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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마리이야기> O.S.T

마리는 기본적으로는 주인공 남우로 대표된 사춘기 시작 무렵의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성적 환상의 상징이다. 그 시절의 마리는 아직은 있는 그대로 가질 수 없으므로 일종의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가진 뒤의 마리보다 가지기 전의 마리가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름답다. 그 마리는, 구슬 속에 들어 있는 신비스러운 마리는, 불빛으로 잠깐 왔다가 간다. 마리는 꿈속에 있다. 아니, 차라리 꿈이 마리다. 감독은 그러한 십대 소년의 환상을 환상의 공간에 붕 띄우기보다는 현실에 좀더 밀착시키려 한다. 마리는 아버지를 풍랑으로 잃은 바닷가 소년의 우울함 속에, 그 우울함을 기억하는 불알친구 준호의 떠남 속에,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은밀한 추억의 공간인 낡은 등대의 불빛 속에 배치된다. 그렇게 되면서 그 환상은 희망이 되는데, 감독은 그 둘, 그러니까 환상과 일상적인 희망을 연결시키는 일에 많이 공을 들인 것 같다. 내게는 아직도 듀엣 ‘어떤 날’의 기타리스트로 각인되어 있는 이병우가 이 O.S.T의 음악을 맡았다. ‘어떤 날’의 음악은 확실히 우리 포크 계열 음악의 한획을 그은 음악이었다. 포크의 일상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좀더 섬세하게 짜인, 미학적인 세련미를 심었다. 이병우의 기타 라인들이 그 중요한 일부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어떤 날’ 이후 외국으로 나가 클래시컬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여전히 음악적 뿌리는 ‘어떤 날’ 시절의 서정성에 두고 있다. 이번 O.S.T에서도 그러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도입 화면에 붙인, 유희열의 스켓과 함께 흐르는 음악이 그렇다. 개방현과 하이 포지션의 분해 코드를 이용하는 풍부한 울림의 아르페지오가 코드 라인을 만들어간다. 옛날 이병우의 선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분위기가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면 리버브와 딜레이를 아낌없이 준 신시사이저의 사용을 통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그려진다. 또한 15인조 실내 앙상블의 미려한 스트링 선율이 격조를 더한다. 이병우의 음악적 동반자라고 하는 신이경의 피아노가 구슬처럼 튀긴다. 재미 연주가인 박윤의 퍼커션이 긴박감을 부여하고 환상 속에 현실로 존재하는 마리이야기에 더 은밀하고 이국적인 색채가 부여된다. 가끔씩 장면 전환을 따라가는 호흡이 전문 영화음악가의 그것보다 거칠게 느껴지는 대목이 보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흐름도 무리없이 잡아내고 있다. 엔딩 스크롤이 흐를 때에는 요즘 잘 나가는 성시경이 <마리이야기>라 제목이 붙은 주제가를 부른다. 이 노래는 O.S.T 전체 분위기를 짬뽕시켜놓은 듯한 느낌이다. 기타 선율에 환상적인 신시사이저에 명쾌한 피아노에 흐름에 따라 약간은 드럼 앤 베이스를 연상시키는, 그러나 그보다는 가볍고 상쾌한 기분으로 프로그래밍된 리듬 파트 등등. O.S.T에는 프롤로그, 예고편 테마를 합쳐 모두 18트랙이 들어 있다. 선곡된 음악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음악들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O.S.T 음반에서 어떤 일관성 같은 걸 감지할 수 있어 좋다. 특히 환상적인 장면들에서 <이웃집 토토로>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어떤 부분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보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특유의 환상성을 리얼한 우리 현실의 모사과정 속에 위치시켰다는 건 분명히 이 영화의 미덕이다. 이병우의 잔잔함은 거기에 걸맞은 음악적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어떤 궁금증

<도니 브래스코>에서 지워지기 힘든 장면 하나. 늙고 무기력한 갱 알 파치노가 집에 쭈그리고 앉아 ‘동물의 왕국’(영문제목은 따로 있겠지만)을 넋놓고 보고 있다. 그럴듯한 주석을 붙일 의욕도 없이, 그냥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저렸다. 편집자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 없지만,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며칠전에야 봤다. 보면서 동물의 왕국을 보는 알 파치노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무슨 연상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쁜 남자>는 슬픈 영화였다. 주인공 한기는 짐승의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아주 나쁜 방식으로 여인을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많은 여성평론가들을 다시 분노케 하긴 했지만, 한기의 그 나쁜 동물성은 어떤 충고도 계몽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 없는 천형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한기의 방식이 너무 명백하게 나쁘기 때문에 별로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은밀하게 나쁜 게 가장 나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이 영화의 자질에 대해 여기서 또 거론하는 건 독자들께 실례일 것 같다. 다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궁금해지는 건 숨기기 힘들다. 그런 영화를, 모든 출구를 막고 짐승의 시간을 사는 인간을, 저런 무게로 그리는 감독이라면, 주인공과 비슷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악수하고 웃을 수 있을까. 혹시 놀이공원 같은 데,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 갈까. 가서 즐겁게 놀까. 그렇게 치면 사실 김기덕 감독만 궁금한 건 아니다. 당연히 홍상수 감독도 궁금하고, 윤종찬 감독도 궁금하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다. 그들은 대개, 인간이 인간성이라고 알려진 자질보다는 동물에 훨씬 가깝다는 걸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아주 뼈저리게 실감케 하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에 지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겉으로나마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범인(凡人)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예술가는 고호나 랭보나 커트 코베인처럼 생 자체가 비장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절망의 진심을 전한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지 않다. 새삼 한 관객이 홍상수 감독에게 “당신은 사람들에게 자살하라고 권유하면서, 왜 자신은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단순한 의문을, 그렇게 많은 감독을 만나는 특권을 누리면서도 풀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나쁜 남자>는 여러모로 많은 상념에 젖게 하는 영화였다.

