. “내 쉴 곳은 오직 집, 내 집뿐”이라고 노래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가족의 초상은 뒤틀리고 일그러진다. <아카시아>는 가족이 괴물이 된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는 영화다. <여고괴담>에서 우리의 학창 시절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들추어냈던 박기형은 이 영화에서 가족의 포근함 속에 깃든 잔인함에 주목한다. 가족의 사랑이 집착과 강박으로 변할 때, 진실은 외면하고픈 추악한 실체를 하나둘 드러낸다. 핏줄에 대한 강박, 악몽이 된 출산 <아카시아>는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한 상류층 가정이 아이를 입양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홈드라마로 시작해 호러물의 관습을 거쳐 비극의 여운으로 마무리짓는 이 영화에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세 가지 이미지가 있다. 첫 번째는 뭉크의 <절규>를 닮은 그림이고 두 번째는 집안을 장식한 붉은 실이고 세 번째는 출산하는 장면이다. 먼저 뭉크를 닮은 그림은 아이가 그린 것이다. 죽은 엄마가 나무가 됐다고 믿는 아이는 나무를 그리고 그 옆에 사람을 그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사람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따로 없다.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 아이가 마음먹기에 따라 그것은 엄마가 되기도 아빠가 되기도 한다. 아마 죽은 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은 당연한 것이리라. 아이는 상상으로 부모의 얼굴을 만드는 대신 사람의 형체를 그린다. 문제는 그 그림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매우 불길하게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표정없는 얼굴이 주는 기괴한 느낌은 눈, 코, 입이 제 위치에 있는 그림에만 익숙한 어른들을 긴장시킨다. 여기엔 어떤 트릭이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림의 의미가 달라지듯 아이의 특이한 행동도 관점에 따라 무섭게도 측은하게도 보인다. <아카시아>에 내재한 긴장감은 이렇게 일방적인 해석을 교란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아카시아>의 인물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유지한다. 온화한 얼굴 뒤에 무언가 감춰진 듯한 느낌이 평온한 홈드라마를 예민하고 섬세한 공포물로 만들어간다.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에서 대표적인 초현실적 이미지는 붉은 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장면이다. 아이를 질식시킬 것 같은 붉은 실의 공포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아카시아>에서 가족은 자기 핏줄에 대한 강박증을 표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입양한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여자는 임신을 하고 입양된 아이는 그 순간부터 마음의 짐이 돼버린다. 말하지 않지만 가족은 이 아이가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가족의 욕망이 뒤틀려가는 것이다. 차츰 기형성을 드러내는 홈드라마는 아이를 사산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의 꿈에 등장하는 얼굴없는 산모와 아이, 흔히 숭고하고 아름답게만 묘사되는 출산이 <아카시아>에선 악몽이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 두렵고 겁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카시아>의 출산장면은 한눈에 보여준다. 가족은 이상적 가족이 되고 싶다는 그 욕망 때문에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심장을 가진 원혼 다소 살벌하고 끔찍한 이야기지만 <아카시아>가 차갑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여고괴담>이 그랬듯 박기형은 원혼에게도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아이가 죽은 엄마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메마른 아카시아 나무는 <여고괴담>의 진주가 9년간 학교를 배회하며 소망했던 친구 지오처럼 아이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대상이다. 아이는 나무에 올라 나무에 잎이 피기를 소망하고 나무와 대화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의 모습이 어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오를 괴롭히는 선생님을 향했던 진주의 분노처럼 아이는 나무에 손을 대려는 어른들에게 저항한다. 박기형의 영화에서 비극은 진심이 오가는 관계를 깨뜨릴 때 벌어진다. <비밀>은 그런 점에서 박기형 영화의 핵심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는 구호와 미조, 그들의 만남이 방해받을 때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나간다. 