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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톰 크루즈에 가려진 `눈`, <바닐라 스카이>

<바닐라 스카이>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데이빗 애담스(톰 크루즈)란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잘 생긴 외모에 카리스마적 매력을 지녔고, 12살 때 부모가 죽으면서 물려준 거대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지만 삶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여자는 하룻밤 섹스 파트너일 뿐이다. 하지만 생일파티에서 친구 브라이언이 데려온 여자친구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매혹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되찾는다. 새롭게 열심히 살아보자고 결심하며 소피아의 집을 나서는 순간 그의 앞에 섹스 파트너였던 줄리(카메론 디아즈)가 나타난다. 그리고 데이빗을 차에 태운 줄리는 자신이 단순한 섹스 파트너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줄리는 죽고 데이빗은 살아난다. 하지만 얼굴이 심하게 손상되면서 절망감에 비틀려진 그의 태도는 소피아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놀라움은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재미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한가지, 영화는 데이빗의 잠을 깨우는 알람의 목소리 `오픈 유어 아이즈`로 시작해 모든 영상이 사라진 뒤 까맣게 된 화면에서 역시 같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오픈 유어 아이즈`로 끝을 맺는다. 이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큰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단서다. 할리우드 톱스타 톰 크루즈가 제작 주연한 이 영화는 1997년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연출한 <오픈 유어 아이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다 4년만에 다시 만드는 작품이라 영화를 보며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두 영화의 줄거리는 똑같다. <오픈 유어 아이즈>는 악몽이 돼버린 환상 속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당신에게 있어 행복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관객들은 `힘든 현실과 멋진 환상이 앞에 놓여 있다면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생각하며 한동안 영화가 준 충격을 되새김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바닐라 스카이>는 원작에 비해 시각적으로 훨씬 풍요롭고 화려하다. 영화의 첫부분에서 데이빗이 사람은 하나도 없고 대형 광고판만 번쩍이는 타임 스퀘어를 달리며 두 팔을 벌리고 맴도는 장면은 일요일 새벽 타임 스퀘이 40블록을 통제한 채 찍었다. 데이빗의 생일 파티 장면에 나오는 재즈 연주자 홀로그램 등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크루즈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에 카메라의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크루즈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사실성은 상당부분 희생된다. 구성도 진실의 반대방향으로 이야기를 계속 몰아가다 막바지에 가서야 `꽝`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터뜨리는 식으로 더욱 센세이셔널하게 바뀌었다. 그 결과 <바닐라 스카이>는 톱스타 크루즈의 매력과 막판 반전 그리고 이어지는 잠시의 혼란스러움이 원작이 지녔던 에너지와 여운을 대신한다. 같은 시나리오를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옮겨오면서 더 많은 제작비와 스타로 무장했지만,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와 메시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감독 카메론 크로우. 18살 이상 관람가. 21일 개봉.

