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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2003)

대한민국 1%

나는 ‘대한민국 1%’다. 물론 고급승용차를 타는 1%가 아니다. 92년 1.0%, 97년 1.2%, 2002년 3.9%. 내가 찍은 대통령 후보들이 얻은 득표율이다. 투표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은커녕 당선권에도 들어가본 적이 없다. 좋게 말해서 정치적 소수자고, 나쁘게 말해서 철없는 똘아이다. 축제가 한창이다. 뉴스에도 중계된다. 축제의 슬로건은 ‘Again 1987’, 노래는 ‘아 옛날이여’, 준비물은 촛불이다. 긴 밤 지새우며 이들이 할 일은 “6월 항쟁의 쓰다만 뒤 페이지를 다시 쓰는 일”이다.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촛불을 들어야 마땅한 분위기다. 잠시 그의 과오는 잊고, 적들의 침탈에 맞서야 한다. 상식있는 자는 광분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1%는 그 상식에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1%는 공화국의 헌정질서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그저 대한민국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많다. 초라한 1%는 졸지에 상식없는 놈까지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또다시 두개의 계급만이 존재한다. 탄핵 찬성이냐, 반대냐. 이쪽이냐, 저쪽이냐. “음… 이쪽에 반대하지만, 저쪽도 잘못한 점이…”라고 설명하려는 순간 양비론이라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회색지대는 없다는 충고가 들려온다. 대한민국 1%의 말문은 막힌다. 아나키스트 봉기는 왜 안 하냐는 농담을 하며 배시시 웃어야 한다. 뜬금없는 ‘막말’을 해서 망가뜨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때때로 세상이 두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시절이 오면, 1%는 ‘비국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한다. 어느 방송사도, 어떤 신문도 그들의 목소리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전투가 부럽고, 왕따라는 사실이 뼈저리다. 요즘엔 온통 탄핵 반대의 목소리에 포위된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온갖 상념이 스친다. 저 무수한 선후배, 친구들처럼 왜 ‘상식’을 가진 시민이 되지 못하는가? 자유주의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혹시 사촌이 땅사니까 배아프냐?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고, 약간의 우울증마저 도진다. ‘옳은’ 쪽으로 가 있는 사회에 태어난 팔자 탓이다. 텔레비전마저 지루해진다. 솔직히 13시간 탄핵 관련 방송이 지겹고, 비슷비슷한 인물이 왈가왈부 시시비비하는 모양새도 짜증난다. 탄핵 직후, “현 정권의 수도 이전 공약에 기대를 걸었던 충청권 시민들은 탄핵안 통과에 실망하고…”라는 지역주의 리포트를 할 때는 그저 경악할 뿐이다. 차라리 앵무새 같은 뉴스보다 프로농구 플레이오프가 궁금하다. 그렇다, 다시 양비론이다.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여론 조작”이라는 ‘한민당’의 억지생떼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지만, “우리는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공영방송의 변론도 솔직하지는 않다. 한국의 리버럴은 ‘공공선’을 참 좋아한다. 어떤 연예인은 입당 하루 전까지 손사래를 치고, 누가 봐도 정파 모임인데 시민단체라고 우긴다. 이런 ‘위선’을 깨는 일도 정치개혁의 일부다. 정치란 무릇 나쁜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사고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파적이라는 게 뭐가 부끄러운가. 사실 대한민국 뉴스는 아주 정치적이다. 그것은 무엇을 보여주느냐만큼 무엇을 보여주지 않느냐로 드러난다. 브라운관 너머로 공영방송이, 상업방송이 어떻게 진보정당을 왕따시켜왔는지 돌아보자. 여론조사 발표에서 제외하고, 토론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고. 물론 고의가 아니라고 한다. 고의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서 더 무섭다. 진보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무의식이 더 무섭다. 오늘도 광화문 축제는 계속된다. 친구는 오늘도 전화를 걸어 축제에 초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안과 이라크를, 김주익과 박일수를, 다라카와 비쿠를 기억하는 한, 그를 위해 촛불을 들 수는 없다. 짱나는 세상, ‘발리’가 그립다. 재민씨∼, 수정아! “사랑해요”. 그 마지막 한마디가 사무친다. 발리러버 만세! 만세! 만세! 추신. 그날 국회 의사봉은 절대반지 같았다. 사악한 무리들이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순간, 나 또한 경악했고, 절망했다. 세상은 파멸로 치닫고, 악의 제국이 태어나는 줄 알았다.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 절대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애국가도 내 마음을 치지는 못했다. 그저 절대반지는 위험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원정대가 필요하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그 친근하고 낯선 페이소스, 양동근 [3]

