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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그 신화의 현장 도쿄를 가다 [4]

세계의 감독 6인이 말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들이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오즈에 대한 ‘헌사’로서 축소되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오즈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영화적 언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한명의 감독을 말하는 그 속에서 여섯 감독의 영화관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안내가 있다. 첫 번째, 요시다 요시시게는 심포지엄 발표 중 <만춘>의 부녀가 여관에서 머무르는 장면에는 근친상간의 코드가 있다고 지적한다(하스미 시게히코와 동일한 의견). 그 장면은 서로가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이며, “그들의 대사는 남녀 사이의 애정표현으로서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뒤이어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허우샤오시엔의 적극적인 해석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일본의 중견 영화감독들에게서는 그들이 겪어온 ‘오즈 강박증’과 ‘탈출 욕망’의 경험사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단순한 사물을 지그시 응시하는 예술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나는 오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내 영화는 할리우드영화처럼 큰 사건도 없고, 또 드라마적이지도 않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내 영화에 대한 옹호자와 비판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들 모두가 오즈를 거명했다. 지지자들은 내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 오즈를 말했고, 비판자는 오히려 그 부분을 비판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초등학생의 인생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스토리가 프레임 안에서 흘러넘치면 관객은 피곤해한다”라고. 그 점에서 오즈는 나의 변호사였다. 오즈의 영화에서도 역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와 장면만으로 오즈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첫눈에 무언가 새롭다고 느꼈다. 영화가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프레임에서 프레임으로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오즈를 존경하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에 많은 감독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영화를 만드는 우리 각자는 상상적으로 오즈와 관계를 맺고 있다. 언젠가 빔 벤더스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즈의 영화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사물을 예술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그걸 듣고 왜 이 감독이 오즈 영화를 동경하는지 알게 되었다. 벤더스가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오즈가 최고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있다. 오즈는 예술을 가르쳐준 것이다. 평상시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순한 사물, 그것을 지그시 응시하는 예술을…. 이것이 오즈의 제일 중요한 점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사물 그 자체’가 느껴진다. 그의 예술세계는 간단하고 평범하다. 장식없는 수수한 세계이다. 그러나 깊은 표현을 담고 있다. 이해시키려 하는 것도, 결과를 강제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위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영화 <달과 연못>을 오즈 감독과 ‘본다는 것’에 충실한 관객에게 바치고 싶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달과 연못>은 12월14일 심포지엄에 참석한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프리미어 상영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 산문적이어서 시적인... 먼저 오즈에게 오마주를 바치게 되어 영광스럽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오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짧은 에세이 <소박과 순수의 철학자>라는 글을 쓰고, 파리에서 오즈의 훌륭한 영화 두편을 본 정도이다. 바로 <동경이야기>와 <꽁치의 맛>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작품만을 보고도 그가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있고, 또 순화된 작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즈의 영화에는 미조구치 겐지가 보여주는 리얼리스틱한 면을 넘어설 수 있을 만한 리듬감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산문적이다. 그 점이 또 다른 종류의 시적인 힘을 갖게 한다. 이건 영화 <만춘>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즈와 나의 공통점을 먼저 얘기하면 그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감정의 표현법이다. 오즈의 작품에서 감정의 표현은 억제되어 있다. 나 역시 감정표현을 너무 드러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고 관객 자신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판단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동은 결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이 아니다. 그 점에서 <만춘>의 딸의 감정 역시 매우 억제되어 있다. 여기에는 감싸주고 보살펴주기를 필요로 하는 딸에게 더이상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딸의 행복을 비는 깊은 애정이 승화되어 있다. 육체적인 느낌보다는 아버지로서 딸의 행복을 비는 사랑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섹스는 자연의 일부이고 육체적 상상이지 감정은 아니다. 일순간의 동요로 나오는 부분도 있다. 생물적인 욕망으로서의…. 그래서 <만춘>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육체적인 관계 이상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떠나서 결혼을 하면 둘이 살아왔던 그 관계는 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애정에 대한 것이지 육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요시다 감독의 말처럼 이 장면에 성적욕구가 표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딸과 아버지의 애정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생일 역시 오즈와 같은 12월12일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즈의 여배우 마리코 오카다에게 꽃다발을 선사받았다.) 허우샤오시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그만의 방법 <가배시광>을 어제 겨우 끝마쳤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만춘>과 <태어나 봤지만> <동경이야기>를 다시 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들이고, 특히 <태어나 봤지만>은 1985년에 내가 처음 본 오즈의 영화이다. 신기한 것은 오즈의 영화는 볼 때마다 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즈의 영화는 내게 있어 한마디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글로 시작해보려 한다. 그는 어느 문학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사물의 사실은 표면에 숨겨져 있고 표상으로서 상징되어 있다. 그래서 문자라는 것은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것이다”라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물과 사실을 보여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오즈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다. 오즈 감독은 삶의 직접적인 표면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그러나 되풀이하여 보면 그것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생활의 디테일, 즉 감추어져 있는 듯한 작은 것들이 각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깥에서 <만춘>의 딸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허우샤오시엔은 영화 상영 직전 필름을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둘의 관계를 통해 가정과 집에 대한 지배권, 쉽게 말하면 누가 이 집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담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이가 많아져서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외출하기를 원한다. 아내는 자신의 영역인 집에 내가 오랫동안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28살짜리 딸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에게 집은 일상을 공유해나가는 그녀들만의 영역인 것이다. <만춘>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면 하라 세스코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손님과 장기인지 트럼펫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웃는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하지만 그뒤의 표정은 뭔가 못마땅해하고 있다. 