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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신인감독 14인]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

“아무 생각없이 달리고만 싶었다.” 5년 전, 김수현 감독은 촬영현장이 아닌 길 위에 있었다. 시나리오 대신 오토바이 핸들을 쥐고 있었고, 방한모 대신 헬멧을 쓰고 있었다. 난생 처음하는 퀵서비스 일이었지만, “현장을 버리고 길 위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악몽을 바람에 떨쳐낼 수 있어 좋았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다 그놈의 현장사고 때문이었다. <꽃잎>을 끝내고 난 뒤, “데뷔 전에 뭘 하나 해보고 싶어” 시작한 조그만 단편영화 한편이 문제였다. “길에서 사는 10대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담고 싶어” 신탄진에서 촬영을 시작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촬영은 중단됐고, 뒷수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혹시 내가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인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짓눌려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치유될 것 같지 않던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한 것도 ‘시간’이 아니라 ‘영화’였다. <나쁜 영화>에 조감독으로 합류하게 되고, 10대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자신을 다독일 힘을 얻었다. 오토바이 타고, 레카차 타고 무작정 떠돌면서 만난 길 위의 사람들 이야기를 <귀여워>에 판각하면서 다시 해보자는 의욕도 얻었다. <귀여워>의 시나리오 초고만 하더라도 거칠고 황폐한 인물들을 쭉 보여주는 식이었지만, 도중에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순이라는 ‘촉매제’ 같은 인물을 넣은 것도 그런 심경의 변화와 무관치 않았다. 물론 오랜 시간 보듬고 다듬는 과정이 만만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캐릭터 위주로 후닥닥 편하게 써내려갔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걸 두고 자꾸 해석하려 들었고 그걸 시나리오상에서 어떻게든 풀어주는 게 무척 힘들었다.” 가끔 “쉽게 내린 결정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것 같다”는 그를 맨 처음 유혹한 건 영등포 재개봉관에서 본 <레이더스>. 관람 내내 “저런 거 딱 한번만 해보고 싶다”는 소망뿐이었다. 한번의 가출과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뺨 한대로 쉽사리 영화과 진학의 뜻을 이뤘고, 아는 형의 권유로 동국대 연극영화과 87학번이 됐다. 당시로선 영화연출을 지망하는 이가 거의 없어, 바깥으로 돌며 정지우, 김용균 등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만난 구성주 감독 덕에 졸업할 무렵 데뷔하는 이가 없으면 자리가 잘 나지 않았다는 장선우 감독의 연출부가 됐다. <경마장 가는길>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다는 그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시작으로 “착취도 많이 당했지만, 한없이 열린 좋은 스승” 아래서 수학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첫 번째 카니발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카타르시스와 순간의 엑스터시를 넘어 영원한 카니발의 세계로 들어간” 에밀 쿠스투리차를 경쟁자로 삼고서.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오계옥 어떤 영화? 제작사 청년필름 출연 캐스팅 중 5월 크랭크인 예정 무너지기 직전의 오래된 아파트. 철거 직전의 상황이다. 물론 이곳은 신내림을 받았다는, 자칭 용한 점쟁이 한진희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한때 반듯한 외모와 그럴듯한 말솜씨로 여신도들을 몰고 다니며,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전력이 있는 이 사이비 교주는 50살이 넘어서도 아이를 갖길 원하는 중년 부인에게 부적을 써주는 대신 관계를 갖는 식으로 자신의 신통함을 과시한다. 퀵서비스맨 963과 레카차를 모는 개코, 그의 배다른 두 아들 역시 내일 없는 하루를 연명하는 건 아비와 마찬가지. 그러던 어느날, 개코는 적적해뵈는 아비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고 고속도로에서 뻥튀기를 파는 젊고 예쁜 처녀, 순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순이의 등장으로 한진희, 963, 개코의 애정 3파전이 벌어지고, 여기에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또다른 아들 머시기가 순이를 향한 순정을 품게 되면서 철없는 부자간의 말릴 수 없는 싸움이 이어진다.▶ 2002 신인감독 14인 출사표 ▶ [2002 신인감독 14인] 의 김현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아유레디?>의 윤상호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데우스 마키나>의 이현하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명랑만화와 권법소년>(가제)의 조근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정글쥬스>의 조민호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일단 뛰어!>의 조의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서프라이즈> 김진성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오버 더 레인보우>의 안진우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연애소설>의 이한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의 이종혁 감독

