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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독립영화 음악감독 김일안

12월1일부터 9일 사이에 펼쳐진 27회 한국독립영화제의 개막식에서는, 그간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는 알려지지 않던 한 그룹사운드의 공연이 있었다. 지하 창작집단 ‘파적’의 밴드부 ‘플랫(b)폼’ 리더 김일안(33)이 퍼스트 기타를 잡고, 중앙대 록밴드 ‘블루 드래곤’ 출신이자 단편 <고리>의 감독인 강만진이 드럼, 왕년에 명동의 ‘고고장’에서 오르간을 연주한 바 있는 황규덕 감독(<꼴지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이 신시사이저, 고교 때 밴드를 했던 김동원 감독(현 ‘푸른 영상’ 대표)이 세컨드 기타 겸 보컬 보조, <지우개 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의 민동현 감독이 베이스, <절망>으로 제1회 대한민국영상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규만 감독이 보컬을, 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평론가인 이효인이 매니저를 자처한 초특급 프로젝트 밴드 ‘깜장 고무신’의 공연이 그것. 이들은 이날 크라잉 너트의 <말달리자>부터 김일안의 자작곡 <내버려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개막식을 순식간에 즐거운 난장으로 뒤바꿔놓았고, 특히 김일안은 전문가다운 현란한 기타연주로 그날의 공연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로서는 자신이 음악을 맡은 세편의 영화- <샴·하드 로맨스>(김정구 연출, 단편 경쟁)를 비롯, <달을 먹다(月食)>(최반 연출, 중편 경쟁), (이진우 연출, 단편 초청)- 가 영화제 본선에 오른 것을 자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파적의 멤버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학교 후배이기도 한 김정구 감독과 단편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를 만들면서 그는 영화의 제작과 음악은 물론 주인공의 동성 애인 역으로 출연해 대담한 누드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뒤 김일안은 10여편의 단편영화에서 음악을 감독하고, 어느새 ‘단편영화 전문 음악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전문’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태권도로 치면 아직 초단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차라리 돌리(dolly)나 크레인이라면 모를까…. <샴·하드 로맨스>의 초반 크레인숏 보셨죠? 그거 제 솜씨예요.” 무슨 소린고 하니 어려서 피아노 배울 때 빼곤 음악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고, 특히나 영화음악은 아직 기본실력과 감에 의존해 하는 정도일 뿐이라는 엄살 섞인 겸손의 변이다. 돌리와 크레인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워낙 익숙해진 터라 이젠 전문인력 부럽지 않을 정도라고. 95년 <머리에 민들레 꽃을 피운>이라는 시로 동국대 만해문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 99년 <포르노 천사의 시>로 시낭송 퍼포먼스를 벌여 시와 소설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 그의 요즘 관심은 애니메이션 음악과 게임 음악이다. 지난 8개월간 스스로를 ‘네트 중독자’라 부르며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매달린 결과 나름대로 게임 음악의 특성과 중요성에 대해 실감했단다. 마침 그의 이력에 주목한 한 웹 스튜디오의 제안으로 현재 웹 에이전시 기획실 차장으로 근무중이다. 앞으로 그의 바람이란 그동안 쓴 시와 곁들인 앨범 한장을 내는 것과 기막힌 게임 사운드를 개발하는 것. 그리고 또… 또… 여하튼 아직 많이 남았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프로필 ★ 69년생 95년 시 <머리에 민들레 꽃을 피운> 1회 동국대 만해문화상 우수작 수상 97년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제작, 음악, 연기 98년 <민들레> 시나리오, 연기, 음악 <마술쇼 이야기> <샘> <니넨 그 날 모할거니> 99년 시 <포르노 천사의 시> 1회 독립예술제 시낭송 퍼포먼스 2000년 <심청>, 보다 갤러리 분기탱천 녹음방초 기획 공모 1회 Senef영화제 메이킹필름 촬영, 연출, 편집 2001년 <달을 먹다> <액체들> <샴·하드 로맨스>

부산국제영화제, 양지와 그늘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7일 폐막됐다. 출범 이듬해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란 평가가 나라 밖에서 들여온 이 영화제는 이제 ‘세계 최대의 아시아 영화제’라는 호칭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은 우리들에겐 세계 영화의 오늘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의 영화전문가들에겐 아시아 영화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독파할 자리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었다. PPP를 통해서 아시아 주요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으니, ‘미래’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부산에서 한국영화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우리가 뛰어난 가작을 적잖이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제영화제인데 주최국을 너무 배려한 건 혹시 아닌지 염려됐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한국영화뿐이었다”는 어느 심사위원의 심사 후일담을 전해듣고 노파심을 조금 덜어냈다. 어쨌든, 이 일은 관객들이 외면한 올해의 저예산 수작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을 성 싶다. 또하나, 부산이 한국영화를 밖으로 보여주는 창구노릇을 유효적절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다. 몇해째 정부는 예산지원은 올해로 그만이라는 절연선언을 거듭해왔는데, 이는 영상산업을 21세기 문화입국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정책과 정면 충돌한다. 