3. 양동근, 나는 언제나 나인 거지 뭐 연예인이란 게 그리 좋지만은 않아 내가 공인이란 것이 그리 자랑거린 아냐(알어) 여기서든 저기서든 개인일 수 없는 것이 권리보단 의무를 나보다 먼저 팬들을 내 웃음을 선사하고 나의 몸을 부식부식 -양동근 2집 <착하게 살어> 중에서- -친구들은 많은가. =다 음악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쪽보다는 음악쪽 사람들. 같이 음반작업 스튜디오에서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힙합의 브러더 후드(brotherhood) 같은 정신. =음. 그건 무슨 특별한 정신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밤새고 작업하고 녹음하다 같이 밥먹고 하다보면 친해지게 되어 있는 거지 뭐. 밖에서 영화찍거나 드라마할 때는 카메라 앞뒤에서 긴장하고 하는 일이 많지 않나. 그런데 음악작업은 그런 게 아니거든. 항상 같이 지내잖아. 같이 일하고 쉴 때는 같이 놀고 그러니까 영화작업 같이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한테는 편한 사람들이 되는 거지. -남자팬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우리우리 동근이 형님’하는 남자애들. (웃음) =남녀노소(웃음) 가리지 않고 많다. 아줌마들 팬이… 아우… 특히 많다. 일본에서도 아줌마들이 찾아오고. (웃음) 일본 아줌마들 대단하다 정말. -이전의 인터뷰들에서는 ‘나는 솔직히 팬들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골똘히 생각) 근데 팬이라고 하면 말이지. 어느 특정한 팬클럽에 있는 그 사람들말고 날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팬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는 거다. (손가락으로 작은 원을 만들며) 요만∼큼 있는 사람들이 다가 아니잖나. 어디서든 구석에서든 어디서든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어느 특정한 팬들만 어쩌고저쩌고 좋다하기는 좀 그런 거 같다. 내가 받아들이는 팬은 나를 알고 TV나 영화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니까. -어느 특정한 팬들에게 등급을 주고 싶지는 않다. =주자면 등급을 줄 수는 있지. (웃음) 그런데 그게 좀 웃기잖아. (웃음) -보통 젊은 배우들 인터뷰 보면 항상 그러잖나, 어떠어떠한 배우가 나의 목표다. 양동근은 그런 롤모델 없을까. =(주저없이) 양.동.근.이 되야지. 언제나. 배우라는 사람들이 원래 항상 이런 얘길 많이 하지. 누구는 연기를 이렇게 하고 누구는 이런 식으로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나인 거다. 4. 장사가 끼니까 골 아파지는 거지 뭐 말로 표현 안 돼 말도 안 돼 내가 평범한 놈이었음 말도 안 해 심장을 빨래 짜듯 쥐어짜고파 또 콧구녕도 목구녕도 막아다가 물에 던지고파 -양동근 2집 <청춘> 중에서- -연기와 음악이 인간 양동근을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분명한데. 솔직히. 아주 솔직히. 둘 중 뭐가 더 재미있나. =연기는 즐겁게… 즐거… 즐거… 운 면이 근데 좀… 좀… 힘들지. 아직까지 연기는. 그러니까. 왜냐하면. 먹고사는 수단이 이거,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언제나 힘들게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즐겁기 힘들지. 즐거운 거는, 음악할 때다. 그런데 음악도 장사가… 휴우… 이거 뭐 돈하고 장사가 끼니까 그냥 막 골 아파져서. -돈은 둘째로 치고, 대체 1집과 2집의 사이. 그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 어떻게 그렇게 음악이 푸욱 숙성된 건가. =모르겠다. 1집 때는 앨범 하라니까 그냥 무작정 갖다 들이받은 거였다. 1.5집은 그 과도기였고. 2집 때는 아무래도 앨범을 두개를 해봤으니까 느낌을 좀 찾은 거 같다. 그러니까 모니터를 한 거지. 일단은 뭔가를 집어내지 않나. 이 사람은 이 영화 저 영화 찍었을 때 연기 못했는데 다른 영화에서는 연기가 좀 나아졌다.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가사의 영감은 어디서 가져오나. =강원도 왔다갔다 하다가도 쓰고. 혼자 밖에 있다가 갑자기 ‘어!’ 하고 생각나면 그대로 쓰고. 음악 들으면서도. 왜냐하면 전체 음반 분위기에 맞아야 하니까. 음악은 어둡게 가는데 혼자 신나서 가사는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그럴 순 없으니까. 거의 음악 틀어놓고 그 음악에 그 기분에 휩싸이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음악 제일 자주 듣나. =양동근의 앨범들. 제일 자주 듣는다. (웃음) 정말이다. -양동근의 랩에 대해서 그것을 듣는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은가. =그런 건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건 나오는 그대로 하는 거지, 누가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쓰는 일은 없다. -배우로서 양동근이랑 래퍼로서의 양동근. 솔직히 어디에 더 애정이 가나. =애정?… 근데. 그게 래퍼다 배우다 하고 그냥 밖에서 나눠진 거지, 그게 다 양동근인데 어디에다 더 애정을 두고 그럴 순 없지. -하지만 힙합 가수로서의 양동근에 더 개인적인 애정이 실린 것은 아닌가. =(의아하다는 듯이) 애정? (목소리 살짝 높아지며) 그러니까 겉과 속이 공존해 있는 거다 지금의 양동근은. 화면에서 보여지는 그 모습이 겉모습이면 나는 나의 속사정도 랩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다. 어떤, 일찍 포장이 돼서, 상품이 돼서 텔레비전에 ‘짜잔’ 하고 나오는 겉모습뿐만 아니고 그 화면에 보였던 사람말고도 양동근은 있는 거니까. 인터뷰 같은 데서 사람들이 이랬다저랬다 떠들어대는 그 양동근은 양동근이 아니다. 진짜 양동근은 이렇다라는 것을 나는 음악으로 보여주는 거다. (잠시 침묵) 연예인이라면 연예인으로서의 자신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는 진짜 양동근으로서의 나 자신도 얘길 같이 한다. 그런 것 같다. 그런 게 정말로 가치있는 것 같다.