자기의 집에 허락도 없이 누군가 침범해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 컷에서 <만춘>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확실히 느꼈다. 하라 세츠코가 연기한 딸은 성적 욕구를 느끼는 남성으로서의 아버지를 떠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엄마 대신에 지켜왔던 아버지를 포함하여, 즉 집(가정)을 떠나기 싫은 것인지 모른다. 이것은 일상 그 자체이다. 이러한 사소한 감정의 변화는 계속된다. 일상에서 느끼는 여성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오즈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그걸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고레다 히로카즈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지만 역동적인 힘 대학에 입학했던 20살, 오즈의 영화 <태어나 봤지만>과 <낙제는 했지만>을 보았다. 분명 이때까지 본 쇼치쿠의 영화와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뒤이어 <만춘>과 <동경이야기>를 봤는데, 한마디로 그 느낌은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를 보고 처음 강하게 받은 인상은 ‘대사가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이 점이 매우 의문스러웠다. 특히 류 치슈의 의미없는 듯한 대사가 반복될수록 어딘지 모르게 리듬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면서도 나의 시나리오 안에 그것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오즈를 모방하는 형태로 대사의 반복을 집어넣어본 것이다. 내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접한 것은 20대 후반인데 그 이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그를 모방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환상의 빛>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나는 영화 속 어떤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낡은 일본 가옥 한채를 찾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넓은 집이면 오즈의 영화처럼 찍을 수 있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큰 툇마루와 10조의 다다미를 찍을 때 표준 렌즈를 사용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삐딱한 여러 각도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제일 안정감 있는 각도는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오즈 영화 같은 숏이 나와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모방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표면적으로 나의 영화는 오즈 영화를 많이 모방했지만 내가 찍은 것이 정지되어 있고 정적인 듯한 느낌이라면 오즈의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정적이지만 그 안에는 역동적인 감정이 흐른다. 이것이 차이이다. 그는 가장 동적인 순간에도 정적인 느낌을 사용하여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실패로부터 ‘이제 오즈로부터 벗어나자’라고 각오했다. 그래서 ‘나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특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시기의 나의 자유로웠던 감각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다. 이것이 내가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영화관이다. 아오야마 신지 ’나란히’신으로 중독시키다 나는 선배들과 달리 오즈와 아무 관계없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또 그것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는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오즈라면 이때 어떻게 했을까 하고. 어제 나는 텔레비전에서 <태어나 봤지만>을 보았다.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옆으로 나란히 있는 형제장면이었다. 이 ‘나란히’ 기법이 새로운 한편의 영화, 아니 몇십편의 영화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현상이었다. 이런 장면을 일본영화 안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들의 나란히 신을 보면서 오즈를 떠올리는 것은 오직 나뿐일까? 예를 들어 마키노 마사히로 감독의 <죽어주세요>에서 다카쿠라 겐과 동료가 나란히 있는 신, 그리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의리없는 전쟁>에서 고바야시 아키라와 다른 인물이 나란히 있는 신은 결국 오즈를 연상시킨다. 후카사쿠 긴지는 오즈와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내 영화 <유레카>의 경우에도 인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신이 있는데, 오즈의 영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오히려 이 장면을 <와일드 번치>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오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오즈에게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오즈 중독’에 대한 내 모습이기도 하다. 오즈 중독에 대한 더 명확한 예는 최근에 만든 <달의 사막>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일부러 일본 가옥을 넣었고 카메라의 위치도 오즈처럼 하려 했다. 그리고 이야기도 가족의 일상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렇게 전부 오즈식으로 하면서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 좀더 새로운 영화가 되는 것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좌절’했다. 왠지 모르게 지루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즈는 좌절을 한 적이 없을까’라고 말이다. 최근에 오즈의 초기작 <즐겁게 걸어라>를 봤는데 그것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 오즈도 뭔가를 모방하려 하다가 좌절한 경우라는 것이다. 즉 미국영화를 모방하려고 하다가 좌절을 경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즈의 경우는 그 좌절로 인해 오히려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좀더 말하자면, 야마나카 사다오의 <인정지풍선>의 어떤 숏은 <즐겁게 걸어라>의 이동 숏과 정말 닮아 있다. <인정지 풍선>의 경우는 오즈의 숏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해서 새로운 느낌을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오즈의 영화가 야마나카 사다오 영화보다 훨씬 전의 영화이다). 다시 말하면 오즈가 미국영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경우, 그리고 야마나카 사다오가 오즈를 염두에 두었지만 극복한 경우가 나에게 큰힘을 준다. 오즈도 좌절했다는 점, 그를 모방한 또 다른 감독이 오즈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고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그는 우리의 무의식이다 오즈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년 전인 1980년 초 필름센터에서 하는 오즈 회고전에서였다. 그때 거의 전 작품을 보았다. 보기 전에 나는 오즈의 영화가 일본의 일상에 대해 담담하고 평화롭게 그려내는 홈드라마라고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정반대였다. 이것은 아마 오즈 영화의 스테레오 타입을 부수고 재평가하자는 그때의 분위기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오즈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뭔가 부자연스럽고 위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8mm영화를 찍을 때는 오즈를 응용하자는 분위기의 한편에 속해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카메라의 포지션과 시선, 즉 연출을 모방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레다 감독이 지적한 것처럼, 오즈를 흉내내고, 류치슈의 연기를 그대로 흉내내는 연기를 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 오즈에 대한 모방을 그만두었다. ‘오즈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그만두었다. ‘오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극단적으로 싫어하게 된 것이 일본 전통 가옥 안을 찍는 것이었다. ‘가능한 한 집안으로 들어가지 말자’라고 다짐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강령>이라는 호러영화를 찍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일본 가옥 안을 찍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오즈는 피하자’라는 강박관념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집안에 들어간 촬영기사는 갑자기 카메라의 높이를 낮추고 있었다. 주인공인 야쿠쇼 고지 역시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고정된 카메라에 맞추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말 마술 같은 일이었다. 촬영기사와 배우들 역시 오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일본 가옥신만큼은 오즈의 영화처럼 나와버렸다. 사실 지금은 오즈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강하게 거부하는 것 역시 이전에 그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오즈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그가 뭘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수수께끼로 남겨둔 채로, 나만의 다른 연출을 생각하려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도 결코 그를 스쳐지나갈 수 없다 '오즈 스타일'을 외면해온 아오야마 신지 감독 -방금 오즈에게 헌정하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를 보았다. 