거장들의 전쟁영화 베스트 5

■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1979년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마틴 신, 말론 브랜도 코폴라에게 전쟁은 광기와 비이성의 카니발이다. 도어즈의 노래 <종말>이 헬기 프로펠러의 움직임과 네이팜탄의 이미지에 겹쳐지는 오프닝부터 침울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이 영화는 베트남전의 정치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을 아편향기에 취한 듯 몽환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나온 <리덕스>에서 그것은 좀더 강력한 이미지가 됐다. 추가된 49분에서 영화는 유머와 정치적 배경과 철학적 통찰을 덧붙였고 그로 인해 한 시대에 대한 메타포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 플래툰 1986년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찰리 신, 윌렘 데포 올리버 스톤에겐 다른 전쟁이 아니라 베트남전이 문제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위해 입대했던 스톤은 그곳에서 혼란과 범죄가 뻗어나온 뿌리를 발견한다. 그는 “적은 우리 내부에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내부의 적은 번스와 라이어스의 대립으로 표현된다. 내부에 존재하는 반목과 대립, 선악투쟁에서 악은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둔다. 미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 역시 미국의 양심고백이라기보다 전쟁은 늘 악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 풀 메탈 자켓 1987년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매튜 모딘, 빈센트 도노프리오 스탠리 큐브릭에게 전쟁은 인간을 파괴하고 그들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극한 상황이다. 전반부 훈련소 장면에서 고문관이던 신병이 살인기계로 변모하는 과정은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다. 그가 기계적인 정확성을 높여갈수록 그의 인간성은 벗겨지고 결국 자기 입에 총구를 들이밀어 머리를 터트리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뒤처진 인간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던 그들은 막상 전장에서 비겁해진다. 군사학교라는 시스템을 통과하며 그들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비굴한 인간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년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행크스, 에드워드 번즈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전쟁은 어린 시절 그를 매혹시켰던 흥미로운 동화였다. 실제로 소년 스필버그는 동네 친구들을 모아 편을 갈라 가짜 총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비행기에 올라탄 소년 조종사의 모습과 2차대전 기록영화필름을 편집해 비행기 폭격장면을 찍기도 했다. 병정놀이의 즐거움은 소수의 영웅들이 중과부적의 적을 무찌르는 데서 극에 달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전투장면은 그같은 쾌감의 극단을 보여준다. ■ 씬 레드 라인 1998년 감독 테렌스 맬릭 출연 숀 펜, 짐 카비젤 테렌스 맬릭에게 전쟁은 완벽한 자연의 조화를 뒤흔드는 소음이다. 전장의 총소리가 격렬해질수록 한없이 부드러운 여인의 품은, 바람에 밀려 눕는 풀들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밀어내는 살육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전쟁의 리얼리티에 눈길을 뺏기지 않는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에 내몰린 개인의 풍경을 시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처럼 시적 이미지로 가득찬 전쟁영화를 만든 사람은 맬릭이 유일할 것이다.▶ <블랙 호크 다운>, 전쟁영화의 새로운 걸작이 탄생하다 ▶ <블랙 호크 다운> 모가디슈 전투의 전모 ▶ 거장들의 전쟁영화 베스트 5 ▶ <결투자>에서 <블랙 호크 다운>까지, 리들리 스콧 영화의 스펙트럼 ▶ <블랙 호크 다운> 리들리 스콧 인터뷰

영화계 최초 코스닥 등록되는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

오는 2월5일 CJ엔터테인먼트는 영화계에선 처음으로 코스닥에 등록된다. 명필름이 그뒤를 이을 전망이고 강제규필름, 스타맥스 등 규모가 큰 영화사들이 다들 코스닥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CJ의 첫발은 의미심장해보인다. 영화업이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산업 못지않게 수익성과 안정성을 보장받는 분야라는 것을 시장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는 최근 몇달간 정신없이 바빴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코스닥 등록, 튜브엔터테인먼트, 영화사 봄과의 제휴, NABI픽처스에 대한 투자, 2002년 라인업 결정 등 2002년 영화시장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일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은 무척 밝다. 하긴 튜브와 제휴한 뒤 내놓은 첫 작품 <나쁜 남자>부터 흥행을 하고 있으니 출발이 좋은 2002년이다. CGV라는 막강한 멀티플렉스 체인을 등에 업은 국내 양대 메이저배급사 중 하나, CJ에 올해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CJ엔터테인먼트 코스닥 등록은 영화쪽에선 처음이다. 다른 곳에서 코스닥 등록을 준비한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처음이다. 시가 총액이 1500억원 정도의 규모이니 음반쪽 상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케이스다. 사실 코스닥 등록이라는 것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하는 건 아니다. 정말로 돈을 많이 버는 회사는 코스닥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 따른 의무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코스닥에 등록한다는 의미는 이런 거다. 영화 한편에 따라 수익변동이 크게 생기지 않을 만큼 어느 정도 산업화했다는 것, 일정한 수익성 있는 성장을 해왔다는 것, 그리고 투명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 이걸 입증할 수 없으면 불가능한 거다. 영화산업적으로 볼 때 주도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발판이지만 사장으로서는 골치아픈 일이 더 많아지는 거다. 