[Review] 몬스터 주식회사

■ Story 몬스터 주식회사는 괴물들의 도시 몬스트로폴리스에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 겁주기에 능한 직원들이 밤마다 벽장 문을 통해 채집해오는 어린이들의 비명소리가 동력원이다. 겁없는 요즘 아이들 때문에 괴물 세계에 닥친 에너지 파동 속에서도, 털북숭이 설리(존 굿맨)는 매니저 노릇을 하는 외눈박이 동료 마이크(빌리 크리스털)와 짝을 이뤄 ‘몬주’ 최고의 실적을 자랑한다. 어느날 밤 설리는 작업장에 남은 문 하나를 살피다가 그만 어린 소녀 한명을 괴물 세계에 들여놓고, 인간의 아이에게 치명적인 독성이 있다고 믿는 몬스트로폴리스는 발칵 뒤집힌다. ‘부’라고 이름붙인 꼬마에게 조금씩 정이 드는 설리. 하지만 ‘부’를 집으로 안전히 돌려보내려는 설리와 마이크의 노력은, 설리에 밀려 만년 2등에 머무르는 괴물 랜달(스티브 부세미)의 시기에 찬 음모에 부딪힌다. ■ Review 픽사스튜디오가 디즈니와 손잡고 내놓은 네 번째 장편 <몬스터 주식회사>의 상상력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요람이었던 아이들의 침실에서 다시 기지개를 편다. <호두까기 인형>의 유서깊은 꿈을 계승하는 이 세계에서, 장난감들은 우리가 눈돌리는 순간 호들갑스러운 회합을 소집하고 벽장 문은 불이 꺼지기 무섭게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입구로 둔갑한다. 하지만 피트 닥터 감독의 착상을 픽사의 단골작가 앤드루 스탠튼이 숙성시킨 <몬스터 주식회사>의 시나리오는 누구나 한번쯤 해볼 만한 공상에서 멈추지 않는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들은 팀 버튼 휘하에 있는 통제 불능의 음침한 망나니들과 달리, 영업 실적에 따라 울고 웃는 건전한 샐러리맨들이다. 게다가 위협용 틀니와 발톱을 빼고 나면 그들은 아이들의 양말 한짝에도 벌벌 떤다(몬스트로폴리스에서 인간이나 인간의 물건은 탄저균이나 다름없다). 하긴, 막무가내로 보채는 아이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군인가 생각해보면 괴물들에게 이만한 맞수도 없다. 스피드와 짜임새를 겸비한 코미디로서, 그리고 100% 컴퓨터애니메이션 기술의 첨단혁신이라는 점에서 <몬스터 주식회사>는 <벅스 라이프>와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픽사의 브랜드네임을 굳힌다. 여간해선 여백을 찾아보기 힘든 스토리와 콘티의 탄탄함은, 픽사의 인재들이 테크놀로지에 매혹된 마니아이기 전에 훌륭한 ‘필름메이커’임을 은근히 과시한다. 설리와 마이크의 겁주기 훈련장면이나 꼬마 부를 둘러싼 소동 시퀀스에서 절정에 달하는 슬랩스틱과 버벌코미디(verbal comedy)의 알레그로 이중주는, 픽사의 파트너인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오히려 워너브러더스 루니툰의 몰아치는 리듬과 닮았다.<몬스터 주식회사>에서 개그의 고삐를 쥔 선수는 빌리 크리스털의 목소리를 빌려온 연두색 외눈괴물 마이크. 일찍이 단편 <룩소 주니어>로 탁상용 스탠드에마저 감정을 불어넣는 묘기를 보여준 바 있는 픽사의 애니메이터들은, 고작 안구 하나와 짤막한 팔다리가 몸의 전부인 마이크를 통해 빌리 크리스털의 풍부한 표정을 에누리 없이 보여준다. 마이크의 애인 셀리아의 메두사 머리, 손가락이 많아 한손으로도 거뜬히 카운트다운을 하는 계시원 괴물 등 눈썰미 좋은 관객과 DVD 팬을 즐겁게 할 오밀조밀한 시각적 우스개들이 흩뿌려져 있는가하면, 마이클 베이 영화의 비장한 슬로모션을 흉내낸 괴물들의 등장이나 애니메이션 선구자의 이름을 따온 레이 해리하우젠 레스토랑은, 어른 관객에게 던지는 애교어린 윙크다. <다이너소어> 개봉 당시 원숭이 털의 표현을 두고 쏟아진 찬사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300만 가닥에 달하는 점박무늬 털을 휘날리며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을 활보하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 설리가 세상 모든 애니메이터들의 악몽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전작에서 딱딱한 껍질의 곤충과 플래스틱 장난감을 캐스팅해 컴퓨터애니메이션의 반들거리는 질감과 자연스런 하모니를 끌어낸 픽사는,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빛뿐 아니라 그림자에 대한 연구를 심화해 모피와 섬유의 정밀한 묘사에 정면승부를 걸었다. 특히 추방된 설리가 썰매에 등불을 매달고 히말라야의 눈보라를 헤쳐가는 신은 그늘과 역광, 습기와 바람에 대한 모피의 반작용을 그리는 딥 셰이딩(Deep Shading) 프로그램과 무드효과(atmospheric effects) 기법의 근사한 쇼케이스다. 반면, <파이널 환타지>의 극사실주의 표현과 방향을 달리하는 만화화된 스타일을 고수한 인간 캐릭터 ‘부’의 생김새는 “우리는 카메라와 실제 배우로 작업하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작업은 굳이 하지 않는다. 관객이 만화임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정교한 묘사에 감탄하고 시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작품을 원한다”는 픽사의 신념을 확인시킨다. 많지는 않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에도 ‘정전구역’은 있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 관객이라면 부가 왜 괴물들에게 독성을 미치지 않는지, 그렇다면 인간의 해독성이란 그저 헛소문일 뿐이었는지, 아이들의 비명을 기계로 짜내려는 악당 랜달이 왜 굳이 꼬마 부에게 집착하는지 등등 대답하기 난처한 물음들을 퍼부을 법하다. 그런가 하면 선악의 편가름이 비교적 선명한 <몬스터 주식회사>의 괴물들은, 존재론적 회의와 갈등을 거치며 드라마와 함께 성장해가는 <토이 스토리2>의 장난감들에 비해 성인 관객을 붙드는 힘이 다소 달린다. 내년 아카데미에서 첫 번째 애니메이션 트로피를 겨룰 드림웍스의 <슈렉>이 ‘다름’을 내세워 전복의 쾌감을 안기는 수작이었다면, <몬스터 주식회사>는 픽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작업을 또다른 경계까지 밀어붙인 수작이다. 일단 극장을 찾을 결심이라면 지각하지 말 것. 본편 상영에 앞서 소개되는 위트 넘치는 단편 <새가 되어버린 새>(One for the Birds, 랄프 에클레스톤 감독)는 생략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전채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공동감독 리 언크리치, 기술감독 토머스 포터 인터뷰 우리는 괴물 회사를 이렇게 세웠다 ♥♥♥ 리크리치(공동감독) 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에서 몬스터라는 소재가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대부분은 가족과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이 우리가 만드는 영화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다. 네살배기 내 딸도 “아빠, 난 괴물영화를 보고 싶지 않아요” 했으니까. 그래서 일반 관객이 즐길 수 있도록 아이들이 겁먹지 않도록, 스릴이 있되 너무 무서워지는 선을 넘지 말자고 조심했다. 오프닝만 해도 소년이 겁을 먹는 첫 장면이 관객을 위축시킬까봐 재즈음악에 재미있고 컬러풀한 타이틀 시퀀스를 붙여 톤을 조절했다. 3D 애니메이션에서 픽사처럼 캐릭터와 이야기를 중시하면서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살리는 쪽이 있는가 하면, <파이널 환타지>처럼 기존 실사영화를 대체하는, 배우가 필요없다는 식으로 가는 쪽도 있는데. 감탄을 사는 비주얼에만 집중하고 스토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건 커다랗고 멋지되 엔진이 없는 차 같은 거니까. <파이널 환타지>는, 정말 놀라운 비주얼이 많지만 그 영화의 흥행성적은 스토리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언젠가 어떤 스튜디오들이 <파이널 환타지> 수준의 그래픽으로 정말 멋진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보고 싶고, 정말 놀라울 거라고 생각한다. ♥♥♥ 토머스 포터(슈퍼바이징 테크니컬 디렉터) 기존 작품들이나 <슈렉> <파이널 환타지>에 비해 <몬스터 주식회사>의 기술적인 진보는. <슈렉>을 만든 PDI의 사람들은 매트 페인팅 과정을 아주 잘 컨트롤한다. 우리는 영화의 갖가지 소품을 디자인하고 3차원의 환경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것도 아주 좋고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매트 페인팅을 합치는 것도 그렇지만. <파이널 환타지>는 정말 대단한 기술적인 성취다. 그 영화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보면서 정말 뛰어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D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할 수 있는 연기와 잭 니콜슨, 로버트 드 니로가 할 수 있는 연기는 차이가 있다. 그건 영화산업이 당면한 커다란 과제이기도 하다. 비단 내년 한해뿐 아니라 향후 20년 동안이라도 비주얼 리얼리즘의 3D 애니메이션에서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인간의 연기를 얻어내는 게 관건일 것이다. 픽사에서는 과학과 예술이 만나면 예술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기술 담당으로서 가끔은 더 욕심을 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나. 우리가 이긴 경우도 있다. (웃음) 부의 머리에 대해 얘기해보자. 부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원래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였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기술부서와 미술부서, 애니메이터들간의 미팅이 있었다. 그런데 피트(감독)가 카메라를 바로 부 앞에 두고 눈물과 표정, 소녀의 깜찍함을 보고 싶어하고 따라서 시뮬레이팅한 머리가 흘러내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머리를 묶으면 우리가 훨씬 편하기도 했지만. 이 경우 미술팀도 그 편이 더 귀엽다고 거들어서 이길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황혜림 blauex@hani.co.kr