우선 느낌이 어떤가. =예전에 허우샤오시엔의 <연연풍진>을 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받았던 느낌이 되살아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즈의 영화와 허우샤오시엔의 지금 이 영화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즈가 살았던 시대의 윤리관과 현대 허우샤오시엔이 살고 있는 현대의 윤리관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차이이다. 예를 들어 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부모들은 어떻게 딸의 인생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 허우샤오시엔의 <가베시광>에서는 오즈가 살았던 시대에서처럼 아버지가 딸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일본 감독보다도 당신을 꼭 인터뷰하고 싶었던 이유는 오즈의 영화적 스타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감독이 오즈에 대한 생각을 들려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런 당신에게서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창 시절 오즈의 영화를 많이 봐서 그 기억이 크다. 하지만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면서는 오즈의 역량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나 역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에서 그의 영화 스타일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심포지엄의 의의 역시 오즈에 대한 생각을 어떤 모습으로든지 변화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오즈는 어떤 식으로도 우리에게 결코 스쳐지나갈 수 없는 감독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영화를 지그시 바라보고 살려내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라고까지 생각한다. -이방인의 시선으로서 보자면, 왜 나루세, 미조구치, 구로사와보다도 오즈가 유독 일본 영화감독들의 아버지상으로 말해지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일본의 감독들은 각자 자신만의 아버지상을 갖고 있다. 그들마다 다양한 오마주를 느끼는 감독이 따로 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는 일본인으로서가 아니라 국적과 상관없이 영화인으로서 오즈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참석자들 중 가장 흥미롭게 들은 발표는 무엇이었나. =사실은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 중 어떤 면이 남았고, 계속 나를 붙잡고 있었다. 바로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말한 내용이다. 영화에 대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에 대한 문제이다. 영화의 진실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영화는 거짓말이다. 하지만 또 진실이기도 하다. 그 경계선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예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그 문제는 남는다. 영화의 거짓말은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 거기에서 진실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하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오즈의 영화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들려달라. 그 이유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오즈의 영화는 <조춘> <동경의 황혼> <피안화>이다. 이유는 그 영화 모두에 다카하시 데이지라는 배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영화들 속에서 다카하시 데이지가 나오는 신을 무척 좋아한다. 왠지 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쉽게 동일화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으로 전환점 맞은 뉴질랜드 영화산업 [2]

개방적이고 유연하고 합리적인 키위들 피터 잭슨이 아무리 걸출한 인재라 해도, 불과 5년 사이 영화제작의 인프라를 홀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이 대목에서 뉴질랜드인들은 그들의 고유한 성향과 재능을 언급한다. 나머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남쪽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는 외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없는 곳. “창의적이고 사고가 유연하며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강점이 그런 고립과 결핍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해외 진출을 지향하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향도 한몫했다. “미국인은 인구의 10% 정도만이 여권을 갖고 있다.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뉴질랜드인들은 해외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해왔고, 기질적으로도 여행을 즐긴다. 이런 진취적 기상이 창조성의 근간을 이룬다. 펀딩부터 세일즈까지 자국영화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뉴질랜드필름커미션의 대표 루스 할리의 분석이다. 할리우드에서 뉴질랜드로 역이주한 케이스로, 시각효과 등의 후반작업 전문회사 옥토버에서 일하는 딘 라이언은 뉴질랜드 사람들의 “가족 중심주의”를 중요한 미덕으로 꼽는다. 영화 인력 사이에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 있어 마치 “하나의 대가족”처럼 공조하는 풍토가 그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피터 잭슨이 소유주인 필름 유니트에는 첨단시설 확충은 물론 작업 중인 영화인들을 위한 극장과 식당, 그리고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2500만NZ달러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증축 계획은 뉴질랜드 안팎의 재능있는 젊은 영화인들을 불러모으게 될 것이다. 이런 성향은 합리적인 인력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필름 뉴질랜드와 필름 유니트에 몸담고 있는 마이클 스티븐스는 ‘한국통’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실미도>의 뉴질랜드 로케이션 현장을 지켜보며 그 엄청난 스탭 수에 놀랐다고 전한다. 도제 시스템의 전통도 없고, 적은 인원의 스탭이 여러 분야를 겸임하는 뉴질랜드의 촬영현장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 “비용의 효율성은 노동력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단순히 뉴질랜드 영화인들의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적은 인원으로 현장 운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들 그렇게 훈련을 받아왔다.” 대부대와 고비용을 영화의 완성도와 직결시키는 풍토가 만연한 충무로에서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충고다. 정부의 적극지원과 피터 잭슨의 재투자 이런 물적 인적 인프라 형성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자국영화에 매년 1억NZ달러를 지원해주는 것은 이제 전통이 됐고, 해외 프로덕션 유치를 위한 경쟁력 있는 제도를 제정하고 또 시행하는 중이다. 호주나 캐나다보다 환율이 낮다는 것도 매력적이고, 공산품 수입에 관세를 붙이지 않아 소품이나 장비 출입이 자유롭다는 이점도 크게 작용하지만, 이보다 파격적인 것이 뉴질랜드 정부의 국내외 영화지원 정책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자국영화에 한해서는 세금 면제를(<반지의 제왕>은 자국영화로 간주,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경우다), 외국영화에 대해서는 할인을 해준 바 있으며, 올 여름부터는 뉴질랜드에서 5천만NZ달러 이상을 소비하거나, 1500만NZ달러 이상의 제작 규모에서 70% 이상의 제작비를 소비하는 경우 해당 지출액의 12.5%를 되돌려주는 ‘현금 양도 계획’(cash grant scheme)을 시행하고 있다. 영화인 스스로 보험과 세금을 책임지는 자영 계약 시스템이 정착돼 있고, 필름 커미션과 필름 뉴질랜드 등의 영화기관에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현지 인력의 운용을 수월하게 만드는 요인. 문제는 <반지의 제왕> 그 이후다. 로케이션의 유행은 가고 또 오는 것이며, 환율도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의 ‘특수’는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 피터 잭슨 등이 벌여놓은 영화제작의 인프라는 자국 시장 규모에 비해선 턱없이 크기 때문에 일거리가 충분치 않으면 고급 인력들이 호주나 할리우드로 빠져나갈 공산도 크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좀체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뉴질랜드 영화산업은 업그레이드됐고, 이런 성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자긍심 때문. 현재 뉴질랜드 영화계와 정계의 공통된 자각과 노력은 “자국영화를 키워 밸런스를 맞추자”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자국영화 지원 규모를 2배 정도로 늘릴 것이라 발표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투자액을 늘리고 일자리를 늘리고 더 나아가 자국영화를 키워보리라는 계획인 것이다. 피터 잭슨에게도 자국 영화산업 육성과 관련한 장기적인 플랜이 있다. 믹싱 스튜디오, 데이터시네, 텔레시네 등을 구비한 피터 잭슨 소유의 후반작업 회사 필름 유니트에는 첨단 설비는 물론 극장, 식당, 아파트까지 들어서게 된다. “뉴질랜드 영화인, 저예산 독립영화 작가들이 이용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계획. 