영화를 경제적 가치로 일괄치환하는 시선으로 보더라도(개인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지만) 영화제는 장기투자할 만한 부문이다. 누구도 예상못한 빠른 속도로 역할을 증명해버린 부산영화제 앞에서 정부가 그 지원의 의미를 반추하게 되리라 믿는다. 칸도, 베를린도, 베니스도 그 지원으로 영화제를 이어올 수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한 부산의 구성원들이 제한된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해왔다는 점도 참조할 사항이다. 한국영화인들과 부산시민들이 부산영화제 지킴이 구실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올 부산에서 아름다운 일만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신상옥 감독이 북한 체류시절 만든 <탈출기>가 끝내 일반 관객 앞에 상영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사직당국의 경고를 받고, 영화제 쪽은 고심끝에 언론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제한상영을 해야 했다. 마감을 하러 일찍 서울로 돌아오는 바람에 영화를 볼 수 없었는데, 최서해의 원작에 지극히 충실했다고 <한겨레> 문화부의 이상수 기자는 말했다. <탈출기>는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한 가장이 극빈의 원인을 제공한 일제와 맞서싸우기로 결심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편지형식의 단편이다. 이 영화를 이적표현물이라고 판단한 이의 아군은 그렇다면 제국주의 일본인가, 라고 그는 반문했다. 근본적 질문을 접어두고나니 한 독일감독의 이름이 떠올랐다. 1946년 동독에서 최초의 ‘전후영화’를 만든 그는 10년 뒤 서독으로 이주했다. 서독은 동독에서 만든 감독의 영화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주 이듬해 <운터탄>이란 영화가 처음 상영됐다. 서독의 경제기적을 비판한 영화였고, 자막에서 이름을 빼기는 했지만, 서독에서 만든 그의 영화를 동독의 텔레비전이 방영하기도 했다. 볼프강 슈타우테, 베를린 영화제 영포럼 부문에선 84년 타계한 그의 이름으로 상을 준다. 동에서건, 서에서건 통일과 사회정의를 영화의 과제로 삼았던 그의 생애를 걸어. <탈출기> 부산 사건은 아직도 지배적인 우리의 냉전의식을 돌아보게 한다. 두 감독이 분단된 땅을 오간 경위가 비록 다를지라도.

아저씨, <원더풀 라이프> 보고 문득 인생의 회의에 젖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는 기억에 관한 영화다. 정확히는 추억에 관한 영화다. 막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골라내는 이야기. 영화의 배경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인 림보다. 따지고 보면 저승에 더 가깝지만, 아무튼 영원의 시간 속으로 내던져지기 직전의 기착지다. 이승을 떠난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문다. 그들이 거기서 해야 할 일은 그곳 면접관들과 상담을 하며 자기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내는 것이다.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일생을 사는 동안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훨씬 많이 겪을 것이다. 림보의 면접관들은 죽은 사람들이 그 속에 영원히 머물고자 하는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 그것만을 그들의 기억에 주입시킨다. 사람들은 그 좋은 기억만을 안고 영원의 시간 속으로 떠나간다. 죽음이라는 것이 정녕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는 죽은 사람들이 입소하는 어느 월요일에서 그들이 모두 퇴소하는 주말을 지나 또다른 신참 사자(死者)들을 받는 다음 월요일에 끝난다. 죽은 자들은 모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려고 애쓴다. 어느 할머니는 간토 대지진 때 대나무 숲에서 그네를 타며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던 순간을 최고의 행복으로 꼽는다. 한 남자는 처음 비행기를 몰았을 때 하늘에서 빛나던 구름을 회상한다. 어느 소녀는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의 귀를 우벼주던 어머니의 정겨운 무릎 감촉을 고른다. 영화 속에서 림보는 아주 순박한 공간이다. 사람이 일생 동안 지니게 된 모든 기억을 지우고 단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만을 주입시켜 영원의 시간 속으로 보내는 이 환상의 역사(驛舍)는 SF 소설에서 독자들이 흔히 마주치는 전지전능의 첨단 테크놀로지 공간이 아니다. 림보는 차라리 시골 마을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한적한 기숙사 같은 분위기다. 그곳에는 컴퓨터도, 로봇도, 휴대폰도 없다. 허름하고 쓸쓸한 이 정거장의 면접관들은 술을 마시고 장기를 두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이승의 사람들처럼 별다른 악의없이 동료를 속이기도 하고, 얼그레이차를 만족스럽게 홀짝거리기도 하고, 더러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끼워진 자신들의 팔자를 한탄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행동과 의식은 이승에서와 너무 닮았다. 그런 닮음이 내뿜는 기묘한 정조는 문득 이 영화를 죽음과 삶이 아스라하게 뒤섞여 있는 <은하철도 999>의 분위기로 감싼다. 이야기는 면접관 가운데 한 사람인 모치즈키를 중심으로 흐른다. 그는 20대의 팔팔한 나이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필리핀 전선에서 사망한 군인이다. 살아 있다면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의 외모는 20대다. 그가 20대에 죽었기 때문이다. 모치즈키가 영원의 시간 속으로 가지 않고 림보에 남아 있는 것은 50년 전 이곳에서 자기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골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교코라는 여자와 약혼했지만, 전사하는 바람에 사랑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모치즈키에게 와타나베라는 사내가 맡겨진다. 70여년의 삶을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와타나베는 인생살이에서 모든 것이 그만그만했을 뿐이라며 정말로 좋았던 추억을 쉬이 골라내지 못한다.