박기형은 이런 소통의 단절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어떤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고괴담>에선 입시경쟁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비인간적 교육시스템이 문제였고 <비밀>에선 원조교제로 대변되는 도덕의 붕괴와 사회적 편견이 걸림돌이었다. <아카시아>가 공격하는 대상 역시 기성세대의 죄악이다. 그들은 핏줄로 남과 나를 가르고 세상의 더러움을 욕하면서 자기 몸에 묻은 오물은 보지 못한다. 입양은 결국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박기형 영화에서 언제나 극단에 내몰리고 자살을 결심하며 집을 뛰쳐나오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고발하는 한편 그 속에서 비극의 정서도 이끌어낸다. 영화는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질식당한 아이들의 억울함 때문에 슬퍼진다. 박기형에게 호러는 무서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장르인 것이다. <아카시아>, 2003년 호러의 피날레 이처럼 박기형이 호러 혹은 스릴러라는 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장르의 유희가 아니다. “영화광이었던 적도 없고 특정 장르에 열광한 적도 없는” 그가 주목한 것은 장르의 기교가 아니라 장르의 가능성이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한 곳이 김동빈, 홍기선 감독 등이 작업하던 파랑새영화사였다. 장산곶매가 <파업전야>를 만들 때 그 옆에의 작은 사무실에 있던 영화사였다. 영화운동의 열기가 사그라들 무렵, 영화운동의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 끼어들어 영화를 배웠는데 그게 지금의 내 영화가 갖는 정체성이자 한계인 것 같다”는 말은 박기형이 장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90년대 후반 등장한 다양한 젊은 감독들 가운데 박기형은 장르와 비판의식의 접점을 제대로 잡아내며 돋보이는 데뷔전을 치렀다. <여고괴담>은 흥행성공 이전에 장르영화의 돌파구로서 의미가 컸던 작품이다. <여고괴담>의 성공에 비해 참담한 흥행결과를 낳았지만 <비밀>에서도 박기형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멜로드라마의 감정을 구축하는 데 실패한 탓에 외면받았지만 <비밀>의 표현방식에는 비범한 면이 있다. 그는 손쉬운 관습적 표현에 투항하지 않고 장르의 한계를 돌파하려 했다. 초능력 소녀가 나오는 미스터리멜로물이라는 장르적 성격부터가 익히 보던 것이 아니었다. <아카시아>는 박기형의 스타일이 다시 진일보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르의 틀에서 새로움을 모색하는 작가적 집요함의 결과물로서 그는 과장과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시종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도발적인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아카시아>는 감독 박기형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2003년 호러영화의 피날레로 손색이 없다.남동철 namdong@hani.co.kr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웃다가 울다가 “역시 아리랑”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 평양 시사회 동행취재기 지난 9월30일부터 10월4일까지, 이두용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평양 시사회 참가 및 남북영화 합작사업 추진을 위해 남한의 영화 관계자 6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주코그룹 주수도 회장을 단장으로 하고, <아리랑>을 제작한 시오리 엔터테인먼트의 이철민 대표와 조성인 이사, 주코그룹 산하 제이유프로덕션 호수정 사장, 영화인협회 신우철 회장, 영화진흥위원회 남북영화교류소위원회 위원인 이민용 감독 등으로 이뤄진 이 방문단의 평양일정을 <한겨레>가 단독으로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사진설명]<아리랑> 시사회가 열린 평양국제영화회관 앞에 선 북한방문단과 북한배우들. 오른쪽에서 네번째 한복을 입은 배우가 리금순./<아리랑> 시사회가 끝난 직후의 상여장.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인민배우 김윤홍(왼쪽)과 김춘송 감독(가운데)/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일본마을 세트. 평양 순안비행장 입국심사대. 여권을 건네주고 기다리며 서 있는 나에게 심사원이 물었다. “앞에 들어간 영화 관계자들과 일행이십니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난데 없는 대답이 나왔다. “예스!” 목소리도 컸다. 뒤에 줄서 있는 사람들의 동그래진 눈을 의식하며 얼굴을 붉힌 채 황급히 검색대를 통과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주제에 우리말하는 동포에게 ‘예스’라니! 