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설경구를 보는 세개의 시선 [3] - 김소희 ②

소시민에서 '공공의 영웅'으로 <박하사탕>의 후속작 <단적비연수>는 설경구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고 할 만큼 상반되는 평가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영화는 낯설었지만 설경구는 낯익다. 여기서 그가 맡은 ‘적’은 왕위계승자라는 지위와 부족 안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주술마저 위반하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헌신한다. 운명과 세계에 근본적으로 불화하고 완전한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복합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설경구에게 기대한 역할은 <박하사탕>의 그것과 숨결을 공유한다. 이것은 특정 스타가 확보하고 있는 인격적 이미지(star personality)를 이어가려는 캐스팅 전략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감독 박흥식)의 김봉수는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 이색적인 인물이다. 말이 느릿느릿해졌고 눈은 순하게 내리깔았으며 말할 때 입술을 앙다물기보다는 조금 앞으로 내민 듯한 것이, 세상만사에 굼뜨고 소심한 전형적인 소시민의 외양이다. 파트너였던 전도연의 극중대사 가운데 “웃을 때 볼우물도 함께 생겨서 예쁘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조바심이 마음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착하게 미소짓는 저 얼굴에서 입술 한끝이 조금만 비죽이 치켜올라가도 얼마나 냉소적인 얼굴로 돌변하게 될 것인지, 저 눈꺼풀을 동그랗게 들어올리고 눈동자에 조금만 힘을 주면 우리를 어떤 공황상태로 몰고 가는지 아직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신작 <오아시스>를 아무리 “찐한 멜로”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며 푸념했다는데, 그건 아마도 설경구를 캐스팅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공의 적>(2002, 감독 강우석)은 예상과 달리 설경구가 출연을 자청했다고 한다.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처지”라는 강우석 감독에게 설경구가 정말 제발로 찾아갔다면 그는 영리한 사람이다. 김영호와 강철중은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면서 배우의 연기 영토를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영호라는 인물이 섬세하기 때문에 더 깊이 상처받고, 약하기 때문에 강한 사람보다 더 자주 훼절해야 했으며, 결국엔 존재의 근본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점까지 떠밀려가버린 유형의 소시민이라면, 강철중은 말이 좋아 경찰이지 애초부터 부정적인 의미의 소시민 근성에 푹 절어 있는 인물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험악하고 경쟁적인 사회에서 일종의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덕분에 그의 내면에 보존할 수 있었던 소시민적 양식이 터무니없는 악에 맞닥뜨리자 ‘공공의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루처럼 부풀어오른 아랫배에다 바람 넣은 고무장갑처럼 뺑뺑한 손가락을 달고 게으르게 휘적거리는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설경구의 얼굴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의 눈은 쌍꺼풀이 없고 작은 편인데, 길지는 않아도 검고 진한 속눈썹이 얇은 눈꺼풀을 따라 내려와 덮을 때면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그 느낌 그대로 편안하게 올려 뜨면, 완만한 마름모꼴이 된 눈을 검은 눈동자가 가득 채운다.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눈이 세모꼴로 치뜨여지면서 작아진 검은 눈동자가 동동 떠다닌다. 이것은 그의 감정이 격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눈꺼풀과 말소리가 천천히 움직이고 왼쪽 입술 한 귀퉁이가 삐죽이 올라가면서 별로 고르지 못한 치열을 반쯤 드러낸 채 소리없는 웃음을 흘릴 때에는 그가 잔인한 침착성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반면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되면 그는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리고 그냥 운다. <공공의 적>,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연기 영화의 초반부에 이미 사건과 범인의 개요가 훤히 드러난 <공공의 적>이 관객을 끌어가는 힘은 바로 이런 강철중의 감정적인 디테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연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본인의 해명과 관전자의 판단은 좀 다르다. “분석 같은 거 안 한다. 