이번 코스닥 등록이 모기업인 제일제당에서의 명실상부한 독립을 의미한다고 봐도 되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소유주 개인의 기업인 경우, 경영이 오너의 방침과 방향에 따라 좌지우지돼왔기 때문에 코스닥 등록 이후 선택해야 하는 시스템화된 경영방식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CJ엔터테인먼트는 상장 전에도 시스템 속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체감하는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봤을 때는 따로 감사를 둬야 하고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정도이다. 사외이사는 투자자를 대변해서 주요 의결사항을 협의하며 회사정책이나 수입, 매출을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회계장부를 분기별로 발표해야 하기도 하다. 우리끼리, 회사 내부에서만 알고 넘어갈 수가 없다. 당연히 경영 투명성이 높아질 수밖에…. 다른 사람 돈쓰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뒤따라 코스닥 등록을 시도하는 회사가 많아질 것 같은데. 그럴 거라 생각한다. CJ가 제작, 배급, 상영까지 가능하기 때문이 코스닥 등록이 가능했다면 지금 상장을 희망하는 회사들은, 그중 한 부분이 비어 있는 상태라 그 부분만 채워진다면 가능하리라 본다. 아직 시장이 좁지만 적어도 메이저가 3개 정도 있어야 경쟁, 발전이 가능한 거다. 그만큼 시장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도 크고.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640억원 매출에 87억원쯤 벌었다. <슈렉>이나 <캐스트 어웨이> 같은 외화들이 효자노릇을 했고 한국영화는 별로 못 벌어들였다. 대부분 배급, 극장으로 수익을 얻었다. 지난해 한국영화 제작은 3편 정도였는데 올해는 개봉예정인 한국영화 편수가 많다. 지난해는 준비를 많이 했는데 영향력 있는 영화가 별로 없었다. 올해는 명필름이나 영화사 봄 이외에도 튜브와 전략적으로 제휴하고 조민환 프로듀서가 독립한 NABI픽처스, 자체제작 영화까지 합쳐 15편 정도다. 너무 많긴 하다. 튜브, 명필름, NABI픽처스, 영화사 봄 등 개별 영화사들과 관계맺는 방식이 다른 배급사와 다르다. 명필름과 NABI픽처스는 지분출자를 했다. 모두 같이 간다는 방향은 정했지만 영화사 봄은 아직 지분투자 결정을 하지 않았다. 튜브와의 제휴건은 정말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제휴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나. 제3의 배급사로서 튜브의 어려움은 익히 알고 있었다. 튜브는 우리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동양하고 유니코리아와 접촉했지만 결정적으로 멘털리티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CJ는 비교적 오랫동안 영화 관련업을 했고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컸다. 그래서 제작은 튜브가 하고 배급은 CJ가 해보자고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 김승범 대표도 흔쾌히 받아들었고 일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사실 별 기대없이 제안한 것이었는데 튜브가 배급을 포기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동양에 대한 견제가 아니었나. 전혀. 그런 견제가 있었다면 협상 초기에 들어갔을 거다. 동양이 떠맡기엔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동양이 가져갔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CJ도 95년에 영화사업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얼마나 수업료를 많이 냈는데…. (웃음) 튜브와는 장기적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할 예정인가. 일단은 같이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더 긴밀하게 발전해나갈 수도 있고. 튜브가 한국영화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유지해나갈 생각이다. 시네마서비스와 싸이더스의 관계처럼 말인가. 그렇다. 명필름과 NABI픽처스도 그런 식의 모델로 가져갈 거다. 결국 미국의 디즈니, 유니버설식으로 배급사 위주로 발전해가는 거다. 인적 네크워크에서 벗어나 조직 네트워크로 갈 것이다. 배우나 제작사 등 제대로 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 부율조정 문제가 소강상태에 이른 듯하다. 영화계에선 CJ가 한국영화 부율을 올리는 데 적극적이었으면 달라졌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작하는 스타일에 문제가 있었다. 일방적으로 몇 사람이 시작해서 공론화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합리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마련하고 천천히 수순을 밟았어야 하는 거다. 미국, 호주를 보더라도 궁극적으로 슬라이딩 시스템(영화에 따라 개봉기간에 따라 극장과 배급사의 몫을 변화시키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예술영화도 살리고 상업영화도 살리는 길이다. 우리 때문에 이런 상태에 이르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동안 노코멘트로 일관해왔지만 부율문제를 거론하면서 금기시해야 할 것이 두개가 있다고 본다. 첫째, 쿼터문제를 거론해선 안 된다는 거다. 둘째는 경쟁을 하더라도 요금을 내려선 안 된다는 거다. 요금을 내리는 건 공멸하는 지름길이다. 지난해 부산 메가박스에서 4천원으로 내리려는 것을 막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영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경쟁의 결과 요금하향조정이 이루어지면서 경영상태가 어려워졌다. 요금을 내리면 극장매출이 줄고 그러면 부율은 배급사에 더 불리해진다. 지금은 배급사 38%에 극장 62%로 전복된 상태라고 한다. 사실 좋은 콘텐츠만 가지고 있으면 6:4 부율은 금방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외화는 해외시장 박스오피스에서 이미 증명된 것이 있지만 한국영화는 증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영화 부율을 올리는 데는 불안함이 있고 부율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2월5일 코스닥 상장 뒤 그리는 CJ의 큰 그림은 어떤 것인가. 그간 배급, 유통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체인을 형성하는 등 비즈니스쪽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콘텐츠 성장에 주력할 것이다. 향후 2, 3년간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도록 도와주거나, 직접 만들거나,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등 관련 콘텐츠로 옮겨가는 방식이 될 것 같다. 국산애니메이션은 여전히 기술문제에만 집착하는 식으로 방향설정이 잘못돼 있는 듯하다. 