세상엔 벽이 많기도 하지

왜 이렇게도 글을 쓰기가 힘든 걸까?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PC 앞에 앉은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체 글이 써지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느낌. 어서 빨리 저곳으로 가야겠건만 이놈의 벽은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다. 결국 밉상스러운 허연 모니터 화면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받아가며 목동을 거닐었다. 얼마 전에 이사온 탓인지 이 동네는 조금만 걸어도 낯설고 어색해진다. 큼직큼직한 아파트들 사이로 인적은 드물고, 간간이 모여 있는 상가들. 모두 지루할 만큼 닮아 있다. 그나마 나무들이 그 흉흉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가려주고 있어서 덜 삭막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리 포근한 느낌은 아니다. 이전에 살던 동네는 한 바퀴 돌기 적당한 거리였는데 1단지, 2단지…. 계속 돌다보니 지루해진다. 동일한 회색의 벽들에 번호만 계속 높아져갈 뿐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듯한 기분.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옛 동네가 그리워졌다. 이사오던 때 이사갈 집이 공사중이라서 며칠을 친척집에서 보내야 했다. 집을 비운 지 이틀 뒤 우편물을 가지러 집에 들렀는데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 짐을 막 올리고 있었다. 그때 참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바람맞은 기분이랄까…. 이틀 전에 내가 그곳에 살았건만,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집이 되어버리는 모습이 너무도 야박하고 속상하고 미웠다. 열여덟해를 함께 보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초등학교 시절 설레던 첫사랑의 기억도 그렇게 함께 했건만, 그놈의 집은 어느새 다른 사람을 너무도 쉽게 받아주고 있었다. 그렇게 야속했던 옛집을 생각하면서 투덜투덜 걷다보니,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다시 돌아가기엔 맘이 영 내키질 않아서 지나가던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좁다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창 밖으로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영화 속 학교장면이 떠올랐다. 일렬로 함께 기나긴 복도를 무표정하게 걸어가는 아이들. 그리곤 어딘가로 떨어져서는 보기에도 흉측한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장면. 무표정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과 어둑해진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줄기로 더욱 회색빛 가득해보이는 아파트들을 보니 절로 영화 속 답답스런 화면들이 연상되었던 것일 게다. 그리곤 알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글을 쓰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는지를…. 사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을 골랐을 때만 해도 나름대로 큰 포부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을 짜부라트린 것도 모자라 소말리아까지 건드리고자 한다는 미국이란 거대한 벽에 대고 벽치기를 좀 해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그만 영화를 보고는 내 황량한 마음에 갇혀버린 것이다. 2001년 첫 시작을 맞이할 때만 해도 나름대로 포부도 컸고,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건만,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뭔가 깨달았던 것 같아 걷다보면 이전의 그 벽 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내 모습을 만나게 되고, 뭔가 잡은 것 같아서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날아가버려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이렇게 달력종이 한장만을 남겨놓고 말았다. 영화 속 핑크의 모습마냥 초점 없는 눈빛에 누구의 말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황량한 마음 모양새를 하고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다 제풀에 자빠져서 이렇게 한참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에게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 쉬어야 한다는 것,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나를 막고 있는 연약함과 나약함의 벽들, 그리고 자신없음과 게으름의 벽들, 그 벽들을 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속 마지막 벽이 깨어지는 장면처럼 통쾌하게 나의 맘의 벽들이 산산이 부서져내렸으면 한다. 그래서 이젠 핑크의 지겹도록 딱딱한 표정이 아닌 상쾌한 아멜리에의 표정을 한 내 맘을 갖고 싶다. 그나저나 남에 집에 들어가서 들쑤시고 다니는 그 덩치 큰 놈은 어쩌란 말인가? 암튼 세상엔 참 벽이 많기도 하다. 민동현/ 단편영화 <지우개 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