작품분석을 하면 그 분석에 스스로 말릴까봐 깡통으로 가버린다”는 설경구의 말과 달리, 그의 연기는 고도로 지적인 조립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강우석 감독 또한 “그 친구는 정말 영악하다. ‘머리를 비우고 감독님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테스트할 때마다 이것저것 내보였다. 그때마다 내가 ‘너 지금 뭐하는 거냐?’ 하면서 일일이 다 잡아줬다. ‘감정 좀 넣어라’ 그러면 ‘시나리오에 그런 지문 없는데요’ 이러면서 능청을 떨었다. 나중에 영화를 붙여놓고 보니 캐릭터의 일관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 진을 다 빼놓고 내 장점을 다 뽑아 쓴 것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치의 오차나 잉여도 없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연기에서 때때로 강한 인공의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이 글의 서두에서 설경구의 얼굴이 우리 시대의 초상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시민의 심리적 자화상이다. 가장 이질적인 것으로 보였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김봉수 캐릭터도, 소시민성이 훼손되지 않고 안전하게 보존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궤적 위에 놓여 있다. 80년대의 시대적 자화상인 안성기가 착하고 수줍게 더듬거리는 이미지로 기억된다면, <박하사탕>의 영호는 사회적 좌절로 인해 내파(內破)해버린 소시민이다. 반면 <공공의 적>의 소시민 강철중은 한 단계 더 공격적이다. 조폭영화의 주인공들은 지배 질서에 굴종하는 대신 반항하는 쪽을 택한다는 점에서 강철중과 닮았다면, 최소한의 윤리적 자각도 수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철중과 구별된다. 강철중은 비록 줏대없이 뺀질거리긴 해도, 아니 뺀질거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공공 윤리를 설파하는 전도사로 나서게 된다. 스타라는 존재는 개인의 표현력 혹은 개성(personality) 안에서 어떻게 사회적인 것이 작용하고 협상하는지를 읽어내는 무대가 되며(<크리스틴 글레드힐, <스타덤: 욕망의 산업 >), 설경구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텍스트로 떠오르고 있다.

한-미투자협정 체결합의 뒤 쿼터를 둘러싼 한 · 미 정부의 입장 및 발언

1998년 4월7∼8일 미 영화협회(MPAA) 제프리 하디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회장, 문화관광부와 산업자원부 방문, “스크린쿼터 완화할 경우 5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10개 스크린 규모의 멀티플렉스 20개를 전국에 만들겠다”고 발언. 6월10일 미국의 대한(對韓)투자 확대를 명목으로 한-미투자협정 체결키로 합의. 7월21일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방문해서 “스크린쿼터제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신낙균 장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답변. 이어 제1차 한-미투자협정 실무협상이 워싱턴에서 열려, 미국, 스크린쿼터제가 양자 투자협정(BIT) 표준문안에 어긋난다고 지적. 7월23일 문화관광부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영화산업 보호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로 한국영화가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유지돼야 한다”고 발언. 7월30일 김지미, 임권택, 이태원 외 4인, 김종필 총리서리 면담. “한-미투자협정에서 영화를 제외해줄 것” 요구, 김종필 총리서리 “관련 부처간에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할 수 없을 것”이라 답변. 8월18일 임권택, 김지미 등 영화인,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원장과의 간담회. “스크린쿼터제는 대선공약인데다 국내 영화산업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만큼 한국영화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현행대로 유지하도록 하겠다.” 8월 말 한-미투자협정 관련해 미국 정부, “한국이 스크린쿼터제를 없애지 않으면 양국 정상이 6월에 합의한 투자협정을 무산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 11월15∼20일 한-미투자협정 워싱턴에서 제3차 실무협상 열려. 