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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인터뷰] 홍콩영화 출연하는 이효리

인기 가수 이효리가 스크린을 통해 중화권 공략에 나선다. 이효리와 소속사 DSP엔터테인먼트는 7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홍콩의 연예기획사 '엠퍼러(英皇) 그룹'과 올해 안에 영화 두 편에 출연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출연료는 100만 달러(약 12억원) 이상이며 상대 남자 배우로는 성룡(成龍)이 호흡을 맞출 예정.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고 촬영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시나리오가 나온 뒤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엠페러 그룹은 50여명의 가수와 탤런트를 거느리고 있는 유력 연예기획사. 이날 계약은 DSP의 이호연 대표와 엠퍼러 그룹의 앨버트 영(楊守成)회장이 지난해 11월 이효리가 출연한 홍콩의 `하버페스트' 축제에서 만난 인연으로 성사됐으며 앨버트 영 회장은 6일 내한해 이효리 측과 구체적인 협의 작업을 벌였다. 엠퍼러 그룹의 앨버트 영 회장은 "이효리가 중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중국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기질을 갖고 있다"며 "한국의 문화 아이콘인 이효리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 스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들과 이효리의 일문일답. 첫 영화가 홍콩 영화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촬영 일정이 유동적이니 만큼 이미 출연하기로 한 <삼수생의 사랑이야기>가 첫 영화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영화 출연에 관심은 많았지만 가수 활동에 대한 부담도 있었고 작품 선택에 고민도 많았다. 솔직히 말도 안 통하고 그쪽 문화도 잘 모르니까 외국 영화에 출연하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은 크지만 열심히 하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고 생각한다. 게다가 가수라는 이미지가 굳혀지지 않은 홍콩에서 첫 영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출연하기로 한 두 편의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 아직 확실히 결정되지는 않았다. 서극(徐克)감독이 준비중인 <이니셜 D>(Initial D)와 성룡의 액션영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니셜D>는 이르면 2월 말이나 3월 초께 촬영 일정이 나올 것 같다. 성룡과는 구두로 함께 출연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영화 촬영 시기는 소속사가 결정한다는 조건이 계약에 포함됐다. 성룡과 연기를 하게 된 소감은? ▲어려서부터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봐오던 유명한 분이며 홍콩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대스타다. 같이 일하게 된 것은 큰 부담이면서도 너무나 큰 영광이다. 출연 작품이 아직 유동적이다. 어떤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나? ▲액션영화에 나오는 몸매 좋은 양념 역할은 사실 관심이 없다. 내 능력과 `끼'와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면 OK다. 앞으로 가수 활동은 어떻게 벌일 계획인가? ▲영화 출연을 결정하기 전부터 한 생각이지만 2집을 낼 계획은 당분간 없다. 솔로 1집을 낸 후 부족한 점을 많이 발견했고 한동안 단점을 보완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영화 촬영 기간이 홍콩 관행으로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한 편을 끝내고일지 두 편 다 마친 다음일지, 2집 음반을 낼 시기는 유동적이다. 영화 출연 준비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어학이나 연기 공부를 위해 개인교습 받을 생각이다. 외국어 선생님을 하루 20시간 이상 붙어 있게 하면서 어학 공부를 하고 있다. 또 연기 수업도 별도로 받겠다. (서울=연합뉴스)

2004년 한국영화 트렌드 [5]

<내 사랑 싸가지> 신동엽 감독 톡톡 튀는 10대 아이들의 캐릭터 인터넷 소설의 인기에 신호탄이 된 이햇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등학교 3학년생 하영이 남자친구에게 차인 화풀이로 찬 콜라캔이 외제차에 흠집을 내면서 하영과 형준의 노비 관계가 시작된다. 명품족 형준은 돈이 없다는 하영에게 100일 동안 노비가 될 것을 강요한다. 둘 사이에 벌어지는 옥신각신 전투가 곧 사랑의 감정을 가져오게 된다.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하는 2004년의 첫 번째 작품. -왜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인터넷상에서 노출이 많이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부분 하이틴이 직접 쓴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이 있다. 아마도 인터넷상에서 인정받은 그 인지도를 상업적으로 연관할 수 있다는 가능성때문인 것 같다. -원작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는가. =너무 십대, 중고생 위주의 이야기라서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잘 맞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중고생 시절과는 차이가 많이 느껴졌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거기에 담겨 있는 사랑 이야기였다. 캐릭터가 생생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는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드는 영화, 원작의 기획력만을 갖고 만드는 영화. 내 영화는 후자쪽이다. 영화와 책의 드라마구조는 다르다. 영화적인 옷을 입혀야 하는데, 기승전결 구조가 그 기본이다. 원작에는 갈등구조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원작이 그대로 영화가 되기를 바라는 독자층에 영화를 맞출 순 없었다. 읽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인터넷 소설 붐이 막 일어날 때 나왔다. 그 영화가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지금은 다른 것 같다. 인터넷 소설이지만 완성물은 별개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기존에 원작에 충실했던 영화와는 그 점에서 차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소설이라고 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별개의 하이틴영화로 봐줬으면 좋겠다. <그놈은 멋있었다> 이환경 감독 편한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인터넷 인기작가 귀여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외모도 멋지고, 싸움도 잘하는, 그래서 인기도 많은 꽃미남 지은성과 평범하게 생긴 여고생 한예원과의 엎치락뒤치락 사랑 이야기. 어쩌다 실수로 한예원과 입맞춤을 하게 된 지은성은 예원에게 그의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한예원은 인기 좋은 지은성의 제안이 못내 의심스럽기만 하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여주인공 정다빈이 한예원 역을 한다. -왜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간략하게 말해서 친근감이다. 가장 친한 사람들끼리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원작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는가. =처음엔 거부감도 있었다. 이거 애들 장난 치는 것 아닌가. 문학적인 완성도도 떨어지고. 나도 안티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도 안 읽어보고 있었다. 연출할 생각으로 책을 본 게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 보게 됐다. 그런데 6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편한 친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만 갖고 그대로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생길 정도였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 =삼각관계에 중점을 뒀고, 멜로코드를 넣었다. 캐릭터의 발랄함을 꾸미는 경우에도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리얼리티를 가미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앞뒤 장치를 많이 뒀다. 또,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더 보여주려 했다. 예를 들면, 원작에는 지은성이 여자들을 때리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용납이 안 되더라. 그래서 구타 묘사를 병원 창문을 부수는 것 정도로 바꿨다. -기존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엽기적인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업그레이드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교훈적인 내용을 강조하기보다는 놀이터를 만든다는 기분으로 풀어갈 것이다. 물론 어떤 답습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엽기적인 그녀>에도 진지함이 있었지만, 그것이 에피소드의 진지함이었다면 그것과는 상반된 구조의 진지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늑대의 유혹> 김태균 감독 어느 순간 끌어당기는 대사와 감정 인터넷 인기작가 귀여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강신고와 성권고의 ‘짱’, 반해원과 정태성은 동네에서 소문난 킹카들이다. 이들이 서울로 전학온 ‘평범한’ 여학생 정한경과 만나면서 서로 연적이 되어 사랑 쟁탈전을 벌인다. 반해원과 정태성의 사랑공세에 한경은 어리둥절하고,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무협영화 <화산고>를 만들었던 김태균 감독이 각색과정을 거쳐 현재 촬영을 진행 중이다. -왜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인터넷 소설들을 읽어보질 않았다. 귀여니의 다른 작품들조차 읽지 않았다.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인터넷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원작을 읽어보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원작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는가. =처음에는 읽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말이 안 되고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조금 읽다가 던져버릴까 했다. 그런데 1권 뒷부분부터 걸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끌어당기는 정확한 대사와 감정이 있었다. 감정선이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뿐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잘 정리되어 있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 =시나리오가 나온 뒤 귀여니에게 보여줬는데, 원래 자신의 원작과 많이 다른 것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 많이 변형하긴 했지만, 그 이야기축 내에서 내 영화에 맞게 재배치를 한 것이다. 물론 원작 자체가 전형적인 드라마트루기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 보고 만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논리적인 인과관계보다는 감성에 의해서 배치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캐릭터 못 잡겠다고 하면 그런 거에 관심갖지 말라고 말한다. 캐릭터도 변할 수 있다. -기존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엽기적인 그녀>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별 재미가 없었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 <늑대의 유혹>은 우선 멜로드라마다. 슬픈 영화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액션 스타일을 어떻게 새롭게 갈까 생각 중이다. 액션멜로? 그래서, 액션신도 많이 등장한다. <화산고>보다 더 젊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 <옥탑방 고양이> 김대현 감독 스스럼없는 에피소드 김유리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미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젊은 남녀의 동거 이야기. 동거라는 소재만을 가져왔던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원작의 많은 부분을 충실히 재현할 것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국문과에 입학한 여대생 ‘주인이’와 헐렁하지만 착한 남자친구 ‘야옹이’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의 결실을 맺어간다는 내용이다. -왜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표현을 정확히 해야 할 것 같다. ‘인터넷 소설이어서 대중성이 있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소재들이 인터넷상에 많이 올라와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인터넷 소설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은 보게 된다. 그렇게 역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인터넷이 바로 그런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요새는 출판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인 창작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초기에는 스스럼없는 일기체이다 보니 에피소드들이 많고, 그것을 다시 소설로 옮기다 보니 어떤 전통성을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그 점이 새롭게 보였던 것 같다. -원작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는가. =<옥탑방 고양이>는 젊은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연구를 하는 것이라면 나이든 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인터넷 소설들은 읽다가 그만두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 이야기는 자꾸 생각이 났다. 본격적이고, 전면적이다.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 =기승전결을 갖고 가야 할 것 같다. 시작을 해서 끝을 맺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됐다네, 하는 식의 톤을 살리고 싶다. 물론, 영화적으로 독특한 장치들도 갖겠지만 되도록 쉽게 풀어갈 생각이다. -기존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이런 식의 너무 많은 작품들이 있어서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는 것 자체가 폄하받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이걸 하려고 마음먹었던 건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나오기 전이니까 유행의 시류에 편승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소재가 갖고 있는 건강함에 주목해주었으면 한다.