이처럼 정부의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지원과 피터 잭슨이라는 거물의 재투자 및 환원 노력은 외부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매우 특별한 케이스 스터디. ‘호기’를 맞은 뉴질랜드 영화산업이 국제 무대에서 진정한 도약을 이룰 것인지, 주시할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반지의 제왕>의 경제효과 절대반지는 뉴질랜드 사상 "최대 고용주" <반지의 제왕>의 1부와 2부, 두편의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29억 달러. 이제 막 개봉한 3부의 수익까지 보태면 40억달러는 너끈히 넘을 것이다. 극장 매표수익과 DVD 판매수익 등 영화 자체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막대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이 영화를 계기로 벌어들이는 간접수익도 만만치 않다. 뉴질랜드의 지역신문 <도미니온 포스트>에 따르면, 이 영화의 제작 근거지였던 도시 웰링턴은 <반지의 제왕>을 통해 향후 10년간 2억5천만NZ달러를 벌어들일 전망이라고 한다. 사소한(?) 예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월드 프리미어 행사만으로도 이미 700만NZ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영화를 통해 웰링턴이 얻은 홍보 효과는 2500만NZ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지의 제왕>의 제작진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제작비의 3/4 정도를 뉴질랜드에서 소비했고, 뉴질랜드 전역에서 2만3천명의 인력을 고용해 뉴질랜드 사상 “최대 고용주”로 기록된 바 있다. 이후 뉴질랜드 영화산업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 2001년 뉴질랜드에서 제작 또는 촬영된 영화의 가치가 3억5200만달러였던 데 반해, 2002년엔 6억5천만달러로 2배 가까이 늘어나 있다. <반지의 제왕>은 관광산업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뉴질랜드 내 주요 로케이션을 둘러보는 그룹 투어가 크게 유행하고 있는데, 호비튼 세트가 지어진 마타마타의 농장 주인은 뉴라인을 설득, (최소한의) 세트의 흔적을 남긴 덕으로 이제까지 60만NZ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2년 출간된 <반지의 제왕 로케이션 가이드북>은 뉴질랜드 내에서만 9만부 이상 팔려나갔고, 최근 그 개정판이 전세계적으로 시판됐다. 뉴질랜드를 찾는 관광객 사이에 이 책은 ‘바이블’로 통한다. 또한 웰링턴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반지의 제왕> 소품 및 미니어처 전시회에는 모두 24만명이 다녀갔고, 현재 해외로 투어 중이다. 뉴질랜드는 향후 연간 1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방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신기자클럽] 영화의 교류지가 된다는 것 (+불어원문)

타베르나스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촬영된 곳 중 하나다. 그럼에도 여기서 찍은 영화들 속 얘기가 스페인에서 전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프리카를 마주보고 유럽의 최남단에 있는 이 지역은 스크린에서는 이집트, 데스 밸리, 고비 사막, 나아가 머나먼 은하계의 행성으로 등장한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여기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한 ‘이름없는 사나이 3부작’(<황야의 무법자> <속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편집자 주), <석양의 갱들>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찍었다. 20년이 넘도록 알메리아 스튜디오는 일종의 지중해상의 할리우드가 되어 <샬라코>(숀 코너리와 브리지트 바르도 출연), <코난>, <매드 맥스3>, <바론의 대모험> 같은 영화들의 촬영장소가 되었다. 알메리아에 잠시만 머물어도 유럽영화 스튜디오들이 잉그리드 버그만에서 커크 더글러스, 헨리 폰다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스타들을 고용할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알메리아 주민들, 특히 바에서 마주치게 되는 주민들은 60년대와 70년대의 황금기를 잘 기억하고 있다. 몇몇은 기념이 되는 것들을 간직했고, 그중 율 브린너의 트레일러를 얻은 한 부인은 이를 식당으로 개조했다. 다른 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리 반 클리프와 함께 거나하게 취했던 것을, 또 더 멋지게는 라퀠 웰치와 블루스를 췄던 때를 추억한다. 이 시절의 촬영장에서는 영어 못지않게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가 들리곤 했었다. 미국도 알메리아에서 찍은 유럽영화들 덕을 봤다. 레오네는 활력을 잃어가던 서부극 장르을 재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루카스나 스필버그(스필버그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을 알메리아에서 찍었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70년대에 길을 터주었다. 오우삼, 쿠엔틴 타란티노 등 캘리포니아에 자리잡은 수십명의 다른 영화인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또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 등 수많은 재능있는 전문 기술진이 피어날 수 있게 하였고 그들은 또 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되었다. 할리우드는 해외 스튜디오 출신 인재들을 받아들이면서 형성된 곳이다. 이 시스템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해외 스튜디오가 존속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알메리아에서는 주로 광고, 비디오 클립 그리고 텔레비전용 영화를 찍는다. 미국은 고갈되어가는 도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들에게는 이런 알메리아에서 보이는 변화의 거울이 없다. 세계시장 정복을 위해 각국 토착 영화계를 질식시키는 과정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스스로 쇄신하는 데 없어선 안 되는 영향 요소들을 포기해버렸다. 한국의 쿼터제에 대한 논쟁에서 이 문제의식은 너무나도 부재한다. 문제는 자국영화를 이기적으로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흐름과 영향 요소의 필수불가결한 순환을 보존함으로써 또 다른 알메리아 같은 곳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세계에, 그리고 두드러지게 미국영화에 이로운 교류지를 말이다. Retour à Almeria Le désert de Tabernas est l’un des paysages les plus filmés du monde. Pourtant, il est très rare que l’action des films qui y sont tournés se déroule en Espagne. Ultime frontière de l’Europe avant l’Afrique, cette région passe à l’écran pour l’Egypte, la Vallée de la mort, le désert de Gobi voire même des planètes de lointaines galaxies. Sergio Leone y tourna sa trilogie de « L’homme sans nom » avec Clint Eastwood ainsi qu’« Il était une fois la révolution » et « Il était une fois dans l’Ouest ». Pendant plus de vingt ans Almeria fut une sorte d’Hollywood sur Méditerranée qui accueillit les tournages de films comme « Shalako » (avec Sean Connery et Brigitte Bardot), « Conan le barbare », « Mad Max. Under the Thunder Dome », « Les aventures du baron de Münchhausen » … Un bref séjour à Almeria nous renvoie à un temps où les studios européens étaient capables d’employer les plus grandes stars américaines, d’Ingrid Bergman à Kirk Douglas ou Henry Fonda. Les habitants d’Almeria, surtout ceux que l’on croise dans les bars, se souviennent bien des grandes années 60 et 70. Certains ont gardé des souvenirs : une dame qui a hérité de la roulotte de Yul Bruyner l’a transformée en restaurant. D’autres se souviennent les yeux brillants d’une cuite avec Lee Van Cleef ou même mieux : d’un slow avec Raquel Welch… Sur les tournages de l’époque, on parlait aussi bien l’italien, le français ou l’espagnol que l’anglais. L’Amérique profita aussi des films européens tournés à Almeria : non seulement Leone réinventa un genre en perte de vitesse : le western, mais il ouvrit un couloir aux années 70 en inspirant Lucas ou Spielberg (qui tourna à Almeria « Indiana Jones et la dernière croisade »). Il entraîna dans son sillage John Woo, Quentin Tarantino et des dizaines d’autres cinéastes installés en Californie. Il permit aussi l’éclosion du compositeur Ennio Moriconne et de nombreux techniciens talentueux qui intégrèrent ensuite les studios. Hollywood s’est construit en incorporant des talents venus de studios étrangers. Pour que ce système perdure, encore faut-il qu’il subsiste des studios étrangers. Aujourd’hui à Almeria, on tourne surtout des publicités, des clips et des téléfilms. Un tel miroir manque cruellement à l’Amérique qui peine à sortir de schémas qui s’épuisent. En étouffant les cinémas locaux pour conquérir le marché mondial, les studios se sont privés sur le long terme d’influences indispensables à leur propre renouvellement. Cet aspect du problème est trop souvent absent du débat sur les quotas en Corée. Il ne s’agit pas de défendre égoïstement un cinéma national, mais de préserver un flux d’idées, une indispensable circulation d’influences qui permet de créer d’autres Almeria : carrefours bénéfiques à tout le monde et notamment au cinéma américain. Adrien Gombeaud Journaliste et critique de cinéma à la revue Positif.