드라마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좀더 힘을 쏟는다면 성공할 가능성도 보인다. 영화쪽으로는 도움이 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든지 기술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고 스튜디오 건립이나 관련시설 제공 등을 꿈꾸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이다. 해외배급 의욕을 보였었는데 주춤하는 듯하다. 실제로 해외배급을 해보니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누가누가 해외배급했다더라, 하는 말이 다 거짓말인 줄 알겠더라. 결국 미니멈 개런티(MG)만 받고 다닌 걸 직접 배급했다고 말한 경우가 태반이다. <무사> 들고 해보니 미국은 어렵다는 걸 알았다. 미국시장에서는 메이저 배급사에 의존하지 않으면 어렵고 의존하면 다 뺏기게 마련이다. 일본은 마케팅비가 많이 들어가는 시장이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아직 어려운 것 같다. 지난해 <치킨런> 들고 일본에 들어갔었는데 쉽지 않았다. 아니 무지하게 어려웠다. 일본은 장기적으로 개척해야 할 시장이다. 단기적으로 대만, 홍콩시장을 보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일본에서 잘되지 않았나. 정말로 러키한 케이스다. 도호에서 잘봐서 극장에서 잘 풀었다. 하지만 액션, 엔터테인먼트류가 아니어서인지 홍콩에서는 잘 안 됐다. 대만은 <쉬리> <텔미썸딩>이 들어가 다 깨진 시장이다. 실패도 많았지만 시도도 많이 해봐야 하는 곳이다. 해외시장을 위해선 지역성을 살린 작품도 나쁘진 않지만 <무사>처럼 범아시아적인 영화제작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시네마서비스, CJ 양대전선에 강제규, KTB, 삼성벤처투자, 에그필름이 제휴한 ‘A라인’ 등이 끼어들어 새로 배급라인을 형성하는 등 배급시장에 변화가 예상되는데. 두 회사로는 안 된다. 틀림없이 제3의 회사가 나오리라 장담해왔다. 물론 어떤 업체가 제3의 메이저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동양의 경우에도 콘텐츠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 이정도 시장 규모에서 3대 메이저 정도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한해에 나오는 영화만 몇편인데 한두 배급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올해, 자신있나. 극장은 언제나 자신있다. 더욱 완벽히 시스템화하고 조직화되어 발전해나가면 내가 없더라도, 누가 오더라도, 잘 굴러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회사 영속력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나? 인터뷰 남동철 namdong@hani.co.kr·정리 백은하

<나쁜 남자>의 창녀촌 포주역 김정영

“저런 년은 지가 6만원짜리인 걸 빨리 알아야 돼!” 낮고 건조한 목소리, 낯선 얼굴. 미소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무표정에 얼핏 김여진과 정경순을 떠올리게 만드는 배우. 영문도 모른 채 사창가에 팔려온 선화에게 적도 동지도 아니었던 <나쁜 남자>의 포주 은혜의 존재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내 궁금증으로 남았다. “어제 좀 과음했나봐요. 미장원도 못 갔네요” 다소 부스스한 짧은 파마머리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자신을 김정영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제법 걸쭉한 나이의 냉소적인 중년 여성을 상상했던 것과 달리 “서른한살, 쥐띠예요”라는 경쾌한 대답을 날린다. ‘연극인 환영!’ 상명대 연극반을 거쳐 95년 극단 한강에서 <산재> <전태일> <단장곡>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들과 함께 자신의 무게감도 늘려나갔던 그의 눈을 영화쪽으로 돌리게 한 건 <실제상황> 배우모집 광고의 마지막 줄. “컷없이 한번에 가는 영화라니 이건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2차 오디션을 보고 돌아가던 김정영은 지하철역 앞에서 우연히 김기덕 감독을 다시 만났고 “정영씨, 이거 인연인 것 같네요”라던 김기덕 감독의 예언(?)은 <실제상황>과 <나쁜 남자>로 이어졌다. “한강의 장수익씨가 ‘배우가 무대에 준비없이 올라가면 창녀와 같은 거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는데 <나쁜 남자>에서의 내 연기는 정말 연습부족이었어요. 게다가 정말로 창녀촌 포주 역할을 했으니….” (웃음) 연극무대에 먼저 뿌리를 내린 배우라면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겠지만 상대배우가 아닌 카메라를 향한 연기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너도 나처럼 평생 목욕탕 못 가게 해줄까?” 몸을 휘감은 문신을 선화에게 보여주며 울부짖는 장면. 웃통을 벗은 채 상반신을 휘두르는 과격한 동작을 해야 하는 장면을 앞두고 그는 꽤나 긴장했다. “결국 다른 스탭 다 내보내고 찍었어요. 유난스럽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감독님은 앵글 아래에서 내 다리를 잡고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시더라고요. 소문과 다르게, (웃음) 이해심도 많고 배려도 많이 해주시는 편이세요.” “첫 외박이 <나쁜 남자> 때문이었어요.” 요즘 <행복한 가족>이란 연극에 출연중인 김정영은 극작가 출신의 김학선씨와 2년 전 ‘행복한 가족’을 이루었다. 대학로 민속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외상값 갚으러 온 남편을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는 그는 ‘바른 생활 남편’의 철저한 관리 덕에 ‘바른 생활 아내’로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남편이 홍상수 감독의 눈에 띄어 <생활의 발견>에 출연하는 바람에 이 ‘영화가족’의 규율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영화요? 연극보다 돈이 되니까, (웃음) 그리고 연기할 수 있으니까….” 대학로에서도 몇몇 유명배우를 제외하고 나이든 여자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기회는 점차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 관객과 함께 존재가치를 부여받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상, 좀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영화작업을 멀리할 이유가, 그에겐 없었다. “주연은 아니지만 은혜는 나름의 역사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냥 아무런 역사도 없이 누구누구 이모나, 고모 같은 역을 하게 될까 두려워요.” 이제 막 영화라는 매체를 향해 발을 들여놓은 신인배우 김정영. 그가 앞으로 나이든 여배우의 비애가 아니라 잦아질 외박의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게 되길, 조심스럽게 빌어본다.