영화사 신문 제29호 (1968∼1969년)

영화, 정치의 심장을 향해 쏴라 군사독재 그린 코스타 가브라스의 성공…“기회주의적” 비판도 1960년대 후반 유럽영화의 화두는 단연 정치다. 파시즘에 관한 영화가 기획되는 중이었고, 노동 쟁의나 테러리즘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들도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내에서 영화의 ‘정치성’은 조만간 상업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그같은 상업화는 정치가 스릴러를 만나는 순간 이뤄졌고, 성공적이었다. 정치와 스릴러의 결합은 ‘정치영화’ 전공 아닌 스릴러 전공 감독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 65년 <침대차 살인>이란 전형적 스릴러로 데뷔했던 코스타 가브라스는 69년 자신의 스릴러 연출 솜씨에 ‘군사독재’란 정치 테마를 끌어들이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이브 몽탕이라는 스타의 출연으로 인해 와 코스타 가브라스는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는다. 독재에 반대하는 정치인의 암살을 둘러싼 이야기다. 그러나 <카이에 뒤 시네마> 등의 진보적 편집자들은 를 비롯해 상업성을 띤 정치영화들에 비판적이었다. 68년 이후 <카이에 뒤 시네마>는 정치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따라 영화들을 분류하는 데 재미를 느꼈는데, 그같은 스펙트럼 속에서 는 정치적인 비판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영화로 자리매김됐다. 실제 가브라스의 정치스릴러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상투적인 주류영화의 관습에 빠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코스타 가브라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주류적 관습 안에서 영화를 찍을 때에만 많은 관객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영화가 상영 중일 때 영화를 숙고할 수 있도록 훈련돼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뒤에 프랑스 시민이 된 코스타 가브라스는 원래는 그리스 출신. 영화 에 등장하는 지중해 연안의 나라를 쉽게 그리스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8살 때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국립영화학교를 나왔고 <태양은 가득히>의 르네 클레망 감독 밑에서 연출수업을 했다. 등급제, 불황 타개책 될까? 연령 따라 구분된 ‘영화 상품’으로 관객 유혹 TV의 ‘공격’을 극복하고 전성기 수준 영화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1960년대 후반 들어 명백해졌다. 60년대 초중반 <사운드 오브 뮤직> <닥터 지바고> 등 대작들이 대성공을 거두자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블록버스터가 TV의 공격을 이겨낼 대안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68년 영화 <스타>, 바로 전해의 <닥터 두리틀>은 그 길이 잘못된 것임을 일깨웠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 영화산업은 68년 말 기상천외한 해법을 내놓았다. 바로 미국 영화사상 최초의 자발적 등급제다. 그간 영화적 표현의 한계를 정해왔던 ‘헤이스 윤리규정’의 권력은 이미 약화돼 폭력, 섹스, 거기에 신성 모독적인 내용의 영화까지도 상영이 허용되고 있던 상태. 할리우드는 검열이 그처럼 완화되면서 넓어질 대로 넓어진 표현의 영역을 연령에 따라 세분화했고, 영화는 새로운 방법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68년 10월9일 미국영화협회(MPAA) 잭 발렌티 회장은 “11월부터 등급제가 시행된다”고 밝혔다. 주(州)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큰 기준은 G(general: 모든 연령 입장), M(mature: 미성년자 관람불가), R(restricted: 16세 이하 관객은 보호자 동반), X(완전성인용) 등의 4개 등급이다. “할리우드-작가주의영화 다 가라” 남미 영화인들 ‘제3영화’ 선언 라틴아메리카의 영화인들이 독특한 영화문법과 이론 체계로 특유의 ‘정치적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영화를 ‘제3영화’라 부르고 있다. ‘제3영화’의 주축은 아르헨티나의 좌파 페론주의자들인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오 게티노. 이들은 69년 ‘제3영화를 위하여’ 선언을 통해 자신들의 영화를 이론적으로 규정했다. ‘선언’은 할리우드영화를 ‘제1영화’로 자리매김한다.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소비하게 만드는 영화가 ‘제1영화’다. ‘제2영화’는 개인적인 표현을 중시하고 작가가 중심이 되는 예술영화들. ‘제3영화’는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를 해방의 무기로 사용한다. 솔라나스와 게티노는 ‘선언’을 통해 “모든 관객을 영화 게릴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두 사람의 ‘선언’은 앞서 68년에 자신들이 제작했던 영화 <불타는 시간>의 이론적 응결이다. 세 부분으로 나뉜 4시간짜리 <불타는 시간>은 작정을 하고 영화 관객에게 토론을 청하고 또 실천을 요구하려는 듯하다. ‘신식민주의와 폭력’을 통해 착취당하는 아르헨티나의 모습을 비추고, ‘해방을 위한 실천’에서 페론주의의 실패를 분석한다. 이어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폭력과 해방’을 통해 변혁의 전망에 대해 얘기한다. <불타는 시간>은 편집 측면에서도 할리우드의 관행을 버리고 에이젠슈테인식의 ‘지적 몽타주’로 되돌아갔다. 영화 속에서는 대량 학살과 현란한 춤판이, 그리고 청량음료 CF와 소 도살장면이 부딪치며 사회적인 인식의 깨임을 요구한다. 솔라나스와 게티노 외에 훌리오 가르시아 에스피노자도 69년 ‘미완의 영화를 위하여’란 논문을 통해 남미의 정치적 열망과 영화의 상관관계를 정리하는 데 힘을 쏟았다. 마약 남용으로 사라진 도로시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에서 깜찍한 도로시로 등장했던 주디 갤런드가 올해(1969) 6월 약물남용으로 사망했다. 4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는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신경쇠약과 자살기도, 숱한 소송과 빈센트 미넬리를 포함한 다섯명의 남편 등 굴곡 많은 생을 살았다. 1939년 <오즈의 마법사>를 시작으로 갤런드는 재능있는 여배우의 탄생을 예고했고, 1954년 그녀의 대표작 <스타탄생>(A Star is Born)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퇴락해가는 왕년의 인기배우 노먼 메인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주목! 이 영화 <이지 라이더> -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결정판1967년에 개봉한 <졸업>(The Graduate)이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와 같은 ‘청춘영화’(youth pix)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1969)에는 청춘영화의 원형격인 <이지 라이더>(Easy Rider)가 만들어졌다. TV의 승승장구에 위축되어 있던 영화 제작자들이 아마도 청춘영화에서 출구를 찾은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다룰 수 없는 과감한 주제, 그리고 현재 미국 영화관객의 절반가량 차지하고 있는 16살에서 24살 사이의 젊은 관객군이 이들의 승산에 장밋빛 기대를 품게 하고 있다. 