[2002 신인감독 14인]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 감독

“60년대, 80년대 정서가 좋다. 플라스틱보다는 유리병이 주는 느낌, 팩보다는 병의 선이 더 좋고.“ 74년생답지 않은 늙은 취향을 가진 김동원 감독이 좋아하는 사람들도 일괄적이다. 시인 황인숙, 가수 김광석, 김수철, 인순이, 소설가 김승옥 등. 대학 시절 즐겨 찾았던 장소는 명동 남산골 부근에 있는 장미다방. “다방의 인테리어와 원두커피 블루마운틴이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좋다. 이쪽 탁자에서는 돈문제로 목청높여 다투고, 저쪽 탁자에서는 우리 딸이 어쨌는데 말이야 하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 가만히 듣는 게 즐겁다.” 감독 데뷔작도 버스 안내양, 달동네, 디스코텍이 등장하는 80년대풍 코미디가 된 건 전혀 우연이 아니다. 서울예대에 진학하기 전인 고2 때 어느날 본 영화가 그의 평생 직업을 정했다. “TV에서 하는 한국영화였다. 제목도 기억이 안 나는데 너무 못 만들었더라. 내가 하면 잘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결심했다.” 감독이 되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길로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졸업작품이었던 26분짜리 단편 를 장편으로 다시 버전업시킨 영화다. 단편으로 만들고 나니 뭔가 부족한 듯 아쉬움이 남아 졸업여행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다시 해보고 싶은데, 그러면 시간이 길어져서…” 하는 말이 씨가 됐다. 스승인 강한섭 교수가 관심을 가져주었고, 수차례 회의를 거듭하며 “단편영화와 장편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으니 전문제작자를 만나서 진행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여기까지 왔다. 교복과 사복이 공존하고 두발자율화가 갓 시작된 시대, 부와 빈이 혼재됐던 그 시절을 재현해내기 위해 택한 공간은 난곡 재개발지역. 달동네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김동원 감독에게 그 시절 그 동네를 그리는 건 어쩌면 SF영화 같은 상상력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쌈마이가 좋다. 그 어설픔이. 지루한 건 싫다. 못 참는다”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김동원 감독이 빚을 “퍼포먼스 같은 느낌”의 코미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는 강추위 속에서 난곡에서 달동네 장면 촬영을 강행, 현재 15% 정도 진행된 상태다. 충무로 경력은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연출부가 전부인 김동원 감독이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에서 바라는 감독으로서의 바람은 확실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다. 글 위정훈 oscarl@hani.co.kr 어떤 영화? 제작사 기획시대 출연 임창정, 양동근, 이정진 촬영중(5월 개봉 예정) 때는 80년대 초. 싸움질로 시간을 보내던 달동네에 살고 있는 세 소년이 있다. 터프하고 귀여운 소년 해적(이정진), 바보스러울 만큼 순둥이인 봉팔(임창정), 못 말리는 뺀질이 성기(양동근)는 달동네를 주름잡는 의리의 삼총사. 어느날 패싸움을 벌인 뒤 으쓱대며 거리를 걷던 해적은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며칠 뒤, 해적과 성기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봉팔의 집을 찾아오는데, 달동네 꼭대기 봉팔의 집에서 해적은 그 소녀가 봉팔의 동생 봉자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봉팔이 던진 벽력같은 한마디. “울 아부지가 다쳐서 내가 똥을 펐어. 그런데 동생이 술, 술집에… 흑흑” 술집이라니? 분기탱천한 삼총사는 “봉자를 구하자!”며 룸살롱으로 쳐들어가지만, 봉자는 이미 더 무서운 ‘큰형님’이 운영하는 디스코텍으로 넘겨진 상태. 디스코텍의 큰형님은 자신들이 개최하는 디스코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면 봉자를 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주어진 기간은 1주일. 할 줄 아는 건 싸움질밖에 없던 삼총사, 어떻게 디스코를 연마할까?▶ 2002 신인감독 14인 출사표 ▶ [2002 신인감독 14인] 의 김현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아유레디?>의 윤상호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데우스 마키나>의 이현하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명랑만화와 권법소년>(가제)의 조근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정글쥬스>의 조민호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일단 뛰어!>의 조의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서프라이즈> 김진성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오버 더 레인보우>의 안진우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연애소설>의 이한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의 이종혁 감독

MGM, 역사 속으로?

경영난으로 70억달러에 매각 추진, 진행중인 프로젝트 백지화 우려 MGM의 운명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한때 “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은 스타를 거느렸던”스튜디오 MGM이 최근 경영난에 시달리다, 입찰가 70억달러선에 매각을 추진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가 지난 1월15일 이와 같은 사실을 보도하자, MGM쪽은 공식 성명을 통해 “그간 공동 사업(합병)의 기회를 검토해왔다”면서, 아직 어떤 업체와도 구체적인 계약이 이뤄진 바 없다고 발표했다.MGM이 매각을 추진하게 된 것은 AOL-타임워너 합병을 비롯, 최근 할리우드의 라이벌 스튜디오들이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덩치를 불리고 있는 사실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MGM의 최고경영자인 알렉스 예메니잔도 “더 큰 조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데 내부적으로 동의한 상태”라며, 중소 메이저 스튜디오로서 거대 메이저에 맞서는 어려움이 매각 결정의 주된 요인임을 밝힌 바 있다.MGM은 지난 1924년 설립돼 수많은 화제작과 걸작들을 제작 배급해왔으나, 최근 들어 침체에 빠졌다. 이는 지난 1969년 이래 사주인 커크 커코리안이 언론 재벌 테드 터너, 이탈리아 복합기업체와 프랑스 은행 등에 돌려가며 회사를 팔았다가 되사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불안해지고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 지난해 5월에는 브라보, 아메리칸 무비 클래식 등 레인보 미디어 산하 케이블채널의 지분 20%를 8억2500만달러에 사들이며, 다양한 영상사업을 아우르는 통합 미디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계약을 통한 지출이 너무 컸고,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누리지 못한 것. 이번 매각 결정을 둘러싼 소문의 한가운데에도 역시 사주인 커크 커코리안이 있다. 억만장자인 그가 이제는 카지노 사업에 주력하기로 했다거나, 전 아내에게 지급할 위자료 때문에 목돈을 챙기려 한다는 둥의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 현재 MGM의 매각 협상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진 업체는 월트 디즈니, AOL 타임워너, 바이어콤, 소니, 비방디 유니버설, 드림웍스 등 메이저 엔터테인먼트 그룹들이다. 독일의 베르텔스만이나 의 오너인 제너럴일렉트릭사 등 TV 그룹들도 다크호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욕심내는 MGM의 자산은 무려 4천편에 달하는 영화와 1만편의 TV쇼로 구성된 거대한 라이브러리. 이 중에는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뜨거운 것이 좋아> 같은 고전 작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스파게티 웨스턴, 우디 앨런의 코미디, <터미네이터> <매드 맥스> 등의 프랜차이즈가 포함돼 있다. 배급력은 막강하지만, 상대적으로 콘텐츠가 부실한 디즈니 등에서 MGM의 라이브러리를 탐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렇다면 제작 진행중인 MGM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MGM은 최근 20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가 제작에 들어갔고,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만 15건에 이른다. 오우삼의 <윈드 토커>는 개봉 대기중. MGM의 입장은 영화와 TV쇼의 자체 기획과 제작은 계속 진행한다는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최악의 경우 인수 업체에 의해 프로젝트가 백지화될 수 있으니, MGM과의 향후 작업은 고려해야 한다는 것.아직까지 MGM이 매각되지 않은 것은 70억달러라는 입찰가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의 투자 전문가들은 55억달러선이 적정가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업체매각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됨에 따라, MGM의 주가가 12%나 상승하는 등 할리우드 안팎의 동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박은영