미국쪽, 스크린쿼터제 폐지 강력 요구. 11월21일 한-미정상회담, “한-미투자협정 연내 마무리” 합의. 11월26일 문화관광부, 영화인 초청 설명회, BIT 제3차 실무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쪽 요구에 굴복, 스크린쿼터 일수 축소(92일) 제시 사실 밝혀짐. 그러나 미국은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거부. 12월12일 새정치국민회의, “스크린쿼터제는 반드시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당론 확정·발표. 12월16일 신낙균 문화관광부 장관, 국회 상임위에서 “스크린쿼터 반드시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며 문광부 공식입장 발표. 정의용 통상교섭본부 조정관(차관보) 기자회견, “스크린쿼터 일수 축소는 불가피하다”며 기존 입장 되풀이. 12월26일 여야 국회의원 146명 ‘스크린쿼터 현행유지’ 지지 서명. 12월29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정부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제 유지 촉구 결의안’ 채택 및 본회의 상정키로 합의. 한덕수 본부장, 일부 언론사 기자 초청, “반드시 문화관광부와 협의해 이견을 조정한 뒤 미국과 협상하겠다”고 밝힘. 1999년 1월5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영화 의무상영제 현행유지 촉구 결의안’ 채택(통과). 1월10일 외교통상부,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쟁점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별도로 처리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힘. 1월22일 정부 당국자, 스크린쿼터 문제를 한-미투자협정 체계 협상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미국쪽에 요청키로 했다고 밝힘. 1월29일 외교통상부 당국자, 최근 가진 비공식 접촉에서 미국쪽은 스크린쿼터 축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의회 인준을 받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스크린쿼터 문제를 분리해 협상하자는 한국쪽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힘. 양국은, 멀티플렉스에 대해 스크린당이 아닌 해당 극장에 대해 스크린쿼터제를 적용하는 방안과 현재 40일인 쿼터경감일수를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 논의한 것으로 전해짐. 2월3일 USTR 리처드 피셔 부대표, “BIT 체결 여부는 순전히 한국에 달려 있다”라며 “협정체결을 중도에 포기할지 여부도 한국이 결정할 사항이며 (한국이 포기하더라도) 미국은 이의가 없다”고 밝힘. 3월25일 윌리엄 데일리 미 상무장관과 미 영화협회 잭 발렌티 회장 내한, “스크린쿼터를 폐지하는 것이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언. 3월26일 김 대통령, 윌리엄 데일리 미 상무장관 면담. “스크린쿼터제에 대해 본질적으로 환영하지는 않지만 국제협력개발기구(경제협력개발기구???)나 우루과이라운드 등에서도 쿼터제를 인정하고 있고, 한국적인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 밝힘. 3월27일 잭 발렌티 기자회견, “스크린쿼터를 현행보다 큰 폭으로 줄여 연 50일 정도로 하는 것이 적정하다”며 “5∼7년의 시간을 두고, 첫해 90일부터 시작해 70일, 50일로 단계적으로 축소해나가자는 것”이라고 밝힘. “해외투자를 유치하려면 스크린쿼터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발언. 5월21일 김 대통령, “2004년에 연간 50일 수준까지 스크린쿼터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언. 5월21일∼6월9일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2002년부터 60∼80일까지 축소하는 안을 가지고 비밀리에 BIT 실무협상을 벌이는 것이 보도됨. 2000년 7월6일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기자간담회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언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 11월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한국영화 의무상영제 현행유지 촉구결의안’ 발의 및 국회 본회의 상정을 위한 준비. 11월8일 국회 대중문화&미디어연구회 주최, 스크린쿼터 심포지엄 ‘21세기 영상문화 발전과 스크린쿼터제’ 12월8일 ‘스크린쿼터 현행유지’ 결의안 국회 본회의 통과. 2001년 3월5일 ‘스크린쿼터 사수’ 긴급 기자회견, 김 대통령 방미에 앞서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 발표.▶ 스크린 쿼터가 위험하다 ▶ 한-미투자협정 체결합의 뒤 쿼터를 둘러싼 한 · 미 정부의 입장 및 발언 ▶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5인의 진실 혹은 대담 (1) ▶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5인의 진실 혹은 대담 (2)