올해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한편으로 기록될 <이지 라이더>는 많은 메이저 영화사들을 자극시켜 모방작 제작을 부추기고 있다. 50만달러도 안 되는 적은 예산으로 빅히트를 친 이 영화는, 모터사이클로 미국 횡단 여행을 하는 두 마약 거래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청춘영화는 양식적 실험을 과감히 시도하기도 했는데, 미국 횡단여행을 함께한 록 음악과 마약말고도 전에 없이 충격적인 스타일이 젊은 관객을 매혹시켰다. 그 예가 불규칙한 장면전환이다. 한 장면의 마지막 숏에 있는 몇개의 프레임들이 다음 장면의 첫 번째 숏에 있는 몇개의 프레임과 엇갈리는 식이다. 그리고 고다르가 개척했던 점프 컷도 수용했다. 미국을 횡단하는 히피 짝패 역엔 피터 폰다와 데니스 호퍼가 출연했는데, 피터 폰다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를 데니스 호퍼는 연출을 각각 맡았다. <내일을 향해 쏴라> - 라스트신서 영원히 멈춘 레드퍼드와 뉴먼 서부의 전설적인 무법자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두 사람을 다룬 영화는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제대로 된 연기 커플을 만난 적은 없었다. 로버트 레드퍼드와 폴 뉴먼. 69년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통해 두 사람은 과거 스크린에 등장했던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를 깨끗이 잊게 했다. 탈진 상태의 두 사람이 볼리비아 군인들을 향해 죽으러 뛰어나가면서 영화화면은 정지했다(freeze frame).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의 ‘양심적인 무법자’ 연기는 영화사에 영원히 남게 됐다. 과거 두 무법자를 다룬 영화들과의 차별화가 그냥 이뤄졌을 리 없다. 레드퍼드와 뉴먼, 두 주인공의 매력적인 연기도 연기지만, 조지 로이 힐은 그 두 사람을 카메라 앞에 그냥 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들 앞에 무언가 배치하고 중첩시킴으로써 끊임없이 그들에 대한 ‘논평’을 시도했다. 엷은 커튼을 슬쩍 삽입해 신비로움을 강조했고, 그물 모양의 창틀을 끼워넣어 그들의 자아분열을 암시하기도 했다. 스크린 위의 모든 동작을 중지시킨 마지막 장면의 ‘프리즈 프레임’ 역시 괜한 것일 리 없다. 사살당하기 직전, 모든 것을 정지시킴으로써 조지 로이 힐은 레드퍼드와 뉴먼, 서부의 두 무법자가 죽음에 대해 궁극적인 승리를 엮어내도록 주선했다. 영화인들이여 양심과 도덕을 찾아라! 68혁명에 저지당한 칸 68년 5월18일 프랑스 남부 칸, 필름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해변의 대극장. 스페인의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영화가 막 상영되려는 찰나 일군의 시위대가 무대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외쳤다. “수많은 학생들이 파리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판에 페스티벌은 계속될 수 없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진보적 영화인들이 이끄는 시위대였다. 그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사회변혁 요구를 먼 발치에서만 바라볼 수 없었다. 극장을 점거한 뒤 상영을 물리적으로 방해했고, 그해 칸필름페스티벌은 취소됐다. 칸 취소와 함께 68혁명의 불길은 영화계로 확산됐다. 영화 노동자들은 ‘영화 삼부회’를 조직했다. 기존의 제작-배급-상영 시스템을 뜯어고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갈수록 상품화하고 있는 영화산업의 반동적인 구조를 차단하고 공격하겠다”며 파업을 시작했다. 파리의 국립영화학교 학생들도 뉴스 릴과 팸플릿을 만들어 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본주에 동화된 영화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킹 암살 추모하는 오스카 칸영화제에 한달 앞섰던 68년 4월의 아카데미 시상식도 쉽지 않았다. 시상식이 열릴 즈음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됐다. 그 탓에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는 48시간 늦춰졌다. 매년 시상식 직후 열리던 대규모 무도회도 취소됐다. 킹 추모 분위기는 아카데미 수상작 선정에서도 나타났다. 이해의 중요한 아카데미 상들은 인종차별을 다룬 2편의 영화들에 돌아갔다. 노먼 주이슨 감독의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와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밤의 열기 속에서>는 한 지방 도시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일하게 된 흑인과 백인 형사 얘기를 다뤘다. 시드니 포이티어의 맞수로 노란 선글라스를 낀 채 줄기차게 껌을 씹어댔던 로드 스타이거가 최우수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결혼문제를 따뜻하게 다룬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캐서린 헵번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 영화에도 흑인 연기자인 시드니 포이티어가 의사로 나왔다. 로만 폴란스키, 맨해튼에 주술을 걸다 <악마의 씨>로 할리우드 성공적 데뷔 로만 폴란스키는 현대적 맨해튼 한복판에 중세식 마녀집회 이야기를 끌어왔다. 폴란드 출신인 폴란스키는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이라 레빈(Ira Levin)의 소설을 각색한 공포영화 <악마의 씨>( Rosemary’s Baby, 1968)를 택했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그는 여주인공인 로즈마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해, 관객이 그녀의 임신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점차적으로 깨달아가게 했다. 문제의 아기를 잉태하는 희생양 로즈마리 역으론 창백하고 깡마른, 그러나 뉴욕적인 세련됨이 풍기는 미아 패로가 열연했다. 공간적 배경은 맨해튼에 있는 고딕풍의 아파트 단지. 신혼인 로즈마리 부부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 이들은 나이 지긋한 이웃인 루스 고든과 시드니 블랙메르 부부와 친자식처럼 친해지나 고든 부부의 친절한 관심 이면엔 사악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악마주의자들로서, 로즈마리에게 자신들의 제사에 쓸 악마의 아기를 잉태하도록 주문을 건 것. 현명한 로즈마리는 자기에게 걸린 주문을 용케 알아내 빠져나오려 애를 쓰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를 둘러싼 모든 사람이 악마주의자라는 소름끼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재잘거리며 항상 자기를 챙겨주던 고든 부인과 점잖아 보이는 블랙메르, 놀라운 것은 자신의 남편도 이들과 한통속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녀는 이들이 바라다보는 섬뜩한 분위기 속에서 아기를 낳게 된다. 오싹한 분위기의 뉴욕 다코타 아파트를 배경으로 촬영한 <악마의 씨>는 몽환적으로 흥얼대는 주제음인 자장가 소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현대적인 뉴욕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중세의 마녀집회를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편집인 김재희

