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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일본적 슈퍼히어로의 변주, <자토이치>

1962년과 2003년의 '자토이치'들과 기타노 다케시 장님에 머리를 깎은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이야기>와 노랑머리에 장님 흉내를 내는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1962년 처음 <자토이치 이야기>로 시작된 뒤, 영화, 텔레비전 등 많은 다양한 시리즈를 거쳐 2003년 다시 탄생한 <자토이치>. 2003년 기타노 다케시는 왜 새로운 <자토이치>를 만들었을까? 진정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새로운 자토이치일까? 2003년의 <자토이치>는 1962년의 <자토이치 이야기>와 어떤 연결점을 갖는가? 영화를 보면서 계속 머리 속을 맴도는 이와 같은 의문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통해 이런 의문점들을 하나씩 풀어갈까 한다. 장님과 장님 행세, 이중의 무장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1960년대 일본사회를 돌아보자. 1959년의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격렬한 데모에도 불구하고 1961년 신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1960년대 본격적인 신안보체제 확립에 돌입한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인정하는 신안보체제란 일본이 미국을 완전히 일본 밖으로 밀어내지 못한 불완전한 형태의 국가체제를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1962년은 이와 같은 불완전한 일본을 새로운 ‘일본’으로 정당화해야 하는 임무가 시작된 해이며, 안보투쟁에서의 좌절을 상대적인 일본사회의 안정의 무드로 무마시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해이다. 같은 해 일본의 영화계에서는 이와 같은 안보투쟁의 좌절을 넘어서 이미 확립된 신안보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련의 일본식 슈퍼맨적 영웅을 내세운 시대극이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시기 슈퍼맨적 일본의 영웅은 건강하고 완전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외팔이에 외눈박이인 단게사젠이나, 장님인 자토이치처럼 신체에 결함을 가진 인물로 설정된다. 이들은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일본이 오히려 더욱 강한 일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영웅상이었다. 그러므로 장님인 자토이치는 두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볼 수 있는 슈퍼맨이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장님이라고 하는 것이 역으로 말하면 모든 퍼스펙티브(시점)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장님이란 0의 시점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시점이며, 바로 마이너스의 시점이라는 것 때문에 오히려 플러스의 시점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토이치의 무기는 칼만이 아니라 그가 장님이라는 사실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는 두개의 무기를 가진 셈이다. 불완전해 보이는 일본은 오히려 이중의 무장을 한 셈이다. 이런 일본의 이중적 무장이 현실화된다. 2003년의 일본은 유사법을 통과시키고, 자위대의 위상을 바꾸어 이라크에 파병하기로 결정한다. 지금은 테러리즘과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핑계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우려가 가장 극대화되고 있는 시기이다. 일본이 자신의 완전한 군대를 갖는 날, 일본은 완전한 국가로 탄생할 것이다. 이제 자토이치는 완전한 장님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장님인 것처럼 행동한다. 완전히 눈을 뜰 날을 기대하며…. 그리고 1962년의 일본의 슈퍼맨 장님 검객 자토이치가 2003년에 새롭게 장님 행세를 하는 자토이치로 부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통 시대극의 모자이크 기타노 다케시는 <자토이치>를 만들면서 비오는 날의 칼싸움 장면을 구로사와 아키라의 에서 빌려왔다고 말했다. 사실 그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구로사와 아키라에서 빌려온 모티브는 영화 안에서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 농민의 등장이 그렇고, 마지막 화합의 춤이 그렇다. 그러나 <자토이치> 안에는 이와 같은 단순한 모티브 이상으로 더욱 다양한 일본의 시대극이 계승되어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기타노 다케시는 이를 영화 첫 부분에 모두 고백하고 있다. 영화는 길가에서 쉬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로부터 시작한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방랑의 중간단계인 쉼으로 시작되는 이 첫 장면은 가쓰 신타로의 방랑자객 자토이치의 계승임과 동시에 일본 마타다비 시대극의 계승이다. 마타다비영화로 불리는 일련의 시대극의 역사는 길다. 어디로 나갈 곳 없이 사방이 바다로 막혀, 완전히 폐쇄되어 있는 섬나라 일본에서 실제로 떠난다는 것이 얼마만큼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떠나고 싶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마타다비영화를 탄생시켰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의 처음을 마타다비의 계승으로 연다. 그 다음 신은 바로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남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복수는 일본 시대극의 가장 전형적인 소재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국을 누비는 소가 형제의 이야기는 부모의 원수 갚기의 한 예이며, 나아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어서는 47명의 사무라이의 이야기인 <츄신구라>는 일본 복수시대극의 전형이다. 다음은 자릿세를 받으러온 야쿠자가 등장한다. 악한 야쿠자와 사무라이, 혹은 착한 야쿠자가 대결을 벌이는 것 역시 일본 시대극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 다음 신은 바로 칼잡이인 아사노 타다노부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칼잡이의 등장이 일본 사무라이 시대극영화의 전형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토이치>에서 칼잡이 아사노 타다노부는 단지 그가 칼잡이 사무라이라는 것 이외에도 두 가지 면에서 또 다른 일본 시대극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첫 등장 장면을 보면 칼싸움을 하는 그의 등 뒤로 폐병에 걸린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칼잡이가 되어야 하거나, 병에 걸린 아내 때문에 고뇌하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는 요쓰야괴담을 상기시킨다. 또한 아사노 타다노부와 기타노 다케시가 벌이는 해변에서의 마지막 결투장면은 <미야모토 무사시>의 마지막 장면인 사사키 고지로와 무사시와의 결투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이처럼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의 첫 부분을 일본 전통 시대극의 대표적인 4가지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그의 <자토이치>가 <자토이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본의 전통적인 시대극의 틀마저 모두 벗어던질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아니 아무리 그가 노랑머리의 자토이치를 등장시키고, 마지막에 장대한 탭댄스로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해도 근본적으로 일본 전통 시대극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이 영화의 첫머리를 전형적인 일본 시대극영화들로 열고 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토이치>에 등장하는 이와 같은 일본 전통 시대극의 요소들이 이미 기타노 다케시의 다른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키나와와 LA로 상징되는 일본 밖으로의 열망, 늘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기타노 다케시 영화 속의 비트 다케시, 해변과 야쿠자, 병든 부인…. 