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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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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 충무로 스탭 처우 개선 요구, 그 이후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했군 조감독협의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최중원(29)씨. 최근 충무로의 편당 계약금 수준이 올해 초와 비교해서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다른 스탭들로부터 귀동냥해서 들은 것에 따르면, 많게는 20% 오른 금액으로 계약했다는 곳도 있다. 그는 “스탭들이 처우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잘라 말한다. ‘최저임금 보장, 표준계약서 마련’을 비롯,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조수급 스탭들의 요구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은가”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제작사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앞선 행보를 보이는 몇몇 제작사들도 있다. 촬영에 들어간 강제규필름의 <오버 더 레인보우>는 연출, 제작, 촬영부 스탭들과의 계약시에 이전 작품들보다 10% 이상 상향된 계약금을 지급하고, 촬영횟수와 기간을 명시한 개별계약서를 마련했다. 강제규필름의 이성훈 제작팀장은 “인건비를 포함해서 스탭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사례가 이후 작품들의 기준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버 더 레인보우>에는 지금까지 스탭들의 처우개선에 앞장서온 김영철 촬영감독이 결합하면서 입김(?)을 많이 가한 경우다. 강제규필름쪽도 김영철 촬영감독이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자기 몫을 포기했기 때문에 계약이 가능했다고 귀띔한다. 제작사 차원에서 스탭들의 인건비 산정 및 지급을 월급제로 전환한 청년필름의 시도는 그래서 돋보인다. 현재 제작중인 <질투는 나의 힘>과 촬영장소를 물색중인 <귀여워>의 경우,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연출, 제작부에게 매달 일정 급여를 주고 있다. 아직 계약을 체결하진 않았지만 촬영부 역시 원한다면 월급제 형태로 갈 생각이다. 임금 산정기준은 일단 일대일 개별계약을 통해 스탭들과 조정하는 형태다. 또한 촬영횟수가 늘어날 경우에는 1일 노동비용을 따로 책정하고 있다. 김광수 대표는 “제작사 입장에서 자금 압박이 없진 않다. 하지만 스탭을 모집해놓고서 파이낸싱이나 캐스팅이 원활하지 않다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제작사가 떠안아야 할 책임을 스탭들에게 일정부분 돌리는 것”이라고 월급제를 시행한 배경을 설명한다. 이에 비해 명필름은 지금까지 축적해온 제작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촬영횟수가 늘어나거나 제작기간이 늘어나서 스탭들이 다른 일감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 <후아유> <욕망>의 경우, 계약금 산정시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촬영일의 1.5배로 계산한 뒤, 이를 포함한 전체 작업기간에 대한 노동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붙잡아놓고서, 정작 계약시엔 ‘촬영기간 몇 개월에 얼마’라는 식으로 스탭들의 노동을 깎기 일쑤였던 그간의 관행을 없애자는 의도에서다. 프리 프로덕션과 기획 및 개발단계를 명확히 분리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은 자료조사 등에 참여한 스탭들에게 개발비를 따로 책정, 지급하고 있다. 이은 감독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춰간다는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움직임이 충무로의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다. 비둘기둥지, 조감독협의회 홈페이지 등 스탭들이 마련한 사이버 안식처에는 여전히 푸념과 한숨이 쏟아진다. 하지만 스탭들의 성토가 울려퍼진 지 겨우 6개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고무적인 건 일부 제작사의 사례이긴 하지만, 스탭들의 불만에 성의껏 화답하는 곳도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인회의 제작환경개선위원회도 특정영화를 모델로 프로덕션 전체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조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좀더 많은 메아리가 듣고 싶다면 스탭들이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영진

[서브웨이] 한국영화 DVD, 몰라보게 좋아졌네

“전국에 계신 DVD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를 맡은 차태현입니다. 옆에는 해설자 곽재용 감독님입니다.” 곧 출시될 <엽기적인 그녀>의 DVD를 보고 있으면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주연 차태현과 곽재용 감독이 영화를 보고 있는 도중 매 장면의 제작과정 등을 해설해주는 소위 ‘오디오 코멘터리’를 수록해놓았기 때문이다. 또 극장판이 2시간2분인 데 비해 이 DVD판은 137분으로 늘어났다. 견우가 뒷모습이 예쁘다고 쫓아간 여자가 알고보니 그녀였다는 장면의 1시간 전 상황 등, 편집됐던 15분을 감독이 추가했다. 별도로 준비된 서플먼트 디스크에는 스토리보드와 NG컷, 메이킹필름, 인터뷰, CG 담당자가 해설하는 특수효과 장면까지 모두 195분의 별미가 마련돼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영화 DVD 타이틀은 마니아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화질과 사운드가 떨어지고, 서플먼트도 심심한 방송용 메이킹필름 이외엔 별다른 게 없었던 탓. 때문에 이들은 최근 들어 잇따라 출시중인 오디오 코멘터리를 포함, 성의있는 부가영상을 담은 한국영화 DVD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곧 출시되는 <소름>은 윤종찬 감독과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인터뷰식 오디오 코멘터리와 윤 감독의 단편영화 세편을 담는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취인불명> <베사메무초> 등도 감독과 배우의 해설을 담을 계획. 한국영화 DVD의 ‘업그레이드’에 불을 당긴 작품은 올해 5월에 출시된 <반칙왕>. DVD 마니아이기도 한 김지운 감독의 의욕적인 참여로 한국영화 최초로 감독의 오디오 코멘터리를 삽입했고, 제작과정도 담았다. 