일본 방송 교양프로그램 전면 개방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2006년 전면 개방 생활정보 등을 담은 일본 방송의 교양프로그램이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 개방된다.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은 30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방송과 애니메이션 분야에 대한 일본대중문화 4차 추가개방계획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케이블TV 및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매체를 우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면 개방하고, 라디오를 포함한 지상파방송은 국민정서와 청소년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해 일부 장르만 확대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지상파 방송은 생활정보 등 교양프로그램, 국내 영화상영관에서 개봉된 영화를 전면 개방한다. 드라마는 한.일공동제작드라마에 한하여 개방하고, 일본어 가창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일본대중가수 공연의 중계방영 및 일본가수의 국내방송출연 가창만 허용하기로 했다. 지상파방송의 경우 전면 개방된 교양프로와 영화 등은 한국어 더빙을 권고하기로 하고, 일본어 가창 뮤직비디오의 방영은 불허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버라이어티쇼, 토크쇼, 코미디 등 오락형 프로그램의 지상파방송 개방은 다음으로 미뤘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2006년 1월 1일 전면 개방키로 했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생활정보 등 교양프로그램, 국내 영화상영관에서 개봉된 영화 및 극장용 애니메이션, 일본어 가창 등 대부분의 방송프로그램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 드라마는 '모든 연령 시청가' '7세이상 시청가' '12세이상 시청가' 등급 및 한.일 공동제작 드라마에 국한하여 부분 개방하기로 했다. 버라이어티쇼, 토크쇼, 코미디 등 오락형 프로그램은 다음에 개방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9월 16일 일본대중문화 4차 개방계획을 통해 영화, 음반, 게임 부문을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개방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연말에 발표하기로 했다가 이날 발표했다. 이 장관은 향후 5차 개방조치를 통해 방송부문을 전면 개방하되, 4차 개방에 따른 국민정서 및 청소년에 대한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해 전면 개방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다음은 이창동 장관과의 일문일답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외국에서 호평받고 한국영화가 발전한 것이 일본대중문화 확대 개방에 영향을 끼쳤나.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일본대중문화는 우리문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개방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전향적인 개방자세를 갖는다면 일본 국민들이 우리문화를 쉽게 받아들이는 긍정적 측면은 있다고 본다. 이번에 방송부문을 전면 개방하지 못한 이유는. 방송은 안방에 바로 전달되는 매체다. 국민정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신중하게 문제를 대했다. 저희 판단으로 볼 때 이번에 개방을 발표한 분야는 문제가 없겠지만, 지상파방송과 일부 케이블TV의 오락프로 등에서는 국민정서상 일본대중문화를 받아들일 완충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방송계와 방송위원회의 의견이었다. 다음번 방송개방은 전면 개방한다는 원칙하에 이 문제를 협의했다. 5차 개방시기는 언제쯤으로 잡고 있나. 4차 개방에 따른 영향평가를 면밀히 검토한 뒤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전면 개방 시기를 2006년 1월 1일 이후로 잡았는데, 5차 개방은 그 후에 이뤄지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개방을 2년간 유예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태동단계인데다 창작기획력의 제고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 업계에 미칠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 업계의 의견을 신중히 수렴해 이같이 결정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개방시기가 방송 전면 개방 시기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방송의 전면 개방 시기는 2006년 이전일 수도 있다.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대부분 전면 개방하고 지상파방송은 부분 개방했는데 매체를 굳이 나눈 이유는.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 등의 영향력 차이 때문이다. 지상파방송의 개방범위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지상파방송의 심의 기능을 신뢰할만 하기 때문에 (전면 개방을 할지라도) 그렇게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봤지만 방송계와 방송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해 이같이 결정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개방시기는 2006년 1월 1일로 확정했나. 그렇게 합의했다. 일정은 지킬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내년에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것으로 보인다. 한일간 정치적 상황이 개방조치에 영향을 끼치나. 관계가 악화되면 개방을 취소할 수도 있나. 정치적인 것이 양국간 교류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고 본다. 대중문화는 국민정서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다. 국민정서가 나빠지면 대중문화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다. 그런 불행한 일이 없기 바란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교류행사 등으로 양국간 이해와 교류가 증진됐다고 본다.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는 공동연구를 통해 양국 교과서에 반영하기로 했고, 신사참배 문제도 제3의 추모장소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감독의 진심과 아쉬움이 담긴, <선택>

1951년 유엔군에 체포되어 국내에서 장기 투옥생활을 한 비전향 양심수 김선명의 45년 세월을 103분 동안 담은 <선택>은 반자본주의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상으로 중무장한 무거운 영화도 아니다. <선택>은 밖으로는 사상의 자유를, 안으로 소박한 인간 양심의 자유를 요구한다. 광복절 특사로 출옥하는 김선명을 바라보는 교도소장 오태식이 오히려 수감되는 것처럼 처리한 장면을 통하여 감독은 관객에게 인생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0.75평에 갇혀 산 평범한 사내의 인생이 잊혀진 양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뒤흔든다. 70살이 되어 출옥한 김선명이야말로 청년의 꿈을 늙어서까지 변함없이 지켜간 영원한 청년이다. 그러한 청년이 더이상 감옥에서 탄생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좀더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DVD를 재생하면 최초로 떠오르는 유니버설의 로고에 타이틀을 잘못 집어넣었나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선택> DVD가 직배사인 유니버설에서 출시되는 최초의 로컬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유니버설은 향후 지속적으로 국내 타이틀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프닝 화면은 극장 상영시의 푸른색 톤과는 달리 흑백 톤으로 색보정이 되었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선택>은 일반 상업영화 못지않은 화질을 보여준다. 굳이 문제점을 지적하라면 최신 영화답지 않게 작은 알갱이 모양의 노이즈가 과다하게 눈에 보인다는 점과 텔레시네 과정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장면 전환시 잠시 화면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현상 정도뿐이다. 소량의 국악기와 서양악기로 연주된 스코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5.1채널을 이용하고 있어 만족도는 높으나 중반 이후 두번가량 사운드가 끊어지는 흠이 있다. 서플먼트로는 1회 세네프에서 상영된 33분 분량의 단편 <바람이 분다>, 메이킹 필름, 영화 관계자들의 인터뷰 영상 그리고 텍스트로 꼼꼼하게 짜여진 ‘영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김선명 역을 맡은 김중기와 함께하는 코멘터리에서 감독은 좀더 많은 관객과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한다. ‘메이킹 필름’을 선택했는데 영화 본편이 상영되는 서플먼트 메뉴의 오류가 있다. 조성효 2003년 I 홍기선 I 103분 I 1.85:1 아나모픽 I DD5.1 한국어 I 영어 I 유니버설 ▶▶▶ [구매하기]

진지함의 결핍, 치명적 오류 <루니툰 : 백 인 액션>