그러므로 아론 제로가 말하듯이 기타노 다케시는 <하나비>를 통해 비로소 일본적인 것으로 귀환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장 일본적인 것을 영화 속에 담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하나비>에서 가장 절정을 이루어 보여진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가 일본 시대극 <자토이치>를 만들기 전에, <돌스>를 통해 전통 분라쿠의 형식을 실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웃기 시작하는 다케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이야기>와 다른 지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다른 지점이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를 더욱 일본적인 영화로 만든다. 우선 자유인 자토이치에 대한 접근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토이치는 방랑자, 자유를 좇는 자이다. <자토이치 이야기>는 여인이 기다리는 큰 거리를 뒤로하고 그만이 알고 있는 뒷길을 따라 유유히 걸어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자신의 임무를 모두 수행한 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길을 따라 떠난다. 그러나 <자토이치>는 길을 떠나려던 기타노 다케시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정지화면으로 끝을 맺는다. <키즈 리턴>의 두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계속 운동장을 돌던 것처럼 결국 기타노 다케시는 먼길을 떠날 것 같아도 떠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일본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코 그는 일본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는 여성이 배제된다. 등장한다 하더라도 죽거나 아프거나 그렇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 바로 할복자살로 영화 속에서 사라진다. 부모님의 복수를 갚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남매 중에서 영화 속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여장을 한 남동생이다(<자토이치 이야기>의 마지막 칼싸움 장면에서 자토이치의 칼에 맞은 칼잡이 히라데가 자토이치의 등에 업히는 장면 등을 남성간의 동성적 코드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자토이치 이야기>에서는 여성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위험에 빠진 여성을 구해줌으로서 여성을 영화 속에 남겨놓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영화 속의 여성 배제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무라이 정신이 가득한 일본영화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영화 속에서 웃음을 감추어왔던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 속에서 웃기 시작한다. 일본 최고의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숨겨왔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그는 차갑고 냉정한 얼굴로 일본의 관객이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에 동화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자토이치>에서 기타노 다케시는 웃기 시작한다. 그가 TV에서 늘 보여주는 기타노 군단적 코미디 요소를 도입할 뿐 아니라, 자신이 웃기 시작한다. 사실 웃음이란 가장 국가적, 문화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일본의 대중들이 아는 웃음, 함께했던 웃음이 <자토이치> 안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가 노랑머리의 자토이치를 등장시키고 탭댄스로 변화를 주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일본인이 함께 춤추는 진정한 화합의 일본적 <자토이치>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수완/ 일본영화사 연구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형태의 생각도감] 집9 - [러브하우스]

텔레비전은 때때로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요술 같은 능력으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기적을 만드는 텔레비전은 가난과 절망으로 도탄에 빠진 헌집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집으로 바꾸어주기도 한다. 일요일 저녁 ‘MBC 러브하우스’ before - 라면박스와 빨갛고 파랗고 조악한 플라스틱 수납등과 짙은 고동색 가구들과 무너질 듯한 행거 위로 난지도의 넝마 같은 옷가지들. 쓰지도 못하고 쓸 일도 없지만 버리지 못하고 마냥 쌓아놓은 살림살이들이 쓰레기와 폐품들 사이에서 아무런 구분도 없다. 천장은 쥐오줌에 찌들어 있고 청테이프로 버티고 있는 벽지와 비닐이 처진 창문으로 겨울바람이 요동치고 있다. 아쉬울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사모은 살림살이들은 아무런 디자인도 라이프 스타일도 없다. 가난한 집이란, 쓰지도 못할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껴안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after - “자! 공개합니다!” 외침과 함께 현관문과 방문과 화장실 문이 열릴 때마다 탄성이 쏟아져 나오고, 눈물과 고마움과 감격과 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는 감정들이 복받쳐 오른다. 사랑과 감동의 러브하우스는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없이 눈부시게 하얗다. 아. 행복이 가득한 집. 병든 노모를 위한 홈 오토메이션 빌트인 가전제품에, 자동문과 멜로디가 나오는 변기가 마냥 신기할 뿐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에 쓰던 살림살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넝마 같은 옷가지가 귀신처럼 웅크린 자리엔 하얀 수납장에 곰인형만 예쁘게 앉아 있다. 찬장에도 꽃그림 접시 몇장만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전기밥통과 냉장고는 아직 쓸 만해도 미관상 처분되었으리라. 잘사는 집이란, 구질구질한 것들을 다 내다버리고 고급자재로 하얗고 푸르게 인테리어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러브하우스’는 사랑은 알지만 가난은 모른다. 하얀 집은 ‘가난해도 살기 좋은 집’은 아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사실이다.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전쟁의 고통과 굴레, <태극기 휘날리며>