이후 출시된 <비천무> <번지점프를 하다> <눈물> <플란다스의 개> <신라의 달밤> 등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눈물>은 임상수 감독과 이두만 촬영감독의 대화와 배우들의 대화 등 2개의 오디오 코멘터리를 담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부가영상물을 넣다보니 제작비용도 올라가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 감독판을 재편집하다보니 필름 편집, 믹싱 등에 엄청난 액수가 들어갔고, 한장짜리 별도의 디스크에 엄청난 분량의 부가영상을 담다보니 약 1억원 정도가 들었다. 다른 영화들도 수천만원대의 제작비를 들이고 있다.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출시사들이 한국영화 DVD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려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영화의 바람이 극장에서 DVD로 옮겨가고 있어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매트릭스> 등 뛰어난 음질과 화질은 기본이고 다채로운 서플먼트를 담고 있는 할리우드영화 타이틀에 길들여진 이용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DVD에 관심을 가진 젊은 감독들의 적극적 자세도 빼놓을 수 없다. 김지운 감독은 평소 알던 녹음실, 편집실을 동원해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고, 윤종찬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비판해줄 파트너로 정성일씨를 먼저 제안했고, 곽재용 감독도 감독판 버전을 담자는 생각을 출시사에 전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류승완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면서 DVD 출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김성제 프로듀서는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사용한 프로덕션 디자인 노트, 최초 콘티 등을 이미 디지털화했고, 메이킹필름도 아예 6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감독들이 DVD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극장용 영화를 만들 때는 전할 수 없었던 영화 이면의 세계나 감독의 의도 등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은 “DVD는 감독에겐 일종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류승완 감독은 “감독의 세계를 마음껏 선보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무기”라고까지 말한다. 혹시 아나, 나중에 영상기기가 발달되면 아예 DVD용 영화가 만들어질지. 문석 ssoony@hani.co.kr

유 캔 카운트 온 미

■ Story 혼자 아이를 키우는 독신 여성이자 은행 직원인 새미(로라 리니)는 새로 부임한 지점장 브라이언(매튜 브로데릭)의 융통성 없는 원칙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나머지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남동생 테리(마크 러팔로)가 오랜만에 고향에 오는데, 기대에 부푼 새미와 달리 방랑아 기질의 테리는 누나와 조카의 안정된 생활을 헝클어놓는다. 그 절정은 조카 루디(로리 컬킨)를 생부에게로 데려갔다가 싸움질을 한 사건. 게다가 새미 자신도 브라이언과의 관계가 뜻밖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 Review 미국영화야? 제목은 ‘나에게 의지해라’쯤 될 테니 순진한 러브스토리에 해피엔딩이려나? 모든 게 잔잔하군. 풍경, 사건, 인물, 음악, 카메라까지. 흐음, 재미있어. 많이들 웃는군. 색다른 유머야. 어라? 엔딩도 특이해. 그럼 할리우드가 아니라 뉴욕에서 나온 미국영화? (자료를 뒤적뒤적) 그렇군. 뉴욕연극계 출신의 힘센 신인 케네스 로너갠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영화 데뷔작으로 골랐다. 바로 시나리오의 힘을 과시하는 것인데, <유 캔 카운트 온 미>는 얼핏 보면 밋밋한 단색조로 보이지만 조금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고운 색실로 잘 뜨개질한 겨울 스웨터 같은 느낌을 준다. 그 따뜻하고 살가운 촉감은 피부에 바로 밀착해 온다. 이 영화의 표면적인 구성은, 취향이 다르고 연애 관계도 제각각 꼬여 있는 남매가 얼마 동안 한 집에 머무르면서 겪음직한 자질구레한 이야기의 나열이다. 숙련된 극작가인 로너갠은 여기에다 문학과 연극, 영화가 오래도록 다루어온 몇 가지의 주제들을 겹쳐놓는다. 서사의 톤은 실내극적인 영화의 특성에 맞도록 앙증맞게 조율되어 있다. 이슈로 꼽을 만한 첫 번째는 외부와 단절된 소도시의 환경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심리적 영향이다. 영화의 무대는 가톨릭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뉴욕주 북부의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로 설정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온 동네 사람이 다 친척 같고, 죄를 지었다 싶으면 곧장 마을 사제에게 달려가 얼굴을 맞대고 고해한다. 이런 환경은 안전하고 익숙한 느낌을 주는 반면, 모두가 모두를 관찰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곳곳에 감시의 시선이 존재한다. 이 같은 공간의 이중성이 새미 캐릭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동생에게는 어머니 같은 후원자이면서도 반듯하게 그어놓은 선이 헝클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바른 생활’ 강박증이라든가, 독신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악동 같은 은밀한 미소로 환영하면서도 스스로를 감시하고 벌주는 억압성이 새미의 내면에 공존한다. 영화 속에서 새미의 주제가는 사실상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지만, 그녀가 신나게 바람피울 때 ‘난 당신 인생에 또다른 여자예요’라는 팝 음악을 배경에 깔아놓은 것은 드라마와 음악 사이의 전형적인 대위법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비단 스콧스빌에 사는 새미만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험하는 분열증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이자 이 영화의 가장 큰 흥미 요소는 새미와 테리로 대변되는 서로 다른 삶의 태도 문제이다. 