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기억을 돕기 위해 이 죽은 노인의 일생이 담긴 비디오를 그에게 보여준다. 와타나베와 함께 그의 비디오를 보던 모치즈키는 수년 전에 죽은 와타나베의 아내가 자신의 약혼녀 교코라는 것을 알고 번뇌에 빠진다. 그에게 유일한 여자였던 교코가 자신이 죽은 지 얼마 안 돼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그는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와타나베 역시 모치즈키와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자기 아내의 약혼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아내와의 어떤 순간을 영원한 기억으로 선택해 림보를 떠난 와타나베는 모치즈키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서 교코가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죽은 약혼자 얘기를 했다고, 아내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당신을 질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두 남자는 서로를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 모치즈키는 자료실을 뒤져 수년 전에 죽은 교코의 파일을 찾아낸다. 교코가 림보에서 고른 가장 아름다움 추억은, 놀라워라, 약혼자 모치즈키가 전선으로 떠나기 전 둘이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순간이었다. 교코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산 남편과의 추억 대신에 젊어서 죽은 약혼자와의 추억을 자신의 영원한 기억으로 선택한 것이다. 모치츠키가 감동에 차 말한다. “이제야 알았어. 내가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그는 교코와의 추억을 골라 영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차린다. 영화관을 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의,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행복의 일부분일 수 있을까? 단지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곁에 있지 않더라도 단지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행복해지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속이 메슥거렸다. 고종석/ 소설가·<한국일보> 편집위원·aromachi@hk.co.kr

마니아가 사는 법, `쓸모 없어도 산다!`

웬만한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면 알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의 하나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의 신작 애니메이션이 내년 1월에 공개된다고 한다. <유성과장>과 같은 실사작품에 매진하던 안노 감독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다는 별다른 소문없이 갑자기 나온 소식이라 엄청난 비밀 대작 프로젝트를 기대하는 팬층도 많겠지만, 아쉽게도 2분 분량의 프로모션 작품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체인인 ‘애니메이트’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행사인 ‘animate EXPO 2002’(2002년 1월13∼14일)에서 상영될 <아니메 점장>은, 애니메이트에서 2000년 10월경부터 CM캐릭터로 만들어진 ‘아니자와 메이토’라는 캐릭터숍 ‘점장’이 주인공이다. 이 캐릭터를 만든 시마모토 가즈히코가 가이낙스 초기 시절의 OVA 작품인 <불꽃의 전교생>의 원작 만화가란 점에서 어느 정도 인연이 있긴 하지만, 실제 안노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이때까지 미소녀나 어여쁜 동물 일색인 상점의 캐릭터의 이미지를 일신한 채 마니아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니자와 메이토’는 그 원작자의 성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엄청나게 뜨거운 ‘열혈’ 캐릭터이다. 28살로 설정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는 행동은 거의 일본 고등학교의 응원단장 수준이다. 캐릭터숍은 보통 개개인이 선호하는 이미지에 부합되는(실생활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할) 물건을 파는 곳이다 보니, 마니아라 하더라도 자기가 찾는 물건만 사가지고 돌아가는 일종의 한정된 폐쇄공간에 가깝다. 하지만 이 ‘아니메 점장’은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판촉적인 의미의 캐릭터상보다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서서 행동하다 보니 어떨 때는 자기 상점에 대한 비판까지도 하며 ‘애니메이트’라는 거대 체인망의 나아갈 방향까지 변화시키는 도구로서 쓰이고 있다. `초회 한정판’이라는 딱지가 붙은 상품이나 새로 발매되는 게임기를 사기 위해 몇날 며칠 밤을 새우며 가게 앞에서 줄을 서는 모습은 이제 토픽감도 안 될 만큼, 일본의 콘텐츠 산업은 마니아가 주도해나가는 실정이다. 그러한 콘텐츠 산업은 90년대의 폭발적 증식기를 지나 이제 예전처럼 자기의 취미를 숨기거나 무작정 몰입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되돌아보고 즐기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쓸모는 없겠지만 사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라고 대놓고 소리치는 <아니메 점장>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숍 광고나 다름없는 이 애니메이션이 일본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그 방증일 것이다. 얼마 전 2001년도 한국 10대 캐릭터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선정된 캐릭터들의 거의 대부분은 실제로 캐릭터숍의 극히 일부분만을 채울 정도의 상품밖에 없고, 여전히 70∼80%의 해외 캐릭터가 국내시장을 주도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3년에 시작해 근 2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 가장 생명력이 긴 캐릭터인 ‘아기공룡 둘리’도 ‘미키 마우스’나 ‘도라에몽’처럼 전문 체인숍이 생기고 거기서 어린이용은 물론 둘리의 첫회를 보고 자란 필자의 나이에 걸맞은 성인용 캐릭터 상품까지도 판매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비층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서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욕구를 선도해낼 수 있는 힘도 필요한 시기다.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국내광고] 가짜 유명인 등장시킨 광고 두 편