[Review] 콜래트럴 데미지

■ Story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LA의 소방관 고디 브루어(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어느날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콜롬비아영사관이 있는 빌딩 앞에서 브루어를 기다리던 아내와 아들이. 테러리스트가 장치한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콜래트럴 데미지' (무고한 희생자)가 된 것이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상처를 입은 채 가족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브루어는 자신의 분노를 달랠 길을 찾는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콜롬비아의 게릴라와 협상을 준비하고 있고, 법인인 '울프'(클리프 커티스)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브루어는 직접 응징하기로 결심하고, 콜롬비아로 떠난다. 정글을 헤매던 브루어는, 분노심만 남아 있는 울프에게 넌덜머리가 난 울프의 부인 셀레나 (프란체스카 네리)를 만난다. 한편 브루어가 콜롬비아로 들어간 것을 안 CIA 요원 브란트 (엘리아스 코티야스)는 그를 이용하여 울프의 조직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운다.■ Review 미국에 적대적인 테러리스트의 폭탄테러에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하고, 분노한 희생자가의 가족은 직접 테러범을 처단한다. <콜래트럴 데미지>의 전제는 그 규모만 작을 뿐이지 9.11 테러와 마찬가지다. 미국에 나라와 가정을 유린당한 약소국의 지식인이 미국 대도시를 공격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난다. 지난해 9월 개봉예정이었던 <콜래트럴 데미지>가 연기된 이유는 그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대규모 테러와 닮았기 때문. <콜래트럴 데미지>는 브루어만이 아니라, 울프의 입장도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었던 울프는 미군의 공격 와중에서 딸이 '무고한 희생자'가 되자 총을 들고 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울프는 미국을 공격하고, 다시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고, 다시 그 희생자의 가족이 공격을 한다. 이 복수의 순환고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콜래트럴 데미지>는 현실의 한 단면을 끌어내고, 거기에 오락영화다운 플롯과 결말을 덧붙인다. 그것만은 충실하다. 앤드루 데이비스의 데표작은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다. <언더 씨즈>도 수작이긴 하지만, 스티븐 시걸의 꺾고 던지는 무술이 아니었다면 약간 싱거웠을 것이다 평범한 의사가 살인 누명을 쓰고 쫓기는 <해리슨 포드의 도망자>에서 앤드루 데이비스는 절박한 도망자의 심리를 매끈하게 다듬어진 액션에 훌륭하게 실어냈다. <콜래트럴 데미지>도, 평범한 남자가 사악한 테러리스트를 쫒아가는 고난의 과정을 세련되게 잡아낸다. 만약 이 영화가 8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아마도 <코만도> 같은 스타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테러범을 쫓아가 중화기로 박살내버리는 것. 그러나 이미 시대가 바뀌었다. 전쟁터의 영웅은 람보가 아니라, <불랙 호크 다운>의 이름없는 병사들이다. <콜래트럴 데미지>의 철두철미한 악당은 울프만이 아니라 CIA이기도 하고, 브루어는 '무고한' 사형(私刑)의 집행자일 뿐이다. 게다가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더이상 두손에 M60을 들고 마구 갈겨대는 무적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그런 역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이 들었고, 앤드루 데이비스와 21세기가 원하는 '영웅' 역시 보통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과 극한에 몰린 투쟁을 이겨내는 범인(凡人)이다.<콜래트럴 데미지>는 균형감각을 갖추려고 간혹 노력한다. 울프의 부인 셀레나는 브루어에게 테러의 이유를 말한다. 미국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희생자의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국가'가 대신 미국을 응징해주지 않기 때문에, 직접 무기를 든 것이다. 