99년 전국 597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쉬리>로 ‘한국형 블럭버스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한국영화사를 <쉬리> 이전과 <쉬리> 이후의 시대로 구획지은 강제규 감독은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순제작비만 145억원 이상 쏟아부으며 많은 이들의 기대와 그 못지않은 우려의 시선을 함께 받았던 강제규의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가 3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강 감독은 한국전쟁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우직할 만큼 정공법으로 다루면서도 한 장면 한 장면의 디테일에 놀랄 만한 공을 들여 148분의 상영시간이 지난 뒤 객석으로부터 진심어린 박수를 받았다. 영화는 6ㆍ25 참전용사 유해발굴단의 작업현장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장에서 이진석 하사의 유품이 발견되지만 신원조회 결과 이진석은 77살로 생존중이다. 이진석은 유해가 형 진태의 것일 수도 있다는 기대로 손녀와 함께 현장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카메라는 진석의 손에 놓인 오래된 수제구두에 북적이는 50년 6월 종로거리를 포개며 수많은 가족과 개인의 삶이 파탄난 상처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두를 닦으며 가족을 돌보는 진태(장동건)와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는 모범생으로 온가족의 희망인 진석(원빈) 형제는 국수집을 하는 엄마와 엄마를 돕는 진태의 약혼녀 영신(이은주)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꾸려간다. 그러나 난데없는 전쟁 소식에 이들은 모두 피난길에 오르고, 대구역 앞에서 진석과 진태는 국군 의용군으로 소집돼 전선으로 끌려간다. 영화는 낙동강 전투에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평양 시가전과 중국군 개입 등 한국전쟁의 주요 일지를 따라가며 포연 가득한 전투현장을 잡아낸다. 고막이 터질 듯 전후좌우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포탄과 떨어져 나가는 팔다리, 생존자의 얼굴에 쏟아지는 피와 살점 등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장면은 소름이 끼칠 만큼 빼어난 사실성을 담아낸다. 특히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수만명의 중국군이 달려오는 인해전술 장면은 압도적이라 할 만큼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그러나 카메라는 수천미터 상공에서 진석과 진태의 얼굴 가까이로 옮겨가며 수치와 물량, 체제의 대립으로서의 전쟁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에 겨누어진 전쟁의 칼날을 잡아낸다. 진태는 무공을 세워 그 보상으로 동생을 집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전투의 앞줄에 선다. 그러나 전쟁영웅으로 찬사를 받을수록 진태는 전쟁의 광기에 휘말려가고 진석은 미쳐가는 형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구두닦이 시절 함께 다니다가 북한군 의용군에 끌려간 어린 소년, 총 한 자루 없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꼬마에게 총을 겨누는 진태의 눈빛에는 가족을 보듬으려는 평범한 한 인간의 연민은 지워지고, 증오 가득한 살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북진통일을 앞둔 압록강 전투에서 진태는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전쟁은 끝이 보이는 듯하다가 중국군 개입으로 형제의 운명은 다시 한번 비극적인 엇갈림을 맞는다. 그리고 진석은 집에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는 건 죽음과 실종, 증오와 절망으로 갈갈이 찢겨져 폐허가 된 삶이다. 광기에 휘말리는 형과 아우, 전쟁의 고통과 굴레 잔잔히 다뤄. 낙동강 전투·중국군 인해전술등 빼어난 사실감·스펙터클 ‘압권’ 2000년 한국전쟁 유해발굴에 관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50년 만에 발견된 남편의 유해 앞에서 흐느끼던 백발의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강제규 감독은 영화를 통해 놀라운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도 값싼 영웅주의나 상투적인 이념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개인사 속에 새겨진 전쟁의 고통과 굴레를 차분하게 보여주었다. 전쟁터의 아수라장에서 형제간의 미묘한, 때로는 격렬한 갈등을 보여주는 장동건과 원빈의 연기와 공형진, 오영란 등 조연들의 탄탄한 뒷받침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6일 개봉. “생소한 전쟁극 걱정 많았지만 고집 좀 세웠죠”, 강제규 감독 인터뷰 전쟁사극이 흥행이 검증된 장르가 아닌데 이처럼 대작으로 만들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장르와 흥행의 상관관계를 믿지 않는다. 어떤 장르이든 그걸 잘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주변에서 걱정이 있었다. 전쟁영화라서 너무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엮어가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는. 내 고집으로 밀고 갔다. 우리 영화가 다른 나라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게 이 영화를 탄생시켰다. 개인적으로도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하고 싶었다. 한국전쟁은 아직도 민감한 소재인 만큼 극화하는데에 여러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실미도>는 역사적인 사실이니까 그 사실을 쫓아가는 거고, 물론 거기에 단점도 있겠지만, 우리는 6·25라는 배경이 있지만 어쨌든 픽션이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전쟁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걸 어떻게 잘 엮느냐가 큰 부담이었다. 두 형제의 갈등과 감정이 전쟁의 비극과 잘 맞물려가야 하니까. 너무 다큐처럼 해도 안 되고, 너무 허구여도 안 되고. 전쟁 장면의 사실감이 압권이다. 우리에겐 전쟁 장면을 찍을 노하우가 많지 않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필름의 선택부터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폭격에 화면이 흔들리는 느낌을 연출하는 카메라 장비도 우리에겐 없어서 할리우드에서 빌릴까 하다가 자체 개발했다. <진주만> 같은 데서 잘 쓰는 개각도 촬영, 화면에 파편 같은 게 튀는데 그게 다 살아움직이는 것 같게 하는 이 촬영도 이번 영화에 맞게 하려고 연구를 많이 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고민을 많이 해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총제작비가 170억원으로 한국 영화 사상 최대다. 국내에서 관객이 얼마나 들면 손익분기점이 맞는가. 550만~600만명이면 손익분기점을 맞출 것 같다. 흥행부담 글쎄. 최선을 다했다. 여한이 없다.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제작과 감독을 병행해왔는데 어느게 더 좋은가. 제작도 재밌긴 한데, 체질적으로 감독하는 게 훨씬 재밌는 것 같다. 이번에 명필름과 기업결합한 것도 감독 일에 주력하려고 싶어서이다. <쉬리> 이후에 5년만에 감독했는데, 이런 식으로 작품하다가는 하고 싶은 영화는 많은데 반도 못할 것 같다. 또 명필름과 실질적으로 한 회사 개념이니까 내가 제작에 관여를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제7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1]

단단한, 그리고 새로운 내일의 작가들 <씨네 21>, 한국코닥 주식회사,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주최하는 코닥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제도가 제 7회째를 맞아 당선작을 배출했다. 당선작은 권지연 감독의 <빨간 메니큐어>, 유은정 감독의 <흡연모녀>, 손광주 감독의 <단속평형>이다. 응모한 총 61편의 작품 중 시나리오 및 제작계획서를 바탕으로 심사가 이뤄졌고, 오윤홍 감독의 <감독님, 저 윤희예요>,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이원식 감독의 <생장점>이 당선작들과 함께 최종 심의까지 올랐다. 올해의 심사는 이현승(영화감독), 정재은(영화감독), 남동철(씨네 21 기자), 박도신(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램 팀장)이 맡았다. 당선작 세편은 35mm 필름 1만 피트 제공, 필름의 무료 현상과 인화, 35mm 카메라 장비 대여, 편집 작업료 할인, 텔레시네 작업료 할인, 사운드 작업료 할인 등의 제작지원을 받게 되며, 예년에 비해 보다 폭넓은 혜택이 주어진다. 당선작 세 편은 심사를 거친 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출품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심사평/ 맛깔스러운 단편영화가 보였다 시나리오 제출 마감을 4개월이나 앞당긴 탓에 작년에 비해 제출편수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총 61편의 시나리오와 제작계획서를 심사한 결과, <단속평형>, <빨간 메니큐어>, <흡연모녀>가 제작지원작에 선정되었다. 