제작연도 2001 광고주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제품명 스카이라이프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KU프로덕션(감독 박대민) 제작연도 2001 광고주 삼성전자 제품명 센스큐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쥬프로덕션(감독 서정완) 광고계에 ‘가짜’ 유명인이 판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 스타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모차르트 등 물 건너온 이국의 스타가 국내 CF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 ‘별’ 가운데 고인(故人)도 있으니 광고의 실제 출연자는 진짜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무늬만 스타인 흉내내기 모델(이미테이션 모델, 혹은 임프레셔니스트(impressionist))다. 사례 하나. 퇴임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하루를 그린 스카이라이프 광고다. 보디가드들을 거느린 채 근사한 저택에 들어선 클린턴. 집에 오니 막상 할 일이 없자 하품을 터뜨리는 그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텔레비전을 켠다. 그런데 TV 리모콘을 든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클린턴이 위성방송을 선택하자 열심히 청소하던 가정부가 갑자기 프로골퍼로 변신하는 놀라운 광경을 만난다. 눈을 꿈쩍거리며 정신을 차리는 그가 또다른 위성방송으로 채널을 돌려본다. 이번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아가씨가 등장해 서핑보드 같은 스포츠레저용 상품을 광고하고 있다. 상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검색창이 화면에 나란히 떠 있음에도 그는 온통 미녀의 수영복 몸매를 감상하는 데만 정신을 팔려있다. 이때 뒤에서 한눈파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전 퍼스트레이디 힐러리가 날 선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그러자 힐러리의 심기를 이해한다는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가 화면에서 튀어나와 클린턴을 향해 돌진한다. 실감나는 영상 퍼레이드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소파 뒤로 고꾸라지는 클린턴. 멋쩍은 얼굴로 ‘와, 대단한 접시야’라고 한마디를 던진다. 접시는 위성방송 안테나를 지칭하는 말. 즉 이 광고는 디지털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전직 대통령의 하루를 특별하게 바꿀 만큼 기존 방송보다 한 차원 높게 흥미진진한 영상세계를 선보이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례 둘. 삼성전자의 노트북 브랜드 센스큐(Q) 광고. 숀 코너리, 마이클 잭슨 등 이름난 해외스타를 시리즈로 내세워온 이 CF는 스타와의 만남 같은 현실에서 쉽게 가능하지 않은 특별한 이벤트를 노트북 센스큐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통해 맛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광고에선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이 ‘V자’ 모양의 손으로 눈가리고 트위스트 춤을 추는 영화 <펄프 픽션>의 한 장면으로 전속모델 김정화가 틈입하는 상황이 나온다. 김정화에게 파트너를 빼앗긴 가짜 우마 서먼이 김정화를 밀어내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의 말투 등을 모사하는 ‘캐리커처’ 스타일의 코미디가 일상의 유머로도 일반화한 현재, 유명인을 닮은 그들의 광고계 습격은 아주 새로운 사건은 아닐지 모른다. 이미테이션 모델이 진짜를 그럴듯하게 가장하는 이들 광고는 유명인의 지명도와 특별함에 기대 극적인 재미를 추가하고 메시지의 파워를 높이겠다는 노림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광고는 익숙한 히트작의 한 장면을 차용해 코믹하게 제품 메시지를 전달하는 패러디 CF보다 한술 더 뜬 노골적인 희화화의 재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짜를 통해 진짜에 근접하겠다는 립싱크 같은 효과나 참과 거짓의 혼란을 유도하는 ‘감쪽같은 속임수’가 아니라 명백히 가짜임을 드러내며 원전에 대한 익살스러운 변주를 함께 즐기자고 제안하는 ‘속보이는 거짓말’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귄위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을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웃기는 중년남성으로 표현한 스카이라이프 CF는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이라고 특출나게 근엄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게를 벗어던진 채 호들갑을 떠는 클린턴의 모습은 거칠 것 없는 유머의 지평을 보여주며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진짜 클린턴이 재임 시절 성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짜 클린턴이 미녀에게 넋을 빼는 모습은 그럴듯한 설정이었다. 가짜 유명인을 앞세운 광고는 정색하면서 진실되게 브랜드의 가치를 설파하고 자랑하는 직접적인 방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 광고도 어차피 허구와 연출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가짜의 ‘쇼’를 질펀하게 펼쳐놓으며 전달하고 싶은 얘기를 간적접으로 밀어넣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 CF의 전략은 등을 느슨하게 기댄 채 거리를 두고 가볍게 즐기기에 적합한 것인지 모르겠다. 판단의 몫을 시청자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주입식 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장점도 있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