그것만은 진실이다. 하지만 <콜래트럴 데미지>는 오락영화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심각하게 선과 악의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이 당연하게 울프에게 '적의'를 느낄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놓는다.울프는 콜롬비아의 테러리스트다. 만약 멕시코의 사파티스타(그들이라면 테러를 하지는 않겠지만)나니카라과, 칠레 같은 곳의 게릴라라면 사정이 다르다. 콜롬비아는 마약 조직의 최대 근거지로 악명 높은 곳이고, 게릴라들 역시 마약조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비록 대의가 올바르다 해도, 그들은 마약을 미국에 침투시켜 미국인의생존을 위협하는 집단이다. 태생적으로 울프와 그의 조직은 미국인 전체가 적의를 느끼는 집단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울프의 잔인함을 부각시킨다. 뱀을 이용한 최신 처형법이라든가, 희생자에 대한 싸늘한 태도 같은 것들.앤드루 데이비스는 한물간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활용하여 그의 근육을 앞세우지 않고도 엎치락뒤치락하는 깔끔한 액션영화를 만들어냈다. 전체적인 흐름은 매끈하지만, 세부적인 개연성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 반전을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하여튼 결말의 놀라운 반전을 위해서 전반부에 지나치게 복선을 까는 바람에 사실성은 좀 훼손된다. 앤드루 데이비스는 <퍼펙트 머더>에서 치밀한 스릴러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님을 이미 증명했다. <콜래트럴 데미지>가 치밀한 복선과 반전을 중시하는 스릴러가 아니라, 몸으로 많은 구멍을 메우는 액션영화인 것이 다행이다.김봉석/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콜래트럴 데미지>의 조연영웅 곁의 얼굴들<콜래트럴 데미지>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말고는 대부분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국적도 모두 다르고, 출세작도 거의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다. 울프의 '고뇌하는' 아내 셀레나 역의 프란체스카 네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주로 유럽영화에 출연해왔다. 비가스 루나의 <룰루>, 카를로스 사우라의 <안나 이야기> 등으로 한국관객에게 션보였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라이브 플래쉬>에도 나왔다. 리들리 스콧의 <한니발>에서 리날도 바지 형사의 부인 역을 맡으면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지적이면서도 어딘가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프란체스카 네리는 <콜래트럴 데미지>에서도 서로 다른 두개의 이미지를 능숙하게 연기해낸다. 하비 카이틀, 앤디 맥도웰과 함께 스릴러물 에 출연할 예정이다.냉혹하다 못해 야비하고, 추악한 CIA 요원 브란트를 연기한 엘리아스 코티야스는 캐나다 출신으로, 캐나다의 대표적 감독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크래쉬>로 두각을 나타냈다. 자동차를 경배하는 광신자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로 나온 엘리아스 코티야스의 연기에서는 광기의 푸른 불꽃이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그뒤 <씬 레드 라인> <다크 엔젤> <가타카> <로스트 소울>에 출연했다. 정형적인 중남미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울프 역의 클리프 커티스는 중남미나 스페인니 아니라 뉴질랜드 출신. 데뷔작은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다.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바이러스> <쓰리 킹즈> <인사이더> <트레이닝 데이> 등에 출연했다.콜롬비아의 게릴라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마약을 생산하는 펠릭스 역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섬머 오브 샘> <물랑루즈> 등에서 독특한 연기를 보여준 존 레기자모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존 레기자모의 고향은 콜롬비아의 보고타. 브루어가 콜롬비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 풍기문란죄로 잡혀오는 캐나다인으로는, 코언 형제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해온 존 터투로가 잠깐 나온다.

<취화선> 촬영현장