만화사이트들의 흥망성쇠

게시판이 없는 인터넷 유료 사이트가 있다. ‘글로벌 만화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만화 전문 사이트”이며, “이현세, 황미나, 박성우, 하승남, 양영순, 장태관, 임광묵, 이정애, 권신아 등 쟁쟁한 작가 70여명의 신간 연재만화를 올 컬러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비롯 일어, 중국어, 영어 등 다국어를 동시에 지원하는 사이트”인 코믹스투데이(www.comicstoday.com)에는 얼마 전부터 게시판이 모두 없어졌다. 적지 않은 돈을 결제한 회원들은 회원의 의견을 유일하게 게시할 수 있는 20자평 게시판을 이용해 업데이트되지 않는 만화나 각종 서비스 장애에 대한 불만을 쏟아놓고 있다. 작가도 마찬가지. 성인웹진 ‘X-Gate’에 를 연재하고 있는 박무직 역시 20자평을 이용해 연재가 중단되었으며, 공지요청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유료서비스와 연재된 작품의 자체 출판을 통해 손익분기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진 코믹스투데이의 몰락은 충격이었다. 원고료 연체와 작품 서비스 기간의 연장, 작가 연재 중단 등 여러 복합적 요인에서 시작된 코믹스투데이의 혼란은 작가들의 파업과 연재중단, 절필선언(<씨네21> 336호 참조)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게시판 철거가 진행되었다. 네티즌들에 의해 항의가 쏟아질 때, 혹은 운영자가 해명하기 곤혹스러운 사안이 발생할 때 어떤 사이트들은 게시판을 없애거나 혹은 공사중이라는 이유로 게시판을 막아버린다. 새로운 게시판을 달거나 게시판의 기능을 보수할 때라도 사이트가 접속되는 한 게시판이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게시판 철거는 그냥 보기만 하라는 배짱이거나 비판을 듣지 않겠다는 오만이거나 쏟아지는 비난을 피해보겠다는 잔머리다. 인터넷 만화 사이트는 PC통신 만화 서비스와 벤처투자 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PC통신에 기반한 만화사이트들은 구간 만화의 스캔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 만화방 서비스를 시작했고, 벤처투자시 생겨난 만화 사이트들은 신작 만화 서비스를 시도했다. 후자의 대표 주자는 엔포였다. 만화계의 편집들이 대거 온라인으로 이주해 청소년, 성인, 순정, 인디,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게임 웹진을 구축했다. 스캔 서비스는 물론 신작 서비스, 플래시 만화, 인터랙티브 만화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적어도 사이트를 오픈할 때까지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기획자들에게 인터넷은 신천지였으며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사전 기획없이 ‘웹진 7개’라는 전략만을 내세운 엔포는 자금압박과 경영의 난맥을 보이며 추락하고 말았다. 작가들과 합의없이 다른 사이트에 만화를 서비스했고 작가들은 밀린 원고료와 저작권을 내걸고 엔포와 싸우기 시작했다. 엔포 이후 대형 만화 포털을 지향한 코믹스투데이와 코믹플러스는 각각 다른 모델을 들고 나왔다. 코믹스투데이는 신간 중심의 서비스를 내세웠고, 코믹플러스는 구간과 오프라인 잡지의 온라인 버전이라는 윈도 전략을 내세웠다. 유시진, 김진, 박무직, 박성우, 신영우, 이유정과 같은 오프라인의 인기작가들과 인기작(<쿨핫> <오디션> <바람의 나라> 등)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오프라인 만화와 동일한 판형으로 직접 출판에 나서기도 했다. 반면 코믹플러스는 시공사의 콘텐츠를 인터넷이라는 윈도로 서비스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40개의 CP서비스를 통해 콘텐츠 윈도의 확산을 내세웠다. 2002년 만화 사이트는 1999년 출판만화시장을 살려낼 (혹은 대체할) 대안에서 저작권 분쟁과 밀린 원고료의 산실로 전락하고 말았다. 불과 2년 만에 인터넷 희망가는 사라지고 절망의 곡소리만 남았다. 벤처를 빗댄 사기 행각이 드러나는 2002년에 다시 그날을 돌아보면 어리석은 내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네트워크로 사고하고 처음부터 네트워크에 맞는 기획을 진행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는다. 옳은 길, 바른 길을 찾는다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만화 사이트는 불황에 빠진 한국만화 시장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며, 그 대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클럽와우, D3C, 아이코믹스, 엔포, 코믹스투데이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은 후발주자들한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었다. 인기 게임 포트리스를 서비스하는 GV에서 운영하는 X2comix는 든든한 게임 콘텐츠의 힘을 바탕으로 만화사업에 진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X2comix가 2월5일에 창간하는 <웁스>의 창간단계부터 제휴를 맺어 온라인 게임의 공동 개발, 신인작가 육성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획서상으로만 이이야기되던 온라인 매체와 오프라인 매체가 제휴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전략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제휴 모델도 있다. 온라인 만화 사이트인 카툰프로젝트와 포털 사이트 야후가 합작으로 <야후 매니아>라는 만화·문화잡지를 1월 말에 창간한다는 것. 그동안 카툰프로젝트를 통해 작품 발표를 한 새로운 스타일의 젊은 작가들, <아치와 씨팍>의 원작자 김재희, 이혜경, 이애림 등의 작품이 연재될 예정이다. 한편 코믹스투데이의 오프라인과 동일한 포맷의 만화 연재라는 전략을 선보인 이재식 편집장은 자신이 추구한 전략을 직접 자신의 회사를 통해 시험할 예정이다. 인터넷 만화 서비스는 출판만화 불황의 공범이 되기도 하며, 작가들의 원고료와 인세를 강탈하는 강도가 되기도 하며, 한탕만을 노린 악덕 기업주의 산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될 것이며 돼야 한다. 스콧 매클루드는 <만화의 미래>에서 3가지 새로운 혁신으로 디지털 제작, 디지털 유통, 디지털 만화를 제시했다. 그만큼 디지털 환경은 우리 만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나가는 주요한 길이 되는 것이다. 박인하 /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사진설명 1. 인터넷 만화 사이트의 선발주자였던 코믹스투데이는 작가들의 파업과 절필 선언등으로 분란을 빚다 결국 게시판을 폐쇄하는 최악수를 두었다. 2. 하지만 만화계의 인터넷은 여전히 매력적인 매체다. 후발주자인 X2comix는 온라인을 토대로 오프라인 만화잡지 <웁스>를 창간한다. <웁스>는 윤태호의 <발칙한 인생>(사진) 등을 연재할 예정이다.

대학로, 영화배우 양성소!