낭패감을 이렇게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가보는 평양의 입구에서 그렇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라고…. 도착 당일(9월30일) 밤,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 북한 조찬구 문화부상(우리식으로 하면 문화부 차관)이 주최한 만찬이 열렸다. 그는 6·25때 7살의 나이로 전쟁고아가 됐지만 커서 영화평론가, 신문기자, 대학학장 등을 거친 지식인이었다. 지난해 10월에 평양의 문화예술인과 시민 300명을 상대로 열린 <아리랑> 1차 시사회 때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아리랑>은) 영화가 참 잘 됐습니다. 젊은 날의 혈기 같은 게 솟기도 하고. 영화가 재미도 중요하겠지만 역사를 다룰 때 만큼은 철저히 사실주의에 입각해야 합니다. 우키시마 마루호 사건을 다룬 일본 영화(<아시안 블루>)를 봤는데 결말이 다 용서하고 잊자는 거예요. 그건 틀렸지요. 그런 역사는 잊어버리면 되풀이됩니다. 우리가 그 사건을 다룬 영화(<살아 있는 령혼들>)는 다르지 않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조 부상은 지금 북한에서 독도문제를 다룬 <피묻은 략패>를 촬영중이라고 전했다. 독도문제 다룬 대작 사극 <피묻은 략패> 조 부상은 <피묻은 략패>의 제작을 말하면서 자랑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를 꺼리는 듯했다. 뒤에 인민배우 김윤홍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북한은 1년에 20~24편의 ‘예술영화’(극영화)를 찍으며 현대물과 사극의 비중이 9대1 가량이다. 1990년대부터 현대물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양 방문에서 만난 북한 영화관계자들은 현대물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도 현대물은 국내용이 많고,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수출도 하는 영화는 사극인 듯했다. <피묻은 략패>는 2000년 작 <살아 있는 령혼들>, 2002년작 <청자의 넋>을 잇는, 국가적 차원에서 제작을 주도하는 대작으로 보였다. 조 부상은 “보통 영화들은 감독이 아이디어를 내지만, 이런 큰 영화는 (국가에서) 감독을 정하지요”라고 말했다. 감독은 촬영기사 출신으로 <청자의 넋>으로 데뷔한 표광이 맡고, 남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림꺽정>으로 남한에도 얼굴을 알린 인민배우 최창수(61), <살아 있는 령혼들>과 <청자의 넋>의 주연으로 지금 북한에서 가장 인기 좋은 여배우로 꼽히는 김련화(34)가 출연한다고. 지금 막바지 촬영중이며 후반작업 거쳐 11월중에 북한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조 부상은 전했다. 인민배우 김윤홍, ‘계월향’ 리금순 10월2일 오전에 <아리랑>의 2차 시사회가 열렸다. 평양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한 평양 국제영화회관 안 300석 규모의 상영관에는 북한 영화예술인과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김형직사범대학, 음악무용대학 등 4개 대학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행사를 담당한 북한의 한 관계자는 대학생들 중 지원자가 많아서 참석자를 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상영 도중 여러차례 웃음이 나왔고 비극으로 끝나는 결말 부분에선 몇몇 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랑> 상영에 이어 15분 가량 휴식한 뒤 북한영화 <살아 있는 령혼들>을 이어 틀었다. <살아 있는 령혼들>은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 살던 한국 동포들 수천명을 싣고 한국으로 올 예정이었던 선박 우키시마 마루호가 침몰해버린 사건을 다룬 영화로 남한에서 수입이 추진되다가 실패했다. 시사회 뒤 <살아 있는 령혼들>에 출연한 인민배우 김윤홍(57)과 김춘송 감독, 시사회 사회를 맡은 여배우 리금순과 배우 정광남이 북한 방문단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아리랑>은) 의상, 소도구가 30년대 맛이 나게 잘 고증됐습니다. 주인공 영진이가 마지막에 춤추는 장면에서 감독의 의도가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민족의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김윤홍) “(나운규가 감독한) 원작은 못 봤지만 <아리랑>은 민족의 상징인데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온 데 대해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왜놈들에 대한 항거의 정신이, 민족주의의 감정이 영화 전반에 풍기는 게 좋았습니다.”(김춘송) <살아 있는 령혼들>에서 악역인 일본인 헌병장교역을 맡은 김윤홍은 37년 동안 150편에 출연한 노장배우다. 실제로 볼 때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풍부했고 농담을 즐겨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작고하신 영화작가 리종순 선생이 명언을 남겼는데, 여자배우는 성적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90분을 볼 수 있죠. 남자배우도 여자들에게 성적 매력이 있어야 하고.” 