실사와 만화의 결합 <루니툰: 백 인 액션>이 놓친 것 <루니툰> 시리즈는 1960년대에 끝났지만, 벅스 버니, 대피 덕, 포키 피그와 같은 스타들의 명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루니툰> 시리즈는 텔레비전을 통해 끝도 없이 방영되며 새로운 팬들을 얻어갔고 스타들의 명성은 늘 신선했다. 그렇다면 워너사에서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려고 시도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은 단편 주인공들인데, 일반 극장용 단편애니메이션은 거의 사멸하다시피한 장르이다. 그렇다고 장편을 만들자니 셀애니메이션영화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고 또 이들은 장편 이야기엔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루니툰: 백 인 액션>은 그 해결책이었다. <루니툰>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대신 그들이 나오는 실사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워너가 <스페이스 잼>에서 이미 한번 시도한 적 있는 이 방식은 두 가지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기원은 모두 한 사람, 스티븐 스필버그로 연결된다. 1980년대 말, 스티븐 스필버그는 게리 K. 울프라는 작가가 쓴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라는 제목의 페이퍼백 추리소설을 영화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울프의 소설은 평범한 하드보일드 탐정물이었지만 한 가지 특이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험프리 보가트와 같은 실존인물들과 만화 캐릭터들이 공존했다. 울프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건, 이 이야기가 활자매체인 책보다는 영상매체인 영화에 더 어울린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였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감독하에 만들어진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성공작이었다. 그건 저메키스의 빛나는 코미디 감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리처드 윌리엄스라는 걸출한 애니메이터의 공로이기도 했다. 그는 순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2차원의 납작한 캐릭터들을 3차원의 실사세계에 어울리게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윌리엄스가 그린 캐릭터들은 평면 그림의 과장과 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럴싸한 3차원의 착시도 연출해낼 수 있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실사와 만화의 결합이라는 기술적 시도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쿨 월드> <스페이스 잼> <록키와 불윙클>처럼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텔레비전물, 광고물들이 만들어졌다. 오늘 이야기할 <루니툰: 백 인 액션>도 그런 시도들 중 하나이다. 부서지고 재조립된 <루니툰>의 전통 그러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을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이 기술적 실험은 사실 애니메이션영화라는 장르가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존재했다. 월트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로 유명해지기 전에 앨리스라는 소녀를 등장시킨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단편들을 만들어왔다. 어느 정도 기술이 성숙해지자 영화사들은 자사의 애니메이션 스타들을 자기네들이 만든 영화들에 출연시켰다. MGM에서 만든 뮤지컬영화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가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 진 켈리는 <톰과 제리>의 제리와 춤을 춘다. 켈리는 이 경험이 마음에 들었는지 에서 애니메이션과의 댄스를 다시 시도한다. 좀더 막강한 스타진을 가지고 있던 워너브러더스에서도 여러 편의 시도가 있었는데, 벅스 버니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도리스 데이 주연의 뮤지컬 가 그들 중 하나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혁명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양적인 면만 따진다면 할리우드는 그 이전에도 상당한 수의 실사·애니메이션 합성영화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정말로 중요했던 건 기술적 시도가 아닌 그 스타일이었다. 윌리엄스의 실험은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테크닉은 다른 방식으로도 쉽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된 <록키와 불윙클>은 얼핏 보면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처럼 셀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컴퓨터그래픽이다. 컴퓨터그래픽의 발달로 충분한 인력과 돈만 있으면 마음먹은 것을 무엇이든 시각화할 수 있는 시대에 윌리엄스의 소박한 수공업 테크닉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블루스크린이 블록버스터영화의 필수도구가 된 21세기 초의 할리우드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아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에 나오는 골룸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더 정교화된 로저 래빗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골룸과 같이 화면을 나누어쓰는 엘리아 우드와 숀 어스틴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밥 호스킨스나 <루니툰: 백 인 액션>의 브랜든 프레이저와 거의 같은 연기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다. <스페이스 잼>이나 <루니툰: 백 인 액션>과 같은 영화들과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한 영화들의 차이점은 전자들이 애니메이션을 사실로 위장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다루는 편리한 방식의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린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작 총지휘를 맡은 스필버그의 다른 애니메이션 시리즈들과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연관성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그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성공 이후 만든 텔레비전 시리즈, 특히 <타이니 툰 어드벤처>와 <애니매니악스>는 스필버그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유산을 텔레비전에서 재활용하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해도 된다. <타이니 툰 어드벤처>에서 스필버그는 <루니툰> 캐릭터들에 대한 거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이 시리즈의 무대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툰타운과 거의 같은 곳인 애크미 동산(Acme Acres)이고 캐릭터들은 애크미대학(Acme Acres Looniversity)에 다니는 어린 만화 캐릭터들이다. 오리지널 루니툰 캐릭터들을 좀더 어리게 만들고 성별을 다양화하고 약간의 정치적 공정성을 첨가한 이 캐릭터들은 모두 철저하게 <루니툰> 전통을 이해하고 있다. 사실 벅스 버니나 대피 덕과 같은 클래식 주인공들은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캐릭터들이 실사와 애니메이션 세계를 오가는 것처럼 <타이니 툰 어드벤처>의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간다. 과거의 <루니툰>은 그들에게 현실 세계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필름 도서관에서 구해볼 수 있는 허구이기도 하다. 벅스 버니는 그 캐릭터로서 실존인물이지만 동시에 영화스타이기도 하다. 이들의 뒤를 이은 <애니매니악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초기 <루니툰> 캐릭터들을 흉내낸 와코, 야코, 도트 워너 남매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필름들이 공개되지 못하고 워너브러더스 급수탑에 감금되었다가 90년대의 현대가 되자 다시 탈출한 말썽꾸러기들이었다. <타이니 툰 어드벤처>가 존경스러운 스승들을 모방하고 따라했다면, <애니매니악스>의 워너 남매들은 가짜 역사를 만들고 그 과거를 현대와 결합시켰다. <루니툰: 백 인 액션>은 스필버그의 품 안에서 창조된 것이나 다름없는 애크미 동산과 툰타운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물론 우린 조 단테가 한동안 ‘스필버그 사단’이라는 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 영화에서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은 캐릭터이자 그를 연기하는 같은 성격의 배우들이다. 그들은 모두 <타이니 툰 어드벤처>나 <애니매니악스>에 나올 법한, 구식 스튜디오 시스템을 흉내내고 있는 워너브러더스사의 고용 배우들이고 브랜든 프레이저와 같은 실존 인물들이나 프레이저가 연기하는 DJ와 같은 현실세계의 가상 인물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루니툰>의 전통은 부서지고 재조립되며 복잡한 풍자와 패러디로 가득 찬 장편영화의 부속품이 된다. 이로써 어떻게 하면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이 주인공인 7분짜리 액션의 불연속성을 장편영화의 플롯과 결합시키고 극장용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인기 잃은 구경거리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문제는 형식적으로나마 해결이 된다. 무게 잃은 실사, 순수성 잃은 애니 그러나 그것이 완성도로 연결되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루니툰: 백 인 액션>은 성공적인 전작들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진지함이다. 여기서 진지함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해야 할 듯하다. 