[Review] 공공의 적

■ Story 강철중(설경구)은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아 경사로 특채된 권투 선수 출신 형사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강철중의 계급은 경사, 순경으로 낮아지기만 한다. 범인 잡기에는 별 관심이 없고, 마약범에 마약 빼앗아 팔아먹고, 길거리 노점상에 용돈을 받아 쓰는 악덕 경찰이다. 감찰이 들어오는 바람에 함께 부정을 저지르던 강력반장이 바뀌고, 선배가 자살을 해도 강철중의 삶은 별반 바뀌지 않는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밤, 조규환(이성재)을 만나기 전까지는. . 승승장구하던 펀드 매니저 조규환은 철저한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냉정하게 부도처리하며 사장을 자살로 내몰고, 자신을 화나게 한 택시기사는 벽돌로 때려죽인다. 조규환은 한달만 기다리면 수백억원으로 불어날 투자금을, 철거 위기에 몰린 고아원을 돕겠다며 빼오라는 아버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조규환은 태연하게 부모를 죽인다. 그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내쳐버린다. 부모를 죽인 날 밤, 강철중을 만나기 전까지는. ■ Review 20세기 초반 미국의 ‘공공의 적’(<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y)의 제임스 캐그니)은 자본주의 질서를 비웃으며 자신의 왕국을 세워가는 갱이었지만, 21세기 벽두 한국의 ‘공공의 적’은 다국적 금융자본의 첨병으로 한국사회, 경제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펀드 매니저다. 우습다고? 물론이다. 3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한 강우석의 경찰코미디 <공공의 적>은 지독하게 웃기고, 한편으로 사회의 X같은 ‘시스템’을 맹렬하게 씹어댄다. <공공의 적>이 능청맞고, 또 활기차게 다가오는 큰 이유는 강철중이란 캐릭터가 워낙 생생하기 때문이다. ‘타락과 도덕의 경계’에 서 있는 경찰은 이미 <투캅스>에서도 본 적이 있다. <마이 뉴 파트너>나 아벨 페라라의 <악질 경찰>에서도. 그들은 부패를 즐기거나, 일종의 고행처럼 악행에 참가한다. 하지만 강철중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서두의 내레이션부터 ‘무비판’에 ‘도덕관념 마비’의 강철중은 경찰의 ‘의무와 책임’을 한마디로 씹어버린다. 그리고는 바로 마약범에 강제로 마약을 뺏은 강철중의 얼굴이 나온다. 악행을 하느라 얼굴 이곳저곳이 터지고 부어오른 모습. 강철중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야수 같은 존재다. 그가 속한 경찰조직은 단지, 그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강철중은 자신보다 더 큰 악을 만나자 변한다. 삥땅치고, 나쁜 놈들을 조금 괴롭히는 정도의 악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을,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는 ‘공공의 적’을 비로소 만난 뒤에. 그래서 강철중은 사람이 된다. 그건 상업영화가 가져야 할 도식적인 결말이지만, <공공의 적>에서는 일말의 논리를 갖는다. 강철중은 세상이 모두 악의 구렁텅이이고, 자신도 그 틈에서 얼렁뚱땅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소한 악을 행했다. 하지만 조규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감겨 있던 눈을 뜬다. ‘공공의 적’을 보는 눈을. <나쁜 경찰>에서의 형사는 수녀를 강간하고 강도질을 하는 범인들을 추적하며, 그들이 단지 세상의 악에 물들어버린 평범한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좌절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그러나 강철중은 그렇게 심오하지 않다. 그 심오하지 않음, 그 단순함이 <공공의 적>을 코미디로 만든다. 부모를 죽인 냉혈한과의 싸움이라는 소재는, 코미디보다는 서늘한 누아르에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강우석은 <마누라 죽이기>처럼 스릴러에 어울릴 법한 소재를, 코미디로 능청맞게 뽑아내는 솜씨가 있다. <공공의 적> 역시 탁월한 감각으로 도발적인 웃음을 끌어낸다. 조규환을 비호하는 검사가 강력반을 찾아와 강철중을 비아냥거리자, 늘 철중에게 시비걸던 반장은 갑자기 욕설을 해대기 시작한다. 양복을 입고 취조를 받던 용의자를 씹으며, 구타를 하며 ‘권력’을 조롱한다. <공공의 적>은 권력과 시스템 자체에, 진지하고 날선 비판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냥 강철중처럼, 치받아버린다. 강철중은 편의에 따라 증거를 조작하고 시스템을 조롱한다. 그건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엿먹어라’ 외치고는 도망쳐버리는 것이다. 요즘의 코미디영화들이 그랬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폭력과 일탈은 권위적인 사회 모순에 근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은 단지 카타르시스일 뿐이었다. 그들은 시스템을 부수지도, 돌아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공공의 적’을 발견한 강철중은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을 무참하게 박살낸다. 결코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주먹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그런 점에서 <공공의 적>은 돈 시겔의 <더티 하리>와 닮아 보인다. 하지만 더티 하리는 ‘사회 체제의 적’을 죽인다. 강철중은 ‘공공의 적’.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을 응징한다. 그는 ‘사회질서 수호’ 같은 데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그는 그냥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자들만을 골라내서 반죽여버린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것은 값싼 폭력이 아니다. ‘쌈마이’영화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시대에도, <공공의 적>은 적절한 품위를 지킨다. 순경으로 강등되어, 분식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조폭’들을 패는 강철중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후련한 기분이 든다. <공공의 적>으로 강우석은, 앞으로 한동안은 어떤 코미디영화가 등장해도 한마디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공공의 적> 조연배우 맛깔나는 코미디의 갖은 양념들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80%에 이른다. 체중을 20kg이나 불리며 ‘악질 형사’ 강철중으로 변신한 설경구의 연기는 ‘정점’이다. 이 이상의 연기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설경구는 <공공의 적>을 장악하고 있다. 이성재의 열연이 희미해질 정도로. 그러나 <투캅스>가 그랬듯이, <공공의 적>의 자글자글한 맛을 내는 양념은 여전히 개성이 넘치는 조연들이다. 중후한 연기력으로 무장된 중견 연극배우부터,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찾을 수 없는 외모의 개성파 조연까지 웃음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반드시 나타나는 조연들이 <공공의 적>의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우선 웃음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배우가 있다. 마약범과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투덜거리는 강철중에게, ‘약 뺏기고 두들겨맞은 걔들은 얼마나 열받겠냐’며 참으라고 말한 뒤 자살하는 선배형사 역으로 중견연극배우 기주봉이 출연했고, 분위기 쇄신 차원으로 부임한 엄 반장 역으로는 역시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는 강신일이 나왔다. 등장하자마자 욕설을 입에 달고, 부하들 군기잡기에 나서지만 차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묵직하게 보여준다. <친구>의 화자 서태화는 조규환을 비호하는 관할지역 검사로, 윤문식은 강철중에게 ‘공공의 적’으로 찍혀 일망타진 당하는 사채업자의 우두머리로 나온다. 웃음을 주면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조연들로는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등이 있다. <달마야 놀자>에 나왔던 이문식은 업소에 술을 대며 이권을 치는 안수 역으로 나온다. 성을 붙여 빠르게 부르면 ‘산수’가 된다. 산수는 강철중에게 폭력혐의로 잡혀 왔다가, 난데없이 십자드라이버를 들고 연쇄절도범으로 둔갑한다. 강철중이 뺏은 마약을 팔아주는 거간꾼이자 정보원 노릇도 하는 대길 역은 성지루, 한때 칼잡이로 날리다가 지금은 제비족으로 살아가는 용만 역은 유해진이 맡았다. 두 배우 모두 <신라의 달밤>에 나왔다. 강철중의 명령으로 시체실에 나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공공의 적>에서 조연배우들의 쓰임새를 잘 말해주는 장면.