영화계도 ‘해적’ 비상

한국 영화계도 ‘인터넷 해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영상협회(회장 권혁조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대표)가 온라인상 불법 복제된 영화를 적발한 결과, 지난 한해 10만560건의 ‘해적판’ 영화들이 P2P 사이트를 중심으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떠돌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영상협회가 적발해낸 건수이므로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해적판의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영상협회는 이중 9만5408건에 대해 폐쇄 또는 삭제를 요청했으며, 9만3866건이 실제로 폐쇄되거나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의 불법 복제·유통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3년 가장 많은 불법 복제판이 유통됐던 작품은 <매트릭스2 리로디드>(사진)로 총 4651건이었으며, <엑스맨2>(3495건), <나쁜 녀석들2>(3096건), <터미네이터3>(3067건), <젠틀맨리그>(3036건)가 그뒤를 이었다. 이처럼 적발된 해적판 중 대다수가 외화인 것은 해외에서 촬영되거나 발매된 소스가 유통되는 탓으로 보인다. 하지만 2554건이 적발된 <클래식>이나 2206건이 적발된 <선생 김봉두>처럼 한국영화의 불법 복제·유통 또한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불법 복제물이 적발된 사이트는 2만5394건의 P2P 사이트 G사이트였다. 영상협회에 따르면, 극장 안에서 캠코더로 촬영된 기존의 ‘캠버전’ Divx 파일 외에도 사운드 부분만 따로 녹음한 ‘텔레싱크’ 파일 등 새로운 포맷의 복제물도 증가하고 있다. 영상협회는 이같은 불법 복제로 인한 피해를 전체 시장의 10~15%로 예측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법 복제물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 12월29일부터 1월3일까지 6일 동안의 조사에서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영상파일은 100건 이상 적발됐으며 국내에서 캠버전으로 ‘제작’된 <실미도>의 불법 복제 파일도 유통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불법 복제 파일이 증가한 것에는 지난해 개정된 저작권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영상협회는 분석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불법 복제 콘텐츠가 유통되더라도 해당 사이트의 사업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이들 불법 저작물을 삭제하는 탓에 갈수록 유통 규모가 확대된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영상협회는 2003년 7월 7개 사이트를 상대로 고소조치를 취했으나, 현재 합의를 본 상태이며, 대신 복제물을 유포시킨 개인을 상대로 재고소에 들어갈 방침이다. 영상협회의 불법 저작물 적발을 담당하는 IPS의 배원직 팀장은 “저작권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는 법이 기술을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해야 하고, 경찰과 검찰에도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신기자클럽] 중장년층 관객이 있다면? (+영어원문)

전세계적으로 영화관객 수를 살펴볼 때 가장 높은 객석점유율을 자랑하는 나라들은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미국처럼 국민들이 1년에 평균 대여섯편의 영화를 보는 나라들이다. 최근 영화바람이 불고 나서도 평균적으로 한국인은 1년에 영화를 2.5편 정도 본다. 이 수치를 보고 아이슬란드인이나 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영화에 관심이 더 높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물론 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평균적인 20대 한국인은 아마 평균적인 20대 미국인만큼이나 (혹은 더 많이) 영화를 챙겨볼 것이다. 차이점은, 많은 나라에서 영화관람은 평생 가는 취미생활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면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에 가면 부모님과 친구분들이 최신 영화들을 논하는 것을 자주 듣지만, 60대 한국 사람들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어보긴 힘들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종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할리우드에서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영화를 상당수 제작한다. 결국 오스카상을 놓고 경쟁하게 되는 <씨비스킷>(사진)이나 <콜드 마운틴> 같은 영화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들을 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과 더불어 중년층 관객들도 표를 사기 때문에 이들 영화가 이익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영화가 20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극장흥행에서 잊혀질 운명에 처한다. 이는 영화배우들에게도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할리우드는 나이든 배우, 특히 여배우들에게 꽤 가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에 주연을 맡는 다이앤 키튼, 수잔 서랜던이나 골디 혼 같은 배우들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중장년층 관객이 이들이 주연하는 영화를 보러 감으로써 이 배우들을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나 80년대에 데뷔를 했던 한국 여배우 중에 여전히 주연을 차지하는 이들은 몇이나 되는가? 놀라운 배우 이미숙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 항상 이래 왔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한국인들이 극장을 가득 메웠고, 평균적으로 1년에 대여섯편의 영화를 관람했었다. 당시 흥행을 쥐는 열쇠는 김승호와 황정순 같은 아버지상, 어머니상이 주연인 가족 중심의 코미디와 멜로드라마였다. 하나 그뒤로는 이런 장르가 모두 드라마와 시트콤 형태로 텔레비전으로 옮겨져버렸다. 한국에서 영화관람은 계속 젊은이들만의 영역이 될 것인가? 메가박스, CGV와 롯데시네마 같은 데서는 이를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중년 주부들이 영화관을 찾도록 마케팅 전략을 개발했고 가족 단위가 많이 사는 주거 중심지에 새로 극장들을 세웠다. 장기적으로 주5일근무도 이들에게 득이 될 수 있다. 10년이나 20년 내 한국에서 더 균형잡힌 관객층이 형성될지 모른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수익성만 아니라 특성 면에서 한국영화가 상당한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In Search of the Older Moviegoer On a recent visit home to the U.S., I took my parents to see “Love Actually.” There were a lot of young people in the crowd, but I noticed quite a few middle-aged viewers as well. Having become used to the overwhelmingly young audiences that pack Korean theaters, it seemed a novelty to watch a film sitting among people in their 50s and 60s. If you look at film attendance across the world, the countries that boast the highest rates of attendance are places like Iceland, Ireland, and the U.S., where the average citizen watches 5-6 movies per year. The average Korean, even after the boom of recent years, only watches about 2 1/2 movies a year. One might look at these statistics and conclude that people in Iceland or the U.S. are much more interested in movies than people in Korea. Of course, it's not so simple. The average 20-year old Korean probably watches as many movies as the average 20-year old American (if not more). The difference is that in many other countries, moviegoing is a lifelong hobby, while in Korea most people stop going to the movies after they get married. When I visit the U.S., I often hear my parents and their friends discussing the latest movies, but I rarely hear such talk from Koreans in their 60s. This directly affects the kind of movies that are made in Korea. Hollywood makes a significant number of films that are targeted at older viewers. Films like “Seabiscuit” or “Cold Mountain” that end up competing for the Oscars often fall into this category - even though a lot of young people may watch them, the films turn a profit because both young people and middle-aged viewers line up to buy tickets. In Korea, however, if a film doesn't capture the interest of twenty-year olds, then it is more or less doomed to box-office oblivion. This has implications for actors and actresses as well. Hollywood is not kind to older actors - particularly women - but nonetheless there are still actresses like Diane Keaton, Susan Sarandon, or Goldie Hawn who are cast in starring roles in their 50s. The major reason for this is that older viewers support such stars by going to see their movies. How many Korean actresses who debuted in the 1970s or 1980s still take leading roles? Apart from the amazing Lee Mi-sook, there are hardly any. It hasn't always been this way. In the 1960s, old and young Koreans alike packed the theaters and the average Korean watched 5-6 movies a year. Family-centered comedies and melodramas starring father and mother figures such as Kim Seung-ho and Hwang Jeong-soon were a force at the box-office. Since then, however, these genres have all moved onto television in the form of TV dramas and sitcoms. Will moviegoing in Korea always remain the domain of the young? Companies such as Megabox, CGV, and Lotte Cinema are trying hard to change this. They have developed marketing strategies to encourage middle-aged housewives to go to the movies. They have built new theaters in residential areas where many families live. In the long term, a 5-day workweek may work to their advantage as well. Perhaps in 10 or 20 years, Korea will see a more evenly-balanced distribution of viewers. If this comes to pass, we can expect significant changes in the personality as well as the profitability of Korean cinema.