<엑소시스트> <프렌치 커넥션>의 오언 로이즈만

1973년 성탄절 다음날, 관객은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정령과 조우한다. 바로 공포영화의 새로운 공기를 형성하며 예기치 못한 흥행과 평단의 호응을 거머쥔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를 통해서이다. 이는 전설적인 <대부>의 성과에 뒤이은 것으로, 오스카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한다. 이 영화로 최고 촬영상을 수상한 촬영감독 오웬 로이즈만과 <엑소시스트>의 인연은 한참을 거슬러간다. 매일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그의 부인은 언제나 책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모태가 된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베스트셀러 <엑소시스트>였다. 그뒤 몇달이 지나, 감독 윌리엄 프레드킨은 그에게 이 소설의 영화화를 제의했다. 지금의 디지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 그 당시의 상황이고 보면, 촬영은 전적으로 카메라효과와 특수장치에 의존하여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촬영의 핵심 즉, 관객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여 실제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려는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마치 주위에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조심스레 숨죽인 채,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해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공포의 전율을 전달할 사실적인 로이즈만의 영상 기법이었고, 이로써 낯선 공포는 점차 윤곽을 드러낸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마 지금의 영화를 찍는 이들은 고도의 기술이자 하나의 예술로서 촬영의 역할을 비약적으로 넓힌 촬영감독 오웬 로이즈만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소년 시절 로이즈만은 넓은 구장과 환호성에 사로잡힌 야구광이었다. 1936년 브루클린 태생의 어린 야구선수를 영화와 인연지어줄 계기는 뉴스카메라맨이었던 아버지에게서도 편집을 하던 삼촌에게서도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닥친 팔 부상으로 투수의 꿈은 좌절되었고,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게 된다. 낮은 보수와 따분하기만 한 엔지니어로서의 역할이 그에게는 애초 매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방학중에 카메라 렌털 상점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결국 광고의 보조촬영기사로 촬영과의 첫 만남을 개진한다. 첫 영화인 빌 건의 <스톱>(1970)을 제의받은 것은 몇년 뒤 뉴욕 TV광고계의 선두 프로덕션 MPO에서 촬영감독을 하던 때이다. <스톱>의 후반작업을 하던 중 운명처럼 윌리엄 프레드킨을 만났고, 광고와 영화에서 보여준 로이즈만의 영상은 젊은 감독을 매료시켰다. 놀랍도록 숨막히는 <프렌치 커넥션>(1971)의 자동차 추격신은 와이드렌즈에서 롱렌즈에 이르기까지 샷마다 다르게 사용된 렌즈를 통해 한층 강화된 긴장을 선사했으며, 다큐멘터리적인 기법과 맞물려 사실감을 더해주었다. 로이즈만은 수차례 캄캄한 자신의 집 주차장에서 진 해크먼과 로이 샤이더를 대신해 아내와 함께 차 안에서 작은 램프에 의지한 채 빛을 담아내는 실험을 그치지 않았다.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공기, 그건 바로 빛이었다. 어디를 가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이 주위에 어떻게 떨어지는지 살펴보았다. 빛에 가해진 미세한 변화로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다르게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프렌치 커넥션> <엑소시스트> <네트워크> <투씨> <와이어트 어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5편이나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작품 어느 하나도 서로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찍어내는 이야기들은 매번 새로운 로이즈만식 해석을 거쳐 다른 장르, 다른 스타일을 표출해낸다. “로이즈만은 마치 빛과 어둠을 완벽하게 조율할 줄 아는 화가와 같다. 소리를 제거하고 영상만을 보더라도 그의 영화에서는 스토리와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투씨> <하바나> 등을 통해 그와 함께 작업한 시드니 폴락이 보는 로이즈만이다. 올해 그는 국제촬영가예술협회인 ‘카메라이미지’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어릴 적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배우를 의식하지 못하던 때, 마치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기라도 한 듯 스크린에 푹 빠져들던 때를 회상하며, 그런 느낌을 되살리며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때로, 촬영이 예술이 아닌 기술로 폄하되기도 하는 이유도 이렇듯 잘 드러나지 않는 촬영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는 촬영감독으로 대성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말고, 자신있게 도전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로이즈만처럼 타고난 감각과 본능이 없다면?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Owen Roizman 필모그래피 <프렌치 키스>(French Kiss, 1995) 로렌스 캐스단 감독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 1994) 로렌스 캐스단 감독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1991) 로렌스 캐스단 감독 <아담스 패밀리>(The Addams Family, 1991) 배리 소넨필드 감독 <하바나>(Havana, 1990) 시드니 폴락 감독 <바람둥이 길들이기>(I Love You to Death, 1990) 로렌스 캐스단 감독 <청춘의 승부>(Vision Quest, 1985) 해롤드 베커 감독 <투씨>(Tootsie, 1982) 시드니 폴락 감독 <생도의 분노>(Taps, 1981) 해롤드 베커 감독 <선택>(Absence of Mailce, 1981) 시드니 폴락 감독 <고백>(True Confessions, 1981) 울루 그로스바드 감독 <블랙 마을>(The Black Marble, 1980) 해롤드 베커 감독 <일렉트릭 홀스맨>(The Electric Horseman, 1979) 시드니 폴락 감독 <페퍼의 론리 허트 클럽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78) 마이클 스컬츠 감독 <출옥자>(Straight Time, 1978) 울루 그로스바드 감독 <인디펜던스>(Independence, 1976) 존 휴스턴 감독 <네트워크>(Network, 1976) 시드니 루멧 감독 <말이라 불리운 사나이2>(The Return of a Man Called Horse, 1976) 어빈 커시너 감독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 1975) 시드니 폴락 감독 <스탭포드 부인들>(The Stepford Wives, 1975) 브라이언 포베스 감독 <지하의 하이젝킹>(The Taking of Pelham One Two Three, 1974) 조셉 서전트 감독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 <과외 수업>(Heartbreak Kid, 1972) 일레인 메이 감독 <보기 나도 남자다>(Play It Again, Sam, 1972) 허버트 로스 감독 <똑바로 쏘지 못하는 갱>(The Gang That Couldn’t Shoot Straight, 1971) 제임스 골드스톤 감독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1971)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 <스톱>(Stop, 1970) 빌 건 감독