워너브러더스의 클래식 걸작 단편들은 모두 지독하게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건 이 만화들의 어처구니없는 부조리함과 우스꽝스러운 폭력, 인용들이 모두 단도직입적인 진지함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도는 덜했지만 <타이니 툰 어드벤처>와 <애니매니악스> 역시 진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경박한 농담을 던지고 생각없이 옛 캐릭터들을 현대화시키는 동안에도 <시민 케인>과 <우주의 침입자>와 같은 고전들을 전문 영화사가 수준으로 패러디하고 초창기 워너브러더스의 잊혀진 캐릭터들을 재발굴하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경쾌한 어린이 시리즈들은 어떻게 보면 <루니툰>과 스튜디오 시대의 할리우드에 대한 심각한 영화비평서와도 같았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역시 진지한 영화였다. 영화는 클래식 만화주인공들을 총동원해 어처구니없는 농담들을 터뜨리는 동안에도 훌륭한 필름누아르의 골격을 유지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코미디로서도 진지했고 필름누아르로서도 진지했다. 하지만 <스페이스 잼>에서 망가진 <루니툰>의 캐릭터들에게 원래의 모습을 돌려주려고 했던 조 단테의 시도는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무너지고 만다. 단테가 성공적으로 두 장르를 결합했다고 자부했을 그의 형식이 그런 진지성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실사 부분은 <루니툰>을 흉내내는 동안 고유의 무게를 잃었다. 애니메이션 부분은 실사에 삽입되는 동안 원래의 순수성을 잃었다. 그러는 동안 둘은 모두 진지한 패러디의 가능성을 잃었고 리처드 윌리엄스식으로 입체화된 <루니툰>의 캐릭터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모사가 된다. 앞에 언급된 영화들은 모두 이런 문제점을 교활하게 피한 작품들이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와 <애니매니악스>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유명한 캐릭터들을 조연이나 카메오로 배치했다. <타이니 툰 어드벤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도직입적인 패러디였다. <루니툰> 캐릭터들은 과거의 명성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옛 명성과 스타일의 모사 이상이 필요하다. 전통의 회복이나 새로운 스타일의 발굴 어느 쪽이 나서야 할 때다. 슬프게도 <루니툰: 백 인 액션>은 어느 쪽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6]

아시아 문화산업의 재편 최근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2003년 봄호에 아시아영화에 대한 특집을 기획, 편집하면서, 미국의 새로운 웹진 <트랜스-아시안 스크린즈>(Trans-Asian Screens)에 초청 편집자로 참여하면서, 공동 편집자인 아쉬쉬 라쟈디약샤 그리고 크리스 베리 교수와 함께 아시아영화의 쟁점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 쟁점은 문화산업의 재편이다. 즉, 이제까지 영화산업에 대한 영화연구가 산업자본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지역 블록버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틀은 금융자본이며 이것은 문화산업을 3H, 즉 고비용, 고도의 기술, 고도 투기의 장으로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충무로 양식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또는 황실주도의 영화제작이 타이형 블록버스터로 그리고 인도의 소자본 영화산업이 발리우드로 변하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그래서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아시아영화 특집으로 ‘문화산업, 정치사회 그리고 시네마’라는 제목으로 인도의 B급영화 배급 유통에서 컬트화되는 홍콩 액션영화, 인도영화의 발리우드라는 글로벌화와 지역적 정치 쟁점의 소멸, 스리랑카 텔레드라마가 보여주는 인종적 갈등, 마르코스 이후의 필리핀의 정치영화 및 대만의 여성영화제, 한국의 김동원과 오가와 신스케의 아시아적 양식의 다큐멘터리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발리우드 그리고 타이 블록버스터 등과 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경합에 주목했다. 문화산업의 재편에 이어 두 번째 논점은 아시아 내부에서 유통되는 문화상품과 영화의 문제다. 일본, 홍콩, 한국과 같은 곳의 대중문화가 아시아의 젊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제작과 배급에 동아시아의 공동 프로젝트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트랜스 아시아 미디어 연구를 제안하는 고이치 이와부치 교수는 메이저 광고회사에서 실시한 2001년 조사는 동아시아 도시들의 젊은이들이 일본 소비문화와 상품을 미국 소비문화의 상품보다 “쿨”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아시아라는 지역에서 미국 주도의 대중문화의 탈중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화쪽으로 보면 인터-아시아적 교류의 역사는 사실 전면화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 그렇지 이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다. 60년대 홍콩 캐세이영화사와 일본 도호영화사의 합작인 홍콩 삼부작 또 정창화 감독과 호금전으로 대표되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들이 그것이다. 또, 60년대 일본 닛카쓰영화사의 사무라이 활극이 홍콩 액션영화만이 아니라 타이, 필리핀 등에 끼친 파급력은 현재 일본 팝(J-pop), 재패니메이션만이 아니라 인터-아시아적 교통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한류의 전사(pre-history)를 이루고 있다. 한국, 홍콩, 타이 3개국의 감독들이 참여한 <쓰리>와 같은 영화는 인터-아시아의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또한 최근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 영화는, 산업적 관점을 떠나 아시아영화의 정신적 지형과 유산을 그려내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아시아간 대화의 틀 아시아 영상문화에 관계된 세 번째 쟁점은 영화라는 매체를 넘어 각종 스크린들을 포함하는 확장된 영화연구, 스크린문화연구의 필요성이다. 즉 이제까지의 시각 혹은 영상문화연구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확대된 영역을 상정했다면 스크린문화연구는 전자 스크린 위의 영상문화, 즉 모바일영화나 LCD 스크린과 같은 것을 다루게 된다. 특히 일본, 한국, 대만의 인터넷과 모바일폰 문화의 급성장과 확장은 이러한 새로운 스크린문화를 다룰 수 있는 연구의 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스크린 문화의 특징은 영화와 디지털 기술을 횡단한다는 것이다. 트랜스-스크린 문화연구는 지역 블록버스터영화들(홍콩, 중국, 인도, 남한)과 아트하우스영화(대만과 이란영화)를 포함한 급증하고 있는 인터-아시아 문화적 교통, 스크린 문화에 대한 인식이자 그에 대한 반응이다. 특히, 인터-아시아 블록버스터들은 재구성되고 있는 할리우드 문화산업에 대한 도전이며 지역적 또는 하위-글로벌(regional)한 흐름을 재고하게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영화적 장치의 계보학은 산업 자본주의하에 구축되었다. 우리는 글로벌 공간의 변화하는 정치경제와 그것의 변형들과 관련하여 이 장치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때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입장에서 보자면 인터-아시아라는 매개항은 새로운 방법이며 지도이며 꿈이다. ‘동방불패’라는 것은 영화에서 신화로만 존재하지만, 제국주의와 냉전도 침묵시키지 못한 소란한 역사의 유령은 이제 아시아간의 소통으로 깨어나고 있다. 허우샤오시엔이 오즈 야스지로에게 말을 걸 때, 그리고 일본 전후 사회를 통렬하고 재기있게 비판했던 기노시타 게이스케의 작품을 보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생각할 때, 19세기 말 이후 단절되었던 아시아간의 대화는 시작된다.

생존의 스타일화, <라스트 사무라이>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임오군란을 겪는 이야기 같다”고 한다면, 엉뚱하긴 해도 얼토당토않은 강변은 아니다. 미국의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대위는 1876년의 일본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갑자기 뛰어들어 예기치 못한 모험을 겪는 ‘앨리스’다. 그리고 ‘앨리스’를 좌충우돌하게 만드는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구한말 임오군란과 닮은꼴이다. 구한말 찬밥신세로 떠밀리는 구식군대와 그들의 정치적 지도자는 개화파와 일본의 파트너십이 주도하는 정국에 반기를 들었다가 결정타를 맞고 소멸해간다. 메이지 천황의 배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는 개화파에 반기를 든 ‘라스트 사무라이들’의 운명이 딱 그 신세다. 알그렌 대위가 앨리스와 결별하는 지점은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칼잡이들에게 감화감복돼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맞이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는다는 거다. 그가 겪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모험은 자기 의지로 가속화된다. 알그렌은 어른이고 군인이며 알코올에 찌든 남자다. 그는 폐부 깊숙히 파고든 정신적 상흔을 치유할 길을 찾지 못한다. 이것이 생물학적 차이를 떠나 앨리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알그렌을 지배하는 건 아이와 여자들까지 모조리 학살한 인디언 토벌 작전의 기억이 낳은 죄의식이다. 학살을 무공으로 바꿔준 상관이 일본인 관료와 함께 찾아온다. 서구식 군대 제도와 무기로 신식 군인을 양성하는 교관이 돼달라는 요청이다. 대가는 돈이다. 알그렌이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알그렌 대위가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 한 일은 메이지 황제를 알현하는 것이다. 황제가 묻는다. 인디언들이 어땠냐고. 그들은 용감했다, 는 알그렌의 대답은 사무라이를 향한 그의 태도를 일찌감치 규정해준다. 자신이 초토화한 인디언 마을과 용감했다는 인디언 전사들의 대리물 속에서 죄의식을 씻어내는 일 말이다. 그 대리물은 사무라이 마을과 사무라이 정신이다. 알그렌 대위는 미숙련 신식군대를 이끌고 개화파의 정적을 처단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사무라이와 첫 전투를 벌인다. 거기서 포로가 되고 적의 소굴로 끌려간다. 천진난만하지만 야무지기 그지없는 아이들과 남편을 죽인 포로조차 지극정성으로 돌볼 줄 아는 절대복종의 여자, 자결조차 성스런 행위로 내면화하고 절도와 충성으로 똘똘 뭉친 칼잡이들이 알그렌의 몸과 마음을 서서히 정화시켜준다. 