방문단 중 한명이 “김윤홍 선생도 성적 매력이 풍부하시다”는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바로 “제가 여자를 좋아하지요”라고 답한다. 리금순은 한 사극에 계월향 역으로 출연해 북한 사람들이 계월향으로 부른다고 했다. 리금순은 김윤홍에 대해 “여배우들이 제일 믿는 남자배우”라며 “촬영장에서 옷 갈아입을 때도 김윤홍 선생이 오면 ‘괜찮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윤홍이 받아친다. “내가 그러지요. 너희들 내가 남자라는 걸 무시했다간 큰일난다고.” 김윤홍은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확고해 보였다. “1급 영화에 3급 배우가 나오면 3급 영화가 됩니다. 반대로 3급 영화라도 1급 배우가 나오면 1급 영화가 되지요. 배우는 영화의 얼굴입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평양에 있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남한의 영화인들이라면 탐낼 만했다. 1947년에 설립됐고 지금까지 극영화, 기록영화, 아동영화 합해서 1000편이 이곳에서 제작됐다. 상당수의 북한 감독과 배우들이 이곳 소속 직원으로 월급을 받는다. 배우 150명을 포함해 직원이 2천명이라고 했다. 촬영소 안 전시실에 들어가면 정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피바다>의 촬영현장에 나가 촬영을 ‘지도’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여러 방으로 나뉘어진 전시실에는 김 위원장이 ‘비준하여 주신’ 극영화 시나리오들이 진열돼 있다. 안내원이 김 위원장은 <피바다> 촬영장에 114번 방문해 ‘지도’했고, <꽃파는 처녀>는 원래 여주인공 의상이 여러 벌이었던 것을 김 위원장이 ‘그렇게 옷이 많은 여자가 꽃을 팔겠냐’며 한 벌로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야외 세트는 초가집 동네, 조선시대의 궁궐, 유럽마을, 일본 마을, 중국 마을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각 마을마다 실제 골목 두 블록 이상되는 규모로 전체 둘레가 40㎞이며 건물이 100동이다. 아쉽게도 영화를 찍는 현장은 만나질 못했다. 평양/ 글·사진 임범 기자 isman@hani.co.kr

NBC, 비벤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합병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비벤디 유니버설이 10월8일 각자의 자회사인 NBC 방송사와 비벤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중반 활동을 시작하는 NBC 유니버설은 430억달러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기업. GE 부사장 밥 라이트는 이 회사가 경쟁자인 바이아컴과 디즈니, 타임워너, 폭스보다 높은 수익을 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NBC 유니버설이 포괄하게 될 기업은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NBC와 그 산하 케이블 채널, 유니버설 테마파크, 제작사 유니버설픽처스, 유니버설 텔레비전 등이 있다. 라이트는 NBC 유니버설의 경영 청사진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장 론 마이어와 유니버설픽처스 사장 스테이시 스나이더, 그리고 현재 임원들은 크게 지위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정도. 마이어는 “우리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만 입증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라이트 역시 영화사업이 위험한 도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영화는 극장수입뿐 아니라 비디오와 DVD에서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가장 큰 변화는 영화제작보다는 NBC와 유니버설의 업무가 상당 부분 겹치는 TV부문에서 일어날 예정이다. 라이트는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방송사는 1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될 것이며, 5천여편에 달하는 영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고, 디지털 시대에도 적합한 콘텐츠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NBC 유니버설 전체 지분 중 80%는 GE가, 20%는 비벤디가 소유하게 된다. 이번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GE는 비벤디 주주들에게 즉시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38억달러 상당의 주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경영악화에 시달려왔고, 현재 17억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비벤디는 좀더 깨끗한 대차대조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GE와 비벤디는 게임과 음악, 유럽 TV부문도 합병 내지는 합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알려졌다.