소주 먹고 헤드뱅잉! <두사부일체> 송선미

장면 하나.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에게 첫눈에 반한 조폭 정웅인, 그녀와 식사를 하게 된다. 어색함을 떨치고자 “피클 좀 드시죠”. 세련되고 섹시한 그녀, 국어책 읽는 말투로 대답한다. “전 오이 안 먹어요. 오이 앨러지가 있거든요.” 앨러지? 뚱한 표정의 정웅인에게 또박또박 설명한다. “보통은 알레르기라고 하죠.” 정통 영어발음을 구사하는 ‘콧대있는’ 실력파, 그러나 조금은 ‘맹하고’ 꿈 속에 사는 듯한 영어선생님 이지선. <두사부일체>에서 송선미가 맡은 캐릭터다. “이지선의 코믹한 말투를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를 많이 했어요. 귀엽게도 해봤는데, 테스트 촬영을 해보니 건조한 톤이 좋더라구요.” 그러나 이지선은 교장에게 성추행당한 뒤 사표를 던지는 비운의 여교사이기도 하다. “시나리오에서 볼 때는 웃기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할 때 보니 심각하더군요.” <두사부일체> 촬영장에서 생긴 일이라면 ‘취중연기’ 한 토막을 빼놓을 수 없다. 정웅인과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장면.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를 열창해야 하는데 몸이 풀리지 않았다. 그전까지 록밴드의 공연장엔 가본 적도 없고, 촬영 전에 기웃거렸던 홍대 앞 록카페에서도 밴드의 공연을 볼 기회를 놓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혼자 애를 쓰는 송선미를 본 감독의 한마디. “술 마시고 해볼래?” 소주 1병을 마시고 격정적인 헤드뱅잉에 다시 도전했고, 바로 오케이가 났다. 지난 96년 SBS슈퍼엘리트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 미니시리즈 <모델>,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일일드라마 <자꾸만 보고 싶네> 등 주로 TV드라마에 출연했던 송선미에게 <두사부일체>는 두 번째 스크린 나들이다. 영화 데뷔작은 98년 <미술관 옆 동물원>.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춘희가 쓰는 시나리오 속 여주인공 다혜 역이었다. 그때 연기에 대해서는 불만족스럽다. “영화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회의도 많이 했어요.” 그땐 너무 어렸을까. <미술관 옆 동물원> 찍을 때는 “내가 영화를 찍는구나” 하는 생각말고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두사부일체>를 찍으면서 비로소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에 쫓겨 스쳐지나가는 TV드라마와 달리 여유를 갖고 고생하는 것도 좋고, 고생의 결과물이 자신의 내부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도 좋았다. 연기의 맛, 연기의 멋을 알 것 같다고. 그래서 12월14일은 그녀에게 중요한 날이다. <두사부일체> 개봉날이기도 하고,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 <가스펠>로 난생 처음 무대에서 관객과 조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두사부일체> 촬영 때문에 <가스펠>에 한달이나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요즘 하루 열 몇 시간씩 연습하고 있다. 앞으로의 소망은 ‘좋은 배우’가 되는 것. 송선미에 따르면 ‘좋은 배우’란 멋이 있는 배우, 거기에 좋은 인간성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단다.