[인터뷰] 영화 <빙우> 김하늘

대학 신입생 경민(김하늘)은 산악반에 들어갔다가 환영회에서 졸업한 선배 중현(이성재)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중현은 유부남임에도, 경민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마음을 드러낸다. 둘 사이가 깊어지면서 중현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둘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시작한다. 경민의 자취방에 찾아온 중현 옆에 누워 경민이 말한다. “산이 좋아, 내가 좋아 나 나야 산이 좋지. 질투 안 해도 되고. 항상 찾아갈 수 있고.” 과묵한 중현은 말을 아끼지만 돌발적으로 그 감정이 드러난다. 뽑아낸 경민의 사랑니가 화로에 빠졌을 때, 데는 걸 주저하지 않고 손을 집어넣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헤어져야 한다. 알래스카의 산 ‘아시아크’를 오르는 중현을 따라 경민은 이별여행 같은 산행을 떠난다. “이제 성숙했구나 얘기듣고 싶어요” 한국 최초로 시도되는 산악영화 〈빙우〉는 짙은 멜로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경민 곁에서 경민을 좋아하며 마음 졸이던 우성(송승헌)까지 가세해 닿지 못하는 슬픈 사랑의 곁가지를 친다. 회상장면이 절반을 넘는 이 영화에서 김하늘(26)은 회상 부분에서만 나온다. 그래서인지 생기있고 발랄한 모습이 더 아련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회상과 현재 장면의 기계적인 반복과 잦고 긴 클로스업으로 영화의 리듬이 처지는 걸, 김하늘의 모습이 메워준다. 데뷔 7년차에 5편의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는 김하늘은 중견배우에 가까운 데도 항상 신인처럼 느껴진다. 직접 보면 영화 화면에서보다 얼굴이 훨씬 가늘다. 차분할 것 같은데 말을 빨리 한다. “전에는 말도 행동도 되게 느렸거든요. 데뷔하고 3~4년 지날 때부터 급해지더라고요. 급하면 안 좋은데. 제가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누구에게 지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랄까. 예전에는 그게 티가 잘 안 났는데 요즘은 드러나나 봐요.” ‘청승 가련’형에서 ‘적극 당돌’형으로 제 이미지가 청순하고 눈물을 많이 빼서 청승에 가까웠는데, 〈빙우〉의 경민이는 당당하고 당돌하잖아요. 솔직하고 거리낌 없고. 영화는 멜로의 감성이지만, 경민이는 보여줄 게 많은 역이었어요. 이미지를 바꾸려고 시나리오를 고르는 건 힘들잖아요. 마침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시점에서 거기 맞는 시나리오를 받게 된 건 행운이죠. 그래도 멜로인데 너무 당돌하고 적극적으로 나오면 관객들이 ‘쟤 왜 저래’ 할 수 있잖아요. 그 수위를 조절하는 데에 제일 신경을 썼어요. 김하늘이 말하는 김하늘의 필모그래피 〈바이 준〉은 지금의 제가 있게 된 시발점이고, 영화가 뭔가, 멋모르고 이런 거였구나. 아! 매력있네. 영화배우를 하고 싶게 만든 영화예요. 〈닥터 K〉는 김혜수 선배 보면서 놀란 게 많았어요. 그 순발력과 감정선을 잡아내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동감〉은 텔레비전 드라마 나온 뒤에 찍었거든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잘 해야겠구나. 에너지가 솟기 시작했달까.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처음 해본 코미디이고, 연기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전에는 멜로 영화 시나리오만 들어오더니 이 영화 뒤로는 코미디가 쏟아지는 거 있죠. 〈빙우〉는 멜로, 코미디 다 해본 뒤에 한 거니까 관객들로부터 ‘이제 성숙했구나’ 하는 얘기 듣고 싶어요. 2월에 개봉하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코미디인데, 많이 망가져요. 〈동갑내기…〉에서 못했던 것 다 해봤어요. 김하늘의 연기관 전에는 연기 연습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안 해요. 대사 톤이 굳어져 있으면 안 좋은 것 같아요. 상대배우와 안 맞을 수도 있고. 지금은 현장 분위기,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맞추는 데에 더 신경을 써요. 감독들 보면 애드리브(즉흥 대사)를 좋아하는 쪽이 있고, 토씨 하나 못 바꾸게 하는 쪽이 있는데 전 후자가 좋아요. 애드리브를 하면 어떤 역을 해도 평소의 나와 비슷한 모습이 나오기 쉽잖아요. 또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를 살리려고 고민하면서 대사를 썼을 텐데, 그게 살아나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사운드 따로 화면 따로, <영어완전정복>