충무로 청춘 스케치 [1] - 마케팅 권미경

더 물을 필요도 없는 당연한 진리.‘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그러나 <씨네21>은 갑자기 그 시작점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일면이 궁금해졌다. 여기에 어떤 거창한 예측과 기대가 숨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한국영화의 현장을 이끌어갈 그들의 살냄새나는 생활의 발견을 놓고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동력으로 현재를 살아가는가? 그래서 마련한 질문은 다소 짓궂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다. 우리는 그들을 ‘초보 영화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자리에 초청된 ‘초보 영화인’은 연출, 촬영, 녹음, 미술, 배우, 마케팅, 제작, 영사, 좀더 넓혀 영화과 신입생, 고등학생 감독에 이르기까지 모두 10명이다. 한국영화의 재목들과 나눈 솔직한 10문10답의 대화를 여기 싣는다. 권미경(23)씨는 한달 반 정도 인턴사원을 거친 뒤, 지난주부터 영화사 씨네와이즈필름의 정식 사원이 됐다. 우연한 기회에 한 잡지에 난 공모를 보고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 하지만 이미 ‘영화홍보관리사’라는 선배들도 잘 모르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오히려 놀림도 받는다고 토로한다. 대학에서는 록음악 동아리 보컬도 했었다는(물론 그 실력은 의심받고 있다) 씩씩한 그녀의 요즘 슬로건은 “앞만 보고 달릴 거예요 파이팅!”이다. 회사에서는 그 말 한마디로 예쁨을 독차지하는 눈치다. 실수담도 많지만, “저희 이번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반 헬싱> 하는 거 아시죠?”라며 잊지 않고 묻는 걸 보면 앞만 보고 달리는 건 확실한 듯싶다. -01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한 잡지사에서 인턴사원해 볼 수 있는 공모지면을 보고 응모했다. 그중 영화사는 두 군데가 있었는데, 여기는 제작부터 마케팅까지 같이 하는 곳이어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았다. -02 일을 시작하고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 점은. =한 영화사에서 한 작품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이 길다는 것을 알았다. 또,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홍보만 말하는 게 아닌 것도 알았다. -03 일하면서 욕먹었던 일이나 칭찬받았던 일은. =크게 혼난 적은 없지만 소소한 실수를 좀 많이 한다. 언젠가 <씨네21> 기사를 보던 중에 전화받은 적이 있는데, 평소에 하도 힘없이 말한다고 해서 얼떨결에 수화기에 대고 “예 <씨네21>입니다” 하고 크게 대답한 적 있다. 또, 잘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다. 회의 때였는데 실장님이 감기가 걸리셨는지 코를 만지면서 무슨 계획인지 ‘휴지화’됐다고 했다. 그 말을 못 알아듣고 ‘휴지’를 건네준 적도 있다. 컴맹이라 사무적인 서류 만들 때 애먹은 적도 많다. 신문기사 관리 안 해서 혼난 적도 있고. 하지만, 작품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인정까지는 아니지만, 점수 많이 딴다. -04 친구들이 내가 하는 일을 부러워할 때. =친구들은 영화사하고 매니지먼트 회사하고 좀 헷갈려 한다. 친구들에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가서 김태우 봤다. 사진도 찍었다”고 자랑하면, “야, 네가 짱이다, 연예인하고 사진찍은 애 너밖에 없다”면서 다들 부러워한다. 그러고나서 “다음에는 꼭 권상우하고 사진찍고, 사인도 받아달라”고 한다. -05 친구들이나 가족이 쯔쯔 혀를 찰 때. =보다시피 내가 외모가 좀 얌전하게 생기지 않았나? (웃음) 가족들은 얌전한 애가 그런 거 잘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지금 큰언니하고 같이 사는데 늦게 들어가면 형부가 더 걱정한다. 술먹고 늦게 들어가면 쟤 술먹고 또 아무 데서나 헤롱거리는 것 아닌가 걱정한다. -06 그때 엎어버리고 싶었다. =이런 적은 있다. 기자, 방송사, 평론가까지 목록 정리할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바뀌는 거라 일일이 찾아서 목록에 올려야 되는 일이었다. 컴퓨터도 서툰데 그걸 하려니 완전 중노동이었다. 그때 속으로 이건 자기들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처럼 너무너무 잘해주신다! -07 힘들 때 위로하는 방법은. =요즘 생긴 나만의 비법이 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워크숍 갔다 왔는데 거기서 번지점프를 했었다. 대표님이 여자 중에 뛰어내리는 사람 5만원 준다고 해서 ‘5만원’ 하고 소리치면서 뛰어내려 돈벌었다. 뛰기 전에 발등을 조금 내놓아야 하는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좀 든다. -08 혹시 벌써 직업병이.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 프로그램 보는 걸 좋아했는데, 예전하고 달리 요즘은 저거하고 저거하고 비교하면 상대 영화가 별로 안 돋보일 텐데, 하는 생각도 한다. -09 로또에 당첨돼도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인가. =내가 차리고, 부리고 싶다. 나는 보고 감상하는 수준에서의 대표만 하고 싶다. 즐기고 싶다. -10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상은. =일을 빨리 배워서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 당장의 꿈이고, 멀게는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가 만들어져서 극장에서 눈물 흘리면서 그걸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칸느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제작 미라신코리아, 투자 및 공동제작 유니코리아)가 다음달 12일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제57회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 영화의 한 관계자는 18일 영화제 집행위원회로부터 공식경쟁부문 진출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홍 감독의 칸느 진출은 한국 영화 사상 세번째의 쾌거. 홍 감독은 그동안 <강원도의 힘>과 <오!