<해리 포터>의 2편 제작 소식

연말을 맞아 인터넷의 각종 검색엔진들이 올해 인기를 누렸던 검색어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예상을 그렇게 빗나가지 않고, ‘엽기’, ‘와레즈’, ‘게임’, ‘리니지’ 등의 장수 검색어들과 ‘황수정’, ‘정양’, ‘하리수’ 등 단발성 검색어들이 골고루 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올 한해 가장 많이 이용했던 검색어를 꼽으라면, 아마 Harry Potter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검색창에 마우스를 클릭하면 나타나는 과거 검색 기록에서 Harry Potter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매번 Potter를 Porter로 잘못 쓰는 바람에 꼭 두번씩 검색을 했어야 했다는 사실. 이유야 어떻든 Harry Potter는 확실히 올해 가장 많이 사용한 검색어임은 틀림이 없다. 이렇게 Harry Potter를 자주 검색하게 된 것은 소설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영화로 제작되는 <해리 포터>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에 대한 궁금증을 지난 1년 내내 떨쳐버리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제작 초기 단계에서는 어떤 감독이 선정되었고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되었는지에 대한 인터넷 속 소문과 풍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해리 포터> 영화의 제작 소식과 제작진/배우들의 인터뷰 등이 실린 홈페이지들은 매번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리 포터>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했던 것은 비단 필자 개인만의 경험이나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리 포터>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로 엄청난 네티즌들이 정보의 수동적인 이용자가 아닌, 아주 능동적인 창조자로 변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되어 예상되었던 빅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 특이하게도 그런 <해리 포터> 관련 팬사이트들은 온통 속편들의 제작에 대한 소식들로 왁자지껄하다. 그것도 2편에 대한 소식뿐만 아니라,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소설 <해리 포터> 5편권에서부터 시리즈의 끝인 7권까지에 대한 무수한 소문까지 다루고 있을 정도다. 마치 소녀팬들이 인기가수에 열광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은, 단연 캐스팅에 대한 소식들이다. 특히 속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주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질데로이 록허트 교수 역이 휴 그랜트에게 돌아갔다는 소문은 한때 <해리 포터> 팬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화제가 되었다. 나중에 확인 결과 휴 그랜트가 계약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샌드라 불럭과 연기할 <이브와 함께 시작됐다>(It started with eve)와 스케줄이 겹치면서 고사(?)했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현재까지 그의 뒤를 이어받아 록허트 교수를 연기할 것으로 알려진 배우는 케네스 브래너로, 상당수의 팬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속속 결정된 캐스팅은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국 배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대부분 생소한 것이 사실. 살펴보면 50년 전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인 디펫 교수 역에 앨프리드 버크, 깐깐한 도서관 사서인 마담 핀스 역에 샐리 모트모어, 아기 모양의 비명지르는 식물 멘드레이크를 다루는 약초학 교수 스프라우트 역에 미리암 마골리에 그리고 ‘비밀의 방’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모우닝 머틀 역에 올해 13살인 알리시아 로시악이 낙점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벌써부터 2003년에 개봉할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캐스팅 소문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3편에서 가장 인기있는 등장인물인 어둠의 마법 방어법 수업을 위해 전근을 오는 늑대인간 시리우스 블랙. 루핀 교수 역에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크리스천 베일이 거론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있다. 이런 캐스팅 소식과 함께 지난 1편이 개봉된 뒤 이틀 만인 11월18일 영국 런던의 교외에서 촬영을 시작한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촬영현장 사진이 차츰 공개되고 있는 것도 네티즌 팬들 사이에서는 아주 큰 화젯거리다. 물론 지금까지 공개된 것들은 모두 팬들이 몰래 찍은 현장의 모습들. 그중에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낡은 포드 앵글리아의 사진도 있고, 론과 해리가 안개 자욱한 금지된 숲을 걸어가는 사진도 있다. 물론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사진들이지만 골수팬들은 벌써부터 내년에 11월에 개봉될 2편을 예측하는 자료로 활용하는 중. 