어드벤처 무비 <아 유 레디?> 타이 촬영현장

시속 30km쯤 되었던가. 버스가 방콕을 벗어나자, 매일 회전목마 돌듯 시내만 운전하던 버스기사는 초행길이 무서웠던지 꼭 거북이처럼 달린다. 게다가 길을 물으려 다른 기사에게 전화를 걸고 오더니 영 표정이 시원치 않다. 상크라부리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전해 들은 이 맨발의 타이 아저씨는 날이 어둑해가기 시작하는데 “나 죽으면 책임질 거냐고, 버스 전복되면 어떡하냐고” 길 중간에 차를 세우고 꼼짝도 않는다. 마음 같아선 대신 운전대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만 결국 근처 동네를 수색해서 빨간색 고물버스 하나를 섭외했다. 쾡하게 팬 눈의 한 동네 노인은 버스 주변에 서서 ‘상크라부리? 상크라부리?’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하긴, 방콕에서 북쪽으로 500km가 넘는 거리에 위치한 깡촌, 타이 총 73개현에서 그 말만으로도 엄청난 시골을 의미한다는 ‘부리’라는 말이 끝에 붙은 3곳 중 한곳. ‘자살관광버스’가 아니고서야 빳뿡거리의 안락한 마사지실을 뒤로 하고 그 험한 오지로 가겠다는 한 무리의 관광버스단을 이해 못하겠지. 에어컨 빵빵하던 고급버스에서 선풍기 달린 구식버스로 옮겨타긴 했지만, 제법 속력을 내어 달리는 새 운전사의 용감함도 마음에 들고, 차창 넘어 불어오는 이국의 저녁 바람에도 괜히 마음이 설레온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렸을까?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도 하나 없이, 그 흔한 가로등도 없이, 버스의 헤드라이트만을 등대삼아 달려가던 캄캄한 비포장 시골길에는 태초의 공포 같은 것들이 달려드는 모기떼만큼 자주 엄습하곤 했다. 커브를 돌자 모습을 드려내는 산 아래 검은 바다. 희미한 불을 달고 떠 있는 수상가옥의 풍경은 행선지가 어디인지도, 미션의 내용도 모른 채 베트남의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던 <지옥의 묵시록>의 공기를 실시간으로 느껴보는 ‘스튜디오 체험관’에라도 들어선 느낌이다. 이러다 정말 이상한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건 아닐까? 혹시 나도 모르게 ‘아유레디’ 입구에 이미 들어선 걸까?. “왜 당신들은 이곳까지 왔나요?” 상크라부리의 후리껍에서 촬영이 있는 숲으로 들어서는 길. 버스에서 내린 타국의 기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피곤한 표정의 군인들은 70년대의 베트남 어느 전장에서 마주쳤을 법한 모습들. 내전중인 미얀마 국경에 가까이 위치한 이곳은 작은 폭음만으로도 자칫 민감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 군인들이 촬영현장을 지키고 있다. 촬영을 끝낸 차가 숙소로 돌아갈 때도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하는, 영화 밖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이곳은 진짜 전쟁터인 셈이다. <아유레디?>(R U Ready?)는 우연히 테마파크에 모인 6명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아유레디’라는 관에 빠져들면서 각기 다른 판타지의 장에서 애써 외면했던 자신들의 진짜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는 어드벤처 판타지다. 후리껍에서 촬영되는 베트남전쟁 시퀀스는 극중 황노인이 격는 판타지 제1장. 베트남전 참전 당시 자신의 비겁한 결정 때문에 소대원을 다 잃었다는 자책을 평생 안고 살아온 황노인에게 ‘아유레디’관은 그에게 용기있는 결정을 내릴 다시 한번의 기회를 제공한다. “살아 있는 역이에요? 죽어 있는 역이에요?” “살다가 죽는 역이래요.” 제작부장 신영일까지 군복을 차려입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를 만큼 많은 이들이 포진된 곳에서도 묘한 질서는 존재한다. 한국 스탭 70, 80명과 현지 스탭 50명 정도가 조용히 섞여 있는 이곳은 속삭이는듯한 비음의 타이어가 윗공기를 차지하는 가운데 크고 묵직한 한국어가 아랫공기를 자치하고 있다. <툼레이더> <비치> 등의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노련한 현지 스탭들과 퓨쳐비젼의 박광남 특수효과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만들어내는 팀워크는 열대의 밤공기를 가르며 무언(無言)의 조화를 이루내고 있었다. “이거, 리테이크 없습니다. 한번에 갑니다!” 세트로 지어좋은 막사를 터트리는 신은 원래는 30개 이상이 터질 대규모 폭발이었지만, 시험 폭발중 타이 국방부 관계자가 방문해 자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폭발 강도나 폭약 갯수를 줄여야 했다. 막사 건너 바나나나무 숲에 설치된 10개의 폭약은 감독의 ‘스타트!’ 하는 구령에 맞추어 마치 폭풍 같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리듬감 있게 터져나간다. “그렇지 그렇지, 시원하게 터진다.” 마치 광기어린 테러리스트처럼 혹은 열정적인 지휘자처럼, 모니터 앞의 윤상호 감독은 머리 속으로 그려놓았던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즐기는 동시에 촬영장 전체를 무섭게 장악하고 있었다. “데코레이션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해놓는다 해도 광선이나 느낌까지 열대기후의 그것을 흉내내지 못해요.” 왜 굳이 타이까지 왔느냐는 질문에 눈엔터테인먼트의 김윤오 PD는 “타이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봄, 여름, 가을이 다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한국보다 낮은 제작비로 높은 만족도를 얻어내겠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현지진행을 도와주는 ‘바나나스’가 일주일씩 4차에 걸친 헌팅으로 찾아낸 이 장소는 전쟁 요지로서 손색이 없다. 할리우드 등 세계 각국의 영화들의 로케이션 장소로 이미 노하우를 쌓고 있어서인지 타이 현지진행은 그 어느 곳보다 유연하게 업무를 처리한다. “그간의 블록버스터들은 누수를 많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안고 있었지만 <아유레디?>는 대규모지만 군살을 쪽 뺀 프로젝트”라는 것이 김윤오 PD의 자랑. CG 분량이 많은 영화기 때문에 아예 촬영도 HD파나비전 카메라로 찍고 있다. CG 작업을 위해 필름에서 디지털로 가는 작업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촬영 원본에 거의 손상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작업할 수 있기 때문. 긍정적인 타협에 강하고, 판단이 빠르다는 평을 듣고 있는 윤상호 감독은 규모의 무게에 눌리지 않은 채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어드벤처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철저한 장르영화로서의 재미와 한국적 드라마의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각오로 중무장된 <아유레디?>. 이들이 앞으로 가는 길엔 폭포, 늪, 지진 등의 결코 만만치 않는 시퀸스들이 남아 있다. 1월 말까지 진행될 타이촬영을 마치면 큰 산은 하나 넘는 셈이다. 산 넘고 물 건너서 바다 건너서 날아올 ‘아유레디’관으로의 초대장은 올해 7월쯤 관객의 손에 쥐어질 예정이다.타이=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① “안 돼! 도망가지 마! 물러서지 마!” 다시 선택의 순간에 선 황소위.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② “스타트!” 감독의 사인에 맞춰 10개의 폭약은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리듬감 있게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③ “한국에서도 어드벤처영화가 가능하단 걸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힌 윤상호 감독은 긍정적인 타협에 강하고, 판단이 빠르다는 평을 듣고 있다. ④ CG 합성을 고려해 <아유레디?>는 필름 대신 HD파나비전 카메라로 촬영중이다. 소니의 고화질 카메라 HDW-F900은 높은 해상도와 함께 색상 재현이 충실하다. ⑤ “엎드려!” 테마파크에서 갑자기 전쟁터로 빨려들어온 사람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⑥ 에어컨버스 기사가 “위험해서 더는 못 가겠다”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결국 취재팀은 급조된 선풍기버스로 옮겨타는 신세가 되었다. ⑦ “OK?” “Good” 70여명의 한국 스탭과 50여명의 타이 스탭은 짧은 적응기간을 거친 뒤 이제는 무언(無言)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⑧ “우린 옷 갈아입을 틈도 없어요.” 천정명, 김보경, 박준화, 이종수, 김정학, 안석환(왼쪽부터). 늘 ‘세트’로 움직이는 이들에겐 매일매일이 ‘연결신’이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촬영현장