수정>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칸을 방문한 바 있지만 세계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칸 영화제에는 임권택 감독이 2000년과 2002년 각각 <춘향뎐>과 <취화선>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이 중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홍상수 감독의 경쟁부문 진출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 최근 전작 네 편이 잇따라 프랑스에서 개봉되며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환호를 받았으며 리베라시옹, 텔레라마 등 현지 유력지들도 인터뷰 기사를 실으며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유부남 대학강사 문호와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귀국한 헌준이 옛 연인 선화를 만나러 가는 이틀간의 일을 그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홍 감독의 다섯번째 작품. 유지태, 김태우, 성현아 등이 출연한다. 한편 영화제의 초청작 공식 발표를 이틀 앞둔 18일까지 다른 한국 영화의 초청 확정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미국의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14일자 인터넷판에서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을 왕가위 감독의 ,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Fahrenheit 9/11)와 함께 아직 예심위원단이 보지 않았지만 경쟁부문 진출이 유력한 작품이라고 분류했다. 버라이어티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우리의 음악>(Our Music)과 함께 비경쟁 특별상영 부문에 초대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이 감독주간(Director's Fortnight)에서 상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밖에 영화제 경쟁부문에는 개막작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Bad Education)과 코언 형제의 <레이디 킬러스>(The Ladykillers),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라이프 이스 어 미라클>(Life is a Miracle)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러펀트>가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차지했으며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은 <킬빌>의 쿠엔틴 타린티노 감독이 맡는다.(서울=연합뉴스)

어느 ‘노빠’의 열광

사실 나는 ‘노빠’다. 노무현 빠돌이? 설마. 말 많은 오빠는 딱 질색이다. 나는 노회찬 빠돌이다. 요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바짝 뜬 민주노동당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노회찬 오빠 말이다. 이럴 수가. 유구한 내 빠돌이 인생에서 머리 빠진 오빠는 처음이다. 심지어 말도 많다. 그런데 입놀림 하나하나에 뻑간다. 용필 오빠 빠돌이를 하던 소녀 시절에도, 젝스키스 못잡아먹어 안달이던 HOT 빠순이 시절에도 오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렇게 자지러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거리기는 궁상도 떤다. 고백하건대 텔레비전 토론회 보는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절대 그런 지루한 인간들하고는 연애 안 할 거다, 다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연히 안 할 거니까. <한밤의 TV연예> 할 시간에 을 보다니. 말이 되는가. 그랬던 내가, 토요일 저녁 채널을 돌리다 오빠에게 필이 꽂혀버렸다. 그 운명의 순간은 이랬다. 4월3일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나온 한나라당 의원이 정동영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을 물고늘어지면서 노인복지를 거론하자, 노회찬 오빠 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야기시킨 탄핵으로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이 단축됐어요. 그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지금 노인문제를 토론할 때가 아니라 말이에요”. 아∼싸, 촌철살인! 방청객 일동, 박장대소. 이어 국회 출석률이 무척 낮았던 자민련 의원에게는 “4년 동안 학교도 안 가고 안 보이시더만, 이제와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꾸짖는다. 앗, 능숙한 애드리브! 이번엔 웃기다 울린다. 노 대통령과 4당 대표가 룸살롱에서 800만원어치 술 먹은 것을 지적하며 “며칠 전에 월 70만원 생계비를 받는 소녀가장이 자살을 했어요. 2시간 동안 800만원 먹었으면요, 그건 1년치 생계비예요. 이런 핏발 선 투표용지가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감동의 물결에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정리 발언. “유권자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노회찬 오빠의 데뷔는 화려했다. 3월 초 오빠가 토론회에 나오자 포털 사이트에 ‘노회찬 어록’이 뜨고, 언론에 노회찬 신드롬이 몰아쳤다. 날렵한 빠돌이들은 ‘노회찬 국회보내기 운동본부’ 카페를 만들었다. 요즘 우리 노빠들은 오빠의 스케줄을 챙기고, 오빠의 동영상을 뿌리느라 여념이 없다. 알고 보니 오빠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자했단다. 오빠는 30년 동안 거리의 정치연설로, 강당의 토론회로 단련된 ‘준비된’ 만담꾼이다. 하루이틀에 급조된 스타가 아니란 말이다. 단지 밀어주는 당이 없어서 텔레비전에 못 나왔을 뿐. 그동안 오빠에게도 ‘안 좋은 추억’은 참 많다. 많은 언더그라운드 ‘동지’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금배지를 좇아 떠났다. 대부분은 ‘DJ 기획’을 거쳐서 ‘원조 노빠 기획’으로 옮겨갔다. 어떤 오빠들은 ‘딴나라 엔터테인먼트’로 막가기도 했다. 모든 빠순이의 목표가 연말 시상식에서 오빠의 품에 트로피를 안기는 것이듯, 우리 노빠의 목표도 오직 오빠의 가슴에 금배지를 달아주는 일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우리 오빠가 10대 가수, 아니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0번 안에 들기는 했는데, 그 순번이 너무 늦다. 무려 8번. 오빠가 금배지를 달려면 민주노동당에 13% 이상의 지지율이 필요하다. 여차하면, 재주는 우리 오빠가 넘고, 국회의원은 다른 오빠가 하게 생겼다. 