또 한켠에서는 1편에 출연했던 영국 출신 배우들이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를 상대로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 경우, 속편들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을 두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감독인 크리스 콜럼버스가 여러 번 인터뷰를 통해 아역배우들을 포함해 1편의 출연진들이 지속적으로 속편들에 출연해야 하기 때문에 속편의 촬영을 쉬지 않고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라, 영국 출신 배우들의 반란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몰라 더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집착에 가까운 행동에 대해 <해리 포터>를 단지 하나의 소설이나 영화로만 생각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리 포터의 마력에 이미 빠져버린 팬들에게는 이러한 작은 소문 하나하나가 생명력이 충만한 하나의 빅 뉴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뿐만 아니라 원작소설 자체가 계속 집필되고 있는 상황에서, 팬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현실화시켜줄 단초로서 정보와 소문들을 계속 찾고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몇년간 인터넷의 한구석은 <해리 포터> 팬들로 인해 시끌벅적할 것이다. 그리고 굳이 팬이 아니라도 그런 시끌벅적함을 곁눈질로 보며 즐기는 것은, 아마도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리스트chulmin@hipop.com 업커밍 무비스의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페이지 http://www.upcomingmovies.com/harrypotter2.html <해리 포터> 갤러리스 홈페이지 http://www.hpgalleries.com/ 사진들은 <해리포터> 속편 중에서

제13회 조국의 산하전

6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한 전시회를 이 자리에서 가늠하는 일은 무모하다(계산해보면 1인당 200자 원고지 한줄). 운좋게 노익장의 미술평론가 김윤수와 시간이 맞아 그의 유려한 식견을 공유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요약할 자리로도 마땅치 않다. 이 전시회에 대해 내가 애착을 갖는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이다. 내가 알았던, 그러나 상당기간 작품을 접하지 못했던 화가친구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는 것. 작품으로나 궁금증으로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안창홍의 <목신>(木神)이다. 괴기의 풀밭에 살점과 핏방울의 잔혹을 흩뿌려 시대를 고발하던 그가 이제 나뭇잎과 잔가지에 진한 물감을 흩뿌려 만들어낸 <목신>은 신화와 자연의 충돌 공간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시대의 괴기’를 벗고 ‘예술의 그로테스크’에 도달한다. 홍성담 작품의 경우 양 극단은 거대-미개한 북구풍 동상과, 그 텅 빈 속을 꿰뚫고 들어가 섬뜩한 날을 번뜩이는 샤머니즘의 칼이다. 그리고, 안창홍의 미세지향과 홍성담의 거대지향 두 극단 사이에서, 박불똥은 바람에 더 가까워졌고 이인철은 ‘노역(勞役)의 묘사성’에서 ‘상상력의 구상성’으로 관심이 질적 변화했다. 강요배는 ‘흐트러짐이 짙어지는’ 차원을 발견했고 민정기는 집요한 사실주의를 벗기 시작했다. 김인순, 김정헌, 손기환, 신학철, 이종구, 장진영, 정정엽은 답보상태인 듯. 주완수는 오랜만이라 그냥 반갑고 주재환은 웃음의 철학이 더욱 어두우면서 깊어졌다. 최민화는 보라색이 훨씬 특이한 동시에 그럴듯해졌는데, 이것은 그가 ‘운동권의 야수색’에 맞서 채택한 보라색에 내재했던 ‘맞섬의 소재-구호성’이 예술적으로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는 뜻이다. 최병수는 여전히 뚝심 가득하고(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아니 정확히 둘 다의 의미다) 홍선웅은 마침내 민중판화의 전아(典雅)에 달하려 하고 있다. 김추자의 노래 <거짓말이야> 선율과 박자에 80∼90년대의 온갖 정치-경제-사회-언론상을 매치시킨 전수현의 영상물은 기발했지만 가면춤은 없는 게 더 좋았겠다. 춤이 화면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음악과 너무 기계적으로 맞는 까닭에 ‘기발함’을 여유와 자신만만의 예술에서 소재주의적 장난으로 전락시키는 면이 있다. 어쨌거나, 힘내시라, 모두들. ‘힘을 낸다’는 말의 의미도 모르는 사람이 힘을 낼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기획이 행위예술이라며 안내에 열심인 조경숙도.(광화문갤러리)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

2001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2]

2위. <친구> 흥행 신기록 전국 818만명 동원 “한국영화 모든 기록에 도전한다.” 개봉 첫 주말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말 이틀간 흥행기록을 뛰어넘자 <친구>의 신문광고 전면에 내걸린 카피였다. 당시엔 누구나 ‘과장이 아닐까’ 여겼지만 <친구>의 도전은 성공했다. 3월31일 개봉해 장장 9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134일간 상영된 <친구>가 불러모은 관객 수는 서울 266만6414, 전국 818만1377명. 종전 기록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전국 579만5820명이었다. 코리아픽처스가 전국 직배로 배급한 <친구>는 특히 지방관객의 호응이 대단했다. 이는 서울관객 수에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250만9320명으로 <친구>와 15만명쯤 벌어지는 반면 전국관객에서 240만명가량 차이나는 데서 입증된다. <친구>는 극장에서 배급사로 보낸 부금만 212억원. 일본판권이 210만달러에 팔렸고 여기에 TV, 비디오 등 기타 판권을 합치면 최소 250억원을 벌었다. 이중 10억원은 배우, 감독, 스탭들의 보너스로 지급됐다. 3위. 헌재, ‘헌법대로 해라’ 등급분류 보류 위헌 결정 ‘검열은 위헌’이라고 몇번 말해야 알아들을까. 8월30일, 헌법재판소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상영등급분류 보류가 사전 검열조치에 해당하며, 이는 명백히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등급위는 그동안 성과 폭력이 지나치게 과도한 영화에 한해 등급분류를 3개월까지 보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기준이 명확지 않은데다 횟수제한 없이 무제한 보류조치를 내릴 수 있어, 상영금지 조치와 다름없다는 영화인들의 비판에 직면했었다. 헌재의 결정 이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11월29일, 등급보류 폐지, 제한상영관 설치를 주내용으로 하는 영진법 개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문광위가 마련한 개정안은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것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 형법 등 다른 법률에 저촉될 경우,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 등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으나, 법사위 심의에서 등급위가 여타 법률에 저촉될 위험이 있을 경우, 관계기관에 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4위. 