“너무 뜨거운 물 붓지 마아∼. 발에서 때밀려욧!” 코에서 울리는 특유의 오묘한 화음으로 엄정화가 제작부에게 말한다. 별로 안 뜨거우니, 걱정 말라고 하자 발을 쑤욱 ‘다라이’에 담근 그녀가 옷가지들을 신나게 밟아대기 시작한다. “자, 슛 들어갑니다” 하는 사인이 나왔지만, 꿀렁꿀렁 촉감이 좋은지 아예 물장난을 칠 기세다. 유하 감독의 재기작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막바지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산동네 금호동 언저리다. 주머니보단 마음이 넉넉한 부부들이 첫 보금자리로 삼기에 적당할 듯한 옥탑방에서 사이좋게 빨래를 밟고 있는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샘이 날 법도 한데 사정은 간단치 않다. 이날 촬영분은 결혼한 지 두달밖에 지나지 않은 연희가 남자친구였던 준영을 찾아와 빨래를 하는 등, ‘딴집 살림’을 시작하는 대목. 이날 이후 연희의 옥탑방 체류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아예 ‘본가’로 돌아가기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 원작소설에서처럼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잽을 날렵하게 날려대는 이 작품은 1월24일쯤 촬영을 마치고 화사한 신부들이 기다리는 4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만들 예정이다. 글 문석·사진 이혜정 (1) “맛 좀 봐라, 얍!” 우성이 비누거품을 옷에 묻히자, 연희는 싫지 않다는 듯 까르르거리며 피하는 시늉을 한다. 닭살 커플이라고? (2) 소품 담당들이 샴푸인지 물비누인지 모를 액체를 붓고 부글부글 거품을 만들고 있다. (3) 이 영화를 통해 ‘입봉’하는 김영호 촬영감독은 <무사>에서 2조 카메라를 책임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은, 미친짓이다>는 감독과 남녀 주연 모두에게 “처음 같은 느낌”의 영화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실패를 맛봐야 했던 유하(4) 감독이나, “아직도 <마누라 죽이기>는 못 봤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부담스런 기억을 갖고 있는 엄정화(5)나, 방송을 떠나 영화에 첫발을 딛는 감우성(6)이나 모두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영화에 임하고 있다”며 입을 모은다.