세편의 시나리오 모두 단편영화로서의 매력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심사기준은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작품제작의 가능성여부, 그리고 영화에 새롭게 접근하는 스타일등을 기준으로 정하였다. <단속평형>의 경우 신선한 기획의도와 새로운 스타일에의 기대로, <빨간 메니큐어>는 단편영화적인 간략한 구성과 의외의 엔딩으로, <흡연모녀>는 튼튼한 캐릭터의 구축과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이야기로 각각 선정되었다. 세편 모두 완성될 영화에 대한 기대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들이고 감독들의 전작들을 볼 때 좋은 작품들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올해 제출된 시나리오들은 소재면에서 겹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노인과 아이를 등장시키는 성장드라마와, 노인들의 질병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아이들의 성장드라마는 단편영화의 하나의 유행이라 할만큼 이미 많이 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단편영화들이 제시하는 결론은 모호한 화해와 이해, 그리고 농촌공간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오늘날 가속화되고있는 가족해체에 대한 무의식적인 일종의 반동적 저항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예선을 통과한 작품의 시나리오는 총 11편이었다. <나의 더티댄싱> <어느날 김만수씨에게 생긴일> <사랑은 꿈이었을뿐> <마중>등은 모두 큰 단점없는 단편 시나리오의 안정성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최종 인터뷰에 올랐던 <용서받지못한자> <생장점> <감독님 윤희예요> 등은 새로운 소재, 드라마틱한 상황이 담긴 시나리오로 최종결정에 어려움을 주었던 작품들이다. <용서받지 못한자>는 군대라는 공간을 경험하는 섬세한 남성의 이미지로 <생장점>은 식물과 여성에 대한 개념으로 <감독님 윤희예요>는 여배우의 시선으로 본 감독에 대한 이야기로 각각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였다. 하나같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작품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원제는 ‘Lost In Translation’)는 단순한 이야기 안에 많은 단상과 감정을 실어나르는 매력적인 영화다. 중년의 한 미국 남자가 일로 도쿄에 갔다가 딸 뻘되는 미국 여자를 만난다. 배우인 남자는 일본에 산토리 위스키 광고 찍으러 갔고, 여자는 사진작가인 남편의 출장에 따라왔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탓에 자주 마주친다. 남자는 일에든 가정에든 활기를 잃은 상태이고, 결혼 2년차의 젊은 여자는 자기 삶의 갈피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연해진 상태다. 말 안 통하는 낯선 도시의 공간은 고립감을 가중시키고, 그로 인해 남녀는 서로를 아는 정도에 비해 더 깊은 동지애를 느낀다. 소통의 단절을 받아들이고 나면, 적은 것으로도 많은 소통을 하게 되는 법.(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소통을 요구하며 산다, 혹은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산다.) 그러나 남자나 여자 모두 맥이 없다. 여기저기 찾아나서거나 영어가 되는 일본인을 만나 그곳의 문화를 탐해볼 수도 있을 텐데, 고층 호텔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있거나(여자) 혼자 호텔의 수영장과 헬스클럽과 바를 전전한다(남자). 그러니까 겁이 많고 열정이 대단히 크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둘이 남달리 외로울 이유도 없다. 중년의 위기라지만 남자는 부인에게서 형식적이나마 매일같이 안부전화가 걸려오고 자식들을 보고 싶어한다. 여자도 남편과의 관계에 이렇다 할 하자가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의 로맨스가 극적으로 치닫기 힘들다는 건 일찍부터 읽힌다. 우리말 제목엔 ‘사랑’이란 단어를 넣었지만 이 영화는 로맨스에 주목하기보다, 이 보통 남자의 일주일 도쿄행에 동승해 그의 눈과 머리, 가슴에 다가오는 풍성한 디테일에 푹 빠져들(원제처럼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영화다. 도쿄 고층건물의 감각적인 광고판과 시끌벅적한 사람들, 수다스런 텔레비전 쇼, 극한의 관음증을 연출하는 나체쇼 클럽 등은 이국적이면서도 친숙하고 시간대가 불명확한 듯하면서도 동시대적이다. 옅은 블루 톤으로 찍힌 도쿄 시가지는 조금 멀리서 비추면 이내 우수를 머금는다. 여하튼 그 풍경을 우리가 보면서 어떤 단상을 갖는다. 동시에 국외자인 이 남자의 눈으로도 그걸 본다. ‘나는 이걸 봤는데 당신은 뭘 봤어’ 하는 식으로 그 남자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둘이 공감할 땐 기꺼이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객지의 스산함과 외로움도 함께 깊어진다. 남자 역의 빌 머레이는 미남은 아니지만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 좋은, 편안한 얼굴이다. 대사가 적고 여백이 많은 이 영화는 인물의 심리를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해주지 않는다. 여자와의 관계에서 극적인 계기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건 남자와 여자의 작별 키스, 그리고 남자의 귀향이지만 거기까지 설레임, 갈등, 자책 등의 복잡한 심리가 이어졌을 것이다.

Home CGV 프로그램 편성 PD 김철연

프로필 1971년생· 동아TV 재직(1994∼98)· 오픈 건강 스튜디오(건강정보)· 두 여자(휴먼다큐)· 퀴즈찬스(퀴즈쇼)· 커피향기 속으로(토크쇼)· 패션뉴스(패션정보오락)· 클래식 이야기(클래식음악정보)· SFAA NWS 등 패션쇼 관련 프로그램· 99년부터 채널 기획 및 편성 업무· 2000년 Home CGV의 전신인 NTV 입사 스무개가 넘는 케이블 영화채널 가운데 베이직 채널로서 프리미엄급 영화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Home CGV다. CJ엔터테인먼트의 후광 덕이기도 하지만, 발빠른 편성 PD들의 소금기 어린 행보 덕분이다. 각종 텔레비전 마켓을 돌아다니며, 제3세계의 다양한 영화 콘텐츠와 해외시리즈를 모셔와 진기한 눈요깃거리를 가득 채워놓는 역할도 그들의 몫. Home CGV는 지난해 화제작 가운데 <살인의 추억>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비롯해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선생 김봉두> 등 최신 개봉작들을 선보이며 높은 시청 흡인력을 자랑했다. 또한 해외시리즈물 <앨리의 사랑 만들기>에 이어 올해 3월부터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0부작 블록버스터 <테이큰>을 비롯한 형사시리즈 <몽크> <특수수사대 SVU>의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1월부터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는 것에 발맞추어 2월 중순부터는 <런치의 여왕>과 <롱 러브레터>를 편성해놓았다. 무엇보다 Home CGV가 특별한 이유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미개척 영화들을 쏠쏠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미개봉작, 국제영화제 수상작 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명작을 매주 목요일 자정에 방영하는 <코스모폴리탄 특집>이나 제3세계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중동영화 특집> 등이 지속적으로 편성될 예정. 이와 같이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동시에 안방극장의 수준을 영화제 수준으로까지 발전시킨 편성의 이면에는 기획자들의 고민과 보람이 녹아 있다. Home CGV의 편성 PD를 맡고 있는 김철연(34)씨는 이런 채널 편성을 두고 “적극적으로 영화를 찾아다니는 마니아가 아닌, 나처럼 평범한 관객을 지향하는 편성”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마니아라면 진짜 영화제를 찾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시청자들을 위해 영화제 수상작부터 중동지역의 희귀한 영화들까지 아이(EYE) 서비스를 해주는 거라고. 스크린을 장식했던 영화가 비디오라는 새로운 윈도를 만난 뒤, 다시 안방극장을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제 불과 일년 미만, 케이블 영화채널들간의 피말리는 수급 경쟁은 그만큼 더 치열해졌다. 종합오락채널 NTV가 전문 오락채널인 Home CGV로 모습을 바꾼 2000년부터 영화 편성의 모든 것을 지켜본 김철연씨가 늘 하는 고민이란, 식탁을 풍성하게 차리는 것보다 메뉴의 질을 높여 영양 만점의 영화 감상을 도모하는 것, 그 한 가지다.