무조건 많이 잡고보자! 와이드 릴리스 강박증 무조건 많은 개봉관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올해 영화시장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단적인 예로 지난주 메가박스의 프로그램을 보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5개관, <화산고> 4개관, <두사부일체> 4개관 등 3편의 영화가 나눠가진 스크린 수는 모두 13개. <아메리칸 파이2> <물랑루즈> <달마야 놀자> 등이 나머지 3개 스크린을 하나씩 차지했지만 16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6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멀티플렉스에 대한 환상을 불식시켜준다. 확실히 멀티플렉스가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를 준다는 홍보문구는 사실이 아니다. 멀티플렉스가 늘면서 영화의 소비속도는 2배 이상 빨라졌고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에 대한 믿음은 부풀어올랐다. 메이저 배급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개봉관 확보 경쟁은 내년에도 크게 나아질 전망이 없다. 개봉관 확보 전쟁이 격화되면서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꽃섬> 등 작은 영화들의 성적표는 더 초라해졌다. 영상원 김소영 교수는 보다 못해 “최소 의무상영일수 보장하라”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5위. 조폭들의 전성시대 조폭영화 흥행 연타홈런 “그래, 나 또 조폭이다. 왜.” <두사부일체>가 내건 이 카피는 올해 흥행경향을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친구>로 시작된 조폭 소재 영화들의 흥행가도는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로 이어졌다. 이중 <친구>를 제외한 4편은 어깨에 힘을 뺀 조폭들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이런 조폭 코미디의 흥행에 대해 “현대 한국사회의 속성이 근본에서 조폭과 마찬가지이며 특히 신뢰할 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 공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쨋든 이들 영화가 전부 흥행에 성공한 까닭은 같은 소재를 택하면서도 각 영화마다 신선한 접근법을 시도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신사 같은 조폭, 남편감을 구하는 여자조폭, 절로 피신해 스님과 대결하는 조폭, 부패한 학교를 고발하는 조폭 등 연출력보다 기획 아이디어가 돋보인 영화들인 것이다. 조폭영화의 흥행가도는 어디에서 끝날까? 장르라는 것도 대체로 생장사멸의 진화를 거친다는 걸 고려하면 똑같은 흥행공식이 매번 먹힐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기획은 그래서 어렵다. 6위. 최강의 제작사와 배급사 한배 로커스홀딩스, 시네마서비스 인수 지난 2월 전격 발표된 로커스홀딩스의 시네마서비스 인수는 한국영화산업에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국내 최대 제작사 싸이더스와 역시 국내 최강의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의 유기적 결합. 단순히 배급라인의 안정화나 강력한 배급력 획득이라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한국영화를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금융자본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의 일부로 기능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같은 ‘금융자본의 영화자본화’는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제작사와 배급사가 공개시장을 통한 풍부한 자금원을 확보했다는 의미도 갖는다. 가장 득을 본 쪽은 풍부한 자금과 다채로운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었던 시네마서비스라 할 수 있다. 자매회사 시네마서비스에 배급을 맡길 수 있게 된 싸이더스도 밑질 것은 없었다. 한편 이들의 지주회사인 로커스홀딩스는 희비를 동시에 맛보고 있다. <무사> <화산고> 등 화제작이 개봉할 때마다 이 회사의 주가는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7위. 스탭, 목소리를 높여라! 처우개선운동 활발 “우리가 제작자 시다바리냐,생존권을 보장하라!” 4월 대종상 시상식장의 피켓시위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부각된 스탭들의 처우개선 요구는 한국영화가 오랫동안 뒷전에 밀어놓았던 문제를 전면에 올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화, 대형화 등에만 몰두해오던 제작자들에게 자성을 촉구했던 이 허기진 목소리는 비단 잉여의 분배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영화 전체의 발전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충무로는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아직 전반적인 스탭들의 임금이 현실화됐거나 제작환경이 눈에 띄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제작사가 단계적이나마 개선책을 내놓고 있고, 영화인회의도 제작환경개선 및 근로조건개선을 위한 연구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제야 너무 앞서나갔던 ‘개발논리’를 ‘복지논리’가 뒤쫓기 시작한 셈이다. 한때 뜨겁게 달아올랐던 ‘비둘기 둥지’를 비롯한 촬영감독, 조감독, 미술, 조명 등 조수급 스탭의 모임은 최근 주춤하는 모양새다. 분야별의 요구를 정교하게 다듬기 위한 정비기간을 갖는 듯하다. 그렇다고 충무로가 이들의 구호를 망각해버린다면, 들불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8위. 