함께 피투성이가 되고 무수한 살을 베어내는 방식으로. <라스트 사무라이>가 일으키는 호기심은 알그렌이 사무라이에게 동화되는 이유와 과정에 있을 것이다. 톰 크루즈가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사무라이의 세계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사무라이에게 심취한 방식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은 불가해하다. 난 교회를 다닌 적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영적이다”라고 하는 알그렌이나 “존재의 의미를 아는 게 무사도야”라고 나직이 내뱉는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 카츠모토(와타나베 겐)의 말은 숙연하고 거창하다. 그러나 그건 ‘폼’일 뿐이다. 카츠모토가 겁나게 쌍칼을 휘두르지만 정작 대화를 좋아하고 유머를 즐긴다는 진면목이나 “생각이 너무 많아요. 마음을 비워요”라고 훈수를 두는 젊은 사무라이의 호의가 힌트처럼 이어지지만 그것이 ‘폼’의 알맹이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라스트 사무라이>에는 칼잡이들의 ‘생존의 스타일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타자, 할리우드 시스템의 주축인 톰 크루즈라는 타자가 골라잡은 것으로만.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과 죽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복종과 헌신, 그러한 이중성이야말로 일본 문화의 핵심 코드이자 이 영화의 언어”라고 했다. 그래서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죽음을 선택할 줄 아는 자다. 어디까지가 사무라이 정신이고 어디부터 사무라이 스타일인지 구분한다는 게 애초부터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스타일의 소비가 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니까. 그래도 사무라이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는 건 불편한 일이다. 칼 든 마초의 비장미를 숭상하는 정서나 스타일의 진부함은 모두 시대와 거꾸로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두 개의 일본도와 한벌의 기모노 <라스트 사무라이의 일본 배우들> <라스트 사무라이>에는 수백명의 일본인이 등장하지만, 단연 세명의 일본 배우가 돋보인다. 카츠모토 역의 와타나베 겐, 카츠모토의 누이인 타카 역의 고유키(사진), 톰 크루즈를 흠씬 두들겨패는 우조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 카리스마 넘치는 와타나베 겐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82년 텔레비전에 발을 들여놓았고 1987년 NHK의 사무라이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력에서 현대극과 사극을 반반으로 나눠온 그는 사무라이 정신을 칭송한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사무라이 정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사무라이 정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성과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다. 이건 정직, 겸손, 자긍심과 부끄러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이런 가치들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일본의 역사와 전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조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는 말보다 행동으로 사무라이 정신을 드러내며 전사로서의 단단함을 과시한다. 아닌 게 아니라 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무술을 익혀왔다. 무엇보다 그는 1999년 반년 동안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일원으로 런던 무대를 밟은 정상급 연기자다. <리어왕>에 출연한 뒤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그러나 <라스트 사무라이>에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카츠모토와 달리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영화의 배경으로 깔린 역사의 의미를 영화와 이렇게 연결짓는다. “메이지 시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서구에 문호를 열었고 많은 서구 문화가 일본이란 지역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런 두개의 문화가 협력해 위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도쿄 거리 세트에는 서구적 빌딩과 일본의 전통가옥이 혼재하며, 기모노를 입은 사람과 서구식 양복과 모자를 쓴 이들이 뒤섞여 있다. 그 세트와 이야기가 잘 중첩돼 어울렸다고 느꼈다.” 타카 역의 고유키는 시나리오 원안에선 카츠모토의 딸이었다. 그건 이름을 부르는 일본어와 영어의 차이, 즉 카츠모토 모리와 모리 카츠모토의 혼동 같은 것이었다고 와타나베는 말했다. 아무튼 타카와 알그렌 대위는 은밀히 서로에게 빠져드는데, 그 모습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 서구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패션잡지 <논노>의 모델 콘테스트에 뽑혀 모델로 활동하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숨어 있는 퀴어 코드를 찾아서

한 남자가 한 남자를 꼬신다. 그것도 얼굴을 맞대고. 먼저 꼬심을 당하는 남자가 근심어린 얼굴로 말문을 연다. “괜찮을까”. 단호한 표정으로 꼬시는 남자가 대답한다. “더 좋아.” 잠시 두 남자 사이에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마침내 꼬심을 당하던 남자는 결심을 굳히고, 환한 얼굴로 묻는다. “바꿀까?” “기회야.” 두 남자를 클로즈업했던 카메라가 빠지자 꼬심을 당하던 남자가 철장에 갇혀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가 철장을 훌쩍 뛰어넘어 꼬시던 남자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두 남자가 머리를 비스듬히 맞대며 환한 미소를 짓는 헤피엔딩. 이들을 축복하는 마무리 자막이 뜬다. ‘have a good time’. 어라, 좋은 시간을 가지라고? 남자 둘이서? 때맞춰 “굿타임 찬스”라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바꿀 기회”라니. 무엇을 바꿀 타임? “괜찮을 뿐 아니라 더 좋다”니. 뭐가 더 좋다는 거지? 더구나 근심말고 넘어 오라니. 이성애에서 동성애로? 이건 완전히 커밍아웃하라는 거군. 철창을 나오자(coming out) 저토록 행복해하다니. 이건 15초짜리 퀴어드라마다. 선남선남(김민준과 유진)을 캐스팅한 초절정 퀴어 광고다. 마지막의 KTF 로고만 없으면, 번호이동제 광고라는 컨셉만 지워버리면. 하긴 중간에 분위기 깨는 설왕설래도 있다. “전화번호는?”, “그대로야”, “단말기 값은?”, “걱정마”. 그러나 그 깨는 말조차 ‘서글픈 유혹’의 은유로 들린다. 그 은유를 퀴어적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내 삶은?”, “그대로야”, “희생은 없을까?”, “걱정마”. 자, 사시눈을 뜨고, 억하심정을 억누르지 말고, 텔레비전 속에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보자. 이따금씩 광고에서, 엉뚱한 드라마에서 숨겨진 동성애 코드를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어떤 사람들은 <순풍산부인과>의 권오중과 이창훈을 게이 커플로 ‘단정했다’.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둘 사이가 장난이 아니다. 일단 둘은 한 지붕 아래 동거한다. 날마다 붙어다닌다. 여자들과 어울릴 틈도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날마다 티격태격이다. 이 티격태격은 형, 동생 사이를 가장한 사랑 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오중이는 창훈이가 조금만 소홀하면 금방 삐친다. 오중이는 또 영란(허영란)의 집요한 구애를 한사코 마다한다. 마침내 이 커플은 오중이의 조카 의찬이까지 키우며 ‘대안 가족’을 완성했다. 물론 이창훈이 호감을 갖는 혜교(송혜교)처럼, 건강 사회와 건전 시민을 위한 ‘안전장치’도 없지는 않았다.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단짝으로 나오는 연생이(박은혜)의 캐릭터에도 레즈비언 코드가 숨어 있다. 연생이는 장금이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꼭 장금이 옆에서 자려고 한다. 그런데 잠만 자는 것이 아닌 게 문제다. 연생이의 ‘손버릇’은 나인 동기인 영로의 말로 탄로난다. 최 상궁의 밀정으로 장금이 방으로 거처를 옮긴 영로. 영로는 이부자리를 내려놓고 연생이를 째려보며 “너 내 몸 더듬거리며 죽어”라고 커밍아웃시켜버린다. 그 전에도 장금이가 잠결에 자신을 더듬거리는 연생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애틋한 장면이 나왔다. 장금이에 대한 연생이의 연모의 정은 여고 시절 반 친구에게 집착하는 소녀적 동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푼수인 연생이는 장금이뿐 아니라 수라간 최고상궁이었던 정 상궁에게도 의지해 하루하루를 헤쳐간다. 그랬던 연생이가 임금의 ‘승은’을 입었다. 연생이의 팬으로 감축드려야 마땅하나 그의 성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대장금> 초반부에는 동성애를 뜻하는 ‘대식’이라는 말이 나온 적도 있다. 장금이와 그 동기들이 생각시에서 나인으로 승급하던 날, 훈육상궁이 나인들을 모아놓고 궁중생활의 ‘가이드 라인’을 알려주었다. 그중에 “대식을 하지 말 것이며”라는 구절이 나왔다. 대식이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여성 동성애를 일컫는 말이었다. 마음 약한 연생이가 얼마나 찔렸을까? 돌아보니 가슴 아프다. 그뿐이 아니다. “난 네가 필요해”, “나는 너와 함께 있으니 외롭지도 춥지도 힘들지도 않구나”. 이 절절한 대사는 민정호(지진희)가 장금이에게 한 것이 아니다. 한 상궁이 장금이에게 쏟아낸 고백이다. 역시 사시눈으로 보면, 장금이와 한 상궁의 자매애도 심상치 않다는 오해를 할 만하다. 이런 절절한 대사와 넘쳐나는 자매애 탓에 <대장금>은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초절정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대략 황당하다고?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좀 삐딱하게 텔레비전을 보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상상하는 만큼 즐거운 법이다. have a good time.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