이건 에이스 빼고, 대표팀을 월드컵에 내보내는 꼴이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홍명보이고, 안정환이다. 오빠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했다. 나는 “속 터지는 것을 두려워하자”고 호소한다. 앞으로 ‘테레비’에서 오빠를 자주 못 보면 속 터질 것 같다. 오빠가 금배지를 단다면? 꺄∼악! 추신. MBC 개표방송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요. 92년 총선이었죠. 전 밤새 개표방송을 봤어요. 물론 내가 응원하는 당은 추풍낙엽이었죠. 그런데 새벽 2∼3시쯤 갑자기 강원도 춘천에 오렌지색이 칠해진 거예요. 전 너무나 놀랐죠. 제가 응원하는 민중당 색깔이었거든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어요. 잠시 뒤 정정 방송이 나오고, 전 눈물을 흘렸죠. 텔레비전을 보고, “너 지금 나 놀리냐?”라며 화를 냈지만 소용 없었죠. 그로부터 8년 뒤. 역시 새벽 2∼3시쯤이었어요. MBC 아나운서가 울산 북구의 민주노동당 후보와 당선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눈물이 나오려고 했죠. 그러나 역시나, 였어요. 잠시 뒤 당선자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이건 나를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울부짖었지만, 텔레비전은 대답이 없었죠. 설마 저를 세번 죽이지는 않겠죠? ㅋㅋㅋ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무삭제의 즐거움, 킬 빌 Vol.1

<킬 빌 Vol.1> Kill Bill Vol.1 2003년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상영시간 111분 화면포맷 2.35:1 아나모픽 음성포맷 DTS & DD 5.1 영어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미라맥스, 스팩트럼 타란티노가 자신의 두터운 영화 수첩을 뒤적여 작성한 리스트를 토대로 만든 프라이빗 액션 컴필레이션인 <킬 빌>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할 만큼 많은 평론과 정보들이 나왔으므로, 여기에서는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DVD쪽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보았다. 영화와 별도로 신청되었던 DVD에 대한 심의가 다행히도 무삭제로 통과된 덕분에 극장에서 심의로 인해 삭제되었던 12초 분량은 모두 복원되었다. 하지만 판본 자체는 청엽정 결투장면의 일부가 흑백으로 처리된 미국·아시아 버전이며, 유일하게 올 컬러인 일본판 버전은 아쉽게도 수록되지 않았다. DVD는 미라맥스 본사에서 보내준 HD 마스터를 토대로 제작된 탓에 HD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화질을 보여준다. 아나모픽 2.35:1 영상은 원색의 콘트라스트와 색 농도가 매우 높고, 채도와 순도도 도드라지는 청명하면서도 선연한 색감을 보여준다. HD보다 영상 입자가 현저하게 적은 DVD 포맷의 한계 때문에 선명도는 평균적인 수준에 머물렀지만, 투명도와 질감 표현력은 HD에 육박할 정도이고, 시각적인 해상도도 무척 높게 느껴진다. 필름의 입자감이 균일하게 두드러지는 점은 오히려 작품의 분위기에 매우 잘 부합된다. 극장에서의 필름이 의외로 지저분했기 때문에 DVD 영상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영상에 어울리게 박력있게 믹싱된 DTS 5.1 채널 사운드는 일본도의 청명하면서도 밀도 높은 금속성 파열음과 총소리의 강력한 임팩트감, 격투신의 묵직한 타격음 등의 효과음들을 날카롭고 위압적으로 들려준다. 저음도 묵직하고 강력하다. 볼륨이 높은 배경음악도 넓고 두텁게 펼쳐진다. 서플먼트는 제작 다큐멘터리와 촬영 광경, 인터뷰 모음, 하이라이트 장면들, 뮤직비디오, 예고편, 포토갤러리로 미국판보다는 좀더 많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단출한 편이다.김태진 그동안 HD로 텔레시네한 몇몇 DVD들의 감수를 맡았던 경험에 의하면 국내 DVD 제작사들의 HD 오소링 기술은 아직 불안한 점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미라맥스 본사에서 <킬 빌>의 마스터를 HD로 보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우려도 했었지만, 완성된 QC는 다행히도 HD의 장점이 잘 살아난 빼어난 색감을 보여주어 무척 만족스러우며, 벌써부터 HD 방영이 기다려질 정도이다. 혹독한 육체적 괴로움을 강인한 의지와 예술적 열정으로 극복해나간 프리다 칼로의 삶을 완성도 높은 영상으로 그려낸 <프리다>는 짙은 유화 같은 톤과 필름라이크한 질감이 매력적이고, <사마리아>도 기대 이상으로 준수한 화질을 보여주었다. 앨런 파큘라의 <암살자들>을 이번주에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쉽다. 선택은 <킬 빌 vol.1>이다. 새로 출시되는 DVD보다 할인 판매되는 DVD가 더 설치는 판국이 1년을 넘어섰다. 불법 출시되는 DVD에 대해선 매번 말하기가 괴로울 정도다. 이런 와중에 신작 DVD를 선택하고 리뷰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본다. 이번주에 주목할 만한 DVD는 단연 <킬 빌 Vol.1>이다. 국내 상영시 프린트의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DVD의 화사한 색감에 깜짝 놀랐다. <프리다>는 어쩐 일로 극장에서 뒷부분만 보았으나 인상은 깊었던 작품인데, 전체를 본 뒤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이번주엔 두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앨런 파큘라의 <암살단>은 원래 리뷰 대상이었지만 현 시점에서 다루는 게 이상하단 이유로(그러니까 필자의 자체 검열에 의해) 리뷰에서 빠졌음을 밝힌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올해가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DVD vs DVD를 적으며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베리만이 관심을 신이 아닌 인간에게 돌린 영화들은 내게 너무 잔인하다. 올리베이라처럼 살고 싶지만 그러나 베리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다면 10년 뒤 요한의 처지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은 홀리 헌터의 연기가 돋보인다. 하지만 북미판과는 달리 국내판은 부록 전무다. 더빙 번역이 부담스럽더라도 부록은 그대로 담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프리다>는 좋아하는 퀘이 형제가 제작에 참여하여 더욱 기다렸던 작품이다. 김기덕의 10번째 작품이 DVD로 출시되었다. 각기 다른 출시사를 통하여 그의 작품들이 출시되었지만 그도 이젠 박스세트를 가질 때쯤 되지 않았을까. 이번주 선택은 <킬 빌 vol.1>이다. 사운드도 좋지만 화질이 극장에서보다 뛰어나다.