신이나 가정에 강박되어 있는 ‘문명화된’ 삶의 양식과 길 위를 떠도는 ‘자연적인’ 삶의 양식 사이의 대비와 갈등은 미국 대중영화의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서 반복되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어두움과 마늘냄새가 싫다고 도망간 호랑이의 야생성을 추방해버린 단군신화와 달리, 미국문화 속에서 허클베리 핀으로 대변되는 방랑자 캐릭터는 늘 대중과 예술가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장치는 문명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인간 내면의 억압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완충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 때문에 대마초나 뻑뻑 피우고 임신한 여자 친구를 위해 누나한테 손 벌리러 온 테리가 따뜻하고 자유로운 품성, 나아가 자연친화적인 장점을 가지고 새미와 조카 루디의 단조로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테리가 늘 떠벌이는 알래스카는 서부극의 영웅들이 떠돌았던 서부의 대체물이다. 여기서는 정착과 방랑의 모티브가 여성과 남성에게로 나뉘어 가족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유 캔 카운트 온 미>는 가족의 갈등과 새로운 관계 정립을 주제로 한 가족 드라마로 변주된다. 뉴욕의 문화적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개방적인 보수주의자답게 로너갠 감독은 이 문제에 대해 절묘한 균형을 취한다. 방랑자와 정착민은 서로를 따뜻이 감싸안으며 화해하면서도 결국 방랑자를 마을로부터 정중하게 추방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이 자동차를 타고 길 위를 흘러가는 새미의 모습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방랑자의 흔적은 정착민의 삶에 미묘한 움직임을 만들어놓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시종일관 “난 몰라, 상관 안 해”라는 식의 말만 하는 꼬마 루디(할리우드의 거물급 아역 배우인 매컬리 컬킨네 7형제 가운데 막내둥이 로리 컬킨이다)는 바른 생활 어머니와 방랑자 삼촌으로 대변되는 두 가지 기류 사이에 끼어 있는 미국인의 나이브한 표상처럼 보인다. <아메리칸 뷰티> 이후 최고의 가족 드라마라는 평판이 그럴싸하게 들리긴 하지만 <아메리칸 뷰티>가 냉혹한 시니시즘을 바탕으로 미국 소시민 가정을 내부로부터 폭파시켜버린다면, <유 캔 카운트 온 미>는 가족의 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감독과 제작진 스코시즈 사단, 뉴욕 군단 <유 캔 카운트 온 미>는 할리우드와 대비되는 뉴욕영화계의 특성과 파워를 잘 보여준다. 브로드웨이에서 잘 나가는 극작가였고 <애널라이즈 디스>를 비롯한 몇몇 할리우드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신예인 케네스 로너갠의 후원자이자 바람막이가 되어준 사람이 바로 뉴욕영화의 대부인 마틴 스코시즈이다. 극 구성과 배우 연기의 조율 면에서 연극계 출신 특유의 장점을 발휘하지만, 숏이나 편집 등에서 연극계 출신 특유의 약점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 대해 스코시즈가 무어라고 평했을지 궁금하다. 제작자로 나선 존 하트는 토드 헤인즈, 신디 셔먼과 같은 뉴욕의 개성파 인디감독들을 발굴했고 스물다섯개가 넘는 토니상 트로피를 가지고 있다는 인물이며, 또다른 제작자인 제프리 샤프와 바바라 드피나 역시 각각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이들 뉴욕 군단은 로너갠이 들고 온 <유 캔 카운트 온 미>의 시나리오에 홀딱 반해 즉시 판권을 계약하고 캐스팅과 로케이션에 나섰으며, 선댄스와 베니스, 아카데미 등 가지각색의 영화제로부터 호평받는 결과를 뽑아냈다. 할리우드의 화장실 유머에 지친 미국 평론가들도 일상생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확고하게 구축된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대사, 게다가 종종 터지는 소박한 유머에 대해 ‘제2의 우디 앨런이 떴다’고 호들갑스런 지지를 보냈다. 로만 칼라를 목까지 채우고 뚱한 얼굴로 지루한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제를 로너갠 감독 자신이 맡았는데, 그의 얼굴이 풍기는 어수룩하고 코믹하면서도 못 말리게 따뜻하고 어쩔 수 없이 지적인 느낌이 바로 이 영화의 분위기이다.

광주국제영상축제에서 만난 오구리 고헤이 감독

오구리 고헤이(56)는 지금 일본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주의 감독이다. 96년작 <잠자는 남자>에 안성기씨를 출연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는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한국으로 건너가 경찰관을 하다가 45년 해방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때 오구리 감독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가야코를 위하여>(84년)는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재일동포 2세와 일본 여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나도 생각이 안 바뀌었다. 나는 아버지를 부정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인이 재일동포인 그는 지금까지 열 번 가까이 한국에 왔지만 이번 방한은 의미가 남다르다. 광주영상축제가 한편도 개봉한 적이 없는 그의 영화 네편을 모두 가져와 상영하는 특별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의 완고한 보수성과 민족차별 감정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오구리 감독은 데뷔작 <진흙강>(81)에서부터 소수자와 주변인에게 주목했다. 일본의 전후 부흥기인 50년대 후반, 보통 가정의 어린이와 배를 타고 강을 떠도는 매춘부의 아들 사이의 우정을 매개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낸다. <가야코…>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시각이 전제돼있음은 물론이지만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재일동포 문제를 다루면서 미묘한 문제를 느꼈다. 나는 어떤 입장에 서야 할지, 카메라를 얼마 만큼 멀리 둘지, 또 내러티브를 어떻게 번역할지. 단순한 이야기로 번역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는 한 컷 한 컷에 내러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영화 <죽음의 가시>(90)는 영화만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법이 전면에 나선다. 정적인 화면이 계속되다가 툭툭 잘려나가듯 다른 화면으로 바뀌고, 피안의 세계 같은 환상적 장면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이를 통해 바람핀 남편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미쳐가는 한 부인의 이야기를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으로 끌고가는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카메라는 현실을 찍는 게 아니다. 카메라가 들어설 자리가 이야기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의 눈은 신의 눈인지도 모른다. 그 눈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꿈을 꿀 때 카메라의 위치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무현 공개지지 선언한 배우 문성근