튜브 한쪽 날개 접어 배급 포기 자금줄을 찾기 위한 튜브엔터테인먼트의 ‘방황’은 고되고 험난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츄럴시티> <튜브> 등 제작비 5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들을 동시에 진행했던 튜브는 배급업 또한 의욕적으로 펼쳤으나, 지속적으로 ‘실탄’의 부족을 느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뱀파이어 헌터 D> 등 다량으로 구입했던 일본영화도 시장의 외면으로 내놓지 못해 자금사정은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양, 유니코리아 등과 접촉을 가지며 길을 찾던 튜브는 결국 CJ엔터테인먼트에 주요 작품의 배급권을 넘기고, 한국영화 소싱을 전담하는 제작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한때 ‘배급 1위’까지 노리던 튜브는 날개를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대마불사’ 전략은 튜브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하는 데 딱 들어맞는 말이다. ‘대형 영화를 제작하면, 돈을 잃는다 해도 크게 잃지 않는다’며 블록버스터 대작을 준비해온 튜브는 결국 자본을 대지 못해 배급 포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CJ가 튜브에 손짓한 것도 따지고보면 ‘대마’ 때문이었으니, 이 노선은 절반 이상 들어맞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9위. 부산, 이제는 ‘영도(映都)’ 영화산업의 메카로 도약 갈매기, 바다, 항구, 신발공장의 도시 부산은 올 한해 동안 영화제, 영화 로케이션, 영화산업의 메카로 거듭났다. 올 한해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는 모두 20편. 그중에는 모든 촬영을 부산에서 진행한 <친구>를 비롯,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김해) 같은 흥행작도 포함된다. 지금도 <내츄럴시티> 등 6편이 촬영중이며, 촬영을 협의중인 작품도 30여편에 이른다. 이렇듯 영화제작진이 짐을 싸들고 부산으로 향하는 것은 영상산업을 대표적인 산업으로 꾸리려는 부산시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산하인 부산영상위원회는 장소섭외, 촬영정보 제공 등 각종 지원을 통해 쾌적한 영화 제작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머지않아 ‘영도(映都) 부산’이란 말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부산을 찾았던 제작진이 느낀 가장 큰 문제는 스튜디오 촬영이나 후반작업을 하려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11월 문을 연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와 내년 5월 개관하는 부산영상벤처센터는 이같은 갈증을 해소하고, 부산을 명실공히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할 전망이다. 10위. 바람잘 날 없는 영진위, 내분으로 아직도 소송중 정초부터 영화진흥위원회는 시끄러웠다. 극영화제작지원작 발표와 동시에 선정작에서 탈락한 정진우 감독이 편파심사라며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 이에 심사를 맡았던 영진위 위원들은 공연한 딴죽 걸기라고 맞섰고, 도중 유길촌 위원장이 사표를 내는 등 내홍을 겪었다. 한편, 7월27일에는 영진위가 직무불성실을 이유로 조희문 전 부위원장직을 불신임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이용관 당시 부위원장은 이로써 확정판결 때까지 업무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고, 자신을 영진위 부위원장 직무대행자로 선임해달라며 조희문 위원이 낸 가처분 신청 역시 기각됨으로써 부위원장석은 공석이 됐다. 8월20일에는 영진위 위원 4인은 위원장이 제작지원 사업 심사위원 선정에 있어 유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등의 이유로 위원장 불신임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영화인회의 등 11개 외곽단체들도 이례적으로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결국 위원회가 연말까지 불신임안 상정을 연기하면서 봉합된 상태. 영진위는 불신임 무효 판결에 대해 항소중이다. 올해 발의된 영화진흥법 개정안은 다음 위원회부터 영진위 부위원장을 비상임직으로 만들었다. 새 위원회는 2002년 5월 구성될 예정.

올해 눈에 띄는 `조연들`

올해의 스크린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빛나는` 조연으로는 기주봉, 공효진 외에 이원종, 유해진, 김수로, 송옥숙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자장면 배달부, <반칙왕>의 프로레슬러, <달마야 놀자>의 조폭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김수로는 <화산고>에서 장혁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해 이젠 `조연 전문'이라는 딱지가 어울리지 않는 경우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형사, <반칙왕>에서 박상면의 연습게임 상대 레슬러로 얼굴이 익은 이원종은 <신라의 달밤>에서 영준(이성재)의 조직에 당한 뒤 치사한 복수를 꾀하는 경주 토착 조직의 보수 마천수로 나온다. 천연덕스런 사투리와 뻔뻔한 표정으로 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그는 <달마야 놀자>에서 스님으로 둔갑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97년 극단 목화의 연극배우로 입문한 유해진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용가리, <무사>에서 도끼를 잘 쓰는 도충으로 나왔으며, <신라의 달밤>에서는 두 조직을 한 번씩 배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질박한' 외모가 배역의 특징을 저절로 드러내는 그는 새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억울한 용의자로 몰리는 용만으로 등장한다. 여자 조연 가운데는 단연 <라이방>의 송옥숙이 꼽힌다. 탤런트 출신인 송옥숙은 <낙지 먹는 여자> 등 텔레비전 베스트 극장에서 친숙한 연기자다. <학생부군신위> <개 같은 날의 오후> <아름다운 시절> 등 이미 숱한 영화에 출연해 주로 억척스럽거나 강인한 30∼40대 여성의 모습을 연기해온 송옥숙은 <라이방>에선 구멍가게 주인이면서 유한마담인 척 택시기사를 유혹하는, 바람기와 아둔함이 섞인 아줌마역을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조연들의 연기가 눈에 띈다는 건 작품을 빚는 손맵시가 좋아졌다는 뜻이다. 올해는 조연 배우들의 폭이 한층 더 넓어진 한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