간다. 개화파 선비와 풍운아 화가가 수레에 차가운 시신을 싣고 바람찬 강둑길을 따라간다. 덜컹덜컹 무심하게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역사가 깊은 굴곡에 요동치던 1866년, 천주교 신도 8천명이 살해된,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지난 1월 말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시간을 거슬러찾아간 현장도 바로 수많은 천주교도가 참수당한 형장이었다. 섬뜩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머리들이 주렁주렁 널려 있고, 목없는 시체들이 꽉 들어찬 구덩이가 깊게 팬 현장은 을씨년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영화에선 초반부에 해당하는 이날 촬영분은 김병문(안성기)이 개화파 동료의 시신을 찾는 와중에, 스스로 ‘천주쟁이’라 밝힌 기생 매향(유호정)이 희생되지 않았을까 걱정된 주인공 장승업(최민식)이 시체더미를 뒤지는 장면. 이제 마지막 촬영만을 남긴 여유였을까. 무겁게 느껴졌던 촬영장은, 막상 임 감독이 사인을 보내기만 하면 가뿐하게 움직였다. 결국 이날의 촬영은 리테이크도 거의 없이 물 흐르듯 끝을 맺었다. <취화선>은 후반작업을 거쳐 5월 개봉할 예정이다. 글 문석·사진 손홍주 1. “여기말고 형장이 또 어디에 있소?”, “서대문 밖에도 있으니 한번 가보슈.” 처참하게 늘어선 시체를 보고 난 장승업은 매향이 희생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가누지 못한다. 2. 김병문은 동료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 갑갑한 신분사회를 천주의 힘으로 깨보겠다던 꿈은 어디에 두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셨는가”라며 한탄을 내뱉는다. 3. 영화에서 한강변으로 설정된 곳은 충남 서산, 한 기업인이 뚝심으로 바다를 땅으로 메웠다는 간척지 인근이었다. 탁 트인 바다도 현장의 우울한 분위기를 온전히 감싸진 못했다. 4. 목 잘린 마네킹이 가득한 시체구덩이 속에는 사실감을 위해 엑스트라들이 들어가 졸지에 ‘산 송장’ 신세가 돼야 했다. 5. 현장에서 만난 임권택 감독은 사무실에서 시나리오를 만질 때보다 훨씬 생기에 찬 모습이었다. 비슷한 연배인 정성일 촬영감독, 이태원 태흥영화 사장 또한 현장에선 청년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블랙 호크 다운>의 조시 하트넷

1978년생. 이제 스물넷이 된 그의 첫 느낌은 ‘식물성’이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모질거나 모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덕분이기도 하지만, 거기엔 <진주만>에서 에블린이 자신보다 친구 레이프를 더 사랑할까 두려워하는 파일럿 대니의 쓸쓸한 사랑의 여운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진주만> <블랙 호크 다운>. 여름과 겨울을 잇따라 폭격한 두편의 전쟁영화에서 조시 하트넷은 포화 속의 이상주의자이자 아름다운 청년으로 다가왔다. 물론 일찍이 10대 공포영화 <패컬티>에서 마약을 제조해 팔던 소년으로, <할로윈 H20>에서 제이미 리 커티스의 아들로 스쳐지나가기는 했지만. <블랙 호크 다운>에서 조시 하트넷은 이상주의자 멧 에버스만 하사로 등장한다.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긴박한 전장에서 에버스만이 부상당한 동료의 동맥에서 솟구치는 피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위생병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에버스만은 소리를 지르거나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어두운 눈빛과 저음의 짧은 독백으로, 전쟁이 인간을 그리고 삶을 어떻게 고갈시키는지 증언한다. 감정을 탈색해버린 조시 하트넷의 눈빛과 목소리는 저릿하게 관객의 가슴을 관통한다. 방랑벽과 반항기질. 조시 하트넷은 배우로서의 성공비결에 대해 “4분의 1의 방랑벽과 4분의 3의 순수한 반항기질”이라고 말한다. 어린 조시는 14살 때부터 소설가 케로액의 <길 위에서> 같은 소설이나 달마의 경전 따위를 읽으며 인간의 내면을 방랑했고, 조용하고 온유한 표정에서 유추하긴 힘들지만, ‘어버이의 모든 것’을 무시했다. 가톨릭계 학교 출신이었던 부모는 그에게 “선택은 자유지만 자신들이 나온 학교를 가지 않으면 학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했고, 그는 침묵으로 응수했다. 결국 잠시 다니던 미네소타주의 가톨릭계 학교를 중단하고 사우스 하이 스쿨을 다니던 그는 풋볼을 하다 인대가 찢어지는 바람에 무대로 눈길을 돌린다. 5년 전, 배우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왔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무명배우들이 TV광고에 얼굴을 비추려고 몸부림치는지 알지 못했다. 고향인 미네소타주에서 연극 주연도 해봤고 TV광고도 찍었던 그는 행운이 계속되리라 생각했고, 뜻밖에 행운의 여신은 그 순진한 믿음에 미소를 보냈다. 