문성근(48)은 배우다. 그리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근심 많고 생각 많고 일 많은 영화 정책가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과 성과를 두루 인정받는 파워맨이다. 요즘 그는 다른 일로 또 바빠졌다. 근심에 빠져있다가, 새로운 일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민주당 노무현 고문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영화 하는 사람이 무슨 정치판에까지 관여하려고 하느냐며 빈정대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텐데, 그는 그런 사람이라면 쫓아가서 몇시간이고 마주 앉아 설득할 테세다. 그의 뜻은 한 정치인을 대변하는 데 머무르는 건 아니다. ‘민족화해와 지역통합을 위한 개혁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요즘은 ‘민족사 최대의 위기’ 시점이다. 이번에도 지역통합을 바탕으로 민주화 세력이 결집하지 않으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여파는 이제 중흥기를 맞고 있는 한국영화의 발전에도 깊은 상처를 입힐 지도 모른다. 요즘 문성근은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고서 9월부터 대학 등을 돌며 강연회를 하느라 정치인의 스케줄만큼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조만간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는 그를 만났다. -올해 초에 정말 쉬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그랬었나. (웃음) 심부름을 이젠 그만 했으면 하는 맘은 있었다. 정책이든 NGO든 일을 떠맡게 되면서 본업인 배우로부터 너무 멀어졌으니까…. 근데 한 2년 정도는 더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영화 역사가 제대로 발전했으면 정책이나 NGO 분야에서 영진위의 김혜준 실장이나 쿼터연대의 양기환 사무처장 같은 일꾼들이 많을 텐데, 아직 빈자리가 많아서. 얼마 전에 CJ와 CGV가 기금을 마련해서 한국영화 산업 및 정책 연구자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결정한 건 개인적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그 사람들이 현장에 나오면 내 할 일이 줄어드는 거니까. -민주당 노무현 고문을 지지하는 강연회에 다니느라 지방에 내려가는 일도 잦다. =‘나를 어떻게든 쓰시오’ 하고 의사표명한 건 올해 봄이었다. 그러다 강연회에 나서달라고 몇달 전에 부탁을 받았고, 방송과 영화 촬영 스케줄을 빼면 그쪽에 모두 시간을 쏟고 있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계기가 있나.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가깝게는 87년부터지만, 오랜 세월 우리 역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다. 그래서 문민정부든 국민의 정부든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민주화추진 세력이 영남과 호남에 기반을 두고 둘로 갈라지면서 스스로 소수정파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 봐라. 지역구도 아래서 정치가 비상식적으로 가고 있다. 87년에 국민들을 끌어모았던 구호가 직선쟁취였다면, 이제는 지역감정에 근거한 낡은 판을 깰 수 있는 후보가 나서야 한다. 그래야 힘이 결집된다. 노 고문은 더이상 지역감정 때문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그래서 적역이라고 판단했다. -직접 나선게 된 까닭을 좀더 말해달라. =참혹했던 유신 시절이나 5공 때도 희망은 있었다. 정당성 없는 체제는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 그런데 요즘은 국민이든 사회단체든 모두들 열패감에 빠져 손을 놓고 있다. 민주정권도 별 소용없구나 하는 한탄이 흘러나오고, 기득권 세력은 예전이 더 좋았다고들 떠든다. 과연 그런가. 지금쯤 우리 더 잘해봅시다 하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보자는 에너지가 발동한다. 가만있다간 더이상 희망은 없다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손놓고 있는 건 일종의 책임방기다. 정치적인 야심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총선 때면 공천설이 돌기도 했고.대놓고 그러는 사람은 없더라.(웃음) 노 고문과 전당대회까지만 같이 가겠다고 한 건 정치하겠다는 뜻이 없어서다. 그 이후에 활동하려면 정당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계획은 없다.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인 발언을 하겠다는 것이다. 영진위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도 ‘문성근이 국회의원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말이 있긴 했다. 사실 그건 비난할 게 아니다. 나야 뜻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유능하고 바른 누군가가 나선다면 도와줘야 한다. 영화계도 그렇고 각 분야 직능 대표들이 국회에 진출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전엔 몰랐는데 연설하는 걸 보니 격정적인 어조가 아버지 문익환 목사를 닮았더라. 올해는 문호근 선생도 세상을 뜨셨는데 막막하고 외롭지는 않나. =집안에서 막내이다 보니까 예전엔 큰일은 아버지나 형한테 다 미루고 그랬다. ‘형이 다 해. 난 몰라, 아버지 나 모르겠어’ 하고. 근데 두분 다 가셨으니 부담이 크다. 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꺼내자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을 시작으로 쉰아홉살부터 생의 마지막 17년 중 6번을 감옥에 가신 분이다. 그걸 곁에서 보면서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나 싶더라. 그런데 최근 평전을 쓰기 위해 1년 넘게 자료조사를 했던 김형수 시인이 답을 줬는데…. 당신이 1960년대부터 준비하던 것이 성경번역 작업을 하시면서, 이미 구약에서 나오는 선지자 같은 삶을 살것이라고 예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 갑시다’ 하고 비전을 제시해놓고 정작 자신은 위정자한테 잡혀서 죽는 그 삶을 받아들이고선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나야 그에 비하면 헌신적으로 뭘 하는 건 아니니까. -이창동 감독이나 명계남씨 등과도 자주 만나나. =명계남은 노사모 일로 자주 보는데, 이창동은 거 요즘 무슨 예술한다고 얼굴 보기도 힘들다. 