분비물의 기호학

배우들은 참 대단한 인간들이다. 텔레비전 쇼에 나와 우는 연기를 해보라고 요청하면 정말로 단 몇초 만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이들 중 어떤 이는 가끔 극을 벗어나 현실에서, 가령 기자회견 같은 걸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배우가 실제로 우는 순간에도 (아주 조금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절절한 눈물 속에 섞인 연기의 함량은 몇 %일까? 정치에도 눈물이 있던가? 언젠가 텔레비전에 비친 ‘노짱’의 얼굴에는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겠다고 했던 그는 집권 1년 만에 벌써 측근비리로 특검을 받고, 검은돈의 불량한 질에 대한 공격을 10분의 1이라는 비교적 양질의 수치로 방어하고 있다. 듣자하니 대통령 백으로 수십억원의 돈을 펀딩하는 데에 성공한 그의 인척 중의 하나는 사기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눈물로 선전하던 순도에 비하면 성적표가 상당히 불량한 편이다. 노짱의 뺨에 흐르던 그 눈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특유의 이미지 정치를 완성하느라 카메라를 위해 흘린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을 그토록 지지해준 국민들의 성원에 대한 진정한 감동의 생리적 표현이었을까? 호의적으로 해석해 후자라고 본다면, 적어도 국민이 그를 감동시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가 있다면 거꾸로 그가 국민을 감동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이제야 드러난,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말하던 ‘감동의 정치’의 실상이다. 이번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눈시울을 적시는 사진이 뉴스 사이트에 올라왔다. 노동자가 분신을 해도 뽀득뽀득 말라 있던 눈이다. 농민이 음독을 해도 말똥말똥 굴러가던 눈이다. 서민들이 투신을 해도 맹송맹송 시큰둥했던 눈이다. 도대체 그 메말라 척박한 눈을 촉촉히 적신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듣자 하니 수뢰혐의로 구속되어 수사를 받던 어느 공직자의 자살이라고 한다. 평소에 아끼고 아꼈던 그 고귀한 눈물을 기껏 어느 수뢰 혐의자를 위해 흘린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즉각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겠단다. 수많은 억울한 죽음에도 결코 움직이지 않던 그 집단이, 뇌물은 받되 수사는 받기 “피곤”했던 이를 위해 즉각 앙가주망에 나섰다. 진상 밝히기 싫어 자살한 사건. 그 사건의 진상을 굳이 밝힌 건 뭔가? 더 우스운 것은 부산시다. “시장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례를 부산광역시장으로 치를 것이라고 한다. 그 동네는 윤리의식이 많이 다른가? 이 정도면 거의 블랙코미디다. 대체 시장님의 뭘 기린다는 말인가. 공직자로 하여금 뇌물을 못 받게 하는 불합리한 제도에 죽음으로 맞선 저항의 정신? ‘열사’가 났다. 하긴, 한나라당은 이제까지는 주로 남을 열사로 만드는 일만 하지 않았던가. 그러던 차에 이번에 직접 ‘열사’가 났으니, 이를 경축하고 싶었던 걸까? 마르크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 정말로 역사는 두번 반복되는 모양이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옥중 자살에, 고귀한 눈물에, 범시민 사회장에,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단. 운동권 열사 문화를 그대로 패러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과거에 비극이었던 것이 이제는 웃지 못할 희극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 총선 때문이다. 이미 차떼기 당으로 낙인 찍힌 몸. 한나라당으로서는 검찰수사가 출구조사로까지 이어지면 선거 치르는 데 애로가 많을 것이다. 최 대표의 고귀한 눈물은 검찰에 보내는 무언의 시위다. ‘무리 수사 정치검찰, 안 시장을 살려내라!’ 애먼 검찰이 무슨 죄가 있는가. 표적은 그 위에 있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 현 정권의 야당탄압!’ 모든 구호는 실천적 슬로건으로 모아져야 한다. 국민을 향해 내지르는 절절한 실천의 호소. ‘안 시장 뜻 이어받아, 노무현 정권 심판하자!’ 이거야 머리가 달린 자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앞으로 저들의 눈이 쏟아놓을 분비물 속에서 사적으로나마 죽은 이를 진정으로 기리는 액체는 몇 밀리리터나 될까 하는 것이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주말극장가] 개봉작 10편, 풍성한 밥상

두 고래,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싸움 사이에서 ‘새우등’ 안 터지고 남은 파이조각이라도 가져가려는 작은 영화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대작은 없지만 이번 주 개봉작이 무려 10편이다. 흥행 대작의 십자포화에 질린 관객들에게는 더없이 풍성한 밥상이 차려지는 주말이기도 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돋보기를 써야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노친네들의 사랑이야기지만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로맨틱 코미디다. <왓 위민 원트>에서 여성들의 심리와 판타지를 능수능란하게 열어보인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신작으로 다이앤 키튼과 잭 니콜슨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어떤 찬사로도 부족해 보인다. 아카데미 시즌에 맞춰 한국에서도 해마다 개봉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아카데미 후보(여우주연상 부문)’ 개봉작의 첫 타자다. ‘3대륙을 달리네’ 크구나 그 사랑 <머나먼 사랑> <머나먼 사랑>은 목숨을 걸고 난민구호활동에 헌신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꽃피는, 그래서 ‘숭고하다’는 표현말고는 다른 어떤 수사도 용납하지 않는 로맨스 영화다. 로맨스 앞에 ‘어드벤처’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을 수는 있다. 카메라는 에티오피아에서 캄보디아, 체첸까지 3대륙을 달리며 이들의 로맨스 스케일이 얼마나 거대한지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80일간의 세계일주 속에 꽃피는 사랑이라면 모를까, 속사정은 거두절미된 채 과도하게 잔인한 악인들과 속수무책으로 비참하게 당하는 선인들이 등장하는 이국적인 풍경이 로맨스의 배경그림으로 등장하는 걸 보는 건 편치 않다. 편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쾌하다. 게다가 닉은 구호지원금을 얻기 위해 CIA와 손잡고, 영화는 이것을 문제이기는커녕 그의 헌신성을 드러내는 척도로 보여준다. 이런 윤리적 파탄 상태에서 ‘숭고’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의 무모함을 천진하다고 해야 할지, 정신분열증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13일 개봉. 남자셋 여자셋 뒤엉킨 ‘작업전선’. 자크 리베트 감독의 ‘알게 될거야’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프랑스 누벨 바그 세대의 노장 감독 자크 리베트의 2001년작 <알게 될거야>가 13일 개봉한다. 자크 리베트 영화 가운데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세쌍의 남녀 사이에 종횡으로 얽힌 연애관계의 지도이다. 마치 일련의 남자와 여자들을 세워놓고 좋아하는 이성을 향해 화살표 버튼을 누르도록 하는 텔레비전 프로처럼, 화살표들의 방향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바뀐다. 엉뚱하고 영악하고 때론 순진하기도 한 인물들의 ‘작업’ 방식을 풍속도처럼 그려보이는 영화의 태도는 느긋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러면서 디테일 안에는 심리와 행동, 욕망과 대상이 불일치하는 아이러니를 담아 긴장을 자아내는 지적인 영화다. 