지난해 9월, 명필름이 제작하는 김응수 감독의 <욕망>의 배우 오디션 본선장. 응모자 400명 가운데 10명을 1차로 추린 결과 3명이 방송국 탤런트 출신이고 나머지 7명이 연극배우였다. 최종 선발된 4명의 주연배우는 탤런트 이수아씨 1명을 제외하곤, 이동규·안태건씨 등 나머지 3명이 모두 대학로(연극배우) 출신이었다. 다른 연극배우 2명은, 같은 명필름의 영화 <버스정류장>의 조연으로 캐스팅됐다.명필름 심보경 이사의 말. “연극배우들의 연기가 깊이가 있었다. 방송국 출신의 연기는 어딘지 가벼워보였다. 또 `새로운 얼굴`이라는 기준에도 방송국 출신은 잘 맞지 않았다.”개인 인맥을 통해 충무로로 진출하던 연극배우들이 어느 순간 충무로 정상에 깃발을 꼽고 `대학로의 충무로 점령'을 선포해버렸다. 9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 초까지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유오성씨가 그랬다. 이보다 조금 늦게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씨 등 이른바 `장진 사단`의 연극 배우들이 장진 감독과 함께 집단적으로 충무로로 들어와서, 이제 막 대학로 출신의 2세대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복수는 나의 힘>(신하균), <이것이 법이다>(임원희), <피도 눈물도 없이>(정재영)의 주연은 이들의 몫이다. 이제는 연극배우들이 공개된 오디션을 통해 충무로에 주연급으로 입성하기까지 한다.조연과 단역은 2~3년 전부터 완전히 대학로의 몫이다. <친구>의 조직폭력배 두목 기주봉, <달마야 놀자>의 성질급한 폭력배 김수로와 능청맞은 스님 이문식, <공공의 적>의 형사반장 강신일씨와 잡범 성지루·유해진씨를 뺀다면 이들 영화는 희멀건한 죽에 그쳤을지 모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지혜, <나비>의 김호정, <나쁜 남자>의 김정영씨 등 여자 연극배우 출신도 빠질 수 없다.60~70년대에는 엑스트라 조합이나 배우협회가 영화배우의 등용문이었다.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텔레비전 탤런트들의 영화 나들이가 붐을 이뤘다. 그러나 탤런트 출신 가운데 충무로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배우를 꼽아보면 고소영 장동건 김희선씨 등 열명이 채 안된다. 지금은 대학로가 영화 배우들의 공급을 온전히 책임지는 양상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해 가는 모습이다.“당연하다. 배우 수업을 제대로 하는 건 대학로밖에 없다.”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의 말처럼 연극배우들의 도약은 우선 연기가 된다는 데 있다. 특히 최근 많아진 코미디 장르의 영화에 연극적 연기의 과장된 표현법이 무척 요긴하게 쓰인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공공의 적>에서 형사 설경구를 따라다니는 두 잡범 성지루, 유해진씨의 코미디는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방불케 한다. 이런 건 연극 배우가 적격이다. 송강호씨가 두각을 나타낸 것도 <넘버3>의 `너 소야? 나 최영의야!'식의 코믹 연기였다.”(명필름 심보경 이사) 게다가 연극계는 가난하지만 영화판은 돈벌이가 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로에선 배우들의 영화나 텔레비전 출연을 고깝게 보던 시선도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다.요즘 연극계의 입이 삐죽 나온 것은 당연하다. “연극 개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요즘 같으면 연습을 할 수가 없다. 해가 뜨면 해떴다고, 비가 오면 비 온다고 영화촬영장으로 달려간다. 3월이면 꽃핀다고, 10월이면 낙엽진다고, 겨울엔 눈 온다고 간다. 이걸 무작정 말릴 수도 없고.”(연출가 김석만씨)충무로로 나온 연극배우들도 어딘지 마음이 죄스럽다. 그래서 지난해 말 기주봉, 최정우, 정재진씨 등 영화판으로 온 연극 동료들이 모였다. 이들은 영화에서 번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1년에 한편이라도 돈 때문에 못 만들었던, 꼭 만들고 싶었던 작품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기주봉씨가 전했다. 장진 감독도 신하균, 임원희씨 등 자신의 사단을 이끌고 올해말 연극 한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영화가 연극계에서 배우를 충원하는 건 무척 선진적인 시스템이다. 연극은 수십번의 리허설을 갖지만 영화는 바로 실전이다. 영화에 출연했다가 연극도 다시 하고 자유롭게 왕래하면 된다. 배우는 영화배우, 연극배우 구별할 것 없이 통합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연극계가 워낙 불황이라 그곳을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하다.”(장진 감독)정재숙 임범 기자isman@hani.co.kr ▶ 연출가들도 충무로행 `스탠바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6] - 장동건 vs 나카무라 도오루 ②

형처럼 아우처럼 장동건 | 촬영하면서 제가 좀 친근하게 느껴진 게 언제부턴가요? 나카무라 | 중국 로케 갔을 때 일어 통역이 없었잖아요. 400명 넘는 중국 엑스트라와 40명 넘는 한국 스탭들 사이에서 혼자 일본인으로 있을 때 현장 상황상 일본으로 전화도 못하고 있었죠. 동건씨가 나 대신 전화 연결을 해줬을 때, 이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했죠. 장동건 | 그때서야 비로소? (일동 폭소) 나카무라 | (웃으며) 그 전부터 조금씩 느끼긴 했지만. 장동건 | 저는 그것보다 훨씬 전이었어요. 강화도에서 훈련을 받을 땐데, <친구> 촬영이 끝난 직후라 몸이 안 좋아서, 정말 쉬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본 배우들도 와 있고, 단역 조연배우들도 다 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투덜대며 갔었거든요. 거기서 도오루상를 봤는데, 너무 열심히 진지하게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미안할 정도로. 사실 첫 대면 때는 내가 생각하던 일본인의 이미지,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갔다가, ‘하이’ 이러고 마는 걸 보고, 어, 이상하다, 되게 무뚝뚝하구나, 했죠. 그런데 그렇게 혼자 묵묵히 연습하고 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니까, 너무 외롭겠더라고요. 결정적으로는 제가 부담스러워하던 일본어 대사 부분을 자진해서 녹음해준 데 감동받았고요. 대본 읽는 입모양까지 비디오로 직접 촬영해서 줬잖아요. 그건 대단한 성의죠. 진심으로 내가 잘하길 바란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호감을 갖게 됐죠. 아, 이 사람은 내 라이벌이 아니라, 내 편이구나. 나카무라 | 어떤 사람들은 동료 배우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져야만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함께 좋은 영화 만드는 걸 목표로 일해야 하잖아요. 동건씨 대사 부분을 녹음해줬던 건, 나는 현장이 아무리 낯설고 힘들어도 연기는 모국어로 하는데, 동건씨는 현장 상황을 잘 알아도 연기는 모르는 나라말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도움이 되고자 했던 거예요. 결국 그것도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였죠. 아,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딱딱하게 군 건 말이죠, 얼마 전에 일본에서 3개월 동안 드라마를 같이 찍은 여배우한테서도 “당신은 정말 폐쇄적인 사람이군요”라는 얘길 들었거든요. 동건씨에게도 그 점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해요. 