맨스필드 파크

Mansfield Park 감독 패트리샤 로제마 출연 프랜시스 오코너, 자니 리 밀러, 엠베스 다비츠, 알렉산드로 니볼라, 해롤드 핀터 장르 드라마 (우성) <엠마>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클루리스>에서 보듯,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력이 있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과거의 사회규범이 기반부터 흔들리던 19세기를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현대의 세련된 로맨틱코미디로 배경을 옮겨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다. 구세대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젊은 세대는 시대의 변화를 예감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완고하게 자신들의 낡은 체제로 편입해오기를 원한다. 아니 강요한다. 젊은 세대는 반항하고 자유분방하게 자신들의 미래를 개척한다. 이미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벌어지던 근본적이지만 미묘한 갈등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맨스필드 파크> 역시 시대의 균열을, 가벼운 사랑 이야기에 엮어 풍자적으로 묘사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패니는 열살이 되던 해 부유한 친척의 집으로 보내진다. 맨스필드 파크에 자리잡은 버트램 가문. 패니는 그들과 한 집안에서 살아가지만 엄연히 신분이 다르다. 그녀는 지붕 꼭대기, 불도 피울 수 없는 다락방에 기거한다. 유일하게 다정한 사람은 성직자가 되려 하는 에드먼드.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는 패니에게 평생 써도 모자랄 종이를 가져다주고,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성인이 된 패니와 에드먼드에게 버트램 부인의 인척인 헨리와 매리 크로포드 남매가 나타난다. 새로운 문물과 규범으로 치장한 남매에게 버트램가의 사람들은 홀딱 반한다. 심지어 에드먼드까지 메리에게 빨려든다. 헨리는 패니에게 구혼하지만, 패니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맨스필드 파크>는 경쾌하게 흘러간다. 패니는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어떤 난관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솔직한 모습은, 위선적인 버트램 가문과 대립된다. 버트램 경은 망나니 아들 톰을 바로잡으려고 신대륙의 농장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도망친 톰이 그린 화집에는 흑인 노예들을 고문, 강간 살해하는 아버지와 백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마리아는 오로지 돈을 보고 결혼을 한 뒤, 헨리와 바람을 피운다. 19세기의 영국 귀족사회는 현재의 중산층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와 명예, 그리고 체면뿐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관철되는 사랑의 조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

공연...<크라잉 너트 2001 Up Grade Concert >,<황보령밴드>,<장영주 크리스마스 콘서트>

<크라잉 너트 2001 Up Grade Concert “눈물의 크리스마스”> 트라이포트 라이브홀/ 12월21일 7시30분, 22일 6시/ (주)인트로커뮤니케이션즈/ 1588-7890 <말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밤이 깊었네> 등 히트곡을 속속 내놓으며 인디밴드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록밴드 크라잉 너트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준비한 콘서트. ‘눈물나게 재미있는’ 크리스마스를 열어주겠다는 포부대로, 객석 가득 출렁이는 슬래머들에게 기발한 이벤트와 특수효과, 재미난 놀이들을 선사할 예정이다. <황보령밴드=smacksoft의 맛있는 공연> 쌈지스페이스 ‘바람’/ 12월24일 7시/ 쌈지 사운드/ www.ssamnet.com 2집 <태양륜>을 발매하고 크고 작은 공연들에서 더욱 자신만의 아우라를 강하게 펼쳐보이고 있는 가수 황보령이 색다른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꾸민다. 이번 공연은 황보령의 두 번째 단독콘서트. 모든 입장객들이 비누방울 놀이기구와 알코올 드링크를 입장선물로 받게 된다. 공연일, 관객은 쌈지스페이스 1층 ‘소리’에 전시되는 황보령의 그림들도 볼 수 있다. 장영주 크리스마스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3년 만에 국내 투어 콘서트를 연다. 22일 대구 경북대에서 시작,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서울에서, 26일에는 부산 문화회관에서, 27에는 대전 충남대에서 공연을 가진다. 25일 서울 연주회에서 장영주는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최근 발매한 앨범 에 수록된 곡들을 포함, 친숙한 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제1장 춘계대전 - 조폭파, 마이무타를 완성하다