이탈리아 연극단의 대표인 위고와 이 극단 배우 카미유는 동거하는 사이다. 둘은 연극을 공연하러 파리에 온다. 카미유는 3년전 파리에 살았을 때 사귀었던 철학교수 피에르를 만나면서 마음에 동요를 느낀다. 피에르는 발레와 요가를 가르치는 소냐와 새로 동거하고 있다. 피에르는 카미유-위고 커플을 식사에 초대한다. 그 자리에서 위고는 심사가 불편하다. 예술가답게 변죽을 울리면서 피에르를 살살 긁는다. 하이데거 전공인 피에르는 곧이 곧대로 반응하다가 스스로 흥분해 철학강의를 해댄다. 집으로 온 뒤 카미유는 위고와 한바탕 싸운다. 유혹하고 달아나고 고백하고…복잡한 인물 심리·욕망 끄집어내 어수선한 두 커플 곁으로, 세번째 커플이 등장한다. 여대생 도미니크와 건달인 아튀르는 엄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남매다. 위고는 파리에 온 김에, 파리에 있다는 이탈리아 극작가 골도니의 미발표 희곡을 찾아나선다. 마침 그 희곡을 보관한 것으로 기록된 인물이 도미니크의 조상이었다. 도미니크 집의 서재에서 희곡을 찾으며 위고와 도미니크는 가까워진다. 이들이 유혹하고 달아나고, 고백하고 거부하는 모습에서 각자의 유형이 드러난다. 고지식한 피에르는 고집이 세고 거절당하기 싫어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카미유에게 무심한 척하더니 이내 사랑을 고백하고 카미유가 거절하고 자기집 다락방에 가둬버린다. 카미유의 심리도 간단치가 않다. 피에르 곁에 가서는 아무 말도 않더니, 피에르가 고백하자 거절하고 돌아온다. 카미유가 원한 건 피에르의 고백이지 피에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곤 위고에게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사이에 다른 남자와의 하룻밤짜리 사랑을 경유한다. 무례하고 미련한 건달 아튀르가 그 덫에 걸린다. 영화에서 남자들은 다 미련하고 엉뚱하다. 그래도 위고가 덜 미련하고 상식적이다. 대가족으로 사는 남유럽, 이탈리아인답게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도미니크의 사랑고백을 거부하고는, 피에르에게 결투를 청한다. 결투를 신청하는 것 자체도 우습거니와, 연극 무대 위를 높이 가로질러 걸쳐진 외나무 다리에서 보드카 한병을 들이켜는 결투의 방식도 웃긴다. 반면 여자들, 카미유와 소냐는 연대한다. 남녀간의 차이도, 이 영화에서 읽어낼 재밌는 단상 중의 하나이다.

[셀프 인터뷰] 강우석, 강제규

힘찬 ‘태극기’ 할리우드랑 붙어볼 만. 강우석이 강우석을 말한다 60년생, 성균관대 영문과, 93년 강우석 프로덕션 설립, 같은 해 시네마서비스 대표 취임. 감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투캅스>(93), <마누라 죽이기>(94), <투캅스2>(96),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98), <공공의 적>(2001) 등. 제작 <미스터 맘마>(92), <초록물고기>(96), <투캅스3>(98), <킬러들의 수다>(2001) 등 다수. 출발 할리우드 키드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 졸업 뒤 무작정 충무로에 들어와서 고생은 험하게 하고 수입은 제로인 조감독 생활을 7년 넘게 했다. 데뷔 안하고 버티다가 안정된 제작사를 만나서 데뷔한 강제규 감독과 달리 나는 여러 영화사를 전전하다가 작은 영화사에서 첫작품 <달콤한 신부들>로 88년 데뷔했다. 터닝포인트 감독으로 터닝포인트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 이후 밥벌어 먹기 위해서 계속 찍다가 제작자로 나서게 된 작품이 <미스터 맘마>(1992), 내 회사를 차리고 내 작품을 찍게 된 영화는 <투캅스>(93)부터였다. 가장 큰 터닝포인트는 외자유치를 하면서 시네마서비스의 몸집이 부쩍 커진 2000년도 일 것이다. 고민 지금은 큰 고민 없지만 시네마서비스가 두세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영화를 관둘까 하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다. 한두편의 영화가 잘 돼도 모이는 게 없고 번 돈은 순식간에 날아가는 일을 수차례 겪으면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고민은 내가 감독 일에 치중했을 때, 제작하는 영화 편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보는 강제규 남들은 엄두도 못내는 걸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다. 규모 뿐 아니라 드라마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쫙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저 상황에서 왜 저 대사를 쓰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어느 새 영화 안에 들어가있는 걸 느끼게 한다. 성격을 보면 이십대 때부터 별명이 애늙은이였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어려워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느긋해 보인다. 그런 성격이 남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영화를 찍게 하는 힘인 것같다. 또 그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단점일 수도 있다. 흔들림없는 ‘실미도’ 편안한 감동. 강제규가 강제규를 말한다 61년생, 중앙대 연극영화과, 98년 강제규 필름 설립. 감독 <은행나무 침대>(96), <쉬리>(99) 제작 <단적비연수>(2000), <베사메무초>(2001), <몽정기>(2002) 출발 어릴 적 친구네 집이 극장을 하는 덕에 헐리우드 키드로 컸지만 영화를 한다는 건 시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아버지가 카메라를 사서 사진찍는 것을 보고 나도 사진을 배우면서 영화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게 됐다. 대학 때부터 선배들의 ‘찍사’ 노릇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나 역시 조감독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의 악몽 때문에 설렁탕을 4년 동안, 자장면을 3년 동안 입에도 안 댔던 기억이 난다. 터닝포인트 대학 졸업 뒤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하다가 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했다. <쉬리>부터 내 작품을 내가 직접 제작하게 된 건 조감독할 때부터 주변에서 어떤 의지나 기대가 자꾸 좌절되는 것을 봐서였다. 나 역시 <은행나무 침대> 때 신씨네 이외에는 모두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기투합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직접 제작에 나서게 됐다. 고민 영화 찍을 때는 어렵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쉬리> 찍고 3년 동안 바깥일 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니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은 업무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정체성이 뭔가 하는 고민도 들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를 찍으면서 고민에서 자유로워졌고 내 작품에 충실하는 게 나 자신과 우리 영화에도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보는 강우석 얼마전 일생을 분, 초 단위로 나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살았다는 어떤 물리학자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며 강우석 형을 떠올렸다. 영화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른데 형은 한시간도 다른 데 소모하지 않고 영화에만 매진해 왔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꺾이지 않는 독자성을 가지게 된 데는 그런 형의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해온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담배라도 끊었는데 형은 술 담배 다 한다.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60, 70대까지 현장에서 뛰며 후배들의 귀감이 돼야 할 텐데.