간혹 보게 되더라도 나를 배우로 아는 것 같지 않은데다 완전히 무시한다. (웃음) 그래도 이창동을 보면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못 보는 주변상황들, 상대의 감정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을 찬찬히 일러준다. -현 정부가 영상정책의 큰 틀을 짜는 데 주요 조력자 중 한 사람인 것으로 안다. 4년이 지났는데 평가를 한다면. =정치가 영화계처럼만 굴러간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 (웃음) 그땐 스크린쿼터가 흔들리는 시점이었고, 금융자본 또한 빠져나갈 태세였다. 영진위를 중심으로 투자조합을 활성화시키고, 쿼터연대가 앞장서서 의무상영일수를 지켜내야 했다. 누군가는 영진위가 너무 시장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하겠지만, 그건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였다. 시장을 먼저 활성화시키는 것이 돌이켜봐도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영진위 또한 독립단편영화를 비롯해서 저예산영화들의 유통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내년 중반부터는 그 부분도 조금씩 해소될 것으로 믿는다. -이제 본업 이야기를 해보자. <질투는 나의 힘>은 어떤가. =한 신 찍었는데, 정말 연기가 안 된다. 그래서 박찬옥 감독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그 상황에 푹 빠져야 하는데, 머릿속이 논리와 분석으로 가득 차 있으니 될 리가 없다. 10년 전에 <그들도 우리처럼> 찍을 때도 ‘이걸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하는 난감함이 있었지만, 그땐 그래도 여기에 대가리 처박겠다는 게 있었으니까 됐는데…. 이번엔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내년에 출연하기로 했던 세편도 감독한테 내 사정을 털어놓고서 못하겠다고 이해를 구했다. 약속을 못 지킨 미안함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고통스러웠다. -감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그래서 요즘은 운전을 도와주는 친구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강연회 다녀오는 차 안에서라도 좀 자야 현장에서 문제를 풀 수 있을 테니까.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도리가 아니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겠다. =문화관광부에 가면 싼 할인점이 있는데, 얼마 전까지 거기서 포도주를 박스째 사다 놓고 마시곤 했다. 요즘은 그것도 맘대로 못한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날 의사가 전화해서 혈중알코올수치가 다른 사람 10배라고 겁주더라. 한 석달은 조심해야지. -일이 정리되면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게 아닌가. =여행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나한테는 술이 제일 낫다. 할리우드에선 배우한테 정신분석 의사가 따라붙어 성격분석부터 해소까지 같이 간다지만, 우리야 그게 안 되니까. 내 경우에는 술 먹고 만취해서 털어내면 된다. 심부름에서 석방되고 나서 한 두어달 술 마시면 되겠지. -내년이면 오십줄에 들어서는 것 아닌가. 앞으로 배우말고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 =무슨 소리하나. 그건 명계남에게 해당하는 거고. 난 마흔살 넘은 지 얼마 안 됐다. (웃음) 90년대 초에 촬영현장에 들어와서 작품도 많이 했고, 쿼터 싸움도 해보고, 운이 좋아선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다. 얼마 전까지 감독을 해보겠다는 맘이 있었는데, 집에 있던 어느날 문득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영상을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고 나니 내가 그런데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연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서 접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오라고 하고 주위 사람들이 조근조근 재밌다고 부추기긴 하는데 나랑은 안 맞는 것 같다. 아직은 배우말고는 딱히 없다.

<파고> <시드와 낸시>의 로저 디킨스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형과 함께 3∼4마일은 족히 되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비를 맞으면서도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단체에도 가입했는데, 그 당시 피터 와킨스의 <워 게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핵전쟁이 일어난 런던을 그린 영화로, 픽션임에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90년대까지 상영금지되었지만 어떻게 우리 단체에서 복사본을 입수하게 되었다. 상영 도중 몇몇 여자들은 기절했고, 극장을 뛰쳐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촬영감독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때였지만, 영화가 남긴 파장은 그 세계로 나를 끌어들일 강한 동인이 되어주었다.” <쇼생크 탈출> <파고> <쿤둔>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오스카는 4차례나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혁신적인 촬영기법을 주목하였고, 매번 그의 영상은 기대와 관심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1949년 영국 드봉의 해변 토르퀘이에서 태어난 디킨스에게 주어진 것은 작은 마을에서의 안정적인 은행업무였다. 당연시되었던 자신의 인생에 어린 나이임에도 그의 감수성은 도전장을 내민다. 배우였던 어머니는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그는 예술학교에 진학하여 그림을 배운다. 넓은 세상으로의 동경과 어우러진 이 출사표로 이후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게 되었고, 런던에 새로 생긴 국립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임한다. 자신이 바닷가 출신임을 내세워 9개월간의 험난한 촬영을 마다하지 않고 요트경기를 기록했으며, 아프리카 로디지아와 에리트리아 등의 게릴라전을 담아낸다. 카메라가 지닌 놀라운 사실감에 매료된 7년간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그에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 사실 기록에 그치지 않고 상황에 뛰어드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는 다큐멘터리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극영화로 발을 들여놓은 첫 작품은 <다른 시간 다른 장소>(1983)로, 국립영화학교에서부터 함께 일해온 마이클 래드퍼드와 함께였다. 