무게 잡는 선남선녀를 전면에 내세워왔던 김성수 감독이 어깨의 힘을 빼고 빈틈 많은 남녀 커플에 도전했다. <영어완전정복>은 애니메이션과 말풍선을 사용하는 등 만화적 기법을 주로 사용하면서도 <태양은 없다>의 홍기와 <비트>의 민을 합친 듯한 캐릭터 문수를 등장시켜 김성수표 코미디를 선보인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겪었음직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소재로 가냘픈 이미지의 이나영을 푼수로 만든 <영어완전정복>은 세대차에 따른 선호도가 다를 수 있지만 관객 또한 어깨에 힘을 빼고 감상하다보면 ‘완전정복’까진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리뷰용으로 배포된 샘플디스크에 담긴 DTS 트랙이 영상과의 싱크가 맞지 않았다. 양산품 출시시 제대로 정정되길 바라본다. 영주의 꿈장면은 채널 분리도를 맘껏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 자체는 녹음이 잘됐으나 영화의 특성상 사운드를 즐길 만한 영화장면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약점이다. 장면전환이 많은 편집을 감독이 즐기는 만큼 네거필름의 텔레시네에 따른 필름의 상하 흔들림도 다른 영화에 비하여 잦은 편인데 민감한 분들이나 대화면으로 감상하는 분들에겐 마이너스로 작용될 수 있다. 일부 장면전환이 없는 부분서도 가끔 흔들림이 목격되기도 한다. 고속촬영에 따른 플리커링 현상으로 챕터5에선 잠시 번쩍거림이 목격되기도 하며 해상도 또한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DVD의 전반적인 색감은 좋다. 서플먼트에서 캐시 역의 안젤라 켈리가 감독판 이야기를 몇번 언급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감독판 DVD의 제작계획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제신 메뉴가 없는 것에 의아해 할 텐데 삭제신들은 ‘퀴즈완전정복’ 메뉴에 숨어 있다. 퀴즈 및 게임의 난이도가 제법 높은데 정답과 상관없이 모두 풀고 마지막 암호에 ENGLISH를 기입하면 23분가량의 ‘영주의 이혼일기’로 명명된 재미난 삭제신들을 만날 수 있다. 그래도 레벨별 정답을 꼭 알아야 되겠다는 분들을 위한 답안지 또한 이스트 에그로 숨겨져 있으니 찾아볼 것. 그외에도 영화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었던 영화만큼 재미있는 청설모제작 5편의 플래시애니메이션과 여러 가지 메이킹 다큐, 인터뷰 영상들이 흥미롭고 푸짐하게 담겨져 있다. 메뉴화면 또한 앙증맞게 제작되었다. 조성효 2003년 I 김성수 I 1.85:1 아나모픽 I DD 5.1, DTS 5.1 한국어 I 한국어, 영어 자막 I 스타맥스 ▶▶▶ [구매하기]

[새 영화]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신작 〈자토이치〉가 30일 개봉한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이라는 묵직한 명패에 걸맞지 않게, 이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 영화 중에 가장 가볍다. 만화와 텔레비전 시리즈로 일본에서 유명한 맹인검객 자토이치 이야기를 각색하면서 기타노 다케시는 만화처럼 익살스럽고 경쾌하게 내달린다. 급기야 끝부분에선,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임에도 출연진들이 다수의 엑스트라와 함께 나와 서구식 탭댄스를 춘다. 흥겹고 안무가 잘 된, 그러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뚱딴지 같은 춤장면을 덤으로 얹어주는 그 배려가 미울 이유는 전혀 없지만 조금 실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안마와 도박으로 먹고사는 떠돌이 맹인 검객 자토이치(기타노 다케시)가 한 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악당 패거리 긴조 일당이 장악하고서 상인과 농민들을 등쳐먹고 산다. 같은 마을에 관직을 지녔던 무사 핫토리(아사노 다다노부)가 들어온다. 사랑하는, 그러나 병들어 누워 있는 한 여인을 위해 핫토리는 긴조 일당의 살인청부 무사로 ‘취직’한다. 영화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긴조, 핫토리 패거리와 자토이치의 대결이다. 어릴 때 긴조 일당에게 부모을 잃고 게이샤로 떠도는 남매, 도박에 빠져 세월아 네월아 사는 노총각 신키치 등이 자토이치와 함께 다니면서 유머와 곁가지 이야기를 보태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핫토리의 경우도 병든 여인과의 전사를 살짝 내비치기만 할 뿐이다. 아무래도 볼거리는 칼싸움이다. 총에서 칼로 옮겨와서도 기타노 다케시답게 액션이 간결하다. 칼이 맞부딪치는 합이 세번 이상 가는 일이 없다. 대부분이 단칼에 승부가 나는 이 액션은 베는 동작 못지않게, 칼을 뽑기 전과 베고 난 뒤의 모습이 멋스럽다. 사지가 뎅겅 잘려 나가고, 피도 많이 솟구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화시켜버리는 듯한 폼을 잡는 〈하나비〉나 〈소나티네〉의 폭력 장면과 비교하면 깊이감이나 여운이 많이 떨어진다. 기타노 다케시는 스스로 연기한 자토이치의 캐릭터를, 마을의 착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고 단지 악당을 죽이기만 하는 쪽으로 바꿨다. 여기서 자토이치는 서부극의 혼자 다니는 주인공을 닮은 듯도 하지만, 가벼운 이 이야기에서 캐릭터가 뿜어내는 멋은 표피적인 쿨함에 그친다. 그래도 볼 근육 떠는 것만으로 복잡다기한 감정을 표현하는 기타노 다케시가 눈마저 감고 연기하는 맹인 무사의 모습은 충분히 그럴듯하다. 부담 없이 즐길 영화다.

그 영화(들)의 관객 연놈들은 멋있었다! [1]