장동건 | (웃음)천만에요. 전 이해해요. 그런 성격, 너무 잘 이해해요. 제가 그런 면이 많기 때문에요. 처음엔 통역하는 분이 없으면, 5분이고 10분이고 어색하게 앉아 있었잖아요. 그런데 나중엔 30분씩 침묵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말을 안 하면 그 마음을 몰라서 오해하는 게 문제인데, 우린 오해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나카무라 | 일본에서도 일본 사람하고도 말 안 하고 그렇게 몇 십분씩 잘 있어요. 누구랑 말없이 있을 때는 ‘저 사람, 이 분위기 정말 싫겠다’ 생각하거든요. 동건씨한테도 ‘이 분위기 싫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동건씨는 그런 침묵이 싫었을지 모르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웃음) 장동건 | 저는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이브의 모든 것> 연출하신 이진석 감독님도 별로 말이 없으시거든요. 둘이 있으면 말을 안 해요. 한번은 화장실에 만났어요. 화장실에서 만나면 되게 어색하거든요. 그래도 아무 말 안 하고 나오니까, 저한테 ‘너, 해도 너무 한다’ 그러시더라고요. (웃음) 저도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닐 때는 말 안 하고 있는 상황에 아주 익숙해요. 나카무라 |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뭔가 얘기했을 텐데. 장동건 | (웃음) 저는 도오루상이 형님처럼 느껴진 적이 많아요. 도오루상말고도 일본 배우들이 몇분 더 계셨는데, 대본 연습하는 날 리딩을 하는데, 다들 발성이 아주 좋으시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가 많이 부끄러웠어요. 발성이나 기술적인 훈련이 아주 잘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도오루상이 많이 불안해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일본어로 대사를 해도 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도오루상은 감독님이 일본어를 못하시기 때문에 의사 소통이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면 이리저리 많이 흔들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시종일관 자신의 캐릭터를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카무라 |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동건씨 덕이 컸죠. 동건씨의 일본어 발음이 어떻든 간에 사카모토의 기본적인 생각과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거든요. 그래서 흔들리거나 헤매지 않을 수 있었죠. 감독님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힘들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일본 감독과 일할 때도 말이나 생각이 안 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이번에도 감독님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를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땐 일단 내 생각대로 연기를 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내 문제가 뭔지를 파악하려고 했어요. 대부분 의사 소통엔 어려움이 없었어요. 사실 강화도에서 액션 훈련 받을 때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7개월 동안 여기 모든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어요. 만일 인간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했다면, 오늘 본 것 같은 멋진 영화가 나올 수 없었겠죠. 모두에게 감사해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장동건 | 영화 속의 사이고네 가정처럼, 촬영중에 도오루상 부인과 딸이 와서 같이 식사한 적이 있었잖아요. 딸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인형처럼. 부인도 전형적인 일본 여성으로 아주 참하시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나도 당장 결혼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결혼한 뒤의 내 모습도 저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나카무라 |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더니) 행복의 모양새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동건씨도 맘에 맞는 사람 만나 좋은 가정, 행복한 가정 꾸리길 바라요. 장동건 | 감사합니다. 아까 시사회 끝나고 기자 간담회 할 때 어떤 분이 ‘영화 보고 나서 많은 여자들이 장동건보다 도오루상이 더 멋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고요. 전 이 영화를 통해 도오루상이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갖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앞으로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 세계무대에서 좋은 작품 하게 되길 바라요. 그리고 우리, 좋은 작품에서 다시 만나요. 나카무라 | 지금 가장 큰 바람은 이 영화가 성공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국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되면, 동건씨랑 한국어 대사 하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또 하나. <친구>가 일본에서 개봉되면, 대성공을 거둬서 동건씨가 일본영화에 출연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게 되겠죠. (웃음)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6] - 최보은

그와 사진을 찍었다, 야호! 자랄 때 나는 스타에 열광하지 않았다.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다. 떡볶이와 맛탕이 영혼의 양식이던 중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이 어니언스나 윤형주, 송창식에 뿅 가 있을 때, 나는 별것도 아닌 내 영유년의 상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피학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거른 끼니는 죽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때우는 법이다. 삼십대 중반에 영화잡지사 기자라는 명함으로 영화와 때늦은 인연을 맺고, 사십대 초반에 영화잡지사 편집장이라는, 자질에 비해 엄청 때깔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뒤늦게 ‘열광’이 가져다주는 치유효과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 열광은, 처음에는 아마 산전수전에 찌들어온 아줌마답게 얄궂고 얄팍한 호기심의 형태였던 것 같다. 그들은 실존에 덧씌워진 아우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존재와 아우라의 충돌이 빚어내는 분열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그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행복할까. 그래서 후배들의 일거리를 가로채서 스타 인터뷰를 자청하곤 했는데, 스타들은 동물적인 후각으로 그런 호기심을 읽어내곤 방어막을 쳤다. 