이듬해 처음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한 는 그의 촬영경력 전반에 큰 전환점이 되어주었고, 조명을 배제하고 핸드헬드 카메라에 담아낸 <시드와 낸시>로 미국 진출을 하기에 이른다. 펑크 스타일리스트 알렉스 콕스의 이 야심작은 거칠고 불안정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놓지지 않는 새로운 카메라맨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 됐다. 이후 <패션 피쉬> <데드맨 워킹> 같은 인디영화를 통해 다큐멘터리에서 쌓은 순발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상황능 빠르게 포착해 프레임 안에 재배치했으며, 적절한 시간으로 재단했다. 물론 디킨스의 필모그래피를 구성할 때 코언 형제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기괴한 호텔 <바톤핑크>의 영상이 날카롭게 표출해낸 40년대 할리우드의 내면을 기점으로 미국문화의 면면이 속속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코언 형제의 초기작을 영상화했던 배리 소넨필드와는 다르게 보다 사실주의적이며 즉물적인 영상을 구현한 것이었다.. 50년대 자본주의의 빌딩 숲에 터를 잡은 인간군상의 부조리한 모습을 그린 <허드서커 대리인>이나, 자연광을 최대한 살려 광활한 미네소타의 설원이라는 공간 속의 비참한 삶을 그린 <파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이는 때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와 같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최근작인 코언 형제의 <거기에 없던 남자>도 컬러로 촬영한 뒤 흑백필름에 프린트하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시도로 다가선다. 하지만 그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할 뿐이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집착은 없다”고 말한다. 단지 작품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에 관한한 그는 고전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펜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사진작가가 되고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촬영감독으로서의 그의 역할도 여기에서 찾아진다. “영화라는 것이 본래 여러 사람이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컴퓨터가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이러한 종류의 영화찍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최근 그는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언젠가 그가 떠나온 다큐멘터리에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작은 바람을 피력하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계에서 타블로이드판 신문과 같은 구실밖에 해내지 못하는 다큐멘터리에 본래의 기능을 되찾고 싶은 심정에서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Roger Deakins 필모그래피 촬영 <하얀 바다로>(To The White Sea, 2002) 조엘 코언 감독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2001) 론 하워드 감독 <디너 위드 프렌즈>(Dinner with Friends, 2001) (TV) 노먼 주이슨 감독 <거기 없었던 남자>(The Man Who Wasn’t There, 2001) 조엘 코언 감독 (Thirteen Days, 2000) 로저 도널드슨 감독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 2000) 조엘 코언 감독 <여기보다 어딘가에>(Anywhere But Here, 1999) 웨인왕 감독 <허리케인 카터>(The Hurricane, 1999) 노먼 주이슨 감독 <비상 계엄>(The Siege, 1998) 에드워드 즈윅 감독 <위대한 레보스키>(The Big Lebowski, 1998) 조엘 코언 감독 <쿤둔>(Kundun, 1997) 마틴 스코시즈 감독 <커리지 언더 파이어>(Courage Under Fire, 1996) 에드워드 즈윅 감독 <파고>(Fargo, 1996) 조엘 코언 감독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 1995) 팀 로빈스 감독 <롭로이>(Rob Roy, 1995) (uncredited) 마이클 케이튼 존스 감독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허드서커 대리인>(The Hudsucker Proxy, 1994) 조엘 코언 감독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 1993)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 <붉은 사슴비>(Thunderheart, 1992) 마이클 앱티드 감독 <패션 피쉬>(Passion Fish, 1992) 존 세일즈 감독 <바톤 핑크>(Barton Fink, 1991) 조엘 코언 감독 <호미사이드(Homicide, 1991) 데이비드 마멧 감독 <롱 워크 홈>(The Long Walk Home, 1990) 리처드 피어스 감독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 1990)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 <파운틴 오브 더 문>(Mountains of the Moon, 1990) 밥 라펠슨 감독 <라 돈나 델라 루나>(La Donna della luna, 1988) 비토 자게리오 감독 <파스칼의 섬>(Pascali’s Island, 1988) James Dearden 감독 <폭풍의 월요일>(Stormy Monday, 1988) 마이크 피기스 감독 <더 키친 토토>(The Kitchen Toto, 1987) 해리 후크 감독 <퍼스날 서비스>(Personal Services, 1987) 테리 존스 감독 <다이애나의 두 남자>(White Mischief, 1987)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시드와 낸시>(Sid And Nancy, 1986) 알렉스 콕스 감독 <왕국의 비밀>(Defence Of The Realm, 1985) 데이비드 드루리 감독 <더 이노센트>(The Innocent, 1985) 존 매켄지 감독 <리턴 투 워털루>(Return to Waterloo, 1985) 레이 다비스 감독 <샤데이>(Shadey, 1985) 필립 사비에 감독 (Nineteen Eighty-Four, 1984)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알란 부시: 라이프>(Alan Bush: A Life, 1983) 안나 앰브로스 감독 <다른 시간 다른 장소>(Another Time, Another Place, 1983) 마이클 래드퍼드 감독 <타워 오브 바벨>(Towers of Babel, 1981) 조너선 루이스 감독 <스테핀 아웃>(Steppin’ Out, 1979) 린달 홉스 감독 <비포어 하인드사이트>(Before Hindsight, 1977) 조너선 루이스 감독 <웰컴 투 브리테인>(Welcome to Britain, 1976) 벤 루윈 감독