지난 한해 한국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리한 눈을 가진 당대의 논객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사유하며 곳곳에서 들려오는 풍년가의 틈새에서 무엇을 듣고 있을까. <씨네21>의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세 편집위원에게 자유로운 글을 청했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첫 번째 발언을 보내왔다. 우리가 아는 그 ‘정성일’이 <동갑내기 과외하기> <옥탑방 고양이> <그놈은 멋있었다>를 통해 새로운 관객의 도래를 확인하며 자신과의 거리 혹은 소통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사유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세번에 걸쳐 이루어질 이 기획을 통해 우리 눈앞에 어떤 지형도가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도 잊을 수 없었던 내 사랑의 문제점을 되씹으면서 영화관을 나서는 나는 “이젠 좀 끝났으면!”이 아닌 “난 이해하고 싶어!”란 괴이한 소리를 지른다. _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괄호로 시작하기. (…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야 할 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연속의 블록 안에 들어가서 만리장성 바깥으로 나오는 길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무한의 길 잃기 살아생전에는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복도들과 난간들. 그러니 차라리 창을 열고 뛰어내리자. 그것이 윈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귀여니 홈페이지의 자문자답: (귀여니의 질문) 지금 행복한가? (귀여니의 답) 불행하다. (나의 덧글) 나도 불행하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 불행의 공감을 얻기 위한 나의 애원과도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19살 소녀가 불행한 나라에서 함께 살면서 어떻게 46살 남자가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 글은 대책없는 덧 글일 수밖에 없다. 수수께끼에로 뛰어들기, 그래서 귀여니의, 이햇님의, 김유리의, 혹은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표현기계가, 영화와 맺는 놀이의 관계, 용법, 감각, 그물코, 질서, 계열, 배열과 배제, 그냥 한마디로 출현과 힘 사이의 영토에로 무작정 뛰어내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내리기에 앞서 우선 당부의 말씀. 이 글의 상당 부분의 표현이 일부 독자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심호흡을 하신 다음 그냥 단 한번에 쉬지 말고 스크롤로 채팅을 긁어 내려가듯이 소리내어 구어체로 읽으실 것. @#$% 이 글도 그렇게 쓰여졌음. 혹여 매우 신중하고 고상하신 독자들께서는 그냥 이 페이지를 건너뛰시기 바람. 그럼에도 읽고 나서 괴로워하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님. (ㅠ_ㅠ) 이 글은 더 이어질 세편의 글 중의 하나임. 소년소녀들의 불행에 공감하기 위하여 첫 번째 테제. (그냥 웃자고 하는 말) 지금 하나의 유령이 한국영화를 떠돌고 있다. 그건 귀여니라는 사이버 유령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겨레>에서 함께 영화에 관해서 (매주 화요일) 글을 쓰고 있는 세 사람이 모여서 지난 한해 한국영화에 대해 돌아보면서 이야기해보자고 하였다. (복종하지 말고 논하라!) 나는 이걸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허걱. 깡이 이빠이데쓰네!!”) 그냥 무심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앗싸!) 언제나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걸 정색을 하고 이야기하건(과잉 진술의 사례들), 아니면 차를 마시면서 하건(과소 진술의 일상사), 혹은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술잔을 돌리면서 하건(과장 진술의 파티) 거기 무슨 차이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그건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영화를 끌어안는 방식이 다른 것만큼이나 그것을 쳐다보는 자리도 다르다는 사실을 그날 알게 되었다(<한겨레> 2003년 12월19일치, “소통 넓어진 호러-사극, 금기와의 대면 기념적, 그런데 ‘현재’는 어딨지?” 인터넷 사이트에는 신문보다 좀더 긴 좌담이 실려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말하여졌으나 실리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김소영의 견해에 대해서 많은 부분 동의하고 있으며(특히 한국영화들의 트라우마의 협상을 놓고 벌이는 유희와 거짓 타협들을 주목하는 견해), 그만큼의 폭만큼 허문영의 생각이 나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준 것은 사실이다(양식미를 끌어안으면서 장르적으로 선회하고 있는 웰 메이드에로의 ‘낭만적’ 도착증). 하지만 거의 마지막 순간 김소영과 허문영이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진행하던 임범과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김은형이) 불현듯 나를 지금 미친 거 아냐, 라는 표정으로 본 순간을 나는 잘 기억한다(이햇님이라면 ‘당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미친 넘이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어쩌면 그럴 각오를 하고 그 말을 꺼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긍정적으로, 창조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할 때였다. 그 순간의 침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조용함 속에서 그 무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나를 ‘귀엽게’ 여기지 않았다. 사실 죽을 각오를 하고 꺼낸 말에 대해서 반격하는 대신 무시할 때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 순간이었다. 아아, 그건 재수 털리는 순간이었다. (좌담을 정리하면서 사라진 말인데) 솔직히 말하면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나도(!) 환상적으로 지루했다(더 솔직히 말하면 정말 미안한 말인데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감독 이름을 아직도 외우지 못한다). 그건 그 전 해에 본 <엽기적인 그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 영화를 연출한 곽재용은 그 전부터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김소영과 허문영이 나를 볼 때의 시선과 똑같은 말을 스스로 중얼거렸(었)다.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냐? 여전히 나의 관심은 허우샤오시엔과 마뇰 드 올리베이라, 임권택의 신작이다. 혹은 왕가위와 구로사와 기요시, 지아장커와 가와세 나오미, 그리고 아핏차풍 위라세타쿤, 또는 홍상수와 김기덕의 새로운 영화가 (귀여니의 말투를 빌려서) ‘빨리 보고 싶어서 돼져버리겠다!!’ 그러나 그건 나의 관심이며, 이 영화들을 보면서 열광했던 이들에게 나의 명단은 알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함께 우리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서 있을 서로의 서로에 대한 빗금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단지 세대간의 차이로만 환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거기 버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좀더 나의 진술을 허락한다면 그런 거절할 수 없는 인상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옥탑방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걸 텔레비전 앞에서 멍청히 바라보면서 정말 거의 모든 신들이 저게 말이 되나, 라는 심정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보았다. 그런 다음에 귀여니의 소설을 그해 여름에 읽게 되었다(<그놈은 멋있었다>). 나는 귀여니의 소설을 문학적으로 평가할 만한 자리에 있지 못하다. 하지만 적어도 김윤식 선생께서 귀여니의 소설을 찾아 읽으셨을 것 같지는 않다(그런 다음 이런저런 인터넷 하이틴 소설을 읽었고, 일부는 다운받았다). 일부에서는 국내판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인터넷 버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른 일부에서는 ‘그 아이들만의 리그’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소설은 애매하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 소녀들을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매혹이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무시해버리고 싶은 기괴한 불쾌감을 동반하는 그 어떤 잉여의 처리에 대한 난처함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걸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앞에 던져진 것, 하여튼 피할 수 없는 것. 나에게는 거추장스럽지만, 그것에 대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에 대해서 외면하면 안 된다.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대면하고 있는 그 어떤 상징적 사건에 대해서, 그 사건이 떠안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 무시하면 그것은 즉각적으로 실재의 모습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벌어진 사건은 그것을 못 본 척하려는 사회에게 그것을 욕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그린치> <더 캣>를 어떻게 해코지했나