그는 곧 TV시리즈 <크랙커>(Cracker)에 반항적인 10대 소년에 캐스팅되었다. 프로그램은 단명했지만 그는 단명하지 않았다. 영화계에서 그를 주목했고, 이런저런 코미디와 로맨스 드라마 등에 조금씩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의 사이코 드라마 <버진 수어사이드>(The Virgin Suicides, 1999). 신비스럽고 쿨한 매력을 발산하며 여자를 유혹하는 그의 연기에 영화계는 눈길을 멈추었다. <블랙 호크 다운>에 출연하게 되었을 때 “마스터(master)와 함께 일하게 됐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서 짜릿했다는 조시 하트넷의 배우인생 제1장은 화려한 스타덤으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마이클 레만 감독의 로맨틱코미디인 (40 Days and 40 Nights)으로 제2장을 열고 있다. 이 시대의 말론 브랜도나 로버트 드 니로를 꿈꿀 수 있겠느냐고 겸손을 떠는 그는 다음 장에서는 또 어떤 빛깔과 음색의 연기를 보여줄까.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카스턴트, 장호중

드라마가 질식할 정도로 강도 높은 액션이 신마다 들어찬 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13분짜리 자동차 추격신과 폭파신은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 있는 미개통 국도에서 열흘에 걸쳐 만들어졌다.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폭파신을 위해 스턴트팀 팀장 장호중(38)이 직접 높이 6m의 도약대를 제작했고, 오토바이 리허설로 촬영이 시작됐다. 오토바이 리허설은 촬영기사로 하여금 실제 촬영시 자동차의 동선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스턴트 배우들에겐 도약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효과를 내기에 스턴트팀에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 공중에 뜬 자동차가 뒷부분부터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장면을 위해 그가 생각해낸 묘수는 트렁크에 벽돌을 잔뜩 넣는 것. 전륜구동이라 앞쪽의 엔진 무게가 맘에 걸렸지만 그렇게 하면 별탈없이 뒷부분부터 떨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도약대를 벗어난 차는 그대로 날아가 엄청난 속도로 처박혔고, 운전석에 타고 있던 스턴트맨이 크게 다치고 말았다. 차도 완전히 박살났다. 결국 재촬영마저 취소됐고, 몇몇 부분을 CG로 다듬은 뒤 그대로 쓰겠다는 감독의 결정으로 아쉬운 대로 촬영이 끝이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트럭이 부딪힐 때의 장면을 정말 리얼하게 잡은 부감숏이 있었는데, 찍고보니 카메라에 필름이 없어 결국 쓰지 못했다. 촬영 동안 폭발음과 마찰음으로 일대의 사슴농장에서 사슴들이 죽어 나자빠졌고, 그걸 무마하느라 제작부의 지갑이 홀쭉해졌지만, 덕분에 스탭들은 귀한 사슴피 구경에 입이 벌어졌다는 후문은 그가 들려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스피드와 기계에 대한 애착은 이미 그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것이었다. 5대 독자였던 그가 오토바이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이모부에게서였다. 심부름을 시킬 요량으로 가르쳤다지만 아버지는 내내 그 일을 질책하셨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신 분이었지만 오토바이를 사달라는 요구만큼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그렇게 반대하던 아버지마저 신혼 초 어머니 몰래 오토바이를 샀다가 이혼 위기까지 갔다는 사실을. 4대 독자였던 아버지도 알고보니 속도광이셨던 것이다. 그때 느꼈던 동질감이란. 대학교 1학년, 해병 특수수색대에 있던 친한 형이 스턴트 세계로 그를 안내했고, 이후 <본투킬>에서 정우성에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칠 때까지도 그에게 이 일은 취미이자 아르바이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오기 비슷한 게 생겼다. 실력이 안 돼 외국 스턴트팀을 불러야 한다는 감독의 말 한마디가 한국 최고의 스턴트팀 ‘라이더스’(Riders)의 탄생 이유가 됐다고나 할까. 국내 자동차경주대회인 용인 스피드웨이와 금강산 랠리 등에서 1위 팀들이 가장 먼저 받는 전화가 그의 전화가 됐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의 바람은 외화 <드리븐>이나 <택시>처럼 온전히 라이더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 한편 만들고 멋지게 퇴장하는 것이다. 프로필 1965년생 <본투킬>(1996) <비트>(1997) <주유소 습격사건>(1999) <공포택시>(2000) <불후의 명작>(2000) 현재 <라이터를 켜라>(2002) 촬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