<나쁜 남자>로 영혼을 다친 배우, 서원

<나쁜 남자>는 한 젊은 여배우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영광의 기억으로 남았다. 여대생에서 창녀가 되고, 자신을 창녀로 만든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선화가 되어가는 과정은 배우 서원에게 고통스런 경험이었지만, 그것이 평생 잊지 못할 커리어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저, 사진 먼저 찍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나쁜 남자>에 대해, 선화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에 우물우물하던 서원이 불쑥 말한다. “<나쁜 남자> 이야기를 하면 촬영 때의 일이 떠올라 표정까지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어두워지거든요.” 무엇이 그리도 괴로웠을까. “선화로 있어야 하는 제 모습이 끔찍했어요.” 파괴된 자신과 현실을 거부하던 초반의 선화는 차라리 쉬웠다. 중반부터 모든 것에 초연해져 멍하게 앉아 있는 선화는 선뜻 몰입할 수 없었다. 선화를 만들어낸 건 전적으로 김기덕 감독이었다. 워낙 리얼한 시나리오를 받아든 서원이 한 일은 단 두 가지. 최대한 자신을 선화에게 맞추기, 선화 속으로 들어가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졌고, 촬영장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촬영장에서 거의 자폐였어요. 말도 안 하고. 촬영 없을 때도 거울을 들여다보면 제가 정신이 나가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요.”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고 밝았다는 서원은 선화 때문에 “영혼을 다쳤다”. 그 말에 약간의 엄살과 어리광이 얹혀 있을지라도 <나쁜 남자>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파괴적인 사랑에 휘말린 여성의 고통 속으로 몰입하면서 상처입지 않을 만큼 단단한 영혼은 흔치 않을 테니. <나쁜 남자> 촬영이 끝난 뒤 서원은 의식적으로 자기 안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은 선화를 떠나보냈다. 친구를 만나고 콘서트며 뮤지컬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더이상 선화로 살지 않기. 서원으로 살기.’ 6개월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쁜 남자>의 기억의 편린들이 조금씩 희미해져가는데 영화가 개봉했고, 서원은 다시 악몽으로의 초대장을 받아들었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악몽이었어요.” 실제로 처음 시나리오를 읽은 뒤 서원은 자주 울었고, 끊임없이 자신이 선화의 상황에 빠지는 악몽에 시달렸다. “원래 감정의 기복이 심한데, 시나리오 보고 나서 계속 울었어요. 그냥, 이유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슬프다, 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시나리오 들여다보기가 힘들었어요.” <섬> 때 다방 레지 역으로 김기덕 감독과 작업을 해본 적은 있지만, 이만큼 지독하게 ‘다칠’ 줄은 몰랐다. “감독님 영화를 좋아했어요. 관객으로 보는 건 좋았는데 실제로 감독님 영화에서 연기를 하는 건 좀….” 그래서 지금 심정은 “당분간 이런 역은 사양합니다”. “머리를 비워야 뭔가를 담을 수 있는데 아직 다른 걸 담기가 힘들다”는 게 그 이유. 독특한 영화, 독특한 역할은 젊은 배우에게 자칫 족쇄일 수도 있다. 좀더 시간이 흐르고 선화의 흔적을 지운 뒤, <나쁜 남자>류의 파괴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따뜻하고 정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는 것도 그런 불안에 대한 방어막이리라.

김현진의 오! 컬트 <일곱가지 소원>

유치원 때 왠지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배우는 <브로드캐스트 뉴스>의 윌리엄 허트였다. 초딩 고학년 때 왠지 지적이라고 생각했던 배우는 <모리스>와 <비터문> 이후의 휴 그랜트였다. 그러다 95년 꽥, 기억하는가? LA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휴 그랜트의 카섹스 스캔들 대폭발. 비슷한 시기 델타공항에 총을 갖고 들어갔다가 구류 살았던 크리스천 슬레이터는 왠지 멋있어 보였던 주제에 누구랑 자든 자기 알아 할 일인데도 마치 내 일처럼 못마땅했던 이유는 그의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에스티 로더 모델 엘리자베스 헐리가 당시 나의 여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감히 나의 마돈나를 배반하고 별로 안 예쁜 콜걸(지금은 디바인 브라운이 오히려 별로 안 예뻐서 그랬던 게 아닐까… 라고도 생각. 그땐 남자를 몰랐어, 지금도 모르지만)과 길바닥에서 남세스럽게… 하는 착잡한 심경으로 짧은 영어나마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을 시청하며 “여전히 휴를 사랑하고 그없이 살 수 없지만 남편으로는 신뢰를 못하겠다”고 울먹이는 엘리자베스 언니의 목소리에 순진하게도 더불어 통탄하였던 것. 그러면서 자신 역시 끝장나게 바람을 피우면서도 밤낮 허리까지 뜯어진 치마 입고 동거생활 지속하면서 ‘휴와 나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어쩌고 하는 그녀의 모습을 마치 내내 시앗보는 형부를 둔 팔자 센 친정 큰언니 보는 심경으로 이날 이때까지 바라봐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게 웬일, 제야의 종이 친 뒤(물론 머리끝까지 술이 찰랑찰랑 찬 채) 신촌 한복판에서 웃옷과 길과 같이 술마신 사람을 잃고 독감에 걸려버린 그날 밤, 제발 새해는 좋은 해가 되기를 빌며 침대에서 푹 쓰러진 새벽 브렌든 프레이저가 되어 있는 내 앞에(하마터면 원시 틴에이저인 줄 알았다) 매끈한 곡선을 그대로 투과하는 가죽 슈트를 입은 엘리자베스 언니가 나타나지 않았겠는가. ‘일곱 가지 소원을 들어 줄 테니 영혼을 팔아라’라는 한글자막이 그녀의 클로즈업 아래 떠올랐다. 그리하여 짱정신병자다운 소원을 여섯개까지 늘어놓은 뒤 침을 꿀꺽 삼키고서 마지막 소원을 털어놓았다. 평생 철 안 들게 해줘, 언니. 발톱 감추는 법을 터득하지 않게 해줘. 처세술이란 거 갖고 대범한 척 사람 마구 상처내는 어른이 되지 않게 해줘. 괜찮은 어른 되기 너무 힘들잖아. 차라리 평생 패배자로 남고 싶어. 그녀는 짙푸른 안광으로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영혼 한복판을 꿰뚫어보듯이. 그렇다. 심각한 건 집어치워버리자, 사실 마지막 일곱 번째, 언제나 이 몸의 평생 소원은 머리에 빨간색 고무장갑을 쓰고 월레스와 그로밋이 창문 닦으러 출동하는 사이드카를 타고서 퇴계로를 무한질주하는 것이다. 아니면 테레빈유를 태운 연기를 마시며 영영 잠들어버리든지. Or else forget about it. 엘리자베스 언니는 어떻게, 소원을 죄다 들어주었느냐고? 일곱 가지 소원을 주절거리면서 말할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내내 듣더니 “응, 잘 들었다. 그럼 이만”이라며 사라져버렸다. 물론 내 영혼을 가지고. 이런. 김현진/ 21 the suicide Blond