닥터 수스의 여우는 양말을 신고 있고 고양이는 모자를 쓰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그건 닥터 수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림책 작가 시어도어 가이젤이 쓴 동화들의 영어 원제를 검토해보면 분명해진다. 〈Fox in Sock〉 〈The Cat in the Hat>. 둘 다 모두 엄격한 각운을 고려한 제목들이다. 닥터 수스라는 작가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도 제한된 숫자의 영어단어들을 절묘하게 이용해 운을 맞추는 실력 때문이었다. 아마 그의 작품들이 명성에 비해 국내에 덜 소개된 것도 언어장벽 때문일 것이다. <양말 신은 여우>와 같은 그림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운을 이용한 말장난이기 때문에 번역되면 그 매력을 100% 잃는다. 그나마 제대로 소개된 <바솔러뮤 커빈즈의 모자 500개>는 그래도 말장난보다는 스토리의 힘이 더 강한 작품이다. 닥터 수스라는 작가의 힘이 기본적으로 언어에, 그것도 운을 이용한 말장난에 놓여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다시 한번 <모자 쓴 고양이>의 원제를 읽어보자. 〈The Cat in the Hat>. 완벽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각운 때문에 입에 착 달라붙는 제목이지만 정작 대단한 의미는 없다. 사실 운이라는 것 자체가 글에 어떤 부조리함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Cat과 Hat이 각운이 맞는다고 해서 둘이 한자리에 모여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닥터 수스의 경우 각운이 먼저다. ‘The Cat in the Hat’이 듣기 좋은 제목이라면 쓰자. 그리고 왜 그 고양이가 모자를 쓰고 있는지, 그 모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나중에 생각해보자. 그 결과 닥터 수스의 작품들엔 독특한 부조리함이 형성된다. 그의 그림들은 종종 아주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묘사하는데, 그게 모두 언어학적인 유희(곧장 말해 말장난)가 그림이라는 시각적 매체에 투영된 결과이다. 만약 닥터 수스가 모자 쓴 고양이가 모자에 케이크를 올려놓고 한손에 써레를 든 채 곡예를 하는 그림을 그린다면 그건 순전히 cake과 rake의 각운이 맞기 때문이지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극장용 장편영화로 뜯어고치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어떤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장난이라면 어떻게 해야 서사가 중요시되는 극장용 장편영화로 이야기를 뜯어고칠 수 있을까? 닥터 수스는 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한동안 영화판에서도 일한 적도 있다. 2차대전 당시엔 전쟁 홍보영화에 참여했었고 썼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적 있는 훌륭한 판타지영화인 〈T박사의 피아노 레슨〉(The 5,000 Fingers of Dr. T.)에서 각본을 맡기도 했다.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양질의 텔레비전 단편영화들로 만들어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척 존스가 감독한 애니메이션인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이다. 존스는 〈The Cat in the Hat〉의 훌륭한 애니메이션 버전을 만든 적도 있다. 그리고 닥터 수스는 영화 장르에 근사한 직계후손을 낳기도 했다. 바로 팀 버튼이다. 닥터 수스처럼 운을 맞춘 시구로 이루어진 팀 버튼의 수많은 작품들은 모두 닥터 수스의 창의적인 변형이다. 물론 그 절정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의 팀 버튼 버전이라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닥터 수스의 비전에서 특별히 벗어난 영화들은 아니었다. 〈T박사의 피아노 레슨〉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극장용 장편영화를 위해 쓰여졌다. 그뒤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모두 원작에 충실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영화인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는 감독 척 존스의 개성이 듬뿍 살아 있는 작품이긴 했지만 그 개성은 대부분 시각적 스타일에 집중되었고, 유명한 노래 〈You’re a Mean One〉을 추가하고 문장 몇개를 살짝 바꾼 걸 제외하면 닥터 수스의 원작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팀 버튼은? 아무리 닥터 수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는 팀 버튼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할리우드가 대규모의 예산을 투자해 만드는 장편 극영화엔 해당되지 않는다. 한 시간 반 이상의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스토리와 동기, 더 풍성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그린치> 론 하워드의 <그린치>는 이런 문제점을 그럭저럭 해결한 작품이었다. <그린치>는 그래도 각색해볼 만한 책이었다. 이 그림책에서 핵심은 말장난이 아니라 그린치라는 독특한 심술쟁이 캐릭터이다. 어쩔 수 없는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한계 때문인지 끝에 가서 이 캐릭터도 개심하게 되지만 그 직전까지 그린치가 후 마을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망치려고 짜는 음모는 어린 독자들에게 거의 사디스틱한 쾌감을 제공해주었다. 론 하워드의 영화는 이미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스토리에 좀더 깊은 동기를 추구하고 캐릭터들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쪽을 택했다. <그린치> 그림책의 평면 삽화를 3차원 컴퓨터그래픽으로 옮겼다고 할까. 하워드는 그린치가 왜 그렇게 심술궂게 후 마을 사람들을 대하고 왜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싫어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거의 <프랑켄슈타인>식 탄생담을 덧붙였다. 이 영화에서 그린치는 단순한 심술쟁이가 아니고 후 마을 사람들도 생각없이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린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따돌림받고 멸시당한 타자이며 후 마을 사람들은 그린치의 난동 속에서 역시 크리스마스의 교훈을 깨달아야 할 속되고 경박한 사람들이다. 영화화되면서 원작의 간결한 아름다움은 사라졌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번지르르한 영화가 되었지만 하워드의 영화는 거의 완벽하게 논리가 선 이야기와 그럴싸하게 확장된 교훈을 갖추고 있었다. 스토리·동기·캐릭터 ‘부어라 부어라’ 그렇다면 2003년 겨울 시즌에 개봉된 <더 캣>(The Cat in the Hat)은 어떨까? 일단 <모자 쓴 고양이>는 <그린치>보다 훨씬 인기있는 작품이고 모자 쓴 고양이도 그린치보다 더 사랑받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엔 쓸 만한 스토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 엄마가 나가 있는 동안 집을 지키고 있는 두 남매에게 갑자기 모자 쓴 고양이가 찾아와 온갖 소동을 일으키다가 엄마가 오기 직전에 모든 소동을 마무리짓고 등장할 때처럼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전부니까. 그리고 고양이가 그 중간에 일으키는 소동은 전형적인 닥터 수스식 말장난의 연속이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극장용 영화에서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그린치>가 기존의 이야기를 확장했다면 <더 캣>은 부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원작의 순수한 진공 속에 캐릭터와 교훈을 채우고 한 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정당화시킨다. 우선 고양이는 그냥 심심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목적이 있다. 주인공인 콘래드(원작의 이름없는 화자)와 샐리는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다. 콘래드는 엄마 말을 듣지 않는 말썽꾸러기이고 샐리는 사교성없고 규칙에 집착하는 강박증 환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양이는 이 아이들의 성격을 개조하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 모든 소란이 진정될 무렵엔 콘래드와 샐리는 마치 칵테일 셰이커에 섞여 서로의 성격을 물려받은 것처럼 ‘정상적인’ 아이가 된다. 영화의 첫 번째 실수이다. 닥터 수스가 교훈과 상관없는 이야기만 썼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는 고전적인 교훈담이다. 심지어 그는 인종차별과 냉전시대의 군비 경쟁을 꼬집는 그림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강압적으로 사회부적응인 아이들의 성격을 뜯어고치는 이야기를 당연하게 쓸 만큼 무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영화에 묘사되는 아이들의 성격개조 과정은 동기만 따진다면 불쾌하고, 결과만 본다면 강압적이며, 스토리 전개면에서 본다면 논리가 부족하고 전개가 갑작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이 어정쩡한 교훈은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원작의 매력을 무지막지할 정도로 감소시킨다. 영화는 엄마를 극단적으로 결벽증이 심한 사장 밑에서 일하는 부동산 중개업자인 싱글맘으로 고치고, 사장을 위한 파티를 연다는 데드라인과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이웃집 남자가 엄마랑 결혼하고 아들을 군사학교에 보내려고 한다는 설정을 추가해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려고도 한다. 미안하지만 이것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뭣한데, 이건 그냥 형편없이 쓰여진 나쁜 각본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건, 닥터 수스의 그림책 원작이 21세기의 어린이영화로 어떻게 전환되었느냐는 것이다. 아까 <모자 쓴 고양이>의 비주얼은 철저하게 언어학적 유희에 바탕을 둔 난센스라고 이야기했다. 보 웰치의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그냥 포기해버린다. 심지어 마이크 마이어스의 고양이는 도입부에 “나는 운 맞추는 덴 전혀 실력이 없어!”라고 외치며 닥터 수스식 말장난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영화는 대신 이 빈자리를 디지털 특수효과를 가득 동원한 스펙터클로 채운다. 하지만 스토리가 기둥이 되어주지 못하고 원작의 핵심이었던 언어학적 유희가 사라지자 영화의 스펙터클은 말 그대로 껍질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영화는 우리가 <배트맨2>와 <가위손>의 프로덕션디자이너가 만든 첫 감독작에서 기대할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지만 러닝타임 5분을 넘기면 그 화사한 아름다움은 약발이 닳아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정답은 없다. 아마 <모자 쓴 고양이>를 원작으로 삼아 기가 막힌 한 시간 반짜리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방법은 <더 캣>의 작가들이 써먹은 것과 같은 안이한 할리우드식 각색으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