강우석·강제규 흥행 제왕 ‘강·강의 결투’

이런 라이벌이 또 있을까.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금 영화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이 두 영화를 만든 강우석과 강제규는 한국 영화시장의 규모를 번갈아가며 늘려 왔다. 한국 영화가 아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주눅들어 있던 99년, 강제규 감독은 <쉬리>로 500만명 관객선을 돌파하는 전국 597만명의 흥행기록을 썼다. 2~3년에 한번 극장에 올까말까 하는 사람들을 대거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로 900만명을 넘어 1000만명 고지 점령을 코앞에 두고 있다. <실미도> 상영관에선 수십년 만에 영화를 보러왔다는 60~70대도 눈에 뜨인다. <실미도> 개봉 뒤 불과 40여 일 만에 다시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들고 나타나 <실미도>보다 빠른 속도로 첫 주말 흥행 170만명을 넘어서면서 바짝 따라붙고 있다. 감독이, 한국 영화 제작비의 상한선을 깨는 대작의 제작까지 직접 맡으면서 흥행의 상한선까지 교대로 깨나가는 이런 일은 외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 듯하다. 그 두 주인공을 지난 9일 함께 만났다. 약속장소인 신라호텔 커피숍에 강우석 감독이 먼저 들어왔다. 바로 뒤 강제규 감독이 나타나자 한마디 한다. “넌 왜 매번 나보다 늦게 오냐”(강우석 감독이 강제규 감독보다 한살 위다.) “아냐, 형. 6분 전에 왔어.” 그러면서 둘이 웃는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는 기질로 치면 이 둘만한 라이벌이 없음을 충무로가 다 안다. 그렇게 모두 알고 있음을 자신들도 알기 때문에 둘이 웃는다. 둘은 영화계에서 알게 된 지 30년이 다 돼가고, 강우석 감독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의 시나리오를 아직 데뷔전인 강제규 감독이 쓰기도 했다. 감독에 더해 직접 제작, 배급까지 나섰던 강우석 감독은 9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의 1인자가 됐지만, 독립심 강한 강제규 감독은 독자노선을 걸어갔다. 그리고 <쉬리>로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제작자로서 강제규는 제작한 영화의 물량이나 개별 영화의 흥행에서 충무로의 공룡 시네마서비스를 이끄는 강우석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수년간 충무로 파워 부동의 1인자인 강우석은 <공공의 적>으로 다시 감독을 시작했고, <실미도>로 흥행 지존의 자리까지 얻었다. 그건 내 자리라는 듯, 강제규도 다시 감독으로 돌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세차게 휘날리며 쫓아간다. 이 둘의 모습이 꼭 영화같다. 강우석 강제규가 털어놓는 실미도, 태극기. 관객 1000만 힘찬 <태극기...> 할리우드랑 붙어볼 만. 흔들림없는 <실미도> 편안한 감동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강우석 | <태극기 휘날리며>는 내가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가 나질 않아 못하는 걸 엄두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존경할 만하다. <쉬리>나 <은행나무 침대>도 대본 보면 다들 포기할 작품들 아니었나. <태극기…> 보면서 화면 퀄리티도 그렇고 이제 못할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의 제왕> 보고 입을 벌렸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군중 신이 다르냐.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 보면서 느끼는 진짜 전쟁이라는 느낌, 거기 비해 뭐가 뒤지냐. 벌써부터 할리우드 영화에 심취해 있는 일본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처럼 자신있게 밀어붙여도 후회 없을 것 같다. 드라마는 내가 찍기 어렵겠다 싶은 게 뭐냐면 어둡다. 따뜻하고 예쁜 형제애를 담고 있음에도 점점 탁해지고 힘이 들어가고 슬프다. <실미도>의 드라마는 웃을 수 있는 구석이 있다. 편하고 나른하게 가는 상황이 있다. 이 영화는 전쟁상황 속에서 동생 살리려 애쓰는 걸 보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나같으면 견디기 힘드니까 내 터치로 가볍게 갔을 텐데 그게 이 영화에 맞았을까. 스타일이 다른 거다. 강간·훈련·탈출병 학살…실제 들은대로 찍었으면‘등급 보류’나왔을 것 강제규 | 지금까지 형(강우석 감독) 작품을 보면 형이 가지고 있는 영화적 색이 분명히 있다. 나는 몇편 못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 영화는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드문드문 나오니까 세게 힘줘도 봐줄 만하지 않았을까. 형처럼 많은 작품하면서 나처럼 하면, 만드는 사람 스스로가 부담을 느낄 것이다. 형은 많이 해왔기 때문에 버릴 것 버리고 가볍게 가고 그래서 편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다. 강우석 | 나같으면 화면 색을 가볍게 바꿨을 거다. <실미도>가 끔찍한 이야기인데도 편하게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화면 자체가 라이트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화면이 흔들리고 파편이 날아오면서 전쟁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파워풀하다. 팔 다리 잘려 나가는 장면도 나는 찍기 싫다. 그게 영화 만드는 성격 차이일 텐데, 제규(강제규 감독)는 사람이 불타는 걸 직접 보여주지만 나는 못 보여준다. 원래 이 친구가 나보다 잔인하거든.(웃음) 강제규 | 내 기준에서는 많이 푼 거다. 형은 더 풀었겠지만. 난 스필버그의 표현 중에 ‘넌 스톱 슈퍼 액션’이란 말을 매우 좋아한다. 두시간 동안 롤러코스터 타고 가는듯한 느낌을 좋아해서 과할 만큼 몰고 가는 게 내 스타일이다. 때로 웃음, 관조가 필요한데 난 그걸 잘 못한다. 공형진을 캐스팅한 게 그런 고민의 결과다. 두 형제의 이야기가 너무 처절해서 주변 인물을 가볍게 가려고 한 거다. 그런데 팬 사이트에는 공형진을 빨리 죽였다고 원망이 쏟아진다.(웃음) 강우석 | 딱 적당한 부분에서 죽었지. 나는 격렬한 전투신보다 전쟁나기 전에 식구들이 물가에서 노는 장면, 진석이가 돌아왔을 때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같은 따듯한 장면이 더 기억난다. 그런 따듯한 화면이 좀 더 많았더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강제규 | <실미도>는 이야기 구조에 흐트러짐이 없고 방향성에 혼선의 여지 없이 끝까지 가져간 게 성공을 가져온 가장 큰 힘 같다. 형의 원래 스타일이 미장센 같은 데 큰 중요성을 안 두고 찍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큰 기대를 안 했다. 예쁘게 포장하거나 어떤 영화적 미학을 발휘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찍듯 찍겠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만약 다른 영화 찍으면서 그렇게 했다면 안 맞았을 수도 있겠지만 소재가 실미도 사건이니까 그렇게 가도 분명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영화 찍을 때 다른 것들 신경을 많이 쓰니까 <실미도>에서 부분적으로 아쉬운 게 있었지만 그게 영화의 감동과 느낌을 갉아먹지 않았다고 본다. 370만의 민군 죽고 행불 이데올로기 별 뜻 없었던 소시민의 전쟁에서 출발 강우석 | 제규가 찍었으면 아주 살벌한 영화가 됐을 거다.