아저씨 <꽃섬> 보며, `현실과 몽환의 삼투관계`를 생각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영화 제목이 너무 밍밍하고 붕 떠 있으면 그거 반드시 지독한 문예물이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예술품이라는 말이다. <꽃섬>이 그랬다. 꽃섬, 花島, 하나시마, Flower Island, 아무리 자연언어의 옷을 갈아입혀 봐도 밍밍하다. 과연, 영화는 내 공리주의적 영화관(무엇보다도 영화라는 대중예술 장르는 보는 동안 즐거워야 한다는, 적어도 고통스럽지는 않아야 한다는)을 대뜸 배반하고 있었다. 처음 20분 동안 나는 고문당하는 기분이었다(사실 이런 경솔한 말버릇은 고쳐야 한다. 이태복씨나 김근태씨처럼 참혹하게 고문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고문당하는 기분’이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낯부끄럽다). 이 영화에 대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절망스러웠다(‘절망’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진짜 절망이 뭔지도 모르는 치가 ‘절망’ 운운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조심하겠다). 그냥 나가버릴까? 일행이 없었다면 나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행 중에는 내가 ‘사부’로 모시는 분이 계셔서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상영 도중에 자리를 뜨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결례일 뿐만 아니라 내 사부님에 대한 결례도 될 터였다. 사태는 점점 나아졌다. 시간이 내 편이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이 영화의 결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몰입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꽃섬>은 세 여자가 남해시 앞바다에 있다는 꽃섬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시쳇말로 로드무비다. 옥남(서주희)은 옌볜 아줌마 같은 순박함을 지닌 30대 여성이다. 그녀는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늙은 남자와 매매춘을 하다가 남자가 복상사하는 바람에 남편에게 들통이 났고, 그 결과로 강요된 외출을 실천하는 중이다. 꽃섬에는 그녀의 ‘천사 친구’ 영란이 산다. 옥남은 슬픔도 괴로움도 없다는 그 섬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남해행 버스를 탄다. 그녀는 버스 안에서 혜나(김혜나)라는 10대 소녀를 만난다. 결손 가정에서 막 자란 혜나는 자기를 낳은 여자(원한에 찬 이 아이는 제 어머니를 이렇게 부른다)를 만나보기 위해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남해로 가는 중이다. 옥남과 혜나는 눈 덮인 산중에서 죽어가던 유진(임유진)을 구한다. 뮤지컬 배우 유진은 설기저암(말이 몹시 어렵다. 아무튼 혀와 관련된 암인 듯하다)으로 혀를 잘라낼 처지가 되자,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마음먹고 그 결심을 실천하고 있던 차다. 나는 영화 속의 세 여자가 결코 꽃섬에 다다르지 못하리라고 지레짐작했다. 슬픔도 고통도 없는 곳, 모든 불행을 잊을 수 있는 곳은 현실 속에 존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물론 마약류는 빼놓고. 그러면 꽃섬은 마약이란 말인가, 하고 나는 한순간 생각했다. 아무튼 꽃섬이 그런 곳이라면, 영화 속에서 꽃섬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나는 내처 생각했다. 특히 남해행 버스를 탄 옥남과 혜나가 눈 덮인 산중에 버려졌을 때 그랬다. 꽃섬은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이 세 여자는 내 기대를 배반하고 결국 꽃섬에 다다랐다. 남해행 버스의 운전기사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북쪽의 고향을 찾아 가버렸을 때, 나는 이 영화가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판타지가 아닌 것은 아니다. 꽃섬에서 영란의 도움을 받아 유진이 승천(이겠지, 아마?)하는 끝머리 부분의 장면을 보라. 이 황당무계한 장면은 <어린 왕자>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뱀의 도움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어린 왕자를. 그러나 <꽃섬>이 판타지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다른 한편 극도의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다. 남해의 허름한 나이트클럽 구석자리에서 세 여주인공과 얘기를 나누는 게이 뮤지션들은 조금도 배우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혜나 어머니의 친구라는 박희진도 그렇다. 배우 같지 않다거나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연기가 서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연기가 완벽해서 실제 장면 같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감지했겠지만, 게이 뮤지션이나 박희진이 등장하는 장면은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처럼 리얼리티의 끝간 데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꽃섬>은 극도의 판타지와 극도의 리얼리티를 한 몸에 담고 있다. 그 판타지와 리얼리티는 서로를 도드라지게 한다. 판타지 때문에 리얼리티는 더 핍진해지고, 리얼리티 때문에 판타지는 더 몽환적이 된다. 현실과 몽환의 삼투 속에서 <꽃섬>은 단편영화나 연극의 분위기를 닮아간다. 이런 과격한 형식 실험을 동반한 문예물이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용과 형식은 쉬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분리해 따져 보자면,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내용보다는 형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낯선 내용보다는 낯선 형식에 더 힘들게 적응한다. 예술이든 예술의 포즈든 그런 형식의 새로움이 클수록, 향유자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다. 예컨대 이인성의 소설이 그렇듯. 그리고 <꽃섬>이 그렇듯.고종석/ 소설가.<한국일보> 편집위원 aromachi@hk.co.kr

순진한 노력, 왜 비웃나?