겨우내 정파무림이 선보인 무공은 보잘것없었다. 하등 새로울 것 없는 신파장을 날리며 사파무림의 공세에 입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조폭파가 등장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조폭파, 그들은 수년 전부터 가오대형(假悟大兄) 민수를 장문인으로 모시며 무림지존의 자리를 넘봤다. 시리(侍鯉)대법을 앞세운 제규객과 공동경비검을 휘두르는 명필쌍협에 패퇴하며 한동안 중원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조폭파. 그러나 내력있는 이들은 그때부터 눈치챘다. 조폭파가 언젠가 무시무시한 혈겁을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겨울이 끝나갈 무렵, 춘계무림대회를 앞둔 조폭파 진영은 술렁였다. 가오대형 민수가 우화등선한 이래 조폭파의 미래를 짊어진 인재로 추앙받던 두 검객이 내공수련을 마치고 돌아와 그동안 갈고 닦은 무공을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둘의 눈빛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공에 문외한인 자들의 눈에도 두 검객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연기본색(演技本色) 오성과 미남오파(美男娛波) 동건이 아닌가. 가오대형 민수로부터 폼생폼사의 정수가 담긴 가오검법을 전수받은 연기본색 오성, 그는 검을 들어 가오검법과 연기검법의 초식들을 시전했다. 조폭파의 후배들은 그저 입을 벌리며 오성의 검술을 바라봤다. “날은 반자만 넘으면 된다. 일단 칼이 들어가면 90도로 돌려준다. 누구든지 자기 몸에 칼이 들어왔다고 느끼는 순간, 100% ‘학실히’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폐에 칼이 들어오면, 일단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면, 90%는 절명한다. 그래서 진짜 칼잡이들은 가슴보다는 폐를 노린다.” 오성의 검술강의는 훌륭했다. 무림에 입문한 이래 이렇게 상세한 검술강의를 들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가오대형 민수도 후학에게 이런 설명을 했던 적은 없었다. 감탄하며 쳐다보는 군중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오성은 동건에게 말을 건넸다. “간단하게 말할께.” 삐딱하게 앉아 있던 동건이 답한다. “복잡하게 말해도 된다.” 남만국에선 제갈공명이 일곱번 잡았다 풀어줬다는 남만국의 왕 맹획보다 더 유명하다는 미남오파 동건에게 오성의 연기검술은 만만해보였다. 오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건, 마이 컸네.” 동건도 할말이 있었다. “원래, 키는 내가 좀더 컸다 아이가. 니 시다바리 할 때부터.” 말문이 막혔지만 오성은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소림사로 가라. 잠시 무림을 떠나주면 안 되겠나. 준비는 내가 해줄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동건이 눈을 지그시 감고 두손으로 양볼을 감싸쥐더니 입을 열었다. “니가 가라. 소림사.” 오성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래, 내 갈께. 몇년 있다 보자.” 오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동건 또한 그간 갈고 닦은 연기검술을 선보였다. 오성과 동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용호상박이 아닐 수 없었다. 오성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오성에겐 더이상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연기검술을 펼친 뒤 방심하던 동건을 향해 오성의 부하들이 칼을 휘둘렀다. 절정고수지만 이런 암수에는 도리가 없었다. 동건은 배를 찌르는 칼을 부여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뭔가 웅얼거렸다. “마이무타 아이가, 고마해라.” 이게 무슨 말인가. 초절정고수가 되기 위한 연기검술의 마지막 단계 ‘마이무타’(魔理無打)가 아닌가. 그렇다. 오성의 연기검술은 입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동건은 마지막 순간 깨달았지만 때는 늦었다. 오성의 마이무타는 악마의 이치(魔理)로 때리지 않고도(無打) 적을 쓰러트린다는 상승무공의 절정이었다. 마이무타가 완성됐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중원무림에 퍼져나갔다.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겠는가. 식인대법으로 유명한 사파의 고수 한이발(寒夷髮)마저 마이무타의 엄청난 파괴력을 접하고 혼비백산,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춘계대전에서 오성이 무림을 평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내공으로 보나 초식으로 보나 이만하면 조폭파가 정파무림의 대표가 되도 손색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그때까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가오검법과 연기검법으로 흥한 조폭파가 웃음혈을 짚는 무공 희극대법에 도전하리라는 것을.연기본색 오성 무림의 무명소졸로 시작해 조폭파 최고 검객까지 이른 입지전적 인물. 연기파에서 연기검술을 다진 뒤 조폭파에 입문, 가오(假悟)검법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동건과 일대혈전을 벌인 뒤 조폭파의 길을 떠나 권법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걸로 전해진다. 내년엔 연기본색에서 권법대왕으로 변신한 오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남오파(美男娛波)동건 10대 시절부터 조각 같은 얼굴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 무림인들이 미남계를 쓸 때마다 그를 찾곤 했으나 성인이 되어 미남계의 함정에서 벗어나기로 작정, 조폭파를 찾아갔다. 조폭파 마이무타(魔理無打)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나 2009년 부활, 미남오파의 기개를 만방에 떨칠 계획이다.▶ 組暴派 武林制覇記 (조폭파 무림제패기) ▶ 제1장 춘계대전 - 조폭파, 마이무타를 완성하다 ▶ 제2장 하계대전- 삼마이검객, 신라월야지곡을 부르다 ▶ 제3장 추계대전- 조폭여걸, 사자후로 무림을 뒤흔들다 ▶ 제4장 2차 추계대전- 달건오인방, 소림사 습격사건 ▶ 결 (結)