[비평릴레이] <인 더 컷> -김소영 영화평론가

인 더 컷, 그 제목부터 물어보자. 상처 안에 무엇이 있는 걸까 혹은 무엇이 상처를 만들고 있는 걸까. 수잔나 무어의 동명의 스릴러 소설이 바탕이 되었는데, 소설처럼 영화는 열정적인 관객과 적대적인 그들을 동시에 생성시키는 것 같다. 영화의 제목 <인 더 컷>은 영화 크레디트 타이틀에서 스케이트 날이 잘라낸 빙판 조각을 의미하지만, 좀더 은유적으로는 상처, 혹은 외상 속에 웅크리고 있는 피로 물든 그 무엇이다. 제인 캠피온의 영화는 포스트 911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대량 파괴가 일어난 뉴욕의 디스토피아적 거리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연쇄 토막 살인이 일어나는 스릴러의 배경으로 완벽할 만큼 음산하다. 골목에 쌓인 검은 색 쓰레기 봉투는 갑자기 무엇이 터져 나올 듯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 보인다. 촬영 감독 디온 비브의 빛의 강한 대비와 골목들을 강조한 누아르적 화면과 대담한 커팅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공포의 민속지로 바꾼다. 불가능한 욕망의 구조속으로 풍덩, 동화 같기도하고 정신분석 같기도 도리스 데이의 ‘케 세라 세라’를 단조로 바꿔 노래하면서 영화는 시작하는데, 그 노래 속에서 소녀는 묻는다. “엄마, 난 자라 무엇이 될까요” 엄마는 답한다. “맘대로 하렴.” 그래서 정말 <인 더 컷>의 두 명의 여자들은 맘대로 한다. 연쇄 살인범인지도 모를 남자와 섹스에 빠지고, 기혼자와 사랑에 빠진다. 물론 여자들이 제 멋대로 살기에 세상은 잔혹하다. 그런 여자들을 살해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 남자가 있는 것이다. 이제 유년기를 함께 헤쳐 온 두 명의 여자들이 영화 안으로 소개된다. 프래니 (맥 라이언)와 폴린(제니퍼 제이슨 리)은 이복 자매로 서로에게 다정하고 솔직하다.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제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콧소리를 섞어 말하고, 금방 무너져내릴 듯하지만, 제멋대로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 라이언은 예의 애교스런 콧잔등 주름을 버리고, 슬랭(비속어)과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 탐닉한 영문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가벼운 성애 판타지와는 달리, <인 더 컷>은 강성이다. 지하철의 모든 글자들을 다 읽고 다니는 프래니는 슬랭 수집차 바에 들렸다가 한 여자와 팔에 문신을 한 남자가 오럴 섹스에 빠져있는 것을 목격한다. 연쇄 살인 수사를 위해 자신을 찾아온 형사 말로이(마크 러팔로)의 손목에서 그 문신을 발견한 프래니는 자신이 응시한 장면, 그 행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때문에 말로이에게 끌린다. 거침없이 남성적 슬랭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행위에 대한 약속 때문에 프래니는 말로이라는 위험한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떠나지 못한다.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 있기는 제니퍼 제이슨 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낳았던 어머니를 생각해 한번만이라도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기혼자를 사랑한다. 이렇게 불가능한 욕망의 구조 속으로 빠져드는 두 사람에 대한 배경으로 영화는 동화 같기도 하고 정신분석 같기도 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프래니의 어머니가 낭만적으로 구애받던 장면이 재생되면서, 아버지의 스케이트 날은 어머니의 다리를 세 동강으로 자른다. 이성애적 사랑의 양날, 낭만과 잔혹, 매혹과 죽음이라는 이중무가 악몽의 동화로 재연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프레니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를 둔 폴린의 상처가 이런 이성애의 근본적 외상에 더해지면서 영화는 자기 설명을 마친다. 제인 캠피온은 스릴러 <인 더 컷>을 <클루트>(앨런 파큘라, 1971)의 선상에서,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하고,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맥 라이언의 이미지를 전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영화를 장르 신봉주의자와 반여성주의자로부터 구출한다. 주류 속에서 주류에 대한 치명적 도전이다. 인 더 컷.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무림고수들의 대결, <아라한 장풍대작전>

중국의 3대 기서로 꼽히는 책으로 <봉신연의>란 작품이 있다. 우리에게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이 무왕을 도와 600년간 존립했던 은나라를 멸하고 주왕조를 구축한 역사적 사실을 도교적 세계관으로 각색한 소설이다. 신선과 요괴와 도사가 대거 등장하는 이 책은 유교적 전통이 뿌리 깊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많은 무협소설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류승완 감독이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저변에 깔린 사고는 <봉신연의>와 다르지 않다. 지금, 이곳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신선이 살고 있다. 다만 일반인이 모를 뿐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그렇게 첫운을 뗀다. 누구나 한번쯤 길에서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숨가쁜 일상에서 귀담아 듣기 힘든 그 말을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액션코미디의 쾌감에 실어나른다. 여주인공 의진(윤소이)이 빌딩숲을 붕 날아오르는 순간 다가오는 짜릿한 흥분이 이 영화의 엉뚱한 상상력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이야기는 간단히 말하면 힘없는 말단 경찰 상환(류승범)이 우연히 도의 세계에 입문, 악당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수많은 액션영화가 착한 주인공과 악한의 대결을 그린 작품들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이런 기본구조를 엉뚱한 곳에서 펼친다는 점에 있다. 장풍, 경공술, 점혈, 주화입마, 공중부양 등 무협소설의 용어가 2004년 서울 한복판에서 혈겁을 불러온다. 그러기 위해 류승완 감독은 크게 두 가지 포석을 깔아둔다. 첫째, 칠선의 존재다. 태초에 7명의 도인이 있었고 그중 흑운(정두홍)이 인간계의 분쟁에 뛰어들었다가 다른 도인들에 의해 봉인됐다는 이야기다. 선계의 규율을 어기고 칼을 들었던 흑운은 선계의 최고경지에 이르는 아라한으로 가는 열쇠를 탐냈던 인물로 2004년 부활하여 아직 살아 있는 5명의 도인을 위협한다. 이것이 과거사라면 현재는 상환과 의진의 이야기다. 자운(안성기)의 딸 의진은 아라한으로 가는 열쇠를 이어받을 인물이지만 혼자로는 부족하다. 전설에 따르면 아라한은 마루치와 아라치, 두 남녀의 힘으로 지켜질 것이다. 의진이 아라치라면 상환은 마루치가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일까? 