12월6일 현재, 서울관객 6만4311명, 전국 9만6776명이 본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앞으로 큰 이변이 없다면 손익분기점은커녕 금전적 손해를 꽤 보게 되었다. 혹자는 욕심부리지 말고 극장 수를 줄여서 개봉했다면 장기상영 확률도 더 높지 않겠냐고 지적하기도 했으나, 현재의 유통·배급구조는 장기상영을 보장해주는 극장이 전무함에 따라 미지의 가능성을 갖고 일정 정도의 상영관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저한 시장논리와 흥행성적에 따라 별수 없이 1주일 만에 간판을 내리거나 심지어는 개봉 이틀 만에 종영되는 상황을 맞고 이런 영화를 관람하고자 하는 관객은 비디오 출시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그렇고 <나비>와 <라이방>이 그랬다. 전국에서 최소 1, 2개관의 상영관이라도 확보되어 좀더 상영되길 희망한다는 소수 관객의 구체적인 요구가 있었기에 각 영화사들은 임대상영이나 장기상영의 가능성을 어렵게 찾아나서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현재의 시장논리와 배급구조 때문에 너무 빨리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상황 앞에서 그저 넋두리나 늘어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소수 관객의 채근에 추동돼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한 것이다. 물론 ‘공동상영’을 제안하는 극장주도 나왔다. 12월1일치 <중앙일보> 시론에 쓴 조희문씨의 이야기처럼 ‘좋은 영화라고 흥행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 결코 아니라, 소수지만 장기상영을 희망하는 관객의 바람에 고무(?)되어, 상영조건만 마련된다면 찾는 ‘최소한의’ 관객이 있을 것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다. 조희문씨의 말처럼, ‘특정한 영화가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이유로 많은 관객이 보아야 한다며 바람을 잡고, 극장을 통째로 빌려 상영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주관적인 기준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돈을 들여서라도 기록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융단폭격식으로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고 속전속결식의 결과를 내는 지금의 ‘시장’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내 극복해보고자 하는 자구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먼저 바람을 잡은 것은 만든 이들이 아니라 소수의 관객이었으며, 억지로라도 기록을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작자가 경제적 리스크를 안더라도 방법이 있다면 투자금에 대한 손해액을 최소화하겠다는 단순한 경제적 논리를 폈을 뿐이다. 몇백만명씩 관객을 동원하는 오락성 강한 상업영화와 서울 5만명, 10만명짜리 작은 영화도 더불어 ‘공존’하는 건강한 시장을 희망했을 뿐이다. 올해의 상황으로, 공급자인 영화인들은 너나없이 특정 장르의 영화만을 만들고 수요자인 관객은 그 영화들만을 즐기며 투자자는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의 시나리오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수 있는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다르게 ‘노력하는 영화인들’의 모습이며, ‘관객의 현명한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아직도 순진한(?) 마음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영화의 지속적인 생산이 다양한 성향의 관객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좀더 명줄 긴 한국영화계를 담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난해한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이 <메멘토>를 꼽을 것이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봤다면, 처음부터 전혀 이야기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영화 속의 시간이 역방향으로 전개되는 구성상의 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혹성탈출>을 꼽고 싶다. 당연히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시퀀스에 지구가 원숭이들의 행성으로 변해 있는 그 황당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에 대해 누구도 그럴듯한 ‘설’을 만들어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수입한 직배사에서조차 ‘마지막 시퀀스의 해석을 기자들이 물을까봐 무서워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흘러다녔을 정도니, 그럴듯한 ‘설’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황당하다는 측면에서 불가해한 <혹성탈출>을 제외하면, 사실 <메멘토>보다는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훨씬 더 난해한 영화다. 물론 <이레이저 헤드>로 시작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 대부분이, <스트레이트 스토리> 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난해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이 끝까지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영화였던 데 반해,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어떻게든 스토리라인이 한 가닥으로 정리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 스토리라인 만들기를 포기 못하는 사람들에게,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더더욱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한 수입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영화의 스토리를 해체, 재창조하는 이벤트를 열었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감상문 등을 올리라는 이벤트는 딱 질색이지만, 이번에는 영화가 영화이니만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른 관객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관객의 의견 중에는 ‘린치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꿈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꿈이란 인간의 성적 압박과 증오, 혹은 고통들이 현실의 불규칙한 조건들의 흡수없이 독자적으로 이미지나 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라며, ‘한 여자(베티)의 현실과 비현실(꿈 혹은 상상)을 꿈 혹은 다른 세계에서 다이안이 깨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양분했다’는 해석이 있었다. 이런 해석은 상당수 관객의 해석과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현실의 베티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꿈 또는 상상 속에서 이루려 하는 것이 영화의 전반부라고 보는 시각이다. 또다른 해석은 이러한 스토리라인 자체보다는 이 영화가 ‘권력에 대한 불평이며, 할리우드에 대한 허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렌시오 극장에서의 장면이 이러한 해석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의 논리의 핵심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해석들 중에는, ‘영화의 초반부에 리타와 베티가 만나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며, 그 계획은 관객이 그 존재성을 알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인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물론 언뜻 수긍할 수 없는 해석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영화를 읽은 관객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임엔 틀림이 없다. 또다른 관객은 영화를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길 자체가 가지는 ‘할리우드=성공=부’라는 의미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영화가 성공을 했지만 한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리타라는 여배우의 이야기와, 성공을 했지만 그 뒤에는 가정의 파탄과 야비한 제작자의 압력으로 시달리고 있는 아담이라는 감독의 이야기 그리고 성공을 거머쥐지 못한 다이안의 이야기로 각기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같은 배우들이 등장한다뿐이지, 몇몇 인위적인 연결고리를 제외하면 모두 독립된 이야기라는 해석이다. 이렇게 관객의 해석이 엇갈리는 것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웹진 중 하나인 살롱닷컴(Salon.com)이 ‘당신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대한 알고 싶은 모든 것들’이라는 제목의 특집을 실은 것도, 바로 그런 다양성에 자신들의 시각도 얹고 싶어하는 필자들의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롱닷컴은 다수의 관객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비슷하게 영화를 전반부(파란 상자가 열리기 전)와 후반부로 나누고, 후반부가 실제 존재했던 사건들을 보여준 것이며 전반부는 후반부에서 자살한 다이안의 상상 혹은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반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상황은, 후반부의 다이안의 의식 속에 존재하던 상상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감독 아담은 현실에서는 잘 나가는 감독이지만, 다이안의 상상 속에서는 부인이 바람을 피고 신인 여배우를 강요하는 엉뚱한 제작자에게 시달리는 불행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 살롱닷컴에 의하면 그 상상 속에서는 자신을 버린 카밀라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여인 리타로 등장하며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싶었던 자신의 옛 모습도 아직 남아 있는, 자신만의 천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이 진짜 정답인지는 데이비드 린치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데이비드 린치마저도 어떤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마저도 허구에 기반한 영화이고, 영화라는 매체는 실렌시오 극장 장면이 주는 교훈처럼 그저 공허한 허상일 뿐이라는 일부 관객의 해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장을 나오면서 자신이 두 시간여를 본 영화를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하는 것이,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적인 관객치고 린치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 욕망이 생겨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린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감독임에 틀림이 없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공식 홈페이지 http://www.mulhollanddrive.com/ <멀홀랜드 드라이브>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ww.mulholland.co.kr/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