(웃음) 촬영 전 자료조사할 때 강간, 훈련, 사고사, 탈출병 학살 이야기 같은 걸 들으면서 진저리를 쳤고, 얘기 듣다가 그만 하라고 자른 적도 있다. 실제로 들은 대로 찍었으면 ‘18살이상 관람가’이거나 ‘등급 보류’가 나왔을 거다. 제규 같으면 시체 태워서 먹고 하는 것까지 다 찍었을 거다.(웃음) 나는 사실성보다 이야기에 중점을 뒀다. 선과 악, 피와 아의 구별에만 충실하고 과잉된 부분은 배제하려 했다. 좀 더 사실적이냐 아니냐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처음에는 화면에도 신경썼고 기간도 길게 잡았는데 이게 아니다 싶어 그뒤부터 날기 시작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찍은 게 오히려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있다고 본다. 강제규 | <태극기…>의 경우,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극장 나오는 관객 한 분이 우리가 조국 지키기 위해서 빨갱이와 열심히 싸웠는데 그런 부분 없어서 아쉽다는 말을 하더라. 예상했던 것이긴 한데, 촬영 전에 자료조사 해보니까 370만 민과 군이 사망, 행불됐다. 민간인 사상자가 많았고 전쟁 자체가 민군이 결합된 혼합전 양상이었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 비중을 두지 않던 소시민, 국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의 전쟁이었다는 생각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피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겪고 느낀 전쟁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사상에 경도돼서 의지로 싸운 군인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 진실이라는 측면에 근접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전쟁이미지를 다 지우고 영점에서 출발했다. 관객 1천만명 시대 강우석 | 나는 영화 한편이 동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600만명이라고 봤다. 800만명 넘은 <친구>도 부산 경남지역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은 일종의 이변 같았다. 그래도 <실미도>에 관객 몰리는 것 보면서 1000만명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한번 1000만명이 들면 1000만명은 아무 때나 나올 수 있다. 이전 흥행작들은 300만명까지 논스톱으로 가다가 거기서 멈춰서 500만명까지 한참 걸린다. 지금은 계속 달린다. 이제는 마지노선이 600만명이 아닌 것 같다. 장르 영화는 300만~400만명이 한계다. 그게 더 들 때는 어떤 의미가 붙어서 사회현상이 됐을 때다. <투캅스>를 나는 사회고발영화로 찍은 게 아닌데, 언론이 그렇게 봤다. <실미도>도 할리우드 영화 <록> 같은 거랑 붙어보자고 만들었다. 그런데 자료조사 하다보니까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다. 사회적 사건이나 실화를 다룬 영화는 조심스럽게, 솔직하게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사회고발 안해도 과거의 아팠던 부분 보여주니까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 느끼는 관객의 분노와, 지금은 그래도 낳은 시대에 산다는 안도감 같은 게 생기는 것같다. 찍을 땐 그것까지 예상하지는 못하고 드라마틱한 소재의 경쟁력만 봤을 뿐인데 사회현상이 되니까 나도 헷갈린다. 강제규 | 우리가 격동의 세월을 지나왔는데 선배들의 아픔, 상처, 이런데 대한 사회적 배려장치가 너무 없었다. 그런데 대한 보상심리가 <실미도>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실미도>는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요즘 관객들 취향으로 보면 한계가 있을 거라는 시선이 있었다. 그게 아니었던 거다. 과거의 아픔, 고통에 동참하는 데에 인색했다는 공감이 생긴 거다. <태극기…> 준비하면서도 반성 많이 했다. 나는 아버지가 6·25 때 군인이었고, 삼촌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져 왔는가. 아마 형도 <실미도> 만들고 고맙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을 거다. 그게 가식적인 말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공감이자 그동안 당신들은 뭐하고 있었냐는 질타일 수도 있다. 너도나도 과거만 얽매일까, 이상한 대작주의 부를까 부담스럽고 염려스럽다 강우석 | 그런데 <실미도>나 <태극기…>를 계기로 후배들이 너도 나도 심각한 과거, 10·26, 5·16 등을 영화소재로 끌어낼까봐 부담스럽다. 벌써 그런 기획에 대한 소문들이 들려오는데, 이 두편이 이상한 대작 지향주의를 불러올까봐 영화적 역기능이 우려된다. 강제규 | 우리 사회는 아직 다양성이 덜 인정되는 구석이 있다. 누가 뭘 잘해서 터지면 다 따라가고 그런 게 문제다. 내가 나중에 또 이런 영화를 찍으면 ‘저 인간은 그냥 저런 거 하는구나’ 하면 되는데 ‘너만 찍냐’ 이러면 곤란하지 않나.(웃음) 나는 1천만명 시대가 소중한 게, 파이가 커지면 그게 동력이 돼 더 다양한 기획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중년을 소재로 한 영화는 위험성이 너무 크지만 30~40대가 준비된 관객이 되면 그런 영화가 나올 거다. 1000만관객 파이 커진만큼 다양한 기획 동력도 세져 30·40대 관객 더 끌어낼거다 강우석 | 제규에게도 이야기했지만 <태극기…>가 크게 터져서 <실미도>를 잊혀지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 1년에 한편씩 꼭 개봉하고 싶다. 앞으로 제작에 관여는 하겠지만 돈은 안 만질 거다. 올해 말엔 <공공의 적> 2편이 나올 거고. 스필버그는 영화마다 수익 2억달러를 넘기면서도 계속 찍는다. 그게 의미가 있지 제임스 카메론처럼 <타이타닉> 하나 찍고 ‘아이 엠 더 킹 오브 더 월드’ 하면서 놀면 뭐하나. 흥행 성적에 신경쓰는 건 딱 어느 선까지만 하고 빨리 새 걸로 넘어가야 한다. 투자, 배급, 제작자에서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격려하고 밀어주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닌가. 강제규 | 형이 주변 감독들 영화하도록 자리 만들고 격려하고 영화 양산하도록 한 데 대해 박수를 보내야 한다. 나는 그걸 못할 것같다. 몇년 동안 비슷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안됐다. 이젠 좀 더 철저하게 감독쪽으로 가려 한다. <쉬리> 찍고 나서 5년만에 새 영화 내놓은 것에 대해 반성 많이 했다. 이건 배신이다(웃음). 아무리 늦어도 2년에 한편씩은 찍어야지. 형처럼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부지런하면 1년에 한편도 되겠지만. 강우석 | 나도 너처럼 잔인하게 찍으려면 2년에 한편이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