그 멀고, 아찔한 푸르름의 세계, <그랑 블루>

대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문민정부라는 화려한 외피를 쓰고 김영삼이 정권을 잡은 직후였고, 대학은 조용했고, 학계에서는 ‘포스트’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였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90%에 육박했고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노동절 행진을 했다. 스무살이었지만 그 무엇에도 강렬하게 매료되지 않았고 무언지 모르게 나는 잔뜩 억울해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손에 들어온 게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었다. 그는 당시 서사성의 후퇴와 리얼리즘의 위기가 운위되던 가운데 신경숙과 함께 평자들의 주목을 받던 신세대 작가였다. 그 작품집의 전언을 압축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먼 것’이 있어야 산다는 것이다. ‘먼 것’. 한밤중 자식들이 줄줄이 딸린 가장을 홀연히 가출하게 만들고, 명민한 여인을 어느 순간 머리 깎게 만들고, 익숙했던 그 모든 일상적인 질서와 문득 불화하게 만드는 그 ‘먼 것’. 그것들은 작품집 속에서 말발굽 소리로, ‘소’로, 풀피리 소리로, 은어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세상에 대해 단단히 싸울 채비를 마치고 상경한 고집불통 스무살짜리 나로서는, 이제 막 호흡을 고르고 링에 올라보니 이미 싸움은 끝난 것 같아 억울해하고 있던 나로서는 조금은 멍한 독서이긴 했다. ‘이게 다 뭐야. 환상으로 도망가버리자 이 말인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작품집 전체를 휘감고 있는 푸른빛, 그리고 ‘저쪽’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오래 남아 있었다. 또 그 무렵, 내가 만난 한편의 영화가 뤽 베송 감독의 <그랑 블루>(Le Grand Bleu)다. 또 한편의 ‘먼 것’에 관한 영화. 한 잠수부가 있다. 다른 보조도구 없이 가능한 한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해가는 한계의 사나이. 영화 속에서는 잠수의 일인자를 가리는 잠수대회가 영화의 주요 틀로 등장하고, 실상 그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잠수부와의 기록경쟁 과정도 세세히 다뤄지지만 어쩌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경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드넓은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바다는 자궁이자 자유이자 오히려 더 편안한 현실이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자, 가보고 싶은 곳이자, 원래 더 익숙한 곳이 바로 그 푸르름의 세계다. 나를 매료시킨 장면 세 가지. 하나.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은 그에게 중요한 사랑 고백을 하려고 한다. 분위기를 감지한 주인공은 바다로 뛰어든다. 현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 벅찬 이야기를 수용하거나 참아내거나 이겨내야 할 때, 그는 그곳으로 돌아가 그것을 수용하거나 참아내거나 이겨내는 것이다. 여인이 함께 뛰어들어, 사랑한다고, 아이를 가졌다고, 당신이 전부라고 외치고 토로하는 동안 그는 끝없이 자맥질을 하고 또 한다. 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라이벌과의 신경전과 기록경신이 이어지던 어느날, 그는 잠을 자고 있던 한순간 침실 천장이 수면으로 변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바다가 그를 불렀던 것. 그때 그 푸르름은 더이상 자유가 아니라 두려운 매혹으로, 죽음으로 다가왔다. 마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블루>에서 가족들을 잃고 힘겹게 자유에 낯을 익혀가는 주인공 여인이 어느날 짙푸른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을 하다가 호흡을 고르며 그 푸른 수면을 바라보던 환희와 낯섦과 공포과 고독으로 버무려진 그 얼굴 표정처럼. 셋. 주인공은 마침내 어느 새벽, 무언가에 홀린 듯, 마음을 굳힌 듯 홀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바다로 향한다. 마침내 더 깊이, 기록도 성취도 없는 그곳으로 아예 돌아가버리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때, 그를 따라나선 여인은 울부짖는다. “I’m here. I’m real, my love.” 내가 여기에 있다고, 내가 여기에 이렇게 실재한다고. …현실과 ‘먼 것’ 사이의 아득한 아픔. 누구에게나 ‘먼 것’이 있다. 멀리 있어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 나는 지금도 출근길에 뜻없이 호흡을 고르거나, 깊은 밤 총총히 불 밝힌 먼 아파트 단지들을 멍한 눈으로 굽어볼 때마다 <그랑 블루>의 그 푸른빛을 떠올리곤 한다. 참,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는 그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잠수부(이제는 노년이 된)의 의문의 자살소식을 짤막하게 전하고 있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라이언의 딸>의 프레디 영