비실거리고 허둥대는 상환을 보면 믿기지 않지만 자운은 상환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발견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 류승완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그랬듯 장르영화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는 감독이다. <스파이더 맨> <매트릭스> <저수지의 개들> <터미네이터> 같은 할리우드영화는 물론 성룡이나 서극, 주성치 영화의 흔적을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은 이런 영화를 자기 식으로 버무리면서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소림축구>의 전략과 유사하다. 쇠락한 소림사 고수들이 축구를 한다는 발상에서 웃음이 잉태되듯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현실에서 퇴물로, 낙오자로 인정받는 인물들에게 초능력에 가까운 힘이 있다는 전제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고층건물에 매달려 창문을 닦는 미화원, 층층이 밥상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줌마, 짐칸 크기의 수십배되는 물건을 자전거에 싣고 가는 아저씨 등 자기 일에서 어떤 경지에 이른 인물을 모두 도인으로 보는 이 영화의 기본 전제는 훌륭한 유머가 되기 충분한 것이다. 번번이 당하며 사는 어수룩한 주인공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거듭나는 이야기도 관객의 공감을 얻기 좋은 소재다. <반칙왕>의 송강호와 전혀 다른 이미지지만 류승범은 그런 인물로 잘 어울린다. 전음입밀(일종의 텔레파시)의 수법으로 자운이 상환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상환의 대사 같은 경우는 장내를 폭소로 몰고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부분부분 흥미롭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호기심을 끌 만큼 벌여놓은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해지고 액션의 쾌감도 시간이 지날수록 반감된다. 전작들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정확히 짚어냈던 류승완의 내공도 이번 영화에서 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상환이 대적해야 할 악당으로 흑운을 선택한 것은 패착으로 보인다. 흑운이 누구인가? 인간계의 분란을 해결하기 위해 선계의 규율을 어긴 이단아, 혹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아닌가? 당연히 비애를 느껴야 할 이 인물에서 영화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여지를 안 준다. 또한 굳이 애꿎은 흑운을 비난하는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다. 드라마의 병법에 따르면 궁핍한 삶을 묵묵히 버티고 있는 도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하는 편이 옳다. 덧붙이자면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상환이 장풍을 배우러 갔다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마지막 대결까지 상환은 장풍을 쓰지 못한다. 제목에 넣은 장풍이 허풍이었던 걸까?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그럴듯한 허풍이긴 하지만 끝내 장풍을 날리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조연배우들 안성기부터 무술감독 정두홍까지 류승완의 영화는 대체로 조연의 비중이 높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중요한 조연은 칠선의 남은 오인방 자운, 무운, 육봉, 설운, 반야가인이다. 의진의 아버지로 아라한으로 가는 열쇠를 지키는 인물 자운은 안성기가 맡았다. 극중 상환이 장풍 배우는 가격을 묻자 “그게 바람 크기에 따라 달라서”라고 말하는 대목은 안성기의 애드리브로 만든 장면. 상환을 가르치는 도장의 주인 무운으로 나온 인물은 베테랑 연극배우 윤주상. <쉬리>의 첩보국 국장, <유령>의 잠수함 함장으로 낯익다. 예전에 태권도를 배웠다는 윤주상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젊은 배우들도 힘들어 하는 와이어액션을 선보인다. 육봉과 설운은 <피도 눈물도 없이>에 나왔던 김영인, 백찬기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빚독촉을 하러 다니는 나이든 건달로 나왔던 두 사람은 70∼80년대 액션영화에서 직접 스턴트를 하며 연기를 했던 배우들. 김영인은 <시라소니> <김두한> 등의 영화에서 이대근, 김희라 등의 대역 연기를 하기도 했으며 백찬기는 <수사반장>에서 악역을 단골로 맡아 익숙한 얼굴이다. 류승완 감독이 <피도 눈물도 없이>를 연출하며 재발견한 셈이다. 700서비스로 주역풀이를 해주며 돈을 버는 반야가인은 TV드라마로 친숙한 김지영. <행복한 장의사> <파이란>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 영화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섯명의 착한 도사들과 맞서는 흑운은 무술감독 정두홍이 맡았다. 이번에도 <피도 눈물도 없이>처럼 악역연기를 보여준다. 이 밖에 파출소장으로 임하룡, 순경으로 박윤배 등이 나오며 윤도현, 봉태규, 이춘연, 이외수 등이 카메오로 나온다.

향수를 자극하는 70년대 인기 형사극의 재탕, <스타스키와 허치>

70년대 말 미국에서 방영됐던 <스타스키와 허치>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형사물 시리즈다. 두 주인공의 목소리를 더빙했던 배한성, 양지운이라는 성우 스타까지 만들어낸 이 드라마는 통쾌한 액션이나 정교한 줄거리, 사건해결보다는 서로 승강이를 벌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두 사람의 코믹한 모습에 집중했다. 이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영화 <스타스키와 허치>는 시대배경부터 이야기까지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되던 70년대를 그대로 따라간다. 꼬불꼬불 파마머리와 꼭 끼는 청바지의 스타스키와 넓은 깃 셔츠를 입는 허치의 옷차림이나 사사건건 아웅다웅하는 둘의 모습도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대로다. 7달러가 든 지갑을 훔친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차 몇대를 거덜내는 ‘오바’형 인간 스타스키(벤 스틸러)와 도시의 안전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위해 노력하는 ‘수동’형 인간 허치(오언 윌슨)는 경찰서에서 내놓은 자식이라는 이유로 같은 팀을 이루게 된다. 이들이 파트너를 이룬 첫날 베이시티 해안에서 시체가 한구 떠오르고 살인범을 수사하던 중 두 사람은 대규모 마약거래가 살인의 배후에 있음을 찾아낸다. 액션의 스케일이 크거나 이야기 구조가 복잡한 요즘 액션영화가 3D애니메이션이라면 <스타스키와 허치>는 2D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악당의 행태와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 소박한 액션 등이 요즘 관객에게는 너무 소박하거나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치어리더들을 유혹하기 위해 기타를 치며 감미로운 포크송을 부르는 허치나 코카인에 취한 스타스키가 디스코 클럽에서 경연을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춤시합도 웃기기는 하지만 요즘 감각으로는 썰렁하게 느껴질 법하다. 반대로 요즘 영화의 과장된 코미디에 싫증난 관객이라면 한 박자 어긋나는 이들의 코믹 앙상블이 도리어 신선하게 느낄 수도 있다. 이미 여러 편에서 호흡을 맞췄던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 커플은 10여년을 함께 산 부부처럼 느긋하게 보이는 조화를 이룬다. 그동안 영화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던 스눕 독이 연기한 허기 베어는 영화 내용에서 사실상의 문제 해결사였듯 납작하게 느껴지는 드라마에서 그나마 요즘 감각의 입체감을 부여하는 인물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제3의 주인공이었던 빨간 자동차 토리노의 여전한 기세와 ‘진짜’ 스타스키와 허치, 폴 마이클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솔의 깜짝 등장이 그 옛날 텔레비전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주말극장가] ‘장르의 성찬’ 즐거운 고민