아니 보통사람이라도, 그런 태도 앞에선 짜증을 내고야 말 것이다. 그들 폐부를 뚫고 들어가보겠다는 내 과욕은 번번이 실패했고, 그들 중 몇몇은 별 이상한 아줌마 다봤네 하는 표정으로 “톱스타는 호르몬을 어떻게 해결하지?”와 같은 내 괴상한 질문들을 묵살했다. 불감증의 둑이 무너지다 평생 자의식 과잉의 질병을 앓아온 내가 내 마음속 스타의 자리에서 ‘가시면류관 쓴 나’를 밀어내고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있어서, 그건 필수적인 통과의례였다. 영화관람이 ‘프티 부르주아의 할랑한 소일거리’라는 도그마의 반복적 세뇌 속에 이십대를 통과해온 내가 살아숨쉬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됐을 즈음, 어느날 갑자기 나는 스크린 속에서 열광의 대상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열광한다는 것은, 대상을 향한 오마주이기보다 자신의 취향을 긍정하고 실존을 향유하는 삶의 자세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열광할 수 있다는 건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한번 불감증의 둑이 무너지자, <넘버.3>의 불사파 두목 송강호, 깡패검사 최민식, 순진한 간첩 유오성, 장의사 아들 장동건 등의 리스트가 속속 작성됐고, 그들에 대한 내 때늦은 사랑은 공사의 구별없이 지면을 통해 공표되곤 했다. 송강호씨에겐 ‘그네에서 만나자’는 후안무치한 연서를 띄웠고, 최민식씨에 반해 <파이란> 보기를 선동했다. 두해 전인가에는 <씨네21> 송년회에 참석한 그들의 팔짱을 끼고 함께 사진 찍히기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온 소설가 김영하씨가 기꺼이 아줌마의 속물근성을 만족시켜줄 ‘찍사’ 역할을 맡았고, 나중에 이메일로 최민식씨와 어깨동무를 한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사진 속의 헤벌쭉한 아줌마 표정은 당사자가 보아도 가관이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드디어 불감증 탈출이라는데! 오래 참으셨다. 이제부터 본론이다. <박하사탕>으로 드디어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설경구씨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먹물들이 너나없이 침튀기며 칭찬하는 데 괜한 반감을 가졌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영화보기를 기피하고 있었고, 따라서 설경구씨에 대해 이렇다 할 소견이 없었다. 그날 설경구씨는 송강호씨와 함께 새벽 네시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끝까지 지켰지만, 나는 까만 뿔테안경 너머 그의 눈빛이 조금 시니컬하다는 인상을 안고, 일 밀리미터(????)도 그와 가까워지지 못한 채 다시 스타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일상으로 튕겨져나왔다. <박하사탕>은 그뒤 비디오로 보고, TV영화로 한번 더 본 뒤, 이창동 감독을 내 열광의 리스트에 등재하는 계기로 삼았을 뿐이다. 설경구씨와 재회한 것은, 그러니까 이 기획의 계기가 되었을 <공공의 적> 화면에서였다. 영화 속의 그는 다 알려졌다시피 피둥피둥하고 지저분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꼴마초였다. 그러나 말없고 무뚝뚝하고 따라서 이 사회의 눈에 아주 그럴듯해보이는 꼴마초와 두번씩이나 결혼해본 아줌마가 그런 인종이 주류인 이 사회에서 또다시 결혼상대를 고르고 있었던 건 아니니까, 문제될 건 전혀 없었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가 있지? 저사람, 위장 속의 난로에 화력 좋은 갈탄이라도 때고 있었던 건가? 팍팍하고 건조한 외피 속 어디에 그 뜨거운 피 흐르는 혈관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지? 영화월간지 편집장의 신분으로 시네마서비스의 회의실 영사막에 어리는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 화면을 보는 동안, 나는 이미 직무를 빙자해서라도 그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허문영 편집장, 우리 잡지 선전 좀 해도 되죠?) 그래서 지금쯤 서점에 깔렸을 <프리미어> 2월호에 열두쪽짜리 설경구 인터뷰가 실리게 된 것이다. 위장 속 난로에 갈탄이라도 땐 거야? 매운 바람 부는 날, 허리우드극장 앞에서 인터뷰하는 기자를 따라 그와 만났을 때, 2년 전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뿔테안경이 사라진, 마른 그의 얼굴에는 뜻밖의 여유가 서려 있었고, “넌 또 무슨 밥맛없는 고참기자 나부랭이야?” 하는 듯 경계심 어렸던 표정은 지난 달력과 함께 폐기처분돼 있었다. 아마, 그는 나를 만났던 사실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보다, 그런 자의식이 필요없을 만큼 스스로 충족한 상태였으리라.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대학 이전의 자신에 대해 ‘별 볼일 없었던 애’라고 표현했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의 소재가 된 천재수학자 존 포브스 내시 주니어의 전기 <아름다운 정신>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대학 시절은, 많은 미운 오리새끼들이 자신이 백조임을 자각하는 때이다.” 너무 맘에 들어서 <프리미어> 인터뷰에도 써먹었지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설경구는 대학 시절 연극을 통해 자신의 출신성분을 이미 확인한 백조였다.그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그의 시간을 좀더 많이 빼앗으려 무지 로비를 했다. 물경 열두쪽짜리 인터뷰를 하려면, 한두 시간 만나서는 안 된다고 협박했다. 게다가 <오아시스> 출연 때문에 절식중인 그를 술마시자고 꼬드겼고, 심지어 그날 저녁 예정된 형사대상 시사회에 가지 말라고 설득했다. 무슨 범죄사실을 자백받으려는 형사처럼, 술고문을 해서라도 방어기제를 녹여서 ‘인간 설경구’의 예술적 범죄사실 전모를, 그 정신적 누드를 소개하겠다고 야심차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을 만큼, 그의 입은 순조롭게 열렸다. 강권하지 않아도 안주없이 맥주를 들이켰고, 적당한 때가 되자 물을 청해 체내 알코올 성분을 희석해 가면서, 일초도 권태로운 표정없이 문답문답의 식순을 소화해냈다. 그렇게 한 것은, “이 기사를 읽고 한명이라도 더 영화를 보러 와준다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나중에 그와의 대화를 녹취했을 때, 그 분량은 별책부록을 만들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그는 “시사회 끝나고 다시 오라”는 유혹을 미소로 넘기고, 아마도 기자를 빙자한 아줌마 팬의 존재는 또다시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 채, 경찰대상 시사회로 갔고, 무대 위에서 진짜 형사들과 악수를 나눈 뒤 <오아시스>로 갔다. 그는 영화에서 인생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낸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오아시스에 오래 머물길 빈다. 그리고 한국영화가 고베의 대지처럼 한순간 주저앉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나는 나대로 뒤늦게 발견한 팬덤의 오아시스에 당분간 머물 작정이다. 그날 나는 또다시 디지털카메라로 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나도 낯간지럽지 않았다. 당대의 배우와 기념사진 찍을 기회가 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아줌마를 미워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