어릴적 TV영화 보고 있는 기분 아세요?<다운 위드 러브>의 르네&이완

상대와 공연한 경험에 관해 르네 젤위거= 오랫동안 나는 이완의 팬이었고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관객으로서 그의 영화를 즐겨보러 다녔다. 이완에겐 관객이 극장을 벗어나 그의 여행에 동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가 내리는 선택은 항상 놀랍다. 그가 복도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를 매일 듣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었다. 이완 맥그리거= 이번 공연의 가장 근사한 점은 우리가 줄곧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난제들을 함께 실험하면서 감당할 수 있을지 같이 시험했다. <다운 위드 러브>는 매우 독특한 종류의 코미디 연기, 요즘 로맨틱코미디영화에서 우리가 할 법한 연기와는 다른 연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 관해 르네 젤위거= 이브와 데니스(공동 작가)는 아주 영리한 시나리오를 썼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일독했을 때 알아차리지 못한 요소들이 보였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약동하고 그것도 아주 빨리 움직여서 관객이 어떤 것들을 놓치기도 하지만 두 번째 볼 때는 새로운 풍요로움이 눈에 들어온다. 페이튼 리드 감독에 관해 이완 맥그리거= 페이튼 리드는 드러머이자 댄서이며 코미디언이고 복화술사인데다가 배우이고 감독이다. 온갖 재능을 갖고 있지만 그 모든 것 저변에는 음악이 있다. 리드 감독의 대단한 리듬감은 그 덕분이다. 복고풍 영화 만들기에 관해 르네 젤위거= 모든 것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요즘 기준에 대면 로테크영화다. 속임수를 쓰거나 “나중에 고치면 되니까” 하는 경우는 없었다. 1962년 무렵에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배울 수 있어 황홀했다. 이완 맥그리거= 모든 요소가 카메라 앞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스튜디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근하면 근사한 의상과 근사한 동료배우, 멋진 세트가 기다리고, 거기 속임수라고는 없다. 기술적 트릭이 영화나 스토리를 꼭 비인간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영화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8살 어린아이로 돌아가 팔꿈치를 괴고 일요일 오후 방영되던 그 시절의 텔레비전영화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 짜릿했다. 자료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진심으로 웃기고자 하는 외설적인 영화,<잭애스>

■ Story 스턴트에 일가견이 있는 아홉명이 각종 엽기적인 스턴트를 선보인다. 웬만해선 상상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행위부터 재미삼아 사람들을 놀리는 몰래카메라 형식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경고가 따라붙는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턴트는 전문가에 의해 연출됐습니다. 그러므로 관객 모두는 재미로 시도해보거나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말해둡니다.” 그 행위들은 1∼2분 길이의 에피소드별로 편집됐다. ■ Review “당신이 이 영화를 봤을 때, 특히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는 목적일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책임질 수 없다. 이 영화는 R등급(17살 이하는 부모 혹은 성인 보호자의 동반이 필요)이다. 그것은 조잡하고 잔혹하며 외설적이라는 뜻이다.” <뉴욕타임스> 리뷰의 이 마지막 단락이 <잭애스>(jackass는 바보, 멍청이라는 뜻)를 조롱하자는 의미로 쓰인 건 아닌 듯하다. 지나치게 거침없이 만든 영화에 대해 솔직하게 단도직입으로 말한 것뿐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평가는 예컨대 이런 문장이다. “사회적 통찰력, 지적인 그럴듯함, 영화적 흥미가 빠져나간 <파이트 클럽>의 다큐멘터리 버전이다.” <잭애스>는 <비비스와 버트헤드> 이후 MTV가 만든 가장 소란스러운 영화이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90년대 초 막 창간돼 기반이 잡히지 않은 스케이트보드에 관한 잡지사에서 미술과 편집장으로 일하던 제프 트레메인은 이 잡지에 자유기고가로 일하던 조니 녹스빌을 만나 감독과 출연자로 <잭애스> 시리즈를 만들었고, MTV는 이를 2000년 10월 24회에 걸쳐 방영했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 시리즈를 영화 버전으로 새롭게 만든 것. 스턴트는 충분히 그로테스크하고 위험하다. 롤러스케이트에 조그만 로켓을 달고 달린다든지 번지점프줄을 팬티에 걸고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식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출연하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라텍스 마스크를 쓰고 도로에 뛰어들어 온갖 소동을 벌이니까 말이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제작과 각본에도 참여했다. ‘정크(허섭쓰레기) 프로그램’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MTV는 이 영화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MTV의 프리스톤 레이시 사장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내 경력의 수준을 낮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엉뚱하고 엽기적인 아이디어에 돈을 투자한 건 관객을 진심으로 웃게 만들자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자 또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별 넷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