이번주 주말 극장가 상차림은 일단 많은 반찬 가짓수가 눈을 즐겁게 하는 푸짐한 한정식같다. 한국, 할리우드, 일본, 유럽 등 산지도 각각이고 액션, 애니메이션, 로맨틱 코미디, 심오한 작가주의까지 맛도 다른 작품들이 칠첩반상으로 놓여 어디로 먼저 젓가락질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한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류승완 감독의 신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이다. 현대의 도시에 사는 도인들의 이야기라는 황당한 발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대도시의 고층빌딩에서 몸을 가볍게 날리는 경공과 장풍이 등장하는 새로운 형식의 무협물이다. 도시와 도인의 대비, 순진하고 어눌한 액션영웅이라는 부조화가 영화의 전반을 이끌어가며 톡톡 튀는 대사의 발랄함이 영화 이곳저곳에 웃음의 지뢰를 묻어놓고 있는 발랄한 액션물이다.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이미 여성관객들에게 살짝 선보인 제인 캠피언 감독의 <인 더 컷>은 여성의 욕망을 대도시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연결시켜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한없이 건조해보이는 일상을 사는 여교수가 낯선 남자로 인해 숨었던 관능의 욕망을 발견하면서 잔인한 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깜찍공주로만 등장했던 멕 라이언의 180도 연기변신이 인상적인 영화다. 작가주의 영화팬이라면 무엇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번이나 받은 일본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개봉이 반가울 듯. 성과 생에 대한 노감독의 흥겹고 여유만만한 찬가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족 관객을 겨냥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괴물잡는 강아지 스쿠비 일행의 소동을 그린 <스쿠비-두 2: 몬스터 대소동>도 밥상에 올라있다. 개봉 신작 리뷰 <스타스키와 허치> 70년대 투갑스 ‘얼렁’개그 ‘뚱땅’ 액션 70년대말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였던 <스타스키와 허치>의 극장판 리메이크로 벤 스틸러, 오언 윌슨이라는 스타 배우 두명이 출연한다. 그렇다면 화려한 액션, 속도 빠른 개그, 정치한 플롯을 갖출 법한데 이 영화는 이 중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시대 배경을 원전과 똑 같이 70년대로 하고, 통 넓은 판타롱 바지, 빨간 토리노 자동차, 디스코춤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이해가 간다. 향수를 자극함과 아울러, 70년대의 풍광을 그대로 옮겨왔을 때 일어나는 시대착오적인 불균형의 맛이 이 영화와 어울린다.(아무리 70년대식으로 입어도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은 요즘 사람 같다.) 그런데 이야기나 개그, 액션이 설렁설렁 흘러간다. 스타스키(벤 스틸러)와 허치(오언 윌슨), 두 형사가 파트너가 된 날 베이시티 해안에 시체가 떠오르고 그걸 수사하다가 악질 마약상과 대면하게 되는 줄거리는 평이함 그 자체다. 두 형사의 캐릭터 대비나 둘 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버디 영화의 장치들을 집어 넣었지만 이걸 요즘 감각으로 가다듬는 일 따위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배짱이 있는 영화다. 원전이 버디무비의 고전인데, 가공할 게 뭐 있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같다. 그게 밉지 않은 탓에, 심심하고 약간은 썰렁한데도 나름의 유머와 리듬감이 전해진다. 벤 스틸러와 오언 윌슨의 궁합이 잘 맞아서 텔레비전물처럼 둘의 얼굴을 나란히 잡는 화면들을 넉근히 버텨낸다. 오리지널 스타스키와 허치인 폴 마이클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솔이 깜짝 출연한다. 지난해 나온 주책맞고 기이한 코미디 <올드 스쿨>의 토드 필립스가 감독했다. 30일 개봉.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엄마의 애인이 젊은 여자‥혹시 나도? 일이면 일, 연애면 연애,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 없는 젊은 여성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 아빠와 이혼하고 오랜 세월 독신으로 살아온 엄마의 생일 파티에서 엘비라 세 자매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박수를 치며 축하하는 사이 짜잔! 하며 들어온 엄마의 애인. 겨우 자기 또래에다 심지어 여자다. 눈을 의심한 세 자매는 엄마의 진심까지 의심하며 두 사람 갈라놓기 작전에 들어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사지 멀쩡하고 얼굴도 남에게 밀리지 않는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건. 엘비라의 이런 고민 위에, 엄마로 인해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한 의심까지 겹친다. 감수성 예민하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는 연애도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다 결국 내리는 결론. “내 복에, 얼어죽을 무슨 연애.” 그러나 엘비라가 몰랐던 게 있다. 스스로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만사를 미리 재단해왔던 게 자신을 연애 뿐 아니라 삶 자체로부터 소외시키고 주변부로 밀어내 왔다는 걸.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동성애, 결혼, 가족제도 등 쉽지 않은 소재들을 끌어오면서도 물 흐르듯 경쾌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네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그러는 사이에 엘비라는 자신이 쌓았던 견고한 성의 문을 하나씩 열고 삶을,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복은 그와 함께 따라온다. 어려운 전제들이 너무 술술 풀려가는 이야기가 판타지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이 거북하진 않다. 고민의 짐에 눌려 허리가 휘는 젊은 여성이라면 영화가 다정한 격려의 손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30일 개봉.