이렇다 할 스타에 여자배우는 말할 것 없고, 그 흔한 러브스토리 하나 없는 영화. 1962년 발표된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200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온통 관객의 시선을 잡아놓는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 드문 예이다. 70mm 대형스크린 위에 펼쳐진 광활한 사막은 때로는 이글거리는 낮의 열기를 담아내는가 하면, 이내 차디찬 밤공기를 펼쳐놓기도 하고, 모래와 바람과 태양은 각자의 몫을 부여받은 채 백인영웅 로렌스의 삶과 어우러져 화면을 다채롭게 채워놓는다. 가히 작품을 이끌어나갈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이 사막의 촬영은 바로 영화의 성공과 직결되는 관건이었으며, 이를 화면에 담아내려는 이들과 특유의 고집으로 일관하는 사막의 악천후는 끝없는 투쟁을 벌였다. 수레에 장비를 실어나르는 육체적 노동이 행해져야 했다면, 열에 민감한 카메라를 위해 뜨거운 태양열을 식혀줄 냉각장치를 급조해야 했다. 1910년 즈음 촬영과 인연을 맺은 뒤 이미 그 당시 60여편의 영화를 작업한 촬영감독 프레디 영의 연륜은 이를 뒷받침할 버팀목으로 작용하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관을 연출해낸다. 지난 1998년 96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한 프레디 영. 손으로 카메라를 돌려 찍는 시절부터 줄곧 카메라 뒤의 자리를 지켜왔던 그의 족적을 따라감은 곧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축구와 복싱에 재능을 보이던 영국 태생의 소년은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급선무였고, 영화와의 그리 극적이지 않은 만남이 시작된 것도 이때이다. 음식을 나르고 잔심부름을 하던 곳이 우연히 영화사였고, 암실바닥의 청소에서부터 필름을 커팅하던 잔일거리를 거치는 동안 카메라는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1918년 영국의 첫 공상과학영화인 <달 속의 사람>의 현상을 시작으로, 촬영과 조명에 관한 일거리를 맡아 꾸준히 공부를 해오던 중, <더 플래그 루테넌트>(The Flag Lieutenant, 1926)의 보조 카메라맨으로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빅토리>로 촬영감독으로의 데뷔전을 치른다. 이후 허버트 윌콕스와 작업하며 주류촬영감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화이트 카고>(1929), <카나리아는 때로 노래한다>(1930), <런던 멜로디>(1937), <굿바이 미스터 칩스>(1939)에 이르기까지 기술적 완성도를 갖춘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다. 2차대전 중에는 군 홍보용 영화를 찍으며 흑백영화의 달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아이반호>(1952) 촬영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다. 규모의 미학이라 불리는 스케일이 큰 웅장한 그만의 스타일을 형성한 것은 데이비드 린과의 만남 이후이다. 영을 일컬어 “황소의 정력과 영화에 대한 지식으로 똘똘 뭉친 자”라는 린의 평가와 자신을 100% 지지해주며 믿어주었던 린에 대한 영의 믿음은 영화사의 커다란 걸작들을 순산해내는 원동력이었다. 절대적으로 원래의 크기로 감상해야 할 영화, 바로 65mm 카메라로 찍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장관은 70mm 화폭에 펼쳐질 때야 그 빛을 발한다. 특히 사막 저 끝에서 하나의 점으로 서서히 등장하던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의 등장은 450mm의 장 초점렌즈에 담긴 채 지금도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각인된다. 영의 이같은 촬영은 역시 린과 함께 작업한 <닥터 지바고>(1965)에서도 돋보이는데 광활한 러시아의 설원 위에서 펼쳐진 지바고의 사투는 보는 이를 이내 압도하는 위력을 발휘하며, <라이언의 딸>(1970)로 이어져 오스카를 세번씩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다. 훨씬 더 많은 장비와 돈을 필요로 하며 상영을 하는 데도 제약이 따르는 이같은 70mm 영화에 대해 그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꼭 70mm 영상이 필요한 경우에만 촬영을 할 것을 후배들에게 당부했지만, 이제 린이나 영처럼 무모한 촬영을 감행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 그간 영은 <침묵의 살인>(1967)을 통해 촬영 전 필름에 빛을 주어 색다른 질감을 표현해내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으며, 화려한 경력에도 신인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초심을 잃지 않아 왔다. 촬영과 함께 평생을 해온 영은 매순간 새로운 시도를 그치지 않았기에 오늘 ‘예술가로, 또 한 사람의 장인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신사’로 기억된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Freddie Young 필모그래피 촬영 <결혼식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the Wedding, 1985) 조셉 브룩스 감독 <용사의 검>(Sword of the Valiant, 1982) 스티븐 윅스 감독 <리처드스 싱>(Richard’s Things, 1981) 앤서니 하비 감독 <라프 컷>(Rough Cut, 1980) 돈 시겔 감독 <혈선>(Bloodline, 1979) 테렌스 영 감독 <아이크>(Ike, 1979) 보리스 사갈 감독 외 <스티비>(Stevie, 1978) 로버트 앤더스 감독 <파랑새>(The Blue Bird, 1976) 조지 쿠커 감독 <허가받은 살인>(Permission to Kill, 1975) 시릴 프랑켈 감독 <타마린드 시드>(The Tamarind Seed, 1974)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 <더 애스픽스>(The Asphyx, 1973) 피터 뉴브룩 감독 <니콜라스와 알렉산드라>(Nicholas and Alexandra, 1971)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 <라이안의 딸>(Ryan’s Daughter, 1970) 데이비드 린 감독 <공군 대전략>(Battle of Britain, 1969) 가이 해밀턴 감독 (You Only Live Twice, 1967) 루이스 길버트 감독 <침묵의 살인>(The Deadly Affair, 1967) 시드니 루멧 감독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 데이비드 린 감독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 데이비드 린 감독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Solomon and Sheba, 1959) 킹 비도 감독 <가이디언의 날>(Gideon's Day, 1958) 존 포드 감독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 1956) 빈센트 미넬리 감독 <모감보>(Mogambo, 1953) 존 포드 감독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 1953) 리처드 토프 감독 <지젤>(Giselle, 1952) 헨리 콜드웰 감독 <아이반호>(Ivanhoe, 1952) 리처드 토프 감독 <보물섬>(Robert Louis Stevenson’s Treasure Island, 1950) 바이론 하스킨 감독 <나의 아들 에드워드>(Edward, My Son, 1949) 조지 쿠커 감독 <시저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 1946) 가브리엘 파스칼 감독 <침입자들>(Forty-Ninth Parallel, 1941) 마이클 포웰 감독 <콘트라밴드>(Contraband, 1940) 마이클 포웰 감독 <굿바이 미스터 칩스>(Goodbye, Mr. Chips, 1939) 샘 우드 감독 <넬 그윈>(Nell Gwyn, 1934) 허버트 윌콕스 감독 <카나리아는 때로 노래한다>(Canaries Sometimes Sing, 1930) 톰 월스 감독 <빅토리>(Victory, 1928) M.A. 웨더렐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