술 수십궤짝 마시고 초심으로 돌아왔죠, <생활의 발견> 김상경

사진에 음성이 찍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김상경은 환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하하하’ 하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가장하거나 시늉하는 건 체질상 안 맞는다는 듯. 그 겸연쩍은 웃음소리는, 연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자신의 연기는 단순한 가장이나 시늉과는 거리가 멀다는 웅변처럼 들렸다. 더 일찍 연락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김상경은 지금 같지 않았다. 그는 <생활의 발견> 촬영을 멀쩡히 끝내고, 외롭고 허탈해서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홍상수 감독을 불러내 술도 마시고, 북한산에도 올라가고, 음악도 듣고, 피아노도 배워봤다. ‘유체 이탈’과도 같은 멍하고 나른한 나날을 보낸 뒤, 그는 일상으로 컴백했다. 노련한 분위기메이커이자 자발적인 이야기꾼의 모습으로, 다시 ‘준비된 배우’의 모습으로. 김상경에게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작품을 결정할 때 반드시 대본을 먼저 받아본다는 것. 그런데 예외를 만든 이가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홍국영> 촬영 도중에 만난 홍상수 감독에게 대본을 보자고 했더니, 대뜸 ‘없다’고 하더란다.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는데, 다시 만난 홍 감독이 ‘머리 굴리지 말고 같이 하자’고 했고, 김상경은 엉겁결에 ‘넷’ 하고 대답했다. 함께 술을 마셨고, 그게 시작이었다. “사람 하나 보고 작품 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내가 찾고 싶었던 걸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분이라는 믿음이 들었거든요.” <생활의 발견>을 찍는 동안 그에겐 촬영이 생활이었고, 생활이 촬영이었다. 자연인 김상경과 캐릭터 경수가 뒤엉키고, 둘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진기한 경험. 여행과도 같았던 이번 촬영의 끝에, 김상경은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 초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김상경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이 많은 사람이다. 굵직한 드라마에서 주로 상류층 엘리트 역할을 도맡아 했지만, 열거해보면(<애드버킷> <왕초> <초대> <경찰 특공대> <메디컬 센터>) 작품의 색깔도 배역의 성격도 다 다르다. 연극으로 시작해 TV로 얼굴을 알리고, 이제 영화에도 발을 담갔지만, 자신의 활동무대를 한정지을 생각도 없다. “TV 하던 사람들, 죄다 영화로 몰려가서 다시 안 돌아오는데, 그게 웃기는 거죠. 전 작품만 좋으면, TV도 하고 영화도 할 거예요. 연극은 꼭 할 거고요.” 집안의 막내라서, 태권도 시범이다 가무 공연이다 재롱을 떨며, 일찍부터 엔터테이너로서의 기량을 꾸준히 닦아온 셈. 고등학교 때 연극 한편에 감동받아 배우선언을 했다가, 아버지한테 숟가락으로 맞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거창하진 않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그의 바람 하나. “시장 아주머니들, 우리 부모님들, 소박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생활의 발견뭐 하나 특이한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얘기다. 내가 연기한 경수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어쩌다 찍은 영화가 흥행에 참패해서 다음 영화 출연도 좌초되고, 그래서 방황하다가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하다 여자들을 만나고 같이 술마시고 얘기하고 잠도 자고, 뭐 그런다는 얘기다.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얘기. 주량의 발견아무리 감독님 지침이 그랬다고 해도,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았을 텐데, 효과가 꽤 있었다. 연결신을 찍을 때 튀지 않게 하려고 빈 속에 술을 부으면서까지 취해야 했다는 게 좀 괴로웠지만. 좀처럼 취기가 오르지 않아, 빨리 취하겠다고 이과두주를 완샷한 적도 있다. 촬영하면서 내가 마신 술만 아마 수십 궤짝쯤 될 거다. 연기의 발견 원래 대본을 미리 받아들고 분석하고 연습하는 스타일이다. 처음 현장에 갔을 때 촬영 전날 밤까지 대본이 안 나와서,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곧 적응이 되더라. 관념과 사고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진짜 느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이런 ‘진짜’만 하고 싶어지니, 그게 또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